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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woody's film review</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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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독특한 영화읽기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공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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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5 Jan 2009 06:13:2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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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woody's film review</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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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독특한 영화읽기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공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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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사 갑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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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woody79.tistory.com/">http://woody79.tistory.com/</a><br><br>이사 갑니다. 이글루스가 딱히 싫어서 가는게, 티스토리가 딱히 좋아서 가는 이사가 아니라, <br><br>제 자신에게 변화를 좀 주고 싶어서요. <br><br>이글루스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은 지속해 나갈거랍니다. <br><br>요즘 블로그스피어야 워낙 연동이 잘 되어 있으니 저만 부지런하다면 별탈이야 있겠어요. <br/><br/>tag : <a href="/tag/이사갑니다티스토리로" rel="tag">이사갑니다티스토리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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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사갑니다티스토리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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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5 Jan 2009 06:13:2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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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오매불망 기다리던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예고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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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object width="480" height="400"><param name="movie" value="http://v.egloos.com/v.sk/egloos/b0054364%7C3974689/20081110191100000760921701" /><param name="flashvars" value="skinFile=egloosSkin.swf" /><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 /><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wmode" value="transparent" /><embed src="http://v.egloos.com/v.sk/egloos/b0054364%7C3974689/20081110191100000760921701" wmode="transparent"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480" height="4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flashvars="skinFile=egloosSkin.swf" /></object><br><br>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연찮게 만나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lt;나의 친구, 그의 아내&gt;가 드디어 27일 개봉한다. 우여곡절이야 어찌됐건 스크린에서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며. 종잡을 수 없는, 이 변태기질 다분한 예고편에 푹 빠져보시라. 그리고 27일 모두 극장으로 고고싱!<br/><br/>tag : <a href="/tag/신동일" rel="tag">신동일</a>,&nbsp;<a href="/tag/나의친구그의아내" rel="tag">나의친구그의아내</a>,&nbsp;<a href="/tag/부산국제영화제" rel="tag">부산국제영화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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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inema</category>
		<category>신동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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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부산국제영화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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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0 Nov 2008 10:15:04 GMT</pubDate>
		<dc:creator>woody79</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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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1년 전 지극히 사랑스러웠던 은하를 다시 떠올리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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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지난주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하 기자님, 우리 은하 소식 전해주실 생각 없으신가요’ 은하가 누구였지? 스팸문자인가 싶어 이름을 확인하니 윤성호 감독이었다. 아, &lt;은하해방전선&gt;의 그 은하! 알고 보니 일종의 직무유기와도 같은 일을 저질러버렸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10월 초에 &lt;은하해방전선&gt;의 DVD가 출시됐는데, FILM2.0을 비롯해 영화전문지라고 하는 매체에서 한 군데도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여타 상업영화들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는 독립영화라고 홀대한 것처럼 비춰지기에 충분해 보이는 사건이 아니었을는지. <br><br><div class="imageblock center" style="CLEAR: both; TEXT-ALIGN: center"><img style="CURSOR: pointer" onclick="open_img('/attach/1/1336932404.jpg'); return false;"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src="http://blog.film2.co.kr/attach/1/1336932404.jpg" width="500"></div><br>&lt;은하해방전선&gt;이 그렇게 대단한 영화냐고 묻는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대답은 예스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이 영화는 독립영화계에서 재기발랄한 단편으로 주목받던 윤성호 감독의 데뷔작이었다. 초짜 감독 영재가 영화 만들기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실어증에 걸린 상황을 수다와 반골기질로 버무려낸 연애영화가 바로 &lt;은하해방전선&gt;이다. 개인적으로 우디 앨런의 수다를 한국어로 번안한 듯한 십자포화와도 같은 구강 액션, 영화제와 영화 만들기를 배경으로 삼은 메타영화 방식, 중간중간 삽입된 영재와 애인 은하와의 관계를 통해 ‘소통’과 ‘연애’에 대해 논하는 방식이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무거움에 대한 강박을 털어버린 젊고 건강한 ‘독립영화’라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br><br>그래서 늦었지만 부랴부랴 윤성호 감독을 만나보았다. 부산영화제에서 술 한 잔 못 했던 아쉬움을 달래려던 욕심은 DVD 출시 소식을 전하지 못한 이유로 핑계가 되어버렸지만. 영화 개봉에 맞춰 인터뷰를 했던 것이 벌써 1년여 전이요, 그 후 이런저런 자리에서 마주치며 안면을 터왔더랬다. &lt;은하해방전선&gt;을 본 관객이라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을 만큼, 어떠한 인터뷰보다 열정적이고 수다스러웠다는 것이 인터뷰 당시의 기억이었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윤성호 감독은 변치 않고 유쾌 바이러스를 상대방에게 감염시키고 있었다. <br><br>EBS &lt;시네마천국&gt;의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으니, 그러한 바이러스는 더 멀리 퍼져나가는 중이리라. 차기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이 궁금해졌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중견 감독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었노라고, 그래서 자신의 시나리오는 여전히 구상 중이라고. 