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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Nov 2009 09:00:2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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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로만 폴란스키 감독 체포 이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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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체포 이후 피해자인 사만다 가이머가 캘리포니아 법정에 재판 취소를 요구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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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itle="" h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amp;no=2009102716193232185&amp;outlink=1" target="_blank"><strong>기사 - 폴란스키 성폭행 피해女, 재판취소 호소 이유</strong></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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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머가 법정에 제출한 탄원서에는 <strong>"그의 범죄가 무엇이든 간에 폴란스키는 공정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strong>며 <strong>"그는 그런 대우를 받지 못했다" </strong>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피해자의 이런 입장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며 폴란스키의 재판 과정을 다룬 다큐멘타리 <roman polanski:="" wanted="" and="" desired="">영화 &lt;Roman Polanski: Wanted And Desired&gt;와 관련된 <a title="" href="http://oldboy.egloos.com/1954539" target="_blank"><strong>지난 포스팅</strong></a>에서도 소개했듯이 가이머의 변호사도 해당 영화 속 인터뷰에서 <strong>'명확히 폴란스키에 대해서는 유감이 없으며 그가 피해자한테 저지른 짓은 부당했지만 그렇더라도 법정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strong>고 발언한 적이 있다. <br />
<br />
또한, 체포 이전인 올해 2월 폴란스키 사건에 대한 심리가 미국 법정에서 있었는데 이미 이 때에도 피해자인 가이머 측의 변호사는 재판부가 사건을 기각하지 않은 것에 대해 <strong>"옳은 방향으로 다가가지 않았고 사법과 검사의 부패에 대한 명백한 증거조차 고려하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strong>고 비판하며 법정에서 <strong>'"폴란스키가 정당하게 다뤄졌다면" 그의 의뢰인이 사건 후 32년의 시간동안 공공연히 노출되는 것 때문에 고통을 겪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했다'</strong>.(<a title="" href="http://www.cnn.com/2009/CRIME/09/27/zurich.roman.polanski.arrested/index.html" target="_blank">관련기사 원문</a> - <a title="" href="http://blog.naver.com/johnny_marr?Redirect=Log&amp;logNo=80091695841" target="_blank">해당 기사의 번역 글</a>)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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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서는 폴란스키에 호의적인 유럽 쪽 정서에 대한 미국측의 비판적 시각들 위주로 소개가 되는데 폴란스키 측 입장에서 작성된 위의 CNN 기사도 그렇고, 언급했던 다큐멘타리 영화 &lt;Roman Polanski: Wanted And Desired&gt;<roman polanski:="" wanted="" and="" desired="">가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그 해 LA 타임즈에서 10대 영화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의 상황들을 보면 미국 현지의 분위기가 꼭 그렇게 일방적인 것만은 아닌 것같다. CNN 기사에서의 폴란스키 재판부도 폴란스키가 재판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해 어느정도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이기도 하다. 향후 폴란스키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폴란스키 사건은 미성년자 성범죄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는 점 못지 않게 언론의 선정성과 이에 놀아난 사법부의 부도덕한 스캔들로도 기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br />
<br />
</roman></ro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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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슈</category>

		<comments>http://oldboy.egloos.com/1966652#comments</comments>
		<pubDate>Mon, 09 Nov 2009 15:52:06 GMT</pubDate>
		<dc:creator>말줄임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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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적기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 영국 총리와 한국의 9급 공무원 ]]> </title>
		<link>http://oldboy.egloos.com/196143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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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title="" href="http://atmel.egloos.com/5149647" target="_blank">민중의례라는 것도 있었구나....</a><br><br>우리가 흔히 북한 인민군의 군가 내지 혁명가로 알고 있는 적기가는 사실 'The Red Flag'이란 곡으로 유럽의 사회주의자, 노동자들의 대표적인 투쟁가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영국 노동당의 당대회에서 당가처럼 공식적으로 불러지곤 하는 곡이다. 1999년에는 당대회에서 부르는 것이 일시 중단되기는 했지만 2003년에 다시 부활하여 당시 블레어 총리를 비롯한 노동당 출신의 고위 정부 관료들이 현직 신분으로 당대회에서 'The Red Flag'을 합창하기도 했다.(참고 : <a title="" href="http://bob.jinbo.net/board/view.php?table=board&amp;page=0&amp;s_mode=search&amp;field=name&amp;word=%B0%A1%B2%FB%BE%BF&amp;no=246" target="_blank">[번역] 노동당대회장에서 부활한 붉은 노래</a>) 우리나라의 진보정당들이나 노조들이 민중의례 형식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인데 그러나 적기가를 소리 높여 부른 영국 총리와는 달리 한국의 9급 공무원들은 이제 민중가요를 불렀다간 징계를 받을 지도 모를 처지가 되었다.<br><br>'The Red Flag'의 곡(<strong>"인민의 깃발은 붉디붉은 색이다. 그것은 우리 열사들의 수의다"</strong>, <strong>"겁쟁이는 도망치고 배신자는 비웃어도, 우리는 여기서 붉은 깃발을 휘날리리라"</strong> 등등의 가사로 구성된)은 위에서 링크한 블로그의 주인장이나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의 기준에 의하면 계급의식을 고무 찬양하고 혁명을 선동하는 노래이고, 이런 노래를 부른 당시 영국 총리였던 블레어는 반국가 반정부 단체의 수장이며(낮에는 행정부의 수반이고 밤에는 자신이 수반인 행정부를 반대하는?) 블레어를 수장으로한 노동당은 반정부 오덕 마이너 집단 쯤 된다고 정의 내려져야 할 터인데 이쯤 되면 조갑제를 넘어 허경영으로가는 아스트랄한 정신세계라 아니할 수 없다.<br><br>'민중의례'란 열사를 추모하고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일 것이며 그 정신이란 쉽게 말하면 민중들이 자유를 누리며 잘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걸 '국가보다 계급에 충성하자'고 해석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국가'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민중의례'를 하는 것이 국가보다 계급을 우선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헌법 1조를 무시하는 반국가적인 주장이 아닌가.<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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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담</category>

		<comments>http://oldboy.egloos.com/1961438#comments</comments>
		<pubDate>Fri, 23 Oct 2009 08:56:50 GMT</pubDate>
		<dc:creator>말줄임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옛글] 군가산점 관련 ]]> </title>
		<link>http://oldboy.egloos.com/195936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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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예전 진보누리에 올렸던 글의 일부. 백업차원 및 뭐 겸사겸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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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별력이 거의 없는 공무원 시험에 있어서 특정 집단에게만 주어지는 가산점은 헌법재판소의 지적처럼 그 외의 집단을 <strong>"실질적으로 거의 배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strong>한 다. 대부분의 공무원 시험이 80점을 훨씬 상회하는 점수가 커트라인이 되고, 몇몇 직종의 경우는 거의 100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야만 합격할 수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경우에 3~5점의 가산점은 단순한 수치상의 3~5점이 아니라 다른 집단의 진입을 원천봉쇄하는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거나 만점을 받아도 통과할 수 없는 진입장벽을 넘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br />
