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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하의 썸데이서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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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기대도 실망도 하지 말자. 세상은 그러기엔 너무 크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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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4 Nov 2009 09:39:1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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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하의 썸데이서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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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기대도 실망도 하지 말자. 세상은 그러기엔 너무 크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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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친북인명사전에 꼭 들어가야 할 사람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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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에서 '친북인명사전'을 발간하신단다.&nbsp;&nbsp; 그 위원장께서는 "친일보다는 친북이 국가적으로 더 중차대한 문제"라고 기염을 토하셨는데 무려 5천여 명의 면면을&nbsp;면밀히 검토한 끝에 100명으로 압축, 발표를 앞두고 있다는 낭보를 전해 들었다.&nbsp;&nbsp;<br><br><br>&nbsp;친일 얘기하면 빨갱이가 되었던 해방공간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의지와, &nbsp;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으로 '친일사전'에 '친북사전'으로 맞서겠다는 저&nbsp;가없는 창의력에는 하염없는 경외감 이외에는 드릴 것이 없다.&nbsp;&nbsp;&nbsp;<br><br>&nbsp;<br>&nbsp;과거&nbsp;보도연맹이나 기타 등등&nbsp;죽창으로 찌르고 총알을 먹이고 칼로 쑤셔 마땅한 빨갱이 목록을 작성하는 데는 타고난 자질을 보였던 대한민국 보수 우익이 작성한 '신들린 리스트'의 정확성을 부정하는 무례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nbsp;&nbsp; 다만 공사다망하신 와중에&nbsp;천려일실,&nbsp; 빠뜨릴 지도 모르는 악질 친북 인사 몇 명을&nbsp;추천하고 싶을 뿐이다.&nbsp;&nbsp;&nbsp;&nbsp;<br><br><b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985d2ec7.jpg" width="288" height="27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985d2ec7.jpg');" /></div><br><br>&nbsp;&nbsp;성명 : 이승만&nbsp;<br>&nbsp; 직위 : 대한민국 초대, 2대 3대 대통령&nbsp;<br><br>&nbsp;&nbsp;상기인은&nbsp;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암약하며 6.25가 발발하자&nbsp;자신은 대전으로&nbsp;일찌감치 도망가면서도&nbsp;라디오 녹음으로는 "자신은 끝까지 수도를 사수하겠다"고&nbsp;허풍을 떨어&nbsp;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극적으로 무너뜨리고 수도 서울을&nbsp;사흘만에 인민군에게 내 주는 사악한 공작을 폈다.&nbsp;<br><br><br>&nbsp;백척간두의&nbsp;전쟁이 한참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nbsp;헌병을 동원한&nbsp;부산 정치 파동을 일으켜&nbsp;군은 물론 국민의 사기를 저하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고,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느니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nbsp;쪽이 가능성이 크다"는 외신 기자의 비아냥을 살 정도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손상시킨 바 있다.&nbsp;&nbsp;<br><br><br>&nbsp;또한 &nbsp;국민방위군 사건 때에는 생때같은 장정들의 피복과 음식을 가로채 기생 치마폭에 쏟아 붓고 호의호식을 일삼았던 장교들을 구원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던 바, 일련의 행위들은 대한민국 국군의 약화와 민심 이반을&nbsp;노린 북한의&nbsp;지령에&nbsp; 충실히 따랐던 것이 확실시된다.&nbsp;&nbsp;<br><b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9d8bddf6.jpg" width="300" height="44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9d8bddf6.jpg');" /></div><br><br>&nbsp; 성명: 신성모 <br>&nbsp; 직위&nbsp; : 국방부 장관 <br><br>&nbsp;상기인은 국방의 총책임자로서 "우리 국군은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는 일견 허황해 보이나 면밀히 계산된 발언을&nbsp;일삼으며 국군의 정신전력에 막대한 손상을 입힘으로써 전쟁 초기 국군의 몰락과 인민군의 강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nbsp; 또한 전쟁 발발 3일 내내 국군이 북진하고 있다고 &nbsp;거짓 선전을 떠벌임으로써 100만&nbsp;시민과 수도 서울을 고스란히,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북한 정권에 헌납했다.&nbsp;&nbsp;&nbsp;&nbsp;<br>&nbsp;<br><br>&nbsp;국군 통신 부대의 주요 장비와 수천 명의 피난민의 목숨을 앗아간 한강다리 폭파 역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신성모의 작품으로 추정되나 명확한 증거는 없다.&nbsp; 단지 명령을 받아 스위치를 눌렀던 공병감 최창식&nbsp;대령만이 억울하게 희생되었을 뿐이다.&nbsp;&nbsp;&nbsp;최창식이 신성모의 친북 행위를 눈치 채고 고발하려다가 먼저 당하고 말았다는 설이 있다.&nbsp;&nbsp;<br><br><br>&nbsp;위에 언급된 이승만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옳습니다 옳습니다 펑펑 눈물을 흘려 낙루장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이는 &nbsp;김일성이나 김정일만 보면&nbsp;눈물 흘리는&nbsp;조건반사가&nbsp;일상화된&nbsp;후대의 북한의 모습의&nbsp;원형으로 평가된다.&nbsp;&nbsp;&nbsp;<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a376ab55.jpg" width="180" height="23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a376ab55.jpg');" /></div><br>&nbsp;성명 : 채병덕&nbsp;<br>&nbsp;직위 : 대한민국&nbsp;육군 참모총장&nbsp;<br>&nbsp;별명 : 코끼리&nbsp; (북한 연락부 암호명으로도 사용되었다고 추정) <br><br>&nbsp;이 사람에 대해서는 할 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nbsp; 군의 원로 이형근 장군이 10대 의혹을 제시하며 그의 행적에 시비를 걸었거니와,&nbsp; 6월 24일 밤 국군 고위 장교와 미 군사 고문단이 흐드러지게 벌인 술판의 호스트였고, 남침의 첩보가 잇따르는 가운데 쭈욱 지속되어 왔던 비상 태세를 해제하고 장병들을 휴가 보낸 것도 그였다.&nbsp; 또 똑똑한 대전차포 하나 없는 가운데 무적의 독일군을 혼냈던 T-34를 몰고 들이닥치는 인민군에 대항하여 무리한 반격 작전을 벌여 소중한 병력을 소진시켰으며 부하들의 한강 방어선 활용 주장도 깡그리 무시했다.<br><br>&nbsp;&nbsp; 이것만 해도 제 5열의 혐의가 굳어지는 바, 앞서 언급된 한강교 폭파는 그 절정이었다. &nbsp;&nbsp;이야말로 한강 이북에 존재하던 국군 5개 사단의 퇴로를 끊어 버린&nbsp;망동이었으며 군 수뇌부에 암약한 친북 간첩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적 행위였다.&nbsp;&nbsp; 무능을 가장하여 교활한&nbsp;친북 행위를 자행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된다. <br><br><br>&nbsp;노골적인 이적 행위를 벌이는 바람에 이용가치가 다했고 기밀 누설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듯, 신성모는&nbsp;참모총장직을 박탈당한 채병덕에게 "<span style="FONT-SIZE: 100%">귀하는 선두에 서서 독전할 필요가 있다"고 종용했고 그 명령에 따라 최전방에 섰다가 우군인 인민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nbsp;&nbsp;&nbsp;&nbsp;&nbsp;이는 공산주의자들이 흔히 보여 주는 꼬리자르기 전술의 전형적인 형태이다.&nbsp;<br></span><br>&nbsp;<b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aa956243.jpg" width="334" height="49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aa956243.jpg');" /></div><br><br>&nbsp;이름과 직위&nbsp;:&nbsp;타자&nbsp;치기 팔 아픔&nbsp;<br><br><br>&nbsp;이 사람이 빠진 친북인명사전은 앙꼬없는 찐빵이요 겨자 없는 냉면이라.&nbsp;&nbsp;대구 폭동의 주역으로 감히 구미경찰서를 들이치고 경찰서장 이하 경찰들을 겁박했던 간 큰 공산주의자 선산군 민전사무국장 겸 인민위원회 내정부장 박상희가 그의 형이고, 국대안 반대투쟁울 하다가 군대로 피신한 젊은 좌익의 처삼촌이다.&nbsp; 이에 질세라&nbsp;그는 노동당의 군 세포 책임자였다.&nbsp;&nbsp; 혁명열사 집안도 이런 혁명열사 집안이 없다.&nbsp;&nbsp;&nbsp; 여순반란 후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친북분자의 증거다.&nbsp;&nbsp; <br>&nbsp;<br>&nbsp;이후 전향했지만&nbsp;끝내&nbsp;북에 대한 친밀감을 버리지 못하고&nbsp;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북한의 의도가 번영된 7.4 남북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친북 인사들이 즐겨 운위하는&nbsp;구실을 허용하고 말았다.&nbsp;&nbsp;<br><br><b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aca70ade.jpg" width="288" height="36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aca70ade.jpg');" /></div><br><br>&nbsp;이 사람의 직위도 팔 아파서 못치겠다.&nbsp;중앙정보부장부터 총리까지&nbsp;다양하고 희한하다.<br><br><br>&nbsp;박정희 가문 못지 않은 혁명가 가문의 일원이다.&nbsp;&nbsp;미국 대사관 직원인 그레고리 헨더슨이 1963년 본국에 보낸 보고서의 일부를 인용하여 그가 친북인명사전에서 빠질 수 없는 위인임을 &nbsp;피를 토하며&nbsp;폭로하고자 한다.&nbsp;<br><br><br>&nbsp;"1946년에 미군정은 서울대 사범 대학을 비롯해 몇 개의 대학을 통합하려고 했다. 그 결과 일부 대학, 특히 좌익 교수단과 학생들 사이에서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미군정의 명령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독립 지위를 상실하면 미국의 감시가 강화될 것을 우려했다. 사범 대학은 적극적으로 투쟁했다. 이 싸움에서 좌익의 입장을 견지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김종필과 몇몇 인사들이 있었다........ 김종필과 김용태는 불온한 사건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사범 대학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대전 근처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남로당으로 지역 청년들을 전향시키는 일을 했다고 한다.<br><br><br>&nbsp;김종필의 6형제 가운데 전부는 아니지만 몇 명은 1950년에 북한이 남침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에게 협력한 것으로 보인다. 6형제 가운데 김종식은 그의 걸출한 형제 김종락이 인정하듯이 살아 있다면(그럴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 있을 것이다. 김종필의 또 한 형제는 충청남도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협력한 죄로 동네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현재 고향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형제는 남로당원으로 한국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 후 김종필이 그의 체포를 막았다고 한다. 김종필 형제가 남로당에 협력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던 동네에서는 매우 잘 알려져 있으며, 그것은 모든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온 원인중 하나였다."<br>&nbsp;&nbsp;<br><br>&nbsp;이런 친북인사가 대한민국에서 50년째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북인명사전은 반드시 폭로해야 한다.&nbsp;<br><br><b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af0774a0.jpg" width="281" height="43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23/96/a0106196_4b0a3af0774a0.jpg');" /></div><br><br>&nbsp;<br>전두환, 제 11대, 12대 대통령&nbsp;<br><br>&nbsp;광주의 반정부 난동분자들을 진압하고 철부지 대학생들을 때려잡고 '녹화사업'을 기획하는 등 좌익 척결에 공이 있어 보이나, 자신의 목숨을&nbsp;노린 아웅산 테러 이후&nbsp;정당한 보복은 커녕 &nbsp;비굴하게도 심복 장세동을 밀사로 보내어 대화를 구걸하는 친북적 행태를 노출하고 말았다.&nbsp;&nbsp;&nbsp;또한 국가보안법을 어기고 허담 등의 북한 밀사와 교감을 나누는 등&nbsp;친북인명사전 등재에 하등 흠이 없는 행적을 보였다.&nbsp;<br><br><br>&nbsp;또한 현재&nbsp;전 재산 29만원&nbsp;밖에 없는 무산 계급으로서 친북좌익 세력의&nbsp;포섭이&nbsp;용이하다는 현재적&nbsp;상황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nbsp;&nbsp;<br><br>&nbsp;<b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24/96/a0106196_4b0ba3eb14ca1.jpg" width="250" height="31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24/96/a0106196_4b0ba3eb14ca1.jpg');" /></div>&nbsp;성명: 정주영 <br>&nbsp;직위 :현대그룹 왕회장&nbsp;<br><br>&nbsp; 이 사람을 친북세력으로 분류하는 데는 많은 고민이 따랐다.&nbsp; 빨갱이 노동자들의 옆구리에 식칼을&nbsp;박아 가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켰고&nbsp;황량한 울산만을 굴지의&nbsp;공업 도시로 탈바꿈한&nbsp;공로는 취할만하다.&nbsp; 그러나 눈물을 머금고&nbsp;나는 그를 친북인명사전에 등재할 것을 호소한다.