영화계 대선배와의 작업은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개안해줬다고도 했다. 좀 더 폭넓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라도 하고 있을 테지만, 윤성호 감독은 지금 재기발랄함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풀어낼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하고 있는 듯 보였다. <br><br>좀 더 재미있던 이야기는 &lt;은하해방전선&gt;에 관한 것이었다. 1년 전과 달리 지금의 윤성호 감독의 관심사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인간의 욕망이라며, 지금 만들어졌으면 영화 속 은하와 영재의 관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뒷얘기를 들려줬다. 일종의 연애담으로 읽기에 충분한 &lt;은하해방전선&gt;에서, 영재의 소통 부재는 커뮤니케이션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지금의 윤성호 감독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보다는 각기 다른 인간 자체의 욕망이 부딪치는 모습에 더 관심이 간다고 했다. 만약 좀 더 속물적이고 즉물적인 영화감독 영재가 영화제에서 투자를 받기 위해 아부를 떨고, 은하와의 육체적 관계에 좀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재기발랄한 젊은 감각으로 똘똘 뭉친 홍상수식 인간관계를 그린 영화는 어떤 꼴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br><br>그리하여 차기작의 아이템을 다시 물었다. 1급 보안 사항이라 이 블로그 지면에 실을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보장할 수 있겠다. 장편 데뷔작만큼이나 신선하면서 날이 서 있고, 또 욕망덩어리인 평범한 인간의 내면이 좀 더 보편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될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이 젊은 감독이 좀 더 부지런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우리 영화판이 좀 더 여유롭고 다양한 기운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야지만 윤성호와 같은 젊은 감독들이 차곡차곡 새로운 영화를 쉽사리 만들 수 있을 테니. 영화가 완성된다면 기꺼이 충성스러운 관객의 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하는 바이다. 수다쟁이 윤성호 감독님, 그러니 좀 더 분발해주시라. <br/><br/>tag : <a href="/tag/은하해방전선" rel="tag">은하해방전선</a>,&nbsp;<a href="/tag/윤성호" rel="tag">윤성호</a>,&nbsp;<a href="/tag/부산국제영화제" rel="tag">부산국제영화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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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inema</category>
		<category>은하해방전선</category>
		<category>윤성호</category>
		<category>부산국제영화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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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9 Nov 2008 05:53:34 GMT</pubDate>
		<dc:creator>woody79</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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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위기의 잡지쟁이들 - 유구무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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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11">위기의 잡지쟁이들<br><br><span style="COLOR: #000000"><div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COLOR: #000000">시사인 [60호] 2008년 11월 05일 (수) 10:47:26&nbsp; 고동우·이오성 기자</span> </div></span><div style="TEXT-ALIGN: right"></div></font></span><br><br></a>어제오늘 일은 아니라지만, 한 출판 전문가의 표현처럼 ‘최악의 상황’을 넘어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곳곳에서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휴간·폐간설까지 흘러나온다.<br><br>(주)미디어2.0에서 발간하는 주간지 &lt;스포츠2.0&gt;과 &lt;필름2.0&gt;은 해당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명성을 누려왔으나, 꽤 오래전부터 심각한 경영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다. &lt;스포츠2.0&gt; 관계자는 “상습 임금 체불로 유능한 기자가 거의 떠나갔다. 최근에는 두 달 동안 월급이 안 나왔다”라며 “&lt;필름2.0&gt;의 경우 한 메이저 언론사의 인수설마저 떠돈다”라고 전했다.<br>&lt;드라마틱&gt; 이어 &lt;매거진t&gt;도 휴간<br>이 관계자가 밝힌 위기의 원인은 역시 광고다. “스포츠 신문에 한계를 느낀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지만, ‘구매력’이 떨어지는 젊은 층이라 광고주로서는 별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골프 기사를 많이 싣기도 했는데, 이미 관련 전문지가 많아 소용이 없었다.”<br><br>잘나갈 때는 “한겨레신문 전체를 먹여 살린다”라는 말까지 있었던 &lt;씨네21&gt;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광고와 구독·판매가 적잖이 하락했다고 한다. 지난 10월20일, ‘긴급 구원투수’라는 평을 들으며 신임 편집장에 임명된 고경태씨는 “위기의식이 있는 게 사실이다. 2000년께 정점을 찍고 꾸준히 하강 국면이다. 영화판에서 권위와 광고 수주 등은 여전하지만, 온라인 매체의 융성으로 예전처럼 좋아질 수 있다는 낙관은 힘들 것 같다”라며 현실을 부인하지 않았다.<br><br>웹진이긴 하지만 &lt;씨네21&gt;이 창간(지난해 2월 독립)한 TV비평 전문지 &lt;매거진t&gt;도 10월27일 무기한 휴업을 선언했다. 백은하 편집장은 독자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2년 동안 익숙하게 정들었던 서교동 사무실을 떠납니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남겼다. 지난 2월에는 &lt;매거진t&gt;와 비슷한 성격의 잡지(오프라인)로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월간 &lt;드라마틱&gt;이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 바 있어 그 충격은 컸다. <br><br>판타지, 미스터리 등 장르 문학만 전문으로 다뤄오며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했던 월간 &lt;판타스틱&gt;도 10월호를 일시 휴간한 상태다. 최내현 발행인은 “판매량 등 독자의 성원은 변함이 없지만 광고 매출이 떨어졌다. 제작비 충당이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br><br>위기는 2000년대 초반쯤부터 본격화되었다. 김영환 한국잡지협회 경영지원부장은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등장·활성화와 무가지의 범람이 치명적이었다”라고 말한다. 각종 수치에서도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소비자의 매체 이용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2년에는 월 평균 1권 이상 잡지를 읽는다는 응답자가 37.1%에 달했으나 2007년에는 19.0%로 급전직하했고, 하루 평균 잡지 이용시간도 13분에서 4.9분으로 떨어졌다. 반면 인터넷(77분→82분)과 케이블TV/위성방송(56.9분→73.1분, 2006년부터 조사)은 꾸준히 상승세를 나타내 대조를 이뤘다.<br><br>광고 역시 자연히 비중이 줄어들었다. 2002년에는 전체 매체 중 8.0%를 차지했으나 2007년에는 6.1%였다. 텔레비전·신문 등 전통적 매체도 일제히 감소한 가운데, 줄어든 부분은 마찬가지로 인터넷(2.7%→12.8%)과 케이블TV/위성방송(3.4%→10.6%) 쪽으로 흘러들었다. <br><br>희한한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잡지 종수는 계속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집계에 따르면, 2004년 3929종에서 2007년 5006종으로 크게 증가했다. 김영환 부장은 이에 대해 “어느 분야가 잘된다 싶으면 유사 잡지를 만들어 쉽게 돈 벌려는 경향이 여전하다. 시대가 바뀌고, 독자의 눈은 높아졌는데도 잡지 창간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과열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한탄한다.<br><br>하지만 잡지도 잡지 나름. 모든 잡지사에서 ‘곡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추성호 대홍기획 미래전략팀장은 “고소득층과 소비 성향이 높은 골드미스의 증가, 명품 선호 정서 등에 힘입어 2007년께부터 라이선스 패션지, 멤버십지, 럭셔리지, 남성지 등이 큰 폭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반면 시사교양지, 영패션지, 과학기술지 등은 감소 추세를 보여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라고 분석한다.<br><strong><br>잘나가는 ‘럭셔리’ 분야도 경쟁 격화</strong><br><br>현장의 반응도 그렇다. 라이선스 패션지 분야에서 수위를 다투는 &lt;엘르&gt;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10% 정도 페이지가 줄긴 했지만 큰 불안감은 없다. 패션·뷰티 쪽에 구매력이 높은 젊은 층 독자가 많아 다른 분야보다 사정이 나은 게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lt;럭셔리&gt; &lt;스타일H&gt; 등 상류층을 겨냥한 명품지를 많이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 관계자도 “잡지업계가 위기라는 말에 공감하지만 우리는 재정 구조에 여유가 있다. 