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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뻘글의 감상공간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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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내 생각을 적어넣은 자유로운 감상공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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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Nov 2009 08:43:5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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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뻘글의 감상공간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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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유학 준비로 인한 리얼 현게이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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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nbsp;&nbsp;&nbsp; <br><br>영어,일본어 마스터 하고오렵니다. irc는 가끔들어가니&nbsp; 상관없지만 ㅇㅇ<br><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14/82/e0052882_4afe6db35283d.png" width="500" height="718.68583162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14/82/e0052882_4afe6db35283d.png');" /></div>ㅂ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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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Nov 2009 08:43:5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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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共感) 공감 은 문학과 철학 사회과학에서 어떨게 이해되고 적용되는가? -2009학년도  고려대학교 정시논술 문제 해제(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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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2009학년도 고려대의 정시 논술은 '공감(共感) 이라는 포괄적 주제를 문학과 철학 사회과학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 가를 중심으로 구성 각제시문들은 국지적 의무와 지구적 의무에서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도덕적 판단과 행위의 관계 공감의 범위,공감과 도덕적 실천의 관계등을 공감 이라는 대주제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br><br><br>아래의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br><br><br>가.<br><br>기아에 시달리는 먼 나라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책임은 무엇인가? 이문제를 모든 인간은 동일하게 취급 되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고찰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나는 이런 시각을&nbsp; 강한 사해 동포주의로 보고 그에 대해 약한 사해동포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약한 사해동포주의도 강한 사해동포주의처럼 하나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주장이다. 약한 사해동포주의에서도 인간사의 옳고 그름은 민족과 지역에 상관없이&nbsp; 동일한 척도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다른 모든 조건이 일치한다면, 에티오피아 농부가 겪는 기아와 폴란드 농부가 겪는 기아는 똑같이 나쁘다는 도덕적 판단이 누구를 먼저 도와야 할지를 선택하는데 결정적이지 않다. 행위의 주체로서 나는 어느 한쪽을 먼저 도와야 하는 도덕적인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그 사람에 대한 도덕적 행위의 이유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잘보여주는 사례로 어린이 실종 사건을 들기로 한다. 실종된 어린이가 어느 집 자식이건 상관없이 그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은 그들과 실종된 어린이 사이의 친소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만일 내 자식이 실종되었다면 나는 모든 시간과 공력을 들여 자식 찾기에 전념해야한다. 내게는 자식을 찾아야 할 강력하고도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는 본능적 욕망 이상의 도덕적 의미가 내포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특수 관계 때문에 나는 자식을 찾아야 할 분명한 도덕적 이유를 갖는다.<br>실종된 어린이가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하여 그 어린이에 대한 내 도덕적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자식에 대한 책임이 남의 집 자식에 대한 책임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하는 것은 온당하다. 어린이 실종 사건은 어떤 경우든 똑같이 나쁘다고 보는 도덕적 판단과, 실종된 어린이에 대한 친소 관계에 따라 발현되는 내 행동의 도덕적 이유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br><br>그래서 일군의 의무들을 다른 일군의 의무들보다 엄격하게 우선시하자는 제안을&nbsp; 할 수도 있다.<br>국지적 의무와 지구적 의무가 갈등을 빚을 때마다 국지적 의무를 먼저 이행하고 나서 여력이 있다면 지구적 의무를 이행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제안은 논리적으로 그럴싸해 보여도 도덕적으로는 부적절하다. 이 제안에 따르면, 자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입증만 된다면 타국민에게 무제한적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이 용인될 수도 있기 떄문이다. 자국민에게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더라고, 의무를 실행 하기 위해 외국인을 살해 하면서까지 자국민에게 신체 장기를 이식시키는 행위가 용납될 수는 없다. 이 경우,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지구적 의무가 자국민에 대해 가지는 의무에 우선한다.<br><br><br>그렇다고 지구적 의무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도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세계어느 나라 사람이든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을 우리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다. 독감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상황에서 백신 보유고가 충분치 못할 경우, 정부가 독감에 취약한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다. 정부는 연령이나 그 밖의 적절한 기준에 따라 독감 취약집단을 선정하고 외국인들보다 그집단에 백신을 우선 공급할 수 있다. 예방 접종 대상자로 선정된 자국민보다 외국인들이 독감에 더 취약할 뿐 아니라 그들이 소속된 국가로부터 백신을 공급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하더라고, 정부가 자국의 접종 대상자를 우선시하는 것은 여전히 타당해 보인다. <br><br>국지적 의무와 지구적 의무중 어느 한쪽 에 엄격하게 우선권을 부여하자는 제안이 적절치 못하다면, 그 다음 사안에 따라 양자를 저울질해 보자는 제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 경우 어떤 의무에 대한 최종적 가치는 의무의 심각성 그리고 의무 대상과의 연관성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매겨진다. 