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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extGallery Soci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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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샤방샤방 문화평론을 쓰고 싶은 사건기자 -_-;;;</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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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5 Oct 2008 08:36:2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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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샤방샤방 문화평론을 쓰고 싶은 사건기자 -_-;;;</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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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슬픈 종부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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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뒷북인 것은 알지만, 그래도 좋은 글은 나눠읽어야 한다. <a href="http://pds10.egloos.com/pds/200810/05/78/file_vxQ30y.pdf">file_vxQ30y.pdf</a><br><br>전화하는 혹은 만나는 친구, 후배들마다 "아직도 그 글을 안 읽었냐"는 핀잔을 듣다가 주말을 이용해 이준구 교수의 '슬픈 종부세'라는 글을 읽었다. 이준구 교수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우리나라에서 '맨큐의 경제학'보다 많이 팔리는 경제학 교과서를 쓴 신고전학파 교수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나쁜 것은 '과거로의 회귀'라서가 아니라, 아무 판단없이 모두 뒤집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날카롭다. <br><br><blockquote>"흥미로운 점은 주요한 진보적 개혁이 거의 모두 보수적 정부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제도 등의 사회복지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 전두환 정부 때였으며, 토지공개념이란 급진적 성격의 개혁안이 나온 것은 노태우 정부 때였다. 또한 김영삼 정부 때는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등록이라는 굵직한 개혁이 이루어진 바 있다. 지금 이런 개혁안이 나왔다면 보수진영은 좌파의 책동을 막아야 한다고 난리를 쳐댔을 것임에 틀림없다"<br><br>"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이와 같은 진보적 개혁의 도도한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는 데 열중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에 일어난 민심의 일시적 보수화를 등에 업고 마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 양 밀어붙이고 있다. 그 동안 어떤 정부도 지금처럼 대놓고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 바 없다."<br><br>"종부세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라든가 전매금지 규제와 달리 시장기구 혹은 가격유인을 통해 민간부분의 행위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정책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규제가 갖는 일반적 문제점, 즉 시장의 왜곡 같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br><br>"종부세는 부모를 잘못 만난 탓에 태어난 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안락사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내가 보기에 종부세는 그 자체에는 바람직한 측면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단지 참여정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종부세의 본질, 즉 이것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어떤 동기에서 도입되었는지 같은 애매하고 지엽말단적인 논의만 판치고 있다."<div style="TEXT-ALIGN: right"><br>-이준구, '슬픈 종부세' 中</div></blockquote><br/><br/>tag : <a href="/tag/종부세" rel="tag">종부세</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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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텍스트 오브제</category>
		<category>종부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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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5 Oct 2008 08:32:55 GMT</pubDate>