광고수금률이 90%가 넘는다. IPTV 진출 등 잡지 콘텐츠를 다양하게 활용할 방안을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br><br>그렇다면 ‘럭셔리’ ‘고품격’ ‘고소득층’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잡지업계의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8월 말, 44년 전통의 국내 최초 시사주간지인 &lt;주간한국&gt;은 ‘고품격 문화라이프지’로 변신을 선언해 언론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lt;주간한국&gt; 측은 “21세기 웰빙 사회에서 절대 행복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문화적 삶’을 고양시키는 격조 높은 문화라이프 주간지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진 편집장은 변신의 배경과 그간 성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br><br>“경영상의 이유도 있지만 언론 환경의 변화가 주된 요인이었다. 어떤 이슈를 다룰 때 보면 포털에 비해 일간지가 얼마나 느린가. 하물며 주간지는 다 걸러진 후의 체면치레용 기사가 많았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종래 시사지가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 분야의 광고를 새롭게 개척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한국의 혁신 문화도시’ 특별부록을 발간해 실제 수익을 내기도 했다. 국내 유일의 ‘문화 라이프 주간지’라는 점도 점차 알려지고 있어 기대가 크다.”<br><br>하지만 문제는 역시, 예의 ‘럭셔리’ 분야도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패션지 &lt;에꼴&gt;은 이 분야의 부진이 계속되자 지난 4월 제호를 &lt;에꼴럭스&gt;로 바꾸고 콘텐츠에도 변화를 가했다. 인테리어지 쪽도 럭셔리지와 멤버십지에 대항하기 위해 일부 매체가 ‘고급’ 인테리어지로 전환 중이다. 고소득층과 젊은 소비층을 겨냥한 새 매체도 우후죽순 창간된다. 라이선스 패션지 &lt;누메로&gt;와 &lt;나일론&gt;, 라이선스 여행지 &lt;트레블+레저&gt;, 멤버십지 &lt;KLPGA&gt; 등이 최근 창간을 했거나 창간 예정이다.<br>추성호 팀장은 이와 관련해 “상류층이라 해도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nbsp; 큰 폭은 아니겠지만 명품지 쪽도 낙관적이지 않다.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라고 전망한다. <br><strong><br>편집·기획자 역량에 기대를 걸어봐?</strong><br><br>아무리 경영상 여유가 있다고 해도 럭셔리지 등이 그냥 놀고 먹으며 잡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분야의 한 관계자는 “최소 연간 1억원은 쓰는 부유층의 마인드를 파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이 소속된 클럽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본부장부터 편집장까지 교류를 위해 부유층·사회 리더층이 참석하는 대학 강좌를 듣는다.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귀띔했다. <br><br>‘규모의 경제’에서 아예 시합이 되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편집·기획자의 역량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 “잡지가 살아남으려면 편집·기획자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 이상의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br><br>한 소장은 특히 “한 일본 학자는 정보의 소비 방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블로그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편집하는 것이다. 그런 달라진 환경에서 어떻게 대중의 흥미를 이끌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라며 얇은 잡지 한 권에 한 가지 주제를 담아 발간하는 일본의 ‘원 테마형’ 잡지의 예를 들었다.<br><br>“원 테마라는 건 결국 ‘인터넷 검색’과 맞닿아 있다. 하나의 주제를 검색하는 것. 독자는 수많은 정보를 검색하지만, 어떤 게 좋은 정보인지 취사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독자의 시행착오를 막아주는 역할을 잡지가 해야 한다.”<br><br>한 영화전문지 기자는 최근 영화지들의 위기와 관련해 이런 분석을 던지기도 했다. “예전의 젊은 층은 영화지를 통해 자기의 문화적 욕구를 해결했다. 문화담론을 생산하는 곳이 영화 쪽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뉴스조차 대중적으로 소비되었다. &lt;퐁네프의 연인들&gt;의 레오 카락스 감독이 한국에 오면 환호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대중은 레오 카락스가 누군지도 모른다. 문화담론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영화지들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결국 살기 위해서는 영화지가 아니라 대중오락지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스타 콘텐츠’에서는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영화지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라고 본다.”<br><strong><br>방송·신문·출판에 비해 ‘찬밥’ 신세</strong><br><br>정부의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용준 대진대 교수(신문방송학과·잡지진흥법 추진위원)는 “잡지는 다른 매체와 비교해 정부의 각종 지원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왔다”라고 지적한다. 방송·신문·출판의 경우 매년 수백억~수천억원이 정부 예산과 각종 기금으로 지원되지만 잡지는 고작 2억원(2007년)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이는 각 매체의 고용 인원을 따져봤을 때도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다는 비판이다. 잡지업계 종사자는 4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반면, 방송(2만6000여 명)·신문(1만5000여 명)은 이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br><br>한국잡지협회 측은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잡지진흥법)’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지만, 획기적인 변화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감도 만만치 않다. 신문발전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 같은 기금에 근거한 진흥위원회의 구성을 요구했으나 기획재정부 등의 반대로 ‘자문위원회’ 수준으로 내려앉은 탓이다. 이용준 교수는 “애초 요구했던 강력한 진흥 계획을 집행하는 위원회의 위상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진흥기금의 확보 방안도 명확하게 해결되지 못했다”라고 아쉬워한다.<br><br>일각에서는 좀더 근본적인 대안으로 인터넷 포털과 무가지 규제를 추진하기도 한다. 보수 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난 9월 출범한 미디어발전국민연합(미발련)은 유료 콘텐츠의 활성화를 위해 신문법 등 관련 법 개정에 나서고 있다. 변희재 미발련 공동대표는 “인터넷 포털과 무가지로 인해 매체시장 전체가 초토화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신문 구독률이 가장 급격히 추락했고, 전문잡지와 출판단행본 시장은 반토막이 났다”라며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언론계의 관심을 강조했다.<br><br>잡지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한국언론재단의 한 관계자는 잡지가 오히려 ‘현대사회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잡지는 다른 어느 대중매체보다 소규모의 동질적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 세분화·다양화·전문화하라는 특성은 현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상정한 잡지가 인기를 누렸다면, 이제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집단이 독자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가장 현대적인 매체인 인터넷과 유사한 속성을 띤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잡지는 지식 정보화사회의 심화·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매체다.”<br><br>물론 이런 ‘특성’만으로는 독자의 지갑을 절대 열 수 없을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대다수 잡지쟁이가 오늘을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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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9 Nov 2008 05:49:3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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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짝짝짝~! 네오이마주가 3주년을 맞았습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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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벌써 3년이란다. 난 아마 햇수로 2년 때부터 참여했던가. 2006년 겨울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br><br>쩝, 별로 한 일도, 해 준 일도 없지만, 여하튼 뜻깊은 날을 맞아 여러 분이 함께 했으면 금상첨화겠다. <br><br>그냥 술 먹고 노는 모임이 아니니 안심하시길. <br><br>영화쟁이들이 많이많이 모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당!<br><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810/20/64/b0054364_48fc32079afd0.jpg" width="500" height="281.45161290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810/20/64/b0054364_48fc32079afd0.jpg');" /></div><br><br>안녕하세요. 네오이마주 입니다.