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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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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니 죽을 수 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고하는 사람들을 따르지 말고,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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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Nov 2009 11:26:2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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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형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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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니 죽을 수 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고하는 사람들을 따르지 말고,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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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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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01F85C','',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29116"><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libro/book_img/3426/0100004836428_03.jpg" width="104" height="15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01F85C','',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29116"><br>(푸른역사, 2003)</a><br><div style="TEXT-ALIGN: left"><div style="TEXT-ALIGN: center"><br>1. &lt;&lt;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gt;&gt;의 저자인 한문학자 강명관 교수의 책이다. 인문학 서적임에도 꽤 많이 판매된 책인 모양이다. 초판 발행이후 몇쇄를 더 거쳤다. 책의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조선 시대의 '뒷골목'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뒷골목이라 해서 폭력배의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박, 술, 탕자 등 일반적인 역사책에서는 다뤄지지 않는 하층민이나 사회적 약자들의&nbsp;이야기. 또는 &nbsp;양반사회에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nbsp;모습 등 흔히 읽을 수 없었던&nbsp; 조선 시대의 이야기가 정확한 사료에 근거하여 정리되어 있다. &nbsp;&nbsp; <br></div><p>2. 조선 시대 과거를 떠올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대개 이런 식이다. 경복궁 처럼 보이는 넓은 장소에 선비들이 열 맞춰서 나란히 앉아있고 제일 앞 높은 단상에 임금이 있다. 과거시험의 문제가 발표되면 일제히 붓을 들어 답안을 작성하고 '일필휘지'하는, 장원 급제를 예약한 사람이 가장 먼저 답안을 제출하고 자리를 떠난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개 이런 이미지가 아닐까?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양반만이 시험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그려려니 하더라도 (원래 규정은 천민이 아니면 다 볼 수 있었음) 양반 내부에서도 온갖 종류의 비리와 부정이 판을 쳤다. 책을 옮겨보면, <br><br></p><p><span style="COLOR: #990000">첨단기술(?)도 동원된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겠다. 숙종 때의 일이다. 성균관 앞 반촌(泮村)의 한 아낙이 나물을 캐다가 땅에 묻힌 노끈을 발견하고 잡아당겼는데, 끈이 대나무 통과 이어져 있었다. 그 대나무 통은 과거 시험장이었던 성균관 반수당(泮水堂)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대나무 통을 길게 매설하고 통 속에 노끈을 넣은 후, 과거장에서 시험문제를 노끈에 매달아 신호를 보내면 밖에 있는 자가 줄을 당겨 시험문제를 확보하여 답안지를 작성해 노끈에 묶어 보낸 것이다. 첨단기술이 아닌가. 조사를 했으나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숙종실록》 31년 2월 18일). </span><br><br></p><p>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정한 부정행위는 따로 있었다.&nbsp; 미리 좋은 자리 (답안을 제출하기 가까운 자리)를 잡는 사람을 고용하고, 전문 과거 시험꾼이 대리 시험을 치르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글을 대신 지어주는 사람을 ‘거벽(巨擘)’ 이라 하였고 글씨를 대신 써주는 사람을 사수(寫手)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돈 있는 양반들은 이들을 고용하여 자신 대신 시험을 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우리가 대개 생각하는 과거 시험의 이미지는 전부 바뀌어야 한다. <br><br></p><p>3. 이름 없는 백성들을 보살펴준 자신도 이름없는 의사들,&nbsp; 상류 양반 사회에도 널리 퍼졌던 도박 이야기, 조선 시대의 많은 기간을 금주령으로 다스렸지만 끝내 근절시키지 못했던 술에 대한 이야기,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 등 재미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다. 역사책을 읽는&nbsp; 즐거움을&nbsp; 알려주는 또 다른&nbsp;예가 아닌가 싶다. <br><br></p></div></div><br/><br/>tag : <a href="/tag/강명관" rel="tag">강명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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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category>
		<category>강명관</category>

		<comments>http://lucas.egloos.com/5178195#comments</comments>
