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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은 농담 반은 진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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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로아의 글창고</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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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4 Oct 2009 05:46:2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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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은 농담 반은 진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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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5회 기술미학포럼: 아날로그의 생산, 하드웨어의 잔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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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object height="344" width="425"><embed src="http://www.youtube.com/v/vUwKZutFHD4&amp;hl=en&amp;fs=1&amp;"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height="344" width="425"></object><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24/73/c0068273_4ae246f434399.jpg" width="500" height="666.66666666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24/73/c0068273_4ae246f434399.jpg');" /></div>즉 인간은 모니터 위에 나타난 영상들을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로 파악할 때마다, 그 영상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폐쇄시켜버린다.(플루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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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r />
바르톨과 바이저의 작업은 이중의 반성을 요구한다. 매체로 무엇을 보여주는 대신에, 매체로 매체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매체가 주체인 것이다. 여기서 이중의 반성인 것은 반성의 결과가 이른바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즉 아날로그로 육화된 디지털인 것이다. 그런데 둘의 방식은 사뭇 다르다. 먼저, 그들의 작업을 하나씩 살펴보자. 바르톨의 &lt;Random Screen&gt;은 제목 그대로 무작위화면이다. 디지털픽셀 구조를 본뜬 하얀 격자화면이 있고, 격자에는 촛불이 들어간 알루미늄 캔이 들어 있다. 촛불의 세기에 따라 알루미늄 캔이 회전하는 것과 빛이 점멸하는 속도가 규정된다. &lt;Random Screen&gt;은 픽셀의 기본구조를 느리게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0과 1 사이에 무수한 실수가 숨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속도로 점멸하며 디지털의 0과 1의 ‘사이’를 교란하고 ‘빈틈’을 드러낸다. 그것도 전기가 전혀 없이 촛불의 힘만으로 이뤄내므로, ‘디지털의 가면’을 천연덕스럽게 썼다고밖에 할 수 없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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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r />
바이저의 &lt;Lucid Phantom Messenger&gt;는 디지털에서 더욱 후퇴한다. 이 작품은 언뜻 보면 무슨 약품을 섞어 놓은 것만 같아서, 매체예술과 별다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따져보면, &lt;Random Screen&gt; 못지 않게 디지털을 전제하고 야유한다. 우선 액정, 실리콘, 유리섬유 등등, 디지털영상을 생산할 때 필요한 도구와 질료를 유체로 전환한 다음, 유리 그릇에 담는다. 여기에 소프트웨어에 따라 전기자극을 부여해, 알록달록한 유체의 운동이 발생하며, 그에 맞춰 소음이 뒤따른다. 요컨대 전기로 하는 물질의 액션페인팅 퍼포먼스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여느 디지털영상에 비해도 있을 것은 다 있다. 소프트웨어도 있고, 전기도 있고, 액정도 실리콘도 유리섬유도 있다. 그러나 생산된 것은 소음을 동반한 ‘반디지털 유체운동’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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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br />
바르톨과 바이저의 작업은 ‘디지털’로 여과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시민권처럼 작용하여, 그들의 작업이 매체예술이라는 것을 보증하는 것 같다. 물론, 서로의 방식은 다르다. 바르톨이 질료를 전도한다면, 바이저는 형식을 전도(교란)한다. 전기가 없어도 픽셀구조는 구성되고, 전기가 있어도 전자영상이 구현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디지털의 문법을 고려하지 않으면, 작업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디지털의 마법이 그들의 작품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매체･예술 환경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작업에서 일정한 징후가 발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즉 ‘번역’의 문제가 대두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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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br />
보통 언어에서 번역은 대체로 두 가지 사항을 상정한다. 첫째 공통된 의미. 의미는 특정언어와 무관하게 존재하며, 번역은 의미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다. 둘째 확고한 실재. 의미는 실재를 지시하므로 고정된다. 결국 실재가 의미를 고정하므로, 번역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번역자체가 무력화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음역된 언어’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번역된 것인가 아닌가. 물론 음역된 언어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오늘날 차이가 있다면, 하나의 언어로 수렴되고 전문담론을 넘어서 일상어까지 침투하며, 개별언어의 구조까지 포식하는 점이다. 페니키아문자는 마치 메타언어라도 되는 것처럼, 언어들의 무의식으로 깊게 자리잡는다. 사실 그것은 경험적으로 이미 메타언어다. 마치 현재의 디지털처럼 말이다. (프로그램약호와 영어는 그래서 동형적이다. 그것들 모두 보편언어를 지향하며, 개별적인 모든 것을 흡수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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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br />
