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xml-stylesheet href="http://rss.egloos.com/style/blog.xsl" type="text/xsl" media="screen"?>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channel>
	<title>WALLFLOWER</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link>
	<description>수줍은 이들을 위한 잡담
taekgwang@gmail.com</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18 Nov 2009 07:51:50 GMT</pubDate>
	<generator>Egloos</generator>
	<image>
		<title>WALLFLOWER</title>
		<url>http://pds13.egloos.com/logo/200907/01/87/a0009187.jpg</url>
		<link>http://wallflower.egloos.com</link>
		<width>80</width>
		<height>110</height>
		<description>수줍은 이들을 위한 잡담
taekgwang@gmail.com</description>
	</image>
  	<item>
		<title><![CDATA[ 11월 인디포럼 월례비행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9210</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9210</guid>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18/87/a0009187_4b032d8a8bd3a.jpg" width="500" height="1363.6363636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18/87/a0009187_4b032d8a8bd3a.jpg');" /></div>			 ]]> 
		</description>
		<category>알림</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9210#comments</comments>
		<pubDate>Tue, 17 Nov 2009 23:11:14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김연아가 미국보다 더 좋은 까닭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8926</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8926</guid>
		<description>
			<![CDATA[ 
  김연아가 쇼트에서 최고 점수를 갱신할 때, 한국의 9시 뉴스는 김연아의 경기(정확하게 말하면 경기이지 연기가 아니다)를 중계하는 미국 아나운서의 멘트를 번역해서 보도했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유럽에서 동일한 경기를 펼칠 때는 없었던 일이다. 여기에 빠지지 않고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하는 김연아'라는 전형적 수사가 되풀이해서 등장한다. 모든 것은 이렇게 틀지워져(framing) 있는 것이다. 이 외설적 장면에서 우리는 김연아 숭배를 만들어내는 요소 중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대한의 딸' 김연아는 영어도 잘하고 피겨스케이팅도 잘한다(여기에서 돈도 잘 번다는 평가는 아직 현실화하지 않는다). 불굴의 의지로 김연아는 세계무대를 제패했다는 것인데, 이 제패의 위업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미국인의 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원더걸스처럼, 김연아는 다른 어느 곳이 아니라 바로 미국에서 성공해야하는 것이다. <br />
<br />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미국을 김연아보다 더 사랑하는 건 아니다. 한국인들은 미국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미국의 팔루스가 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팔루스는 타자의 욕망을 나타내는 기표이다. 이 욕망의 기표는 결핍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미국의 팔루스가 되고자 한다는 건 미국의 결핍을 충족시킴으로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표현은 의미화를 전제한다. '나는 너를 원해'라는 이 발화에서 중요한 건 '너'라는 기표이다. 쉽게 말하면, 한국인은 미국의 '너'로 의미화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인들은 김연아에 대한 동일시를 통해 자신들이 바로 미국이 욕망하는 기표이기를 염원한다고 볼 수 있다. 이건 우리 모두 미국인이 되자는 '대만 식 친미주의'와 다른 노선이다. 이미 이런 전조들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중 <다이 어나더 데이>가 개봉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이 정확하게 재현되지 않았다고 불매운동을 벌였던 사건은 앞으로 펼쳐질 이런 욕망의 구조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징후였다고 할 수 있다.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17/87/a0009187_4b020c72e44ca.jpg" width="500" height="34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17/87/a0009187_4b020c72e44ca.jpg');" /></div><br/><br/>tag : <a href="/tag/김연아" rel="tag">김연아</a>,&nbsp;<a href="/tag/미국" rel="tag">미국</a>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ategory>김연아</category>
		<category>미국</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8926#comments</comments>
		<pubDate>Tue, 17 Nov 2009 02:18:41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혀수술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8916</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8916</guid>
		<description>
			<![CDATA[ 