		<dc:creator>H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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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총학생회장'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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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얼마전 학교를 지나가다가 총학생회가 만든 홍보물을 보았다. 지난해 선거 때 내밀었던 공약들을 점검하고 2학기 행사를 알리는 홍보물이었다. 졸업생 신분이었지만 유심히 읽었다. 이번 총학생회는 이른바 '비운동권'이면서도 "총여학생회를 없애겠다"는 식의 조류적 행태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촛불시위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등 새로운 '비운동권'의 모습을 보였다.<br><br>몇 페이지를 넘겼을까. 순간 눈이 찌푸려졌다. '○○○ 총학생회장님' '○○○ 부총학생회장님'이란 표현이 난무했다. 내가 대학교 새내기이던 9년 전 토해버릴 것 같던 모습들, 과거 한총련이나 전학협 등 학생운동 거대 정파들의 행태과 다를 바 없었다. "친구처럼 믿음 있고 친근함이 묻어나는 학생회" "연인처럼 함께 하고 싶은 학생회"를 만들겠다던 '비운동권'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br><br>사실, 생각해보면 이런 행태는 무엇보다 빨리 자기복제 되어 왔다. 운동권이 망하고, 조직이 사라져도, 권위라는 괴물은 숙주를 옮겨다니며 반복됐다. 보수정당을 무찌르자던 열린우리당에서도 518 술자리 파문처럼&nbsp;보수정치인의 행태는 살아남았고, 진보정당들도 이런 행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br><br>꼭 정치인이라서 이럴까. 가장 샤방샤방하다는 아티스트들조차 내부 문화는&nbsp;고위관료들과 다를 바 없지 않던가.&nbsp;오래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이 글도 벌써 7년 전이다. <br><br></p><blockquote><p><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1999년 6월. 고려대학교 노천극장. 1999 콘서트 자유의 열기가 뜨겁다. (중략) 윤도현 밴드에 이어 김진표라는 랩송 가수 등장. 청중들의 반응에서 그의 인기를 직감한다. 같이 같 딸아이의 설명에 의하면, 정통 록을 구사하던 넥스트의 멤버들과 최근에 같이 팀을 만들었단다. 그 랩퍼는 자기는 어른들이 싫다며 기성 세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다. 김진표가 "외쳐 봐"하고 절규하면, 우리는 다시 "닥쳐 봐"하고 소리 지른다. 자신이 싫어하는 어른들에게 입 닥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김진표가 "아저씨"할 때마다,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닥쳐봐"라고 악을 쓴다. 충분히 반항적이고 전복적이다. 어느 새 반항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된 어설픈 나이가 씁쓸하다. </span></p><p><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그러나 정작 씁쓸한 것은 자신의 밴드 멤버들을 소개하는 그 가수의 태도이다. 어른들에게 "닥쳐 봐" 하던 기세는 온 데 간 데 없고, '형님들'을 소개하고 대하는 그의 태도는 '조직의 쓴맛'을 본 사람처럼 정중하기 짝이 없다. 어느 쪽이 그의 진짜인지 판단할 길이 없다. "닥쳐 봐"는 상업적 전략이고, '형님들'이 그의 진짜라는 혐의를 쉽게 지울 수 없다. 이 랩퍼의 몸에 밴 규율 권력은 어디서부터 유래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아직 "닥쳐봐"를 되네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오는 밤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br><p></p><div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nbsp;</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임지현, &lt;이념의 속살&gt;, 삼인, 2001</span></div></span></p></blockquote><br/><br/>tag : <a href="/tag/권위" rel="tag">권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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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세상 보기</category>
		<category>권위</category>

		<comments>http://socia.egloos.com/2085453#comments</comments>
		<pubDate>Sun, 05 Oct 2008 08:17:19 GMT</pubDate>
		<dc:creator>H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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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우리는 이렇게 당당하잖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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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간만에 <a href="http://blog.jinbo.net/gimche/?pid=619">새벽길님의 블로그</a>에 놀러갔다가 <br>메이데이의 '동지에게'라는 민중가요를 들었다.<br><br>생각해보면 동아리방에서 술 마시고 고래고래 민중가요를 부르던 시절보다는&nbsp;<br>요즘 같은 순간에 이런 노래들에 더 큰 울림을 받는 것 같다.<br><br>누군가가 나에게 "쉽게 무너지지 말자" "우리는 당당하지 않나"라고 말을 건내는 느낌이다.<br><br>(아래 노래는 새벽길님의 포스팅에서 납치)<br><br><br><span style="COLOR: #8e8e8e"><div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COLOR: #8e8e8e"></span></div><p align="right"><br><embed style="LEFT: 250px; WIDTH: 300px; TOP: 918px; HEIGHT: 45px" src="mms://211.215.17.148/song/mayday/mayday_1_todongji.asf" width="300" height="45" allowscriptaccess="never" autostart="false" invokeurls="false"></embed></p></span><p align="right"></p><p align="right"><strong><span style="COLOR: #8e8e8e">메이데이 - <span style="FONT-FAMILY: 굴림">同志</span>에게 </span></strong></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span>&nbsp;</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1. 