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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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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니 죽을 수 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고하는 사람들을 따르지 말고,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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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Nov 2009 02:54:5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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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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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박웅현&강창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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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C7B92','',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60946"><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yes24/momo/TopCate76/MidCate01/7500183.jpg" width="104" height="15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C7B92','',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60946"><br>(알마, 2009)</div></a><br>1. 인문학이라는 말이 유행하다 보니 광고에 대한 책에도 인문학이라는 말을 붙인 모양이다. 박웅현 CD는 광고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사람으로 네이버의 세상의 모든 지식 캠페인, KTF적인 생각 등 히트작들을 많이 남겼다. 강창래라는 사람이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책을 엮었는데 대필로 쓰지 않고 떳떳하게 인터뷰 형식임을 밝힌 것은 솔직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제목과는 상당히 다르다. <br><br>2. 공동 저자들이 인문학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정의가 나오질 않는다) 중간에 보면 '김용옥의 책을 수십권 읽고' 등이 나오는 걸로 봐서는 제대로된 인문학책을 제대로 공부한 것 같지는 않다. 제대로된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기본적으로 인문학에 대해서 잘 모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nbsp;<br><br>잘 모르기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적극적으로 인문학을 광고에 활용한다고 했으니 잘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된다.&nbsp;또한 잘 모를 뿐 아니라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nbsp;&nbsp;책의 구조를 보면 3장이 창의력에 대한 부분인데&nbsp;인문학을 '창의력'을 기르기 위한 도구로 한정하고 있다. 창의력은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인문학은 텍스트를 제대로 읽고 이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시작이고 끝이다. 김용옥의 책을 읽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의 '원전'을 읽었다고 인문학 공부했다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을 내는 것은 지극히 건방진 일이다. . 더구나 시류에 편승하여 책을 한권이라도 더 팔아먹기 위해서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썼다면 크게 부끄러워해야할 일이다. <br><br>3. 박웅현은 좋은 광고인이다. 광고를 만드는 능력이 출중하다는 말이다. 소위 이미지 광고만 잘 한 것이 아니다. (특히 옛날 네이버 광고를 보면)<br>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것에 관한 책을 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엄하게 인문학 등을 빌어와 자신의 작업을 윤색하지 말고, 그냥 떳떳하게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를 만들 때 어떻게 사람을 제대로 설득 또는 꾀어내어 광고주의 매출을 높여줄 수 있을지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면 한다. <br><br>돈과 명예를 모두 갖기는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br/><br/>tag : <a href="/tag/광고" rel="tag">광고</a>,&nbsp;<a href="/tag/박웅현" rel="tag">박웅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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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밥벌이</category>
		<category>광고</category>
		<category>박웅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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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Nov 2009 02:53:37 GMT</pubDate>
		<dc:creator>여형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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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윌리엄L. 랭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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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016949','',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92489"><img height="154"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libro/book_img/1327/331865_8987787257.jpg" width="10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016949','',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92489"><br>(박상익 옮김, 푸른역사, 2001)</div></a><br>1. 서양사를 특정 인물 또는 사건을 중심으로 상세히 설명하는 방식의 역사 개론서이다. 이런 류의 책들은 사실 개론서와 전문서의 중간정도의 위치에 속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일반적인 서양사 개론 보다는 상당히 자세하고 전문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책의 목차를 봐도&nbsp;쉽게 짐작할 수 있다. <br>1) 호메로스 새로 읽는 법<br>2) 소크라테스, 역사에서 신화로<br>3) 알렉산드로스가 이룩한 두 세계<br>4) 노예 상인 티모테오스의 생애<br>5) 위대한 신앙 해석자 바울<br>6) 야만족, 중세를 열다. <br>7) 불멸의 전설, 샤를마뉴.. 등<br><br>또한 이런 책의 장점은 목차를 보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좋다는 것이다. 나도 고대사에 속하는 부분과 중세의 이단과 에라스무스, 그리고 돈키호테에 대한 부분만 읽었다. <br><br>2.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하는 사항은 이 '책'들이 원래는 씌여진 것이 아니라 낭송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한다. 