<br>오는 11월 1일은 2005년 가을 첫 발을 디딘 네오이마주의 3번째 생일입니다. <br>지난 시간 동안 네오이마주와 함께한 독자여러분과 객원필자를 비롯한 영화인들을 모시고 <br>3주년을 자축하고자 조촐한 모임을 준비했습니다. <br>부디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br>이 행사의 주빈은 누구보다 독자여러분이 되어야 마땅하므로, <br>네오이마주에 오시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참석할 수 있습니다. <br>서먹서먹할 것이라는 걱정은 붙들어매셔도 좋습니다.<br><br><span style="COLOR: #ed000e">사전 준비 관계로 참석하실 분들은 덧글로 의사를 남겨주시면 행사진행에 도움이 되겠습니다.</span> <br>아울러 네오이마주의 재정 관계상 송구스럽게도 소정의 회비를 후원금형식으로 접수하려 하니 <br>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br><br><span style="FONT-FAMILY: 우리돋움90c1"><span style="COLOR: #00008b"><br>* 일시: 2008년 11월 1일(토) 저녁 7시 ~ 밤 12시(공식행사)<br>* 장소: 마포구 서교동 소재 ‘쪼끼쪼끼’ <br>* 일정: <br>　7시 ~ 7시 30분 (간단한 저녁식사) <br>　7시 30분 ~ 9시 20분 영화 &lt;아스라이&gt; 상영 후 김삼력 감독과의 대화<br>　9시 30분 ~ 음주 및 야단법석<br>* 후원: 1인 1만원 (입장 시 접수대 초대형 돼지저금통 투입) +a</span><br><span style="FONT-FAMILY: 우리신문"><br>　　가. 7시 30분부터 영화상영 예정이오니 도착시간을 지켜주시면 고맙겠습니다.<br>　　나. 기타문의 (이영) TEL (010)8384-5494<br>　　다. 찾아오시는 길 : 추후 자세한 약도를 올려드리겠습니다.<br><br><br>※ 3주년 특집행사 관계로 10월 세미나는 11월로 순연되며, <br>&nbsp; 　11월 21일(금) 저녁 8시 전순영씨의 발제로 개최할 예정입니다. </span></span><br/><br/>tag : <a href="/tag/네오이마주" rel="tag">네오이마주</a>,&nbsp;<a href="/tag/3주년" rel="tag">3주년</a>,&nbsp;<a href="/tag/영화비평" rel="tag">영화비평</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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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영화비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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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0 Oct 2008 07:23:3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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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부산, 술자리, 그리고 ‘사람’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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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윤성호 감독의 &lt;은하해방전선&gt;에는, 연출에 대한 부담으로 갑작스레 실어증에 걸린 영화감독 영재가 영화제에서 겪는 각양각색 에피소드가 녹아 있다. 한 게이 관객(양해훈 감독이 명연기를 펼쳤다)이 어느 평론가에게 반해 영화제 내내 그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고, 영화 속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던(결국 소통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식의 답변이 난무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판타지 속에서 영재를 일깨우는 촉매제 구실을 한다든지, 펀딩을 받기 위해 비굴하게 고군분투하는 영화사 대표와 프로듀서의 모습이 영화판 언저리에서 서식하는 그 누구라면 킥킥댈 수밖에 없는 공감의 순간을 제공해준다. 그중에서 압권은 왁자지껄한 영화제만의 술자리다. 영재는 눈이 맞은 여자 스탭과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고, 누구는 동석한 여배우에게 뻐꾸기를 날리기도 한다. 그렇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밤은 해운대 이곳저곳에서 떠들썩하게 부딪치는 소주잔으로 마무리가 된다. <br><br><div class="imageblock center" style="CLEAR: both; TEXT-ALIGN: center"><img height="23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 src="http://blog.film2.co.kr/attach/1/1145627781.jpg" width="350"></div><br>짐작했겠지만, 지난 주말 부산에 다녀왔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절반의 FILM2.0 식구들은 해운대 앞바다에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즐비하다든지, 회는 또 어느 횟집이 싱싱하다든지 하는 귀가 솔깃한 정보와는 담을 쌓은 채 정신없이 돌아가는 영화제 취재에 한창일 것이다. 한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단 40여 시간을 체류한지라 영화는 단 한 편밖에 보지 못했다.(그나마도 야외 상영작인 &lt;스카이크롤러&gt;가 20여 분을 남겨두고 상영 중단되는 바람에 온전히 즐기지도 못했다.) 그럼 대체 그 시간에 무얼 했느냐고? 해운대 주변과 영화제 스케치를 나름 마친 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lt;은하해방전선&gt;의 영재 버금가는 술자리를 즐겼더랬다. 오며가며 기자, 마케터, 감독, 스탭들을 만나는 일은 영화제에서 걸작들을 알현하는 즐거움보다는 물론 덜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취중진담을 통해 영화판 구석구석의 지금, 현재를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br><br>그들 중 마케터 A는 현 마케팅 회사에서 새로 생긴 영화 마케팅 부서의 과장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막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 상태지만 영화판 경력은 작은 매체에서 영화기자로 일한 것이 벌써 5년도 넘었다고 했다. 영화판을 채우는 기자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부터 2000년대 중반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긴 인터넷 매체까지, 여하튼 다채롭기 그지없다. 영화잡지의 경우도 월간지 스크린이 1980년대 초중반, 주간지 씨네21이 1995년에 출발했으니 외국과 비교할 때 전통을 운운하기에는 쑥스러운 수준이다. 능력 여하를 떠나 영화기자는 결국 글쟁이로 남든, 영화판에 본격적으로 입성하든, 업종 변경을 하든, 대다수는 끝내 변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영화광 못지않은 지식과 애정을 자랑하는 A도 그런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였다. <br><br>‘영화인’ B는 그야말로 영화라는 꿈을 먹고 자라왔다. 20대를 거치며 그는 영화제에서 스탭으로 일했고, 최근엔 수입, 홍보사의 마케터로도 근무했다. 건강이 나빠져 퇴사하긴 했지만, 죽어도 영화를 그만두진 않을 거라고 했다. 일찍이 영화광 출신 영화감독 트뤼포가 말하지 않았던가.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고, 영화에 대해 직접 비평을 하고, 결국 영화감독으로 나서는 일이라고. B는 이제 자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늦었을지 모르지만, 종국엔 상업영화까지 나아가고 싶다는 포부가 당차 보였다. 술이 좀 더 들어가자, 우리 영화판의 착취구조, 특히나 그야말로 영화에 대한 설익은 환상만 가진 햇병아리 사회 초년병들을 착취하는 홍보, 마케팅 사의 현실을 성토하고 있었다. 허나 그게 어디 홍보사만의 문제던가. 이 죽일 놈의 영화를 둘러싼 한국의 현실은 구성원들의 돈과 열정, 그리고 꿈을 야금야금 잠식하기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br><br>2차로 술집을 옮기던 중에 영화감독 C를 만났다. 일단 신작 시나리오의 초고가 나왔다는 말에 반가움이 앞섰다. 솔직히 주목받는 젊은 감독의 차기작을 예전부터 궁금해했던 차였다.(그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이 지면을 통해 곧 소개하겠다고 약속하는 바이다.) 어찌 됐건 독창적인 영화를 고민하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유쾌함이었다. 그때도 “나이트가 뭐가 나빠?”라며 프로듀서와 함께 부산의 유명 나이트에 놀러 갈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아, 함께하지 못해 지금도 아쉬울 따름이다.) 독립영화는 항상 우울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진중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한다는 선입견과 편견에 시달려왔다. 그는 일단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낼 줄 아는 재주를 지닌 이였다. C가 독립영화판의 활력을 불어넣으며 차기작에 잰걸음을 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각자 정한 술집으로 향했다. <br><br>그런 점에서 새벽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만난 D는 C감독과 꽤 대비되는 인물이었다. 부산 토박이인 그는 부산에서 대학 영화과를 졸업하고 줄곧 고향을 지켰다. 모두들 서울에 입성하려고 노력할 때도, D감독은 지역 영화계 활성화를 위해 부산에서 단편 작업을 계속해 왔고, 지금도 역시 부산에서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한일 교류 형식의 영화제에 거장 감독을 모시게 됐다고, 또 그쪽 영화사에 시나리오를 보낸 상태라며 겸손하게 말하는 얼굴에 살짝 기쁨이 내비쳤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더 크고 환한 웃음을 보고 싶다는 게 술이 얼큰하게 들어갔던 그 당시의 심정이었다. 그가 좋은 작품을 가지고 영화계의 환대를 받는다면, 그를 돕고, 그를 따르는 프로듀서 이하 고향 후배들인 스탭들도 희망을 품게 될 테니 말이다. <br><br>어떤 배우가 어떤 파티에 왔느니, 레드카펫에 누구누구가 참석했는지, 또 해외 게스트는 누가 왔는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일 우선되는 건 역시나 따끈따끈하고 일정 정도 수준을 갖춘 영화들이 즐비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번에 하 기자가 즐기고 만난 건 영화보다 해운대를 누빈 영화인들이었다. 