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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병 PYREXI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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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최근의 테제는 &lt;프로젝트 출판모독&gt;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22 Oct 2009 07:20:0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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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병 PYREXI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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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최근의 테제는 &lt;프로젝트 출판모독&gt;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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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찬바람이 분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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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내가 이런 건&nbsp;찬바람이&nbsp;불어오기 때문만은 아니다.&nbsp;<br>확실한 건&nbsp;예상보다 빨리 찬바람이&nbsp;불어오듯이,&nbsp;우울함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깊게 나를 도려낸다는 것이다.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하려 했어도&nbsp;미처 대비하지 못한 작은 틈새를 날카롭게 공략한다는 것이다. 또한 찬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이런 것이 틀림없음에도 늘 찬바람이 불어오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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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오늘을 쓰다</category>

		<comments>http://pyrexia.egloos.com/2453184#comments</comments>
		<pubDate>Mon, 19 Oct 2009 15:00:15 GMT</pubDate>
		<dc:creator>pyrex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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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토요일 밤 혹은 일요일 새벽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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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토요일 밤이 간다.<br>일요일 새벽이 가고 있다.<br>다시 월요일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한다.<br>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br>하루하루 요일을 세며 어서 일주일이 가기를 재촉한다.<br>하지만 초침은 어김없이 1초에 한 번씩만 움직인다.<br>월요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바라던 월요일이 돌아왔다는 절망감에,<br>화요일은 이제 하루를 보냈을 뿐이라는 좌절감에,<br>수요일은 오늘이 목요일이었으면 했는데 아직 수요일이라는 허탈감에,<br>목요일은 이번주 정말 길고 시간 안간다는 피로감에,<br>금요일은 이제 주말이구나 하지만 아직은 퇴근시간 전이라는 실망감에,<br>하루를 보낸다.<br><br>하루하루 쓴 돈을 계산하며 <br>이번달 월급에서는 얼마를 남겨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예측하며<br>하루하루 출근과 퇴근을 찍고는 <br>막상 월급날이 돌아오면 초라한 나의 월급봉투를 찢어버리고 싶어진다.<br><br>그래도 다행이다.<br>하루를 더 자고 일어나도 아직 일요일 아니겠는가!			 ]]> 
		</description>
		<category>오늘을 쓰다</category>

		<comments>http://pyrexia.egloos.com/2451778#comments</comments>
		<pubDate>Sat, 17 Oct 2009 18:15:53 GMT</pubDate>
		<dc:creator>pyrex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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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정답 고르기와 정답 찾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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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20대 4명에게 합격통지와 연봉을 적은 이메일을 보냈고, 죄송하다는 회신을 받았다.<br>물론 연봉 때문이었다. 너무 적다는 건 나도 알지만 대졸 초임은 얼마 이상이어야 한다는 법률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궐기할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결정에 찬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취업을 하지 않고 좋은 직장에 취직되기 위해 스펙을 쌓는 것보다 어디든 들어가서 한 2년 일하다보면 훨씬 더 많은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어차피 경력직 이직은 인맥으로 하는 거고 좋은 회사에서 충성하며 차근차근 연봉올리는 것보다 이직을 통해 연봉을 튀기는 게 연봉 상승방법으로 볼 때도 훨씬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그들이 그렇게 좋아라 하는 대기업에도 갈 수 있는 기회도 있다.<br><br>물론 모든 게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br>드럽게 빡세게 일해야하며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저놈 일 잘한다는 인정은 기본으로 받아놔야 하고 인간관계도 원만하게 잘 꾸려나가야 하며 자기계발에 쉼없이 정진해야 가능하다. 이런 건 사실 정답이 없는 게임이다. 보기 중 정답 고르기가 아니라 정답 찾기이며, 테스트 후 바로 정답/오답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재수 없으면 10년이 지난 후에야 그 방법이 옳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죽을때까지 정답인지 아닌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그들 스타일에도 안맞고 그닥 하고 싶지도 않을 거 같긴 하다.<br><br>그러다가 영원히 오답만 찍을 수도 있다.<br>중학교 때 한놈이 수학점수를 빵점 받았는데,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해서 선생님이 OMR 카드를 확인했더랬다. 신기하게도 이놈은 정답을 귀신같이 피해갔다. 수학적으로도 굉장히 드문 확률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수학점수였다는 거다. 수학적으로는 흔치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는 흔하다. 