번역은 비단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매체들 사이에도 발생한다. 그것은 오늘날 흔히 ‘융합convergence’으로 불리지만, 그렇게 명명하면 일방향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는 벡터만 강조된다. “모든 진리는 자기확장적이다. 어떤 관념이 자기를 진리라고 믿을 때, 그것은 맹렬하게 팽창한다. 주먹만하게 줄어들었다가 크게 폭발한 우주처럼.”(김현) 자연스럽게 매체들 위의 ‘매체’가 상정되고, 이른바 디지털의 복음이 울려퍼진다. 컴퓨터의 불랙박스가 다스리는 섭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의 문제는 은폐될 수밖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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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br />
‘번역’은 그 점을 상쇄하며, 매체들 ‘사이’를 짚어준다. 대등한 관계를 설정한다. 결국 바르톨과 바이저는 바로 관계를 드러내고, 번역자체를 질료로 삼아 반성한다. 여기서 흥미로롭고도 기이하는 것은 아날로그매체가 별달리 사유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벤야민처럼 예외적인 사람도 있었지만, “…정작 아날로그매체가 등장하던 시기에도 아날로그매체 자체에 대한 철학적인 담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박영욱, ꡔ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ꡕ, 향연, 148) 거칠게 말해서 아날로그는 디지털로 여과된 다음에야 ‘생산’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키틀러처럼 중요한 예외도 존재한다.) 그것도 디지털로 수렴되기 위한 것으로서 자체의 특정성을 말살당한 채로서. 이제 컴퓨터로 처리되지 않은 것은 자연스럽게 아날로그의 딱지가 붙게 되었다. 한마디로 아날로그는 디지털을 구성하기 위한 대당으로서 호명된 셈이다. 그리하여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범주는 물질과 정신의 전통적 이원론을 기술적으로 계승하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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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br />
바르톨과 바이저는 번역을 함으로써, 번역에 저항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의 작업은 디지털 육화처럼 역설로도, 음역된 언어로만 구성된 시처럼 암호로도 보인다. “테크노미학은 기계의 미학으로서 그 힘을 상실한 모든 휴머니즘들을 일소하고, 테크놀로지적 반자연Antiphysis 현상의 유희공간들을 확장시킨다.”(볼츠) 대가는 분명히 치른 것 같다. 여기에는 해석할 의미도 공감할 감정도 없는 것만은 분명하니까. 그것을 반성적 유희로 부를지 유희적 반성으로 부를지 뭐가 됐든지 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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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arget="_blank" href="http://tech-aesthetic.tistory.com/28">&lt;기술미학연구회&gt;</a> 5회 포럼<br />
<p style="margin: 0px; font-family: &quot;휴먼명조&quot;; font-size: 15px; 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3px; text-indent: 0px;"> </p><br/><br/>tag : <a href="/tag/매체예술" rel="tag">매체예술</a>,&nbsp;<a href="/tag/기술미학연구회" rel="tag">기술미학연구회</a>,&nbsp;<a href="/tag/미술" rel="tag">미술</a>,&nbsp;<a href="/tag/비평" rel="tag">비평</a>,&nbsp;<a href="/tag/바르톨" rel="tag">바르톨</a>,&nbsp;<a href="/tag/바이저" rel="tag">바이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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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4 Oct 2009 00:15:21 GMT</pubDate>
		<dc:creator>로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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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The Medium>: 일종의 후일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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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9/23/73/c0068273_4ab99576dd562.jpg" width="500" height="40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9/23/73/c0068273_4ab99576dd562.jpg');" /></div><br />
&lt;The Medium&gt;은 세 가지 문제를 던진다. 첫 번째 매체예술의 현재. 기획자의 말대로 좋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매체예술의 기지였던 ZKM도 엔진이었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도 예년의 모습을 잃은지 오래다. 그곳들은 규모를 줄이거나 성격을 바꾸었다. 여러 가지 말들이 오고 갔으나, 공격적 행보로 보기는 어려웠다. 방어에 급급했던 것이다. 문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 물론 반대의 측면도 있다. 매체예술의 활력은 분명히 줄었다. 하지만 현실에 활용되는 양상은 늘어났다. 이른바 장식경향이다. 이것은 매체예술만 해당되는 현상은 아니다. 미술판 전체가 자체의 활력을 잃은 채, 자본에 놀아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탓이다. 두 번째 한국의 매체예술.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새로운 현상에 재빨리 반응은 했지만, 제도로 만들지 못했다고 할까. 게다가 매체예술은 본성상 장인모형이 적합지 않다. 오히려 영화처럼 합리적인 공장모형이 필요하다. 한국은 여기서 짜임새 있게 규모를 키우지 못했고, 전통적 장인모형을 고스란히 답습했다. 당연히 작업의 다양성도 제한됐고, 심하게 말해서 화판을 확장한 경향도 짙었다. 기지를 만들지 못하고 유행처럼 흘러갔으니, 후속세대가 단절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창 매체예술을 생산했던 작가들은 그렇게 섬처럼 고립되어 갔다. <br />
<br />
