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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 quarantine station</title>
	<link>http://sonnet.egloos.com</link>
	<description>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06 Nov 2009 14:38:3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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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 quarantine statio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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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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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WFP 북한 구호 예산안(2009)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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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a title="" href="http://sprinter77.egloos.com/2738753" target="_blank">WFP의 행정비용</a> (sprinter) 에서 트랙백<br />
<br />
다음은 WFP의 2009년도 북한 긴급구호 사업계획서(<a href="http://pds17.egloos.com/pds/200911/06/40/WFP_NK_plan.pdf">WFP_NK_plan.pdf</a>)입니다. 여기에는 두 장의 예산구성표가 첨부되어 있는데, 위 글에서 궁금해하는 경비의 규모나 각각의 명세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br />
<br />
참고로 이건 이대로 집행되었다는 의미는 아니고, 목표금액이 모금된다는 전제 하에 이렇게 쓰일 것이다라는 그런 뜻입니다.(실제로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기부 자체가 위축된 데다가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올해 모금 실적은 형편없습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06/40/b0009940_4af395fd92129.png" width="500" height="571.15384615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06/40/b0009940_4af395fd92129.png');" /></div> 전체 프로그램 구성은 크게 나누면 곡물 구입비(59%), 운송(29.5%), 직접경비(5%), 간접경비(6.5%) 쯤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br />
<br />
직접경비의 세부명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월급' 항목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데는 이쪽이 참고가 될 겁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06/40/b0009940_4af396b3e93ad.png" width="500" height="679.48717948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06/40/b0009940_4af396b3e93ad.png');" /></div> 간접경비(7%쯤)의 세부명세는 없습니다만, 제 추측으로는 WFP라는 기구의 경상운영비, 각종 홍보 및 모금 활동 등에 드는 비용 같은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즉 여기도 월급 성격의 비용이 들어 있다고 봐야겠지요.<br/><br/>tag : <a href="/tag/세계식량계획" rel="tag">세계식량계획</a>,&nbsp;<a href="/tag/WFP" rel="tag">WFP</a>,&nbsp;<a href="/tag/대북원조" rel="tag">대북원조</a>,&nbsp;<a href="/tag/식량원조" rel="tag">식량원조</a>			 ]]> 
		</description>
		<category>정치</category>
		<category>세계식량계획</category>
		<category>WFP</category>
		<category>대북원조</category>
		<category>식량원조</category>

		<comments>http://sonnet.egloos.com/4270487#comments</comments>
		<pubDate>Fri, 06 Nov 2009 04:17:06 GMT</pubDate>
		<dc:creator>sonn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북한이 선호하는 외교적 해법 ]]> </title>
		<link>http://sonnet.egloos.com/4269738</link>
		<guid>http://sonnet.egloos.com/4269738</guid>
		<description>
			<![CDATA[ 
  <br />
영변 원자로건, 우라늄 농축 의혹이건, 구호식량 배분이건 간에 외부에서 의문을 제기하면, 북한이 제시하는 공통된 외교적 해법이 하나 있다. 북한 외교관들의 표현으로는 '금창리 방식'이고, 미국 관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br />
<br />
<br />
<div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170%;"><strong>PPV(pay-per-view)</strong></span></div><br />
<br/><br/>tag : <a href="/tag/돈내고보든가" rel="tag">돈내고보든가</a>			 ]]> 
		</description>
		<category>한마디</category>
		<category>돈내고보든가</category>

		<comments>http://sonnet.egloos.com/4269738#comments</comments>
		<pubDate>Thu, 05 Nov 2009 02:49:30 GMT</pubDate>
		<dc:creator>sonn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북한의 앵벌이, 또는… ]]> </title>
		<link>http://sonnet.egloos.com/4269180</link>
		<guid>http://sonnet.egloos.com/4269180</guid>
		<description>
			<![CDATA[ 
  Garry's comment(3).<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북의 배급체계에 관계된 북 인원들은, 외부식량을 주민들에게 배급된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은 보통아닙니다. 그러니 이 경우 차 기름값 등 식량 수송 비용 정도만 추가하면 광범위한 주민들에 대한 효율적인 배급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세계식량계획 등을 통해 외부 모니터링을 하면서 배급하는 경우, 그 서구인 직원들 꽤 월급이 쎄나 봅니다. <span style="color:#3333ff;">평양에서 호텔에 머물면서 골프 치면서 일하던데</span>, 그들이 소비하는 행정비용이 지원금 전체의 1/4에 육박합니다.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5963#12959989" target="_blank">출처</a>)<br />
<br />
WFP는 행정비용으로만 지원액의 25~30%를 써요. 도대체 뭘 했길래 그 많은 돈을 쓴거지요? 평양 호텔에 머물고 골프치러 다니고 <span style="color:#3333ff;">평양 호텔에 가끔있다는 여자를 사는데 썼나?</span>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0113#12972724.22" target="_blank">출처</a>)</div><br />
묻지마 원조를 지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우러 북한 같은 나라에까지 찾아간 사람들을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건 참 보기 뭣한 일입니다. 저렇게 반복해서 주장하는 걸 보니 외국 구호요원들이 평양에서 여자를 샀다거나 골프를 쳤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근거라도 있는지 궁금해지는군요.<br />
<br />
<br />
우선 호텔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것부터 다뤄보지요. 외국 구호요원들이 평양을 방문할 경우 호텔에 묵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시골도 아니고 한 나라의 수도를 방문했는데 호텔에 묵는 게 뭐 대단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그들이 호텔에 묵었을 거라고 보는 이유는 우선 <strong>북한 측이 그렇게 하도록 요구</strong>하고, 외국 방문자들로서는 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br />
<br />
다음은 1995년에 제네바 핵합의 후속작업의 미국 측 실무진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케네스 퀴노네스의 회고입니다.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묵었는데 세부 묘사가 비교적 상세해서 골라 봤습니다.<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의 공산주의는 평등주의 따위 안중에도 없다. … 사회적·직업적 지위나 연령,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서열사회 안에서 지위가 정해진다. 우리들 일행은 <span style="color:#ff0000;">풍요로운 자본주의국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전원 숙박요금이 비싼 방이 할당</span>되었다. 1박 220달러 미 달러화에 의한 현금지불로 한정된다. 크레디트 카드도 달러 이외의 통화도 받아 주지 않는다. 아침이 포함된 요금이지만 점심과 저녁은 별도요금이다. 사우나나 수영 풀, 가라오케 바 등 호텔 안에 있는 각종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 내부의 디자인과 비품은 일본의 전형적인 중급 관광호텔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욕실 내의 모든 것이 일본에서 들여온 수입품이었다. … 실내의 쾌적한 온방은 오후 11시에 스팀이 끊어짐과 동시에 끝이 났다. 대개 오후 11시경까지는 뜨거운 물이 나왔다. 그러나 그 후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span style="color:#ff0000;">온탕도 온방도 거의 경험할 수 없게</span> 되었다.[1]</div><br />
이건 북한에서야 일류인지 몰라도 서방 사람들이 묵어서 지탄받을만한 그런 수준의 호텔은 아닙니다. 난방과 급탕이 안들어 올 때가 많았다고 하면, 지내기 편하진 않았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호텔에 묵을지에 대해서 외국 방문자는 선택권이 없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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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북한은 이런 외국인 방문자들을 철저히 감시합니다.<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 정부는 철저하게 외국인 요원까지 광범위하게 통제했고 감시하여 허가 없이 접촉할 가능성을 제거하려고 했다. <span style="color:#ff0000;">2000년 4월이 되어서야 평양 외 지역의 WFP 사무소 직원들이 동행인을 수반하지 않고도 호텔 밖으로 출입이 허가</span>되었다. 현재 우리는 외교관과 북한에서 일한 외국인의 시각에서 쓰인 북한 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개인적 진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span style="color:#ff0000;">개인 물건을 일방적으로 뒤지고, 전화를 도청하고, 개인적인 이동이나 접촉이 감시</span>받았던 사건들을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분노에 차서 들려준다. 북한 정부는 지역과 인력을 제한하고 허가받지 않은 접촉을 막는 것을 넘어서서, 원조활동에도 다양한 제한을 가해 만족스러운 모니터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2]</div><br />
북한에서 당국의 눈길을 피해 일반인들과 접촉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외국인들을 몰아놓고 감시하는 장소인 평양의 외국인 전용 호텔에 여자를 끌어들인다? 그런데도 여자가 접근해 온다면 그건 공작일 가능성을 제일 먼저 의심해봐야 할겁니다. 2004년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직원이 미인계에 걸려 자살을 선택했던 것처럼, 이런 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니까요.<br />
<br />
<br />
북한 주재 시의 각종 경비에 대한 퀴노네스의 이야길 좀 더 들어보기로 하지요.<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평양과 영변에서의 주거조건에 관해서는 세세한 것까지 협의했다. 평양으로부터 영변까지의 이동, 또한 영변의 숙소인 초대소로부터 연구센터까지의 이동은 자동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하루 당 80달러로 정했다. 여기에는 운전수의 일당과 연료비도 포함된 것으로 1주일치를 모아 지불하기로 했다. 고려호텔의 숙박요금은 1박 220달러로 식비는 별도로 했다. 영변의 구룡초대소는 식비를 포함해 1일 100달러를 상한으로 한다. 지불은 현금으로 일주일에 한 번 각 개인이 지불한다. 세탁비는 별도 요금으로 고려호텔 요금에 준한다. [미국으로의 국제]전화비는 1분 8달러지만 미국에 의한 경제제재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용가능하게 된 것은 1995년 여름부터였다. 그에 따라 팩스도 이용가능하게 되었지만 첫 장은 35달러, 둘째 장부터는 각 30달러였다.<br />
가장 다투었던 것은 디젤 연료의 가격설정이었다. 결국 북한외무성 사람이 북경의 북한대사관에 전화를 해서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에 게재된 당일 국제가격을 물어보는 사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게 북한에서 쓰는 리터 단위 가격도, 미국에서 쓰는 표준 갤런 당 가격도 아니고, 영국 갤런 단위였기 때문에 이야기가 한층 복잡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미국측 과학자들이 리터 환산치와 미국 갤런 환산치를 계산해  거기에 기초해 미국 달러로 지불하는 방식으로 낙착되었다. 국제가격의 변동에 따르지 않고 이 날 정해진 고정가격으로 합의한 것이다.[3]</div><br />
<br />
아주 세세한 것까지 협상하고 기록을 남기는데 이게 다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자동차 렌트를 둘러싼 다툼 이야기입니다.<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국내이동 경비에 대한 교섭에서 미국 측은 차량 1대 당 북한 측 운전사와 미국인 3명이 탑승한다고 계산했었다. 북한 측은 뒷좌석에 미국인 2명, 그리고 앞좌석에는 운전사와 「안내원」 1인이 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산 차이가 판명된 것은 [출발 당일 아침] 우리들이 평양에서 영변까지 경비가 얼마냐고 물어봤을 때였다. 우리들은 2대니까 160달러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들은 한 대에 타면 되니까 80달러면 된다, 또 한 대 분은 따라오는 북한인들이 지불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론했지만 “안 됩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 우리들은 그렇다면 차비는 그렇게 할 테니 「안내원」과 운전사의 숙식비는 그쪽이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북한 측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 그 후 몇 개월이 지나도 자동차대, 식비, 숙박비, 세탁료, 전화요금 등을 둘러싼 교섭으로 <span style="color:#ff0000;">다툼이 끊임없이 재발했다. 합의를 적은 문서를 갖고 있어도 오해방지책이 되지 못했다.</span>[4]</div><br />
<strike>감시원</strike>안내원을 붙이는 데 드는 경비도 북한 측은 외국인들에게 물리려 했다는 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말이 되든 안 되든 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덤탱이 씌워 보려고 꾸준히 시도해서 손해볼 건 없다는 태도를 견지합니다.<br />
<br />
차량 렌트비 다음은 전화비입니다. 바로 그 전해(1994년)에 북한이 청구한 전화비 때문에 미 의회에서까지 말이 났던지라 국무부 직원인 퀴노네스로서는 예민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리처드슨 지사는 한편 자신이 1994년 12월 북한을 방문했다가 미군 헬기 조종사 2명의 송환 협상을 벌였던 일을 회고하면서, 북한을 떠나기 하루전 북한측이 <span style="color:#ff0000;">국제전화료로 1만달러</span>를 요구했는데, 그 돈이 한국으로부터 "불가사의하게(mysteriously)" 북한으로 송금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송금 경로가 최근 미 재무부로부터 대북 불법 거래 혐의로 제재조치를 받은 마카오의 북한 주거래 은행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인지는 이 책에 설명되지 않았다.[5]<br />
