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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군 and solidarit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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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세눈박이의 세 가지 눈으로 바라본 세상.</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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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9 Oct 2009 07:54:0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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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군 and solidarit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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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세눈박이의 세 가지 눈으로 바라본 세상.</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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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농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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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잘못된 믿음이다. <strong>모든 것은 잊혀지는 것이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strong>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nbsp;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는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져 갈 것이다."(p.398-99)<br><br>"내가 이 세계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 아침, (뜻밖에도) 이 세계를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쓸쓸한 모습으로. 이 세계는 화려한 치장과 광고로부터 버림받았고, 정치적 선전으로부터, 사회적 유토피아들로부터, 문화 담당 공무원 집단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이 셰계는 내 세대 사람들의 열정에 찬 지지로부터 버림받았고 (또한) 제마넥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이런 고독 속에서 이 세계는 정화되었다. 나에대한 꾸짖음으로 가득한 이 고독은 마치 얼마 살지 못하는 사람과 같은 이 세계를 정화시켰다. <strong>그 고독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최후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눈부시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strong> 이 고독이 그 세계를 나에게 되돌려준 것이었다." (p.423)<br><br>-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 &lt;농담 La Plaisanterie&gt;, 1967. (한국어판 : 민음사,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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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review</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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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8 Oct 2009 15:21:15 GMT</pubDate>
		<dc:creator>박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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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090930.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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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구월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나는 중요한 시험 하나를 끝내서 참 기분이 좋았다. 좋았던 것은 아침 일찍 시험을 봐버렸기 때문에 어제 하루를 마음껏,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 점심은 요즘 통 집에서 밥을 먹은적이 없어 엄마랑 밥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다니는 운동 센터 근처에서 같이 밥을 먹었더랬다...<br><br>그보다 며칠 전, 나는 그가 받은 건강검진에서 무언가 이상 소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상 소견이 있던 사진을 보았었다. 내 짧은 전공지식으로 보아 그다지 좋게 생기지 않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 이후 더 자세한 검사를 했고, 그와 그의 남편 - 아빠 - 은 나에게 결과는 괜찮다고 말하였었다. ... 그들은 나에게 거짓을 말했었던 것이었다.<br><br>물론 그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질병은 의학지식으로는 완치를 시킬 수 있는 질환이지만, 그 충격은 예상외로 훨씬 컸다. 그리고 이번 충격은 서서히, 서서히 엄습해오고 있다. 병원에서 아무리 비슷한 환자를 봐도 들지 않는 공포는, 결국 내 주변 내 가족에 와서야 그 공포가 느껴지는 것이다.<br><br>조금 오래 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심리테스트 하나를 한 적이 있다. 그 심리테스트에서 나는 부모를 가장 마지막까지 잡고 있을 거라고 한 친구가 말해주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지금에 와서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이 나를 사랑했던만큼, 그들을 나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친구들이 그들의 부모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나에겐 큰 의미였을테고.<br><br>부모를 벗어나서 자신의 삶을 열어나가는 것이 더욱 더 큰 사람이 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틀의 부모를 벗어나는 일과 그들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다른 층위의 문제이다. 그들이 상실될 수 있다는 공포가 실재로 다가오는 것이 무엇보다 두렵고 무섭다. 너무 무섭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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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3rd diary</category>

