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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WALLFLOW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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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수줍은 이들을 위한 잡담
taekgwang@gmail.com</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06 Nov 2009 14:12:2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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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WALLFLOW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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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수줍은 이들을 위한 잡담
taekgwang@gmail.com</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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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인상파 아틀리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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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이번 주부터 네이버에 '인상파 아틀리에'를 연재합니다. 그 첫회로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이 올라왔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매주 목요일에 업데이트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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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itle="" href="http://navercast.naver.com/art/impression/1417" target="_blank">인상파의 아틀리에</a><br />
<br />
<br/><br/>tag : <a href="/tag/인상파" rel="tag">인상파</a>			 ]]> 
		</description>
		<category>알림</category>
		<category>인상파</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5810#comments</comments>
		<pubDate>Fri, 06 Nov 2009 14:01:42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녹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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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며칠 동안 원고에 시달려서 죽을 맛이다. 하지만 여전히 쓸 것들이 잔뜩 아우성치고 있다. 삶이 녹초다. 겁나서 놀지도 못하겠다. 놀고 나면 해야할 일들이 더 쌓이니 말이다. 이럴 때는 슬픈 노래를. Strange Fruit. 목 매달린 흑인들의 슬픔이지만, 편견과 그 편견이 만들어낸 폭력이 어떻게 삶을 strange하게 만드는지를 느끼게 한다. 이런 걸 들으면 다시 불의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서 한동안 피곤을 잊을 수 있다. <br />
<br />
<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h4ZyuULy9zs&hl=ko&fs=1&"></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h4ZyuULy9zs&hl=ko&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br />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5252#comments</comments>
		<pubDate>Wed, 04 Nov 2009 15:22:47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Red Siren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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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21/87/a0009187_4adf04499862a.jpg" width="500" height="369.66126656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21/87/a0009187_4adf04499862a.jpg');" /></div><br /><br />꿋꿋이 오늘을 직시하는 대중음악의 연대 Music Revolution 2009 <red Siren><br />
-11월 7일(토) 바드(Bard), 사이, 안치환, 오지은, 한음파 상상마당에서 3시간 릴레이 공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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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시대이다. 비록 주가가 다시 오르고 경기가 살아나고 있지만 불합리한 정치와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와 파괴를 목전에 둔 이 땅의 자연은 양식 있는 모두를 근심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우려스러운 상황에서는 섣불리 저항이나 참여를 말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br />
<br />
그러나 예술은 언제나 시대와 삶을 반영하고 해석할 뿐만 아니라 당대의 문제를 예술 안으로 빠르고 깊이 있게 끌어당김으로써 현실과 소통해왔다. 한국의 많은 예술들이 그러했고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음악은 특유의 대중성을 바탕으로 현실의 다양한 모순을 노래해왔다. 대표적으로는 한국의 독특한 음악문화인 민중가요가 그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강산에, 넥스트(N.EX.T), 블랙홀(Black Hole) 등의 록 뮤지션들이 음악을 통한 사회적 발언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윈디 시티(Windy City),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같은 인디 씬의 뮤지션들이 이같은 행보를 함께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br />
