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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 quarantine statio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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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24 Nov 2009 03:15:3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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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 quarantine statio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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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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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4자회담의 최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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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제 미발표 원고의 일부인데, garry씨가 하도 평화회담 평화회담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에 해당 부분만 잘라서 답하기로 합니다.</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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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4월, 클린턴과 김영삼은 제주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두 정상은 공동발표문[1]을 통해 "한반도에서 안정되고 항구적인 평화를 확립하는 일은 한국인의 과제"이며 "남북한이 주도"해야 하므로 "<strong>미국과 북한간의 별도 협상은 고려될 수 없다</strong>"는 것을 재확인(4항)하고, 대신 한미 양 국은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strong>남한, 북한,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strong>을 제의(5,6항)한다. 이 회담은 <strong>현재의 정전협정을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대체</strong>하기 위한 것이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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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반 세기 전의 휴전협정은 단순히 전투행위를 중단할 뿐이고 주요한 정치적 문제들은 이후 개최될 평화회담에서 다루어지기로 되어 있었다. 이런 회담은 1954년에 한 번 개최된 적이 있는데 바로 결렬되고 말았었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통한 평화회담을 요구해 오고 있었다. 이제 제네바 기본합의를 통해 핵문제도 일단 봉합해 놓았고 하니 뭔가 변한 점이 있는지 북한의 진의를 탐색해 볼 기회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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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수 차례의 실무접촉과 예비회담을 가진 후, 1997년 12월부터 제네바에서 제1차 4자회담이 개최된다. 이 회담에서 북한은 오로지 미국과의 협상과 주한미군 철수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미국은 주한미군 문제는 "상호 안보동맹에 기초해 한미간에 결정될 사안이지 다른 나라와 협상할 문제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한국과 중국도 이런 북한의 태도에는 부정적이었다. 북한 측 수석대표 김계관은 "<strong>적들이 단합되어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합의에 쉽게 도달할 수 있겠는가?</strong>"라는 말로 그들의 관점을 잘 요약했다.[2]<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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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4자회담은 여섯 차례의 회담을 통해 변함 없는 북한의 옛 모습만 확인하고 끝나 버렸다.<br />
<blockquote>북한은 4자회담 참석 후 한·미·중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의제를 제기해 회담 자체가 무용하도록 만들었다. 한·미·중은 평화체제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현재의 정전체제가 유지되어야 하고,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해 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쉬운 것부터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소의제를 먼저 정하고, 소의제에는 <strong>주한미군 철수, 미·북 평화협정 문제가 반드시 포함</strong>되어야 하며, 분과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해도 사전에 미·북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점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3차 본회담에서 분과위 구성에 합의했으나, 이후 북한의 주장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북한은 처음부터 4자회담에 진정성이 없었다. 2차 본회담 북한 차석대표인 이근은 사적인 자리에서 한국대표에게 <strong>“우리가 이번 4자회담의 판을 깰 텐데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라.”</strong>고까지 언급했다.<br />
4자회담에 참석한 바 있는 한국 실무대표는 “북한은 기본적으로 ‘4-2’ 방식을 고수했다. 중국은 한·미에 대단히 동정적이었다. 그리고 예비회담에서는 우리를 지지하는 적극적 자세를 보였으나, 막상 본회담이 진행되자 북한의 주장에 막혀 별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중국은 1999년 8월 제6차 본회담의 의장국을 맡았다. 중국이 마련한 한반도 평화협정 초안에는 한·미가 선호하는 ‘군사적 신뢰구축’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비토로 결국 누락되었다. 북한이 북·미 양자협상 채널을 여전히 최우선시함에 따라 4자회담의 효용성은 소실되었다. 결국, 우리는 4자회담에 대한 기대를 접고 남북대화 추진 쪽으로 선회했다.”라고 회고했다.[3]</blockquote><br />
북한은 늘 한반도 평화체제를 원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4자회담은 아주 좋은 틀이었을 것이다. 남북합의의 이행을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보증해 주는 것이기에, 혹여 미국이나 남한이 북한을 속이려 할 경우에는 중국이 이를 견제해 줄 것이었다. 하지만 4자회담의 결렬을 통해 우리가 재확인한 것은 그들은 미북 양자회담과 미군철수를 원할 뿐이라는 것이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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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미정상회담 공동발표문, 1996년 4월 16일<br />
[2] Downs, Chuck., <a title="" href="http://www.amazon.com/exec/obidos/ISBN=0844740284" target="_blank">Over the Line: North Korea's Negotiating Strategy</a>, AEI press, 1999<br />
(송승종 역, 『<a title=""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26782&ttbkey=ttbsonnet0555001&COPYPaper=1" target="_blank">북한의 협상전략</a>』, 한울, 1999, p.391) <br />
[3] 최명해, 『<a title=""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7783097&ttbkey=ttbsonnet0555001&COPYPaper=1" target="_blank">중국·북한 동맹관계: 불편한 동거의 역사</a>』, 오름, 2009, pp.393-394<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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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의 … Garry's comment(6).<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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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힐러리는 평화협정을 북과 체결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6.25가 종결되는 것이니 자연히 미군 재배치와 남북의 군비통제가 딸려 나오고, 그럼 남북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해야 하니 이미 6.15에서 정의한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 한 2국가 2체제의 남북연합까지 논의가 딸려 나오는 것이 당연한 논리적인 수순인 것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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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은 빠르면 내년부터 남북연합에 대한 남북미중러의 논의가 시작될테인데, 이때에 분단의 고착화로 가지 않으려면 <span style="color:#3333ff;">남북이 같은 목소리를 내야</span> 한다고 지적합니다.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9180#13027224.09" target="_blank">출처</a>)</div><br />
흐흐.. 굴비두름처럼 사건이 딸려 나오는게 꼭, 우리 삼촌이 돈을 벌면 나에게 사업자금을 꿔 줄 것이고, 사업자금만 있으면 난 가게를 차릴 텐데 장사를 하면 물건은 날개돋힌 듯이 팔릴 것이고, 그래서 돈이 생기면 집을 살건데, 또 그 집 값이… 하는 패턴이로구만요.<br />
<br />
꿈은 꿈일 뿐이고… 위에서 제가 정리한 것처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다자논의를 시작하면 북한과 나머지 모든 나라들의 입장이 상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거야 두말할 나위 없이 북한이 억지를 쓰기 때문이죠. 북한이 억지쓰는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입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strong>남북이 같은 소리를 내야 한다</strong>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건 일방적으로 남한이 북한 입장을 맞춰 따라갈 때나 가능한 겁니다. (만약 북한이 남한 입장에 맞춘다면 모두의 의견이 크게 차이나지 않을테니 사실 남북한이 입을 맞출 필요도 없는 셈)<br/><br/>tag : <a href="/tag/4자회담" rel="tag">4자회담</a>,&nbsp;<a href="/tag/한반도평화체제" rel="tag">한반도평화체제</a>,&nbsp;<a href="/tag/빌클린턴" rel="tag">빌클린턴</a>,&nbsp;<a href="/tag/김영삼" rel="tag">김영삼</a>,&nbsp;<a href="/tag/김계관" rel="tag">김계관</a>,&nbsp;<a href="/tag/Garry" rel="tag">Garr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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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4 Nov 2009 03:15:3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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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garry's comments(5)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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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br />
<span style="font-size:130%;"><strong>1. 어떤 주장</strong></span><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쌀이 중간에 셌다고 합시다. 그게 어디로 갔어요? 배부른 북의 상류층이 아니라 배고픈 다른 북 내부의 다른 인간이 먹었을 것 아니에요? 만일 군대가 먹었더라도, 군대에 납부해야 할 농민의 부담이 줄어 농민에게 더 해택이 가는 적하효과는 나타나는 것 아니에요? 식량은 아무리 전용을 해봐야 결국 인간이 먹게 되어 있다. <span style="color:#3333ff;">한사람이 하루 열끼를 먹는 것도 아니니</span>, 남은 식량은 하위층에게 간다...이게 어려운 문제에요?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0113#12972724.22" target="_blank">출처</a>)</div><br />
언뜻 보면 그럴 듯도 해 보이는군요. 그런데 정말 이런 식으로 먹을 게 넘쳐서 하위층에게 식량이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그 수수께끼를 풀어 보도록 하지요.<br />
<br />
<br />
<span style="font-size:130%;"><strong>2. 북한의 식량 소요량, 생산량, 부족분</strong></span><br />
<br />
북한의 식량 소요량, 생산량, 부족분을 얼마로 잡느냐 하는 것은 추정 방법이나 연구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추정 뒤에는 몇 가지 가정이나 전제가 있기 마련이지요.<br />
<br />
<br />
<strong>2.1. garry씨의 추정</strong><br />
<br />
garry씨는 올해 북한의 식량부족분이 170만톤(<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5963#12961063.10" target="_blank">출처</a>) 혹은 200만톤(<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2449#12954932" target="_blank">출처</a>)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한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a title="" href="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01_main_square&wr_id=67614" target="_blank">출처</a>)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조금 인용해 보지요.<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농업 전문가인 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 박사는 아직 구체적 추정치가 나오지 않았다고 전제, 작년 431만t으로 추정된 북한의 곡물생산량이 올해는 10% 이상 감소, 400만t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 올해 외부도입량을 배제한 순수 생산량 기준으로 117만t이 부족했던 만큼 권 박사의 예상대로라면 내년 부족량이 150만t을 넘을 수도 있다. (<a title="" href="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09/10/23/0505000000AKR20091023197400043.HTML" target="_blank">링크</a>)</div><br />
이제 좀 구체적인 숫자가 확보가 되었군요. 그럼 위 기사의 수치를 갖고 간단한 역산을 해 보겠습니다.<br />
<br />
곡물소요량(작년): 431만톤 + 117만톤(부족분) = 548만톤<br />
곡물생산량(올해): 431만톤 × 90% = 388만톤 (혹은 그 이하)<br />
<br />