낭송되었기에 전체를 놓고 보면 중복되는 부분도 나오기 마련이고, 한번에 낭송될 분량에 맞추어 그 분량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에 대해 강조를 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보면 어색할지 몰라도 낭송을 전제로 생각하면 오히려 효율적인 (청중의 주의를 끌 수 있기 때문에) 방식이라고 한다. <br><br>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다루는 2장은 그의 죽음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고발이 어떻게 실제적인 죽음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nbsp;재밌는 것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고 고발당한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아테네 시민들에게는 요즘말로 하면 소위&nbsp;'좌빨'로 비쳐졌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없었던 전문 교육자로서 소피스트들은 기존의 질서나 가치관에 대해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소크라테스도 이러한 소피스트로 오해받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중 시칠리아 원정 직전에 발생한 신상 모독 행위를 통해 미뤄볼때 젊은이들의 타락은 '추상적인 원리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의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위협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소크라테스가 지목되었고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배심제에 의해 처형된 것이다. <br><br>바울에 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종종 예수교가 아닌 바울교라고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바울은 기독교의 세계 전파에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바울이 전도하던 당시는 예수를 직접 본 사도들 집단과 바울을 따르는 집단의 공공연한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전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한정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반면, 후자는 '인류의 죄를 대속한 예수'를 전파하고자 하였다. 이런 상황은 바울과 사도들의 공공연한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고린도후서 11장에 다음의 구절이 나온다. <br><br><span style="COLOR: #990000">나는 저 가장 위대하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에는 능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br></span><br>이런 대립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끝나게 되었다. 바울은 55년 체포되어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바울이 체포됨에 따라 바울을 따르는 무리가 세력싸움에서 패배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기 70년 유대의 반란을 진압한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으며 성전은 파괴되었고 '예루살렘의 그리스도 교회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유대적 그리스도교의 멸망이라고 하는 상징적 사건'이 '위대한 신앙해석자로서의 바울의 위신을 복원시켜 주었고' 그 이후 바울이 남긴 서신이 신약성서 최초의 구성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인 나사렛 예수가 인류의 구원자'라고 하는 기본 신조는 바울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온것이라고 한다. <br><br>그 외에도 에라스무스와 돈키호테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br/><br/>tag : <a href="/tag/서양사" rel="tag">서양사</a>,&nbsp;<a href="/tag/역사" rel="tag">역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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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category>
		<category>서양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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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2 Nov 2009 23:19:38 GMT</pubDate>
		<dc:creator>여형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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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우석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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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CE425','',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87717"><img height="154"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yes24/momo/TopCate76/MidCate09/7585187.jpg" width="10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CE425','',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87717"><br>(레디앙, 2009)</div></a>1. 이 책의 저자인 우석훈 박사를 인터뷰한 글이 실린 <a href="http://blog.naver.com/redianbook/30071660695" target="_blank">레디당 블로그</a>에는 20대에 보내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쫄지마, 상상해, 믿고 나누어봐'로 요약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속에서 학교와 학원, 그리고 취업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에 내몰려 '88만원 세대'라는 달갑지 않은 세대명을 부여받은 20대에게 우석훈 박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고등학교에서의 수능/내신 경쟁, 대학에서의 알바/스펙경쟁에 매몰된 그들에게 지금 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해서 승리자가 되라는 소위 '자기계발서'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작은 실패에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답답함을 돌파할 새로운 상상을 하며 서로를 믿고 연대하라는 메시지이다. 그리고 이를 연세대에서의 강의 참가자들이 직접 작성한 '20대 관찰기'와 함께 그 특유의 물 흐르는듯한 문체로 풀어보이고 있다. <br><br>2. 지금 20대들이 개인적으로 고립되어 아무것도 돌보지 않고 무한경쟁에만 매몰된 것은 앞서 말한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려니와 그들 스스로 갖고 있는 '공포'가 주된 요인이라고 말한다. 이 점은 나도 같이 생각했던 점이었다. 그 '공포'는 사실 20대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위치에 들어가지 못한 30대, 40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뉴스에서 서울 지역의 출생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진지 몇년 되었다는 기사를 본적 있는데 (둘이 결혼하여 한명도 안 낳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 30대의 출산 기피도 '공포'에서 기원하는 점이 크다. 이 무시무시한 집값과 사교육비라는 두 마리의 괴물 앞에서 선뜻 자기 자식을 세상에 내어놓을 용기를 갖기가, 특히 나같이 겁 많은 사람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br><br>3. 하지만 문제제기가 의미를 갖는 만큼 그 해결방안도 의미를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인 모양이다. 저자의 말대로 20대들이 스스로 연대하여 '당사자 운동'을 벌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20대 운동의 시급성을 생각해 볼 때 1만명 정도는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모일 것 같긴 하다'고 주장하며 이들이 월 1만원의 회비를 내어 100명 정도의 전업 활동가를 배출해야 한다는 부분이 나온다. 한학기에 만원정도 했던 학생회비도 안 내고, 일년에 크리스마스 구세군 상자에 몇천원 내는 것으로 기부를 마무리하는 우리 문화에서 이런 자발적인 조직 + 회비납부가 실현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br><br>또한 미래의 모습으로 상상하는 20대의 4가지 권리, 노동권, 주거권, 보건권, 교육권을 설명하는 부분은 더욱 이상적이다. 장기고용과 사회 보장 체제의 결합을 통한 노동권의 확립, 사회적 주거 개념의 도입, 20대에 대한 무료 의료 지원 등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이걸 어떻게 실현해 나가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br><br>구체적인 것까지 말하기에는 책의 지면이 모자랄 수도 있다. 혹은 문제제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십여권의 책을 내고, 사회적인 명성도 얻는 '인기 저자'에 들어가는 우석훈 박사에게 이제 더 구체적인 해결방안과 더 체계적이고 꼼꼼한 분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욕심일까?