<br />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리처드슨 의원의 출장보고서를 보고 왠 전화비가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하고 북한이 미국으로 하여금 “체조”를 하게 했다고 불평했다.[6]</div><br />
<br />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하면 리처드슨의 회고록 <em>Between Worlds</em>에는 북한의 일단 질러 보는 청구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은 1996년 간첩죄로 억류했던 한국계 혼혈 미국인 에번 헌지커 석방 협상 때도 <span style="color:#ff0000;">벌금으로 10만달러를 요구</span>했었으나, 인질 몸값은 지불하지 않는다는 미 정부 방침에 따라 현지서 <span style="color:#ff0000;">가택연금에 든 '호텔비'조로 5천달러</span>에 낙착봤다고 리처드슨 지사는 말했다.[7]</div><br />
이것도 전형적으로 일단 바가지 씌우고 보는 행태임을 이제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자들은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해야 할 경우 그나마 좀 덜 당하려면 처음부터 아주 깐깐하게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게 중요합니다.<br />
<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우리들이 함께 일하는 북한인들은 미국은 풍요로우니까 북한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간단히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것을 「모스크바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북한인들은 과거 반세기 동안 필요한 것의 목록을 만들어 그것을 관료기구를 통해 입수하는 방식에 익숙했다. 최종적으로 그 목록은 모스크바에 도달해 그곳에서 곡물이나 석유, 군사물자, 기타 등등이 이 작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은 동맹국에게 보내졌다. 요컨대 북한인들은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특별히 외화를 획득하는 것보다도 「빅 브라더」로부터 그것을 제공받는 데 의존하는 체질에 젖어 있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1995년 시점에서는 사용후 핵연료 프로젝트가 <span style="color:#ff0000;">필요한 물품의 새로운 공급원이 될 수 있는 듯이 보이는 행동을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span>했다. 기기에 관해서도, 장래의 약속에 대해서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주의 깊게 억제해나간다면 마찰과 욕구불만도 억제할 수 있을 터였다.[8]</div><br />
퀴노네스는 한 번 뭔가를 쉽게 주는 듯이 보이면 요구가 끊임 없이 들어오게 되고, 그제서야 뒤늦게 거절하기 시작하면 사소한 일로 괴롭히면서 어떻게든 원하는 물건을 짜내려고 드는 일을 겪게 된다고 경고하면서 실제 겪은 사례들을 소개하는데 다 비슷한 이야기들이니까 생략하기로 하지요.<br />
<br />
<br />
북한의 외화 앵벌이가 겨우 호텔 대금이나 렌트카, 전화비 정도면 좀 짜증나지만 액수로는 그리 크지 않으니 그렇게 심각하게 논할 거리는 못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북한의 청구서 놀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등장합니다.<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은 IAEA 사찰단이 영변에서 샘플을 채취하거나 재처리시설에서 감마 매핑을 수행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1994년] 2월 15일 가장 마지막으로 합의된 사항이었다. 게다가 북한은 추가 시설에 대한 샘플 채취를 허용하기 전에 <span style="color:#ff0000;">3십만 달러</span>를 요구했다. IAEA 본부가 “전례 없는 비용”이라며 불평을 한 후 북한은 이를 취소했다.[9]</div><br />
<br />
그리고 진짜 황당하게도 북한에 기근 구호차 찾아온 단체들에게도 돈을 뜯으려 시도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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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 외교부는 NGO들에게 그들이 기증하기로 약속한 물자가 북한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북한을 방문할 수 없다고 통보하였다. NGO들은 북한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어야 했으며, NGO들은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 물자들을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북한을 입국하기 전에 물자들이 정확히 언제 도착하는지를 조정해야 했다. 기아 초기발생시 북한이 필요로 하는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하기 위해서, NGO가 현장답사를 기본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을 북한당국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최대한의 물자를 얻어내기 위해 NGO의 접근을 통제하였다. 예를 들어, 북한이 요구하는 입국비자 수수료는 단순한 수속료 차원을 넘어서는 비싼 가격이었다. NGO 보고에 의하면, 북한당국은 <span style="color:#ff0000;">각각의 비자 신청을 승인하는 대가로 50만불의 현금이나 이에 상응하는 물자를 요구</span>하였다고 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구걸하는 북한체제에 구호활동을 제공하는 NGO들과 UN기관들은 주는 입장이 아니라 북한에 들어가기를 간청하는 신세가 되었다.[10]</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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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외국 뿐 아니라 한국 측 NGO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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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지원사업을 벌이는 22개 민간단체 회원 9265명이 다음 주부터 10월 하순까지 북한을 방문한다. 북측이 체제 선전을 위해 제작한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굿네이버스 등 민간단체들은 1박 2일의 짧은 일정 동안 공연 관람 외에 <span style="color:#ff0000;">대북지원 실태 조사를 위한 현장방문</span>과 평양지역 문화유적 답사도 할 예정이다. … 1인당 100만 원 선인 요금도 공연관람료(특석 300달러∼C석 50달러)에 전세기 항공료가 포함됐다고는 하지만 터무니없다. 당일치기 개성관광 비용은 19만5000원, 2박 3일의 금강산 관광 요금은 39만∼54만 원 선이다. 결국 북한은 이번 행사로 체제도 선전하고 <span style="color:#ff0000;">100억 원대의 현금도 챙기는 셈</span>이다.[11]</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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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대북협력사업의 추진을 위해 민간단체가 다양한 창구를 통해 북한에 접근하고 있으나 북한은 오히려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 민간단체로부터 좀더 많은 지원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즉 북한은 여러 민간단체들에게 계약재배, 그것도 대규모 형태의 계약재배 혹은 협력사업을 제의하면서 <span style="color:#ff0000;">비료, 종자 등 영농자재의 선투자를 요구하고 그것에 대한 반응여부에 따라 계약서 체결 여부를 저울질</span>하고 있다. … 또한 민간의 농업협력사업 추진과정에서 사전 타당성 분석이 미흡하고 계획수립에 필요한 정보 및 전문성의 부족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우리 민간단체와 이미 체결한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변경하고자 하고 선투자를 요구하는 등 사업추진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12]</div><br />
이 정도면 제가 왜 이 현상을 '앵벌이'라고 부르는지 다들 이해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구호활동과 관련해 북한 현지에서 발생하는 경비의 적지 않은 부분은 이런 북한의 행태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좋을 겁니다. 북한이 뭐 좋고 놀거 많은 곳이라고 거기서 사치를 부려서 돈이 다 나갔겠습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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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none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this.nextSibling.style.display=='none')?'block':'none';>참고자료</a><div style="DISPLAY: none"><br />
[1] Quinones, C. Kenneth., <em>Beyond Negotiation: Implementation of the Agreed Framework</em>, 미출간<br />
(山岡邦彦, 山口瑞彦 역, 『北朝鮮II: 核の秘密都市 寧邊を往く』, 中央公論新社, 2003, pp.92-93)<br />
[2]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em>Famine in North Korea: Markets, Aid, and Reform</em>. 1st e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이형욱 역,『북한의 선택』, 매일경제신문사, 2007, p.155<br />
[3] Quinones, <em>같은 책</em>, pp.106-107<br />
[4] Quinones, <em>같은 책</em>, p.108<br />
[5] 윤동영, "2차 북핵위기 후 첫 북미대화는 백악관 냅킨서 시작", 연합뉴스, 2005년 11월 21일<br />
[6] Witt, Joel S., et al, <em>Going Critical: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em>, Brookings Institution, 2004 (김태현 역, 『북핵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 모음북스, 2005, pp.424-429)<br />
[7] 윤동영, <em>같은 글</em><br />
[8] Quinones, <em>같은 책</em>, pp.145-146<br />
[9] Witt, et al, <em>같은 책</em>, p.175)<br />
[10] Natsios, Andrew S. <em>The Great North Korean Famine: Famine, Politics, and Foreign Policy</em>. Institute of Peace Press, 2002. (황재옥 역, 『북한의 기아』, 다할미디어, 2003, p.195)<br />
[11] 사설, "비싼 돈 내고 北 선전劇 박수 치러 가야 하나", 동아일보, 2005년 9월 24일<br />
[12] 김운근. “남북한 농업협력의 필요성과 한국의 대북지원.” 통일문제연구. 11.2 (1999): pp.24-25<br />
</div><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외화벌이" rel="tag">외화벌이</a>,&nbsp;<a href="/tag/세계식량계획" rel="tag">세계식량계획</a>,&nbsp;<a href="/tag/WFP" rel="tag">WFP</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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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4 Nov 2009 06:16:1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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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북한 기근과 국제 사회의 대응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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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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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30%;"><strong>1. 곡물을 주시오. 좀 많이…(1991년)</strong></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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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원래 김일성의 지도에 따른 주체농법이 세계최고의 농사기술이라고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회원국이 제출한 통계자료를 깊게 검사하지 않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같은 국제기구는 그러한 선전을 위한 좋은 무대였습니다.<br />
<br />
<blockquote><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79년에 북한은 쌀 면적당 수량에서 세계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하였다. FAO는 북한이 79년부터 90년까지 진짜 세계 제일이라고 인정하여 세계의 주요 쌀 생산국인 일본, 한국이나 소규모이면서도 대단히 생산성이 높은 호주보다도 북한을 상위에 두었고, 태국보다 3배나 효율적이고 미국보다도 생산성이 훨씬 높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북한은 국민 1인당 칼로리 섭취량도 80년대를 통하여 한국을 상회한다고 주장하였다. 91년에 FAO는 숫자를 수정하여 한국을 북한보다 약간 우위에 두었다. 그 직후 북한은 참혹한 기근에 직면하였는데 그런 통계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내던져져 버렸다.</span>[1]</blockquote><br />
또한 북한은 1990년 공식적으로 1,000만 톤의 곡물(조선중앙연감 기준)을 생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실 북한이 이렇게 많은 곡물을 생산했다면 남아돌아야 정상이겠지요. 하여간 이 또한 FAO에서 별 논의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북한 농업의 현실에 별 관심이 없던 국제사회는 그런가보다 할 뿐이었습니다.<br />
<br />
그러던 1991년, 북한은 갑자기 세계식량계획(WFP)에 식량지원을 요청합니다. 구체적으로 식량난이 터진 것은 아니지만 발전계획을 지원해달라(?)는 좀 애매한 명목이었죠. 오늘날 우리는 이 해부터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당시엔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요청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북한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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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170%;"><strong>곡물 1천만 톤을 지원해 달라</strong></span></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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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WFP는 2007년 전 세계를 상대로 총 330만 톤, 2008년에는 390만 톤의 식량을 지원[2]했습니다. 북한이 요구한 물량은 WFP의 3년치 사업분에 해당한다는 이야기지요. 게다가 WFP의 사업 대부분은 긴급구호(EMOP)와 장기구호 및 복구(PRRO)에 할당되기 마련이고, 개발지원(DO)는 많아야 10%, 보통은 5% 이내라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현실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식량원조는 잘 해야 30만 톤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br />
<br />