&nbsp;&nbsp;&nbsp;<br><br>&nbsp;&nbsp;강원도&nbsp;미수복지역인 통천 출신으로서 끝내 지역적 연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nbsp; 고향을 돕는다는 미명으로 엄청난 달러를&nbsp;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진상하였으며,&nbsp;&nbsp;소 수천 마리를&nbsp;조공품으로&nbsp;북한에 바쳤다.&nbsp; 북한은 남한의 혁명 열사들의 이름을&nbsp;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습관이 있는 바,&nbsp; 통혁당의 김중태나 서울대생 박종철 등의 이름도 북한의 학교나 기관에&nbsp;어김없이&nbsp;내걸려 있다.&nbsp; 그런데 저 적도 평양 한복판에 정주영 체육관이 위용도 찬란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nbsp; 이 어찌 친북의 증거가 아니랴.&nbsp;&nbsp;&nbsp; 친북인명사전이&nbsp;정주영 이름 석 자를&nbsp;뺀다면&nbsp;그 가치는 땅에&nbsp;떨어지고&nbsp;그 효용은 먼지처럼 산산이&nbsp;흩날리리라.&nbsp;&nbsp;&nbsp;<br><br><b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24/96/a0106196_4b0ba6288dada.jpg" width="250" height="34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24/96/a0106196_4b0ba6288dada.jpg');" /></div>&nbsp;성명 ; 김병관&nbsp;<br>&nbsp;직위 : 동아일보사 회장&nbsp;<br><br>&nbsp;&nbsp;원래 이분은 친북인명사전에&nbsp;올라서도 안되고 올라설 수도 없는 분이었다. 그러나&nbsp;단 한 차례 실수로&nbsp;그만 사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nbsp; 상기인은 말도 안되는 김일성의 항일 투쟁...... 수십 명이 강 건너 와서 국경 외딴 마을을 잠시 점령하고, 반항하는 일본 요릿집 점원 하나 죽이고 다시 강 건너간 사건인 보천보 전투를 다룬 동아일보 호외 원판을&nbsp;가져다가, 세상에 도금도 아니고,금 1.2 킬로그램을 들여서 장식해서는 민족의 공적 김정일에게 그 아비의 기념이랍시고 고이 전해 바쳤다.&nbsp;&nbsp;&nbsp;<br><br>&nbsp;민족 유수의 일간지가&nbsp;허위로 그득한 김일성의 항일 투쟁을 공식적으로&nbsp;인정하고, 그를 황금으로 도배하여&nbsp;전달하다니&nbsp;대체 국가보안법은 죽었는가 살았는가.&nbsp;&nbsp; 이적단체 고무 찬양 조항은 쉬었는가 썩었는가.&nbsp;&nbsp;&nbsp; 이런 친북적인&nbsp;작태가 횡행하는 동안 도대체 국정원은 공으로 월급받아 먹고 있었는가.&nbsp;&nbsp; 참으로 피를 토할 일이다.&nbsp; 친북 인명 사전 반드시 필요하다.&nbsp;&nbsp; 나는 김병관 회장을 존경한다. 그러나 공은 공 사는 사다 ^^&nbsp; 저런 행적이 친북인명사전에서 빠진다면 그건 정말이지&nbsp;화장실 휴지로도 못쓸 종잇장들의&nbsp;묶음에 불과하리라. <br><br><br><br><br>-------------------------------------------------------------------------------------------------<br><br>&nbsp;이외에도 정체를 숨긴 채 대한민국 곳곳에서 설치류처럼 서식하고 있는 친북인사들은 수없이 많다.&nbsp;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의 노력과 혜안을 통해 그들의 정체가 일망타진 공개되기를 앙망하는 바이다.&nbsp;&nbsp; 친북인명사전 편찬자들의 건투를 빈다.&nbsp; 이렇게 알려 줘도 저 위의 기라성같은 친북인물들이 사전에서 빠진다면, 나는 사전 편찬자들의 친북성과 사상을 의심해 보고자 한다.&nbsp; 핸드폰에 111 을 입력시켜 놓고 지켜 보리라. <br><br><br/><br/>tag : <a href="/tag/친북인명사전" rel="tag">친북인명사전</a>,&nbsp;<a href="/tag/이승만" rel="tag">이승만</a>,&nbsp;<a href="/tag/박정희" rel="tag">박정희</a>,&nbsp;<a href="/tag/전두환" rel="tag">전두환</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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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Nov 2009 07:35:43 GMT</pubDate>
		<dc:creator>산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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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싸워라 KBS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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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인생사란 것은 매우 묘하다. &nbsp;난 그저 제 자리를&nbsp;지킨 것&nbsp;뿐인데 &nbsp;얼척없이&nbsp;데모대 선두에&nbsp;선 죄로&nbsp;실컷 두들겨&nbsp;맞은 뒤 영웅으로 떠오를 수도 있고, 남들 다&nbsp;할 거&nbsp;내가 먼저&nbsp;도망간 것&nbsp;뿐인데&nbsp;삼십육계의 전설로 두고두고 남을&nbsp;경우도 엄연히 존재한다.&nbsp;&nbsp;&nbsp;&nbsp;한 발 물러서 숨을 고를 때와 과감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시점을 파악하는 것은 비단 전쟁터의 장수들만의 미덕이 아닌 것이다.&nbsp;&nbsp; 하물며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조직, 거기다 한 나라의 미디어 업계에서 둘째 가라면 통곡을 하다가 피를 토해서 빈혈로&nbsp;사망할 만한 회사의 구성원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nbsp;&nbsp;<br><br>&nbsp;<br>&nbsp;싸워라.&nbsp;&nbsp;KBS&nbsp;<br><br>&nbsp;<br>&nbsp; 작년에 그 홍역을 치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홍역에 면역이 되었으리라 짐작했음인지 '어부지리' 차지한&nbsp;뜽금없는 사장 치세를 걷어 치운 자리에 기어코 공수부대가 투입됐다.&nbsp;&nbsp; 그 이름도&nbsp;빛나는 KBS 공채 1기가 왜 낙하산이냐고 나경원 의원이 뾰루퉁해&nbsp;하지만&nbsp;낮은 포복만 하던 원단 땅개도 낙하산을 태우면&nbsp;공수부대가&nbsp;된다.&nbsp;&nbsp;&nbsp;더구나 그 낙하산에&nbsp;남대문짝만하게 "MB&nbsp;언론 특보"라는 명함이 찍혀&nbsp;있음에랴.&nbsp;&nbsp;<br><br><br>&nbsp; 1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나라에서&nbsp;6년 전의 일을 되짚어 무엇할까마는 KBS 구성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nbsp;특보를 지낸 인사를 대공포로 쏘아 떨어뜨렸다.&nbsp;&nbsp;&nbsp;그가 비록 KBS의 공채 1기가 아니었다고 해서, 또 방송인 출신이 아니라 해서 비토한 것이 아니었다. 그 개인의 자질에 대한 폄하와&nbsp;모욕도&nbsp;없었다. <p><br>&nbsp; 단지 한 나라의 언론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위인이 최고 권력자의 '오른팔'이나 '멘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상식이 그 대공포탄의 주재료였다.&nbsp; 또&nbsp;&nbsp;언론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정당에 참여하고 아무개를 당선시키고자 &nbsp;'개와 말의 수고'를 다하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에 해당하나,&nbsp;그 공의 댓가로 주어지는 &nbsp;하사품 목록에 &nbsp;언론사의 사장 명패가 포함될 수는 없다는 믿음이&nbsp;대공포의 포신이었다.&nbsp;<br><br>&nbsp;&nbsp;<br>&nbsp;상황이 바뀌었고 역사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nbsp;똑같은 형태의 낙하산이 떴다.&nbsp;&nbsp;그 낙하산이 안착하게 된다면&nbsp;세상을 상대할 면목이 치명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다름아닌 KBS 구성원들, 바로 당신들이다.&nbsp;&nbsp;'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다.&nbsp;&nbsp; '그때 그때 달라요~~'라는 개그쇼를 하는 입으로 어찌 정의를 논할 것이며 '나는 내 일만 할 뿐이고~~~'고 눈 가린 경주마 행세를 한다면&nbsp;그 등에 누구를 태울 것인가.&nbsp;&nbsp; 6년 전의 대공포를 기억하라.&nbsp;&nbsp; 당신들의 힘으로 대통령이 내려보낸 낙하산을 날려보냈던 그 기세를 기억하라.&nbsp;&nbsp;&nbsp;당신들이 싸워야 할 첫 번째 이유다.&nbsp;<br><br><br>&nbsp;싸워라 KBS&nbsp;<br><br>&nbsp;<br>&nbsp;그 대공포를 쏘아 보았다고 해서, 한 공수부대원을 날려 버렸다고 해서 무던히도 우쭐댔을 KBS 구성원 여러분.&nbsp; 여러분은 그 과거 때문에도 싸워야 하지만 여러분의 오늘을 위하여도&nbsp;싸워야 한다.&nbsp;&nbsp;&nbsp;&nbsp;아니&nbsp;더 솔직히 말하면 여러분이 누리는 안락과 호사의 댓가를 이 싸움으로 치러야 한다.&nbsp;&nbsp;&nbsp;지금 당신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는 당신들만이 사수해 온 것이 아니고,&nbsp;현재 당신들이&nbsp;향유하는 '신의 직장'의 지위는 당신들의 능력만으로 따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nbsp;<br><br><br>&nbsp; 당신들은 이미 방송계에서 그 직위와 권리가 보장된 귀족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nbsp;노블리스 오블리제는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nbsp;&nbsp;당신들이 마지막으로 사수해야 할 권리이고, 최소한 외면하지는 말아야 할&nbsp;의무가&nbsp;바로 이 싸움이다.&nbsp;&nbsp; 아니할말로 당신들은 하늘이 알게&nbsp;저항해도 잘리지 않지 않는가.&nbsp;&nbsp; 어디 연수원에 처박히고 한직을 맴돌지언정 연봉은 해가 갈수록 쌓여 가고&nbsp;그&nbsp;신분증은 강철로&nbsp;만들어졌지 않았는가.&nbsp;&nbsp;&nbsp;&nbsp;<br><br><br>&nbsp;법으로 보장된 직위와 단결의 권리를 가진 KBS 구성원 여러분.&nbsp; &nbsp;이미 그 사실만으로 당신들은 이 싸움을 치러야 할&nbsp;이유는 충분하다.&nbsp;&nbsp; 지금 당신들은 모욕당하고 있다.&nbsp;<br><br><br>&nbsp;&nbsp;권력에 빌붙음으로써가 아니라 권력과&nbsp;불화함으로써 쌓아올렸던 것이&nbsp;당신들과, 당신들의 동업자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였고 당신들의 어깨에 힘 들어가게 하는 영향력은 그로부터 나왔다.&nbsp;&nbsp; 그러기에 임기 한 달 남겨 놓고 대통령을 탄핵한&nbsp;덜떨어진 패거리들이 방송사에 찾아와서 물 한 잔 안 주냐고 거들먹거려도&nbsp;&nbsp;물은 셀프라고 쏘아부칠 수 있었고, 설사 당신들이 아닌 외부의 방송 종사자라 하더라도 누가 부당한 압력을 넣을라치면 "때가 어느 때인데"를 일갈할 수 있었다.&nbsp;&nbsp; 지금 권력은 그 결기를 비웃고 있다. &nbsp;<br><br>&nbsp;<br>&nbsp;그래도 작년에 그 난리를 치렀으면 포기할 줄 알았다.&nbsp;&nbsp;아무리 대한민국 표준 시계가 거꾸로 도는 국방부 시계가 되었더라도&nbsp;그래도 체면이 있고 양심이 남았을진대&nbsp;허접한 동네 고스톱판에서도 지켜지는 낙장불입 원칙을 저버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nbsp; 이 바바리맨같은 권력이 휘둘러대는 거시기에 그저 꺅꺅 소리내며 피할 뿐이라면 그 바바리맨은 당신들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그 앞에 꿇어앉혀 버릴지도 모른다. &nbsp;&nbsp;그러기야 하겠냐고 묻는 자에게 되묻는다.&nbsp; 작년에 그 난리를 치고서는 또 김인규 카드를 들이미리라고 상상한 자 있는가?&nbsp; <br><br><br>&nbsp;싸워라 KBS&nbsp;<br><br>&nbsp;<br>&nbsp; 그리고 당신들의 미래를 위해서 싸워라.&nbsp;&nbsp; 불쾌할지 모르나 많은 이들은 이미 당신들을 믿지 않는다.&nbsp;&nbsp; 싸우는 시늉만 하다가 잇속 차릴 거 다 차리고, KBS의 그 많은 기둥들 뒤에 숨어 있는 놀고먹는 인력들 안전 보장 받고, 풍성한 연봉 잔치나 하지 않을까&nbsp;하는 의심은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nbsp;&nbsp;더우기 지금 노조 깃발을 움켜쥔&nbsp;사람들의&nbsp;입에서 나오는 투쟁이라는 단어는 &nbsp;가끔 대통령께서 도덕성을 말씀하실 때보다도 더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nbsp;사실이다. <br><br><br>&nbsp;&nbsp;전두환이&nbsp;정권을 장악한 뒤&nbsp;언론계에 당근 폭탄이 퍼부어지면서 가장 형편이 나아졌던 곳 중의 하나가 KBS였다.&nbsp;그러나 &nbsp;형편이 나아진 만큼이나 형편없이 멸시를 당했던 때도 그때였다.&nbsp;&nbsp;우리 집은 KBS를 보지 않습니다 스티커가&nbsp;날개돋친 듯 전국으로 퍼졌고,&nbsp;땡전뉴스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꿋꿋이&nbsp;'오늘 전두환 대통령'과 '한편 영부인 이순자 여사는'으로 뉴스를&nbsp;장식했었다.&nbsp;&nbsp;&nbsp;그 과거를&nbsp;당신들의 미래로 삼지 말 일이다.&nbsp;&nbsp;<br><br><br><br>&nbsp;물론 때가 어느 땐데 하는 핀잔이 돌아올 것을 안다.&nbsp;아무렴&nbsp;천하의&nbsp;김인규 참모라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아호를 '청계'에서 '오늘'로 바꾸라고 강요하기야 하겠는가.&nbsp;&nbsp; 여러분의 미래가 두려워해야&nbsp;할 것은&nbsp;정부의 압력이 아니라 그와의 담합이다.&nbsp; 그리고 그 담합은 달콤할지 몰라도 결국 언론이 마땅히 드러내야 할 송곳니와 어금니를&nbsp;썩게 만들 것이고, 결국 이빨 빠진 언론은&nbsp;꼬리를 흔드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nbsp;개가 되고 말&nbsp;것이다.&nbsp; 그리고 그때 다시금 여러분은 사회의 공적이 될 것이다.&nbsp; 물론 등은 더 따뜻하고 배는 더 부르겠지만.&nbsp; <br><br><br>&nbsp;싸워 봐라. 한 번.&nbsp;&nbsp; 최소한 김인규 참모가 연말 방송 대상 시상식에 나비 넥타이 매고 나타나는 모습은 막아 주길 바란다.&nbsp; "이명박 후보의 취재 일정 및 코디, 출연진, 인터뷰 내용까지 면밀히 체크한" 대선의 일등 공신 김인규 참모가 어느 자리를 못 가겠는가.&nbsp;&nbsp; 까짓거&nbsp;정연주 전 사장 해임이 계속 무효 판결을 받을 경우 책임지겠다고 공언한 최시중씨의 후임으로 보내도 좋고,&nbsp;&nbsp;학부모에게 세뇌당했네 어쩌네 하는 지극히 비문화적인 장관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들어앉혀도 무방하겠다.&nbsp; 하지만 KBS 사장만은 어울리지 않는다.&nbsp; 어울려서도 안된다.&nbsp; 그 이유는 김인규 참모 자신이 잘 알고 있다.&nbsp;<br><br><br>&nbsp; "대선 때 특보를 안하려고 수차례 고사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하게됐는데 그게 멍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본인의 변이다.&nbsp; 수 차례 고사해야 했던 바로 그 이유가 오늘의 김인규 전 특보가 KBS사장에 앉을 수 없는 근거일 것이며,&nbsp; 그것이 멍에가 되고 만 것 역시 그 자신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사장을 하겠다고 나서고, 전 특보의 주군은 기어코 시키겠다고 우긴다.&nbsp;&nbsp; 이래도 싸우지 않는다면, 그 강력한 노조와 신분 보장의 특권을 가지고도 시늉만 하고 말겠다면 그냥 밥숟갈 놓고 이슬이나 먹고 살 일이다.&nbsp;&nbsp; <br><br><br>&nbsp;싸워라 KBS.&nbsp; 당신들이 잘린다 한들 기륭전자 노조원만큼이나 풍찬노숙을 하겠는가?&nbsp;&nbsp; KTX 여승무원들만큼이나 사람들이 몰라보겠는가?&nbsp; 기껏해야 어디 좀 외지기는 하지만 경치 좋은 중계소에 가거나 연수원쯤에 가서&nbsp; 유유자적 월급 받으며 권토중래하면 되는 일 아닌가.