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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찻잔속의 여러 이야기들이 들리시나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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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홍차도둑의 잡다한 이야기, 사진은 웬만하면 클릭해서 보세요</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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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Nov 2009 23:42:5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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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찻잔속의 여러 이야기들이 들리시나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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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30년, 한세대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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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a title="" href="http://shinablue.egloos.com/5174622">허정무는 무를 사랑하는게 아니었습니다</a><br><br>에 른밸님께서 저의 예상을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br><br>하지만 저의 주장은...<br><strong>[이번 유럽2연전의 중심은 '지지 않는 경기'라기 보다는 '최소한의 피해를 보는 경기'를 맘대로 할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strong><br>였습니다 ^^;;;<br><br>이 부분에 대한 차이를 조금 설명하자면...</p><p>지지않는 경기하고 '최소한의 피해를 보는 경기'하고는 좀 다릅니다. <strong>최소한의 피해를 보는 것이란 경기 결과로 나오는 '최악의 경우라도 적은 점수차의 패배'일 뿐 아니라 세르비아전에서 보여준 '실점을 하더라도 우왕좌왕 무너지지 않고 빨리 정비해서 정상적인 경기를 치뤄가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 경기 중에도 반격의 기회가 생기지요.<br><br></strong>이러한 부분은 1990년대의 월드컵을 보면 한탄스럽게 나옵니다.</p><p>특히 <strong>1994년 월드컵에서 독일과의 경기</strong>를 김호감독은 이렇게 자평했었습니다.<br>"<strong>흔들리는 팀을 빨리 추스렸다면 경기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strong> 골키퍼이자 주장인 선수를 교체하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더 빨리 그 모험을 시도했어야 했다"라고 경기 직후 인터뷰를 했습니다. <br><br>그 결과는 2-3<br>'따라는 갔지만...투혼은 있었지만 결국은 졌습니다.<br><strong>전반 중반에 수비가 여지없이 무너진 그 부분에서 승부가 갈렸습니다.<br>그때 만약 이번 유럽2연전처럼 빠른 수습이 있었다면 경기 자체는 몰랐을 것입니다.</strong> <br>그게 고쳐지기까지 15년이 걸린 것입니다.<br><br>그 15년...적은 세월은 아닙니다.<br>그리고 그 결과에는 하나의 씨를 뿌린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br>우연의 일치가 아닌 필연. 그것은 바로 차범근이라는 한 영웅에 의해 쓰여진 것입니다.<br><br>그 이후 차범근 감독이 연 '어린이축구교실'이 연지 약 18년이 지난게 지금입니다.<br>그때 시작한 어린이들이 이제 20대 후반이고 더 정비가 된 환경에서 시스템의 도움을 받은 1세대가 바로 지금의 20대 중반과 초반의 선수들입니다.<br>이전에 언론에서 '희망적인 시나리오'를&nbsp;열심히 설파했습니다.<br>'이러면 16강에 갈 수 있다!', '이렇게이렇게 해라!' 그러나 실전에서 가면 연습때 여러 강호(?)들을 상대로 보여준 한국팀의 여러 뛰어난 경기력은 본선에가면 사그러들었고&nbsp;언론에서 말한 시나리오를 제대로 수행하는것은 '전후반 시작하자마자 약 15분 정도에 그쳤습니다' 아니 대놓고 1990년&nbsp;월드컵의 첫번째 경기에선 대놓고 '우린 무승부로 가겠다'고 설쳐댔지만 나온 것은 전후반 통털어 70여차례가 넘는 패스미스에 의한 인터셉트...에 상대방에게 농락당하면서 끝나버렸죠.<br>(쓰벌 그 경기 지금도 생각하면 이빨 갈립니다. 중간고사&nbsp;때 중간고사 말아먹을 각오하면서 그것도 고3이 말이죠...시험공부 한답시고 밤새면서 봐 댔는데 쓰벌,&nbsp;아주 그냥 주눅들어서 완전 몸이 얼어붙은채로 말이죠...뭐하자는 건지...하는 생각으로 봤습니다. 당연히 시험은 죽쒔고 뜨벌...)<br><br>그런데 이젠&nbsp;'실제로 할수 있는'선수들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들이 놀려대는<strong> '이기지 못하지만 지지는 않는 근성무의 한국축구'</strong>로 보는 선수들입니다.<br>뭐 이전엔 이기면 화끈히 이겼을까요? 그러기에 이러한 무재배가 열받는 것일까요?<br>글쎄요...<br>전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한국은 의외로 약팀을 '캐 바른'예는 많지 않습니다. 이전 1968년 올림픽 진출을 놓고 일본과의 경쟁에서 탈락한 것은 득실차였습니다. '약체' 필리핀을 발라버리지 못한 것 때문에 동률인데 득실차에서 밀렸지요. 그리고 일본은 올림픽 동메달을 따버렸습니다.<br>(다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뉘앙스를 풍기더군요 '우리가 올라갔어도 그정도 성적은 냈을 것임!' 하고 말이죠...천만의 말씀입니다. 일본을 이기고 올라갔더라도 동메달 못땄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8강도 가기 버거웠겠지요. 이 부분은 언제 다른 예로 글 하나 쓰겠습니다.)<br><br>사실 한국이 아시아 최강자로서의 위치를 누린 것은 이전에도 짧았고 지금도 보건데 길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아시아지역 권 내에서의 강팀들과는 수많은 명승부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건 부인할수 없는 사실입니다.&nbsp;그러기에 우리는 한국을 '아시아의 강호'로 당당히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br>하지만 이전의 선수들은 아시아권에선 어떨지 몰라도 세계무대로 가면 늘 그랬죠. 언제나 1회전 탈락이요 상대방의 1승 지목 타켓. 누구 말마따나 <strong>'승점 자판기'</strong>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br><br>오죽하면 옛날 PC통신 시절 축구동호회에선 두가지의 블랙유머가 있었습니다.<br><br><strong>'월드컵 및 올림픽 때에 일어나는 일반화된 현상'</strong><br>강팀을 만나서 본선진출-&gt;언제나 약체를 잡고 어떤팀은 비기고 어떤팀은 승부를 포기한다는 시나리오 언제나 1승1무또는 3무-&gt;이를 위한 수비력 보강 및 원샷원킬의 공격력 확보-&gt;평가전에서의 여러 승리에 기뻐 날뜀-&gt;정작 본선에선 저조-&gt;대회 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의 무한반복이라는 것.<br><br>그기로 경기에서의 <strong>'한국팀 월드컵에서의 패배의 공식'</strong><br>초반 10분 무지 잘함(아 이거 뭔가 될거 같다)-&gt;15분쯤부터 오버페이스 또는 빈 틈에 말려서 골 헌납-&gt;이후 두갈래 길 상대가 그대로 흔들기만 하고 끝나던가. 아님 그 흔들림이 빈틈을 찾아 추가득점-&gt;25-30분이후 정신차린 한국이 약 10분간 신나게 밀어붙임-&gt;35분~40분경 역습 당해 골 헌납 또는 위기상황 자초-&gt;전반종료. 