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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후 다섯시의 世界 - since 2006100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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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느슨한 현은 결코 제대로된 소리를 낼 수 없다. 끊임없이 채찍을 들어라ㅡ 그럼 천리 길을 능히 달릴 것이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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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31 Oct 2009 03:19:2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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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후 다섯시의 世界 - since 2006100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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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한 시대가 끝났다 - 김대중과 박정희에 부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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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nbsp;</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 원문 중 어떤 부분은 직함과 높임을 쓰고 어떤 부분은 성함만 썼다. <br>전자의 경우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할 때이고, 후자의 경우 개인적인 감상을 적을 때일 것이다. 혼동없기 바란다. <br></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김대중 前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故 노무현 前 대통령, 그리고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까지. 2009년은 한국 현대사 연보에 제법 비중있게 기록될 것이다.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단상은 아마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2009년의 오늘을 비통하게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써, 후일에 2009년을 기억할 때에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었음을 깨닫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감히 이렇게 나름의 감상을 끄적거리려 한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strong>한 시대가 끝났다</strong>”고-</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br>&nbsp;정확하게 30년 전 1979년 10월 26일, 한 사내가 총에 맞았다. 자신의 충실한 심복이라 믿었던 중앙정보부 부장이었던 김재규에게서 권총으로 피격당한 박정희 前 대통령은 결국 숨을 거두었고, 12월 12일 보안사령관 전두환, 9사단장 노태우 등의 신군부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정당 계보사적으로 접근하자면 박정희의 집권여당이던 민주공화당(공화당)이 4공 실세였던 김종필을 중심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다수가 전두환의 민주정의당(민정당)으로 흡수되어 권력의 무게중심이 민정당으로 이동하던 시기였다.</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말하자면 길지만 간추리고 간추려 말해보자면, 어이없게도 ‘서울의 봄’ 87년 6월 후에 ‘보통사람’을 외치던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고, 더 어이없게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전두환-노태우의 민정당, 그리고 박정희-김종필의 공화당과 손을 잡아 민주자유당(민자당)을 탄생시키고 평화민주당(평민당)의 김대중을 고립시켰다. 그 유명한 ‘3당 합당’이었다. 3당 합당을 선언하는 김영삼의 기자회견에서 울부짖으며 “이의있습니다!”를 외치던 사람은 15년 뒤에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지만 당시에는 젊은 국회의원에 불과했다. 공화계-민정계를 끌어안고 집권하게된 김영삼의 민자당은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칭하고 신한국당은 후에 이회창에 의해 ‘한나라당’으로 당명이 바뀌게 된다. 97년 IMF사태에 이은 대선에서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가 승리함에 따라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3당 야합을 규탄하며 울부짖던 국회의원 노무현은 5년 뒤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 그러나 다음 대선에서 참패하여 10년 만에 한나라당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주었다. 간추리고 간추려도 참으로 파란만장한 30년이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strong>이 30년의 시기는 그 명칭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박정희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strong> <strong>박정희가 그만큼 위대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지난 30년간 정권교체를 포함하여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했던 지배논리가 결국은 ‘박정희식인가, 反박정희식인가’로 환원해서 생각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strong> 이 30년 동안 대한민국은 ‘독재’와 ‘민주주의’가 대립했고, ‘반공’(메카시즘이라 할지라도)과 ‘좌파’가 대립한 시대였으며, ‘친일’과 ‘규명’이 대립했고, ‘성장’과 ‘분배’가 대립했다. 한 쪽은 박정희를 찬양하기 바빴고, 한 쪽은 박정희를 독재자라 비난하기 바빴다. 박정희 사후 무려 30년 동안이나 그래왔던 것이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박정희가 죽고, 여전히 그를 이어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고, 그 와중에 박정희의 최대 정적이었던 김대중은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3당 합당을 거치며 친일과 군부독재의 전력을 끌어안게된 보수정당에게 있어 ‘박정희’는 그들 스스로를 투영시키는 하나의 강력한 기표였고, ‘反박정희’의 기치를 내걸었던 김대중 역시 (상대적인)진보정당에게 있어서 하나의 거대한 상징이었다. 강성이었던 노무현 역시 그의 유지를 이어받았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김수환 추기경은 어떠했나. 71년 성탄,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그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의 영구집권 기도를 비판하는 강론을 했고, 그 후로도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독재 아래 민주화 인사들을 끌어안고 보호해준 이들은 김수환 추기경과 정의구현사제단의 한국 천주교였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박정희 前 대통령 사후 30년.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前 대통령, 김대중 前 대통령(서거 순으로) <strong>모두 ‘박정희 시대’의 거목들이었고,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박정희의 그늘을 지고 살아가야 했다. 박정희보다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박정희가 한국 현대사에 가져온 빛과 어둠이 크고 강렬했기 때문이었다.</strong> 그리고 그 분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같은 해에 돌아가셨고, 언제나 엇갈리던 박정희에 대한 양측의 평가도 날로 뜨거워져 요즈음이 가장 치열해 보인다. 역시,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징조가 아닐까 한다. 굼벵이도 죽기 전에 강렬하게 발악하고, 하루도 해뜨기 전의 새벽이 가장 춥다잖은가.</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br>&nbsp;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다시피, 박정희 前 대통령의 가장 큰 공(功)이라 한다면 산업화에 성공하여 피폐했던 국가경제를 발전궤도로 올려놓았다는 데에 있다. 과(過)라 한다면,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독재를 정당화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과(過)를 지적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비교적 단순명쾌하나 공(功)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조금 복잡하다. 그들도 ‘독재’라는 과오(過誤)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독재의 과오(過誤)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무조건적인 추종자는 논의에서 배제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들은 당시 너무나 어려웠던 경제상황을 떠올리며 ‘산업화’라는 공(功)을 더 우선시 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먹고 사는 것이 일단 우선 아니냐’라는 식이다. 실제로도 박정희가 처음 권력을 장악했던 당시는 독재해서 사람 죽이나, 길바닥에서 굶어죽나 이래저래 죽는 사람 수는 같았던 시절이었다. 사실 이 편이 듣기에는 그럴싸하다. 그래서 선전하기도 쉽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nbsp;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 ‘박정희 신화’가 몹시 불편하다. 박정희의 모든 공(功)을 부정한다기 보다는, 반복에 의한 학습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찬양하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산업화를 이룩했던 당시의 리더가 박정희였기 때문에 그의 리더쉽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중 대부분은 ‘반드시 독재를 해야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라거나, ‘박정희가 아닌 다른 리더가 있었다면 산업화에 실패했을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strong>당시 한국이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박정희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변수가 너무</strong> <strong>많다.</strong> 물론 그의 공이 적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실패했다’라고 말할 만큼 박정희의 존재 자체가 산업화의 1등 공신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nbsp;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 이들은 ‘그러한 플랜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고 실행에 옮긴 지도자의 리더쉽’을 언급한다. <strong>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공(功)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독재’를 덮어줄 만큼 그의 치정이 대단했는가, 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의 공(功)이 검증이 되지 않은 불확실한 무엇이라면 박정희 前 대통령에게 남는 것은 과(過)가 더 클 것이다. 그의 과(過)는 너무나 크고 또, ‘확실’하기 때문이다. 