  어제 수업시간에 한 미국 학생에게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의식을 설명하면서, 영어교육을 예로 들었는데, They even have their childern to get tongue-tie surgery라고 해야할 것을 They even cut the low part of their kids' tongue이라고 해버렸다. 졸지에 부모가 아이의 혓바닥을 자르는 호러영화의 장면을 연상시키게 만든 것. 무의식 중에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다보면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난다. 귀국해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영어식으로 한국어를 표현해서 곤혹스러웠는데, 요즘은 반대의 경우가 나타나서 역시 곤혹스럽다. 이제 좀 한국 생활에 적응해가는 중이라는 말. 한국인들은 영어를 꼭 미국사람처럼 말해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영어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동화(assimilation)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았던 Keith같은 친구도 가끔 모국어인 영어를 한국어처럼 말해서 나를 웃기곤 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냐,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냐,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특정 나라에 오래 살다보면 그 나라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제스처나 표정 같은 것이 그 문화적 환경에 맞게 변화하는 게 당연지사이다. <br />
<br />
여하튼, 한때 한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혀수술' 에피소드는 유별난 '강남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조롱하기 위해 종종 등장했지만, 알고 보면 혀 짧은 소리를 교정하기 위해 미국에서 시술 중인 '절제수술'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말을 못한다는 건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을 위해서 선천적으로 짧은 혀를 절제해서 발음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시술이다. 이 시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글도 있다. <br />
<br />
<a title="" href="http://members.tripod.com/~Caroline_Bowen/tonguetie.html" target="_blank">tongue-tie surgery</a><br />
<br />
말하자면 의학적으로 이런 절제시술은 미국에서 공인 받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고, 이런 까닭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한국 중산층의 관심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인도 하는 것이니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던 셈이다. 혀절제시술이 '조기영어교육열풍'을 상징하는 하나의 원장면처럼 보이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8916#comments</comments>
		<pubDate>Tue, 17 Nov 2009 01:57:07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억지와 엽기, 그러나 재미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8677</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8677</guid>
		<description>
			<![CDATA[ 
  <embed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src=http://afbbs.afreeca.com:8080/player.swf?uid=aiaiai&nTitleNo=20221 width=504 height=448></embed>			 ]]> 
		</description>
		<category>이마고</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8677#comments</comments>
		<pubDate>Mon, 16 Nov 2009 06:51:26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냉소주의 시대의 인문학자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8006</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8006</guid>
		<description>
			<![CDATA[ 
  <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13/87/a0009187_4afd6eb4896bc.jpg" width="289" height="43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13/87/a0009187_4afd6eb4896bc.jpg');" align="left" />지식인의 종언이라는 말은 꽤 오래전부터 운위되었지만,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서구에서 출현했던 그 근대적 지식인의 종언이라는 문제의식과 사뭇 다른 것이다. 한국에서 지식인의 종언은 인터넷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인터넷 글쓰기의 출현은 '글 쓰는 존재'로서 권위를 부여받았던 지식인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 측면이 강하다.<br />
<br />
조금 복잡하게 말하자면, 지금 '생각하는 주체들'은 인터넷이라는 사유기계를 통해 사유하는 인터넷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세대, 특히 사회과학적 개념훈련을 통해 세계관을 획득했던 386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대이다. 인터넷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책을 찾아보는 세대이지 책을 통해 인터넷에 들어오는 세대가 아닌 것이다. 책을 통해 공부하고 관념세계를 만든 다음 인터넷에서 글을 쓰는 세대와 다른 세계관을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가 있다. 말하자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학습하고 자기의 세계관을 정립하는, 완전히 다른 세대들이 나타난 셈이다.<br />
<br />
이런 문제로 인해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 인터넷 세대와 이전 세대가 글을 독해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사유가 다르니 당연히 독해의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인터넷 세대는 문어체의 글을 잘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충돌들이 일어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 때문에 오히려 사유의 계기들은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런 차이를 인터넷 세대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 같다.<br />