		<pubDate>Mon, 23 Nov 2009 11:12:35 GMT</pubDate>
		<dc:creator>여형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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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요즘 포스팅을 못하는 이유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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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23/89/c0080189_4b0962058f5c1.jpg" width="500" height="713.63636363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23/89/c0080189_4b0962058f5c1.jpg');" /></div>이거 하느라 책을 안 읽고 있습니다. ^^; 참 재밌네요. 한글화가 안되어있고.. 외국 애들이랑 멀티 하려니 좀 버벅이긴 하지만... <br>엑박 골드 라이브 계정 신청해 해야할 것 같네요. <br><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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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담</category>

		<comments>http://lucas.egloos.com/5177568#comments</comments>
		<pubDate>Sun, 22 Nov 2009 16:09:48 GMT</pubDate>
		<dc:creator>여형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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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고전에 대한 느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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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길가메쉬 서사시 : BC 2,000년<br>일리아스 : BC 900 년<br>오이디푸스 왕 : BC 400년 경<br>신곡 :&nbsp; AD 1321 년<br>돈끼호테 : AD 1605년<br><br><span style="COLOR: #990000">이 작품(신곡)은 우리의 삶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을 것이고, 각 세대의 독자들에 의해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span> (보르헤스, 칠일밤)<br><br>인간은 마땅히 세월의 힘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그 세월의 힘을 이겨낸 책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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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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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3 Nov 2009 05:48:33 GMT</pubDate>
		<dc:creator>여형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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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군주론, 마키아벨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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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45DF90','',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4579216"><img src="http://bookimg.naver.com/hash_coverimg/aladdin/cover/cover/8/9/7/2/8972914444_1.jpg" width="104" height="15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45DF90','',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4579216"><br>(강정인&amp;김경희 옮김, 까치, 2008)</div></a><br>0. 군주론에 대한 요약문은 강유원박사가 포함된 사람들이 운영하는&nbsp;&nbsp; allestelle.net의 포럼 게시판에 좋은 예가 올라와 있다. 이를 그대로 옮겨 써보는 것이 요약에 관한 공부가 될 것 같아서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br><br>출처 : <a href="http://allestelle.net/forum/topic.php?id=236" target="_blank">allestelle.net<br></a>작성자 : moonachion<br><br><span style="COLOR: #990000">니콜로 마키아벨리(지음), 강정인, 김경희(옮김), </span><a style="BACKGROUND: #efefef; COLOR: #06c; FONT-WEIGHT: bold" href="javascript:;" name="9788972914440" jquery1258004464796="62" alt="군주론 검색 결과"><span style="COLOR: #990000">&lt;&lt;군주론&gt;&gt;</span></a><span style="COLOR: #990000">, 까치, 2008. [9788972914440]<br><br>&nbsp;마키아벨리는 "고대사에 대한 꾸준한 공부를 통해서 배운 위대한 인물들의 행위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그것에 과한 지침을 제시"한다. 군주는 "운명(fortuna)"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역량(virtu)"를 발휘하여 "무장한 예언자"가 됨으로써 새로운 국가를 설립하고 권력의 확고한 토대를 유지할 수 있다. 이때 군주에게 필요한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것이 아니라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서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것이다. <br><br>"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마키아벨리는 "과장된 구절이나 고상하고 화려한 단어, 그리고 그 어떤 다른 수식이나 외양상의 장식을 하지않"고 마치 "국가의 지도를 그리는 자들"처럼 객관적인 관점에서 &lt;&lt;군주론&gt;&gt;을 기술한다.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왔"음을 지적하면서 고대사상과의 단절을 시도한다. 