나의 지론은 그렇다. <br></strong><br><br><br><br>유시민은 &lt;대한민국 헌법 제 10조&gt;가 이 세상 그 어떤 고귀한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문장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자신의 마음을 울린다고 저서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아는 것이 일천한 나일지라도, 감수성은 좀 있는 편이라 그의 말에 백 분 공감한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br>-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모든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이따금씩 박정희 前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대하여 옹호하는 사람들을 보면 섬뜩해질 때가 있다. 굶어죽으나 고문당해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라며. 말이야 쉽다. 그러나 <strong>죄없이 다치고 죽어나간 사람이 내 가족, 내 친구라면 결코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낼 수 없을 것이다.</strong>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타인에 대한 연민이다. 적자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죽더라도 다수 개체의 위락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이 되어버려서는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잖은가. <br></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nbsp;나처럼 어린 사람이 이런 식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눈을 희번득 거리면서 덤벼드는 어른들이 있다. 대게는 “너희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박정희의 리더쉽을 받아들인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끼 식사를 걱정해야 했던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은 너희 같은 어린 아이들이 그 시절을 평가한다는 것은 건방지다.”라는 식이다. 나는 이런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 나는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어른다운 어른이 따로 있고, 청년다운 청년이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다. 원래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들일수록 동시대에 대한 가치판단에 둔감한 법이다. <strong>시대가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더욱 화려한 프로파간다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희끄무리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그게 역사다.</strong> 나는 독일이라는 나라를 참 좋아하는데, 이 나라는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닮아있는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대한 가치판단이 둔감한 역사적 사례는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당시 사분오열되어있던 독일 좌파들을 영합하여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배신과 수권법(행정부에게 입법권한을 위임하는 법률)개정으로 인한 히틀러의 종신독재였다. 그리고 괴벨스를 앞세운 선전선동 앞에 전 독일 국민들은 나치에 열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은 오늘날의 독일국민들이 그 당시의 독일국민들을 평가하는 것을 두고 결코 건방지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박정희가 히틀러만큼이나 대역죄인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다고 해서 평가하는 것이 건방지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가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는 단절된 것이 아니다. 예전의 사람들이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대의 몫이 된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앞서 첫 문단에서 나는 ‘한 시대(박정희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한 바 있으나, 사실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우리가 잃어버려야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되뇌어 보고, 그들이 실천하면서 쌓아온 삶의 궤적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박정희와 김대중이라는 테제-안티테제가 한국사회를 뒤흔들던 지난 30년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끝이 났다. 어쩌면 모 일간지 기사처럼 평생의 숙적이던 그들이 ‘수고하시었소-’ 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정희 사후 30년이 ‘박정희 시대’다면, 우리 세대에는 우리들의 시대를 열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2009년 이후에는 과연 어떤 시대가 될 수 있을까. <strong>나는 그 대답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짐작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던 김대중이 그들의 시대를 마감하고 자신의 뜻을 이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기를 바랐던 사람이 있었다. 구 시대의 막내이기보다 새 시대의 장자이고 싶다고 외치다가 홀로 죽어간 한 남자를 우리는 알고 있다.</strong> 표면적으로는 끝이 났지만 아직까지도 잔존하고 있는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의 딸도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버젓이 영위하고 있으니까. 새 시대로의 이행을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달려있을 것이다.</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끝으로, 덧붙이건대, 박정희를 찬양하는 이들이여. </p><p class="바탕글">박정희 前 대통령은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다. 박정희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당신들이 굳게 믿는 그 공적(功績)만큼이나 여유롭게 감내할 수는 없단 말인가. <strong>그런 비판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의 폭압과 독재 아래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령은 누구에게 위로받는단 말인가. </strong></p><p class="바탕글"><br><br><br><br><br><br>- 20090824, 오후다섯시. <br><br><br><br></p><br/><br/>tag : <a href="/tag/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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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4 Aug 2009 19:00:4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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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12月의 방명록 포스트입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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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812/10/94/d0034994_493efd0864b41.jpg" width="500" height="33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812/10/94/d0034994_493efd0864b41.jpg');" /></div><br><strong>&nbsp;&nbsp;&nbsp;&nbsp;&nbsp;&nbsp;&nbsp; - canon EOS 30D + Sigma 30mm f1.4 / Olympic Park Gallery SOMA<br><br></strong><br>방명록이 조금 늦었군요.<br>12월에는 늘 차분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br>이런 저런 것들을 정리하게 되더라구요.<br><br>방문하시는 모든 분들, <br>2008년 마무리 잘 하시기를.<br><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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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9 Dec 2008 23:21:3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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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11月의 방명록 포스트입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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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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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5 Nov 2008 01:02:0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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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깡패와 침묵 - 조-주 표절의혹에 대한 몇가지 해명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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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333333"><strong><u><br></u></strong>오후다섯시입니다. 어제 글을 처음 포스팅하고 오늘 저녁 7시 현재.&nbsp;<a href="http://pm17.egloos.com/2115247">"작가라는 이름의 깡패, 한국&nbsp;주류 문단의 더러운 침묵"&nbsp;</a>포스팅에만 방문조회수가 6000건 가량 되는군요.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리퍼러 통계를 보니 디씨인사이드, 그리고 각종 문학 관련 까페(다음, 네이버)에서도 제 글을 퍼가거나 링크를 건 것이 발견되었고 또 그렇게 흘러들어오신 분들도 적지 않아 처음 글을 썼을 때보다&nbsp;조금 마음이 무거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strong>저는 제가 말한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지고 싶기 때문입니다.</strong> 다른 분들이 이런 저런 댓글을 다신 부분들까지 제가 책임지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몇 가지만 간단하게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할 수 없는 부분들이&nbsp;있거든요.<br><br>&nbsp;본문 세번째 문단을 보면 아시겠지만,&nbsp;<strong>저는 "조경란이 주이란을 표절했다"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strong> 모든 것은 저작권법위반에 적용되는 법률용어로써 "표절"과 댓글 논쟁에서 오가는 "표절". 이 두 "표절"의 의미사용이 논쟁하는 상호간에&nbsp;합의가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죠.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이 "조-주 표절시비"는 법정까지 간다고 가정했을 때, 법원으로부터 "표절" 판정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세번째 문단에서 말했듯이, "굵직한 흐름"이라던가 "소재, 모티브"등을 "도용하여 리라이팅"한 수준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이야 몇 소절이 같다던가 하는 식으로 표절판정이 분명하게 나겠지만, 문학의 경우 완전히 베낀 정도가 아니면 판별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요, 위에서 말했던 전자의 "표절"이라면,<strong> 분명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는 쪽에 걸고 싶습니다.