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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체유심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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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창조와 개혁으로 문화강국 만들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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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3 Apr 2008 21:03:1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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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체유심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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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창조와 개혁으로 문화강국 만들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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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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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제 메인 블로그는 '다음'에 있습니다. 방문해 주시면 기쁘게 생각하겠습니다.<br><br>바로가기&nbsp;: <a href="http://blog.daum.net/tjryu/">http://blog.daum.net/tjryu/</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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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5 Jan 2008 10:41:03 GMT</pubDate>
		<dc:creator>미리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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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맥아더 때문에 다시하는 공부//한국전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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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모든 전쟁은 자본가, 특히 거대자본의 소유자들의 문제해결을 위한 것이었으며 자본가들은 그들의 영향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해서 정치권력을 조종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며 따라서 정치가들이란 자본가의 교묘한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player)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실제로 이건희는 대한민국 정치권력을 자기뜻대로 좌지우지하려 했음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세계차원에서는 네덜란드 빌더버그 회의라는 게 매년 세계 주요 의제를 결정한다는 얘기가 있은 지 오래다. 그리고 우리나라 언론이 삼성에 대해 쉬쉬하듯이 미국언론은 빌더버그에 대해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볼 때 2차대전은 미국의 공황문제를 해소했고 한국전은 일본의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베트남전은 비록 우리가 소극적 수혜자였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문제를 해결해 준 바 있다. <br><br>지금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정착하려면 이러한 대자본가의 속을 꿰뚫어보고 그들에게 한반도에서 전쟁 없이도 그들의 이익이 관철될 수 있음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쨋든 그들은 지금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그들의 문제를 해소하고 있음이 틀림없는데 무엇보다도 한국전쟁때처럼 제국주의자 또는 패권국가들이 우리 문제에 대해 폭력적으로 개입할 명분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문제를 '우리끼리' 잘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6.15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br><br>박명림 교수는 말한다. "물론 6·15가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것은 앞으로도 공동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반이라는 점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이를 통해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에게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울러 남북한 모두에게 6·15에 담긴 평화 공존 정신을 깨뜨리려고 하는 시도들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중요한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남한 민주화의 반영이자 성과이기도 하다."<br><br>맥아더 동상 철거여부를 둘러싼 대립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담론이 한단계 올라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아직도 절대존속/절대철거를 외치며 단세포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일을 계기로 우리의 과거를 다시 보고 우리의 역사와 지리를 둘러싼 거대 자본의 속셈을 잘 관찰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남북화해도 통일도 결국 이 땅에 사는 이들이 평화롭게 함께 번영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br><br>유럽연합방식의 평화체제는 두번의 대량학살을 통해 이룩된 것이지만 우리는 한번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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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에세이와 팡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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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5 Nov 2005 00:22:48 GMT</pubDate>