		<comments>http://parkstyle.egloos.com/1536282#comments</comments>
		<pubDate>Wed, 30 Sep 2009 17:20:36 GMT</pubDate>
		<dc:creator>박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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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교과서는 노동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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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땀흘리는 노동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는 말은 이제는 더 이상 많은 이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단지 자신의 몸뚱아리가 밥벌이의 밑천인 사람들에게는 살아내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존재를 잊은 채, 등 뒤에서 저열하게 침흘리는 '어떤' 낯선 다른 이에게 그들의 생산품을 헌납한다. 그리고 생산하는 사람들에게는 쥐꼬리만한 임금이 지급되고,&nbsp;노동하지 않고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생산품의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후자는 전자의&nbsp;일상 생활의 모든 곳에&nbsp;영향을 미치며, 이윽고 전자는 후자에게 지배당한다.</p><p>노동자가&nbsp;자본에게 착취당하는 현실은 1867년의 영국이나 2009년의 한국은 다르지 않다. 갈수록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는 교묘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곳까지 내려가며, 우리의 시선을 헷갈리도록 교란시킨다. 자본은 그 자체가 가치추구의 대상이 됨으로써 자신을 키우려는 의지를 불사른다. 결국 자본은 자기 자신이 욕망의 대상이다. 욕망하는 자본은 인간을 한갓 소모품으로 보는 것이다. 자본가이든 자본 밑에서 그들의 이익 기여에 복무하는 노동자이든 결국은 모두 자본의 하수인일 뿐이다.</p><p>이번주부터 연재하는&nbsp;&lt;한겨레 21&gt;의 르포기사는 마음에 든다. 기자들이 한 달 - 짧은 시간이지만 어쨌든 - 동안 미숙련노동자가 되어, 비정규직이 되어 가장 막다른 골목에 처해있는 우리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단다. 다시 한 번, 내가 받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그들을 생각할 시간인 것이다. 어떻게 그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것인가를, 자본의 영속적인 승리를 끊을 수 있는 방도를, 반격하는 기회를 만드는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자본이 아닌, 사람을 위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이 진리로서 존재하는 명제다.</p><p>&nbsp;</p><p>이번 주 (2009.09.21) &lt;한겨레21&gt; 노동OTL 기사.</p><p>나는 아침이 두려운 '9번 기계'였다. - 임인택 기자</p><p><a href="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740.html" target="_blank">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740.html</a></p><p>안산은 거대한 '인간 시장' - 김정효 기자</p><p><a href="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739.html" target="_blank">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739.html</a></p><p>(+) 싸이월드 미니홈피 게시판에 기사를 링크하고, 기사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링크를 추가할 예정이다.<br><a href="http://minihp.cyworld.com/22911263/262458558">http://minihp.cyworld.com/22911263/262458558</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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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progress</category>

		<comments>http://parkstyle.egloos.com/1526569#comments</comments>
		<pubDate>Fri, 18 Sep 2009 15:47:37 GMT</pubDate>
		<dc:creator>박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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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20090911.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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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요즘 의사실기시험을 열나게 준비중이다. 시험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준비하여 차츰 무언가 '쓸만한' 직업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시험'이라는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된다. 여기서 잠깐 푸코의 말을 되짚어 보면,<br><br><em>"시험이란 것은 어떤 지식 습득을 평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평가의 기본적인 요소로서 끊임없이 재가동되는 권력의 의식에 따라 권력의 기반이 된다." <br>- Michel Foucault, &lt;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gt; p.292.