곡물생산량(올해): 548만톤 - 150만톤(연합뉴스 추정 부족분) = 398만톤<br />
곡물생산량(올해): 548만톤 - 170만톤(garry 추정 부족분①) = 378만톤(작년의 88%)<br />
곡물생산량(올해): 548만톤 - 200만톤(garry 추정 부족분②) = 348만톤(작년의 80%)<br />
<br />
결국 북한은 한 해 <strong>550만톤</strong>의 식량이 필요한데 실제로는 <strong>350~380만톤</strong> 밖에 생산하지 못했으므로 <strong>170~200만톤</strong>의 식량이 부족할 것이다라는 것이 garry씨 주장을 뒷받침하는 계산인 셈입니다.<br />
<br />
참고로 저 부족분은 최종적인 것은 아닙니다. 저기서 다시 물량 미상의 <strong>북한 비축</strong> 방출분, 북한 돈으로 수입하는 <strong>상업적 수입</strong>, 유무상 <strong>해외원조</strong>를 빼야 최종적인 부족물량이 나오게 되지요.<br />
<br />
이 글에서는 편의상 북한 비축, 상업적 수입, 해외원조는 모두 생략하겠습니다. 해외원조를 생략하는 이유는 이 글이 해외원조 필요량을 따져보기 위한 것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겠구요. 북한의 상업적 수입능력에 대해서는 앞서 다소의 논의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7586" target="_blank">이 글</a>과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1817" target="_blank">이 글</a>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비축물량(의 방출분)은 가장 평가하기 힘든 것인지라, 편의상 비축분이 있어도 방출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기로 합니다.<br />
<br />
<br />
<strong>2.2. 세계식량계획(WFP)과 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추정</strong><br />
<br />
한편 garry씨에 따르면 자신이 말하는 170만톤 부족은 세계식량계획(WFP)의 추정치라고 하며, 또 다른 글에서 근거로 제시한 연합뉴스 기사는 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추정치입니다. 그러니 이 두 기관 -WFP와 KREI- 의 추정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br />
<br />
<img class="image_righ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02/40/b0009940_4aee5f621747e.png" width="332" height="37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02/40/b0009940_4aee5f621747e.png');" align="right" /> 다음 표는 [김운근,2001:49]에서 가져온 것인데, 북한의 곡물수급에 대한 세계식량계획(WFP)과 농촌경제연구원(KREI) 기준의 추정치를 비교해 놓은 것입니다. 올해 것이 아니라 2001/2002년도 것이긴 하지만, 북한 인구나 북한의 총곡물생산에 별 변화가 없어 그대로 봐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차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을 몇 가지 짚고 넘어가기로 하지요.<br />
<br />
우선 이 표에서는 북한의 총곡물생산(A)을 350만톤으로 잡았는데, 앞서 계산해 구한 garry씨의 추정치는 350~380만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 둡시다. 식량부족분이 200만 톤이라고 말할 때는 똑 같은 것이고, 170만톤이라고 말할 때는 30만 톤 정도 더해서 생각하면 될 겁니다.<br />
<br />
이어서 기준이 되는 북한 인구가 변했을 수 있습니다. 이 표에서 사용하는 북한인구는 2,318만 명입니다. CIA World Factbook의 <a title="" href="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kn.html" target="_blank">북한 항목</a>을 보면 2,267만 명(2009년 7월 기준)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북한 인구는 대충 2,300만 명으로 큰 변화가 없다 봐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br />
<br />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비식용 수요나 감모분 같은 기타 변수들에 대한 추정치 혹은 계산방법 자체가 크게 변했을 가능성입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사용하는 북한 곡물수급에 관한 추정방법은 [김운근, 1994]의 5장과 6장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김운근, 1994]와 [김운근, 2001]이 사용하는 방법이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아 저는 이 추정방법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 보다 최신의 정보를 갖고 계신 분의 제보는 환영하겠습니다.<br />
<br />
<br />
<strong>2.3. 각 추정의 차이: 사람들이 얼마나 먹을 것인가?</strong><br />
<br />
북한의 곡물소요에 대한 두 추정치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점을 곧 깨닫게 됩니다. WFP는 480만 톤, KREI는 610만 톤으로 130만톤이나 차이가 나지만 그 차이는 오직 '식용' 항목에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식용 항목의 차이는 표 밑에 있는 '주 1'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즉 2,300만 북한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WFP)과 최소권장량(KREI)의 차이란 거지요. 그리고 앞선 연합뉴스 기사에 등장한 550만톤이란 수치는 이 두 수치의 중간쯤 되는 값이라고 보면 됩니다.<br />
<br />
이제 역산을 통해 '주 1'의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한 번 검증해 보도록 합시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22/40/b0009940_4b09452288bd5.png" width="491" height="5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22/40/b0009940_4b09452288bd5.png');" /></div> 이렇게 보면 결국  위 표의 두 추정치는 <strong>1인당 배급량 × 365일 × 인구 ＋ 기타(97.2만 톤)</strong>라는 하나의 공식으로 수렴됩니다. 130만톤이란 차이도 결국 일일배급량이 458g인지 605g인지의 차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비슷한 방법으로 연합뉴스의 550만 톤을 역산해 보면 일일배급량은 535g이 됩니다.<br />
<br />
<br />
<strong>2.4. 북한 배급기준과의 비교</strong><br />
<br />
이제 위에서 살펴본 세 추정치(의 일일배급량)를 북한의 배급기준과 대조해 보면, 각각의 추정치가 상정한 기준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22/40/b0009940_4b094ef69d98d.png" width="500" height="270.50781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22/40/b0009940_4b094ef69d98d.png');" /></div> 이렇게 보면 한 가지 계산하지 않은 값이 남게 됩니다. 즉 북한이 그럭저럭 괜찮던 시절의 배급기준(1일 700g, 2,450㎉)을 기준으로 한 곡물소요량입니다. 앞서와 동일한 방법으로 계산해 보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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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kg) × 365(일) = 255.5kg<br />
0,256(t) × 2,318(만 명) = 593.4(만 t)<br />
593.4(만 t) ＋ 기타(97.2만 t) = 690.6(만 t)<br />
<br />
약 690만톤이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추정치를 구한 이유는 앞서 일련의 논의에서 문제가 되었던 적하효과(trickle down effect) 혹은 포화(saturation) 가정을 점검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br />
<br />
즉 곡물을 다른 용도(예: 사료) 등으로 전용하지 않고, 비축하지도 않고, 역수출하지도 않는다고 가정하고, 또한 먹다 남은 양을 그냥 버리지도 않는다고 한다면, 상류층, 중류층 순서대로 배급을 받을 우선권이 있다 하더라도 넘쳐서 취약계층에게까지 배급이 충분히 돌아갈 것이다. <strong>따라서 충분한 곡물을 지원하면 분배과정에 대한 모니터링이 없어도 된다는 garry씨 주장의 핵심 가정</strong> 말입니다.<br />
<br />
위쪽이 배부르게 먹고 남아서 취약계층에게 충분히 돌아갈수밖에 없다는 '강한 가정'을 만족시키려면 취약계층의 위쪽 계급들은 배급제 상의 정상배급 정도는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br />
<br />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WFP 기준선(480만 톤)과 명목배급량 충족선(690만 톤) 사이의 간격이 무려 210만 톤이나 된다는 알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먹어서 없앨 수 있는 양이 최대로 그정도는 된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소위 <strong>'어떤 분배 조건 하에서도 충분한 원조'</strong>의 양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클 수 있습니다.<br />
<br />
<div align="center">480만 톤 - 350~380만 톤 = 100~130만 톤(부족)<br />
690만 톤 - 350~380만 톤 = 310~340만 톤(부족)</div><br />
2000년대 들어 남한이 보통 연간 40~50만 톤의 곡물을 지원했다는 것을 기준 삼아 생각해보면, 300만톤이 필요할 수도 있는 포화는 그리 만만한 가정이 아님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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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30%;"><strong>3. 한 가지 예시: 계층별 차등 수취</strong></span><br />
<br />
이야기가 좀 길었군요. 이제 서두에서 보았던 주장을 재검토해 봅시다.<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쌀이 중간에 셌다고 합시다. 그게 어디로 갔어요? 배부른 북의 상류층이 아니라 배고픈 다른 북 내부의 다른 인간이 먹었을 것 아니에요? 만일 군대가 먹었더라도, 군대에 납부해야 할 농민의 부담이 줄어 농민에게 더 해택이 가는 적하효과는 나타나는 것 아니에요? 식량은 아무리 전용을 해봐야 결국 인간이 먹게 되어 있다. <span style="color:#3333ff;">한사람이 하루 열끼를 먹는 것도 아니니</span>, 남은 식량은 하위층에게 간다...이게 어려운 문제에요?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0113#12972724.22" target="_blank">출처</a>)</div><br />
garry씨가 주장해온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인 170~200만 톤을 남한(혹은 다른 나라)이 제공해 북한에 가용 곡물 550만 톤을 채워 줬다고 해 봅시다. 이제 이 상황에서 가능한 분배 시나리오를 하나 제시해 보겠습니다.<br />
<br />
북한이 자국 주민을 내부적으로 핵심-동요-적대라는 3 계층으로 분류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각 계층의 비율은 소개하는 자료마다 다른데, 여기서는 편의상 [Natsios,2002:279]에 나오는 핵심 계층(25%), 동요 계층(55%), 적대계층(20%)라는 비율을 사용하도록 하지요.<br />
<br />
그럼 식량 550만 톤은 세 계층에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분배될 수 있습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23/40/b0009940_4b0972c3ace47.png" width="385" height="15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23/40/b0009940_4b0972c3ace47.png');" /></div> 이렇게 나누게 되면 핵심계층은 1일 약 2,500㎉, 동요계층은 1,800㎉, 적대계층은 살아남기 쉽지 않아보이는 1,000㎉를 제공받게 되는 거지요.<br />
<br />
기근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그 시점에 그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해당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북한 인구 2,300만을 기준으로 보면, 1백만 명이 굶어죽는 대기근이 발생해도 그 사람들은 <strong>최하위 4%</strong>에 속하는 거고, 약 20만 명이 굶어죽는 소기근은 <strong>최하위 1%</strong>가 당하는 겁니다.<br />
<br />
이렇게 보면 상위 10~20% 혹은 30~40%에서 포화가 일어나 그 다음 계층까지 혜택을 입는 현상은 존재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굶어죽게 되는 최하위 집단 입장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br />
<br />
<br />
<a href=#none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this.nextSibling.style.display=='none')?'block':'none';>참고자료</a><div style="DISPLAY: none"><br />
김운근. 북한의 곡물 생산량 추정: 1993년 작황을 중심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94.<br />
김운근. “북한의 식량수급 현황과 남북 농업협력 방안.” 농촌경제 24.4 (2001): 39-52.<br />
Natsios, Andrew S. The Great North Korean Famine: Famine, Politics, and Foreign Policy. Institute of Peace Press, 2002. (황재옥 역, 『북한의 기아』, 다할미디어, 2003)</div><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기근" rel="tag">기근</a>,&nbsp;<a href="/tag/북한기근" rel="tag">북한기근</a>,&nbsp;<a href="/tag/대북원조" rel="tag">대북원조</a>,&nbsp;<a href="/tag/대북식량원조" rel="tag">대북식량원조</a>,&nbsp;<a href="/tag/세계식량계획" rel="tag">세계식량계획</a>,&nbsp;<a href="/tag/WFP" rel="tag">WFP</a>,&nbsp;<a href="/tag/Garry" rel="tag">Garr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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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net.egloos.com/4281834#comments</comments>
		<pubDate>Mon, 23 Nov 2009 04:03:33 GMT</pubDate>
		<dc:creator>sonn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garry's comment(4)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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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손님이 돌아오셔서 또 해보자고 하시니, 바빠도 그에 걸맞는 대응은 해드려야겠군요.<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어처구니가 없군요.<br />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2천만에 달하는 북 주민들에 대한 식량배분을 공평하게 하고 모니터링을 하는 것을 세계식량계획에 맞길 수 있을까요? 아예 <span style="color:#3333ff;">한 국가를 새울만한 숫자의 관리인원</span>이 필요한데? 그들에게 서구기준으로 인건비를 주면서?<br />
기존의 북에 온존하는 배급제도를 이용하면 추가 인건비 0으로 식량만 주면 광범위하게 배급할 수 있는데도 말이지요.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9180#13024763" target="_blank">출처</a>)</div><br />
<br />
