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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tatus qu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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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사회주의에 죽음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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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Nov 2009 14:12:1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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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tatus qu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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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사회주의에 죽음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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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오공감을 보면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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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000000">&nbsp;(앞부분은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어 자삭)<br><br>&nbsp;......&nbsp;이글루스 유저들의 수준이 얼마나 저질스러운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모두들 잘난체 하기에 바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알맹이 있는 글을 올리는 블로거는 손에 꼽을 정도고 나머지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다. 솔직히 시사분야 네임드 중 상당수가 단순히 이명박을 잘 깐다는 이유로 각광받는 것이 사실이다.&nbsp;나야 적적하고 하니 소일거리로 이글루스를 하기는 하지만, 하면 할수록 환멸이 느껴진다. 이런 쓰레기장 같은 사이트에서 네임드가 되는 것 자체가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100대 블로거나 덧글 그딴거 다 필요없으니까 앞으로도 허접스레기같은 중생들이 몰려와 내 블로그를 더럽히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몇몇 분들께 드리는 말씀인데&nbsp;소위 진보를 표방하시는 분들께서 이 궁벽한 블로그까지 찾아와서&nbsp;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수꼴이었던 나를 개종시키려는 삽질 좀 안했으면 좋겠다. 피차 피곤하다. 이게 뭐 땅끝까지 전도하려는 개신교도 아니고 말이지.</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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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가벼운 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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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Nov 2009 13:58:48 GMT</pubDate>
		<dc:creator>resk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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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해할 수 없는 분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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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000000">&nbsp; 흔히들 건국 이후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아 민족 정기와 사회 정의가 바로세워지지 못했다고들 말한다. 사회 정의가 흐려졌다는 부분은 나도 일면 동감한다. 여운형이나 이광수와 같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악질적인 친일파가 처벌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히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일이다. <strong>그렇지만 민족 정기가 바로세워지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민족 정기가 무엇인가?</strong><br><br>&nbsp;하도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지만 민족 정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내려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물론 사전을 찾아보면 분명 민족 정기라는 항목이 존재한다.&nbsp;<br><br>&nbsp;다음은 네이버 국어사전의 검색 결과이다.<br></span><div class="tit"><span class="b"><br><span style="COLOR: #000000">&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22/12/f0039512_4b093cd5e979b.jpg" width="398" height="21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22/12/f0039512_4b093cd5e979b.jpg');" /></div>&nbsp;<br>&nbsp;그런데 이러한 정의는 사실상&nbsp;아무런 의미도 없는 정의라고 생각한다.&nbsp;같은 사전에서 '얼'이라는 단어를&nbsp;찾아보니 정신의 줏대라고 한다.&nbsp;그렇지만 생각해보면 <strong>정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선&nbsp;자아가 존재해야 하는데, 과연 민족이라는 무생물에 자아가 존재할까?</strong> 두 번째 정의가 말하는 '한 민족의 공통 의지'라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strong>민족을 구성하는 숱하게 많은 구성원들 사이에 과연 공통 의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strong> <br><br>&nbsp;이렇게 부실한 정의가 갖는 문제점은 <strong>특정 세력에 의해 아전인수격으로 악용될 소지</strong>가 높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20세기 중반부 이후의 한국 역사의 비극은 상당부분 민족 정기라는 이름을 참칭한 세력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박정희 독재정권, 북한, 주체사상을 내세운 한국의 극좌세력... 이러한 부도덕한 세력들은 스스로의 정치적 목적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민족 정기라는 개념을 끌어 들였다. 