후반 15분까지 엄청 몰아붙임 이 경우 만회골을 터트리기도 함-&gt;20분 무렵 오버페이스및 빈틈 보여서 추가골 헌납-&gt;25-28분경부터 신나게 몰아붙임. 그러나 약 10분 정도-&gt;나머지 시간동안 상대방은 역습 몇번 하던가 아님 그냥잠그기로 경기 끝남.<br><br>거의 틀리지 않는 공식이었지요...알면서도 이렇게 할수 밖에 없는 것이 이전의 선배님들이었고 이게 한계였습니다.<br>몇몇 시대를 뛰어넘는 선수들 외에는 말이지요...<br>이 상황에서 최고의 시나리오는 어떻하던 선제골을 넣던가 한골만 실점 한 상황에서 밀어붙일 때 동점골 넣어서 쫒아간뒤 종료되는'무승부'외엔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br><strong>이러한 체질로 보낸게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의 한국축구입니다.</strong><br></p><p>사실 전 감독으로서의 차범근 감독을 낮게 봅니다. 감독으로서 팀에 대한 여러 부분은&nbsp;허정무 보다는 더 아래로 보고 있습니다.<br>하지만 차범근 감독을 놓고 평할 때. 이제는, 정확히는 2008년 이후부터는 <strong>'한국 축구 역사상&nbsp;가장 위대한 축구영웅'</strong> 이라고 감히 말합니다.(감독으로서의 평가는 지금도&nbsp;좋지 않지만요&nbsp;^^)<br><br>차범근이라는 축구영웅의 업적중 가장&nbsp;위대한 것은 분데스리가에서의 영웅적인 기록과 활약이&nbsp;아닙니다. 감독으로서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던가 리그 우승이 아닙니다.<br><strong>한국축구의 근본을 뿌리채 바꿔놓은 '차범근축구교실'<br>이것이 차범근의 가장 위대한 업적입니다.<br></strong><br>차범근 감독이 선수시절, 그리고 1990년까지의 느꼈던 여러 점을 정말 개선코자 1980년대 초반부터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나 여러 경로로 알리고 했던 것이 '유소년 축구교실'이었습니다.</p><p>한자에서 세대를 일컫는 세(世) 자는 30의 변형이라 하더군요, <strong>30년을 지나서 하나의 세대가 바뀐다는 것이죠.<br></strong>그러나 가만히 있는다고 바뀌지는 않습니다. 차범근이라는 한국의 축구영웅은 정말 자기가 생각한 뒤 30년뒤의 꿈을 이뤄내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감독으로서는 더 나쁜 평을 차범근은 받을수 있습니다(반대로 좋은 평을 받는 명감독이 될수도 있죠).<br><br>그렇지만 차범근 축구교실을 시작으로 해서 여러 선수들이 길러졌습니다.<br>종목은 다르지만 제 주변에서 일어난 실제 예가 있습니다. 제 후배중 한명은 농구를 아주 잘합니다. 거의 선수 수준이었죠 장난 아니었습니다. 하이텔 농구동호회 초기의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하이텔 농구동호회에 우연히 인천 송도고등학교의 실제 농구 선수가 가입을 했기에 송도체육관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br>이때 그 후배를 보고 송도고등학교 감독이 실제로 송도고등학교에 입학시키려 했었습니다. 네...송도고등학교...농구쪽의&nbsp;명문이지요. 그런데 그 후배는 송도고에 안갔습니다. 선수들이 얼차려 받는거 보고 <strong>"왜 맞아가면서 좋아하는 농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strong> 면서 안가고 말았습니다. <strong>이게 1990년대 중반의 일입니다</strong>.<br><br>이게 바뀌어진게 바로 1990년대 초반부터의 축구였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걸 하다가 결국 이놈의 '얼차려'로 축구를 싫어하게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축구교실의 1세대급은 많지 않습니다. <br>그러나 이후 1990년대 중 후반 이후부터 프로팀들이 유소년 클럽들을 창설하고 그를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들을 속속 만들어 댑니다. 전북의 경우 최만희 감독님이 계실 때 분데스리가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코치도 데려오고 그것도 모잘라 폐교 하나 인수해서 실제 '축구사관학교' 만들려고 했던 시도도 있었습니다. <br>당시 우연한 자리에서 최만희 감독님과 이야기를 했을 때 최만희 감독님은 정말 진지하게 고민히사더군요. <br>이 선수들 중 재능있는 선수들을 정말 키우고 싶은데 시스템 만드는게 쉽지 않다면서 자기가 전북 감독으로 있을 때 정말 꼭 정착시키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그 폐교를 잘 이용해서 어린 선수들 키우는 시스템 만드는 것이라 하셨을 정도였습니다.<br>(이게 발전해서 지금 전북의 팜 시스템이 되었는지는 아쉽게도 제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br><br>드디어 1990년대 중 후반에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 들어간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이제 19세 이상의 대표팀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더 어린 선수들도 경기력만 따지자면 이미 성인 대표팀 수준을 능가할 정도의 약삭빠른 플레이들이 나옵니다.<br><br>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br>한국은 현재 바둑에서는 세계 최강국이라 부릅니다. 이 시발점은 보통 1988년 시작된 응창기배에서의 조훈현 9단의 우승부터라고 합니다. 이후 서봉수 이창호 등의 기사들이 우승했고 특히 이창호의 경우는 뭐 국제기전 싹쓸이를 하는 등 난리가 났죠.<br>바로 이 이창호가 한국 바둑사관학교의 1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훈현 9단의 직속제자였지요. 이후 여러 '내제자' 내지는 '바둑도장'이 생깁니다. 여기서 나온 기사들이 바로 한국바둑의 중추를 이뤄내고 있습니다.<br>사실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의 경우 쇼와 시절의 두 명인인 <strong>세고에 겐사쿠</strong>(조훈현 9단의 스승입니다)와 <strong>기타니 미노루</strong>(조치훈9단이 이 문하생군단[네 정말로 군단급입니다. 문하생들 다 모으면 그들의 단수가&nbsp;200단은 넘어갈만한...]&nbsp;막내뻘이지요) 두 사람이 만들어 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그 둘의 문하생들이 이후 몇십년간을 쓸어버리다시피 했죠.<br><br>그리고 한국바둑이 정상급에 올라간 것은 당시 최정상을 차지한 조훈현이라는 거목이 분전한 이후 그 무렵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여러 프로들이 영재들을 키워낸 '바둑도장'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br>이때 이창호를 필두로 한 어린 후학들의 바둑을 보고 선배들은 경악해 버렸습니다.<br><br><strong>"아니 무슨 10대가...어린 바둑이 아닌 60대의 원숙한 바둑을&nbsp;둔단 말인가?"</strong><br><br>경악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젊다고 패기있게 나가고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이미 한두차례의 펀치교환이 끝나고 크게 싸움 안벌여도 되겠다 싶으면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스타일.&nbsp;형태에 구애받지도 않습니다. 거기에 치열함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더 지독한 치열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전에 자신들이 한 10년 20년을 쌓아야만 할수 있었던 여러 가지들이 이미 10대들이 능수능란하게 구사합니다. 더불어 더 깊은 수읽기, 그리고 연구욕심...이미 이전에 일가를 이루고 도전자 또는 몇개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몇년전의 거장들'은&nbsp; 이미 상대가 안되기 시작하고 최전선에서 하나둘씩 철수해야 했습니다. 과거의 명성만을 남긴 채 그들의 선전은 지금은 화제가 되지만 정상을 다투기엔 이미 경쟁전선에서 탈락해 버린 상황인 겁니다. <br><br>자...