<br><br>4. 이런걸 보면 우석훈 박사는 경제학자이지만 실제 주장하는 바는 인문학자를 연상시킨다.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고 올바른 방향에 대해서 제시하지만 그 실현과정이,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88만원 세대의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를 보고 감정적으로 동의하지만 어떤 실천을 해야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문학자는 역사적인 관점과 철학적인 분석 그리고 문학적인 상상력과 표현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를 갖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과는 좀 다른 '스펙'을 갖고 있는 분이니 자신의 주 전공을 좀 더 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인 셈이다. (어쩌면 경제학자가 인문학자보다 더 구체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br><br>우석훈 박사의 책은 여덟권 정도 읽은 것 같은데 '88만원 세대'에서 '세대론'의 제기,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서의 조직적 관점에서의 한국사회 진단,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의 '유사 제국주의로서의 한국'과 같은 신선한 문제제기가 아쉽게도 이 책에는 없다. '혁명'이라는 단어를 일종의 메타포로만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혁명이라는 말에서나마 숨통을 틔우라고 말해 주고'싶을 따름이다. <br><br>주제넘게 우석훈 박사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엄밀한 경제적 분석과 상상력을 통해 좀 더 밀도 있는 책을 써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 오후에 도착해서 회사에서 짬짬히 읽고 집에서 마무리를 지었을 정도로 '너무 쉽게' 읽힌다. <br>일부러 쉽게 썼다는 저자 인터뷰를 보긴 했지만 최근에 나온 책들이 너무 쉽게 읽히는 것은 혹시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 가벼운 혹은 동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br><br>5. 우리 시대의 논객들이 몇 명 있다. 책이 나오면 한번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존재는 사실 지금의 빡빡한 현실을 고려하면 있어 주고 책을 내 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고맙긴 하다. 지금 우리에게 진중권, 우석훈, 홍기빈,&nbsp;김규항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 세상이 얼마나 더 빡빡했을까? 하지만 이 사람들이 낸 많은 책들이 10년 후에도 읽힐지 모르겠다. 물론 세상이 빡빡하고 너무 급하게 돌아가니 천천히 두꺼운 책이나 쓰고 있을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은 또 어찌보면 그렇게 쉽게 망할거 같지도 않다. 사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통치도 버텨냈고 전쟁도 치러내지 않았나. <br/><br/>tag : <a href="/tag/우석훈" rel="tag">우석훈</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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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2 Oct 2009 15:20:2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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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아테네인, 스파르타인, 윤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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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176BD3','',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534931"><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libro/book_img/6657/0100005983459_03.jpg" width="104" height="15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176BD3','',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534931"><br>(살림, 2005)<br></div></a>1. 살림지식총서 173번으로 나온 100쪽이 안되는 작은 문고판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각 분야에 걸쳐서 비교/요약한 책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해 관심있는 분이라면 사전 학습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듯 하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br>1) 고대 문명의 두 중심지<br>2) 수호신과 종교<br>3) 축제<br>4) 운동경기<br>5) 사회구성과 교육<br>6) 정치와 군사<br>7)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인물들<br><br>2. 페르시아와의 전쟁 이전까지 고대 그리스 세계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것은 스파르타라고 한다. 강력한 군사력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페르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이 체결되는데 이 동맹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아테네는 점차 동맹 국가들에게 과중한 공납금을 거두게 되고 이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게 된다. 이러한 아테네의 제국화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스파르타는 기원전 431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재밌는 것은 전쟁의 발단이 이 두 국가 사이의 직접적인 분쟁이 아니라 동맹 가입국간의 분쟁으로 말미암았다는 점이다. 마치 냉전시대에 쿠바 위기를 빌미로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벌일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계기로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국운이 쇠하게 되지만 스파르타도 얼마 가지 않아 몰락하게 되었다. (아마도 알렉산더의 그리스 정복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일 것이다)<br><br>3. 스파르타는 무엇보다도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하다.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nbsp;<br><span style="COLOR: #990000"><br>&nbsp;이를 위해 훈련은 매우 이른 나이, 7세(만 6세)부터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6년간은 파이디온이라는 등급에 속해 있으며, 기초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13세가 되었을 때,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부터 6년간은 아마도 헤본(청소년)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는 짧게 잘라야 했고, 신발도 신지 못했으며, 단 한 겹의 옷만으로 사철을 견뎌내야만 했다. 잠자리는 에우로타스 강변에서 손으로 직접 뜯은 골풀로 마련해야 했고, 그리 많지 않은 식사량을 보충하기 위해 때로는 먹을 것을 훔쳐야만 했다. 그러다가 붙잡히면 심하게 얻어맞는 것이 예사였다. 훔치는 것이 나쁘다는 도덕적인 면에서의 처벌이 아니라, 단지 붙잡혔다는 이유에서였다. 19세가 되면 에이렌 등급이 되었다. 이때부터는 전투에 나가는 것이 가능했고, 소년들로 이루어진 소대의 감독자, 즉 소대장이 되었다. 24세가 되어서야 정식 전사가 되며, 30새가 넘으면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br></span><br>스파르타가 이렇게 오늘날 시각으로보면 비상식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된 이유도 책에 소개되어 있다. 스파르타는 원주민을 정복한 도리아인들로서 자신보다 약 20배 많은 노예(헤일로타이)를 거느려야 했다. 책에 의하면 이들을 감시/감독하는 사람이 별도로 있었고 평소에도 엄격하게 다루어 행여나 반란을 꾀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되지 않는 스파르타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엄격하게 수련하여 강력한 전사가 되는 것이 국가를 유지하는 주요한 전략이었음을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br><br>4. 상업이 융성하였던 아테네는 지리적인&nbsp;원인이 컸다고 한다. 