<br />
지난 해에 올해 다시 열리는 Music Revolution 2009 <red Siren>콘서트는 바로 이같은 음악의 사회적 역할과 현실에 대한 대응이라는 가치에 주목하는 독특한 콘서트이다. Red Siren 콘서트는 그동안 민중가요와 대중가요 안팎에서 시도되었던 현실 참여의 맥을 이으면서도 단지 비판과 저항이라는 단선적 코드에 머무르지 않으려 하는 한층 발전된 시도이다. 그것은 이 콘서트가 지금 현실에 대한 극복의지를 표출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음악을 통한 사회적 성찰과 대응이라는 필연적으로 신중하고 진지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을 함께 자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콘서트는 명확한 사회적 이슈를 가진 공연이나 음악처럼 현실에 대한 극복의지가 지나치게 슬로건화 되거나 양식화되고 편협해지는 것을 경계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의지를 다양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또한 이를 청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음악적 완성도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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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Red Siren' 콘서트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뮤지션들의 의견과 변화를 바라는 의지를 자유롭게 표현할 뿐 어떠한 통일된 주장과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정해진 답을 논술하는 음악이 아니라 개별 뮤지션의 음악을 통해 현실을 드러내고 현실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며 궁극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이 콘서트의 취지인 것이다. <br />
<br />
Red Siren 콘서트는 무엇보다 명확한 음악적 자기 색깔과 사회적 안목을 두루 갖춘 음악인들을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콘서트이다. 바드(Bard), 사이, 안치환, 오지은, 한음파 이 다섯 뮤지션은 비록 활동의 편차와 장르의 차이는 있지만 그동안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여왔을 뿐만 아니라 음악 속에 독자적인 자기 철학을 담아 보여준 한국의 대표적 음악창작자들이기 때문이다. <br />
<br />
록과 아이리쉬 포크, 포크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며 평단과 팬들의 호평을 함께 받아 온 이들은 오는 11월 7일 토요일 저녁 7시 홍대 라이브 클럽 상상마당에서 모두 7곡 이상의 많은 곡들을 선보이며 평소와는 다른 사회적 자기 발언을 전면화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평소 자신들이 불렀던 대표적인 레파토리 뿐만 아니라 최근의 현실을 담은 창작곡을 새롭게 발표하고 ‘불나비’, ‘Turn Your Light Down Low’ 처럼 진보적인 지향을 담은 곡들을 함께 연주함으로써 주제에 충실하고 음악적으로도 더욱 풍성한 콘서트를 만들 계획이다. <br />
<br />
공연의 기획과 연출을 맡은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은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인들이 밀도 높은 음악언어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진행함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의 당대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의미가 있다”며 “수준 높은 음악인들이 의미있는 기존 히트 곡과 신곡을 두루 선보이는 자리라 3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한 공연 내내 이어지는 VJing은 공연의 참신한 재미를 더해줄 것이라고 한다. 색다른 음악 공연을 원하는 호기심 많은 관객이나 진지한 음악 공연을 원하는 지성파 관객, 그리고 재미있는 음악 공연을 원하는 유쾌한 관객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뜨겁고도 감성적인 공연이 기대된다. 예매는 티켓링크와 인터파크에서 진행 중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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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개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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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명 : Music Revolution 2009 <red Siren><br />
*일시 : 2009. 11. 7(토) 19:00~22:00 (180분)<br />
*장소 : 상상마당<br />
*출연 : 바드(Bard), 사이, 안치환, 오지은, 한음파<br />
*예매 : 티켓링크(http://www.ticketlink.co.kr), 인터파크(http://ticket.interpark.com)<br />
*티켓 가격 : 예매 20,000원 / 현매 25,000원<br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br />
*문의 : 서정민갑(017-290-7663)<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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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의 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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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 희망을 상상하기 위하여<br />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Red Siren 기획연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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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red Siren>공연을 준비할 때만 해도 우리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힘겨워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굳이 시청 앞 광장의 십만 촛불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 국가와 시민 사이에는 그래도 함부로 버려질 수 없는 존엄과 예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감히 존엄과 예의 같은 것을 언급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수개월째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과 함부로 파헤쳐 질 어떤 생명들과 법의 이름으로도 지켜지지 못하는 어떤 이들의 사생활을 두고 어찌 존엄과 예의, 행복과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br />