매체예술은 너무 빨리 늙어버린 것일까. 매체예술의 잠재력도 소진된 것처럼 보이고, 매체예술이 둥지를 틀만한 자리도 부족하며, 매체예술을 생산하는 단위도 약화되는 상황. 고민이 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기획자는 여기서 매체의 본성을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그것에 세 번째 문제다. 매체란 본시 무엇과 무엇을 매개하는 것. 내면에 매몰된 경향을 넌지시 비판하며, 사회와 예술을 매개하는 것으로 좁혀서 접근한다. 그래서 제목도 ‘매체’다. 이 점은 작가의 면면을 봐도 확증된다. 김태은, 류호열, 목진요, 뮌, 박준범. 그들은 우선 형식과 내면에 함몰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바깥을 당겨오는 작가들이다. 그것이 내용상 사회든 일상이든, 형식상 싱글채널이든 가변형 장치든, 자유롭게 표현된다. 그러니 전시는 마치 무지개처럼 다양한 빛깔이 펼쳐질 수밖에. 하지만 그 빛깔은 날카롭지 않고 힘겨워 보였다. 마치 후일담 소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일종의 생존확인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것은 상당부분 어쩔 수 없는 일, 작가의 문제도 기획자의 문제도 아니다. 가파르게 변해가는 매체의 변화가 그 속도가 무정할 뿐으로, 애초부터 개인 혼자서 짊어질 짐이 아닐 것이다. &lt;The Medium&gt;은 바로 그 점을, 방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이리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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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퍼블릭아트&gt; 10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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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garden.egloos.com/10004483">이글루스 가든 - 미술을 보고 읽고 쓰기</a><br/><br/>tag : <a href="/tag/TheMedium" rel="tag">TheMedium</a>,&nbsp;<a href="/tag/두산아트센터" rel="tag">두산아트센터</a>,&nbsp;<a href="/tag/매체예술" rel="tag">매체예술</a>,&nbsp;<a href="/tag/퍼블릭아트" rel="tag">퍼블릭아트</a>,&nbsp;<a href="/tag/비평" rel="tag">비평</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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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3 Sep 2009 03:27:3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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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몰랐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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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그때는 몰랐었다. 같이 있으면서도, 왜 그녀가 문자를 날리고, 오라고 했는지. 왜 콜라를 사달라고, 언제쯤 오냐고 물었는지, 몰랐었다. 나중에,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어도, 그래도 몰랐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아팠겠지만 그저 나는 몰랐었구나,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말했으면 고개를 주억이며 들었을 텐데, 그러기만 했었다. 그녀가 뼈를 깍아가며 보냈던 신호를, 외면했던 것이다. <br />
<br />
이제야 뼈저리게&nbsp; 알겠다...그리고 벌 받는 게지. <br />
			 ]]> 
		</description>
		<category>끄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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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8 Sep 2009 16:42:5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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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늙은 개와 구르는 돌: 강홍구와 노순택, 사진이 세상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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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9/11/73/c0068273_4aa9e08f6442a.jpg" width="500" height="75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9/11/73/c0068273_4aa9e08f6442a.jpg');" /></div><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9/11/73/c0068273_4aa9e1e8c1ce7.jpg" width="500" height="167.13681241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9/11/73/c0068273_4aa9e1e8c1ce7.jpg');" /></div></p><p><br>1.<br>이른바 기술적 영상의 시대. 오늘날 사진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어쩐지 역설처럼 들린다.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시대와 현실을 조련하고 있지 않은가.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들고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주변을 모조리 긁어낸다. 게다가 디지털의 마술은 재량껏 복제와 편집을 가능케 하므로, 손끝에서 저마다의 세계들이 마음대로 ‘생산’된다. 저 옛날 ‘찰나의 순간’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질적인 찰나를 버리고 양적인 과잉을 선택하여, 약점도 얼마간 보완된다. 하지만 사진은 분명히 가혹한 시련을 맞고 있다. 사진의 존재도 성격도 완전히 판이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진이 ‘그림’이 된다는 것이다. 앞에 있는 것을 찍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 진실될 이유도 없다. 여기서 기존의 이미지와 다르게 사진이 현실과 어떤 관계를 개척했는지 생각해 보라. 현실을 재생산하는 단위는 기계로 바뀌었고, 현실과 맺는 관계는 파도가 남겨둔 흔적처럼 지표로 전환됐다. 바쟁이 중립적인 기계장치 위에서 리얼리즘이 완성됐다고 했던 것도 이유는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리얼리즘은 오늘날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고, 기계장치만 고고히 휘날리는 것 같다. 사진에 담기는 현실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실은 복제를 거듭해 흔적조차 소멸되거나, 낱낱이 쪼개져 벽지의 무늬처럼 장식으로 전락한다. 이제는 ‘담긴다’는 말조차 무색하다. 물론 디지털이 하사한 마법의 힘을 달리 생각할 구석도 존재한다. 생산의 민주주의를 구축한 점도, 과거의 현실에 고착된 ‘시공간’의 성격을 벗어제낀 것도 중요하다. 그 결과를 ‘현실’이라고 부를 수만 있다면, 아마 새로운 현실이 출현하는 조건도 마련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 분명한데,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막막하다.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br><br>2.<br>이제는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시간이 아닐까. 