풋, "한 국가를 세울만한 숫자의 관리인원"이 몇 명인가요. 100명 아니면 200명? 허풍을 쳐도 정도껏 치시기 바랍니다.<br />
<br />
기본적인 사항을 하나 지적하자면 WFP 또한 북한의 공공배급체계를 활용합니다. 북한에 WFP 요원이 몇 명 있다고 분배의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하겠습니까? WFP가 요구하는 것은 인원은 그 정도면 되니까 외부에서 제공한 식량의 분배과정을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을 만큼은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해달라는 정도의 요구에 불과합니다. 특히 전형적인 공산당식으로 연출된 장면(포템킨 마을)을 보는 중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불시방문(challenge inspection)을 허용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정도 조건은 서방세계에서 원조를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사항일 뿐입니다.<br />
<br />
WFP가 지향하는 방향은 2005년 3월에 WFP-북한 간의 합의(북한에 의해 지켜지지 않음)를 한 번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체계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춘다면 방문 회수 측면에서는 타협할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이러한 대립으로 인해 북한 당국과 WFP는 모니터링 문제를 둘러싸고 팽팽한 협상을 진행했다. 광범위한 배급이 이루어진 2005년 3월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WFP 지역 담당관인 앤서니 밴버리는 정부와 WFP가 모니터링 체계를 변화시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20] WFP는 <span style="color:#ff0000;">전체 방문수를 줄이는 대신</span> 모니터링 체계에 네 가지 변화를 제안했다.<br />
<br />
<strong>* 가정의 식량 사정 정보:</strong> WFP는 4개월마다 기초적인 가정 조사를 실시하고 지역 공무원과 주민(농민, 공장 관리자 등)들을 인터뷰한다. 또한 표적 집단과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 관찰 보행을 실시한다. 2005년 6월에 가정조사가 최초로 실시되었다.<br />
<strong>* 배급 모니터링:</strong> WFP는 배급소와 취로사업 프로젝트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고, 그곳에서 식량 원조를 받는 이들을 인터뷰한다. 또한 가정 외 시설(예: 군(郡) 창고, WFP 상품으로 식품을 생산하는 공장, 식량 원조를 받는 시설)에 대한 모니터링 방문을 늘린다.<br />
<strong>* 배급표:</strong> 모든 WFP 수혜자는 WFP가 디자인라고 인쇄한 배급표를 받을 것이며, 배급 시에 WFP가 이를 체크할 것이다. 2005년 7월 당시 표의 배급이 거의 완료되었다.<br />
<strong>* 물자 추적:</strong> 운송장 번호로 물자를 추적하는 더욱 통일되고 일관된 시스템을 시행할 뿐 아니라, WFP 요원이 항구에서부터 군 창고, 군 당 3~6개의 공공 배급소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식량 원조 루트를 따라다니도록 허용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항구에서 마지막 배달 지점까지 모든 짐을 추적할 수 있는 전자식 시스템 도입이 최종 목표다. 식량배급소의 최초 방문이 2005년 6월에 시작되었다.<br />
<br />
이러한 발전은 희망적이었다. 완벽하게 실행되고 유지된다면 모니터링 활동이 크게 진전될 것이다. 그러나 <span style="color:#ff0000;">이어진 사건들은 북한이 더 정밀한 조사를 받을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었다.</span> 오히려 그 반대로 북한이 원조증대와 수확량 향상 덕분에 WFP를 압박할 수 있게 되었다. 2005년 가을, 북한은 10년 만에 수확량이 최고에 달했고 남한은 원조를 늘렸다.<br />
이렇게 공급 상황이 완화되자 북한 정부는 WFP에게 식량 원조에서 개발 원조로 전환하고 민간 원조단체의 모든 외국인 직원이 북한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개인적인 곡물 거래를 금지하고, 식량배급제 부활을 발표했으며, 농민에게서 곡물을 몰수했다.[1]</div><br />
이에 맞선 북한의 행태에 대해서는 앞선 글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6509#ch3" target="_blank">북한 기근과 국제 사회의 대응(3절)</a>에 좀 더 자세히 정리해놓은 바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br />
<br />
<br />
상대 지역에 파견하는 요원의 수가 적당한지는 대단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strong>상식선에서 충분히 판단 가능</strong>합니다. 7.4 남북공동성명 당시 북한이 주장한 내용을 예로 들어 정작 문제가 되는 제안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br />
<br />
<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적 측이 남한 측이 해야 할 선결조건으로 내놓은 이른바 ‘법률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의 개선문제’는 1973년 5월 8일부터 11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제6차 본회담에서 더 구체화하고 여기에 더하여 북적측은 ‘적십자 요해해설인원’을 상대방 지역의 행정 최소단위인 里(洞) 단위별로 1명씩 파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에게도 모든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여 ‘요해해설사업’을 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북적 측의 ‘요해해설사업’ 제의는 남북이산가족사업이 남북적십자사의 주관과 책임 아래 수행되어야 할 남북적십자회담의 기본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북적 측의 제안대로 <span style="color:#ff0000;">里(洞) 단위에 1명씩의 ‘요해해설인원’을 파견할 경우 북한 측에서는 3만 6,000명의 인원이 남한 지역에 오게 되고 남한에서는 4,300여 명의 인원이 북한지역에 들어가게 되어</span> 피차간에 불필요한 마찰을 유발할 가능성이 농후하였다.<br />
또한 북적 측은 이산가족의 주소와 생사를 확인, 통보하는 일은 “적십자가 개입해서는 안 되며 <span style="color:#ff0000;">당사자들이 직접 상대방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대상자를 만나도록 하자</span>”는 안을 내놓았다. 북적측이 ‘요해해설인원’을 상대방 지역에 파견하고 이산가족 직접 당사자들이 상대방 지역에 들어가 그들의 흩어진 가족과 친척을 찾는다고 하는 것은 적대적 상황에 놓여 있는 남북한 간의 현실에도 전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 지역을 방문하는 ‘요해해설인원’과 이산가족의 각종 자유와 불가침권을 내세워 반공법 철폐와 같은 정치적 활동이나 정탐행위를 하기 위한 불순한 동기도 예견되는 것이었다.<br />
[2]</div><br />
이산가족 찾기 사업의 내용을 "해설" 하기 위해 북한이 남한 방방곡곡에 <strong>3만 6천 명</strong>의 요원을 파견하고, 또 이산가족을 실제로 찾기 위해 당사자들이 남한 각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해야겠다 이런 조건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br />
<br />
"해설"이야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리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고, 이산가족을 찾아내는 것도 남북한의 행정력으로 볼 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후에 이루어진 각종 이산가족 찾기가 어떻게 이루어졌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걸 이산가족 당사자가 찾으러 돌아다녀야만 하겠다는 주장은 진의가 아주 의심스러운 거지요.<br />
<br />
WFP나 그들을 지지하는 서방 세계 사람들은 첫 술에 배부르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계적으로 좀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점진적으로 식량 배급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게 협조적인 태도로 개혁을 진행하라는 정도의 요구일 뿐입니다. <br />
<br />
지금은 무슨 군수공장이나 강제수용소에 식량배급이 잘 전달되는지 보자는 게 아니고, 사전에 협의된 목록에 올라 있는 어린이집이나 초중등학교 식당을 둘러보는 정도의 일이 문제가 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br />
<br />
<br />
<a href=#none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this.nextSibling.style.display=='none')?'block':'none';>참고자료</a><div style="DISPLAY: none"><br />
[1]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em>Famine in North Korea: Markets, Aid, and Reform</em>. 1st e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이형욱 역,『북한의 선택』, 매일경제신문사, 2007, pp.164-166)<br />
[2] 송종환, 『북한 협상행태의 이해』(개정판) , 오름, 2007, pp.205-206</div><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기근" rel="tag">기근</a>,&nbsp;<a href="/tag/북한기근" rel="tag">북한기근</a>,&nbsp;<a href="/tag/대북원조" rel="tag">대북원조</a>,&nbsp;<a href="/tag/대북식량원조" rel="tag">대북식량원조</a>,&nbsp;<a href="/tag/세계식량계획-WFP" rel="tag">세계식량계획-WFP</a>,&nbsp;<a href="/tag/남북적십자회담" rel="tag">남북적십자회담</a>,&nbsp;<a href="/tag/이산가족찾기" rel="tag">이산가족찾기</a>,&nbsp;<a href="/tag/요해해설인원" rel="tag">요해해설인원</a>,&nbsp;<a href="/tag/Garry" rel="tag">Garr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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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대북원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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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남북적십자회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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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Garry</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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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Nov 2009 06:29:5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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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 근황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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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16/40/b0009940_4b00f87a3929a.jpg" width="500" height="590.82031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16/40/b0009940_4b00f87a3929a.jpg');" /></div> <div align="center">… 무척 바쁘군요<br />
아쉽게도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이리스 밖에 못 보고 왔습니다. 브로셔는 옛날 ultimate box에 들어있던 것.</div><br/><br/>tag : <a href="/tag/가메라" rel="tag">가메라</a>			 ]]> 
		</description>
		<category>블로그/일상</category>
		<category>가메라</category>

		<comments>http://sonnet.egloos.com/4278516#comments</comments>
		<pubDate>Wed, 18 Nov 2009 02:26:4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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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 big sale!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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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br />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관 이고르 크멜로프(Igor Khmelov) 제독의 경우는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경우였다. 1997년 당시 모든 함선들이 퇴역하여 뇌물거래를 통해 폐선으로 헐값에 외국인 바이어에게 팔려나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러시아 당국은 수개월에 걸쳐 이러한 소문을 부인했지만 결국 300미터 길이의 47,000톤급 항공모함이 더 이상 태평양 함대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집중적인 수사가 이루어졌고, 크멜로프 사령관은 두 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한 64척의 함선을 한국, 인도 등에 팔아 수익금을 착복한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br />
<br />
Allison, Graham. <em>Nuclear Terrorism: The Ultimate Preventable Catastrophe</em>. 1st ed. Times Books, 2004. (김태우, 박선섭 역, 『핵 테러리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2007, p.96)<br />
<br />
<br />
<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다른 곳에서 못 들어본 이야기이지만, 저자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뭔가 근거는 있지 않을까 함. '조조, 왕후의 목을 베다' 뭐 이런 이야기일지도</span><br/><br/>tag : <a href="/tag/러시아" rel="tag">러시아</a>,&nbsp;<a href="/tag/러시아해군" rel="tag">러시아해군</a>,&nbsp;<a href="/tag/러태평양함대" rel="tag">러태평양함대</a>,&nbsp;<a href="/tag/이고르크멜로프" rel="tag">이고르크멜로프</a>			 ]]> 
		</description>
		<category>정치</category>
		<category>러시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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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러태평양함대</category>
		<category>이고르크멜로프</category>

		<comments>http://sonnet.egloos.com/4273811#comments</comments>
		<pubDate>Wed, 11 Nov 2009 04:20:1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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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 자구체제에서의 집행 ]]> </title>