</em><br><br>그렇다. '시험'이라는 것은 그 집단의 지배권력이 그 집단에 속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지적 폭력에 가깝다. 너희는 이 기준을 통과해야만 우리 집단에 속할 수 있다는 그런 지배권력의 자만. 물론 하나하나의 과정 자체가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배권력의 의중이 이러한 시험이라는 제도에 힘입어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점을 꼭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은 거창한 것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 주위를 둘러싼 권력작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비판할 수 있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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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3rd diary</category>

		<comments>http://parkstyle.egloos.com/1520835#comments</comments>
		<pubDate>Fri, 11 Sep 2009 16:32:24 GMT</pubDate>
		<dc:creator>박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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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090827.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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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며칠 전 쓸 내용을 이제서야 쓰는 것.)<br><br>그 날 오후, 정확히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 쯤이다. 흥미도 가지 않고 되지도 않는 공부에 끙끙대는 나는 갑자기 그녀가 문득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냥 가방을 훌훌 챙겨메고 그녀의 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날엔 왠지 모르게 지하철이 차곡차곡 날 기다렸다는 마냥 내가 플랫폼에 들어서자마자 왔었다.<br><br>어느덧, 그녀의 동네가 있는 곳에서 지하철 출구를 사람들 무리 속에 뒤섞여 빠져나온다. 이리저리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사람이 많은 곳이기도 했지만 갑자기 그 곳에서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 삶이 이리저리 흐름에 떠밀려 온 것과 비슷하게. 이윽고 출구가 보였다. 한시름 놓은 후 그 혼잡한 곳을 빠져나왔다. 난 분명히 새파란 하늘이 있는 곳에서 땅 속으로 들어갔었는데, 땅 위로 나오니 하늘은 어느 새 분홍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다. 곧이어 그녀가 잠시 집 밖으로 나온다는 답신이 왔다.<br><br>그녀의 집이 있는 동네에는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지은지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아파트 옆 가로수가 아파트 높이만큼 쑥쑥 자란, 아니 아파트를 집어삼킬 듯 나무도 가득하여 삭막하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은 곳이다. 그 가로수가 있는 길을 그녀와 걷는 것은 항상 상쾌한 기분이 든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나온 그녀는, 평소에 내가 만나던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집에서만 있어서 그런지 그녀는 안경을 쓰고 나왔다. 내 눈에는 안경을 쓰고 맨살로 나온 그녀가 더욱 이쁘게만 보였다.<br><br>그녀의 옆에서, 그녀의 품 안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위로를 받는다. 늦여름 해가 넘어갈 때의 햇살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싼다. 그 햇살보다 더욱 따스하게 그녀가 나를 안아주고 있다. 그때,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힘들 때 쉬는 한숨이 아닌 포근하고 따뜻한 곳에 가서 휴식을 취할 때의 그러한 한숨. 나를 안아줄 사람이 서울 하늘 아래에 있다는 것, 그것도 지금 같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숨쉬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nbsp;너무 감사했다.<br><br>그녀와 함께한 날들이 무척이나 좋다. 아직 그녀와 함께한 날들이 많은 것은 아니나, 조금씩 조금씩 그녀와 함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같이 우리들을 채워나갈 것이다. 따스한 생각들을 그녀와 함께 조곤조곤 말하면서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매일매일 귀엣말로 그녀를 얼마나 아끼는지 말해주고 싶다. 같이 있다는 것 하나로 내가 얼마나 들뜨고 기쁜지를 빼뚤빼뚤한 손글씨로 쪽지를 써서 그녀에게 넌지시 건네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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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3rd diary</category>

		<comments>http://parkstyle.egloos.com/1509613#comments</comments>
		<pubDate>Sat, 29 Aug 2009 13:41:17 GMT</pubDate>
		<dc:creator>박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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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20090814.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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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정오에 도착한 그 정원은 어린 시절 내 기억보다는 많이 작아져있었다. 별로 유명하지 않았어서 그렇게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여름 휴가철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아니면 연휴의 첫머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난, 좀 더 소소하고 고즈넉한 그곳의 모습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계곡따라 흐르듯이 지어진 조그마한 정자와 같은 건물들, 굽이쳐 흐르는 물따라 흐르는 졸졸졸 물소리들을.