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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군, m양을 만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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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아주 길고 재미없는 농담</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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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Oct 2009 16:32:2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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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군, m양을 만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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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아주 길고 재미없는 농담</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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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악법도 법? 불법도 법!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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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불법은 있었지만 무효는 아니다"<br></span></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br>29일 미디어법 판결은 이 땅의 '법치' 수준을 여실히 드러냈다. '법치'의 왜곡은, '누구도 법 이외의 것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는 법의 지배원칙을 무너뜨리면서 시작되었다. '주권자도 법의 지배에 복종해야 한다'는 전제는, 전과14범의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부정되었다. '경제 외에는 묻지 말라'는 그의 호소가 도덕과 법의 기준을 가뿐히 넘어선 것이다.<br></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그로부터 법치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29일 헌재는 '법치'의 바탕에 '몰염치'의 색을 입혔다. 수단과 과정이 정당해야 목적이 정당화된다는 도덕률은 무참히 깨졌다. '악법도 법'이라는 불평은 '불법도 법'이라는 현실 앞에 초라해졌다.<br><br></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서양문화사 &lt;새벽에서 황혼까지&gt;의 저자 자크 바전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세 가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것에는 '의사들의 장사꾼화'와 '기자들의 속물화'에 '법관들의 모리배화'가 하나 더 추가된다. 조금 섬뜩하긴 해도 자크 바전이 저서에 남긴 말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소개하고 싶다.<br></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법률가는 더 이상 훌륭한 법률가와 비열한 법률가로 양분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lt;헨리 6세&gt;에 나오는 "법률가는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대사는 이제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span>" <br></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위조지폐는 맞는데,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span></span>&nbsp;<?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노회찬은 이 우스꽝스러운 작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br></span></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이어진 누리꾼들의 재치는 그 정확한 지적에 씁쓸함마저 느낀다.<br></span></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술은 먹었으나 음주운전은 안했다"는 말로 연예활동을 중단한 김상혁이 안쓰럽기까지 하다.</span></span><br><o:p></o: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대한민국 법치의 현실 역시 안타까울 뿐이다. <br><br></span><br></span><!--StartFragment--></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돈은 받았지만 당선무효는 아니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판결은 했지만 헌법과 양심에 따른 것은 아니다." - 하얀새</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4대강을 죽여도 강이 없어진 것이 아니므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 커디어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강물을 막고, 강바닥을 파지만 대운하는 아니다!" - 케이프타운</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서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친서민 정책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 빼빠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대통령이 됐지만, 대통령이 아니다." - 달팽이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낳아준 건 맞지만, 당신이 내 아빠가 아니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내가 너를 낳았지만, 나는 네 엄마가 아니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물건은 훔쳤지만, 절도죄는 아니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강제로 너의 몸은 만졌지만, 성추행은 아니다."</span>&nbsp;<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대리시험으로 서울대 합격했지만, 그 합격은 유효하다." - 폐인28호</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간첩질은 했으나, 간첩은 아니다." - 들사람 얼</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강간은 불법이나, 이미 저질렀으니 무죄다." - 루카토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한일합방은 절차상 문제가 있었지만, 무효는 아니다." - 짱구단심</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당선은 됐지만 대통령은 아니다!" </span></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span></span><br/><br/>tag : <a href="/tag/미디어법" rel="tag">미디어법</a>,&nbsp;<a href="/tag/헌법재판소" rel="tag">헌법재판소</a>,&nbsp;<a href="/tag/법치" rel="tag">법치</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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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미디어법</category>
