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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파라치님의 이글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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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歸去來兮...</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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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Nov 2009 01:57:4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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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파라치님의 이글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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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문제는 없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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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Verdana"><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18/74/e0078474_4b04038e96054.jpg" width="500" height="331.96721311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18/74/e0078474_4b04038e96054.jpg');" /></div><br><span style="FONT-FAMILY: Serif">삶에는 본래 아무런 문제가 없다.<br>문제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br>그것이 바로 삶의 유일한 문제다.<br></span><br><br></span><br/><br/>tag : <a href="/tag/인생" rel="tag">인생</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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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飛上</category>
		<category>인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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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Nov 2009 14:23:25 GMT</pubDate>
		<dc:creator>파파라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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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지는 걸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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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사회 복지가 스웨덴 수준이 아니면 지는 걸까?<br>여성 인권이 뉴질랜드 수준이 아니면 지는 걸까?<br>부역자 청산이 프랑스 수준이 아니면 지는 걸까?<br><br><br>우리는 자신을&nbsp;누군가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br>그저&nbsp;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br>좌파나 우파나&nbsp;"루저 마케팅"은 그만했으면 좋겠다.<br><br><br><br/><br/>tag : <a href="/tag/루저마케팅" rel="tag">루저마케팅</a>			 ]]> 
		</description>
		<category>세상보기</category>
		<category>루저마케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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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Nov 2009 05:32:15 GMT</pubDate>
		<dc:creator>파파라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4대강 저지 국민소송 참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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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4대강 저지 범대위에서 추진하는 국민소송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참가비도 냈다.<br>대체로&nbsp;"OOO범대위" 같은 단체들을 수상쩍게 보는 편이지만, 이번 소송은 범위와 목적이 뚜렷해 단체의 성격과 상관없이 참여할만 하다고 판단했다.<br>헌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길 기원한다.<br><br><br/><br/>tag : <a href="/tag/4대강죽이기" rel="tag">4대강죽이기</a>			 ]]> 
		</description>
		<category>세상보기</category>
		<category>4대강죽이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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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Nov 2009 09:06:45 GMT</pubDate>
		<dc:creator>파파라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초월에 대하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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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인간은 태어나면서 모체로부터의 분리를 경험한다.<br>이는 곳 자연과 분리된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신을 경험함을 말한다.<br>인간의 모든 불안과 공포는 자아의 분리에서 오며,&nbsp;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br><br>인류 전체를 말하면,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이성을 획득했을 때가 분리를 경험한 순간이었을 것이다.<br>하지만 아이가 자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듯, 인간은 동물과 같은 전의식(前意識)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br>인간은 다만&nbsp;&nbsp;에고를 초월하여 우주적 의식(브라흐만)을 깨달을 때만이 근원적 분리를 극복할 수 있다.<br><br><br/><br/>tag : <a href="/tag/우파니샤드" rel="tag">우파니샤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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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飛上</category>
		<category>우파니샤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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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Nov 2009 09:03:19 GMT</pubDate>