<br><br>그 정원너머에 있는 길을 걸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는데도, 그곳에는 봄빛이 아직도 서려있는 이파리들이 있었다. 말갛게 피어오르는 연둣빛 그 초록과 무더운 여름날의 진한 초록이 공존하는 그 공간. 옆에는 그 정자에서도 흐르고 있었던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주위를 하늘 무서운지 모르는채 솟아있는 대나무들이 포근히 감싸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걸음씩 한걸음씩 그곳을 온몸으로 느끼며 느리게 걸었다.<br><br>너의 기억속에, 나의 기억속에 새겨진 그 시간들의 느낌은 서로 다르되 같을 것이다. 초록의 풍성함도 너와 내가&nbsp;보았던 것이 달랐을테지만&nbsp;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물소리조차 너와 내가 듣는 것이 다를 수 있지만 물소리라는 것 자체는 우리 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br><br>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 비슷한 것을 찾아내는 것. 앞으로 수많은 순간들이 우리에게는 주어져있고, 그 시간들을 많은 이야기로 채우는 주체도 바로 우리라는 것.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게 하자.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게 하자. 서로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음에 묻어두지 말고&nbsp;서로에게 말하도록 하자.<br><br>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얼마나 가슴벅차고 두근거리는 일인지!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같이 보내는 순간순간마다&nbsp;아름다운 것을 주고싶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살가운 마음들을 담아서 건네고 싶다.&nbsp;그리고 그런 이야기들과 함께&nbsp;내가 생각하는 두려움, 아픔, 말하지 못했던 고민들까지 너에게는 조곤조곤&nbsp;말하리라. 스물다섯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꾸밈이 없고 날 것인 나를 너에게 조금씩조금씩 보여주고 싶다. 너의 마음속에서만은&nbsp;포장된 내가 아닌&nbsp;'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너에게 살아있고 싶다.<br><br>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고이&nbsp;담는다. 그 모습들을 마음에 담아 차곡차곡 내 기억에 새길 것이다. 너와 내가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 것이다. 같이 펜을 그러잡아 수많은 시간이라는&nbsp;종잇장들 위에&nbsp;너와 나의 마음들을 그려나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오랜 그림들은 조금씩 빛이 바래져 갈테지만, 거기&nbsp;숨쉬는 반짝반짝이는 우리 마음들은 늘 그대로 있을 것이다.</p>			 ]]> 
		</description>
		<category>3rd diary</category>

		<comments>http://parkstyle.egloos.com/1496728#comments</comments>
		<pubDate>Fri, 14 Aug 2009 22:36:55 GMT</pubDate>
		<dc:creator>박군</dc:creator>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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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090807.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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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일주일 사이에 같은 친구와 한강을 두번을 가게 되었다. 장소는 달랐지만, 같은 이름으로 불리우는 강이었고 그나마 서울에서 이 강만큼 좋은 쉼터도 없다고 생각했고 있는 곳이어서, 언제나 한강 둔치에서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무슨 이야기이건 간에 편안하고 느긋해진다.<br><br>강변에 난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진&nbsp;가로등이 너울대는 한강의 물을 비추고 있다.&nbsp;넘실대는 그를&nbsp;따라 이야기도 그만큼 천천히, 그리고 살갑게 다가간다. 이야기는 흐르는 물만큼 많아지고 칠흑과도 같은 강의 때깔만큼 이야기의 농담도 진해지는 것이다. 강물의 흐름만큼 사람의 마음도 잔잔해지고 평화로워지는 것일까, 평소의 나와는 달리 나도 한강 옆에서만큼 조용해지고 차분해지는 것이었다.<br><br>이야기는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잊고 싶은 이야기들은 강물에 띄워보내고 담아야 할 이야기들은 강물을 따라 나에게 온다. 하지만 띄워보낸 이야기도, 강물따라 온 이야기도 모두 머릿속에 박힌 채 그대로 있는 것이다. 강물을 핑계삼아, 기억을 게워내고 새로운 기억을&nbsp;침잠하게 하는 것일 뿐. 아무것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잊고싶은&nbsp;단상이라는&nbsp;무미건조한 되새김질일뿐, 모든 것은 여전히&nbsp;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br><br>한강은 거기 그대로 있지만 내가 거기서 봤던 물들은 어제는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다. 강물은 언제나 계곡에서 나와 바다로 흘러간다. 물은 언제나 너울너울 굽이쳐 흐르는 것이지, 언제나 같은 그 자리에 머무는 물은 한 방울도&nbsp;없는 것이다. 마음도 그와 같은 것일까. 강물과 같이 끝없이 버려지고 채워지는 것일까. 그렇게 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br><br>여전히 삶이 지속되고,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아직 끝까지 오지 못했다. 강물이 바다에 닿는 순간, 끝이란 것도 알게 되는 것일까?</p>			 ]]> 
		</description>
		<category>3rd diary</category>

		<comments>http://parkstyle.egloos.com/1490202#comments</comments>
		<pubDate>Fri, 07 Aug 2009 15:49:54 GMT</pubDate>