		<dc:creator>미리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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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오로라 공주//신자유주의에 대한 조롱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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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아들녀석 휴가 보내기에 찬조출연이라고 할까. 저녁에 일찍 퇴근하여 동네 백화점에서 저녁을 함께 하고 오로라 공주를 봤다. 영화 보기전 남는 시간에 오락실에서 아들녀석이 하는 게임을 보니 총으로 옥상에 있는 사람을 쏘아 맞추는 게임이다. <br><br>섬뜩하고도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것들을 태연하게 만들어내어 돈을 벌고 있는 이 사회 전체가 이미 폭력에 깊이 물들어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자랄 때는 그렇지 않았기에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br><br>영화가 시작되니 첫장면부터 잔인하기 그지 없는 복수 살인극이 벌어진다. 다섯번의 연쇄 살인이 너무 쉽고도 냉혹하게 진행되는 건 이 영화의 목표가 리얼리즘이 아니라 이 사회에 대한 고발이자 조롱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br><br>왜냐하면 연쇄살인의 과정에서 내 생각으로는 자본과 공권력과 종교가 마음껏 조롱받고 있었다. 긴장감 없이 뒤만 쫓는 경찰은 공권력의 표상이고 대부분의 피살자들의 삶은 노블리주 오블리스와 담쌓고 지내는 이 나라 자본가들 또는 상층계급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br><br>피살자 중 한사람은 아동학대를 사유로, 두 사람은 남녀차별주의자이기 때문에 살해되었는데 아동학대나 남녀차별도 궁극적으로는 비인간적인 짓으로 강자 또는 자본의 이익에 봉사한다. 아동구호단체들이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례들은 신문을 뒤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남녀차별은 임금차별을 통해 기업의 이익에 봉사한다.<br><br>형사가 도피처로 찾고 있는 종교 역시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자동차 안에 매어달린 십자가처럼 한갖 기복수단으로 전락하여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처럼 내겐 읽혔다. 아이의 죽음과 살인자의 변호 그리고 살인자와 변호사가 누리는 자본가다운 호사스러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법권력의 타락과 겉만 매끄러운 자본의 모습이었다. <br><br>살인동기를 설명하는 후반부에서는 한 어린이를(나는 오로라 공주가 우리 사회의 가장 무력한 하층계급을 상징한다고 본다), 자본만이 발언권을 가지는 신자유주의에 푹 쩔은 이 사회가 어떻게 살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br><br>이 영화는, 휴머니즘을 골간으로 하는 르네쌍스 정신 가운데 평등과 형제애를 탈색시키고 자유만을 극대화시킴으로써 효율과 이윤 지상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린 살벌하고 험악한 사회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 아닌가 한다. <br><br>이렇게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단초는 헌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의 사회주의적 요소를 조속히 강화함으로써 가능하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요컨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더불어 사는 가치가 우선시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레 실천될 수 있는 사회로의 변혁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br><br>제작진이 의식했는지 안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또 시를 읽을 때처럼 제작자와 아주 달리 영화를 해석해주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기에 나는 이 영화가 신자유주의 대한 신랄한 조롱이라고 읽고 싶다.<br><br>※제 다음블로그(<a title="" href="http://blog.daum.net/tjryu">http://blog.daum.net/tjryu</a>)에서 퍼왔습니다.<br><br>			 ]]> 
		</description>
		<category>에세이와 팡세</category>

		<comments>http://tjryu.egloos.com/843550#comments</comments>
		<pubDate>Fri, 04 Nov 2005 00:59:31 GMT</pubDate>
		<dc:creator>미리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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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블로그의 새 기능//언론감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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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아침에 블로그서핑을 하다가 우리나라의 언론이라는 게 얼마나 미개한가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좋은 자료를 찾았다. 아들녀석이 군에 있기 때문에 군대관련 기사는 솔깃하기 마련인데 훈련소사고라든지 GP 사고라든지 언론과 정치인들이 침소봉대하고 자기들 이익이 되는 쪽으로 떠들어대기 때문에 객관적 진실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헷갈리기 마련이다.<br />
<br />
그렇지 않아도 내 블로그에 아들녀석 전화받고 올린 글(<a href="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3WFL&articleno=1730432">군대간 아들녀석 전화받다!</a>)에서도 정규분포상 군대가 그렇게 막가는 곳이 아니고 언론이 예외적인 것을 센세이셔널하게 다루는 점을 거론한 바 있지만 <a href="http://care.kaist.ac.kr/~seamark/tt/index.php?pl=119&ct1=-1">'정확한 근거없이 추측만으로 하는 생각들'</a> 이란 글에 나온 걸 보고 크게 안심이 되었다. 왜냐하면 군대의 자살률이란게 사회의 30%밖에 안된다는 게 그 글의 요지이기 때문이다.<br />
<br />
다시 한번 우리나라 언론환경을 개탄하면서 그나마 인터넷이 있어서 수많은 블로거들이 스스로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무척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과 다른 인상을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언론사가 발을 못 붙이도록 블로거들이 앞장서야 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br />
<br />
최근 시사 뉴스와 관련해서 우리 언론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지적한 글이 두개 있어 링크한다.<br />
<br />
(1)<a href="http://www.ddanzi.com/new_ddanzi/194/194sc_045.asp">허리케인 카트리나, 그리고 한국언론 </a>:  미국/일본 언론은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외양간 고치는 법을 찾는다) 한국 언론은 남의 일이거니 하고 안 찾는다. 그리고선 매년 정부에 대고 '소 잃고 외양간 안 고친다'고 지랄한다.<br />
<br />
(2)<a href="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81520">'중재자' 한국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언론들 </a>: 중재자를 자처하는 정부가 국내의 부정적 여론에 포위돼 버린다면 11월로 예정된 5차 6자회담의 전망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도대체 잘되자는 건지 실패하길 기원하는 건지, 이 자들을 어찌해야 좋을까? <br /><br />			 ]]> 
		</description>