&nbsp;</strong>그러나 <strong>머리 싸매가면서 소설 습작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티프의 도용"은, 법적인 차원을 떠나서&nbsp;심정적 표절이라고 생각합니다</strong>. 더군다나 <strong>최소한 서문에라도 누구누구의 글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원작자의 양해를 받았다, 라는 정도만 언급이 되었어도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strong>. 그래서, 사실 표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심정적) 표절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고 따라서 글이 표절이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뉘앙스는 표절인 척- 한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두번째 문단에 조경란씨의 작품역량에 대한 강한 의심을 몇자 적은 것이구요. <br><br>그러나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딱 거기까지가 제 생각이니까요. <br><strong>"뭐야,&nbsp;아이디어 훔쳐다가 고쳐쓴거 아냐.... 표절 소리 안들을만큼..."<br></strong><br>근데요, 사실&nbsp;문제가 된 바로 그 <span style="COLOR: #ff0000">포스팅의 핵심은 "표절이냐 아니냐"이기 보다는 "뭐가 꿀려서 침묵하는가"</span>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조경란씨는 사람들 앞에서&nbsp;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이 아니었다고 거짓말을 했는지 말을 수차례 번복하다가 끝내는 완전히 함구하게 된건지, 당시&nbsp;심사위원들은 뭐하고 자빠진건지 왜 하나같이 입 다물고 있는건지. <br><br>여러분, 제가 지금 우리나라 주류 작가들 사생활을 캐냈나요? 뭐 불륜의 현장이라도 폭로하고 있는 건가요? 저는요&nbsp;지들이&nbsp;뭐 어떤 삶을 살든&nbsp;상관 안해요- 아 뭐 자기들 알아서 사는거지 그리고 살다보면 이런 일 있고 저런 일 있는거지 뭘.<br>근데 말이죠. 소설써서 먹고 산다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과 글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합니다.&nbsp;사생활까지&nbsp;말하는 게 아니구요. 무슨 술자리에서 친구하고 농담따먹기 한 말을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nbsp;<strong>최소한 글써서 먹고 사는 "작가"라면, "자신이 썼다"고 하는 글에 대하여&nbsp;말할 때는,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그 글을 읽는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고, 작가로서의 의무입니다. <br></strong><br><strong>문학의 위기 운운하는 협박에 긴가 민가해 하면서 한국 문학을 걱정하는 많은 독자를 위해서도, <br></strong>(비록 한국소설 지지리도 안 읽는 주제에, 거 참 말 많다 언제부터 걱정했다고- 라는 생각이 드는 독자도 포함입니다. <br>어차피 독자들도 꾸역꾸역 그래도 이 땅의 우리 말로 쓰여진 문학인데- 라면서 읽어드리고 있으니까요.)<br><strong>영혼을 도둑맞았다며 깊은 비탄에 빠져있는 재능있는 젊은 작가를 위해서도, <br></strong>(네. 물론 주이란의 문장력은 고도로 훈련된 탄탄한 조경란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합니다.<br>하지만 주이란은 역시 탤런트하다- 는 부분에 대해서는 양보하기 싫습니다. 스타일은 스타일일 따름이죠.)<br><strong>그리고 "표절이 아니라고 했을 때" 그 동안의 갖은 부당한 비난을 감내해야하는 중견작가를 위해서도, <br>모두를 위해서도 "침묵"은 선택지가 아닙니다. 그건 선택지가 될 수 없습니다. </strong></span><span style="COLOR: #333333"><span style="FONT-SIZE: 85%"><span style="COLOR: #ff0000"><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COLOR: #333333"><br></span></span></span><br></span>침묵하는 "여러분"들이 한국 문단의 중심에 있고,<br>한국 문학계의 강자인 이상, <br><br>"여러분"들은 "납득할 만한 해명을 준비하고 있다"라는 짤막한 코멘트라도 흘려주는 것이 옳습니다.<br><strong>그것도 하지 못한다면 작가로서의 직무유기이자 모럴해저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br></strong><br>다시말해서,<br>지금 침묵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span><span style="COLOR: #333333"><strong>"깡패"</strong>같은 짓이며, <br>앞으로도 계속해서 침묵하는 것은 참 <strong>"더러운"</strong> 짓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br><br><br><br><br>덧말,<br><br>혹시 다같이 모여서 입맞추고 계신건 아니죠?<br><br><br><br><br><br></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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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media &amp; gossip</category>

		<comments>http://pm17.egloos.com/2116901#comments</comments>
		<pubDate>Wed, 29 Oct 2008 10:49:59 GMT</pubDate>
		<dc:creator>오후다섯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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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박민규 - 조까라 마이싱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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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 2004년 대산문화 여름호에, 박민규가 기고했던 글입니다. <br>이제나 저제나 크리에이터는 참으로 고생스런 직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br>예술적 영감을 쥐어짜내어 살아가야하는 이들에게는 어제도 위기, 오늘도 위기, 내일은 더 큰 위기였습니다.<br>그건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어버지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고,&nbsp;<br>우리의 시대도 마찬가지며, 내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딸이 살아가는 시대에도 마찬가지일겁니다.<br><br>조경란과 주이란의 표절시비와 그를 바라보는 주류문단의 침묵(바로 다음 페이지에 있는)에 대해서<br>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문학의 위기? 조까- 하고 내질러 버리던&nbsp;박민규의 유쾌한 글이 생각났습니다.&nbsp;<br><br>스크랩 북에 옮겨둡니다.<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810/28/94/d0034994_4906f563a05af.jpg" width="330" height="39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810/28/94/d0034994_4906f563a05af.jpg');" /></div><br><br><strong>1. 도대체 마이싱이란 <br></strong><br>학창시절 학교를 주름잡던 1년 터울의 선배가 있었다. 그 형의 별명은 &lt;마빈 헤글러&gt;였다. 실제로 머리를 빡빡 깎은 그에겐 언제나 화려한 소문이 뒤따랐었다. 즉 3대 1이라든지, 칼을 든 2명이 포함된 4대 1이라든지. 그러나 그 소문에 비해 펀치는 한결 부드러운 것이어서(맞아봐서 안다) 나는 그가 마빈 헤글러 라기 보다는, &lt;마빡 헤글러&gt;일 뿐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하루는, 그래서 넌지시, 담배를 피고있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형, 지난 번에, 그러니까 4대 1 그거요... 그거 어땠어요? 묵묵히 하늘을 응시한 채, 선배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건네왔다. 조까라, 마이싱이다. 북북, 꽁초를 담벼락에 부비며,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우선 말의 뜻을 짐작조차 못하겠거니와, 묘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 그가 과연 &lt;마빈&gt;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어쨌거나, 그런데 도대체 마이싱이란? 도대체 마이싱이, 뭐지? 나는 궁금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br><br>세월은 흘러, 나는 작가가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 그냥 어느 순간, 무작정 글이 쓰고 싶었다. 요약하자면, 나에겐 그것이 전부이다. 무작정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도 보름 전의 일이었다. 어디신가요? &lt;대산문화&gt;입니다. 요는, 젊은 작가의 변(辨)을, 듣고싶다는 얘기였다. 평소, 이를테면 학술재단 같은 곳과 교류를 하면 작가로선 끝장이란 소신을 갖고있었는데, 예, 예 - 잘도 대답을 하고, 쓰겠노라 동의를 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바로 그 순간 심하게 이 글을 쓰고 싶었고, 바로 그 순간 - 아무런 까닭도 없이 '조까라 마이싱'의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바로, 그래서다. <br><br><br><br><strong>2. 너가 당룡이냐 </strong><br><br>우선 나는, &lt;대산문화&gt;로부터 네가지의 질문을 받았다. 해서, 짧게, 그것부터 답하고 보는 게 도리란 생각이다. 심사, 숙고 해보았지만, 4가지 질문 모두가 도무지 긴 대답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내 무식(無識)의 소산이거나, 정답이거나. 정답은 늘, 짧고 간략한 것이기 마련이라고, 나는 언제나 생각해왔다. ① 자신의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혹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답. <strong>모른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이, 나를 쓰고(用)있다. 그래서다.</strong> ② 기존의 소설과 자신의 소설이 다른 점은 무엇인지? 답. 마치 인류와 자신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의 질문을 받은 느낌이다. 나(내가 쓴 소설)는 유전자의 리바이벌에 불과할 따름이다. 흘러, 가자. 흘러가서, 전달, 하자. ③ 독자나 평론가들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오해, 오독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답. 누구에게나, 꼴린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④ 자신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선배문인들의 평가(대산문화 2004년 봄호 기획특집 참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답. 수고하셨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도, 열심히 하겠다. <br><br>써놓고 보니, 마치 4:1의 싸움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다. 그러니까 4대 1 그거요... 그거 어땠어요? 묵묵히 하늘을 응시한 채, 나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건넨 건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대산의 질문들을, 나는 그런 분위기로 해석하고자 한다. 즉 70년대의, 이소룡 영화에서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너가 당룡이냐? 그렇다. 내가, 당룡이다. <br><br><br><br><strong>3. 풋웍 좀 해보자, 개새끼야 <br></strong><br>이른바 &lt;등단&gt;을 한지, 이제 꼭 1년이 지났다. 소설이 무언지는 애당초 몰랐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다. 그것이 나란 인간이다. 그냥 쓰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시간이, 없다. 