두려워 알고 있어 후회할 수도 있지 </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나를 봐 알고 있어 고개 숙이지 마</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br>2. 감춰도 알고 있어 쓰러지기도 했지</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nbsp;음 알고 있어 돌아가기도 했지만</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span><span style="COLOR: #8e8e8e"><br>* 하지만 인정할 순 없지 쉽게 무너질 순 없어</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nbsp;내가 있잖아 네 오랜 동지</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우리는 이렇게 아름답게 싸워왔잖아</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nbsp;우리는 이렇게 당당히 서 있잖아</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인정할 순 없지 쉽게 무너질 순 없어</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nbsp;내가 있잖아 네 오랜 동지</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span>&nbsp;</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우리는 이렇게 아름답잖아</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nbsp;우리는 이렇게 당당하잖아</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우리는 이렇게 아름답잖아 </span></p><p align="right"><span style="COLOR: #8e8e8e">우리는 이렇게 당당하잖아</span></p><br/><br/>tag : <a href="/tag/민중가요" rel="tag">민중가요</a>,&nbsp;<a href="/tag/메이데이" rel="tag">메이데이</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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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에 아크릴채색</category>
		<category>민중가요</category>
		<category>메이데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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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Sep 2008 04:22:22 GMT</pubDate>
		<dc:creator>H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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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박대리는 사회부적응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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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809/17/78/d0040878_48d0d3af0a856.jpg" width="209" height="22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809/17/78/d0040878_48d0d3af0a856.jpg');" /></div><br><div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cartoon.media.daum.net/toon/series/mr_park/general/read?seriesId=151416&amp;cartoonId=1867&amp;type=g">[만화 보기]</a></div><a href="http://cartoon.media.daum.net/toon/series/mr_park/general/read?seriesId=151416&amp;cartoonId=1867&amp;type=g"><br></a>회사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정말 경험하기 전에는 이런 일인줄 몰랐다. 아니, 이렇게 짜증나는 곳은 특수한 경우이고, 대개의 경우에는 TV나 브라운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샤방샤방한 일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게 왠걸, 회사원이 되자마자&nbsp;미친듯이 쥐어짜이고, 잠깐 예전의 곤조를 그리워하다가, 또 쪼이고, 그러다가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사로잡히고, 외롭고, 웃기다. <br><br>이런 생각에 살짝 우울해 하며 하루를 견디는&nbsp;회사원들에게, <br>이&nbsp;작은 만화는&nbsp;큰&nbsp;위로가 된다.<br><br/><br/>tag : <a href="/tag/박대리" rel="tag">박대리</a>,&nbsp;<a href="/tag/회사원" rel="tag">회사원</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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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에 아크릴채색</category>
		<category>박대리</category>