또한 이는 2,300만 북한 인구 전체를 2년 먹일 수 있는 양인 동시에 남한이 2000년대 제공했던 식량원조(40~50만톤) 20년치, 1995년 이후 10년 동안 WFP가 북한에 제공한 것(13억 달러, 400만 톤 상당)의 2.5배에 상당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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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든 말이 안 되든 간에 WFP는 요청을 받았으니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려고 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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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WFP의 업무처리절차를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기로 하지요. WFP는 지원요청이 들어오면 우선 FAO와 협력해 현지에 평가팀을 파견합니다. 이들은 현지를 시찰하고 식량원조가 얼마나 필요하고 수혜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 어떻게 이들에게 식량을 분배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일단 계획이 수립되면 이 계획을 근거로 각 국 정부에 기부를 요청하고, 기부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앞의 계획에 맞춰 식량을 수송해 배급하게 됩니다.<br />
<br />
WFP는 자체 예산을 갖고 있지 않으며 각 사안에 대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기부에 의존해 활동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절차는 필수적입니다. 즉 기부국들은 원조받을 나라의 요청이 적절한지를 WFP라는 전문적인 대리인을 통해 평가하는 셈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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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지원의 첫 단계로 북한 땅을 밟은 WFP 조사팀은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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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1991년 초 북한의 식량원조 요청에 따라, WFP는 4명의 기술관리와 FAO에서 파견된 3명의 보조관으로 구성된 팀을 북한에 즉각적으로 파견하였다. 이들의 업무는 북한에서 필요로 하는 식량에 대한 평가조사이다. WFP에서 발간한 문서에 따르면, 조사단은 북한의 부족식량을 평가한 결과 특별하게 식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북한에서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평가단은 <span style="color:#ff0000;">식량이 부족하지도 않은 북한이 도대체 왜 식량 원조를 요청해왔는지에 대해 의문</span>을 가졌다. 굶는 사람도 없고 주민들이 영양결핍상태도 아닌데 북한당국은 1,000만톤이라는 엄청난 양을 요구하였다. 그 보고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 우리들은 식량 원조 시행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찾아낼 수 없었다. 우리가 식량원조를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식량원조를 해 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3]</div><br />
북한은 WFP 조사단에게 식량이 부족하다거나, 북한 농업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혹은 기근으로 고통받는 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감추고 전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원조를 받을 수 있을 턱이 없지요.<br />
<br />
북한은 그 뒤로도 수 년 동안 식량난이 있다는 것을 숨긴 채 식량생산량 9백만~1천만 톤을 계속 주장하면서 허세를 부리다가, 기근이 심화된 1995년 들어서야 국제사회에게 다시 손을 벌리게 됩니다. 1991년에 솔직한 자세로 자국의 문제를 공개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북한 기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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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30%;"><strong>2. 북한 기근은 진짜인가? (1997년)</strong></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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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6년 후인 1997년으로 넘어가 봅시다. 북한은 이미 1995년에 홍수로 큰 피해를 입었다며 WFP에게 지원을 요청해 긴급구호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북한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습니다.<br />
<br />
당시 상황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 당시 대형 국제구호 NGO인 월드비전에서 일했던 앤드류 나치오스의 회고를 같이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지요. 그는 미국 정부의 원조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에서 이런 문제를 여러 해 동안 다룬 바 있으며 부시 행정부 들어서(2001~2005) USAID 책임자로서 다시 한 번 북한 원조 문제를 직접 다루게 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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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span style="color:#ff0000;">북한에 정말 기아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혹들이 증폭</span>되기 시작하자 나는 북한을 방문하여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북한에 비자를 신청할 때마다 매번 거절당했다. 북한에서 보내온 ‘나중에’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지금은 적당한 시기가 아니다”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북한에 들어갈 수 있을 지가 염려되었다. 마침내 <span style="color:#ff0000;">1997년 5월</span>, 그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월드비전의 다른 직원들과 함께 북한으로부터 비자를 받았다.[4]</div><br />
오늘날 우리는 북한 기근이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995년에는 북한 정부가 전세계를 상대로 공개적인 식량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려 2년 후까지도 북한에 기근이 발생했는지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논쟁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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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요?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답은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적시에 인식하고 대처하지 못한 국제사회의 실수란 것입니다. 분명히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좀 더 복잡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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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span style="color:#ff0000;">1997년 가을</span>, UN은 NGO 기관들에게 어린이집에 더 이상 약품과 식량을 보내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이미 1년 전부터 약품과 식량을 공급하였으나 어린이들의 상황이 호전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구호품들을 어린이집에 공급하면서 동시에 영양결핍의 심각성에 따라 차별화되는 치료법도 직원들에게 교육되었다. 그러나 교육과 설비는 물론 구호품조차도 어린이들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북한 당국은 중립국 보건담당 직원의 어린이집 상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 <span style="color:#ff0000;">구호에 지친 NGO 요원들은 서구사회로부터 구호품을 계속 얻어내기 위해 북한당국이 영양결핍 상태의 어린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분개</span>하였다. 그리고 지원된 구호품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쓰이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하였다. 비관적인 실례지만, 마르크시스트 경제체제에서 노동자들은 종종 보잘것없는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직장에서 시설물을 빼내, 자신의 모자라는 임금을 충당한다.[5]</div><br />
구호물자가 적절히 사용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조를 계속 주어도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열의를 품고 제일 먼저 들어갔던 NGO 요원들은 환멸을 느끼고, UN이 원조 중단을 권고할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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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나치오스는 북한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오랜 노력 끝에 어렵게 북한 국내를 시찰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북한에서 본 것은 매우 혼란스러운 메시지였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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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황해북도 사리원의] 어린이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주최 측 사람이 조용히 방문을 닫는 것을 보았다. 나는 뒤로 물러서서 문 가까운 쪽에서 그의 동작을 살펴보았다. 또한 그가 어린이들을 방 뒤쪽에서 앞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1살에서 3살에 이르는 어린이들로 갑자기 둘러싸이게 되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심한 영양결핍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특히, 모여 있는 아이들 절반 정도는 더욱 심각하였다. 어린이들은 울거나 웃지도 못할 정도로 동작이 둔감하고 멍한 상태였다. 소수의 어린이들은 부종으로 부어 있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머리털이 탈색되고 빠져 있었다. 어린이들은 비타민과 단백질 부족으로 나타나는 영양실조로 인해, 여윈 팔과 다리에는 부스럼이 심한 피부장애를 나타내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행을 빠져나와, 우리에게 공개되지 않은 다른 건물 쪽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재빠르게 문이 닫혀져 있는 3개의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순간적으로 들여다본 것이기 때문에 방 안의 어린이 영양상태를 정확히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접근이 제한된 3개의 방 중 어느 방에도 영양결핍상태 어린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각 방에는 약 10명의 어린이가 있었는데, <span style="color:#ff0000;">주최 측은 건강이 양호한 어린이들은 건물 뒤쪽에 남겨놓고 우리가 방문하고 있는 방에는 상태가 심각한 어린이만을 이동시켜 놓았던 것</span>이다. 이번 사건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사실들에 대한 진실 여부에 대해, 그리고 북한의 의도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봐야 할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br />
<br />
어린이집 방문에 이어 우리 일행은 공식적인 스케줄에 따라 같은 지역 내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방문하였다. 마르크시스트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학교 운동장에 군대식으로 정렬되어 있는 학생들은 양호한 건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학생들의 신체적 건강상태와 복장상태도 그 도시의 다른 어떤 계층 사람들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학생들은 짧은 팔의 셔츠와 반바지, 그리고 치마를 입고 있었으며, 모두 함께 모여 있어 학생의 영양상태를 한 눈에 파악하기가 용이했다. 어림잡아 약 1,400명의 학생이 모여 있었는데 2~3명 정도만 영양부족 상태를 보였을 뿐이었다. 방금 어린이집에서 목격한 광경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우리 일행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고등학교에서 3블럭 정도 떨어져 있는 어린이집에서 우리는 수단이나 소말리아보다 더 측은하고 건강상태가 안 좋은 어린이들을 만나 보았고, <span style="color:#ff0000;">여기서는 오히려 남한과 일본의 학생들과 비교될 정도의 양호한 건강 상태의 학생들을 만난 것</span>이었다. … 만약 이 고등학교 학생들의 건강상태가 북한 기아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원조계획은 즉시 중단되고, 모든 구호요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일행이 목격한 어린이집이 바로 북한의 포템킨 마을인 것이다.[6]</div><br />
정부 가이드가 끌고 다니면서 보여준 것인 만큼, 이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보여주려고 했던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과 고등학교에서 본 광경은 둘 다 작위적으로 연출된 것이면서도 전적으로 상충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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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는 북한 관리들과 가진 회의에서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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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 농업성 관리들과의 회의에서] 북한 관리들은 질병률과 사망률, 그리고 농작물 작황에 대해 다소 과장된 통계를 인용하였다. - <span style="color:#ff0000;">어린이 사망률은 미국과 유럽보다 다소 낮았다.</span> 만약 북한이 제시한 수치가 정확하다면, 북한은 더 이상 위기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원조사회에서 파견된 구호요원들은 다음 비행기로 북한을 떠나야 할 것이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기아원조도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나는 반박하였다. 북한 관리들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정치가 통계 수치에 영향을 주었으며, 제시된 수치들은 다소 오래된 것이어서 현재 북한의 기아 상황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고 말하였다. 농업성 차관에게 식량증산을 위해 필요한 변화와 조치에 대해 논평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식량증산에 필요한 <span style="color:#ff0000;">어떠한 변화와 정책도 지금 상태로는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span>고 관리는 분명히 대답하였다. 그리고 관리는 <span style="color:#ff0000;">최근 기아상태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자연재해 때문</span>이라는 말을 거듭 반복하였다.[7]</div><br />