심지어는 그러한 거짓말에 스스로도 중독된 나머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조차 불분명하게 될 지경이었다.&nbsp;<br><br>&nbsp;정치 과정에 지나치게 집작하는 세력, 특히 <strong>좌익이나 진보 세력일수록 특정한 용어나 개념에 지나치게 넓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strong> 가령 이전에도 했던 이야기이지만 정치적 스탠스가 좌익에 가까워 질수록 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개념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는 좋게 말해 용어사용의 엄밀성이 결여된 것이고, 나쁘게 말해&nbsp;아전인수식의 용어사용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려는 것이다. 정치가들이야 원래 직업이 선동이니 그렇다 쳐도 학계의 지식인들조차 이러한 경향에 젖어들어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현상이다.</span> </span></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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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무거운 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reske.egloos.com/1577365#comments</comments>
		<pubDate>Sun, 22 Nov 2009 13:40:39 GMT</pubDate>
		<dc:creator>resk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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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진짜 민주주의 (수정)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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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COLOR: #000000">&nbsp;<br><embed src="http://www.youtube.com/v/n2_xubUCs5s&amp;hl=ko_KR&amp;fs=1&amp;"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br></embed><br><span style="COLOR: #000000">&nbsp;본문과 전혀 무관한 뮤직비디오. 추억속 CBMass의 대표곡 "진짜" -허세쩔어.. 손발 오글오글<br><br>&nbsp;어린시절 정말 이해가 안&nbsp;되는 일들이 몇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공산주의자들이 스스로의 정권을 민주주의 정권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nbsp;오늘 점심으로 맥도날드를&nbsp;먹을지 KFC를 먹을지도 선택할 수 없는&nbsp;나라가 무슨 낯짝으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내거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른 하나는 헌법에 적힌 '경제의 민주화'라는 단어였다. 민주주의는 분명 정치제도인데 경제의 민주화란 도대체&nbsp;무슨 뜻이란 말인가. <br>&nbsp;<br></span></span><table width="650"><p style="FONT-SIZE: 14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left"><span style="COLOR: #000000"></span><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left"><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left">제119조&nbsp;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span> </span></span><p><span style="COLOR: #000000"></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t; TEXT-ALIGN: left"><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COLOR: #000000">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strong>민주화</strong>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span></span></span></p><p><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COLOR: #000000"></span></span></p><p><span style="COLOR: #000000"></span></p><tbody><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COLOR: #000000"></span></span></tbody></p></table><br><span style="COLOR: #000000">&nbsp;이러한 역설아닌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단순히 정치 제도가 아닌 결과의 양태를 지시하는 데에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해 행정부 수반과 대의원들을 선출하며 삼권이 분립해 있으며 이러한 정치구조가 헌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하지만 <strong>결과의 양태로서의 민주주의는 중산층 이하로의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의 전면적 재분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듯하다.&nbsp;</strong><br><br>&nbsp;우선 공산주의자들이 민주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생각해보자. 공산주의의 선구자인 마르크스에 따르면 민주주의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있다고 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가의 노동계급 착취를 은폐하는&nbsp;기만적 정치체제라고 한다. 반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노동자의 독재체제로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목표로 한다고 한다. 공산주의의 관점에서는 양자 중에서 전자는 가짜 민주주의이고 후자만이 진짜 민주주의이다. <strong>한마디로 민주냐 비민주냐를 구분짓는 것은 생산수단의 국유화에 있는 것이다.</strong> 그렇다면 김정일이나 차베스가 자국을 민주국가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쨌건 두 나라의 생산수단은 전적으로 혹은 상당 부분이 국유화되었으니 말이다. <br><br>&nbsp;경제의 민주화도 유사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헌법의 전문을 싣지는 못하지만 경제의 민주화라는 어구가 쓰인 전후 맥락을 생각해 보면 이 단어는 <strong>국가 개입을 통한 강제적 부의 재분배</strong>를 의미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어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민주라는 단어가 부의 재분배라는 결과의 양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br><br>&nbsp;이 자리를 빌어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타락을 개탄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만 용법에 따라 민주주의는 상당히 다양한 의미를 전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strong>진보세력으로 올 수록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듯 싶다.</strong> </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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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무거운 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reske.egloos.com/1574149#comments</comments>