그리고 현실 속의 "인간은 거의 항상 선인(先人)들의 행적을 따르며 모방을 통해서 행동하기 때문"에 성공한 군주가 되는 방법에 관한 실제적인 논의를 위해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들의 사례를 인용한다."<br><br>그가 인용하는 위대한 인물들의 사례는 "모세, 키로스, 로물루스, 테세우스"로 이들은 모두 "행운 또는 타인의 호의가 아니라 자신의 역량에 의해서 군주가 된 인물들"이다. 이들이 국가를 세우고 "각자 자신이 만든 새로운 정치질서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있었던 것은 이들에게 "믿지 않았던 자들에게 믿게끔 할 뿐만 아니라... 믿었던 자들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있었기 때문이다. 이 수단은 무력과 설득력이라는 군주의 역량으로 군주가 이 두 가지 역량을 모두 갖추고 "무장한 예언자"가 되면 "강력하고 확고하며 존중받는 성공한 지도자로 남아 있게" 된다. <br><br>"무장한 예언자"가 된 군주는 전통적으로 미덕이라고 여겨져 온 "모든 성품을 실제로 갖출 필요는 없지만,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실제적인 상황에 따라 외양상 미덕으로 보이는 군주의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가 현명한 군주라면 "그 자신이 미움을 받거나 경멸을 받는 일은 무엇이든지 삼가야"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는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따라서 "악덕 없이는 권력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때에는 그 악덕으로 인해 악명을 떨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한다. <br><br>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전통적인 관점을 버리고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실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탐구하여 &lt;&lt;군주론&gt;&gt;이라는 새로운 정치 매뉴얼을 작성한다. 국가를 설립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매뉴얼에 의하면 정치에서는 도덕이 더 이상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단지 목표달성에 필요한 효과적인 수단일 뿐이다. 도덕마저 수단으로 이용할 것을 권고하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당대에는 몰론 오늘날에도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사실상 이것이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치라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대한 정확한 반영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span> <br><br>1. 특히 &lt;&lt;군주론&gt;&gt;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15장, 사람들이, 특히 군주가 칭송받거나 비난받는 일들]인 것 같다. 위의 요약문에도 잠시 언급되지만 그 부분을 모두 옮기면 아래와 같다. <br><br><span style="COLOR: #990000">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span> <br><br>플라톤의 '국가'가 올바르게 사는 법에서 시작하여 올바르게 살기 위한 국가의 모습과 그 지도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느냐로 시작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마키아벨리는 이런 입장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유원의 서구정치사상고전읽기에도 잠시 언급되듯이 사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은 조금 순진한 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br><br>한편으로 플라톤이나 마키아벨리나 둘 모두 자신이 속한 국가가 외세의 침입과 전쟁, 내분 등으로 극히 혼란한 상황에 있었다는 점은 동일했는데 왜 이렇게 다른 결론을 내는 책을 쓰게 되었는지도 매우 궁금해진다. <br/><br/>tag : <a href="/tag/군주론" rel="tag">군주론</a>,&nbsp;<a href="/tag/마키아벨리" rel="tag">마키아벨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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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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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마키아벨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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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Nov 2009 06:08:16 GMT</pubDate>
		<dc:creator>여형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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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역사와 역사가들, 마크 길더러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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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D3358','',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107992"><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kyobo/images/book/xlarge/257/x9788931360257.jpg" width="104" height="15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D3358','',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107992"><br>(강유원&amp;이재만 옮김, 이론과 실천, 2009)</div></a><br>0. 책의 부제가 '서양사 연구를 위한 입문'으로 되어 있다. 주의할 것은 '서양사 입문'이 아니고 '서양사 연구'를 위한 입문 이라는 것이다. 역자 후기에 나온 것처럼 '역사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역사 공부 입문서'이니 만큼 책은 얇아도 내용은 만만치 않았다. 책의 내용은 일반적인 역사에 대한 것이 아니고 역사가들의 역사 혹은 역사 사상(역사 철학)에 대한 역사이다. 