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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와이드샷</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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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여기저기 널려져 있는 예전의 글들을 

모아놓는 자리입니다. 새로 쓴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니 참고하세요</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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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5 Aug 2008 06:17:5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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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와이드샷</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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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여기저기 널려져 있는 예전의 글들을 

모아놓는 자리입니다. 새로 쓴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니 참고하세요</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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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사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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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www.neoimages.co.kr/img/photos/000/000/003/972.jp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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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작가는 문제를 낸다. 이건 어떻게 쓰나 보자는 심산이듯이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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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평(경기도 화성 근방에 있는,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인 듯하다)에서.. 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사진을 보내왔다. 그는 "사진 보냈다"라는 말만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때 왠지 느낌이 불안했는데 사진을 실제로 대하고 나니 머리가 막막해진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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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3개의 포토에세이는 사진을 보자마자 나름대로 감상문을 30분 내로 써댔는데... 이건 사진을 받아 본지 하루가 지나고, 그 다음 편집자에게서 평을 달라는 독촉을 받고서도 선듯 감상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사진 좋다고 하면 그만인 것을 뭐 그리 고심을 해야 하나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답답함도 느끼면서 다시 한번 더 사진을 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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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저걸 찍은 작가의 마음이 무엇일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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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올린 포토인 '타인'이 일단 생각난다. 하이 컨트레스트의 해변 사진, 서로 같이 있으면서도 전혀 함께 있지 않는 듯한 느낌의 사람들... 거기서 시간이 지나면 석양이 져 노을이 되고 빛의 분위기는 자연히 로우 컨트레스트가 된다.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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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그냥 찍으면 된다. 왜 찍었냐고 묻는다면 그냥 거기에 있어서 담았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 수준 높은 철학이다. 너무 수준이 높기에, 산이 있기에 산을 오른다는 철학가인양 하는 등산가처럼 그런 속물적인 답에 지나지 않는다. 난 황작가를 그런 속물로 보지 않기에 그가 왜 저것을 찍어 나에게 보내왔을까를 생각해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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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답이 나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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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작가는 자신을 찍었다.<br />
그의 마음을 담은 모습은 저기 쭈구려 앉은 사람의 몸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눈은 그 몸 속에 기어들어간 그의 마음의 모습을 본다.<br />
<br />
 <br />
<br />
마치 앞으로 머릴 조금 더 내밀어 물속에 머리를 쳐박아 버리고자 하는 지도 모르는 저 마음... 뭔가 엿같은 상황에 대한 그의 심정은 그 쭈그려 앉은 사람의 모습으로부터 화면 전체로 스며들어 가고 있다. 그 스며들어감을 어떻게 아냐고?<br />
<br />
 <br />
<br />
심정의 불안을 찍으면서도 불안을 느끼는 주체는 안정적인 구도의 이미지 중심라인 위에 자리잡고 있다. 작지만 그 주체는 마치 화면 전체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자리잡고 있으면서 수평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이미지 라인 전체를 흔들리게 하고 있다. <br />
<br />
 <br />
<br />
그런데 고독은 아니다. 차라리 고독이었으면 작가에게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자연 혹은 주변 세계는 작가가 고독에 자리잡고 있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서해 저편으로 지는 해가 불안의 심정에 쭈그려앉은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 햇살이 앞의 물 속으로 쳐박고 싶어하는지도 모르는 자신을 붙들어 잡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넌 죽을 자격도 없어..' 하고 말이다.<br />
<br />
 <br />
<br />
이 정말, 작가에게 엿같은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을 보는 나의 마음이 너무 무거워진다...<br />
<br />
<br/><br/>tag : <a href="/tag/사진" rel="tag">사진</a>			 ]]> 
		</description>
		<category>황문성의 포토에세이</category>
		<category>사진</category>

		<comments>http://wideshot.egloos.com/1925164#comments</comments>
		<pubDate>Tue, 05 Aug 2008 06:13:43 GMT</pubDate>
		<dc:creator>와이드샷</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도시인 - 두 번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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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www.neoimages.co.kr/img/photos/000/000/003/878.jp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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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세상에 대해 은근히 욕하는 것에 재미가 들린 모양이다. <br />
이 사진 찍느라고 사진기 준비해 놓고 2시간을 기다렸다 한다. <br />
이런 작가의 말에 이 사진의 주제가 숨어있다. <br />
그렇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 말부터 쓴 것이겠지...요.<br />
<br />
 <br />
<br />
프레임 안에 들어온 대상들 중에 2시간이란 시간 안에서 움직이는 것들과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 것은 길 바닥과 맨홀 뚜껑이다. <br />
그리고 프레임에 걸치고 있는 앞의 앞 귀퉁이와 두 사람의 걸어가는 다리는 움직이는 것들이다. <br />
그렇다면 작가가 찍고자 한 것은  저렇게 들어온 움직이는 것들이었을까? <br />
<br />
아니면 우연히 움직이는 것들이 프레임안으로 들어왔고 작가는 운(?)좋게 그것을 찍은 것일까? <br />
황 작가는 그런 운을 기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br />
그는 대상을 주체화시키는 것을 노력하는 사람이지 대상을 프레임 안에서 대상화시키는 부질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br />
<br />
 <br />
<br />
그럼 답은 간단하다. <br />
그는 도시를 찍었다. <br />
도시는 썩은 물을 덮고 깨끗한 척 위장하고 있는 도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br />
썩은 물을 상징하는 것은 맨홀 뚜껑이다. <br />
<br />
그 맨홀  뚜껑으로 덮힌 썩은 물 위를 인(人)들은 전혀 두려움 없이 사뿐하게 마치 비단 위를 걸어가는 듯이 걸어간다. <br />
그것이 도시와 인(人)이다.<br />
 <br />
<br />
그런 도시와 사람을 황작가는 저렇게 음흉스럽게 표현한다. <br />
그런데 사진의 분위기는 작가의 음흉스런 속내가 전혀 드러나있지 않다. <br />
그저 슬프고 눅눅하고 어두운, 마치 축축한 분위기 속에 눌려있는 듯이 측은하게.. <br />
그리하여 작가는 인간스럽게 보일 뿐이다.<br />
<br />
 <br />
<br />
황 작가는 원래 측은지심이 많은 사람이다. <br />
그래서 사진에는 측은지심의 분위기가 있어 보인다.<br />
하지만 저 사진의 주제는 그렇지 않다. <br />
"너희들 너무 아무렇게도 않게 우아하게 도시의 바닥위를 거닐고 다니지마.... 그 밑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썩어있는 물이니까 말이야..."<br />
라고 자기의 사진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려는 사람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br />
<br />
 <br />
<br/><br/>tag : <a href="/tag/사진" rel="tag">사진</a>			 ]]> 
		</description>
		<category>황문성의 포토에세이</category>
		<category>사진</category>

		<comments>http://wideshot.egloos.com/1925163#comments</comments>
		<pubDate>Tue, 05 Aug 2008 06:12:24 GMT</pubDate>
		<dc:creator>와이드샷</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도시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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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www.neoimages.co.kr/img/photos/000/000/003/879.jpg"><br />
<br />
<br />
<br />
한장짜리 사진, (사진은 원래 한장짜리다)으로 보여주는 도시인의 이미지이다.<br />
Low contrast의 deep focus의 사진을 본적이 있는가?<br />
이 Low contrast의 deep focus의 사진은 아무나 쉽게 찍지 못한다. <br />
왜냐하면 프레임에 들어오는 전체 빛의 강도를 자신있게 분별할 수 있는 작가의 눈을 아무나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br />
도시인... '도시(都市) +인(人) ' 인가? 아니면 'man in the city'인가? 아니면 'cityman'인가?<br />
Low contrast로 화면을 찍은 것은 사람을 주대상으로 삼고자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br />
그러므로 시티맨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시 속의 사람인가? <br />
그러기에도 도시는 high contrast로 강조되어 있지 않다. <br />
도시의 건물은 위압적으로 상단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지만 위용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br />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 또한 어둠의 악마처럼 그늘의 커텐 속에 숨어있다. <br />
그러므로 도시 속에 있는 사람을 그린 것도 아니다. <br />
그렇다면 남은 것은 '도시 + 사람'이다. <br />
이 도시의 뜨락 앞에서 사람은 도시와 아무 상관없는 이방인처럼, 그저 힘없는 방랑자와 같이 걸어가고 있다. <br />
그리고 도시의 건물 또한 이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그림자의 커텐 속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br />
작가 황문성에게 있어서 도시인은 도시와 동시에 사람이다. <br />