정답 없는 문제에서 열심히 답을 찍고 있으니 오답이 나올 수 밖에.<br><br>우리도 피해자다.<br>라는 말, 이해한다. 이미 두 살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랐는데, 스타일이 후지다고 뭐라 욕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요즘도 화장실갈때 화장실 가도 되요? 라고 누군가에게 묻고 가는 게 아니라면 더 이상 시스템을 탓하지만 말아다오. 워낙 스타일이 그래서 힘들겠지만 조금만 그 스타일을 바꿔볼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상처받을까봐 미리 말 못했는데, 사실 그 스타일 이미 유행 지난거거든. 게다가 존나 구리거든. 제발 거울 좀 보면서 살아다오.<br><br>교육제도, 입시제도에 대해서 말이 많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다들 헛다리짚기가 아닌가 싶다.<br>근본적으로 동급생이라는 개념을 없애야 한다. 형과 아우, 언니와 동생이 한 반에서&nbsp;같이 공부하지 않는 한, 경쟁체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형은 형이기 때문에 곳곳에 털이 거뭇거뭇하고 동생은 동생이기 때문에 잘 운다는 걸 배우지 않는 한 너와 나는 똑같은 조건에 오직 시험점수만 다른 존재로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존재이다를 배우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이다를 배워야만 한다.<br>			 ]]> 
		</description>
		<category>오늘을 쓰다</category>

		<comments>http://pyrexia.egloos.com/2451771#comments</comments>
		<pubDate>Sat, 17 Oct 2009 18:00:00 GMT</pubDate>
		<dc:creator>pyrex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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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뜻밖에 "씁쓸하다"라는 말부터 쏟아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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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10년 전, 혈혈단신으로 서울 마포구 대흥동 한 상가에 군용 침대 하나 달랑 들여놓고 디시인사이드 문을 연 김유식 대표(39·사진)는 디시인사이드의 상징이다. 디시 폐인들은 그를 ‘유식 대장’이라 부르며 추앙했다. 10년의 감회를 묻는 질문에 그는 뜻밖에 “씁쓸하다”라는 말부터 쏟아냈다. “디시인사이드처럼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할 수 있는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이 사라졌다. 이제 대자본이 결부돼서 덩치를 키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포털이 인터넷을 독점한 가운데에는 아무리 아이디어가 뛰어나더라도 힘들다. 이제 인터넷 청년 창업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span> <br>-&lt;시사IN&gt; 106호,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 인터뷰 기사 중에서<br><br>인간이 불멸의 존재라면 어떨까 상상해본다.<br>인간은 지금보다 더 치열해질까, 아니면 더 나태해질까. 그것에 대한 답을 얻기위해 생각하기&nbsp;보다는 어찌하여 나는 그런 상상까지 하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에 더 몰두하게 된다. &lt;종횡무진 한국사&gt;에 이어 읽은 &lt;박헌영 평전&gt;에서도 인간은 그저 탐욕스럽고 돈과 권력 앞에 무기력하며 일신의 생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는 슬픈 존재이다. 어찌하여 대다수의 인간은 늘 소수에게&nbsp;핍박받으며 소수를 위해 희생당하며 쓸쓸히 생을 마감해야 하는가.<br><br>저항하지 못한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br>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들어놓은 이래로 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제국과 민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들이 아무리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하더라도 신식 무기와 흑사병을 앞세운 콧대 높은 유럽인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nbsp;여전히 대륙은 발견되지 않고 그들 제국이 지속되고 있다한들 어차피 그들 대다수도 소수를 위해 복무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생존하기엔 너무나 압도적인 힘이었다고 해서, 우리는 그토록 잔혹한 행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을 통해 지금 우리는 아무 것도 생각할 게 없는가?<br><br>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삶은 원래 그런 거다.<br>라는 말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유한한 인생, 죽고 나면 부질없는 것인데, 까짓거. 라는 생각은 또 얼마나 달콤한가. 불특정 다수를 위해 후대를 위해 사회에서 철저하게 고립되어 산다고 누가 고마워한다고나 할까.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로&nbsp;천도해버린 최우와, 임진왜란 때 신의주까지 도망간 선조와, 만주족의 침입에 줄행랑을 친 인조, 그러니까 전란의 폐허를 겨우 뒷수습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그 인조와, 툭하면 러시아 영사관으로 달아난 고종과, 한국전쟁 때 북한의 기습에 놀라 부산까지 달아난 이승만과, 미국의 반격에 놀라 압록강 너머까지 달아난 김일성은 역사 교과서에 단골 손님으로 나오지만 정작 외세에 맞서 싸운 이름없는 의병들과 빨치산과 민중들은 개죽음이나 면하고 가정파탄이나 면하면 다행이라는 이치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br><br>이래서야 어디 살맛이 나겠는가.<br>하지만 살아야 한다. 인간이라면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인데 오늘 내가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탄식하고 포기한다면 결국 누구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아닌 더 훌륭한 사람이 해줄 거라는 낭만성은 스스로에 대한 기만행위와 다름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살아야할 당위는 없다. 소수를 위해 노력봉사만 하여 대다수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다. <br>			 ]]> 
		</description>
		<category>오늘을 쓰다</category>

		<comments>http://pyrexia.egloos.com/2451755#comments</comments>
		<pubDate>Sat, 17 Oct 2009 17:32:42 GMT</pubDate>