<br />
역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여성이나 장애인, 혹은 차별 받은 지역 출신이나 소수인종 등이 그동안 차별 받아 왔다 해서 그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것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차별의 해소를 위해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지원과 각종 제도, 나아가 지속적인 차별이 시정되기까지의 쿼터제 실시 등을 요구할 뿐, 실제 어떤 마이너리티도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다른 마이너리티들의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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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의 취업을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예산확보를 위해 노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예산을 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예비역들이, 그들이 진정 마이너리티라면 싸워야 할 대상은 또다른 마이너리티들이 아닌 메이저리티인 다른 누군가이다. 네티즌간의 치열한 논쟁이라는 식으로 언론에 의해 가십처럼 취급되는 '군가산점'이라는 최근의 이슈는 그래서 슬프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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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펼쳐진 사투에서 검투사들은 황제를 위해 자신과 같은 노예들을 죽이고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검투사가 자유를 얻기 위해 벤 살과 뼈는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며 즐긴 황제나 권력자들의 것이 아닌 다른 노예의 것이다. 한 명의 노예에게는 자유라는 혜택이 주어질 수 있지만 다른 노예에게는 죽음이 주어졌을 뿐이다. 노예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서로를 죽이려 들지만 사실 그들을 노예로 만든 건 자신들의 죽음을 즐기는 황제이다.<br />
<br />
'군가산점'은 21세기의 원형경기장이고 우리는 검투사들이다. 그들은 우리를 원형경기장에 집어넣고 서로를 물어 뜯으라고 재촉한다. 빈곤층의 어려움은 파업하는 귀족노조 때문이고,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때문이다. 그리고 예비역의 적은 이제 여성과 군대를 갈 수 없는 신체적 요인들을 지닌 자들이 된다. 황제는 우리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죽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죽이는 것은 또다른 우리일 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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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가가, 또는 권력을 잡은 누군가가 예비역들에게 해준 건 고작 '군가산점' 하나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병들의 월급을 현실화하고, 사회로 돌아갔을 때를 준비시켜줄 현역 장병들의 교육을 위한 노력 따위들을 한적이 결코 없다. 정보화 교육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르노 사이트를 돌아다닐 막간의 시간을 제공하고 지금은 어느 구석에 처박아 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정체 모를 자격증 하나를 주었을 뿐이다. 전시 상황도 아닌 이 때에 매년 일개대대 이상의 병력이 각종 사고와 자살로 전투력손실을 입고 있는데도 사고예방과 인권보호를 위한 투자는 전무하고 정신무장만 강조하는 게 이나라 군대의 현실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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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들이지만 자신들을 위해선 최소한 시가 10억 이상의 주택, 아무리 많이 잡아도 대한민국 최상위층 6만가구의 재산세 5~60만원을 인상하자는데 나라가 뒤집힐 듯 난리를 친다. 그랬던 그들이 마치 은혜라도 베풀듯 이전의 예비역들에게 주었던, 또 다시 주려고 하는 것이 바로 '군가산점'이라는 제도다. 단돈 만원이라도 움켜지고 있으려는 그들이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하위직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예비역들을 위한다는 '군가산점'이라는 제도로 또다른 마이너리티들이 희생되는지 관심이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군가산점'은 썩은 고깃덩어리 하나를 던져두고 지배세력에 대한 적대감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그들의 오랜된 통치방법을 보여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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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이 사회의 마이너리티로서 요구해야 할 것은 다른 노예들의 목을 칠 수 있는 검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1세기의 노예들이 되어 가는 소수자집단간의 서바이벌 게임이 아니라 고작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이 거두어 질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너무나 상식적인 부의 재분배 시스템 정도면 족하다. 그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할 뿐이다.<br />
<br />
이 땅의 예비역들, 그리고 수많은 마이너리티는 노예가 아니다. 그렇기에 다른 마이너리티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져야할 메이저리티의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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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슈</category>

		<comments>http://oldboy.egloos.com/1959361#comments</comments>
		<pubDate>Fri, 16 Oct 2009 18:37:52 GMT</pubDate>
		<dc:creator>말줄임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부러진 화살>, 서형 - 석궁 사건 재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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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판사에 대한 '석궁 테러' 사건으로 알려진 김명호 교수는 상해치상죄로 유죄가 확정되어 4년 동안의 실형에 처해졌으나 논란이 많은 재판으로 SBS의 '뉴스 추적'이나 MBC의 'PD수첩' 등에서 그 의혹이 다뤄지기도 했다. <부러진 화살>은 이 김 교수의 재판을 저자인 서형이 1년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취재하면서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정리하여 출판한 책이다. <br />
<br />
<부러진 화살>은 피해자인 박흥우 판사의 진술 번복이라든지 범행 도구인 석궁 등의 증거 훼손,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부러진 화살의 분실 등 사건의 의혹과 쟁점들이 재판 과정에서 어떤식으로 다루어지는지를 재판 기록과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게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증거가 훼손되거나 분실되는 등 경찰의 결정적 실수, 피해자의 증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담당 의사와 수사관의 증언 등의 돌발 상황 등 긴박감 있게 흘러가는 재판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마치 법정 스릴러 소설을 보는 듯한 이 책은 그러나 알려진 결과대로 소설같은 통쾌한 반전이 준비되어 있지는 않다.<br />
<br />
재판에서 상해의 고의를 입증할만한 증거는 거의 제시되지 못했다. 범행 도구인 석궁은 경찰에서 훼손되어 고장난 상태였다.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화살은 분실되었다. 이런 증거물의 압수 기록 등을 작성했다고 되어있는 경찰관은 그런 적이 없다고 진술해 압수조사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1.5m에서 김 교수가 자신을 향해 석궁을 발사했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검찰 조사에서 번복되고 다시 재판정에서 기억이 안난다로 바뀌는 등 일관성이 없다.(김 교수의의 변호인인 박훈 변호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 판사는 "기억이 없는 사람"이다) 박 판사는 담당 의사와 수사관이 상처 방향 등에 대해 자신에게 해준이야기를 듣고 기억이 틀렸음을 깨달아 진술을 번복했다고 했으나 해당 의사와 수사관은 박 판사에게 그런말을 한 적이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 모든 사실을 간단히 무시하거나 얼버무리고 김 교수의 재판을 마무리 한다.<br />
<br />
예를 들면, 훼손된 석궁과 사라진 화살에 대해 대법원은 '피고에게 불리할 결정적인 증거물을 수사기관에서 일부러 폐기 또는 은닉할 이유가 없다'는 식이다. 김 교수의 변호인인 박훈 변호사는 '그게 왜 피고에게 불리하냐, 유리하지!'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무죄를 주장하는 김 교수의 입장에선 해당 화살에 혈흔이 있는 지 여부를 검식하면 피해자의 상처가 과연 김 교수의 화살에 의한 것인지를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증죄로 기소해도 이상하지 않을 박 판사의 진술에 대해선 박 판사가 재판정에 피해자이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 김명호 교수의 선처를 바라는 발언을 했다는 등의 얼토당토한 이유들을 들며 신빙성을 인정한다. <br />
<br />
범행도구인 석궁과 화살은 조작되거나 훼손되었다. 목격자 없는 범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나 수차례 번복되었을뿐더러 박 판사에 적대적일 이유가 없는 담당 의사와 수사관 조차도 박 판사의 진술을 부정한다. 자연법칙 상 석궁에 의한 상처라고 보기에는 박 판사의 상해 정도가 매우 미미하고, 옷에 묻은 혈흔도 속옷과 겉옷에만 있고 그 사이에 입은 와이셔츠에는 없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다. 심지어는 그 혈흔이 피해자의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이 부분은 박 판사에 대한 혈액감정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데 이 조차도 재판부는 거부한다. 평소의 사건이라면 오히려 수사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법한데 오히려 검사는 침묵한 체 피고가 피해자의 혈액 감정을 적극적으로 신청함에도 재판부는 이를 끝끝내 거부하는 것이다. <br />