서로 융화할 수 없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멀어질 수 없는 비극의 관계일 뿐이다.<br />
그리하여 황문성, 그의 사진은 품위있게 우리에게 욕을 던지고 있다. <br />
자연 밖의 자연인처럼 도시 밖의 도시인이며...<br />
그래도 그대는 도시 앞을 거닐어 가고 있나니...<br />
도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런 도시인이어라... 하고...<br />
<br />
<br/><br/>tag : <a href="/tag/사진" rel="tag">사진</a>			 ]]> 
		</description>
		<category>황문성의 포토에세이</category>
		<category>사진</category>

		<comments>http://wideshot.egloos.com/1925160#comments</comments>
		<pubDate>Tue, 05 Aug 2008 06:10:34 GMT</pubDate>
		<dc:creator>와이드샷</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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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타인(他人)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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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img src="http://www.neoimages.co.kr/img/photos/000/000/003/767-660-410.jpg"><br />
<img src="http://www.neoimages.co.kr/img/photos/000/000/003/768-660-410.jpg"><br />
<img src="http://www.neoimages.co.kr/img/photos/000/000/003/769-660-400.jpg"><br />
<img src="http://www.neoimages.co.kr/img/photos/000/000/003/770-660-348.jpg"><br />
<img src="http://www.neoimages.co.kr/img/photos/000/000/003/771-660-410.jpg"><br />
<br />
나는 황을 한국 최고의 사진작가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br />
그의 사진은 꺼리낌이 없다. 주저함이 없다.<br />
그의 사진 속에 사진의 대상(오브제)은 대상이 아니다.<br />
그의 사진 속의 대상은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대상으로 머물지 않고 <br />
주체로 살아난다.<br />
구름 한점 없이 빛이 밝은 날, 그리하여 양산을 쓸 정도로 햇빛을 가린 날에 찍은<br />
그의 사진은 전혀 밝지 않고 어둡다. <br />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모아찍었음에도 그들 사이에는 어떤 공감도 보이지 않는다.<br />
소풍을 나오는 듯한 기분으로 노니는 서해안의 해변에서 <br />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소풍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뭔가 알지 못하는 고독에 빠져있다.<br />
작가가 고독에 빠져있는 것일까? <br />
아니면 고독에 빠져있는 군상들의 주체가 <br />
작가도 모르게 사진의 전체적 분위기를 어둡게 민들어 버린 것일까?<br />
중요한 것은 저 프레임 안에 들어있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소통의 부재를<br />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다.<br />
<br />
<br/><br/>tag : <a href="/tag/사진" rel="tag">사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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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황문성의 포토에세이</category>
		<category>사진</category>

		<comments>http://wideshot.egloos.com/1925155#comments</comments>
		<pubDate>Tue, 05 Aug 2008 06:06:02 GMT</pubDate>
		<dc:creator>와이드샷</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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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귀향] 여성의 위대성을 말하는 천재의 수사학.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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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5516.jpg" width="300" height="43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5516.jpg');" align="left" />별도 어려운 제목도 아닌데 이런 제목 하나 뽑느라고 커피를 한잔 다 비웠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감탄을 하게 만드는 천재이다. 그의 영화는 하나도 어렵지 않다.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면 된다. 그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도 그가 만드는 이야기의 서사구조와 함께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껴보려 하면 그의 천재성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만나는 그의 천재성은 쉽게 말하면서도 그 의미를 숨겨놓은 그의 영화언어를 다루는 그의 천재적 수사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p><p>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에 대해서는 앞의 네오이마주에서 필진 님들이 써놓았으므로 더 쓸 필요는 없겠다. 백건영님의 글에 조금 언급되어 있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자 한다면, 원수처럼 느끼는 프랑코 총통의(우리로 말하면 박정희와 전두환시대일 것이다) 독재시대에 남자들은 무엇을 하였는가가 이 영화의 질문이며 답이다.</p><p>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 분)와 쏠레는 자매이고, 라이문다에게는 14살짜리 딸, 파울라가 있다. 파울라는 라이문다의&nbsp;큰이모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 이름을 딴 이유는 가족이 워낙 가난한 탓에 라이문다는 파울라 이모의 집에서 살았고, 그래서 그녀가 엄마나 아빠 보다 이모를 더 사랑했음을 느끼게 해준다. 치매로 제대로된 기억을 할 수 없는 파울라 이모를 돌봐주는 것은 바로 앞에 살고 있는 아우구스티나라는 라이문다의 친구이다. </p><p>라이문다는 이모 파울라를 돌보는 아우구스티나를 매우 고마워 한다. 그런데 첫 시퀀스에서알 수 있는 것은 라이문다 자매의 어머니는 죽었고, 아우구스티나의 어머니는 그 마을에서 유일한 히피였던 까닭에(아우구스티나의 말에 의하면) 어디론가 떠나 방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p><p>마드리느에 돌아온 라이문다의 삶은 좀 비참하다. 남편 파코는 직장을 또 잃었다. 그래서 라이문다가 또 돈을 계속벌러가야 하는 신세가 되는데 라이문다가 돈 버는 일이란 청소부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버스 정류장 앞에서 딸 파울라가 비를 맞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이유는 딸 파울라가 강간하려고 덮치는 아버지 파코를 죽인 것이다.</p><p>부엌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있는 남편 파코를 보며 라이문다는 기절초풍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침착하다. 그리고 딸에게 하는 말은 “너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어, 이건 내가 죽인거야” 뭐 이런 대사다. 중요한 것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죄의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이 때 인식해야 한다.</p><p>이야기를 돌아가자.<br>정말로 이쁜, 거기다가 유방까지 아름답게 커서 더더욱 글래머의 느낌이 나는 라이문다도 파울라가 당했던 것처럼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래서 가진 애가 파울라였다. 어머니의 말대로 파울라는 라이문다의 딸이면서 라이문다의 동생이었다. 그 일로 인하여 생길 집안의 엄청난 비극을 숨기기 위해 라이문다는 인생말종과 같은 파코와 결혼하고 마드리드로 왔던 것이다. 그래서 파코 말고는 모두 파울라가 파코의 딸이라고 알고 있었다. 파코는 자기의 딸이 아니니까 파울라에게 강간할 마음을 가졌다는 말이된다.</p><p>(자기 가족이 아님을 강간을 해도 된다는 의식, 그것은 남성의 의식이기 이전에 프랑코 총통 시절 민중을 억압하던 권위적 지배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지배의식은 지배계층만이 아니라 기층 민중들에게 있어서도 약자면 누르고 삼키고 강간해도 된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처럼 지배의식은 계급간의 차이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전 계급에 걸쳐서 약자는 누르면 된다는 일종의 집단 정신병이라고 할 수 있음을 알모도바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p><p>그런 상대적 강자의 지배욕에 의한 강간에 대해서 당연히 죽여야 하며 죽여도 된다는 그 의식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숨은 뜻이라고 보여진다. 라이문다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남편의 시신을 유기해버리듯이, 라이문다의 어머니는 4년전 그녀의 언니 파울라에게서 왜 라이문다가 가족을 떠나 마드리드로 갔는 지에 대한 사실(남편에게 강간 당하고&nbsp;딸 파울라를 낳았으며, 그녀가 그런 모든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가족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 집에 돌아와 아우구스티나의 어머니랑 정사를 치루고 자고 있는 남편을 보고서는 집을 화염에 휩싸이게 한다. 그래서 두 남녀는 죽었다. 사라진 것은(도망친 것은) 라이문다의 어머니였지만 그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불에 타 죽었으며 아우구스티나의 어머니가 사라진 것으로 다들 믿는다.</p><p>이처럼 프랑코 총통 시절의 집단 정신병으로 라이문다에게 벌어진 아버지의 강간은 그 시절이 지난 후 지금에도 그 강간의 결과로서의 파울라에게까지 그 아버지의 강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모도바르는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런 집단 정신병에서 지금의 스페인이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p><p><img class="image_righ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4.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1942.jpg" width="300" height="36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4.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1942.jpg');" align="right" />이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아우구스티나는 라이문다의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를 불에 태워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라이문다의 어머니가 마을 사람 모르게 파울라 이모의 집에 숨어들어와 숨죽여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숨겨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암에 걸려 죽을 시간을 맞고 있다. 아우구스티나는 죽음을 임박하여 그녀가 숨겨왔던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래서 라이문다는 찾아온다. 그런 아우구스티나가 라이문다에게 하는 말은 “살아있는 니 어머니에게 물어봐.. 내 엄마를 어찌 했는자?”가 아니다. </p><p>“너의 엄마 유령에게 물어봐 줘. 그녀는 우리 엄마가 어디 있는 지 혹 알지도 몰라”라고 말하면서 유령은 생전에 다 하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 현실에 나타난다는 그들의 전설을 말할 뿐이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나가 사건을 진실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친한 친구에게 어머니를 만나게 하여 줄 동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br>이런 아우구스티나는 행동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생각나게 할만큼 시사적인 이름이다. 그런 그녀의 배려와 헌신에 의하여 주인공 라이문다의 가족, 남편들을 죽인 어머니와 딸 그리고 자매들은 만난다. 그리고 마드리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p><p>어머니는 죽어가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보살피겠다고 한다.</p><p>유령에게는 눈물이 없다라는 어머니의 말로 끝나는 이 영화는 “지배자들에게 지배당한 기층민중이라도 남자들이란 그 지배욕을 폭력으로 행사하는 잡넘들이며 그런 집단정신병은 지금도 남아서 횡행하고 있다. 그런 역사를 겪어면서 그것을 이겨온 여자들에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그 일이 더 중요하지 그것의 고통으로 눈물을 흘릴 여유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p><p>여성의 위대성을 칭송하는 동시에 남성의 야만성을 수사학적으로 조롱하는 알모도바르, 그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는 여장남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남성도 불쌍하게 여기자 라고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런 남성에게 조차 냉소적이 되어버렸는데 아마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이 제대로 민주화가 안 되는 모양인 갑다.&nbsp; <br>&nbsp;<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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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영화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wideshot.egloos.com/436407#comments</comments>