		<dc:creator>pyrex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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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냉소 혹은 보편적 합리주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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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남경태의 종횡무진 한국사를 읽었다.<br>삼국이 정립되는 시점까지는 저자가 왜 이리 냉소적인가 의문이 들었다. 통일신라시대쯤 오자 차츰 저자의 시각이 납득되기 시작했다.<br>남경태의 사관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보편적 합리주의 사관이라 결론 내렸다.<br><br>보편적 합리주의란 무엇인가?<br>새로운 개념에 대해 신조어가 아닌 이상 단어가 갖는 선입견이 있기에 보다 적확한 단어를 가져와 정의내려야 옳지만 내 수준 상 저정도면 적당하지 않나 싶다. 누군가 이미 보편적 합리주의란 말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내가 그의 책을 읽는 내내 고민하다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작명을 하지 못하고 이제야 정리한 개념이다.<br><br>소위 합리주의라 하면 이성이나 논리적 타당성에 근거한 판단 태도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철학 사조로도 워낙 많이 사용되는 말이니 오해의 소지가 있다. 다만 나는 앞에서 말한 사전적 의미에만 국한하여 사용하겠다. 합리주의가 이성이나 논리적 타당성에 근거한다고 하지만 이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시대마다 다르고 여전히 완전한 개념이 아닌데다가, 논리적 타당성이라는 것도 해마다 번복되기 일쑤이니 합리주의라는 것 역시 하나의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시대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갈릴레이 이전에는 천동설이 합리적인 견해였지만 갈릴레이 이후로는 지동설이 합리적인 견해이며, 뉴튼의 물리학도 한때는 부동의 이성적 판단이었지만 아인슈타인 이후로는 수정이 불가피해진 현상과도 같은 것이다. <br>시대성 뿐만 아니라 사회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데, 특정 문화권이나 종교권에서 먹지 않는 음식을 다른 문화권에서는 먹는 경우가 있는데 먹느냐, 먹지 않느냐 중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어떤 문화권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때로는 합리적이고 때로는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br>따라서 합리주의라 하면, 주의라는 말 보다는 합리적 태도, 합리적 견해라고만 사용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그리나 결국 둘은 동의어라 간주하고 합리주의로 일원화시켜 사용하도록 한다.&nbsp;<br><br>그럼 보편적이란 무엇인가?<br>합리주의가 가진 시대성과 사회성 탓에 절대적인 진리가 결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진리를 도출하기까지의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태도에 가까우므로 즉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엄밀함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므로 단순히 합리주의라고만 한다면 그것의 성격을 규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장중심의 경제학자도 국가주도의 경제학자도 모두 합리주의자일 수 있다.<br>그래서 보편적이라는 수식어가 중요하다. 보편적이라 함은&nbsp;시대와 사회 속에 포함된 구성원들이 대체로 인정하고 있는 옳음(믿음이나 신념이 아닌)이라고 정의 내린다. 교통신호를 잘 지키자는 보편적이라 할 수 있고, 육아의 책임은 엄마에게 있다는 보편적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옳음"이라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nbsp;이에 대해서는 보편적이라는 개념과 다르게 대중적이다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따라서 대중적인 것은 실제로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고 보편적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그렇게 하진 않더라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될 수 있다.<br><br>보편적 합리주의는 보편적 + 합리주의로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 태도에 의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합리주의에 속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권력자는 청렴해야 한다, 정부관료는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학교는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 분쟁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 한다,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불평등한 외교관계는 지양해야 한다&nbsp;등등의 것들이 포함된다. 보편적 합리주의로 설명할 수 있는 사항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는 성숙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사항들이 모두 실현되고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사회는 아직 지구상에 없는 것 같다.<br><br>우리 사회도 80년대 민주화 투쟁과 98년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보편적 합리주의가 상당히 많이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합리주의의 전제가 되는 이성과 논리적 타당성이라는 것 자체가 많이 부족했고 당장 그것을 키우기 위해 근간이 되는 외래사상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 합리적 태도에 의해 도출되고 널리 확산되어 암묵적으로 합의된 보편적 합리주의 사항들이 폭넓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br><br>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어찌된 일인지 사회는 자꾸만 보편적 합리주의와 멀어진 쪽으로만 향하고 있다. 특히 정치는 최악이다. 국민을 대변하고 국가를 (보편적 합리주의에 의해 합의 된) 옳은 방향으로 이끌라고 선출된 정치인은 그저 자기 잇속만 챙기기에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nbsp;자신의 이익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진실과 거리가 먼&nbsp;기사를 쓰는 언론과 손잡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으며 그런 행위에 대해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다.<br>국민들은 이에 낙담하고 정치에 대해 냉소할 수 밖에 없다. 옳다 그르다고 논하기조차 아까운 것이다. 어쩌면 지난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낙승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정치권 전체에 대한 혐오와 낙담과 냉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건 한나라당의 요긴한 전략이다. 자신의 더러움을 씻어낼 생각은 하지 않고 어차피 상대도 더럽고 정치판은 더러운 것이다는 식으로 물타기하는 수법은 낡았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고 한들 투표장에서 등을 돌린 수많은 사람들(특히 20대)이 모두 한나라당의 얄팍한 전략에 놀아났다고 할 수는 없다. 이미 대항 세력을 자처하는 자들도 뚜렷한 대안을 내지 못하거나 굳이 한나라당이 물타기를 하지 않아도 국민이 먼저 그렇다고 판단할 만한 빌미를 수없이 제공했기 때문이다.<br><br>따라서 정치권에 등을 돌리고 투표조차 하지 않은 20대들(이명박을 지지한 20대를 말하는 게 아니다)을 손쉽게 보수화되었다거나 이기주의적이라거나 몰아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나도 한때는 그랬다. 