		<dc:creator>박군</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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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너를 기다리는 동안<br>- 황지우<br><br>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br>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br>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br>내 가슴에 쿵쿵거린다<br>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br>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br>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br>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br>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br>너였다가<br>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br>다시 문이 닫힌다<br>사랑하는 이여<br>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br>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br>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br>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br>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br>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br>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br>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br>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br><br>着語 : 기다림이 없는 사람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두부 장수의 핑경 소리가 요즘은 없어졌다. 타이탄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온 사람이 핸드 마이크로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어디선가 병원에서 또 아이가 태어난 모양이다. 젖소가 제 젖꼭지로 그 아이를 키우리라. 너도 이 녹 같은 기다림을 네 삶에 물들게 하리라.<br><br><br>황지우, &lt;게 눈 속의 연꽃&gt;, 문학과지성사, 1990.			 ]]> 
		</description>
		<category>review</category>

		<comments>http://parkstyle.egloos.com/1478616#comments</comments>
		<pubDate>Sat, 25 Jul 2009 19:59:39 GMT</pubDate>
		<dc:creator>박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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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090723. ]]> </title>
		<link>http://parkstyle.egloos.com/147657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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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그때그때 삶에 부대끼면서 갑작스레 나타난 어떠한 사건들에는 나의 선택이 필요했다. 대개 몇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고, 그때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도 있었다. 만약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한 경우, 그 방법 이외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하면서 자신에 맞지 않았던 선택 혹은 옳지 않은 선택을 합리화하게 된다. 하지만, 이건 반드시 기억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한 '어쩔 수 없었던'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자신에 맞지 않았던 답지를 선택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고, 옳지 않았던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왔다는 사실 말이다.			 ]]> 
		</description>
		<category>3rd diary</category>

		<comments>http://parkstyle.egloos.com/1476577#comments</comments>
		<pubDate>Thu, 23 Jul 2009 15:48:13 GMT</pubDate>
		<dc:creator>박군</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일본 : 자민당 '55년 체제'는 무너질 것인가? ]]> </title>
		<link>http://parkstyle.egloos.com/147381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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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907/21/53/f0037453_4a649c0b836d8.jpg" width="500" height="191.66666666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907/21/53/f0037453_4a649c0b836d8.jpg');" /></div><div style="TEXT-ALIGN: center"><em>2009.8.30 중의원 선거 이후 총리로 확실시되는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br></em></div><br><br>요즘 옆나라인 일본의 선거에 관심이 많다.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고, 아시아에서 '그나마' 민주주의 체제가 잘 돌아가는 나라이기도 하고. 더 큰 이유는 바로 일본 자민당의 '55년 체제'의 붕괴가 무너질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90년대 초반에 잠깐 자민당이 정권을 내주기도 하였으나 불과 9개월이었고, 그것도 선거가 아닌 국회의원들의 이합집산으로 인한 것이어서, 진정한 정권교체 - 선거에 의한 - 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br><br>1955년부터 일본은 자민당이 지속적으로 집권하고 있다. 물론 자민당이 절대 과반을 얻지 못할 때에는 다른 정당의 도움을 받아 (지금은 '공명당'과 연립 여당을 구성하고 있다) 54년째 집권하고 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어떤 이는 일본의 의회를 '1.5당 의회'라고도 부르며, 혹자는 심지어 '일당 독재'라고도 규정하기도 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1955년 이래로 자민당의 총재가 일본의 총리가 되는 것이 하나의 '공식'이었기 때문이다.