위의 몇몇 말이 축구와 일치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여러 대회에서 보여준 원숙한 몸놀림은 바둑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그걸 약 10년뒤에 그대로 카피한 것 같습니다.<br>그리고 그 차이가 그러고보니 딱 10년의 차이로군요.<br>이창호가 첫 타이틀을 따낸 것이 아마 1986년 경으로 기억합니다. 그 무렵해서 조훈현9단의 문하로 들어갔고 몇몇 프로기사들의 도장들이 그때쯤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시스템이 딱 10년 차이네요.<br><br>그리고 그 10년 차이를 가지고 이제 축구에서는 세계 정상권까지는 무리더라도 강호권에의 노크를 시작했습니다. 네 별거 아니었죠, '유소년 교육이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와 만들어져서 돌아가기 시작할때의 차이가 이렇더랍니다.<br><br>이 차이를 제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데 걸린 시간이...<br><strong>30년</strong>이네요.<br>어째 운이 좋게 딱 그 세대에 태어나서 그걸 지켜보고 자라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nbsp;<br>이 30년이라는 것,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렇게 발전할수 있구나 라는 것을&nbsp;볼수 있었고 관련된 많은 분들과 직접 이야기 할수 있었다는 것을 정말 '값진 30년'이라고 생각합니다.<br><br>이번 월드컵과 다음번 월드컵은 그 30년의 증명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br><br>아주 즐거울 겁니다. 축구는 짧게는 그 경기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이렇게 길게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br>지금 나는 너무나도 즐겁습니다. 축구를 좋아하기를 잘했나 봅니다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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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축구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tirano.egloos.com/1969762#comments</comments>
		<pubDate>Thu, 19 Nov 2009 22:49:53 GMT</pubDate>
		<dc:creator>홍차도둑</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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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무패 기록은 끝났지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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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허정무 감독으로서도 그러한 무패기록에 대한 부담은 컸을 것이다.<br>그런 것이 일단락 됨으로 해서 하나의 부담을 던 것에 대해선 허감독으로선 확실한 수확이었을 듯 싶다.<br><br>경기 자체야 논할 부분이 별로 없다.<br>전반 선취점을 내준 이후 박빙으로 경기를 이끌었다는 부분외에는 말이다.<br>이 부분에 있어서 양팀은 주전들이 몇몇 빠진 상태라 최상의 상태는 아니라는 점도 있겠지만 사실 본선에서도 언제나 100% 컨디션 맞춘다는 보장이 없다.<br>사실 <strong>팀의 경기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베스트 상태'가 아니라 '뭔가 실타래가 엉키고, 주전이 빠졌을 때. 그 팀이 어떻게 경기를 운영해서 승리를 만들거나, 아니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이다.<br></strong>이것이 전체론이고 어디가 이랬네, 어느 선수의 대채를 찾았네 하는 것은 각론에 불과하다.<br><strong>(니폼니쉬 감독과의 대화에서 니폼니쉬 감독은 이 부분을 '리그에서는 버리는 경기도 나올수 있다. 그러나 내용이 버리는 경기가 되서는 안된다. 그 경기에서도 내일에 대한 비전을 감독은 찾아내야 하고 선수들에게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 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다.)<br></strong><br>이번 경기들은 바로 그러한 총론을 보아야 하는 경기둘인데 나의 생각은<br><strong>'평균점 이상은 한 경기'라</strong> 보고 싶다.<br><br>사실 덴마크전에서도 여러 위기상황을 잘 넘겨서 0-0이 되었다는 것이 중평이다.<br>그렇다면 반대로 그 경기를 세르비아전에 대입한다면...<br>바로 결승골을 허용한 지점만 잘 넘겼다면 0-0이 될수도 있었다는&nbsp;예상이 나올 수 있다.<br>그리고 그건 희망사항이 아니라&nbsp;가능성이&nbsp;있는 시나리오다.<br><br>이번 경기에서 감탄한 부분은 상대가 미들에서 약간의 실수를 했을 때 그 공들을 유유히 커팅해서 역습으로 연결하는 장면들이었다. 문제는 공격진의 날카로움이 떨어져서(이동국의 가장 큰 문제는 트래핑이 잘 될때와 안될때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거다...) 골로 연결하지 못했다. 이 부분이 아니었다면 승패는 알수 없었을 것이다.<br><br>다만 김남일-조원희 조합은&nbsp;고개를 갸웃거리게&nbsp;되는 것이. 사실 이 둘을 동시에 세울 땐 둘 다 수비만 보려고 하는 상황이어야 한다. 김남일과 조원희가 사실 공격성향이 있다 하더라도 공격력 자체가 아주 뛰어난 선수라 보기는 어렵다(조원희의 윙백 시절과는 비교를 말아주셨음 한다. 윙백으로의 공격성향및 실력과 중앙 미들로 옮겼을때의 공격성향및 실력은 분명 다르다. 야구에서도 유격수 보던 선수가 3루나 2루로 보직변경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성공하는 케이스가 적은게 비슷한 예다. 포지션별로도 플레이 스타일 및 다른 선수들과의 조합에 따라 이 부분은 달라지는 엄청난 변수를 가지고 있는&nbsp;다차원방정식이다. 이건 단체구기 모두에 적용된다.)<br><br>그러나 하나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br>이놈의 신종 플루 때문인지 '백신주사 확실히 맞았다' 운운하는데...<br>(솔직히 김연아 선수의 이번 부진에서도 '본선 예방 백신주사' 운운하는데...글쎄올시다다)<br>그런데 덴마크-세르비아와의 2연전을 통해 '백신'급의 주사를 맞은 것이라 봐야 하는가?<br>라면...'글쎄올시다...' 라고 하겠다.<br><br>단 이 전제조건이 붙는다면 '백신주사가 맞긴 하지' 라고 하겠다.<br>B형 간염처럼 한 2-3차례 맞는 주사의 첫번째 주사라면...왜냐면 늘상 이런 팀들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백신주사를 맞아서 본무대에선 잘할것'이라는 것은 허상이다. 백신주사를 맞았다고 해서 그 질병에 걸리지 않는 일반적인 '예방의학'과 단순 대입은 어렵다. 그리고 <strong>'백신주사'맞았다고 건강에 해로운채로 다니면 해당 백신으로 막을수 있는 병은 안걸릴지 몰라도 다른병 걸린다.</strong> '백신주사'는 만능이 아니다.<br>실제 경기에서는 여러 변수가 있고 이건 수치화할수 없는 부분인지라 '어느 과정에서의 어떤 실수'와 '백신주사'와는 분명 다른것인데 계속 '백신주사' 운운하는걸 보니 그놈의 플루가 유행은 유행인가보다.<br><br>이번 2연전을 통해 확인한 부분은 분명 있다.<br>수비의 부분에선&nbsp;1990년대의 우왕좌왕함은 이미 없다.<br><strong>이번 유럽2연전의 중심은 '지지 않는 경기'라기 보다는 '최소한의 피해를 보는 경기'를 맘대로 할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br></strong><br><strong>한국의 월드컵, 올림픽의 여러 본선 경기들중 아쉬운 몇 경기는 '패배시의 실점 하나로 2위 다툼에서 떨어진 것'들이었다.<br>우세한 경기에서 한골만 더 넣었다면, 이라는 아쉬움 만큼이나 질때 한골만 덜 실점했다면. 이라는 가정사항 말이다.