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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참 그리스도인의 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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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지구의 운명을 지배하는 손 (다니엘서강해)를 무료로 드립니다. 방명록/댓글/이메일에 지금 신청하세요</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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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Nov 2009 10:26:1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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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참 그리스도인의 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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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4. 용서의 파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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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FONT-SIZE: 10pt"><strong><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span style="FONT-SIZE: 11pt"><span style="COLOR: #7820b9">5분설교 </span></span>4.&nbsp; 용서의 파워</span></span></strong></span></p><p>&nbsp;</p><p><embed onresize="parentResizeIframe('cafe_main')" style="WIDTH: 500px; HEIGHT: 408px" src="http://sostv.org/5minute/5minute4.wmv" type="video/x-ms-wvx" autostart="false" invokeurls="false" allowscriptaccess="never" allownetworking="internal"></p><p>&nbsp;</p><p>&nbsp;</p><div class="NHN_Writeform_Main"><p>&nbsp;</p><p>이 영상은 <a href="http://www.sostv.net/" target="_blank">www.sostv.net</a>의 5분 산책에서 가져왔습니다.</p><p>&nbsp;</p><p>&nbsp;</p></div><br/><br/>tag : <a href="/tag/용서" rel="tag">용서</a>,&nbsp;<a href="/tag/십자가" rel="tag">십자가</a>,&nbsp;<a href="/tag/십자가의보혈" rel="tag">십자가의보혈</a>,&nbsp;<a href="/tag/예수님" rel="tag">예수님</a>,&nbsp;<a href="/tag/회개" rel="tag">회개</a>,&nbsp;<a href="/tag/거듭남" rel="tag">거듭남</a>,&nbsp;<a href="/tag/기도" rel="tag">기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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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Nov 2009 10:26:1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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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3. 일부를 보고 오해하지 말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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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trong><span style="COLOR: #ff0000">&nbsp; <div style="TEXT-ALIGN: center"><strong><span style="COLOR: #ff0000">&nbsp;&nbsp;<span style="FONT-SIZE: 14pt">일부를 보고 오해하지 말라</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span></strong><span style="FONT-SIZE: 14pt"> </span></div></span></strong><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nbsp;</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라디오와 전신기가 발명되기 전인, 나폴레옹 시대에는 수기 신호를 통하여 서로 연락을 취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깃발을 사용해서 천천히 신호를 전달하면,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불란서의 나폴레옹 장군과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워털루 전쟁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모든 영국 국민들이 워털루 전쟁의 승패 여부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서 손에 땀을 쥐고, 수기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년 동안 나폴레옹은 온 유럽을 정복하기 위하여 애를 써왔다. 이제 영국만 굴복시키면, 그의 천하통일 목적은 성취되는 순간이었다. 전쟁의 승패 소식을 전하는 수기 신호를 보기 위해서, 수많은 런던 시민들이 도버 해협의 해안선에 모여들었다. 갑자기 해협 저편에서 수기 신호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서서히 신호가 전달되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웰링턴 패배"(Wellington defeated) 라는 뜻을 가진 신호가 전달되었는데, 갑자기 짙은 안개가 내려서 그 다음 소식은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해협에 모여든 사람들은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패배한 것으로 단정짓고 말았다. 이제 사람들은 런던 시내에서 최후의 일전을 치루기 위한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런던의 시민들은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이틀을 보냈다. 그 때에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으며, 망대에서 수기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이 계속되는 수기 신호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수기신호에 의한 전체 기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웰링턴이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패배시켰다." (Wellington defeated Napoleon at Waterloo) 영국 국민들의 오해와는 반대로 웰링턴 장군의 승리로 전쟁이 종결되었던 것이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인간의 제한된 능력과 편견으로 인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슬픔과 고난에 대한 정확한 이유와 내용을 알 수 없다. 기별의 일부를 보고서 절망했던 런던의 시민들처럼, 하나님께서 고난과 시련이라는 수기 신호를 통해서 보내 주시는 기별의 일부만을 보고서 쉽게 실망하고 좌절해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불신의 안개가 걷히고, 베일이 완전히 거두어질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받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시종일관 우리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 속에 있었지만, 전체의 기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오해하고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재강림하셔서 성도들에게 영광스러운 몸을 주시고, 그분께서 고난과 시련이라는 수기 신호를 통해서 주셨던 전체 기별을 말씀해 주실 때까지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기다리도록 하자.</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고통과 시련 중에 있는 인간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인가? 