<br />
물론, 김 교수가 정말로 무죄인지는 확신하기 힘들다. 김 교수는 분명 위험한 흉기인 석궁을 들고 피해자를 찾아갔다. 그의 행위에 위법성(흉기 소지죄 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김 교수의 언행이나 여러 주장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심지어 저자인 서형도 김 교수의 날선 발언에 상처를 입고 책 출판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개인 김명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어떤 흉악범이라도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음은 당연하다. 김 교수에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형사 재판은 피해자가 무죄 임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유죄 임을 입증하는 절차이다. 그리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것이 우리 형사재판의 대원칙이다. 김 교수가 의심스럽기는 하나 정상적인 재판일 때 과연 상해죄의 유죄로 처벌 받을 수 있을 상황인지 의문이다. <br />
<br />
이런 김 교수 재판이 다른 사법 피해자의 재판들 처럼 언론의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겨레, 경향이나 진보성향의 인터넷 언론들은 물론 한국일보 같은 곳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김 교수의 입장에서 재판 소식을 전했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김 교수 재판을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사법부에 대한 우리 사회 나름의 감시 기능은 작동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김 교수 재판부는 이 모든 것에 개의치 않고 피고의 증거 조사나 증인 심문 요청을 거부한 체 일방적으로 재판을 마무리 지었다. 김 교수 재판은 한 불행한 개인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견제 받지 않는 사법권력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다.<br />
<br />
저자의 블로그에는 이 김 교수 사건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취재한 인터뷰들로 가득하다. 나같은 속물들은 개인 블로그에서 돈 안되는 이런 고된 작업을 왜 하느냐는 의문을 갖기 마련인데 책 <부러진 화살>을 통해 저자는 이런 의문을 부끄럽게 만든다. 저자 서형은 잊혀지던 김 교수 사건을 꺼내며 우리에게 사법부의 부조리함을 폭로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strong>"눈 떼지 않고 지켜볼 것. 해보려고 이해하려 할 것. 결코 외면하지 말 것. 그리고 절대로 절대로 잊지 말 것."</strong>이라는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말을 인용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세지이자 자신의 작업에 대한 나름의 자기 의미 부여일 것이다. "<strong>기존 언론이 외면하는 세상을 기록</strong>"해 나가는 이런 그의 작업에 대해 전적인 지지와 함께 고마움을 전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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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span style="color:#000099;">※ 김명호 교수 재판의 의문들에 대해 보다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글들을 참고하시면 됩니다.</span></strong><br />
<br />
<a title="" href="http://www.mediamob.co.kr/2bsicokr/blog.aspx" target="_blank">작가 서형의 블로그(http://www.mediamob.co.kr/2bsicokr/)</a><br />
<br />
<a title="" href="Http://www.mediamob.co.kr/2bsicokr/Blog.aspx?ID=197910" target="_blank">김명호 교수 항소심 박훈 변호사의 최후변론</a><br />
<br />
<a title="" href="Http://www.mediamob.co.kr/2bsicokr/Blog.aspx?ID=209573" target="_blank">박훈 변호사의 강연록</a><br />
<br />
<a title=""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88040" target="_blank">박훈 변호사의 오마이 뉴스 인터뷰</a><br />
			 ]]> 
		</description>
		<category>문화</category>

		<comments>http://oldboy.egloos.com/1955331#comments</comments>
		<pubDate>Sun, 04 Oct 2009 19:02:23 GMT</pubDate>
		<dc:creator>말줄임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Roman Polanski: Wanted And Desired - 분노, 그리고 여론재판 ]]> </title>
		<link>http://oldboy.egloos.com/195453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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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최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많은 이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시점에서, 13세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혐의로 기소되어 해외에서 도피 중이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로만 폴란스키: 원티드 앤 디자이어드>는 이 폴란스키의 입장에서 해외로 도피하기까지의 재판 과정의 부당함을 다룬 2008년 작 다큐멘터리 영화다.  스스로도 유죄를 인정한 상황에서 재판을 거부하고 해외로 도피 했던 폴란스키 감독의 행위를 변명할만한 마땅한 명분이 없어 보이는 것은 뉴스를 접한 이들의 상식적인 반응이겠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보통의 경우 누구보다도 가해자이자 피고인 폴란스키와 적대적인 입장에 있어야할 당시의 실제 검사와 피해자 등은 우리의 '상식'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br />
<br />
피해자는 폴란스키가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을 원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시의 담당 판사인 리튼밴드이 평판을 누리면서, 폴란스키는 물론 피해자인 자신에게 조차 무관심한 체 '쇼'를 연출하는 데에만 치중했다고 비난한다. 피해자의 변호인은 '명확히 폴란스키에 대해서는 유감이 없으며 그가 피해자한테 저지른 짓은 부당했지만 그렇더라도 법정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한다. 폴란스키를 유죄로 기소한 검사조차 '그런 상황에서 떠난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고 한 것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해당 검사는 담당 판사의 재판 진행을 "기만극"으로 정의 내리며 영화 내내 재판 과정에서 벌어진 부당한 일들을 담담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폭로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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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알려진 것처럼 폴란스키 감독이 미성년자에게 술과 마약을 먹인 것과 강제로 성폭행 했다는 것은 유죄로 인정된 바 없다. 검사와 피해자 측, 그리고 피고인 폴란스키 감독 이 삼자가 합의한 것은 미성년자와 '합의'로 성행위를 한 '불법성교죄' 단 하나에 대해서만 유죄로 하는 것이었다.(국내의 경우 13세미만의 경우는 합의에 의하더라도 '의제강간죄'로 처벌하는데 피해자가 13세미만이 아니어서 의제강간으로 처벌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미국 법의 경우 우리와는 달리 미성년자와 '합의'에 의한 성행위에 대한 처벌은 애초부터 강간죄와는 다른 범주로 간주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폴란스키의 송환을 책임지는 미 사법당국은 폴란스키의 범죄가 프랑스와의 협정에서 규정한 범죄인 인도에 해당되는 '강간죄'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범죄로 송환을 요청을 할 수 없다고 명확히 말한다.) 그리고 폴란스키가 저지른 범죄로는 1978년까지는 단 한 명도 교도소에 수감되는 실형을 선고 받은 적은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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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받을 고통을 우려하여 피해자 측에서 먼저 검사에게 피고와의 협상을 제안했고, 초기에는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던 검사가 이를 받아들였으며, 피고인 폴란스키 측도 당시의 양형 기준으로는 교도소 수감 등의 처벌은 피할 수 있기에 합의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당국의 보호관찰부서로부터 '정신장애 성범죄'에 대한 진단평가를 받는 것이다. 만약 '정신장애 성범죄'로 판단되면 설사 교도소 행은 피하더라도 주 정신병원에 감호될 수 있는데(아마도 재범 등의 우려가 크기 때문에) 담당 의사들은 정상으로 판단했고 이를 참고한 판사의 선고만을 기다리게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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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나 변호사 모두 재판이 마무리 되는 것을 당연히 예상하고 있던 상황에서 판사는 이렇게 사건이 종결되는 것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판사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재판을 계속 끌고 가고 싶은 욕심, 자신에 대한 별다른 존재감 없이 재판이 마무리 되는 것에 대한 불만, 또 폴란스키에 대한 강한 비난 여론에 편승하여 인기를 얻고 싶은 욕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설명하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설사 이와는 무관하게 판사 나름의 법률적 사고로 폴란스키에 대한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면 실형을 선고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피고의 항소가 당연히 예상되고 당시의 관련 사건들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의 판결이 뒤집힐 것이 우려된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를 상대로 협잡질을 시작하면서 재판은 검사와 변호인, 피해자 누구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꼬여가기 시작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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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같은 재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재판이 '쇼'가 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판사는 마치 연극의 각본을 쓰는 것처럼 변호사에게 보호관찰 선고를 주장케하고, 검사에게는 교도소 수감 주장을 시키면서(검사는 법정에서 폴란스키를 교도소에 수감시키겠다는 주장은 결코 자신의 의자가 아니었음을 인터뷰에서 분명히 한다.) 