반성한다. 20대는&nbsp;그들이 가진 보편적 합리주의에 의하면 지금의 정치판은 투표해줄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대로 보편적 합리주의는 특정 세대가 아닌 사회 구성원 다수의 생각인데, 왜 유독 20대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처럼 보였을까? 그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합리주의의 사항들이&nbsp;최근 10년, 누군가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그 10년 사이 급속도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의 사회인으로 형성되는 시기에 습득했기 때문이다. 30대 이상의 세대들은 보편적 합리주의 이외에도 보편적 합리주의까지 도출해내는데 필요했던 사상이나 이론들 혹은 경험들로 지난 선거에 다르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20대는 보편적 합리주의의 사항들 이외에는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br><br>남경태가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도 이런 20대의 시선과 동일 선상에 놓여있다. 그건 최근 읽은 조준현의 19금 경제학의 논조와도 유사하다. <br><br>사실 사관은 어느 시대나 있고 시대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한 조선의 유학자들은 철저하게 성리학적 세계관 속에서 역사를 기술했고,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시대의 사학자 신채호는 비약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해석했고, 마르크스주의와 통일노선이 한창 유행하던 8-90년대에는 되도않는 자본주의 맹아론 등을 들이대며 사적유물론에 우리 역사를 끼워맞추려 하기도 했다. 그것을 역사 왜곡이라고 보기보다는 시대의 요구라고 받아들여야 한다.<br><br>보편적 합리주의 저변이 확대된 오늘날의 사학자는 굳이 서양의 사상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더 이상 없어졌다. 우리 시대의 보편적 합리주의 가치들만으로도 우리 역사를 해석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풀어놓은 역사는 당연하다고 느껴지면서도 신선한 견해로 다가온다. 아직까지 이런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리라.<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특히 냉소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특히 신랄하게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역사이기 때문이다. 애정과 환멸은 비례하는 법이다. <br><br>종횡무진 한국사를 읽으며 얻은 한 가지 수확이 더 있다. <br>저자는 실학이 대단히 혁신적인 학문이었다고 과대포장된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고 실학의 한계에 대해서 여려 부분에서 지적한다. 특히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다양한 경로로 새로운 이론과 문물을 받아들였디기 보다는 청나라에 의존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참여하거나 견제하지 못함으로써 일부를 제외하고는 성리학과 같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br>명나라 멸망 이후에도 조선의 사대부들은&nbsp;중화사상에 절어 허황된 북벌론이나 펴고, 언젠가 한족이 중원을 제패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몇몇 깨인 사대부들에게 청나라를 통해 유입되는 온갖 신기한 서양의 과학기술들이 얼마나 대단해 보였겠냔 말이다. 실학자들이 꼴통 사대주의자들보다야 백번 낫기야 낫지만, 이들도 실상 청나라 사대주의자들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 정말 신문물을 도입하여 나라를 구할 작정이었다면, 다양한 경로로 보다 과감하게 신문물을 받아들였어야 하며, 또 그것을 무기로 현실정치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야 옳다.<br><br>그러다 문득 지금의 우리 지식인 사회가 떠올랐다. <br>우리 사회는 미국 사대주의자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고,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은 유럽 사대주의에 찌들어 있다. 미국 사대주의자들은 국민을 농락하며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쁘고, 유럽 사대주의자들은 이를 비판하면서도 지들이 고매하다는 착각에 빠져 현실 정치를 비웃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바꾸려 하지 않고 짐짓 우아한척 뒤로는 속물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냔 말이다. 지나친 도식화일지 모르지만 어찌 유럽 사대주의자들이 하는 꼬락서니가 꼭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하던 짓이랑 유사해 보인다. <br>그러고 보니 수유+너머 이 녀석들이 조선시대 대표적 실학자인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열광하는 것이 꽤나 그럴듯한 상관관계로 보인단 말이다. 200년 후 쯤 철학사에 등장조차 하지 않을, 사실 철학자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만담가들의 잡글을 열심히 인용해가며 평론이라고 쓰는 글들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낄지 모르겠으나, 글쎄, 한 마디로 아니올시다.<br><br>이런 저런 생각이 들수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편리함이나 효율성이 아닌 옳음의 가치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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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pyrexia.egloos.com/2444037#comments</comments>
		<pubDate>Wed, 07 Oct 2009 15:24:26 GMT</pubDate>
		<dc:creator>pyrex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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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불편한 세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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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1단계 : 손바닥과 손바닥을 마주대고 문질러 줍니다.<br>2단계 :&nbsp;손가락을 마주잡고<br>...<br>6단계 : ... 문지르며 손톱 밑을 깨끗하게 합니다.<br><br>공공장소 화장실에 가면 어디든 하나 붙어있을 법한 문구다. 예쁜 여자의 손그림까지 포함된 올컬러 전단지다. 순간 이 나라가 마음에 들어진다. 국민들이 손을 제대로 씻지않아 신종플루에 걸릴까봐 배려해주는 마음이 여간 따뜻한게 아니다. <br><br>북반구에서 2100명이 사망한 신종플루, 21세기의 흑사병이 될지도 모르는 그 신종플루, 국회에서는 대재앙 신종플루의 백신을 미리 확보해두지 못했다고 공무원을 질타한다. 느슨한 일처리를 한 공무원을 질타하는, 국회의원 다운 모습이다. <br><br>이 나라는 최소 천만명에게 백신을 놓겠다는 계획이다. 백신이 유료인지 무료인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신종플루인지 검사 한 번 받을라면 10만원도 넘는 돈이 후딱 깨진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깟 10만원이 대수랴. 괜히 병을 키웠다가 가족들에게, 직장 동료에게 전염시킨다면 이보다 더 큰 민폐가 어딨겠는가? 