디지털을 가운데 두고 현실과 사진에 저마다 무엇이 남았으며 무엇이 사라졌는지. 이러한 측면에서 강홍구와 노순택은 훌륭한 시험지 노릇을 한다. 그들은 현실을 진지하게 응시하며 비판하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강홍구는 황폐한 재개발현장을 누비며 사진과 사진과 몽타주했고, 노순택은 치열한 투쟁현장을 발로 뛰며 극적인 장면을 가감없이 기록했다. 모두가 현실에 깊이 발담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다루는 기법과 현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완전히 판이하다. 강홍구가 디지털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현실을 ‘우의’로 농락한다면, 노순택은 전통의 다큐멘터리를 추구하며 현실을 ‘상징화’시키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시간도 다르다. 강홍구는 지나간 것, 즉 과거에 서 있다. 반면에 노순택은 지금 여기 있는 것, 즉 현재에 서 있다. 현실을 응시하는 점만 제외하면, 그들은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있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전시공간에 사진이 걸리 때 외에는 같은 곳에 있지 못할 것이다.&nbsp; <br><br>3.<br>그들에게 오늘날 사진은 무엇일까. 그들의 사진에 비친 현실은 무엇이고, 그들의 사진으로 구축된 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진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확인해 보는 것이다. 8월의 마지막주 어느 날, 강홍구와 노순택 두 사람이 어떤 곳을 찾았고 어떤 장면을 포착했는지, 찬찬히 지켜 보는 것이다. 현실과 사진에 저마다 무엇이 남았는지. <br><br>갤러리 킹, 9월 12일 ~ 10월 9일</p><br />
<a href="http://garden.egloos.com/10004483">이글루스 가든 - 미술을 보고 읽고 쓰기</a><br/><br/>tag : <a href="/tag/강홍구" rel="tag">강홍구</a>,&nbsp;<a href="/tag/노순택" rel="tag">노순택</a>,&nbsp;<a href="/tag/사진" rel="tag">사진</a>,&nbsp;<a href="/tag/전시" rel="tag">전시</a>,&nbsp;<a href="/tag/갤러리킹" rel="tag">갤러리킹</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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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1 Sep 2009 05:37:3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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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나츠메 우인장> 마치는 노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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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object codebase="http://f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8,0,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height="399" width="502" align="middle"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param name="_cx" value="5080"><param name="_cy" value="5080"><param name="FlashVars" value=""><param name="Movie" value=""><param name="Src" value=""><param name="WMode" value="Window"><param name="Play" value="-1"><param name="Loop" value="-1"><param name="Quality" value="High"><param name="SAlign" value=""><param name="Menu" value="-1"><param name="Base" value=""><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param name="Scale" value="ShowAll"><param name="DeviceFont" value="0"><param name="EmbedMovie" value="0"><param name="BGColor" value=""><param name="SWRemote" value=""><param name="MovieData" value=""><param name="SeamlessTabbing" value="1"><param name="Profile" value="0"><param name="ProfileAddress" value=""><param name="ProfilePort" value="0"><param name="AllowNetworking" value="all"><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false"><embed src="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1zlwBqmiUC8$" allowscriptaccess="always"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bgcolor="#000000" height="399px" width="502px"></object><br><br><br>주말 내내 봤던 애니메이션. 할머니가 빼앗은 요괴의 이름을, 손자가 돌려주는 이야기. 여기서 이름은 그들의 정체요 본질이다. 해서 이름을 빼앗기면 빼앗은 사람에게 복종한다. 주종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크지 않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처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요괴만이 아니다. 감정들, 생각들, 기억들, 그 모두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츠메는 조금씩 화해하고 화해하고 치유해 간다. 요괴도 타인도 그리고 자신까지도. <br><br><br>저렇게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고 싶다. 그녀와 소풍을 가면 더욱 좋겠지. 고양이도 있으면 더욱 좋겠어. 지금 바람은 이것뿐.<br><br><br><br><br><br/><br/>tag : <a href="/tag/나츠메우인장" rel="tag">나츠메우인장</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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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8 Sep 2009 15:37:4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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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아로마 램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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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향기에 민감하다. 아니, 최소한 집에 좋은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역한 남자 냄새가 싫다. 그래서 향도 태우고 아로마 램프도 피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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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아로마램프는 이중구조다. 밑에서 초를 태우고 위에서 물과 향오일을 섞는다. 옛날에는 왜 그런지 물을 가득 채웠다. 그러니 향오일을 조심스럽게 떨어트려야 했다. 자칫 넘치기 일쑤였으니까. 물을 가득 채우지 않으면 될 텐데, 그때는 언제나 채우고 채웠다. <br />