		<link>http://sonnet.egloos.com/427310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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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그러나 국제법은 집행과 판결에 있어 국내법과는 극적으로 다르다. 집행 면에서 볼 때, 국가가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행정부가 없다. 국제정치는 자구체제이다. 국제법의 고전적 방법은 <strong>강대국이 집행을 제공</strong>하는 것이다. 예컨대, 해양법에서는 해상에서 국가가 3마일까지 사법권을 가질 수 있다는 관습이 형성되어 있었다. 19세기에 우루과이가 그들의 연안어장을 보호하기 위해 광범위한 해양영토를 주장했을 때, 당시 강력한 해군 세력이던 영국은 우루과이 연안의 3마일 안까지 영국의 포함을 보냈다. 그 결과 관습법은 강대국에 의해서 집행되었다. <strong>영국이 법을 어겼을 때는 누가 영국을 상대로 법을 집행했는가</strong>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 대답은 자구체제에서 집행은 <strong>일방통행</strong>이라는 것이다.<br />
<br />
Nye, Joseph S., <em>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em>, 3rd Ed., Longman, 2000 (양준희 역,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서울:한울 아카데미, 2001, p.232)<br/><br/>tag : <a href="/tag/국제법" rel="tag">국제법</a>,&nbsp;<a href="/tag/자구체제" rel="tag">자구체제</a>			 ]]> 
		</description>
		<category>정치</category>
		<category>국제법</category>
		<category>자구체제</category>

		<comments>http://sonnet.egloos.com/4273101#comments</comments>
		<pubDate>Tue, 10 Nov 2009 06:59:45 GMT</pubDate>
		<dc:creator>sonn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WFP 북한 구호 예산안(2009) ]]> </title>
		<link>http://sonnet.egloos.com/4270487</link>
		<guid>http://sonnet.egloos.com/4270487</guid>
		<description>
			<![CDATA[ 
  <a title="" href="http://sprinter77.egloos.com/2738753" target="_blank">WFP의 행정비용</a> (sprinter) 에서 트랙백<br />
<br />
다음은 WFP의 2009년도 북한 긴급구호 사업계획서(<a href="http://pds17.egloos.com/pds/200911/06/40/WFP_NK_plan.pdf">WFP_NK_plan.pdf</a>)입니다. 여기에는 두 장의 예산구성표가 첨부되어 있는데, 위 글에서 궁금해하는 경비의 규모나 각각의 명세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br />
<br />
참고로 이건 이대로 집행되었다는 의미는 아니고, 목표금액이 모금된다는 전제 하에 이렇게 쓰일 것이다라는 그런 뜻입니다.(실제로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기부 자체가 위축된 데다가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올해 모금 실적은 형편없습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06/40/b0009940_4af395fd92129.png" width="500" height="571.15384615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06/40/b0009940_4af395fd92129.png');" /></div> 전체 프로그램 구성은 크게 나누면 곡물 구입비(59%), 운송(29.5%), 직접경비(5%), 간접경비(6.5%) 쯤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br />
<br />
직접경비의 세부명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월급' 항목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데는 이쪽이 참고가 될 겁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06/40/b0009940_4af396b3e93ad.png" width="500" height="679.48717948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06/40/b0009940_4af396b3e93ad.png');" /></div> 간접경비(7%쯤)의 세부명세는 없습니다만, 제 추측으로는 WFP라는 기구의 경상운영비, 각종 홍보 및 모금 활동 등에 드는 비용 같은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즉 여기도 월급 성격의 비용이 들어 있다고 봐야겠지요.<br/><br/>tag : <a href="/tag/세계식량계획" rel="tag">세계식량계획</a>,&nbsp;<a href="/tag/WFP" rel="tag">WFP</a>,&nbsp;<a href="/tag/대북원조" rel="tag">대북원조</a>,&nbsp;<a href="/tag/식량원조" rel="tag">식량원조</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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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category>
		<category>세계식량계획</category>
		<category>WFP</category>
		<category>대북원조</category>
		<category>식량원조</category>

		<comments>http://sonnet.egloos.com/4270487#comments</comments>
		<pubDate>Fri, 06 Nov 2009 04:17:06 GMT</pubDate>
		<dc:creator>sonn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북한이 선호하는 외교적 해법 ]]> </title>
		<link>http://sonnet.egloos.com/4269738</link>
		<guid>http://sonnet.egloos.com/4269738</guid>
		<description>
			<![CDATA[ 
  <br />
영변 원자로건, 우라늄 농축 의혹이건, 구호식량 배분이건 간에 외부에서 의문을 제기하면, 북한이 제시하는 공통된 외교적 해법이 하나 있다. 북한 외교관들의 표현으로는 '금창리 방식'이고, 미국 관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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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170%;"><strong>PPV(pay-per-view)</strong></span></div><br />
<br/><br/>tag : <a href="/tag/돈내고보든가" rel="tag">돈내고보든가</a>			 ]]> 
		</description>
		<category>한마디</category>
		<category>돈내고보든가</category>

		<comments>http://sonnet.egloos.com/4269738#comments</comments>
		<pubDate>Thu, 05 Nov 2009 02:49:30 GMT</pubDate>
		<dc:creator>sonn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북한의 앵벌이, 또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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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Garry's comment(3).<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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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TAN; padding:15px; background:IVORY;">북의 배급체계에 관계된 북 인원들은, 외부식량을 주민들에게 배급된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은 보통아닙니다. 그러니 이 경우 차 기름값 등 식량 수송 비용 정도만 추가하면 광범위한 주민들에 대한 효율적인 배급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세계식량계획 등을 통해 외부 모니터링을 하면서 배급하는 경우, 그 서구인 직원들 꽤 월급이 쎄나 봅니다. <span style="color:#3333ff;">평양에서 호텔에 머물면서 골프 치면서 일하던데</span>, 그들이 소비하는 행정비용이 지원금 전체의 1/4에 육박합니다.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55963#12959989" target="_blank">출처</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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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FP는 행정비용으로만 지원액의 25~30%를 써요. 도대체 뭘 했길래 그 많은 돈을 쓴거지요? 평양 호텔에 머물고 골프치러 다니고 <span style="color:#3333ff;">평양 호텔에 가끔있다는 여자를 사는데 썼나?</span>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0113#12972724.22" target="_blank">출처</a>)</div><br />
묻지마 원조를 지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우러 북한 같은 나라에까지 찾아간 사람들을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건 참 보기 뭣한 일입니다. 저렇게 반복해서 주장하는 걸 보니 외국 구호요원들이 평양에서 여자를 샀다거나 골프를 쳤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근거라도 있는지 궁금해지는군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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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호텔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것부터 다뤄보지요. 외국 구호요원들이 평양을 방문할 경우 호텔에 묵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시골도 아니고 한 나라의 수도를 방문했는데 호텔에 묵는 게 뭐 대단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그들이 호텔에 묵었을 거라고 보는 이유는 우선 <strong>북한 측이 그렇게 하도록 요구</strong>하고, 외국 방문자들로서는 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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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995년에 제네바 핵합의 후속작업의 미국 측 실무진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케네스 퀴노네스의 회고입니다.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묵었는데 세부 묘사가 비교적 상세해서 골라 봤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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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의 공산주의는 평등주의 따위 안중에도 없다. … 사회적·직업적 지위나 연령,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서열사회 안에서 지위가 정해진다. 우리들 일행은 <span style="color:#ff0000;">풍요로운 자본주의국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전원 숙박요금이 비싼 방이 할당</span>되었다. 1박 220달러 미 달러화에 의한 현금지불로 한정된다. 크레디트 카드도 달러 이외의 통화도 받아 주지 않는다. 아침이 포함된 요금이지만 점심과 저녁은 별도요금이다. 사우나나 수영 풀, 가라오케 바 등 호텔 안에 있는 각종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 내부의 디자인과 비품은 일본의 전형적인 중급 관광호텔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욕실 내의 모든 것이 일본에서 들여온 수입품이었다. … 실내의 쾌적한 온방은 오후 11시에 스팀이 끊어짐과 동시에 끝이 났다. 대개 오후 11시경까지는 뜨거운 물이 나왔다. 그러나 그 후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span style="color:#ff0000;">온탕도 온방도 거의 경험할 수 없게</span> 되었다.[1]</div><br />
이건 북한에서야 일류인지 몰라도 서방 사람들이 묵어서 지탄받을만한 그런 수준의 호텔은 아닙니다. 난방과 급탕이 안들어 올 때가 많았다고 하면, 지내기 편하진 않았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호텔에 묵을지에 대해서 외국 방문자는 선택권이 없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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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북한은 이런 외국인 방문자들을 철저히 감시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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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 정부는 철저하게 외국인 요원까지 광범위하게 통제했고 감시하여 허가 없이 접촉할 가능성을 제거하려고 했다. <span style="color:#ff0000;">2000년 4월이 되어서야 평양 외 지역의 WFP 사무소 직원들이 동행인을 수반하지 않고도 호텔 밖으로 출입이 허가</span>되었다. 현재 우리는 외교관과 북한에서 일한 외국인의 시각에서 쓰인 북한 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개인적 진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span style="color:#ff0000;">개인 물건을 일방적으로 뒤지고, 전화를 도청하고, 개인적인 이동이나 접촉이 감시</span>받았던 사건들을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분노에 차서 들려준다. 북한 정부는 지역과 인력을 제한하고 허가받지 않은 접촉을 막는 것을 넘어서서, 원조활동에도 다양한 제한을 가해 만족스러운 모니터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2]</div><br />
북한에서 당국의 눈길을 피해 일반인들과 접촉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외국인들을 몰아놓고 감시하는 장소인 평양의 외국인 전용 호텔에 여자를 끌어들인다? 그런데도 여자가 접근해 온다면 그건 공작일 가능성을 제일 먼저 의심해봐야 할겁니다. 2004년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직원이 미인계에 걸려 자살을 선택했던 것처럼, 이런 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니까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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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재 시의 각종 경비에 대한 퀴노네스의 이야길 좀 더 들어보기로 하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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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평양과 영변에서의 주거조건에 관해서는 세세한 것까지 협의했다. 평양으로부터 영변까지의 이동, 또한 영변의 숙소인 초대소로부터 연구센터까지의 이동은 자동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하루 당 80달러로 정했다. 여기에는 운전수의 일당과 연료비도 포함된 것으로 1주일치를 모아 지불하기로 했다. 고려호텔의 숙박요금은 1박 220달러로 식비는 별도로 했다. 영변의 구룡초대소는 식비를 포함해 1일 100달러를 상한으로 한다. 지불은 현금으로 일주일에 한 번 각 개인이 지불한다. 세탁비는 별도 요금으로 고려호텔 요금에 준한다. [미국으로의 국제]전화비는 1분 8달러지만 미국에 의한 경제제재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용가능하게 된 것은 1995년 여름부터였다. 그에 따라 팩스도 이용가능하게 되었지만 첫 장은 35달러, 둘째 장부터는 각 30달러였다.<br />