오로지 그럴,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꼴린 대로 쓸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글을 쓰는 것인가? 그 이유를 나는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그러니까 돌대가리. 이, 마빡만 헤글러! <br><br>이유는 짜증이다. 짜증, 이라기 보다는 하소연이고, 하소연, 이기 보다는 외로움, 같은 것이다. 이런 얘길 할 수 있는 지면이, 도대체 없었다. 그래서다. 그래서 이것은 젊은 작가의 변(辨)일수도 있고(참, 어지간히도 젊다!), 변(便)일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이제 겨우 2권의 책을 냈을 뿐인데, 그리고 구만리의 앞길이 남아 있는데. 바로, 그래서다. 이 구만리의 앞길을, 또 다른 누군가가 밟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로선 길을 가야 할 이유가, 또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서다. 문단인지 평단인지, 아니 세상이여! 우선 말하겠는데 - <strong>제발 좀 문학의 위기, 소설의 위기라고 떠들지 마라. </strong>호들갑 좀, 떨지 말아라. 나는 어디 핵이라도 떨어진 줄 알았다. 쉰 소리 하려면 집에서 쉬어라, 나오지 마라. 그것이 문학을, 또 우리를 도와주는 길이다. 단언컨대, 지금의 위기는 문학의 위기가 아니다. 문학의 위기를 떠드는 놈들의, 위기일 따름이다. 아이고 귀야. 귀에 슨 녹슨 못을 뽑아내며, 나는 중얼거린다. 너무 그러니까... 니들이 마치 &lt;문학&gt; 같잖아? 니들이... &lt;문학&gt;이냐? <br><br>두번째, 궁상 좀 떨지마라. 즉 그것이 이곳의 풍경인데, 마치 위기론에 이은 예비군훈련이나, 민방위훈련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작가는 잡문으로 뺑이를 쳐야하고, 또 그걸 玲??걸로 생각한다(생각해야 한다). 안 팔려요. 안 팔리면 어쩌죠? 몇 푼의 계약금에도 손을 내밀기가 민망하고, 생활은 점점 좀스러워진다. 요는, <strong>위기를 떠드는 놈들이 이땅의 작가들을 자꾸만 작게 만든다는 것이다</strong>. 좀스럽고 비참하게 만들며, 왜소하고 말랑말랑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몇 푼의 선인세와 생활비에 손을 떨고 연연해야 하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글이라면, 우선 나부터도 읽고 싶지가 않다. <br><br>세번째, 근친상간 그만하자.<strong> 내가 볼 때 이 땅의 소설이 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strong> 각설하고 찢어지자. 그 동안 즐거웠다. 어찌나 문단속을 잘 했던지, 이곳에는 여지가 없다. SF도 추리도 공포소설도, 심지어 제대로 된 하이틴 로맨스도 있어야 정상이 아닌가? 아아 쥴리엣, 우리 아버지들은 언제 죽을까? 오오 로미오, 오빠가 자꾸 나를 건드려요. 헤이 유! 근친 상간이 바보를 만든다는 거, 꽤나 알려진 의학상식 아닌가? 쪽 팔려, 박수 좀 치지마. 어이, 저리 가! 접붙이지 마. <br><br>네번째, <strong>거 참 말많네! 거 참, 말이 많다고 나는 생각했다.</strong> 정말이다. 말이 많은 건, 어쨌거나 말이 많은 것이다. 그뿐이다. 지금껏 나는 네개의 질문을 받고, 네개의 답변을 하고, 네개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요는 무엇인가? 나는 당룡이고, 그냥 날 내버려두란 얘기다. 어떤 면(面)에서의 세상은 분명히 달라졌다. 네가 당룡이냐? 끄덕끄덕. 삼가 한수를 배우겠소. 오호라 학익(鶴翼)의 품새를, 그렇다면 용호(龍虎)의 권세로! 쿵후라는 이름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좋은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다. 문학이라는 이름만으로, 또 소설이란 이름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좋은 시절이었지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과거의 문학을 동경해 작가가 된 인간이다. 눈물이 날만큼, 그때가 그립다. 누군들, 품새의 아름다움을 취하고 싶지 않으랴. <br><br>마치 문학처럼, 언제부턴가 복싱도 시시해진지 오래이다. 때문에 나는 이종격투기를 관람한다. 얼마 전 열린 이종격투기 대회에서의 일이다. 종이 울리자마자, KO로 승부가 난 경기가 있었다. 복서 출신의 패자는 습관처럼 풋웍을 밟아보려다 불의의 기습을 당했다. 선공을 하지말란 법은 없었지만, 뭐랄까 그런 기분이었다. 즉 삼가 한수를 배우겠, 에서의 &lt;퍼벅&gt;의 느낌. 정신을 차린 그의 표정에서 나는 그런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풋웍 좀 해보자, 개새끼야. 수건을 던지지마라 안젤로 던디＊여. 나 역시 풋웍 한 번 밟아보는게 꿈이다. <br><br>* 안젤로 던디 : 수많은 세계 챔피언들을 길러낸 저명한 복싱 트레이너 <br><br><br><br><strong>4. 조까라 마이싱!<br></strong><br>세상은 나의 문파와 나의 품세 따위에 관심을 접은지 오래이다. 작가로서, 이제 나는 실제로 충격을 주고, 파괴하고, 저것을 쓰러트려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 이 싸움은 더욱 실질적이고(비록 폼은 없어도), 냉정한 것이 되었다. 약속대련과 근친상간을 벌일 여유가, 나에겐 없다. 나는 실제로 강해야만 하고, 또 강해지고 싶다. <br>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세계의 룰은 이 땅의 문학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어디 농업만의 문제이겠는가? 이제 이 땅의 문학은 제조업인가 서비스업인가? 텍스트와 번역의 댐이 언제까지 이곳을 지켜줄 것인가? 수입인가 내수인가? 질문은 끝이 없고, 간략한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간략하게 - 나는 정말이지, 강해야 한다. <br><br>그래도 이 땅에 &lt;작가&gt;들이 있었다. 그래도 이 땅에 &lt;소설&gt;이 있었고, 나는 그 아름다웠던 싸움들을 가슴 속 깊이 저장하고 있다. 내게 힘을 주는 것은 바로 그들이고, 다름아닌 그들의 소설이다. 경건하게, 나도 싸워나갈 것이다. 그외의 문제라면, 몰라, 조까라 마이싱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시절은 다 갔다는 느낌이지만, 어떤 면(面)에서의 세상은 또 분명히 좋아졌다. 지금 내가 쓰는 컴퓨터는 아폴로를 달에 착륙시켰던 컴퓨터보다 정확히 3배가 더, 뛰어난 것이다. <strong>내 책상 밑으론 인터넷이 들어와 있고, 나는 더 이상 도서관이나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을 뒤적이지 않아도 된다. 이런 환경에서 당신을 화성에라도 보내줄만한 소설을 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조까라 마이싱이다. 큐빅 퍼즐을 맞출 때의 요령으로, 어떻게든 그 좋은 면들을 나는 맞춰나가야 한다.</strong> 이 글을 쓰는 사이 시인 구상이 이 별을 떠났다. 구상 선생님 편히 잠드세요. 당신의 싸움은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힘을 내겠습니다.<br><br><br><br>&lt;대산문화 2004 여름호&gt;<br><br><br><br><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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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scrap book</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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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8 Oct 2008 11:13:21 GMT</pubDate>
		<dc:creator>오후다섯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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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작가라는 이름의 깡패, 한국 주류 문단의 더러운 침묵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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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ff0000"><strong><br></strong><br><br></span><div style="TEXT-ALIGN: center"><img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810/28/94/d0034994_49069ac82de60.jpg" width="270" height="4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810/28/94/d0034994_49069ac82de60.jpg');" /><img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810/28/94/d0034994_49069accab791.jpg" width="300" height="40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810/28/94/d0034994_49069accab791.jpg');" /><br><br><span style="COLOR: #999999"><strong>左) 조경란의 &lt;혀&gt;, 右)주이란의 &lt;혀&gt;<br></strong></span><br><div style="TEXT-ALIGN: left"><br><br></div><div style="TEXT-ALIGN: left">9월 26일. 한 신예작가가 한 인터넷 언론에 중견작가 조경란의 2007년&nbsp;장편소설 &lt;혀&gt;가 동명의 제목인 자신의 소설을 표절한 것이라며&nbsp;호소문을 올렸습니다.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 심사위원이었던 조경란씨가 주이란씨의 단편공모작 &lt;혀&gt;를 보고 장편으로 고쳐 책을 냈으며, 조경란씨의 관련 인터뷰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의 호소문이었습니다. 이 호소문이 실린 이후에 방현석, 김곰치, 김영현 등 중견작가들 뿐만 아니라 한겨레의 홍세화씨도 이 논란에 가세하였고, 이후 이의양, 박근형씨가 잇따라 칼럼을 투고하면서 논란은 "한국 문단 권력의 썩어빠진 현주소"쯤의 스케일로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br><br>전문 : &nbsp;<a href="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menu/search_thema.asp?article_num=262">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menu/search_thema.asp?article_num=262</a><br><br>본인은 조경란씨의 소설이라고 해봐야&nbsp;&lt;움직임&gt;과 &lt;국자이야기&gt;를 읽은 것이 전부입니다. &lt;움직임&gt;을 읽고 뭐 그냥 그런 정도의 알맹이 없는 작가구나 하고 쓴 웃음 지으면서 던져두었고, &lt;국자이야기&gt;는&nbsp;참신한 소재와 상상력이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해서 평균점 이상의 점수를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nbsp;다만, 소설가 조경란씨에 대하여 인상깊게 기억하는 건 로맹 가리의 소설, (아- 에밀 아자르의 소설이군요.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만)&nbsp;&lt;자기 앞의 生&gt;의&nbsp;책 말미에&nbsp;가슴 아릿한 후기였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books 카테고리에 가면 당시의 후기가 있습니다)&nbsp;&lt;자기 앞의 生&gt;을 읽고 느꼈던&nbsp;감상을 적으려고 몇시간을&nbsp;긁적거려 봤는데 이 사람이 쓴 후기만큼 아릿한 후기를 쓸 자신이 없어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경란에 대해서&nbsp;가지고 있는&nbsp;감상이라거나 기억이라고 해봐야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nbsp;그러니까, 재주는 있으나 든게 없으니 자신만의 필살기가 없는 밋밋한 작가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br><br><br>올해 조선일보는 &lt;동인문학상&gt; 수상자로 조경란씨를 선정하였습니다. 