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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런들 어떠하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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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월급쟁이는 매월 25일이면 즐겁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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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Nov 2009 14:04:5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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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런들 어떠하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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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한국 정부가 취하는 국가별 생명의 가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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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SIZE: 130%"><strong>09.11.16&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y Hong<br><br></strong><span style="FONT-SIZE: 100%">&nbsp;지난주말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30분만에 무려 10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생긴 부산 사격장 화재. 정부는 즉각 진상조사팀을 꾸렸다. 특별히 강희락 경찰청장이 직접 브리핑을 맡기도 했다. 16일에는 정운찬 총리가 현장에 나가 위족들을 위로했다. 그런데 정 총리가 일본인 유족들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것이 영 보기에 마뜩치가 못하다. 이놈의 못된 심성은 왜이러는지 항상.&nbsp;<br><br>&nbsp;일본인 8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였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마는 자꾸 예전 발생했던 사건들이 오늘 사건에 겹쳐진다.<br><br>&nbsp;지난 2004년&nbsp;2월이다. 여수에 있는 외국인보호소에 갇혀있던 외국인들. 10명이 죽고 18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당시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조선족이었으며 러시아인, 동남아시아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수였다.&nbsp; 당시&nbsp;총리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땐&nbsp;총리가&nbsp;직접 현장을 방문해&nbsp;유족들을 위로하지 않았다. 이주민 노동자 단체들에서나 가까스로 그들을 기억해 1주년 기념식을 열어줬던 것이 고작이다.<br><br>&nbsp;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와 사격장 화재는 명백히 책임 소재가 다르다. 여수&nbsp;화재는&nbsp;감옥과 다름없는 시설에, 제대로 된&nbsp;방화시설(스프링쿨러 미작동, 방연재 미사용 등)이 갖춰지지 않아 발생한 대형 인명사고였다. 정부의 책임이&nbsp;큰 것이다. 반면 사격장&nbsp;화재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실탄사격을 위해 방문했던 사격장 내부에 인화물질이 많아 발생한 대형&nbsp;인명사고다.&nbsp;모든&nbsp;사설 사격장을 정부가&nbsp;완벽히 관리할&nbsp;수 없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정부의 책임은 다소간이나마 낮게 볼&nbsp;수 있는 일이다.<br><br>&nbsp;사람이 죽었으니 총리가 현장 방문하고 일본인 유족들에게 위로의&nbsp;뜻을 전하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러나 내 눈엔 정 총리의 이번 방문에 '어느 나라 사람이 죽었느냐'에 따라 생명의 가치를 다르게 보는 듯한 한국 정부의&nbsp;태도가 엿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이는 노무현 정부냐, 이명박 정부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보편적으로 가진&nbsp;차별적 시각에 대한 지적이다.<br><br>&nbsp;일례로&nbsp;지난 2007년 4월.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한국계 조승희라는 선수가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되자 이태식 미국대사가 사죄했다.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사건이니 대통령이 조의를 보내는 것 정도면 되는 수준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주미대사란 분은 허겁지겁 '사죄'를 남발했다. 한술 더떠 한국 정부는 '조문사절단'을 보내겠다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미국은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인이다. 우리의 일이다'며 고사했다고 전해진다. 남의 나라일이지만 강대국의 미국인의 사망에 대해 한국은 지나치게 조바심쳤던 것이다.<br><br>&nbsp;화재니 당연히 올해 초 있었던 용산참사 사건이 잇따라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nbsp;아주 오래전 있었던 것 같지만 불과 9개월 전 일이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해&nbsp;한국인 6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불에 탄 시체는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정 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총리되면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답했고, 실제로 총리가 된 이후에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었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살아남은 철거민들에게 법원은 5년 이상의 무거운 형을 때렸다. 