		<category>에세이와 팡세</category>

		<comments>http://tjryu.egloos.com/751977#comments</comments>
		<pubDate>Sun, 16 Oct 2005 13:28:42 GMT</pubDate>
		<dc:creator>미리내</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스타워즈 3' - 내 맘대로 해석하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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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공상과학 영화에는 흥미를 못느끼는 바지만 칸 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던 스타워즈3를 봤다.  <br />
<br />
언젠가 조지 루카스라는 감독이 불우한 청년의 몸으로 거대한 도전에 성공한 감독이라는 것을 티브이에서 본 것과 이번 스타워즈 시리즈가 부시를 겨냥했다는 신문 기사를 본 게 관련 지식의 전부였다. 그런데 28년쯤 전에 월남전에 빠진 미국을 보고 구상한 영화가 교묘히 이라크 침략에 적용되더라는 감독의 말이 인상깊었다.<br />
<br />
우선 컴퓨터 그래픽이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한 우주 도시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 마디로 어린이 같은 상상력의 극치였다. 우주를 떠다니는 항공모함은 하나의 도시 이상의 것이었다.<br />
<br />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다스 베이더와 그의 주군쯤 되는 챈슬러(팰퍼타인)에게서 히틀러나 박정희 또는 부시가 연상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다스 베이더는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고 본인은 처와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팰퍼타인과 타협을 했을 뿐이었다. <br />
<br />
이 대목에서 놓칠 수 없는 게 팰퍼타인이 막연한 미래의 위협, 즉 임신한 아내의 죽음이나 아이들의 안전 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독재자들이 국민을 달랠 때 또는 자기들 페이스대로 이끌어갈 때 현실화하지 않은 안보 위협 또는 외부침략 위험 등을 써먹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br />
 <br />
어쨋든 독재자 팰퍼타인도 우주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부득이 전쟁을 수행할 뿐이었다. 팰퍼타인이 의회에 등장하는 장면은 나에게 박정희와 전두환을 뽑던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연상시켰다. 요컨대 히틀러나 박정희(또 그의 정신적 자식이었던 전두환)도 그들 나름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숭고한 사명을 수행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닐 도널드 월시는 그의 책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히틀러는 정확히 그 당시 독일 국민이 원하는 걸 수행했을 뿐 지옥 갈 일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br />
<br />
지금의 세계도 돈과 권력을 가진 산업계 보스들이 재무제표상의 지속적인 성과 달성(이는 그들 회사 주주들의 만족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식으로 얘기하면 자본의 축적)을 위해 '제다이'와 같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길래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는 오늘날의 문명이 사라진 거대 문명들보다 결코 진보한 게 없다고 보는 거다. <br />
<br />
문명의 진보를 위한 답은 이미 있으나 누구도 실천하기 어렵고 그래서 답이 없는 듯이 살 뿐이다. 답이란 즉시 군비에 들이는 연 1조달러 이상의 돈을 '우리가 생명을 의존하고 있는 행성인 지구의 환경을 살리고 식량을 나누면서 인류가 함께 살아가기'로 돌리는 거다. 그리고 국제연합에 실질적인 연방정부로서의 권위를 부여하고 그 권위에 따르는 거다. <br />
<br />
연방정부 실험은 다행하게도 북미에서 한 번 성공하기도 했다. 이런 플랜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도 인간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지 외부의 누구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니다. 조지 루카스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아이처럼 순진해지기만 하면 답은 보일 텐데 아마도 이 시대의 리더들은 이런 답이 유치하다고 할 것 같다.<br />
<br /><br />			 ]]> 
		</description>
		<category>에세이와 팡세</category>

		<comments>http://tjryu.egloos.com/746990#comments</comments>
		<pubDate>Sat, 15 Oct 2005 10:27:22 GMT</pubDate>
		<dc:creator>미리내</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X파일과 사법개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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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엑스파일 사건, 정확히는 삼성의 권력장악 미수사건을 보고 그동안 나는 개혁이란 걸 너무 낭만적으로 보았던 것같이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언론등 몇가지가 개혁되면 민주적 공론과정을 거쳐 사회전체가 개혁되겠지 하는 무척 순진한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근본적인 개혁거리는 아주 깊이 숨어 있다가 서서히 정체를 드러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br />
<br />
즉 삼성이 우리나라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한 과정에서 우리는 좀더 근본적인 시대적 과제를 만났다는 것이다. 모택동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 그래서 근현대까지 군대가 권력을 쟁취 유지해온 것이 다수국가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군사정권은 재벌을 키우고 다스리면서 또 그들의 돈으로 국민을 조종함로써 총구의 적나라함을 숨겨왔다(전두환이 일시 그 노골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br />
<br />
정주영의 권력도전을 계기로 자본의 권력지배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 이후에도 재벌은 끊임없이 권력을 장악 통제하려 했다는 것이 엑스파일로 드러난 것이다. <br />
<br />
대통령을 자기들 뜻대로 만들어내기만 했더라면 법조삼륜과 관료들을 영입한 것은 뉴스도 되지 않았을 텐데 그것이 실패함으로써 이제 군의 물리적 권력에서 해방된 법조 삼륜을 가신화하려던 시도마저 스캔들이 되고 말았다.<br />
<br />
다시 정리컨대 그동안 이나라 권력은 <a href="http://www-nozzang.seoprise.com/board/upload/seoprise8/20050922230225_8510.jpg">[군인과 재벌의 유착] </a><font color="#330000"></font>→ 사법권력 → 입법권력 → 언론권력의 먹이사슬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별문제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 권력이 군사력에서 해방되자 재벌이 직접 권력을 장악하려다가 실패했고 급기야는 사법권력과 언론권력 등등을 직접 지배하려던 것까지 발각되었다.<br />
<br />