표절 의혹이 불거져 나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nbsp;시상되어 문단 안 팎에서 소란스러우리라고 예상했습니다만,&nbsp;지금 문단 내부, 그것도 권력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문학상 심사위원그룹들 가운데서는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nbsp;사실 소설 전반을 흐르는 굵직한 흐름, 소재 아이디어라던가 많은 부분들이 흡사해 표절 의혹을 사기에 충분합니다만, 이런 리라이팅 수준의 도용은 딱부러지게 100% 표절이다- 라고 말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 번 양보해서 표절이 아니라고 쳐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한 메이져 언론들과 소위 한국 문단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유수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이에 대해 일언 반구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정말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br><br>저희 어머니도 글을 쓰시는 분이시고, 등단하신 문인협회 회원이신지라 가끔 "그들만의 세계" 이야기를 듣긴 듣습니다만. 이정도쯤 되면 깡패가 아닌가 싶습니다. 새파란 신인이 버르장머리없이 어른들에게 대들어서 기분나쁜 것입니까, 아니면 후달려서 빠지는 겁니까. 자신의 작품이 표절시비에 휘둘렸다면, 떳떳히 해명할 수 있는 깜냥이 못됩니까? 그리고 동료 작가들은 무얼하고 있습니까, '매력없는 공방' 운운하며 비겁하게 도망친 방현석은 80년대 노동 문학의 빛이었던 &lt;새벽 출정&gt;의 그 방현석이 맞습니까? 좋습니다, 짬안되는 후배가 비위를 건드리니 기분나쁘다 이거죠? 그럼 독자는 뭡니까? 독자들이 이렇게 요구하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가 있습니까? <br><br><br>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말처럼, "짖을테면 짖어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이미 한국소설작단에는 몇몇 신진작가들을 제외하고 큰 기대를 버린지 오래입니다만,&nbsp;한국 문단의 기득권을 빨아먹고 사는 주류 작가들과 자본에 포섭된 각종 문학상을 중심으로 그들을 옹호하고 있는 매체들과 메이져 출판사들. 벌써 거의 한 달 째 무시로 일관하며 이번 사태가 조용히 넘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철옹성 안의 무리들'을 생각하니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이리 씁쓸합니다. <br><br><br><br><br></div></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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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media &amp; gossip</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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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8 Oct 2008 05:59:33 GMT</pubDate>
		<dc:creator>오후다섯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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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인생의 참맛은 숫자 너머에 있다 - 김은식, <야구의 추억>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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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810/27/94/d0034994_4904884d7f217.jpg" width="150" height="21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810/27/94/d0034994_4904884d7f217.jpg');" /></div><br><p><font size="3"><strong><br>야구의 추억 - 그의 141구는 아직도 내 마음을 날고 있다.<br></strong></font>김은식 저.<br>뿌리와 이파리.<br><br></p><p><strong><br><br><br>- 기술의 진보, 그러나 두 걸음 퇴보</strong></p><p>&nbsp;</p><p>&nbsp;올 2008년 프로야구 시즌 초반, 프로야구팬들은 물론이고 야구계에 몸 담은 전문가들까지도 설전이 벌어져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적&nbsp;있었다. 인천을 연고로 한 SK 와이번스팀(감독 김성근)의 2루 수비 베이스 커버가 동업자를 배려하지 않은 비신사적 행위라는 지적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다가 서울을 연고로 한 LG 트윈스 김재박 감독이 기자들의 관련질문에 "SK의 2루 수비 문제있다. 다른 팀들도 벼르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 덕분에 SK 와이번스의 일본인 수비 코치 후쿠하라와&nbsp;구단 프론트 측은 즉각 "명 유격수 출신이&nbsp;야구의 기본도 모르나"는 공격적인 대응발언을 하자, 김재박 감독은 "할 말을 했을 뿐."이라며&nbsp;무시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내 온통 온라인상의 야구게시판에는 찬반양론이 들끓었고 몇몇 방송사 해설위원이 메이저리그의 수비 장면을 담은 영상을 준비해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nbsp;</p><p>&nbsp;</p><p>사태의 방아쇠가 된 사건은&nbsp;김재박 감독의 '문제 발언'의&nbsp;며칠 전, SK와이번스와 두산베어스의 경기에서 두산 베어스의 공격 때, 타자가 땅볼을 치자 1루 주자가 더블플레이(병살타)를 방해하기 위하여 SK 와이번스 2루 수비수 나주환 선수를 향해 스파이크날을 세우고 무릎을 향해 강한 태클을 걸어 나주환 선수의 유니폼이 찢어지고 결국 부상을 입힌&nbsp;것이었다.&nbsp;두산 베어스 김경문 감독은 좀 심하지 않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받은 대로 돌려준 것일 뿐."이라했고, 이에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은 "야구가 격투기냐"며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 팀은 한국시리즈에서도 빈볼시비로 양팀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튀어나와 잦은 충돌을 일으킨 바 있었고, 올 시즌 역시&nbsp;두 팀이 맞붙은 경기는 전쟁터를 연상케 하는 볼 썽 사나운 모습이었다. 문제의 경기 전날에는 빈볼 시비로 다시 양팀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튀어나와 충돌하는 '벤치 클리어링'사태가 빚어져 야구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었다. 평소 잦은 투수교체로 "출첵야구하냐"는 비난을 받던 SK 와이번스에 대응하여 두산의 벤치는 SK보다도&nbsp;심한 무려 9명의 투수를 한 경기에 쏟아부었고 양 팀은&nbsp;유독 신경전이 심했던 그 날&nbsp;모두 15명의 투수를 쏟아냈다.&nbsp;</p><p>&nbsp;</p><p>&nbsp;독서후기를 쓰고 있는 본인도 당시 경기를 관심있게 지켜보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이제 경기 좀 하나 싶을 때 뻑하면 튀어나오는 광고 덕분에(야구는 투수교체를 하고 교체된 투수가 웜업하는 동안 광고가 나간다.)심히 짜증이 나더랬다. 그리고 이튿날 2루에서의 태클사건. 양 팀 감독의 오버어필 때문에 경기시간은 10분 가까이 지체되었고, 가까스로 시작된 경기에서 1군 데뷔무대였던 SK 투수&nbsp;김준은 바로 두산 베어스 타자의 몸을 향한 빈볼을 던져 퇴장을 당했고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나는 바로 TV를 꺼버렸다. 마시던 오비맥주 한 캔의 남은 모금을 가득 삼켜 원샷하고 발코니에서서 창 밖의 풍경을 구경했다. 창 밖의 올림픽 공원 잔디 언덕과 내 어릴 적에 언젠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며 환호했던 사직야구장, 잠실야구장의 잔디와 묘하게 오버랩되었고,&nbsp;동시에 문득&nbsp;</p><p><strong></strong>&nbsp;</p><p><strong>야구가 참 재미없어졌구나ㅡ<br></strong><strong>라는 생각을 했다.&nbsp;</strong></p><p>&nbsp;&nbsp;</p><p><br>프로야구 원년 1982년. 출범한지 27년 째를 맞는 올 시즌에 KBO는 야심차게도 지난 10년 넘게 달성하지 못한 '프로야구 500만 관중'을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다. WBC에서 일본을 두 번이나 격파하고 미국까지 여유있게 물리치며 초대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한국야구는 분명 기술면에서 미국,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국가 대표급만 이야기하고 리그의 수준은 언급하지 말기로 하자. 분명 떨어진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은 세계 야구史에 길이 남을 쾌거다. 그러나 야구팬으로써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br><strong><br>한국 야구는 정말 '퇴보'했다는 것이다.&nbsp;</strong></p><p>&nbsp;<br></p><p>기술은 진보했지만, 또 그만큼 화려해지기도 했지만.&nbsp;한 게임 한 게임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동업자 정신이고 가슴 뜨거운 사나이들의 젠틀맨쉽이고 뭐고 다 버리고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nbsp; 그야말로 '치뤄내는' 21세기 야구가 정말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에, 그 옛날(사실, 그래봤자 십수 년 안팎일거다.) 기억할 만한&nbsp;그라운드 속 작은 거인들의 땀과 눈물내음 나는 드라마를 더듬어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앨범이 여기에 있다. 마치 자신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며 회상에 젖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는 사이에&nbsp;당신은 뜨거워진 가슴에 자신도 모르게 흐느끼고 있을거다. 다시 한번 전제하건대, 당신이 정말 야구팬이라면&nbsp;말이다.&nbsp;&nbsp;</p><p>&nbsp;</p><p>야구의 추억ㅡ</p><p><strong></strong>&nbsp;</p><p><strong></strong>&nbsp;</p><p><strong></strong>&nbsp;</p><p><strong>- 드라마, 영웅의 부재. 그리고 인생.</strong></p><p>&nbsp;&nbsp;</p><p>&nbsp; 혹자는 프로야구의 태생에 대하여 시비를 걸기도 한다. 분명 그의 탄생은 지저분하다. 군부 쿠데타 정권이 대중들에게서 정치적 관심을 떼어내기 위하여 추진한 Sreen, Sex, Sports. 즉 3S 정책의 일환으로 출범한 프로스포츠 리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nbsp;정치권력들의 속셈, 기업들의 자본논리이전에 야구팬들의 열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프로리그 출범 이전부터 야구는 전 국민적인 스포츠였고, 고교야구의 유명 선수들은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박노준 선수(현 바이센테니얼, 우리 히어로즈 단장)의 부상소식에 소녀팬들이 눈물흘리며 병원 정문 밖 까지 기나긴 병문행렬이 줄을 이은 장면을 9시 뉴스에서 메인으로 다뤄주던 시절이었다.&nbsp;<strong>정말 아이러니한 사실은 가장 비열하고 지저분하게 정권을 잡은 이들의 술수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안에서 땀흘리며&nbsp;펼쳐지는&nbsp;치열한 승부의 진혼곡'들이 많은 대중들에게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의 당위성과 젠틀맨쉽, 그리고 결코 배신하지 않는 땀방울과 같은 인생의 굵직굵직한 가치들을 가슴속에 아로새기게끔 해주었다는 것이다.&nbsp;</strong></p><p>&nbsp;</p><p>&nbsp;한국 야구의 황금시대라고 볼 수 있는 80년대와 90년대 중후반남짓까지. 다이아몬드 그라운드에서는 수많은 영웅들이 명멸을 거듭했다. 비록 지금은 은퇴하고 이 세계에서 볼 수 없거나, 현역 시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나, 기록의 스포츠인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그들은 한국시리즈 4승, 한 시즌 22연승 등의 숫자로 남는 기록으로 뿐만이 아니라 그 기록 너머의 드라마로서 언제까지나 영웅으로 남아있을 것이다.<strong> 이 책은 한국 야구 30년을 돌이켜 가장 먼저 나올 이름들</strong>ㅡ이를테면 선동열, 최동원, 장명부, 박찬호,&nbsp;백인천, 이승엽, 김재박 등ㅡ<strong>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strong> 다리뼈를 모조리 해체해서 철심박고 재조립해야 할 만큼 큰 부상을 당하고 기적적으로 일어나 피나는 재활훈련 끝에 3할을 쳐낸 선수, 통산 성적은 평범했더라도 진저리쳐질만큼 처절한 승부에서 결정적인 승부수와 투혼으로 팬들의 뇌리에 깊숙히 새겨진 선수,&nbsp;절대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던 당대 최고 투수를&nbsp;상대로&nbsp;투혼을 발휘하여 무려 181구를 던져&nbsp;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선수 등 <strong>전설적인 선수들의 불멸의 기록 그 너머에 존재하는&nbsp;'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다.