재판은 어디까지나 법원의 일이니 정부에게 뭐라고 할&nbsp;수는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br><br>&nbsp;한국 정부는&nbsp;경찰이 상당부분 잘못한&nbsp;강압 진압에 의해 돌아가신 6명의 인사보다, 의도치&nbsp;않은 사고로 돌아가신 일본인의 사망 소식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다.<br></span></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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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Nov 2009 14:04:55 GMT</pubDate>
		<dc:creator>월급쟁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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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사이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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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trong><span style="font-size:130%;">09.11.15        By Hong</span></strong><br />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 출판)<br />
p23~25(서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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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엔탈리즘은 지극히 서구적인 시각으로 동양을 해석할 때 생겨나는 오류에 대해 명쾌하게 지적한다. 동양이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마르코 폴로가 보고 해석했던 것들이 동양에 대한 이미지화가 되면서 오히려 동양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됐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동양과 서양의 발전정도, 군사력 수준 등에서 현저하게 앞서는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대등한 '다름'이 아니라 '차별'로 쉽게 이어졌다. 서구적 해석틀로 이해 된 동양은 동양이 가진 본래 모습이 아니었다. 예를들면 동양의 불교문화는 '선'은 명상, 요가 등으로 요약됐다. 그리고 이같은 문화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서구인들은 판단했다.<br />
<br />
 서양과 동양의 관계는 권력관계, 지배관계, 복합 헤게모니의 여러가지 정도에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페니커가 그의 고전적인 저서인 <아시아 그리고 서양의 지배>라는 책 이름을 통해 참으로 정확하게 보여 준 적이 있다. 동양이 동양화됐다는 것은 19세기의 평균적인 유럽인들에 의해서, 동양이 모든 상식에 비춰 '동양적'이라고 인지됐기 때문만이 아니라 동양이 동양적인 것으로 날조될 수 있었기 대문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합의라고 하는 것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예컨데 플로베르는 이집트의 창녀와 실제로 만났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 동양 여성의 모델을 창조 할 수 있었다. 그 창녀는 결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그녀 자신의 감정, 존재, 이력을 설명하지도 않았다. 바로 플로베르 자신이 그녀 대신 말했고, 그가 그녀를 표현했다. 플로베르는 외국인이고 비교적 부유했으며 남자였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은 바로 지배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뜻했다. 그 사실들로 인해 플로베르는 쿠추크 하넴(창녀)의 육체를 소유했을 뿐 아니라 그녀를 대신해 말하고 그녀가 얼마나 전형적인 동양인엉ㅆ는가를 독자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플로베르가 쿠추크 하넴에 대해 우월한 지위에 있었던 상황이 결코 예외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플로베르의 그러한 우월 상황은 동양과 서양 사이의 상대적인 힘의 관계라고 하는 패턴 그리고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성립된 동양에 관한 담론을 명백하게 상징한다.<br />
 위의 언급은 우리로 하여금 셋째의 한정조건으로 나아가게 한다. 곧 오리엔탈리즘 구조는 허위와 신화로 이뤄진 구조에 불과하다거나, 만일 그 진실이 밝혀진다면 허위와 신화는 일거에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나는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독특한 가치가, 동양에 관해 진실을 말한다고 하는 담론의 측면보다도 동양을 지배하는 유럽적, 똔느 대서양적인 권력의 표지라는 측면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리엔탈리스트의 담론을 긴밀하게 엮어 놓은 힘. 그리고 그것과 강력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여러 제도와의 지극히 밀접한 연결, 나아가 그 엄청난 지속력을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되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결국 1840년대 후반 에르네스트 르낭의 시대로부터 오늘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어떤 관념 체계도 변함없이 가르칠 수 있는 지식으로 ㄴ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만큼, 그것은 단순한 거짓말 모음 이상으로 강력한 어떤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소재로 하는 유럽의 공상만화가 아니라, 하나의 이론 및 실존체계로 창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창조를 위해 수세대 동안 엄청난 물질적 투자가 이뤄졌다. 