<br />
이처럼 현실이 예술보다 더 당혹스럽고 해석하기 어려울 때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고발이나 선동같은 조금은 구태의연한 단어들을 떠올리기보다 솔직한 응시와 고백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도 답을 알고 있지 못하고 누구도 쉽게 소리치지 못하는 지금, 우리는 노래로 조금 더 아프고 노래로 조금 더 뜨거워져야 하지 않을런지. 그래서 바드(Bard), 사이, 안치환, 오지은, 한음파 이 다섯 뮤지션의 노래는 무엇보다 오늘을 함께 살아가며 함께 고뇌하는 음악인들의 진솔한 토로이며 또한 따뜻한 위로입니다.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해도 아직 절망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상상할 희망이 남아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없던 길이 사람들의 발길로 열렸듯 이 작고 낮고 느린 노래들이 우리를 한번 더 웃게 만들고 한번 더 설레이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입니다. <br />
<br />
바로 그것이 <red Siren>콘서트의 꿈입니다. 노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기 전에 가장 솔직한 음악인들의 목소리로 오늘을 밀고 나가며 내일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이 소중한 자리, 기꺼이 함께 해주시길.<br />
<br />
*출연진 <br />
<br />
*바드(Bard, http://www.myspace.com/irishbandbard)<br />
프로젝트 밴드 바드는 크로스오버&amp;뉴에이지 밴드로 큰 주목을 받았던 밴드 ‘두번째 달’의 박혜리를 중심으로 활동중인 밴드이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아이리쉬 포크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며 공연장의 규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버스킹을 펼치며 바람처럼 부드럽게 음악을 속삭이고 있다. <br />
<br />
*사이(http://blog.naver.com/be2in)<br />
사이는 홍대 앞에서 활동하다 괴산으로 귀향해 농사를 지으며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슈퍼 백수 뮤지션이다. 자신의 남다른 이력처럼 독특한 그의 노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를 유쾌하게 비틀며 가난하고 생태적인 삶을 선택한 즐거움을 게으르고 평화롭고 신나게 노래하고 있다.<br />
<br />
*오지은(http://www.ji-eun.com/)<br />
첫 앨범 [화]를 내며 스스로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은 수줍음과 절규가 절묘하게 뒤섞인 음악을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감정을 솔직하게 노래하고 있다. 자신의 내면에 담겨진 열정과 불화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그녀는 그 진솔한 매력으로 우리 시대 청춘의 심장을 대변하는 여성뮤지션으로 특히 사랑받고 있다.<br />
<br />
*한음파(http://hanumpa.cyworld.com/)<br />
오랜 경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긴 시간을 거쳐서야 첫 정규 앨범을 내놓은 한음파는 묵직하고 진지한 록 음악으로 몽환과 중독의 사운드를 창출해 내며 한국적 록음악의 또 다른 미궁을 개척했다. 진지한 노랫말과 연주가 돋보이는 이들의 음반은 올해의 한국 록음악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수작이다. <br />
<br />
*안치환(http://www.anchihwan.com/)<br />
안치환은 지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의미 있고 진지한 메시지를 뛰어난 송라이팅으로 담아낸 빼어난 음악창작자이다. 20여 년 동안 한결같이 노래의 참된 가치를 추구해온 그의 진정성은 어떠한 메시지도 귀에 감기는 멜로디로 바꾸어내는 탁월한 송라이팅과 라이브의 파괴력으로 더욱 빛이 난다. <br />
<br/><br/>tag : <a href="/tag/레드사이렌" rel="tag">레드사이렌</a>,&nbsp;<a href="/tag/안치환" rel="tag">안치환</a>,&nbsp;<a href="/tag/오지은" rel="tag">오지은</a>,&nbsp;<a href="/tag/한음파" rel="tag">한음파</a>,&nbsp;<a href="/tag/사이" rel="tag">사이</a>,&nbsp;<a href="/tag/바드" rel="tag">바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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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알림</category>
		<category>레드사이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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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0830#comments</comments>
		<pubDate>Tue, 03 Nov 2009 15:50:00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신종플루 '심각' 단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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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02/87/a0009187_4aeebe01f1051.jpg" width="500" height="31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02/87/a0009187_4aeebe01f1051.jpg');" /></div><br>빨간 불이 켜졌군요. 신종플루, 바이러스보다도 사람이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듯. 이 기회를 틈타서 여행이나 가볼까 궁리 중입니다. 고열에 기침 심하면 무조건 병원으로. 하지만 확진 받아도 타미플루가 모자라서 적절하게 치료를 못 받을까 그게 두렵죠. 