북한은 2년 전부터 국제사회에게 대규모 원조를 제공해 줄 것을 호소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을 불러놓고는 북한은 미국이나 유럽보다도 사망률이 낮다는 체제선전용 엉터리 통계자료를 제시하면서, 북한 체제는 기본적으로 훌륭하고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그 어떤 개혁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버팁니다. 그런 한편으로 원조는 달라는 것이지요. 그것도 많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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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31/40/b0009940_4aec28415951b.jpg" width="500" height="333.33333333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31/40/b0009940_4aec28415951b.jpg');" /></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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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평양에서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 내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기아상황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려야 할지에 대해,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나는 많은 혼란을 느꼈다. 북한 당국이 조심스럽게 연출한 광경, 조작된 통계수치, 그리고 의도적으로 계획된 관리들과의 대화는 내 자신이 목격한 사실에 대해 회의적인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거의 모든 측면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이면에 분명 숨겨진 진실들이 있었다. 그러한 진실을 밝혀내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span style="color:#ff0000;">처음부터 북한 당국은 기아구호를 지지해온 국제구호요원들에게 진정 북한에 긴급 상황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했으며, 결국에는 이들을 기아구호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바꾸어놓는 데 성공하였다.</span> 실제로 모든 중립국 인도주의 지원국들은 북한에 현재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서로의 논리를 전개하고 교환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8]<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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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에 의해 의도된 프로그램과 계획된 접근만이 허용되었던 모든 중립국 구호요원과 외국대표단들, 그리고 기술고문단을 괴롭힌 중심의제는 다음과 같다. 작금의 북한상황이 기아상황이라면, 기아가 실제로 북한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북한에 식량위기가 실제로 발생했다면 도처에 산재한 북한의 “만성적 구조결함”에서 기인된 식량부족사태는 아닌지 분명하지 않았다.[9]</div><br />
나치오스는 북한 기근을 부정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워싱턴 포스트 지면[10] 등을 통해 북한 기근의 심각성을 경고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의 눈에도 북한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는 점은 특기할만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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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절에서 소개했던 1991년의 '곡물 1천만 톤 원조 요청' 건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나치오스의 경험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1991년 당시 WFP 조사팀이 북한에서 식량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북한 농업의 실패, 더 나아가 북한 체제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북한의 방해 때문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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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당시에 긴급구호 등을 피해 굳이 개발지원(DO) 명목을 원했던 것도, 1995년에 문제를 홍수 탓으로 돌리면서 원조를 요청한 것(WFP의 평가로는 홍수 피해는 문제의 15% 정도에 불과)도 모두 북한 농업 전반의 실패, 즉 집단농장체제와 주체농법의 실패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북한의 책임회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998년 UNDP가 주최한 북한 농업 복구에 관한 회의(AREP)에서 한 참석자가 '개혁'을 언급하자 북한 대표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것[11]은 이를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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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원조를 제공하려는 기관들은 기부자들에게 <strong>도움이 필요한 사건(기근)이 벌어지고 있으며, 기부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줄 수 있어야</strong> 합니다. 그걸 할 수 없으면 기부를 계속 받을 수가 없지요. 마찬가지로 세금으로 뒷받침되는 정부 원조의 경우에도 유권자들 사이에서 그런 원조를 뒷받침하는 여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워낙 평판이 좋지 않은 나라고, 그간의 행동으로 볼 때 그들의 속임수를 우려할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상대로 기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자신 있게 근거를 보여줄 수 없다면, 원조를 끌어내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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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WFP와 여러 NGO들은 북한 기근을 입증할 증거들을 입수하기 위해 기를 쓰게 됩니다. 특히 생생한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자료들이 중요하게 됩니다. 반면 북한은 원조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깎아내릴 가능성이 있는 그런 증거를 노출시키는 일은 절대 피하려고 혈안이 됩니다. 북한이 주장한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strong>'우리 말을 믿고 눈 감고 도와 달라'</strong>는 것인데, 서방 세계에서는 그런 조건을 내걸고는 지원을 모집할 방법이 없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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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한은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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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중립국 구호요원들이 도시와 지방에 구호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방문할 때, 지방당국은 기아로 보여지는 모든 증거들을 길거리에서 완전히 치워버린다. 거지들, 쇠약해진 사람들, 부랑아들, 쓰레기와 찌꺼기들, 그리고 죽어 나뒹구는 시체들까지도 길에서 완전히 제거된다. 한편, 입고 나갈 깨끗한 옷이 없는 주민은 집에 그냥 머물러 있도록 지시받는다. 한국어를 아는 한 구호요원은 NGO대표단들이 도착하기 바로 전, 거리에서 주민들에게 모두 집으로 들어가라는 방송을 하면서 마을을 지나는 트럭 한 대를 보았다고 한다. NGO기관에서 파견된 식량모니터 요원이 그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당 간부들만이 유일하게 식량배급을 받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허락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한 당국은 하나의 거대한 포템킨 마을을 창조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어둡고 참혹한 현실은 외면한 채 방문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위장된 그런 마을이었다. <span style="color:#ff0000;">중립국 요원들에게 기아를 위장한 지역의 방문을 획책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시간을 소모하게 만드는 일일 것</span>이다. 왜 북한 당국이 소수의 NGO관계자들에게만 비자를 허용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이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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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북한에 사는 친척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한 조선족은 고향을 방문하고 나서 목격했던 것을 이렇게 알려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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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길거리가 이상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예전에 이 거리에는 많은 집 없는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거리에 나와 있는 북한 관리는 호루라기를 불면서 건물 뒤로 숨으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그리고 안전보위부는 강제로 주민들을 길에서 몰아내기에 분주하였다. 그들은 계속 “머리를 숙여라”고 외쳐댔다. 왜 거리가 이처럼 깨끗하고, 사람이 없고 한산한지를 궁금해 하고 있을 때, 적십자 표지를 단 중국과 남한정부의 자동차들이 내가 서 있는 길 앞을 바로 지나가고 있었다. 거리가 조용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차량들 때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의 옷차림으로 내가 북한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안전보위부 요원은 나에게 길에서 비키라고 하지 않았다.</span>[12]</div><br />
과거 소련과 중공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어쩌다 한 번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고 가는 외국 대표단들을 수없이 속여 넘겨 온 전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사람들도 인정하는 이 분야의 세계 정상급 플레이어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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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구호기관들의 시찰 요청을 피곤해 한 것은 분명합니다. 북한은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모든 장면이 기획된 대로 연출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한 번 보자고 할 때마다 매번 이런 쇼를 펼치는 것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반면 시찰요원들이야 이런 북한의 연출 틈새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진실의 조각들을 모아 조각맞추기를 시도하다 보니 더 많은 방문을 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서로 피곤해질 수밖에 없지요.<br />
<br />
<br />
<br />
<span style="font-size:130%;"><strong>3. 북한의 역습 (2005년)</strong></span><br />
<br />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북한의 완고한 저항은 여전했지만, WFP는 모니터링이 없으면 원조도 없다는 것을 무기로 북한으로부터 다소의 양보를 얻어냈습니다. 이 이야기도 하면 길지만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0113" target="_blank">전에 다룬 적</a>도 있고 하니 여기선 넘어가기로 하지요.<br />
<br />
또한 어린이 영양상태 조사나, 농업생산량 예측을 위한 조사 등 북한 기근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기초조사들을 한 것도 중요한 소득입니다. 이런 것은 정상적이라면 북한이 마땅히 제공해야 되는 것이지만, 이미 보셨다시피 북한이 제공하는 자료는 전혀 믿을 수 없기 때문(기근이 진행중인 북한의 어린이 사망률은 미국/유럽보다 낮다!)에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했습니다.<br />
<br />
이제 지금까지의 경과를 한 번 살펴보지요. 다음 표[13]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UN을 경유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실적을 정리한 것입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30/40/b0009940_4aeaa1d775f2b.png" width="500" height="532.95668549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30/40/b0009940_4aeaa1d775f2b.png');" /></div><br />
이 표를 그래프로 옮겨 그리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02/40/b0009940_4aee539085168.png" width="455" height="40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02/40/b0009940_4aee539085168.png');" /></div> <div align="center">국제원조실적(만 $)</div><br />
이제 분명히 구분되는 세 시기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br />
<br />
(1) 북한의 홍수 구호 요청으로 시작해 상황파악에 어려움을 겪으며 소량의 원조가 제공(1995~96)<br />
(2) 구호가 본격화되어 대량의 원조가 제공(1997~2004)<br />
(3) 유엔합동호소(CAP) 프로세스가 종료되고 국제사회의 원조가 급락(2005~현재)<br />
<br />
최초에 왜 원조가 지연되었는지는 앞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1997년부터 2004년까지의 원조가 많았던 시기는 북한 기근을 중단시키는데 중요한 성과를 올렸던 상대적으로 좋은 시기입니다. 문제는 2005년 이후입니다. 북한은 2004년 가을부터 유엔의 대북 인도적 통합지원을 거부하고 WFP를 비롯한 국제원조 조직에게 북한 사무소를 폐쇄하고 떠나라고 요구합니다.<br />
<br />
북한의 공식적인 주장은 이렇습니다.<br />
<blockquote>북한은 대북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유엔기구에 대해 <span style="color:#ff0000;">2005년 말까지 현재의 사업을 종료하라</span>는 뜻을 공식적으로 전달하였다. 북한의 최수헌 외무성 부상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금년 작황은 매우 좋다고 밝히면서 <span style="color:#ff0000;">이제 북한 당국은 모든 주민에게 식량을 제대로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은 필요치 않다</span>고 하였다.[14]</blockquote><br />
그러나 북한의 작황이 한 해 좀 좋아졌다고 외부의 지원이 필요 없을 만큼의 곡물생산이 가능한 것도 아니며, 정말로 인도적 지원이 필요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게 정말이라면 우리가 여기서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놓고 떠들 필요는 전혀 없겠지요.<br />
<br />