		<category>헌법재판소</category>
		<category>법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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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Oct 2009 13:05:37 GMT</pubDate>
		<dc:creator>shur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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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디스트릭트9 _ 탐욕과 위선의 '게토' 탈출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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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img id="main_image" style="CURSOR: pointer" height="450" alt="스틸이미지" src="http://imgmovie.naver.com/mdi/mit500/0641/64129_P38_194731.jpg" width="303"><br></span></div><p class="바탕글"></span><br><!--StartFragment--></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디스트릭트9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감독_ 닐 블롬캠프 / </span><span style="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출연_ 샬토 코플리, 바네사 헤이우드</span></p><p class="바탕글">&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새로운 SF란 이런 것이다. 한계를 넘어 선다는 것은 화려한 CG로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공상에 그치던 과학영화(SF)'의 안일함을 ’현실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극복하는 과정이다. &lt;디스트릭트9&gt;을 이전의 SF영화와 다른 ‘디스트릭트’에 놓는 이유다.<br></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28년 전,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은 ‘디스트릭트9’이라는 수용소에 격리되었다. 이들의 범죄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정부는 MNU라는 외계인관리기구를 동원해 외계인을 강제 이주하기로 결정한다. 이주의 책임을 맡은 비커스(살토 코플리)는 작전 수행 중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서서히 외계인으로 변해간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기록과 극 형식을 오가며 인간과 외계인의 경계에 놓인 비커스를 쫓아간다.&nbsp;</span></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nbsp;<?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인간에게 우주는 외계 생명체의 위협을 제어하고, 그들의 능력을 갈취하는 기회의 장이다. 하지만 기회는 곧 탐욕을 불러오고, ‘공존’을 거부한 인간은 이용가치가 없는 ‘잉여세력’을 격리 시킨다. 전 세계의 탄압받는 소수민족, 무자비한 재개발 논리에 거주지에서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아픔이 격리된 외계인에게서도 나타난다.</span></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이들의 DNA를 얻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려는 탐욕은 외계인 보다 더 외계인 같은 인간을 만들었고, 그와 싸우는 외계인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비커스는 인간에서 외계인으로 변해가며 ‘희생’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다.&nbsp;</span></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인간의 몸과 과학에 대한 맹신이 산산조각 난 뒤, 외계인들이 왜 그토록 자신들의 행성으로 돌아가려 했을지 궁금해진다. 결국 ‘지구’라는 별이, 이 모든 탐욕과 위선을 격리해 놓은 우주의 ‘게토’이기 때문은 아닐까 되물어본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바탕"><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영화 우주(movie universe)에 ‘지적인’ 외계 생명체가 있음을 증명한다”는 평은 이 촉망되는 신인감독의 영민함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물론 그 곁에 제작자 피터 잭슨이 있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외계인이 뉴욕이나 워싱턴이 아닌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로 온 것 역시 매우 지적인(?) 변화다.&nbsp;</span></span><br>&nbsp;</p><div style="TEXT-ALIGN: center"><img id="main_image" style="CURSOR: pointer" height="281" alt="스틸이미지" src="http://imgmovie.naver.com/mdi/mit500/0641/64129_S11_005830.jpg" width="500">&nbsp; <br><br><br></div><br/><br/>tag : <a href="/tag/디스트릭트9" rel="tag">디스트릭트9</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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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디스트릭트9</category>

		<comments>http://shure.egloos.com/5148129#comments</comments>
		<pubDate>Wed, 21 Oct 2009 11:19:23 GMT</pubDate>