		<pubDate>Wed, 18 Nov 2009 08:39:04 GMT</pubDate>
		<dc:creator>resk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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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엘리트주의의 필요성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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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title="" href="http://reske.egloos.com/1573434">체인지-대중민주주의에 바치는 찬가</a>&nbsp;에서 셀프 트랙백<br><br>&nbsp;<span style="COLOR: #000000">앞선 글에서 드라마 감상에 치우치다보니 엘리트주의의 필요성에 대한 고찰이 다소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론 겸으로 포스팅을 쓰기로 한다.&nbsp;<br><br>&nbsp;우선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엘리트의 범위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내가 말하는 엘리트란 <strong>정책 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이를 처리할 판단능력을&nbsp;가진 전문가</strong>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해당분야의 정책을 추진하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다수의 선출직 공무원, 해당분야를 관장하는 행정부처의 관료, 해당분야 민간기업 직원, 관련분야 학계 종사자와 같은 부류가 이러한 엘리트에 속한다.<br><br>&nbsp;이러한 엘리트가 정치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br><br><span style="FONT-SIZE: 130%">&nbsp;<span style="FONT-SIZE: 100%"><strong>1. 합리적 판단을 위한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다</strong></span></span><br><br>&nbsp;스티글리츠의 말대로 합리적 판단을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신문이나 TV로 접한 단편적인 지식 정도밖에 없는 일반인에 비해 해당분야의 엘리트는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물론 엘리트가 가진 정보도 편향되었거나 불충분할 수도 있지만, 전문적 지식이 일천한 일반인에 비해서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br><br>&nbsp;<span style="FONT-SIZE: 100%"><strong>2. 합리적 판단을 위한 판단능력이 뛰어나다</strong></span><br><br>&nbsp;합리적 판단을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요인은 판단능력이다. 물론 판단능력이란 다소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개념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취합한 정보를 토대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능력도 분명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하다. 이러한 판단능력은 천부적인 재능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꾸준한 훈련을 통해 얻어진다. <strong>엘리트는 해당 분야에 종사하며 유사한 형태의 문제를 오랫동안 해결해 왔고, 그 결과 일반인에 비해 우수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strong> <br><br><span style="FONT-SIZE: 100%"><strong>&nbsp;3. 시간적 여유</strong></span><br><br>&nbsp;<strong>엘리트의 경우 자신이 가용한 시간의 상당부분을 문제가 되는 안건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strong> 이는 생업에 바빠 사회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기에 힘든 일반인과 큰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의사결정에 대해 얼마나 숙고하느냐가 얼마나 합리적인 판단인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엘리트가 일반인에 비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정치적 피로현상도 생각해봐야 한다. 직접민주주의가 강화되어 유권자 개개인이 직접 결정해야할 일이 는다면, 유권자 입장에서도 대단히 피곤한 일이 될 것이다. 최근 지방자치체의 확대로 인하여 선거는 늘어나지만 참여도는 날이 갈수록 저조해지는 점을 보면 직접민주주의화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해볼 수 있다. <br><br>&nbsp;물론 내가 파시즘과 같이 소수의 엘리트가 국정운영을 독점해야 한다는 과두정치론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사결정의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엘리트가 일반인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있으며, 따라서 합리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이러한 엘리트의 인적 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span><a title="" href="http://reske.egloos.com/1573434"><span style="COLOR: #000000">체인지-대중민주주의에 바치는 찬가</span></a><span style="COLOR: #000000">&nbsp;에서도 말했듯, <strong>현대 민주주의 운영의 묘는 엘리트주의와 대중민주주의 사이의 줄타기</strong>라고 볼 수 있다.</span>			 ]]> 
		</description>
		<category>무거운 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reske.egloos.com/1573993#comments</comments>
		<pubDate>Wed, 18 Nov 2009 04:10:09 GMT</pubDate>
		<dc:creator>reske</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덧글관련 공지 ]]> </title>