		<dc:creator>파파라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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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Your desire is your destiny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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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br><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Verdana">You are what your deep, driving desire is.<br>As your desire is, so is your will.<br>As your will is, so is your deed.<br>As your deed is, so is your destiny.<br><br>&nbsp;&nbsp;&nbsp; (Brihadaranyaka Upanishad Ⅳ.4.5)</span><br/><br/>tag : <a href="/tag/우파니샤드" rel="tag">우파니샤드</a>			 ]]> 
		</description>
		<category>飛上</category>
		<category>우파니샤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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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Nov 2009 03:48:53 GMT</pubDate>
		<dc:creator>파파라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위선의 필요성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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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영화화되어 상당한 관객수를 동원했던 공지영씨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보면 주인공의 고모인 수녀가 위선에 대해 하는 말이 있다.<br><br>"나는 위선자라고 하는 사람을 탓하진 않아. 그 사람들은 최소한 뭐가 올바른지는 아는 사람들이야. 문제는 위악을 행하는 사람들이지"(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다)<br><br>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위선은 불가피한 요소이다. 우리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만나면 인사를 하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에도 감사하다고 하며,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도 신세를 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위선적"인 처세들은 사회 생활에서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br><br>프로타고라스는 페리클레스가 위선자라고 불평하는 제자에게 "흉내라도 내 보도록 하게. 그러는 동안에 지금보다는 현명해질 것이니"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위선이란 불완전한 인간이 보다 사회적으로 원만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규제하는 초자아(Super-ego)와 같은 것이다.<br><br>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외모를 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특히 내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외모에 의해 호감을 갖거나 비호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위선"이 그런 우리의 속마음을 공공연히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고, 외모가 부족한(?) 이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삼가하도록 하는 것이다.<br><br>말초적인 자극을 쫓는 자본주의 탓인지 "허위의식"을 폭로하기 여념이 없는 좌파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어느새 위선을 경멸하고 좋지 않은 의미로 바라보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돈을 좋아하며 출세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에는&nbsp;그런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위선을 싫어하고 솔직함을 선호하게 된 오늘날, 사람들이 드러내는 "진심"은 차라리 드러내지 않느니만 못한 것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br><br>영화 "스캔들"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척하다가 정말로 사랑에 빠지고 만다.&nbsp;내심 믿지 않는 도덕율도 겉으로라도 행해다 보면 어느 정도 내면화되기 마련이다. 윤리적으로야 음욕을 품는 것과 간음을 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연히 전자가 덜 해롭다. 모든 인간이 뼛속까지 선해질 수 없다면, 겉으로라도 선해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은 100% 이기적이지도, 그렇다고 100% 이타적이지도 않은 복잡한 존재이다. 그런 인간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거라면, 위선의 역할을 꼭 부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br><br/><br/>tag : <a href="/tag/루저의난" rel="tag">루저의난</a>,&nbsp;<a href="/tag/위선" rel="tag">위선</a>			 ]]> 
		</description>
		<category>세상보기</category>
		<category>루저의난</category>
		<category>위선</category>

		<comments>http://sukyoon.egloos.com/2748279#comments</comments>
		<pubDate>Fri, 13 Nov 2009 05:20:46 GMT</pubDate>
		<dc:creator>파파라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루저 발언 관련 생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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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한 여대생의 생각없는 발언이 이렇게까지 이글루스를 뜨겁게 달굴 줄이야... 역시 남녀(여남) 문제는 시들지 않는 떡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까지 열낼 일인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와 여자의 삶이 고달프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br><br>재미있는 것은 지난번 꿀벅지 사건때와 비교해 볼때 발견되는 차이점이다. 꿀벅지 사건때 목소리를 높인 것은 소수 페미니스트들이었고, 일반 여성들은 그에 동조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도 그렇고, 남자들의 분노는 언제나 다수 남성들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 여자가 남자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누구나 주지하는 사실인데, 정작 이런 사회적(?) 이슈에서는 언제나 남성의 목소리가 더 크고 더 많이 들린다.<br><br>화장실 낙서를 근거로 남성은 여성보다 정치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지만(출처:이원복의 세상만사), 이것이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적 학습의 결과인지 아니면 남녀와 원래 성향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들이 지금보다는 더 많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br><br/><br/>tag : <a href="/tag/루저의난" rel="tag">루저의난</a>			 ]]> 
		</description>
		<category>루저의난</category>

		<comments>http://sukyoon.egloos.com/2747072#comments</comments>
		<pubDate>Thu, 12 Nov 2009 05:50:21 GMT</pubDate>