판사인 자신이 그 중간에서 피고에게 90일간의 교도소 수감을 명령하고 그 기간 동안 다시 정신감정에 대한 진단평가를 받아 결과가 나오면 최종 선고를 내리겠다고 한다. 검사와 변호사, 폴란스키에 대한 진단평가를 내린 보호관찰관 모두 반발했지만 판사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폴란스키를 교도소에 수감 시키는 실형을 선고하겠다는 위협을 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90일 수감은 폴란스키가 현재 제작 중인 영화가 완성되는 1년여 기간 동안은 유예 시켜주겠다는 회유도 병행하며 폴란스키가 이 제안을 수용하도록 설득한다. 결국 재판은 종결되거나 항소심 재판부로 가지 못하고 리튼밴드 판사의 의도대로 여전히 그의 손을 떠나지 못하게 되었고, 판사의 뜻을 거슬렀다가는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변호인 측은 판사의 말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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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예기간 중에 폴란스키의 스캔들이 터지며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다. 영화제작 차 외국으로 나가 있던 폴란스키가 양 옆자리에 여성과 동석한 체 한 축제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진이 찍힌 것이다. 언론은 자극적인 설명과 함께 영화 제작을 핑계로 폴란스키가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며 폴란스키와 이를 방조한 판사를 맹렬히 비난한다. 언론의 비난에 판사는 외국에 나가있던 폴란스키를 다시 송환하고 약속했던 유예기간을 번복하며 진단평가를 위한 90일 교도소 수감을 명령한다. 사진에 찍힌 폴란스키와 여성의 모습이나 의상들이 성적인 상상을 유발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1만여 명이 모여 있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평범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에 불과했고 재판과정에서 당시의 술자리가 영화제작 중 잠시의 휴식임을 증명하며 법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는 일이었으나 어쨌든 언젠가는 수감될 90일이었으며, 일단 이 수감을 마치고 나면 그 때는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희망 아래 폴란스키가 이를 수용, 특별 대우 없이 다른 강력범들과 함께 주 교도소로 들어간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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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주 교도소 측에서 90일이 아닌 40여일만에 폴란스키의 정신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 평가를 내리고 판사에게 보호관찰형을 권유하며 석방한 것이다. 주 교도소의 결정은 이전 보호관찰관과 동일한 결정이기에 충분히 예상되던 일이었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90일의 교도소 수감은 폴란스키에 대한 징벌이나 형이 아닌 정신감정을 위한 수감이었다는 점에서 정상으로 진단평가가 나온 이상 석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론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폴란스키에게 내려진 90일 수감도 불충분하기 짝이 없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석방되었다며 판사와 검사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이어진다. 검사나 변호인, 피해자 측으로부터 유죄사실로 인정된 적이 없는 폴란스키 사건에 대한 과장된 비판들도 여론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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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 여론과 대치되는 낮은 형을 선고 하는 것도, 실형을 선고해 자신의 재판이 항소심으로 가는 것도 원하지 않았던 판사는 다시 기존의 약속을 모두 뒤집고 폴란스키를 국외로 추방하는 것으로 재판을 마무리 지으려 하고, 폴란스키가 이에 반발해 심리를 요구하면 그 즉시 실형을 선고하겠다고 협박한다. 계속되는 판사의 농간에 사법부를 불신하게 된 폴란스키는 결국 재판받기를 거부하고 해외로 도피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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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 대중과 이에 편승한 언론, 그리고 이런 언론에 휘둘리며 여론 재판을 한 판사가 만들어 낸 이 재판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재판과정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은 폴란스키도 폴란스키지만 무엇보다 피해자가 이런 상황을 원치 않았다는 점이다. 계속되는 재판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은 오히려 늘어만 갔으며 애초의 합의대로 재판이 종결되기만을 원했을 뿐이다. 대중과 언론은 피해자가 당했을 고통에 분노하며 맹렬히 폴란스키를 비난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개인 신상을 파헤치는 이중성과 관음증적 행태를 보여주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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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여아 성폭행 사건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마치 포르노 소설 같은 확인되지 않은 범행 정황이 담긴 글들이 인터넷 여기저기로 유포되고 있다. 한 50대 남성 블로거의 사진이 범인의 얼굴이라며 성급하게 퍼날라지고 언론은 인터넷 게시판에 쓰여진 글들을 확인도 없이 옮기며 범인의 직업을 목사라고 보도해 인터넷 상에는 한동안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인권보다 범죄자의 인권을 더 중시 여긴다고 비아냥거리던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왜 범죄인에 대한 인권 보호가 왜 필요한 지를 입증하고 있는 형국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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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과거에는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였지만 후에는 파렴치한 범죄의 가해자가 되었다. 비록 피해자가 그를 용서하고 판사가 자신의 평판과 유명세를 얻기 위해 재판을 이용한 것에 분노하지만, 이런 피해자의 고통도 애초에 폴란스키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이 글이 재판과정에 있어서 폴란스키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지만 13세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범죄자' 폴란스키를 옹호하는 글은 아니다. 판사의 재판 진행이 불공정했다면 그건 그 것대로 따져 물을 일이지 공정치 못한 법 집행으로부터 구제 받을 수단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해외로 도피하면서까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대중의 분노에 편승해 여론 재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폴란스키 감독의 재판을 다룬 이 영화를 소개하며 밀하고 싶었을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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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성 범죄에 대한 보다 강한 처벌도 필요할 터이고, 범죄 예방에 대한 조치도 필요하다. 범죄를 당한 피해자를 위해 동료 시민들이 같이 분노해줌으로써 연대를 표시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분노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없고, 또 통제되지 못한 분노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폴란스키 재판에서 흥분한 언론과 대중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추가시켰고, 한 삐뚫어진 판사와 함께 사법체계를 교란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금 여아 성폭행 사건에 분노하는 네티즌들도 자신들의 분노가 올바른 대안을 만들어 내는 방향으로 가는 지 고민해 볼 시점이 아닌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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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문화</category>

		<comments>http://oldboy.egloos.com/1954539#comments</comments>
		<pubDate>Fri, 02 Oct 2009 13:24:35 GMT</pubDate>
		<dc:creator>말줄임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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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중대선거구의 문제점들 정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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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중선거구제를 실시하면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그렇게 될 경우 그 다음선거에서 영남이 '복수'에 나서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을 몰아내기 위한 몰표가 나타나 오히려 지역주의가 강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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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선거구제는 여러 문제점이 많아 일본조차도 최근 포기한 제도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국민회의가 중선거구제를 주장하고 나섰을 때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비판한 내용이다. 당시 국민회의의 강령에는 "중대선거구제는 당내 파벌 성행, 막대한 선거비용, 정국의 불안정과 신진인사의 진출제약 등 폐해가 심각해서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폐기한 제도"라고 명시하고 있으면서 정략적으로 중선구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국민회의의 강령이 정확히 맞는 것이다. 중선거구제는 당내 파벌 성행, 막대한 선거비용, 정국의 불안정과 신진인사의 진출제약 등 폐해가 너무 심각한 제도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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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itle="" href="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817074324&section=01"><strong>손호철, <선거제도를 다시 생각한다> - 프레시안</strong></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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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div><br />