가장 다투었던 것은 디젤 연료의 가격설정이었다. 결국 북한외무성 사람이 북경의 북한대사관에 전화를 해서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에 게재된 당일 국제가격을 물어보는 사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게 북한에서 쓰는 리터 단위 가격도, 미국에서 쓰는 표준 갤런 당 가격도 아니고, 영국 갤런 단위였기 때문에 이야기가 한층 복잡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미국측 과학자들이 리터 환산치와 미국 갤런 환산치를 계산해  거기에 기초해 미국 달러로 지불하는 방식으로 낙착되었다. 국제가격의 변동에 따르지 않고 이 날 정해진 고정가격으로 합의한 것이다.[3]</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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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세세한 것까지 협상하고 기록을 남기는데 이게 다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자동차 렌트를 둘러싼 다툼 이야기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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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국내이동 경비에 대한 교섭에서 미국 측은 차량 1대 당 북한 측 운전사와 미국인 3명이 탑승한다고 계산했었다. 북한 측은 뒷좌석에 미국인 2명, 그리고 앞좌석에는 운전사와 「안내원」 1인이 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산 차이가 판명된 것은 [출발 당일 아침] 우리들이 평양에서 영변까지 경비가 얼마냐고 물어봤을 때였다. 우리들은 2대니까 160달러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들은 한 대에 타면 되니까 80달러면 된다, 또 한 대 분은 따라오는 북한인들이 지불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론했지만 “안 됩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 우리들은 그렇다면 차비는 그렇게 할 테니 「안내원」과 운전사의 숙식비는 그쪽이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북한 측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 그 후 몇 개월이 지나도 자동차대, 식비, 숙박비, 세탁료, 전화요금 등을 둘러싼 교섭으로 <span style="color:#ff0000;">다툼이 끊임없이 재발했다. 합의를 적은 문서를 갖고 있어도 오해방지책이 되지 못했다.</span>[4]</div><br />
<strike>감시원</strike>안내원을 붙이는 데 드는 경비도 북한 측은 외국인들에게 물리려 했다는 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말이 되든 안 되든 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덤탱이 씌워 보려고 꾸준히 시도해서 손해볼 건 없다는 태도를 견지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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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렌트비 다음은 전화비입니다. 바로 그 전해(1994년)에 북한이 청구한 전화비 때문에 미 의회에서까지 말이 났던지라 국무부 직원인 퀴노네스로서는 예민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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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리처드슨 지사는 한편 자신이 1994년 12월 북한을 방문했다가 미군 헬기 조종사 2명의 송환 협상을 벌였던 일을 회고하면서, 북한을 떠나기 하루전 북한측이 <span style="color:#ff0000;">국제전화료로 1만달러</span>를 요구했는데, 그 돈이 한국으로부터 "불가사의하게(mysteriously)" 북한으로 송금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송금 경로가 최근 미 재무부로부터 대북 불법 거래 혐의로 제재조치를 받은 마카오의 북한 주거래 은행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인지는 이 책에 설명되지 않았다.[5]<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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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리처드슨 의원의 출장보고서를 보고 왠 전화비가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하고 북한이 미국으로 하여금 “체조”를 하게 했다고 불평했다.[6]</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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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하면 리처드슨의 회고록 <em>Between Worlds</em>에는 북한의 일단 질러 보는 청구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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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은 1996년 간첩죄로 억류했던 한국계 혼혈 미국인 에번 헌지커 석방 협상 때도 <span style="color:#ff0000;">벌금으로 10만달러를 요구</span>했었으나, 인질 몸값은 지불하지 않는다는 미 정부 방침에 따라 현지서 <span style="color:#ff0000;">가택연금에 든 '호텔비'조로 5천달러</span>에 낙착봤다고 리처드슨 지사는 말했다.[7]</div><br />
이것도 전형적으로 일단 바가지 씌우고 보는 행태임을 이제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자들은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해야 할 경우 그나마 좀 덜 당하려면 처음부터 아주 깐깐하게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게 중요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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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우리들이 함께 일하는 북한인들은 미국은 풍요로우니까 북한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간단히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것을 「모스크바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북한인들은 과거 반세기 동안 필요한 것의 목록을 만들어 그것을 관료기구를 통해 입수하는 방식에 익숙했다. 최종적으로 그 목록은 모스크바에 도달해 그곳에서 곡물이나 석유, 군사물자, 기타 등등이 이 작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은 동맹국에게 보내졌다. 요컨대 북한인들은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특별히 외화를 획득하는 것보다도 「빅 브라더」로부터 그것을 제공받는 데 의존하는 체질에 젖어 있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1995년 시점에서는 사용후 핵연료 프로젝트가 <span style="color:#ff0000;">필요한 물품의 새로운 공급원이 될 수 있는 듯이 보이는 행동을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span>했다. 기기에 관해서도, 장래의 약속에 대해서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주의 깊게 억제해나간다면 마찰과 욕구불만도 억제할 수 있을 터였다.[8]</div><br />
퀴노네스는 한 번 뭔가를 쉽게 주는 듯이 보이면 요구가 끊임 없이 들어오게 되고, 그제서야 뒤늦게 거절하기 시작하면 사소한 일로 괴롭히면서 어떻게든 원하는 물건을 짜내려고 드는 일을 겪게 된다고 경고하면서 실제 겪은 사례들을 소개하는데 다 비슷한 이야기들이니까 생략하기로 하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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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외화 앵벌이가 겨우 호텔 대금이나 렌트카, 전화비 정도면 좀 짜증나지만 액수로는 그리 크지 않으니 그렇게 심각하게 논할 거리는 못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북한의 청구서 놀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등장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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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은 IAEA 사찰단이 영변에서 샘플을 채취하거나 재처리시설에서 감마 매핑을 수행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1994년] 2월 15일 가장 마지막으로 합의된 사항이었다. 게다가 북한은 추가 시설에 대한 샘플 채취를 허용하기 전에 <span style="color:#ff0000;">3십만 달러</span>를 요구했다. IAEA 본부가 “전례 없는 비용”이라며 불평을 한 후 북한은 이를 취소했다.[9]</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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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짜 황당하게도 북한에 기근 구호차 찾아온 단체들에게도 돈을 뜯으려 시도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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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 외교부는 NGO들에게 그들이 기증하기로 약속한 물자가 북한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북한을 방문할 수 없다고 통보하였다. NGO들은 북한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어야 했으며, NGO들은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 물자들을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북한을 입국하기 전에 물자들이 정확히 언제 도착하는지를 조정해야 했다. 기아 초기발생시 북한이 필요로 하는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하기 위해서, NGO가 현장답사를 기본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을 북한당국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최대한의 물자를 얻어내기 위해 NGO의 접근을 통제하였다. 예를 들어, 북한이 요구하는 입국비자 수수료는 단순한 수속료 차원을 넘어서는 비싼 가격이었다. NGO 보고에 의하면, 북한당국은 <span style="color:#ff0000;">각각의 비자 신청을 승인하는 대가로 50만불의 현금이나 이에 상응하는 물자를 요구</span>하였다고 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구걸하는 북한체제에 구호활동을 제공하는 NGO들과 UN기관들은 주는 입장이 아니라 북한에 들어가기를 간청하는 신세가 되었다.[10]</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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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외국 뿐 아니라 한국 측 NGO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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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지원사업을 벌이는 22개 민간단체 회원 9265명이 다음 주부터 10월 하순까지 북한을 방문한다. 북측이 체제 선전을 위해 제작한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굿네이버스 등 민간단체들은 1박 2일의 짧은 일정 동안 공연 관람 외에 <span style="color:#ff0000;">대북지원 실태 조사를 위한 현장방문</span>과 평양지역 문화유적 답사도 할 예정이다. … 1인당 100만 원 선인 요금도 공연관람료(특석 300달러∼C석 50달러)에 전세기 항공료가 포함됐다고는 하지만 터무니없다. 당일치기 개성관광 비용은 19만5000원, 2박 3일의 금강산 관광 요금은 39만∼54만 원 선이다. 결국 북한은 이번 행사로 체제도 선전하고 <span style="color:#ff0000;">100억 원대의 현금도 챙기는 셈</span>이다.[11]</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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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대북협력사업의 추진을 위해 민간단체가 다양한 창구를 통해 북한에 접근하고 있으나 북한은 오히려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 민간단체로부터 좀더 많은 지원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즉 북한은 여러 민간단체들에게 계약재배, 그것도 대규모 형태의 계약재배 혹은 협력사업을 제의하면서 <span style="color:#ff0000;">비료, 종자 등 영농자재의 선투자를 요구하고 그것에 대한 반응여부에 따라 계약서 체결 여부를 저울질</span>하고 있다. … 또한 민간의 농업협력사업 추진과정에서 사전 타당성 분석이 미흡하고 계획수립에 필요한 정보 및 전문성의 부족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우리 민간단체와 이미 체결한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변경하고자 하고 선투자를 요구하는 등 사업추진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12]</div><br />
이 정도면 제가 왜 이 현상을 '앵벌이'라고 부르는지 다들 이해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구호활동과 관련해 북한 현지에서 발생하는 경비의 적지 않은 부분은 이런 북한의 행태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좋을 겁니다. 북한이 뭐 좋고 놀거 많은 곳이라고 거기서 사치를 부려서 돈이 다 나갔겠습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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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none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this.nextSibling.style.display=='none')?'block':'none';>참고자료</a><div style="DISPLAY: none"><br />
[1] Quinones, C. Kenneth., <em>Beyond Negotiation: Implementation of the Agreed Framework</em>, 미출간<br />
(山岡邦彦, 山口瑞彦 역, 『北朝鮮II: 核の秘密都市 寧邊を往く』, 中央公論新社, 2003, pp.92-93)<br />
[2]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em>Famine in North Korea: Markets, Aid, and Reform</em>. 1st e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이형욱 역,『북한의 선택』, 매일경제신문사, 2007, p.155<br />
[3] Quinones, <em>같은 책</em>, pp.106-107<br />
[4] Quinones, <em>같은 책</em>, p.108<br />
[5] 윤동영, "2차 북핵위기 후 첫 북미대화는 백악관 냅킨서 시작", 연합뉴스, 2005년 11월 21일<br />
[6] Witt, Joel S., et al, <em>Going Critical: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em>, Brookings Institution, 2004 (김태현 역, 『북핵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 모음북스, 2005, pp.424-429)<br />