여기서 의무의 심각성은 사안의 내용에 따라 결정되고, 의무 대상과의 연관성은 의무와 관련된 사람들 사이의 친밀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이 어떤 경우에는 신중한 도덕적 판단을 위한 모형을 제공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경우에 타당할 것 같지는 않다. 만약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그가 처한 상황이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절망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그를 돕는 의무를 저울질해 볼 수 있다.<br>우리는 가까운 사이끼리 강한 의무감을 지니지만, 소수의 동료와 압도적 다수의 외국인 사이에서 후자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할수도 있다.<br>수혜자의 규모에서 볼떄, 소수의 동료에 비해 다수의 외국에 대한 의무의 심각성이 현저히 크기 떄문이다. 그렇지만 의무 대상과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출경우,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소수의 자국민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다수의 외국인을 먼저 구제하자는 제안은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br>이상에서 살핀 대로 국지적 의무와 지구적 의무에 두루 통하는 도덕적 기준은 더 복잡한 구조로 구축되어야 할 것 같다. 양자중 어느 한쪽에 우선권을 부여하거나 양자의 의무를 저울질하자는 제안이 그러한 도덕적 기준이 되기에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br>내가 제안하는 약한 사해동포주의는 다음 두가지 주장을 그 내용으로 한다. 첫째,원칙적으로 동료 시민들에 대한 의무와 전체 인류에 대한 의무는 다르다. 동료 시민들에 대한 경우와는 달리 전체 인류에 대해서 우리는 복지와 고용 기회 등과 같은 사회적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할 의무가없다. 아울러 국가들 사이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지구적 차원의 질서를 더 평등한 관계로 재편해야할 의무도 없다. 약한 사해동포조의도 강한 사해동포주의와 마찬가지로 기아에 시달리는 먼 나라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도덕적으로 판단하지만, 동료 시민들에 대한 의무와 인류 전체에 대한 의무가 동일하다고 보지 않는다. 둘째,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 하는데 필요한 최소 기준들을 지구적 차원에서 옹호해야 한다. 이경우 국지적 의무와 지구적 의물르 구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조건들을 파괴했다면, 우리가 초래한 해악에 대해 책임을 지고 보상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아울러 우리가 초래하지 않았더라고 어떤 나라의 사람들이 인권과 같은 최소 기준의 결핍으로 고통 받고 있다면, 국제사회의 요청에따라 그 나라 사람들을 구제해야 할 의무도 우리에게 있다. 비록 동료 시민들의 대한 의무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인간적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br><br><br><br><br><br><br><br><br><br><br><br><br>&nbsp;<br><br>여러분의 논제를 펼쳐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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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공부 감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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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3 Apr 2009 15:14:32 GMT</pubDate>
		<dc:creator>뻘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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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벚꽃 축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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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인천 대공원 벚꽃 축제 기간이라 한번 가봤는데 정말 ........<br><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904/11/82/e0052882_49e0aff1c06f4.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904/11/82/e0052882_49e0aff1c06f4.jpg');" /></div><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904/11/82/e0052882_49e0b0210c7b7.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904/11/82/e0052882_49e0b0210c7b7.jpg');" /></div><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904/11/82/e0052882_49e0b02c3c2b9.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904/11/82/e0052882_49e0b02c3c2b9.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4/11/82/e0052882_49e0b056e763a.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4/11/82/e0052882_49e0b056e763a.jpg');" /></div><br><br><br>볼건 없고 사람만 드글드글드글드글... <br><br><br>봄.<br><br><br><br><br>봄이왔내요. <br><br>...................<br><br><br>넹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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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1 Apr 2009 15:01:09 GMT</pubDate>
		<dc:creator>뻘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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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따라그리기만하는 그림 ,,,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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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애초에 정식으로 미술을 배워본적이없고 남그림만 따라하니까 나의 특징적인 그림 솜씨를 발휘 못하겠다.<br><br>시간이 난다면 학원을 다니고 싶은데...<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3/15/82/e0052882_49bbd5997f615.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3/15/82/e0052882_49bbd5997f615.jpg');" /></div><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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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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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Mar 2009 16:05:2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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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watch men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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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903/14/82/e0052882_49bbba22ab2c2.jpg" width="500" height="741.11111111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903/14/82/e0052882_49bbba22ab2c2.jpg');" /></div><br><br>&nbsp;다층적 미스터리 구성의 스토리 를 주로 쓴다는 '앨런 무어. 