&nbsp; 그럴 수 있는&nbsp;사람들이 싸워야 할 일에 마땅히 떨쳐 일어나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도 일종의 직무유기다.&nbsp;&nbsp; 그리고 직무유기의 결과로 당신들은 그&nbsp;이름도 유명한 루저의 작위를 얻을 것이다.&nbsp; &nbsp;&nbsp;<br><br><br>나는 KBS를 루저 아닌 위너로, 너무 반듯해서 탈이긴 하지만 지킬 건 지키고 할 일은 하는 박카스 청년으로 기억하고 싶다.&nbsp;&nbsp;그러기 위해서&nbsp;제발 싸워 줘라 KBS.&nbsp;&nbsp;&nbsp;당신들이 나설 때다.</p><br/><br/>tag : <a href="/tag/KBS" rel="tag">KBS</a>,&nbsp;<a href="/tag/김인규" rel="tag">김인규</a>,&nbsp;<a href="/tag/낙하산" rel="tag">낙하산</a>,&nbsp;<a href="/tag/언론특보" rel="tag">언론특보</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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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Nov 2009 16:07:0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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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교육계 유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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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한겨레 21 노땡큐 플러스 알파&nbsp;<br><br><br>&nbsp;<!--StartFragment--></p><p class="바탕글">방송 일을 하면서, 특히 고발 프로그램을 하면서 수많은 분노와 실망을 경험했고 허탈감에 어깨를 늘어뜨리거나 배신감에 애꿎은 벽에 주먹질을 한 적도 적지 않다. 그 감정들의 원천은 한 개인일 수도 있었고 특정 기관이기도 했고, 또는 어떤 광범위한 집단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 감정의 파동을 가장 극심하게, 그리고 골고루 느꼈던 대상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 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교육계’다.<br></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무럭무럭 자라는 새싹들과 푸르러지는 동량들에게서 삶의 보람을 거두는 대다수의 선생님들께는 매우 죄송한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자꾸만 엇나가는 아이들을 감싸고, 안팎으로 상처 가득한 아이들을 끌어안느라 여념이 없는 분들께 결례가 될 수 있는 표현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전체가 바담 풍이라고 읽더라도 너희는 바람 풍이라고 읽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시는 강직한 사표(師表)들에게는 송구스런 마음 금할 길 없다. 문제는 응당 그러하리라 생각했던 믿음의 전복을 여러 번 목격해야 했다는 데 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학교 앞에 살면서 ‘싸이코’라는 놀림을 받는, 그 놀림을 못 참아 몽둥이를 들고 뛰어다니다가 정작 걸음 빠른 악동들은 놓치고 엉뚱한 저학년들만 잡아 족치는 통에 온 동네의 원망을 샀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슬프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 학교를 다니는 아주머니의 딸은 소문난 왕따였다. 쓰레받기에 담긴 먼지를 도시락에 쏟아 부었다던가, 신발을 감춰 버렸다던가 구구절절 읊기도 싫은 일화들이 많은데, 이 문제에 대한 담임 교사의 명언은 실로 귀에 쟁쟁한 것이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왕따 아닙니다. 현대인의 고독 같은 거예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입으로 항의하러 간 아버지에게는 심드렁하게 전학을 권유했다고 한다. 어디 친척집 없냐고. 그리로 보내 버리라고. 아이가 문제라고.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nbsp;솔직히 말하여 그분에게 삶의 보람이란 자라나는 새싹 아닌 커져가는 연금 액수에서 비롯되는 걸로 보였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가 받는 상처 따위는 책상 위에 쌓이는 공문 낱장보다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br>&nbsp;물론 그 교사 하나를 가지고 교육계 전체를 평가하는 엄청난 어리석음을 범할 이유는 없다. 뉘 없는 쌀이 어디 있으며 티 없는 옥이 그리 흔하랴. 하지만 교사나 교장 개개인의 품성이나 사고가 아니라 이 나라의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일선 학교를 지휘 감독한다는 조직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뚱딴지들이 멧돼지처럼 종횡무진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나는 할 말과 남아 있던 믿음을 동시에 잃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받아쓰기 커닝을 했다고 해서 한 여교사는 100대의 몽둥이질을 퍼부었다. (아, 100대는 과장이라고 했다. 80대였다고 한다.) 한 번에 때리기엔 버거웠는지 쉬는 시간마다 불러내서 스무 대씩 ‘야구하듯 풀스윙으로’ (같은 반 아이의 표현) 때렸다고 했다. 그 일이 있은 뒤 또 한 여자 아이에게 수십 대의 매질을 퍼부었고 보랏빛으로 변해버린 아이의 볼기짝이 인터넷에 떠다니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말았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교육에 대해 일가견은 전혀 없으나 같은 반 친구가 수십 대의 매질을 당하며 울부짖을 때 맞는 아이는 고사하고, 그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어떤 상처를 받았을 지는 진저리치게 이해할 수 있다. 체벌에 익숙한 세대의 일원으로서도 단언하건데 그것은 폭력이었고 교사가 초등학교 2학년에게 가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이것이 아동학대가 아니냐는 질문에 교육청 관료는 또 이런 명언을 남겨 주셨다. “콩쥐 팥쥐처럼 이유 없이 밉다고 하는 것이 학대지요. 이건 체벌이 심한 거지요.”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nbsp;그리고 교육청이 최종적으로 정한 징계는 정직 3개월이었다. 대단한 중징계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성추행을 하고서 고발당한 교사도 정직 3개월 후 교단에 섰다. 그런데 바로 한 달 뒤 일제고사를 보지 않을 권리를 알려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정직도 아니고 해임도 아닌 파면이 선고되었을 때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청이라는 곳이 주관하는 교육이라는 것의 목표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를 성추행한 자도 석 달만 마늘과 쑥 먹고 참으면 다시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학교 교단에 현신하는 판에, 아이들의 권리를 밝히고 논한 것에 파면장을 내던지는 교육의 기준은 무슨 손오공의 여의봉이란 말인가.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br>&nbsp;얼마 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시국선언 참여 교사에 대한 징계를 않겠다 (엄밀히 말하면 사법적 판단을 기다려 보겠다)고 선언하자마자 교육부는 그야말로 펄펄 뛰었다. “수사 기관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통보받고도 징계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이며 직무이행명령은 물론 고발까지 하겠다며 세우는 서슬이 시커멀 정도로 시퍼랬다,<br></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br>&nbsp;그러나 선거법상 공개가 명시된 재산을 누락시킨 혐의로 고발된 서울시 교육감이 대법원 최종 유죄 판결로 퇴장하기까지, 교육부가 무슨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는 꿈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수사 기관으로부터 수사 내용을 통보”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이것은 누구의 직무유기인가.<br>&nbsp;<br>&nbsp;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도 어서 징계하라고 으르대는 성마름과, 3심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꿈쩍도 않는 여유로움이 공존하는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의 ‘다중인격’에 당혹감을 금하기 어려운 가운데 진하게 우러나는 질문 하나가 있다. 대관절 교육과학기술부는 무슨 교육을 통해 어떤 인재를 길러내고 싶기에 이런 모범을 보여 주시는 것일까</p><br/><br/>tag : <a href="/tag/교육계" rel="tag">교육계</a>,&nbsp;<a href="/tag/교장" rel="tag">교장</a>,&nbsp;<a href="/tag/교육과학기술부" rel="tag">교육과학기술부</a>,&nbsp;<a href="/tag/자격미달교사" rel="tag">자격미달교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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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Nov 2009 04:38:0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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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가장 아름다왔던 키스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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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섹스신은 고사하고 키스신만 봐도 온몸이 곤두서고 동공이 확장되며 평소 두 배의 침이 생성되던 혈기왕성 생기발랄하던 고딩 시절의 일이다.&nbsp;&nbsp; 집이 멀다는 핑계로 학교 앞에서 하숙을 하던 나는 부모님의&nbsp;애타는 의도와는 달리 인근에 위치해 있던 동의대학교 대학 문화 탐방에 열심이었다.&nbsp;&nbsp; 아니 열심은 아니었다. 나름 공부도 했다.&nbsp;<br><br><br>&nbsp;전교 1등짜리들을 꼬셔서&nbsp;학교 앞&nbsp;다방에서 절찬&nbsp;상영 중인 포르노를 보러 가자고 선동한 것은 절대로 내가 아니었지만, 그&nbsp;꽁무니에 끼어 있었던 것은 맞고,&nbsp;머리 식힌다는 핑계로 핑크빛 자욱한 커플들의 데이트 현장에서 사이다 시켜 놓고 두리번 거린&nbsp;적도 꽤 됐다.&nbsp;&nbsp;공부도 굳이 대학 도서관에 올라가서는, 공부를 하는 건지 연애를 하는 건지 모르는&nbsp;남녀 앞에서&nbsp;공부나 해라 이거뜨라 빈정거리면서&nbsp;성문종합영어 공부하기도 할 때는 이상하게 뿌듯해지기도 했다.&nbsp;&nbsp;<br><br><br>&nbsp;어느날 밤이었다.&nbsp; 자율학습 끝나고 하숙집으로 털레털레 오다가 웬지 또 농땡이 겸 산책이 하고 싶어졌다.&nbsp;&nbsp;&nbsp;이럴 때&nbsp;쪼가리 (당시 여자친구를 말하던 우리 은어) 하나쯤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예나 지금이나 그런 쪽으로는 재주가&nbsp;없는 처지에 그런 호사는&nbsp;누릴 수&nbsp;없었고, 동의대&nbsp;앞&nbsp;가파른 비탈길을 나 홀로 땀 흘리며 걷는 수 밖에&nbsp;없었다.&nbsp; 참 나 홀로는 아니었다.&nbsp; 한 녀석이 따라붙었다.&nbsp;&nbsp;&nbsp;이유는&nbsp;잘 기억나지 않지만 공부하기 싫었던 이유 이상이 있겠나.&nbsp;&nbsp;<br><br><br>&nbsp;둘이 하릴없이 캠퍼스를 쏘다니다가 자정을 넘겨서 내려오는데&nbsp;갑자기 친구 녀석이 내 등을 쳤다.&nbsp;&nbsp;&nbsp;놀라 바라보니&nbsp;레지스탕스 포즈로 나무 뒤로 몸을 숨긴다.&nbsp; 무장공비라도 나타났나?&nbsp; 아니면 설마 학생주임? 어리둥절 속 공포감을 숨기지 못해 두리번거리는&nbsp;내 뒷덜미를 녀석의&nbsp;손이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자신의&nbsp;그늘 속으로&nbsp;끌어들이는 게 아닌가.&nbsp;<br><br><br>&nbsp;이기 미칬나? 하고 험악하게 녀석을 쏘아보는데 녀석의 검지손가락이 잽싸게 그 다문 입술을 가린다.&nbsp;&nbsp;쉿!!!!!!&nbsp;&nbsp;&nbsp; 뭔그때 그&nbsp;순간 역시 단순한 장난은 아님을 깨닫는데는 0.1초가 지나지 않았다.&nbsp;&nbsp;아무리 눈치가 없다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고딩으로 살아온 처지에 이런 형국에서 와 그라는데 참말로를 부르짖으며 분위기를 깰 고문관은 아니었다. &nbsp;뭔가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nbsp;느낌이&nbsp;전신을 휘돌고 지나갔다.&nbsp;<br><br><br>&nbsp;간첩을 발견한 초병과 같이&nbsp;우리는 시선의 총구를 날카로이 겨누었다.&nbsp; 어둠이 뒤덮은 캠퍼스의&nbsp;커다란 나무&nbsp;밑에서 암약하고 있었던 것은 간첩이 아니라&nbsp;청춘남녀였다.&nbsp; &nbsp;한 남자와&nbsp;여자가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아서는 정다운&nbsp;속삭임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영화 '개인교수'와 '마이튜터'와 이대근 주연의 각종 영화들에서 보여 주었던 에로틱한 장면의 전단계를 실물로 보여 주고 있었다.&nbsp; 내 친구는 단언을 했다.&nbsp; 저 둘이 키스하지 않으면 내&nbsp;손가락을 소신공양하리라.&nbsp;&nbsp;&nbsp;<br><br><br>&nbsp;혹 소리가 날까봐 바께스로 넘어가는 침을 가까스로 참으면서&nbsp;전방경계감시에 충실하던 우리에게&nbsp;드디어 보람이 찾아왔다.&nbsp; 훤칠한 키에&nbsp;장발족이던&nbsp;남자가 조심스레&nbsp;머리를 숙였고,&nbsp;애타게&nbsp;올려다보던 단발의 여자와 맞붙더니 요상하나 생생한 소리와 함께 두 머리가 기묘하게 비벼지기 시작한 것이다.&nbsp;&nbsp; 와아.....&nbsp;소리 없는 아우성이 두 고딩의 입에서 튀어나왔다.&nbsp;&nbsp;연인들의 몸짓 하나 손짓 하나 소리 하나가&nbsp;번개같이&nbsp;번득였고 천둥같이 귀를 파고들었다.&nbsp;&nbsp;친구 녀석은 "쥑인다"를 연발하고 있었고 나는&nbsp;더 떠들면 "쥑인다"라고 윽박질렀다.&nbsp;&nbsp;연인들의 키스는&nbsp;관객이 만족할만큼 길었고 그렇게 느껴질만큼 달콤했다.&nbsp;<br><br><br>&nbsp;인적은&nbsp;거의 없는 시간, 잘하면 그 이상의 행동도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충만한 차에 한 버르장머리 없는 승용차의 헤드라이트가 연인들 근처를 할퀴고 지나갔다.&nbsp; 연인들의&nbsp;존재를 알고 비춘&nbsp;것 같지는 않았지만&nbsp;22년 전의&nbsp;순진한 대학생들을 놀래키기에 충분한 방해꾼 노릇을 했다.&nbsp; 연인들의 머리는&nbsp;즉시 떨어졌고 둘은&nbsp;두리번 거리면서 손을 꼭 잡은 채 어둠을 벗어나 가로등 아래 빛의 세계로 걸어나왔다.&nbsp;<br><br><br>&nbsp;에이 끝났네 망할놈의 자가용을 탓하면서 우리 초병들도&nbsp;철수를 서두르는데 갑자기&nbsp;친구 초병이&nbsp;이미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성미 급한&nbsp;내 뒷덜미를 또&nbsp;잡아챘다.&nbsp; 뭐야 또 시작하나?&nbsp;&nbsp; 쳐다봤더니 친구 녀석은&nbsp;입을 딱 벌리고&nbsp;손가락으로 연인들 쪽을 가리키고만 있었다.&nbsp; 여자가&nbsp;무슨 탤런트인가?&nbsp; 아니면&nbsp;저 바다에 누워~~를 불렀던 동의대&nbsp;출신 듀엣인가? 다시금 감시의 눈초리에&nbsp;발전기를 돌릴 참이었지만&nbsp;곧&nbsp; 내 입에서는&nbsp;&nbsp;초병으로서의 임무를 망각한&nbsp;우이???? 