아직까지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단순히 믿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span> <br></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nbsp;</p><div class="NHN_Writeform_Main"><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a href="http://www.sostv.net/"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www.sostv.net</span></a><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 살아남는 이들&nbsp;73호, 원제:<a class="contentpagetitle " href="http://sostv.net/survivors51-100/82-suvivors-73/795-survivors73-7.html" target="_blank">2부-정확하게 계산된 고통과 시련</a>)</span></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div><br/><br/>tag : <a href="/tag/고통의원인" rel="tag">고통의원인</a>,&nbsp;<a href="/tag/세상고통의이유" rel="tag">세상고통의이유</a>,&nbsp;<a href="/tag/믿음" rel="tag">믿음</a>,&nbsp;<a href="/tag/신뢰" rel="tag">신뢰</a>,&nbsp;<a href="/tag/하나님의섭리" rel="tag">하나님의섭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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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고통의 이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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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 이유가 '이것'이라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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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style="FONT-SIZE: 15pt; MARGIN: 0pt; COLOR: #00008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5pt; COLOR: #000080; LINE-HEIGHT: 24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center"><br>이유가 '이것'이라면</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어려움을 통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었던 사람들이 있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자로 삼으시기 전에, 먼저 그가 40년 동안 어려운 광야 생활을 하도록 섭리하셨다. 또한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기 전에, 먼저 밧모섬에서 수많은 세월 동안 어려운 유배 생활을 하도록 섭리하셨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만족할 줄 아는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라는 영감의 글을 기록하기 전에, 먼저 무수한 고문과 옥중 생활을 경험해야만 하였다(디모데전서 6:6, 한글 킹제임스 성경). 바울은 여러번의 옥중 생활을 통하여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는 원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바울과 요한에게 있어서, 옥중 생활과 유배 생활이 그 당시에는 고난과 시련으로 생각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 끝까지 전파할 수 있는 위대한 성경 말씀을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p></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왜 사람들은 고통을 받아야만 모든 관심을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신다. 우리를 궁극적으로 당신께 인도하시기 위하여 시련과 고난이라는 도구들을 사용하신다고 해서 그분을 원망할 수 있는가? 고통과 시련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인도되는 것이 신비한 것처럼, 많은 경우에 있어서 부귀와 건강, 그리고 평탄한 인생길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도 신비로운 일이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옛날에 어떤 사람이 높은 탑에 갇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탑 아래로 지나가가는 사람들에게 알려서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그가 소리를 크게 질렀지만, 탑 아래의 분주한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래서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순금 동전을 떨어 뜨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금 동전을 줍기 위해서 몰려 들었지만, 금동전에 온 정신이 팔려서 아무도 탑에 갇힌 사람의 상황을 알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무너진 벽으로부터 굳은 회반죽 한덩어리를 떼어 내어서 구멍 밖으로 던졌다. 그런데 그것이 지나가던 어떤 사람의 머리를 쳐서 부상을 당하게 하였다. 그 때, 머리를 다친 사람은 고개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았고, 탑 안에 갇힌 사람의 처지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우리는 이 예화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축복은 자신의 지혜와 노력의 결과로 생기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거두어 들이기 위하여 몰두하지만, 불행과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전하고자 하는 기별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이유를 찾아서</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시련이 지나간 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에 나타난 "말라버린 시냇물"에 대한 이유와 목적을 설명해 주시는가? 결국에는 설명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 설명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오지 않을 경우도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그 때에 왜 그러한 시련이 필요했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까지,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전진해야 한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을 당할 때에 그 이유를 찾아보아야 한다. 한 시냇물이 말라 버리면, 대개는 다른 새로운 샘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몇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시련에 대한 만족할만한 대답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그분께서 속시원하게 설명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비통함과 슬픔을 이해하시며 동정하시는 그분의 위로를 기도를 통하여 받음으로써 견디어야 한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그리스도인들은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고통의 근원은 죄이다. 너무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마귀가 벌여놓은 비극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망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암이라는 질병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시련과 고통을 허락하실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들을 시험하도록 허용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죄에 대하여 경계하는 마음을 갖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안일함과 평안함만이 계속되는 인생이라면, 슬픔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찾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사단이 주는 고통과 시험에 대하여 항상 깨어있는 양심을 가지고 경계하면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공격과 시험을 허락하심으로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항상 깨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하게 되기를 원하신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br></p><div class="NHN_Writeform_Main"><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a href="http://www.sostv.net/"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www.sostv.net</span></a><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 살아남는 이들&nbsp;73호, 원제:<a class="contentpagetitle " href="http://sostv.net/survivors51-100/82-suvivors-73/795-survivors73-7.html" target="_blank">2부-정확하게 계산된 고통과 시련</a>)</span></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nbsp;</p></div></span><br/><br/>tag : <a href="/tag/고통의원인" rel="tag">고통의원인</a>,&nbsp;<a href="/tag/세상고통의이유" rel="tag">세상고통의이유</a>,&nbsp;<a href="/tag/믿음" rel="tag">믿음</a>,&nbsp;<a href="/tag/신뢰" rel="tag">신뢰</a>,&nbsp;<a href="/tag/하나님의섭리" rel="tag">하나님의섭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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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고통의 이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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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Nov 2009 10:12:0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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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1. 