역사에 대한 내공이 어지간하지 않고서는&nbsp;책 전체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역사적 사유의 실천과 유형에 관한 입문서'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br><br>나의 경우에 아는 역사학자들이 서너명에 불과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생소한 역사가들의 역사관이나 역사 철학을 모두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br><br>1. 1장인 역사 연구의 목적과 의도는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역사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밝히고 '왜 라고 질문하여 행위자들의 행동을 해명'하고 마지막으로 이를 평가한다. 역사 연구의 목적은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인과 관계에 대해 탐구하여 현재의 행위를 분석하는데도 활용할 수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혹은 읽는 이유는 키케로의 인용문이 가장 인상적인 것 같다. <br><br><span style="COLOR: #990000">네가 태어나기 전의 일에 대해 무지한 것은 언제까지나 어린아이로 남겠다는 것과 같다.</span> <br><br>2. 2장 역사의식의 등장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이다. 이 둘은 각자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역사를 기술하였고 이 두 사람이 역사 서술의 시초가 된 셈인데 약간 차이가 있다. 헤로도토스는 이전보다 훨씬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역사 서술을 보여주었지만 신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고 한다. 반면 투키디데스는 헤로도토스보다 훨씬 세속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서술했다고 한다.&nbsp;<br><br>또한 아우구스티누스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nbsp;그는 '신국'을 통해서 기독교적 역사 서술의 기틀을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인간의 역사를 결국 신의 의지가 실현되는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서술하였는데 이는 이후 천년 넘게 유럽의 사유를 지배하게 되었다. <br><br>3. 이후는 근대의 역사의식으로 특히 사변적인 역사철학과 분석적인 역사철학을 주로 설명해준다. 모르는 부분은 빼고 이해한 부분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역사 의식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바로 순환적, 섭리적, 진보적 관점이다. 순환적인 역사관은 불교의 세계관을 생각하면 되고, 섭리적은 기독교의 세계관을 생각하면 적당하다. 진보적 역사관의 예는 계몽주의자 (볼테르 또는 콩도르세)가 적절한 예가 된다. 콩도르세가 쓴 '인간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를 보면 제목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이 된다. 칸트도 진보적 역사관의 사례로 소개되는데 그는 '역사의 최우선 목표가 자유의 확대'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br><br>사변적인 역사철학의 사례로 적절한 것은 아놀드 토인비이다. 그는 '한 문명은 잇따르는 도전에 창조적으로 대응할 때 성장했다'고 주장하였으며 창조적인 대응을 궁리할 책임을 '창조적 소수'와 이를 따르는 집단의 미메시스(모방)으로 설명했다. 이건희가 말했다고 알려진 1만명을 살리는 천재론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외에도 많은 역사가들이 소개된다. <br><br>분석적인 역사철학은 실증주의를 생각하면 된다. 과학주의를 근거로 하여 역사를 마치 자연과학이나 수학과 같은 엄밀한 법칙으로 설명하는 관점이다. 실증주의의 역사가들은 사변적인 입장에 대해 '환상, 신비주의, 자기기만'이라고 비판하며 특히 '과학이 아니라 신념에 의존'한다고 비판한다. 콜링우드의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역사에 도입하는 것에 대한&nbsp;비판이 인상적이다. 그는 '사건의 안쪽'이라는 말로 역사를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기술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br><br><span style="COLOR: #990000">역사가의 작업은 "사건의 바깥쪽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할지 모르나 결코 거기에서 멈출 수 없다. 역사가는 그 사건이 행위였다는 것과, 자신의 주된 과업은 그 행위자의 사유를 파악하기 위해 그 행위 속으로 들어가 사유하는 것임을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 <br></span><br>고 주장하여 실증주의 역사관을 비판하였다. <br><br>아무튼 이 두가지 관점은 사실 어느것이 완전히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사야 벌린의 구별법이 재미있어서 옮겨놓는다. <br><br><span style="COLOR: #990000">벌린은 자신의 에세이 제목 "고슴도치와 여우"를 아르킬로쿠스의 시행, 곧 "여우는 잡다한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굵직한 것 하나를 안다"에서 따왔다. (중략) 그는 엄격한 분류법을 역설하지도 않은 채 단테는 첫째 범주에 속하고 세익스피어는 둘째 범주에 속한다고 말했다. 플라톤, 루크레티우스, 파스칼, 헤겔,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입센, 프로스트는 고슴도치로 분류되었고, 헤로도토스, 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에라스무스, 몰리에르, 괴테, 푸시킨, 발자크, 조이스는 여우로 분류되었다.</span> <br><br>4. 이후의 내용은 현대의 전문적 역사학,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관에 대한 소개이다. 아무래도 아직은 소화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고 역사책을 좀 더 많이 읽은 후에 다시 보면 좋을 것 같다. <br/><br/>tag : <a href="/tag/역사" rel="tag">역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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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category>
		<category>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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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Nov 2009 06:34:09 GMT</pubDate>