이러한 계속된 투자에 의해, 동야에 관한 지식체계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인의 의식 속에 동양을 여과해 주입하기 위한 필터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뤄진 그만큼의 투자는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비롯돼 문화 전반을 향해 증식돼 가는 서술들을 양적으로 더욱 증대시켰다. 그것은 참으로 생산성이 높은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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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Nov 2009 06:35:57 GMT</pubDate>
		<dc:creator>월급쟁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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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쓰다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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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2004년이던가. 군대 갔다와서 잠시 부산 집에 내려가 있는데 한참 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던 이슈가 바로 친일인명사전 얘기였다. 누구가 포함됐고, 누구는 빠졌다는. 아마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됐다는 얘기도 뉴스에서 흘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아버지께 ‘친일 했던 사람들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게 맞지 않나요?’라고 여쭸더니 아버지가 답하신다. “네 할아버지는 일제 시대때 금광하셨었다”고.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br />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어 발간했다. 4300여명이 친일인사에 포함됐단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 주필,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선생, 역사학자 이병도씨 등이 포함됐다.<br />
 2004년이나 2009년이나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친일자들에 대한 기록은 반드시 남겨야 한다. 또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용서와 화합’이라는 프로세스는 가해자의 사과가 선행한 이후에야 가능한 것이다는 것. 아니 사과까지를 바라지도 않는다. 60년이나 지난 오늘, 누가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 하고, 누가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는 입장인지도 불분명하다. 이제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고작 역사에 있었던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겨 역사화 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전 하나 만들자는 데 무진장 시끄럽다. 그들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고작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일 뿐인 데도 반대파들의 주장이 너무 드세다. 한국사회 우파들의 주장에 매반 실리는 ‘빨갱이’, ‘용공’ 소리도 빠지지 않는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따르는 저항의 규모에서 역설적으로 사전편찬의 당위성을 읽는다.<br />
 논란이 가장 첨예한 사람은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만주군 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견마의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혈서를 썼고, 만주군으로 1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광복군을 토벌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만주군인으로 1945년 광복을, 광복이 아닌 ‘패전’으로 맞이했다. 당시 그의 혈서는 ‘만주신문’(일본신문)에 실리는 등 화제가 됐었고, 이 신문보도는 민족문제연구소가 그를 친일인사로 분류하게 된 중요한 단서가 됐다. 당시 만주군 군관은 2000만명에 이르는 한국사람 가운데 1년에 1∼2명만 입학가능한 곳이었다.<br />
 그의 이같은 명백한 친일 행위에 대해 우파들이 대체로 기대는 논리는 ‘(산업화까지를 포함해)과보다는 공이 큰 것 아니냐’는 합산론, ‘일본군에서 배운 시스템의 한국수용’이라는 실용론, ‘20대 초반에 친일 해봤자 얼마나 했겠냐’는 동정론 등이다.<br />
 개별 주장에 대해 일일이 코멘트 하기는 어렵다. 다만 <br />
 우선 합산론에 대해 한마디. 큰 인물(거대전범도 크긴 한 인물이다)의 삶에는 언제나 공과 과가 함께 어우러져있다. 그렇다면 역사속으로 들어간 그같은 인물들에 대해<br />
 <br />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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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3 Nov 2009 08:45:15 GMT</pubDate>