눈물의 하나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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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style="FONT-SIZE: 15pt; MARGIN: 0pt; COLOR: #00008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center" align="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5pt; COLOR: #000080; LINE-HEIGHT: 24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center">눈물의 하나님</span></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그대는 외과 의사를 신뢰하는가?</span> </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하나님의 개인적인 사랑과 관심을 체험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관심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비록 자신 앞에 닥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과거에 보여주셨던 그분의 변함없는 약속과 사랑을 위기의 순간에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믿음 하에, 우리는 욥과 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분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 분을 신뢰하리라." 욥기 13:15, 한글 킹제임스 성경</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부모들이 자녀를 외과 의사의 손에 맡기는 절대적인 신뢰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어떻게 사랑하는 자녀의 몸에 외과 의사의 날카로운 수술칼을 대도록 허락할 수 있을까? 또한 수술 후의 심한 통증을 겪게 되는 자녀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부모가 자녀의 몸에 칼을 대는 의사를 신뢰할 수 있는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수술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의사의 기술과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자녀에게 완전한 치료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치료법을 행하는 의사의 지혜를 믿기 때문이다. 또한 순간적인 고통이 지나가면, 자녀가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한 아이로 회복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span> </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가끔 실수를 하는 인간 의사에게 자녀를 맡기는 믿음을 행사한다면,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는 하늘 의사를 믿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이 되겠는가? 어린 아이는 아무리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자원해서 수술을 받기로 선택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의 상태를 자녀 자신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녀를 외과 의사에게 데리고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험과 고난을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서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상태를 완전히 이해하시며, 어떤 종류의 시험과 고통을 어떤 정도로 받아야만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인지를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비록 수술을 받는 당사자가 부모가 아니라 자녀일지라도, 부모는 자녀의 곁에서 손을 잡은 채 안쓰러운 마음으로 긴긴 밤을 지새우는 것처럼,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고통을 통과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애타는 마음으로, 우리가 승리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계신다. 고통과 절망감으로 인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나올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내린다. 우리들이 고통으로 인하여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할 때마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시련을 당하게 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설명해 주실 수 없기에, 하나님의 마음은 더욱 더 답답함과 안타까움으로 메어질 것이다. 자녀들이 자신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고통과 시련의 수술실로 데리고 가는 하나님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span> </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용하시는 모든 고통과 시련의 이유들을 정확하게 보여 주신다면, 우리는 그 놀라운 목적과 결과들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에 대하여 경탄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재강림하셔서 우리를 하늘 우주선에 태우시면서, 우리의 인생에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좌절을 가져다준 사건들에 대하여 우리에게 설명해 주실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당했던 시련들에 대해서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인생을 산다고 할지라도, 동일한 슬픔과 절망과 시련의 경험들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span> </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나는 지난 날에 가졌던 외로움과 절망과 낙담의 경험들이 나의 전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경험들만이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이기심을 만족시키는 안일한 생활이 계속되었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나의 신앙과 믿음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게 쓰디쓴 고통의 잔을 마시는 경험을 허락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내 자신의 모습과 형편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되었으며,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을까? 정말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nbsp;</p><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영원 전부터 세워 놓으신 계획</span><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고통과 시련의 골짜기가 우리를 하늘로 인도하는 준비 과정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일들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일부라고 보아야 한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않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이사야 48:10.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시련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최선의 선택으로 볼 수 있다면, 고난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바울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기 위한 구원의 계획을 세워 놓으셨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에베소서 1:4</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바울이 말한 이 진리를 정말 이해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리를 개인적으로 눈여겨 보아오셨다. 그 무수한 세월을 통하여,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성화시켜서 결국에는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세밀한 계획을 세워 놓으셨다. 그대가 그분의 계획에 복종하는 마음으로 따른다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구원의 계획을 그대의 생애 가운데서 성취시키실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종종 그대에게 아픔과 재난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은 결코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그대의 구원을 위하여 최선의 유익을 가져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필요와 능력에 따라서 우리가 통과하는 시련의 용광로의 온도를 재고 조절하고 계신다.