연평균 강수량이 적어 곡물농사에 적절하지 않았던 아테네는 올리브나 포도 등 소위 상품작물을 재배하여 이를 항아리에 담아 외국에 수출하여 곡물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따라서 도자기 공업과 상업 그리고 항해술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테네의 민주정도 여기에서 기원한 점이 크다. 대규모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평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한 것이 아테네 민주정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이런 와중에 같은 평민이라도 빈민과 부자의 차이가 커졌고 이로 인해 계급간의 갈등이 불거졌는데 이를 정리한 사람이 '솔론'이다. 아테네 시민을 재산에 따라 4가지 등급으로 나누어 공직에 대한 역할을 차별을 둔 것인데 민회에는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으나 상위 공직자에는 재산이 많은 사람들만이 참여하게 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재산에 따른 차별을 두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전쟁이 나면 배를 징발할 부자를 국가에서 지정하기도 했다고 하니 부자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 같다)<br><br>5. 책 말미에 영화 '300'의 주인공인 '레오니다스 왕' 이야기가 나온다. 레오니다스는 실제했던 인물이며 그 전투(테르모퓔라이 전투)도 실제였다. 다만 책에 의하면 페르시아 군의 수가 '그 몇배'로 기록된 걸로 봐서 영화처럼 300명대 몇십만의 수준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확인을 해봐야겠다) 아무튼 당시로서는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싸우는 것이 매우 특별한 일이었는데 이에 대해서 헤로도토스는 '명예'와 '신탁'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델포이의 신탁소에서 무녀에게 신탁을 구했을 때 '너희의 왕이나 너희희 영광스러운 도시를 제물로 갖기 전까지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멈출 수 없다는 신탁을 듣고 레오니다스가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는 '화살이 태양을 가려 그늘에서 싸우게 되니 즐겁다'는 말도 실제로 전해오는 말이라고 한다. <br><br>책값도 저렴하고 (3,300원) 내용도 적당하고 상황정리용으로 매우 유용한 책이다. 다만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좀 의아한 부분이었다. <br/><br/>tag : <a href="/tag/아테네" rel="tag">아테네</a>,&nbsp;<a href="/tag/스파르타" rel="tag">스파르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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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2 Oct 2009 05:23:2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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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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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44E03D','',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4513853"><img height="154"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yes24/momo/TopCate62/MidCate05/6141563.jpg" width="10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44E03D','',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4513853"><br>(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8)</div></a>1. 조르바는 니체가 말한 초인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정확하게 같은 의미는 아닌것 같다. 책 말미에 붙어 있는 이윤기의 해설대로 '목적지가 아닌 도상의 다리같은 인간', 말하자면 인간과 초인의 중간쯤의 인물인 셈이다. 초인은 인간을 얽어매고 있는 온갖 것들을 거부하고 인간을 극복한 자이다. 조르바는 그리스를 지배하던 동방정교회의 금욕주의를 거부하고, 독립을 위한 투쟁이라는 명분으로 온갖 잔인함을 강요하던 국가를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행동한다. 또한 주인공이 갖고 있던 지식이나 책에 의한 깨달음도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한다. 먹고 마시고 마음 끌리는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이상해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도 조르바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br><br>2.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를 꼽았다. (조르바도 실존 인물이었다고 한다.) 호메로스에 나오는 영웅적인 인간들과 니체의 초인이 실존인물인 조르바로 나타난 셈이다. (베르그송의 '생의 도약'이라는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br><br>3.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행동함으로써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옳은 일 일까? 관습, 도덕, 종교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적절한 절제도 필요하다. 이성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하다. 조르바는 확실히 내게 익숙한 사람은 아니다. <br/><br/>tag : <a href="/tag/니코스카잔차키스" rel="tag">니코스카잔차키스</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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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8 Oct 2009 15:30:1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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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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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266FD5','',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2518997"><img height="154" src="http://bookimg.naver.com/hash_coverimg/aladdin/cover/cover/8/9/7/2/8972914118_1.jpg" width="10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266FD5','',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2518997"><br></div></a><div style="TEXT-ALIGN: center">(허승일, 박재욱 옮김, 까치, 2006)</div>0. <a href="http://100.naver.com/100.nhn?docid=181373" target="_blank">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a> 펠로폰네소스전쟁은 '기원전 431~404년 사이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각각 자기 편 동맹시들을 거느리고 싸운 전쟁이라고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동맹국으로서 승리로 마친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군대를 유럽에서 몰아내고 이후 놀라운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테네는 제국으로 발전하였고 민주정은 번성하였으며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에 의한 문학과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건축과 조각 그리고 데모크리토스나 소크라테스같은 철학자들이 나타나는 등 위대한 진보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으로 발전하는 아테네를 바라보는 스파르타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이것이 거의 30년간 지속된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br><br>이 전쟁에 대한 가장 유명하고 권위적인 기록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이다. 