소리가&nbsp;독재타도 구호처럼 크게 튀어나오고 말았다.&nbsp;<br>&nbsp;<br><br>&nbsp; 키스를 위해 머리를 숙인 장발족 남자는....... 남자가 아니었고 그 입술을&nbsp;해바라기처럼 기다리던 단발의 여자는 여자가 아니었다.&nbsp; 그들의 성별은 바뀌어 있었다.&nbsp; 행복한 미소를 그득 채운 채 손 꼭 잡고 걸어나오는&nbsp;연인들이 백일하에 아니 백열전구 하에 드러났을 때&nbsp;다시 한 번&nbsp;확인하니&nbsp;그들은 농구 선수처럼 보이는 장신의 여자와 요즘의 유행어로 치면 10센티 루저에 해당하는 남자였던 것이다.&nbsp;&nbsp;&nbsp; 그들은 근처 건물&nbsp;계단에서&nbsp;피자 한 판이 &nbsp;들어갈만큼 입을 떡 벌린 채 못박혀 있는&nbsp;스포츠 머리 고딩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포즈를 팔짱으로 바꾼 채&nbsp;밀어를 나누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nbsp;&nbsp;<br><br><br>&nbsp;그들이 사라진 한참 뒤에도&nbsp;멍하니 서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둘은&nbsp;데굴데굴 구르며 웃기 시작했다.&nbsp; 그냥 웃겼다.&nbsp;&nbsp;이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드물 열정적인 키스신의 주인공의 '언발란스'는&nbsp;끝없는 폭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nbsp;&nbsp; 남자보다&nbsp; 키 큰 여자가 없을리 없고, 둘이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법은 안드로메다에도 없겠지만 실제로 우리&nbsp;어머니는 우리 아버지보다&nbsp;종이 한 장 정도 더 크시지만, 나는&nbsp;가로등 밑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진귀한&nbsp;연인이 던져준 아연한 충격을&nbsp;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nbsp; 그때까지 침 꼴깍 꼴깍 넘기며&nbsp;봤던 키스신의 신비도, 혹시 이른바 '벽치기' (흠 애들은 가라~~~)라도 보여주지 않을까&nbsp;넘쳐났던 기대도 꺽다리녀와&nbsp;짧은남의 출현 앞에서&nbsp;비누방울처럼 터져 버렸고, 우리는&nbsp;미친 사람처럼&nbsp;깔깔대면서 캠퍼스를 굴러야 했다.&nbsp;<br><br><br><br>&nbsp;그러나 오늘 그 키스신을 돌이켜&nbsp;굽어보매,&nbsp; 자신보다 10센티는 적어 보이는&nbsp;남자의 팔에 곱게 손을 끼운 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늘씬한 키의&nbsp;여대생은 22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신선함으로&nbsp;기억의 담장을 뛰어넘는다.&nbsp;&nbsp;&nbsp;"남자&nbsp;집이 재벌일끼라" 하는 내 친구의 심술궂은&nbsp;추정 따위는 걷어차 버리고,&nbsp;나는 그들이 진실된 마음을 나누는 연인이었다고&nbsp;믿고 싶다.&nbsp;&nbsp;&nbsp;"180이하는 루저"라는 대본을&nbsp;써서 내미는&nbsp;'방송인'들이 출몰하고 그걸 그대로 언급하는 꼬라지가 방송을 장식하는&nbsp;세상에서 사랑하는 남자의&nbsp;입술을&nbsp;향해 수줍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던 듯) 고개 숙이던&nbsp;여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nbsp;&nbsp;&nbsp;&nbsp;<br><br><br>&nbsp; 그녀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말렸을&nbsp;것이다.&nbsp;&nbsp;"여자는 얼굴 남자는 키"라는 오래된 명제를 내세우면서 어디서 만나도 그런 비누곽다리 왕자를 만나느냐며 타박을 놓았을지도 모르겠다.&nbsp;&nbsp;&nbsp;둘의 모습을 보기만 하고서도 폭소를 가눌 수 없었던 나와 친구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은 킬킬거리는 웃음 소리와&nbsp;웃음 참느라&nbsp;끅끅거리는&nbsp;신음&nbsp;소리에 파묻혀&nbsp;지냈을 수도 있으리라.&nbsp; 그들이&nbsp;그런 잡소리들을&nbsp;들어메치기로 풀쳐 버리고,&nbsp;그 가을밤의 키스와 같이 달콤하고 짜릿한 사랑을 계속 영글어 나갔기를 오늘에야 바란다.&nbsp;&nbsp;&nbsp;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박수받고 갈채받아 마땅한 위너가 되었을 것이다.&nbsp;&nbsp;&nbsp;그들의 키스는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키스신이었다. <br><br><br><br><br><br/><br/>tag : <a href="/tag/키스신" rel="tag">키스신</a>,&nbsp;<a href="/tag/루저녀" rel="tag">루저녀</a>,&nbsp;<a href="/tag/위너녀" rel="tag">위너녀</a>,&nbsp;<a href="/tag/아름다운키스신" rel="tag">아름다운키스신</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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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Nov 2009 11:25:4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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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비겁하지 말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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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루저' 사건으로&nbsp;세상이 좀 시끄러웠다.&nbsp;&nbsp; 키도 경쟁력인 세상에 180 이하의 남자들은&nbsp;'루저'라고 생각한다는 한 여대생의 발언은 2009년 현재 평균 신장 175센티 이하에 머물고 있는 대한민국 남성들을 격노시키기에 충분했다.&nbsp; 나 자신 180은 커녕 170 고개에 바둥바둥 턱걸이하고 있는, 현격한 '루저'로서 심히 안녕치 못하다.&nbsp;&nbsp;&nbsp;&nbsp;<br><br><br>&nbsp;오늘 그녀가 올린 사과문을 읽었다.&nbsp;&nbsp;그 이름도 끔찍한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과거의 가방 수선 경력부터 오늘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만천하에 공개되어 버린&nbsp;젊은 여성의 공포와 당혹감이 스며나왔지만 그래도 "말조심해야지 그러니까....."하는 루저로서의 복수심을 버리지는 못하고&nbsp;있었음을 고백해 둔다.&nbsp; 하지만 읽다 보니&nbsp;걸리적거리는&nbsp;대목이 있었다.&nbsp;<br>&nbsp;&nbsp;&nbsp;<br><br><br>&nbsp; "작가들에게서 받은 앙케이트에 O, X 형식으로 짧은 답을 하게 됐고 그것을 참고해 만들어진 대본을 가지고 11월1일 녹화를 했다"고 한다.&nbsp; 모르긴 해도&nbsp;문제의 '루저녀'가 키 작은 남자들에 관심을&nbsp;갖지 않음은&nbsp;앙케이트를 통해&nbsp;드러났을 것이다.&nbsp;&nbsp;이 현격한 루저가 볼 때&nbsp;매우&nbsp;불쾌하고 비합리적이며 바보같은 발상이긴 하지만 어쩌랴 그것은 그녀의 자유의지일 뿐이다.&nbsp; 하지만&nbsp;그 생각을&nbsp;공개된 장소에 끌어낸 것은 앙케이트였다.&nbsp; 아마 키 작은 남자는 남자로 안보인다&nbsp; 정도의 앙케이트 문항이&nbsp;있었을 것이고 당연히 루저녀는 O에 응했으리라.&nbsp;&nbsp;&nbsp;그런데 그 &nbsp;O가 '루저'라는 , 예리하고 뾰족하여 사나이 가슴에 박혀서 돌아오지 않는 화살같은 단어로 승화된 것은 분명 다음과 같은 상황이 지대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nbsp;&nbsp;<br><br><br>&nbsp;"제일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루저'라는 단어는 작가 측에서 대사를 만들어 대본에 써 준 것이며,&nbsp;&nbsp;대본을 강제적으로 따라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방송이 처음이었던 저와 같이 나왔던 여대생들에게는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대본이 많은 도움이 됐고 대본을 따르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래서 낯선 성황에서 경황없이 대본대로&nbsp;말하게 됐다."<br><br>&nbsp;<br>&nbsp; 루저라는 표현의 지적소유권이&nbsp;제작진에게 있다는 말이다.&nbsp;&nbsp; 물론 루저녀 스스로 인정하다시피 '스물 두살의 자유의지와&nbsp;사리판단 능력을 갖춘' 여대생이 그 대본을 무비판적으로&nbsp;따른 것은 잘못이라 하자.&nbsp; 하지만 일반인들과 함께 스튜디오 녹화를 해 본 사람으로서 나는 이 사태의 책임은 그녀보다는 제작진에게&nbsp;더 크게 돌아가야&nbsp;한다고 주장한다.&nbsp;&nbsp;<br><br>&nbsp;<br>&nbsp;보통 일반인 출연자는 평생 조명 아래에 처음 서는 사람들이다.&nbsp;&nbsp; 그 조명이 얼마나 뜨거운지도 모르고, 자신의 주위는 대낮같지만 한 치 앞은 어둠인 기묘한 상황에 처음으로 직면하는 사람들이다.&nbsp;&nbsp; 리허설 때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과 하라고 주문받은 말의 경계가 어느 새 뒤죽박죽이 되고, 옆에서 묻는 말조차 잘 들리지 않기도 한다.&nbsp; 무슨 말을 빼먹을라치면 앞에 선 작가와 조연출이 스케치북에 큼직하게 써서 펄펄 뛰며 피켓팅을 하고 있다.&nbsp;&nbsp;<br><br><br>&nbsp;그 스케치북에 "루저! 루저!"라고 쓰여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nbsp;&nbsp; 하지만 거기에 쓰여 있지 않았다고 해도, 리허설과 사전 미팅을 통해 이미 두 번 세 번 주의를 환기받은 이들로서 실수가 아닌 주관적 의지로 대본을 무시하는 일반인 출연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nbsp; 즉 저 맹랑한 단어 '루저'는 루저녀의 발언이 아니라 웃음과 황당함을 유발하고,&nbsp; "내가 능력있으면 되지 않아? 그렇게 자신없어?"라고 강하게 나오는 크리스티나와 대비되는 모습을 연출하려는 의도에서 산출된 단어였다고 나는 판단한다.&nbsp;&nbsp;'루저' 운운이 제작진의 의도를 벗어난 돌발발언이었다면 절대로 방송을 타지 못했을 것이다.&nbsp;&nbsp;PD들 그렇게 허술하게 방송하지 않는다.&nbsp;<br><br><br><br>&nbsp;그런데 의아한 것은 제작진의 해명이었다.&nbsp; 제작진의 녹화와 편집을 거친 방송에서 한 '민간인'이 방송상 제기된 실언으로 말미암아&nbsp;공인된 동네북이 되는 판에 "대본은 토론 진행상 참고 자료로 쓰일 뿐, 강요되는 것은 아니다"고 발을 빼는 모습은 매우 아름답지 못했다.&nbsp;&nbsp;&nbsp; 아무리 야생을 찾고 생생을 달고 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대본은 존재하고, 그것은 제작진의 연출 의도를 반영하며 출연자에게 모범답안으로 제시된다.&nbsp;&nbsp; "꼭 이대로 하시라는 건 아닙니다.&nbsp; 하지만 이런 취지로..... 아셨죠?"&nbsp;&nbsp;이 요구를&nbsp;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nbsp;강요는 아니라 하지만&nbsp;참고(?)는 더더욱 아니지 않나?&nbsp; (물론 '미수다'의 녹화만은 특수하게 진행된다고 강변한다면 할 말은 없다.)&nbsp;&nbsp;&nbsp;&nbsp;<br><br><br>&nbsp;&nbsp;'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길 의사가 없었다'는 제작진의 해명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nbsp; 아무렴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에서 그럴 의사를 가지고 프로그램 만드는 인사가 어디 있겠는가.&nbsp; 하지만 문제는 외모지상주의의 슬로건 같은 희한한 대사가 녹화때 NG 나지도 않고 편집 때&nbsp;걸러지지도 않은 채 방송에 나갔다는 사실 아닌가.&nbsp;&nbsp; 루저녀에 대한 마녀사냥을 걱정하는 마음씨는&nbsp;칭찬할 만하지만,&nbsp;&nbsp;우리가 마녀를 만들었습니다 하는 반성이 앞서야&nbsp;할 일이었다.&nbsp;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길 의사가 없었다는 변명보다는 외모지상주의에 제작진 스스로 둔감했다는 반성이&nbsp;더&nbsp;절실한&nbsp;상황이었다.&nbsp;&nbsp;&nbsp;&nbsp;<br><br><br>&nbsp;<br>&nbsp;제작진의 소심함(?)만 탓하려고 끄적이기 시작한 게 아닌데&nbsp;너무 길어졌다.&nbsp;&nbsp;주지하다시피 루저녀의 사생활은 이미 융단폭격을 받았고 소속 학교까지도 싸잡아 욕을 먹고 있으며, 개념없는 외모지상주의적 발언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nbsp;거기에 미수다&nbsp;폐지 서명 운동도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nbsp;&nbsp;&nbsp;이런저런 뉴스를 들으면서&nbsp;내 머리에 치미는 단어 하나는 비겁함이었다.&nbsp; 비겁하다.&nbsp; 정말로 비겁하다.&nbsp;&nbsp; 더군다나 그 폭격과 욕설과 폐지 운동의 이유가 "개념없는 외모지상주의 발언의 공개적 천명"이라면&nbsp;비겁함을 넘어서 야비하기까지 하다.&nbsp;<br><br><br>&nbsp;&nbsp;못생긴 여자 앞에서 구역질을 하는&nbsp;코미디에 대해서, &nbsp;어떻게 그런 다리로 치마 입고 다니냐는 농담에 대해서,&nbsp;얼굴이 무기니 견적이 얼마니 하는 못생긴 여자는 게으른 여자니 하는 발언에 대해서 항의하고 분노했던 기억이 있는가.&nbsp;&nbsp;그런 발언의 당사자가 융단 폭격을 맞고, 사생활이 낱낱이 파헤쳐지며, 그 여성 편력들이 처절하게 공개된 적 있는가.&nbsp;그런 부주의한 멘트를 노출시킨 프로그램을 폐지하라는 서명 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난 예가 혹시 있었던가?&nbsp;&nbsp; 이미&nbsp;외모지상주의가 쉬가 슬도록 깊숙히 뿌리내려&nbsp;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굳건해진 지 옛날인 나라에서 이게 웬 소란인가 말이다.&nbsp;&nbsp;&nbsp;<br><br><br>&nbsp;"전문직에 종사하는 아내를 맞고 싶어요."라는 남자의 말은&nbsp;누구나 당연하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신랑 연봉이 5천만원은 되어야죠. "라고&nbsp; 코멘트하는 순간&nbsp;멀쩡한 한&nbsp;처녀는 된장녀가 된다.&nbsp;&nbsp;&nbsp;솔직히 그 말 속에 숨은 이기심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nbsp;&nbsp;&nbsp; 온 세상 천지가 S라인 V라인을 외치고,&nbsp;&nbsp;못생긴 것은 죄라는 언설이 서슴없이 운위되는 방송판에서&nbsp; "180 이하 남자는 영 아니에요." 정도의 말이&nbsp;어떻게&nbsp;하늘을 뒤집고 지축을 흔드는 망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인가.<br><br><br>&nbsp;&nbsp;"살찐 여자는 루저예요."라고&nbsp;한 남자가 말했을 때 그 남자가&nbsp;루저녀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nbsp;그렇게 형성된다면 나는 루저녀에 대한 네티즌 수사대에 기꺼이 가담할 용의가 있다.&nbsp;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 벌어지는 작태는 수컷들의 쓸데없는&nbsp;'곧추세우기'에 불과하다고 본다.&nbsp;&nbsp;&nbsp; 물론 나조차 그로부터 초연하다는&nbsp;오만 따위는 부리지 않을 생각이다.&nbsp;&nbsp; 비겁하지는 말자.&nbsp; 손쉬운 흥분은 비겁의 도피처다.&nbsp;&nbsp;&nbsp;<br><br>&nbsp;<br><br/><br/>tag : <a href="/tag/루저녀" rel="tag">루저녀</a>,&nbsp;<a href="/tag/미수다" rel="tag">미수다</a>,&nbsp;<a href="/tag/외모지상주의" rel="tag">외모지상주의</a>,&nbsp;<a href="/tag/비겁함" rel="tag">비겁함</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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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Nov 2009 14:38:2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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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다큐 "송환"을 뒤늦게 보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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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class="바탕글">두문불출이라는 말이 있다. 