		<pubDate>Wed, 18 Jul 2007 12:39:2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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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관객과 비평가의 눈을 넘어선 영화 1) 피아노  ]]> </title>
		<link>http://wideshot.egloos.com/43639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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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4.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2498.jpg" width="290" height="4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4.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2498.jpg');" align="left"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 이 영화가 개봉 되었을 당시에 난 이 영화에 대한 제대로 된 비평과 분석의 글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런 것이 있었어도 내가 보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해 비평을 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를 통하여 감독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이토록 깊을 수가 있을까 하는 감탄 때문이다. </p><p>피아노를 제목으로 한 영화. 여기서 피아노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여주인공 에이다의 소통의 한 수단으로 받아드려진다. 피아노의 선율과 여성의 마음, 그리고 외갓남자와의 불륜의 사랑, 이 피아노는 여주인공 홀리 헌터와 그 외간 남자인 하비 카이텔간의 사랑의 소통의 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착각은 두 남녀간의 불륜을 사랑으로 착각케 하고 승화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리하여 비평가와 관객은 자신의 착각을 착각이라 생각하지 않고 피아노 음악의 선율에 도취하여 두 남녀의 속물적 사랑을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찬사를 하게 되고 스스로를 미화시키게 한다. 이 얼마나 감독의 적절한 장치인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p><p>피아노. 이 영화에서 제목으로 사용되어지고 소품으로 등장하는 이 피아노는 위선과 허영과 신분의 상징이다. 그것은 말하지 못하는 여성의 소통 기구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귀족 출신이라는 것을 드러내어 주는 빅토리아 시대 귀족 출신이라는 것의 표징일 뿐이다.</p><p>영화는 여주인공 에디다(홀리 헌터 분)의 딸 안나 파킨이 귀족의 집안 복도 위를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한마디로 귀족 집안을 시끄럽게 만드는 문제아임을 암시하지만 관객은 그 암시를 눈치채지 못한다. </p><p>여기서 에이다는 안나 파킨이 분한 9, 10살 된 딸을 가진 엄마이다. 그런데 그녀는 남편을 여윈 과부로 나오지 않는다. 미혼모인 것이다. 그렇다면 딸은 어디서? 결론은 아버지가 누군지를 모르는 것이다. 어머니가 딸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모른다면? 그 어디니의 섹스 행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상상으로 알고도 남을 것이다. 여주인공은 그런 여자이다. 그래서 집안에서 골치 아픈 존재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첫 장면에 나오는 훌륭한 정원을 가진 이 집안은 골치 아픈 딸을 처리하기 위해 영국에서도 너무나 먼, 그리고 호주도 아닌 뉴질랜드에서 개척농을 하는 고자인 늙은 남자가 원한다고 해서 시집을 보내버리게 된다. </p><p>필자가 한 이 이야기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서 1분 정도 프롤로그로 나오는 화면을 영화 전체를 놓고 분석하여 필자가 다시 추론해본 이야기이다.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충분히 추론할 수 있도록 영화 속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그 실마리들을 배치하여 놓고 있다.(이 점이 대단히 감탄스럽다)</p><p>이처럼 여자감독은 여주인공에 대해 결코 관대하지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 한다. 영화를 겉멋으로 보거나 정신빠진 페미니스트 아니라면 결코 페미니즘과는 상관이 없는 영화다.</p><p>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10살 정도의 딸을 가진 벙어리 엄마는 딸과 함께 뉴질랜드의 해변에 도착한다. 다른 짐은 거의 없다. 무거운 피아노 한대만 덜컥 들고 왔을 뿐이다. 자연과 어울리는 해변 모래사장 위에 두 모녀와 함께 놓여있는 피아노 한대, 이것은 영화의 아름다운 포스터의 메인사진으로 나올 만큼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것일까? 거기에 피아노는 자연과 관계없는 신분의 상징으로 우뚝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p><p>이런 신분의 상징인 피아노가 뉴질랜드에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 자기 땅을 갈고 개간하려는 고자인 남편 샘 닐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쨌거나 정글을 지나 집으로 수송하여 가져오려는 에이다와 그것을 가져오는 하비카이텔 때문에 영화의 불륜사건은 벌어지게 된다.</p><p>시쳇말로 해보자. 에이다의 영화 속 나이 20대 후반으로 밖에 안보인다. 그런데 10살 정도의 딸을 가졌으면 10대 후반에 남자와 섹스를 했다는 것인데, 그것도 애비를 모를 정도의 십대였다면 고자인 남편과 쉽게 살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고, 그렇다면 건장한 남자, 그것도 얼굴에 야성의 문신까지 한 남자인 하비 카이텔과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 두 남녀가 화끈한 섹스의 향연으로 들어가기에는 피아노 선율은 소통의 수단으로 필요하지 않는다. 피아노 건반 한개 두개로 거래를 하듯 어떻게 피부와 피부를 맞닿을까 하는 두 사람의 수작의 도구로서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속물적인 이야기를 시쳇말로 하지 않고 아름다운 미장센 속에 감추어 둔다. 그저 아름답고 불륜이기에 위험하고 안타까운 로맨스처럼 끌어간다.</p><p>이 두 남녀의 속물적인 불륜 현장을 알게 되는 것은 딸이다. 열 살 정도 되는 이 어린 딸은 엄마의 불륜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코 의붓 아빠의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딸은 엄마의 불륜을 아빠에게 꼬질러 바치는데 그 이유는 뭘까? 감독은 그것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불륜이란 것을 허용할 수 없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게 만든다. 엄마하고 삶을 같이 하고 같이 할 수밖에 없는 딸인데도 엄마의 불륜만큼은 의붓 아빠에게 일러바치는 딸의 마음의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을 추론하면 딸이 귀족으로서 가지는 정체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의 불륜의 상대인 남자, 그 남자는 열 번을 거듭 태어난다 해도 귀족이 될 수 없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속에서 대장노릇을 하기 위해 마오리족보다도 더 심한 얼굴 문신을 한 남자와 자신의 엄마가 같이 섹스를 하며 놀아난다는 것을 우리식으로 본다면 안방 마나님인 엄마가 온몸에 문신을 한 동네 조폭 두목하고 놀아나는 것과 다름 없이 무의식적으로도 거부하고 싶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p><p>피아노를 만든 감독의 시니컬리즘은 두 남녀의 속물적 불륜을 펼쳐 보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딸의 고자질을 듣고 그 불륜을 알게 된 남자는 그녀의 손가락을 잘라버린다. 그 사랑이 마치 피아노 때문에 벌어진 것인 양으로 해석되게 만드는 이 장면은 남편인 샘닐이 그렇게 해석을 해서 손가락을 자르는 형벌을 주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섹스라는 몸의 거래와 피아노를 돌려받기 위한 피아노 교습이라는 거래는 전혀 상관이 없다. 피아노 교습 안해 주면 둘이 섹스 할 기회가 없어지나? 그렇다면 왜 손가락을 자른 것일까? 굳이 유추하자면 샘닐은 에이다가 피아노라는 귀족적 가치를 가지고 놀 자격이 없는 년이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너같이 개같은 년이 무슨 귀족처럼 피아노칠 자격이 있느냐”는 무언의 주장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p><p>그런 여자라고 스스로 처벌한 남편 샘닐은 어떤가? 그는 귀족같은 행위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고자인 그는 자기 떡을 남이 먹었다는 것을 질투한다. 그리하여 먹을 능력도 없는 고자임에도 물구하고 그 질투심에 마누라를 덮쳐본다. 그래도 자기의 몸에 아무런 기별이 없자, 그는 총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지 마누라를 건드린 하비 카이텔에게 총을 들고 마딱뜨리는 것이다.</p><p>이것은 아내와의 불륜을 참지 못한 샘닐이 하비 카이텔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가는 것처럼 보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대단한 긴장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은 하비 카이텔과 마누라와 딸이 함께 그 마을을 떠나는 것이다. 즉 샘 닐이 곱게 불륜의 남녀를 함께 잘 살라고 보내주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는 어느 비평가가 이렇게 말했다.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남자에게 아내를 보내주는 영국 신사의 품모를 보여준다”고. </p><p>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남편인 샘닐은 자기도 못먹는 떡을 하비 카이텔에게 주고 그의 땅을 바꾸는 거래를 했던 것이다. 돈 벌러고 뉴질랜드까지 온 샘 닐에게는 결국 못먹는 마누라보다 돈이 되는 땅이 더 중요했으며 그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총이라는 협박 수단까지 필요했던 것이고(마누라 주려고 간 놈이 총이 왜 필요하겠는가?) 하비 카이텔이 순순히 그 딜에 응했는지 않했는지는 감독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리라. 왜냐면 영국신사로 보여야 만이 영국의 제작자가 제작비를 대 줄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p><p><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4081.jpg" width="290" height="39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4081.jpg');" align="left" />자 이제 앤딩으로 가보자. 하비 카이텔과 떠나려는 에이다. 피아노를 배에 실으려는데 피아노는 더 이상 필요없다고 말한다. 이해가 안되는 하비. “너에게 제일 소중한 것인데”라는 질문을 하지만 에이다가 버리라는데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버린다. 에이다는 왜버리라고 한 것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얼굴 문신한 상놈이라고 드러내놓고 있는 남자하고 사는 처지에 귀족임을 드러내 주는 피아노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p><p>피아노를 바다에 버리고 난 다음 에이다는 생각에 잠긴다. 상놈의 마누라고 사느냐 아니면 귀족으로 죽느냐? 여기서 그녀는 딸도 버린 채 귀족으로 죽는 길을 일단 택한다. 그리고 죽자고 바다 속에 있어보니 그래도 사는 게 낫겠다 싶어 바다 위로 올라온다. 감독은 이것도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찍었다.</p><p>그 다음 에롤로그, 행복하게 사는 에이다가 행복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하비 카이텔과 행복한 키스를 한다. 그러면서 에이다의 상념을 토로한다. 바다속에 피아노와 함께 죽으려 했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무슨 소리인가? 이렇게 천민으로 행복하는 살지만 그래도 바다 속에서 피아노와 함께 귀족처럼 죽어 자신의 정체성이나마 지키려고 했던 자신의 허영을 생각한다는 뜻일 게다.</p><p>호주의 여자감독인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는 이처럼 잔인하게 영국의 속물적 인간상들을 그려냈다. 한 때 해가 저물지 않는 나라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망가져 가고 있었던 영국이 가진 허영적 자부심이 무너져 내릴 때, 천민적인 생존의 삶을 택하면서도 귀족으로서 대접을 받고자 했던 영국의 모습을 감독은 잔인하게 조롱하는 영화를 영국의 자본으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랬으니 프랑스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영국을 비웃는 이 영화에 그랑프리를 주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p><p>이런 비판적 영화를 두고 아름다운 (영국 사람들의) 사랑이라고 평한 비평가들은 영화를 왜 볼까? 하고 생각이 나는 첫 번째 영화가 바로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이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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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영화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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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Jul 2007 12:36:40 GMT</pubDate>