감기임이 확실하지만 일말의 의심을 하는 의사의 말을 따르는 편이 여러 모로 좋다.<br><br>신종플루&nbsp;치료제를 만든 제약회사는 순식간에 10억개를 팔아치웠다. 인류를 재앙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불철주야 약을 만들어낸 덕이다. 노벨평화상과 노벨생리의학상을 동시에 줘도 모자람이 없다. 병이 유행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절대 완전한 치료제를 만들어내다니. 어쩌면 그 덕분에 나도 지금 살아있는지 모른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br><br>남반구에서 매년 100만명이 죽는 말라리아와 60만명이 죽는 세균성 위장병이야 워낙 백신이나 치료약 개발하기가 어려우니 그런걸 대량생산해내지 못하는 제약회사를 너무 원망하진 말자. 그들도 나름 고충이 많을 것이다.<br><br>그런데 나는 왜이리 불편한걸까? 전세집을 구해야하는데 대책없이 오르는 전세값 때문인가? 꼭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이 불편함은 어느날 갑자기 우측통행을 강요하고는 에스컬레이터 방향을 하루저녁 사이에 바꿔버려서 습관처럼 왼쪽 에스컬레이터로 갔다가 막 내려오는 사람과 이마를 부딪힐 뻔한 일보다 더 곤혹스럽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모두 우측통행을 하니 선진시민이 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하는 불편함인가?<br><br>역시 난 선진시민이 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조선의 천민이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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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오늘을 쓰다</category>

		<comments>http://pyrexia.egloos.com/2434983#comments</comments>
		<pubDate>Fri, 25 Sep 2009 12:41:09 GMT</pubDate>
		<dc:creator>pyrexia</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인세환원제도를 도입하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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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얼마전 출판에 있어서 일련의 저작권보호법은 저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와 서점을 위한 법이라는 주장을 폈다. <a href="http://pyrexia.egloos.com/2382241" target="_blank">이글 참조</a><br>그렇다고 인세를 무조건 올리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 <br>인세를 올리면 출판사 입장에선 제작비가 올라가게 되고 그럼 지금보다 더 판매부수가 보장된 책만 출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br>또, 좋은 저자를 많이 확보하지 못한 신생 출판사나 소규모 출판사는 출판 시장 경쟁에서 더욱 불리해질 것이다.<br><br>그렇다고 비판만 하고 아무런 대안도 제출하지 않아선 안될 터, 나름대로 그 문제에 대해 고심하였다. <br>지금부터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고안된 방법일 뿐 완전한 방법이라 할 수 없다. <br>다만 하나의 아이디어로써 제출해본다.<br><br>대부분의 국내서 인세는 10%이다. 신인일 경우 5~8% 계약을 하기도 하고, 초특급 저자일 경우 12~15% 계약도&nbsp;하지만, 보통은 10%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10% 인세로는 전업 저자가 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겸업을 택하게 되고, 저작 활동에 탁월한 능력과 재능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밥벌이이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br>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1% 안쪽에 속하는 슈퍼저자들이 있다. 이들은 백만부 이상 판매하는 책을 곧잘 내놓곤 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의 인세는 보통의 경우와는 다르게 특별한 계약을 하는데, 10만부 이상부터 11%, 50만부 이상부터 12%, 100만부 이상부터 13% 식의 계약이 그것이다. <br><br>김학원의 &lt;편집자란 무엇인가&gt;에서 인세 계약에 관한 몇 가지 사례와 적정선이 얼마큼인가에 대해 나름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의 책은 편집자를 지망하는 사람에게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나 매우 훌륭한 책임이 틀림없지만 인세에 관한 부분에서만큼은 그가 편집자인 동시에 사장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br>그는 미국의 출판문화와 우리 출판문화를 비교하며 10%가 적정선임을 설명한다. 또 도입할만한 유용한 사례들을 제시하는데, 그중 하나가 한정된 독자를 위한 전문서의 경우 인세를 지불하지 않는 조건으로 출판하는 사례이다. (지금 옆에 책이 없어서 정확하게 인용할 수 없는 점 양해 바란다.) 이부분은 지극히 사장님 다운 주장이 아닌가 한다. 물론 그의 의도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판매부수가 극히 적어 손해가 예상되는 책이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기 때문에 출판을 결정한만큼 회사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인세를 묶는 것이다. 저자 역시 돈을 벌려고 쓴 건 아니니 인세를 받지 못하더라도 출판하는데 의의를 둘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저자의 순수한 의도를 악용하는 사례라고 본다. 출판사는 손해가 나는 걸 뻔히 알면서 왜 출판을 결정하는가? 출판의 공익성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나마 있긴 있겠지만, 그보다는 목록을 갖추는데 유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출판사 입장에선 자신들이 손해를 본만큼 목록을 갖추는거야 당연한&nbsp;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럼, 손해에 초판 인세도 포함시켜라. 설마 그런 논리로 인쇄소도 대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이러이러한 책이니 출판하는데 의의를 갖고 인쇄비는 무료로 하라? 당연히 이러지 않을 것이다. 인쇄비는 주면서 초판 인세는 줄 수 없다는 논리는 무엇인가? 저자 입장에선 이름을 날리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저자의 순수한 의도를 악용하는 것이다. 인세까지 지불하고 났을 때 손익을 계산해보고 그래도 출판사의 목록에 올릴만한 가치가 있다면 출판하고, 아니라면 출판 안하면 그만이다.<br><br>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너무 일방적으로 출판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휴머니스트나 되는 출판사니까 목록에 신경을 쓰지 솔직히 우리 나라에 목록을 염두하고 출판하는&nbsp;출판사가 20여 개나 되려나 모르겠다. <br>그래서 생각하는 방법이 인세환원이다. 인세환원은 책을 많이 파는 저자가 책 판매부수가 늘어날수록 일정 인세를 비상업적 출판을 위해 출판사에 적립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11~13%까지 증가하는 인세를 10%로 동결하고 추가 인세 1~3%를 비상업적 출판, 혹은 신인 작가들을 위해 적립하자는 것이다. <br>위의 인세 계약 방식으로 해야할 1만원짜리 책이 10%로 동결했고 200만부가 팔렸다면, <br>10만~50만부 : 1만원 * 100원(1%) * 40만(부) = 4천만원<br>50만~100만부 : 1만원 * 200원(2%) * 50만(부) = 1억원<br>100만~200만부 : 1만원 * 300원(3%) * 100만(부) = 3억원<br>적립인세 : 4억4천만원<br>저자인세 : 1만원 * 1000원(10%) * 200만(부) = 20억원<br>원래는 24억 4천만원을 받아야 하는데, 20억밖에 받지 못했다고 그렇게 억울할 것 같지는 않다. 