고려가 망한 뒤 조선이 들어섰을 때 옛 왕조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은 신하들이 두문동이라는 곳에 모여 살았고 새로운 조정이 아무리 출사를 청해도 응하지 않고 마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산(産) 한자성어다. 전설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는 이 옹고집들을 어떻게든 두문동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불을 질러 버렸다고 한다. 최소한 불길을 피해서라도 문을 박차고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을 것이다. 혹은 정히 나올 사람들이 아니라면 차라리 태워 없애 버려라 하는 사악한 마음의 소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왕씨들을 끌어 모아 남해바다 고기밥을 만든 그가 아니었던가.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그러나 날름거리는 불길이 서까래를 태우고 지붕을 뚫는데도 고려 유신들은 의연했다. 흥망이 유수하여 만월대도 추초로 돌아가고, 어즈버 태평연월은 그들의 꿈속에만 남아 있었건만, 불길을 피해 새 왕조의 품에 안긴 사람은 없었다.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그들의 임금은 이미 목 없는 귀신이 된 공양왕이었다. 충신은 불사이군이었다. </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실제로 두문동의 최후가 그러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어제를 미루어 오늘을 짐작하고, 오늘에 비추어 과거를 어림하는 것이 역사를 읽는 방법의 하나라고 할 때, 내 상상의 영역에서 두문동의 최후를 실감나게 재연해 줄만한 텍스트 하나를 만났다.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송환'을 실로 뒤늦게 감상하게 된 것이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작품에 대한 평은 내 몫도 아니고, 하고 싶은 분야도 아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챙겨 봐야 할 명작의 반열에 거뜬히 오른다고 여긴다. 작품 자체로도 손색이 없지만 무엇보다 그 다큐멘터리가 오랜 동안 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진귀한 사연이기 때문이다. 자칭 단일민족끼리 수십 대를 걸친 원수보다 더한 적의와 악마성을 발휘하여 서로를 물어뜯었던 전쟁과 그 이후 시대에서 불거진 특이한 사람들, ‘비전향 장기수’를 지구상 어디에서 다시 또 보겠는가.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천동산 박달재”를 구성지게 부를 거 같은 할아버지가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을 강단 있는 몸짓과 함께 열창하는 모습은 실로 놀라왔다. 수십 년 옥살이 후 겨우 세상에 나와서도 모진 세월만 보내다가 피골이 상접한 채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당과 조국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힘겹게 입을 떼는 노인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는 힘겨울 정도로 &nbsp;전율스러운 일이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내가 “아아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에 대한 존경심은 별반 소유한 바 없고, 그 깡마른 할아버지가 충성하는 당에 대한 호감은 언감생심 건드려 본 적도 없다 하더라도 그렇다. 자신의 정치적 선택의 결과로 주어진 임무 때문에 수십 년 세월을 빼앗겨야 했고, 그 선택을 바꾸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음보다 더한 고문과 폭력을 당하고도 저렇게 견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 경탄스러웠다. 온갖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두문동을 지켰고 그래서 온 마을을 뒤덮은 불길에도 아랑곳 않고 늠연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전설을 창조한 옛 고려의 유신들처럼.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물론 뜀박질을 하면 어김없이 피어나던 왕년의 캠퍼스 잔디밭의 최루가스처럼, 나직하지만 야무진 반발감이 피어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북으로 가기 직전 어느 교회의 환송회에 참석했다가 납북자 가족의 방문을 받았을 때, 납북자는 있을 수 없다며 만남조차 거절하는 결벽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 준 신념이라는 이름의 방패가 또 다른 현실과 진실을 짓누르는 장벽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불안함이 돋아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반발은 그들의 신념이란 것이 시대의 지층에 묻혀 피와 살은 사라진 채 뼈만이 돌로 굳어 버린, 일종의 화석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서 온 것이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두문동에 은거했다는 고려의 유신들의 지조는 어디에 내놔도 꿀릴 것이 없지만, 망해 버린 왕조에 대한 의리만큼이나 그 왕조를 지탱해 왔고 새 왕조 아래에서 살아가야 할 백성들에 대한 외면일 수도 있었다. 충신은 불사이군이라는 말은 아름다우나 무책임할 수도 있었다. 신하는 임금을 섬기지만 임금은 백성 위에 뜬 배라고 할진대, 이미 백성의 바다 위에서 뒤집혀 가라앉은 배를 조상하는 것은 정성의 낭비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길을 잃은 지조의 빛깔은 아집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송환” 속의 장기수들과 두문동 고려 유신들이 두 번째로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그러나, 내 마음 속에 이는 반발은 점차 누그러져 갔다. 그들이 외로운 붉은 섬으로 남으면서도 끝내 이 나라의 배춧빛 바다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은 결국 그들의 신념 탓이 아니라 실로 비인간적으로 그들의 신념을 꺾고 짓밟고 절멸시키려 했던 야만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한 노인이 말한다. “이렇게 고문을 해서 사람 머리를 돌린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이게.” 김동원 감독은 장기수들이 신념을 지켜 올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었던 것이 “전향공작 그 자체가 가지는 폭력성”이었다고 했다. 이념 또한 인간 이성의 한 부분일진대 폭력과 공포와 모욕으로 나를 굴복시키겠다는 야만에 거세게 저항할 수 밖에 없었고, 저항 속에서 신념은 더욱 완강해졌다는 것이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어떤 토론 프로그램에서 한 양복 입은 신사는 이렇게 단언한다. “비전향 장기수는 잘못된 말이다. 미전향 장기수라고 써야 한다.”고. 미망인이라는 말이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못한 과부라는 희한한 뜻이 있듯이, 비전향이라는 부정적인(?) 말 말고, 언젠가는 전향을 꼭 하게 만들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그 단계에 이르지 사람들이라고 써야 대한민국 표준말이 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일을 더 하고 싶었을까. 그 말을 들으면서 저 노인들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출소한지 10년이 넘어도 한 노인의 촛대뼈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구두 끝 좀 둥글게 만들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아무런 시각도 편견도 개입시키지 않고 볼 때 그 깡다구만으로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감탄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신념의 정체와 의미에 대해 회의하고 때로는 그들이 신념이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에 흰눈도 떠 봤지만 다시금 그들의 주름 앞에서 옷매무시를 다듬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지켜낸 것은 신념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함이었다는 결론 때문이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사람을, 사람의 머리 속에 든 생각과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몽둥이와 구둣발로 바꿀 수 있다는 발상에 저항하는 것은 사회주의도 민족주의도 아니었다. 사회교과서에 나오듯 인간의 존엄성을 기본 원리로 구현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었고, 그들은 사회주의의 전사일지는 모르나 그에 앞서 민주주의의 구현자들이었다. 감옥에서 그들은 그렇게 싸웠고 지거나 이기거나 아니면 죽어갔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비전향 장기수들은 그들의 마음의 고향인 북으로 올라갔지만 그들을 괴롭게 했던 요구들과 폭력들은, 그리고 인간으로서 저항해야 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맞서야 하는 상황들은 결코 전향 공작이 한창이던 70년대의 교도소 담장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고, 한 번만 눈 감으면 일신이 편안한 유혹도 널려 있고, 섣불리 아니오 했다가는 치도곤을 당하고, 재개발해서 벌어들이는 거대한 이익 앞에서 내 권리 좀 찾자고 나대다가는 불에 타 죽거나 “왜 법을 어기지? 이해를 못하겠네.”라고 고개를 젓는 강남 출신 판사에게 강산이 한 번 변할 세월 동안의 교도소행을 선고 받는 세상이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과연 비전향 장기수들처럼 머리를 흔들 수 있을까. 고문과 매질이 사라진 시대라고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부인하기가 쉬울까.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며 가난의 협박과 고립의 형벌을 감수하면서 따져댈 수 있을까. 맞아 죽어가면서도 손도장을 찍을 수 없다며 엄지 손가락을 감추던 사람들의 반의 반만이라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br><br><br></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다큐멘터리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우리들의 야만,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비겁, 우리들의 용기, 그리고 우리들의 현재가 비춰진 과거였다. 행여 못 보신 분들이라면 ‘강추’를 보낸다. 꼭 지켜보시라. 그 거울에 무엇이 비쳐지는가를. </p><!-- //태그목록 //ADDON BY io2tree // Date : 2006.11.03 --><table class="tag_cont" id="tblTagLis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order="0"><tbody><tr><td></td></tr></tbody></table><br/><br/>tag : <a href="/tag/다큐송환" rel="tag">다큐송환</a>,&nbsp;<a href="/tag/비전향장기수" rel="tag">비전향장기수</a>,&nbsp;<a href="/tag/김동원" rel="tag">김동원</a>,&nbsp;<a href="/tag/송환" rel="tag">송환</a>,&nbsp;<a href="/tag/인간의존엄성" rel="tag">인간의존엄성</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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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9 Nov 2009 17:31:1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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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핑계의 무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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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년 내내 나는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의 절묘함에 거듭 감탄해 왔다. 북어와 마누라는 사흘에 한 번씩 두들겨야 한다는 신조(?)로 날이면 날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멍드는 밤을 연출하는 폭력 남편부터 제 자식을 앵벌이 시켜 벌어온 돈 가지고 피시방에서 날을 지새우는 아버지까지, 정상적인 사고의 범위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선보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 나름의 핑계가 없었던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nbsp;&nbsp;<br><br><br>“마누라가 새벽 세 시에 술이 취해서, 외간 남자 차타고 돌아와서는 집 앞에서 빠이빠이~~하는 걸 보면 PD님은 눈 안 뒤집히겠습니까.” 열변을 토하는 폭력 남편의 핑계는 짐짓 그럴싸했다.&nbsp;&nbsp;가슴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편이란 인간이 몇 년째 백수 생활을 하며 술이나 퍼먹는 재주만 길러서 아내가 식당 일을 나가며 근근이 일상을 꾸리고 있으며, 새벽에 외간 남자의 차를 타고 귀가한 진상이란 식당 회식 날, 식당 사장님이 아줌마들 집에 일일이 태워 주었던 것에 대한 트집이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br><br><br>지적장애자를 데리고 소처럼 일을 시키고 월급을 주기는커녕 수급비까지 챙기고 있었던 주인은 왜 월급 한 푼 주지 않고 수급비까지 가로채느냐는 질문에 ‘가족같이 지내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고용인이 아니라 가족이니, 그 수급비도 가족이 함께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nbsp;&nbsp;하지만 일을 부려 온 사람에게 먹여 온 개밥만도 못한 식사와, 썩어가는 냄새 등천하는 숙소 앞에서 그 핑계는 처참하게 낯을 잃었다.&nbsp;&nbsp;&nbsp;&nbsp; <br><br><br>부모를 상대로 폭행을 일삼아 온 패륜아 경우는 조금 더 맹랑하다. 바깥에서는 자기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로 아버지를 꼽던 이 이중생활자는 내가 그러는 걸 당신들이 봤냐며 대들었다. 머리가 천정에 닿도록 뛰며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우리가 확보한 영상을 들이밀었더니 다음 반응은 이랬다.&nbsp;&nbsp;“이건 내가 아니에요.”&nbsp;&nbsp;그리고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내가 이렇게 된 건 부모님 탓이에요”라는 새로운 핑계로 우리를 경악시켰다.&nbsp;&nbsp;또 자신의 행동이 결국 부모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불러들였다는 사실은 깡그리 차치하고서 왜 당신들이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를 고발하겠다고 분연히 일어서서 좌중을 놀라게 했었다.