		<dc:creator>와이드샷</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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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보상 원하면 스스로 군인임을 증명해 !"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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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김형식 노인은 1927년생의 한센인이며, 청원의 청원농장에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집은 처음 청원농장이 만들어 지면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던 집이다. 그곳에 지붕만 계량했다. 그는 1946년 20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국군으로 입대한 군인이었다. 그는 625에 벌어진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두만강 전선으로까지 진격한 특무상사 출신이다. </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2933.jpg" width="400" height="6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2933.jpg');" /></div><br><p>중국군의 참전으로 후퇴를 하게되었고, 그의 소대도 대대로 부터 떨어져 별도로 후퇴를 하게 되었다. 그는 황해도 까지 내려와서 북한 인민군 패잔병들에 의해 포로로 붙잡히게 되었다 한다. 그는 압록강에 있었던 포로수용소에서 연합군 포로들과 함께 생활하였고, 후퇴하면서 생긴 동상으로 인하여 고생을 했다. 그는 1953년 포로수용소의 경계가 해이된 것을 틈타서 수용소에서 탈출을 하였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그 탈출에 성공을 했다. 문제는 후퇴를 하면서 다치고 포로수용소에서 동상으로 인하여 썩은 발이 낫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탈출을 하여 군대로 복귀하자마자 자신의 동상으로 인해 1953년 4월 10일, 의병에 의해 전역을 하게 된다. </p><p>집으로 돌아온 그에게는 친척 중에 한명이 대구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한다. 그에게서 도움을 받을 생각에 대구로 내려간 그에게 의사 친척은 발이 썩는 병이 동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센병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한다. 그것으로 인해 그의 친척들은 그가 한센병에 걸린 문00란 걸 알게 되었고, 그는 자신의 병으로 인해 집안이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집을 나왔다고 한다.</p><p>그는 충청도의 한 산간에서 모든 것을 단념하고 죽기만을 기다렸으나 모진 목숨이 결코 자신의 생명에의 포기보다는 살려고 몸부림치게 만든다는 것을 깨우쳤다 한다. 그는 자신의 병이 군대에서, 그것도 인민군과 싸우다가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얻은 병이기에 무엇인가 국가로 부터 보상을 받을 길이 없을까하여 집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한센인이 자신의 집안에 있다는 것을 원하지 않은 그의 형수가 그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진 한장까지도 모두 없애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족에 의해서 잃어버린 것이었다.</p><p>그는 자신이 군인이었다는 것과, 그것도 특무상사라는 직업군인이었음에도 누구하나 자신이 군인이었음을 증명해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한센인이 된 그에게 너가 어떻게 군인이 될 수 있었는가? 하면서 그를 조롱하고 그의 말이라고는 하나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의 절망으로 인하여 그는 자신이 한센인이라는 문00말고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인생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에게 주어지는 약 20 여만원 정도의 지원금으로 아내와 함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p><p>김노인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말을 하는데도 거시기라는 말로만으로 모든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그분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거시기이다. 그가 거시기에서 거시기 만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은 그에게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분간하거나 분류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한민국에 자신의 인생을 다하여 근무를 하고서도 한센병으로 인하여 한센인이라는 정체성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다른 그 어떤 것도 그에게 중요하지도 않고 기억하거나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p><p>필자와 그가 처음 만났던 것은 필자가 청원농장을 처음 방문했던 올해 1월 말 경이었다. 필자는 김형식 노인이 대한민국의 군인이었음을 밝히고 군에 복무하면서 병을 얻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인생의 전반을 고통속에서 살았음을 증명하는데 조금의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이번 필자의 두번째 청원 방문에서 그로 부터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p><p>그의 장애인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그의 주민등록 등본을 발급받았는데 그 주민등록등본에 그의 병역사항이 기재된 것이었다. 이것은 민원전산화로 인해 그의 병역사항이 자동으로 기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민등록등본에 병역사항이 기재되어 있어도 그것이 처음에는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의 주민등록초본을 다시 보게 되었고 거기서 자신은 자신이 군인이었음을 증명해주는 병역사항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p><p>그는 이런 사실을 필자의 두번째 방문에서 그의 과거 행적을 다시 세밀하게 묻는 필자의 질문 끝에 자신을 그것을 보았노라고 말하면서 서류를 필자에게 보여주었다. 드디어 그는 자신이 군인이었고, 계급은 원사(당시 특무상사)였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 것이었다.</p><p>이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김형식 노인에게 국가가 대답할 차례이다. 왜 국가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다한 사람들을 스스로 찾아 그 보상을 하지않고 보상받고자 하는 사람을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라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자신이 군인이었고 군에 의하여 병을 얻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전역을 했다는 사유가 그의 주민등록초본에 명기되어 있는 이상, 그를 지금까지 한센인으로 차별하고 버리고 있었던 자신의 모든 죄과를 갚아야 할 것으로 본다.</p><p>국가가 스스로 보상하지 않을 것을 대비하여 브레이크 뉴스 정치칼럼니스트인 조성래 변호사에게 김형식 노인의 보상과 관련 소송을 맡아주기를 부탁하였으며 조성래변호사는 기꺼히 무료로 김형식노인의 소송을 맡아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리하여 김형식노인의 보상과 관련 소송이 곧 재기될 예정이다. </p>&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4493.jpg" width="500" height="308.18181818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4493.jpg');" /></div><br><p><br>다음은 조성래 변호사가 올려주신 법적 검토사항 입니다.</p><p><br>김형식어른의 법률문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p><p>1. 첫 번째는 보상의 관점이다. 김형식어른이 6.25.전쟁에 참전하였으며 그 와중에 한센병을 얻은 사실이 명백하다면 한센병이 유전적 질환이 아니며 피부 또는 호흡기를 통하여 감염되는 질병이고, 전쟁 중에 군인은 사소한 상처가 발생할 개연성이 대단히 높은 점, 전시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을 개연성을 고려할 때 국가유공자예우법 및 참전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의 적용을 받아 각종 혜택 및 수당을 당연히 지급받아야 한다. 따라서 관련법규정에 따라 참전사실 및 상이상태를 확인하고 이에 대하여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유공자등록신청을 하고 그동안 지급받지 못했던 명예수당등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의료혜택을 받을 수가 있으며 본인이 원한다면 취업을 국가에 요구할 수가 있으며 아울러 사후에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김형식어른이 참전한 사실 및 참전 중 한센병을 얻은 사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그 등록을 거분한다면 이에 대하여는 행정소송으로 그 취소를 구해야 할 것이다.</p><p>2. 두 번째는 배상의 관점이다. 김형식어른이 참전 중 한센병을 얻었고 그동안 사회에서 한센병을 천형으로 생각했듯이 국가에서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김형식어른이 그동안 자신의 참전사실을 증명하려 해도 하지 못했고 이에 대한 어떠한 증명서류도 국방부등 관계 행정청으로부터 교부받지 못했거나 거절당한 사실에서도 잘 알 수가 있다. 만일 국가의 은폐사실이 드러난다면 이는 국가가 참전유공자를 우대하고 예우하지는 못할망정 한센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천대시한 중대한 불법행위이며 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청구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 때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가 소멸시효의 문제이다. 국가의 불법행위의 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3년 또는 5년), 국가의 자료은폐사실만 드러난다면 소멸시효문제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국가가 자료를 은폐하지 않았으면 김형식어른은 국가유공자예우법제정시점인 1984. 또는 참전유공자예우법제정시점인 2000.이후에는 적법절차에 의하여 유공자로 등록하여 상응한 예우를 받았을 것인데 국가의 고의적 은폐로 인하여 그러한 법률상 혜택을 받지 못하였으므로(이는 사실상의 이익이 아니라 법률상의 혜택이다.) 결국 국가의 고의적인 부작위에 의하여 권리를 박탈당한 것인데 국가의 부작위동안에는 위법상태가 유지된다는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입장에 비추어 볼 때 소멸시효는 지금도 진행중인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참전유공자임에도 불구하고 한센병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자료를 은폐했다는 이른바, 국가의 은폐의 동기까지 드러난다면 그동안 당해온 불이익 및 명예감상실에 대한 위자료청구 역시 상당 금액 청구가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p><p>3.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김형식어른의 6. 25.참전사실(기입증됨), 참전도중 한센병을 얻은 사실, 국가의 자료은폐여부(한센병으로 전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신장애로 전역한 것으로 기록됨), 한센병의 발병원인이 주가 될 것이다.</p><p>조성래 변호사<br>&nbsp;<br>&nbsp; <br>2005/03/07 [10:50] ⓒ브레이크뉴스&nbsp; <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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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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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Jul 2007 12:26:1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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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비토리 섬 학살'은 국가의 사주이거나 직무유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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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2428.jpg" width="500" height="367.27272727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2428.jpg');" /></div><br><p>▲비토리섬 살해사건 ©조창원 作</p><br><p>과거사를 청산하려면 노근리 주민 살해사건 뿐 아니라 우선 비토리섬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부터 밝히는 것이 그 순서라 할 것이다. 