		<category>회사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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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7 Sep 2008 09:59:3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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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1971년 봄, 그리고 2008년 가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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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809/17/78/d0040878_48cfd86b04198.jpg" width="320" height="24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809/17/78/d0040878_48cfd86b04198.jpg');" /></div><br>16일&nbsp;오후 1시 YTN 뉴스 생방송 도중 YTN 직원들이 든&nbsp;피켓이 그대로 케이블을 타고 전국에 방송됐다.&nbsp;순간 얼마전에 &lt;독설닷컴&gt;에서 본&nbsp;<a href="http://poisontongue.sisain.co.kr/141">YTN의 황모 기자에 대한 글</a>이 생각나, 다시 읽어보았다. 휴가를 쪼개 언론자유를&nbsp;염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번에는&nbsp;1971년 봄이 떠올랐다. 책장의 책들을 들춰보았다. (참, 특종기자는 오보도 많이 한다더니, &lt;독설닷컴&gt;은&nbsp;후배를 거느리며&nbsp;활약하는 1진 기자를 '막내기자'라고 잘못 보도했다. ㅋ)<br><br>글은 총 3개다.&nbsp;이 글들이 쓰여진 시간은 1971년 봄, 장소는 대개 세종로 사거리이다.<br><br>1971년 봄은 엄혹하던 박정희 시대. 71년 4월 27일에는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후보 사이의 경쟁은 꽤 치열했다. 이에 앞서 박정희는 1969년 9월 국회 날치기 통과로 상정한 '3선 개헌안'(6차 개정헌법)을&nbsp;국민투표에 붙여 통과시키는 무리수를&nbsp;두면서까지&nbsp;3선 도전에 집착했다.<br><br>대통령 선거를&nbsp;반년 앞둔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全泰壹) 열사가 평화시장 등 3개 시장내 7600여 명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외치면서 자기 몸을 불살랐다. 그러나 언론은 이 사건을 한두 번 짧게 보도했고 한두 신문에서 아주 피상적인 사설로 다뤘다.&nbsp;<br><br>"뭔가 아니다"라는 술렁임이 퍼져나갔다. 이듬해 3월 26일, 세종로의 동아일보사 앞에 몰려온 서울대생 50여명은 언론화형식을 벌이면서 '언론인에게 보내는 경고장'을 낭독한다.&nbsp;<blockquote><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trong>언론인에게 보내는 경고장<br></strong><br>우리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어 이 쓰러져가는 민주의 파수대 앞에 모였다.<br>&nbsp;<br>나오라, 사이비 언론인들이여 나오라. 이 민주의 광장으로 나와 국민, 선배에게 속죄하라. 선배투사의 한서린 해골 뒤에 눌러앉아 대중을 우민화하고 오도하여 얻은 그 허울좋은 대가로 안일과 축제를 일삼는 자들이여 나오라! 사이비 언론 뒤에 도사린 정보원이라는 이름의 제 6적이여. 나오라. 민주정신의 혈액을 빨아먹는 흡혈귀여! <br><br>안타깝다. 그 자리, 그 건물이건만 민주투사는 간곳 없고 잡귀만 들끓는가. 사자의 위용은 어디가고 도적 앞에 꼬리 흔드는 강아지 꼴이 되었는가. 이것이 일컬어 제 7적이런가. 정치문제는 폭력이 무서워 못 쓰고, 사회문제는 돈 먹었으니 눈 감아주고, 문화기사는 판매부수 때문에 저질로 치닫는다면 더 이상 무엇을 쓰겠다는 것인가. 듣건대 일선기자의 고생스런 취재는 겁먹고 배부른 부차장 선에서 잘리기 일쑤고, 힘들게 부차장 손을 벗어나면 편집국장 옆에서 중앙정보부원이 지면을 난도질하고 있다니 이것이 무슨 해괴한 굿거리인가. 통탄할 언론의 무기력과 타락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객관적인 상황의 요구가 그렇기 때문만이 아니라 언론의 주체적 상황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스스로 움츠리고 스스로 썩고 있는 것이다. 홍두깨 맞은 놈 젓가락만 보고도 도망하는 꼴 아닌가. 엄밀한 의미에서 강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옳았다. 동아야 너도 보는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올라만 가는 조선의 저 추잡한 껍데기를. 너마저 저처럼 전락하려는가. 동아야 너도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았는가. 우리는 신문 경영자가 이미 정상배로 전락했음을 단정하고, 또한 신문을 출세의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가짜들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br><br>여기서 우리는 한 가닥 양심을 지니고 고민하는 언론인이 어딘가에 있으리라 믿으며 그들에게 호소한다. 신문은 이미 인적(人的)으로 동일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엄연한 대립관계가 존재함을 직시하고 과감히 편집권 독립투쟁에 나서라.</span></blockquote><p><br>70년대 중반 언론인 대량해직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신문기자들의 처우는 기가 막힐 정도로 열악했다. 초임기자의 월급은 갑근세 면세점 이하였고, 10년 경력의 부장급이 되어야 겨우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대신에 그 당시 기자들은 '곤조'가 있었다. 대학생들의 경고장 이후&nbsp;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사&nbsp;기자들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한다.</p><blockquote><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trong>언론자유 수호선언</strong><br><br>자유언론의 일선 담당자인 우리는 오늘의 언론 위기가 한계상황에 이르렀음을 통감하고 민주주의의 기초인 언론자유가 어떤 압력이나 사술(詐術)로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엄숙히 선언한다. 오늘의 언론이 진실의 발견과 공정한 보도라는 본연의 기능을 거의 거세당하고 만 것은 주로 외부로부터의 불법 부당한 제재와 간섭 때문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돌이켜보면 자랑스러운 선배 언론인들은 숨 막히는 외족(外族)의 억압 아래서도 국민의 알 권리와 국민에게 알릴 의무를 떳떳이 싸워 지켰다. 그러나 우리는 수년래 강화된 온갖 형태의 박해로 자율의 의지를 앗긴 채 언론 부재, 언론 불신의 막다른 골목까지 밀려나왔다. 