		<dc:creator>shur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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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롤러코스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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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인간의 삶을 설명하는데 '롤러코스터'만한 것도 없다. 매 순간 변화하는 감정의 진폭이 그와 같고, 끊임없는 긴장이 가져다주는 피로가 그러하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 같다가도 이내 레일과 붙은 몸통의 한계치를 절감하고 아래로 떨어지고마는 굴곡 역시 인생을 닮았다.&nbsp;똑같이 레일위를 움직이지만, 직접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 기구는 5분내에 승부를 내는 롤러코스터의 인기를 따를 수없다. 사람들은 그 속도와 긴장이 주는 짜릿함을 외면하기 힘들고, 위험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결국 자전거의 폐달을 멈추고 롤러코스터의 안전바를&nbsp;믿고 스피드와 텐션을 즐기라는 고도의 유혹인 것이다. &nbsp;<br></span><br>물론 스피드와 텐션이 필요없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롤러코스터의 기본 개념들을 확립한 롤카치는 &lt;롤러코스터의 이론&gt;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죠. "스피드도, 텐션도 없이, 그냥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던 레일을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해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레일을 환희 비춰주던..." 하지만 자본주의가 공고화되면서 코스터는 롤러코스터로 진화했고 점점 더 스피드와 텐션이 롤러코스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았습니다.<br><br>김연수 &lt;마지막 롤러코스터&gt;<br><br><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문제는 스피드와 텐션이 탑승객의 만족을 높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극도의 위해를 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다.&nbsp;잠시나마 레일을 벗어나고 싶은 '플라잉' 롤러코스터, '행잉' 롤러코스터의 등장은 더 큰 위험과, 그에 따르는 스릴을&nbsp;약속한다.&nbsp;그&nbsp;치명적인 매력을 탐하는&nbsp;순간,&nbsp;소설 속 '재인'의 심장은 멎었고&nbsp;그는 이제 더 이상의 오르내림 없는 평탄한 길을 '이승'이 아닌 어딘가에서 걷고 있을 것이다.&nbsp;재인은 '이상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상에 도달하는 것'을 원했고 안타깝게도 그가 도달한 이상(롤러코스터의 열세번째 코너인 '도살자의 갈고리')은 그가 견딜 수 없는 한계점이었다.<br><br>게임의 설계자는 '스피드와 텐션 없이 어떠한 롤러코스터도 없다'고 외친다.&nbsp;스스로에 대한 아무런 진단 없이 그&nbsp;속도와 긴장의 극점에서&nbsp;죽음을 맞이하려는 이 시대의 수많은 '재인'들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 오랜 기다림을 통해서라도 이 기구에 오르는 수밖에.<br><br><br><br></span></span></span></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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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2 Oct 2009 16:52:0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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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복제시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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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FAMILY: 돋움">"반복되는 일상 속, 아침 지하철에서의 사고 하나로 작은 뒤틀림이 일어난다. 동일성의 주인인 '그'의 직업은 대학의 복사실에서 문서를 동일하게 복사하는 일이다. 복제시대. 주인공은 남겨진 제본도서를 읽고, 제본책은 같은 표지와 색감 때문인지 내용과 분야가 각기 다름에도 모두 비슷해 보인다. 아우라의 붕괴는 필연적이다.&nbsp;<br>21세기 '그'가 20세기 부조리의 인간과 다른점은 이 단조로운 삶과 마주하여 '왜'라고 의문을 제기하거나 이 기계적인 생활을 되돌아보며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권태를 통하여 의식의 각성에 이르는 것 같지 않다. 그는 언제나 같다는 것. 그것 때문에 "낮게 한숨을 내쉬었으나 이내 언제나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거둬들였다" 그의 복사실에서는 한숨또한 복사된다." </span><br><br>&lt;동일한 점심 _ 편혜영&gt; <br><br>,<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복제 시대, 복제인간 선언을 했다. <br>"주류에서의 탈락에 대한 불안이, 20대의 어느 공간에도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 같다.<br><br><br>불안의 공유는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nbsp;가장 직접적인 것은 불안에 놓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고, 표정없는 얼굴이 소리내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지하철의 몇번째 칸에서,&nbsp;식당 아주머니가 퍼주는 밥을 통해서, 복사대 아저씨가 전해주는 제본도서 안에서.&nbsp;혹은 매일같이 주고받는 문자를 통해서도 복제된 불안은 전해진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똑같은 밥과 책을 나눠주는 식당 아주머니와 복사대 아저씨는 영양과 지식의 보급소인 동시에 이 복제된 불안의 전파 책임을 띤 첨병이라는 의심에 이른다. 그래도 바깥밥을 먹는 것 보다, 새 책을 사는 것보다 저렴하기에 이들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br><br>,<br>잠깐 건물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았더니, 예고도 없이 싸늘해진 바깥공기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 사람구경을 하러 학교를 한바퀴 돌고 조금의 온기를 얻는다. '낮게 한숨을 내쉬었으나 이내 언제나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거둬 들였다'<br><br><br><br><br></span><br><br><br><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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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hure.egloos.com/5134922#comments</comments>
