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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Panzerkatz im Einsatz</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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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2차 세계 대전사가 나의 취미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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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4 Nov 2009 14:47:1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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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Panzerkatz im Einsatz</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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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2차 세계 대전사가 나의 취미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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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강간당한 아이" 미츠비시 F-2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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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a title="" href="http://ko.wikipedia.org/wiki/%EB%AF%B8%EC%93%B0%EB%B9%84%EC%8B%9C_F-2" target="_blank">한국어 위키백과 F-2</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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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한국어 위키백과 미츠비시 F-2 개발경위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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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 공동개발로 인해 독자 개발을 지향하고 있던 일본 방위청, 일본 경산성, 일본 항공기 제작사 등 관계자들로부터 반발을 사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일반적으로도 일본 내에서는 "미국의 간섭"이라 회자되며, 후에 "강간당한 아이"라고까지 이야기된 F-2는 공동 개발에 이르게 된 사정이 복잡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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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부분의 일본어 위키백과 내용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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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2の開発は当時の日米貿易摩擦などに端を発するアメリカ合衆国との政治的問題が絡み、当初の純国産機の開発から、F-16戦闘機をベースとした日米共同開発による準国産機の開発へと推移した』 <br />
『F-2의 개발은 당시 일본과의 무역마찰 등으로 발단이 된 아메리카 합중국과의 정치적 문제가 얽혀 당초 순국산기에서 F-16 전투기를 모체로 일본과의 공동개발을 통한 준국산기로 변경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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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위키백과는 후에 자극적인 표현인 "강간당한 아이"라는 문구가 삭제됐습니다. 물론 표현 또한 수위가 조절되었고, 그 만큼 더 객관적이 됐죠. 이를 테면 중용의 도를 걷게 됐다고 할까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주적인 의식을 가지고 자국 전투기의 국산화를 추진한 소위 일본의 애국자들에게는 분노와 울분의 표현인 "강간당한 아이"는 당연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저 문서를 번역하고 한국어 위키백과에 올릴 때도 그랬지만 일본제 전투기 설명에 일본인의 주관적 사고가 개입되는 게 당연하며, 그게 더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일본의 애국자들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개념없는 XXX나 다름 없지만 말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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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인 제가 한국어 위키백과에 여과없이 일본어 본문을 번역해서 올린 거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중립적 시각 문제로 운영진에게 지적당하고 몇 번 내용을 수정하기는 했는데, 그 와중에도 "강간당한 아이"라는 표현은 끝까지 삭제 혹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처한 진퇴양란의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준 미츠비시 F-2의 처지를 그 만큼 잘 표현한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만약 우리 나라가 일본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미국은 역시 같은 행동을 택해 한국을 엿 먹였겠죠. 국방 및 외교 면에서 꼬락서니가 영 마음에 안 드는 일본이지만 이런 점에서 동병상련인 점도 있습니다. 게다가 번역 중 수퍼 301조 얘기가 나왔을 때 침음성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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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초에 전문(全文)을 번역했는데, 현재도 그다지 수정된 부분은 없습니다. 외국어 문서 번역의 경우 작성자 수가 적은 한국어 위키백과의 경우 시작을 했으면 그 번역자가 책임지고 끝을 보자는 일종의 책임의식이 존재하기에 혼자서 번역을 처리했습니다. 중간에 누가 끼어들면 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고, 단락의 연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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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인이면 모르겠지만 일본인도 아니면서 일본의 입장(특히 우파)을 철저하게 변호하고 옹호하는 표현에 구애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이젠 수정을 할까 합니다. 일본인 작성자의 울분이 어떤 식으로 형성됐는가를 고려하면 좀 씁쓸해지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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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24/37/f0055737_4b0be36967fdf.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24/37/f0055737_4b0be36967fdf.jpg');" /></div><div align="center"><strong>대당 1억 800만 미국달러(2004년 기준)에 이르는 귀족 아가씨 </strong></div><br/><br/>tag : <a href="/tag/미츠비시F-2" rel="tag">미츠비시F-2</a>,&nbsp;<a href="/tag/미쓰비시F-2" rel="tag">미쓰비시F-2</a>,&nbsp;<a href="/tag/F-2" rel="tag">F-2</a>,&nbsp;<a href="/tag/위키백과" rel="tag">위키백과</a>			 ]]> 