이제 건전한 시민세력이 국민의 정부 이래 국가권력은 찾아왔기 때문에  재벌에 의해 상당부분 장악된 사법, 입법 및 언론 권력을 찾아오려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 순서는 당연히 피라미드 구조상 최상위를 차지하는 사법권력부터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br />
<br />
군에 버금가는 거대한 경찰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검찰조직을 들여다 보고 또 사법고시 출신들이 대통령에서부터 행정부와 입법부 등 나라의 어떤 곳이든 장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수많은 관행과 시스템을 모두 재검토하고 그것들이 지금 올바른가 물어보고 또 거의 치외법권 상태에 있는 검사들의 위상이 정당한가 물어보고, 이런 것들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삼성을 위시한 재벌은 법조삼륜을 그들의 지배아래 둠으로써 국가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다시 할 게 분명하다. <br />
<br />
우리는 이제 비로소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놓기 시작했음을 다시 명심해야 할 것 같다. <br />
<br />
※ [군인과 재벌의 유착]관계는 최근 서프라이즈에 오른 이후락의 혼맥도를 링크하였습니다.  <br />
<br /><br />			 ]]> 
		</description>
		<category>에세이와 팡세</category>

		<comments>http://tjryu.egloos.com/741092#comments</comments>
		<pubDate>Fri, 14 Oct 2005 02:05:09 GMT</pubDate>
		<dc:creator>미리내</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맥아더와 웰컴투 동막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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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제목속에 영어가 있고 등장인물 가운데도 미군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웰컴투 동막골'은 정말 동화같은 이야기 속에서 이 시대 우리의 최대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br />
<br />
유신의 세례속에서 중고시절을 보낸 나는 공부하다가 눈내린 밤에 그 공원에 서 있는 동상 앞에 가서 '아, 성님! 안녕하셔유?' 하며 친구들과 너스레를 떨던 때가 있었다.<br />
<br />
어제 분명히 맥아더 동상철거를 주장하는 쪽 인원이 동상 고수쪽 인원의 네다섯배는 넘었던 것 같은데 개념없는 언론들은 언제나처럼 지면비중을 50대 50으로 다루고 있었다. <br />
<br />
웰컴투 동막골의 메시지는 미군 하나 구하기 위해서 일개 부락도 전멸시킬 수 있다는 전쟁의 논리에 대항하여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선 남북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에겐 읽혔다. <br />
<br />
영화에서도 북한 장교가 그쪽에서 먼저 전쟁을 일으킨 것을 인정하는 장면이 있긴 했지만, 결국 제국주의자들의 거대 폭력을 불러들인 빌미는 우리 민족이 만들었고 그것을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절대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남북정상의 합의사항이기도 하다.<br />
<br />
그렇다면 이제는 이러한 협력을 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될만한 것들은 제거시키거나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맥아더를 '구세주 하느님'으로 만들어버리면 미국이 벌이는 거대폭력 또는 전쟁은 언제든지 그리고 어디서든지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라크에서처럼 말이다.<br />
<br />
하지만 지금 우리 국민의 의식은 아무리 미국이 합리 합법적 군사행위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여중생 한두명을 죽이는 것까지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전쟁때 남한, 북한을 막론하고 그들의 군사적 목적 수행을 위해서 대량학살을 자행했던 미군의 상징인 맥아더 동상에 대해 재평가를 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은데 그것을 전혀 용인치 않는 무리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br />
<br />
맥아더를 신의 지위로 올려놓은 게 그 동상을 건립할 당시의 정치사회적 의식수준이었다면 지금 분명히 달라진 정치사회적 의식에 맞추어 그걸 어디에 어떻게 두어야 할 지 제대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br />
<br />
※ 참고 : 수구들이 맥아더동상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들을 지탱하던 반공 냉전이데올로기가 이 시대의 주요 이슈도, 또 자신들의 정당성을 대변해주는 요소도 아니고 구시대의 한물 간 가치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음(<a href="http://www.ohmynews.com/readers_fame/readers_opinion.asp?cur_page=&bb_page=4&bb_ord=V&code=583538&bbsh_gb=S&bbsh_string=">오마이뉴스 '나그네'님</a>).<br />
<br />
※ 참고 : <a href="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5/09/021003000200509270578068.html">노병은 아직도 인천에서 싸운다</a>(한겨레 21)<br />
<br /><br />			 ]]> 
		</description>
		<category>에세이와 팡세</category>

		<comments>http://tjryu.egloos.com/741054#comments</comments>
		<pubDate>Fri, 14 Oct 2005 01:50:46 GMT</pubDate>
		<dc:creator>미리내</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한류의 바탕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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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tjryu.egloos.com/733518</guid>
		<description>
			<![CDATA[ 
  <font color="#3366ff">한류는 DJ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최고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오늘날의 자유롭고 창의로운 분위기에서 우리민족의 최고의 역량이 발휘되었기 때문에 경제강국 일본과 아시아 문화 종주국 중국을 누를 수 있었던 겁니다. <br />
<br />