<br />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사전지식체계에 글의 내용이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택할 수 있는 방식은 사전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다중매체는 과거에 불가능했던 이런 쌍방향 소통에 유리한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터넷 때문에 읽고 쓰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었다는 주장은 적절한 현상 진단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문제는 독해 방식의 차이라기보다, 글에 대한 냉소적 태도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더 흔한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냉소는 다분히 글이나 그 글을 쓰는 지식인에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까지도 포괄하는 경향성을 드러낸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생존의 공포를 통해 체화된 측면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br />
<br />
내용이야 어떠하든, 절차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정치는 좌·우파의 권력교체를 경험했다. 그 이전까지 민주화운동세력의 기본적인 정치의제는 바로 정권을 평화롭게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화로운 정권교체 이후 어떤 내용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지향이 무엇인가, 이념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들은 고스란히 과거의 습속을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과 다른 괴리들을 노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들, 특히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세대의 대중들은 정치인과 지식인 전반에 대한 냉소주의를 체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현실사회주의를 체험한 동유럽인들이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냉소주의를 한국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들은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너무 많은 진실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되어버렸다.<br />
<br />
이런 상황은 정치인과 지식인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이들로부터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모순적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냉소주의가 만들어낸 현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대중들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존재할 수 없지만, 존재하고 있는 이상한 공간이다. 공간만이 남아 있고,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마땅한 이 모순의 조건에서 지식인의 글쓰기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결국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런 앎을 넘어선 앎, 또는 계몽에 대한 재계몽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21세기 한국에서 인문학자가 할 일이 있다면 이런 냉소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고군분투일 것이다.<br />
<br />
----------------<br />
<국제신문>에 게재되었음.<br/><br/>tag : <a href="/tag/냉소주의" rel="tag">냉소주의</a>,&nbsp;<a href="/tag/인문학" rel="tag">인문학</a>,&nbsp;<a href="/tag/인문학자" rel="tag">인문학자</a>			 ]]> 
		</description>
		<category>세상읽기</category>
		<category>냉소주의</category>
		<category>인문학</category>
		<category>인문학자</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8006#comments</comments>
		<pubDate>Fri, 13 Nov 2009 14:31:08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다시 미수다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7793</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7793</guid>
		<description>
			<![CDATA[ 
  이번에 발생한 '루저의 난'은 특정인에 대한 분노보다도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이 드러내고 있는 어떤 가치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는 것이 타당하다. 이 가치관은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에 이 가치관은 '모든 사람은 솔직하게 자기 자신의 쾌락을 표현할 수 있다'는 공리주의적 원칙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벤담은 양적인 측면에서 공리주의를 정의하는데, 그의 인간관은 '쾌락원칙'에 충실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것을 인간의 '자연성'으로 보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회에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회는 개인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행복한 개인이 많으면, 그 사회도 최대로 행복하다는 논리다. 이런 공리주의적 멘털리티가 '쾌락의 평등주의'를 만들어낸다. 벤담은 존 스튜어트 밀과 달리, 쾌락을 오직 계량적인 것으로 봤는데, 이런 측면은 상당히 한국적 상황을 설명하기에 유용한 잣대를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은 정확하게 벤담 식 공리주의를 내포하고 있고, 이것이야말로 한국 우파의 '근대화' 담론인 셈이다. <br />