		<dc:creator>여형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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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박웅현&강창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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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C7B92','',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60946"><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yes24/momo/TopCate76/MidCate01/7500183.jpg" width="104" height="15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C7B92','',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60946"><br>(알마, 2009)</div></a><br>1. 인문학이라는 말이 유행하다 보니 광고에 대한 책에도 인문학이라는 말을 붙인 모양이다. 박웅현 CD는 광고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사람으로 네이버의 세상의 모든 지식 캠페인, KTF적인 생각 등 히트작들을 많이 남겼다. 강창래라는 사람이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책을 엮었는데 대필로 쓰지 않고 떳떳하게 인터뷰 형식임을 밝힌 것은 솔직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제목과는 상당히 다르다. <br><br>2. 공동 저자들이 인문학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정의가 나오질 않는다) 중간에 보면 '김용옥의 책을 수십권 읽고' 등이 나오는 걸로 봐서는 제대로된 인문학책을 제대로 공부한 것 같지는 않다. 제대로된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기본적으로 인문학에 대해서 잘 모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nbsp;<br><br>잘 모르기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적극적으로 인문학을 광고에 활용한다고 했으니 잘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된다.&nbsp;또한 잘 모를 뿐 아니라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nbsp;&nbsp;책의 구조를 보면 3장이 창의력에 대한 부분인데&nbsp;인문학을 '창의력'을 기르기 위한 도구로 한정하고 있다. 창의력은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인문학은 텍스트를 제대로 읽고 이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시작이고 끝이다. 김용옥의 책을 읽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의 '원전'을 읽었다고 인문학 공부했다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을 내는 것은 지극히 건방진 일이다. . 더구나 시류에 편승하여 책을 한권이라도 더 팔아먹기 위해서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썼다면 크게 부끄러워해야할 일이다. <br><br>3. 박웅현은 좋은 광고인이다. 광고를 만드는 능력이 출중하다는 말이다. 소위 이미지 광고만 잘 한 것이 아니다. (특히 옛날 네이버 광고를 보면)<br>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것에 관한 책을 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엄하게 인문학 등을 빌어와 자신의 작업을 윤색하지 말고, 그냥 떳떳하게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를 만들 때 어떻게 사람을 제대로 설득 또는 꾀어내어 광고주의 매출을 높여줄 수 있을지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면 한다. <br><br>돈과 명예를 모두 갖기는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br/><br/>tag : <a href="/tag/광고" rel="tag">광고</a>,&nbsp;<a href="/tag/박웅현" rel="tag">박웅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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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밥벌이</category>
		<category>광고</category>
		<category>박웅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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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Nov 2009 02:53:3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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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윌리엄L. 랭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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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016949','',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92489"><img height="154"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libro/book_img/1327/331865_8987787257.jpg" width="10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016949','',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92489"><br>(박상익 옮김, 푸른역사, 2001)</div></a><br>1. 서양사를 특정 인물 또는 사건을 중심으로 상세히 설명하는 방식의 역사 개론서이다. 이런 류의 책들은 사실 개론서와 전문서의 중간정도의 위치에 속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일반적인 서양사 개론 보다는 상당히 자세하고 전문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책의 목차를 봐도&nbsp;쉽게 짐작할 수 있다. <br>1) 호메로스 새로 읽는 법<br>2) 소크라테스, 역사에서 신화로<br>3) 알렉산드로스가 이룩한 두 세계<br>4) 노예 상인 티모테오스의 생애<br>5) 위대한 신앙 해석자 바울<br>6) 야만족, 중세를 열다. <br>7) 불멸의 전설, 샤를마뉴.. 