		</description>
		<category>잡담</category>
		<category>미츠비시F-2</category>
		<category>미쓰비시F-2</category>
		<category>F-2</category>
		<category>위키백과</category>

		<comments>http://panzerkatz.egloos.com/2071377#comments</comments>
		<pubDate>Tue, 24 Nov 2009 13:47:26 GMT</pubDate>
		<dc:creator>장갑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어, 마우스 또 망가졌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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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panzerkatz.egloos.com/2069623</guid>
		<description>
			<![CDATA[ 
  사용 중이던 이카리 옵티컬이 좌측 버튼이 망가져서 앱솔루트 코리아에 입고시켰습니다. 8월 10일에 구입한 거니까 3달하고 10일만에 버튼이 나간 거군요. 6만 원짜리가 돈 값도 못하고 금방 망가졌군요. 데스애더도 그렇지만 게이밍 마우스라는 명칭은 허울 뿐인 듯합니다. 데스애더 3개 사용했지만 일반적으로 수명이 6개월 정도였습니다. 6개월이면 고가 마우스라도 어떤 식으로든 기능 고장이 발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데스애더도 게이밍 마우스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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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5를 써본 적이 없어서 로지텍 제품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마우스의 명가라고 하는 레이저, 스틸시리즈 제품의 내구성은 생각보다 한계치가 낮은 듯해보입니다. 현재의 대세처럼 더 이상 견고한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FPS 게임 좀 했다고 6개월 버티지 못하는 게 정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래는 어쩌다가 하지만 예전에는 AVA 많이 했었습니다. 제가 험하게 사용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박스 구성물 하나 버리지 않을 정도로 물건 관리하는 데 철저한 일면이 있습니다. 애시당초 물건 험하게 사용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플삼으로 스파4 대전 중 상대에게 쳐발리고 빡쳐서 패드 내던지고 책상 내려치는 일 같은 건 가끔 있었음 -_-;)<br />
<br />
얼마 전에 모니터 망가지더니 이번엔 마우스라, 조만간 그래픽 카드도 망가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나마 마우스는 무상AS 기간 2년이 지날려면 한참 남아서 별 상관이 없을 듯합니다만. 어쩔 수 없이 구석에 쳐박아뒀던 데스애더를 다시 꺼냈습니다. 이녀석도 그다지 상태가 좋지 않아서 좀 쓰다 보면 망가질 거 같군요. 이젠 왜 좋은 마우스를 써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AS 신나게 받을려고 쓰는 거 같지 않습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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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24/37/f0055737_4b0bd24c23c90.jpg" width="500" height="360.71428571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24/37/f0055737_4b0bd24c23c90.jpg');" /></div><br/><br/>tag : <a href="/tag/스틸시리즈" rel="tag">스틸시리즈</a>,&nbsp;<a href="/tag/이카리옵티컬" rel="tag">이카리옵티컬</a>			 ]]> 
		</description>
		<category>잡담</category>
		<category>스틸시리즈</category>
		<category>이카리옵티컬</category>

		<comments>http://panzerkatz.egloos.com/2069623#comments</comments>
		<pubDate>Tue, 24 Nov 2009 12:36:23 GMT</pubDate>
		<dc:creator>장갑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하인츠 하르멜 SS소장과 발터 하르처 SS상급대령의 라이벌설 ]]> </title>
		<link>http://panzerkatz.egloos.com/1905805</link>
		<guid>http://panzerkatz.egloos.com/1905805</guid>
		<description>
			<![CDATA[ 
  이런 근거 없는 얘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최근 알았습니다. 빌헬름 티케의 제2 SS 기갑 군단사 아른험 전투 부분 읽다가 발견한 내용입니다. 이하는 티케 씨가 자신의 저서에 단 주석입니다. <br><br>『*코넬리우스 라이언의 저서 144쪽(보급판은 169쪽): 라이언은 여기서 하르처와 하르멜 사이에 존재하지도 않는 라이벌 구도를 묘사해 놓았다. 실제 두 지휘관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협력이 존재했다. 제9 SS 기갑 사단은 2개 기갑 척탄병 대대와 1개 포병 대대를 제10 SS 기갑 사단에 인계했다.』<br><br>노르망디 전투에서 보병 전력을 괴멸당하시다피 하고 1944년 8월 29일 전투단으로 재편성된 호엔슈타우펜 사단은 사단장 프리드리히빌헬름 보크(Friedrich-Wilhelm Bock) SS상급대령 대신 임시로 발터 하르처 SS중령이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당시 휘하에 뒀던 병력은 후방 제대 병력을 포함한 패잔병 3,500명 정도였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제9 SS 기갑 연대 및 나머지 병력은 사단장 보크 SS상급대령과 함께 네덜란드로 한발 먼저 철수했습니다. 그에 따라 후군으로서 영미군과 치열하게 교전을 치르며 네덜란드로 철수한 하르처 SS중령에게 "호엔슈타우펜 전투단"의 지휘관 직이 계속해서 유지된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br><br>정식 사단장인 질베스터 슈타들러(Sylvester Stadler) SS소장이 사단의 지휘권을 인수하기 전까지 사단 작전주임인 하르처 SS중령이 1944년 10월 10일까지 임시 사단장으로 사단을 지휘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임시입니다. 전투단으로 재조직돼 재편성을 위해 독일로 철수 중이었던 호엔슈타우펜 사단에 정식 사단장을 발령낼 필요가 없었죠. 프룬츠베르크 사단도 전투단으로 재조직돼 있는 상황이었지만 호엔슈타우펜 사단으로부터 상기의 병력과 상당량의 장비를 받아서 사단으로서의 기본 구조는 갖추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마켓가든 작전이 개시되기 10일 전인 9월 7일 하르멜은 당시까지의 공적으로 SS소장으로 승진했습니다. <br><br>라이언 씨의 주장대로 하르처가 마켓가든 작전 당시 하르멜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처지였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르멜은 장군으로 정식 사단장인 인물이었고, 하르처는 SS중령으로 임시 사단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하르처는 하르멜보다 6살이나 나이가 적었습니다. 