작품을 영화화한 왓치맨.<br><br><br>미국가 소련사이의&nbsp; 핵전쟁 위기로&nbsp; 나라 사이간의 긴장감이 돌고있을때.<br>도시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범죄와 맞서 싸우던 히어로들은 국가의 통제를 받으며&nbsp;평범하게 살아가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br><br>국가의 법 제정에 의해&nbsp; 히어로들은 은퇴 선언을 하고&nbsp; 자신을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때<br><br>왓치맨의 일원 코미디언 이 살해된다.<br><br>&nbsp;왓치맨중 비공식적으로 히어로 활동을 하던 로어셰크는 <br><br>코미디언의 죽음의 이면을 파해쳐 내고 <br>&nbsp;왓치맨을 노리고 제거 하려는 커다란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며&nbsp;<br>&nbsp; 지금은 은퇴한 (멘해튼 제외) 동료들과의 접촉을 하게된다.<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903/14/82/e0052882_49bbc519d6915.jpg" width="500" height="737.92486583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903/14/82/e0052882_49bbc519d6915.jpg');" /></div><br>이영화는 1960년대 미국의&nbsp;혼란,공황기 시절의 이면을 보여준다.<br><br>영화를 보았다면&nbsp; 케네디의 암살 미국의 배트남전 미소 amb등<br><br>영화가 그 시대의 드러난 사건들의 조각에 끼워맟춰줘 사실인지 허구인지 우리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br><br><br><br><br>이 영화는 기존 히어로물과는 다르다&nbsp;<br>이야기 순행이 뒤죽박죽 섞여 있고<br>사건 하나하나와 왓치맨들의 사건을 해결 해나가는 과정에서 <br>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제시해준다.<br>이것은&nbsp; 정치적 사회적 비판, 진정한 정의,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는 정의의 한계등<br><br>이런 나의 주관적인 생각 일수도 있고 또 다른&nbsp;메세지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br><br><br>앞서 말했든 이영화는 기존 히어로물과는 다른 영화이다.<br>&nbsp;<br>재미를 중시하여 잘못된 인식으로 비평,방 을 하지말고 <br>이 영화를 보고 영화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보자.<br><br><br><br><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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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영화 감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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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Mar 2009 14:54:2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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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파우스트 -작업중-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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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파우스트<br></p><p>&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904/06/82/e0052882_49d9fcee85af7.jpg" width="437" height="54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904/06/82/e0052882_49d9fcee85af7.jpg');" /></div></p><p><br>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시대에 해당하는 16세기 후반의 독일에 파우스트 박사라고 하는 인물에 관한 전설이 생겨나 항간에 퍼져 있었다. 이 전설은 당시의 민중본 유행의 물결을 타고 1587년에 프랑크푸르트의 출판 업자 슈피이스에 의해 &lt;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gt;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많은 독자를 얻고 다시 이웃 외국에도 번역 소개되기에 이르렀다.</p><p>이 민중본에 의하면 파우스트의 생애는 대략 다음과 같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파우스트는 뷔텐 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신학 박사가 되었으나 오만하고 지식욕에 불탄 그는 신학에만 만족할 수 없어 마술 연구에 몰두하고 다시 의학을 배워 의학 박사가 되고 거기에 또 전문, 수리, 등의 학문에 까지 손을 대어 우주 궁극의 이치를 모두 알려고 애쓴다. 이 끝없는 지식용에 사로잡힌 그는 마법으로 악마를 불러내어 ' 24년간 악마의 도움으로 지상의 모든 지식과 쾌락을 얻는 대신 그리스교의 적으로 행동하고, 약속 기한이 되면 혼과&nbsp; 육체를 악마의 손에 맡기겠다. 고 하는 계약을 맺는다. 이리하여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를 거느리고 우주의 신비에 뛰어들고 별세계며 지옥을 탐방하는 외에 지상 각처에 출몰하여 마법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속인다. 그의 모험은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명부에서 고대 그리스 전설의 미녀 헬레나를 불러내어 그녀와 결혼하고 아들 하나를 낳기에 이른다 . 파우스트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으로 돌아가기를 열심히 권하는 친구의 충고를 냉정히 물리치고 더욱 대담하게 독신 행위를 게속하며 24년의 세월을 보낸다. 끝내 그의 탄식과 후회도 헛되이 그의 생명은 굉음과 더불어 순식간에 끊어지고 그의 혼은 지옥에 떨어져 영겁의 벌을 받는다.</p><p>이 얘기의 주인공에는 실재의 모델이 있어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얼마간 남아 있지만 이 인물의 행적에 몇 개의 마술사 전설이 결부되어 파우스트 전설이 성립된 것 같다. 슈피스의 민중본 머리말에 ' 모든 그리스도 교도가 악마의 꾀하는 것을 알고 제 몸을 삼가 경계하는 바가 되도록. 씌어진 것이라고 밝혀져 있는 것처럼, 이 전설의 근저에는 악마의 존재를 믿고 있던 중세적 종교 관념이 짙게 깔려있다. 또 한편으로 주인공에게서 불수 있는 왕성한 지식욕, 현세 향락, 자연 탐구, 고대 그리스에의 동경 따위는 중세에서 근세로의 전환기인 르네상스 시대 인간성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근세로의 전환기인 르네상스 시대 인간성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p><p>영역된 민중본 &lt;파우스트 박사 이야기&gt;는 세익스피어와 같은 시대의 극작가인 말로우에 의해 &lt;파우스티스 박사의 비극적 이야기&gt;(1758)라는 제목으로 희곡화 되었는데 이것은 다시 독일로 역수입되어 민중본으로 17세기 독일 각지에서 널리 공연되고 다시 인형극으로 개작 되어 민중 사이에 깊이 침투 되었다.</p><p>그 동안 슈피이스 민중본 파우스트의 강렬한 인간적 성격은 차츰 엷어가고, 이에 대신하여 오락 본위의 어릿광대 연극적 요소가 짙어졌다.</p><p>그러나 18세기가 되자 열렬한 진리 추구자로서 파우스트 상이 부활하게 되었다. 계몽시대의 대표적 극작가 레싱의 &lt;파우스트 박사&gt;(1759)가 가장 좋은 예이다. 이 작품은 그 일부분밖에는 전해지지 않지만 가장 주목할 점은 진리를 찾아 그 걸음을 멈추지 않는 자는 결국 신에게 구함을 받는다고 하는 구원의 관념이다. 