박정희를 추종하는 인간들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모여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노통을 신나게 까댈 수 있는, 어쩌면 별거 아닌 자유의 힘이 바로 우리 문화 창조력의 근원입니다. 반북한주의(또는 반공)와 자유민주주의를 혼돈하고 좌파의 명확한 개념조차 모르는 수구 꼴통들이 또 한번 집권한다면 한류의 힘도 끝을 다 할 것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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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국가중심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착각하며 살고, 기본적인 사상의 자유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을 자유민주주의로 알고 있는 자들에겐 이런 한류의 자긍심을 느낄 자격조차 없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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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 대한민국 화이팅입니다. [이상 오마이뉴스 '고에몽'님 글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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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한류에 대한 역풍의 조짐이 있음을 지적한 오마이뉴스 기사에 대한 위 덧글을 보면서 김 전대통령 취임이후 이뤄진 표현의 자유 확대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 것인가 생각케 된다. 우리 영화가 세계영화제에서 상을 타기 시작한 것도 영화검열법 폐기등 표현의 자유 확대로 인한 것이라는 어떤 영화인의 얘기가 생각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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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은 IMF 극복과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큰 공적 이외에도 문화부흥의 원년을 열었다는 큰 공적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황우석을 낳은 것도 BK 21이라는 대학 정책 때문이라는 얘길 하는 걸 들었다. 또 IT, BT 강국이 된 것은 대대적인 코스닥 지원책에 의존하는 바 크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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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을 근거로 공적을 부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콩나물이 자라는 환경을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키울 때 버리는 물의 양을 생각하면 어쩌면 콩나물 기르기는 고비용 저효율 산업이라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콩나물이 우리 식탁에서 하는 역할을 보면서 우리는 버린 물이 아깝다고 하지 않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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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친일-군사독재 정권의 쌍생아인 수구언론들이 제대로 평가하길 거부해서 그렇지 나는 김대중 전대통령은 문화부흥의 원년을 연 대통령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노대통령은 김 전대통령의 업적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김 전대통령의 그늘에 가릴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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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저격하는 패러디까지 공표할 수 있는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표현의 자유가 우리 문화 창달의 기본 전제임을 다시 확인하며 (1)중국이 정권의 안정 때문에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란 점과 (2)군국주의 전통을 물려받은 우익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에서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정착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가 좀더 노력하면 상당히 오랫동안 두 나라에 대한 문화적 우위를 지킬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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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을 무릅쓰고 강조한다면 한류가 서 있는 기반이 르네쌍스의 열매인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노력 여하에 따라서 한류와 같은 문화적 우위는 결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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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과 맥이 닿은 아주 좋은 글이 있어 링크합니다. <a href="http://bbs.hani.co.kr/Board/tong_korea/Contents.asp?STable=tong_korea&RNo=4&Search=&Text=&GoToPage=1&Idx=4&Sorting=1">한류로 넘어서는 일본 군국주의와 중국 중화주의 </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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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ategory>문화강국</category>

		<comments>http://tjryu.egloos.com/733518#comments</comments>
		<pubDate>Wed, 12 Oct 2005 10:58:26 GMT</pubDate>
		<dc:creator>미리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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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변화의 근본 동인(動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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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경제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기업이 이윤을 내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고 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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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도 경영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생존, 생활해야 하고 내가 맡은 그룹(가족이든 직장의 부서든)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장해야 합니다.왜냐하면 성장하지 않는 생물, 조직, 사회 등은 죽어가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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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벳트의 지혜'를 읽으면서 좀더 근본적인 변화동인을 발견했습니다. 