<br></strong>라운드 로빈 방식에서는 1라운드를 리그전으로 치루고 최소 3경기를 치루는 것이 이제는 거의 관례다. 이 때 첫경기에서 대패를 당한 것이 나중에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됨을 최소화시키려면 '질때엔 상처를 덜 입어야 한다' 는 것이다.<br>요게 리그제라던가 장기레이스에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1990년대 이전 한국이 유럽팀과의 경기에서의 문제점이 바로 이러한 '흔들림'을 당할 때 상대에게 휘말리는 시간이 길게 되면 여지없이 대패로 몰려가는 것이 이런 부분이었다.<br><br><strong>이번 경기에서 중요한 점은 선제골을 허용한 뒤 재정비 시간이 빨랐다는 것, 그리고 후반전에는 다른 경기를 보일 정도로 팀 정비를 한 것. 이것이 바로 허정무 감독의 능력이라는거다. 이 부분을 간과하고 '오오 무재배가 끝났네' '무패행진이 끝났네' 라는 단순 비판만으로 이번 경기를 마무리 해서는 안된다.<br></strong><br>분명 본선에서 한국이 2승급으로 2라운드 진출하는 것은 버겁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이 경우 변수를 많이 만들어 내기 위해선 '7무 우승의 시나리오'라는 농담은 무시할수가 없는 부분이다.<br><strong>변수를 많이 만들어 내기 위해선 강팀과의 경기에서 무승부 내지는 적은점수차 패배라는 것은 나도 벌써 20년 넘게 들은 구닥다리 레파토리 되겠지만...근데 우짜냐...그게 현실인걸...<br></strong><br>이번 경기들의 포인트는 이거다.<br>'베스트 팀을 만들지 못했을 때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는가?'<br><br>이 부분은 일정 수준점을 넘어섰다는 것이 이번 2연전의 총평이다.<br><strong>어디가 부족하고 다듬고 그건 어떤 경기던간에 나오는 이야기다. 분명한 것은 한국은 이제 1990년대의 그 때와는 완전 다른 팀이고 강팀으로의 계단을 분명 몇걸음씩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br><br></strong>&amp; 쓰고 나서 덧글 하나<br>유럽이나 남미의 스카우터들이 선수 평가하는 주요 자료중 하나는 '그 선수가 얼마나 잘났느냐' 보다는 '컨디션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팀을 위해서 움직임을 보이느냐(또는 완벽하게 그 선수의 장점이 틀어막혔을 때에도)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때로는 이게 '그 선수가 얼마나 잘났는냐' 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br><br>&amp;&amp; 아 이 말 빼먹었다.<br><strong>20년전의 그 레퍼토리와 지금이 다른것은 그때도 '강팀은 지더라도 최소한, 어떤팀과는 비기고, 어떤팀은 무조건 잡자'라는 '시나리오'를 언론이 써 주었지만&nbsp;그때의 결과는&nbsp;팀은 '그대로 하려고 했지만 하지는 못하고(할줄도 모르고)' 언제나 '강호와의 차이를 느꼈다' 였다.<br>그러나 지금은 '선수와 감독이 알아서 어느정도는 해낸다. 최소한 주눅들고 내빼지는 않는다' 의 차이다.</str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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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축구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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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Nov 2009 02:18:12 GMT</pubDate>
		<dc:creator>홍차도둑</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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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자료가 부족해, 자료가 부족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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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a title="" href="http://nestofpnix.egloos.com/4276849">시골 헌집의 역사적 가치</a><br><br>제가 14년전 쯤 한국축구자료 정리를 시작할 때 비슷한 이유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br><br>과연 한국의 첫 A매치는 무엇일까?<br>를 놓고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축구협회.<br>당시 아는 직원(이분 요즘 뭐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모 축구 에이전트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것을 마지막으로 못뵈었으니까요. 하이텔 축구동을 축구협회에 처음 소개해 주고 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이 국제실을 뒤져서 찾아온 것은 겨우 A4용지 한장.<br>거기에 볼펜으로 적혀있던 몇줄.<br><br><strong>1948 런던 올림픽<br>대한민국 5-3 멕시코</strong><br><br>어이없기도 했고 눈물나는 한줄이었습니다.<br>그때가 이미 전 한국바둑사학의 개척자 권경언 선생님(경향일보 바둑 해설을 하신 분입니다. 요즘 이분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이 월간바둑을 통해 '한국바둑의 뿌리가 없다. 1회 대회가 언제 어떻게 치뤄졌는지에 대한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라면서 한탄하셨던 글을 보아버렸던지라...그냥 헤까닥 해 버렸습니다.<br><br>원래 이 일은 소설가 고원정 선생님이 MBC의 축구 다큐멘타리의 대본을 쓰시기 위해 여러 축구 자료를 모으시던 일로 시작되었었습니다. 집필하시느라 바빠서 절 스크립터로 고용하신 것이지요.<br>(참고로 고원정 선생님도 상당한 축구광이십니다. 많이 드러나지 않은 것 뿐이지요. 김흥국씨의 엄청난 과는 이런 묵묵히 축구를 좋아하고 그것도 열성적인 분들이 앞에 나올수 없게끔 너무 오두방정을 떨었다는 것입니다)<br><br>그런데 첫걸음부터 헤까닥 돌아버렸습니다. 그 뒤에 적혀있는 것의 많은 부분이 볼펜으로 쓴 것. 그나마 나중에 가니 워드 아래한글의 1.5버전(아아 추억의 그 버전)들로 나온게 다...<br>한숨이 푸욱 푸욱 나왔습니다.<br><br>그런데 더 가관인게...<br>날짜 안맞는 것도 발견...한숨 쉬었습니다.<br>당시 서초동의 국립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저 혼자도 힘들어서 스크립터로 축구동아리의 아는 선배도 같이 갔습니다.<br>둘이 상의를 했지요.<br>'대한축구협회에서&nbsp;본 자료의&nbsp;날짜를 중심으로 하되 앞뒤로 3일씩 다 흩어본다!'<br>그 결과 마이크로필름실에서는 저와 그 선배가 완전 단골 다 되었습니다.<br><br>그것만으로 끝은 아니었지요. 마이크로 필름으로 찾은 부분...그걸 또 출력해서 가야 했습니다.<br>그건 또 당시 국립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실에는 출력하는 것이 한대밖에 없었습니다. 에효~ 시간은 배로 걸렸지요.<br>이런 삽질은 1968년 중반의 신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습니다.<br>그나마 이때 일간스포츠가 나오면서 스포츠만 전문적으로 다루니 날짜 오차가 없었습니다.<br>계속되는 삽질의 두달...<br><br>물론 그 이전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경향신문이라는 몇몇 신문을 중심으로 뒤져야 했습니다.<br>그 결과 볼펜 한줄의 뒤에는 '몇시 어느 경기장' 이라는 것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큐멘타리에서는 런던 교외의 '덜리치 햄릿 경기장'(동아일보의 원문 기사에서는 다른 표기였습니다. 