얘기의 결말에 이르러 파우스트의 혼을 손에 넣은 악마들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할 때 천상으로부터 소리가 있어 신이 모든 욕망 가운데 가장 고귀한 지식욕을 인간에게 준 것은 인간을 영원한 불행에 떨어 뜨리기 위함이 아니다. 너희들이 붙잡은 것은 파우스트의 환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천사가 파우스트를 잠재우고 악마들에게는 그의 환영을 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난 파우스트는 하늘의 경고에 감사하고 한층 정진한다.</p><p>이 이야기를 써보고자 생각하게 된 것은 1770년부터 71년까지에 걸쳐 시트라스부르그에서 헤르더와 친히 지내던 무렵이다. 1773~75년 최초의 저작이 완성되었는데 괴테는 그 원고를 가지고 바이마르로 가서 가끔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곤 했다. 이 원고는 극히 일부를 제외 하고는 전해지지 않지만 바이마르 궁정의 한 여관이 필사 한것이 1887년에 에리히 슈미트에 의해 그녀의 유품 중에서 발견되어 &lt;초고 파우스트&gt; 라고 이름 지어졌다. 이는 &lt;파우스트 제1부&gt;와 마찬가지로 '밤. 의 장면에서 시작하여 감옥에서 끝나는 이른바 &lt;그레이트헨 비극&gt;이&nbsp; 중심 테마를 이루는 것으로,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만남과 계약의 여러 장면, [마녀의 부억],[숲과 동굴]의 주요부분, [발푸르기스의 밤],[발푸르기스의 밤의꿈]등 아직 들어 있지 않았다. 1788년 이탈리아에서 괴테는 이것을 다시 개작할 생각으로 새로운 장면의 일부를 쓰기 시작하고 귀국 후에도 일을 게속하여 [마녀의 부억],[숲과 동굴]등의 장면을 가필하고 [아우벨바하 지하실]을 수정해서 이를 1790년에 &lt;단편 파우스트&gt;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p><p><br>그후 정체 상태에 빠졋던 저작은 친구 쉴러의 격려를 받아 다시 완성을 향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1797년 6월 괴테는 쉴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파우스트에 착수할 결심을 했다. 고 쓰고 이어, [바치는 말]을 썼다. 그로부터 1801년까지 [극장에서의 전희],[천상의 서곡],[밤],[성문 앞], [서재],[발푸르기스의 밤]등이 완성되고 장면에도 많은 가필 수정이 있었다.<br>극의 줄거리와 직접 관계를 갖지 않는 [발푸르기스의 밤의 꿈]은 본래 쉴러의 &lt;시신 연감-Musenalmanacch&gt;(1797)을 위해 씌어진 것인데 거기 싣지 않게 되자 가필을 해 실은 것이다. 이것이 1806년에 나온 &lt;파우스트 비극 제 1부&gt;이다.<br><br><br>-2부 게속-<br><br><br><br><br>&lt;파우스트 제 2부&gt;구상의 싹은 시트라스부르그 시절의 최초 계획 중에 들어 있었는데 &lt;초고 파우스트&gt;에서는 아직 씌어져 있지 않다 이탈리아 여행중 &lt;파우스트&gt;완성의 구상을 하던 괴테의 머릿속에는 제1부의 구상과 더불어 주인공의 구원을 다루는 제2부의 그것도 퍽 명확한 형태로 떠올랐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리하여 제 1부가 완성을 향해 마지막 걸음을 치달리기 시작한 1797년에는 이미 제2부가 착수되고 1800년에는 제 3막의 이른바 [헬레나의 극]의 첫부분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후에는 집필이 중단되고 1816년 경에는 작품의 완성을 단념하려고까지 생각했는데 그 대신 계획의 줄거리만이라도 자서전 &lt;시와 진실&gt;에 삽입해서 남기려고 &lt;파우스트 복안&gt;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의 생존 중에는 발표되지 않았다.<br><br>1825년 괴테의 내부에는 제2부의 완성에 대한 의욕이 다시 솟구쳐오른듯하다. 쉴러가 없는 지금, 격려자 역할을 맡은 것은 &lt;괴테와의 대화&gt;의 저자로서 에커만이었다. 괴테는 이제까지 초고와 줄거리를 다시 읽어 본 다음 우선 제 3막의 [헬레나 극]을 이전 게획을 일부 변경하여 써내려가 이듬해 6월에 완성했다. 1827년 봄, &lt;헬레나 고전적 낭만적 환상극. 파우스트의 막간극&gt; 이라는 제목의 독립된 한 편으로&nbsp; 발표한 것이 이것이다. 이 &lt;헬레나&gt;에 덧붙이려고 괴에테는 1826년에 다시 두편의 &lt;파우스트 복안&gt;을 썼는데 에커만 등의 설득으로 이 복안은 끝내 발표되지 않았다.&nbsp; <br><br>제 1막과 제 2막의 개작은 1826~30년에 완성되었다. 1831년에는 제 4막, 제 5막의 제작에 심혼을 기울였다.<br>이리하여 그해 8월 중순경 초고가 완성. 겹겹으로 봉인되어 책상위에 놓여졌는데, 그뒤에도 괴테는 다시 여기에 추고를 가하려고 한 흔적이 있다.다음 32년 3월에 괴테가 세상을 떠나자 관계자들이 출판에 착수. 그해 안에 &lt;파우스트 비극 제2부&gt;전 5막이 괴에테 유작집 제 1권 형식으로 발표되었다.<br><br><br><br><br>이상에서 밝혀진 것처럼 기고 이래 60년의 세월을 거쳐 이루어진 &lt;파우스트&gt;는 참으로 괴테의 필생의 대작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의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잘 이해는 못했다. 12번째 읽는중이지만)<br><br>그것은 단지 저작상 긴 세월이 걸렸다고 하는것뿐만 아니라 작품 그것이 시인의 인간적 성장과 걸음을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br>&lt;파우스트&gt;는 그대로 괴테의 생애가 투영된 결정체라고 할수있다 더우기 그것은 괴테 개인의 성장을 반영할 뿐만아니라 &lt;괴테 시대&gt;라고 부르는 독일 문학 사상에서도 가장 다채롭고 변화 많은 한시대의 발전적 기념비라고 할 수있다.<br><br>&lt; 내용 구성 &gt;게속..</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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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독서 감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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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Feb 2009 04:31:33 GMT</pubDate>
		<dc:creator>뻘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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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어니스트 헤밍웨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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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어니스트 헤밍웨이<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902/06/82/e0052882_498ba45b42d4e.gif" width="445" height="72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902/06/82/e0052882_498ba45b42d4e.gif');" /></div><br>미국의 현대문학은 대개 1910년에 시작되어 20년대로부터 30년대에 걸쳐 개화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개화기의 미국 문학을 이끈 것은 아무래도 제 1차 세계 대전 으로 사상적 환멸을 느낀 이른바 &lt;로스트 제너레이션&gt;의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lt;로스트 제네레이션&gt;이란 전쟁의 체험 때문에 종교도 도덕도 인간적인 정신도 다 무너져 희망을 잃고 절망과 허무에 빠진 미국의 젊은 지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대개 18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로 그들의 나이가 마침 병역 적령기일 때 미국이 세계 대전에 참가하여, 그들도 유럽 전선에 나가 전쟁의 쓰라린 경험을 하고 돌아와 전후 환멸의 분위기 속에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여 미국 문학을 이끈 사람들이다 그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적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이다<br /><br /><p>&nbsp;헤밍웨이는 1899년 7월 21일 일리노이주 오우크 파크에서 클라렌스 에드먼즈헤밍웨이를 아버지로, 그레이스 홀 헤밍웨이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아들둘,딸 넷 중 에서 둘째로, 아들 중에선 장남이었다. 아버지 클라렌스는 의사로,턱수염이 많은 체격의 좋은 남자였다. 