&nbsp;&nbsp;&nbsp;&nbsp;<br><br><br>핑계란 것이 그렇다.&nbsp;&nbsp;핑계를 대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극히 그럴싸하고 누구나 믿어 줄 것 같지만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켜보자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가면에 불과한 것이다.&nbsp;&nbsp;바보스러운 건지 뻔뻔스러운 건지 알 길은 없지만, 투명한 유리 가면을 귀에&nbsp;&nbsp;걸어 그 주근깨투성이 얼굴과 뻐드렁니가 선연히 드러나 보이는데도 ‘영구 없다’를 부르짖는 ‘영구’들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 어설픈 영구 흉내가 폭력 남편 등 ‘상식의 범위에서 벗어난’ 인사들의 전유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 명함을 지닌 분들의 행동 패턴으로 전용될 때, 또 한 번의 아연실색을 경험하게 된다.&nbsp;&nbsp;&nbsp;&nbsp;<br><br><br>연예인 김제동씨가 긴급하게 MC 자리를 내놓아야 한 데 대한 핑계로 '식상함‘이 들먹여졌다.&nbsp;&nbsp;26년 한 프로그램의 MC로 지내왔던 허참씨도 날아가는 판인데 그 정도면 오래 했다는 핑계도 덧붙여졌다.&nbsp;&nbsp;그럴싸하다. 하지만 이번 국정 감사 때 안형환 의원이 “정치적 좌우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을 제작진이 감당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라고 질문한 데 대해 고개를 끄덕여 주심으로서 그만 그 뻐드렁니가 드러나고 말았다.&nbsp;&nbsp;자신의 잘못과 처지는 쏙 뺀 체 새벽 3시와 외간 남자 등 몇 개의 단어만으로 두들겨 맞을 죄를 구성했던 남편의 팔뚝질처럼.<br><br><br>‘백분 토론’ 손석희씨의 하차에 대한 핑계는 ‘고비용’이었다.&nbsp;&nbsp;7년여 동안 무리와 물의 없이 토론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으며 언론인의 롤 모델로 즐겨 선정되던 MC가 그나마 2년 간 동결되었던 MC료 때문에 자리를 내놓아야 할 만큼 해당 방송사의 경영 사정이 어려워 진 것일까.<br><br><br>어떤 분은 방송에다 대고 “출연료 좀 깎지 그래요.”라고 충고(?)까지 하시던데 MC료 때문에 그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핑계’ 말고 조금 더 그럴 듯한 사연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nbsp;&nbsp;적어도, 가족이니까 월급은 물론 수급비도 같이 써야 된다고 우기면서 개밥에 쓰레기집을 제공했던 촌로들보다는 세련된 핑계를 제시하는 것이 서로의 체면에 좋지 않았을까.&nbsp;&nbsp; <br><br><br>법질서를 수호하느라 험한 일 궂은 일 가리지 않아서인지는 모르나 경찰의·총수께서 시전하시는 핑계의 내공도 만만치 않았다.&nbsp;&nbsp;시위 진압을 지휘하면서 “인도에 있는 것들까지 다 소탕하라”는 명령을 서슴없이 내리고,&nbsp;&nbsp;그들은 ‘잔당’으로 규정하는 감동적인 용기의 발산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록 앞에서 경찰청장님의 1차적인 대응은 “내 목소리가 아니다”였다고 한다.&nbsp;&nbsp;<br><br><br>오호라 경찰청에도 가게무샤가 있었던가.&nbsp;&nbsp;그래서 위험한 시위 현장에는 경찰청장님을 대신하여 출동하고 무전기에 악 쓰는 누군가가 존재한단 말인가. 설사 그래도 그렇지.&nbsp;&nbsp;대한민국 12만 경찰의 총수께서 어찌 변두리 동네 골방에서 부모 속 뜯어먹고 사는 패륜아와 동일한 수준의 핑계를 끌어대실 수 있단 말인가.&nbsp;&nbsp;점입가경의 핑계 릴레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최종 주자이자 화룡점정의 점박이는 자전가로 출퇴근하시기로 유명한 건각 유인촌 장관님이다.&nbsp;&nbsp;<br><br><br>국경없는 기자회가 대한민국의 언론의 자유를 가나보다 못한 69위로 낙제점을 매겼을 때 왕년에 그보다 훨씬 높은 순위에도 언론 자유가 숨넘어간다고 소동을 벌였던 조중동은 무안해서인지 뻔뻔스러워서인지 고요히 침묵을 지킨 반면 장관님께선 “국경없는 기자회에 항의하겠다.”고 기염을 토하신 것이다.&nbsp;&nbsp;1인 시위를 벌이는 학부모에게 “세뇌되셨네,”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교양과 “찍지마 XX"을 서슴없이 내지르던 결기가 뭉쳤으니 국경없는 기자회여 삼가 두려워할지라.&nbsp;&nbsp; 엄마 두들겨 패고 살던 패륜아가 나를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던 때의 그 황당함에는 갖다 댈 것도 아닌 저 분기탱천을 뉘라서 감당할 수 있으랴.&nbsp;&nbsp;<br><br><br>“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닌” 시절부터 “탁 치니 억”하고 사람이 죽었다는 해외토픽을 거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해서” 부동산을 사들였다는 연애담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말 같지도 않은’ 핑계의 홍수 속에 살아왔다.&nbsp;&nbsp;거기에 ‘식상하고 고비용’이라는 핑계 이하의 핑계로 프로그램을 훌륭히 이끌어온 방송인들의 자리가 하루아침에 날아가는 광경을 보태게 되었다.<br><br>그리고 경찰청장은 경찰 조직의 녹취록 속 본인의 육성을 이건 내가 아니라고 부르짖었고, 정권 바뀐 지 2년 만에 스물 두 계단이나 굴러 떨어진 언론 자유 순위에 대해서는 핑계조차 댈 것도 없이 “항의하겠다.”고 장관이 뻗대는 가관 또한 감상하게 되었다.&nbsp;&nbsp;뭐 대략 이 지점만 와도 “내게 그런 핑계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 네가 만약 나라면 넌 믿을 수 있니?”라고 옛 노래가 절로 흘러나오겠거니와, 지난 목요일 오후 나는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범접하고 싶은 핑계의 절정 고수의 초식에 기함을 하고 말았다. <br><br><br>국회의원들이 대리 투표한 것도 인정되고, 법안 표결 전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은 것도 맞고, 분명히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의사 결정권을 침해당한 것도 분명한데, 그 엉망진창밭을 통과한 법안은 유효하다는 헌법 재판소의 선언이 그것이다.&nbsp;&nbsp; 그럴싸해 보이지만 속이 뻔히 보이는 핑계를 대는 정도의 하수들은 꿇어 엎드릴 것이고, 전혀 그럴 법 하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기를 쓰고 우겨대는 부류들도 경배하며 찬양할 터이며, 이건 내가 아니라고 부르짖은 경찰청장님은 “목소리는 내가 맞는데 하여간 나는 아니었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였음을 머리 쥐어 뜯으며 한탄하리라. <br><br><br>&nbsp;&nbsp;자신들의 결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를 동원하기는커녕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어떻게 법적 절차에 어긋나는지를 조목조목 밝혀 주신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nbsp;&nbsp;법안은 유효하다고 결론 내린, 실로 거룩하기까지 한 ‘헌법 재판’ 앞에서 나는 넋과 기운과 할 말을 트리플로 잃는다.&nbsp;&nbsp;차라리 “야당 의원들이 투표방해를 했으니” 원인 무효라든가, 하다못해 “대리투표를 한 자의 지문을 모니터에서 찾을 길이 없다”라든가, 정히 안되면 모든 걸 다 거부하고 “이건 헌재가 할 일이 아니라”고 파업을 해 버리는 것이 나았으리라.<br><br><br>&nbsp;&nbsp;어떻게 법을 밥벌이삼아 평생을 지내 왔고, 그 중에서도 관록과 능력을 인정받아 헌법 재판관으로 뽑힌 이들의 입에서 “과정은 불법이지만 결과는 유효하다”는 말 아닌 말이 엄숙하게 흘러나올 수 있단 말인가.&nbsp;&nbsp;핑계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이들의 핑계를 받아 줄 무덤은 과연 있을까.&nbsp;&nbsp; <br>&nbsp;&nbsp;&nbsp;&nbsp;<br><!--"<--><center><br></center><br/><br/>tag : <a href="/tag/헌재" rel="tag">헌재</a>,&nbsp;<a href="/tag/핑계" rel="tag">핑계</a>,&nbsp;<a href="/tag/." rel="tag">.</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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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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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2 Nov 2009 09:12:0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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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주눅들지 말라 최선을 다하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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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1983년. 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네 어쩌네 하는 영어 교과서 ‘아티클’을 보면서 영어 단어 miracle을 암기하던 중학생이었다. 잘 살아 보세의 물결을 따라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혀서 ‘중진국’을 넘어선 선진국 국민은 이래야 한다고 ‘선진 국민의 기본 자세’를 암기하여 교장 선생님을 흡족케 하던 시절이었다. 동시에 한국 축구팀이 세계 수준의 대회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올린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길 바라렴” 하는 악담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나날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티브이 앞으로 집결했다가 역시나 하며 자리를 박차기를 반복하고 있던 세월이었다. 세계의 벽이 높은지 낮은지 댈 것도 없이 아시아의 벽조차 안나푸르나였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nbsp;그러던 차에 한국 축구팀이 비록 청소년 대표일망정. ,그리고 북한이 출장금지를 당한 어부지리로 얻은 대타 출전이었을망정 오랜 숙적 호주와, 세상에나 개최국 멕시코 (이 경기도 정말 명승부였다)를 메다꽂고 당당 8강에 진출했다는 사실은 실로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북한의 월드컵 8강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가마모도가 이끈 일본의 올림픽 동메달이 얼마나 배 아팠던가. 8강전의 상대는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였다. 우루과이가 어디라고 우리가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존재였던가, 7년 뒤 월드컵에서 우루과이 뿐 아니라 세계적인 스타로 이름 드높을 루벤 소사도 바로 그 팀에서 뛰고 있었다.&nbsp;<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22/96/a0106196_4adfdffb1ab15.jpg" width="400" height="27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22/96/a0106196_4adfdffb1ab15.jpg');" /></div><br><br>&nbsp; 월드컵 첫 우승국에 빛나고, 자타공인의 축구의 나라 브라질이 우승컵 한 번 쥐어 보겠다고 자국에서 개최했던 195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보기 좋게 역전승을 거두어, 마라카나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20만 관중을 통곡하게 만들었던 ‘브라질의 호적수’ 우루과이 대 아시아의 자칭 호랑이 한국&nbsp;<br><br><br>&nbsp;<br>이 운명의 경기가 벌어진 것은 기독교인들이 주일이라 부르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우리 아들까지로 치면 5대째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는 집안이고, 나름 주일 성수를 하고 있었던지라 나는 대망의 8강전을 놓치게 될까 다소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아침 먹다가 오늘 교회는 가는 거지요? 라고 조심스럽게 여쭈었을 때 아버지의 대답은 실로 명료하고 핵심을 관통하는 한 마디였다. “오늘 축구하는 날이잖아.” 그럼요 야구하는 날은 아니죠.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nbsp;후일 로봇 축구라는 비아냥을 듣긴 했지만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청소년 대표팀의 패스웍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뻥 축구와 어거지 골에 익숙해 있던 내 눈에 이건 기존의 한국팀이 아니라 어디 실미도 쯤에서 특수훈련을 받고 나온 특공대로 보였다. 전반전이 얼마간 흘러가면서 우루과이 선수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고 한국 선수들의 몸에 넘치는 자신감이 화면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그건 수십 년 동안 주눅 든 한국 축구에 질릴 대로 질리면서도 익숙할 대로 익숙했던 우리 아버지한테도 전염됐다. “우루과이 별 거 아니다! <br>밀어라.”　아버지. 아침 먹을 때는 11대 0이라고 하셨나이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nbsp;얼마가 지났을까 우루과이 문전을 위협하던 김종부가 통렬한 슛을 날렸다. 골키퍼가 가장 막기 어렵다는 무릎 아래 골문 모서리로 빨려 들어가던 공을 우루과이 골키퍼가 동물 같은 반사 신경을 발휘하여 펀칭해 냈을 때는 온 동네에 아이고 소리가 드높았지만 잠시 뒤 천둥 같은 함성이 작년의 촛불처럼 일렁였다. 멋진 다이빙 펀칭의 주인공이 우루과이 골키퍼가 아니라 수비수였던 것이다. 페널티킥이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nbsp;브라질도 한 수 접어 준다는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에게 선제골을 먹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언감생심 어찌 해 볼까 마음을 졸이는 아가씨로부터 “오늘 시간 되세요?”라고 은근한 데이트 신청을 받은 기분이랄까, 온 나라가 조용하지 않았다. 반 골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툭 차 넣기만 하면 나머지 반 골이 완성된다.<br>&nbsp;<br><br>&nbsp;키커는 멕시코 전에서 환상적인 터닝슛을 성공시켰던 주장 노인우. 그런데 슬프게도 공은 우루과이의 골대를 정통으로 맞추고 튀어나왔다. 망연자실...... 아이고오오오 소리도 차마 나오지 못했다. 때 빼고 광 내고 현금지급기에서 두둑히 빼서 데이트 장소에 나갔더니 “꼭 인사 시키고 싶었어요. 제 애인이에요.”라고 화사하게 웃는 아가씨를 마주하는 심경이랄까.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어허허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하면서 속 편한 체 해야 할 밖에. 아나운서도 그랬다.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빨리 잊어야 합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nbsp;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했던 안정환은 “미친 듯이” 뛰었다고 술회한 바 있는데 83년의 노인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페널티킥을 못 넣은 그는 짖궂은 카메라에 계속 잡혔고 그때마다 푸르륵거리는 황소처럼 우루과이 선수들에게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그가 빚을 갚을 때가 왔다.