이미 하르멜은 백엽장을 수훈한 전설적인 무장 친위대원의 반열에 올라있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1944년 12월 15일에는 검장까지 수훈). 연공서열로 따져도 무훈으로 따져도 나이로 따져도 하르멜은 하르처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라이벌 의식이라는 건 어느 정도 비슷한 상대에게 가질 수 있는 거지 이처럼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는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호엔슈타우펜과 프룬츠베르크는 형제 사단이라는 인연에 따라 오랜 기간 함께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장교, 병사할 것 없이 사이가 좋았습니다. <br><br>둘 다 SS특수목적부대 출신으로 하르멜은 데어 퓌러 연대에서 짬밥을 먹었고, 하르처는 도이칠란트 연대에 몸을 담았었습니다. 다시 말해, 둘 다 다스 라이허(Das Reicher)나 다름없었단 말이죠. 하르처가 상관이자 선배로서 입지전적인 인물인 하르멜에게 존경심을 가지면 가졌지, 질투나 시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동부전선에서 육탄 공격으로 전차를 격파한 전적까지 있는 하르멜에게서 사차원의 벽이 있는 것처럼 느끼지 않았으면 다행일 정도입니다. <br><br>흥미와 재미를 위해서 라이언 씨가 물심양면으로 노력한 건 알겠지만, 이런 식의 왜곡과 곡해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티케 씨가 자신의 저서에서 이를 짚고 넘어간 건 오해를 풀기 위해서였겠지만, 과연 짜증이 안 났을까요. 무장 친위대는 자기들끼리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라는 이상한 분위기를 조장했는데 말입니다. 제가 버럭개그를 그만둔 건 이와 비슷합니다. 타협도 정도가 있는 거지, 재미와 흥미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거나 희화화하는 건 저는 물론이거니와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어차피 니들은 관심도 없고 사실도 모르잖아? 그러니 그냥 웃고 떠들기나 해!'라는 악의적 의도가 내포됐다는 거죠. <br><br>하인츠 하르멜과 발터 하르처의 라이벌설이 근거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은 그냥 웃고 넘어갔겠지만, 무장 친위대에 호의적이지 않은 그리고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과연 라이벌설이 어떻게 비춰졌을지 생각하면 답은 뻔하죠. <br><br><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13/37/f0055737_4afd6c944f60f.jpg" width="300" height="46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13/37/f0055737_4afd6c944f60f.jpg');" /></div><br/><br/>tag : <a href="/tag/하인츠하르멜" rel="tag">하인츠하르멜</a>,&nbsp;<a href="/tag/발터하르처" rel="tag">발터하르처</a>,&nbsp;<a href="/tag/빌헬름티케" rel="tag">빌헬름티케</a>,&nbsp;<a href="/tag/코넬리우스라이언" rel="tag">코넬리우스라이언</a>,&nbsp;<a href="/tag/대전말기의화염폭풍속에서" rel="tag">대전말기의화염폭풍속에서</a>			 ]]> 
		</description>
		<category>무장 친위대 이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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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대전말기의화염폭풍속에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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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3 Nov 2009 14:27:43 GMT</pubDate>
		<dc:creator>장갑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사람 속 긁는 레이놀즈 장군님의 염가 세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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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13/37/f0055737_4afd4dc0a8249.jpg" width="490" height="9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13/37/f0055737_4afd4dc0a8249.jpg');" /></div><br />
마이클 레이놀즈 장군의《강철 지옥》 좀 구해볼까 싶어서 아마존을 검색했더니 위와 같은 세트가 나오더군요. 55달러, 정말 저렴한 가격입니다. 《제3 제국의 아들들》보급판 20달러,《강철의 인간들》양장본 40달러 해서 60달러나 들였는데, 표지를 바꾼 보급판 레이놀즈 장군 세트가 이렇게 나와서 제 속을 긁는군요. 구판 표지가 영 마음에 안 들어서 새로 나온 보급판의 표지가 썩 마음에 듭니다. 《강철 지옥》하나 구하고자 저걸 세트로 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환장하겠습니다. <br />
<br />
단순히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 제2차 세계 대전 관련 서적을 모으는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소장을 목적으로 한 만족감을 위해서 가능하면 양장본을 구할려고 합니다. 하다 못해 보급판이라도 표지가 괜찮은 걸 원합니다. 얼마 전에《강철의 인간들》을 양장본으로 구입한 건 이 때문이었습니다. 페이퍼백으로 구해도 됐는데, 알맹이 뿐만 아니라 껍데기도 좋아야 모으는 맛이 나서 일부러 양장본으로 주문한 겁니다. 어찌 보면 개념이 없는 거지만, 어차피 계속해서 여러 번씩 봐야 할 서적이라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좋죠. 니클라스 체털링 씨의《쿠르스크 1943》같은 건 양장본의 가격이 터무니 없는 수준으로 책정돼서 어쩔 수 없이 논문에 허접한 종이 표지 달아놓은 모습을 한 보급판을 구했지만, 이 정도로 가격차가 벌어지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br />
<br />
마음 같아서는 표지 바뀐 보급판 세트를 구매하고 싶지만, 구할 게 산더미 같으니《강철 지옥》신보급판이나 구해봐야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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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13/37/f0055737_4afd513940cea.jpg" width="400" height="53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13/37/f0055737_4afd513940cea.jpg');" /></div><div align="center"><strong>"지크 보급판!" </strong></div><br/><br/>tag : <a href="/tag/마이클레이놀즈" rel="tag">마이클레이놀즈</a>,&nbsp;<a href="/tag/강철지옥" rel="tag">강철지옥</a>,&nbsp;<a href="/tag/제3제국의아들들" rel="tag">제3제국의아들들</a>,&nbsp;<a href="/tag/강철의인간들" rel="tag">강철의인간들</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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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담</category>