작게는 뉴스원의 봉쇄로부터 기사의 경중과 보도 여부에까지 외부의 손길이 미쳤고, 이른바 정보기관원의 상주(常駐)가 빚어내는 모든 불합리한 사태는 일선 언론인인 우리들에게 치욕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이에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가 어떤 구실로도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회복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아울러 우리는 오늘의 언론 위기의 책임을 전적으로 외부로만 전가하려 하지 않으며 권리 위에 잠잔 스스로의 게으름을 반성하려 한다.<br><br>&nbsp;1. 우리는 기자적 양심에 따라 진실을 진실대로 자유롭게 보도한다.<br><br>&nbsp;2. 우리는 외부로부터 직접 간접으로 가해지는 부당한 압력을 일치단결하여 배격한다.<br><br>&nbsp;3. 우리는 우리의 명예를 걸고 정보요원의 사내 상주 또는 출입을 거부한다.<br><br></span><div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nbsp;1971. 4. 15. <br>동아일보 기자 일동</span></div></blockquote><p>&nbsp;</p><blockquote><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trong>언론자유선언문</strong><br><br>민주언론의 선봉이며 중추인 우리 조선일보 기자들은 우리 언론 사상 가장 불행한 시기에 언론의 일선을 맡았음을 절감한다. 우리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야 할 신성한 사명이 외부로부터의 지나친 간섭에 의해 민족지로서의 전통을 더이상 이어갈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음을 직시하고 이를 타개할 것을 선언한다.<br><br>지난 64년 언론윤리위원회법파동 이래 신문제작상의 제약이 가중되어 왔으며 최근의 학생데모에서는 일선 취재까지 위축받아야 할 중대한 사태에 직면하였다.<br><br>취재기자가 학생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받을 만큼 언론이 극단적인 불신의 대상이 되어도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정당한 취재활동을 하던 기자가 기관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해도 그 책임이 규명되지 못했으며 정보기관원이 편집국을 수시로 출입, 신문제작에 굴욕적인 압력을 가해도 이를 배격하지 못한 언론의 무기력을 자괴하고 이제 우리는 언론본연의 자세를 되찾기 위해 새출발하려 한다.<br><br>우리는 이 모든 책임을 경영주나 외부적인 요인에만 돌리려고는 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들의 모임은 결단코 현실체제의 부정이 아니라 스스로 언론현상을 광정, 민중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임을 자부한다. 우리들의 각성과 선투가 곧 선배언론인들에 대한 보답일 뿐더러 민권의 보루로서 후선들에게 연면(連緬)하게 전통을 이어줄 우리 세대의 당연한 책무임을 깨달은 결과이다. 우리의 정당한 주장은 어떠한 회유나 강압에도 꺾일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기본권을 찾을 때까지 모든 언론의 적과 끝까지 투쟁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br><br></span><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결의문</span></div><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1. 우리는 민주한국의 언론인으로서의 긍지를 되찾아 원천적인 강압을 배격한다.<br>1. 우리는 기자를 함부로 연행, 감금, 구타하는 등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행위와 정보기관원의 사내 항시 출입과 같은 부당한 간섭을 중지할 것을 촉구하다.<br>1. 우리는 보도할 가치가 있는 모든 뉴스를 사실대로 알릴 것을 다짐한다.<br>1. 우리는 언론불신의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도 있음을 깨닫고 앞으로 언론인의 품위를 지켜 사명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br><br></span><div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1971. 4. 17.<br>조선일보사 기자 일동</span></div></blockquote><p><br>그 이후 결과는 어땠을까? 조선일보 기자들의 성명서가 발표되고 정확히 열흘 뒤인&nbsp;4월 27일, 국민직접선거로 치러진 제6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는 53.2%를 득표해 47.3%를 득표한 2위 김대중 후보를 따돌리고 3선 대통령이 됐다. 이듬해인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목표로 유신(維新)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민주주의 제도를 정지시키는 비상조치를 발표했다. 깜깜한 암흑이 다시 이어졌다.<br><br>그러나 1975년 3월 다시 '자유언론'의 기치를 들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들은 1971년 봄을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또 다시 '자유언론'을 꿈꾸는 기자들은 1975년 동아투위와 조선투위를 떠올리고 있다. 그렇게 역사는 반복된다.<br><br><br></p><br/><br/>tag : <a href="/tag/ytn" rel="tag">ytn</a>,&nbsp;<a href="/tag/자유언론" rel="tag">자유언론</a>,&nbsp;<a href="/tag/조선일보" rel="tag">조선일보</a>,&nbsp;<a href="/tag/동아일보" rel="tag">동아일보</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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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텍스트 오브제</category>
		<category>ytn</category>
		<category>자유언론</category>
		<category>조선일보</category>
		<category>동아일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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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6 Sep 2008 16:09:02 GMT</pubDate>