<br />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는 '어떤' 공리주의를 채택하는가에 따라 나뉘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대체로 보수라고 불리는 세력은 벤담적인 공리주의를 추종했고, 진보라고 불리는 세력은 밀적인 공리주의를 신봉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를 수정해서 인간이 단순하게 동물적인 쾌락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고상한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런 맥락에서 벤담이 법을 통한 제재를 강조한 것과 달리, 밀은 개인의 양심에 더 방점을 찍는 것이다. 선한 행위의 기준을 쾌락에 둔다는 측면에서 벤담과 밀은 동일하지만, 그 쾌락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방법으로 그 쾌락의 운용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에 따라서 입장이 갈리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교통정리만으로도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루어진 '민주화'의 과정이라는 것이 결국 공리주의자들끼리 누구를 우위에 둘 것인가를 놓고 벌인 싸움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실제로 김진석이 주장하는 '더 많은 자유주의'는 이런 맥락을 직관적으로 파악한 뒤에 나온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br />
<br />
여하튼, 미수다의 루저 발언에 반발하는 태도는 이런 공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서로 다른 공리주의적 가치관의 대립이야말로 미수다가 프레임화하고 있는 것이다. 키 작은 남자와 데이트할 수 없고 결혼은 사랑이라기보다 조건이라고 발언하는 '여대생들'과 대조적인 캐릭터로서 '책이 너무 많아서 백팩에 다 담을 수 없다'는 '서울대생'을 설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이 프로그램이 재현하고 있는 것은 정확하게 '벤담 vs. 밀'이라는 세속적 담론의 구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측면에서 미수다는 외설적인 방식으로 '진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짐작하건대, 미수다의 제작진이 처음에 의도했던 건 속류적 벤담 식 공리주의에 대한 암시적 비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이 '미수다'인 것을 보면 주인공은 여대생들이라기보다 '미녀들'이었고, 이 미녀들이 설파한 내용은 벤담보다도 밀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해프닝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자면 이 정도일 것이다. 분위기는 험악하지만, 이 또한 우리에게 하나의 의미를 전해주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br/><br/>tag : <a href="/tag/미수다" rel="tag">미수다</a>,&nbsp;<a href="/tag/루저" rel="tag">루저</a>,&nbsp;<a href="/tag/벤담" rel="tag">벤담</a>,&nbsp;<a href="/tag/밀" rel="tag">밀</a>,&nbsp;<a href="/tag/공리주의" rel="tag">공리주의</a>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ategory>미수다</category>
		<category>루저</category>
		<category>벤담</category>
		<category>밀</category>
		<category>공리주의</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7793#comments</comments>
		<pubDate>Fri, 13 Nov 2009 01:34:36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미수다 해프닝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7208</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7208</guid>
		<description>
			<![CDATA[ 
  <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gunwJ2Eq83Q&color1=0xb1b1b1&color2=0xcfcfcf&feature=player_embedded&fs=1"></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gunwJ2Eq83Q&color1=0xb1b1b1&color2=0xcfcfcf&feature=player_embedded&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br />
제작진이 문제의 장면을 편집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문제의 장면을 보면 충분히 편집을 할 수 있었지만, 제작진은 그대로 내보냈다. 그리고 방송을 보면 이도경 혼자 키 작은 남자가 싫다는 말을 한 게 아닌데, '루저'라는 데피니션을 줬다는 이유로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이 해프닝의 책임은 미수다 제작진에게 있다. 거기에 불려나가서 인형 노릇이나 한 '여대생들'도 잘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시청자의 권리로서 이 프로그램에 문제를 느낀다면 정작 분노해야할 대상은 이런 프로그램을 '글로벌 토크'라는 명목으로 지속시키고 있는 케이비에스일 거다. <br />
<br />
도덕적 판단과 별도로, 이번 미수다의 에피소드가 보여준 건 나름대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진실은 '외계인 신화'처럼 날조된 것이다. 누구도 외계인을 본 적이 없지만, 그 존재하지 않는 외계인에 대한 숱한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외계인의 현실성을 확증시킨다. 서로 관련 없는 실마리들이 판타지에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다. 이번 에피소드에 나온 여대생들은 한국 여대생의 평균의식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극단을 '연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공연하고 있는 그 극단적 물질주의는 '골빈 여자'라는 남성적 재현체계가 만들어낸 판타지를 돌연 현실화한다. 이 모든 것은 정말 너무도 '전형적'이다. 사실 내가 어처구니 없어 하는 건 이도경도 아니고, 미수다도 아니다. 이렇게 너무도 전형적인 현실성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가는, 헛똑똑한 한국 사회가 정말 코미디 같아서 헛웃음이 날 뿐이다. <br/><br/>tag : <a href="/tag/이도경" rel="tag">이도경</a>,&nbsp;<a href="/tag/미수다" rel="tag">미수다</a>,&nbsp;<a href="/tag/여대생" rel="tag">여대생</a>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ategory>이도경</category>
		<category>미수다</category>
		<category>여대생</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7208#comments</comments>