		<category>마이클레이놀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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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3 Nov 2009 12:31:04 GMT</pubDate>
		<dc:creator>장갑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일이 점점 커지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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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제2차 세계 대전을 파던 주목적은 무장 친위대에 대한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나치 육군의 편제나 비도덕성에 대한 속칭 '드립'을 칠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제가 아는 고수 분들이 먹고사니즘 때문에 손놓고 계셔서 자구책을 강구한 겁니다. 그런데 파다 보니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이나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을 맞이했고, 전투나 전역에 대한 재조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육군에까지 손을 대게 됐습니다. 시작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죠.  <br />
<br />
더욱이 무장 친위대는 독일 연방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왕따 신세라 언급이 잘 안 됩니다. 무장 친위대에 대한 가치 판단과 도덕성 논란 때문에 껄끄러운 부분도 많습니다. 몇 년 전 양철북의 저자 귄터 그라스가 무장 친위대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구에서 죽일놈 취급을 받았죠. 이전에는 방문자도 별로 없었고, 반쯤은 장난으로 쓴 글들이 많아서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었죠. 하지만 이젠 그런 수준은 넘어섰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문자수가 많아져서 생각나는 대로 마구 휘갈길 수 없게 됐습니다. 나름대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고 하고, 부담감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br />
<br />
무식했을 때는 용감했죠. 반대로 알면 알수록 점점 글을 쓰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어제 쓴 파울 하우서에 관한 글도 무장 친위대 고위장성 옹호드립처럼 들려서 테러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했습니다. 육군 장군 출신이라 여타 무장 친위대 장군들과는 달리 군사사가들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고 있고, 저 또한 같은 입장입니다. 하지만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고, 군사사가들이 후한 평가를 했다고 해서 하우서가 나치가 아닌 건 아니니까요.     <br />
<br />
중립적 시각과 균형감 있는 서술 따위는 스스로에게 바라지도 않습니다. 욕만 먹지 말자는 각오라고 할까요. 다루는 주제는 더욱 다양, 광범위해지고 그에 맞춰 무게를 더해가고 있는데, 전 그다지 발전이 없는 거 같아서 언젠가는 수습이 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됩니다. 일단 오늘까지는 대충 수습이 된 듯합니만, 일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 언젠가 수습이 되지 않는 날이 오겠죠. <br />
<br />
<br />
P.S. 건덕질이 참 편합니다. 까일 것도 별로 없고 말입니다. <br />
<br />
<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10/37/f0055737_4af97d53c4087.jpg" width="500" height="324.218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10/37/f0055737_4af97d53c4087.jpg');" /></div><div align="center"><strong>"글 쓰지마 <br />
그럼 편해"</strong></div><br/><br/>tag : <a href="/tag/대충수습이안되네" rel="tag">대충수습이안되네</a>,&nbsp;<a href="/tag/독빠의걱정" rel="tag">독빠의걱정</a>			 ]]> 
		</description>
		<category>잡담</category>
		<category>대충수습이안되네</category>
		<category>독빠의걱정</category>

		<comments>http://panzerkatz.egloos.com/1884249#comments</comments>
		<pubDate>Tue, 10 Nov 2009 14:46:11 GMT</pubDate>
		<dc:creator>장갑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우리 동네에서 꺼져라, 무장 친위대!" ]]> </title>
		<link>http://panzerkatz.egloos.com/187935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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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무장 친위대원 개개인의 전후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1984년 및 1985년에 있었던 무장 친위대 퇴역군인들의 모임에 관한 서독인들의 반응을 알 수 있는 기사를 통해 그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아을지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요아힘 파이퍼 전기에 전후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자세히 묘사돼 있지만 개인적으로 파이퍼를 좋아하지 않아서 이에 관련한 글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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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30%;"><strong>세계 이모저모: 전 무장 친위대원들의 친목회</strong></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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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당국 관계자는 히틀러의 정예 무장 친위대 소속이었던 무장 친위대 퇴역군인 800명이 현지 휴양지에서 경제 전문가 회의라 알려진 친목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br />
<br />
"우리는 장래에 있을 이 모임을 중지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습니다."라고 시당국 관계자 호르스트 보익트(Horst Voigt)가 인터뷰 중 말했다. <br />
<br />
"무장 친위대 퇴역군인 상조회가 여전히 존재하는 게 유감스러울 따름입니다."<br />
<br />