[7] 윤동영, <em>같은 글</em><br />
[8] Quinones, <em>같은 책</em>, pp.145-146<br />
[9] Witt, et al, <em>같은 책</em>, p.175)<br />
[10] Natsios, Andrew S. <em>The Great North Korean Famine: Famine, Politics, and Foreign Policy</em>. Institute of Peace Press, 2002. (황재옥 역, 『북한의 기아』, 다할미디어, 2003, p.195)<br />
[11] 사설, "비싼 돈 내고 北 선전劇 박수 치러 가야 하나", 동아일보, 2005년 9월 24일<br />
[12] 김운근. “남북한 농업협력의 필요성과 한국의 대북지원.” 통일문제연구. 11.2 (1999): pp.24-25<br />
</div><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외화벌이" rel="tag">외화벌이</a>,&nbsp;<a href="/tag/세계식량계획" rel="tag">세계식량계획</a>,&nbsp;<a href="/tag/WFP" rel="tag">WFP</a>			 ]]> 
		</description>
		<category>정치</category>
		<category>북한</category>
		<category>외화벌이</category>
		<category>세계식량계획</category>
		<category>WFP</category>

		<comments>http://sonnet.egloos.com/4269180#comments</comments>
		<pubDate>Wed, 04 Nov 2009 06:16:16 GMT</pubDate>
		<dc:creator>sonn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북한 기근과 국제 사회의 대응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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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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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30%;"><strong>1. 곡물을 주시오. 좀 많이…(1991년)</strong></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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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원래 김일성의 지도에 따른 주체농법이 세계최고의 농사기술이라고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회원국이 제출한 통계자료를 깊게 검사하지 않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같은 국제기구는 그러한 선전을 위한 좋은 무대였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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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79년에 북한은 쌀 면적당 수량에서 세계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하였다. FAO는 북한이 79년부터 90년까지 진짜 세계 제일이라고 인정하여 세계의 주요 쌀 생산국인 일본, 한국이나 소규모이면서도 대단히 생산성이 높은 호주보다도 북한을 상위에 두었고, 태국보다 3배나 효율적이고 미국보다도 생산성이 훨씬 높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북한은 국민 1인당 칼로리 섭취량도 80년대를 통하여 한국을 상회한다고 주장하였다. 91년에 FAO는 숫자를 수정하여 한국을 북한보다 약간 우위에 두었다. 그 직후 북한은 참혹한 기근에 직면하였는데 그런 통계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내던져져 버렸다.</span>[1]</blockquote><br />
또한 북한은 1990년 공식적으로 1,000만 톤의 곡물(조선중앙연감 기준)을 생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실 북한이 이렇게 많은 곡물을 생산했다면 남아돌아야 정상이겠지요. 하여간 이 또한 FAO에서 별 논의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북한 농업의 현실에 별 관심이 없던 국제사회는 그런가보다 할 뿐이었습니다.<br />
<br />
그러던 1991년, 북한은 갑자기 세계식량계획(WFP)에 식량지원을 요청합니다. 구체적으로 식량난이 터진 것은 아니지만 발전계획을 지원해달라(?)는 좀 애매한 명목이었죠. 오늘날 우리는 이 해부터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당시엔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요청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북한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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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170%;"><strong>곡물 1천만 톤을 지원해 달라</strong></span></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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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WFP는 2007년 전 세계를 상대로 총 330만 톤, 2008년에는 390만 톤의 식량을 지원[2]했습니다. 북한이 요구한 물량은 WFP의 3년치 사업분에 해당한다는 이야기지요. 게다가 WFP의 사업 대부분은 긴급구호(EMOP)와 장기구호 및 복구(PRRO)에 할당되기 마련이고, 개발지원(DO)는 많아야 10%, 보통은 5% 이내라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현실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식량원조는 잘 해야 30만 톤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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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는 2,300만 북한 인구 전체를 2년 먹일 수 있는 양인 동시에 남한이 2000년대 제공했던 식량원조(40~50만톤) 20년치, 1995년 이후 10년 동안 WFP가 북한에 제공한 것(13억 달러, 400만 톤 상당)의 2.5배에 상당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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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든 말이 안 되든 간에 WFP는 요청을 받았으니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려고 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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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WFP의 업무처리절차를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기로 하지요. WFP는 지원요청이 들어오면 우선 FAO와 협력해 현지에 평가팀을 파견합니다. 이들은 현지를 시찰하고 식량원조가 얼마나 필요하고 수혜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 어떻게 이들에게 식량을 분배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일단 계획이 수립되면 이 계획을 근거로 각 국 정부에 기부를 요청하고, 기부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앞의 계획에 맞춰 식량을 수송해 배급하게 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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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FP는 자체 예산을 갖고 있지 않으며 각 사안에 대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기부에 의존해 활동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절차는 필수적입니다. 즉 기부국들은 원조받을 나라의 요청이 적절한지를 WFP라는 전문적인 대리인을 통해 평가하는 셈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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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지원의 첫 단계로 북한 땅을 밟은 WFP 조사팀은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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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1991년 초 북한의 식량원조 요청에 따라, WFP는 4명의 기술관리와 FAO에서 파견된 3명의 보조관으로 구성된 팀을 북한에 즉각적으로 파견하였다. 이들의 업무는 북한에서 필요로 하는 식량에 대한 평가조사이다. WFP에서 발간한 문서에 따르면, 조사단은 북한의 부족식량을 평가한 결과 특별하게 식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북한에서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평가단은 <span style="color:#ff0000;">식량이 부족하지도 않은 북한이 도대체 왜 식량 원조를 요청해왔는지에 대해 의문</span>을 가졌다. 굶는 사람도 없고 주민들이 영양결핍상태도 아닌데 북한당국은 1,000만톤이라는 엄청난 양을 요구하였다. 그 보고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 우리들은 식량 원조 시행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찾아낼 수 없었다. 우리가 식량원조를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식량원조를 해 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3]</div><br />
북한은 WFP 조사단에게 식량이 부족하다거나, 북한 농업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혹은 기근으로 고통받는 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감추고 전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원조를 받을 수 있을 턱이 없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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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그 뒤로도 수 년 동안 식량난이 있다는 것을 숨긴 채 식량생산량 9백만~1천만 톤을 계속 주장하면서 허세를 부리다가, 기근이 심화된 1995년 들어서야 국제사회에게 다시 손을 벌리게 됩니다. 1991년에 솔직한 자세로 자국의 문제를 공개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북한 기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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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30%;"><strong>2. 북한 기근은 진짜인가? (1997년)</strong></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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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6년 후인 1997년으로 넘어가 봅시다. 북한은 이미 1995년에 홍수로 큰 피해를 입었다며 WFP에게 지원을 요청해 긴급구호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북한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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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 당시 대형 국제구호 NGO인 월드비전에서 일했던 앤드류 나치오스의 회고를 같이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지요. 그는 미국 정부의 원조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에서 이런 문제를 여러 해 동안 다룬 바 있으며 부시 행정부 들어서(2001~2005) USAID 책임자로서 다시 한 번 북한 원조 문제를 직접 다루게 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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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span style="color:#ff0000;">북한에 정말 기아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혹들이 증폭</span>되기 시작하자 나는 북한을 방문하여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북한에 비자를 신청할 때마다 매번 거절당했다. 북한에서 보내온 ‘나중에’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지금은 적당한 시기가 아니다”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북한에 들어갈 수 있을 지가 염려되었다. 마침내 <span style="color:#ff0000;">1997년 5월</span>, 그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월드비전의 다른 직원들과 함께 북한으로부터 비자를 받았다.[4]</div><br />
오늘날 우리는 북한 기근이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995년에는 북한 정부가 전세계를 상대로 공개적인 식량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려 2년 후까지도 북한에 기근이 발생했는지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논쟁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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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요?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답은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적시에 인식하고 대처하지 못한 국제사회의 실수란 것입니다. 분명히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좀 더 복잡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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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span style="color:#ff0000;">1997년 가을</span>, UN은 NGO 기관들에게 어린이집에 더 이상 약품과 식량을 보내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이미 1년 전부터 약품과 식량을 공급하였으나 어린이들의 상황이 호전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구호품들을 어린이집에 공급하면서 동시에 영양결핍의 심각성에 따라 차별화되는 치료법도 직원들에게 교육되었다. 그러나 교육과 설비는 물론 구호품조차도 어린이들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북한 당국은 중립국 보건담당 직원의 어린이집 상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 <span style="color:#ff0000;">구호에 지친 NGO 요원들은 서구사회로부터 구호품을 계속 얻어내기 위해 북한당국이 영양결핍 상태의 어린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분개</span>하였다. 그리고 지원된 구호품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쓰이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하였다. 비관적인 실례지만, 마르크시스트 경제체제에서 노동자들은 종종 보잘것없는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직장에서 시설물을 빼내, 자신의 모자라는 임금을 충당한다.[5]</div><br />