여러 관찰자들은 북한이 중국이나 남한처럼 조건 없는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들의 지원을 믿고 모니터링 같은 껄끄러운 조건을 요구하는 <strong>WFP를 몰아내거나, 위협을 통해 WFP의 굴복을 강요</strong>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15] 실제로 북한이 UN기구들과 국제 NGO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며 나가달라고 하던 시기에, 북한은 남북 농업협력위원회를 통해서 <strong>남한에게는 비료와 쌀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strong>[16]해 옵니다. 또한 북한은 이제 인도적 원조를 중단하고 개발원조로 전환하자는 명분을 달고 있지만, 개발원조 성격의 지원을 제공하는 국제 NGO에 대해서도 나가달라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발원조는 어디까지나 명분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은 아일랜드 NGO Concern에게 다 걷어치우고 나가든지, 외국인 직원을 모두 빼고 북한인 직원들로만 업무를 진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북한 같은 나라에서 북한인 직원은 <strong>북한 정부의 꼭두각시</strong>일 수밖에 없습니다.<br />
<br />
농촌경제연구원의 북한 농업 연구자 권태진은 이렇게 말합니다.<br />
<blockquote><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대북 지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지원과 협력이 왜 필요한지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특히 정부의 대북 지원을 둘러싸고 국민 사이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 <strong>만일 우리나라의 대북 지원액이 급속히 증가함으로서 북한이 다른 국제사회의 지원을 중단코자 한다면 우리는 대북 지원 방식에 대해 재고할 필요</strong>가 있다. 국제사회와 공조하지 않고서 우리의 힘만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우리는 <strong>국제사회와 함께</strong> 북한의 식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원방향을 모색하고 효과적인 방안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span>[17]</blockquote><br />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WFP 채널로 북한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니터링 등 요구조건에 있어서는 공동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원조가 WFP를 대체하고 몰아내는데 쓰인다면, 그건 북한 대중은 돕지도 못하면서 우리 부담만 늘리는 꼴이니까요.<br />
<br />
<br />
<a href=#none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this.nextSibling.style.display=='none')?'block':'none';>참고문헌</a><div style="DISPLAY: none"><br />
[1] (マコーマック, 2004:95-96) 정광민, 『북한기근의 정치경제학』, 시대정신, 2005, p.149에서 재인용<br />
[2] <a title="" href="http://www.wfp.org/content/annual-report-2009" target="_blank">WFP Annual Report 2009</a>, p.8<br />
[3] Natsios, Andrew S. The Great North Korean Famine: Famine, Politics, and Foreign Policy. Institute of Peace Press, 2002. (황재옥 역, 『북한의 기아』, 다할미디어, 2003, p.226)<br />
[4] <em>같은 책</em>, p.50<br />
[5] <em>같은 책</em>, pp.60-61<br />
[6] <em>같은 책</em>, pp.63-64<br />
[7] <em>같은 책</em>, p.65<br />
[8] <em>같은 책</em>, pp.65-66<br />
[9] <em>같은 책</em>, p.229<br />
[10] 워싱턴포스트 1997년 2월 17일<br />
[11]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Famine in North Korea: Markets, Aid, and Reform. 1st e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이형욱 역,『북한의 선택』, 매일경제신문사, 2007, p.66<br />
[12] Natsios, 『북한의 기아』, pp.79-80<br />
[13]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및 교류협력 동향," 『KREI 북한농업동향』 11권 2호, 농촌경제연구원, 2009년 7월, p.95<br />
[14] 권태진. “대북 농업지원사업의 과제와 개선방향.” 『농촌경제』. 28.3 (2005), pp.18-19 (각주 4)<br />
[15]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a title="" href="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5/09/27/AR2005092701523.html" target="_blank">Hungry for Human Rights</a>, 워싱턴포스트, 2005년 9월 28일; 권태진,<em> 앞의 글</em><br />
[16] 권태진,<em> 앞의 글</em>, p.19<br />
[17] 권태진,<em> 앞의 글</em>, p.31,34<br />
</div><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기근" rel="tag">기근</a>,&nbsp;<a href="/tag/북한기근" rel="tag">북한기근</a>,&nbsp;<a href="/tag/대북원조" rel="tag">대북원조</a>,&nbsp;<a href="/tag/WFP" rel="tag">WFP</a>,&nbsp;<a href="/tag/FAO" rel="tag">FAO</a>,&nbsp;<a href="/tag/포템킨마을" rel="tag">포템킨마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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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31 Oct 2009 12:11:1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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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 아놀드 캔터-김용순 회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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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0/27/40/b0009940_4ae64b3187b51.png" width="500" height="161.93181818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0/27/40/b0009940_4ae64b3187b51.png');" /></div><br />
1992년에 있었던 미국과 북한 간의 첫 고위급 회담이죠. 여기서 김용순이 미군 주둔을 인정하겠다는 말을 처음으로 꺼내 미국을 놀라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골때린 것은 그게 어떤 제안과 같이 나왔다는 점이었죠.<br />
<br />
<blockquote><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김용순은 미리 준비한 연설로 답변하면서 핵위협의 중지와 남한으로부터의 핵무기 철수를 요구했다. 그는 북한이 통일 이후에조차도 한반도의 미군 주둔을 기꺼이 수용할 것이라고 강력히 말했다. 그는 <strong>[남북한과 미국이] 함께 협력하여 이 지역에 대해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일본을 견제하자</strong>고 제의했으나, 캔터는 강력히 거부했다. 한 고위 관리는 “그들이 우리와 견해의 일치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했다”고 말한다.</span> (Leon Sigal, <em>Disarming Strangers</em>)</blockquote><br />
견해의 일치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거로는 도저히...<br/><br/>tag : <a href="/tag/아놀드캔터" rel="tag">아놀드캔터</a>,&nbsp;<a href="/tag/김용순" rel="tag">김용순</a>,&nbsp;<a href="/tag/일본을공격한다" rel="tag">일본을공격한다</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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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7 Oct 2009 01:49:0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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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garry's comments(2)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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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앞의 글에 이어 계속 살펴 보지요.<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배급도 못 받았고 구매력도 없다면 <span style="color:#3333ff;">북 하층주민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 남아있을까요?</span><br />
물건을 만들거나, 장사를 하거나, 도둑질을 해서 시장에서 식량을 구매해 먹고 있다는 경우의 수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탈북자 말이 북주민들은 모두 도둑질을 한다고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정부 배급을 기다리던 학교 선생님 같은 부류들은 다 굶어 죽었고 아주 독한 사람들만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5963#12961063.02" target="_blank">출처</a>)<br />
<br />
한달 일해서 하루치 먹는다는 얘기는 누군가가 공식적인 월급만 보고 오해한 것이지요. 북 주민등은 1~2달러에 불과한 급료에 기대서 살지 않고 살수도 없습니다. 적만 직장에 걸어 놓고 부업에 의존해 벌어서 시장에서 식량을 사먹지요. (<a title="" href="http://yangsp3.egloos.com/5097962#12054791" target="_blank">출처</a>)</div><br />
<br />
제가 알기로는 이 문제에 대한 조사결과가 세 가지(*1) 있습니다.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에 의한 두 번의 조사와 NGO "좋은 벗들"의 조사입니다. 이들은 탈북자(식량난민)에 대한 설문조사이기 때문에 계층적 편향이 있기 마련입니다만, 우리가 알고자 하는 기근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집단을 이해하는데는 오히려 더 적합한 자료입니다.<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26/40/b0009940_4ae569bc11e12.png" width="442" height="20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26/40/b0009940_4ae569bc11e12.png');" /></div><div align="center">표1. Johns Hopkins(1999)</div><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26/40/b0009940_4ae569cd9c817.png" width="500" height="202.16962524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26/40/b0009940_4ae569cd9c817.png');" /></div><div align="center">표2. Johns Hopkins(2001)</div><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0/26/40/b0009940_4ae569db77d11.png" width="500" height="197.0297029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0/26/40/b0009940_4ae569db77d11.png');" /></div><div align="center">표3. '좋은벗들'(1999)</div><br />
<br />
우선 처음 두 자료에는 배급의 폭락과 시장(구입+교환)의 증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표3에서도 상행위의 중요성이 확인됩니다. 여기서 북한의 식량수급에 있어 <strong>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음</strong>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연구자들 사이에 광범위한 합의가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br />
<br />
그러나 이 자료에는 눈여겨 볼 점이 더 있습니다. 우선 표3에서 보이는 가재·가옥 매각의 만만치 않은 비중입니다. 자산매각에 의존한다는 것은 직장 급료를 통해서건 장마당을 이용한 부업을 통해서건 <strong>수입과 지출을 맞출 수 없었다</strong>는 의미죠. 게다가 이런 자산매각은 1회성 대책이고 기본적으로 별 자산이 없는 북한 하층민들이 이런 방법에 의존할 경우 아주 빠르게 빈털털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br />
<br />
다음은 표1과 표3에 아주 크게 나타나고, 표2에는 그보다 적지만 여전히 15%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대용식의 존재입니다. 대용식은 <strong>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벗겨먹는(草根木皮)</strong> 상황을 점잖게 묘사한 것입니다.<br />
<br />
<blockquote>1996년 여름에 야생의 대용식 비중은 약 30%나 되었다(Natios, 2001:81). 북한 당국은 기근의 시기에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하여 야생식량의 채취를 적극적으로 장려·지도하였다. 그 비디오에는 연못의 수초를 채취하여 건조시킨 것을 가루로 만들어 밀가루나 옥수수가루에 섞어 먹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또한 어느 부분에서는 옥수수 껍질이나 나뭇잎, 풀을 갈아서 제면기에 넣는 장면도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면은 영양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위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나치오스는 기근구제 활동을 해온 지난 10년간 이와 같은 대용식의 장려는 본 적이 없는 ‘기괴한 기근대처법(a bizarre manifestation of a hunger coping mechanism)’으로 부르고 있다. (*2)</blockquote><br />
'좋은 벗들'의 탈북자 수기집에서도 대용식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br />
<blockquote>풀이나 벼뿌리 같은 것을 우려먹고, 송기떡 해먹고 뒤가 막혀 똥을 못 누어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잘못되면 죽기도 하고. 송기떡 먹고 하도 당해서 요새는 사람들이 그거 안 먹는다. 그리고 또 쑥떡을 먹고 죽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왜 그런지. 하여튼 쑥떡 해 먹고 죽은 사람이 여럿이었다. 똥을 못 누는 사람은 비눗물을 풀어서 항문으로 넣어 준다. 고무호스 같은 것을 이용해서 비눗물을 넣어 준다.(*3)</blockquote><br />
이런 자료들이 보여주는 점은 지난번 기근에서 살아남은 북한 주민들은 시장경제에 적응해 <strong>자기 소득원을 확보</strong>해서라기 보다는, 가재도구를 내다 팔고 풀뿌리를 캐먹는 등 있는 거 없는 거 모든 수단을 다 써서 생존투쟁을 벌인 끝에 운과 실력이 조금 앞선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게 보다 적합한 묘사라는 겁니다.<br />
<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sonnet님은 시장이 있어봐야 구매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만, 90년대 기아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절을 뒤에 다시 10년 이상이 흘려갔습니다. 배급을 못 받고도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은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전히 일정한 수는 굶어죽고 있겠으나 대부분의 하층민들은 <span style="color:#3333ff;">미약하지만 안 굶어 죽을 정도의 구매력은 분명하게 있다</span>는 겁니다.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5963#12961063.06" target="_blank">출처</a>)</div><br />