		<pubDate>Wed, 07 Oct 2009 15:57:00 GMT</pubDate>
		<dc:creator>shur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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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어쨌든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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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믿을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어느쪽도 어떤 상처도 남기지 않아, 겉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고, 서로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듯한, 기막히게 완벽한, 그야말로 결백하고, 명랑한 불신의 사례들이 인간 생활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인간들이 서로 속인다는 일에 별 흥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야말로 아침부터 밤까지 '우스운 행동'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거니까요"</span><br><br><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아침에 눈늘 뜨자마자 벌떡 일어난 나는 또다시 경박하고 가식적인 '우스운 배우'로 되돌아온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목화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 입을 수도 있는 겁니다. 상처받기 전에 빨리, 이대로 헤어지고 싶다는 초조감에서 예의 '우스운 행동'으로 연막을 쳤던 겁니다" <br><br><br>"이젠 내겐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br>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br>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br>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br><br><br>&lt;인간실격_다자이 오사무&gt;<br><br>,<br><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하나, &nbsp;'우스운 행동'으로 연막치기.&nbsp;<br>둘,&nbsp; 들키지 않고,&nbsp;창의와도전과혁신과상호존중의&nbsp;가치를 지닌 '인재'로&nbsp;거듭나기,&nbsp;그런척하기.<br><br>'요조'의 인간실격은 50년이 지나서도 충실히 재현된다.&nbsp;요조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으로 세상의 허무와 맞섰다.&nbsp; 지금 이 순간이 불편한 것은&nbsp;인간의 '격'을 잃고,&nbsp;'급'을 나누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 지금의&nbsp;낮은 '급'이 높아질 수 있겠지만, 잃어버린 '격'을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다. 허무에 맞서 나를 파괴할 용기도 없다면 '우스운 행동'으로 연막을 치는 기술을 익힐 따름이다.<br><br>어떤 조건을 따르고 어떤 기회를 쫓든간에 100% 만족이&nbsp;없을 것은&nbsp;확실하다.&nbsp;'단 하나 진리인 것은_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는 것'&nbsp;<br>해봤더니 별거 없더라는 '허무'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nbsp;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하다.&nbsp;어쨌든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br><br><br><br><br></span></span><br/><br/>tag : <a href="/tag/인간실격" rel="tag">인간실격</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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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인간실격</category>

		<comments>http://shure.egloos.com/5132807#comments</comments>
		<pubDate>Mon, 05 Oct 2009 17:30:39 GMT</pubDate>
		<dc:creator>shur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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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하바나 블루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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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img id="main_image" style="CURSOR: pointer" height="450" alt="스틸이미지" src="http://imgmovie.naver.com/mdi/mit500/0486/48682_P00_121525.jpg" width="317"></div><br><br><span style="FONT-FAMILY: 바탕">'더 늦기 전에, 더 잃어버리기 전에 갈 수 있다면 행운이고 축복인 나라'<br><br>그 나라에 가면, 골목골목 뮤지션들이 노래하고, 어린 아이들과 섞여 야구를 하며, 카리브해의 블루와, 븕은 노을, 노란 흙담에 두 눈이 황홀해질 무렵, 빨간 시보레와 덜컹거리는 중형버스가 지나간 뒤의 흙먼지와 섞여 마냥 걷기만 해도 혁명에 대한 민초의 꿈과 억압된&nbsp;삶을 유화시키는 춤과 음악이 또렷한 '리얼리즘'으로&nbsp;아로새겨지는듯한,<br><br>그 나라에 가면. 그런 나라가 있을 것 같은. <br></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br><br></span><div style="TEXT-ALIGN: center"><img id="main_image" style="CURSOR: pointer" height="318" alt="스틸이미지" src="http://imgmovie.naver.com/mdi/mit500/0486/48682_S08_121532.jpg" width="500"></div><br><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r><br></span><br><br/><br/>tag : <a href="/tag/하바나블루스" rel="tag">하바나블루스</a>,&nbsp;<a href="/tag/쿠바" rel="tag">쿠바</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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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하바나블루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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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7 Sep 2009 16:22:02 GMT</pubDate>