		<dc:creator>월급쟁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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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미수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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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gunwJ2Eq83Q&color1=0xb1b1b1&color2=0xcfcfcf&feature=player_embedded&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gunwJ2Eq83Q&color1=0xb1b1b1&color2=0xcfcfcf&feature=player_embedded&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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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반올림하면 180이라고 우기긴 하지만 어쨌든 나도 루저다.<br />
 그러나 그들처럼 열폭하진 않는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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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3 Nov 2009 03:34:51 GMT</pubDate>
		<dc:creator>월급쟁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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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전직장성들의 국방의식 수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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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trong><span style="FONT-SIZE: 130%">2009.11.10&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y Hong</span></strong></p><p>&nbsp;유병현 예비역 대장 등 전직 장성들이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와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시기의 재검토를 촉구하는 서한을 배럭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p><p>&nbsp;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에 보낸 서한에서 “북핵이 노리는 것은 한미동맹의 와해와 한미 연합작전구조의 해체”라며 “북핵 위협 등 한반도 안보 상황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의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 장치인 한미연합사를 해체해선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어 “북 정권 교체기인 향후 5∼10년이 북의 긴장이 가장 고조되는 시기인데 북 급변사태에 최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한미연합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p><p>&nbsp;도대체 이분들 머리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알수가 없다. 이쯤 되면 어느 시민단체가 나서서 전직 장성들에 대해 '현직시절 천문학적인 금액을 국방예산에 쓰고도 자주국방은 요원한 것으로 만든 것'에 대한 직무유기 혐의를 들어 고발이라도 좀 해줬으면 싶다. 50년 의존국방의 원흉들이 만들어내는 유치 향연에 머리가 다 아뜩해질 정도다. 이들에게 한미연합사해체=남한정부 붕괴로 읽히시나보다.</p><p>&nbsp;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다가 또한번 아찔해졌다. 댓글의 요는 '일본도 미군주둔한다'는 것이었다. 댓글을 다신 분들은 요새 신문도 안읽으시는지.</p><p>&nbsp;현 일본 총리인 하토야마 총리의 대미 외교방침은 '대등한 관계'를 주창한다. 덕분에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돈다. 특히 미군은 후텐마 공군기지를 오키나와현으로 옮기려고 하고 있지만, 오키나와현 주민들 2만여명은 현내 미공군기지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도 주민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p><p>&nbsp;아마 하토야마 총리가 한국 대통령이었으면, '좌파', '반미' 대통령으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여기에다 전직 장성들은 '미공군기지의 오키나와현 이전을 지지한다'고 플래카드를 내걸 것이고, 또 주민들의 미군기지 이전 반대집회에 대한민국어버이회 따위의 노친네들을 보내 수용하라고 주장할 것이다. </p><p>&nbsp;아무튼 대한민국 보수의 수준은 저모양이다.</p><p>(얼마전 KBS라디오를 듣다가 노인단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들었다. 어버이회, 반핵반김 등의 단체에 대해 '보수단체'라는 용어 대신 노인단체라고 쓴 것이다. 나도 앞으로는 보수단체 대신 노인단체라는 용어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실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어버이단체 등의 성격을 놓고 보면 좀 거리가 있다고 진작부터 생각해오던 터였다)</p><p>PS: 이날 오전 서해상에서 북한군과 남한군의 교전이 발생한 모양이다. 잊을만하면 빚어지는 서해교전. 말도안되는 남한의 북방한계선(NLL) 우김질에 번번히 젊은 군인들만 피해를 본다. 국제적으로 인정 되지 않는 북방한계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북방한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알고 있고, 이를 넘어오는 북의 행동이 남쪽의 영유권 침범으로 잘못 알고 있다.(연합뉴스의 강모 기자가 NLL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했다. 아마 리영희 교수의 책을 읽지 않았을까 한다. ㅎㅎ)<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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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Nov 2009 06:44:09 GMT</pubDate>