중대선거구제가 비례성을 높여준다고는 해도 그것의 전격 도입에는 선뜻 찬성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것들이다. 그리고 사실 중대선거구제가 보장하는 비례성의 정도는 객관적 기준으로 볼 때 그리 높은 것도 아니다.<span style="color:#666666;"><em>(퍼온이 주 : 즉, 사표방지 효과가 그리 높지 않다는 설명)</em></span> 1996년의 중의원 선거 이전까지 일본이 택해왔던 단기비이양식 중선거구제가 그 사실을 입증한다. 36개국의 민주주의를 대상으로 한 레입하트의 실증 분석에 의하면 1945년에서 1996년 사이 일본 선거결과의 비례성 정도는 (물론 다수제 민주주의 국가들보다는 높았지만) 합의제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는 최하위에 속했다.(주3)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개혁효과가 대단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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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소수대표의 문제가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에서보다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안양시 만안구의 15대 총선 결과를 사례로 들어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하에서의 소수대표의 문제를 보여주었다. 거기서 문제된 것은 1, 2, 3위가 각각 28.5%, 28.2%, 28.0%로라는 엇비슷한 득표율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근소한 차이로 2위와 3위를 앞선 1위 후보만이 소수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는 것이었다. 만약 당시의 만안구가 5인 선거구제였다면 어땠을까? 그 경우 1위와의 표 차이가 크지 않은 2위와 3위는 물론이고 상당한 차이가 나는 4위와 5위까지도 선출된다. 그런데 4위의 득표율은 7.9%였고 5위는 겨우 3.1%였다. 결국 선거구 유권자의 3% 정도의 지지만으로도 당선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그 국회의원의 대표자격을 의심할 정도라고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이와 같이 지나친 소수대표의 문제가 여러 선거구에서 발생한다면 국회 자체의 대표성에도 의문이 가게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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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선거구제의 또 다른 문제는 정당투표가 아닌 인물투표 경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는 명백히 개악에 해당한다.(...) 중대선거구제에서는 한 정당이 한 지역구에 복수의 후보를 공천할 수 있다. 이 경우 후보들은 다른 정당은 물론 같은 정당 소속끼리도 득표 경쟁을 치러야한다. 동일 정당 후보들 간의 경쟁은 특히 자기 정당에 대한 지지가 강한 지역구에서 치열해진다. 이런 곳에서는 소위 '정당프리미엄' 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에서라면 영남권 지역구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들끼리, 그리고 호남권 지역구에서는 민주당 후보들끼리의 경쟁이 (타당 후보들과의 경쟁보다 더)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이 경쟁은 어차피 정당의 차이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므로 개별 후보들은 유권자들에게 어떻게든 자기 개인을 부각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정당 변수는 상수(常數)에 불과한 이 상황에서의 투표는 결국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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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이념이나 지향 혹은 정책기조가 아니라면 각 후보들은 대체 무엇으로 지역구민들의 개인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개인후원회와 같은 사조직을 지역 내에 많이 거느리려 들 것이고, 그러한 자기 조직에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지지자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해놓기 위하여 그들에게 끊임없이 물질적 혹은 정책적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토양에서 금권부패정치나 '사익(私益)제공정치'(pork barrel politics)가 만연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것은 선거제도 개혁 이전의 일본 정치가 그대로 보여준 현실이기도 하다. 집권 자민당 후보들끼리의 격한 선거경쟁이 금권정치와 파벌정치를 고착화시켰으며 그 와중에 지역 사익집단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과도한 정도가 되었고, 그것들이 결국 일본을 1990년대 초반까지도 부패한 신중상주의 국가로 머물게 했다는 반성이 선거제도의 개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은 정확하다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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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815155221">최태욱, <합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 방향> - 프레시안</a></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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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선거제도를 중대 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주장에 애해서는 어떻게 보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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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단순다수제를 '지역주의 선거제도'라고 매도하는 것을 가끔 본다. 그러면서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면 한 정당이 특정 광역지역을 독점하는 일은 없다는 말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민주적 원칙을 기준으로 볼 때, 중대선거구제는 최악의 선거제도이다. 중대선거구제의 전형은 1990년대 중반까지 시행되다 여러 부작용 때문에 폐지된 일본의 예가 있지만, 우리에게도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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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체제와 5공화국에서 지역구마다 2명의 후보를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한 바 있으며 이때 권위주의 집권당은 호남을 포함한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다. 반면 야당은 몇 개로 나뉘어 나머지 절반의 지역구 의원을 두고 다퉈야 했다. 그 때문에 권위주의 집권당은 어떻게 선거를 치루더라도 과반의석을 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 1988년 선거제도를 둘러싼 다툼에서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YS와 JP가 주장했던 것도 중대선거구제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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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선거구제는 표의 비례성을 왜곡하는 효과를 갖는다. 비례대표제하에서는 선거구 크기가 늘수록 비례성이 증가하지만, 다수대표제하에서 선거구 크기를 늘리게 되면 비례성은 오히려 위협받는다. 강한 정당이 존재할 경우 이들에 의해 제2당 이하를 분열시키기 용이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기존의 유력 정당들이 군소정당을 희생시켜 그 혜택을 나눠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제도권 안에 들어온 정당들의 기득권은 소선구제보다 용이하게 유지된다. 게다가 정당진입의 문턱이 낮아짐으로써 지역기반을 갖는 군소정당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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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 때문에 실제로 다수대표제가 중대선거구제와 짝을 이루는 선거제도를 채택하는 사례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지역주의 극복이 정치개혁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면 잘못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역구도 극복이 구실이 되고 맹목이 되면 민주적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 제도가 용인될 수 있다. 