지금 상황이 험악한 건 타미플루 부족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된 게 강력한 바이러스 때문이라기보다, 타미플루 생산라인을 한국에 만들겠다고&nbsp;요청한 제약회사의 제안을 무슨 연유인지 정부에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바이러스야 어차피 감염될 수밖에 없는 자연재해인 것이고, 이에 대처하는 방식들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문제는 타미플루 품귀현상이지 애꿎은 신종플루의 감염력이 아닙니다. 다른 플루에 비해 그렇게 독성이 강한 편도 아니라는데, 애먼 바이러스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군요. <br/><br/>tag : <a href="/tag/타미플루" rel="tag">타미플루</a>,&nbsp;<a href="/tag/신종플루" rel="tag">신종플루</a>,&nbsp;<a href="/tag/확진" rel="tag">확진</a>,&nbsp;<a href="/tag/감염" rel="tag">감염</a>,&nbsp;<a href="/tag/바이러스" rel="tag">바이러스</a>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ategory>타미플루</category>
		<category>신종플루</category>
		<category>확진</category>
		<category>감염</category>
		<category>바이러스</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4542#comments</comments>
		<pubDate>Mon, 02 Nov 2009 11:16:21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인터뷰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449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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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지난 주에 꺄르르님과&nbsp;꽤 오래 인터뷰를 했는데 오늘 일차분이 올라온다고 해서 가보니 벌써 올려놓으셨네요. 많은 얘기들을 나눴는데, 정리한다고 고생을 많이 하셨을 듯. 한번 읽어보세요. 촛불 논쟁 후기 같은 것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군요. <br><br><a href="http://blog.ohmynews.com/specialin/304317" target="_blank">인터뷰 보기</a></p>			 ]]> 
		</description>
		<category>알림</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4492#comments</comments>
		<pubDate>Mon, 02 Nov 2009 07:40:50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헌재스러운, 급진화하지 않은 민주주의의 문제  ]]> </title>
		<link>http://wallflower.egloos.com/1964419</link>
		<guid>http://wallflower.egloos.com/1964419</guid>
		<description>
			<![CDATA[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졌다. 논란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헌재의 판결은 헌법재판소다운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번 헌재의 결정을 권력의 눈치를 본 타협의 산물이라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판결문에 밝혀놓은 ‘의의’를 읽어보면, 반드시 헌재가 정부의 눈치를 보고 이런 판단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헌재는 이번 결정을 두고 “하자 있는 심의 표결절차에 터잡아 이루어진 법률안 가결선포행위가 국회의원인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표결처리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니 한나라당이라고 해서 환호작약할 일이 아니다. <br><br>문제는 헌재의 판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헌재가 설정하는 ‘어떤 민주주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헌재의 결정은 입법기관인 국회의 법률 선포를 사법부가 나서서 무효화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솔직히 드러낸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헌재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일반과 동일시하는 시각을 무의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를 둘러싼 논란을 헌재가 잠재워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다소 과도한 소망충족의 꿈이었다. 헌재의 판결은 절차상 하자는 있지만, 그게 국회의 입법권에 사법부가 간섭할 만큼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절차적 민주주의가 다소 침해되었지만, 그렇다고 국회의 자율성을 심대하게 훼손시킬 만큼은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p></p><p align="justify"><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70" align="center" border="0"><tbody><tr><td width="10">&nbsp;</td><td align="middle"><img alt="" src="http://www.mediaus.co.kr/news/photo/200911/8346_13498_273.jpg" border="1"></td><td width="10">&nbsp;</td></tr><tr><td width="10">&nbsp;</td><td><span style="COLOR: #306f7f">▲ 9월2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가회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 4당이 청구한 ‘미디어법 등 관련 권한쟁의 사건’에 대한 2차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헌법재판소</span></td><td width="10">&nbsp;</td></tr><tr><td colspan="3" height="10">&nbsp;</td></tr></tbody></table></p><p align="justify">나는 이런 헌재의 문제의식에 대해 동의할 수는 없지만,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헌재의 결정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제도에 내재한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서 흥미롭기까지 하다. 