그래서 거기 알아내느라 MBC 취재진이 현지 취재 한 것으로 압니다)에서의 장면으로 시작했고 제가 쓴 '슈팅'이라는 만화에서 잉글랜드에서 열리는 청소년 대표팀이 방문하는 에피소드를 넣은 것이 그 경기장을 문헌으로라도 찾아낸 기쁨을 잊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br><br>결국 그 다큐멘타리는 끝났지만...한숨이 나왔습니다.<br>단 둘만이서 두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의 그러한 편린을 모은 것...<br>얼마 안되었지만 많은 빈자리가 남아있는 퍼즐에서 겨우 몇조각을 맞춘 것만으로는 힘들었었습니다.<br><br>거기에 동조를 해 준 것이 윤형진군이었습니다.<br>1995년쯤 시작된 이 행진은 길었습니다. 결국&nbsp;2005년쯤 되서야 간신히 첫 단추를 꿰었습니다. 10년정도 걸려서 간신히 첫 발자욱을...하지만 부분부분 해야 할 것은 많았습니다.<br><br>협회 DB를 손보는 일이 맡아졌습니다.<br>1960-1970년대의 전술까지 챙겨가면서 선수들의 포지션 분류까지 해야 하는 작업의 적임자라 하여 그걸 통으로 맡아서 해야 했습니다. 결국은 다시 또 도서관으로 가게 되더군요. 헐값에 일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그런 문서들과 씨름하고 한글자 발견하는 걸 지금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br><br>끙끙대면서 해야 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증언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로<br>(그 당시 개념을 지금 현대의 개념과 일치시키기는 어렵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인너'라는 포지션이 분명 개념상 있었습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인너'포지션을 팀의 주공격 루트로 사용한 팀도 있었습니다. 현재 하는 용어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놓으면 편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이게 또 아니라서 더 힘든 문제였지요...핸드볼 하는 분들이 아는 '인너' 라는 포지션과 축구의 '인너'포지션이 같은 포지션입니다. 핸드볼의 한 갈래는 축구쪽에서 있거든요)<br>그런 부분들까지 감안하면서 하느라 하루에도 몇차례 머리가 빙빙 돌았었지요...결국은 완벽하게 맞추지 못하고 경기당 퍼즐 맞추기를 많이 해야했습니다. 사실 당시 폼이션이나 전술 등을 고려하지 않은 '폼 제작자'에 대해서 투덜도 많이 댔어요.<br>(CM4의 데이터&nbsp;에디터 일을 했을 때에도&nbsp;이런 일 많았습니다)<br><br>그동안 윤형진군이 큰 역할을 해 줬습니다. 자비를 들이기도 하고 협회의 도움을(국제부의 송기룡 부장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받아 아시아 여러 나라의 도서관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기 기록뿐 아니라 선수 로스터 등을 확보한 부분이 생겼습니다. 퍼즐이 점점 맞춰지고 슬슬 그 퍼즐이 모인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입니다.<br><br>그리고 그 결실이 '붉은악마 그 60년의 기록'이었습니다.<br>출판문제를 놓고 결국 공동출판이 되었지만 사실상 그 기록은 윤형진군의 금자탑입니다.<br>첫 시작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을 지 몰라도 정말 '우공이산'급의 일을 해 내준거지요. 난 그래서 윤형진군이 자랑스럽습니다.<br><br>이 과정에서 정말 아쉬운 것이 옛 축구자료의 발굴이었습니다.<br>슈타인호프님같은 아니 그러한 예시해준 만큼의 운을 만나지 못했습니다.<br>윤형진군도 아시아 곳곳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는데 때로는 좋은 운을 만났고, 때로는 그렇지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떠야 했던 적도 많답니다.<br><br>아직 그 이야기의 빈 자리는 많습니다.<br>저와 윤형진군은 지금도 구 소련에서의 양대 스타중 하나인 올레흐 블로힌으로부터 '나의 후계자'라는 찬사를 받은 미하일 안에 대해서 더 알고 싶고, '소련 축구의 1세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중앙아시아의 까레이스키들의 축구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습니다.<br>타슈켄트나 알마타 등지의 도서관에서 까레이스키 축구선수들의 활약이 담긴 한줄의 기사가 나오기를&nbsp;애타게 기다립니다.<br><br>슈타인호프님의 그 글을 좀 늦게 읽었습니다.<br>그 몇줄 몇장의 세월의 편린에 내가 찾고 싶은 자료가 있었는데 없어졌다면...갑갑하지요 대체할 자료를 찾을수 없는 상황에선 한숨만 나올뿐이니까요.<br><br>언젠가 중앙아시아로 가서 거기 도서관을 섭렵하고 다닐 날이 올까요?<br>새벽에 집에 돌아가면서 열심히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나 들어야겠습니다.<br><br>아직도 윤형진군과 저의 그러한 정리작업은 계속됩니다. '붉은악마 그 60년의 기록'은 종착점이 절대로 아닙니다. 일단 급한 마음에 이정표 하나를 살짝 박은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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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축구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tirano.egloos.com/1968888#comments</comments>
		<pubDate>Mon, 16 Nov 2009 19:56:32 GMT</pubDate>
		<dc:creator>홍차도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이글루스 축구팬 여러분께 내드린 문제의 답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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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몇일 전 이러한 문제를 냈습니다.<br><a href="http://tirano.egloos.com/1964447"><br>http://tirano.egloos.com/1964447</a><br><br>많은 분들이 답을 내 주셨습니다만...<br>아쉽게도 근사치에 접근한 답이 두엇 있었습니다만...<br>정답자는 아쉽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br><br>정답자와 이유를 밝힙니다.<br><br><strong><span style="FONT-SIZE: 130%">서동렬</span></strong><br><br>님이 정답입니다.<br><br>아마 PC통신 하이텔 때부터 축구팬이셨던 분들도 낮설 이름이실 겁니다.<br>그러나 1995-1997까지 인터넷의 유저들, 특히 유럽 및 남미의&nbsp;축구유저들에게 있어 '한국 축구'는 곳 '서동렬' 로 통했습니다.<br>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한국축구 관련으로는 유일한 '영문 웹사이트'를 운영하신 분이기 때문이 그렇습니다.<br><br>포항공대 홈페이지 안에 있던 SOCCER KOREA 라는 홈페이지가 바로 서동렬님의 홈페이지였습니다.<br>당시 워낙 인기가 있어 포항공대 홈페이지 안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br>서동렬님은 포항 팬 분들중 1세대로 유명하고 당시 하이텔 축구동 안에서도 라데 보그다노비치의 집에 가서 직접 인터뷰(라데의 집에 인터넷 설치 다 해주신 분이기도 하죠)도 했었고, 포항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올려주신 분입니다.<br><br>스틸야드에서 결혼식을 하겠다! 는 본인의 소망은 이루지 못했지만 포항에서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바로 스틸야드에서 경기 관전을 한 뒤 신혼여행을 간 포항의&nbsp;전설중 한분으로도&nbsp;유명합니다.<br>(그분의 전설중 하나는 017 커플 무제한 요금의 신화로도 유명하시지만...이건 패스~)<br><br>당시까지는 한국축구에 대해선 키워드는 '정몽준' '차범근'도 있었지만 '김흥국'은 키워드라기 보다는 '한국의 웬 유명한 축구팬' 정도였습니다. 