선거제도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참여의 증대와 대표성의 확대, 책임정치의 강화와 같이 더 민주적인 가치의 실현이 선거제도 개혁의 문제의식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한국정당체제를 더 넓은 사회적 기반 위에 올려놓으면서 결과적으로 지역구도의 완화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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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 title=""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96713">박상훈 인터뷰, <[대화록] "호남 몰표가 망국적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 오마이뉴스</a></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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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666666;"><em>마지막으로 1999년도에 쓰여진 조기숙 교수의 문화일보 칼럼. 조기숙 교수는 김대중 정권 시절 여당의 중대선거구제 주장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해왔던 정치 학자였다. 이후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이 되면서 이러한 기존의 소신이 중대선거구를 추진하는 노무현과 여당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으나 자신과 노무현이 직접 중대선거구를 주장은 없다며 대통령과 자신의 소신이 다르게 되면 언제든지 사표를 낼 것이라 반박했다. 이후 참모직에 물러난 것이 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김대중 정권 시절 여러 논문이나 언론 기고문을 통해 중대선거구제를 강력히 비판해왔음에도 노무현 정권 이후 노무현과 여당의 중대선거구제 주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 없이 침묵만을 지키는 태도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아래의 글은 1999년 5월에 쓰여졌으나 노무현 정권에 대입해도 어색함이 전혀 없다. 언론재단의 검색 서비스를 통해 찾은 글이라 링크는 없다. 전문을 읽고 싶으신 분은 언론재단 홈페이지에서 검색어 '조기숙 중대선거구'로 찾아 볼 수 있다.</em></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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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제 개혁이 휘청거리고 있다. 초반에 여당이 제시한 야심찬 목표와 계획은 온데 간데 없고 빛바랜 누더기 개혁안만 남았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선거제도가 개혁의 목표를 어떻게 만족시키며,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중선거구제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울것 같다. 일부의 성급한 예측처럼 선거구제 개혁은 물 건너가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김대중대통령은 정치개혁의 목표를 고비용 정치구조의 개혁, 정당의 전국화로 설정하였으며, 개혁의 무게중심을 선거구제 개혁에 두었다. 처음에 여당에 의해 제안된 선거구제도는 1인 2표를 근간으로 하는 소선거구제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결합시키는 독일식 선거제도였다. 정당의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학계는 정당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여당 안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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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당 단일안이 도출된 지 하루만에 갑자기 중선거구제가 여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중선거구제는 지역주의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패권지역 패권정당의 일부 현역의원을 제외하고는 여야 의원과 일부 시민단체의 대표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어 진정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왜 대다수의 정치학자들이 반대하는 중선거구제가 각광을 받고 있는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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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선거구제의 매력포인트는 모든 사람에게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는 데 있다. 정당의 공천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현역의원은 경쟁지역에서 서로 나눠먹기를 할 수 있는 중선거구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소선거구제 하에서 1등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일부 시민단체 대표들은 2, 3 등을 해도 의회진출이 가능한 중선거구제가 개혁세력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계산 뒤에 도사리고 있는 환상과 착각을 깨닫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중선거구제가 도입되어도 현재의 정당구도에서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가정은 얼마나 순진한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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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위주 선거 되레 파벌조장<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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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의 대표성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라도 여당이 목표로 내세운 전국정당화와 정치비용의 절감이라는 차원에서만 중선거구제를 평가해보자. 중선거구제는 당장 정당의 분열이나 무소속의 약진을 초래할 것이며, 이는 전국정당화라는 목표와는 정반대된다. 또한 정당보다는 인물 위주의 선거를 치르게 되어 과거 중대선거구제하의 일본정치와 마찬가지로 정당내 파벌을 조장할 것이다. 이는 정경유착, 부정부패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유신정권하에서 경험한 1구 2인의 중선거구제는 신진세력보다는 기득권세력에 유리한 제도였다는 사실이 경험적 자료로 나와 있다. 또한 지역구가 확대됨에 따라 소지역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선거비용이 인상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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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포럼]중선거구제의 裏面> - 문화일보<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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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슈</category>

		<comments>http://oldboy.egloos.com/1939459#comments</comments>
		<pubDate>Mon, 17 Aug 2009 15:41:32 GMT</pubDate>
		<dc:creator>말줄임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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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명박의 중선거구제 제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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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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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나 이명박이 주장하는, 중선거구로 선출된 지역구 의원 중심에 소수만 비례대표에 할당되는 식의 선거 제도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대만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기형적인 제도이다. 북유럽의 대선거구제를 오해하여 노, 이 방식의 중선거구제와 유사한 제도가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으나 그 나라들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는 중선거구제가 아닌 대선거구제이며 결정적으로 정당에 대한 투표로 전체 의석수가 결정되는(독일식 정당명부제처럼) 구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노, 이 식 중선거구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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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도 지역주의가 심각한 우리 현실에서는 중선거구제가 이점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나 그 효과도 미심쩍다. 물론, 노무현이 중선거구제를 제안한 배경에는 PK에서 의석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또 그 것이 결과적으로는 지역주의를 완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논리인데 자민련, 친박연대같은 성격의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한 정당들 역시도 중선거구제로 혜택을 볼 수 있기 떄문에 오히려 지역주의를 더 부추길 수도 있는 것이 중선거구제다. 수도권 등에서는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전무하나 특정 지역에 일정한 기반을 두고 있는 군소 정치세력들이 중선거구제로 생존을 유지하며 자기 지역에서의 지분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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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중선거구제를 제안한 의도 역시도 지역주의 해소와는 무관해 보인다. 추측컨데 여당의 수도권과 충청권 참패가 예상되는 지금, 중선거구제 도입되면 해당 지역에서 한나라당 고정표로 최소 2~3위만 되도 야당과 대등한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PK에서 민주당에 잃게되는 의석수를 상쇄하고도 남으며 친박연대가 이념이나 정책에 있어선 한나라당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TK의 의석을  친박연대와 공유하더라도 수도권에서 민주당에 참패하는 것 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계산이 더 커 보인다. 