</span> </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이러한 설명이 고통과 고난의 문제를 미화시키기 위하여 꾸며낸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들릴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끝까지 인도하시며, 모든 어려움과 고난에서 건져 주시기 위하여 간섭하신다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이 세상을 불평과 원망과 혼돈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span><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 </p><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전지전능하심에 따라서 각 사람을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과 섭리에 따라서 각 사람을 인도하시는 동안, 그 이유와 목적을 일일이 개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을 믿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보내 주시지 않으셨고, 그 아들 되신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에 대한 불신의 말들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분께서 항상 우리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설명만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믿음과 확신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왜 하나님께서 그러한 고통과 시련을 그들에게 일어나도록 허용하셨는지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아닌 어떤 것을 허락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는 대로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그들 자신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택하신 그 길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span>&nbsp; <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align="justify">&nbsp; <p class="NHN_Writeform_Main"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a href="http://www.sostv.net/"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www.sostv.net</span></a><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 살아남는 이들&nbsp;73호, 원제:<a class="contentpagetitle " href="http://sostv.net/survivors51-100/82-suvivors-73/795-survivors73-7.html" target="_blank">2부-정확하게 계산된 고통과 시련</a>)</span></p><p class="NHN_Writeform_Main"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class="NHN_Writeform_Main"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class="NHN_Writeform_Main"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br/><br/>tag : <a href="/tag/고통의원인" rel="tag">고통의원인</a>,&nbsp;<a href="/tag/세상고통의이유" rel="tag">세상고통의이유</a>,&nbsp;<a href="/tag/믿음" rel="tag">믿음</a>,&nbsp;<a href="/tag/신뢰" rel="tag">신뢰</a>,&nbsp;<a href="/tag/하나님의섭리" rel="tag">하나님의섭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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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Nov 2009 06:19:4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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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3. 왜 날 사랑하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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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trong><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3.&nbsp; 왜 날 사랑하나</span><span style="FONT-SIZE: 11pt">?</span></span></strong></p><p><span style="COLOR: #000000"></span>&nbsp;</p><p><span style="COLOR: #000000">5분 말씀이지만 하늘의 은혜로 채워줄 말씀입니다. </span></p><p><span style="COLOR: #000000">플레이 버튼을 눌러서 꼭 들어보세요!</span></p><p><span style="COLOR: #000000"></span>&nbsp;</p><p><embed onresize="parentResizeIframe('cafe_main')" style="WIDTH: 500px; HEIGHT: 408px" src="http://sostv.org/5minute/5minute3.wmv" type="video/x-ms-wvx" autostart="false" invokeurls="false" allowscriptaccess="never" allownetworking="internal"></p><p>&nbsp;</p><p>이 영상은 <a href="http://www.sostv.net/" target="_blank">www.sostv.net</a>의 5분 산책에서 가져왔습니다.</p><p>&nbsp;</p><br/><br/>tag : <a href="/tag/사랑" rel="tag">사랑</a>,&nbsp;<a href="/tag/하나님의사랑" rel="tag">하나님의사랑</a>,&nbsp;<a href="/tag/찬송가" rel="tag">찬송가</a>,&nbsp;<a href="/tag/5분명상" rel="tag">5분명상</a>,&nbsp;<a href="/tag/5분산책" rel="tag">5분산책</a>,&nbsp;<a href="/tag/은혜말씀" rel="tag">은혜말씀</a>,&nbsp;<a href="/tag/찬송듣기" rel="tag">찬송듣기</a>,&nbsp;<a href="/tag/말씀듣기" rel="tag">말씀듣기</a>,&nbsp;<a href="/tag/5분설교" rel="tag">5분설교</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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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Nov 2009 08:41:0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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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3.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시키는 하늘의 필수과목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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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nbsp;<p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 style="COLOR: #00b0a2"><strong><span style="FONT-SIZE: 14pt">알곡과 가라지를 분리시키는&nbsp;하늘의&nbsp;필수과목</span></strong><span style="FONT-SIZE: 14pt"> </span></span></span></p><p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 style="COLOR: #00b0a2"><span style="FONT-SIZE: 14pt"></span></span></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성경에는 고통이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유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성경절들로 가득차 있다. 베드로는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라고 말했으며(벧전 4:12),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기록하였다(딤후 3:12). 또한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믿기 어려운 말을 기록하여 놓았다.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서 1:2, 3).</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p align="justify"><br><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이러한 말씀 외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들이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고난과 고통은 그리스도인에게 신비스러운 축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야고보는 시련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성품을 준비시켜 주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은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의 특징을 말하면서,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라고 말하고 있다(요한계시록 14:12). 구원받을 자들의 특성 중에서 인내야말로 매우 긴요한 것인데, 야고보는 말하기를 인내는 시험과 시련을 통하여 형성된다고 하였다. 