<br><br>일본의 사회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자민당의 의원들을 눈여겨보면 '세습 의원'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세습 의원이란 말 그대로 아버지가 의원을 하다 그 아들이나 사위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체에서 '세습 의원'이라니, 심하게 말하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세습되는 것과 무엇이 다를게 있겠는가. 이것은 '아래'에서부터의 민주주의가 아닌 '위'로부터의 민주주의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일본의 근세사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데,&nbsp;기실 1867년 메이지유신 이전까지는 일본은 막부의 '쇼군'을 정점으로 하는 봉건사회라고 하는 것이 옳다. 일본은 100여명에 달하는 '다이묘'(영주)들이 각자 자신의 '번(영지)'을 통치하였고, 이들은 쇼군에 충성서약을 하면서 자신의 영지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는 전형적인 봉건사회였던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전체적인 다이묘들의 위상은 격하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이묘들의 영향력까지 약화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막부에 참여하지 않고 메이지유신(천황)에 참여한 다이묘들의 세력은 오히려 강해졌다고나 할까. 이런 것들과 다른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러한 '세습'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자민당 의원들 가운데서 이러한 '세습 의원'들이 적지 않다. 또한 현재의 아소 다로 일본총리 자신도 세습 의원이고 내각 대신(장관) 18명 중 12명을 세습 의원을 임명하여서 이 문제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었다.<br><br>여하튼, 이번 8월 30일 일본의 중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확실해 보인다. 오늘(7월 20일) 발표된 마이니치 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차기 정권으로 적합한 정당'으로 민주당을 선택한 비율이 56%나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참으로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곧바로 투표로 연결된다면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절대 과반을 획득하여 정권 교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 민주당의 정체성은 한국의 민주당과 거의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1993년 오자와 이치로를 중심으로 한 자민당의 몇몇 의원들과 소수 야당들이 연합해 세운 것이 바로 일본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정책의 방향도 큰 틀에서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고, 몇몇 정책들 - 주로 경제, 복지 정책 - 에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사회주의적 성격이 가미된 자본주의 정책을 수립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로 인해 일본의 진보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번 선거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일본이 선거로서 정권교체를 수립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br><br>또 하나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일본 공산당이 얼마나 선전할 수 있느냐다. 일본의 공산당은&nbsp;1960년대&nbsp;전공투 이후&nbsp;지방의 풀뿌리 조직을 다지는 것에 힘을 써 왔는데, 이번 민주당 돌풍이 공산당에게 얼마나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 궁금하다. 만약 민주당이 중의원의 절대 과반을 얻지 못한다면 가장 먼저 여당의 러닝메이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산당이며, 이러할 경우 공산당은 내각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정책을 일부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워낙 민주당의 확실한 압승이 예상되어서 공산당의 러닝메이트 참여 여부를 점치기에는 아직까지 무리수가 따른다.<br><br>여하튼, 일본에서의 '작은' 진보가 실현되길 기대한다. 그것을 만드는 것은 바로 일본 시민들의 선택이다.<br><br>(+) 일본의 의회제도 : 양원제 채택, 하원인 '중의원'과 상원인 '참의원'으로 구성된다.<br>- 중의원 : 일본의 하원.&nbsp;전체 480석(지역구 300 / 비례대표 180). 4년임기.<br>- 참의원 : 일본의 상원. 전체 242석(지역구 142 / 비례대표 100). 6년임기(3년마다 절반씩 선출).<br>- 일본은 하원인 중의원에서 총리를 선출하며, 따라서 총리는 하원에 대한 해산권만 가질 수 있다. 또한 법안 의결에서도 중의원-참의원 순으로 법안을 의결하게 되나, 중의원에서 의결한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될 경우에는 중의원이 다시 의결하여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이처럼 중의원, 즉 하원의 역할이 더 큰 것을 '하원 우월주의'라고 부르며, 영국의 의회도 이러한 하원 우월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법안이 상원에서 부결될 경우 더 이상 심의하지 못하므로 상원의 힘이 크며, 이 형태를 '상원 우월주의'라 한다.<br><br>(+) 최근 일본 중의원, 참의원의 의석분포.<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907/21/53/f0037453_4a65a5327407b.jpg" width="400" height="21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907/21/53/f0037453_4a65a5327407b.jpg');" /></div><br>- 좌파 : 공산당, 사회민주당<br>- 중도 : 민주당, 국민신당, 개혁클럽<br>- 우파 : 자민당, 공명당<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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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parkstyle.egloos.com/1473816#comments</comments>
		<pubDate>Mon, 20 Jul 2009 16:46:51 GMT</pubDate>
		<dc:creator>박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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