그는 4일 간 이루어질 무장 친위대의 친목회가 5월 17일부터 시작되며, 무장 친위대 퇴역군인들이 마을 보양지(保養地) 건물의 회의실을 예약했다고 밝혔다. 무장 친위대 퇴역군인 상조회 회장인 알베르트 슈텐베델(Albert Stenwedel)은 인터뷰를 거부했다. "당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그는 함부르크(Hamburg) 자택에서 전화로 전했다. UPI<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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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 title="" href="http://www.nytimes.com/1984/03/06/world/around-the-world-waffen-ss-veterans-plan-west-german-reunion.html?scp=3&sq=WAFFEN%20SS&st=cse" target="_blank">1984년 3월 6일자 뉴욕 타임즈</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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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30%;"><strong>무장 친위대의 친목회가 서독의 분노를 촉발!</strong></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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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친위대 퇴역군인 수백 명이 자신들의 도시를 방문하는 데 항의를 할 목적으로 모였던 시위대는 네셀방(Nesselwang)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해산되었다. 무장 친위대 퇴역군인들이 현지의 한 마을에서 모임을 갖고 있던 중이었다. 경찰 1명을 포함 5명이 부상당했다. A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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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 title="" href="http://www.nytimes.com/1985/05/12/world/ss-reunion-stirs-anger-in-west-germany.html" target="_blank">1985년 5월 12일자 뉴욕 타임즈</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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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fsgemeinschaft auf Gegenseitigkeit der Angehörigen der ehemaligen Waffen-SS(약칭: HIAG), 무장 친위대 퇴역군인 상조회는 1951년 창립되어 1993년에 해체된 전 무장 친위대원들의 친목단체입니다. 설립목적은 공식 대변인이었던 쿠르트 "전차" 마이어의 말처럼 무장 친위대 퇴역군인들의 연금지급 가결 법안 통과를 위한 투쟁과 회원들 간의 상조입니다. 서독 시절의 독일 정부는 당연히 이를 인정치 않았죠. 그 때문에 해산될 때까지 서독 정부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독일 연방군이 나치 국방군의 법통을 잇지 않는 것처럼, 독일 헌정은 무장 친위대를 인정하지 않으니 똑같이 망종짓을 했어도 육군과는 달리 연금을 지급받을 수 없었죠. <br />
<br />
골수나치 집단이었던 무장 친위대의 퇴역군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건 당연한 처사라고 보지만, 형편성 측면에서 육군에게 지급된 건 상당히 곤혹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전쟁범죄규모나 나치 체제에 대한 충성도를 따지면 국방군 시절의 독일 육군도 도저히 좋게 말해줄래야 말해줄 수가 없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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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알베르트 슈텐베델(Albert Stenwedel)은 SS소령으로 퇴역한 다스 라이히 사단 출신의 무장 친위대원입니다. 기사철십자장 수훈자이기도 한 이 양반은 베를린이 함락된 후 SS 제13 무장 산악 사단 한트샤르 예하 제27 무장 산악 연대의 2대대장을 지내던 시절인 1945년 5월 3일 기사철십자장을 수훈한 최후의 기사철십자장 서훈자 중 하나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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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경기에 가까운 서독인들의 과격했던 반응을 보니 침략전쟁을 "이게 전쟁이다!"라고 말하며 개념없이 설치는─실제 군대 구경도 못해본─아해들과 그 아해들 만큼 역사의식이 희박한 수구꼴통 정치가들이 많은 옆동네 섬나라 정권은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콘라트 아데나워 같은 양식있는 총리가 옆동네 섬나라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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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10/37/f0055737_4af905946e244.jpg" width="275" height="4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10/37/f0055737_4af905946e244.jpg');" /></div><div align="center"><strong>1950년대 말 이루어진 무장 친위대 퇴역군인 상조회의 한 모임에서. <br />
등을 보이고 있는 인물은 유명한 전차 마이어. <br />
그 바로 우측 편에 앉아있는 인물은 회장 파울 하우서. </strong><br />
<br />
source: http://www.ww2incolor.com/modern/DSS_385_1.html</div><br/><br/>tag : <a href="/tag/HIAG" rel="tag">HIAG</a>,&nbsp;<a href="/tag/무장친위대퇴역군인상조회" rel="tag">무장친위대퇴역군인상조회</a>,&nbsp;<a href="/tag/알베르트슈텐베델" rel="tag">알베르트슈텐베델</a>			 ]]> 
		</description>
		<category>무장 친위대 이야기</category>
		<category>HIAG</category>
		<category>무장친위대퇴역군인상조회</category>
		<category>알베르트슈텐베델</category>

		<comments>http://panzerkatz.egloos.com/1879355#comments</comments>
		<pubDate>Tue, 10 Nov 2009 06:21:54 GMT</pubDate>
		<dc:creator>장갑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경애해마지 않는 우리들의 최연장자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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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panzerkatz.egloos.com/1875861</guid>
		<description>
			<![CDATA[ 
  『제2 SS 기갑 군단 사령관 파울 하우서도 팔레즈(Falaise) 훈련장에서 벌어진 제10 SS 기갑 사단 프룬츠베르크의 통합 군사 훈련에 참석했다. 제21 SS 기갑 척탄병 연대의 부대 감독과 관련하여 그는 동 연대를 격찬하고 소속 장교 그리고 부사관들과 악수를 나누었는데, 그 중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자였던 타너(Tanner) SS상사도 포함돼 있었다. 타너는 이 일을 오늘날에도 잊지 못하고 있다.』 ─ "IN THE FIRESTORM OF THE LAST YEARS OF THE WA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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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심각한 심각한 얘기만 한 같아서 가벼운 얘기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무장 친위대의 아버지라는 불리는 파울 하우서는 농담 따먹기 대마왕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소탈한 성격으로 특유의 영감 스타일로 부하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팔레즈 포위망에서 죽다가 살아난 후 자신을 구한 제12 SS 기갑 사단 소속 쿠르츠바인 SS중위에게 농담을 걸 정도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는 인물이었죠. 타너 SS상사의 일도 그 일례 중 하나입니다. 타너 SS상사는 하우서와 악수를 나눈 일이 너무 감격적이라 전후에도 이 일을 잊지 못했던 것이죠. (위 문장의 오늘날은 1975년을 말합니다. 독일어로 된 원본이 그 해에 출판되었습니다.)<br />