실제 장군으로 이 전쟁에 참여한 투키디데스가 작성한 이 역사서는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사건의 진짜 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등 고전 역사서의 가장 위대한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대략 2.000년이 넘는 기록이다보니 배경설명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긴 서술이 이어지는&nbsp;등 현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은데다 결정적으로 전쟁의 마지막 7년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완전한 서술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평생 투키디데스를 연구한 도널드 케이건의 이 책을 먼저 읽어 전쟁에 대한 대략적인 흐름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고전을 읽기전 예비 독서로 이 책을 선택한 셈이다. <br><br>1. 전쟁의 전반적인 흐름을 간단하게 요약하기는 쉽지 않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두 폴리스가 싸운 것이 아니라 두 폴리스의 동맹시 전체가 전쟁에 참여하였고, 각 폴리스의 내분에 따라 전쟁의 부침이 결정되기도 하고 또한 후반에는 페르시아가 참여하는 등 국가간의 분쟁이자 내전이며 동시에 세계대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략적으로나마 요약하자면 대충 아래와 같은 흐름이 된다. <br><br>당시 아테네는 아테네 인근을 비롯한 에게해 지역의 여러 폴리스를 영향권에 두고 세금을 거두는 제국주의 정책을 펴고 있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세력이 더 커질것을 두려워하였고 아테네 근처 메가라에 대한 아테네의 '해상봉쇄'를 빌미로 전쟁은 시작되었다. 아테네의 지도자인 페리클레스의 '시간끌기' 전략을 통해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육상의 스파르타, 해상의 아테네의 전력이 워낙 우세하였기 때문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후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었고 시칠리아에서 아테네의 대패로 인하여 스파르타가 쉽게 승리하는 듯 했으나 다시 아테네의 민주정이 회복된 후 몇년이 더 진행되었고 비잔틴 근처에서 아테네 수군이 괴멸됨으로써 아테네가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은 종결되었다. <br><br>2. 이 전쟁에 대해 현대인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이 전쟁이 기록되기로는 최초의 '세계대전'이었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일본에 대한 기타 나라들의 연합이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처럼 이 전쟁도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 전 지역 및 이탈리아 남부와 소아시아 지방에 걸친 세계대전이었다. <br><br>또한 이 전쟁은 유례없이 잔혹한 분쟁이었다. 전쟁에 패배한 자와 포로들에 대한 나름의 규칙이 유지되던 당시의 규범들이&nbsp;많이 무시되었고 '포로를 구덩이에 던저넣어 갈증과 굶주림 속에 죽어가게' 하거나 '아들이 아버지에 의해서 살해되는'등 현대의 홀로코스트에 필적한 만한 잔혹함이 만연하였다. 투키디데스의 유명한 말처럼 '전쟁은 잔인한 교사'로서 오랜 전쟁 기간 동안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폭발시켜 상식 이하의 잔인한 행동을 유발한 셈이다. <br><br>마지막으로 이 전쟁은 일종의 분석 도구로서 20세기 후반 냉전기를 분석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냉전기에 나뉘어진 세계의 형상과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립구도는 현대의 정치가나 전쟁 연구자들이 참고하기에 매우 유용한 소재를 제공해주었으리라. <br><br>3. 이 책은 말한 것처럼 투키디데스의 원래 전쟁사를 읽기 위한 예비독서로도 매우 유용한 책이다. 특히 중간중간에 나오는 투키디데스에 대한 비판은 원 고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가능케 해주기 때문에&nbsp;그러하다. 예를 들어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가 모든 면에서 철저한 민주정으로 남아있다는 주장(34쪽)은 투키디데스와 반대되는 것으로 이는 투키디데스 이외의 자료에 대한 검토를 통해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주장이다. 실제로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장군이었고 또한 전쟁에서의 실패로 장군직에서 박탈되어 국외로 추방된 전력이 있는 등 전쟁에 대한 실감나는 기록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특정한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도널드 케이건의 지적은 유용할 것이다. 물론 나는 어느것이 진정으로 옳은 것인지 판별할 근거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br><br>고대 그리스의 철학이나 문학에 대해서 공부하기&nbsp;전에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기록인 이 책을 먼저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br/><br/>tag : <a href="/tag/펠로폰네소스" rel="tag">펠로폰네소스</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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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category>
		<category>펠로폰네소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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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1 Oct 2009 06:42:31 GMT</pubDate>
		<dc:creator>여형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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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양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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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1. 고전이든 최근에 나온 책이든 꽤 묵직하고 두툼한 책을 읽는 데는 보통 일주일 정도 걸린다. 평범한 직장인이 하루에 독서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2~3시간 정도이고, 이 정도 시간이면 대략 100쪽을 읽을 수 있으니, 500쪽 정도를 가정하면 5일인 셈이지만, 종종 생기는 약속 등을 고려하면 주말에 시간을 내야 책을 한권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br><br>2. 일주일에 한권이니 일년에 50권 내외가 될 것이다. 결국 20년을 꼬박 읽어도 1,000권을 넘기기 힘들다. 앞으로 40년을 더 산다고 생각하면 겨우 2,000권을 읽을 수 있을 따름이다. <br><br>3. 이 책들 중에서 소위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한번 읽어서는 이해가 안되거나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고전에 대한 해설서를 먼저 읽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따라서 중복적인 독서나 같은 주제에 대한 몇가지의 해설서를 읽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실제로 독립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개별적인 책을 읽는 수는 더 줄어들게 마련이다. <br><br>4. <a href="http://ko.wikipedia.org/wiki/%EA%B5%AD%EB%A6%BD%EC%A4%91%EC%95%99%EB%8F%84%EC%84%9C%EA%B4%80" target="_blank">위키백과</a>에 따르면 국립중앙도서관의 장서수는 대략 600만권이라고 한다. 40년간 2,000권을 읽을 수 있으니 10살 부터 70살까지 산다고 하면 60년간 3,000권을 읽을 것이니, 도서관에 있는 책의 0.05%를 읽는 셈이 된다. <br><br>5. 그러므로 좋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겨우 0.05%의 책을 읽을 수 있을 따름인데 유행을 쫓아 최신의 것들을 읽기 보다는 세월에 의해 검증된 좋은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br><br>또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다. 평생 3,000권의 책을 읽는 것도 결코 작은 양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봐야&nbsp;도서관에 있는 책의&nbsp;0.05%만을 읽을 수 있을 따름이다. 지식의 총량에 비한다면 모래사장의 모래 한두알 정도 밖에는 안될 것이다. 그러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천천히 읽고, 반복해서 읽고, 요약해서 읽고, 스스로 정리해서 그 책 하나를 온전히&nbsp;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유용한 일이다. &nbsp;<br/><br/>tag : <a href="/tag/독서" rel="tag">독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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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담</category>