즉 '잘 살고 잘 죽는' 일이 전부 변화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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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에 보니 사람들은 죽은 후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는데 죽은 후 우리는 지금 그대로의 마음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면 죽은 후에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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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에 대해 만족스럽다 하는 사람에게는 변화의 동인이 작고 지금 자신에 대해 불만족스럽다 하는 사람에게는 변화의 동인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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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순간 또는 죽은 후 자신의 모습에 흡족하기 위해서는 그런 수준만큼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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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같으면 지금 밝고 명랑하고 지금 풍요하며 행복한 모습이 되도록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변화시킬 것을 결정하고 그러한 생각과 감정을 선택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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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정과 선택은 지속적 행동을 통해서 어떤 바람직한 상태를 구현해나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결국 이런 운동이 자연계에서 관찰되는 바이면서, 창조계가 행하고 있는 진화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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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화, 진보, 성장은 자연계의 숙명이고 미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성장, 성공하지 않기가 더 어려운 일이고 자연을 거스르는 일인거라고 생각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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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에세이와 팡세</category>

		<comments>http://tjryu.egloos.com/732984#comments</comments>
		<pubDate>Wed, 12 Oct 2005 08:11:31 GMT</pubDate>
		<dc:creator>미리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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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영화 오아시스와 소통의 문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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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아침에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영화 오아시스의 후반부를 보게 되었다. 일부만 보게 되었지만 영화의 주제가 만만한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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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이나 우화가 시대와 지역을 넘어 적용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범용성을 가진다는 것은 상식의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오아시스'는 사회과학적으로 범용성 있는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길래 외국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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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영화는 '소통' 또는 '언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보통 겉만 보고 다 안다고 생각하고 그에 준하여 남들을 대한다. 장애인에게 그러하고, 형사피의자에게 그러하고, 다른 가족에게 그러하고, 교육수요자에게 그러하고, 독자나 시청자에게 그러하고, 나아가 '국민'에게 그러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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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남들의 속뜻을 왜곡하면서까지 자기 이익과 편의를 관철하는지 모른다. 영화에서 문소리의 가족은 마치 조중동과 같다. 가족들이 그녀를 위하여 한다고 하는 짓들이, 전혀 그녀의 수요와 만족을 고려한 게 아니라 자기들의 편의와 체면을 지키고, 나아가 가능하면 많은 합의금을 받아내는 것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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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설경구 가족들도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집안의 스캔들일 뿐이요 회개의 대상일 뿐이다. 그를 진정으로 이해했다면 당연히 그가 무죄임을 입증하려 했을 것이다. 이들은 마치 열린우리당과 같다. 열린우리당이 노대통령을 위해 한다고 하는 일들이 마치 설경구 가족의 설경구에 대한 불완전한 탈주기회 제공과 그로 인한 가중처벌과 비슷하게 느껴진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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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소통은 문소리-설경구에게 있지만 그들에겐 그것을 관철시킬 힘이 부족하다. 조중동과 열린우리당은 진정한 소통을 이해못하고 자기들 이익만 관철하기 때문에 국민을 자기들 이익을 위해 이용할 뿐이다.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국민은 지속적으로 소외될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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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과 우화가 아주 짧은 이야기 구조속에서 범용성을 갖듯이 이 영화는 거대한 사회적 담론을 아주 간단히 집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범용성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영화로 생각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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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에세이와 팡세</category>

		<comments>http://tjryu.egloos.com/732955#comments</comments>
		<pubDate>Wed, 12 Oct 2005 08:01:25 GMT</pubDate>
		<dc:creator>미리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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