등<br><br>또한 이런 책의 장점은 목차를 보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좋다는 것이다. 나도 고대사에 속하는 부분과 중세의 이단과 에라스무스, 그리고 돈키호테에 대한 부분만 읽었다. <br><br>2.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하는 사항은 이 '책'들이 원래는 씌여진 것이 아니라 낭송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한다. 낭송되었기에 전체를 놓고 보면 중복되는 부분도 나오기 마련이고, 한번에 낭송될 분량에 맞추어 그 분량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에 대해 강조를 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보면 어색할지 몰라도 낭송을 전제로 생각하면 오히려 효율적인 (청중의 주의를 끌 수 있기 때문에) 방식이라고 한다. <br><br>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다루는 2장은 그의 죽음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고발이 어떻게 실제적인 죽음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nbsp;재밌는 것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고 고발당한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아테네 시민들에게는 요즘말로 하면 소위&nbsp;'좌빨'로 비쳐졌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없었던 전문 교육자로서 소피스트들은 기존의 질서나 가치관에 대해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소크라테스도 이러한 소피스트로 오해받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중 시칠리아 원정 직전에 발생한 신상 모독 행위를 통해 미뤄볼때 젊은이들의 타락은 '추상적인 원리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의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위협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소크라테스가 지목되었고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배심제에 의해 처형된 것이다. <br><br>바울에 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종종 예수교가 아닌 바울교라고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바울은 기독교의 세계 전파에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바울이 전도하던 당시는 예수를 직접 본 사도들 집단과 바울을 따르는 집단의 공공연한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전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한정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반면, 후자는 '인류의 죄를 대속한 예수'를 전파하고자 하였다. 이런 상황은 바울과 사도들의 공공연한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고린도후서 11장에 다음의 구절이 나온다. <br><br><span style="COLOR: #990000">나는 저 가장 위대하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에는 능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br></span><br>이런 대립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끝나게 되었다. 바울은 55년 체포되어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바울이 체포됨에 따라 바울을 따르는 무리가 세력싸움에서 패배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기 70년 유대의 반란을 진압한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으며 성전은 파괴되었고 '예루살렘의 그리스도 교회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유대적 그리스도교의 멸망이라고 하는 상징적 사건'이 '위대한 신앙해석자로서의 바울의 위신을 복원시켜 주었고' 그 이후 바울이 남긴 서신이 신약성서 최초의 구성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인 나사렛 예수가 인류의 구원자'라고 하는 기본 신조는 바울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온것이라고 한다. <br><br>그 외에도 에라스무스와 돈키호테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br/><br/>tag : <a href="/tag/서양사" rel="tag">서양사</a>,&nbsp;<a href="/tag/역사" rel="tag">역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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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2 Nov 2009 23:19:3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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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우석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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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CE425','',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87717"><img height="154"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yes24/momo/TopCate76/MidCate09/7585187.jpg" width="10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5CE425','',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87717"><br>(레디앙, 2009)</div></a>1. 