부산의 술자리에서 마주친 그들 모두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보다 앞서 영화판에서 다 같이 살아남아 매년 술잔을 부딪치자는 바람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건 또 왜일까. FILM2.0 409호 블로그 2.0<br/><br/>tag : <a href="/tag/부산국제영화제" rel="tag">부산국제영화제</a>,&nbsp;<a href="/tag/PIFF" rel="tag">PIFF</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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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9 Oct 2008 12:42:0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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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파업전야와 이용배 감독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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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trong><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810/07/64/b0054364_48eac590d16b5.jpg" width="448" height="33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810/07/64/b0054364_48eac590d16b5.jpg');" /></div><br><br>&lt;파업전야&gt;가 일으킨 파급력은 현재 상상하는 것보다 대단했다. 독립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이 18년 만에 DVD로 출시됐다. 제작 전반을 담당한 이가 바로 영화제작소 ‘장산곶매’의 대표를 역임했던 이용배 감독이다. 2008년 현재 다시 보는 &lt;파업전야&gt;는 어떤 느낌일까?<br><br><span style="COLOR: #828282">FILM2.0 &lt;파업전야&gt;를 이번에 처음 봤다. 안치환이 직접 부른 ‘철의 노동자’가 삽입돼서 깜짝 놀랐다.</span></strong>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연배가 어떻게 되나?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90년대 후반 학번이니까 까마득한 후배다.(웃음)</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지금이라도 봐주니 다행이다.(웃음) 그때 안치환이 노력을 많이 해줬다. 가사도 직접 고민하고 말이지.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왜 지금에야 DVD가 출시된 건가?</b></span><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장산곶매’가 격변기 때 만들어졌고 탄압도 당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각자 다 흩어졌다. 잘나가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1년에 한 번 정도 망년회 같은 거나 하자’면서 일 년에 서너 차례 모였다. 그러다 작년 말인가? 독립영화 상영관이 생겼던 게 계기가 됐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작년 11월 개관한 인디스페이스 말하는 건가?</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맞다. 초반에 의미 있는 작품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영상자료원에 있는 필름을 깨끗하게 손봐서 관객들과 다시 만나자 싶었다. 모임도 있고 바뀐 상황에서 ‘럭셔리’하게 해 보자! 그게 작년 10월 말이었다.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같은 친구들이 바람을 넣은 거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거였나?</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선배들 중 돈 좀 버는 사람도 있고.(웃음) 또 지원제도도 있다고 해서.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영화진흥위원회의 DVD 지원 사업 말인가?</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그런 제도가 기폭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다들 맡은 바 일도 있었고, 영화판을 아예 떠난 이도 적지 않더라. 그래서 학교에 있는 내가 총대를 멘 거다. 올봄에 800만 원 정도 지원금이 확정됐고, 회비도 좀 갹출해서 1,300만 원 정도를 모았다. <br><br /><br /><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벽걸이 LCD 브라운관으로 봤더니 화질이 나쁘지 않더라.</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프레임별로 다 손질하면 돈이 굉장히 많이 든다. 그래서 네가필름 중에 디지털화할 부분만 깨끗하게 손봤다. 할 수 있는 색 보정은 다 했고. 옛날 브라운관으로 보면 절대 안 된다.(웃음) 기획안은 먼저 만들어놓았지만 사실 김숙 PD가 고생을 많이 했다. 방학인 6월부터 본격적으로 작업했다고 보면 된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작업하면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던가?</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기억을 망각하고 살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사실 5, 6년 전에 민예총에서 문화예술 30년사를 회고하는 글을 청탁받은 적이 있다. 당연히 &lt;파업전야&gt;가 한 꼭지 차지한 거고. 그때는 글로 정리했지만 이번엔 사람들을 직접 만난 거지. 못 봤던 이들도 다 만났다. 서로 ‘세월의 두께가 만만치 않구나, 각자 인생 역정을 겪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름의 기획안을 접었다. 생생한 목소리만 담아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lt;파업전야&gt;는 자체는 거시적일지 몰라도 제작기는 개인을 쫓아가는 작업이었겠다.</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훔쳐보는 재미랄까.(웃음) 본업은 애니메이션이지만 한때 다큐멘터리를 해볼까 싶었던 젊은 시절의 꿈도 꿈틀꿈틀 일어나고. 6월이 ‘촛불정국’이었잖나. 처음 기획은 모두 거기 불러놓고 달라진 18년 세월을 조감하는 거였다. 그래서 첫 촬영이 ‘명박산성’이 세워지던 날이었고.(웃음) 처음엔 나도 좀 격렬했고 참여한 사람들도 긴장했다. 그런 화면으로 다큐멘터리를 하나 더 만들어볼까도 싶었는데…(웃음) 어쨌건 내 안에 있는 무엇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더라.<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분량도 만만치 않았겠다.</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60분짜리 테이프 20개 분량이 나왔다. 김숙 PD는 그걸 다 녹취했고. 그걸 보며 ‘참 기막힌 세월이구나, 사람들이 다채롭게 변했구나’ 싶더라. 그래도 다들 &lt;파업전야&gt;란 지점이 던져지니 열정을 끌어내더라.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구체적으로 &lt;파업전야&gt; 얘기를 해보자. 어떤가? 18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오는데.</b></span><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이제 조금 차분해진 것 같다. 옛날처럼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운동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깨끗이 거세된 것 같다. 영화문법 혹은 영화 자체로 보는 태도가 생긴 거지. 자화자찬일 수도 있지만 그때 젊은 친구들이 참 열정적으로 만들었구나 싶다. 나는 그때도 나이가 좀 있었지만.(웃음) 물론 지금 감각으로는 뒤떨어지는 면도 있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영화가 고전적이다?</b></span><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그런 얘기는 당시에도 들었다. 문예운동을 하는 조선족 분들이 ‘꼭 북한영화 보는 것 같습네다’라고도 하더라. 정세와도 관련 있고, 선동도 많으니까.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반대로 욕도 먹었을 것 같다. 너무 부드러운 것 아니냐고.</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웃음)욕 많이 먹었다. 철저하게 운동 논리를 펴는 쪽은 내레이션도 그렇고 너무 할리우드 따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었지.<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솔직히 조악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앵글도 그렇고 미학적인 욕심이 엿보이던데.</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모두 영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정말 철저했다. 당시 내 역할은 없는 제작비를 마련하는 거였다. 심지어 “형, 오늘 촬영 진행비가 없어. 2~30만 원만 있으면 라면이라도 먹을 텐데”라고 하는 거다. 난 “왜 그 돈이 필요하냐, 현장 나가서 어떻게든 찍자”고 주장하고. 당시 독립영화판에서 쓰지 않던 기자재를 많이 쓰잖아. 그래서 막 언짢아하고 그랬다. “야, 돈 좀 안 들이고 찍는 방법 없어!”하면서.(웃음)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그냥 카메라 고정시켜놓고 찍어” 그러면서?(웃음)</b></span><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그래도 다행이다. 그 부분을 그 친구들이나 나나 지켜냈기 때문에. 노동 현장의 역동성이나 미학적인 차별성이 담겨졌다면 그런 노력의 결과다. 그때 못하게 했으면 18년이 지나서도 원망을 받았을 거다.(웃음) <br><br><table width="100%"><tbody><tr><td valign="top"><img src="http://www.film2.co.kr/img/people/people_M/2008/people_3091_1585_M.jpg" align="center" border="0"></td></tr></tbody></table><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이번에 DVD 작업 하면서 18년 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겠다.</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맞다. 