		<dc:creator>월급쟁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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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사형선고자가 집행자여야 한다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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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FONT-SIZE: 12pt"><strong>2009.11.09&nbsp;&nbsp;&nbsp;&nbsp; By Hong<br></strong></span><br>‘전쟁의 최종 결정권자가 직접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면 많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nbsp;대략 10년쯤 전 읽은 어느 책의 한 구절이다. 짤막한 통찰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한 국가에서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 많으신 정치인들이며, 그들의 결정에 따라 전장에 참여해 적들을 향해 총을 겨눠야 하는 국민은 대부분 20∼30대의 젊은 남성들이다. 즉, ‘전쟁 결정자’와 ‘전쟁 참여자’의 괴리가 많은 전쟁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p><p>‘사형의 최종 결정권자가 직접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면 많은 사형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이 든 것은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집행자’를 보고난 이후다.<br>영화는 법에 따라 살인을 준비하는 교도관의 시각으로 사형제도를 바라보게 만든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각에 또다른 하나의 시각인 교도관의 관점을 우리 사회에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영화다. 주말동안에만 19만여명이 봤다니 흥행에도 성공한 것 같다.<br>얼마전 영화속 주인공처럼 실제 사형집행자의 인터뷰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해당 교도관은 ‘다시 집행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상상도 하기 싫다’고 했다. 그는 또 ‘사형집행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으며, 집행일에는 액운을 집에 가져가지 않기 위해 여관에서 잠을 잤고, 12년이 지난 현재도 사형집행 당일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고했다.<br>비록 법에 따른 집행이고 여러 교도관이 여러개의 버튼을 동시에 눌러 누가 효력버튼을 눌렀는 지 알수 없게하는 장치가 있다곤 하지만 멀쩡한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는 데 참여했다는 것은 분명 끔찍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대상이 비록 끔찍한 살인범일 지라도 말이다.<br>최진호 감독은 ‘상업영화로만 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올들어서도 강호순·조두순 사건 등 강력범죄를 겪은 한국사회에 영화 ‘집행자’가 던지는 시사점은 ‘상업성’ 이상의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모쪼록 이번 영화를 통해 사형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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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Nov 2009 06:41:03 GMT</pubDate>
		<dc:creator>월급쟁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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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혁명을 팝니다 中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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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nbsp;</p><p><strong><span style="FONT-SIZE: 11pt">세상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미덕은 순응이며 </span></strong></p><p><strong><span style="FONT-SIZE: 11pt">가장 혐오하는 것은 자립이다(2007.02.18) <div class="autosourcing-stub"></div></span></strong><p><br><br></p><p>(가장 찌릿했던 구절....)</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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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Nov 2009 06:38:32 GMT</pubDate>
		<dc:creator>월급쟁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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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윤계상 코미디계 넘봐… 아이돌 그룹 영역 확장 무섭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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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09.11.02&nbsp;&nbsp;&nbsp; By Hong</p><p>&nbsp;점심먹고 놀고 있는데 누군가 '좌파'라는 단어가 인기검색어 1위란다. 얼른 검색해보고 우껴 까무라쳤다. ㅋㅋㅋㅋㅋ<br>&nbsp;앞뒤 전후를 보니... 이건 뭐 영화배우로 나선 윤계상이 이젠 코미디 계까지 넘보나 싶다.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그의 모습에서 아이돌의 미래를 읽는다.