<br />
초기 SS사관학교 졸업생들이 교장인 하우서를 경애했던 것 만큼, 부사관들도 그를 존경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예비역 육군 중장으로 육군대학을 졸업한 장군참모 출신의 하우서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은 상관이자 스승으로서 절대적인 영역에 이르러 있었죠. 근엄하게 생긴 노장군이 훈련 중에도 스스럼 없이 다가와 자신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니 어이가 없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역시 그 또한 사람이라는 걸 여실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하우서는 보수파임에도 불구하고 기갑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작전술적으로 기갑 부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하우서에게 부하들이 의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br />
<br />
특히 하리코프 항명 사건은 고참 무장 친위대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자신들을 위해서라면 총통명령조차 무시할 수 있는 그 배포와 책임감에 시쳇말로 하우서의 추종자들이 돼버린 거죠. 전후 무장 친위대 퇴역군인 상조회의 회장으로 추대된 건 단순히 그가 나이가 많아서는 아니었던 거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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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10/37/f0055737_4af83c9936047.jpg" width="400" height="29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10/37/f0055737_4af83c9936047.jpg');" /></div><div align="center"><strong>1970년에 찍힌 파울 하우서(좌)와 빌헬름 비트리히(우)</strong><br />
14살이나 적은 비트리히가 하우서와 비슷한 나이로 보여서 좀 안습이군요.<br />
<br />
source: http://picasaweb.google.com/lh/photo/FtYeLqFTU_6gXjPgmf3FVQ</div><br/><br/>tag : <a href="/tag/파울하우서" rel="tag">파울하우서</a>			 ]]> 
		</description>
		<category>무장 친위대 이야기</category>
		<category>파울하우서</category>

		<comments>http://panzerkatz.egloos.com/1875861#comments</comments>
		<pubDate>Mon, 09 Nov 2009 16:04:24 GMT</pubDate>
		<dc:creator>장갑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당신들은 유능했지만, 도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 </title>
		<link>http://panzerkatz.egloos.com/1858036</link>
		<guid>http://panzerkatz.egloos.com/1858036</guid>
		<description>
			<![CDATA[ 
  며칠 전에 우연히 에리히 폰 만슈타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일관성 없는 독일어 표기와 좀 이상한 번역 및 더빙이 눈에 거슬렸지만, 전체적으로 내용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나치 골수로서의 에르빈 롬멜에 대한 재평가처럼 침략 전쟁을 옹호하고 기쁘게 수행한 야심가로서 만슈타인을 묘사했습니다. 만슈타인의 부관 중 하나였던 필립 폰 뵈젤라거(Philipp von Boeselager)의 <strong>만슈타인은 히틀러의 총애를 얻고 싶어했어요</strong>라는 발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그가 히틀러에게 잘 보이고 싶어했다는 심적 확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br />
<br />
에르빈 롬멜처럼 출세길이 막혔던 만슈타인은 히틀러에게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원수봉을 쥘 기회를 마련했습니다.「프리치-블롬베르크 사건」으로 프리치가 거짓 스캔들에 휘말려 사임하게 되면서 차기 육군 참모총장 후보였던 만슈타인은 히틀러에 의해 육군의 구체제가 붕괴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소위「황제 육군」이 무너지는 계기가 된 사건이죠. 이어 육군 총사령관에 임명된 발터 폰 브라우히치는 자신을 육군 총사령관에 임명하고 장관의 지위를 부여한 히틀러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바이마르 공화국군의 히틀러 사병화를 획책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도 모자라 육군 전체를 들어다 바친 것이죠. <br />
<br />
이 사건을 목격한 만슈타인은 자신의 출세와 야심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히 깨닫고, 그때부터 히틀러와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슐리펜 계획의 궁극적인 수정판인 소위 낫질 계획을 히틀러에게 열렬하게 소개하게 된 건 그 때문이었죠. 프리치가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면서 프리치의 라인이라고 할 수 있었던 만슈타인 또한 출세길이 막혔는데, 이런 식으로 돌파구를 모색했습니다. 단, 만슈타인이 단순히 야심가라서는 아닙니다. 당시 독일 육군의 분위기 자체가 자국을 깔아뭉갠 프랑스와 주변국들에게 복수하고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서 히틀러의 재무장과 군비확장 정책에 열렬한 환영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말인 즉슨, 육군 장군단이 히틀러의 정책을 지지하고 그에 동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br />
<br />
복수심과 애국심에 불타고 있던 바이마르 공화국 육군은 폰 제크트 대장의 지도 아래 물밑에서 재무장 작업에 이미 착수한 상황이었는데, 거기에 히틀러가 기름을 부은 격이었죠. 그리고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 허울좋은 공화국군(Reichswehr)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국방군(Wehrmacht)이라는 의미심장한 명칭으로 군의 이름을 개칭했습니다. 문민통제를 거부하며 국방장관과 국방성을 무시했던 육군은 근본없는 공화국 체제 따위보다는 히틀러를 정점으로 하는 신체제 국방군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리고 브라우히치가 히틀러와의 불화로 사임한 후 육군 총사령관까지 겸하게 된 히틀러는 육군에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습니다. 당시 히틀러의 육군 총사령관 겸임을 권유한 건 프란츠 할더였습니다. <br />
<br />
이런 상황에서 만슈타인은 전쟁술(Art of War)을 유감없이 발휘해 명장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만방에 떨치기 원했고, 그에 대한 답은 이전 낫질 계획의 경험으로부터 도출했습니다. 히틀러는 그를 높게 평가했으나, 신뢰하지는 않았기에 만슈타인은 여기에 집중했습니다. 이로 인해 만슈타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타락성을 보이게 됩니다.  <br />