그리고 고통 받고 멸시받았던 한센인들에 대하여 국가가 사과하고 배상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근리 주민 살해 사건은 미군에 의한 일반 주민의 살육 사건이지만 비토리섬 학살 사건은 우리 주민에 의한 우리 주민에 대한 학살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우리주민이 차별을 받았던 한센인이라는 것에서 우리는 더욱 심도있게 진상을 밝히고 우리의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해야 한다. 그러한 움직임은 한센인에 대한 인권보고가 있었던 작년 11월 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언론에서도 한센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도를 하기에 이르렀다.<br>&nbsp;</p><p><strong>그런데 우선 비토리섬 학살 사건에 대한 요즘의 기사들을 보자</strong></p><p>주간 동아 2005년 2월 8일자 발행 472호의 기사의 일부이다. 한센병력자 강모씨의 증언 내용을 그대로 발췌한 것으로 되어있다. </p><p><span style="COLOR: #cc6600">1967년 9월의 일이구먼. 경남 삼천포 영복농원에 모여 살던 한센병력자 40명이 삼천포 앞바다의 비토리섬을 개간하려고 했어.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서였지. 그런데 어느 날 옆동네 주민들이 낫과 대창을 들고 몰려왔어. 우리들이 큰 천막에 숨자 화가 난 주민들은 그곳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지. 매캐한 연기에 질식하거나 모진 매질에 죽어간 사람이 20명은 족히 넘어. 나는 가까스로 배를 타고 도망을 쳐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도 매질 후유증에 시달려. 머리에 검은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구먼. 보상받았냐고? 누가 그 사건에 책임을 지겠어.”</span></p><p><br>다음은 2004년 11월 11월에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의 내용이다.</p><p><span style="COLOR: #cc6600"><strong>제목 90년만에 드러나는 소록도의 진실</strong></span></p><p><span style="COLOR: #cc6600">1957년 8월, 나병환자 28명 사망! 그러나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br>57년, 정부기록보존소 어디에도 그때 당시 판결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간지에 실린 기사 한 단, 아직 생존해 있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 그리고 마을 한 켠에 자리잡은 28명의 묘. 이것이 그때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의 전부였다. 경남 서포항에서 300미터 떨어진 비토리섬 주민들과의 마찰로 한센병 환자 28명이 폭행당해 사망했다. 그러나 가해자 3명만이 2년형을 살고 집행유해로 풀려나 버렸다. 그렇게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 돼버렸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한센인들은 전국 88개의 정착촌에 자신들만의 생활터전을 만들어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간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들의 인권이 무시된 채 사회의 냉대와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현장을 추적해 본다.&nbsp;&nbsp;&nbsp;&nbsp; </span></p><p>앞의 동아의 기사의 67년이란 년대가 틀렸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기사로서는 큰 오류에 해당하지만 이것조차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무엇이 더 큰 문제인가? 그것은 KBS 다큐멘타리의 나레이션 내용에서 볼 수 있다.</p><p>KBS 다큐는 비토리섬의 사건 시발을 한센병력자들과 주민들 간의 마찰에 의해서라고 보도한다. 주간 동아의 증언에서는 주민들이 낫과 대창을 들고 침입했다고 했다. 이미 마을 주민들은 휘발유를 들고 들어와 한센병력자들이 천막을 친 곳에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디 민간인과 한센인들 간의 마찰인가? 마찰로 인한 폭행으로 벌어진 사망이 28명이라 했는데, 마찰로 인한 폭행으로 28명이나 죽을 수 있고 방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국영방송의 이런 제작자세는 처음 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군인과 시민들의 단순한 마찰 정도로 보도했던 것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항상 기존의 권력과 체제의 눈에 거슬리는 것을 주저한다. 그래서 마찰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폭력과 학살을 마찰 정도로 밖에 보지 못하는 초등학교 이하의 지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태도가 그들의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면(결코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지금의 민주화시대에 와서도 모든 사람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언론인이 아니라 아직도 기득권자들의 눈치만을 보는 어용 방송에 지나지 않음을 그들의 무의식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p><p>한센인들에 대한 비토리섬의 학살 사건은 삼천포 마을 주민들의 의도적인 한센인 학살이다. 오늘에 와서 이런 문제를 놓고 아무도 작가나 연출가의 작품에 검열이나 제제를 하지 않을 터인데도 KBS 다큐 작가나 프로듀서의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건을 마찰로 인한 폭행으로 규정한다. 그런 규정은 90년 만에 진실을 밝힌다는 제목을 써놓고도 진실을 외면하는 그들의 안이한 태도롤 보여주고 있다. 이 안이한 태도는 한센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의 예에 해당한다. 한센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만이 아니다. 이 나라 모든 힘없는 자들의 권리와 인권에 대해 그들은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 그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에만 시청율과 국민의 눈초리를 의식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척 했을 뿐이다. 그들이 학살에 대한 진실을 외면하고 그것을 마찰로 인한 폭행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일반 사람들의 천인공노할 학살과 방화 살인에 대한 비판과 반성보다는 그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숨겨주고 문00라는 천형을 받은 한센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해 주겠다는 자신들의 거만함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라 할 수있다.</p><p>이런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의 자만과 거만함과 인권에 대한 무관심이 비토리 섬의 학살 사건이 역사 속에서 묻히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지금도 그 학살의 진실을 파헤친다면서도 그 사건을 마찰로 인한 폭행이라고 무마해나가는 걸 보면,&nbsp; 48년 전의 그 당시에는 어땠을 것인가가 가히 짐작이 가고 남을 만한 일인 것이다.</p><p><br><strong>비토리 섬 학살사건의 진실</strong></p><p>필자가 조사하고 증언을 들은 바에 의하면 삼천포의 영복 농원의 한센인들만 비토리 섬으로 간 것이 아니다. 진주에 모여 있었던 한센인들 70 여명도 거의 모두 비토리 섬으로 갔다. 그들이 비토리 섬으로 가게 된 이유는 도시의 중심에 한센인들이 교회를 짓고 거기서 짐자리(한센인들이 구걸하고 나서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잠을 청하는 장소)를 하는 것에 대해 주민들의 반대가 너무나 거세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경찰 서장이 한센병력자들에게 와서 차라리 섬으로 가 줄 것을 제안했다.</p><p>비토리 섬은 소록도 보다 조금 작은 섬이고 지금은 비토연육교로 이어져 있으나, 당시에는 서포 항에서 300 미터 떨어져 있는 섬이었고, 이미 일제 시대 때부터 주민들이 어느 정도 살고 있었던 섬이었다. 당시의 지방단체장들의 입장에서 보면 문00들이 거리에서 구걸행각을 하고 다니는 것보다는 육지에서 떨어진 섬에서 개간을 하고 사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의 한센인들 입장에서도 나중에 자신들의 땅이 될 수 있는 섬을 개간하는 것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57년 당시만 하더라도 일반 한센인들의 인식 속에 소록도는 그저 죽으러가는 땅이었다. 한센병에 걸려 소록도에 가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인식 아래서 소록도로 간 사람들 보다는 죽기싫어서 소록도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던 시절이기도 했다.</p><p>그런 점에서 소록도처럼 관리들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기들만이 정착하고 살 수 있는 섬을 주겠다는 지방 관리들의 말은 그곳 한센인들에게 있어서는 꿈과 같은 이야기였고 당시의 삼천포와 진주, 고성 등에 있던 한센인들은 너도 나도 모여서 비토리 섬으로 갔다. 하지만 각 지역의 사람들은 같은 지역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는 알아도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니 당시의 학살사건으로 수많은 한센인이 죽어도 한 지역의 살아남은 한센인의 입에서는 자기지역에서 온 사람들 중 죽은 사람들의 숫자만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사건을 축소하기를 원하는 관리와 언론에 그대로 적용되어 겨우 28명이 죽었다는 것으로 보도되었고 사실화 되었던 것 뿐이다..&nbsp; </p><p>비토리 섬으로 한센병력자들이 모여드니 당연히 비토리섬 앞의 서포항 주민들에게서 난리가 났다. 바로 앞 섬에 문00들이 모여 살면 비토리섬 주변 갯벌에서 생산되는 모든 해산물들의 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점이 그들 주민들에게 당면한 문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관공서와 단체장들의 주민들에 대한 교육과 계도로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방 관료들은 아무도 주민을 무마하는 일에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일단 그들이 관리하는 지역에서 문00들이 빠져 나갔다는 사실만을 만족했을 뿐이었고, 문00들이야 죽든지 살든지 간에 더 이상 그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문00들이 다시는 자기들이 관리하는 땅으로 돌아오지 않기만을 바랬을 뿐이었을 것이다.</p><p><br><strong>우리는 문00들이 생산하는 돼지와 닭과 계란을 먹고 살아왔다.</strong></p><p>우리는 우선 이것부터 알아야 한다. 모르면 약이라 했던가? 일반 사람들 중 한센병력자들이 키운 돼지와 닭과 계란을 먹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한센병력자들이 키운 돼지와 닭과 계란인줄 알았다면 과연 먹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걸 먹게 하고 유통하시키기 위해서 국가나 관공기관에서 한센병이 치유되는 병이며, 전염되지 않으며, 재발하지 않는다는 3가지의 진실을 대국민 홍보에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국민들에게 돼지와 닭과 계란이 한센병력자들의 정착촌에서 생산된다는 사실만을 숨기면 되었기 때문이다.</p><p>그것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중간 상인들과 도매상들에게는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했다. 문00들이 키운 돼지와 닭과 계란이라 해서 일반인들이 키운 것에 비해 훨씬 낮은 가격으로 수매하여 이익을 남겨왔는데, 문00들이 돼지와 닭과 계란을 생산한다는 것이 알려지고 나면 일반 사람들이 생산한 돼지와 닭과 계란 가격까지도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처음에는 약간의 파동이 있었겠지만 다시 돼지와 닭과 계란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 사이에서 정상화 될 것이었다. </p><p>한센인의 3가지 진실을 대국민 홍보를 하지 않은 것은 소를 제외한 축산물 가격에 있어서 중산 도매 상인들의 중간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위계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거기에 정부관료들이 철저히 편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p><p>이처럼 한센인들에 대해서라는 어느 것에서도 그들을 도와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용해먹고 착취해먹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이 일반 사람들이었고 지배관료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비토리섬의 학살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p><p><br><strong>비토리섬의 학살은 관료들에 의한 섬주민의 학살 방조 및 선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strong>.<br></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4.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2947.jpg" width="400" height="6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4.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2947.jpg');" /></div><p><br>현재 고양시 일산구 식사동에 살고 있는 김모 장로가 비토리섬에서의 학살사건을 당하고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김모 장로는 경상도 하동의 유복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13살에 발병을 하였고, 집안의 골방에서 숨겨져 살다가 동네사람들 눈치에 집안이 고립되자 부모님에 하직인사를 올리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어디로 갈지 몰라 하동 강변을 헤메는데 다른 한센병력자들이 자기를 찾으러 왔다한다. 