</p><p>&nbsp;윤계상은 최근 11월호 패션지 인터뷰에서 "아이돌 출신이라고 연기자로서 무시하는 게 아니라, 한국 영화계의 본바탕이 좌파다. 굉장히 우호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좌파의 의미가 뭔가'라는 질문에는 '막혀있다는 거다'라고 답했다.</p><p>&nbsp;이에 논란이 일자 그는 11월 2일에는 자신의 팬카페에 '부끄러운 날'이라는 제목의 사과글을 올리고 "굉장히 창피하면서도 여러분에게 미안하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좌파라는 단어의 큰 의미를 솔직히 잘못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p><p>&nbsp;단적으로 이는 아이돌 그룹은 무식하다고 광고를 하는거다. 윤계상은 '아이돌 출신이라고 연기자로서 무시'한다고 했는데, 이쯤 되면 '무시당할만 하니까 무시하는거다'라는 윤계상 무시자들의 반론이 제기될 법도 하다. 세상에 신문 몇줄만 읽으면 나오는게 좌파 우판데, 말하자면 그는 신문 한줄 읽지 아니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청년이었던 거다.</p><p>&nbsp;그는 '좌파'라는 단어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집단'이라고 판단했던 듯 보인다. 말하자면 좌파=나쁜 사람 쯤 정도의 이해력을 가졌던 거다. 그의 상식부재에, 그의 무지함에 그리고 이에서 비롯된 용감성에 경의를 표한다. 좌파들 때문에 자기가 영화계에서 배척받는다니... 어찌 논리가 예전 심모감독의 '충무로가 코미디언 출신인 나를 왕따시킨다'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지극히 피해망상적인 병적 증상말이다.</p><p>&nbsp;그런데 더 재미 있는 것은 그가 이번 사건을 '실수'로 간단히 치부해버리려는 시도 덕분이다. 그는 사과문이라고 올린 글에서조차 '어떤 해명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냥 저의 완벽한 실수이기 때문에 부끄럽네요'라고 말했다.</p><p>&nbsp;그러나 내 봄에 그는 좌파의 의미를 몰랐던 것이지 최소 '실수'는 아니었다. 실수란 아는 것을 잘못 적용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다. 예를들어 니네 아빠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홍길동이 아니라 홍길등이라고 답했다면 이는 실수다. 그러나 좌파라는 단어의 의미자체를 몰랐다고 고백하는 사과문에서 자신의 말을 '실수'라는 단어로 줏어 담으려는 시도는 좀 보기 민망하다.</p><p>&nbsp;얼른 검색을 해서 그의 나이가 몇살인지 확인해봤다. 78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32살. 그리고 그의 설명에 붙은 법무부 교정 홍보대사라는 이력이 예사롭지 않아보인다. 앞으로 법무부 홍보대사엔 상식 시험같은거라도 좀 도입 했으면 싶다. 시험 문제로는 우리나라 대표 우파 논객, 좌파 논객 이름 5개씩 쓰는거 쯤이면 되겠다. 그가 나온 집행자라는 영화가 곧 개봉한단다. 아무래도 그의 얼굴위에 '좌파'라는 단어가 자꾸 겹쳐질 것 같아 이번 영화는 그냥 스킵하련다.</p><p>&nbsp;사실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사회 일각의 주장에 대해 평소 마뜩치 않게 생각해왔던 나다. 연예인은 그냥 연예인일 뿐이다. 10대와 20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근거로 그들을 공인의 영역에 배치하려나본데, 그들은 그냥 우리 아버지 같은 장사치와 다름없는 다만의 생활인일 뿐이다. 우리 아버지는 물건을 파시지만, 그들은 웃음과 이미지를 팔아 먹고사는...</p><p>&nbsp;그리고 연예인들에 대한 공인 논란은 통상 과도한 도덕성 요구, 또는 과도한 정치적 중립성 요구와 함께 이 사회에 매반 등장해왔다는 점에서도 마땅치 않다. 김제동이나 윤도현 같은 연예인, 또는 술은 먹었으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던 모 가수 등등. 그들은 그냥 연예인이다. 직업이 연예인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인이라는 이름을 엎어 씌워 과도한 어떤 것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p><p>&nbsp;어쨌든 윤계상은 정말 너무 우낀다. 누구의 말처럼 측은지심이 들만큼 ㅋㅋㅋ</p><p>&nbs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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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Nov 2009 06:37:45 GMT</pubDate>
		<dc:creator>월급쟁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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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끔찍한 실용주의- 국군 경험치 높이려 아프간 파병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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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trong><span style="FONT-SIZE: 12pt">09.11.01.&nbsp;&nbsp;&nbsp;&nbsp;&nbsp; By Hong</span></strong></p><p><strong><span style="FONT-SIZE: 12pt"></span></strong>&nbsp;</p><p>&nbsp;정부가 아프간 파병을 결정했다. 지난달 30일이다. 정부는 지방재건팀(PRT) 요원을 130~150명으로 늘리고, 특전사요원을 주축으로 한&nbsp;270~280명을 이들을 보호키 위해 파견키로했다. 파병될 부대는 아프간 내 1개 주에서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한다고 정부는&nbsp;설명했다.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또 "교전 가능성과 희생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있다"고 말했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공병부대와 의료부대를 파견하면서 비전투병임을&nbsp;강조하며 여론을 호도했던 것보다 이번 정부는&nbsp;솔직해서 좋다. 공병부대의 주 임무는 적이 설치해 놓은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임무의 특성상 아군 부대의 최전방에서 활약해야하니만큼&nbsp;공병부대는 전투병으로 봐야 한다.