		<dc:creator>H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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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사실을 증거하라. 그것이 기자의 숙명이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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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lt;독설닷컴&gt;에 갔다가 &lt;시사인&gt;의 차기 편집국장이 남문희 전문기자라는 것을 알았다.&nbsp;최근 '남문희'라는 바이라인을 찾기 힘들어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바로 이런&nbsp;이유 때문이었다.&nbsp;&lt;시사인&gt;에서 한반도 지면이 제일 좋았기 때문에, 기대와 걱정이 마구 교차한다.&nbsp;앞으론 지면에서 남문희&nbsp;국장이 꼼꼼히 취재한&nbsp;2~3장의 기사를 볼 수 없으라는 아쉬움이 크다.<br><br>&lt;독설닷컴&gt;에 따르면, 신임 남 국장은 일산에 있는 소설가이자 선배인&nbsp;김훈 선생의 집으로 가 여러가지 조언을 구하고 왔다.&nbsp;그&nbsp;조언들은 요약된 형태로 &lt;독설닷컴&gt;에 게재됐다. <br><br>문제는 김훈 선생이 '당파성'을 매우 나쁘게 얘기하면서 &lt;한겨레&gt;도 "사실이 아니라 의견에 입각한 언론"이라고 했다는 점이다.&nbsp;이 말에 분노한&nbsp;어느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nbsp;'김훈은 파스스트에 가깝다'고&nbsp;말했다.&nbsp;이&nbsp;댓글은 그 자체로&nbsp;김훈 선생의 주장이 왜 필요한 지를&nbsp;보여준다.<br><br>시사인 52,53호의 '독립언론으로 살아가기' 심포지엄 메인 기사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의 멘트로 끝난다.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에 대한 독립은 말해왔지만 야당권력, 시민권력 등에 대해서는 습관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라는 지적. 진보적 당파성 이전에 관성으로부터의 독립이 우선이다. 매일 똑같은 관점만 반복되면 나아갈 수 없다. 특히 그 관점이 사실성 이전에 자리잡으면 안 된다.<br><br>p.s. 김훈이 국장이면, 난 정말 엄청나게 일해서 사실을 증거하겠다. (이미 엄청나게 일 하고 있기는 하다) 데스크의 이런 우직한 태도는, 기자와 독자에게&nbsp;얼마나 좋은 데스크인가.<br></p><br /><br /><p>&nbsp;</p><blockquote><p>사실에 바탕해서 의견을 만들고 <br>의견에 바탕해서 신념을 만들고 <br>신념에 바탕해서 정의를 만들고<br>정의에 바탕해서 지향점을 만들라. <br>이게 갈 길이다.</p><p>사실에 바탕이 없으면 안된다. <br>정의부터 하면 안된다. <br>저널리스트로서 평생의 고민이 이것이다. <br>이것을 안 하고 신념을 얘기해서는 안된다. </p><p>사실에 입각하면 저널리즘의 살 길이 있다. <br>조선일보 한겨레는 사실이 아니라 의견에 입각한다. <br>사실에 입각하는 저널리즘이 등장하면 희망이 있다. </p><p>이것을 하려면 기자들이 엄청나게 일해야 한다. <br>사실에 대해서 탐구해야 한다. <br>저널은 각개 기자의 신념을 구현하는 데가 아니고 사실을 증거하는 데이다. <br>개인의 신념을 구현 하려면 정당으로 가야 된다. <br>저널로는 오지마라. <br>평생 이 생각을 했다. <br>이게 나의 고민이다. </p><p>편집국장은 팩트를 요구해야 된다. <br>이것에 대해 기자들은 일사분란하게 복종해야 된다. <br>이게 아니면 항명이다.</p><p>우리는 신념의 세계에서 사실의 세계로 가야 된다. <br>아니면 망한다. <br>이것을 시사IN이 해야 된다. <br>그게 아니면 또 하나의 조선일보나 한겨레가 된다. </p><p>내가 기자로서 배운 것은 사실의 존엄이다. <br>사실은 정치권력을 가진 놈도 박해할 수 없다. <br>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기자의 사명이다. <br></p></blockquote><br/><br/>tag : <a href="/tag/독설닷컴" rel="tag">독설닷컴</a>,&nbsp;<a href="/tag/김훈" rel="tag">김훈</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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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기자로 산다는 것</category>
		<category>독설닷컴</category>
		<category>김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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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2 Sep 2008 04:13:51 GMT</pubDate>
		<dc:creator>H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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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기자로 산다는 것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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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lockquote>-언론인으로서 무엇을 가장 갖춰야 할까요.<br><br>"첫째,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외무부에 출입하던 시절 무슨 정책이 나오면 항상 도서관에서 책을 먼저 빌렸지. 둘째로는, 인간적인 성실성을 갖춰야 해요. 기자라고 거들먹거리고 그러면 안돼요. 그리고 검소하게, 가난하게 사는 데 만족해야 돼. 돈이 흔해지면 권력에 붙게 마련이니까. 정치권력, 경제권력, 사법권력… 이런 것을 거부할 줄 알아야 해요."<br><br>- 경향신문, 독립 10주년 리영희 선생 인터뷰 中<br></blockquote><br><a h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3271741105&amp;code=210000">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3271741105&amp;code=210000</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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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기자로 산다는 것</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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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8 Mar 2008 07:16:03 GMT</pubDate>
