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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은 농담 반은 진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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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May 2012 17:37:0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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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은 농담 반은 진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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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천년여왕>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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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May 2012 17:37:0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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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여진, <꿈을꾼후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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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4 May 2012 17:14:5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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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NE1 <아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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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1 May 2012 20:44:5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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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신념과 책임, 그리고 윤리: 토니 주트의 <책임의 무게에 대해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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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class="본문"><span lang="EN-US"><strike>“바다의 물을 다 써도 지성의 핏자국을 다 씻어내지 못할 것이다.”(로트레아몽)</strike></span></p><p class="본문">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유럽의 20세기 만큼 많은 피를 흘렸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사회는 계급갈등이 발화하여 시민들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었고, 제국열강은 식민지 경쟁을 일삼으며 타자를 학살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이 뿌리 깊은 갈등의 배출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며, 세계사에 길이 남을 ‘업적’까지 남겼다. 인류를 절멸할 듯 펼쳐졌던 전쟁은 구원의 믿음을 간단히 없애버렸고, 사람들은 기댈 곳을 찾아 헤매곤 하였다. 하지만 역사의 반작용일까. 이때만큼 새시대, 새사회, 새문화의 열망이 강렬하게 펼쳐졌던 시기도 없었다. 혁명의 기운은 사회･정치･예술 모든 곳에 몰아쳤고, 기존의 견고한 제도와 규칙은 변화의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게다가 실제로 혁명이 실현되기도 하였다. 진원지는 러시아였다. 사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맑스도 사회주의 혁명은 산업화 선진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러시아 혁명을 의아하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아무리 봐도 러시아는 생산관계를 엎을 만한 생산력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회주의 혁명이 실현된 것은 중요한 사실이었다. 꿈으로 그리던 목표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저곳을 향해서 가기만 하면 충분했다. 그렇게 러시아는 ‘미래’가 되었지만, 여전히 유럽은 ‘과거’에 붙잡혀 있었고, 가운데 프랑스는 유독 심했다.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span lang="EN-US">20세기 들어서 프랑스는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혼란과 정체가 극심했다. 정치는 혁명을 소화하지 못해 고질적인 두통을 앓았고, 경제는 오랫동안 만성적인 불황에 시달리며 삐걱거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인구까지 가장 고령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활력도 상당히 떨어졌다. 오랫동안 유럽을 호령하던 청년 프랑스는 간 데 없고, 말 그대로 늙고 병든 프랑스만 남았던 것이다. 이른바 ‘프랑스질병’에 단단히 걸린 것이다. 