&nbsp;이를두고 지난정부는 침략전쟁에 몸을 담그는 것에 대한 여론 비판을 의식한 듯&nbsp;'비전투병!' 주장으로&nbsp;여론을 호도했었다.</p><p>&nbsp;이번 정부는 지난 정부가 했던 것 보다는 훨씬 적은 고민을 한 채 아프간 파병을 결정 한 것으로 보인다. 고민이야 많이하든, 적게하든 결론은 이번정부와 지난 정부가 같으니 어찌보면 이번 정부가 '실용'적이긴 한 것 같다. 게다가 세계 수십개 국가가 참여한 전쟁이니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라면 파병 여부를 두고 찬반을 편갈러 왈가왈부키는 좀 어려워 보인다. 한국은 세계 10~15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니 이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nbsp;한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 있어보인다.</p><p>&nbsp;그러나 파병 찬성 논리 가운데 하나가 목에 콱 걸려 한마디 하고 싶다.&nbsp;바로 '국군의 실전 전투 경험을 쌓기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논리다. 도대체 이런 끔찍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처음 생산돼서 유포되고 또 인구에 회자가 되는 걸까. 말하자면 해외에가서 한국군의 실력좀 쌓고 오자는 얘긴데, 실력이란 것이 무엇인가. 전쟁·전투에 있어 실력이란 적을 제압하는 것을 의미하며, 전지이기 때문에 제압이란 것은 적을 죽이는 것까지를 포함한 것이다. 나같은 경우야 제설작전에 투입이 됐었던 것이 작전의&nbsp;전부였지만, 아프간에 가는 군인들은 현지인들을 죽여야 하는 일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그것이 곧 우리가 말하는 실력이고, 실전 전투경험이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미국이 9년이나 아프간을 점령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입장에서의)치안이라는 것이 확립되지 않은 이유는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국민들 속에 섞여 있기 때문이다. 마치 베트남에서 베트콩과 베트남의 선량한 사람들을 구분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럼 만일 교전이 발생하다면? 한국군은 당연히 살기위해 그들을 죽여야 한다. 전시엔 항상 본인의 안위가 1순위다. 결국 파병 찬성론자들이 말했던 실전 경험, 실력 양성이란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불우한 현재 위에 터잡아 사람 죽이는 연습쯤 해보겠다는 거다. 정말 끔찍한 실용주의가 아닐 수 없다. </p><p>&nbsp;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6·25(한국전쟁) 전쟁&nbsp;당시 캐나다나 터키는&nbsp;한국에 파병을 결정했다. 그런데 그 나라 국민들이 파병을 찬성했던&nbsp;이유가 '사회주의vs민주주의'라는 거대 명분에 근거한 것이&nbsp;아니라&nbsp;'그나라 가서&nbsp;군 경험치를 좀 높여야 한다'였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뇌이면서&nbsp;형과 아우가 서로 적군으로 서서&nbsp;서로를 죽일 것을 강요(태극기 휘날리며)당하는&nbsp;그 비극이 국외인인 그들에겐 다만의&nbsp;'경험치 상승' 기회로만 비쳐졌다면?&nbsp;한국전쟁 파병 찬성의 근저에 저같은&nbsp;끔찍한 실용주의가 바탕해 있었다고 한다면? 내앞의 적군보다 그들에 대한 증오가 더하지 않았을까.</p><p>&nbsp;나는 '실전 경험' 논리와 짝패를 이룰 정도의 끔찍한 실용주의가 횡행하는 것을 이 사회에서 또 한번 경험했던 적이 있다. 바로 지난해 혜진 예슬양 사건, 올들어 강호순 사건과 조두순 사건 때.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사형 집행을 요구하면서 내세운 논리는 '그들이 먹고 싸는 것이 왜 세금으로 이뤄져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형수들은 대략 58~60명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사형수 1명당 1년에 들어가는 비용은 256만원쯤. 매월로 따지면 20만원남짓 된다. 이 돈이 아까워서&nbsp;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데 도대체가 이나라 국민들의 머리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하긴, 그같은 가공할 실용주의가 배출한 대통령이 현재의 대통령이니 무엇 더 말할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도 잇따라 든다.</p><p>&nbsp;암튼 정부는 아프간에 파병하기로 했다. 이미 되돌이킬 수 없어 보인다. 오는 18일이든가? 미국 배럭(스타크래프트에서 병력을 만드는 건물) 오바마가 한국에 온다니 몇명 쯤 보내줘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부는 오바마의 방한과 한국의 아프간 파병이&nbsp;세트로&nbsp;묶이는&nbsp;게 마뜩치 않을 것이다.&nbsp; 불과 십수개월 전, 미국 크로포드 목장 방문과 '광우병 쇠고기 개방'이 서로 맞바꿔졌었다는 의혹이 국민들의 기억을 다시 자극할 테니. 이번 아프간 파병도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판단이었다고 믿자. 그리고 파병에 찬성하는&nbsp;국민들도 '그들의 재건을 위해 파병해야다'고 말하는 뻔뻔함 쯤을 미덕으로 갖추자. 그러지 않고 '한국군 경험치 높이자'며 파병에 찬성하는 건 아무래도 쫌 민망한 주장이 아닌가 싶다. 설혹 실제 속내는 '경험치'가 목적이더라도 그걸 곧이곧대로 다 까발겨 '연습좀 해보자'는 투의 주장은...좀 말아야 겠다. 진짜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div class="autosourcing-stub"></div><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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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Nov 2009 06:36:40 GMT</pubDate>