<br />
만슈타인의 사령부로 가던 한 대위는 행동대(Einsatzgruppen)의 만행을 목격했다. 이는 범죄행위였다. "이미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태였어요. 포로들을 향해 일제사격을 가해서 그들을 뒤로 넘어뜨렸고,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머리에 권총을 써서 죽이는 걸 보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건 집단학살이었어요.". 이 대위가 다큐멘터리에서 등장해서 관련 발언을 한 만슈타인의 부하 울리히 군체르트(Ulrich Gunzert) 대위였습니다. 이어서 다큐멘터리에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br />
<br />
다음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만슈타인이 변호사에게 답하는 장면이다.  <br />
<br />
<strong>변호사: 유태인 총살 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br />
만슈타인: 받은 적이 없습니다. </strong><br />
<br />
이에 대해서 역시 울리히 군체르트는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제가 직접 그에게 유태인의 죽음에 관한 보고서를 올리고, 그걸 막을 방법에 관해 물었다면 더 빨리 깨달았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strong>만슈타인이 보고받는 일을 교묘히 피했기 때문이죠. 자신의 군대 내에서 부하들이 유태인을 총살해도 못 본 척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어요.</strong> 그리고 우리가 후방의 점령지역에서 유태인을 총살하고 있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자신의 군대가 점령한 지역이 아니라고 잡아뗐어요. 그의 관심은 온통 다른 데 가있어거든요.".<br />
<br />
<br />
만슈타인은 후방에서 벌어진 학살행위에 침묵하는 수준을 넘어서 반쯤 동조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그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하는 만슈타인의 모습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그리고 이건 만슈타인만이 취한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동부 전선을 담당한 대부분의 독일 고위 사령관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들은 후방에서 자국에 의해 어떤 만행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쉬쉬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관심은 온통 악화일로를 걷는 전선상황에 가있었죠. 더욱이 만슈타인은 휘하 부대에 "<strong>유대인과 공산주의자는 처형하라</strong>"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여기까지 이르면 분명히 나치에 동조해 전쟁범죄를 조장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육군 고위 장성들의 모르쇠라는 주장은 만슈타인처럼 근거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br />
<br />
동부전선의 비극은 단순히 나치 체제가 얼마나 잔혹하고 철저했냐라는 관점에만 국한해서는 명확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나치 정권의 비도덕성 만큼이나 나치 육군의 비도덕성도 그에 기여했기 때문이죠. <br />
<br />
부패한 정권과 그에 동조하는 군대라는 조합이 얼마나 큰 재앙을 낳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나치 독일 육군이 그들의 주장대로 나치 체제에 저항했다면,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전쟁범죄행위는 당연히 보안방첩부 산하 부대와 무장 친위대 그리고 일반 경찰에 의해서 이루어졌겠죠.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바르샤바 봉기 진압 대장으로 유명한 폰 뎀 바흐가 연합국에게 면죄부를 받고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동부전선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건 대부분 국방군 특히 규모가 컸던 육군이었습니다. <br />
 <br />
독일 육군 전체가 나치 체제의 톱니바퀴로서 훌륭히 기능했음을 증명해 주는 사례가 이렇게 많고, 고위 장성들의 비도덕성을 질타하는 증거가 전후 밝혀지면서 독일 육군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던 나치 체제에 저항하는 전문기관으로서의 육군은 허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침묵하는 수준을 넘어서 악의 방관자가 아니라 반쯤은 그것을 긍정하는 악의 동조자로서 악이 승리하는 데 일조했죠. 그들은 유능했지만, 도덕적이지는 못했던 것이죠.  <br />
<br />
<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08/37/f0055737_4af664308d691.jpg" width="300" height="40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08/37/f0055737_4af664308d691.jpg');" /></div><div align="center"><strong>"당신은 유능했지만, 도덕적이지는 않았습니다."</strong></div><br/><br/>tag : <a href="/tag/에리히폰만슈타인" rel="tag">에리히폰만슈타인</a>,&nbsp;<a href="/tag/전쟁범죄" rel="tag">전쟁범죄</a>,&nbsp;<a href="/tag/만슈타인" rel="tag">만슈타인</a>			 ]]> 
		</description>
		<category>독일 국방군 전기</category>
		<category>에리히폰만슈타인</category>
		<category>전쟁범죄</category>
		<category>만슈타인</category>

		<comments>http://panzerkatz.egloos.com/1858036#comments</comments>
		<pubDate>Sun, 08 Nov 2009 06:27:33 GMT</pubDate>
		<dc:creator>장갑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돌격・강습・백병」 ─ 건담 거베라 ]]> </title>
		<link>http://panzerkatz.egloos.com/1827653</link>
		<guid>http://panzerkatz.egloos.com/1827653</guid>
		<description>
			<![CDATA[ 
  <strong>건담 시제 4호기</strong>(GUNDAM GP04G)는 OVA 《기동전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에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는 가공의 병기이다. 지구 연방군에게 돌격・강습・백병전용이라는 컨셉을 바탕으로 설계된 모빌슈트이다. 코드네임은 건담 거베라(GUNDAM GERBERA)이다.<br />
<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05/37/f0055737_4af2e704810ea.jpg" width="404" height="53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05/37/f0055737_4af2e704810ea.jpg');" /></div><div align="center">http://piro.sakura.ne.jp/plastics/gff_rx78gp04g/</div><br />
<br />
<br />
<span style="font-size:130%;"><strong>기체 제원</strong></span><br />
형식번호: RX-78GP04G<br />
소속: 지구 연방군<br />