		<link>http://reske.egloos.com/157344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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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000000">&nbsp;요 근래 저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분들도 종종 제 블로그에 들러 주셔서 의견을 피력해 주시는데요, 일단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의 다소 과격한 주장을 인내심있게 들어 주셔서 말입니다.&nbsp;<br><br>&nbsp;하지만 앞으로는 의견차이가 너무 커서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덧글에 대해서는 답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더불어 다분히 감정적 태도로 '열폭'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도 답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br><br>&nbsp;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제가 반대의견이 겁이 나거나 듣기가 싫어서 그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차피 의견을 교환해 봐야 평행선을 달릴 거라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구태여 시간을 들여 서로를 설득하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댁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nbsp;<br><br>&nbsp;앞으로는 제가 덧글에 답글을 달지 않더라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시진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설득되지 않을 거라는 점을 알면서도 부득부득 저의 잘못을 지적하려고 공연히 노력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차피 즐기려고 하는 인터넷, 당신들에 따르는 개종자 하나 늘리는 것이 무에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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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reske.egloos.com/1573446#comments</comments>
		<pubDate>Tue, 17 Nov 2009 09:50:51 GMT</pubDate>
		<dc:creator>reske</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체인지-대중민주주의에 바치는 찬가 ]]> </title>
		<link>http://reske.egloos.com/157343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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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COLOR: #000000">&nbsp;올 들어 내가 제일 인상깊게 본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한&nbsp;일본 드라마&nbsp;Change를 들겠다.&nbsp;<br><br>&nbsp;체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보고싶은 분들은 이 문단을 스킵하길 바란다. 정우당(일본 자민당의 패러디) 중의원 아사쿠라 마코토와 그의 맏아들이 베트남에서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이에&nbsp;정우당의 막후 실세 칸바야시 의원은&nbsp;아사쿠라 마코토의 둘째 아들이자, 정치가 싫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던 아사쿠라 케이타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선거에 내보내 어렵사리 당선시킨다. 그런데 아사쿠라가 의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총리가 섹스스캔들로 급작스럽게 낙마하게 되고 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친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칸바야시는 당내 파벌과 합의하에 아사쿠라를 얼굴마담 총리로 내세워 지지율을 끌어올려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 대비하려 한다. 그러나 순순히 당내 보스들에 순종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아사쿠라 총리가 차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를 개시한다. 이런 아사쿠라에 위협을 느낀 칸바야시 의원은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아사쿠라 총리를 위기로 몰아넣고 결국 사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고간다. 그러나 아사쿠라 총리는 사임과 동시에 중의원 해산을 선포하며 도리어&nbsp;칸바야시 의원에게 통렬한 정치적 타격을 입힌다.&nbsp;<br><br>&nbsp;겉으로만 살펴보면 이 드라마는 국민과 유리된 자민당 장기집권에 대한 유쾌한 풍자로 읽힐 수도 있다. 물론 그도 충분히 의미있는 해석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히려 <strong>이 드라마가 진정으로 말하려 했던 부분은 "국민과 같은 눈높이로" 이뤄지는 정치, 그러니까 대중민주주의에 대한 소망이 아닐까 싶다.</strong>&nbsp;국민의&nbsp;욕구와 유리된 정치가들만의 정치를 하기보다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nbsp;드라마속 아사쿠라 총리는 이러한 대중민주주의에 격렬히 저항하는 구정치인들과 맞서 싸우고 있지만&nbsp;정권의 포퓰리즘 성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나로서는 오히려 극중 아사쿠라 총리가 내세우는&nbsp;대중적 정치가 오히려 민주주의의 정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br><br>&nbsp;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세금을 더 걷느냐, 덜 걷느냐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지만, 세금을 더 쓰자는 점에 있어서는 의견의 차이가 없다.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심지어는 진보신당이나 민노당 마저도 얼마나 더 많은 재정을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혹자는 특히 신자유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정권의 포퓰리즘 성향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그렇지만 그러한 비판은 이론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정치의 현실을 감안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strong>대중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 나라의 미래를 위해 대중의 미움을 받을 정책을 밀어붙이거나, 대중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철회하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가</strong> 말이다.