단순히 이제 10년이 흘렀으니까 취약계층들도 <strong>시장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인타이틀먼트)를 이미 습득</strong>했을 거라는 주장은 근거가 별로 없습니다. 뱅갈 기근(1943)이나 방글라데시 기근(1974) 사례를 통해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5963#2" target="_blank">아마티아 센이 보여준 것</a>처럼, 어떤 외부충격이 올 경우 취약계층의 식량획득능력은 아주 쉽게 추락하곤 합니다. 과거의 취약계층이 건실한 중산층이 되어 위기에 처하면 저축을 깨서 1~2년 정도 버틸 수는 있다든가 하는 그런 식의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br />
<br />
북한 사회가 적절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이상, <strong>구호활동이 취약계층을 직접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견해</strong>는 여전히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번 기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 적응했을테니 그런 거 필요없다는 주장이 무슨 설득력이 있을까요.<br />
<br />
<br />
<a href=#none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this.nextSibling.style.display=='none')?'block':'none';>주</a><div style="DISPLAY: none"><br />
*1 Robinson, W et al. <a title="" href="http://www.thelancet.com/journals/lancet/article/PIIS0140-6736%2899%2902266-7/abstract" target="_blank">“Mortality in North Korean migrant households: a retrospective study.”</a> The Lancet. 354.9175 (1999): 293.; 표2는 Robinson, W et al. 의 후속 연구를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Famine in North Korea: Markets, Aid, and Reform. 1st e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이형욱 역,『북한의 선택』, 매일경제신문사, 2007, p.253)에서 재인용; 표3은 좋은 벗들(1999) 자료를 정광민이 정리. 정광민, 『북한기근의 정치경제학』, 시대정신, 2005, p.163<br />
*2 정광민, 같은 책, p.166<br />
*3 좋은 벗들 편, 『북한 사람들이 말하는 북한 이야기』, 정토출판, 2000, pp.22-23<br />
</div><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기근" rel="tag">기근</a>,&nbsp;<a href="/tag/북한기근" rel="tag">북한기근</a>,&nbsp;<a href="/tag/대용식" rel="tag">대용식</a>,&nbsp;<a href="/tag/초근목피" rel="tag">초근목피</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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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lame!</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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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net.egloos.com/4263194#comments</comments>
		<pubDate>Mon, 26 Oct 2009 11:10:58 GMT</pubDate>
		<dc:creator>sonn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garry's comments(1) ]]> </title>
		<link>http://sonnet.egloos.com/4261817</link>
		<guid>http://sonnet.egloos.com/4261817</guid>
		<description>
			<![CDATA[ 
  최근 제 블로그를 방문해 수 없이 많은 덧글을 남겨주고 계신 분이 계신데, 여기저기 덧글로 답하기에는 너무 산만해서 좀 모아서 답해볼까 합니다. <br />
<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span style="color:#3333ff;">북은 식량을 수입할 외환이 원래 없어요.</span>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으로 그 차액은 중국이 원조로 매꿔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원조 중에는 현물인 식량도 상당히 포함됩니다. 현물 식량을 기준으로 북에 가장 식량을 많이 원조한 나라는 중국이네요. 그러니까 외환으로 중국에서 식량을 구입할 필요가 그만큼 줄었겠지요. 사안을 입체적으로 봐야지, 선별된 단 한가지 통계만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소설이 됩니다.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0113#12973054.04" target="_blank">출처</a>)</div><br />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소설을 쓴다라. 흐.<br />
적어도 두 연구(정광민, 2005:150~154, Haggard&Noland, 2007:80~89)가 북한이 수입을 원조로 대체했다고 평가한다는 점을 이미 보여드렸습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연구자 몇 명을 더 들어 줄 수도 있구요. 저는 이 점에 관해서 별로 고립된 입장이 아닙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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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북이 식량을 수입할 외환이 없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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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북은 미사일을 중동에 팔아 연 <span style="color:#3333ff;">5억~15억 불 정도를 번다</span>고 합니다. … 미사일 판매 자금만으로도 핵 개발 비용의 충당이 가능할 것입니다.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5963#12961394.05" target="_blank">출처</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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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여행경비로만 북한이 받은 돈은 4억3천877만달러"라는 반박에 답하며] <span style="color:#3333ff;">금강산 관광사업은 북 군부가 관리하고 그쪽 자금으로 썼다</span>고 알려져 있습니다. 쓸데없이 관광객을 사살해서 중단시켰다고 후회한다는군요. 지금은 통일전선부로 소속이 바뀌였다고 합니다만.<br />
한 나라를 꾸려 가는데에는 여러모로 외환이 많이 필요하겠지요. 북은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입니다. 국내 생산기반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에, 공산품의 80%를 중국에서 수입해서 사다 쓴다고 합니다.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7586#12965634.04" target="_blank">출처</a>)</div><br />
이런 저런 경로로 외환이 확보된다는 것을 별 거리낌없이 인정하지만 "한 나라를 꾸려 가는데에는 여러모로 외환이 많이 필요"할거라는 말로 넘어갑니다. 이건 결국 "북이 식량을 수입할 외환이 없다"란 굶어죽는 사람이 나와도 <strong>식량을 수입하는 일 따위에 쓸 외환은 없다</strong>는 말인 거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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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런가 한 번 볼까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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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북은 어짜피 남과 상대도 안되는 <span style="color:#3333ff;">재래식 군비 확장에는 관심도 없는 것</span>이고 유사시 남을 군사력으로 점령하겠다는 야심도 없는 것입니다. … 어짜피 핵 무기가 있으면 미국이 공격 못한다고 보고 거기에만 집중하는 것이지요.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8739#12967010.06" target="_blank">출처</a>)</div><br />
여기에 대해선 다음 논평이 충분한 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br />
<blockquote>유감스럽게도 [북한] 정부는 인도주의적 원조를 국내 생산과 교역을 통한 공급원에 추가하기보다는 국제수지를 보충하는 데 다량 사용했으며, 수입 감소 때문에 절약된 외화를 다른 우선순위, 군수용이나 상류층을 위한 사치품 수입 등에 할당했다. 예를 들어 1999년 교역을 통한 <strong>곡물 수입을 20만 미터톤 이하로 줄였던 시점에 정부는 외환을 미그 21 전투기 40대와 군용 헬리콥터 8대를 카자흐스탄에서 구매하는 데 할당</strong>했다. 더구나 이 시기는 실제로 북한의 안보 상황이 크게 개선되었던 시점이다.<br />
첫 번째 핵 교착 상태를 종결시킨 북미기본합의서가 거의 5년 동안 정착되어 온 시점이었고, 북한은 더디기는 하지만 많은 잔여 현안, 특히 미사일 관련 문제에서 미국과의 협상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는 외교적 경제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조절 실패, 원조가 늘어나자 교역을 통한 수입을 줄인 점, 굶주려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데도 군사 지출과 사치품 수입을 계속한 사실은 기근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Haggard&Noland, 2007:91)</blockquote><br />
즉 "관심도 없"다는 재래식 군비도 사실 곡물 수입보다는 우선권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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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입장은 반복적으로 제기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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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모든 체제는 자체의 유지가 지고의 가치입니다. <span style="color:#3333ff;">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span>이지요.<br />
황장엽 선생의 지적에 따르면, 북의 경제체제는 당 경제, 군 경제, 인민경제로 3분되어 돌아간다고 합니다. 북의 경제난이 심화되더라도 핵무기 개발 등을 담당하는 당 경제, 군경제는 덜 위축됩니다. 결과로 <span style="color:#3333ff;">경제난의 대부분이 인민경제에 집중</span>되는 지렛대 효과(leverage effect)가 발생해서 사람이 대량으로 굶어죽고, 그럼에도 당경제, 군경제가 담당하는 핵무기 개발에는 아무런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는 매우 잔혹하고, 경제의 각 부분의 섹터화로 인해 비효율이 초래되는 방식이지만, 동시에 북 체제 유지를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일 것입니다.<br />
힘의 우위를 통해서 외부에서 <span style="color:#3333ff;">북 내부의 자원 배분의 순위를 바꿀 수 없습니다.</span>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7586#12963787" target="_blank">출처</a>)</div><br />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북한 경제가 특권경제와 나머지 인민경제로 나뉘어 있고, 모든 면에서 우선권이 없는 인민경제가 경제난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입게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당연히 북한 정권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strong>진정한 개혁(개방은 둘째 치고)의 의지가 있다면 제일 먼저 손대야 하는 부분</strong>이기도 합니다.<br />
<br />
그리고 이 부분에서 별다른 개혁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북한에 개혁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하는 대목입니다. 사실 김일성 사후 북한은 선군정치라는 형태로 이 특권체제를 공식화하고 강화했지, 단 한 걸음도 개혁의 방향으로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br />
<br />
물론 이에 대해 북한이 변명하는 것이 있긴 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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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더 나아가 보자면, 북 입장에서의 식량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으로 식량을 수입할 외환을 충분히 버는 것이며, 그럴려면 <span style="color:#3333ff;">미국의 적대적 무시를 깨야</span> 합니다. 이를 깰 수단은 핵 확산을 도저히 방치할 수가 없는 미국을 협상장으로 나오게 만들 핵무기 개발입니다.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7586#12963806" target="_blank">출처</a>)</div><br />
이건 최대한 좋게 봐줘도 북한이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근본적인 <strong>개혁을 하지 않는 책임을 외부에 전가</strong>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왜냐면 이건 북한이 오래 전에 제맘대로 써놓은 희망사항일 뿐 이 각본이 북한의 경제발전을 전혀 담보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br />
<br />
핵포기가 걸려 있어서 쉽지 않겠지만, 예를 들어 미국과 북한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다고 해 봅시다. 그런다고 미국이 북한에 대거 투자할 것도 아니고, 북한 상품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소련과 미국이 외교관계가 없어 냉전을 했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미국과 북한 간의 외교관계는 미국-시리아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별볼일없이 냉랭하거나 아니면 미국-베네수엘라에서 보듯이 끊임없이 사소한 시비가 계속되는 그런 관계로 곧 전락해 버릴 가능성이 큽니다.<br />
<br />
반면 미국과의 공식외교관계가 없더라도 북한의 경제규모나 수준으로 볼 때 중국을 무역파트너로 삼아 1990년 이후 개혁개방 노선을 취하는 것은 가능했을 터이며, 20여 년간 계속된 중국의 빠른 성장에 편승해 커다란 이익을 누릴 수 있었을 겁니다. 북한은 이런 방향으로는 별 노력을 취한 게 없습니다.<br />
<br />
북한이 미국에 대해 취했던 태도와 그 귀결은 다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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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누구든지 간에 온 세상이 나에게 적대적이라는 주장이 옳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두 말할 나위 없는 특권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가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적대적이라는 주장을 충분히 자주 외치고 다니며 그 주장을 자기 행동의 근본으로 삼고 살다 보면 그는 결국 자신이 옳았음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span><br />
<br />
- 「소련 행동의 원천<a title="" href="http://www.foreignaffairs.org/19470701faessay25403/x/the-sources-of-soviet-conduct.html">The Sources of Soviet Conduct</a>」(1947), <a title="" href="http://en.wikipedia.org/wiki/George_F._Kennan">George F. Kennan</a> -</div><br />
<br />