고난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늘을 위하여 준비시키는데 필요한 훈련 과정이다. 고난을 수없이 많이 당했던 다윗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였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67,71).</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이 단순한 하늘의 원칙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될 때까지, 사람들은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마다 의심과 불신의 안개 속을 헤메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사랑에 대한 의문의 미로를 방황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절대로 자신에게 시련과 고통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불가운데로 지나가는 고통과 시험을 허락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불 시험들을 통해서 우리의 모난 성격들과 이기심이 제거될 수 있기 때문에.</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품성과 생애를 정결하게 해달라는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항상 응답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에서 죄와 이기심과 무정한 마음을 제거해 달라는 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제거해 내는 수술인 고난과 시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고난과 시련은 죄와 이기심을 제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유일한 방법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사람들은 계속되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 성화의 길을 걷게 된다.</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말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시련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들의 믿음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고난과 시련에서 오는 슬픔과 충격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로 인한 감정적 스트레스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와 믿음을 저버려서야 되겠는가? 고난과 시련을 믿음으로 통과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거나 최선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아니면, 어떤 일도 일어나도록 결코 허용하지 않으신다는 확신 안에서 쉬는 것이다. 이것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요구하지만, 우리의 영생을 위해서 돌아가신 그분의 사랑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께서 허락하신 일이 내게 일어났다고 생각한다면, 평안한 확신을 가지고 내 앞에 놓인 고난과 시련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때때로 우리가 얼핏 보기에는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비극들이 우리의 생애 가운데로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극 저편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비극 저편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전진할 것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생기게 된다.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에, 한 사람은 똑 같은 시련과 환난을 통과하면서 잘익은 알곡으로 익어가는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같은 시련과 환난을 통과하면서 그것에 압도되어 불평과 원망을 토해내는 가라지로 변모해 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약속만을 붙들면서 전진해 나가는 거룩한 습관을 익혀야 한다. 바로 여기에 진짜 그리스도인과 가짜 그리스도인의 차이가 있다. 어려움은 우리를 예수께 더욱 가까이 인도한다. 고난과 시련이 아니었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렸을 사람들이 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찾고 진리를 붙잡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우리의 성품과 신앙의 실체는 평안한 때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평안한 때에 하나님과 긴밀한 개인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고 선한 것이 아니면 어떠한 고난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원칙을 깨달은 사람들만이, 고난과 슬픔의 순간들을 올바른 자세로 맞이하게 된다.</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span><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a href="http://www.sostv.net/"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www.sostv.net</span></a><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 살아남는 이들&nbsp;73호, 원제:<a class="contentpagetitle " href="http://sostv.net/survivors51-100/82-suvivors-73/794-survivors73-6.html" target="_blank">1부-시냇물이 마르는 이유를 아시나요?</a> )</span></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br/><br/>tag : <a href="/tag/세상고통의이유" rel="tag">세상고통의이유</a>,&nbsp;<a href="/tag/엘리야" rel="tag">엘리야</a>,&nbsp;<a href="/tag/가뭄" rel="tag">가뭄</a>,&nbsp;<a href="/tag/그릿시냇가" rel="tag">그릿시냇가</a>,&nbsp;<a href="/tag/아합왕" rel="tag">아합왕</a>,&nbsp;<a href="/tag/사르밧과부" rel="tag">사르밧과부</a>,&nbsp;<a href="/tag/요셉" rel="tag">요셉</a>,&nbsp;<a href="/tag/알곡과가라지" rel="tag">알곡과가라지</a>,&nbsp;<a href="/tag/하나님을신뢰" rel="tag">하나님을신뢰</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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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Nov 2009 08:37:50 GMT</pubDate>
		<dc:creator>오직성경</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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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제6부 빗나가기 시작한 과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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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trong><span style="FONT-SIZE: 18pt"><span style="COLOR: #53aea8"><br>빗나가기 시작한 과녁<br></span></span></strong></p><p><br><br><span style="FONT-SIZE: 11pt">그러나 19세기 말이 되어서,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간과되기 시작하였다. 사무엘 앤드류는 그의 책 "Christianity and Anti-Christianity in Their Final Conflict"에서 요한 계시록 13장에 묘사된 짐승을 압제하는 세속적인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20세기 전의 신교도들이 이 짐승을 교황권으로 증명한 것과는 반대로 그는 이 짐승을 교황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20세기 초반에 와서 미래주의적 예언 해석이 거의 모든 신교도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몇몇 소수의 신교도들은 여전히 정확하게 교황권과 적그리스도를 동일시했다. 1920년 경에 "The Present Antichrist"라는 책을 쓴 프레드 제이 피터스가 바로 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왈덴스인들과 허스, 제롬, 루터, 칼빈, 아이작 뉴튼 경, 라티머, 번얀, 무디, 스펄젼과 같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불법의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인 교황이라는 사실에 의견을 같이한다고 언급했다. 피터스는 다니엘서 9장에 있는 70주일 예언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 유대인들에게 남겨진 490년의 기간이라는 것과 그 기간이 A.D 34년에 끝났다는 것을 정확하게 해석했다.</span></p><p><br><span style="FONT-SIZE: 11pt">바로 로마 교황권이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하며 드러내는 일이 더 이상없기 때문에 심지어 보수적인 개신교도들까지도 천주교도들과 감히 손을 잡고 연합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만일 종교 개혁자들이 이런 일들을 본다면 큰 슬픔에 빠질 것이다. "역사적인 선언"이라고 불리어 지는 가운데 팻 로버트슨과 척 콜슨을 포함한 개신교의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천주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크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종교단체를 만들어 연합하는데 성공하였다.