당장 19세기만 해도 프로이센과 자웅을 겨루며 유럽의 패권을 다투지 않았는가. 그래도 1차 세계대전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실질적인 승전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믿었던 마지노선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본토는 침공한 독일이 놀랄 만큼 부리나케 접수되어 버렸다. ‘전격전’이란 전술을 탄생시킨 전쟁사의 ‘성지’가 되었으니, 오명과 수치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승전국 대열에 끼기는 했지만 허명에 불과했고, 무능력한 프랑스를 만천하에 선전하는 신호에 불과했다. 전통의 강국 프랑스로서는 체면을 구겨도 단단히 구겼던 것이다.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문제는 ‘프랑스질병’이 오랫동안 누적된 중병이었다는 점이다. 군사와 외정은 말할 것도 없이 내정까지 일치감치 고장이 났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당대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문제에 발 벗고 뛰어들었고, 시대 역시 그들을 끊임없이 호출하며 해답을 찾았다. 지식인들도 시대의 문제에 호응했다. 그들은 글이 필요하면 펜을 잡았고, 탄환이 필요하면 총까지 잡았다. 펜과 총의 변증법적 통일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게다가 앞서 지적한 것처럼 현실에서 실현된 사례가 존재했다. 레닌이 말했던가, 훈련된 활동가 200명만 있으면 혁명이 가능하다고. 전위의 모형은 수많은 지식인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을 것이고, 실제로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대가가 따랐다. 특히나 펜을 들고 ‘이념’을 주조하며 사람들의 생각을 좌우했던 지식인이라면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토니 주트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지식인의 선택과 행동은 시대와 사회에 어떠한 자국을 남겼으며, 그에 따라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span></p><p class="본문">  <!--[if !supportEmptyParas]-->&nbsp;<!--[endif]-->  <o:p></o:p></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토니 주트는 레옹 블룸, 알베르 카뮈, 레몽 아롱 세 사람을 책임과 윤리의 스펙트럼으로 삼는다. 하지만 주트의 지적대로, 이 세 사람은 그다지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 명은 정치가요, 한 명은 소설가요, 한 명은 철학자요, ‘인민전선-이방인-우파’의 연대는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활동했던 시기도 조금은 다르다. 레옹 블룸이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정치계에서 활약을 했다면, 알베르 카뮈와 레몽 아롱은 ‘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담론계에서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적어도 토니 주트가 보기에 이들 세 사람은 공통된 측면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프랑스가 질병에 허덕이며 20세기를 힘들게 걸어갈 때, 책임의 원칙과 내면의 도덕을 굳세게 견지하며 살았던 사람이란 것이다. 솔직히 흥미롭게 들렸다. 파란만장한 프랑스의 20세기 전반기를 도덕적인 지식인이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 자못 궁금했다. 앞서 지적대로, 프랑스의 근현대는 (처했던 상황은 달랐지만) 한국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냈지만, 한국과 다르게 나치 부역자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굴절된 근현대의 유산 때문에, 여전히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한국이 아닌가.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실마리를 얻을 것 같았다.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토니 주트는 우선 ‘면죄부’를 발송하여, 세간의 평가를 뒤엎는다. 한국에서 세 사람의 정치적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들은 대체로 ‘정치적으로’ 야박한 평가를 받는 게 현실이다(번역을 하면서 자료를 찾아봤지만, 카뮈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전기조차 번역된 게 없는 실정이다). 레옹 블룸은 본인의 사회주의 이념 때문에 조국 프랑스의 정치를 분열시켰던 장본인이며, 카뮈는 알제리분쟁이 발생했을 때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람이며, 레몽 아롱은 수도사처럼 세상을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며 직접적 참여를 외면했던 인간이란 것. 도덕적 책임은커녕 세 사람 전부다 정치적으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숱하게 받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토니 주트의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세상이 정치적이고 도덕적으로 ‘예’라고 할 때, 그들은 ‘아니’라고 했던 용기 있는 사람이란 것이다. 솔직히 역자도 무척 솔깃한 대목이었다. 피바람이 몰아치는 현실을 어떠한 태도로 헤쳐 나갔을까. 지기는 힘들지만 버리기는 쉬운 게 도덕적 정치적 ‘책임’이 아닌가. 당장 오늘의 한국만 보더라도 책임을 가볍게 저버리고 ‘기회’를 찾아가는 새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저자의 지적대로 ‘미묘’한 인물을 선택했고, 실제로 그들의 행보도 행로도 상당히 ‘미묘’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역사적 뜨거운 감자’라도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솔직히 고백하면, 역자 역시 판단하기 힘든 구석이 많았다. 