		<dc:creator>shur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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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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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nbsp;<br></span><a name="[문서의 처음]"></a><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지위와 몸은 점점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모호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산업은 존재하지만 노동은 존재하지 않고, 노동은 존재하지만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고, 노동자는 존재하지만 자본에 대항하고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노동권은 존재하지 않는 꼴이 되어 가고 있다."</span>&nbsp; <br>_ 엄기호 &nbsp;&lt;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gt;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때마침 '한국노동연구원 소장' 이라는 이가 "대한민국 헌법에서 노동 3권을 삭제해야 한다"는 망언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모든 노동자는 비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며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의 끝을 보여주었다. 이쯤되면 노동은 '유연한' 정도가 이니라 '없는 것'이다. 결국 '노동권은 존재하지 않는 꼴'이라는 엄기호씨의 진단은 놀랍게도 적중한 꼴이 됐다.</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 <br><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신자유주의에서 노동이 자영업화되면서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질과 성과에 대해 혼자서 책임을 지게 된다. 집단으로 존재할 수 없는 노동자는 그저 자기 몸에 대한 자영업자일 뿐이다... 자기 계발을 못하고, 자신의 몸과 시간을 잘 관리하지 못한 사람은 탈락할 테고,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다. 이 때 노동자 개인은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자본가로서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는 자본가처럼 자기의 시간과 몸, 사회적 관계를 관리하고 투자해야 한다. 여가라고 알려져 있는 비노동의 시간을 노동의 시간을 위해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비난받고 도태되어야 한다. 여가는 생산 자본으로 전화 가능한 문화자본, 사회자본을 축적하는 시간이지, 놀고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이제 노동자는 노동 현장에서 자본가처럼 행세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역설에 갇혀 산다."</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 </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노동자는 '자본가'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교과서에 나오듯 토지나 기계와 같은 '생산요소'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1인 자본가'로 진화 혹은 위장하는 것이다. 유일한 유형자본인 몸을 가꾸는 행위 자체가 '나'를 팔기 위한 똑똑한&nbsp; 세일즈 과정이다. 이들은 매력적인 육체를 위해 점심시간을 쪼개 운동을 하고, 부족함 없는 지적 능력을 보이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자기개발에 매진한다. 이 매력적인 1인 사업자들이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 요구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우리는 '노동연구소장'이라는 사람이&nbsp;노동권을 짓밟고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코미디를 보는 것이다.&nbsp;&nbsp;&nbsp; </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지그문트 바우만의 &lt;유동하는 공포&gt;는 우리시대가 어떻게 공포에 지배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시대는 매주 한 명의 참가자를 떨어뜨리는 리얼리티 쇼와 같다. "남에게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남을 추방해야하는"게임이다. 마지막 한 명만 남기 전에는 빼도 빼도 정원 초과이다. 이 게임의 법칙은 필연적으로 승자 독식을 낳는다. 바우만은 우리를 지배하는 공포에 세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신체와 재산을 위협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질서의 지속 가능성과 안정성에 대한 위협', 그리고 무엇보도 무서운 것은 '자연적이지도 인위적이지도 않지만, 아직 이름도 없이 여기 저기를 유동하며 나날이 그 숫자가 증식되고 있는 우리시대의 위험과 공포'다"</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유동하는 공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할까.&nbsp; 무서운 것은 '자본가'로 진화했던, 하지 못했던간에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염병같이 찾아들어 '실업률 8%, 청년실업 100만' 과 같은 또렷한 치사율을 남기기도 한다.