</strong>&nbsp;</p><p>&nbsp;</p><p>지역민들의 한과 정서를 담아 처절하게 뛰던 시절을 지나 지금의 야구는 투타의 역할 분담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기업의 마케팅을 위한 승리지상주의 시스템이 정착되어 예전만큼 드라마틱한 승부도, 영웅도 없으니 팬들을 열광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nbsp;8,90년대와는 달리 대중들의 여가 욕구를 충족시켜줄 오락거리가 많이 늘어난 탓도 있다. 사실 민족주의와 자본주의가 교묘하게 결합된 축구를 제외하고 한국의 모든 프로 스포츠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관중수로 보면 프로 축구 역시 예외는 아니라서 텅빈 구장을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팬들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스폰서 기업의 승리에만 연연하다가 중흥기의 팬들이 사랑했던 화끈한 기술씨름를 버리고&nbsp;체중불리기와 지루한 샅바싸움으로 팬들을 등돌리게 만들어 결국 이제는 이름만 남은 프로씨름연맹처럼, 프로야구도 먼 미래에는 박물관에서나 봐야하는 게 아닐런지 모르겠다.</p><p>&nbsp;</p><p>&nbsp;그러나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strong>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야구는 우리네 인생과&nbsp;닮아 있다는 것을. </strong>잘 치는 타자의 타율도 고작 3할이다. 열번 타석에 들어서면 그 중 일곱번은 삼진당하거나 땅볼을 깔거나, 뜬공으로 아웃당한다. 어찌됐든 나가리(out)라는거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1할 2푼 5리의 승률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렇게 아웃당하고도 타석에 들어서 안타 한 번 쳐보겠다고 앙다물고 투수와 고독한 승부를 벌이는 타자같은 마인드가 아닐까. 그리고 그 한 번의 안타가 바로 점수로 직결되지 않고 출루해서 또 베이스 사이에서 외로운 떠돌이&nbsp;승부를 거듭하며 다음&nbsp;동료의 안타를 기다리는&nbsp;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부침과 관문의&nbsp;연속일 터다. 0.125. 1할이라는 것은 언뜻 보기에 불과 10%라는 희미한 숫자에&nbsp;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홉번 아웃 끝에 때려낸 그 한 번의 안타가 얼마만큼 짜릿한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저자의 말을 빌려서 말하자면,&nbsp;&nbsp;</p><p>&nbsp;</p><p><strong>인생의 참맛은 숫자 너머에 있는 것이다. <br></strong><strong>우리가 야구를 사랑하는 것도 그와 같다. <br></strong><strong>그렇지 않고서야 이력서의 숫자&nbsp;몇개로 낙인찍혀&nbsp;팔려다니는&nbsp;초라한 세상 속에서<br></strong><strong>야구가 따로 무슨 즐거움이 될 수 있겠는가.</strong>&nbsp;</p><p>&nbsp;</p><p>내가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게임에서 인생을 배웠듯이,<br>내 아들, 딸을 데리고 야구장에 가서 공 하나에 울고 웃는 바보가 될 것이며,<br>주변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말에 야구장에 앉아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br>각본없는 드라마를 함께 쓰는 것이 소박한 꿈 중에 하나다.<br>&nbsp;</p><p>그래서 나는, 그리고 우리 야구팬들은 그&nbsp;긴긴 페넌트레이스&nbsp;126 경기를 지켜보면서&nbsp;<br>다시금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줄 드라마와 영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br>&nbsp;<br></p><p>&nbsp;</p><p><br><br>&nbs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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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6 Oct 2008 15:13:12 GMT</pubDate>
		<dc:creator>오후다섯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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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그 모든 사랑의 시작을 위하여 - 시간을 달리는 소녀 (時をかける少女, 2007)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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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810/26/94/d0034994_49033adcf2c77.jpg" width="498" height="75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810/26/94/d0034994_49033adcf2c77.jpg');" /></div></p><br><br><embed style="LEFT: 15px; WIDTH: 200px; TOP: 1770px; HEIGHT: 45px" src="http://pds11.egloos.com/pds/200810/26/94/nochange.wma" width="500" height="45" type="octet-stream" invokeurls="false" enablecontextmenu="false" autostart="true" allowscriptaccess="never" allownetworking="internal"><br><br>여러분은, 언제 처음 사랑을 해보셨습니까?<br>그리고 지금. 사랑하고 있습니까?<br><br>포스터 속의 마코토는 영원히 친구로만 남을 줄 알았던 치아키에게 고백을 받고 나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없던 일로 만들어 보려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둘러싼 세계는 꼬여만 가고 결국 치아키를 떠나보내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자 그제서야 자신이 치아키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810/26/94/d0034994_49033b646c565.jpg" width="240" height="32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810/26/94/d0034994_49033b646c565.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999999"><strong>마코토, 나랑 사귈래?<br>나 그리 못생긴 편도 아니잖아-<br></strong></span><br><br><div style="TEXT-ALIGN: left"><strong>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을 진심으로 상대하는 것.<br>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br></strong>이 소녀는 많은 대가를 치르고서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br><br>어쩌면, 마코토는 치아키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연기하고 <br>자신의 곁에 좀 더 오래둘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br>하지만 마코토는 치아키에게 모든 선택을 맡깁니다. <br><br>"미래에서 기다릴게-" 라고 나지막하게 말하고 돌아서는 치아키의 뒷모습.<br>"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정했어-" 라며&nbsp;푸른 하늘 아래 활짝 웃는 마코토의 모습을 보면서<br><br><br>저도 문득 시간을 달리고 싶어졌습니다.<br><br><br>사실 시간은 우리는 둘러싸고 지금도 천천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러닝머신 같은거에요.<br>우리들은 그 위에서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br>그래서 우리들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겠지요.<br><br>나의 미래, 그리고 여러분의 미래에는 어떤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까요.<br>글쎄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저는 어떤 사람이 보입니다.<br>그리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br><br>내게 주어진 시간에 힘껏 달려야 겠습니다. <br>나의 미래에서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을 그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br><br><br>그렇게 생각하니,<br>비 내리는 주말 오후에 마코토에게 눈물나게 고마워졌습니다.<br><br><br></div></div><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810/26/94/d0034994_49033b760f2ea.jpg" width="366" height="98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810/26/94/d0034994_49033b760f2ea.jpg');" /></div><div style="TEXT-ALIGN: center"><strong><span style="COLOR: #999999">미래에서 기다릴게<br><br><br><br><br></span></strong></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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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inematograph</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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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5 Oct 2008 15:51:20 GMT</pubDate>
		<dc:creator>오후다섯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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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연작] 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 허구 속에서 구해내기 1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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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000000">&nbsp;<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000000"><br><br>&nbsp;&nbsp;&nbsp; <img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810/21/94/d0034994_48fd731568fc6.jpg" width="164" height="24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810/21/94/d0034994_48fd731568fc6.jpg');" />&nbsp;<img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10/21/94/d0034994_48fd7336316b1.jpg" width="172" height="24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10/21/94/d0034994_48fd7336316b1.jpg');" /><br></span></span></div><p></p></span><p><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999999"><strong>&nbsp;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999999"><strong>세기의 사랑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strong></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div><p><br></strong></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br><strong>1. 