마치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가 파시즘의 등장을 ‘절차적’으로 막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 헌재의 결정도 정작 절차를 문제 삼았지만 그 절차를 통해 발생한 결과물에 대해 무기력한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민주주의는 옹호했지만 사회적 정의는 방기하는 이중성을 노정시켰다. 미디어법이나 금융지주법이 근본적으로 반민주적인 법안이 아니라고 헌재는 판단했지만, 정작 문제는 이 법안의 시행으로 인해 발생할 정의롭지 않은 사회적 효과들에 대해 헌재는 모른 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br><br>헌재는 너무도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나머지 이번 미디어법으로 인해 한국의 신문방송시장이 어떤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헌재가 수호하고자하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지탱하는 사회적 정의의 문제가 어떻게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인지를 헤아리지 못했다. 실제로 한나라당이 무리수를 두면서 미디어법을 비롯한 쟁점 법안들을 통과시킨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이고,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다수에게 강요하는 부도덕한 결과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헌재가 아무런 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헌재의 보수성을 지적하고 타협주의를 비판한다고 결판이 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strong><br></strong><br>반복해서 지적하자면, 결국 이 모든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와 무관한 것이 아니고, 이명박 정부 이후 결정적으로 후퇴한 사회 정의의 실상을 직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번 결정으로 인해 헌재는 이권의 아귀다툼이 횡행하는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물론 이것은 민주주의적 제도로서 헌재에 내재하고 있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디어법 처리문제를 ‘절차’의 문제에 한정해서 대립전선을 형성하려고 했던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헌재에게 문제를 떠넘김으로써, 미디어법의 위법성을 직접적으로 알리기보다, 헌재의 판결이 나오기를 기다려야하는 침묵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br><br>여기에서 이들에게 하나의 딜레마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헌재의 결정을 따르자니, 미디어법의 적법성을 인정하는 꼴이고, 그렇게 하지 않자니, 헌재에서 강조하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하는 꼴인 것이다. 결국 이래 저래 나쁜 짓만 골라서 한 한나라당이 이득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말 우리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가? 이 무기력증을 해소하고, 헌재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미디어법에 대한 국민투표밖에 없는 것 같다. 헌재가 못한다면, 헌법의 주인이 나서서 직접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급진화하지 않아서 발생한다는 것을 이번 판결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br><br>-------------------<br>&lt;미디어스&gt;에 게재되었음.</p><br/><br/>tag : <a href="/tag/헌재" rel="tag">헌재</a>,&nbsp;<a href="/tag/판결" rel="tag">판결</a>,&nbsp;<a href="/tag/미디어법" rel="tag">미디어법</a>,&nbsp;<a href="/tag/국회" rel="tag">국회</a>,&nbsp;<a href="/tag/절차" rel="tag">절차</a>,&nbsp;<a href="/tag/헌법재판소" rel="tag">헌법재판소</a>,&nbsp;<a href="/tag/가결선포행위" rel="tag">가결선포행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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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세상읽기</category>
		<category>헌재</category>
		<category>판결</category>
		<category>미디어법</category>
		<category>국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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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2 Nov 2009 03:25:42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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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인문좌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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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나는 <a title="" href="http://100.naver.com/100.nhn?docid=111270" target="_blank">에피쿠로스</a>라기보다 <a title="" href="http://100.naver.com/100.nhn?docid=99392" target="_blank">스토아주의</a>에 가까운 사람인데, 한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나를 에피쿠로스 옹호자로 만들어놓았다. &nbsp;내 포지션이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를 <a title="" href="http://100.naver.com/100.nhn?docid=40490" target="_blank">신좌파</a>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구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규정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굳이 나에게 이름을 붙여줄 거라면 '인문좌파'라고 불러야할 거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문이라는 건 철학이나 문학 같은 대학의 근대학문체계가 만들어낸 제도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이건 오히려 이런 합의된 체계를 회의하는 사유 자체를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한다면,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가치에 대한 끊임없은 의심과 의문을 던지는 행위가 바로 인문적 사유이다. 내가 좌파로 보인다면 그건 이런 인문적 사유 자체가 좌파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특수성 때문일 거다.&nbsp;<div><br />