&nbsp; 공포의 정도가 클수록 리얼리티 쇼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인의 발버둥은 거세진다. </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결국 화려한 스펙간판을 달고 세일즈에 나선 이 땅의 청년 자본가들과, 지난 여름 팔토시를 지겹도록 팔아대던 지하철 상인 사이에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nbsp;<br></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br><br></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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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2 Sep 2009 19:01:4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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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킬러들의 도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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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br><div style="TEXT-ALIGN: center"><img id="main_image" style="CURSOR: pointer" height="450" alt="스틸이미지" src="http://imgmovie.naver.com/mdi/mit500/0666/F6637-02.jpg" width="303"><br></div><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마틴 맥도나, 2008</span><br><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원칙은 지켜져야 한다.&nbsp;인간의 죄의식이 발하는 점은 여기부터다. 킬러라는 직업은 그러한 원칙과 죄의식의 대립한다는 점에서 모순을 지닌다.&nbsp;대신 또 다른 원칙을 만들어낸다.&nbsp;'사람은 죽이되, 의뢰받지 않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 특히 어린 아이는&nbsp;더더욱'. 원칙이 깨질 경우&nbsp;그에 대한 벌이 가해진다는 것은&nbsp;또 하나의&nbsp;원칙이다.&nbsp;첫번째 임무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만 레이(콜린 파렐)와 그의&nbsp;파트너 켄(브랜단 글리슨)은 보스의 지시로 벨기에의 작은 관광도시 브리주를 찾는다. 중세의 멋을 간직한&nbsp;브리주에 반한 켄과 달리, 레이에게 이 곳은&nbsp;술과 여자를 즐길 수 없는&nbsp;'시궁창같은&nbsp;도시'일 뿐이다.&nbsp;<br><br>도시를 감싸는 멋진 운하와 다리, 중세 건축과 회화,&nbsp;성경의 흔적까지, 두 사람이 스치는&nbsp;브리주의 공간은 '킬러'로서 살아온 과거에 대한 반성(켄)과 아이를 죽였다는 죄의식을 일깨우는(레이) 도구가 된다.&nbsp;'브리주'가 타이틀로 쓰인 것은 이처럼 공간 하나하나가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nbsp;'예수의 피'가 담긴 전리품, 죄 많은 인간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는 것을 묘사하는 그림, 종탑 높은 곳에서 보여지는 낙하의 이미지, 마을을 휘감는 운하에서 찾는 운명론적 흐름까지. 결국 두 사람이 이 도시를 찾음으로서 모든 죄의식과 구원의 싹은 돋기 시작한다.&nbsp;이 압박에 못이겨 스스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레이와, 보스의 지시로 그를 죽여하 하는 켄의 총구가 마주하는 순간, 가혹한 심판 이전에 또 한번의 기회는 주어져야 하지 않느냐고 우리는 묻게 된다.&nbsp;&nbsp;&nbsp;<br><br>뚱뚱한 미국인 관광객과 까탈스러운 캐나다인 부부,&nbsp;난쟁이 영화배우와&nbsp;암스테르담에서 온 창녀까지. 거침 입담을 뿜어대는 레이의 대사는 위험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그 자신도 런던을 좋아하는 '아일랜드' 촌놈일 뿐이다. '6~7년 쯤 숨어 있으라는 레이의 말에 '내가 죽인 아이보다 더 많은 세월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 고 울먹일 때는 인간이 '선'과 '악' 어디에 그 근원을 두는 것인지 헷갈리게 한다. <br><br>도시를&nbsp;덮은 중세의 무거운 기운은 두 킬러의 아이러니와 맞물려&nbsp;낯선 분위기를 만들어낸다.&nbsp;'눈꽃'이 휘날리는 작은 광장, 난쟁이의 영화촬영이 한참인 가운데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두 남자가 뛰쳐들어오고, 하늘은 결국 또 하나의 희생과,&nbsp;가혹한 심판으로 그 '원칙'을 지켜낸다. </span><br></span><a onclick="javascript:slidewopen('movie',66637,2)" href="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nhn?code=66637#"></a><br><br><br><br><br><div style="TEXT-ALIGN: center"><img id="main_image" style="WIDTH: 415px; CURSOR: pointer; HEIGHT: 270px" height="322" alt="스틸이미지" src="http://imgmovie.naver.com/mdi/mit500/0666/F6637-18.jpg" width="500"><br><br></div><br/><br/>tag : <a href="/tag/마틴맥도나" rel="tag">마틴맥도나</a>,&nbsp;<a href="/tag/콜린파렐" rel="tag">콜린파렐</a>,&nbsp;<a href="/tag/브리주" rel="tag">브리주</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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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마틴맥도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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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2 Sep 2009 16:50:5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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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애자, 좀 더 무거웠더라면 좋았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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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img id="main_image" style="CURSOR: pointer" height="450" alt="스틸이미지" src="http://imgmovie.naver.com/mdi/mit500/0514/51407_P00_124309.jpg" width="314"></div><br><br>&nbsp;<a name="[문서의 처음]"></a><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한 때 ‘부산의 톨스토이’로 이름을 날렸던 애자(최강희)의 현실은 막막하다. ‘빤스 한 장 사준 적 없는’ 소설 따위를 쓰겠다고 서울을 전전하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가슴도 먹먹하다. 그래도 깽 값 물어주기 위해 한 걸음에 서울로 달려오는 건 엄마뿐이고, 죽음을 앞둔 영희(김영애)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것은 딸 밖에 없다. 