		<category>독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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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7 Oct 2009 01:54:3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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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네이버 서비스의 개방성에 대한 드러난 진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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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HN 이준호 COO의 최근 한경 인터뷰 기사를 보니 이런 대목이 나온다. <br><br><span style="COLOR: #660000"><strong>항간의 검색어 순위 조작처럼 이런 일들이 심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br></strong>"조작을 하려면 대규모 트래픽이 있어야 한다. 하려면 할 수 있을텐데 이익보다 비용이 더 들어갈 것이다. 웹 검색의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신뢰성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느냐가 과제이다. 구글(코리아)과 우리 정보를 판별해 보라. <strong><u>구글(코리아)보다 우리가 나을 것이다</u></strong>."<br><br><b>- 이유는.</b><br>"구글은 크롤링(crawling, 컴퓨터에 분산 저장된 문서를 수집하여 검색 대상의 색인으로 포함시키는 기술)만 한다. 자체 서비스를 안 한다. (다른 사이트가 축적한 콘텐츠에)무임승차 하는 것이다. <strong><u>우리는 지식in, 블로그, 카페에 연 수백억원씩 들인다. 수익은 안 나는데. 화난다. 구글이 '오픈' 얘기 하는 것도 화난다. 큰 돈을 들인 남의 자산에 무임승차 하는 것이다</u></strong>." <a href="http://it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445630&amp;g_menu=020900&amp;fm=rs" target="_blank"><span style="COLOR: #660000">원문 링크</span><br><br></a></span>&nbsp;굳이 논리적 구조를 분석하자면 이런 식이다. <br><br>1. 웹 정보의 가장 큰 문제(중요성)는 정보의 신뢰성이다. <br>2. 네이버가 구글(코리아)보다 정보의 신뢰성이 뛰어나다. <br>3. 왜냐하면 구글은 크롤링만 하고 자체 서비스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nbsp;&nbsp;<br>&nbsp;&nbsp;&nbsp; (신뢰성 있는 정보를 생산할 생각은 안하고 남의 것(?)을 긁어 오기만 하기 때문이다)<br><br>네이버가 지식인이나 블로그 등의 플랫폼을 만들어서 좋은 정보가 많이 생산되도록 노력한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이런 서비스들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유지하는데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u><strong>하지만 네이버는 한국 인터넷에서 정보 성장의 대의를 위해 돈 안되는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한 것일까?<br></strong></u><br>아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을 망각하고 있다. 네이버는 돈을 벌기 위해 그런 정보들이 잘 쌓이도록 했고, 그걸 검색광고로 연결 시켜서 1년에 몇천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strong><u> '수익은 안 나는데. 화난다'는 표현은 명백한 거짓말이다.</u></strong>&nbsp;또한 수익과 관련된 부분 말고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는 발언이다.&nbsp;<br><br>인터넷에 좋은 정보가 없다면 원래 좋은 정보들을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에 수혈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식인과 같은 사용자 참여를 통해 생산된 정보들도&nbsp;정보 생산에 기여한 점이 분명히 있다. &nbsp;네이버가 한 일은 그런 플랫폼을 잘 만들었고 이를 상업적으로 잘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용자들이 덕을 보고 있으니 이런 행위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u><strong>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strong></u> 이건 아주 중요한 판단기준의 문제다. 인터넷의 모든 정보에 대해서 그 플랫폼을 만든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검색도 곤란해진다. 웹의 개방성은 웹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자 가장 중요한 속성이 아닐 수 없다. <strong><u>네이버가 자사의 DB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행위를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DB자체가 자신의 독점적인 소유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면서 기만적으로 우리는 개방성을 중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비도덕적인 일이다.</u></strong> 그런 면에서 네이버의 검색 정책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냥 알고 있지만 막상 외부에 개방하려니 너무 아까워서 못 주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는건 몰라도 이렇게 대놓고 '주장'하는 건 좀 뻔뻔한 일이 아닐까?<br><br>덧. <br>1. 얼마전에 진행된 NHN의 개발자 컨퍼런스인 <a href="http://deview.naver.com/programs/courses" target="_blank">DeView 2009</a>&nbsp; 행사의 프로그램을 보면 한 트랙을 &nbsp;'서비스개방'에 할애하고 있다. 뉴스캐스트, 오픈캐스트, 커뮤니케이션 캐스트 등 <strong><u>네이버가 서비스 개방에 일관된 철학과 의지를 갖고 실제로 개방성을 구현하고 있다</u></strong>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 최고경영자의 인터뷰로 이런 노력이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br><br>2. 이런 유치한 철학을 갖고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심히 의심된다. 일본에서는 언제 자체 서비스를 통해 DB를 구축해서&nbsp;좋은 검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네이버의 성공 모델은&nbsp;&nbsp;10년전 한국 상황에서 유효했던 모델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심지어 다른 나라에도 동일한 생각으로 성공하려고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br/><br/>tag : <a href="/tag/네이버" rel="tag">네이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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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담</category>