		<dc:creator>니코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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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비겁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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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세상이 거꾸로 돌아갈 때, 편하게 행동하는 것만큼 비겁한 것은 없다. 편하게 행동하는 것은 거꾸로 된 세상과 함께 걷는 일이기에,&nbsp;그 자체가 세상을 망치는&nbsp;짓이다. 그러나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면? 그래도 편하게 행동하는 것은 비겁하다. 혹시나 잘못된 요소가 있어도 그냥 그렇게 세상을 굴리기 때문이다.<br><br>그러므로 매 순간의 불편함을 대신하려는 장치들, 규칙이건 수칙이건 방침이건 원칙이건, 이런 것들을 앞세우는 행동은 비겁하다. 비겁하지 않으려면 매 순간 박 터지게 갈등해야 한다. 박 터지게 살자는 우격다짐, 이것만이 비겁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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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아포리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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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4 Mar 2008 15:49:14 GMT</pubDate>
		<dc:creator>니코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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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쥐어짜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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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요즘 네 모녀 실종사건을 취재하고 있다. 수습기자들이 하는 일이란, 형사과장실 옆 경찰서 로비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담당 팀 형사들이나 과장이 지나가면 들러붙어서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이다. 주로 일진 선배들이 궁금해하는 것, 또는 회사에서 기사를 고치고 다듬는 데스크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물어본다.<br><br>담당 경찰서 형사과장은 원래 기자에게 친절했다. 내가 처음 마와리를 돌고 있던 날, 과장은 경찰서 로비에서 길 잃은 강아지처럼 우왕좌왕하던 나와 다른 수습기자들을 과장실로 불렀다. "만날 밤에 돌아다니니 힘들겠지만, 이런 과정을 겪고 나면 좋은 시절도 오니까 힘내" 과장은 이렇게 격려했다.<br><br>아직도 기자의 교육시스템은 도제식이라, 잠을 안 재우며 담당 경찰서와 관공서를 밤낮으로 빙글빙글 돌리는 '하리꼬미'를 유일한 교육방식으로 삼고 있다. 관공서는 보통 기사감이 없으므로, 수습기자들이 집중하는 것은 경찰서다. 따라서 기자를 제일 많이 보는 사람은 형사들이다. <br><br>별로 기사거리도 아닌데 (일진의 갈굼으로) 꼬치꼬치 묻는 수습기자들을 상대하는 경찰들은 종종 기자들에게 '학을 뗀다'. 기사도 안 되는 내용까지 너무 꼬치꼬치 캐묻기 때문이다. &nbsp;그래서 나이 많은 형사나 과장급일수록 수습들에게 까칠하다. 그러나 여기 형사과장은 자식뻘인 수습기자들에게도 비교적 친절하게 대했다. 그런 형사과장이 어제 폭발했다.<br><br>어제 오후 형사과장이 굳게 잠긴 방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갔다. 수습기자들은 또 벌떼 같이 따라붙는다. 심지어 화장실로 들어가서 (대개는 일진들이 시킨) 질문을 퍼붓는다. 이게 지난 8일 모 방송사의 네 모녀 실종사건 보도 이후 일주일 가까이 된 풍경이다.<br><br>어제 오후에도 그렇게 수습기자들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유서에 범행 자백이 있나요?" "없어요" "그럼 (살해당한) 김씨 얘기도 있나요?" "없다니깐" "김씨에 대한 언급도 없나요?" "똑같은 걸 왜 자꾸 물어!!!"<br><br>평소에 친절하던 형사과장의 폭발은 이렇게 시작됐다. 형사과장은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어려운 시험을 뚫고 온 엘리트들이 사람을 쥐어짜 기사를 날조한다"며 꾸짖었다. 그리고 "내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는데도, 기사를 쓴다는 것은 내 얘길 안 믿는다는 건데, 그렇게 생각할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항의했다. <br><br>원래 경찰은 용의자 이모씨가 자살하기 전 수사망을 좁혀 9일 이씨의 약속 장소에서 검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8일 모 방송사의 기사가 나가면서 이씨가 9일 예정된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형사과장은 8일 방송이 나가기전 수차례 담당 기자에게 보도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엠바고를 걸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br><br>기자들이 수사 중인 형사들을 쥐어짜는 것은 기사를 쓰기 위함이다. 매일매일 나가는 신문과 방송에 어제와 다른 기사가 실린다는 것은 (언론사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언론사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라"며 하루하루 쥐어짜며, 기자는 취재원을 하루하루 쥐어짠다. 그러다보니 기자는 취재원을 빨아내는 흡혈귀가 되고, 취재원은 바싹바싹 마르다 기자를 기피한다.<br><br>매일 나오는 상품, 게다가 정보를 판다는 일. '새로운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는 오래 못간다. 다른 길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br/><br/>tag : <a href="/tag/기자로산다는것" rel="tag">기자로산다는것</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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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기자로 산다는 것</category>