</span></p><p><br><span style="FONT-SIZE: 11pt">이들은 카톨릭교도들과 개신교의 복음주의교도들에게 낙태와 포르노를 금지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며, 가치 있는 교육을 양성하는데 힘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였다. 반면에 서로에게 교리적인 대립을 피하고 서로의 교인들에게 적극적인 개종의 권유를 금하라고 촉구하였다. 미국, 동유럽과 남미에 있는 카톨릭교도들과 개신교의 복음주의교도들사이에 있는 긴장관계의 주된 원인을 언급하면서, 그 선언문은 서로 다른 그리스도 종교 단체의 현 교인들을 자신의 단체로 개종 시키려는 것은 교리적으로 합법적인 것이 아니요, 지혜로운 재원의 사용이 아니라고 명시하였다. (The San Bernardino Sun, March 30, 1994, p 42)</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span style="COLOR: #e97d81"><strong>예언의 미래주의로 성공한 천주교회의 시도</strong></span></span></p><p><span style="FONT-SIZE: 11pt">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황권이 적그리스도 세력이라는 명백한 성경적인 증거를 없애 버리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는 단지 세상 마지막 때에 나타날 한 개인이며, 그는 실제적 기간인 3년 반이라는 기간동안 기독교회에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span></p><p><br><span style="FONT-SIZE: 11pt">오늘날에는 로마 천주교회의 예수회(Jesuit)에 의해서 만들어진 미래주의의 사상이 개신교도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다. "His Apocalypse" (1924)라는 책에서 쟌 퀸시 아담은 적그리스도가 세상 마지막 때에 나타날 악마적인 세력이라고 하는 미래주의의 견해를 제시했다. 이 잘못된 개념은 또한 "The Coming Superman" (1928)이라는 책을 쓴 F.M. 메신저에 의해 지지 되었다. 최근에 이 미래주의 견해가 무디 출판사에서 1969년에 나온 헤르만 홀트의 책 "The End Time"에 의해서 지지 되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에 대한 사도 요한의 묘사는 적그리스도가 한 개인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한다.</span></p><p><span style="FONT-SIZE: 11pt"></span><br><span style="FONT-SIZE: 11pt">시간은 걸렸지만, 예수회(Jesuit)는 성공적으로 일을 성취시켰다. 1545년에서 1563년 동안 열린 트랜트 회의에서 로마 천주교회의 주교들이 가졌던 가장 무거운 부담 중에 하나가 바로 적그리스도를 교황권과 동일시 하는 개신교도들의 영향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일은 정선된 지식인들로 새롭게 구성된 예수회 (The Jesuits)에게 주어졌다. 프랜시스코 리베라는 미래주의 예언해석을 1585년에 고안해 내었다.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있을 한 사람으로써 세상 마지막에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핍박을 주는 개인이라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1pt">영국 국교회 안에서 카톨릭 부흥 운동이 19세기 초기에 일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인 S.R 마이트랜드, 제임스 토드, 그리고 윌리암 벌은 로마 천주교회와의 재연합을 반대하는 충실한 영국 국교회원들의 항의를 무마하기 위해서 리베라의 미래주의의 사상을 들여와 가르쳤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종교 개혁의 선구자들은 단지 보복을 위해서 로마 교황권을 성경 예언의 큰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지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감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였던 것이다. 왜 적그리스도의 신분을 입증하는 것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렇게 중요한지 다음에 몇 가지 이유들을 지적한다.</span></p><p><span style="FONT-SIZE: 11pt"></span>&nbsp;</p><p><span style="FONT-SIZE: 11pt"><span style="COLOR: #ff0000"><strong>적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지적해야만 하는 3가지 이유</strong></span></span></p><p><span style="FONT-SIZE: 11pt">1. 적그리스도의 신분을 입증하므로 이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자기의 깃발 아래로 온 세계를 연합 시키려 할 때에 그 기만에 우리가 속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계시록 13:8)</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2. 계시록 18장 4,5절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배교의 세력에서 나와 하나님의 충만한 진리 가운데로 나오라는 그 부르심의 기별을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은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을 증오와 복수심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 진리를 전한다. 위탁된 복음 선포의 중요한 사명은 남녀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죄의 기만과 속박에서 그들을 자유케 하는 일에 있다. 지구 역사의 어느 시대보다도 바로 이 시대에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과 바벨론에서 사람들을 나오라고 초청의 기별을 전하는 일이 꼭 이루어 져야 한다.</span><br><br><span style="FONT-SIZE: 11pt">3. 요한 계시록 14장 8-12절에 있는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이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그 것을 따르는 자들에게 다가올 멸망과 몰락에 그 초첨을 맞추고 있다. 온 세상에 경고하기 위해서 이 세력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사람들에게 중요한 경고의 기별을 전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지난 수 십년 동안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밝히는 일에 태만히 했던 태도를 바꿔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로마 교황권인 적그리스도와 그의 만행에 대해서 경고하기를 요구하신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복음주의 개신 교도들이 추구하는 현 정책을 완전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금 걷고 있는 길에서 돌아선다면, 그들은 루터와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서 이루어 졌던 본래의 복음주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span></p></span><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br>(</span><a href="http://www.sostv.net/"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www.sostv.net</span></a><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 살아남는 이들&nbsp;46호, 원제:적그리스도를 찾습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span style="FONT-SIZE: 11pt">&nbsp;</span></p><p><span style="FONT-SIZE: 11pt"></span>&nbsp;</p><br/><br/>tag : <a href="/tag/적그리스도" rel="tag">적그리스도</a>,&nbsp;<a href="/tag/적그리스도의정체" rel="tag">적그리스도의정체</a>,&nbsp;<a href="/tag/계시록예언" rel="tag">계시록예언</a>,&nbsp;<a href="/tag/짐승과우상" rel="tag">짐승과우상</a>,&nbsp;<a href="/tag/짐승의표" rel="tag">짐승의표</a>,&nbsp;<a href="/tag/666" rel="tag">666</a>,&nbsp;<a href="/tag/예언" rel="tag">예언</a>,&nbsp;<a href="/tag/천주교" rel="tag">천주교</a>,&nbsp;<a href="/tag/교황권" rel="tag">교황권</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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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Nov 2009 07:43:1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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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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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NHN_Writeform_Main"><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p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 style="COLOR: #00b0a2"><strong><span style="FONT-SIZE: 14pt">왜&nbsp;나에게 이런 고통이?