		<category>네이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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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8 Sep 2009 07:32:0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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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김동인 단편선(감자), 김동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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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169577','',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480055"><img height="154"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libro/book_img/5280/0100005710536_03.jpg" width="104"></a></div><div style="TEXT-ALIGN: center">(문학과지성사, 2009)</div>1. 김동인은 1900년 평양에서 태어나 1951년 사망하였다.&nbsp;유복한 집안에서 일본으로 유학도 다녀왔으며 만 19살의 나이로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 동인지 [창조]를 창간하는 등 젊은 시절에는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따른 사업 실패로 가산을 탕진하고 이혼도 하는 등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불행한 일생을 살았던 것 같다. 빈곤과 불면증, 정신 착란 증세로 고통받다가 세상을 뜬 것으로 책 날개에 적힌 작자소개에 적혀있다. <br><br>2. 이 책은 김동인의 중/단편 선집으로 '배따라기', '발가락이 닮았다', '감자', '광염 소나타' 등 그의 주요한 단편 작품들이 실려있다. 어느 강의에서 '광염 소나타'에 대한 언급이 있어 궁금한 마음에 읽어보게 되었다. <br><br>3. 최소한 이 작품에 실린 김동인의 작품들은 모두 비극적이다. 오해로 인해 남편에게 쫓겨나 자살하거나(배따라기), 생식능력이 없는데 아내가 임신하거나(발가락이 닮았다), 가난으로 인해 몸을 팔다가 결국 중국인 지주에게 죽임을 당하거나(감자), 범죄를 저질러야 예술적 영감을 얻는 등(광염 소나타) 내가 읽은 김동인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등은 모두 비극적이다. <br><br>또한 소설속의 화자가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소위 액자식 구성이 자주 등장한다. (배따라기, 광염 소나타 등) 말하자면 비극적인 사건을 보여주되 한발 물러나서 담담한 마음으로 '들은 이야기를 전하듯' 전달하는 것이다. 또 소설속의 주인공등의 이름이 A, B 등으로 나타나거나 광염 소나타에서 처럼 '주인공 되는 백성수를 혹은 알벨트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요 찜이라고 생각하여도 좋을 것' 이라고 말하는 등 '작가가 인물을 어떤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추상적인 공간에서 인형 조종하듯 다루고 있다'고 한다.&nbsp;<br><br>4. 가장 인상깊었던&nbsp;작품은&nbsp;일제 시대 감옥 이야기를 다룬 '태형'이었고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비교적 생생한 묘사가 나타나는 작품이다.&nbsp; <br><br><span style="COLOR: #660000">머리나&nbsp;몸 가운데 어느 것이든 노동하지 않고는 사람은 못 사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몇 달 동안을 머리를 쓸 재료가 없이 몸을 움직일 틈이 없이 지내왔으니 어찌 견딜 수가 있을까.</span> <br><br>마치 나의 이야기 같이 동감이 된다. <br><br><br><br><br><br><br><br/><br/>tag : <a href="/tag/김동인" rel="tag">김동인</a>,&nbsp;<a href="/tag/감자" rel="tag">감자</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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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category>
		<category>김동인</category>
		<category>감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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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7 Sep 2009 12:51:27 GMT</pubDate>
		<dc:creator>여형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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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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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C6AFF','',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56703"><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kyobo/images/book/xlarge/280/x9788991290280.jpg" width="104" height="15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C6AFF','',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56703"><br>(천병희 옮김, 숲, 2009)</div></a>0. <br>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nbsp;한국에서는 최초로&nbsp;그리스 원전에서 바로 옮긴&nbsp;판이다. 이 책이 씌여진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강유원의 [<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4515187" target="_blank">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a>]에 박영사 판 정치학의 서문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옮기고 있다. <br><br><span style="COLOR: #660000">아테네는 이제 상업과 무역으로 지중해 연안 각처에 식민도시를 거느리는 융성한 도시국가로 발전하였다. 영웅적 군주정, 귀족정, 참주정도 다 사라지고 기원전 3,4세기에는 저 유명한 페리클레스의 민주정도 이제는 추락하여 빈민정의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 이러한 가치전환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때에 기성가치를 말소함이 없이 오히려 그 속에 새 가치를 첨가시키려고 나온 자가 소크라테스이며, 그 제자가 플라톤이었다면,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거의 모든 관습, 모든 지식, 모든 인간의 업적을 다시 정리하여 신시대정신, 즉 지식의 시대정신으로 이끌어 놓은 위업을 완수하였다. (95쪽)</span><br><br>강유원의 설명에 의하여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전쟁의 시대를 살았고, 그 혼란을 극복하여 참다운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해 깊이 고민' 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그런 치열한 고민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br><br>한편으로 [<a href="http://lucas.egloos.com/4968820" target="_blank">니코마코스 윤리학</a>]의 말미에 붙어 있는 번역자들의 해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정치학과 윤리학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최선의 국가에 대한 물음은 인간 개개인의 행복에 대한 물음을 전제'로 하며 '폴리스는 인간 개인의 행복을 구현하는 근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인이 어떻게 하면 잘 살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가 윤리학의 주제라면 정치학은 이런 개인이 자연적으로 생성하게 되는 공동체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라고 할 것이다. <br><br>이 책의 구성과 목차에 대해서는 역시 [서구 정치사항 고전읽기]에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요약하면 이 책은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도입부분인 1권을 제외하고 2~3권, 7~8권은 그의 사후에 집필된 것으로 주로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대한 비판으로 되어 있다. 반면 4~6권은 이보다 늦게 정리된 것으로 현실 도시국가(폴리스)상의 정치구조를 비교하고 정책론, 혁명론 등이 포함되어 있다. <br><br>나는&nbsp;전체를 통독하고 그 중 4~6권은 노트에&nbsp;간략하게 정리하였는데 이를 다시 정리해보고자 한다. 4~6권이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국가론이 제시된 부분이기도 하려니와 전체를 모두 정리하는 것은 아직 힘든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br><br>1. <br>4권은 저자가 정치학의 과제와 대상을 규정하고 정체를 올바른 정체와 이에서 왜곡된 정체로 구분한 뒤 각 정체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또한 마지막에는 심의권, 집행권, 재판권 등 근대의 3권 분립과 유사한 권력의 배분과 견제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br><br>기본적으로 저자는 '훌륭한 입법자와 진정한 정치가는 절대적 최선의 정체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최선의 정체에 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통해 1) 어떤 정체가 최선인가, 2) 개별 국가들에 있어 어떤 정체가 적합한가, 3) 그리고 이러한 정체의 생성과 변형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시도한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플라톤과 같이 절대적으로 이상적인 정체를 이론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아닌 실제 정체들에 대한 비교와 분석을 통해 보다 현실적인 최선의 정체를 찾아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r><br>저자가 가장 이상적인 정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혼합정체'이다. 