많이 받아봐야 세금만 더 내지 않겠는가. 자, 출판사는 이렇게 해서 4억 4천만원의 재원을 확보했다. 이 돈은 1만원짜리 책 초판 2천부(비상업적 출판이나 신인 작가의 책을 2천부 이상 찍을리는 만무하고)를 찍을 경우 220종의 책에 대해 지급할 수 있는&nbsp;인세이다. 물론 인세만 있다고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최악의 경우 300부만 판매됐다고 치고 손실될 액수를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2백만부를 판매한 출판사에서 저자의 적립 인세를 사용하면서 자신들은 조금도 적립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도둑놈 심보이다. 도둑놈은 무슨 도둑놈이냐 출판은 야구고 어차피 3할의 책이 7할의 출판까지 먹여살려야 한다고 우는 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렇게 하자. 저자가 적립한 액의 30%만 재투자를 하는 것이다. 4억 4천만원 + 1억 3200만원 = 5억 7천200만원의 재원이 확보되었다. 책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정도의 돈이면 최소 30~50종의 책을 출판할 수 있을 것이다. <br>행여나 20억을 받는 저자가 24억 4천만원을 받지 못하고 20억만 받는다고 대단히 억울해할 저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저자라면 인세 적립을 하지 않는 출판사에서 출판하면 그만이다. <br>이렇게 출판된 책에는 어느 저자의 적립금으로 출판하게 되었다라는 문구를 꼭 책에 넣도록 한다. 비상업출판이나 신인 작가의 출판이라 야구의 3할 논리를 따를 수 없더라도 행여나 1할의 책은 다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이건 또다시 적립하도록 하고...<br><br>물론 자신의 인세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작가도 있다. 박경리 선생이 대표적이다. 문학관을 짓고 후배들 창작활동을 지원해준다. 하지만 이건 모든 저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재단을 만드는 것도 일이고, 어느날 갑자기 스타가 됐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게 저자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절실하다. <br><br>이 방법에 대해 고심하다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한 저자가 독보적인 부동산 경매 저자이다.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강연요청이 줄줄이다. 그런데 자신이 적립한 인세로 경쟁상대가 손쉽게 출판시장에 등장했다. 그의 책은 점점 젊은 저자에게 밀리고 강연요청도 현격히 준다. 가능한 일인가?<br>가능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진정한 공정 경쟁이 무엇인가와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다양한 영역에서의 사회적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자기 밥그릇을 뺐기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출판사에서 출판하지 않으면 그만이다.<br><br>개인적으로는 적립된 인세가 비상업출판이나 신인 작가에게만 넘겨지지 않고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위한 재원으로도 활용되었으면 한다. 출판시장의 세계적 진출과 시장 개척 자체만으로도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br>그리고 이미 우리 나라 출판 시장에서 한 획을 그은 저자라면 세계적 진출이 가능하도록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저작물 창작에 심혈을 기울이길 바란다. <br><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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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오늘을 쓰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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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6 Sep 2009 14:26:52 GMT</pubDate>
		<dc:creator>pyrex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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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내가 악마의 등을 찔렀다, 전5권 완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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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드디어 완간입니다.<br>5월 31일에 1권 초판이 나왔고, 오늘자로 5권 초판이 나왔으니&nbsp;약&nbsp; 100일이 걸렸군요.<br>처음 제작을 계획할 당시 많은 부분 수정하리라 다짐했지만, 많이 그러진 못했습니다. <br>핑계에 불과하겠지만,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br>분명 핑계에 불과하니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br>이대로 출판해버린다는게 불편하지만, 만약 상업출판을 하게되면 그때 수정할 기회가 한 번 더 있으리라는 점에 위안을 삼습니다.<br><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09/06/73/d0015673_4aa3b1676dc70.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09/06/73/d0015673_4aa3b1676dc70.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9/06/73/d0015673_4aa3b16de5cbd.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9/06/73/d0015673_4aa3b16de5cbd.jpg');" /></div><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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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프로젝트 출판모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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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6 Sep 2009 13:04:53 GMT</pubDate>