이 책의 저자인 우석훈 박사를 인터뷰한 글이 실린 <a href="http://blog.naver.com/redianbook/30071660695" target="_blank">레디당 블로그</a>에는 20대에 보내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쫄지마, 상상해, 믿고 나누어봐'로 요약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속에서 학교와 학원, 그리고 취업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에 내몰려 '88만원 세대'라는 달갑지 않은 세대명을 부여받은 20대에게 우석훈 박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고등학교에서의 수능/내신 경쟁, 대학에서의 알바/스펙경쟁에 매몰된 그들에게 지금 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해서 승리자가 되라는 소위 '자기계발서'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작은 실패에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답답함을 돌파할 새로운 상상을 하며 서로를 믿고 연대하라는 메시지이다. 그리고 이를 연세대에서의 강의 참가자들이 직접 작성한 '20대 관찰기'와 함께 그 특유의 물 흐르는듯한 문체로 풀어보이고 있다. <br><br>2. 지금 20대들이 개인적으로 고립되어 아무것도 돌보지 않고 무한경쟁에만 매몰된 것은 앞서 말한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려니와 그들 스스로 갖고 있는 '공포'가 주된 요인이라고 말한다. 이 점은 나도 같이 생각했던 점이었다. 그 '공포'는 사실 20대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위치에 들어가지 못한 30대, 40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뉴스에서 서울 지역의 출생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진지 몇년 되었다는 기사를 본적 있는데 (둘이 결혼하여 한명도 안 낳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 30대의 출산 기피도 '공포'에서 기원하는 점이 크다. 이 무시무시한 집값과 사교육비라는 두 마리의 괴물 앞에서 선뜻 자기 자식을 세상에 내어놓을 용기를 갖기가, 특히 나같이 겁 많은 사람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br><br>3. 하지만 문제제기가 의미를 갖는 만큼 그 해결방안도 의미를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인 모양이다. 저자의 말대로 20대들이 스스로 연대하여 '당사자 운동'을 벌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20대 운동의 시급성을 생각해 볼 때 1만명 정도는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모일 것 같긴 하다'고 주장하며 이들이 월 1만원의 회비를 내어 100명 정도의 전업 활동가를 배출해야 한다는 부분이 나온다. 한학기에 만원정도 했던 학생회비도 안 내고, 일년에 크리스마스 구세군 상자에 몇천원 내는 것으로 기부를 마무리하는 우리 문화에서 이런 자발적인 조직 + 회비납부가 실현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br><br>또한 미래의 모습으로 상상하는 20대의 4가지 권리, 노동권, 주거권, 보건권, 교육권을 설명하는 부분은 더욱 이상적이다. 장기고용과 사회 보장 체제의 결합을 통한 노동권의 확립, 사회적 주거 개념의 도입, 20대에 대한 무료 의료 지원 등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이걸 어떻게 실현해 나가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br><br>구체적인 것까지 말하기에는 책의 지면이 모자랄 수도 있다. 혹은 문제제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십여권의 책을 내고, 사회적인 명성도 얻는 '인기 저자'에 들어가는 우석훈 박사에게 이제 더 구체적인 해결방안과 더 체계적이고 꼼꼼한 분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욕심일까?<br><br>4. 이런걸 보면 우석훈 박사는 경제학자이지만 실제 주장하는 바는 인문학자를 연상시킨다.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고 올바른 방향에 대해서 제시하지만 그 실현과정이,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88만원 세대의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를 보고 감정적으로 동의하지만 어떤 실천을 해야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문학자는 역사적인 관점과 철학적인 분석 그리고 문학적인 상상력과 표현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를 갖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과는 좀 다른 '스펙'을 갖고 있는 분이니 자신의 주 전공을 좀 더 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인 셈이다. (어쩌면 경제학자가 인문학자보다 더 구체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br><br>우석훈 박사의 책은 여덟권 정도 읽은 것 같은데 '88만원 세대'에서 '세대론'의 제기,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서의 조직적 관점에서의 한국사회 진단,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의 '유사 제국주의로서의 한국'과 같은 신선한 문제제기가 아쉽게도 이 책에는 없다. '혁명'이라는 단어를 일종의 메타포로만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혁명이라는 말에서나마 숨통을 틔우라고 말해 주고'싶을 따름이다. <br><br>주제넘게 우석훈 박사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엄밀한 경제적 분석과 상상력을 통해 좀 더 밀도 있는 책을 써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 오후에 도착해서 회사에서 짬짬히 읽고 집에서 마무리를 지었을 정도로 '너무 쉽게' 읽힌다. <br>일부러 쉽게 썼다는 저자 인터뷰를 보긴 했지만 최근에 나온 책들이 너무 쉽게 읽히는 것은 혹시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 가벼운 혹은 동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br><br>5. 우리 시대의 논객들이 몇 명 있다. 책이 나오면 한번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존재는 사실 지금의 빡빡한 현실을 고려하면 있어 주고 책을 내 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고맙긴 하다. 지금 우리에게 진중권, 우석훈, 홍기빈,&nbsp;김규항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 세상이 얼마나 더 빡빡했을까? 하지만 이 사람들이 낸 많은 책들이 10년 후에도 읽힐지 모르겠다. 물론 세상이 빡빡하고 너무 급하게 돌아가니 천천히 두꺼운 책이나 쓰고 있을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은 또 어찌보면 그렇게 쉽게 망할거 같지도 않다. 사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통치도 버텨냈고 전쟁도 치러내지 않았나. <br/><br/>tag : <a href="/tag/우석훈" rel="tag">우석훈</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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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category>