그러나 그 외모와는 달리 마음은 지극히 내향적이고 다소 신경질적인호인이었던 모양이다. 낚시와 사냥을 무척 좋아해서 어니스트가 아직 세살도 되기전에 낚시 도구를 어깨에 메어주고,열 살이 되자 엽총을 쥐어 주었다. 어머니 그레이스는 시카고의 부유한 주식 중개인의 딸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결혼하기 전까지는 뉴옥에서 성악 공부를 했다. 결혼 후에도 집안에 스테이지가 딸린 음악실을 만들어 놓고 요즘 말하는 이른바 음악 교실을 열어 피아노와 성악을 가르쳤다. 그래서 신참 개업의 였던 남편 클라렌스가 한달에 겨우 오륩십 달러를 버는 데 반해 그녀의 월수입은 거의 1천 달러에 가까왔다.<br>미시간 주에 워룬 이라는 호수가 있다. 어네스트가 소년이 었을때 헤밍웨이 일가는곧잘 이 호수가에서 한여름을 보내곤 했다.<br>때떄로 아버지는 그곳 숲 안쪽에 있는 인디언 마을로 회진을 나가곤 했다. 그런 때는 곧잘 장남 어니스트를 데리고 갔다. 어니스트는 맨발로 숲속과 늪지대를 걷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한 소년 시대의 경험을 그는 최초의 단편집 &lt;우리들 시대에&gt;속에 수록된 &lt;인디언 마을&gt;속에서 묘사했다. &lt;우리들 시대에&gt;수록된 13개의 단편 중, 닉 애덤즈를 주인공으로 한 이른바 &lt;닉 애덤즈 이야기&gt;가 6편 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작자 자신의 분신으로, 소년기에서 청년기에 걸친 닉의 그 고동스러운 인간형성의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헤밍웨이 자신의 성장을 용이하게 엿볼수 있다.<br>오우크 파크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은 1913년 가을이었다 입학하자 그는 운동부원이 되어 축구,육상,수영,사격,권투 등 모든 스포츠에 손을 대고 특히 축구에 열중햇다. 한편 문학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해 세익스피어,디킨즈,스티븐슨,키플링의 작품을 탐독했다.당시 이학교에는 화니 빅즈라는 여교사가 있었다. 단편 소설과 저널리즘과목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독창적인 수업 방법으로 학생들간에 인기가 높았다.학교에 창작 클럽이라는 것이 있어 그는 빅즈 선생의 지도 밑에 포우.오 헨리.링 라트너 들을 모델로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빅즈 선생은 학교에서 나오는 계간지 &lt;타뷸라&gt;의 편집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어니스트가 쓴 단편&lt; 마니토어의 심판&gt;&lt;색의 문제&gt; &lt;세피 징강&gt;등이 이 잡지에서 처음으로 활자화 되었다. 이 단편들은 어느 것이나 북미시간의 워룬 호반에서 살 때 인디언한테서 들은 인디언의 전설이며,개척 시대 미시간 숲속에서 일어난 전투이야기 들이었는데, 문자 그대로 습작에 지나지 않았으나 헤밍웨이가 즐겨 다루는 자연과 폭력의 문제가 이미 이때부터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br>이 무렵에 그는 두 번이나 가출을 했다. 그 자신은 이 일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않았으나 성격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우세한 가정의 분위기에 가끔 혐오를 느껴, 그것이 그 감수성이 강한 결벽한 마음 때문에 집을 뛰쳐나가 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동기가 되었던것 아닌가 생각된다.&nbsp; 후의 단편 &lt;복서&gt;는 이러한 가정적인 체험을 쓴 것이다. 1917년 4월,미국은 제1차 대전에 참가했다. 이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니스트는 곧 징집에 응해 전장에 나가기를 바랐으나 아버지의 강경한 반대로 할수없이 단념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오직 집에서 떠나 있고만 싶었다.<br>그해 가을, 캔자스 시티에 사는 숙부의 소개로 &lt;캔자스시티 스타아&gt;라는 신문사에 입사했다. 당시 &lt;스티아&gt; 지는 중서부 최대의 신문으로 알려져 있었고, 특히 신입 기자를 잘 훈련하는 곳으로 정평이 있었다. 사풍은 대한히 엄격했지만 사내에는 활기가 넘쳤다. 이신문사에서는 기사를 쓰는 데 몇 가지 &lt;주의사항&gt;을 만들어 놓고 신입 사원에게 그것을 지키도록 했다. 예를 들어 문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의가 주어졌다. '짧은 문장을 써라. 특히 첫머리 한 줄은 짧게 써라. '힘있는 영어를 써라. 적극적이고 소극적이 되지 말라. '낡은 속어를 쓰지말라. 속어는 신성하지 않으면 안된다.<br>&nbsp;'형용사를 쓰리말라. 특히 spiendid,gorgeous,grand,magnificent 등 과장된 형용사를 써서는 안된다.<br>이들 &lt;주의사항&gt;은 한결같이 뒷날 헤밍웨이의 문장의 특징을 이룬 것들이다. 이 무렵에 그가 이미 자기의 문체를 확고히 굳혓다고는 할 수없으나 이곳이 그의 문장 수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br>당시 &lt;스티아&gt;에는 라이오넬 겔혼 모이즈라는 명물기자가 있었다. 재치가 잇고 술을 좋아했으며 여자 관계도 무지 복잡했으나 문학을 좋아하고, 생 시몽, 키플링, 콘래드 ,드라이저 등을 좋아해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쓰는 것만이 스토리 텔링의 유일한 진실된 방법이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헤밍웨이는 이 선배로부터 취재 방법이며 기사 쓰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배운 것은 술집과 카페에서 그가 들려 준 문장론과 작가론이었다. 나중에도 모이즈는 헤밍웨이의 작품을 열심히 읽어 주고, 작품 &lt;살인자&gt;에 대해서는&nbsp; '대화와 행동과 최소한의 묘사만을 한 순수한 객관성의 한 예다. 라고 비평했다. &lt;우리들 시대에&gt; 제10장의 짧은 묘사,&nbsp;&nbsp;<br>샘 카디넬라라는 사형수의 처형 장면은 &lt;스타아&gt;지에 게재된 기사를 근거로 쓴 것이로 &lt;여자 없는 세계&gt;속의 &lt;추걱&gt;에도 이 시기의 체험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진작부터 종군열에 불타 있던 헤밍웨이는 이듬해 마침 적십자사에서 행하고 있던 이탈리아 전선에 나갈 지원자 모집에 응모, 5월 12일 정식으로 중위가 되어 적십자사에서 군복을 지급받았다. <br>6월중순, 그는 밀라노 교외 전선에서 처음으로 전쟁과 부딪쳤다. 죽은 사람을 수용하고 토막난 시체를주워모을&nbsp;때 받은 강한 인상은 단편 &lt;죽은자의 박물지&gt;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어 북이탈리아 전선에 출정, 7월8일&nbsp;한밤중 삐아베 호반 뽀살따 전투에서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그는 곧 들것에 실려 후송되어 야전 병원에서 닷새를 지낸 뒤 밀라노 육군 병원 으로 옮겨졋다.<br>포탄으로 받은 부상은 무려 2백 70군데난 되었고, 두 다리에서만 28개의 파편을 꺼냈다. 열 번 이상이나 수술을 받았으나 오른쪽 다리는 이듬해 귀국한 뒤까지도 낫지 않아 한동안은 지팡이에 의지해 걷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후 한동안 그는 신경병인 심한 &lt;어둠속의 공포&gt;에 사로잡혀 단편 &lt;자리에 누워서&gt;, &lt;아무도 모른다&gt;의 주인공 그대로, 낮에는 자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으면 그는 언제나 자기 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br>이 병원에 잇을 때, 아그네스 폰 그로스키라는 독일계 미국인 간호원과 사랑에 빠졌다. 외출이 허락되면 같이 교외로 나가 경마도 하며 데이트를 즐겼으나 연상이었던 그녀의 거절로 결혼까지는 가지 못했다. 전쟁,입원,간호원과의 사랑, 이것은 그대로 ,무기여 잘 있거라&gt;의 상황과 같은데, 이 아그네스와의 관계가 적어도 이 장편 소설의 구성 전반을 차지 하고 잇는 것만은 사실이다.<br>1919년 1월 4일 제대한 그는 1월 21일 뉴옥으로 돌아왔다. 이탈리아에서 부상당하고 돌아온 최초의 미군 병사로 그는 갑자기 주목의 대상이 되어 신문에도 화려하게 오르 내렸다. 고향 오크 파크에서 이 명예로운 귀환병을 맞이하여 굉장한 법석이었다. 그는 모교에나가 강의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전쟁 이야기를 해주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리품을 보여주며 매우 명랑하게 지냈으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lt;사병의 고향&gt;의 귀환병 크리고레브스가 고향의 우울한 생활에 견딜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집과 어머니를 버리고 캔자스시티로 사라지는 것처럼 헤밍웨이도 그 고장에서 도망치려고 마음먹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먼저 북미시간으로 가서 낚시와 창작에 몰두했다. 