		<dc:creator>pyrex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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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우리 시대, 글쓰기란 무엇인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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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요즘처럼 글쓰기가 범람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br>하루에도 300권 이상의 새로운 책이 쏟아지고, 블로그와 각종 커뮤니티에 스크롤하기가 힘겨울 정도로 수없이 많은 글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글쓰기가 흔해진 만큼, 옥석을 가려내기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글쓰기가 하향평준화되었음을 개탄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누구나 자기주장을 할 수 있고, 누구나 정답이 아닌 느낌을 말 할 수 있다는 건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br><br>그렇다고 모든 글쓰기가 자유분방해도 괜찮다는 건 아니다.<br>반드시 명증해야하고 공정해야할 글이 있고, 심사숙고한 흔적이 있고 겸손하면서도 철학이 뚜렷해야할 글이 있다. 전자의 예라면 법원의 판결문이나 학교의 가정통신문, 기자의 보도기사, 제품의 사용설명서&nbsp;등이 있을테고, 후자의 예라면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이 대표적일 것이다. 물론 요즘 글이란 것이 복합 장르적 특성을 띈 것이 많고, 새로운 장르의 글도 많아 섣불리 판단내리기가 어렵긴 하다. <br><br>여기 한 인문학서가 있다. <br>인문학서라고 하기엔 상당히 모자란 면도 많아 보인다. 글쓴이는 인문학자도 아니고, 인문학과 관련한 전문적인 글을 써온 사람도 아니고, 연구가 깊어보이지도 않는다. 저자는 바로 아나운서와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lt;백성을 섬긴 왕, 세종이 꿈꾼 나라&gt;는 세종이 왕권을 획득하는 과정부터 통치 이념, 통치 방식, 인간적인 면, 그리고 한글을 창제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책이다. 사료에 기반한 것 같긴 하지만 전문적인 역사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정통 역사소설도 아니다. 인문학적인 글의 형식 위에 때때로 픽션을 버무렸다. 실록을 재구성해 이야기로 만들기도 하고, 지은이가 세종에게 감정이입해 하루의 일상을 상상하여 그려내기도 했다. 정확한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민간의 떠도는 이야기를 곳곳에 삽입하기도 했으며 그저 추측에 기반해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기도 했다. <br><br>어떻게 보면 허접하면서도 대중추수주의적 인문학서일지도 모른다.<br>하지만 이 책은 그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글에 진정성이 느껴졌다. 시종일관 전문 인문학자가 아니기에 인문학에 접근해야하는 부담감과 겸손함, 조심스러움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자칫 전문 인문학자라면 놓치고 넘어갔을 부분을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로 멋지게 그려냈다. 처음에는 그런 방식이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다음에 등장할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순식간에 책을 읽게 했다. 전문 인문학자가 아니라는 부담감에 위축된 글쓰기도 아닌, 새로운 글쓰기 방식에만 몰두하는 경솔한 글쓰기도 아닌, 절도있는 절제감과 설익지 않은 신선함이 탁월한 책이다. <br><br>여기 또 하나의 인문학서가 있다.<br>인문학계에서는 꽤 알려진 인기있는 저자의 신간이다. 제목과 표지만 보아도 신선한 시각과 새로운 형식의 냄새가 물씬 난다. 바로 수유+너머의 대표주자격인 고미숙의 &lt;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gt;이다. 우선 임꺽정과 그 도적 떼를 백수 집단으로 규정한 것부터 흥미롭다. 그들이 백수가 된 것은 사회가 그렇게 만든 소극적 시련이 아니라 사회를 부정하고 스스로 그 길을 택한 적극적 선택이라 주장한다. 그들은 사회의 관습적 방식을 거부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공부하며, 사랑을 한다. 그야말로 조선의 백정 아들이 아니라 청석골의 두령다운 재기발랄한 태도이다. 그리고 이런 해석은 사회구조적 모순을 풍자했네, 계급적 각성과 민초의 아픔을 그렸네 따위의 고리타분한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br><br>분명 신선한 것 같은데 어딘가 낯익은 이야기이다.<br>이유가 뭘까? 답을 얻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다. 저자 고미숙이 속해 있는 수유+너머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책은 임꺽정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야기이다. 줄서기 교수 임용 사회를 버리고 독자적인 연구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만난 사람들과 서로 공부하며, 벗이 되어 서로를 감싸안는 수유+너머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왠지 불편하다. 꼭 자기 얘기를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nbsp;독자마저 낯뜨겁게 하는 자기 합리화와 자화자찬이 시종일관 이어진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점입가경이다. 마치 임꺽정을 재해석한 것이 아닌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임꺽정을 끌어온 격이다. 희대의 반항아 임꺽정을 통해 자신들 무리의 정통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는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다 못해 역겹게 했다.<br><br>담론은 있으되 철학이 없다.<br>이 책에 꼭 어울리는 말이다. 이야기는 무성하지만 관점이 흐리고 논점이 명쾌하지 못하다. 저자가 전문 인문학자이니 겸손할 필요는 없다쳐도 자기잘난척, 지적 허영심에 매몰되어 있다. 이는 이 책에 대한 평가이자 수유+너머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다. 이미 저자가 책의 내용과 수유+너머를 동기화시켰기 때문이다. 인문학적인 글쓰기가 발랄하고 유쾌해져 일반 대중과 가까워지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글의 내용까지&nbsp;가벼워져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인문학적인 자기 성찰이 없이 술자리의 논쟁처럼 내뱉어내고 쏟아내기만 한다면 그건 가짜 인문학자임을 자처하는 길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스스로 삶부터 인문학적으로 갖춰야 할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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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오늘을 쓰다</category>

		<comments>http://pyrexia.egloos.com/2387911#comments</comments>
		<pubDate>Fri, 31 Jul 2009 15:23:07 GMT</pubDate>
		<dc:creator>pyrex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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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과연 저작권법은 창작자를 보호하는 법인가? ]]> </title>