</div><div>입으로 아무리 좌파적 구호를 떠들면 뭐하겠는가. 궁극적으로 좌파적 기획이라는 건 현실의 질서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역사의 변화에 동참하는 것이고, 그 변화가 좀 더 많은 만인의 자유로 귀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실천의 공간은 과거처럼 녹녹한 게 아니다. 작년 촛불이 보여준 건 이런 좌파적 기획이 예전처럼 '광장'에서 무조건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제임슨의 지적처럼, 이런 좌파적 기획을 실천할 공간이 고작 '인터넷' 같은 문화적 장소 뿐이라면, 좌파적 기획과 실천을 고민하는 방식도 당연히 변화해야한다.&nbsp;</div><div><br />
</div><div>인터넷에서 아무리 좌파연 떠들어도, 자신이 다니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평범한 표정'으로 '선한 눈빛'으로 마음씨 좋은 '친구들'끼리 낄낄거리면서 살아간다면, 무슨 소용인가? 주변에 모인 몇몇 지인들과 술이나 마시면서 나 이외에 모든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좌파적인 행태라고 잘못 판단하는 게 다반사인 상황에서, 내가 제기하는 인문좌파는 이런 조건들을 거부하는 '다른' 생활방식과, 날카로운 사유체계로 무장한 주체들이다. 실제로 좌파와 우파의 차이는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 여부에 달려 있다. 이 과학적 인식은 루카치 식으로 말하면 총체성이겠지만, 내 식으로 말하자면 궁극적으로 습속의 지식을 거부하는 회의주의적 인식을 뜻한다. 인터넷에서 주워 모은 짜깁기 지식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한, 그리고 그 판단이 만들어내는 냉소적 반지성주의를 여전히 혁파하지 못하는 한, 한국에서 좌파적 기획의 실천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nbsp;</div><div><br />
</div><div>인문좌파는 습속의 사고를 거부하고, 모든 합의된 것들을 의심하는 <a title="" href="http://ko.wikipedia.org/wiki/%ED%9A%8C%EC%9D%98%EC%A3%BC%EC%9D%98" target="_blank">회의주의자</a>일 수밖에 없다.&nbsp;그러나 푸코의 경우처럼, 그도 생활인이기 때문에, 그 사유의 급진성을 어정쩡하게 현실에서 구현해야하는 딜레마에 처한다. 이 딜레마로 인해 인문좌파의 기획을 실천하려는 이들은 고통 받겠지만, 중요한 건 그 고통을 이겨낼 스토아주의적 삶의 태도이다. 사실 인문좌파라는 용어법은 일전에 철학자 김영민 선생과 대화 중에 나온 말이었다. &nbsp;김영민 선생 역시 '다르게 살기'의 모범을 보이는 분이고, 나는 여기에서 인문좌파의 가능성을 본다. 사실 다르게 산다는 건 다르게 생각한다는 거고, 다르게 생각한다는 건 다른 꿈을 꾼다는 거다. 인터넷에 모여서 미주알 고주알 '공인들' 뒷담화나 할 시간에 자신의 생각부터 바꾸고, 자신의 욕망부터 재배치해보라. 술도 줄이고, 운동도 해보고, 산책도 가고, 책도 찾아 읽으면서, 남들과 다르게 살기를 실천해보라. 그러면 마냥 '친구'로만 보였던 이들 중에서 '동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물론 섣부른 연대 운운은 하지 말기를. 인문좌파의 주체들은 결코 동일한 실천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 누구도 김영민 선생처럼 살 수 없고, 그 누구도 진중권처럼 살 수 없다. 엄친아니 엄친딸이니 말들도 많지만, 우리는 그 누구의 아들도 그 누구의 딸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고아들이고,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일 뿐이다.&nbsp;</div><br/><br/>tag : <a href="/tag/인문좌파" rel="tag">인문좌파</a>,&nbsp;<a href="/tag/김영민" rel="tag">김영민</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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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단상</category>
		<category>인문좌파</category>
		<category>김영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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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1 Nov 2009 10:02:25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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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푸코, 회의주의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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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오늘 <푸코, 사유와 인간>이 날아와서 읽기 시작했다. 루디네스코의 라캉 전기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푸코에 대한 폴 벤느의 정의는 명쾌하다. '회의주의자, 푸코.' 서문에 나오는 말 중에서 인상 깊은 것.<br />
<br />
<strong>"회의주의자는 이중의 존재다. 사유하는 한 그는 어항 바깥에 있으면서 그 안을 맴도는 금붕어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역시 멀쩡히 살아가야 하기에, 자신 또한 한 마리 금붕어로 어항 속에서 다음번 선거에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자기 선택에 대단한 진리가를 부여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회의주의자는 그가 의심하는 어항 바깥에 있는 한 명의 관찰자인 동시에 금붕어들 가운데 한 마리다. 분열이 있지만, 이는 하나 비극적일 것 없는 분열이다."</strong><br />
<br />
'모든 합의된 것을 의심하라'는 바디우의 정언명령과 함께, 이 말은 내 살갗을 찌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헌사도 멋있다. <br />
<br />