워낙에 세 사람의 정치적 행보가 미묘했던 측면이 한 몫 했고, 그러한 미묘한 결들을 ‘복잡하게’ 들춰내는 토니 주트의 접근방식이 상당히 난해했던 점이 두 몫 했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주트의 의도는 명확하게 알겠지만, 주트의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 가령 블룸이 사회주의의 소신을 책임 있게 지킨 점은 좋다. 정말이지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소신의 원칙에 문제가 있었다면, 혹시나 ‘역사적 착각’에 사로잡힌 경우였다면? 읽으면 읽을수록 자문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예를 들어, 블룸은 사회주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사회를 순수하게 합리주의적으로 구상한 결과다. (……) 사회주의가 바라는 것은 사회적 정의가 이성과 부합해 작동하고 합리적 확신에 따라 긍정적 제도들이 배치되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공상적 사회주의의 소박한 형태며, 결국 ‘공화국’과 ‘사회주의’를 체계적으로 혼동했던 게 확실하다.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이렇게 보면, 블룸을 비판하는 입장도 옹호하는 입장도 그리고 블룸 개인의 입장도 얼마간 ‘이해’는 간다. 사회당은 빛나는 혁명의 전통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진보의 행진곡을 연주할 것이다. 블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사회당을 유지하고 보전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고, 남들이 보기에는 당파적 이해에 편협하게 사로잡혔다고 생각했지만, 저자인 주트는 소신을 지켰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기묘한 입장의 삼위일체일까, 아니면 몸은 하나지만 머리는 세 개인 히드라 같은 상황일까. 어쨌든 그랬던 탓에 블룸은 ‘고통스러운 마음’을 안고서 스페인내전 불개입을 천명했던 것이다. 국내외 정세를 고려해, 사회당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무엇이 옳았던 일일까. 토니 주트의 지적대로, 블룸이 부당하게 비판을 받았던 것은 맞다. 하지만, 블룸의 ‘착각’이 책임을 지켰는지는 몰라도, 그의 뜻대로 역사를 진보시켰는지 불확실하다.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그러면 카뮈는 어땠을까. 레지스탕스 활동을 통해서 전후 혜성 같이 등장했지만, 별똥별보다 빨리 졌던 게 카뮈다. 알제리문제 때문이었다. 프랑스 전역이 흔들리고 있을 때, 해결자the answer 카뮈는 시종일관 침묵을 지켰다. 솔직히 말해서, 카뮈는 마음만 먹으면 알제리문제의 최고 해결사가 될 만한 이력과 위치에 있었다. 알제리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알제리문제에 정통했으며, 프랑스에서 핵심적 여론주도층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뮈는 거부했고 침묵했다. 물론, 처음부터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카뮈는 프랑스도 알제지도 지지하지 않았고, 제 3의 길을 선택했다. 프랑스-알제리의 공존, 즉 알제리 자치령을 옹호했다. 카뮈의 개인사를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는 내내 알제리향수병을 달고 살았다. 빈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문학의 모태로 작동하며 훌륭한 작품으로 외화됐다. 그런데 문제는 알제리향수병이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서 정치적인 판단까지 전염시켰던 점이다.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카뮈는 프랑스와 알제리가 다투는 상황을 끝끝내 인정하지 않았고, 두 곳이 평화롭게 화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어렸을 적 알제리 동네친구와 천진난만하게 놀던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라. 100년전 빈농출신 일본인 소설가가 조선에서 해맑은 시절을 보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일본 자치령 조선을 ‘천진난만하게’ 지지하는 상황을, 과연 조선인 친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카뮈의 알제리 친구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실제로 알제리친구 한 명은 카뮈에게 전화를 했다가 거절당하고 나서, 직격탄을 날린다. 노벨문학상 때문에 애매한 입장을 취한 게 아니냐고 대놓고 따졌던 것이다. 결국, 카뮈는 가혹한 현재를 거부했고, 아련한 과거를 선택했던 셈이다. 주트는 할 말이 없을 때 말하지 않는 게 책임 있는 태도라고 평가하지만, 카뮈가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무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며, 누구도 인정하기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간혹 드러나는 오만한 생각까지 확인하면, 오만 정이 떨어진다. “아랍인이 민족주의적 선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면, 책임질 사람은 바로 프랑스인이었고, 그들의 실수를 바로잡을 사람도 프랑스인이었다.” 프랑스의 혁명자산을 저작권 등록이라도 했던 모양이다. 자기네가 만들었으니, 교정할 자격까지 있다는 생각일까. 여전히 정치적･문화적 3세계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매우 불쾌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다. 