자료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스틸이나 자료들이 많더라. 당시 탄압을 받고 상영이 불허되면서 나한테 체포영장이 내려졌다. 사무실에 압수 수색이 들어오기 전에 막내한테 다 숨기라고 했던 거 같다. 그런 자료가 이번에 많이 나와서 다행히 스틸들을 DVD에 묶어 낼 수 있었다. 지금 보니 후배들 모습들이 너무 예쁘더라. 하얗고, 맑고 소년 소녀 같은 아이들이 그 험한 일을 했다는 것이 상상도 안 갈 만큼.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팍팍한 일상에 오아시스 같은?</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그 사진을 보고 있으니 어떤 천국을 만난 거 같더라. 현재야 술 마시면서 삶의 궂은 얘기나 하고 있지만 그때는 어찌나 예쁘고 맑던지.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얼굴이 환해졌다.(웃음) 그 당시 힘들었던 얘기 좀 해달라.</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다 어려웠지만 하필이면 겨울 촬영이었다. 동상도 걸리고 배도 곯고 씻지도 못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어떤 친구는 폐업한 공장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보다 우리가 더 노동자 같다고 하더라. 그들은 교대로 출퇴근하고 우리는 합숙하고 있었으니까.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사실 많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돈 구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돈 끌어오느라 여기저기 찾아 다녔다. 마치 보험회사 초년생이 실적 올리느라 친지, 동문 찾아가듯. 집에는 손 벌릴 수 없으니 주로 동문들을 찾아갔다. 진짜 고마웠다. 물론 나중에 원금은 다 회수해줬고.(웃음) 스탭들이나 배우들도 힘들었다. 특히 배우들도 다른 방법으로 끌어와야 했다. 연극하는 분들, 단역 배우들을 끌어 모았다. “이거 빨갱이 집단 아니야?”라고 말하는 배우들도 있었다. 그러면 어떤 때는 살짝 눙치고, 어떤 때는 “이건 우리 진짜 현실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본질을 얘기해주기도 하고.<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장산곶매’는 어떻게 결성된 건가.</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lt;오! 꿈의 나라&gt;를 만든 뒤 장편영화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의기투합해 만든 것이 영화제작소 ‘장산곶매’다.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lt;오! 꿈의 나라&gt;가 나름 공전의 히트를 쳤다. 독립영화 쪽에서 보기 드물게 대학가를 순회 상영하면서 알게 모르게 돈이 좀 모였다.(웃음)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모금함 같은 거 말이지?(웃음)</b></span><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웃음) 그래서 종군기자들이 쓰던 16mm 캐논 스쿠픽 무비 카메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때 막 홍기선 감독이 날 찾아왔다. 당시 나도 홈 비디오로 학생운동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고 있던 때였다. “우리가 16mm 다큐용 카메라를 확보했는데 그걸로 현재 상황을 기록해 놓으면 언젠가 드라마가 되건 다큐멘터리로 묶어 낼 수 있을 거다”라는 거다. 그래서 난 바로 뛰어들었다. 집회며, 전교조 투쟁 현장이며, 파업 현장이며 가리지 않고 전국을 돌았다. 16mm 필름이니까 아껴서, 결정적인 찬스 때만 스위치를 눌러야 했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모든 게 디지털화 된 지금과는 정말 상황이 다르겠다.</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완전히 다르다. 카메라가 츄르륵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 긴장이 되면서 땀이 좍 흐르는 거다. 이걸 언제 끊을까. 아까우니까. 그렇게 찍은 것이 한 40분 분량이 됐다. 그걸 묶은 것이 &lt;87에서 89로 전진하는 노동자&gt;라는 다큐멘터리영화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1987년이면 노동자 대투쟁이 있던 때 아닌가?</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맞다. 그때 노동자들이 문화적 역량을 키워내려고 노력하던 시기다. 그래서 우리도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정보를 얻었고. 그러다 &lt;파업전야&gt;의 배경이 된 공장을 알게 된 거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공장 측 방해는 없었나?</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직장 폐쇄에 들어간 스패너 만드는 금속 관련 공장이었다. 우리랑 딱 맞아서 은밀히 시작한 거다. 사업주가 위장 폐업을 해서 노동자들이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를 당연히 환영했고. 알려지면 안 되니까 준비를 많이 했고, 촬영도 힘들게 강행했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상영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잖나.</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lt;오! 꿈의 나라&gt; 때 경험이 있으니까 전술적인 플레이를 했다. 배급을 어떻게 할 것이냐, 진짜 압수 수색이 떨어지면 영화 단체에 연락을 취해서 막아내자고 했다. 혜화동 한마당극장에서 상영을 했는데 미신고, 미심의 작품이라고 압수 수색이 들어왔다. 난 극장 옆 커피숍 2층에 피해 있었다. 수색이 떨어지면 빨리 민예총으로 들어가서 농성에 들어가자는 작전을 짰다. 바로 실행에 옮겼고 영화 단체가 모두 모여서 조직적인 연대에 들어갔다. 그게 잘 돼서 대학가 상영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이후 각자의 길을 간 건가?</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아니다. 우리 국민이 어디 가나? 탄압을 받으니까 보호해주느라 금반지도 나오고 다음 작품 제작비도 마련됐다. 농민 문제다, 아니다 장기수 문제가 먼저다, 교육 문제가 심각하니까 전교조 문제를 다뤄보자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다음 작품으로 만든 것이 &lt;닫힌 교문을 열며&gt;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그때가 1990년 아니었나?</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맞다. 그때도 사연이 많았다 젊은 회원들 중 철저히 운동론을 부르짖었던 축은 그 즈음 탈퇴하기도 했다. 새로 합류한 신입 회원도 있었고, 생계 문제로 충무로로 뛰어든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정리되는 과정 속에서 &lt;닫힌 교문을 열며&gt;까지 만든 거다. &lt;파업전야&gt;하고 2, 3년가량 지속이 됐지만 이후에는 활력이 붙지 않았다. 조직들이 겪는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답습했던 것 같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이후 구성원들 개인은 ‘장산곶매’ 이력이 부담되지 않았을까?</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나 같은 경우는 늦깎이 멤버다. 사회가 변혁되지 않으면 좋은 창작 애니메이션도 없다는 생각에 뛰어든. 활동하면서도 애니메이션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하청 회사에 취직했을 때도 사장이 이해를 해줘서 창작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약간 문제가 됐던 건 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아, 교수로 임용될 때?</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포토폴리오에서 &lt;파업전야&gt; 부분은 살짝 뺐다. 또 그때 &lt;파업전야&gt; 관련해서 재판이 진행 중이었거든. 그때 내가 범법자였다. 지방, 고등, 대법원까지 가고 있는 상태라. 다행히 98년도인가? 그것도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 심의가 결정났다. 그때 뼈저리게 느낀 게 법원에 재판이 계류되어 있으니까 여권도 안 나오더라. &lt;와불&gt; 건으로 해외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말이지.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다른 구성원들 경우는 어땠나?</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다들 감추거나 다른 식으로 둘러대거나 그랬을 거다. 가령 공수창이나 장윤현 감독은 지금은 성공하지 않았나. 만약 어려웠더라면 그 부분이 걸림돌이 돼서 잘나가던 프로젝트가 엎어질 수도 있었을 거다. 이념적으로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이들이 있으니까.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창작하는 분들은 그렇더라도 영화판을 떠난 이들은…</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그렇다. 내가 가끔 글을 쓰면 후배 하나가 충고를 한다. 사회주의 냄새가 나는 문장으로 글을 마감하지 말라고. 나이가 있으니 이제 보편타당한 얘기로 결론을 내리라는 거지.(웃음) 그들도 그랬을 거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386’이란 세대 규정은 싫지만 ‘장산곶매’ 멤버들은 확실히 80년대 운동권 세대들이 보이는 궤적을 상징하는 것 같다.</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나도 ‘386세대’란 용어가 싫다. 하지만 맞다. 그럴 수 있다. 우리 멤버들 중 대중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평범하거나 여전히 ‘장산곶매’ 당시 성격대로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시류가 변했다고 소주가 포도주로 바뀌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br><br><table width="100%"><tbody><tr><td valign="top"><img src="http://www.film2.co.kr/img/people/people_M/2008/people_3091_1587_M.jpg" align="center" border="0"></td></tr></tbody></table><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보수 언론에서는 ‘장산곶매’ 출신이라고 괄호 치고 보는 시각도 있지 않나.