&nbsp;<br><br>&nbsp;어쩌면 '국민에게 <strike>오르가즘</strike>을 주는 정치'(...응?) 는 광의에서 포퓰리즘과 동의어인지도 모를 일이다.&nbsp;<br><br>&nbsp;그러나 과연 이걸로 끝인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으로 정치인의 책무는 끝나는 것인가. 적어도 교과서적으로는 헌법상으로는 그런지도 모른다.<strong> 하지만 나는&nbsp;국정을 이끌어 나가는 엘리트로서의 역할도 엄연히&nbsp;정치인의 책무이며&nbsp;이는 절대로 포기되어선 안 된다고 본다.</strong> 민의에 기꺼이 귀기울이려는 정치인도 필요하겠지만, 동시에 유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배짱있는 정치인도 필요하다. 그리고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와 같이 국정을 총괄하는 위치에 선 정치인은 평소에는 민의에 귀를 기울일지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순간에는 때로 민의와 배치되는 결단도 과감히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다소 위험한 발언인지는 몰라도 국민들의 잘못된 판단을 설득하는 것도 정치인의 중요한 책무가 아닐까 싶다.&nbsp;<br><br>&nbsp;사실 민주주의라는 제도 아래에 자리잡은 가장 첨예한 긴장은 대중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 사이의 대립이 아닐까 싶다. 분명 민주국가는 국민주권을 기반으로 하며 정치인들은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동시에 변덕스럽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민심을 무조건 따르는 것도 국정운영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닥 현명하지는 않다. 결국 민주주의의 수준은 이러한 양자의 긴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있다. <strong>국민들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이 주인이라고 느끼게끔 하면서도 동시에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해야 하는 것, 이것은 민주국가의 정치가들만이 가진 독특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nbsp;</strong><br><br>&nbsp;한줄요약<br>&nbsp;정치인은 국정을 운영하는 엘리트로서의 역할과 민의를 반영하는 공복의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br><br><span style="COLOR: #000000">&nbsp;p.s. 기무라 타쿠야 연기 진짜 잘한다. 표정연기가 아주그냥...</span></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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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무거운 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reske.egloos.com/1573434#comments</comments>
		<pubDate>Tue, 17 Nov 2009 09:35:16 GMT</pubDate>
		<dc:creator>resk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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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복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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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000000">&nbsp;근데 시험은 안습.<br><br>&nbsp;작년에 비해 원점수 기준으로 50점 이상 끌어올렸으나.... (작년에 얼마나 못봤길래!) 으음... 그래봤자... 젠장.. !! Damn!!<br><br>&nbsp;언어나 수리는&nbsp;그럭저럭 만족이지만, 외국어가 듣기부터 털리는 바람에 생각외로 실점이 컸다.&nbsp;개인적인 소견을 말하자면 이번 9월 모의고사와 난이도는 비슷했는데, 과목별로 조금씩 어렵거나 쉽거나 했음.&nbsp;<br><br>&nbsp;복귀는 했지만서도 앞으로 블로깅은 더욱 게을리 하도록 노렸하겠음.</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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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Nov 2009 12:26:55 GMT</pubDate>
		<dc:creator>resk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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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개인사정으로 블로그 중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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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오늘부터 다음달 12일까지 블로그 중단합니다.&nbsp;<br><br>&nbsp;이렇게라도 해놔야 스스로가 쪽팔려서라도 바쁠때 블로그 붙잡고 시간낭비 안한다.&nbsp;<br><br>&nbsp;덧. 덧글놀이 하기도 뭐해서 최근글은 걍 덧글 막아버리기로 했습니다. 양해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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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reske.egloos.com/1559782#comments</comments>
		<pubDate>Sat, 31 Oct 2009 09:32:11 GMT</pubDate>
		<dc:creator>resk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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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맞아죽을 각오하고 쓴)이글루스의 비생산성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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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title="" href="http://atmel.egloos.com/5156419">글고보니 이글루는...</a>&nbsp;에서 트랙백...<br><br><span style="COLOR: #000000">&nbsp;</span><span style="COLOR: #000000">내가 이글루스를 볼 때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 이글루스 헤비유저(혹은 네임드)의 소비벽이다. 이 사람들에게 소비는 단순히 스스로의 필요를 해결하고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strong>광적인 집착</strong>에 가깝다.