제작: 애너하임 일레트로닉스<br />
생산형태: 시험제작형 다목적 모빌슈트<br />
두정고: 18.2 미터<br />
장갑재질: 건다륨 합금<br />
무장: 롱 빔 라이플(짓테 부착형) x 1, 빔 사벨 x 2<br />
 <br />
<br />
<span style="font-size:130%;"><strong>기체 해설</strong></span><br />
실제로는 건담 시작 1호기 제피란더스와 컨셉이 중복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건담개발계획」에서 제외되어 결국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애너하임 일레트로닉스는 독자적으로 거베라를 바탕으로 거베라 테트라(형식번호: AGX-04)를 개발해 뒷거래를 통해 시마 함대에 양도했다. 이 거베라 테트라가 건담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건담개발계획」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지만, 구 지오닉 사 기술자들이 다수 개발에 참가했기 때문에 혹은 시마 함대와의 뒷거래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위장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존재한다.<br />
<br />
룽가 해(Lunga Sea) 포격전에서 사용된 고출력 빔 라이플은 거베라용으로 설계되었다고 전해진다. (단, 화기관제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GP 시리즈에서의 사용을 전제로 한 물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br />
<br />
 <br />
<span style="font-size:130%;"><strong>극중에서의 활약</strong></span><br />
OVA 본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3D CG 애니메이션《건담 에볼브4》에서는 GP 시리즈의 데이터 중 본기의 모습이 존재했다. <br />
<br />
 <br />
<span style="font-size:130%;"><strong>등장 배경</strong></span><br />
본래 존재 자체가 당초부터 설정되어 있지 않았으며, 공식적인 일러스트 또한 존재하지 않는 기체였다. 하비 매거진이 발행하는 잡지《하비 재팬》별책《건담 웨폰즈3》에서 미카 아키타카에 의해 디자인되었으며, 그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만약 시작 4호기가 완성되었더라면」이라는 IF설정에 기반해 제작된 프라모델 작례가 인기를 모아 개라지 키트화가 진행되었고, 2004년에 공식 설정이 되었다.<br />
<br />
코드 네임「거베라」는 동명의 국화과 식물에서 따온 것이다. 꽃말은「신비」,「숭고미」등이다.<br />
<br />
 <br />
<span style="font-size:130%;"><strong>참고문헌</strong></span><br />
본문의 원문은 <a title="" href="http://ja.wikipedia.org/wiki/GP04#.E3.82.AC.E3.83.B3.E3.83.80.E3.83.A0.E8.A9.A6.E4.BD.9C4.E5.8F.B7.E6.A9.9F.EF.BC.88.E3.82.AC.E3.83.BC.E3.83.99.E3.83.A9.EF.BC.89" target="_blank">일본어 위키백과 건담 시작 4호기</a> 항목이다. <br/><br/>tag : <a href="/tag/RX78GP04" rel="tag">RX78GP04</a>,&nbsp;<a href="/tag/GP04G" rel="tag">GP04G</a>,&nbsp;<a href="/tag/건담거베라" rel="tag">건담거베라</a>,&nbsp;<a href="/tag/GP04" rel="tag">GP04</a>			 ]]> 
		</description>
		<category>건덕후의 잔재</category>
		<category>RX78GP04</category>
		<category>GP04G</category>
		<category>건담거베라</category>
		<category>GP04</category>

		<comments>http://panzerkatz.egloos.com/1827653#comments</comments>
		<pubDate>Thu, 05 Nov 2009 14:56:01 GMT</pubDate>
		<dc:creator>장갑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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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7인치 LCD로 복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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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8일만에 AS 보낸 27인치 LCD 모니터 복귀했습니다. <br />
17인치 CRT로 보내던 굴욕(?)의 나날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br />
그 동안 17인치 모니터에 적응이 나름 잘 돼 있었나 봅니다. <br />
1년 넘게 쓴 27인치지만 8일만에 다시 보니 커보이는군요. <br />
27인치면 쓰기 아주 적당한 크기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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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기간이 지나서 피같은 돈 5만 원을 썼지만 어쨌든 기쁘군요. <br />
피시뱅크가 AS를 외주로 돌리고 있긴 하지만 서비스는 양호합니다. <br />
수리 기간 그럭저럭이고 직원들의 통화 태도도 친절합니다. <br />
더블사이트 한국 사이트가 망해서 좀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br />
이렇게 무사히 모니터가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br />
<br />
예전보다 명성이 떨어지긴 했어도 <br />
그래도 피시뱅크가 국내 중소기업 중에서는 손가락에 꼽을만 한 듯합니다. <br />
다음에 모니터를 구입하게 돼도 망하지 않는 한 목록에 피시뱅크를 올려둬야겠습니다.<br />
중소기업이라고 모두 막장은 아닙니다.  <br />
<br />
<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05/37/f0055737_4af2c86ecacf8.jpg" width="500" height="36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05/37/f0055737_4af2c86ecacf8.jpg');" /></div><div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130%;"><strong>으하하하하하!</strong></span></div><br/><br/>tag : <a href="/tag/피시뱅크" rel="tag">피시뱅크</a>,&nbsp;<a href="/tag/DS-2700DW" rel="tag">DS-2700DW</a>,&nbsp;<a href="/tag/더블사이트" rel="tag">더블사이트</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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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담</category>
		<category>피시뱅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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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더블사이트</category>

		<comments>http://panzerkatz.egloos.com/1826664#comments</comments>
		<pubDate>Thu, 05 Nov 2009 12:46:19 GMT</pubDate>
		<dc:creator>장갑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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