		<pubDate>Wed, 11 Nov 2009 08:03:02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Nine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6622</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6622</guid>
		<description>
			<![CDATA[ 
  <object width="560" height="340"><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1hjfRzBi6nM&hl=ko&fs=1&"></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1hjfRzBi6nM&hl=ko&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560" height="340"></embed></object>			 ]]> 
		</description>
		<category>이마고</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6622#comments</comments>
		<pubDate>Mon, 09 Nov 2009 14:42:41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히스테리 주체에 대한 보고서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6400</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6400</guid>
		<description>
			<![CDATA[ 
  &lt;<a class="dkli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4037" target="_blank">파주</a>&gt;는 이상한 영화이다. 겉으로 보기에 시대극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감추고 있다. 현실의 의문을 풀기 위해 과거가 호명 당하지만, 그 <a class="dkli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4037" target="_blank">진실</a>은 극중 인물 누구에게도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관객만이 진실을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진실을 관객은 주인공들에게 알려줄 수가 없다. 겉으로 보기에 이 영화는 386세대의 자기반성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의미는 중식의 관점에서 가능할 뿐이다. 시종일관 영화는 중식을 따라가지만, 극적 반전의 주도권은 은모에게 있다. 중식과 은모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이 영화가 왜 은모의 귀환으로부터 시작하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br />
<br />
그래서 이 영화가 내세우는 형부와 처제의 사랑이라는 '금기'는 능청스러운 위장일 뿐이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하는 것은 히스테리 주체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lt;파주&gt;가 끝까지 보여주려고 하는 건 흥미롭게도 금기야말로 욕망의 금지에 붙여진 다른 <a class="dkli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4037" target="_blank">이름</a>이라는 사실이다. 은모는 사랑보다도 진실에 더 관심을 가진 히스테리증자이다. 히스테리증자는 <a class="dkli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4037" target="_blank">정신병</a>과 다른 방식으로 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br />
<br />
<table style="BORDER-RIGHT: #ccc 1px solid; BORDER-TOP: #ccc 1px solid; MARGIN: 5px auto 10px; BORDER-LEFT: #ccc 1px solid; BORDER-BOTTOM: #ccc 1px solid"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center"><tbody><tr><td width="500"><img class="resize3" height="332" alt="" hspace="0" src="http://pic.pressian.com/images/2009/11/09/60091109094037.JPG" width="500" border="1" name="img_resize"></td></tr><tr><td style="FONT-SIZE: 11px; COLOR: #777; 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 width="500">▲ &lt;파주&gt;</td></tr></tbody></table><br />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타자의 욕망을 의심한다는 점에서 히스테리증자는, 망설임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행하는 도착증자보다 기성의 질서에 대해 훨씬 전복적이다. 영화에서 은모는 이런 존재로 그려진다. 은모가 다시 파주를 떠날 때, 친구의 아버지가 은모를 보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은모는 외설적이다. 이 외설적 욕망은 종교적 신념도 정치적 이해관계도 모두 넘어서 있다. 은모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진실이기 때문에, 그의 욕망은 합의된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지게 만든다. 이런 관점에서 &lt;파주&gt;는 역사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무의식에 대한 영화라고 보는 게 옳다.<br />
<br />
물론 그렇다고 해서 &lt;파주&gt;가 은모라는 히스테리증자의 일대기를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아니다. 이 영화의 시선은 어디까지나 '파주'라는 상징공간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법칙을 넘나드는 히스테리 주체의 욕망을 전제한다. 어떤 고정점을 찾을 수 없이 떠도는 그 욕망은 모호하고 난해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영화 &lt;파주&gt;의 미덕은 빛을 발한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a class="dkli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4037" target="_blank">친절</a>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관객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애매한' 주체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기 때문이다.<br />
<br />