&nbsp;맛집이건, 음반, 전자기기건 간에 특정 분야의 상품을 몽땅 다 써보고, 그 분야의 준 전문가가 되는 것이 이글루스 유저들의 목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br><br>&nbsp;<strong>이들에게는 자신이 구매하지 못한 상품, 사용하지 못한 상품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크나큰 치욕으로 느껴지나보다.</strong> 솔직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일반인으로선 거의 분간하기도 힘들 정도의 성능차이, 수준차이를 논하면서 극도로 세밀한 스펙에까지 집착하는 것에는&nbsp;위화감마저 느껴진다.<br><br>&nbsp;물론 소비가 죄악이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더 좋은 물건을 사려는 욕망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글루스 유저들의 연령이 평균적으로 2~30대라는 점, 즉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생활하거나 혹은 사회에 진출한지 얼마 안 되어 박봉에 살림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strong>흥청망청 돈을 써대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strong> 하는 생각이 든다.&nbsp;<br><br>&nbsp;어쨌거나 사회가 풍족해지면 사치풍조가 나타나는 것이 동서고금의 공통된 현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행태가 그닥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부분은 <strong>이글루스 유저들의 비생산성이다.</strong> 도무지 이글루스 포스팅을 보다보면&nbsp;영양가 있는&nbsp;이야기를 듣기란, 민노당이 이명박 칭찬하는 것 듣기보다 더 어려울 지경이다. <br><br>&nbsp;돈을 쓰는 건 좋은데, 동시에 돈을 벌 궁리도 해야 하는게 아닐까? 사실 돈을 버는 것이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돈을 버는 쪽에 관심이 더 가야 정상이다. 소비는 딱히 관심을 갖지 않아도 "어떻게든 되는" 부분이니까.. 그런데 이글루스는 정 반대다. <strong>재테크, 금융, 개인 재정관리에 관한 글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다.</strong> 심지어는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strong>공부나 진학, 유학에 관련된 글조차 찾아보기 어렵다.</strong> 오직 이글루스를 뒤덮는 글은 "제품사용후기" "이명박 까기" 이런 부류의 비생산적인 글들 뿐이다.&nbsp;<br><br>&nbsp;(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글루스 시사 블로거들의 대부분은 현 정권은 비판하는 데는&nbsp;익숙하지만, 대안 제시나 정권 재창출이라는 생산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짝이 없다. 기껏해야 끌어온다는 대안이 사회당, 민노당 류의&nbsp;이미 외국에서 막장인증을 실컷 한&nbsp;정책들 뿐이니... 이러니 인터넷 세력이 기성 정치를 바꾸질 못하는 것이다.)<br><br>&nbsp;일본의 정치경제 애널리스트인 후지이 겐키는 소비에 집착하며 그로부터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자는 하류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nbsp;상류층일수록 맛집 탐방보다는 요리에 관심이 많고, 명품보다는 제품의 실속을 따진다고 한다. 물론 이는 지나친 일반화의 가능성이 있어 힘주어 말하기엔 부담스러운 내용이긴 하지만, 어쨌건 이글루스 유저들이 <strong>하류층의 향기</strong>를 은은히 발산하는 것만은 사실인 듯싶다. <br><br>&nbsp;어쨌거나 나부터 내년부터는 이런 비생산적인 블로깅도 줄이고, 포스팅을 하더라도&nbsp;생산적인 방향으로 바꿔나가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도 이러한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으니..</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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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가벼운 이야기</category>

		<comments>http://reske.egloos.com/1559525#comments</comments>
		<pubDate>Sat, 31 Oct 2009 03:05:51 GMT</pubDate>
		<dc:creator>resk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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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가면 ]]> </title>
		<link>http://reske.egloos.com/155899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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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div>&nbsp;<embed src="http://www.youtube.com/v/fw1WqQXGNJk&amp;hl=ko&amp;fs=1&amp;"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div style="TEXT-ALIGN: center"></div><br>&nbsp;보통 인디신 하면 크라잉넛, 자우림,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 정도를 떠올린다. 물론 나도 방대한 우리나라의 모던록을 다 섭렵한 것이 아니라 단정지어 말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들어본 범위 내에선 락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수준있는 노래를 들려주는 밴드는 델리스파이스가 아닐까 싶다.&nbsp;<br><br>&nbsp;전자장비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빠르고&nbsp;경쾌한 기타-베이스-드럼이라는 락의 기본에 충실하다는 점, 대중음악의 작위적인 가사들과 달리 어둡지만 동시에 솔직한 가사는 정말 매력적이다. <br><br>&nbsp;델리스파이스의 1집 하면 보통은 차우차우를 꼽는데, 사실은 오늘 내가 올린 '가면'이 타이틀 곡이다. 물론 차우차우의 음악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면'도 No Carrier와 더불어 상당한 명곡이다. 곡 전반에 걸쳐 기타, 키보드, 베이스가 어우려져서 경쾌하면서도 매력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리고 김민규 본인의 말대로 '삐딱선을 타는' 가사도 괜찮다. <br><br>&nbsp;인디신의 창의적인 음악을 좋아하고, 브릿팝을 위시한 락에 익숙하다면 델리스파이스는 꼭 들어봐야 한다. <br><br>&nbsp;p.s. 그렇지만 '가면'의 뮤직비디오는 정말 델리의 흑역사라 할 만하다. 저 조잡한 연출이란... 으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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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reske.egloos.com/1558992#comments</comments>
		<pubDate>Fri, 30 Oct 2009 12:23:08 GMT</pubDate>
		<dc:creator>resk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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