</span></strong><span style="FONT-SIZE: 14pt">&nbsp;</span></span></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매우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당한 사람들로부터 받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왜?”라는 질문이다. “왜 내 아이가 죽어야 합니까?” “왜 나는 직장을 잃어 버려야 합니까?” “왜 우리 아이들은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습니까?” “왜 나의 남편(아내)은 나를 버리고 떠나갔습니까?” 우리가 받게 되는 감정적 스트레스를,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잘못으로 돌려 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면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잘못을 범한 것처럼 그분을 원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잠시,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를 살펴 보도록 하자. 요셉은 무척 행복하고 근심 걱정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그의 “시냇물”이 말라 버렸다. 평소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해온 요셉은 시기 질투하던 형들에 의해서 상인들에게 팔려서 애굽 사람의 종으로 전락되고 말았던 것이다. 어린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 야곱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야곱은 그의 노년에 또 다시 사랑하는 두 아들(시므온과 베냐민)과 헤어지게 되는 쓰라린 시련을 당하게 된다. 늙은 야곱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의 심정을 잘 표현해 준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창세기 42:36).</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얼마나 귀에 익은 소리인가? 야곱의 생애를 흐르던 시냇물이 말라버린 것이다. 그러나 불과 며칠 후에 기쁨으로 터질 듯한 마음을 가지고 애굽을 향해 가는 야곱의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잃어 버린 것으로 생각했던 세 아들을 한꺼번에 되찾게 된 것이다. 그의 생애에 또 다른 시냇물이 터져 흐른 것이다. 며칠 전에 시냇물이 마르는 모습을 보면서 원망하던 야곱이 이제는 다른 곳에서 흘러 들어오는 시냇물의 소리를 듣고서 기뻐하는 모습에서, 우리 모두의 연약함을 보게 된다.</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변모한 요셉이 자기를 찾아온 형들에게 한 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게 된다. “당신들은 나에 대하여 악을 계획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계획하시어...” (창세기 50:20 - 한글 킹제임스 성경). 어쩌면 요셉이 형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미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면서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그 절망과 시련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었다”라고 고백하기란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왜 우리는 지금 말라버린 시냇가에 서서 그러한 믿음의 말을 할 수 없는가? 슬픔과 절망으로 인하여 가슴이 메어져버릴 것만 같은 좌절감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굳건한 신앙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너무나 적다. 시냇물이 소리를 내면서 흐를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찬양하면서 믿음을 발휘하지만, 시냇물이 말라가기 시작하면 금방 조급해져서 안절부절하며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완전히 말라버린 시냇물 가에서도 하나님의 이 약속을 붙들고 서서 하나님의 선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진정한 자신의 “아버지”로 삼고 사는 자들이다.</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br></span></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br>(</span><a href="http://www.sostv.net/"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www.sostv.net</span></a><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 살아남는 이들&nbsp;73호, 원제:<a class="contentpagetitle " href="http://sostv.net/survivors51-100/82-suvivors-73/794-survivors73-6.html" target="_blank">1부-시냇물이 마르는 이유를 아시나요?</a> )</span></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nbsp;</p></div><br><br/><br/>tag : <a href="/tag/세상고통의이유" rel="tag">세상고통의이유</a>,&nbsp;<a href="/tag/엘리야" rel="tag">엘리야</a>,&nbsp;<a href="/tag/가뭄" rel="tag">가뭄</a>,&nbsp;<a href="/tag/그릿시냇가" rel="tag">그릿시냇가</a>,&nbsp;<a href="/tag/아합왕" rel="tag">아합왕</a>,&nbsp;<a href="/tag/사르밧과부" rel="tag">사르밧과부</a>,&nbsp;<a href="/tag/요셉" rel="tag">요셉</a>,&nbsp;<a href="/tag/알곡과가라지" rel="tag">알곡과가라지</a>,&nbsp;<a href="/tag/하나님을신뢰" rel="tag">하나님을신뢰</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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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Nov 2009 07:12:0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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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 믿음과 느낌의 관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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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FONT-SIZE: 12pt"><strong><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2.&nbsp; 믿음과 느낌의 관계</span></span></strong></span></p><p><span style="FONT-SIZE: 12pt"><strong><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span></span></strong></span>&nbsp;</p><p>참된 믿음은 무엇일까요?</p><p>느낌과 믿음은 무엇이 다를 까요?</p><p>&nbsp;</p><p>플래이 버튼을 클릭하시면 말씀이 나옵니다.</p><p>&nbsp;</p><p><embed onresize="parentResizeIframe('cafe_main')" style="WIDTH: 500px; HEIGHT: 408px" src="http://sostv.org/5minute/5minute2.wmv" type="video/x-ms-wvx" autostart="false" invokeurls="false" allowscriptaccess="never" allownetworking="internal"></p><p>&nbsp;</p><p>이 말씀은 <a href="http://www.sostv.net/" target="_blank">www.sostv.net</a>의 설교와 세미나-5분 산책에서 가져왔습니다.</p><p>&nbsp;</p><p>&nbsp;</p><br/><br/>tag : <a href="/tag/믿음" rel="tag">믿음</a>,&nbsp;<a href="/tag/느낌" rel="tag">느낌</a>,&nbsp;<a href="/tag/감정" rel="tag">감정</a>,&nbsp;<a href="/tag/말씀" rel="tag">말씀</a>,&nbsp;<a href="/tag/의지함" rel="tag">의지함</a>,&nbsp;<a href="/tag/5분설교" rel="tag">5분설교</a>,&nbsp;<a href="/tag/명설교" rel="tag">명설교</a>,&nbsp;<a href="/tag/5분명상" rel="tag">5분명상</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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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Nov 2009 08:24:1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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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1. 