얼마후 그는 아버지 친구의 소개로 캐나다 토론토의 주간지 &lt;스타아 위클리&gt;의 임시 기자가 되어 1920년 5월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그동안 몇 편의 매우 풍자적인 단문들을 써서 그 신문에 실었다. 연말에 일단 집에 돌아왔으나 어머니와 불화가 끝내 파탄에 까지 진정해 그는 다시 집을 뛰쳐나가 시카고로 가 친구집에서 딩굴엇다. 시카고시 동부 시카고거리에 Y.K스미드라는 사람이 살고있었다.광고업을 하고 있었는데, 문학을 무척 좋아하여 샌드버그며 앤더슨하고도 친교가 잇었고, 주로 문학적 야심에 불타는 가난한 청년들을 많이 돌보아 주었다. 스미드의 집에는 언제난 유명,무명의 시인이며 작가들이 모여 밤늦게까지 문학 토론을 했다. 헤밍웨이는 이 살롱의단골이었다. 21년 초에 그는 스미드의 소개로 처음으로 셔우드 앤더슨을 알게 되었다.<br>&lt;오하이오 주 와인즈버그&gt;를 읽고 이미 이 작가에 기울어지기 시작했던 그는 직접 그 인품을 접하자 곧 끌려들어갔다. 앤더슨도 이 스물 한 살 난 무명의 청년의 문학적 재능을 꿰뚫어보고 특별한 호의를 나타내 주었다.<br>스미드의 누이동생에 게이트라는 작가 지망의 젊은 미혼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후에 작가인 도스패소스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해 여름 게이트의 대학 동창인 헤드리 리처드슨이 게이트를 찾아 센트루이스에서 시카고로 왔다. 게이트의 소개로 헤드리를 알게 된 헤밍웨이는 갑자기 돌풍처럼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해 9월에 결혼했다.<br>그 무렵 앤더슨은 처음으로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에서 거트루드 스타인이며 제임즈 조이스 등을 만나고 왔다. 앤더슨이 흥분한 어조로 말하는 파리 문학계의 동정은 헤밍웨이의 미국을 탈출하고 싶은 기분을 크게 부채질햇다. 그때 마침 &lt;스타아 위클리&gt;지가 해외 특파원을 찾고 있음을 알고 바로 계약, 그해 12월 초 부인과 함께 다시 대서양을 건넜다.<br>스페인을 지나 파리에 도착한 헤밍웨이가 앤더슨의 소개장을 가지고 거트루드 스타인을 찾아간 것은 이듬해 22년 3월 초였다. 10903년 이래 파리에 옮겨와 살고 있던 스타인은 이미 저서 두 권을 내고 전위적인 작가로 파리 그룹에서도 특이한 존재였다. 당시 그녀의 살롱에는 미국의 젊은 지식인들이 많이 모여들여 활기에 넘쳐 있었다. 스타인여사는 이들 젊은 지성인들을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자아 형성기에 전쟁을 체험하여 종교와 도덕, 기타 인간적인 모든 가치를 잃어버리고 절망과 허무에 빠진 이들 전후파 청년들을 부르기에는 정말 적절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미국 문화의 선조였고, 그들의 선망이기도 했던 유럽문화가 실제로 와서 보았을 때 이미 전성기를 지나고 퇴페와 몰락의 심연으로 빠지고&nbsp; 있다는, 이른바 우중의 절망감을 느꼈다. 허자먼 덩사 아둘 &lt;로스트 제너레이션&gt; 중엔 그 이전의 미국 문학을 뒤집어엎고도 남을 만학 문학적 재능의 개화가 많이 있었다. 헤밍웨이,포크너,도스패소스,피츠제럴드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br><br>이어 헤밍웨이는 에즈라 파운드와도 친교를 맺었다. 파운드는 1907년에 미국에서 유럽으로 건너와 파리에 살다 나중에 런던에 정착했다. 스타인도 파운드도 헤밍웨이의 원고를 정성스럽게 읽어 주고 항상 유익한 조언을 주었다. 스타인은 곧잘 '묘사가 지나치게 많다 좀더 압축하여 짧고 간결하게, 하고 충고해주엇고, 파운드는 어느 다년을 보여 주자 그 즉시 빨간 글씨로 형용사를 모두 삭제해 버리고, 플로베르를 공부하라고 권했다고한다.<br>그는 이 두 조언자의 날카로운 관찰 밑에서 더욱더 그 독특한 문체의 구성법을 익혀 갔다.<br>한편 생활의 지주가 되는 특파원의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br>22년 가을에는 종군기자로 그리스,터키 전쟁에 종군하기 위해 급히 소아시아로 갔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동트라키아 지방을 지프로 달리며 후퇴하는 그리스 군의 모습을 샅샅이 관찰했다. 그는 그때 비가 내리퍼붓는 진창 속을 달리는 병사와 가재 도구를 마차에 싣고 피난하는 피난민들의 모습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앗다.<br>이 인상은 뒤에 &lt;우리들 시대에&gt;에 몇&nbsp; 개의 풍경으로 나타났고, 또 ,&lt;무기여 잘있거라&gt;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카포레토의 퇴각묘사에서 훌륭하게 재현되어 있다.<br>그해 11월, 그리스 터키 전쟁의 강화 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로잔으로 갓다. 그때 불행한일이 일어났다.<br>&nbsp;그보다 몇일 늦게 파리에서 로잔으로 오던 아내 해드리가 리용 역에서 차를 갈아탈 때 여행 가방을 도둑 맞은 것이다. 그 속에는 그가 지금까지 써모은 소설과 시의 원고 거의 전부가 들어 있었다. 헤밍웨이는 이들 원고를 로잔에 묵고 잇는 미국저널리스트 링스컨 스테판스에게 읽어 달라고 하기 위해 일부러 아내를 시켜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스테판스는 그의 재능을 높이 사고 잇던 이해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 사고로 미안으로 그친 장편을 포함하여 그의 작품 거의 전부가 없어진 셈이었으나 그는 그타격에도 조금도 굴하지않고 더욱 활발히 창작 활동을 게속 했다.<br>1924년 1월. 에즈라 파운드의 소개로 포오드 마독스 포오드와 알게되고 그가 발간하고 있던 &lt;트렌스 아틀랜틱 레뷰&gt;지의 편집 스텝에 참여하여 원고를 수집하고 교정하는 한편 그 자신도 거의 매호 단편이며 스케치를 기고했다. 그안에는&lt;의사와 그의 아내&gt;며&nbsp; 후에 &lt;인디언 부락&gt;으로&nbsp; 이름을 바꾼 단편들이 들어있다. 3월에는 파리 판 &lt;우리들 시대에&gt;가 출판되었다.<br>&nbsp;&lt;리틀 레뷰&gt;지에 게재되엇던 6편의 단편에 다시 12편을 덧붙인 것으로 발행 부수는 겨우 백 70부에 불과햇으나 당시 이름이 높던 평론가 에드먼드 월슨의 눈에 띄어 굉장한 평가를 받았다. 그무렵 파리에는 스코트 ,피츠제럴드,도스패소스,아취발드,매클리쉬등 그로부터 수년 후 미국의 문학을 리드할 작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영국에서는 제임즈 조이스가 와 있었다. 헤밍웨이도 이들 작가들과 어울려 같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고 문학 토론에 열을 올렸다. 무척 혜택받은 문학 환경이라고 할수 있었다. 1925년 10월 미국판 &lt; 우리들 시대에&gt;가 보니 앤드 리버라이트 사에서 출판 되었다. 영국국교 기도서 속의 &lt;신이여,우리들 시대에 평화를 주소서&gt;라는 데서 제목을 딴 이 단편집은 어느 것이나 각 장 서두에 스케치풍의 단문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투우, 전쟁,살인 등 평화와는 동떨어진 폭력과 고민의 세계를 그린 것들 이었다. 이어 &lt;봄의 분류 &gt;를 쓰기 시작해 10월에 끝냈는데, 이책은 이듬해 26년 5월 피츠제럴드의 주선으로 뉴옥의 스크립너 사를 통해 출판되었다.<br>1926년 10월 최초의 장편 &lt;해는 또다시 뜬다&gt;가 스크립너 사에 의해 출판되었다.<br>발매되자마자 굉장한 반향을 일으켜 이 한 작품으로 그의 명성은 일약 확고해졋다.<br>이듬해 그의 신상에는 약간의 변동이 일어났다. 27년 1월 이미 1년 이상이나 별거하고 있던 아내 헤드리와 정식으로 이혼하고, 그해 여름 &lt;보오그&gt;지의 특파원으로 파리에 와 있던 포올린 파이퍼와 재혼했다. 그리고 1928년 초부터 장편 &lt;무기여 잘있거라&gt;의 구상에 착수해 그해 3월에 쓰기 시작했다. 이 장편이 끝난 것은 8월 말이라고 하니까 거의 7개월이 걸렷다고 볼수있다. 이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와 캔자스주에 머무는 도중 차남패트릭이 태어났다. <br>이두 번째 의 장편은 이듬해 29년&nbsp; 스크립너 사의 잡지 &lt;스크립너즈&gt;에 연재된 후, 9월말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엇는대 이것이 활자화되기까지에는 그 유명한 추고가 몇번이고 되풀이 되었다. 맨 마지막 장은 실로 열 일곱&nbsp; 번이나 고쳐 썼는데, 초판은 3만 1천부가 간행돼 4개월 동안 8만 부 가까이나 팔렸다.<br>이 소설은 이듬해 극화되어 뉴옥 무대에서 상연되고 32년에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되었다.</p><p>&nbsp;</p><p>32년에는 그의 투우열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lt;오후의 죽음&gt;을 내고 33년 가을에는 단편집 &lt;이긴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라&gt;를 냈다. 이단편집에 수록된 14편중에는 &lt;세상의 빛&gt; &lt;아버지와 아들 등 6편의 미발표 작품도 들어 있었다. 