		<link>http://pyrexia.egloos.com/238224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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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불법 복제와 불법 다운로드가 판치는 요즘, 저작권법에 대한 논란은 뜨겁다. <br>저작권법을 어김으로 인해 창작자는 정당한 수입원을 확보할 수 없고, 창작에 대한 열의를 지속시킬 수 없다는 진단이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br>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사람들은&nbsp;종종&nbsp;극단적인 비난을 받기도 한다. 당장 배고프다고&nbsp;내년에 파종할 씨감자를 삶아 먹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다. 설명하자면,&nbsp;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를 불법 다운로드해서 봄으로 인해 만화가는 경제적 기반을 잃고 결국 만화 그리기를 포기하며 결국 이 세상에 만화가 사라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다.<br><br>그런데 정말 저작권법은 창작자를 보호하는 법인가? 저작권법만 잘 지킨다면 창작자는 평균 정도의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많은 창작자는 아무런 경제적 고민 없이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을까? <br><br>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아니다이다. 이런 논리는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못해 허황되다.<br><br>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br>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출판을 하는 사람이므로 그쪽 사례로 설명을 해보겠다.<br>우리 나라의 보편적 인세는 정가의 10%이다. 200자 원고지 1200매&nbsp;분량의 소설은 1만원 정도이다. <br>10%의 인세를 받는 작가가 1200매 분량의 1만원짜리 책을 발간했고 1만부가 팔렸다고 가정하자.<br>또, 출판사가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전량 소매상으로 납품했다고 치고, 평균 납품율이 65%라고 가정하자.<br><br>요약해서 정리해보면,<br>작가 인세: 10%<br>원고 분량: 1200매<br>도서 정가: 1만원<br>판매량: 1만부<br><br>매출액: 1만원 * 1만부 = 1억원<br>인세: 1억원 * 10% = 1천만원<br>출판사 매출액: 1억원 * 65% = 6500만원<br>서점 매출액: 1억원 * 35% = 3500만원 <br><br>출판사 제작비는 인쇄방식, 디자인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br>중간정도의 표지디자인에 흑백인쇄, 떡제본을 했다고 가정하면<br>대략 2~3000만원 선이다.<br>거기에 인건비, 사무실 유지비, 창고 운영비&nbsp;등이 포함되어야 한다.<br>기타 비용까지 제하고<br>대략 10% 마진율로 계산해보겠다.<br>출판사의 경우 판매부수가 많을수록 마진율은 더 높아진다.<br>왜냐하면 초기 디자인비와 편집교열비 등을 더이상 부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br><br>서점 매출액에서 할인 10% 이상(온라인서점)<br>매장 운영비(온라인일 경우 배송비), 인건비 등을 제하면,<br>대략 5% 마진율이라고 계산해보자.<br><br>그럼 넉넉히 쳐줘서 책값에서 제작 및 유통원가는 75%이다. <br>(물론 실제로는 이보다 더 낮다)<br>25% 중 작가 : 출판사 : 서점 = 10 : 10 : 5 로 분배하는 것은 일면 공평해 보인다.<br><br>하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br>출판사와 서점은 자본투입이 늘어날수록 매출액도 증가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br>연수입이 두 배가 되었다고 해서 두배로 빨리 창작할 수 있는 작가는 없다.<br>설령 흥이 나서 두배는 빨라질 수 있다해도, 열 배 스무 배는 불가능하다.<br>하지만 출판사와 서점은 가능하다. <br><br>알기쉽게 일반&nbsp;월급쟁이와 비교해보자.<br>대기업을 제외한 중견기업의 대리 연봉이 3천만원이라 친다면, <br>작가가 대리와 비슷한 연봉 수준을 유지하려면, 1만부 판매할 수 있는 1200매 소설 3권을 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br>20년간 60권의 각기 다른 소설을 써야한다.<br>대리야 승진이라도 하고 퇴직금이라도 받겠지만, 작가는 20년동안 60권을, 그것도 1만부씩이나 팔리는 소설을 쓰고도 환갑이 다 되어서도 고작 대리인 것이다.<br>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상황은 소위 문화선진국이라 불리는 북미나 서유럽도 별반 차이가 없다. 이상적인 방향을 갖고 있다기 보다는 단지 국가보조금을 얼마나 더 많이 지급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br><br>그런데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nbsp;<br>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국내 소설들 중에 1만부 이상 판매되는 소설은 전체 소설의 10% 미만이다. <br>블로그에 꽤나 소문난 판타지 소설이라 해봐야 2-3천부를 넘기기가 힘들다.<br>연수입이 100만원 이하인 작가들도 허다하다.<br>때문에 이들은 투잡을 뛰지 않을 수가 없다.<br>이런 형편 때문에 많은 작가지망생들은 적게는 1천만원 많게는 5천만원, 1억원 하는 메이저 출판사의 공모전에 목을 멜 수밖에 없다.<br>명목상 신인작가들의 발굴이라지만 메이저 출판사의 행태는 그 명목과는 이미 한참 거리가 멀다.<br>그들은 단지 자신의 출판사에게&nbsp;높은 수입을 제공해줄 예비스타작가를 찾고 있을 뿐이다. <br>운좋게 당선이 된다 하더라도, 스타작가의 관문은 좁디좁다. 이래저래 상금을 까먹고 나면 다시 생계를 걱정하는 전업작가가 될 것인가, 투잡 작가가 될 것인가 기로에 놓이다. <br><br>물론 억대 연봉을 자랑하는 작가들도 있다. 공지영이나 정이현 따위 말이다. <br>"너도 억울하면 억대 연봉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라"라는 주장은 반박할 가치도 없다. <br>모두가 천재일 수 없고, 모두가 운이 좋을 수 없고, 모두가 대중적일 수 없으며, 모두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많을 수도 없다.<br>일반적인 경쟁사회에서도 저런 논리는 가치가 없을 뿐더러, 더구나 예술 혹은 문화의 경우에는 더욱 가치가 없다.<br>그건, 소외받는 자나 소수를 위한 예술 혹은 문화는 무가치하다,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예술 혹은 문화는 무가치하다는 논리와 같은 얘기이기 때문이다. <br><br>이렇게 볼때, 10% 정도의 인세를 보장해주는 저작권법은 더이상 창작자를 보호하는 법이라고 볼 수 없다.<br>그렇다면, 누가 저작권법의 옹호를 주장하는가? 바로 제작사와 유통사이다. 불법 유통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쪽은 작가가 아니라 제작사와 유통사&nbsp;측이다. 하지만 이들은 노골적인 장사속을 드러내지 않게 교묘하게 작가를 전면에 내세운다.<br><br>결론적으로 말해서, 저작권법은 제작사와 유통사의 이윤활동을 보장해주는 법이다. <br>그래서 난 저작권법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고, 지속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활동을 할 계획이다.<br>하지만 이건 저작권을 부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br>저작권과 저작권법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추후에 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br><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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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오늘을 쓰다</category>

		<comments>http://pyrexia.egloos.com/2382241#comments</comments>
		<pubDate>Fri, 24 Jul 2009 16:27:51 GMT</pubDate>
		<dc:creator>pyrex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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