지금 위상과 비교한다면 멕시코 대표팀을 따라다니면서 응원하는 한 가족이 유명한데 그분과 비슷한 레벨이시죠.<br>(바셋님의 제보로는 김흥국씨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 응원을 위해 태극기를 휘드르는 모습이 한국축구를 소개할 때 자주 등장했다고는 합니다. 다만 이번 문제는 '인터넷 안'이므로 김흥국씨는 당연히 제외될 수 밖에 없습니다)<br><br>그러나 서동렬 씨는 그야말로 당시엔 '한국축구에 대해선 포털(관문)'이었습니다.<br>지금처럼 대한축구협회가 웹사이트도 없고, 기록 정리도 전산화가 거의 안되었을 때(2006 월드컵을 앞두고야 기초전산작업이 끝났습니다)였고, 언론사중에서도 영문 사이트를 열어서 한국축구관련 DB를 운영하는 곳은 없었습니다.&nbsp;단편 기사는 있을지언정 리그 전체에 대한 기록이나 그런건 전혀 없던 시절이지요.<br>때문에 한국대표팀 및 프로리그에 대한 어떠한 것이라도 보려면 당연히 서동렬님의 '사커코리아'만이 유일한 창구였던 때입니다. 그렇기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유저들은 한국관련 축구정보를 보려면 무조건 서동렬님의 '사커코리아'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당시 어찌어찌해서 알게 된 유즈그룹의 유저들이 '서동렬'의 사커코리아로 자료를 찾았다는 말을 많이 했었고 그만큼 많이 알려지셨던 것을 직접 확인하면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일부 나라에선 차범근보다 서동렬님이 당시 더 알려졌을 정도니 말 다했죠.<br>당시 일본과 경쟁이 붙었던 2002 월드컵 유치 때문에 서동렬님의 홈페이지 대문에는 2002worldcup KOREA라는 당시 월드컵 조직위원회의 앰블럼 등이 붙어 있고 했었습니다.<br><br>이러한 인터넷 초기의 한국축구를 알리는데 기여한 사이트입니다만 1996년 이후 운영이 어려워집니다.<br>서동렬님의 학업 관련 문제로 업데이트 등이 힘들어졌고 이후 많은 사이트들이 생겨서 서동렬님의 선구자적인 업적을 계승하게 됩니다.<br>당시 조금 아쉬웠던 것은 인터넷 접속 요건이 조금 더 편해져서 집에서도 가능했다면(저도 인터넷 쓰려면 01410의 PPP서비스보다는 학교가서 LAN 사용하는걸 선호하던 때였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공동작업으로 참여해서 거대하게 발전할수 있지 않았을까 했습니다...이점은 좀 아쉽긴 합니다.<br><br>결국 해당 홈페이지는 현재 포항공대에서도 삭제되어 보이지 않습니다.<br>그러나 1990년대 중반 무렵 홀로 인터넷의 바다에서 '한국축구'라는 타이틀로 그것도 유일한 영문 사이트로 전 세계에 한국축구를 알린 서동렬님의 공은 무척이나 큽니다.<br>그러기에 짤막 문제로 내 보았습니다.<br><br>너무 한정된 부분이기도 해서 정답자 나오기가&nbsp;어렵지 않느냐는 '답변제외자'분들의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서동렬님의 업적을 생각해 보고자 낸 문제였습니다.<br><br>이번 문제의 정답자는 아쉽게도 없었습니다.<br>다음의 이벤트는 조금 더 쉬운 문제를 내 볼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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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축구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tirano.egloos.com/1966851#comments</comments>
		<pubDate>Tue, 10 Nov 2009 07:29:35 GMT</pubDate>
		<dc:creator>홍차도둑</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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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포항 2:1 알 이티하드 (경기종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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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전체적으로 볼 땐 알 이티하드가 이겨도 이상할 것 없는 경기였다.<br>그만큼 양팀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능력은 팽팽했다. 몇차례의 기회가 알 이티하드가 성공시켜주었다면 승부는 포항의 발리기로 끝났을지도 모른다.<br><br>어쨌건 결과는 포항의 우승.<br>그리고 경기 내용은 나무랄 데 없는 그것이었다.<br><br>알 이티하드 선수들은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br>어느 팀이 우승하더라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경기를 보여주었고, 알 이티하드와 포항은 결승전에 걸맞는 경기를 보여줬다.<br><br>세세한 부분에 대해 쓸 것은 많다.<br>김형일 선수가 이번 경기의 MVP로 결정된 모양이다. 그럴 만하다 결승골의 기록자이자 알 이티하드의 공격수를 몸을 던져내며 막아냈으니까. 더구나 아버님의 부음도 있었으니 그의 맘은 더더욱 감격하고 남자의 눈물을 흘렸으리라.<br>(아이고 결국 첫골 기록자인 노병준선수가 경기 MVP가 되었군요)<br><br>&amp;<br>포항의 오까야마 선수에게도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br>그는 비록 결승전에 뛰지는 못했지만 기자회견에서도 일본 기자들에게 '포항을 응원해 달라'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인 사람이다.<br><br>포항의 2009년의 긴 여정에서 두개의 컵을 들어올렸다.<br>이제 남은 것은 12월에 결정되는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의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를 포항 팬들은 기대할 것이다.<br>고때쯤이면 과메기도 익어가겠다. 한번쯤 포항에 갈만한 그럴 때다.<br><br>스틸러스의 우승을 축하한다.<br>포항에서 직접 원정을 간 분들은 아름다운 도쿄의 밤을 즐기고 오시라~<br><br>PS : R.P.M 분들...가고 싶었지만 못가서 죄송할 뿐.<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07/75/a0016075_4af5626ef350b.jpg" width="500" height="334.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07/75/a0016075_4af5626ef350b.jpg');" /></div>2년전 포항이 우승할 때 포항 서포터분을 찍은 사진이다.<br>열정. 오늘 그들의 승부에 걸맞는 단어다.<br><br>PS2 :&nbsp;경기 끝나고 세레모니에서 오까야마가 관중석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응원 리더에게서 마이크 받아서 뭔가 외치고 힘찬 손놀림을 하는데(이거 무슨 미노와 맨의 승리세레모니 같았다)...아 가슴 뭉클하다.<br><br>그에게 있어 오늘은 그의 인생에 또다른 기념일이 되었을 것이다.<br>아마 일본 언론들은 오까야마의 '남자의 눈물'에 대해 쓰겠지.<br>그렇다 그는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영원히 그 날의 긴장감을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길고 어쩌면 짧은 그 긴장의 순간들을.<br>그리고 2009년에 끝났을지도 모른 자신의 선수생활을...단순 연장이 아닌 최고점으로 올려준 포항을 잊지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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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축구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tirano.egloos.com/1966022#comments</comments>
		<pubDate>Sat, 07 Nov 2009 12:04:02 GMT</pubDate>