여기에 저자 토니 주트도 한 몫 거든다. “알제리가 독립한 지 35년이 흐른 지금도 분쟁은 여전하다. 군부독재가 잠시 잠깐 억제했던 근본주의운동 때문에 분열되고 유혈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토니 주트의 생각은 알겠다. 무책임하게 알제리독립을 주장한 사람들을 비판하고, 카뮈를 재평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화살을 잘못 겨눈 게 아닐까. 예를 들어, 한국이 친일잔재를 해결하지 못해 근현대사가 뒤틀렸다면, 누구보다 일본제국주의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한국의 독립을 지지했던 양심적인 지식인이 아니란 말이다. 주객이 전도돼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서구의 지식인으로서 양심이 있다면 할 말은 아닐 것이다.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고지식한 블룸과 우유부단한 카뮈에 비하면, 아롱은 참 얄밉다 싶을 정도로 명철하다. 심지어 생전은 물론이요 사후까지 독해법을 치밀하게 짜놓아, 자기가 정해 놓은 대로 읽기를 ‘강요’한 인물이다. 아롱은 초창기 시절만 제외하면, 한결같이 우파의 입장을 대변했고, 우파의 우산 속에서 살아갔다. 그리고 내내 프랑스좌파의 실책과 허점을 냉혹하게 저격했다. 특히 사르트르를 표적으로 삼았다. 프랑스 지성계의 제왕 사르트르와 이론적으로 진검 승부를 할 사람은 아롱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부연하며, 그의 저작과 입장을 낱낱이 파헤쳐 ‘산산조각’ 냈다고 설명한다. 이 측면은 이 책만 보고서 간단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게다가 본문에는 저자의 주장만 있을 뿐, (역자로서도 무척 궁금했지만) 정확히 아롱이 사르트르를 어떻게 논파했는지 따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점은 확실하다. 레몽 아롱이 지극히 냉혹한 현실주의자요 실용주의자라는 것. 그랬기 때문에, 좌파의 몽상을 냉정하게 해부할 수 있었다는 것.</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특히 아롱은 파리의 ‘일반문화’를 비판한다. 경제를 분석해도 좋다, 외교를 비판해도 좋다, 다만 알고 하라. 아롱의 생각은 명확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얼치기 전문가들이 프랑스의 현재와 미래를 망쳐놓았으며, 그 선두에 좌파의 이론가들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토니 주트는 아롱을 높게 평가한다. 세간의 평가와 달리 아롱이 책임 있게 ‘이론적 실천’을 했다는 것이다. 역자도 블룸이나 카뮈보다 아롱이 오히려 솔직해 보인다. 물론, 뻔뻔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한테서 얻어갔던 사상을 쓰지도 않거니와 쓸 생각도 없으면서도 그러한 사상을 명분 삼아 우리를 비난하는 정부들로부터 우리는 배울 만큼 배웠다.” 이쯤 되면 파리 샤를드골공항 면세점에서 혁명의 대문자 ‘R’를 크게 박은 삼색기를 왜 안 파나 싶을 정도긴 하다. 어쨌든 ‘근거’도 명확하지 않은 신념을 무기로 무책임하게 ‘참여’하는 행태를 잘근잘근 비판한다. 아롱이 보기에 그들은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조국 프랑스를 돕는 길이었다.</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지적했다시피 토니 주트는 책임의 윤리를 근거로 블룸, 카뮈, 아롱을 복권시킨다. 하지만 그것만 근거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세 사람이 부당하게 필요 이상으로 비판을 받았던 이유가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첫째 유대인이라는 것. 카뮈는 프랑스인이었지만, 알제리 출생에 그랑제콜을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대인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당시의 지식인 파리살롱에 출입은 해도 외인일 수밖에 없었다. 둘째 반공주의자라는 것. 블룸도 카뮈도 아롱도 공산주의를 반대한 사람이다. 당연히 ‘반공’의 근거는 저마다 달랐다. 블룸은 당파 때문이었고, 카뮈는 도덕 때문이었고, 아롱은 이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 블룸을 제외하고, 카뮈나 아롱의 경우는 ‘타자’가 명확했다. 그렇다, 사르트르다. 저자가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카뮈와 아롱은 지성계의 거목 사르트르와 적대했기 때문에 당시에도 이후에도 푸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책임의 윤리를 대신에 신념의 윤리를 철저하게 관철했던 게 바로 사르트르라고 암시한다. </span></p><p class="본문"><span lang="EN-US"><br />
</span></p><p class="본문"><span lang="EN-US">20세기 지성사를 논의할 때 사르트르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찬란한 지성도 비참한 실패도 같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역자가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하는 게 있다. 사르트르가 마오의 문화혁명을 지지하는 찌라시를 거리에서 나눠주는 장면이었다. 주트의 말대로, 사르트르의 실패는 위대한 실패였다. 책임의 윤리를 잣대로 세웠다 할지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저자도 명-확-하-게 사르트르를 겨냥하지 않는다. 사르트르의 외곽만 에둘러 치면서, 칼끝을 댔다가 말았다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면, 역자는 사르트르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가 카뮈를 비판하는 지점도, 아롱과 달리 현실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던 행동도 지지한다. 그렇게 생각한 탓인지 몰라도, 역자는 이 책이 어쩌면 아롱의 복수극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롱이 생전에 못 다한 말을, 그의 제자인 프랑수아 퓌레를 영매로 삼아, 토니 주트가 받아 적는 주문처럼 보인다.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사르트르식으로 끝내 보자. 주사위의 결과는 예측하지 못하지만, 주사위를 던지는 행위는 개인의 몫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볼모로 삼아, 현재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 ‘책임의 윤리’일까. 그것은 신념의 윤리보다 ‘윤리적’인가. 이 이상은 역자가 판단할 몫이 아닐 것이다. 독자들의 직접 읽고 판단해 보기를 권한다.&nbsp;</span></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p class="본문"><font face="휴먼명조"><br />