까마귀가 찾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특징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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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class="NHN_Writeform_Main"><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p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 style="COLOR: #00b0a2"><strong><span style="FONT-SIZE: 14pt">까마귀가 찾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특징</span></strong></span></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trong>엘리야와 가뭄</strong></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trong></strong></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성경에 기록된 엘리야의 이야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길르앗 지방의 험한 산 중에 살고 있던 엘리야는 어느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당시에 배도가 가장 극심하였던 아합왕의 왕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그는 의분을 가지고 악한 이스라엘의 왕 아합에게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는 심판의 기별을 선언하였다(왕상 17:1).</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하나님께서는 왕궁을 신속히 빠져 나온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의 동편 광야로 인도하셨다. 그 곳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인 까마귀를 통하여 먹을 것을 공급받았다. 선지자 엘리야의 말대로 맹렬한 태양열 아래에서 땅은 메말라 갔으며, 모든 식물들이 죽어갔다. 그러나 엘리야는 까마귀의 기적적인 식량 공급으로 인하여 기아를 면했으며, 그릿 시냇물에서 충분한 물을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의 육체적 필요를 채워 주시는 이 장면이야말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와 안위가 된다. 모든 이스라엘 지역은 가뭄으로 인하여 심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순종하는 종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하여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공급하여 주셨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왕상 17:6).</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그런데 어느날 엘리야에게도 가뭄의 피해가 찾아왔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더라” (왕상 17:7). 어느날 아침 마실 물을 뜨기 위해서 시냇가에 나갔을 때, 그릿 시내의 바닥에 깔려 있는 갈색 돌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방울의 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온 땅을 휩쓸고 있던 무서운 가뭄이 그에게도 닥쳐온 것이다. 완전히 말라버린 시냇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얼마 동안이나 엘리야를 시험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엘리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약속이 한순간에 허물어 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뭄으로 황량해진 광야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기별을 주셨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왕상 17:9). </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trong>한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여는 이유</strong></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아합 왕궁에서 이스라엘의 왕에게 하늘을 찌를듯한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재난의 기별을 전하게 하셨던 하나님, 엘리야를 조용한 그릿 시냇가로 인도하여 한적한 곳에서 날마다 까마귀의 기적을 경험하도록 인도하셨던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이 이제는 시냇물을 말리시는 고난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시냇물이 말랐던 순간은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한 문을 닫으심으로써, 또 다른 문으로 그를 인도하고 계시는 순간이었다.</span></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p align="justify"><br><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한 종인 엘리야에게 또 다른 경험을 주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냇물을 주셨고, 또한 시냇물을 말리심으로써, 그를 보다 높고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전진하는 생애이어야 한다. 만일 시냇물이 마르지 않았다면, 엘리야는 그 곳에 편안하게 계속해서 머물러 있기를 원했을 것이다. 자신이 누리는 축복에 만족하며 안일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고난 이기적 본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다. 사람은 누구나 육신이 편하면 안주하려고 한다. 그러나 엘리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엘리야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원하는 바대로 시냇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갈멜산의 놀라운 기적과 사르밧 과부의 기적, 그리고 엘리사와의 만남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경험하지 못하였을 것이다.</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하나님께서는 종종 시냇물을 말리우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언제나 같은 장소에 머무르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한 장소에 머무르면서 안일한 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편안한 시냇가에서, 모든 것이 풍족한 평화로운 곳에서 인생을 즐기기를 원한다. 바로 이러한 우리 인간들의 자기 중심적인 속성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냇물을 마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보다 높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의존하고 있던 시냇물이 마를 때마다, 고통으로 인하여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하나님께서 시냇물을 마르게 하셨을 때, 엘리야의 믿음과 신앙은 퇴보하였는가? 아니다. 그는 시냇물이 마르는 시련 속에서도 굳건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믿음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영적으로 더욱 높은 경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또한 그릿 시냇가에서 보다도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되었다.</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하나님께서는 사르밧 과부의 기적을 보여주시기 위해서는, 먼저 시냇물을 마르게 해야만 하셨다. 그것이 인간 엘리야의 눈에는 고통과 시련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필요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이루어질 때, 인간의 믿음은 시험을 받게 된다. 모든 것이 절망적인 것처럼 보일 때일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신뢰하는 믿음을 배워야만 한다. 엘리야에게 일어났던 절망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이고 일어나야만 한다.</span></p><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br></span></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br>(</span><a href="http://www.sostv.net/" target="_blank"><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www.sostv.net</span></a><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 살아남는 이들&nbsp;73호, 원제:<a class="contentpagetitle " href="http://sostv.net/survivors51-100/82-suvivors-73/794-survivors73-6.html" target="_blank">1부-시냇물이 마르는 이유를 아시나요?</a> )</span></p><p><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span>&nbsp;</p><p>&nbsp;</p></div><br/><br/>tag : <a href="/tag/세상고통의이유" rel="tag">세상고통의이유</a>,&nbsp;<a href="/tag/엘리야" rel="tag">엘리야</a>,&nbsp;<a href="/tag/가뭄" rel="tag">가뭄</a>,&nbsp;<a href="/tag/그릿시냇가" rel="tag">그릿시냇가</a>,&nbsp;<a href="/tag/아합왕" rel="tag">아합왕</a>,&nbsp;<a href="/tag/사르밧과부" rel="tag">사르밧과부</a>,&nbsp;<a href="/tag/요셉" rel="tag">요셉</a>,&nbsp;<a href="/tag/알곡과가라지" rel="tag">알곡과가라지</a>,&nbsp;<a href="/tag/하나님을신뢰" rel="tag">하나님을신뢰</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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