<br />
바보처럼. <br />
			 ]]> 
		</description>
		<category>끄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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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7 Sep 2009 14:38:59 GMT</pubDate>
		<dc:creator>로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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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어떤 혼동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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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br />
<br />
받기만 하는 사람과 주기만 하는 사람은 착취와 사랑을 혼동한다. <br />
<br />
<br />
<br />
			 ]]> 
		</description>
		<category>끄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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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1 Aug 2009 18:33:17 GMT</pubDate>
		<dc:creator>로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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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녹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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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갑자기 온몸이 가라앉는다. 이마에 밴 식은 땀은 끊이질 않고, 손과 발은 느리게 움직인다. <br />
숨이 너무 가쁘다. 목이 메인다. <br />
<br />
<br />
요즘, 전시 때문에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난다. <br />
오늘도 세미나 때문에 많이 만났다. <br />
힘에 부친다. <br />
감각이 마비되서 아무것에도 반응할 수가 없다. <br />
<br />
<br />
그저, 좋아하는 사람과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고 거리를 거닐고 싶다. <br />
그렇게 하루를 소소하고 편안하게 보내고만 싶다...<br />
<br />
<br />
			 ]]> 
		</description>
		<category>끄적</category>

		<comments>http://newroa.egloos.com/5074183#comments</comments>
		<pubDate>Sat, 08 Aug 2009 15:29:47 GMT</pubDate>
		<dc:creator>로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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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목소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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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가끔, 미친듯이 목소리를 갈구할 때가 있다. <br />
<br />
<br />
<br />
<br />
			 ]]> 
		</description>
		<category>끄적</category>

		<comments>http://newroa.egloos.com/5068321#comments</comments>
		<pubDate>Mon, 03 Aug 2009 16:12:13 GMT</pubDate>
		<dc:creator>로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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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전자오락관 소년: 딱 한판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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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7/28/73/c0068273_4a6ef0760181b.jpg" width="500" height="70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7/28/73/c0068273_4a6ef0760181b.jpg');" /></div><br />
전시를 엽니다. 이번주 금요일 상상마당 3층 6시입니다. 게임과 전시는 서로에게 낯선 관계죠. 게임은 하는 것이고 전시는 보는 것이니까 그렇습니다. 게임을 전시한다고 해봐야 산업 박람회 같은 곳에서 시끌벅적하게 하는 정도죠. <br />
<br />
주제는 고전게임과 과거 전자오락실입니다. 그때를 기억하고 게임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죠. 옛날 게임을 가져다 오락실처럼 꾸며서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전시가 아니라 '재현'에 불과할 테니, 여러 가지로 재해석하고 변용해 보았습니다. '재미'는 있을 겁니다. <br />
<br />
하루에 50명 채 올까 말까 하는 이곳이지만, 혹시라도 시간이 되시면 찾아주시고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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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
아, 참고로 제가 '으뜸지능개발연구소' 소장이랍니다. 훗훗<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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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br/>tag : <a href="/tag/전자오락관소년" rel="tag">전자오락관소년</a>,&nbsp;<a href="/tag/게임" rel="tag">게임</a>,&nbsp;<a href="/tag/전시" rel="tag">전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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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미술</category>
		<category>전자오락관소년</category>
		<category>게임</category>
		<category>전시</category>

		<comments>http://newroa.egloos.com/5060937#comments</comments>
		<pubDate>Tue, 28 Jul 2009 12:44:12 GMT</pubDate>
		<dc:creator>로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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