</b></span><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그러게 말이다. 이제는 그들도 바뀌어야 할 거 같다. 그래서 어쩌라고.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혹시 &lt;안녕, 허대짜수짜님&gt; 봤나? 마치 &lt;파업전야&gt;의 18년 후 이야기인 듯하다. &lt;파업전야&gt;에 출연한 두 연기자가 그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장면을 연출한다.</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우리 연기자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직 못 봤다. 혹시 엄경환 선배인가? 꼭 봐야겠다. 김숙 PD한테도 두 영화를 연결시키자는 제안이 들어온 걸로 알고 있다. 두 작품을 신선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것이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큰 이야기도 해보자. 심의도, 탄압도 없어졌고 세상은 민주화됐지만 막상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동시대 관객들이 어떤 의미로 &lt;파업전야&gt;를 받아들여야 할까.</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공교롭게 새 정부가 부침을 겪고, 또 신공안정국에 맞춰서 출시됐는데 우리는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정권이 의도한 것이면 모르겠지만.(웃음) 18년이란 세월 속에서 우리가 대단한 변화를 겪었잖나.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마치 ‘잃어버린 10년’처럼?</b></span><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그럼에도 지금 18년 전의 상황이 반추되는 듯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우리가 기억을 상실한 것만큼 불철저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뭘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 중년이지만 안락함이나 편안함에 머무르면 안 되겠다 싶다. &lt;파업전야&gt;가 가치나 의미가 있다면 그런 부분을 다시 짚어내 줘야 하지 않을까. 현재와의 소통 구조에서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부분이 불철저했고, 어떤 부분이 계승이 안 됐고. 그런 부분을 젊은 세대의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던져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작기가 나왔을 때 우리 학생들한테 아무 설명 없이 보여주기도 했고.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분위기가 엄해졌겠다.(웃음)</b></span><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분위기가 가라앉았지. 그래도 전체적인 맥락은 이제 2학년인 그 아이들한테 가 닿는 거 같더라. 우리와는 다르더라도 당대의 시간을 폭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줄 수 있을 거다. 적극적인 친구들은 우리의 현대사를, 문화, 영화사의 한 축들을, 그것과 관련된 주변 정황들을 훑어볼 수 있는 계기도 될 것 같고. 그것이 또 그들의 변화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만약에 이 DVD가 그런 기능을 해준다면 우리는 너무너무 고마울 거다. 또 그렇게 되야 하고.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역시나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맞다. 우선 많이 보는 것이 좋을 수밖에. 비판적으로 보건, 철저하게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건. 스탭들에게는 소중한 추억록, 추억집 같은 게 될 거 같고.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또 한 번 일을 벌이려 작당 모의하는 건 아닌가? 운동했던 사람들 답게. 또 20주년도 얼마 안 남았잖나.</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그렇진 않을 거 같다.(웃음) 굉장히 즐거운 자리가 될 거 같다. 그간의 소식들도 한번 확인하고, 변한 얼굴들도 확인하고. 아마 누군가 또 하나 추동을 하겠지.(웃음)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거 같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교수 이용배는 이제 애니메이션 안 만드나?</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10년 넘게 교직에만 있었다. 나름대로 작품을 만들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단편이나 소품에서 그쳤던 것 같다. 내년에는 10년 만의 안식년이다. 뭔가 꿈틀거리려고 의기충전을 하는 시기다. 이번 한 학기를 잘 정리해서 내년엔 꼭 뭔가 해보려고. 이번 계기로 나도 뭔가 움직여야겠다는 결정적인 동력을 얻은 거 같다. <br><br><span style="COLOR: #828282"><b>FILM2.0 역시나 이용배 개인한테 가장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웃음) 다음 번엔 꼭 작품으로 인터뷰하자.</b></span> <br><br><span style="COLOR: #006400"><b>이용배</b></span> 아유,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작품 완성하면 제일 먼저 연락하겠다.(웃음) <i>사진 석지욱</i><br><br><b>프로필 현 계원조형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교수 | 애니메이션 &lt;와불&gt;(1991) &lt;소나기&gt;(1995</b><br><br>하성태 기자 /404.405 합본호. 첫 토크. 개인적으로 참 기분좋았던 인터뷰. <br/><br/>tag : <a href="/tag/파업전야" rel="tag">파업전야</a>,&nbsp;<a href="/tag/이용배" rel="tag">이용배</a>,&nbsp;<a href="/tag/DVD" rel="tag">DVD</a>,&nbsp;<a href="/tag/장산곶매" rel="tag">장산곶매</a>,&nbsp;<a href="/tag/독립영화" rel="tag">독립영화</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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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Oct 2008 02:14:0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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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솔로들이여, 부디 열정을 회복하시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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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10/06/64/b0054364_48e9ac092757e.jpg" width="500" height="295.60810810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10/06/64/b0054364_48e9ac092757e.jpg');" /></div>우 기자와 반절의 FILM2.0 식구들이 마감이란 폭탄을 맞고 심신의 폐허에서 간신히 원기를 회복하고 있을 그 즈음, 휴가 중이던 하 기자는 금요일 저녁 인파로 넘쳐나는 강남역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소개팅 자리, 생면부지의 동갑내기 직장인 여성과 주선자도 없이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핸드폰으로 접선한 순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하 기자입니다. 저녁 안 드셨죠? 뭘 드시겠어요. 어디 아는 데 있으세요. 아, 거기 좋죠.” 씩씩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어색하게 걷는 두 남녀. <br><br>그러는 동안 바로 옆에서 걷고 있는 낯선 이 여성과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뇌를 유영하는 생각들, 생각들. 하필 정해놓은 레스토랑에 손님이 넘쳤다. 가까스로 다른 음식점에 자리를 잡은 뒤 이어지는 어색한 대화, 또 대화. “대학은 무슨 과를 전공하셨어요? 소개팅은 여러 번 하셨어요? 아, 주선자랑은 무슨 사이세요? 술은 잘 하시나요? 주말에는 뭐하고 시간 보내세요?” 아, 마치 이미 써놓은 문장을 기사에 붙여넣기 하듯 술술 이어지는 질문들, 그리고 상대방을 의식한 듯 오고가는 어색한 미소들. 소개팅의 미학은 낯선 이를 만난다는 설렘일지 모르지만, 언제, 어디서나 적응이 쉽지 않은 시간임이 분명하다. 그렇다. 그날 내가 소개팅과 참 어울리지 않는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는 바이다. <br><br>생각해보면 나이에 비해 소개팅 한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니 평균이하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대학 졸업 직전 소개팅을 했던 건설회사 외동따님이었다. 취미는 없고 그저 집에서 어머님과 소일하는 것이 전부라는 그는 유치원을 차리면 자격증이 필요해 뒤늦은 나이에 유아교육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일찍 결혼한 고작 나보다 한 살 위의 오빠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고 했고, 그 또한 2년 정도 남은 학업을 끝마치면 바로 자신의 유치원을 열 계획이라고도 했다. 와우, 훗날 남들은 왜 잡지 않았느냐며 농담처럼 타박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숨이 탁탁 막히는 2시간은 세상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던 입사 면접과 맞먹는 순간이었더랬다. 집에 갑작스런 일이 생겼다며 거짓말을 둘러댄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br><br>차를 마시고 그와 헤어진 뒤 압구정까지 터벅터벅 걸으며 최근 재미를 붙인 드라마 &lt;연애결혼&gt;의 주인공 이강현(김민희)이 생각났다. 영화 &lt;좋은 사람 소개시켜줘&gt;와 드라마 &lt;궁&gt;을 쓴 인은아 작가의 이야기는 그리 깊이 있지는 않지만 문득문득 곱씹어볼 순간과 대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설정은 이렇다. 재혼 전문 커플매니저 이강현과 이혼 전문 변호사이자 이혼남 박현수(김지훈)가 만나 사랑을 키워간다는 기본 얼개는 약간 특이한 설정의 스크루볼 코미디다. 두 사람은 9회가 끝난 지금 예의 그 로맨틱 코미디의 수순대로 서로의 단점이 장점임을 깨닫게 되고, 몰랐던 상처를 보듬으면서 사랑에 빠지는 중이다. 