</font></p><p class="본문"><font face="휴먼명조">이런 일 저런 일이 겹치느라, 저번주가 돼서야 역자해제를 마무리했다. 번역을 하면서 틈틈히 메모한 내용이 많았는지, 생각보다 많이 썼다. 하지만 못 쓴 내용도 많다는 것. 쓰면서도 이렇게 써도 될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생각대로 썼다.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겠지. 늦어도 5월 중순 안에는 책이 나올 듯.&nbsp;</font></p><p class="본문"><span style="font-family:휴먼명조;"><br />
</span></p><br/><br/>tag : <a href="/tag/토니주트" rel="tag">토니주트</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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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Apr 2012 12:03:1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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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걷는다고 해서 언제나 앞만 보는 건 아니다. 때로는 좌우로 눈을 돌리며 주변을 훑어보기도 한다.&nbsp;<div><br />
</div><div>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눈을 뒤에 고정하는 사람도 있다. 두 둔이 안 되면 한 쪽 눈이라도 억지로 붙들어 매놓는다.&nbsp;</div><div><br />
</div><div>멜랑콜리스트, 우울한 인간이 그렇다. 그는 몸이 현재에 있어도 과거를 보는 인간이다. 그리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본다.&nbsp;</div><div><br />
</div><div>그러니 이삭 줍기 하듯 과거의 흔적을 찾아 나설 수밖에.&nbsp;</div><div><br />
</div><div><br />
</div><div>현재는 과거의 주석인 것이다.&nbsp;</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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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단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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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Apr 2012 12:27:05 GMT</pubDate>
		<dc:creator>로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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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딸기 임상실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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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딸기를 사서 가방에 모셔둔지 이틀, 허겁지겁 냉장고에 보관한지 사흘, 문득 떠올라 꺼내보니 이미 상해서 먹지 못할 지경. 우리집 냉장고는 음식물 보관소가 아닌 듯. 그러면 기억의 봉인창고인가? 넣어두면 잊어버리니.&nbsp;<div><br />
</div><div>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버리는 걸 또 깜빡. 사흘 쯤 되니, 회색빛으로 변모. 내 얼굴도 회색빛, 뇌주름이 점점 퍼지는 듯.&nbsp;</div><div><br />
</div><div>쓰고 보니 자폭글.&nbsp;</div><div><br />
</div><div><br />
</div>			 ]]> 
		</description>
		<category>끄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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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6 Mar 2012 13:23:46 GMT</pubDate>
		<dc:creator>로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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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고장난 녹음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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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매일같이 걷는 길에 건널목이 하나 있다. 주에 두 세 번은 노인 한 분을 계속 마주치는데, 언제나 큰 소리로 외친다. 주 예수를 믿으라.&nbsp;<div><div><br />