김정일의 나이나 건강으로 볼 때, 그에게 아주 긴 시간이 남았다고 보긴 힘듭니다. 북핵문제 또한 최고로 잘 풀려도 4~5년 정도로 해결되진 못할 겁니다. 최소한 미북수교 이후에야 개혁 개방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라면, 결국 김정일이 천수를 누려도 그의 살아 생전에 개혁개방이 제 궤도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며, 사실 그 이후는 김일성-김정일의 기존 노선에서 얼마나 이탈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김정일이 김일성을 계승했던 것과 비슷하게 강한 연속성을 유지한다면 여전히 개혁개방은 요원할 것이며, 반대로 새 정부가 과거와의 단절을 택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북한을 갖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뿐입니다. 그건 그 때 가서 상대의 행동을 봐가며 판단할 수밖에 없지요.<br />
<br />
<br />
한편으로 원조가 (추가 경비가 들더라도) 분배 모니터링을 통해 북한의 취약계층에게 전달되건, (특권계층이 우선적인 이익을 누리는 것을 감수하고) 압도적인 물량을 퍼부어 포화상태를 야기해 취약계층에게까지 물량이 전달되건 간에, 둘 다 성공한다면 굶어죽는 사람을 구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왜 모니터링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까요?<br />
<br />
앞서 나온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려면, 저는 garry씨께서 여기 오셔서 원조가 적절히 분배되는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데 극렬히 반대하며 그 대신 묻지마 원조를 줘야 한다고 역설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다음 주장에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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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북의 김정일은 건강도 안좋고 언제인가 죽을테인데, 그래도 북의 관료체계는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 그러니 <span style="color:#3333ff;">그들[북의 현 지배층]의 신뢰와 환심을 사두어야지요.</span>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7586#12965646.03" target="_blank">출처</a>)</div><br />
기근에 처한 북한 소외계층을 돕고 그들의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에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북한의 현 지배층이 원하는 대로 해먹을 수 있게 판을 깔아준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가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8739" target="_blank">앞에서 지적</a>했듯이 이런 입장은 끊임없는 논란과 분쟁의 소재일 뿐입니다. 이런 입장을 무리하게 끼워팔려고 들수록 인도적 원조 전체가 정치적 환경에 따라 흔들리게 될 수밖에 없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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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만 계속하면 좀 지겨우니까 새로운 논거를 하나 제기해 보겠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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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과는 달리 북한이 자력갱생식 자립경제를 목표로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식량의 자급자족 또한 김일성이 누누히 강조해 온 핵심 사안이죠. 북한의 전형적인 곡물무역 패턴이 잘 드러나는 1975~80년도의 통계를 가져와 이런 자력갱생 정책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합시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0/24/40/b0009940_4ae2bc211a470.png" width="410" height="29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0/24/40/b0009940_4ae2bc211a470.png');" /></div><br />
이 시기에도 무역수지는 10억 달러의 적자였지만, 곡물무역만 놓고 보면 약간의 흑자를 거둡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금액기준과는 반대로 물량기준으로는 적자라는 것입니다. 즉 균형을 유지하되 상대적으로 비싼 곡물(쌀)을 팔아 싼 곡물(밀)을 사옴으로서 양을 불린 것입니다. 이석은 이런 패턴이 (북한 농업 문제가 심각해지는) 1985년 이전까지 이어지는 북한 곡물무역의 기본 패턴이라고 지적합니다. <br />
<br />
이는 우리나라처럼 농업의 자급자족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대신 공산품을 수출해 농산품을 수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입니다. 북한이 시도한 것은 자급자족 원칙을 고수하되, 농업 부문이 교역을 통해 자체해결을 강화하는 정도까지는 허용한다는 것이지요.<br />
<br />
북한의 그 다음 대책은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배급량을 10%씩 10%씩 줄여나가면서 소비를 억제한 것입니다. 결국은 더 줄일 수 없는 지점까지 줄어든 다음에는 배급 자체가 잘 나오지 않게 되지요.<br />
<br />
다음은 후방공급사업입니다. 이것은 기관과 기업소가 부식류를 자체해결하게 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북한이 기대한 대로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사실상 후방공급활동이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공장 부속지 등에서 직접 농업노동에 참가하여 식료를 획득하는 시스템"(정광민, 2005:132)으로 동작합니다. 잘 알려진 텃밭이나 뙈기밭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br />
<br />
또 기근이 심화되자 김정일은 지방정부나 기업소가 외국과의 직거래로 식량을 조달할 수 있게 허용하는 소위 '외화벌이'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합니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장마당 등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기도 합니다.<br />
<br />
이런 일련의 대책들에는 일관된 측면이 있습니다. 식량문제에 있어서 골치아픈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북한의 중앙정부는 중앙이 보유한 힘을 이용해 다른 분야에 있는 자신의 자원을 끌어다 해결해 주는 것을 극력 피하고, <strong>자체해결</strong> 혹은 <strong>자력갱생</strong>을 강조하면서, 해결의 책임을 남들에게 떠넘겼던 것입니다.<br />
<br />
북한이 자신이 보유한 외환을 식량수입에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외국 원조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평가는 이런 관점에서 지지될 수 있습니다. 이건 과거 수십 년 동안 북한 정부가 해왔던 행동의 연장선으로 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니까요. <br />
<br />
북한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업적이자 딴에는 자신들의 자기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자주, 자립, 자급자족, 자력갱생, 자체해결 등이 사실 북한의 실패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쓸만한 것인지는 이런 것들과 결별했다는 근거가 있는지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br />
<br />
북한 농업문제 연구자인 김운근의 논평으로 마무리를 짓도록 하지요.<br />
<blockquote><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문제는 김일성시대의 농업정책을 하나하나 변화시켜 나가는데는 여러 가지 제약이 가로놓여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strong>각종 농업정책들이 김일성 교시에 수록</strong>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함부로 수정하거나 폐지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북한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이것이 북한의 헌법이요 농업기본법이기도 하다.</span></blockquote><br />
어디 농업 뿐이겠습니까. 김일성의 유산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어디건 본격적인 개혁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은 태생적으로 아버지의 유산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죠.<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기근" rel="tag">기근</a>,&nbsp;<a href="/tag/북한기근" rel="tag">북한기근</a>,&nbsp;<a href="/tag/자급자족" rel="tag">자급자족</a>,&nbsp;<a href="/tag/자력갱생" rel="tag">자력갱생</a>,&nbsp;<a href="/tag/주체농법" rel="tag">주체농법</a>,&nbsp;<a href="/tag/김일성" rel="tag">김일성</a>,&nbsp;<a href="/tag/김정일" rel="tag">김정일</a>,&nbsp;<a href="/tag/개혁개방-북한" rel="tag">개혁개방-북한</a>,&nbsp;<a href="/tag/식량원조" rel="tag">식량원조</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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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4 Oct 2009 09:08:4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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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사례 하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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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 />
앞서 1994~1997년의 북한 기근은 지역적 편차가 크고 함경남북도가 최대의 피해지역이란 이야길 했었습니다. 다음 두 그림은 그런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0/22/40/b0009940_4adf72b950461.jpg" width="500" height="466.34615384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0/22/40/b0009940_4adf72b950461.jpg');" /></div>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22/40/b0009940_4adf72c0b3330.jpg" width="500" height="46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22/40/b0009940_4adf72c0b3330.jpg');" /></div> (이 데이터는 기근이 끝난 몇 년 뒤에 수집된 것이고, 1997년에 WFP가 조사한 데이터에 비해 전반적으로 훨씬 양호한 결과를 보입니다. 기근 당시에는 이보다 훨씬 심했을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br />
<br />
<br />
<br />
1995년, WFP(세계식량계획)가 북한에 식량원조를 시작했을 때, 북한은 원조활동이 진행될 지역을 엄격하게 제한했습니다. 다음 지도는 북한의 조치가 어떤 의미를 내포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22/40/b0009940_4adf7709b1ca7.jpg" width="500" height="452.88461538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22/40/b0009940_4adf7709b1ca7.jpg');" /></div> <div align="center">(지도의 출입가능지역 표시가 뒤집혀 있어서 수정함)</div><br />
그들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만 구호 활동을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지원물자는 함경도의 반대편인 남포항에다 하역하도록 요구합니다.<br />
<br />
그러나 중국으로 탈북한 식량난민들의 공통된 주장은 함경도가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WFP는 북동지역에 대한 접근을 요구하지만 북한 당국은 이를 번번히 거부합니다. 드디어 WFP가 <strong>북동지역에 접근할 수 없다면 지원을 끊겠다고 강력히 압박</strong>하자 북한은 드디어 함경도 지역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근 발생 후 만 3년이 되는 1997년 3월의 일이고, 실제로 청진항에 구호물자가 하역되기 시작한 것은 다시 두 달 후인 1997년 5월부터입니다. 이런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1997~8년 동안 동해안 지역으로 하역된 구호물자는 전체의 20% 미만이었습니다.<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22/40/b0009940_4adf7b08c649c.jpg" width="500" height="461.53846153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22/40/b0009940_4adf7b08c649c.jpg');" /></div> <div align="center">WFP는 북한에 압력을 가해 함경도를 구호활동에 개방하도록 함</div><br />
<br />
중국에서 육로로 수입되는 식량은 간선철도망을 따라 주로 신의주로 들어오는데, 서방국가들로부터의 원조 또한 평양 코앞인 남포에서 하역하도록 요구한다는 것, 이건 북한 정권의 정책적 우선순위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원조가 전달되어야 한다는 요구와 그 확인을 위한 모니터링이 없을 때 북한 정권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여기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br />
<br />
덧붙이자면 WFP는 한때 모니터링을 위해 북한 전체 210개 군 중 167개 군을 방문할 수 있었지만, 2005년부터 이어진 북한의 금지조치 확대로 현재는 57개군에서만 활동가능합니다. 이건 원조를 처음 시작했던 시절(혹은 그 이하)로 후퇴했다는 말입니다.<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기근" rel="tag">기근</a>,&nbsp;<a href="/tag/북한기근" rel="tag">북한기근</a>,&nbsp;<a href="/tag/대북원조" rel="tag">대북원조</a>,&nbsp;<a href="/tag/세계식량계획" rel="tag">세계식량계획</a>,&nbsp;<a href="/tag/WFP" rel="tag">WFP</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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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1 Oct 2009 22:16:5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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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의 원칙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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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다소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느낌이어서, 제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번 정리해 볼까 합니다.</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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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해 견고한 자기 입장을 확립한 소위 '보수'나 '진보' 외에, 우리 사회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부동층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이 굶어 죽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치한다는 생각은 <strong>어지간한 사람의 도덕적 직관에 심각하게 어긋나는 것</strong>이기에 어떤 장황한 설명을 붙이건 간에 "어찌 되었건 사람은 살려 놓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를 꺾을 수는 없으며, 민주정 하에서 부동층에게 이런 입장을 성공적으로 전파해 다수를 형성한다는 것은 무리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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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자"는 제안을 팔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을 들고 돌아다니는 이들 중 반 쯤은 가짜라는 이야길 들었다고 하자. 