혼합정체는 민주정체와 과두정체가 '혼합'되어 있는 정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br><br><span style="COLOR: #660000">따라서 중간 형태의 정체가 최선임이 분명하다. 거기에는 파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산계급이 많은 곳에서는 시민들 사이에 알력이나 반목이 생길 가능성이 가장 적다. 같은 이유로 큰 국가가 파쟁에서 자유로운 것은 그곳에 중산계급이 많기 때문이다. (1296a7)<br></span><br>여기서 중산계급이란 재산에 따른 구분이다. 모든 사람이 공직에 참여하는 정체를 '민주정체'(빈민정이라고도 한다)라고 한다면, 재산의 크기에 따라서 부자들만 참여하는 정체를 '과두정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두가지를 혼합한 정체를 최선의 정체라고 생각했다. 이를 다시 강유원의 해설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부연하여 설명할 수 있다. <br><br><span style="COLOR: #660000">여기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진 편견을 하나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이들은 어리석다는 것, 달리 말하면 정치를 할 정도의 지식을 갖추려면 일정한 재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권력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정치체제를 분류하는 것에는 동시에 재산의 유무도 관련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109쪽)<br></span><br>2.<br>체제를 설명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정체를 언급한 다음 5권에서는 이런 정체가 바뀌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정체 변혁의 일반적 원인과 개별적 원인, 민주정, 과두정, 귀족정이 전복되는 이유에 대해서 각각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각 정체를 보존하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br><br>기본적으로 정체가 바뀌는 원인은 '불평등'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정에서는 '어떤 한가지 점에서 평등하면 모든 점에서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과두정에서는 '어떤 한가지 점에서 불평등(우월)하면 모든 점에서 불평등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 정체에서 불만을 갖게 되는&nbsp;사람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상세하게 구별하여 교만(hybris),&nbsp; 두려움(phobos),&nbsp; 우월성(hyperoche), 경멸(kataphronesis) 등 9가지 변혁의 원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 중 정체를 계속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br><br><span style="COLOR: #660000">따라서 정체를 염려하는 자들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시민들이 정체를 지키느라 경계하며 야경꾼들처럼 경각심을 늦추지 않게 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멀리 있는 위험요소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1308a24)<br><br>(참주정치의 보존에 대하여) 이를테면 걸출한 자들을 제거하고, 사람들이 기를 펴지 못하게 하고, 공동 식사 제도와 정치 동아리와 교육 등을 금하고, 피치자들 사이에 자긍심과 상호 신뢰를 낳을 만한 모든 것을 감시하고, 학교나 토론회가 생겨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피치자들이 가능한 한 서로 모르고 지내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1313a34)</span><br><br>3.<br>6권에서는 민주정체와 과두정체의 구성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국가의 운영에 필요한 공직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민주정체의 토대를 '자유'라고 언급하면서 자유의 원칙을 '모두가 번갈아가며 지배하고 지배받는다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민주정체의 정의는 가치에 따른 비례적 평등이 아니라 수에 따른 산술적 평등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이것이 정의라면, 필연적으로 다수가 최고 권력을 갖고, 다수가 결의한 것이 최종적인 것이며 정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nbsp;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br><br>4.<br>이 외에도 상당히 중요한 언급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br><br><span style="COLOR: #660000">이로 미루어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1253ai)<br>최선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연구하려면 먼저 가장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부터 규정해야 한다. (1323ai4)</span><br><br>이 부분에 대한 강유원의 해설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br><br><span style="COLOR: #660000">마지막으로 국가를 윤리적 공동체로 보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선한 생활, 즉 좋은 삶이란 자급자족하는 환경에서 누구나 국가의 구성원임을 당연하여 여기는 그런 생활이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지에서 폴리스는 윤리적 공동체이다. 이 부분은 유념해 둘 필요가 있다. 플라톤에서나 아리스토텔레스에서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고대 정치사상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고대 정치사상은 목적론적 국가론, 국가는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고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토대로 삼는다. 그리고 이 점에서 고대사회의 국가론과 근대사회의 국가론은 정면으로 대치된다. 근대 국가론은 국가가 구성원 개개인의 삶의 목적에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가 개개인의 삶의 질이나 도덕적인 행위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고는 더욱이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근대적인 정치학의 입장에서 고대 정치 사상을 보면 굉장히 억압적이다. ... 그럼 점에서 플라톤은 물론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론을 심정에서 받아들이기가 몹시 어려울 것이다. (104쪽)<br></span><br>5.<br>이 책은 대략 2,000년 전에 씌여졌다. 이런 오래된 책을 원전만 갖고 읽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책이 씌여진 시대의 배경 지식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하고, 얇지만 잘 정리되어 있는 해설서를 먼저 읽고 원전을 읽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 같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을 별도로 정리하고 이를 최종적으로 다시 구성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br/><br/>tag : <a href="/tag/정치학" rel="tag">정치학</a>,&nbsp;<a href="/tag/아리스토텔레스" rel="tag">아리스토텔레스</a>,&nbsp;<a href="/tag/천병희" rel="tag">천병희</a>,&nbsp;<a href="/tag/강유원" rel="tag">강유원</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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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1 Sep 2009 14:30:5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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