		<dc:creator>홍차도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포항 2:1 알 이티하드 74분(후반29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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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김형일의 골...완전 의도한 골 되시겠다.(후반20분)<br>이거 뭐 김형일 선수가 헤딩하면서 공의 궤적...내지는 목적지가 어디쯤인지 뻔히 보고 있더구만...이런 경우의 헤딩이면 해보면 알겠지만 골키퍼에게 걸리지 않는한 거의 그대로 간다. 완전 의도한 플레이고 평소에 연습했던 패턴 중 하나다.<br><br>파리야스의 그 환호 나왔다. 이쯤되면 완전 잡았다는 환호.<br>파리야스가 아무리 2:0 났다 해도 그런 환호는 잘 안보여주는데 시간상, 정황상 완전히 승부의 흐름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고 선수들을 독려하는 그런 모습이기도 하다.<br><br>슬슬 포항이 힘을 낼 시간이 다가왔다.<br>잘 보시면 보이겠지만 포항의&nbsp;공격수들의 포지션이 계속 바뀌고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br>스테보가 가운데에서 수비들의 진을 빼 놓고 주변의 두 선수가 계속 스위치로 힘을 빼놓은뒤 후반전 되면 세 톱이 아닌 투톱, 그리고 노병준이 살짝 뒤로 빠지면서 돌아들어가기도 하는 등, 셋이 움직임의 폭이 커져버린다. 전형적인 수비수들의 힘을 뺀 뒤 흔들어버리는 방법의 정석이다.<br>스테보가 나가고 빠른 선수가 들어왔다는 것은 이제 그 흔들어 버리는 틈을 크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br><br>아이고...글 열나게 쓰는 동안에 골 허용했다.<br>거 참...중간에 긴장 끊기면 난리난다고 했잖으...<br>이거 시점이 모호할 때 골 허용해 버리고 말았다. 이게 살아나면 골치아프다. 앞으로 남은 약 15분 좀 넘는 시간...<br>수비들이 긴장 풀면 절대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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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축구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tirano.egloos.com/1966016#comments</comments>
		<pubDate>Sat, 07 Nov 2009 11:33:04 GMT</pubDate>
		<dc:creator>홍차도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포항 1:0 알 이티하드 57분(후반12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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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후반 초반 상당히 밀리는 모습에선 돌아가시는줄 알았다. 전반에도 그러더니만...아주 중간엔 두어차례 계속해서 공격당하고 할 땐 정말 겁났다...아까 글에서처럼 수비들이 약간이라도 긴장 풀었다면 여지없이 골을 먹었으리라...<br><br>노병준의 프리킥은 그야말로 빈틈을 그냥 찔른 것이라 밖에 할말이 없다.<br>공 두개 사이의 빈틈...그 빈틈으로 들어간 골은 골키퍼가 알아도 못잡는다. 이미 몸이 늦어버렸거든<br><br>아놔 이번에 갈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긴 든다 어허허허.<br>포항이 공세로 들어가고 있다. 포항 이럴때 무섭다. 리듬 한번 타면 무서운게 포항이다.<br>하지만 아까 쓴 글과 달라진 것은 없다.<br>양팀 수비의 긴장이 풀어지면 그 경기는 그대로 밀릴 것이다.<br>양팀의 수준은 그렇다. 정말 긴장타는 경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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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축구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tirano.egloos.com/1966014#comments</comments>
		<pubDate>Sat, 07 Nov 2009 11:18:41 GMT</pubDate>
		<dc:creator>홍차도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포항 0:0 알 이티하드 전반종료 ]]> </title>
		<link>http://tirano.egloos.com/196601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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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경기 흐름이 별로 끊어지지 않고 잘 움직이고 있다. 아직은 0:0 양팀 공격수들의 마지막 마무리 등이 약간 거슬리지만 그래도 좋다.<br>전반에 어디가 되었건 선제골을 넣었으면 경기는 더 역동적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br><br>예상대로 스테보-데닐손-노병준 라인.<br>예상과 다른 부분이라면 난 스테보-데닐손 투톱에 노병준을 약간 처지게 하지 않을까 했는데 현실은 스테보를 가운데에 데닐손과 노병준은 측면에서 계속 돌아가는 식이다.<br><br>황진성이 나올줄 알았는데 안나온 부분을 보니 프리킥이 별로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나...황진성의 가끔가다 터지는 프리킥은 사람 환장하게 나오는 때엔 꼭 터지는지라 한번쯤 기용하지 않을까 싶었는데...<br><br>수비진은 지금까지는 괜찮다. 수비쪽에서 분명 승부가 갈릴 것이라 양팀 감독은 생각한게 맞다.<br>그러면서 앞에서는 '공격축구'운운했지...^^ 뭐 이건 훼이크는 아니다. 양팀의 공격은 계속해서 팬들과 경기장의 선수들을 긴장시킨다. 문제는 이 긴장감을 일순간이라도 풀리는 팀이 지게끔 경기가 흘러가고 있다.<br>팽팽한 이런 경기에서의 승부는 단 한순간으로 끝나고 더 이상의 만회의 기회가 없는 경우는 많다.<br>마지막까지 그 긴장의 끈을 당기고 놓치 않는 팀이 이기겠지...물론 여기서 더 한 고수라면 슬쩍 늦췄다 땡겼다 하면서 낚시에서 월척 낚을때의 그런 전술을 들고나오겠지만...양팀 선수들의 상황은 그게 아니다. 그래서 지금 공격축구다.<br><br>양팀은 지금 잔수를 부리지 않고 있다. 일단 정공법으로 골을 넣겠다는 것이 너무 잘 보이는 경기다.<br>그러면서도 흐름이 끊기지 않고 경기 흐름을 가져가는 것. 양팀에 감사할 뿐. 오랫만에 즐거운 경기를 신나게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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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축구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tirano.egloos.com/1966010#comments</comments>
		<pubDate>Sat, 07 Nov 2009 11:00:12 GMT</pubDate>