		<dc:creator>파파라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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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박정희 신드롬의 이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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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100%" align="center" border="0"><tbody><tr><td style="LINE-HEIGHT: 18px"><div class="blogtext" id="contentboardbody" style="OVERFLOW: hidden; WORD-BREAK: break-all">5,6년 전쯤에 한토마에 올렸던 글이다. 개인적으로 그때와는 생각의 시차가 존재하는 듯한데, 일반적으로 이 문제를 보는 시각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붉은 광장에 안치되어 있다는 레닌의 시체마냥 아직도 썩지않고 두고두고 숭배 또는 부관참시되는 박정희를 그만 무덤으로 내려주어야 하지 않을까.<br><br>---------------------------------------------------------------------------------------<br><br>왜 대한민국의 40대 후반 이상 장년/노년층은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가?<br><br>단순하게 국가 권력에 의한 상징 조작과 보수 언론의 선동의 결과라고 생각해 버리면 간단하겠지만, 민중은 오류를 범하긴 해도 어리석지는 않다. 분명 박정희 신드롬의 이면에는 "강력한 지도력"에 대한 환상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장/노년층 세대의 집단적 체험이 박정희라는 개인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br><br>대한민국의 40대 후반 이상의 세대는 한마디로 "경제개발 세대"이다. 이들은 가난과 끊임없는 안보 불안 속에서 경탄할 만한 노력과 희생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냈다. 비판적 진보의 눈으로는 문제투성이의 대한민국이고 그래서 그 과정마저도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지만,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피땀으로 잿더미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중심에 박정희가 있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박정희의 부정은 자신들의 지나온 세월과 노고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br><br>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배우게 되면, 특히나 정치사를 중심으로 공부하게 되면 대한민국을 부정적인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이다. 피점령국으로서의 출발, 친일파의 득세와 그들에 의한 민중 학살,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지도층의 온갖 비리와 이를 뒷받침한 독재권력... 진보진영 중 상당수가 "한민족의 정통성은 북한 정권에 있다"는 생각을 명시적으로건 암묵적으로건 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br><br>그러나 이런 생각은 지나치게 제도권 정치를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엘리트 중심적인 시각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사실 왕조시대도 아니고 정통성 운운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짓거리라고 생각하지만)은 유엔의 승인도, 상해임정의 법통도 아닌, 대한민국의 민중의 피땀과 노력, 그리고 그것이 이룩한 성과에 존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린 나머지 이러한 역사에 대한 민중의 자연스런 자부심마저 부정해 버리게 될 때, 진보는 민중과 유리된다. 박정희 신드롬에 대한 진보의 시차는 바로 여기에 있다.<br><br>박정희는 우리 아버지 세대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모두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의 권력지향성, 정치적 변절, 일제시대에 대한 향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무감각과 함께 강렬한 사명의식,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 현실적이고 자신의 노력에 의해 운명을 개척하려는 자조정신 등이 혼재되어 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일면을 들어 분명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아버지 세대들을 단칼에 매도하듯, 진보 역시 박정희, 그리고 박정희가 상징하는 60~70년대 우리 민중이 걸어온 길을 송두리째 부정해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br><br>일부 시대착오적인 자칭 우파&nbsp;세력의 정략적인 박정희 신화 조성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그는 과거의 인물이고 이미 20년 전에 넘어섰어야 하는 인물이니까. 그렇지만 그를 두고두고 되씹으며 부관참시하는 진보의 행태도 바람직하진 않다. 박정희는 뒤틀리고 고난에 찬, 그러나 성취와 감격이 함께했던 우리의 근대사와 함께 남겨두고 그 바탕 위에서(그 바탕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맨땅에 헤딩하는 게 아니라) 좀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nbsp;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노력을 먼저 보여줄 때 박정희의 향수에 젖은 세대도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div></td></tr></tbody></table><br/><br/>tag : <a href="/tag/박정희" rel="tag">박정희</a>			 ]]> 
		</description>
		<category>세상보기</category>
		<category>박정희</category>

		<comments>http://sukyoon.egloos.com/2742064#comments</comments>
		<pubDate>Sun, 08 Nov 2009 07:33:23 GMT</pubDate>
		<dc:creator>파파라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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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어느 소련 병사의 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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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br><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Gulim'">솔직히 고백하지.<br>참호에서 우리는 스탈린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어.<br>주님을 더 자주 생각했지.<br>스탈린은<br>우리 병사들의 전쟁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었어.<br><br><br>- 유리 벨라시 -</span><br/><br/>tag : <a href="/tag/2차대전" rel="tag">2차대전</a>			 ]]> 
		</description>
		<category>끄적끄적</category>
		<category>2차대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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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1 Nov 2009 03:34:00 GMT</pubDate>