그럼 조금 있다 만난 모금함에 돈을 내고 싶어지겠는가? 좀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바꾸자면 인도적 원조에 대한 빈번한 협잡이나 전용 사례는 원조 그 자체의 의도된 효과를 잠식할 뿐만 아니라 <strong>원조를 지속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손상</strong>시킨다. 심지어 그것이 훌륭한 인도적 목적을 가진 것이라 할지라도.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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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것을 단순히 다른 정치적 동기에 의한 반대를 정당화하는 편리한 명분 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북한에서 활동하던 잘 알려진 국제 NGO 단체들 - 세계 의사회, 국경없는 의사회, 기아퇴치운동, 케어 인터내셔널, 옥스팜 등 - 이 북한의 악질적인 농간을 비난하면서 철수했다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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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야에는 국제적으로 많이 논의된 일련의 원칙이 있다. 예를 들면 도움이 가장 절실한 주민에게 인도적 원조가 도착함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하고, 사전검토(assessment), 모니터링, 결과평가(evaluation)가 가능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접근이 허용된 지역에만 원조가 배급되어야 하고, 주민의 인도적 관심사를 보호해야 하며, 현지의 역량 구축을 지원해야 하며, 프로그램 계획과 실행에 수혜자를 참가시켜야 하고, 국제기구 요원의 정원이 충분해야 하며, 국제 인도주의 단체의 건강과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등이 바로 그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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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원조 전용과 맞서 단호하게 싸우는 이유는 전용을 차단하고 인도적 원조를 성공시키기 위함이지, 단순히 그것을 핑계로 사업을 걷어치우기 위함이 아니다. 그리고 원조 전용 문제와 맞서 단호하게 싸우는 입장을 고수해야만 원조 전용이 근절되지 않은 환경에서 계속 일해 나가는 데 대한 정당성을 적절히 방어할 수 있다. 문제는 개선되고 있으며 싸워서 문제를 해결할 전망이 있기 때문에 남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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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정권 교체에 관계 없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정책이 견고하고 연속된 공통 기반을 갖기 위해서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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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즉 북한 취약계층의 필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br />
(2) 의도치 않은 국외자들(북한 정권과 당정군 집단)이 지원을 가로채 이익을 누리는 일이 없도록 효과적으로 배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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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나간다는 두 조건을 동시에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이 두 가지 목표는 동등하게 중요한 것이며, 또한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 대신 다른 한 쪽을 배제하는 선택은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원래 대립하던 두 입장 사이의 타협의 파기를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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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목표는 원칙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또 두 목표가 동시에 성취될 때 최선의 결과가 도출됨은 명백하다. 따라서 대립하는 양 진영 모두에게 이것을 원칙으로 삼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공통의 원칙이 받아들여지고 뿌리내린 후라면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이 집권 중이거나 아니거나에 관계없이 (공개적 논쟁에서 부인할 수 없는) 공통의 원칙에 호소함으로서 정책논쟁에서 서로의 관심사를 보다 잘 보호할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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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공동의 기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지금 보듯이 정부나 의회 다수당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요동은 훨씬 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기근" rel="tag">기근</a>,&nbsp;<a href="/tag/북한기근" rel="tag">북한기근</a>,&nbsp;<a href="/tag/대북지원" rel="tag">대북지원</a>,&nbsp;<a href="/tag/인도적원조" rel="tag">인도적원조</a>,&nbsp;<a href="/tag/식량원조" rel="tag">식량원조</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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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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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9 Oct 2009 22:35:4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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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북한은 식량원조가 얼마나 필요한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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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예를 들어 북한의 곡물필요량이 연간 500만 톤이라고 하고 올해 곡물생산량이 400만 톤으로 예상된다고 합시다. 그러면, 500 - 400 = 100 이라는 간단한 계산을 통해 100만톤의 원조가 필요하다 이런 식의 결론을 내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런 답은 허점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이 세상에 식량이 자급되지 않는 나라들은 모두 원조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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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라들 대부분은 국제시장에서 식량을 수입해 아무 문제 없이 살고 있습니다. 즉 한 나라의 식량확보능력은 <strong>자체생산량 + 상업적 수입능력</strong>으로 평가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최저수요선에 미달할 경우에는 원조가 필요해지겠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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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북한의 식량도입 패턴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18/40/b0009940_4ada38dbc2c71.jpg" width="500" height="416.34615384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18/40/b0009940_4ada38dbc2c71.jpg');" /></div><br />
북한 기근이 발생하기 전(1990~93)의 수입량이 기근(1994~97) 때보다도 많고, 원조가 늘어나자 수입량은 더더욱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북한의 식량 총 도입량에서 원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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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총 식량공급량 중 수입을 기정사실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 [북한] 정부는 교역을 통한 수입을 계속 유지하는 한편, 인도주의적 원조는 이를 보충하는 형태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span style="color:#ff0000;">원조 받은 식량으로 수입을 대체</span>해 버렸다."</span> (Haggard & Noland, pp.82-83)</blockquote><br />
이는 선의로 주어진 식량원조가 김정일 정권에 나쁜 인센티브로 작용했음을 의미합니다. 김정일 정권은 외부에서 원조를 받을 수 있게 되자 <strong>자국민을 먹여살릴 의무를 방기하고 기존에 자신들이 하던 몫까지 해외에 떠넘긴 것</strong>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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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절약된 외환은 북한 정권의 다른 높은 우선순위를 가진 사업, 핵개발이나 군비지출, 엘리트 층을 위한 특혜 등에 돌려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정권 차원의 전용 문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줍니다. 북한 정권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원조받은 식량을 직접 해외에 매각하지 않고도 더 쉽고 표나지 않는 방법으로 처리하는 수가 있다는 거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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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센티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으로는 매칭펀드, 즉 북한이 자국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자기 돈으로 수입하는 곡물의 양과 원조의 양을 연계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량이 100만톤이 부족할 경우, 북한이 해외에서 식량 50만톤을 수입하면 원조국들도 50만톤을 무상 원조하고, 북한이 그걸 30만톤만 수입하면 자구책에 더 힘쓸 것을 촉구하면서 30만톤만 지원하는 그런 식으로 원조를 조정하는 것이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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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가지 가능성이 남습니다. 북한이 정말로 돈이 없어서, 속된 말로 "거덜이 나서" 식량 수입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면 그건 불가항력으로 인정해줄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정말 그랬을까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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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0/18/40/b0009940_4ada83f41c4f5.jpg" width="500" height="451.92307692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0/18/40/b0009940_4ada83f41c4f5.jpg');" /></div><br />
이 그래프는 전체 수입 중 식량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줍니다. 북한은 전체 수입 중 식량의 비중이 대략 10%를 조금 넘는 선에 도달했던 게 고작이고, 그나마도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비중이 계속 낮아집니다. 물론 석유라든가 산업원자재 같은 다른 대체할 도리가 없는 필수 수입품들도 있을 수 있기에 북한이 모든 수입을 식량으로만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떻게 봐도 북한의 식량 수입 비중은 높지 않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strong>외환의 배정 순위가 그만큼 낮았다</strong>고 할 수 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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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쿠바와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납니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쿠바도 소련/동구권과의 무역에 절대적으로 의존(80%)하고 있던 국가여서 90년대 초에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았습니다. 쿠바는 1989~90년과 1995~95년 사이에 총수출입액이 70% 이상 감소(같은 기간 동안 북한은 약 50% 감소)합니다. 하지만 쿠바는 식량수입을 총수입의 20%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북한 같은 기근을 겪지도 않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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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황당한 것은 <strong>기근의 초반(1994~95)에 북한의 식량 수입이 크게 줄었다</strong>는 것입니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에버스타트, 정광민, 해거드&놀랜드 등 많은 연구자들은 북한은 기근을 맞이해 (자신들의 비상금을 계속 풀기보다는) <strong>'원조극대화 전략'을 선택</strong>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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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나라에는 절대 기근이 없으며 외부의 기근 가능성 추측은 모두 "공화국에 대한 음해"라고 주장하며 버티던 1990년대 초반 3년간, 북한은 평균 140만 톤의 식량을 수입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비해 현재의 경제상황이 더 나쁘지 않다고 한다면, 북한은 그 정도까지는 자기 지갑에서 지출할 능력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부실화된 회사에 사재 출연을 요구당한 총수만큼이나 위대한 지도자의 마음도 쓰리겠습니다만.<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기근" rel="tag">기근</a>,&nbsp;<a href="/tag/북한기근" rel="tag">북한기근</a>,&nbsp;<a href="/tag/대북지원" rel="tag">대북지원</a>,&nbsp;<a href="/tag/전용" rel="tag">전용</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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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8 Oct 2009 08:30:1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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