헤밍웨이는 이투우에 임하는 인간의 의지를 단편 &lt;불패자&gt;에서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br>그는 1925년경 부터 투우에 관한 책을 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29년 여름을 스페인에서 지내는 기회를 이용해 차분히 투우를 구경한 후 집필하고 시작해 이듬해 가을에는 대체적인 윤곽을 세워 32년 1월에 완성했다. 이해에 3남 그레고리가 태어났다. 35년에는 아프리카 여행기 &lt;아프리카 푸른 언덕&gt;을 출판했다. 이것은 33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다섯 달동안, 동아프리카로 수렵 여행을 갔을때얻은 수확을&nbsp; 모은것인대 &lt;아프리카 초원이라는 제목으로 &lt;스크립너즈&gt;에 35년 5월호부터 10월호까지 게재되고 10월 25일 &lt;아프리카의 푸른 언덕&gt;으로 이름을 바꾸어 단행본으로 나왓다.<br>&nbsp;이 여행에서 얻은&nbsp; 경험을 토대로 그의 대표적 단편 &lt;킬리만자로의 눈&gt;을 썼는데 이 작품은 헤밍웨이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 요소가 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해리가 회상하는 콘스탄티노플, 그리스 터키 전쟁,파리에서 보낸 다다이스트들과의 생활, 와이오우밍의 목장 제1차 대전 등 은 그 거의 전부가 실제로 헤밍웨이가 체험한 것들이다 이작품 회상에 등장하는 인물은 처음 스코트 피츠제럴드라는 실재 인물의 이름이엇는대 피츠제럴드의 항의로 쥬리안으로 바꿨다고 한다.<br>이 작품과 더불어 헤밍웨이의&nbsp; 가장 성공적 단편으로 손꼽히는 &lt;살인자&gt;역시 그 독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딜레마를 느끼게 하는 허무성 때문에 삶의 한 단명을 예리하게 포착 부각시킨 수작이다.</p><p><br>&lt;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gt;도 이 1936년의 아프리카 여행 결과 발표된 작품이다 36년 7월,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자 헤밍웨이는 스스로 앞장서서 정부군 &lt;공화파&gt;의 지원 캠페인을 벌여, 연말까지 4만 달러를 모아 이것을 스페인에 보냈다. 이듬해 1월에는 &lt;스페인 민주주의 아메리카 지원회&gt;에 가입하여 의료 관계의 위원장직을 맡았다. 다시 2월 말에는 &lt;신문 연합&gt;의 툭파원으로 현지에 가 정부군 기록영화 &lt;스페인의 대지&gt;의 제작을 도왓다. 6월에는 일단 귀국하여 &lt;제 2회 전미 작가 회의&gt;에 참석하고 뉴옥 카네기 홀에서 &lt;작가의 전쟁&gt;이라는, 그로서는 최초이며 최후인 연설을 했다. 8월에는 다시 스페인으로 건너가 주로 마드리드에 머물럿다. 파시스트 군을 지원하는 도이치군의 폭격을 받으면서 마드리드 플라리다 호텔의&nbsp; 한 방에서 희곡 &lt;제 5열&gt;을 썼다.<br>10월에는 세번째의 장편 &lt;가진 자 와 안가진 자&gt;가 출판되었는데 이것은 헤밍웨이에게 있어 일종의 전환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있다.<br>30년대에 미국을 엄습해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학까지 그 소용돌이 속에 휘몰아 넣은 대공황의 그림자가 이 작품의 배후에 상징적으로 짙게 깔려 있는데,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서 사회의 부정을 낱낱이 독자 앞에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lt;콜리어&gt; 지의 특파원으로 마드리드에 와 있던 여류 작가 마아다 겔혼과 다시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진 것도 바로 이 마드리드 체재중에 일어난 일이었다.</p><p>스페인 내란은 1939년 3월 파시스트 측의 승리로 끝났다. 헤미우에이가 &lt;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gt;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이때부터 그는 실로 18개월간이나<br>이 장편에만 매달렸다. 이소설은 10월 21일에 출판돼 초판이 7만 5처부, 연말까지 약 20만 부가 팔리고 이듬해 4월까지 50만 부가 팔렸다. &lt;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gt;를 완성하자 헤밍웨이는 둘째 부인 포올린과 이혼하고 마아다 겔혼과 결혼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아바나 근교에 광대한 저택을 사 그곳으로 옮겼다.<br>1939년 9월에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2년 후에 미국이 참전했다. 헤밍웨이는 44년 봄 &lt;콜리어&gt; 지 특파원으로 이듬해 3월 다시 아바나의 저택으로 돌아왔다.<br>그리고 그는 마아다와 이혼하고, 이듬해 3월 다시 아바나의 저택으로 돌아왔다.<br>49년 초 매어리와 같이 유럽으로 가 북이탈리아 고르치나 단베치오에 묵으면서 &lt;강 건너 숲속으로&gt;를 썼다.<br>51년 6월에 어머니가 돌아갔는데, 그 무렵 그는 다음작품 &lt;노인과 바다&gt;집필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중편 소설은 52년 &lt;라이프&gt;지 9월1일호에 전재 되고 단행본은 9월 8일에 나왔다. 대단한 호평으로 비평가들은 다투어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br>&lt;노인과 바다&gt;는 쿠바 해안에 사는 한 늙은 어부가 오랫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끝에 바다에 나가 자기의 고깃배보다 큰고기를 발견하고 이틀 낮 이틀 밤을 싸운 끝에 겨우 잡으나 돌아오는길에 상어떼의 습격을 받아 새벽에 항구로 돌아왔을 때는 길이 18피트나되는 물고기가 겨우 머리와 뼈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어딘가 예술가의 창조적인 고투를 상징한 듯한 작품이다. 온갖고난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끝가지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는 불굴의 인간 모습이 늙은 어부를 통해 힘차게 묘사되어 있다.<br>헤밍웨이는 1953년 여름, 아내를 데리고 스페인을 거쳐서 아프리카로 수렵 여행을 떠나 1954년 1월 우간다의 마치슨 폭포 근처에 이르렀을 때 비행기 사고를 만나 두개골이 파열되고 내장 기관까지 다쳤다. 같이 탓던 부인도 늑골이 두개나 부러졌다. 이 사고로 그후 헤밍웨이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해에 노벨 상을 받앗으나 건강이 나빠 수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p><p>&nbsp;</p><p>그로부터 5년 후 넌픽션 &lt;위험한 여름&gt;이 &lt;라이프&gt;지 60년 9월호부터 연재됐다. 1960년봄<br>&nbsp;쿠바에서 아이다호우 주 케참으로 집을 옮겼다. 그리고 그해 11월 미네소타 주 로체스타의 메이요 병원에 입원했다. 고혈압에 당뇨병 증세도 있었으나 주로 노이와로 치료에 중접을 두어 15회에 걸친 전기 치료를 받은 뒤 퇴원, 케참 자택에 돌아와 몇 달 전부터 쓰기 시작한 &lt;이동 축제일&gt;의 매듭을 서둘렀으나 20년대의 파리회상기는 끝내 그가 죽은 3년뒤인 64년에 유작으로 출판 되었다.<br>건강은 구후에도 조금도 차도가 없어 그는 때때로 엽총을 들고 창가에 서서 자살할 기미를 보이곤 했다. 그리고 쉴새없이&nbsp; '이제 써지지않는다, 이제 써지지 않는다. 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1961년 4월 하순 로체스타 병원에 다시 입원하기 위해 집을 나올 때도 집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엽총으로 자살하려고 했다.<br>돌연한 불행은 7월 2일 오전 7시 30분경에 일어났다. 2층 침실에서 자고 있던 메이리 부인이 총성에 놀라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가 보니 헤밍웨이는 총걸이 앞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그가 특별히 주문하여 애용하던 엽총이 발 밑에 아무렇게나 굴러 떨어져 있었다.<br>부인은 경찰과 의논하여 사고사 라고 발표했으나 자살임이 분명했다. 장례식은 7월 6일 케참에서 행해지고, 유해는 시 북쪽 작은 언덕위 묘지에 매장되었다.