		<dc:creator>월급쟁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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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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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trong><span style="FONT-SIZE: 130%">09.10.31&nbsp;&nbsp;&nbsp; By Hong</span></strong></p><p>홍대앞 북카페 '토끼의 지혜'에서 살림 출판사에서 나온 </p><p>'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와 혁명의 순교자' 읽음 (96페이지자리 문고판)<br></p><p>안토니오 그람시는 1891년 1월 22일. 이탈리아의 장화 발 뒤꿈치 쯤에 있는 섬 사르디니아의 알레스라는 곳에서 출생. 7형제 중 넷째. 니노라는 애칭. 네살 때 하녀의 실수로 곱사등이가 된 이후 평생 152센티미터의 작은 키로 살았음. 몸이 극히 허약함. 10대때 형인 젠나 그람시로부터 영향을 받아 최초 사회주의자가 됨. 1904년 사르디니아 지역 광업지대에서의 군대의 무자비한 발포로 '사르디니아 민족주의'에 처음 눈 뜸. 사회적 의식을 가지기 시작.</p><p>&nbsp;러시아 혁명이 있었던 1917년 '전진'이라는 잡지에 '자본에 반한 혁명'이라는 글을 게재. 내용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고도화 된 사회에서 혁명이 일어난다고 했으나 후기 농업사회인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으니 마르크스의 주장은 틀렸다는 것. 이 때문에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개량주의자라고 비난을 들음.</p><p>&nbsp;그는 이탈리아 국내에서 무솔리니 1차대전 참전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개진하자 그를 지지하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기도 할 만큼 초기 무솔리니에게 협조적이었음. 그러나 이후 무솔리니가 사회주의자 시절 배웠던 선전 선동 기술을 토대로 '혁명을 우파의 혁명'으로 만듬. 저 유명한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태동됐던 시기였음. 이후 그람시는 무솔리니에 반기를 들게되고 이에 따라 공산당 당원들과 그람시는 체포. 재판장은 '우리는 이 자 두뇌의 작동을 20년 동안 중지시켜야 한다'고 선고했음. 결국 그는 20년형을 선고받고 투옥. 무솔리니는 이후 바티칸과 정치범 감형 문제에 대해 논의를 했으나 그람시는 제외.</p><p>&nbsp;그람시는 적절한 마르크스 비판으로 유명. 예를 들어 맑스는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기를 바랐지만 단 한번도 노동자들 끼리의 연대는 없었음. 이유는 '한국의 노동자가 베트남의 노동자와 단결'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실상 없기 때문. 단결과 연대가 노동자들의 가장 강력한 힘이고, 때문에 만국의 노동자들의 연대를 당위적 차원에서 맑스가 강조했다면, 그람시는 그들의 연대 자체는 불가능한 기획이라고 본 것. 이에 대안으로 그람시는 강력한 당을 구축하므로써 당과 당 사이의 연대는 가능할 것으로 봄.</p><p>&nbsp;그람시의 이탈리아는 남부와 북부 사이의 지역갈등. 공업화된 북부에 비해 산업적으로 발전되지 못한 남부. 그가 어린 시절 시간을 보낸 사르디니아 지역은 광부들의 반란이 있었던 곳. </p><p>&nbsp;그람시가 유명한 것 '헤게모니론'임. 'hegemonya'라는 용어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아버지인 플레하노프의 저작에서 첫 사용. 그람시는 이 단어에 살을 더 붙여 사용. 즉, 그람시는 강제와 동의, 또는 지배와 헤게모니의 관점을 요청함. 그람시가 사용하는 헤게모니는 부르주아 권력에 대항하는 차원의 프롤레타리아의 무기. 그람시의 헤게모니는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문화, 도덕, 윤리, 지적인 지도라는 영역을 포함. 지배/지도, 강제/동의, 경제적죠합주의적/도덕적지적 간의 구별의 복합적인 활용을 통해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확장시킴.</p><p>&nbsp;그는 특정한 계급은 지배와 강제를 통해 한 사외에서 우위를 지킬 수 있으나 그 범위는 제한적이라고 봄. 왜냐하면 그것이 동의 보다는 강압적인 수단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 따라서 국가를 변형시키거나 사회를 혁신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프로젝트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낼 수 없다.</p><p>&nbsp;저자는 "그람시는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의 강점을 철저히 인식했던 유일한 혁명가였다"고 평가. 그는 또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던 정치학의 영역을 구축한 독창적인 이론가였다"고 평가.</p><p>&nbsp;그람시 사상이 활용된 하나의 사례는 인종-종족-민족 문제에 관한 작업을 벌였던 에드워드 사이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 분석으로 유명함. 그는 그람시를 활용하면서, 지형, 영역, 블록, 지역 같은 지리적인 용어들로 역사적인 현실을 탁월하게 파악했다고 지적했음. 마르크스주의가 간과한 측면 중 하나이 공간적-지리적 불평등과 위계제에 대한 비판적인 감각을 회복 하는 데 그람시가 중요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김일현은 저술. </p><p>&nbsp;다만 김일현은 그람시는 역사적인 승패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실패한, 패배한 혁명가라고 지적. 그의 저작도 완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난삽하고 단편적인 글들로만 남아있음. 그러나 68혁명에서, 유럽과 중남미의 좌파정치에서, 해방신학과 교육학에서, 대항문화를 추구하는 미디어와 저널들에서, 그리고 여성주의 운동과 각종 소수자 운동에서 그람시와 그람시 주의 정치는 어떻 때는 그의 이름을 당고 또 어떯 때는 아무런 표식도 없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p><p>&nbs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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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Nov 2009 06:35:1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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