하지만 솔직히 앞으로 두 사람이 펼칠 애정의 미로와 사각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br><br>그보다는 한쪽은 한 번 결혼에 실패한 남녀를 또 다른 인연과 맺어주려 노력하고, 한쪽은 결혼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갈라놓는다는 이 아이러니한 설정. 이강현은 죽어라 상대방의 장점과 행복했던 순간을 복기시키려 노력하고, 박현수는 냉정한 법의 잣대와 냉철한 논리로 파경을 맞은 커플의 마지막 순간을 완성시킨다. 당연히 이강현은 생면부지의 사람들 속에서도 사랑은 꽃 핀다는 긍정을 설파한다. 그 속에서 재산이나 지위, 학벌과 같은 소위 ‘스펙’은 중요치 않다는 주의다.(그러나 이강현의 전 애인은 사법고시를 패스한 연하의 꽃미남이고, 박현수는 말할 나위 없이…) <br><br>이 지독하리만치 순진한 세계관이라니. 넋을 놓고 본다면, 어찌 좋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몇 회씩 배경 이야기로 나누어 등장하는 이강현의 의뢰인들이다. 2번이나 이혼한 도도한 여자가 소탈한 한 중년 남자와 눈이 맞아 한순간에 자취를 감춘다거나, 신혼 때까지 예술가 남편의 무능력까지 사랑하던 부인이 먼저 이혼을 신청한다든지, 500억 현금왕의 냉정함이 결국 처절한 외로움에서 비롯된 아픔이었다는 등의 사연들, 사연들. <br><br>무엇보다 압권은 외로움에 치를 떨던 500억 현금왕이 ‘순수저돌형’인 이강현의 커플 맺기 노력에 감복해 내뱉는 대사였다. “너같이 열정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거라고.” 드라마 속 세상은 달콤하기 그지없지만 어찌 됐건 현실에서도 그 열정은 내버릴 수 없는 가치 중 하나 아니겠는가.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결혼에서도 처음의 그 열정을 잃지 않게끔, 유지하고, 간직하고, 또 자기 나름대로 가꿔 나가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소개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부터 상대방에 대해 적극적으로 탐색하지 않고, 매뉴얼대로 읊고 행동하기에만 급급하다면, 그건 시간 낭비일 뿐일 테니. <br><br>아, 그래서 그 소개팅은 어떻게 됐냐고? &lt;광식이 동생 광태&gt;의 ‘광식’ 김주혁이 읊은 심금을 울리는 대사로 대답을 대신하련다. “인연으로 맺어질 사람이 있으면 절대자가 무슨 신호를 보내줬으면 좋겠어.” 맞다. 신께서 운명의 그, 그녀를 만나는 순간 벨을 울려주시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세상의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낯선 이와의 접선을 감행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세상의 모든 솔로, 싱글들아. 부디 처음의 열정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그 열정을 제대로만 발휘한다면 솔로 탈출의 날은 바로 당신, 아니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br/><br/>tag : <a href="/tag/이강현" rel="tag">이강현</a>,&nbsp;<a href="/tag/박현수" rel="tag">박현수</a>,&nbsp;<a href="/tag/소개팅" rel="tag">소개팅</a>,&nbsp;<a href="/tag/연애결혼" rel="tag">연애결혼</a>,&nbsp;<a href="/tag/커플매니저" rel="tag">커플매니저</a>,&nbsp;<a href="/tag/사법고시" rel="tag">사법고시</a>,&nbsp;<a href="/tag/이혼남" rel="tag">이혼남</a>,&nbsp;<a href="/tag/김민희" rel="tag">김민희</a>,&nbsp;<a href="/tag/김지훈" rel="tag">김지훈</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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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6 Oct 2008 06:14:4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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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지못미 숭례문’.... 자원봉사로 지킨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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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810/01/64/b0054364_48e361900e687.jpg" width="500" height="312.72727272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810/01/64/b0054364_48e361900e687.jpg');" /></div><br><br>‘지못미 숭례문’.... 자원봉사로 지킨다<br><br>숭례문 인근에서 근무하는 김석정(가명)씨는 출근하면 매일 아침 사무실에서 숭례문을 볼 수 있었다.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을때는 느끼지 못했던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갑작스런 방화와 관리부실로 훼손된 숭례문의 참담한 모습을 보면서 평소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철저한 관리와 보존 대책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br>지난 8.15광복절 숭례문 복구현장은 시민들에게 공개 되었고, 복구 현장을 안내하는 자원봉사를 신청하여 활동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복구 현장을 관람하기 위해 숭례문을 찾은 시민들에게 600년 서울, 도성과 숭례문의 역사, 문화재 보존과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안내 활동을 한다. <br>600년 서울, 도성의 중심 숭례문이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되어 다시금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되는 날까지 활동을 할 생각이다. 보다 더 많은 시민들을 만나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숭례문을 지키는 자원봉사 활동을 꾸준히 해 나갈 생각이다. <br>서울KYC 도성길라잡이 활동은 600년 서울의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인 도성과 숭례문을 안내 하는 자원봉사활동이다. 10월 16일부터 진행 되는 두달간의 기본교육와 안내를 위한 수습활동을 거쳐 ‘숭례문 복구현장 시민안내’와 함께 600년 서울을 상징하는 도성(서울성곽)을 새롭게 안내 하게 된다.<br>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숭례문 복구 현장 안내는 현재 매주 토, 일요일 오전 11시~ 오후 3시 사이 총 6회 안내가 이루어 지고 있다. ‘도성길라잡이’는 숭례문의 역사와 복구 과정에 대한 해설과 함께 숭례문을 포함한 서울도성의 다양한 모습을 일반인들의 신청을 받아 안내 하게 된다.<br>‘도성길라잡이’ 활동은 600년 도성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함으로서 서울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내.외국인에게 널리 알리는 의미활동으로 자리매김될 것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br>서울KYC 도성길라잡이(한국청년연합회 서울지부)는 숭례문 복구 현장 및 서울 도성을 시민들에게 안내 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br>‘도성길라잡이 1기 ’ 활동 신청과 문의는 10월 15일까지 서울KYC 홈페이지(www.seoulkyc.or.kr) 와 전화(02-2273-2205/하준태)로 하면 된다. <br><br><a href="http://www.bravomylife.net/station/index.htm?tch=read&amp;code=83&amp;idx=10948">도성길라잡이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여기로</a><br/><br/>tag : <a href="/tag/숭례문" rel="tag">숭례문</a>,&nbsp;<a href="/tag/도성길라잡이" rel="tag">도성길라잡이</a>,&nbsp;<a href="/tag/kyc" rel="tag">kyc</a>,&nbsp;<a href="/tag/자원봉사" rel="tag">자원봉사</a>,&nbsp;<a href="/tag/시민단체" rel="tag">시민단체</a>,&nbsp;<a href="/tag/문화재" rel="tag">문화재</a>,&nbsp;<a href="/tag/도성" rel="tag">도성</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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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1 Oct 2008 05:40:0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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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과거지향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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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두 번의 사랑의 아픈 기억때문일까, 소심한 성격 탓일까, 아님 꽤나 사고가 깊다고 쓸데 없이 자부하고 살아서 일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과거지향의 성격때문에 꽤나 힘들었더랬다. 이걸 하려면 저것이 생각들고, 이걸 하려면 또 예전의 저 일이 걱정되고, 이 사람과 만나야 하는데 예전의 어떤 기억이 또 떠오르고. <br><br>자, 이제 20대의 방황은 훌훌 털어버려야 할 때.&nbsp;이 무슨 유치한 다짐인지는 모르지만, 이제는&nbsp;진짜 과거보다 미래를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물론 글쟁이가 과거에서 소재를 길어올리기 마련이지만,&nbsp;글이나 영화가 아닌 실생활에서 이제는 과거의 실수들과 작별을 해야할&nbsp;때인 거 같다. 제발, 지금까지의 장점만 안고 가자. 단점은 몰라도 최악의 그 무엇들은 버리고 가자고. 그래, 함 가보는 거지 뭐. &nb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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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9 Sep 2008 14:42:5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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