<br>&nbsp;<br><br>&nbsp;후반전이 시작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격적으로 나오던 우루과이 선수들 사이로 노인우가 우루과이 선수의 가랑이 사이를 뚫고 깊숙한 패스를 찔러 넣었고 그것이 신연호 선수에게 노마크 찬스로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신연호가 마침내 골을 넣었다. 요즘은 멋있게 “골!!!!~”을 외치지만 그때는 아나운서도 즐겨 “꼬링”이라고 발음했었다. 꼬링의 절규가 태평양을 건너올 듯 아나운서는 꼬링을 외쳤다. 이춘제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그분은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br><b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22/96/a0106196_4adfe024c5219.jpg" width="461" height="38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22/96/a0106196_4adfe024c5219.jpg');" /></div></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이 신문의 사진 설명은 잘못이다. 이&nbsp;상황은 분명히 첫골 상황이다.&nbsp;<br><br><br>&nbsp;<br>&nbsp;<br>&nbsp;하지만 우루과이가 그렇게 쉽게 주저앉을 리는 없었다. 오히려 한 골을 먹은 후 우루과이는 더욱 공격적으로 나왔고 한국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 주었다. 남미 특유의 개인기는 눈에 띄게 둔해진 한국의 스피드를 눌렀고 공격의 칼끝은 한국팀의 심장을 여러 번 스쳤다. 한 번 한국 골문이 뚫렸지만 다행히 반칙이 선언되어서 가슴을 쓸어 내렸는데 가슴에서 손이 떨어지기도 전에 결국 한 골을 먹고 말았다. <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nbsp;1대1 이었다. 우루과이의 맹공은 계속되었고 골키퍼 이문영은 무지하게 바빠졌다. 한 번은 문전쇄도하는 우루과이 선수와 몸싸움 끝에 공을 잡았다. 어어 소리가 터져나올만큼 심하게 부딪친 터라 부상을 염려했는데 나동그라졌던 이문영은 벌떡 일어나 늠름하게 공을 골 에리어에 꽂았다.&nbsp; 다행이다 싶은 찰나 이문영은 고꾸라지듯 그라운드에 다시 누워 버리는 게 아닌가.&nbsp;&nbsp; 우리가 리드하고 있었다면 시간 끌기라고 경고를 받을 만한 상황이었다.&nbsp;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nbsp; 이문영이 처음 넘어진 곳은 골라인 안쪽이었고 극심한 통증이 엄습한 상황에서도 이문영은 자신이 골 라인 안쪽에 있다는 것을 알고 화들짝 놀라 일어났고 공을 바깥에 내놓은 다음에야 두번째로 길게 누워 버린 것이다.&nbsp;&nbsp; 그는 팀내에서 몇 안되는 고등학생이었다.&nbsp;&nbsp;<br><br><br>&nbsp;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졌다.&nbsp; 일진일퇴의 공방전.&nbsp; 실로 투명한 경기였다.&nbsp;&nbsp; 투명함의 의미는 이렇다.&nbsp; 구만 팔천리 밖에서 벌어지는 경기이며, 위성을 통해 14인치 티브이로 전달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뼈와 뼈 부딪는 소리, 이따금 내지르는 독려의 고함까지도 유채화처럼 진하고 두텁게 펼쳐졌다.&nbsp;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고 보이지 않는 구석도 볼 수 있었던&nbsp; 경기였다.&nbsp; <br><br><br>우루과이가 개인돌파를 시도하면 한국은 패스웍으로 우루과이 수비를 위협했다.&nbsp;&nbsp; 연장전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 한국 축구사 사상 최대의 비운의 스트라이커 김종부가 골 라인을 치고 들어가다가 크로스를 올렸고 이것이 문전을 쇄도하던 신연호의 발에 맞고 우루과이 골키퍼가 처절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데굴데굴 우루과이 골 네트의 품에 안겼다.&nbsp; 이날의 결승골이었다.&nbsp;&nbsp; 지옥같은 공방전 속에 들어간 골에 환호성이 벼락같이 터졌지만 아주 잠깐 불안한 의아함이 찾아들었다.&nbsp;<br><br><br>&nbsp;공을 넣은 신연호는 좋아 날뛰는데 다른 선수들은 어슬렁어슬렁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nbsp; 뭐야 뭐야 오프사이드인가?&nbsp; 아니었다.&nbsp; 오프사이드가 될 수도 없는 상황이란 건 중딩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럼 신연호가 왕따인가?&nbsp;&nbsp; 몇 초 뒤 제풀에 경기장을 뛰어다니던 신연호에게 선수들이 다가서긴 했지만 결승골을 넣은 스트라이커에 대한 대접이 영 아니었다.&nbsp; 왜 저러지?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아버지의 분석이 뒤따랐다.&nbsp; <br><br>&nbsp;"지친 거야.&nbsp; 골 넣었다고 뛰어갈 기운조차 아까운 거야.&nbsp;"&nbsp;&nbsp;<br><br><b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22/96/a0106196_4adfe05c090bb.jpg" width="253" height="16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22/96/a0106196_4adfe05c090bb.jpg');" /></div><br>&nbsp;골 하나를 보고 뛰었던 선수들이었지만 막상 골이 났을 때 그를 맘놓고 기뻐할 수도 없을만큼&nbsp;힘겨운 승부였다.&nbsp;&nbsp;&nbsp;골 세레모니하겠다고 날뛰는 힘마저도&nbsp;아까왔을까.&nbsp; 내 큰형 뻘인 선수들이었건만 나는 그들이 대견스러웠다.&nbsp;&nbsp;그리고 존경스러웠다.&nbsp;&nbsp;어떤 목표를 향해서 매진하다가&nbsp;목표의 달성을 보고도 기뻐할 힘조차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만한 아름다움이 어디 있겠는가.&nbsp;&nbsp;기뻐 날뛰며 신연호를 덮치지는 않았지만 그 뒤로도 선수들은 죽을둥살둥 그라운드를 뛰어다녔다.&nbsp;&nbsp; 우루과이의 회심의 슛이&nbsp;한국편으로 돌아선 골대의 여신의 장난에 말려 골대가 흔들리도록 박치기한 뒤 튀어나왔을 때 나는 한국의&nbsp;믿어지지 않는 승리를 확신했다.&nbsp;&nbsp;이길 수 있었다.&nbsp; 그리고&nbsp;곧, 그들은 이겼다.&nbsp;&nbsp;<br><br><br>&nbsp;좀 많이 지나긴 했지만 83년의 명승부를 떠올린 것은 이번 U 20&nbsp;청소년축구 8강전을 보면서였다.&nbsp; 술을 진탕 퍼먹으면서 본 경기라 경기 내용은 기억에 나지 않으나 그 아쉬운 패전은 83년의 명승부를 또렷이 퍼 올렸던 것이다.&nbsp;&nbsp;&nbsp;이번 U 20팀이&nbsp;"골짜기 세대"라 불리우며 스포트라이트는 커녕 플래쉬 조명에 만족해야 했던 것처럼,&nbsp;83년의 대표팀&nbsp;또한 대타 출전에 별 기대주도 없었던 밋밋한 팀이었다.&nbsp;<br><br><br>&nbsp; 세상 일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nbsp;&nbsp;항상 실마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풀린다.&nbsp;&nbsp;절망적인 순간에 희망의 쏘시개가&nbsp;던져지고, 가장&nbsp;암담한 날에&nbsp;빛은&nbsp;그&nbsp;존재감을 과시하며 구름 사이로 길을 낸다.&nbsp;&nbsp;이제는 기억조차 아득해진 촛불도 그랬다.&nbsp; 중학생 몇몇이서 촛불을 들고 청계천 앞으로 나오던 날의 소박함이 스스로도 놀랄만큼 거대한 장으로 탈바꿈할 때,&nbsp;촛불은&nbsp;이미 하나의 역사가 됐다.&nbsp;<br><br><br>&nbsp;&nbsp;물론 스러져 버린 촛불처럼 4강&nbsp;신화는 이어지지 않았고,&nbsp;&nbsp;청소년 팀의 스트라이커 김종부는 스카우트 싸움에 휘말려 힘도&nbsp;써 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신연호도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은퇴했으며,&nbsp;주장 노인우는&nbsp;그 뒤에 아예 기억도 못할만큼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4강의 신화는 역사이고,&nbsp;U 20 대회의&nbsp;본받아야 할 선례로 남아 있듯 말이다.&nbsp;&nbsp;아득하지만 지워지지 않는&nbsp; 것. 불현듯 사람들의 기억을 깨우고 혈관 속에 파문을 일으키는 존재.&nbsp; 어쩌면 역사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nbsp;&nbsp; 지금도 촛불&nbsp;들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싸우고 있다.&nbsp; 그들에게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nbsp; <br><br><br><br>&nbsp;어떠한 강적을 만나든,&nbsp;무슨 금성철벽에 부딪치든&nbsp;수이 주눅들지 않고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나는 우루과이 전에 출격했던 "대한 건아"들로부터 배웠었다.&nbsp;&nbsp; 도대체 왜 그들도 나이를 먹으면 백패스나 질질 하고 문전에서 헛발질하는 유전병을 이식받는지 알길이 없었지만, 적어도 그날 그 대회에서만큼은&nbsp;그들은 한치도 물러섬없이 남미의 강호와 맞섰고, 몸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도 골 라인 안에 들어온 공을 바깥에 내놓고서야&nbsp;정신을 잃었고, 목표가 이뤄져도 기뻐할 수 없을만큼 몸과&nbsp;마음을 쥐어짜서 팔다리를 놀렸다.&nbsp;&nbsp;그리고 그들은&nbsp;30년 가까운 지금도 툭하면 불려나와지는 역사를 창조했다.&nbsp;&nbsp;<br><br><br>&nbsp;강적은 수시로 오고 그들의 중압감은 숨도 못 쉴만큼&nbsp;클 수도 있다.&nbsp;&nbsp;&nbsp;"군대스리가 병장 축구단"만큼 일병으로선 어찌해 볼 수 없는 강팀도 상대해야 하고, 힘 좋고 기술 좋고, 돈 많고, 경험까지 많은&nbsp; 뭐 하나 아쉬운 거 없는 주제에 쪼잔하고 치사하고&nbsp;반칙 서슴지 않고,&nbsp;심판까지 매수하는&nbsp;더러운 강적도 만날 수 있다.&nbsp;&nbsp;&nbsp;경기의 승패를 떠나서&nbsp;그 팀을 위하여, 그 팀 성원들을&nbsp;위하여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은 주눅들지 않는 것이다.&nbsp;&nbsp; "너 우루과이? 나 한국" 같은&nbsp;배짱으로 뛰는 듯했던 83년의 한국 청소년 국가대표팀처럼 말이다.&nbsp; 니가 개인기 부리면 나도 개인기 부릴 줄&nbsp;안다며&nbsp;우루과이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킬 패스를 날렸던 노인우처럼&nbsp;말이다.&nbsp;<br><br><br>&nbsp;주눅들지 말고 최선을 다해라.&nbsp;&nbsp; 골 세레모니할 기력이 없을 만큼 뛴 뒤에야 최선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nbsp; &nbsp;쉽사리 지치지 마라.&nbsp; 가장 멍청한 짓은 뛰지도 않고 지치는 것이다.&nbsp; 83년의 멕시코에서 벌어진 경기는 26년 뒤 오늘 나에게 그렇게 말해 주고 있다.&nbsp;&nbsp;&nbsp;<br><br><br>&nbsp;<a href="http://sports.kbs.co.kr/bbs/exec/ps00404.php?bid=191&amp;id=19" target="_blank">http://sports.kbs.co.kr/bbs/exec/ps00404.php?bid=191&amp;id=19</a><br><br>&nbsp;클릭하시면 이날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실 수 있다.&nbsp;<br><br>&nbsp;<br>&nbsp;<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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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내 인생의 명승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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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2 Oct 2009 04:33:21 GMT</pubDate>
		<dc:creator>산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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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분노 후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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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한겨레 21 노 땡큐 <br><br><br><div id="memo"><table style="TABLE-LAYOUT: fixed"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order="0"><colgroup><col width="100%"></col><tbody><tr><td valign="top"><span style="FONT-SIZE: 100%">폭력 추방을 모토로 삼는 &lt;긴급출동 SOS 24&gt;의 첫 회 아이템을 장식한 사람은 엄마를 때리는 패륜아였다. 엄마에게 시옷자 지읒자 욕설을 퍼붓고 주먹질 발길질도 사양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격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br><br>징역 1년 가량을 선고받았었는데, 사람들은 그 형량이 터무니없다고 분통을 터뜨렸고, 후일담 방송에서 아들이 엄마에게 보낸 사죄 편지 가운데 출옥 후 장사 밑천을 대 달라고 요구한 구절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그런 작자가 반성을 했답시고 방송에 소개할 수 있느냐는 항의가 게시판을 뒤덮었다.&nbsp;&nbsp;&nbsp;&nbsp; <br><br><br>나는 그 의로운 분노를 수긍한다.&nbsp;&nbsp;병역 이행 기간보다도 짧은 징역 1년으로 어미를 쥐 잡듯이 잡은 죄악이 어찌 사해질 수 있을 것이며, 그 죄에 값할 수 있겠는가.&nbsp;&nbsp;그런데 4년이 흐른 요즘, 우리 팀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두들겨 패는” 케이스를 굳이 다루려 하지 않는다.&nbsp;&nbsp;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nbsp;&nbsp;그리고 더 진솔해지자면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쇼킹’하지 않기 때문이다. <br><br><br>직업상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을 무시로 만난다.&nbsp;&nbsp;방송을 통해 소개하지 않은 케이스를 합하면 열 손가락을 서너 번 구부려야 셈할 수 있을 정도다. 그들은 대개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찍혀서 쫓겨난 이들이기 일쑤였고, 그 성장 환경에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의 시커먼 그늘이 드리워지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다. 덩치는 커져 가지만 정신세계는 황폐해져 갈 뿐인 아이들의 위안은 골방 속 컴퓨터였고, 가장 만만한 상대는 부모였다. <br><br><br>그 아이들도 언젠가는 그나마 그들을 품고 있는 부모들의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스스로도 사회를 외면한 채, 집 안에서 사람 죽이고 피가 튀기는 폭력적 게임에 밤을 지새우는 아이들이, 부모를 두들겨 패기도 하고, 심지어 장바닥에서 사온 병아리나 강아지의 목숨을 심심파적으로 거두던 아이들이 사회에 나올 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nbsp;&nbsp;사회적, 제도적인 도움과 거리가 멀었던 그들의 과거는 돌아볼 필요 없이, 그들이 저지른 행동을 준엄하게 꾸짖고 엄벌에 처하면 끝나는 것일까.&nbsp;&nbsp; <br><br><br>‘나영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nbsp;&nbsp;나 자신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무슨 수를 쓰든 사적인 복수를 감행했을 것이다.&nbsp;&nbsp;범인은 그의 행동을 통해 나영이를 한 인간으로, 인격체로,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생명으로 전혀 보지 않았음을 처절하게 증명했다. <br><br>이른바 ‘사이코패스’처럼 그는 어린 아이의 육신과 정신을 장난감처럼 유린했다.