나아가 일본, 대만에서 보듯 중선거구제가 계파, 보스 정치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는 측면 역시 이명박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불리한 선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판을 흔들고 퇴임 후 정치적 영향력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이며 이런 의도는 이명박이나 노무현이나 특별히 다를바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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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선거구제가 군소 정당에 유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보정당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도 궁색하다. 설사 진보정당에 유리하더라도 언급했듯 군소 지역주의 정당에도 이익이 된다는 점에서 정치 전반적으로 볼 때 해악이 더 크다. 그리고 실제로 진보정당에 과연 유리하게만 적용될 지도 의문이다. 예를 들어 경남 사천을 기반으로한 강기갑이 타 지역구와 통합되었을 때 과연 2위 자리라도 유지하며 당선될 가능성이 이전보다 더 높다고 할 수 있을까? 특정 지역의 노조나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진보정당 후보가 전혀 다른 성격의 지역구들과 통합되었을 때는 또 어떨까? 게리멘더링이 되지 않는 선거구 협상이 필요한데 거대 정당들의 틈새에서 과연 진보정당에 공정한 기회가 부여될 지 장담할 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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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런 논의를 다 떠나 노, 이 방식의 중선거구제는 그 자체로 <strong>나쁜</strong> 제도이다. 정치후진국 대만에서만 시행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우리가 모범로 삼을 이유가 전혀 없는 제도이며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표의 대표성이 더 줄어들기 때문에 정치 개혁이 아니라 정치 개악에 가깝다. 지금도 30~40% 당선자의 대표성이 문제되고 있는 마당에 중선거구제에서는 20~30%만 득표하고도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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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노무현이나 이명박이 주장하는 중선거구제는 정치 개혁과는 무관한(오히려 정치를 후퇴시키는), 주장하는 당시의 정치 현실을 고려하여 당파적 이해득실 차원에서 제안한 제도일 뿐이다.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할 의지가 정말로 있다면 최선의 방법은 독일식 정당명부제일 터이나 <a title="" href="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720181355&Section=01"target="_blank"><strong>박동천 교수의 주장</strong></a>처럼 현실적으로 당장은 불가능하다면 특정 정파의 유불리와 무관한 결선투표제 도입이라도 이슈화 시키는 것이 먼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선거구제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현 정권에 이를 가는 노무현 지지자들 중 일부는 노무현의 뜻이라며 중선거구제에 동의하는 웃지못할 상황들만 연출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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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슈</category>

		<comments>http://oldboy.egloos.com/1938834#comments</comments>
		<pubDate>Sat, 15 Aug 2009 17:59:08 GMT</pubDate>
		<dc:creator>말줄임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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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귀족노조라 다르긴 다르구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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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666666;"><em>"식량창고에는 10㎏와 20㎏짜리 쌀 38포대, 화장지, 컵라면 4천여개, 생수 2ℓ짜리 1천200여개와 0.5ℓ짜리 400여개가 보관돼 있었다.<br />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 관계자는 "날짜별로 식량을 반출한 장부까지 있어 이곳에서 조합원들에게 식량을 나눠준 것으로 보인다"며 "많은 식량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노조원들이 장기전에 대비한 것 같다"고 했다."</em></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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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 남은 노조원 수 대략 5~600명 잡으면 한 명당 컵라면 7~8개에 생수 2~3개, 후식으로 건빵정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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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귀족'스런 호화만찬이네 그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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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거지도 수중에 돈 만원은 갖고 구걸하던데 이 색히도 귀족이었어. 그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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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 놓은 식량이 더 있다는데 공개된 라면 몇 봉지에 거품들을 물면서도 다른건 공개안하는 걸 보니 얼마나 대단한 게 있겠냐만은, 여튼 공개된 사진에는 봉지라면만 보이던데 컵라면에 쵸코파이라도 끼어 있었으면 일류 레스토랑 차렸다고 깔 수 있었을 걸 아쉬워서 어쩔려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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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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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담</category>

		<comments>http://oldboy.egloos.com/1936452#comments</comments>
		<pubDate>Fri, 07 Aug 2009 17:03:17 GMT</pubDate>
		<dc:creator>말줄임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2004년 쌍용차와 경제적 테러 ]]> </title>
		<link>http://oldboy.egloos.com/193548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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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908/05/35/a0012935_4a7889d84e72c.jpg" width="500" height="265.6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908/05/35/a0012935_4a7889d84e72c.jpg');" /></div><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908/05/35/a0012935_4a7889d9072b6.jpg" width="500" height="265.6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908/05/35/a0012935_4a7889d9072b6.jpg');" /></div><br />
<div align="center"><span style="color:#999999;"><em>(두 장의 사진은 거의 똑같아 보이지만 하나는 테러로 파괴된 건물이고 다른 하나는 사측의 공장 폐쇄로 폐허가 되버린 건물의 사진이다.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영화 '빅원'에서 유사한 이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며 그들의 가족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대량해고 역시 테러리즘과 다를바 없다고 비판한다.)</em></span><br />
</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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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방적으로 노조를 비판하는 측은 물론이고, 노조의 처지를 동정하며 정부의 강경진압을 비판하는 이들 조차도 쌍용차 사태에 사실상 대안이 없다고들 말한다. 상하이차가 사실상 투자는 전무한 체 오히려 기술만 빼가 쌍용차의 위기를 초래한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있기 때문에 쌍용차 노동자들에게만 고통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지원할 책임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도 상하이차와 상하이차의 먹튀를 방지할 수단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매각한 채권단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당시 상하이차로의 매각 외에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며 따라서 어쨌든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 된 현재의 쌍용차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라고들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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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안이 없다던 쌍용차의 매각 직전 해인 2003년 매출액은 3조 3천억이었으며 순이익은 6천억원에 이르렀고, 매각 당시인 2004년 사내유보금은 1조 4천억(노조는 상하이차가 자신들의 지불해야할 매각 대금을 이 사내 유보금으로 지급했다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이나 되었다. 상하이차 매각 외에는 대안이 없다던 이들의 주장처럼 당시만 해도 쌍용차에 대한 지원이 밑빠진 독에 물붙기같은 상황은 아니었을 뿐더러 청산 절차가 진행될 위험에 처해있는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놀라운 수치이기까지 하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런 기업을 상하이차에 매각한 액수가 단 5,900억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황당한 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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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차의 인수대금의 5,900억 중 3,900억은 채권단이 스스로 상하이차에 대출해준 것이다. 