구호물자가 적절히 사용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조를 계속 주어도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열의를 품고 제일 먼저 들어갔던 NGO 요원들은 환멸을 느끼고, UN이 원조 중단을 권고할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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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나치오스는 북한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오랜 노력 끝에 어렵게 북한 국내를 시찰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북한에서 본 것은 매우 혼란스러운 메시지였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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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황해북도 사리원의] 어린이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주최 측 사람이 조용히 방문을 닫는 것을 보았다. 나는 뒤로 물러서서 문 가까운 쪽에서 그의 동작을 살펴보았다. 또한 그가 어린이들을 방 뒤쪽에서 앞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1살에서 3살에 이르는 어린이들로 갑자기 둘러싸이게 되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심한 영양결핍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특히, 모여 있는 아이들 절반 정도는 더욱 심각하였다. 어린이들은 울거나 웃지도 못할 정도로 동작이 둔감하고 멍한 상태였다. 소수의 어린이들은 부종으로 부어 있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머리털이 탈색되고 빠져 있었다. 어린이들은 비타민과 단백질 부족으로 나타나는 영양실조로 인해, 여윈 팔과 다리에는 부스럼이 심한 피부장애를 나타내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행을 빠져나와, 우리에게 공개되지 않은 다른 건물 쪽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재빠르게 문이 닫혀져 있는 3개의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순간적으로 들여다본 것이기 때문에 방 안의 어린이 영양상태를 정확히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접근이 제한된 3개의 방 중 어느 방에도 영양결핍상태 어린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각 방에는 약 10명의 어린이가 있었는데, <span style="color:#ff0000;">주최 측은 건강이 양호한 어린이들은 건물 뒤쪽에 남겨놓고 우리가 방문하고 있는 방에는 상태가 심각한 어린이만을 이동시켜 놓았던 것</span>이다. 이번 사건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사실들에 대한 진실 여부에 대해, 그리고 북한의 의도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봐야 할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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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방문에 이어 우리 일행은 공식적인 스케줄에 따라 같은 지역 내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방문하였다. 마르크시스트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학교 운동장에 군대식으로 정렬되어 있는 학생들은 양호한 건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학생들의 신체적 건강상태와 복장상태도 그 도시의 다른 어떤 계층 사람들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학생들은 짧은 팔의 셔츠와 반바지, 그리고 치마를 입고 있었으며, 모두 함께 모여 있어 학생의 영양상태를 한 눈에 파악하기가 용이했다. 어림잡아 약 1,400명의 학생이 모여 있었는데 2~3명 정도만 영양부족 상태를 보였을 뿐이었다. 방금 어린이집에서 목격한 광경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우리 일행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고등학교에서 3블럭 정도 떨어져 있는 어린이집에서 우리는 수단이나 소말리아보다 더 측은하고 건강상태가 안 좋은 어린이들을 만나 보았고, <span style="color:#ff0000;">여기서는 오히려 남한과 일본의 학생들과 비교될 정도의 양호한 건강 상태의 학생들을 만난 것</span>이었다. … 만약 이 고등학교 학생들의 건강상태가 북한 기아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원조계획은 즉시 중단되고, 모든 구호요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일행이 목격한 어린이집이 바로 북한의 포템킨 마을인 것이다.[6]</div><br />
정부 가이드가 끌고 다니면서 보여준 것인 만큼, 이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보여주려고 했던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과 고등학교에서 본 광경은 둘 다 작위적으로 연출된 것이면서도 전적으로 상충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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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는 북한 관리들과 가진 회의에서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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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북한 농업성 관리들과의 회의에서] 북한 관리들은 질병률과 사망률, 그리고 농작물 작황에 대해 다소 과장된 통계를 인용하였다. - <span style="color:#ff0000;">어린이 사망률은 미국과 유럽보다 다소 낮았다.</span> 만약 북한이 제시한 수치가 정확하다면, 북한은 더 이상 위기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원조사회에서 파견된 구호요원들은 다음 비행기로 북한을 떠나야 할 것이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기아원조도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나는 반박하였다. 북한 관리들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정치가 통계 수치에 영향을 주었으며, 제시된 수치들은 다소 오래된 것이어서 현재 북한의 기아 상황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고 말하였다. 농업성 차관에게 식량증산을 위해 필요한 변화와 조치에 대해 논평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식량증산에 필요한 <span style="color:#ff0000;">어떠한 변화와 정책도 지금 상태로는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span>고 관리는 분명히 대답하였다. 그리고 관리는 <span style="color:#ff0000;">최근 기아상태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자연재해 때문</span>이라는 말을 거듭 반복하였다.[7]</div><br />
북한은 2년 전부터 국제사회에게 대규모 원조를 제공해 줄 것을 호소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을 불러놓고는 북한은 미국이나 유럽보다도 사망률이 낮다는 체제선전용 엉터리 통계자료를 제시하면서, 북한 체제는 기본적으로 훌륭하고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그 어떤 개혁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버팁니다. 그런 한편으로 원조는 달라는 것이지요. 그것도 많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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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31/40/b0009940_4aec28415951b.jpg" width="500" height="333.33333333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31/40/b0009940_4aec28415951b.jpg');" /></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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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평양에서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 내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기아상황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려야 할지에 대해,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나는 많은 혼란을 느꼈다. 북한 당국이 조심스럽게 연출한 광경, 조작된 통계수치, 그리고 의도적으로 계획된 관리들과의 대화는 내 자신이 목격한 사실에 대해 회의적인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거의 모든 측면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이면에 분명 숨겨진 진실들이 있었다. 그러한 진실을 밝혀내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span style="color:#ff0000;">처음부터 북한 당국은 기아구호를 지지해온 국제구호요원들에게 진정 북한에 긴급 상황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했으며, 결국에는 이들을 기아구호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바꾸어놓는 데 성공하였다.</span> 실제로 모든 중립국 인도주의 지원국들은 북한에 현재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서로의 논리를 전개하고 교환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8]<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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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에 의해 의도된 프로그램과 계획된 접근만이 허용되었던 모든 중립국 구호요원과 외국대표단들, 그리고 기술고문단을 괴롭힌 중심의제는 다음과 같다. 작금의 북한상황이 기아상황이라면, 기아가 실제로 북한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북한에 식량위기가 실제로 발생했다면 도처에 산재한 북한의 “만성적 구조결함”에서 기인된 식량부족사태는 아닌지 분명하지 않았다.[9]</div><br />
나치오스는 북한 기근을 부정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워싱턴 포스트 지면[10] 등을 통해 북한 기근의 심각성을 경고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의 눈에도 북한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는 점은 특기할만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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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절에서 소개했던 1991년의 '곡물 1천만 톤 원조 요청' 건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나치오스의 경험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1991년 당시 WFP 조사팀이 북한에서 식량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북한 농업의 실패, 더 나아가 북한 체제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북한의 방해 때문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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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당시에 긴급구호 등을 피해 굳이 개발지원(DO) 명목을 원했던 것도, 1995년에 문제를 홍수 탓으로 돌리면서 원조를 요청한 것(WFP의 평가로는 홍수 피해는 문제의 15% 정도에 불과)도 모두 북한 농업 전반의 실패, 즉 집단농장체제와 주체농법의 실패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북한의 책임회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998년 UNDP가 주최한 북한 농업 복구에 관한 회의(AREP)에서 한 참석자가 '개혁'을 언급하자 북한 대표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것[11]은 이를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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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원조를 제공하려는 기관들은 기부자들에게 <strong>도움이 필요한 사건(기근)이 벌어지고 있으며, 기부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줄 수 있어야</strong> 합니다. 그걸 할 수 없으면 기부를 계속 받을 수가 없지요. 마찬가지로 세금으로 뒷받침되는 정부 원조의 경우에도 유권자들 사이에서 그런 원조를 뒷받침하는 여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워낙 평판이 좋지 않은 나라고, 그간의 행동으로 볼 때 그들의 속임수를 우려할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상대로 기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자신 있게 근거를 보여줄 수 없다면, 원조를 끌어내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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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WFP와 여러 NGO들은 북한 기근을 입증할 증거들을 입수하기 위해 기를 쓰게 됩니다. 특히 생생한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자료들이 중요하게 됩니다. 반면 북한은 원조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깎아내릴 가능성이 있는 그런 증거를 노출시키는 일은 절대 피하려고 혈안이 됩니다. 북한이 주장한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strong>'우리 말을 믿고 눈 감고 도와 달라'</strong>는 것인데, 서방 세계에서는 그런 조건을 내걸고는 지원을 모집할 방법이 없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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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한은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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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1px solid #CCCCCC; padding:15px; background:#DDDDDD;">중립국 구호요원들이 도시와 지방에 구호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방문할 때, 지방당국은 기아로 보여지는 모든 증거들을 길거리에서 완전히 치워버린다. 거지들, 쇠약해진 사람들, 부랑아들, 쓰레기와 찌꺼기들, 그리고 죽어 나뒹구는 시체들까지도 길에서 완전히 제거된다. 한편, 입고 나갈 깨끗한 옷이 없는 주민은 집에 그냥 머물러 있도록 지시받는다. 