&nbsp;&nbsp;그런데 그는 원래부터 범죄의 유전자를 지녔으며, 그런 이들을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한다면 유사한 일이 줄어들 수 있을까?&nbsp;&nbsp;사이코패스를 평생 연구해 온 로버트 드 헤어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nbsp;&nbsp;“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없이 경쟁만 강조하는 사회, 이기는 자만이 추앙받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필연적이다.”&nbsp;&nbsp; <br><br><br>분노의 화살을 시위에 재는 것은 좋다.&nbsp;&nbsp;뻔뻔하고 잔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의 심장에 과녁판을 그려놓고 그곳을 겨냥하는 것까지도 좋다.&nbsp;&nbsp;그런데 과녁이 고슴도치가 된 뒤, 우리들의 화살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nbsp;&nbsp;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nbsp;&nbsp;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진지하고도 실질적인 관심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분노는 급속히 그 영양가가 떨어질 것이다.&nbsp;&nbsp;아무리 의롭고 마땅한 분노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br><br><br>4년 전, 어머니를 사정 돌보지 않고 폭행하던 스물 청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nbsp;&nbsp;그 청년의 행동에 치를 떨던 사람들의 분노는 어디로 갔을까.&nbsp;&nbsp;인두겁을 쓰고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짐승 같은 범죄자들을 대통령 말씀대로 “사회에서 격리”하면 분노의 근원 역시 우리로부터 분리될까. 우리가 할 일이란 우리의 분노를 고스란히 퍼다 부을 수 있는 괴물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뿐일까.&nbsp;&nbsp;&nbsp;&nbsp;<br><!--"<--></span></td></tr></tbody></table></div><center><br><br><br>&nbsp;</center><br/><br/>tag : <a href="/tag/노땡큐" rel="tag">노땡큐</a>,&nbsp;<a href="/tag/분노" rel="tag">분노</a>,&nbsp;<a href="/tag/나영이사건" rel="tag">나영이사건</a>,&nbsp;<a href="/tag/패륜" rel="tag">패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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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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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9 Oct 2009 17:42:4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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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광신에 대한 몇 가지 단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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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별의 별 사람들과 다 만났고 직간접적으로 백만 가지의 상황과 마주했는데 말이죠.&nbsp;&nbsp;그 가운데 정말로 이건 좀 다른 방향으로 편집해서 어디 국제 호러 영화제 같은 데 출품해 봤으면 하는 아이템이 있었어요.&nbsp;&nbsp;직접 그 엽기적인 공포와 대면한 것도 아니고, 동료 PD가 편집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만 보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으니까요. <br><br>어느 작은 교회가 뭔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nbsp;&nbsp;예배를 본 다음 교인들의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다거나 심지어는 피를 철철 흘리며 나오기까지 한다는 겁니다.&nbsp;&nbsp;대관절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nbsp;&nbsp;촬영 테잎에는 그들의 모임 현장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지요. <br><br><br>교인들이 둘러앉아 있는 교회 사무실.&nbsp;&nbsp;그 모임의 주재자는 목사가 아닌 여자 집사였어요.&nbsp;&nbsp;목사와 그 사모는 ‘영적 능력이 탁월한’ 그 집사에게 감화(?)되어 있었고, 다른 신도들도 그 집사를 받들어 모시다 못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고 했지요.&nbsp;&nbsp;한참 무슨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문제의 집사가 벌떡 일어섰어요. <br><br><br>그리고는 손에 뭘 들고는 옆에 있던 여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무시무시하게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nbsp;&nbsp;그런데 맞는 이는 저항의 몸짓은커녕 한 대라도 더 맞아야 한다는 듯 피하지도 않고 그 매를 받아냅니다.&nbsp;&nbsp;매에는 장사 없다고 윽 윽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도 때리는 자와 맞는 자 둘 다 초지일관이더군요. <br><br><br>“도.... 도대체 왜 저러는 거예요?” <br>“사람들한테 악령이 깃들어 있어서 쫓아내는 거랍니다.&nbsp;&nbsp;저러면서 돈도 갖다 바쳐요. ”&nbsp;&nbsp;<br><br><br>&nbsp;&nbsp;악령을 쫓기 전에 사람 먼저 잡을 것 같아 우리가 확보한 영상을 근거로 부랴부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을 때 또 한 번 아연실색할 일이 벌어졌어요.&nbsp;&nbsp;신도들 가운데 누구도 폭력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nbsp;&nbsp;집사님의 행동은 자신들에게서 사탄을 몰아내려고 한 것일 뿐이라며 집사를 일치단결 감싸고 돈 거지요.&nbsp;&nbsp; 고관대작들은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도둑맞아도 잃어버린 것 없다고 잡아뗀다더니 피가 터지도록 두들겨 맞은 사람들이 자기는 은혜를 입은 것뿐이라며 아우성을 치니 경찰이고 제작진이고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어요, <br><br><br>그 와중에 문제의 집사가 카메라 앞에서 신도들 하나 하나에게 매우 정중하고 간절하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어요.&nbsp;&nbsp;“여러분 제가 잘못했습니다.&nbsp;&nbsp;제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br><br><br>‘개전의 정’과 ‘재발 방지의 의지’를 보여 이 자리를 빨리 모면해 보자는 속셈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행동이었지요.&nbsp;&nbsp;그런데 사과를 받던 아줌마 하나가 언성을 높이면서 집사에게 항변을 합니다.&nbsp;&nbsp;“집사님이 뭘 잘못했어요? 집사님이 날 살렸어요.&nbsp;&nbsp;날 살렸잖아요.”&nbsp;&nbsp;집사는 계속 잘못했다고 연거푸 고개를 숙이는데 그에 따라 아줌마의 목소리도 더욱 단단해집니다.&nbsp;&nbsp;<br><br>“집사님이 날 살렸어요! 집사님 사과하지 마세요!”　<br><br><br>　얼굴을 보니 이전 집회에서 막대기로 두들겨 맞아 피가 터졌던 바로 그 여자였어요.&nbsp;&nbsp;푸른 멍 자국 채 가시지 않은 눈을 크게 뜨고선, 안타까워 못 견디겠다는 듯 주먹을 꼬옥 쥐고 집사님은 죄가 없다고 외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동정의 마음이 아닌 공포의 감정이 스멀거리면서 온몸을 뒤덮더군요.&nbsp;&nbsp;대관절 집사의 어떤 영적 능력이 그들을 휘어잡았는지 모르나 집사에 대한 믿음은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었고, 주위에게 전염되고 있었고, 그 공동체에 모인 사람들의 인생길을 송두리째 어긋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nbsp;&nbsp;<br><br><br>집사는 피해자들의 일치된 증언에 따라 풀려났고, 범죄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한 그들을 해산시킬 도리도 없었던 바, 공포의 예배는 암암리에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목사의 사모 안에 파고든 악령(?)을 쫓아내려는 시도 와중에 목사 사모의 목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비극을 맞고 말았습니다.&nbsp;&nbsp;그리고 그 시신을 치우지도 않은 채, 그 남편 목사를 비롯한 신도들은 썩어가는 시체 앞에서 부활을 노래하고 있었지요.&nbsp;&nbsp; <br><br><br><br>이 이야기를 들으며 “미친 사람들!”이라 일갈하지 않을 분은 드물 겁니다.&nbsp;&nbsp;하지만 그 교회에서 집사에게 양순히 두들겨 맞던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어요.&nbsp;&nbsp;정신질환자도 아니었고, 직장 생활도 버젓이 하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nbsp;&nbsp;단지 그들의 믿음이 지나쳤을 뿐이지요. 문제는 이런 류의 광신(狂信)이 비단 종교의 영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nbsp;&nbsp;<br><br><br><br>오랜 동안 북한에 억류되어 있었던 현대 직원 유모씨가 국회에 불려 나와 자신의 북한 행적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서 그 여자와 함께 살고픈 욕심에 “같이 남으로 가자” 정도의 ‘탈북 음모’를 꾸민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분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북한이 얘기하는 바 “반공화국 책동”을 벌인 것이 맞더군요.&nbsp;&nbsp;“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마음”에 100명이 넘는 북한 사람의 교화(?)를 시도했고 그를 추궁하는 북한 관리들에게 “차라리 사형시켜라”고 대들었다고 합니다.&nbsp;&nbsp;<br><br><br>북한과의 상생에 목숨을 건 현대 아산 직원으로서의 삶을 뿌리친 것이야 자신의 신념에 따른 것이니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러나 북한의 견제와 감시를 한몸에 받고 있는 현대 직원으로서,북한 체제를 익히 아는 사람으로서 100명도 넘는 북한인들에게 일종의 ‘남한 천국, 북한 지옥’을 부르짖으며 그들의 ‘교화’를 시도했다는 것은 사람 잡는 교회 안에서 내 안에 든 악령을 축출코자 집사의 매타작을 감사히 받아내던 이들의 ‘용기’와 ‘믿음’을 넘어선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br><br><br>모스크에 들어가서 가스펠 송을 부르는 걸 은혜롭게 여기다가 탈레반의 총구 앞에서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던 이들처럼, 악령을 쫓아내려다 끝내 자기 교회의 사모를 밟아 죽인 이들처럼, 유씨는 스스로의 인생을 뜻하지 않은 고통에 빠뜨렸고, 자신의 고용주를 곤경에 밀어 넣었으며 남북 관계를 파탄 직전까지 몰아갔습니다.&nbsp;&nbsp;성경 타자 연습을 하면서 “차라리 사형시켜라”고 대들었다는 그의 과감함이 “집사님이 나를 살렸다”고 포효하던 충만함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br><br><br>유모씨가 아직 감금 생활을 벗어나기 전, 저는 또 한 명의 불운한 영혼을 뉴스를 통해 접했었습니다.&nbsp;&nbsp;앞길이 십팔만 리 같은 푸르른 청춘이었던 그는 자신이 신봉하는 믿음의 대상을 배신하였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증오했고, 어떻게든 그를 겁박하여 볼 심산으로 사진에 시뻘건 물감을 뿌리고 “배신자는 반드시 대가 치른다”는 경고에다가 도끼 한 자루까지 얹어 소포로 보냈다가 덜미를 잡혔습니다.<br><br><br>&nbsp;&nbsp;철부지 깡패도 코웃음을 칠 협박 소포의 주인공은 “6.15청학연대”라는 단체의 집행 위원장씩이나 되는 분이었고, 그가 사무치게 겁주고 싶어 했던 대상은 황장엽이었습니다.&nbsp;&nbsp;<br>&nbsp;황장엽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청학연대 집행위원장의 정치적 입장의 정당성을 차치하고, 나는 그 믿음이 두려웠습니다.&nbsp;&nbsp; 이글거리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한 늙은이의 사진에 시뻘건 물감을 뿌리고 “배신자의 대가”를 힘주어 쓰고선, 손도끼 하나를 알뜰히 동봉하는 순간의 그는 이미 신념에 투철한 운동가가 아니라, 신념의 포로가 된 광신도였기 때문입니다.<br><br><br>적어도 그 소포를 포장하던 순간 그의 눈은&nbsp;&nbsp;목사 사모의 목을 밟으며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쳤던 이들의 눈과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nbsp;&nbsp;그저 옥중에서는 사람 잡는 교회의 신도들처럼 목 부러진 시체가 부활하리라 우기지 말고,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되짚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nbsp;&nbsp;만약 그가 그러하지 못한다면, 진실로 사람 잡는 교회의 핏발선 사람들과 터럭만큼도 다를 일이 없겠기 때문입니다. <br><br><br><br>대저 광신도란 믿음을 가로막으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적대적이며 모든 이성과 상식을 믿음의 흙 아래 매몰시키는 이들을 지칭합니다. 흙의 두께가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서로 기꺼워하며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nbsp;&nbsp;하지만 그들은 흔히 생각하듯 미친 사람들이 아닙니다.다만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확신에 상식의 잣대와 회의(懷疑)의 수선이 가해지는 것을 거부할 따름입니다.<br><br><br><br>이렇게 말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찔려 오는 것은 과연 나에게는 광신도적인 모습이 없을까 하는 다소 아찔한 반문 때문입니다.&nbsp;&nbsp; 적절한 반성과 합리적인 의문 없이 관성적으로, 그냥 이게 맞는 것 같아서, 그리고 어떤 의견이 나의 정치적 포지션에 부합하고 나의 경제적 이익에 맞아 떨어지므로 불문곡직 수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에 흔쾌히 난 아니야~ 라고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듯 합니다.&nbsp;&nbsp;<br><!--"<--><br/><br/>tag : <a href="/tag/광신" rel="tag">광신</a>,&nbsp;<a href="/tag/사이비종교" rel="tag">사이비종교</a>,&nbsp;<a href="/tag/유모씨" rel="tag">유모씨</a>,&nbsp;<a href="/tag/황장엽" rel="tag">황장엽</a>,&nbsp;<a href="/tag/손도끼" rel="tag">손도끼</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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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3 Oct 2009 17:44:14 GMT</pubDate>
		<dc:creator>산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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