		<category>기자로산다는것</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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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3 Mar 2008 01:23:00 GMT</pubDate>
		<dc:creator>H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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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진부한 반복, 사랑, 그리고 <어거스트 러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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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09/12/78/d0040878_48c9c34ec3856.jpg" width="500" height="713.15372424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09/12/78/d0040878_48c9c34ec3856.jpg');" /></div><br>한때 ‘있어 보이는’ 표현을 써야 글을 잘 쓴다고 착각한 적이 있다. ‘주옥같은 음악’, ‘불굴의 의지’, ‘개탄할 일’ 같은 어구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런 표현은 어찌나 진부한지, 이런 문구들은 자장면 곱빼기 위에 생크림을 버무려 놓은 느낌이다.<br><br>&nbsp;&lt;어거스트 러쉬 August Rush&gt;도 그렇게 느끼한 영화다. 포스터에 꽃미남, 꽃미녀, 미소년이 멋지게 모여 있을 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당신의 가슴을 연주할 특별한 이름”이라는 광고 문구에 속아버렸다.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lt;원스&gt;와 동일선 상에 놓은 마케팅 탓이리라. <br><br /><br />일단 노래와 배우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스토리는 빈약하고 진부하다 못해 처참할 정도다. 하루 밤 별 대화도 없이 같이 보낸 뒤, 10년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게 말이 되나? 줄리어드 음대를 나온 첼리스트 엄마와 로커 아빠를 두면 음악의 천재가 되나? 차라리 일본 드라마 &lt;노다메 칸타빌레&gt;처럼 유치함을 감추려들지 않았다면 담백했을 텐데, &lt;어거스트 러쉬&gt;는 유치하면서도 끝까지 관객에게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강요한다. <br><br>&nbsp;게다가 어거스트 러쉬 본인이건 엄마건 일관되게 얼굴과 손을 동시에 잡지 않는 교차 편집은 봐주기 힘들 정도다. 또 지휘하는 손을 전등에 비추는 진부한 장면은 왜 이리 남용되는지, 그리고 캐릭터는 착하다 못해 왜 이리도 평면적인지, 헛웃음을 참고 영화 보는 게 도무지 쉽지 않았다. 주연 배우들도 현실성을 부여하는 일을 포기한 듯했다.<br><br>&nbsp;이렇듯 논할 가치가 없는 영화인데 굳이 얘길 꺼낸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적극적인 반응 때문이다. &lt;어거스트 러쉬&gt;는 개봉 2주 만에 박스오피스 1위에 82만 관객을 기록했고, 이번 주에도 네이버 검색 순위 1위를 달렸다. 게다가 네이버 관객 평가도 10점 만점에 8.91로 매우 후하다. 나로서는 이해가 쉽지 않다. 어떻게 이토록 느끼한 식성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단 말인가?<br><br>&nbsp;우선 그 해답은 마케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내 대형 영화사 중 하나인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에 참여했고, 구혜선과 타블로가 카메오로 등장했단다. 첫 주 개봉관 역시 300개를 넘는다. 대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격적인 마케팅이다. 그러나 마케팅의 덕으로만 돌리기에는 인터넷에서 관객들이 보여주는 열광이 좀 지나치다. 이에 따라 생각해본 또 다른 가설. 어쩌면 많은 이들은 영화와 현실의 정합성이 전무하더라도 괘념치 않는 게 아닐까? 아니, 음악이란 매력적인 요소에 멋진 배우와 귀여운 아역을 배치해 놓고, ‘가족’, ‘사랑’, ‘음악’ 등 낭만적 이데올로기를 펼치는 게 2007년 관객들이 가장 원하는 바는 아니었을까?<br><br>&nbsp;사랑이 영화에서 진부한 요소를 통해 표현될 때, 현실에서 사랑이 자리 잡을 공간은 줄어든다. 낭만은 클리셰 범벅의 스크린으로 도망치고, 현실은 방치된다. 이런 맥락에서 &lt;어거스트 러쉬&gt;는 망년회에서 마시는 싸구려 폭탄주와 같다. 모두 사랑스럽고 친근하지만, 깨고 나면 또 다시 정반대 현실이다.<br/><br/>tag : <a href="/tag/어거스트러쉬" rel="tag">어거스트러쉬</a>,&nbsp;<a href="/tag/영화" rel="tag">영화</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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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시네마 복학생</category>
		<category>어거스트러쉬</category>
		<category>영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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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0 Dec 2007 01:19:00 GMT</pubDate>
		<dc:creator>H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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