영화&nbsp;'모딜리아니(modigliani, 2004)'의 허구</strong></p></span><p><br>&nbsp;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이하 모디)와&nbsp;잔 에뷔테른(이하 쟌느)를 이야기하기 전에&nbsp;미국의 믹 데이비스 감독이 2004년에 발표한&nbsp;영화 '모딜리아니'를 언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불꽃처럼 사랑하고 처량하게 산화한 세기의 화가와 그의 뮤즈에 대한 기억은 회자되고 구전되는 와중에&nbsp;수없이 미화되어 이제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도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영화 '모딜리아니'는 그런 왜곡된 '전설'의 결정판입니다.&nbsp;심지어 흥행을 위하여 감독이 오버해서 소설을 쓴 부분도 많습니다.&nbsp;우리나라에 개봉되지는 않았으나 많은&nbsp;영화,&nbsp;미술 애호가들 사이에 공유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소규모 상영회도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nbsp;그리하야 2008년 현재,&nbsp;많은 이들이 영화 속의 모디와 쟌느를 있는 그대로 믿어버리는 해프닝도 생깁니다.&nbsp;<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810/21/94/d0034994_48fd771d5558d.jpg" width="300" height="43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810/21/94/d0034994_48fd771d5558d.jpg');" /></div></p><span style="COLOR: #999999"><span><span style="COLOR: #999999"><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666666">유난히 구라가 많은 영화 '모딜리아니'지만 </span></span></span></span></span><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666666">앤디 가르시아 캐스팅 만큼은 칭찬해줘야 합니다.<br>영화에서 보여지는 그의 '외모'는 모디의 환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br>키가 좀 크다는 걸 빼고는 (......) 모디의 키는 160cm를 겨우 넘기는 정도였으니까요.</span> <br></span></span></div><div style="TEXT-ALIGN: center"><p></span><br>&nbsp;</p><div style="TEXT-ALIGN: left">영화 '모딜리아니'는 회자되는 전설을 흥행가능한&nbsp;공식으로 시나리오화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nbsp;(그렇다고 해서 굳이 영화를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따름이니까요.&nbsp;마지막에 감독의 "이 영화를 모디와 쟌느에게 바칩니다'라는 뻔뻔함에 아연해 영화를 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2000년 쟌느의 유가족들이 쟌느의 콜렉션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 모디의 사망 후 48시간 뒤에&nbsp;그녀는 마음속으로 준비해 두었던 죽음을 택했고,&nbsp;보수적인 카톨릭 집안이었던 쟌느의 유족들은 심한 정신적 충격에 휩싸여 쟌느의 유품들을 가지고 숨어버렸습니다. (종교를 가지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카톨릭에서 자살은 구원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심지어 모디와의 관계를 일시적으로 부정하며 둘이 함께 묻히는 것 조차 반대하였습니다. (이러한 반대는 나중에도 언급하겠지만 부모의 반대보다는 쟌느의 오빠인 앙드레 에뷔테른의 반대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결국 쟌느는 사후 11년만인 1931년 만에야 모디 곁에 잠들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들과 소소한 기록들이 담긴 에세이, 편지 등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7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쟌느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던터라, 모디의 지인들 조차도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와 모디 사이에 있었던 많은 일들을 정확하게 기억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nbsp;70년이라는 긴 세월 만큼이나 길고 긴 사족과 많은 이들의 오지랖이&nbsp;곁들여져 지금의 전설이 탄생한 것입니다.&nbsp;<br></div><div style="TEXT-ALIGN: left"><div style="TEXT-ALIGN: center"><br><br><div style="TEXT-ALIGN: left">&nbsp;최근의 미술계는 공개된 쟌느의 정물화와 초상화, 그리고 수준 높은 데생에 김탄하고 있습니다.&nbsp;또한 그녀에 관한 기록들이 하나 둘씩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잔 에뷔테른은&nbsp;모딜리아니에게 단순히 사랑스러운 어린 연인, 내지는 영감을 주는 모델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같은 예술적 지향점을 추구하는 영혼의 반려자였고, 모디는 그녀를 깊이 존경하였으며 쟝 콕토, 파블로 피카소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nbsp;예술가들도 쟌느의 재능을 인정했습니다. <strong>이 포스팅은 모디와 쟌느의 작품을 되짚어보는 한편, 신화와 전설이 되어버린 그들의 사랑을 지극히 인간적으로 끌어내어 날 것으로 더듬어 보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심의 발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전설'의 대표격인 영화 '모딜리아니'의 허구를 먼저 지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절반쯤은 성공이기 때문입니다.<br></strong><br><br><div style="TEXT-ALIGN: left"></div><div style="TEXT-ALIGN: left"></div><div style="TEXT-ALIGN: left"><div style="TEXT-ALIGN: left"><br></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10/21/94/d0034994_48fd883d00ecb.jpg" width="455" height="29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10/21/94/d0034994_48fd883d00ecb.jpg');" /></div><span style="COLOR: #999999"> <p></p><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999999"><span style="COLOR: #666666">에뷔테른 역의 엘자 질버스테인. 영화 초반에 정말 예쁩니다 헉헉.<br>약간 동그란 느낌의 에뷔테른과는 많이 다른 이미지입니다만,<br>아무래도 믹 데이비스는 모디의 초상화처럼 길쭉한 그런 인상을 원했던 모양입니다.&nbsp;<br>엘자 질버스테인은 프랑스 영화 '로트렉'에서도 여주인공을 맡았었는데요.<br>세기의 화가들의 뮤즈 역을 두 번이나 맡았으니 이도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br>그것도&nbsp;로트렉과 모딜리아니. 20세기 초 파리 몽파르나스를&nbsp;주름잡던 화가들이니까요.<br></span></span></span><br><br>&nbsp; <div style="TEXT-ALIGN: left">먼저, 시작부터 영화 끝까지 거슬리게 하는 파블로 피카소와 모딜리아니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는 모디와 피카소의 관계를 라이벌이자 원수지간으로 만들어 네러티브를 긴장감있고 힘있게 진행시킵니다. 프롤로그 격인 쟌느의 자살 직전 독백을 제하고 영화 첫 장면은 몽파르나스의&nbsp;까페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디가 피카소를 조롱하자 피카소가 벌컥 화를 내고 모디가 여유있게 빠져나가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피카소의 측근이 그의 옆에서 "모디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고 묻자 피카소가 땀을 닦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신이야."<br><br><br>저는 이 장면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그나마 후반부에 모디와 쟌느의 내면을 충실하게 그렸다는 점을 높이사 이 영화를 그나마 영화로 인정하게 된 것이지 이 영화는 정말 고증없고 대책없는 구라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이 영화에는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한 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모사품도 아니고 그냥 모딜리아니 스타일로 그려낸 그림들로 영화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도록과 인터넷 도록을 가지고 일일이 영화속에 등장하는 그림과 대조해 본 결과 그렇습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파블로 피카소의 컴피티션 출품작 '모딜리아니'를 보고 아연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서로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는 사이였지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죽고 못사는 원수지간도 라이벌 지간도 아닙니다. 당대의 파리는 큐비즘, 야수파, 나비파, 쉬르레알리즘 등 엄청나게 많은 미술사조들이 앞다투어 쏟아져 일류를 형성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그런 새로운 유행이나 사조들과는 멀리 떨어져서 독자적인 길을 걸었던 화가였습니다. 모든 것은 아마도 작가가 파블로 피카소가 임종 직전에 남긴 한마디 "modigliani......" 를 가지고 전개시킨 상상력에 불과하지요.&nbsp;<br><br><br>&nbsp;물론, 피카소와 모디는 많은 부분에서 대비되는 화가였습니다.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하여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않았던 모디와는 달리 피카소는 당시 미술계의 돈의 흐름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20세기 초의 미술계는 미국의 큰 손들이 회화를 대량으로 유통시키던 시절이었고, 유명한 저널리스트와 친분을 쌓고 구워삶으면 다음날 글 몇 줄로 스타덤에 오르던 그런 시절이었으니까요. 물론 피카소의 작품이 워낙 이전의 패러다임을 깨는 혁신적인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미술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만 피카소와 친분이 있는 이들의 미술계 내 권력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피카소는 언제나 비평가 그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또 엄청난 다작으로 부유하기도 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교감을 나누던 사이였습니다. 피카소는 그의 어린 연인 쟌느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렸고(영화에서처럼 모디를 도발하기 위해서 그린 것이 아닙니다.), 모디는 지인들에게 "피카소는 나의 재능보다 최소 2년은 앞서있는 것 같다."라며 존경의 표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모디는 피카소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지요.&nbsp;<strike>믹 데이비스 감독은 피카소가 악랄한 방법으로 모디의 죽음을 사주한 것처럼 은근슬쩍 묘사해놓은 주제에&nbsp;마지막에 이 영화를 모디와 쟌느에게 바칩니다- 라는 자막을 빼놓지 않습니다. 참 뻔뻔한 새끼입니다.