아들이 나병에 걸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평소에 부모님들이 문00들에게 후하게 밥을 주고 했는데 그들도 자신이 나병에 걸려 골방에 갖혀 지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아들이 떠났다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자신을 찾아나섰다고 했다. </p><p>그때 그는 어린 나이에 동병상련이 무엇인지를 깊게 느꼈다고 했다. 그는 그 때 만난 한센인들 무리와 함께 어울리며 진주에 있는 짐자리에 자리 잡고 구걸을 통해 일단 생활을 영위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유복한 가정 덕분에 그나마 공부를 한 것이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도 조리있게 말을 할 줄 알았고, 따질 줄도 알았다고 한다.</p><p>당시 진주에 모여 있던 한센인들을 받아주는 교회가 없어 자신들이 교회를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당시 교단의 노회에서는 교회를 짓는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가 장문의 글을 써서 노회의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 때 그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유명했던 김두영 목사의 가족을 도왔을 정도로 한센인들의 신앙심이 깊었다는 글을 썼다고 한다. 김두영 목사는 1953년 대구 총회신학교를 1회로 졸업했던 목사이며 소록도의 목사로 부임했고 부흥목사로 한 시대에 그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그의 저서로는 '몰래 익은 포도송이'라는 회고록이 있다: 뒤에 소록도 교회 건립 사건에 대해 다시 언급될 것임) 당시 진주에 있었던 한센인 중에 이북에서 내려왔던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김두영 목사의 부인은 3자녀를 데리고 1948년에 월남 하였음: 김두영 목사의 회고록에서 참조함) </p><p>진주에서 조그맣게 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예배당에 불가한 조그만 방에 지나지 않았고 한센인들의 구걸하여 모이는 짐자리에 지붕을 올려놓는 방에 불가했다고 한다. 그런 한센인들이 모이는 곳을 진주 시민들이 마땅치 않았했던 것이었고, 당시 진주경찰 서장으로부터 삼천포의 비토리섬으로 옮겨 사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그는 주장했다. 서장의 제안에 진주의 한센인들은 모두 환호했다고 했다. 그 중 몇사람은 드디어 살 땅을 얻은 것 같다고 집의 아내에게&nbsp; 편지를 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p><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418.jpg" width="500" height="333.63636363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418.jpg');" /></div><p>비토리섬 학살 사건에 섬 주민들이 천막을 치고 있었던 한센인들을 무차별하게 낫으로 베어죽이고 죽창으로 찔려 죽였는데, 그 중 한 여인은 “자신은 문00의 아니지만 문00는 아니다”라고 하면서 “제발 살려 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인마저도 “문00와 같이 있으며 다 문00이지”라고 하면서 그 여인마저 죽였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걸 보면 집으로 편지까지 하면서 비토리섬으로 식구들을 불러들인 한센인이 있었다는 김장로의 말에서 자신이 개간하여 먹고 살 수 있는 땅을 한센인들이 얼마나 원했는지를 알 수 있다.</p><p>그렇다면 한센인들은 비토리섬으로 가게한 당신의 지방단체의 관료들은 왜 주변 주민들에게 그들이 제안해서 비토리 섬으로 보낸 것이니 이해해 주고, 한센병이 주변 주민들에게는 전혀 피해가 없는 병이라는 사실을 홍보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에서 한센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만을 원했기 때문이다. 일단 도심의 중심지에서 문00들을 사라지게 한 다음, 그 다음은 그들이 어떤 억압에 피해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문00 들이 당해야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님 비토리섬 주변 육지 주민들로 하여금 비토리섬으로 몰아넣은 문00들을 모두 죽여도 좋다고 오히려 충동하였는지도 모른다.</p><p>당시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비토리섬에서 사망한 한센인은 28명이고 중상자만 100여명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눈으로 살해당한 시신으로 확인 한 것만을 상정한 것이다. 김노인은 육지에서 죽은 사람보다 바다로 헤엄치며 도망치다가 배위에서 치는 노와 죽창에 찔려서 죽은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 때 죽은 시신은 삼천포 다도해 사이를 흐르는 거센 물살에 떠내려 가서 사라져버렸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p><p>김노인은 비토리 섬 천막 한쪽에서 방화가 일어나가 진주쪽에서 온 사람들은 다 해안가로 도망을 쳤다고 했다. 육지까지는 300미터밖에 안 되고 8월의 한 여름이었기에 헤엄을 쳐서 육지로 도망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육지의 주민들은 그렇게 도망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도망가는 한센인들을 다 때려잡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 학살과 추적을 통한 살인이 마찰로 인한 살인이란 말인가?</p><p>김노인도 주민들이 때리는 노에 맞고 기절했다고 한다. 그도 이틀 동안 정신 잃을 정도로 맞았다고 했다. 그가 깨어났던 것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그를 시체 화장하는 나무더미에 밀어넣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그 장작불에 우선 다리부터 들어가지 그 다리의 뜨거움에 몸을 사리며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때에 심한 화상이 다리에 남아있다고 했다.</p><p>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많은 시체들이 장작에서 타고 있더란다. 이런 김장로의 말을 통해서 보면 비토리섬에서 학살 당한 한센인의 수는 28명이 훨씬 넘을 수도 있다. 김장로는 백 여 명은 안 되어도 수십 명은 죽었을 것이라 했다. </p><p>그리고 사건에서 다치고 살아남은 한센인들에 대해 아무도 치료해주지 않았다 한다.&nbsp;&nbsp; 이 사건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여수에 있는 애생원에서 보살피는 수녀님들이 다친 한센인들을 치료하러 왔다고 했고, 김장로도 그 수녀님들에 의해 치료를 받았다 했다. 그 당시 그는 그 수녀님들이 마치 선녀 같았다고 말한다.</p><p>김장로는 비토리섬의 학살사건이 단순히 한센인들과 일반 주민들 간의 마찰로 인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주민들에 의해 철저히 준비되어졌던 집단 학살극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KKK단이 흑인들을 겁주고 위해 모의하고 준비한 것 보다 더 무자비한 행위를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KKK는 겁주기 위해 흑인 한두 명을 시범적으로 죽였지만, 당시 삼천포의 주민들은 처음부터 수십 명을 집단 학살했고, 경찰과 관공서는 이런 엄청난 사건에 대해서도 손을 뒤로 잡은 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다.</p><p>그들 지방 괸리들이 주민들을 사주하고 학살을 방관했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그랬기 때문에 수십 명을 죽인 집단 살인 사건에 형 집행으로 처벌 받은 사람은 고작 3명이다. 그것도 수십 명을 죽인 집단 살인죄에 3명이 겨우 징역 2년이란다. 나머지는 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언급하는 것은 비토리섬의 집단 학살에 참여했던 사천시민들의 죄를 지금 와서다시 조사하고 물어서 그들을 처벌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 주민들이 집단 학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살육의 광기에 빠질 만큼 그들을 충동했던 주범들이 과연 누구였겠는 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시의 경찰과 관공서의 사주였거나 그들의 의도적인 직무 유기였을 가능성을 밝혀보자는 것이다. 그 진실을 밝힌다면 국가는 모든 한센인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의 말을 전 국민 앞에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무자비한 압살을 받은 모든 한센인들에게 그 배상을 하여야 할 것이다.</p><p><span style="COLOR: #0000ff"><strong>김근태 보건 복지부 장관이 1월 말에 소록도를 찾았다고 했다. 지금 그는 소록도를 찾는 쇼맨쉽을 발휘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수많이 당한 한센인들에 대한 잔혹한 살육과 폭력을 방기한 것에 대해 이 때까지 이 나라를 이끌어온 정부를 대신하여서라도 전국민 앞에서 한센인들에 대해&nbsp; 사죄부터 해야 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nbsp; <br><br></strong></span><span style="COLOR: #000000">2005/03/07 [09:13] ⓒ브레이크뉴스 </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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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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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Jul 2007 12:20:56 GMT</pubDate>
		<dc:creator>와이드샷</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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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한센인에 대한 멸시와 폭력의 실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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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0773.jpg" width="500" height="333.63636363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0773.jpg');" /></div><br><p><strong><br>모두가 멸시했지만 그 개인 하나 하나의 죄라 할 수 있을까?</strong></p><p>모든 일반사람들은 한센병 환자를 문ㅇㅇ라 부른다. 문ㅇㅇ가 한센병에 걸려있는 사람이라 한다면 한센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문ㅇㅇ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감기 걸린 사람이 감기 환자이고 눈병 걸린 사람이 눈병환자인 것처럼, 그리고 그들에 의해 전염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피하듯이, 한센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p><p>그런데 이 사회는, 아니 모든 사회는 한센병을 앓다가 나은 사람에 대해서도 문ㅇㅇ라고 부른다. 한센병이라 불리우는 나병이 나으면 더 이상 나병환자가 아니다. 그런데 왜 다 나은 사람을 나병환자인 것처럼 문ㅇㅇ라고 그대로 부르는가? </p><p>키 작은 사람은 키큰 사람에 의해 차별된다. 못생긴 사람은 잘생긴 사람에 의해 차별된다. 하지만 그 차별은 있을지라도 그 차별이 인격적인 차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눈에 분명히 보이는 차별적 특성이 있을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벌레처럼 취급받지도 않는다, 그런데 문ㅇㅇ는 다르다. 문ㅇㅇ라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 그들의 신체에 그것도 밖으로 드러나는 얼굴과 손과 발에 그 병력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을 이유만으로 그들은 일반 사람들로부터 인간 이하의 대접이 아닌 취급을 받는 것이다.</p><p>그것은 한센병을 앓은 사람이 가지는 치명적인 낙인이라 할 수 있는 뭉그러진 손이나 눈썹없는 얼굴이 그 병력의 흔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성에 의한 오산이다. 지체부자유아가 그 지체 부자유함으로 인하여 일반 사람들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 당연하다면 한센병력자가 한센병력의 낙인으로 그 흔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동정과 연민을 보낼 수 있는 계기로서 작용하여야 만이 당연하다. </p><p>그런데 그 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 왜 지체부자유아는 그 차별적 특성으로 인하여 보호받아야 된다고 하는 사고가 상식이 되는 이 사회에서 차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한센인은 보호받지는 못할 지언정 더 심대한 차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버린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한센인들의 차별성에 의해 그들로부터&nbsp; 혹은 그들로 인하여 더욱더 많은 것을 착취하거나 얻을 수 있는 그 누군가에 의해서 차별성이 더욱 조장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깊이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p><p>문ㅇㅇ라는 천형의 이름과 거기에 따른 비인도적인 편견과 멸시가 일반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그것을 일반인들 모두 반성적으로 인정한다 해서 일반인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일반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본성, 즉 인간의 본성 자체가 선하지 않고 악하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만 정의하고 끝날 수 있는 일인가?