엄마와 딸의 남자들은 그녀들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이거나, 허구한 날 딴 여자를 찾으며 속이나 썩히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br><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엄마와 딸은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발견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단점을 지닌 상대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징그러울 만치 빼다 박은 서로를 향해 욕도 하고 화도 내지만, 이는 곧 각자에게 돌아와 박히는 쓰라린 생채기다. 두 사람이 함께한 30년의 세월이, 어렵게 확인한 그들의 사랑이 이를 치유할 뿐이다.</span> <br></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삐딱하고 코믹한 10대의 애자부터 엄마의 마음을 알아가는 스물아홉의 애자까지, 배우 최강희는 대중이 소비하는 ‘4차원’ 이상의 깊이가 있음을 증명했다. 신파로 흐르기 쉬운 이야기를 무리 없이 연출한 신인 감독의 능력 또한 주목할 만하다. 다만 초반의 코믹을 걷어내고 좀 더 건조하게 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진지하면 외면 받고 가벼워야 사랑받는’ 이 땅의 흥행공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nbsp; <br><br>,<br>Springtime 엔 이렇게 줬지만.<br><br>이런 이야기라면 좀 더 진지하고 무거웠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결국 '작가'는 사라지고 예쁘고 그럴듯하게 뽑아내는 '기술자'만 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nbsp;&nbsp;능력있는 신인 감독들 역시(과속스캔들, 미녀는괴로워(국가대표 김용화),킹콩을 들다) 상업영화 시장에&nbsp;발딛기 위한 관객맞춤&nbsp;영화를 만드는데 급급할 뿐이다.&nbsp;보고 난 뒤 후회는 없어도, 안 봐도 무방한 영화들만 양산되고 있다. <br>박찬욱, 봉준호 같은 브랜드파워가 없는 이상, 그 이름만으로 색깔이 느껴지는 감독들이 영화를 찍기는&nbsp;갈수록 힘들어지고있다.&nbsp;<br>&nbsp;<br><br></p><div style="TEXT-ALIGN: center"><img id="main_image" style="CURSOR: pointer" height="332" alt="스틸이미지" src="http://imgmovie.naver.com/mdi/mit500/0514/51407_S56_124401.jpg" width="500"><br></div><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br><br></span></p><br/><br/>tag : <a href="/tag/애자" rel="tag">애자</a>,&nbsp;<a href="/tag/최강희" rel="tag">최강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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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애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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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4 Sep 2009 16:23:5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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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8학기, 피라미드 만들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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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FONT-FAMILY: 돋움"><br><br>피라미드&nbsp;:&nbsp;'허무'로 가득한 사막 위, 하나의 점을 찍는 것. <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정형화된 것 없는 사막 위, 안도할 수 있는 거점을 찍는 것<br><br></span>,<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피라미드는 '죽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삶의 불안'을 달래는 역할을 한다. 두터운 구름을 뚫고 나온 빛내림에 대한 형상화와 무른 모래 위에 견고히 솟은 고대 건축의&nbsp;단순미는 곧&nbsp;'불안'을 이기고자 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염원이 표출된 결과인 것이다. <br><br>"인간의 미의식은 전혀 진화하지 않았다"는 말은 옳다. 뿐만 아니라&nbsp;'인간의 불안' 역시 진화 혹은 퇴보함 없이 그대로 전해졌다. 막막한 사막 위,&nbsp;사각뿔 모양의 점 하나로&nbsp;삶과 죽음, 하늘과 땅,&nbsp;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넘나들던 이집트인의 불안은, 현대에 이르러 조금 더 복잡하고 예민하게 재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한 것인지도 모른다.&nbsp;다만 노동의 '연대'로 피라미드를 지어 안도의 거점을 지었던&nbsp;고대인과 달리,&nbsp;홀로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현대인의 처지가 조금 더 안쓰러울 뿐이다. 더욱 복잡해진 불안과 더욱 외로워진 인간.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신자유주의 명제는 이 점에서&nbsp;빛을 발한다.&nbsp;평생에 걸쳐 각자의 피라미드를&nbsp;짓고, 불안을&nbsp;외면한 채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 허무를 지우고자 했으나 다시 허무로 빠져드는 인생의&nbsp;아이러니는 오히려 '퇴보'의 느낌마저 준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br><br>,<br>학교 곳곳에 현대인의 거점 피라미드 '기업'들의 채용설명회가 들어찼다. 아침이면 5,6개의 문자가 쏟아져 들어온다. 얼른 목숨을 맡길 피라미드를 찾아가라는 것.&nbsp; '그냥 이대로 주저 앉아 사막위에 나앉을 것인가'&nbsp; 긴급구조 문자마냥 다급한 목소리다. 수십개의 기업들이 자신의 피라미드가 얼마나 멋진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br><br>정해진 것 하나 없는 '불안'의 8학기다.&nbsp;여기저기서 스치는&nbsp;반가운 얼굴이 그나마의 오아시스다.&nbsp; 9월, 사막은 뜨겁다.&nbsp;&nbsp;<br><br><br><br><br></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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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hure.egloos.com/5107393#comments</comments>
		<pubDate>Tue, 08 Sep 2009 18:07:59 GMT</pubDate>
		<dc:creator>shur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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