</div><div>고장난 녹음기군. 생각의 회로가 어디서 끊어진 걸까.</div><div><br />
</div><div>언젠가는 행인 한 명이 보다 못해, 노인과 입씨름을 벌였지만,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행인의 얼굴이 붉어질수록, 고장난 녹음기는 볼륨을 키울 뿐이었다.</div><div><br />
</div><div>오늘은 노인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만 그럴까. 종교가 아니라도, 끊임없이 반복되어 튀어나오는 기억들이 있다. 사랑, 후회, 사람 등등. 고장난 녹음기 수준은 아니지만, 덧입혀진 테이프 밑에 옛날의 소리가 중간중간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들. 재생하지 않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불쑥 튀어나와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하늘을 한 번 보고,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몹쓸 놈의 기억의 회로.</div><div><br />
</div><div>패턴은 반복된다. 기억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이제는 반복하는 회로가 고장났으면 싶다.&nbsp;</div><div><br />
</div><div>그러나.&nbsp;</div><div><br />
</div><div><br />
</div></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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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끄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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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5 Mar 2012 11:12:17 GMT</pubDate>
		<dc:creator>로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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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01 회화의 귀환, 디지털사진의 등극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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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2/07/73/c0068273_4f30d549c519f.jpg" width="425" height="30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2/07/73/c0068273_4f30d549c519f.jpg');" /></div></div><div><div>1. 회화의 귀환</div><div>사진은 회화와 달리 작가가 부재하다. 사진작가가 들으면 농담하지 말라며 화를 내겠지만, 전통적 의미의 작가개념에서 보자면 작가의 지위는 현저하게 축소된 것이 사실이다. 사진은 창조하는 게 아니다.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태여 작가를 찾자면 자연이요 빛이라 하겠다. 즉 사물이 작가란 얘기다. 일찍이 수잔 손탁은 초현실주의와 사진이 동일한 논리를 따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래서 타당하다. 전자가 ‘발견된 대상’을 추구했던 것처럼, 사진작가도 사냥꾼처럼 대상을 찾아 헤매기는 똑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혁명이 불어 닥치자 상황이 일변했다. 어쩌면 회화처럼 사진도 작가의 손길에 따라 창조되는 작품이 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제프 월과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이 흐름에 일치감치 동참하여, 회화적 사진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들은 공공연히 사진을 회화처럼 거대하게 키웠으며, 회화적 구성과 서사적 주제를 선택했다. 오랫동안 뒤샹의 후예들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회화는 ‘디지털’을 매개로 하여, 화려하게 부활한 것처럼 보였다.&nbsp;</div><div><br />
</div><div>2. 현재를 비판하기 위해서 과거를 돌아보기</div><div>제프 월은 말한다, 현재는 과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콜라주와 몽타주가 혁신을 대변했다지만, 오늘날 미술계는 어떠한가. 그는 다다의 유산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됐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예술적 독단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월은 “통일된 회화와 통합된 관람자의 회귀는 ‘제도화된 위반에 맞서는 위반’”이라고 주장한다.(660쪽) 하지만 그렇다고 월이 앵그르의 매끈한 회화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반대로 마네가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현대 사진 안의 ‘근대적 삶의 회화’를 다시 도입하면서 그것의 사회적 비판도 함께 옮겨 놓고자 한다.” 따라서 그는 두 가지를 기획한다. 첫째 사회질서를 반영(성찰)하는 회화질서를 생산하는 것, 둘째 두 가지 모두 부패했으며, 후자는 전자의 증후라는 것. 마네는 회화적 위기를 직시했고, 과거의 회화적 질서를 조직적으로 교란하며 저항했다. 관학파의 뻔하디 뻔한 ‘대용적 통일성ersatz unites’를 반대했던 것이다.&nbsp;</div><div><br />