</strike> 하늘에서 모디와 쟌느가 이 영화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br></div><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810/21/94/d0034994_48fd8fd1d1587.jpg" width="370" height="47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810/21/94/d0034994_48fd8fd1d1587.jpg');" /></div></div><strong><span style="COLOR: #999999"><p></p><div style="TEXT-ALIGN: center"><strong><span style="COLOR: #999999">파블로 피카소의 초상(1915, 모딜리아니)</span></strong></span></strong></div><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666666">* 다만 좀 의문인 것은 이 작품은 모디의 기본적인 작법(길다랗게 왜곡시킨 인물묘사와 눈동자, <br>어두운 색채 등)에&nbsp;어긋난다는 것인데, 아마도 이런 것들이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span><br><br><br><div style="TEXT-ALIGN: left">&nbsp;또한&nbsp;영화의 몰입력을 끌어올리는 장치 중에 하나인 악독한 쟌느의 아버지에 대해서 꼬집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디와 쟌느를&nbsp;갈라놓았던 것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고지식한 아버지와 종교&nbsp;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친오빠 앙드레 에뷔테른의 고집과 모딜리아니에 대한 시기심이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nbsp;에뷔테른家의 지인인 퓌메의 증언에 따르면 에뷔테른의 부모는 그들의 사랑을 인정했으며 딸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데에 대해서 오히려 모디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과 전염병을 피해 남프랑스 니스에서 쟌느의 모친과 쟌느, 그리고 모디는 함께 살았었습니다. 당시 쟌느의 모친은 "모딜리아니와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즐거웠다."고 회상했고, 딸의 남편으로서 모딜리아니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는 것이 지인들의 전언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에뷔테른의 양친이 모디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유괴'라는 표현을 쓴 언급 한번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언급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렇습니다.<br>"우리 딸과 모딜리아니의 관계는 분명 사랑에서 비롯되었고, 그 사랑은 정말 죽음보다도 강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당시 딸의 나이로 볼 때 모딜리아니가 그런 식으로 접근한 것은 분명 유괴였습니다."&nbsp;<br>척 봐도&nbsp;뉘앙스가 결코 그들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모디의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으로 들리는 언급입니다.&nbsp;<br><br><br>&nbsp;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허구 속에서 끄집어 있는 그대로의 모디와 쟌느를 보려면 쟌느의 친오빠 앙드레 에뷔테른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네살 터울인 쟌느와 앙드레 남매는 서로의 멘토였습니다. 앙드레 에뷔테른 역시 화가였지만, 기록에 의하면 내성적인 쟌느에 비하여 정반대의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앙드레는 똑 부러지고 활달한 성격을 지녔고, 또한 동생 쟌느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도 대단했다고 전합니다. 그는 쟌느를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특이한 성격이었지만 빛나는 매력과 풍부한 재능을 지녔다고 생각했으며, 그만큼 그녀에 대한 독점욕도 강했습니다. 그렇기에 앙드레는 모딜리아니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화가이면서 빛나는 세기의 재능을 가진 남자를 말입니다. 쟌느 역시 오빠를 끔찍히 생각했기에 앙드레 에뷔테른이 전쟁터로 징집되고 홀로 남겨진 시기에 견딜 수 없던 외로움을 모딜리아니가 오빠보다도 더 강렬하게 채워주었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빠져들 수 있었던 거죠. 전쟁에서 돌아온 장남이 에뷔테른家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남매 사이는 악화되다못해 최악으로 치달았고, 앙드레는 마지막까지 모디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결국 쟌느와 모디에게는 한 마디 말도 없이 파리로 홀로 돌아가버립니다. <br><br><br><br>그 밖에도 영화 속에는 상당히 허구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말년의 모디는 흔히들 알고 있는 것처럼 아편과 코카인,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된 이후의 모디는 기계처럼 초상화를 양산해내고, 친한 친구이자 전담화상이었던 즈보르스키에게 돈을 계속하여 빌릴 정도로 가정을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nbsp;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사실 자잘한 것들이고 네러티브를 전개하는 큰 두가지 축(피카소와의 관계, 부모의 반대-앙드레 에뷔테른)만 제대로 조명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으니 <br><br>이제는&nbsp;모디와 쟌느의 삶에 대해서 한 층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br><br>&nbsp;<br><br><br><br><strong>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 허구 속에서&nbsp;구해내기 1편 完<br></strong><br>- 2편에서는 모디와 쟌느의 작품과 그들의 삶을 위주로 풀어나갈 생각입니다.<br>&nbsp; 거창한 예술 비평을 생각하시면 안되고, 감상이나 팩트위주로 그들의 관계를 되짚어 볼 껍니다.<br>&nbsp; 전 미술관련 전공생이 아니거든요.<br><br><br><br><br><br><br><br><br></div></div></div></div></div></div></div><br/><br/>tag : <a href="/tag/모딜리아니" rel="tag">모딜리아니</a>,&nbsp;<a href="/tag/에뷔테른" rel="tag">에뷔테른</a>,&nbsp;<a href="/tag/영화모딜리아니" rel="tag">영화모딜리아니</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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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영화모딜리아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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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2 Oct 2008 05:41:03 GMT</pubDate>
		<dc:creator>오후다섯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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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꼴찌의 반란, 템파베이 레이스의 월드시리즈 진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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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10/20/94/d0034994_48fc0c64325e2.jpg" width="500" height="34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10/20/94/d0034994_48fc0c64325e2.jpg');" /></div><br>한국시각으로 오늘(10월 20일), 메이져리그에 흥미로운 역사가 또 추가 되었습니다. 96년 창단. 98년 빅리그 시즌 참가 이후 한번도 승률 5할을 넘겨보지 못한 만년 약체, 10년간 아홉번의 꼴찌를 도맡아 한 템파베이. 그들이 메이져리그의 간판 명문 구단인 보스턴 레드삭스를 AL 디비전 챔피언 결정전에서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nbsp;꺾어 우승을 차지하고&nbsp;월드시리즈에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br><br>이전 시즌에 꼴찌를 기록하고 이듬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팀은 메이져리그 역사상 91년의 애틀랜타가 유일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 템파베이 레이스가 그 역사의 다음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한 것이죠.<br><br>사실, 시즌 초반에 템파베이 레이스의 선전을 예상한 전문가들은 많았습니다. 여러 시즌 꼴찌를 거치면서 지명권 1위를 확보하여 영입한 신입들의 포텐셜이 가장 기대되는 2008년이었기 때문입니다.&nbsp;'젠틀한 승부사' 루 피넬라 감독을 떠나보내고 영입한 조 매든 감독의 지도력이 안착해&nbsp;2008 시즌엔&nbsp;선수단과 코칭스텝의 궁합이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구요. 그러나 그 누구도 AL 동부지구 1위를 질주하여 마침내 우승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AL 동부지구는 언제나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사람들도 이름은 안다는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1위 싸움이었거든요. 실제로 21세기가 시작되고 나서 AL 동부 지구의 1위는 지난 8년간 양키스 아니면 레드삭스였습니다. 선수단 연봉총액 순위를 보면&nbsp;템파베이는 전체 29위 입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수단 연봉 총액은 전체 4위구요. 여러모로 흥미로운 시리즈가 아닐 수 없습니다.<br><br>자 이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월드시리즈가 남아있습니다. 템파베이 선수들.<br>가을의 전설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맷 가르자와 롱고리아, 업튼. 요놈들 참 기대가 많이 됩니다.<br>개인적으로 저는 디트로이트 팬입니다만,&nbsp;필라델피아 필리스, 템파베이 레이스. <br>제가 호감가지고 있는 팀들이 월시에서 맞붙게 되어<br>기분이 좋군요. 그러나 메이져리그 사무국에서는 흥행에 먹구름이 끼어 기분 나쁜 일일테지요.<br><br>디트로이트에서 템파베이로 갈아탈까도 고민중입니다그려- ㅋㅋㅋ<br>말린스와 함께 플로리다를 양분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레이스도 그렇고 말린스도 그렇고<br>참 짭쪼름한 구단들이라 썩 내키진 않지만(특히 저는 말린스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br>얘넨 선수가지고 장사할려고 작정한 정줄놓 구단)<br>템파베이의 좌타라인과 조 매든, 그리고 파릇파릇한 영건들은 가슴을 설레게 하네요.<br><br><br><br>한국 프로야구로 돌아와 볼까요?<br><br>LG 팬들 힘내세요.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팀인데, 요즘 참 답이 안보이긴 하지만.<br>약속의 2010년이 있잖습니까- 템파베이 보면서 모쪼록 힘 내셨으면 좋겠군요.<br>감개무량합니다 롯데팬인 제가 타팀 팬들에게 이렇게 여유있게 힘내라는 얘길 다하고 참<br><br>오래살고 볼 일입니다. ㅋㅋㅋㅋㅋㅋ<br><br><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810/20/94/d0034994_48fc184c31e72.jpg" width="397" height="51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810/20/94/d0034994_48fc184c31e72.jpg');" /></div><strong><div style="TEXT-ALIGN: center"><strong><span style="COLOR: #999999">ALCS MVP 가르자.<br>91년. 24살의 나이로&nbsp;존 스몰츠가 애틀랜타의 전설을 쓰던 그 때를 연상케 합니다.<br>올해 나이 24살,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월시에서도 멋진 활약 보여주기를!</span></strong></div></strong><br><br><br><br><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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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0 Oct 2008 05:23:06 GMT</pubDate>
		<dc:creator>오후다섯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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