<strong>"이 작은 책의 주인공인 [어항 밖의] 관찰자는 미셸 푸코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 마르고 우아하며 단호했던 인물을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뒤로 물러서게 만들지 못했다. 그의 지적인 검술은 펜을 마치 칼처럼 솜씨 있게 다루었다."</strong><br />
<br />
물론 누구나 먹물을 먹는다고 '펜을 칼처럼 솜씨 있게' 다루진 못한다. 그런 면에서 푸코가 부럽다. <br />
<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0/31/87/a0009187_4aeb029734018.jpg" width="290" height="48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0/31/87/a0009187_4aeb029734018.jpg');" /></div><br/><br/>tag : <a href="/tag/푸코" rel="tag">푸코</a>,&nbsp;<a href="/tag/폴벤느" rel="tag">폴벤느</a>,&nbsp;<a href="/tag/사유와인간" rel="tag">사유와인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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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읽기</category>
		<category>푸코</category>
		<category>폴벤느</category>
		<category>사유와인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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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Oct 2009 15:12:18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명품과 팝아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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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9,0,0,0'  id='NFPlayer24513' width='500' height='408'><param name='movie' value='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0591741375800730503320D7D30B15428276&outKey=V1247f40b13c9bd7a6b196927c5a4de4cbff317a8e4002fb19a286927c5a4de4cbff3' /><embed src='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0591741375800730503320D7D30B15428276&outKey=V1247f40b13c9bd7a6b196927c5a4de4cbff317a8e4002fb19a286927c5a4de4cbff3' wmode='transparent' width='500' height='408' allowScriptAccess='always' name='NFPlayer24513' id='NFPlayer24513' allowFullScreen='true'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object><br />
<br />
엘르엣진 간담회를 통해 명품과 예술작품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명품과 팝아트의 관계가 그 중 하나였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 중 하나일 것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낸시랭이 부지런히 따라하려는 사람이 다카시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고민을 해볼 참이다. 물론 명품 자체가 예술일 수는 없다. 착시현상을 주긴 하지만, 명품은 예술의 본래성을 흉내내는 '상품'에 불과하다. 명품과 예술의 차이는 결정적으로 유일무이함에 있다. 예술은 오직 하나여야하지만, 명품은 그럴 수 없다. 오직 하나로 끝나면 상품으로서 가치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명품이 예술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다카시의 애니메이션처럼 예술작품에 '기생'하는 것 뿐이다. 낸시랭은 이 사실을 모르는 가여운 '예술가'일지도 모르겠다. <br />
<br/><br/>tag : <a href="/tag/낸시랭" rel="tag">낸시랭</a>,&nbsp;<a href="/tag/팝아트" rel="tag">팝아트</a>,&nbsp;<a href="/tag/명품" rel="tag">명품</a>,&nbsp;<a href="/tag/다카시" rel="tag">다카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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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단상</category>
		<category>낸시랭</category>
		<category>팝아트</category>
		<category>명품</category>
		<category>다카시</category>

		<comments>http://wallflower.egloos.com/1963756#comments</comments>
		<pubDate>Fri, 30 Oct 2009 12:49:09 GMT</pubDate>
		<dc:creator>이택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좋은 책은 없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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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나에게 곤혹스러운 일 중 하나가 책 추천이다.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는데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 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솔직히 나는 이게 제일 어렵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어떤 책을 추천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학부 시절에 읽은 어떤 산문집에서 막심 고리키는 “이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고 했는데, 나는 대체로 이 말을 신봉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br />
<br />
아무리 경박한 책이라고 해도, 예를 들어, 무슨 경영처세술 같은 것이라도 일단 손에 잡고 읽어보면, 그 속에 생각해볼 거리들이 잔뜩 들어 있다. 한번은 서점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약속해서 기다리는 틈에 『20대, 공부에 미쳐라』는 제목을 이마에 붙인 책 한권을 선 자리에서 다 읽은 적이 있다. 일본작가인 나카지마 다카시라는 사람이 쓴 책이었는데, 부제가 ‘부와 성공에 직결되는 공부법 50’이었다. <br />
<br />