</p><p>백혈병 환자나 악성 종양 등의 불치의 병에 걸릴지라도 대부부의 부모는 자신의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식도 부모를 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환자와 그 질병의 고통을 나누며 그 힘겨운 투병의 삶을 같이 한다. 그리고 누구나 그것을 동정하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인간은 선하다. 그런데 반해 한센병의 경우가 되면 그 반대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p><p>이 사회 뿐만 아니라 개인들에게 있어서도 문ㅇㅇ란 한센병력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 왔던가? 자식이 나병에 걸리면 집안 스스로 나병에 걸린 환자를 골방에 가두거나, 집안을 떠나기를 무의식적으로 강요한다. 그리고 나병에서 나아 돌아오더라도 문ㅇㅇ로 한번 낙인찍힌 사람이라 거의 받아주지 않는다. 병에 걸렸을 뿐이고 그 병에서 치료되어 돌아왔을 뿐인데 가족과 마을 모든 사람들이 머리에 낙인찍힌 천형의 죄인처럼 병력자를 멀리한다. 멀리하는 정도가 아니다. 돌을 던지고, 그가 손댔던 나무 기둥을 깎아버리며, 그가 앉았거나 누웠던 곳은 그 땅을 파버릴 정도로 그들은 인간이 아닌 야만보다 더한 악마로 그들을 대하였다. </p><p>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인간 이하의 벌레처럼 대하는 것이 인간인지를 우리의 마음에 스스로 물어보자. 자기의 자식과 형제 그리고 친지까지도 멀리하게 만드는 이 한센병에 대한 멸시는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에 의해서 조장된 것이기에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에 대한 멸시와 조롱과 폭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는지 모른다는 것 또한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p><p>하지만 인간으로서 인간이 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행태를 하고서도 우리는 어쩔 수 없거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왔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스스로도 악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비&nbsp; 도덕적 행위지만 한센인에 대한 인간 개인의 행동 양태로 인간이 지닌 악마성과 비도덕성이라고 단순하게 핑계되어서는 안 된다.&nbsp; 개인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악마성이 있는 행동을 하게 만든 본질인 사회, 혹은 집단적 탐욕의 문제를 우리는 근본적으로 쳐다보아야 한다..</p><p>한 인간에 대하여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는 일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그것만이 인간이 되는 조건이라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인간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체 살아왔던가? 그것은 개인이 갖추어야 할 반성적 자세이다. 하지만 일개인이 그런 개인적 반성의 자세를 갖춘다고 할지라도 문ㅇㅇ에 대해 박해를 가하고 차별을 가했던 것을 당연시 했던 사회적인 행태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히 자각할 필요가 있다. 개인은 도덕적일 수가 있어도 사회나 집단은 비도덕적이라는 라인홀드 니이버의 지적을 우리는 다시금 되새겨 보아야 하는 것이다.</p><p><br><strong>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strong></p><p>“도덕적 문제가 개인들의 관계에서부터 집단들의 관계에로 옮아가면 갈수록 사회적 내적 충동에 대해서 이기적 충동이 우세해진다. 그러므로 아무런&nbsp; 내적 억제도 그 충동들을 완전히 통제할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 따라서 사회적 통제가 시도되어야 한다.” (라인홀드 니이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p><p>위의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이버의 말에 근거하여 본다면,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성향을 가진 개인이라도 그가 집단의 관계 속에 있을 때는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이 충분히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개인의 양심도 집단의 탐욕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탐욕이란 충동에 개인의 도덕성을 망각해버린다는 것이다. 지역주의와 집단 이기주의 같은 것의 발호가 이런 구체적인 예에 속할 것이다.<br></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3222.jpg" width="500" height="333.63636363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3222.jpg');" /></div><br><p><br>그렇다면 한센병에 대해 무슨 집단적 이기심이란 충동이 발호하는 것일까? 그것은 열등적 차별화를 통한 우성적 만족감을 일반 대중들에게 선사한다. 스스로 자신감과 우월감을 갖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에게 그들보다도 못하다는 열등적인 집단를 각인시켜주고 그 차별화 하는 행위를 정당화 시켜줌으로써 일반 대중에게 우월적 안도감을 무의식적으로 주게 된다. 그것은 어렵고 질곡에 빠진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일반대중들에게 그나마 자신들은 다행스럽다는 기분을 들게 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비판적 정서를 반감시키게 만든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나름의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p><p>이 열등적 차별화된 집단을 선정하고 그들에게 차별과 멸시를 가하도록 만들게 하는 사회적 전략은 정당성 없는 권력이 독재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반 대중들로 하여금 현실에 만족하도록 세뇌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전략에 속해왔다. </p><p>히틀러의 우생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유태인에 대한 비인간적 차별화 및 말살정책에 독일의 일반 대중 대다수가 환호하고 야만적인 폭력과 살인에 대해서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p><p>히틀러뿐만 아니다. 미국의 백인들은 흑인들로 하여금 더 소수민족인 동양인 유색인을 차별화 하고 그들을 멸시하게끔 하는 것을 정당화시켜줌으로써 흑인들의 현실에 불만을 상쇄시키고 백인 우월적 제도와 관행을 유지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의 예에 속한다. 한 집단을 차별화 하는 이런 사회적 전략에는 그 전략을 도모하는 이들의 이익이 항상 근본적인 뿌리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사회나 집단으로 하여금 비도덕적으로 만들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니이버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p><p><br><strong>우리나라에 있어서 열등적 집단에 대한 우월적 집단의 폭력과 착취</strong> </p><p>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적으로는 전라도를, 집단적으로는 한센인을 가장 많이 열등적 차별화 전략으로 사용하였다. 경상도 사람을 문딩이라 한다면 전라도 사람을 따블백이라 한다. 경상도에서 문딩이란 애칭이다. 전라도에서 친한 사람 간에 부르는 "염병(학질)할 놈"이라는 말과 동격인 언어다. 따라서 염병할 놈이라 말이나 문딩이란 말은 그들에 대한 모독적 언사며 언어적 폭력은 되지 않는다에 대해 어느 정도는 동의할 것이다. </p><p>그런데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에게 붙인 별명이 "따블백"이다. 왜 따블백인가? 이것도 좋게 말하면 “너무 가난하여 이삿짐을 싸는데도 이것 저것 가릴 것 없이 한꺼번에 한 보타리안에 넣어 다녔다”라는 뜻으로 설명된다. 그만큼 가난했다는 동정적인 별명인가?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전라도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했다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그런 동정적인 해석이 들어간 이름을 붙여준 것일까? 그렇지 않다. </p><p>따블백이란 말은 한마디로 좀도둑이란 뜻이다. 학교나 어느 집단에서 물건만 없어지면 전라도 사람의 것을 털어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없어진 물건이 나오면 전라도 사람은 이렇게 변명한다고 한다. “이것 저것 막 넣다 보니 그게 내 것이 아닌 줄 몰랐어”. 훔치다가 들키면 자기 것이 아닌 건 줄 몰랐다는 변명을 하기 위해 막 집어넣는 가방인 따블백을 들고 다니는 것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멸시를 담은 용어가 어디서 만들어졌던 곳은 군대였다고 생각된다.(이 부분에 대해 깊이 아시는 분이 있으면 댓글로 부탁 드립니다)</p><p>&nbsp;군대라는 전국 지방이 다 모여드는 집단에서 따블백이란 말로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 열등적 차별화를 만들어왔고, 거기서 전라도에 대한 열등적 차별화와 멸시는 전 국민들에게 당연시 되도록 세뇌되었던 것이다.</p><p>이처럼 부정적이고 열등적 의미를 지닌 별명을 붙임으로써 집단에 대한 집단의 차별화 및 정신적 폭력을 기도하는 것은 우월적 존재로서의 결속의 더욱 강화시켜주는 작용을 하며 이를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작용하도록 도모한 것이 박정희와 이후의 군사정권이었고 거기에 기생한 테크노크라트와 지식인들이었다. </p><p>그런데 한 집단에 대한 열등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날 경우에는 우월적 집단의 열등 집단에 대한 정신적 폭력은 물리적 폭력으로 노골화 된다. 이 물리적 폭력의 노골화는 열등 집단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과 아울러 경제적 착취까지도 정당화 시키면서 그들에 대한 생존권에 대한 처절한 박탈을 하는 자들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보다는 착취의 환희를 만들어 주게 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 사건으로 벌어진 것이 518 광주학살사건이다. (지금은 광주민주화항쟁이라고 부르지만) </p><p>그리고 그런 학살과 살인에 있어서 그 정당성을 만들어 주는 우월적 의식를 조장하므로써&nbsp; 독재를 유지하려는 정치권력은 자연스럽게 그 목적을 달성하며, 지식인과 기득권자들은 그 정당성에 그렇듯한 논리를 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약한 자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이루어지게 만드는 동시에 자신은 권력으로 부터 나름의 댓가를 받는 (연구비라는 명목으로) 탐욕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p><p>1957년에 벌어진 한센인에 대한 비토리섬의 집단 학살 사건과 1960년대 초에 있었던 한센인들의 오마도 간척지를 정부가 그 권력으로 가볍게 빼앗은 재산 약탈 사건은 우월적 지위를 가졌다고 생각한 일반대중과 권력자들이&nbsp; 물리적 폭력과 경제적 착취를 통한 탐욕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예에 해당한다.&nbsp;<br></p><p></p><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5555.jpg" width="500" height="333.63636363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5555.jpg');" /></div><br>다음 글은 지금의 비토리섬 학살 사건에 관한 글이 될 것입니다. <p></p><p><br>&nbsp;<br>&nbsp; <br>2005/02/15 [18:18] ⓒ브레이크뉴스&nbsp; <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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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wideshot.egloos.com/436337#comments</comments>
		<pubDate>Wed, 18 Jul 2007 12:18:59 GMT</pubDate>