<br>장례식 때 미망인과 아들들은 목사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전도서)의 일절 &lt;해는 또 다시 뜬다&gt; 권두에 실린 그일정을 낭독하게 했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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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인물 소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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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Feb 2009 03:58:3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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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훈육과 교육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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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육이란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강제적,폭력적 작용이다. 교육이란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한 쪽의 인간의 욕구와, 획득한 지식을 전하려고 하는 다른 쪽 인간의 욕구 두가지를 기초로 하는 자유로운 인간관계이다 교수는 교육및 훈육의 수단이다. 훈육은 강제적인 교육이다 .교육은 자유로운 것이다.<br><br>훈육이란 한쪽의 인간이 다른쪽의 인간을 자기와 같은 인간으로 만들려는 하나의 지향이다(가난한자가 부유한 자의 재산을 빼앗으려고하는 자의 마음 젊은이를 보았을때 노인의 성망감 등등) 훈육자가 열심히&nbsp; 유아의 훈육에 임할수있는 것은 그 지향이 유아의 순결함에 대한 선망과 유아를 자기와같은 타락한것 더러운 인간으로 만들고싶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br><br><br>대학에는 교수들의 입에 담을 수 없는 교리가 잇다. 즉 교수는 로마법왕,신같이 절대로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없다고 하는 교리이다. 그뿐아니라 교수에의한 학생들의 교육은, 이교도인 사이에서처럼&nbsp; 은밀이 행해져 학생들에게 절대적 존경을 요구한다 교수는 일단 임명되자마자 즉시 강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교수가 선천적으로 바보이든 학문에 흥미를 잃고 있든 성격적으로 경멸당하여 할 인간이든 그가 살아 있는 한 강의를 게속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기들의 만족 또는 불만족을 표명할 수단을 전혀 갖지 않는것이다.<br><br><br>학교는 가정만이 담당하여야 할 훈육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학교는 상을 주거나 벌을줘서 안되며, 또 그와 같은 일을 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 최선의 학교 관리란, 생도에게 학습의 완전한 자유와 자치를 주는데 있다.<br><br>자유야 말로 생도에게 잇어서나 교사에게 있어서나 모든 참다운 교육의 불가결한 조건이다 이것은 지금도 다름없이 내가 믿고 있는 바이다. 요컨대 벌로 위협하거나 상 을 준다고 약속하여 어떤 지식을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은, 진정한 교육에 도움이 되지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제일 큰 방해가 되는 것이다. <br><br><br><br><br>이런말을 보면서&nbsp; 우리나라학교의문제가 많이있는것 같습니다.<br>아이들은 성적분류로 반을나누고 차별하여 이간질하여&nbsp;친구 관계를끊어버리고 <br>대학교를위해 밤 9~10시까지 야자를하는 학생들과&nbsp; 반을 돌아다니며 감시하는 선생님들.<br>&nbsp;선생님 문제만 아니고 <br>요즘 학생들은 담배를피고 오토바이를 타고 그외 폭력을 일삼습니다.선생님의&nbsp;가르침에불신하고 비행의길로가는둥<br>학생들은 몰래나가 담배를피우고&nbsp; 3~5교시쯤에나 잠깐잠깐 들어와 수업분위기를 망치고 <br>툭하면 싸움나고&nbsp; 구석이나 한적한곳에선 풍기문란한 행위를 합니다.<br>이런 안좋은 환경의 학교가 제가모르는 곳에도 많이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제가보거나 겪은 사례들)<br><br>입시나진학문제보다는 이런 학교들의 환경을최우선으로 개선 하는게 학생들과 선생님을위한 최선의 길이 아닐까&nbsp;생각합니다<br>(사실상 힘들지만;)<br><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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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Feb 2009 05:19:55 GMT</pubDate>
		<dc:creator>펄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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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교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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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사람이 자기의 얼굴이나 육체에 자만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그리고 자기의 부모나 조상이나 친구나 계급,민족을 자만하는것도 그것을 과장하느 바보같은 일이다.<br>이 세상의 악은 대부분 이 바보같은 교만에서 비롯된다. 사람과 사람과의 으르렁거림도, 집안과 집안과의 다툼도, 민족과 민족과의 전쟁도 모두 교만에서 비롯된다.<br><br><br>누구든 자기는 다른 사람보다 총명하고 선량하며 뛰어나다고 생각할수는 없다. 어느 누구도 자기의 지능과 미덕의 가치를 알 수는 없고, 더구나 남의 지능과 미덕의 진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이다.<br><br><br>교만심과 자기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의식하는 일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교만심은 타인의 겉치레의 경의와 겉치레의 칭찬에 의해서 더해간다. 자기의 가치의식은 꺼구로 타인의 모멸과 비난에 의해서 강해진다.<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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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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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Feb 2009 04:44:34 GMT</pubDate>
		<dc:creator>펄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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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momento mori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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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momento mori(죽음을 잊지 말라' 라는 뜻의 라틴어)라는 말이 있습니다.<br>우리 인간들이 죽는다는 것은 필연이다. 이 일을 우리들이 항상 기억하고 생활을 한다면 우리들의 모든 생활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될것입니다. 만일 어떤사람의 삶이 30분박에 남지않았다는 걸 그 당사자가 안다면 그는 바보같거나 시시한 일&nbsp;나쁜짓등 필요없는 행동으로 시간을 낭비하려 하지않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삶이 80년이 남았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 30분과 80년이 다르게 느껴질까요?<br><br>우리들은 지금의 나를 봐야 합니다.&nbsp; 내일의 또는 과거의 일을 생각하지말고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가를 끊임없이 생각하여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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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category>

		<comments>http://pulgul.egloos.com/2277041#comments</comments>
		<pubDate>Tue, 03 Feb 2009 04:37:34 GMT</pubDate>
		<dc:creator>펄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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