거창한 제목에 비해 내용은 단순했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공부하라는 것인데,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보들’이었다. 야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정보력을 확보해야 성공한다는 말은 귀에 따갑도록 들어온 말이 아닌가. 그런데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책 읽기에 대한 조언이었다. ‘재미있는 책보다 좋은 책을 읽어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책’이라는 것은 경제경영서와 인문교양서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br />
<br />
말하자면 쉽거나 흥미위주로 독서를 하지 말고 어렵고 전문적인 경제경영서와 인문교양서를 많이 읽으라는 조언이다. 『20대, 공부에 미쳐라』는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항상 ‘좋은 책’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서 읽으려고 노력한다. 하물며 이런 '자기계발서'나 '처세서'까지도 양서를 읽을 것을 권하는 것이다. 우리가 양서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 책들조차 양서를 읽어야 성공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nbsp;물론 이렇게 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독서경향만 있는 건 아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한비야씨는 아예 일 년에 몇 권 책을 읽는다고 정해놓고 일정한 분량을 채우려고 노력한다고 들었다. 이렇게 양적인 측면에서 독서를 규정하고 ‘읽는 행위’ 자체에 방점을 찍는 것도 요즘 독서계를 주도하는 하나의 풍조인 것 같다.&nbsp;<div><br />
</div><div>여하튼 책 읽기라는 것이 어떤 혁명적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한 연구들을 참조하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범상한 활동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nbsp;하기야 우리는 생활기록부 따위에 신상정보를 기재할 때 ‘취미’란에 흔하게 독서라고 적어 넣었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가. 말하자면 독서는 취미활동인 것이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가 사교계의 ‘킹카’인 다시를 보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했을 때, 그 발언에 내재한 18세기 취미판단의 정치성을 여기에서 상기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독서라는 것이 미학적인 실천이자 정치행위였다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케빈 샤프가 쓴 『독서혁명』이 말해주는 것은 이렇게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독서와 정치의 문제이다.&nbsp;<div><br />
이 정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는 ‘좋은 책’에서 온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읽기의 행위 자체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스테의 입을 빌려 문자의 정태성에 대해 비판한다. 문자는 “무언가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문을 던지면 “글은 언제나 똑같이 하나만을 가리킨다”고 플라톤은 불평한다. 그러나 이런 공통의 지시체계, 다시 말해서 이 약속의 체계야말로 문자의 위력이다. 그러나 실제로 독서는 이렇게 문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독서는 이 문자에서 평등의 목소리를 추출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인 것을 출현시킨다. 독서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이런 사실이다. <br />
<br />
따라서 사실 ‘좋은 책’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좋은 책’은 문자의 평등, 또는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이지만, 이 민주주의에 앞서서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적인 독서행위가 있었다고 봐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책의 내용이라기보다, 그 책을 읽는 행위이다. 무엇인가를 읽는 순간, 그 인간은 정치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무조건 책을 잡고 읽는다고 해서 ‘독서’인 것은 아니다. 벤야민의 통찰처럼,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세계’라는 텍스트를 읽을 수가 있다. <br />
<br />
책은 이 텍스트를 문자로 담아 놓은 작은 매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책에 나열되어 있는 문자를 독해하는 것은 독서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문자의 민주주의에 감춰져 있는 침묵의 공백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공백이야말로 정치적 독서를 가능하게 하고, 마침내 침묵을 발언으로 바꾸어줄 수 있는 조건이다. <br />
<br />
어떤 책을 읽도록 권한다는 것은 문자의 민주주의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민주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문자로서 재현할 수 없는, 무언의 소리들을 찾아내어서 재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책도 ‘좋은 책’이거나 ‘나쁜 책’일 수 없다. 그것이 문자로 쓰인 한에서, 독서행위는 언제나 문자의 합의를 의심하고 그에 도전해야하기 때문이다 <br />
<br />
-----------<br />
&lt;교수신문&gt;에 게재되었음.</div></div><br/><br/>tag : <a href="/tag/독서" rel="tag">독서</a>,&nbsp;<a href="/tag/좋은책" rel="tag">좋은책</a>,&nbsp;<a href="/tag/책추천" rel="tag">책추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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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9 Oct 2009 15:07:1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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