		<dc:creator>와이드샷</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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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한센인, 그 생명의 끈질김을 연재하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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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인권의 사각지대가 많지만, 한센인들 만큼 처절하게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그 슬픔을 맛본 역사를 가진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도 그들은 오늘날까지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조명해보고, 그들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인간답지 않은 무차별적 폭력과 멸시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므로써 우리 스스로가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고자 합니다. </p><p>필자는 황문성 사진 작가와 함께 몇개월에 걸처 한센인들, 그 생명의 끈질김을 주제로 다큐멘타리와 사진작업을 할 것이며 작년 말 부터 그 시작을 하였습니다. </p><p>황문성 작가의 사진과 필자의 글을 작업이 되는 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p><p><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1852.jpg" width="500" height="350.90909090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1852.jpg');" /></div>&nbsp;▲사라져 갈 정착농원을 바라 보고 있는 한센병력자의 뒷모습 </p><p><br>들어가는 글</p><p>문둥이, 혹은 나병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은 추억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또한 문둥이에 대한 공포를 가졌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나는 경상도 통영(태어날 당시에는 충무였다) 출신이고 내가 태어나던 해에 바로 옆 삼천포 지역에서 비토리 섬의 한센 병력자 학살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일반 주민들에 의해 한센인 백 여 명이 사상 당한 일이다.&nbsp; 어린 시절의 나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문둥이를 죽인 것이 커다란 공로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던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베트남의 양민들을 죽여 놓고 그것이 마치 무공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처럼 말이다. </p><p>월남에 가서 자신의 독립을 외치고 싸우던 월남인들을 죽인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길이며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용맹스런 군인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은 그 시절에 우리는 문둥이는 당연히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쳐 죽여 없애야할 존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월남에의 파병과 월남인들을 죽인 것이 역사적 죄악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동굴의 미신이라는 미망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반성적 성찰 없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인간을 인간이 아닌 야만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예가 월남파병이며 그곳에서의 학살이라고 할 수 있다.</p><p>우리와 다른 민족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나마 반성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 것이나마 다행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아직도 반성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반성이 없으니 올바르게 고쳐질 리가 없는데, 그것이 바로 한센인(나병에 걸린 적이 있는 사람)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의식과 그들에 대한 행동이다. </p><p>한센병력자라는 말이 의미해 주듯이 병력자란 병에 걸린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병력자라는 말은 지금에 있어서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와 같이 가까이 해서는 절대로 안될 사람들이라는 사회적 의미로 씌어지는 말이다. 에이즈는 그것이 미치는 전염적이 위협으로 인하여 반드시 격리해야 하며, 그 병력자의 거주나 활동 상황을 국가기관에서 반드시 체크하고 관리하게 되어있다. 국가기관에 의한 관리의 필요성에 의해서 그 관리 대상을 말하고자 할 때 병력자라는 명사를 쓰게 되는데 그런 관리대상으로서의 명사가 나병환자였던 적이 있는 한센인들에게 병력자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다.</p><p>이 한센병력자라는 말보다 더 심한 말이 있다. 병에 걸리다 다 나은 사람을 그냥 사람이라 하지 무슨 병에 걸렸던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센병에 걸렸다 나은 걸로 판명된 사람을 ‘음성 나환자’라 한다. 나았으면 그만일 진데 왜 음성나환자라고 하는가? 이 음성 나환자라는 말 속에는 한센병력자들은 필히 일반 대중들과는 구분하겠다는 차별화 전략이 숨어있다. </p><p>지금의 에이즈처럼 한센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병도 아니고 재발하기 쉬운 병도 아니다. 그런 병임을 이미 1950년 이전에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무지몽매한 일반 대중들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센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국가나 정부에 의해서 제도적으로 자행된 것도 많지만 일반 대중에 의한 차별과 멸시에 의해 저지르진 것이 더욱 많다. 아직도&nbsp; 일반 대중들은 한센인의 자식들을 미감아(아직 나병에 걸리지 않은 아이: 즉 언젠가는 나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아이라는 뜻이 내포된 용어임)라 하며 그들을 격리시켜 주기를 아우성친다. 공적 기관에 의해서 격리되지 않으면 일반 주민들이 나서서 자기 아이들 중요하다고 하면서 한센병력자의 아이를 내놓고 격리시키려고 나선다. </p><p>이런 멸시와 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 사회의 주도적인 세력들은 가만히 그것을 즐기고 있었을까? 왜 국가나 정부나 언론, 의사들까지, 모두 나병이 나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성도 없으며, 재발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p><p>&nbsp;<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3630.jpg" width="500" height="284.54545454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5.egloos.com/pds/200707/18/48/e0048948_09073630.jpg');" /></div>&nbsp;▲충청북도 청원군에 자리잡은 한센병력자 정착마을인 청원농원의 모습&nbsp; </p><p><br>병에 걸렸다는 것만 해도 억울하고 슬픈 일인데 병에 걸려 나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무차별한 폭력과 차별은 반인륜적 범죄며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이며 천인공노할 해악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체부자유아를 위하여 시설이 제대로 안되었다든지, 휠체어 타는 사람을 위해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당연히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기본 인권에 대한 존중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센병 전력자들에게는 그런 무차별한 폭력과 멸시가 주어지는 지에 대해 왜 왜 사회의 기득권층은 모두들 방관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 본질을 밝혀야 한다.</p><p>일반 대중들에 의한 인간에 대한 멸시와 무차별한 폭력의 원인이 그들에게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질 자체가 악마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악한 측면이 있는 반면 어려운 사람에게 동정적이기도 한 선한 측면도 있는데 인간을 악하고 악마적인 것으로 쉽게 규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반 대중의 한센인이라는 인간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그들의 무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지는 일종의 무한대의 공포를 야기시킨다. 문둥이란 병이 접촉만 하면 쉽게 감염될 수 있다는 그 무지는 문둥이에 대한 무한한 공포를 만들어내고 그 무한한 공포는 악마를 거부하듯이 거부하게 만들며 악마를 퇴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려지듯이 문둥이를 퇴치하고 가까이 두지 말아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 버린다.</p><p>그렇다면 일반 대중들로 하여금 한센병에 대해 무지토록 방기한 자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한센병이 1) 결코 쉽게 전염되지 않으며, 2) 나으면 재발하지 않고, 3) 반드시 낳는 병이라는 3가지의 간단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자들이다. 이것을 제일 먼저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의사들이었다. 동시에 보건 복지와 관련하여 한센병에 관한 일을 하여온 관료들이었다. 그리고 한센병력자들을 도우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목사와 종교인들이었다.</p><p>목사와 종교인들은 한센인들에 선교를 하면서 한센병이 3가지 사항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한센인들에게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믿으라는 설교를 열심히 했는지는 몰라도, 세상에다 대고 한센병의 3가지 진실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 일반 대중에게 한센병의 3가지 진실을 전국 방방곡곡에 알리므로써 한센병에 대한 무지로 인한 공포로부터 일반대중을 구해주지 않은 것이었다. </p><p>보건 복지부의 관료들도 마찬가지었다. 도대체 보건 복지 정책을 대한민국이 펴온지가 몇십년인데 그 동안 한센병의 3가지 진실에 대해 전 국민의 대다수가 한센병의 3가지 진실의 반대의 것을 당연한 그들의 지식으로 알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한센병력자들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직무유기는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는다. 한센병의 3가지 진실을 알리는 것은 독재시절의 민주화 운동도 아니기에 숨기며 덮어둘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스스로 한센병의 3가지 진실을 알리며 국민들로부터 한센병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데 있어서 직무유기를 하였던 것일까?</p><p>그리고 의사들이 있다. 그들은 목사들과 관료들보다도 한센병의 3가지 진실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한센병의 진실을 알리는 것보다 한센병 환자들을 더욱 차별받게 만들고 차별을 한 장본인들이었다. 의사와 환자에게 군림하듯이 그들은 한센병이 낫지 않고 전염이 되고 재발이 된다는 공포를 심어야만이 지배자로서 군림할 수 있다는 욕심의 노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의사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대다수의 의사들이 한센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에 앞장서거나 한센인들이 받아왔던 무차별한 폭력과 멸시에 무관심하게 지냈다. </p><p>그리고 언론인들이 있다. 그들은 조금만 조사해보고 자신들이 찾으려는 사건의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의 반만 노력해도 한센병의 3가지 진실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한센병의 3가지 진실에는 침묵하고 한센병력자들이 역사를 통해 당한 수많은 수모와 살해위협, 생존권 침해를 입는 사건에 대해 그들은 한센병력자들을 두 번 죽이는데 앞장을 서왔다. </p><p>왜? 무엇이 정치권력과 의사, 목사, 언론인 집단 모두들이 종합해서 한센병의 세가지 진실에 침묵함으로써 대중의 공포를 조장하고, 그로 인하여 대중들로부터 한센병력자들을 멸시하고 조롱하며, 폭력까지 행사하는 것을 마치 영웅이나 되는 양 자랑하도록 만들 어 놓았을까? 이 질문을 하면 그들은 하나 같이 대답한다. 자신은 한센병의 3가지 진실을 몰랐다고. 오히려 반대로 문둥병은 접촉으로 쉽게 전염되기에 문둥이라면 도망치듯이 피해야 하며, 문둥이는 나아도 또 재발하기에 문둥이라는 데서 벗어날 수가 없기에 한번 문둥병에 걸린 이상 항상 문둥이이며, 그의 자식들도 언젠가는 문둥병에 걸릴 수 있는 미감아이므로 멀리해야 한다라고만 알고 있었다고 변명해댈 것이다.</p><p>그렇다면 우리는 알고 있었어도 몰랐다고 구차하게 변명을 해대는 그 근본 이유부터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쩌면 그들이 한센인들로 인하야 누리고 있었고 군림할 수 있었던 그 차별적 지위와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인간으로서의 더러운 탐욕에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탐욕은 진실보다도 살아가는데 있어서 더 우선하는 법이다. 그런 탐욕의 잘못된 역사가 이 때까지의 인간의 역사였는지 모른다. 그런 잘못된 탐욕의 역사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되지 못하도록 만들었기에 우리는 진실을 찾을 절대적 필요가 있는 것이다.</p><p>그리하여 우리나라에 있어서 한센병으로 인해서 생긴, 그리하여 한센인들이 겪어야 했던 멸시와 조롱과 무차별한 폭력을 당한 역사를 찾아서 그 진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그 진실을 밝히고 우리는 그 고통의 역사 속에서도 지금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한센인들에게 찬탄과 격려와 반성의 소리를 보내야 한다. </p><p>한센병의 3가지 진실부터 확실하게 알아두자.</p><p>1) 한센병은 반드시 낳는다. 그것도 쉽게 낫는다.<br>2) 한번 나은 한센병은 재발하지 않는다.<br>3) 한센병은 쉽게 전염되지 않는다. <br>&nbsp;<br>&nbsp; <br>2005/02/11 [17:32] ⓒ브레이크뉴스&nbsp; <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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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세상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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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Jul 2007 12:16:4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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