</div><div>3. 망가진 눈&nbsp;</div><div>베셔부부의 제자인 구르시키의 작업도 회화적 구성을 똑같이 따른다. 일정한 소재를 잡아 최대한 균일하게 촬영한 후 연작형태로 배열한다. 하지만 구르스키는 월처럼 회화사를 건드리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현대의 스펙터클한 장면(숭고)에 열을 올린다. 상품샌산라인, 금융거래현장, 프로스포츠, 청년문화, 과잉된 상품진열 형태 등, 노동과 여가에 상관없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현장의 모습(하이퍼스페이스)을 담는다. 그의 작업에서 인간은 상품과 다를 게 전혀 없다. 상품과 똑같이 ‘대량장식mass ornaments’에 불과한 것이다. 구르스키는 이러한 장식적 양상을 집요하게 강화･확대한다. 패턴이 반복되는 양상과 색채가 강조되는 측면을 부각시키며, 다중시점과 몽타주를 거침없이 활용한다. 이러한 작업에서 눈은 망가진다. 사진이 지시하는 세계를 오롯이 전망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텔의 중정을 찍인 이미지를 편집한 &lt;타임 스퀘어&gt;를 보자. 언뜻 보면 이 작업은 일정한 패턴만 나열한 것처럼 보이며, 오랫동안 집중하면 눈이 어지러워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된다. 전체적 전망이 조직적으로 방해를 받는 것이다. 할 포스터의 말대로, 정신이 착란하는 공간이 펼쳐진다. 여기서 주체는 다시 길을 잃는다.</div></div><div><br />
</div><br/><br/>tag : <a href="/tag/1900년이후의미술사사" rel="tag">1900년이후의미술사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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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읽기</category>
		<category>1900년이후의미술사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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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Feb 2012 07:40:13 GMT</pubDate>
		<dc:creator>로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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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03 공공설치-퍼포먼스-개인기록보관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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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2/07/73/c0068273_4f30d253ba5b5.jpg" width="500" height="393.33333333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2/07/73/c0068273_4f30d253ba5b5.jpg');" /></div></div><div><b>1. 신세대 기성품, 정보&nbsp;</b></div><div>사탕을 파는 가판대(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음식점의 요리(리르크리트 티라바니자), 개인의 집무실(리암 길릭), 이러한 것들을 과연 미학의 용어로 비평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다. 미술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연덕스럽게 이러한 것들을 미술작품으로 내놓는 작가들이 존재한다. 그러면 그들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전시를 하는 것일까. 두 명은 ‘잠깐 동안 판을 열어 선물을 주는 게’ 미술이라고 생각하고, 한 명은 ‘세미나 현장’을 작품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기성품-공동작업-설치’ 모형의 선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요셉 보이스 역시 작업이랍시고 강연을 했던 전력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후배 작가들이 선배의 작업을 그대로 본 뜬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사물(기성품)을 발견하는’ 대신에 영화의 이미지를 발견해, 작업의 소재로 삼는다. 예를 들어 위그는 &lt;제3의 기억&gt;(2000)을 보자. 이 작품은 영화 &lt;뜨거운 오후&gt;의 한 장면과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을 병치해 놓았다. 이들에게 기성품은 ‘정보’였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예전과 달리 매체가 현실을 두껍게 감싸고 있는 이상, 정보가 발견되는 사물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다다가 사물을 발견해 가공했던 것처럼, 이들은 ‘정보’를 가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몇 가지 징후를 보여준다. 작품도 이미지의 일종이란 것, 매체사회에서 이미지는 정보에 불과한 것.&nbsp;</div><div><br />
</div><div><b>2. 조롱 대신 유머&nbsp;</b></div><div>이러한 작업들은 과연 ‘작업’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작업방식에서 작가는 무슨 일을 하는가. ‘정보’로 환원된 질료는 합리적 기술적 처리에 알맞다. 여기서 ‘작가’의 지위는 보장받지 못한다. 작가의 섬세한 손길, 자신만의 방법, 독창성은 거의 필요치 않다. 예를 들어, 위그와 파레노의 &lt;영혼 없이 껍질뿐인&gt;의 작업방식을 살펴보자. 두 명은 그들은 가상의 ‘안 리’ 정보를 ‘발견’한 후(구매), 주변동료에게 무상 배포하여, 그들 마음대로 작업하게 내버려 둔다. 결과물의 공통점은 ‘안 리’가 등장하는 것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기는 하지만, 비조직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은 전통적 공동작업 방식도 아니며, 여러 명의 연작형태도 아니다. ‘안 리’는 &lt;영혼 없이 껍질뿐인&gt;을 잇는 일종의 고리일 뿐이다. 비조직적 공동작업인 것이다. 재밌게 웃자고 하는 작업 같다. 수건 돌리기 하면서 노는 것이다. 정보-기성품을 활용했지만, 뒤샹이나 하케처럼 제도를 겨냥해 비판하는 면모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즐길 따름이다.&nbsp;</div><div><br />