<table style="BORDER-RIGHT: #ccc 1px solid; BORDER-TOP: #ccc 1px solid; MARGIN: 5px auto 10px; BORDER-LEFT: #ccc 1px solid; BORDER-BOTTOM: #ccc 1px solid"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center"><tbody><tr><td width="500"><img class="resize3" height="332" alt="" hspace="0" src="http://pic.pressian.com/images/2009/11/09/60091109094037(0).JPG" width="500" border="1" name="img_resize"></td></tr><tr><td style="FONT-SIZE: 11px; COLOR: #777; 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 width="500">▲ &lt;파주&gt;</td></tr></tbody></table><br />
영화의 제목이 파주라는 사실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파주는 무엇인가? 서울 근교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a class="dkli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4037" target="_blank">경기</a>도에서 가장 개발이 <a class="dkli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4037" target="_blank">성공</a>적으로 진행된 곳으로 유명하다. 파주의 '성공'을 모범으로 삼아 다른 수도권 도시들이 앞 다투어 비슷한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범상하다고 보기 어렵다. &lt;파주&gt;가 보여주는 철거와 개발 장면은 너무도 전형적인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방식을 재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br />
<br />
말 그대로 이런 '현실'은 배경에 불과한 것이다. 은모가 철거민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중식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물을 때, 영화는 비로소 정체를 드러낸다. 처음에 멋있어서 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는 중식의 대답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중식 또한 히스테리화한 <a class="dkli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4037" target="_blank">강박증</a>자라는 사실이 여기에서 밝혀지는 것이다. 두 히스테리 주체의 사랑. 그리고 이들은 조금씩 상대방을 오해하면서 그 사랑의 성취를 지연시킨다. 중식 또한 히스테리 주체인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은모에게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은모나 중식이 생각하는 진실은 오해의 산물이다. 거짓말하는 <a class="dklink"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4037" target="_blank">진리</a>, 이것이 &lt;파주&gt;의 플롯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구조인 것이자 바로 무의식의 발화논리인 것이다.<br />
<br />
은모와 중식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 둘이 원하는 건 사랑의 충족이라기보다, 그것을 지연시키면서 얻는 즐거움이다. 은모는 중식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그토록 갈구했던 사랑을 포기하고 도주한다. 중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록 오해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진실을 이야기하면 은모의 사랑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끝내 은모에게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우연과 오해에서 출발했지만, 그 계기들은 둘의 운명을 미끄러지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자 대의이다. 중식이 내세우는 대의는 허무하지만, 윤리적이다. 보험금을 포기하고 파주를 떠나는 은모의 행동도 고급 승용차를 탄 나이트클럽 '보스'의 포획을 벗어나는 결단이다. 파주로 들어올 때 같은 택시를 탔던 둘은 이제 각자 다른 길을 갈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그 무엇도 아닌 지리멸렬한 히스테리 주체이다.<!--/DCM_BODY--> <br />
<br />
------------<br />
&lt;프레시안&gt;에 게재되었음.<br/><br/>tag : <a href="/tag/파주" rel="tag">파주</a>,&nbsp;<a href="/tag/욕망" rel="tag">욕망</a>,&nbsp;<a href="/tag/박찬옥" rel="tag">박찬옥</a>			 ]]> 
		</description>
		<category>영화읽기</category>
		<category>파주</category>
		<category>욕망</category>
		<category>박찬옥</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6400#comments</comments>
		<pubDate>Mon, 09 Nov 2009 01:32:57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인상파 아틀리에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5810</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5810</guid>
		<description>
			<![CDATA[ 
  이번 주부터 네이버에 '인상파 아틀리에'를 연재합니다. 그 첫회로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이 올라왔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매주 목요일에 업데이트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br />
<br />
<a title="" href="http://navercast.naver.com/art/impression/1417" target="_blank">인상파의 아틀리에</a><br />
<br />
<br/><br/>tag : <a href="/tag/인상파" rel="tag">인상파</a>			 ]]> 
		</description>
		<category>알림</category>
		<category>인상파</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5810#comments</comments>
		<pubDate>Fri, 06 Nov 2009 14:01:42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