한국어를 아는 한 구호요원은 NGO대표단들이 도착하기 바로 전, 거리에서 주민들에게 모두 집으로 들어가라는 방송을 하면서 마을을 지나는 트럭 한 대를 보았다고 한다. NGO기관에서 파견된 식량모니터 요원이 그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당 간부들만이 유일하게 식량배급을 받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허락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한 당국은 하나의 거대한 포템킨 마을을 창조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어둡고 참혹한 현실은 외면한 채 방문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위장된 그런 마을이었다. <span style="color:#ff0000;">중립국 요원들에게 기아를 위장한 지역의 방문을 획책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시간을 소모하게 만드는 일일 것</span>이다. 왜 북한 당국이 소수의 NGO관계자들에게만 비자를 허용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이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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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북한에 사는 친척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한 조선족은 고향을 방문하고 나서 목격했던 것을 이렇게 알려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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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길거리가 이상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예전에 이 거리에는 많은 집 없는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거리에 나와 있는 북한 관리는 호루라기를 불면서 건물 뒤로 숨으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그리고 안전보위부는 강제로 주민들을 길에서 몰아내기에 분주하였다. 그들은 계속 “머리를 숙여라”고 외쳐댔다. 왜 거리가 이처럼 깨끗하고, 사람이 없고 한산한지를 궁금해 하고 있을 때, 적십자 표지를 단 중국과 남한정부의 자동차들이 내가 서 있는 길 앞을 바로 지나가고 있었다. 거리가 조용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차량들 때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의 옷차림으로 내가 북한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안전보위부 요원은 나에게 길에서 비키라고 하지 않았다.</span>[12]</div><br />
과거 소련과 중공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어쩌다 한 번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고 가는 외국 대표단들을 수없이 속여 넘겨 온 전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사람들도 인정하는 이 분야의 세계 정상급 플레이어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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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구호기관들의 시찰 요청을 피곤해 한 것은 분명합니다. 북한은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모든 장면이 기획된 대로 연출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한 번 보자고 할 때마다 매번 이런 쇼를 펼치는 것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반면 시찰요원들이야 이런 북한의 연출 틈새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진실의 조각들을 모아 조각맞추기를 시도하다 보니 더 많은 방문을 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서로 피곤해질 수밖에 없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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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30%;"><strong><a name="ch3">3. 북한의 역습 (2005년)</a></strong></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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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북한의 완고한 저항은 여전했지만, WFP는 모니터링이 없으면 원조도 없다는 것을 무기로 북한으로부터 다소의 양보를 얻어냈습니다. 이 이야기도 하면 길지만 <a title="" href="http://sonnet.egloos.com/4260113" target="_blank">전에 다룬 적</a>도 있고 하니 여기선 넘어가기로 하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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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린이 영양상태 조사나, 농업생산량 예측을 위한 조사 등 북한 기근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기초조사들을 한 것도 중요한 소득입니다. 이런 것은 정상적이라면 북한이 마땅히 제공해야 되는 것이지만, 이미 보셨다시피 북한이 제공하는 자료는 전혀 믿을 수 없기 때문(기근이 진행중인 북한의 어린이 사망률은 미국/유럽보다 낮다!)에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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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금까지의 경과를 한 번 살펴보지요. 다음 표[13]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UN을 경유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실적을 정리한 것입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30/40/b0009940_4aeaa1d775f2b.png" width="500" height="532.95668549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30/40/b0009940_4aeaa1d775f2b.png');" /></div><br />
이 표를 그래프로 옮겨 그리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02/40/b0009940_4aee539085168.png" width="455" height="40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02/40/b0009940_4aee539085168.png');" /></div> <div align="center">국제원조실적(만 $)</div><br />
이제 분명히 구분되는 세 시기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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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의 홍수 구호 요청으로 시작해 상황파악에 어려움을 겪으며 소량의 원조가 제공(1995~96)<br />
(2) 구호가 본격화되어 대량의 원조가 제공(1997~2004)<br />
(3) 유엔합동호소(CAP) 프로세스가 종료되고 국제사회의 원조가 급락(2005~현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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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에 왜 원조가 지연되었는지는 앞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1997년부터 2004년까지의 원조가 많았던 시기는 북한 기근을 중단시키는데 중요한 성과를 올렸던 상대적으로 좋은 시기입니다. 문제는 2005년 이후입니다. 북한은 2004년 가을부터 유엔의 대북 인도적 통합지원을 거부하고 WFP를 비롯한 국제원조 조직에게 북한 사무소를 폐쇄하고 떠나라고 요구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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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공식적인 주장은 이렇습니다.<br />
<blockquote>북한은 대북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유엔기구에 대해 <span style="color:#ff0000;">2005년 말까지 현재의 사업을 종료하라</span>는 뜻을 공식적으로 전달하였다. 북한의 최수헌 외무성 부상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금년 작황은 매우 좋다고 밝히면서 <span style="color:#ff0000;">이제 북한 당국은 모든 주민에게 식량을 제대로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은 필요치 않다</span>고 하였다.[14]</blockquote><br />
그러나 북한의 작황이 한 해 좀 좋아졌다고 외부의 지원이 필요 없을 만큼의 곡물생산이 가능한 것도 아니며, 정말로 인도적 지원이 필요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게 정말이라면 우리가 여기서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놓고 떠들 필요는 전혀 없겠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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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관찰자들은 북한이 중국이나 남한처럼 조건 없는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들의 지원을 믿고 모니터링 같은 껄끄러운 조건을 요구하는 <strong>WFP를 몰아내거나, 위협을 통해 WFP의 굴복을 강요</strong>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15] 실제로 북한이 UN기구들과 국제 NGO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며 나가달라고 하던 시기에, 북한은 남북 농업협력위원회를 통해서 <strong>남한에게는 비료와 쌀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strong>[16]해 옵니다. 또한 북한은 이제 인도적 원조를 중단하고 개발원조로 전환하자는 명분을 달고 있지만, 개발원조 성격의 지원을 제공하는 국제 NGO에 대해서도 나가달라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발원조는 어디까지나 명분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은 아일랜드 NGO Concern에게 다 걷어치우고 나가든지, 외국인 직원을 모두 빼고 북한인 직원들로만 업무를 진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북한 같은 나라에서 북한인 직원은 <strong>북한 정부의 꼭두각시</strong>일 수밖에 없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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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경제연구원의 북한 농업 연구자 권태진은 이렇게 말합니다.<br />
<blockquote><span style="font-family:'바탕','Batang';">대북 지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지원과 협력이 왜 필요한지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특히 정부의 대북 지원을 둘러싸고 국민 사이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 <strong>만일 우리나라의 대북 지원액이 급속히 증가함으로서 북한이 다른 국제사회의 지원을 중단코자 한다면 우리는 대북 지원 방식에 대해 재고할 필요</strong>가 있다. 국제사회와 공조하지 않고서 우리의 힘만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우리는 <strong>국제사회와 함께</strong> 북한의 식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원방향을 모색하고 효과적인 방안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span>[17]</blockquote><br />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WFP 채널로 북한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니터링 등 요구조건에 있어서는 공동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원조가 WFP를 대체하고 몰아내는데 쓰인다면, 그건 북한 대중은 돕지도 못하면서 우리 부담만 늘리는 꼴이니까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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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none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this.nextSibling.style.display=='none')?'block':'none';>참고문헌</a><div style="DISPLAY: none"><br />
[1] (マコーマック, 2004:95-96) 정광민, 『북한기근의 정치경제학』, 시대정신, 2005, p.149에서 재인용<br />
[2] <a title="" href="http://www.wfp.org/content/annual-report-2009" target="_blank">WFP Annual Report 2009</a>, p.8<br />
[3] Natsios, Andrew S. The Great North Korean Famine: Famine, Politics, and Foreign Policy. Institute of Peace Press, 2002. (황재옥 역, 『북한의 기아』, 다할미디어, 2003, p.226)<br />
[4] <em>같은 책</em>, p.50<br />
[5] <em>같은 책</em>, pp.60-61<br />
[6] <em>같은 책</em>, pp.63-64<br />
[7] <em>같은 책</em>, p.65<br />
[8] <em>같은 책</em>, pp.65-66<br />
[9] <em>같은 책</em>, p.229<br />
[10] 워싱턴포스트 1997년 2월 17일<br />
[11]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Famine in North Korea: Markets, Aid, and Reform. 1st e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이형욱 역,『북한의 선택』, 매일경제신문사, 2007, p.66<br />
[12] Natsios, 『북한의 기아』, pp.79-80<br />
[13]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및 교류협력 동향," 『KREI 북한농업동향』 11권 2호, 농촌경제연구원, 2009년 7월, p.95<br />
[14] 권태진. “대북 농업지원사업의 과제와 개선방향.” 『농촌경제』. 28.3 (2005), pp.18-19 (각주 4)<br />
[15]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a title="" href="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5/09/27/AR2005092701523.html" target="_blank">Hungry for Human Rights</a>, 워싱턴포스트, 2005년 9월 28일; 권태진,<em> 앞의 글</em><br />
[16] 권태진,<em> 앞의 글</em>, p.19<br />
[17] 권태진,<em> 앞의 글</em>, p.31,34<br />
</div><br/><br/>tag : <a href="/tag/북한" rel="tag">북한</a>,&nbsp;<a href="/tag/기근" rel="tag">기근</a>,&nbsp;<a href="/tag/북한기근" rel="tag">북한기근</a>,&nbsp;<a href="/tag/대북원조" rel="tag">대북원조</a>,&nbsp;<a href="/tag/WFP" rel="tag">WFP</a>,&nbsp;<a href="/tag/FAO" rel="tag">FAO</a>,&nbsp;<a href="/tag/포템킨마을" rel="tag">포템킨마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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