</div><div><b>3. 난장판 같은 설치</b></div><div>이러한 작업방식은 전시설치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대규모 기획전은 말이 너무 많고(담론경향), 무질서하기 짝이 없다(비형식성). 어느 비엔날레를 가든, 사진 설치 회화 오브제 비디오 등등 온갖 장르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설치를 할 때 동선이나 연출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가 충돌하여 제대로 듣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드는 측이나 보는 측 모두에게 새로운 작업의 중심관심사는 담론성과 사교성이다.” 말은 많아졌는데, 듣기는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nbsp;</div><div><br />
</div><div><b>4. 우발적 공동체</b></div><div>&lt;영혼 없이 껍질뿐인&gt;의 작업형태는 한 가지 징후를 드러낸다. (공동)작업을 할 때라도, 통일된 단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개념에 따라 잠시 모여 기획하고 작업했다가 흩어지는 형태가 일상화되며, 특히 대규모기획전의 조직형태로 확장됐다. ‘플랫폼’과 ‘정거장’은 이러한 틀을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했고, 상호작용성이나 네트워크 같은 디지털수사와 자연스럽게 결합됐다. 예를 들어, 한국의 광주비엔날레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초기에는 한국의 기획자가 오랫동안 준비하며 기획을 했지만, 오쿠이 엔웨조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같은 외국의 기획자가 국내기획자와 협업모델을 구축해 전시를 꾸렸다. 그들이 플랫폼을 내세우진 않았지만, 이러한 모형이 작동한 것은 분명하다. ‘교환의 또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는 길’(위그), ‘잘 사는’ 모형(티라바니자), ‘일상 속에서 함께하는 수단’(오로스코), 이들은 평등한 소통을 추구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이것은 말뿐인 잔치로 끝날 수도 있다. “사회에 존재하는 무정형성은 미술이 환영하기보다 거부해야 할 상황일 수도 있다. 반성과 저항을 위해서는 (몇몇 모더니스트화가들이 시도했던 바와 같이) 형태를 띠어야 한다.”(667쪽)&nbsp;</div><div><br />
</div><div><b>5. 작가의 죽음, 독자의 탄생?</b></div><div>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작업형태는 전략적으로 ‘작가’를 살해하며, 독자･관객을 주도적 위치로 격상시키려 노력한다. 미술작품을 관객들이 얘기하고 사교하는 장으로 만들었던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과연 이러한 기획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는 작가를 작품의 주요결정자, 즉 제1해석자로 되돌려 놓는다.”(667쪽) “해답은 공동작업이다. 그런데 질문이 무엇인가?”(오로스코) 어쩌면 이런 행태는 ‘호객행위’가 아닐까.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상호작용이 안 되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가. “미술관람자도 항상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매번 불러야 한다.”(668쪽)&nbsp;</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br/><br/>tag : <a href="/tag/1900년이후의미술사사" rel="tag">1900년이후의미술사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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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읽기</category>
		<category>1900년이후의미술사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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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Feb 2012 07:27:3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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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후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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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 />
</div><div><br />
</div><div>작은 후회는 있지만 큰 후회는 없다. 행복했다.&nbsp;</div><div><br />
</div><div><br />
</div><div><br />
</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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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2 Feb 2012 08:59:2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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