대출조건에 해외로의 자산 이전을 금지하는 약정을 체결하기는 했으나 상하이차는 이 대출액을 2006년 모두 상환함으로써 자산이전 금지 약정도 자동으로 해제되게 되는데 <a title=""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74002"target="_blank"><strong>오마이뉴스에 따르면</strong></a> 이 상환액의 2700억을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 대출해 준 것이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상하이차의 기술유출을 부추긴 셈이다. 이쯤되면 론스타 사건이 생각나는데 공교롭게도 매각주도사 역시 론스타 때와 같은 '삼일회계법인'과 '김&장'이라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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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쌍용차 경영상태나 상하이차에 대한 채권단의 특혜, 정부의 지원규모 등을 생각했을 때 상하이차라는 외국자본을 통해 간접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국유화하거나 지금도 노조가 사내 복지비용 들을 줄여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이 1000억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퇴직금 등을 담보로 추가로 자금을 조성하여 종업원 지주제로 갈 수도 있고, 그래도 부족한 자금이 있다면 당시에도 노조가 주장했듯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에 지분을 주는 등의 방안들도 가능했다. 더구나 당시 노조가 무조건 해외 매각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설사 해외자본에 매각하더라도 투기자본이나 상하이차 등 중국 회사가 아닌 시간을 두고 기술 유출 후 매각 등 먹튀 방지를 위해서라도 기술력을 가진 곳에 매각할 것을 주장하였으니 언급한 당시의 쌍용차 상황을 볼 때 급하게 상하이차에 매각한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는 건 억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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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노무현 정부는 상하이차에 대한 매각을 서둘렀고 그 결과는 어떠한가? 쌍용차의 매각으로 조흥은행 등 채권단은 채권액을 회수했고 정부는 스스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해놓고도 마치 해외자본을 유치한 성과를 올렸다며 생색을 낼 수 있었으며 상하이차는 인수 후 기술개발과 설비 투자는 전무한 체 핵심 기술만 중국으로 빼갔으나 그 대가는 쌍용차와 협력업체를 포함한 20만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이로인해 발생한 각종 사회적 문제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으니 2004년 쌍용차 매각 결정은 정부와 채권단, 해외자본이 공모한 경제적 테러리즘이라 부를만 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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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약이나 신체 장기의 매매를 금지하듯 사회에 지대한 해악을 끼친다면 사적자치의 원칙에는 예외를 둘 수 있다. 더군다나 쌍용차의 경우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통제에 나서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직접 나서서 상하이차의 '먹튀'를 부추겨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안겼다. 이 경제적 테러에 정부의 책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 쌍용차의 노동자들의 문제는 그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책임감을 갖고 해결 해야할 문제임도 부정할 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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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대안이 없다며 수많은 알짜 기업들을 해외로 팔아 넘겨왔다. 그러나 외환은행이나 쌍용차 등 그 대안들이 언제나 현명한 대안은 아니었다. 대안이 없었던 게 아니라 다른 대안을 찾을 의지가 없었다. 쌍용차 사태가 이 악순환을 깨고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법칙이 지배하는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저 이명박 탓만 하거나 노조의 이기주의를 탓하며 우리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당장의 손해에 눈이 멀어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는 이들부터 먼저 변할 수 있다면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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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슈</category>

		<comments>http://oldboy.egloos.com/1935487#comments</comments>
		<pubDate>Tue, 04 Aug 2009 19:21:01 GMT</pubDate>
		<dc:creator>말줄임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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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선한 지도자의 악한 권력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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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권력은 지켜주기 보다는 통제하는 것이다. 권력은 통제됨으로써&nbsp;전직 대통령이든 30원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노동자든, 철거민이든 비로소 지켜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의 '통치'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도 아니요, 탱크와 총을 앞세워 찬탈한 것도 아닌 통제받지 않았던 참여정부가 행사했던 <strong>'권력'</strong>을 고스런히 이어받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br><br>광장을 통제하는 법도 참여정부 때 개악된 집시법이며, 네티즌을 탄압하는 것도 참여정부에서 추진했던&nbsp;정보통신망법에 의해서였다. 광장을 봉쇄한다고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나 서울에서 열리는&nbsp;불법시위에 참여한다하여 고속도로에서부터 톨게이트를 통제하고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려는 농민을 끌어 내렸던 것이 참여정부다. 명박산성의 콘테이너 박스는 부산APEC 시위 등 참여정부 시절에도 종종 사용되던 시위진압 수단이다. 참여정부에서 3명의 노동자 농민이 경찰의 방패에 희생되었고 파업하는 남편을 만나러 가던 임산부가 경찰에 맞아 유산하였으며&nbsp;구속 노동자 수는 문민정부 이래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br><br>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을 향해&nbsp;폭력을 휘두른 어청수 등 경찰의 지휘부도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자들이며 사퇴한 임채진 검찰총장 역시 그러하다. 참여정부의 법과 제도는 제대로 통제받지 못했고, 그렇다고 인적 구성을 쇄신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선한 지도자에 의해 권력이 옳바로 행사될 것이라 믿었다면, 그 것은 순진하기 보다는 가증스러운 것이다.&nbsp;바로 그 '선한 지도자'가 행사한 권력에 의해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으며 심지어는 그 부당한 권력이 이어져 이제는&nbsp;전직 대통령인 노무현 자신은 물론이고 이명박 시대의 국민들을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br><br>따라서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들이 노무현에게 미안해야 한다면, '선한 지도자'에게 '악한 권력'을 쥐어주고도 그 권력에 대한 통제는 외면함으로써, 그 권력이 자신들이 지지했던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 넣게 만든&nbsp;것이어야하지&nbsp;않을까?<br><br>노무현 지지자들은 '선한 지도자'를 만들었으나 '선한 권력'을 만드는데는 실패했다. 그들이 단순한 추모를 넘어 노무현을 통해 미래를 얘기한다면 그 실패에 대해 반추해봐야 한다. 친노계가 독자세력화하든 민주당에 참여하든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다. 노무현 지지자들이 어떤&nbsp; 묘수를 찾아내어&nbsp;친노계나 민주당이 중심이 된 정권교체에 성공한다고 해서 다시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 정권의 탄생이라는 '실패'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노무현과 비슷한 어떤 '선한 지도자'를 다시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선한 지도자'가 행사할 '선한 권력'을 만들어 다음 정권(설사 그 정권이 한나라당이 되더라도)에 온전히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br><br>노무현 지지자들은 '희망 돼지'로 노무현의 '권력'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속한 정당도 통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a href="http://basil83.egloos.com/4970922">"팬클럽에서 정당정치로"</a>를 지지한다. <br><br>노무현의 지지자든 진보정당의 지지자든 '선한 지도자'를 만드는 "팬클럽" 정치에서 벗어나 그 지도자를 다시 통제할 수 있는 "정당정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br><br></p><br/><br/>tag : <a href="/tag/노무현" rel="tag">노무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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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담</category>
		<category>노무현</category>

		<comments>http://oldboy.egloos.com/1914673#comments</comments>
		<pubDate>Sat, 06 Jun 2009 05:48:40 GMT</pubDate>
		<dc:creator>말줄임표</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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