		<dc:creator>홍차도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2009 밝달가마 전시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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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인사아트센터 5층에서 열리고 있는 밝달가마 전시전에 다녀왔습니다.</p><p>&nbsp;</p><p>지인의 소개로 가보았는데 괜찮았습니다.<br>주로 다완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p><p>&nbsp;</p><p>밝달가마는 여상명 선생님께서 운영중이신데 이 분은 차도 같이 재배하시고 그러다보니 같이 가마도 하셔서 두가지를 다 하시는 분입니다.<br>(역시 가로사진은 누르면 커집니다)<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06/75/a0016075_4af33ee4156df.jpg" width="500" height="33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06/75/a0016075_4af33ee4156df.jpg');" /></div>전시장의 메인인 곳입니다.</p><p>돗자리를 깔아서 다실 분위기가 납니다. 운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06/75/a0016075_4af33f07e4f64.jpg" width="500" height="33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06/75/a0016075_4af33f07e4f64.jpg');" /></div></p><p>꽃꽂이로 장식된&nbsp;다기들이 놓여 있어서 좋은 분위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공간의 분위기를 참 좋아라 합니다 ^^<br>이런 씀씀이 덕인지 단순한 다완, 다기 전시회로 보이지는 않습니다.<br>이 전시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일본에서도 전시회를 한다 합니다. 교토에서 한다 하네요</p><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06/75/a0016075_4af33f49c895c.jpg" width="500" height="33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06/75/a0016075_4af33f49c895c.jpg');" /></div><p>일반인에게도 판매중인 다완들입니다. 종류가 많습니다만 약간 가격이 있습니다. 저렴한 것이 세개 만원이었던가 했습니다. 이 사진에 나온 것 외에도 많은 종류가 있으니 한번 가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br><br>전시실 내에서는 진행해 주시는 분들이 차를 직접 만들어 주십니다. 화로에서 숯불로 직접 물을 끓여서 주십니다.</p><p>차는 밝달차에서 만든 여러 차들을 주시는데 맛이 참 좋았습니다. 마신 것은 밝달차중에서 산빛차입니다. 차의 이름들도 한글로 이쁘게 지어서 좋았습니다.<br>더구나 차맛도 좋았어요. 감칠맛이 가득한데다가 향도 좌악 오는게 '아 좋구나' 하는 느낌이 팍 올 정도였습니다 ^^&nbsp;<br><br>11/10일가지 인사아트센터(5층)에서 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들러보는 것도 어떠실까 합니다.</p><p>밝달차도 현장에서 잘 하면 살수 있을지도 모르게습니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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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Tea Time</category>

		<comments>http://tirano.egloos.com/1965580#comments</comments>
		<pubDate>Thu, 05 Nov 2009 21:10:51 GMT</pubDate>
		<dc:creator>홍차도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이글루스 축구팬 분들에게 작은 문제를 내봅니다. ]]> </title>
		<link>http://tirano.egloos.com/196444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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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한국에서도 사용이 가능했습니다.<br>이 인터넷을 통해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여러 곳(뉴스그룹, 유즈넷 등)에서 만나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고 PC 통신이라는 '특정 서비스만의 문화'에서 벗어나서 마음대로 여러 서비스를 옮겨다닐 수 있었습니다.<br><br>자 여기서 문제입니다.<br>인터넷 초기라 할수 있는 1995-1997년 사이에<br>인터넷 안에서 한국 축구에 대해서 가장 유명한 분은 누구였을까요?<br><br>차범근일까요? 허정무일까요? 아니면 0-9로 진 한국 대표팀일까요? 아니면 1966년 이탈리아를 1-0으로 북한이 꺾을 때 결승골을 넣은 박두익(북한) 일까요?<br>(참고로 1991년쯤 여행 다닐 때 박두익 님의 이야기는 좀 듣긴 들었습니다. 선수 이름은 기억 못해도 그 사건은 뚜렷하다면서)<br><br>이 문제에는 경품 걸겠습니다.<br>대단한것은 아니고 문화상품권 두장 걸겠습니다.<br>정답을 정확히 맞추시는 분께 문화상품권 두장 드립니다. 농담 아닙니다.<br><br><strong>답은 있습니다. 저만의 기준일지는 모르지만 분명 당시 '인터넷' 안에선 한국축구에 대해선 가장 알려진 분입니다.<br>힌트를 약간 드리자면 차범근과 정몽준은 기본으로 들어갑니다. 차범근은 레전드로. 정몽준은 당시 월드컵 유치를 위해 엄청 날라다니신 관계로 인터넷에선 꽤 알려진 유명인사셨습니다.<br><br>이 두분이 아닌 다른 한 분이 더 있습니다. 그 분이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br>(참고로 축구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시 인터넷 안에서는 차범근, 정몽준과 맞먹거나 한때는 더 '한국축구' 하면 그분 이름이 나왔을 정도였습니다)<br></strong><br><br><br>PS : 이 문제에 대해서 이글루의 축구팬 분들 중에 제가 확인한 결과...정답을 알고 계신 분들이 몇분 계십니다. 또한 정답을 알고 계시는 분들 중 저와 오랜 지인관계로 알고 계시는 분들의 참여를 제한합니다.<br>이글루저 중에서는(존칭생략, 닉네임만 거론하겠습니다) 바셋, _tmp, Red Scarf, 부평의K&nbsp;님은 참여하지 말아주시고 ^^<br>그리고 여기 자주 들르는 비로그인 중 윤형진님도 참여 불가입니다.<br><br>그리고 이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긴급히 이글루를 만드신 분들도 사양합니다. 최소 1년 이상 활동하신 분에 한합니다.<br><br><br>추가 : 답변 마감일은 11월 10일 오전 00시 10분입니다.<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인물은 2명까지 가능합니다. 두분중 한분이 맞으면 맞는걸로 하겠습니다.<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등위순서는, 1먼저리플단분 &gt;2 두명 꼽았을 경우 앞에 쓴 사람이 맞는 경우 &gt; 3 왜 그런지 이유까지 설명하신 분<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으로 등수 정합니다.<br><br>11월 2일 오후 2시 45분 현재 챈들러빙님께서 선두를 달리고 계십니다 ㅎㅎ<br><br><br><br>추가 또 : '인터넷'이라 함은 1995-1997 정도에서는 국내 사이트는 많이 없었습니다. 순수히 국내 사이트나 유즈그룹 등이 아닌 외국 쪽의 유저들에 한한 부분입니다. 뉴스에 많이 나온 것이 기준이 아닙니다. ^^<br>유력한 후보자로 많이 생각하는 '김흥국'은 뷰 수는 좀 있는건 사실이긴 합니다만, 이번 문제와는 큰 상관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고로 '김흥국'을 답으로 적으신 분들은 어서 수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ㅎㅎ<br><br>정답을 발표하면 놀라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분이 엄청 유명했던 분입니다. 물론 '특정 그룹에만 유명한 사람이 아니냐?' 라는 비난이 나올수 있겠습니다만. 그 부분은 감수할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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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축구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tirano.egloos.com/1964447#comments</comments>
		<pubDate>Mon, 02 Nov 2009 04:26:18 GMT</pubDate>
		<dc:creator>홍차도둑</dc:creator>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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