		<dc:creator>파파라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산업별 표준임금제의 문제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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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br><br>과거 스웨덴이 실행해서 성과를 거두었고, 지금도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산업별 임금표준화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br><br><br>1. 산별 노조가 결성되어 사용자 단체와 단체 교섭을 한다.<br>2. 교섭의 결과 정해진 임금은 해당 산업의 모든 사업체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br>3. 표준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안되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된다(즉, 문을 닫는다).<br>4. 고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효율화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br>5. 산업의 전반적인 생산성이 향상된다.<br><br><br>지금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국민경제의 원리가 작동하고, 산업이 성장하는 시기에 이 시스템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br>일정 수준의 임금을 강제함으로써 그럴 능력이 없는 저생산성 기업은 퇴출되고, 고생산성 기업이 이를 대신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고생산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편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br>(물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제도의 원조인 스웨덴의 경우, 높은 생산성을 가진 소수의 기업, 즉 수출위주의 대기업이 경제를 사실상 독점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생산성 격차가 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예상되는 결과이기도 하다)<br><br>문제는(몸은 21세기에 살지만 마음은 19세기말/20세기 초를 사는 좌파 지식인들이 언제나 그렇듯)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유효했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br><br><br>1.<br>이 시스템의 핵심은 고생산성 기업이 저생산성 기업의 몫을 대체하는 데에 있다. 즉, 법정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저생산성 기업이 퇴출되면 일시적인 실업이 발생하지만, 장기적으로 그 몫을 고생산성 기업이 흡수함으로써 고용과 생산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것이다.<br><br>경제의 글로벌화가 심화된 21세기 한국에서, 표준임금제를 적용할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저생산성 기업이 무너진 자리를 고생산성 <strong><u>국내</u></strong> 기업이 인수하여 고용을 흡수하기보다는, 해당 기업이 생산거점을&nbsp; 저임금의 해외로 이주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저임금 고용이 장기화된&nbsp;실업으로 대체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br><br><br>2.<br>더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굴뚝경제에서 지식경제로 탈바꿈해가는 현대에 있어서 개인간/기업간 생산성의 격차가 과거보다 심화되었다. 비교적 동질적인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던 굴뚝경제 시대에는 동일한 산업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비교적 동질적인 노동을 수행하고 그 결과물 역시 그러하리라는 전제가 가능했지만, 지식경제 시대에는 들어맞지 않는 소리다. 표준화된 임금과 연공서열에 의한 보상체계는 사민주의가 지배한 서유럽뿐 아니라 미국의 대기업(GM과 같은 굴뚝경제 시대의 강자들)들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급여 체계였지만, 이제는 그 대표격인 일본에서조차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있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동료와도 연봉이 다른(그리고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같은 "업종"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임금을 받게 된다는 것을 누가 수용할까?<br><br><br>3. <br>노동조합이란 일종의 카르텔이다. 통제하는 상품은 노동력이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는 필라델피아 선언을 아무리 들먹여도, 급여를 받는 이상 하나의 상품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카르텔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지속적인 수요가 존재할 때이다. 수요 자체가 급락하면 카르텔은 유지될 수 없다.<br><br>지금 돌이켜보면 20세기 중반은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모든 것이 성장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우리가 군사정권 시대에 체험했듯, 고도성장기에는 실업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고, 따라서 노조는 노동자의 인간적인 처우를 위해 싸우는 존재라는 자신의 존재근거를 확신할 수 있었다.<br><br>현재 모든 선진국들은 예외없이 높은 실업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반면 이미 직업을 가진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각종 혜택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노동의 가격을 올려 실업을 유발하는(사실 적정한 실업이야말로 노조가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적정한 잉여 생산물이 카르텔이 잘 작동하는 근거이듯이) 노조, 특히나 산별 노조는 도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조는 비정규직 문제에도, 실업 문제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데, 노조의 기본 취지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다.<br><br><br>지식인은 미래 지향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과거 지향적이다. 그가 가진 모든 지식은 결국 과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br>오늘날 좌파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의 상당부분은 20세기에나 유효했던 것들이다. 물론 그들이 아직도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20세기의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의 숙제라도 21세기의 해법은 달라야 한다. 이미 많은 한계점을 노정하고 있는 과거의 해법을 고집하는 한 그들은 영원히 "재야의 목소리"로만 남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존재가치를 더 높여주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br><br/><br/>tag : <a href="/tag/표준임금제" rel="tag">표준임금제</a>,&nbsp;<a href="/tag/산별노조" rel="tag">산별노조</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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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31 Oct 2009 14:23:30 GMT</pubDate>
		<dc:creator>파파라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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