		<category>우석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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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2 Oct 2009 15:20:2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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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아테네인, 스파르타인, 윤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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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176BD3','',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534931"><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libro/book_img/6657/0100005983459_03.jpg" width="104" height="15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176BD3','',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534931"><br>(살림, 2005)<br></div></a>1. 살림지식총서 173번으로 나온 100쪽이 안되는 작은 문고판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각 분야에 걸쳐서 비교/요약한 책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해 관심있는 분이라면 사전 학습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듯 하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br>1) 고대 문명의 두 중심지<br>2) 수호신과 종교<br>3) 축제<br>4) 운동경기<br>5) 사회구성과 교육<br>6) 정치와 군사<br>7)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인물들<br><br>2. 페르시아와의 전쟁 이전까지 고대 그리스 세계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것은 스파르타라고 한다. 강력한 군사력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페르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이 체결되는데 이 동맹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아테네는 점차 동맹 국가들에게 과중한 공납금을 거두게 되고 이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게 된다. 이러한 아테네의 제국화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스파르타는 기원전 431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재밌는 것은 전쟁의 발단이 이 두 국가 사이의 직접적인 분쟁이 아니라 동맹 가입국간의 분쟁으로 말미암았다는 점이다. 마치 냉전시대에 쿠바 위기를 빌미로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벌일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계기로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국운이 쇠하게 되지만 스파르타도 얼마 가지 않아 몰락하게 되었다. (아마도 알렉산더의 그리스 정복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일 것이다)<br><br>3. 스파르타는 무엇보다도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하다.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nbsp;<br><span style="COLOR: #990000"><br>&nbsp;이를 위해 훈련은 매우 이른 나이, 7세(만 6세)부터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6년간은 파이디온이라는 등급에 속해 있으며, 기초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13세가 되었을 때,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부터 6년간은 아마도 헤본(청소년)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는 짧게 잘라야 했고, 신발도 신지 못했으며, 단 한 겹의 옷만으로 사철을 견뎌내야만 했다. 잠자리는 에우로타스 강변에서 손으로 직접 뜯은 골풀로 마련해야 했고, 그리 많지 않은 식사량을 보충하기 위해 때로는 먹을 것을 훔쳐야만 했다. 그러다가 붙잡히면 심하게 얻어맞는 것이 예사였다. 훔치는 것이 나쁘다는 도덕적인 면에서의 처벌이 아니라, 단지 붙잡혔다는 이유에서였다. 19세가 되면 에이렌 등급이 되었다. 이때부터는 전투에 나가는 것이 가능했고, 소년들로 이루어진 소대의 감독자, 즉 소대장이 되었다. 24세가 되어서야 정식 전사가 되며, 30새가 넘으면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br></span><br>스파르타가 이렇게 오늘날 시각으로보면 비상식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된 이유도 책에 소개되어 있다. 스파르타는 원주민을 정복한 도리아인들로서 자신보다 약 20배 많은 노예(헤일로타이)를 거느려야 했다. 책에 의하면 이들을 감시/감독하는 사람이 별도로 있었고 평소에도 엄격하게 다루어 행여나 반란을 꾀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되지 않는 스파르타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엄격하게 수련하여 강력한 전사가 되는 것이 국가를 유지하는 주요한 전략이었음을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br><br>4. 상업이 융성하였던 아테네는 지리적인&nbsp;원인이 컸다고 한다. 연평균 강수량이 적어 곡물농사에 적절하지 않았던 아테네는 올리브나 포도 등 소위 상품작물을 재배하여 이를 항아리에 담아 외국에 수출하여 곡물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따라서 도자기 공업과 상업 그리고 항해술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테네의 민주정도 여기에서 기원한 점이 크다. 대규모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평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한 것이 아테네 민주정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이런 와중에 같은 평민이라도 빈민과 부자의 차이가 커졌고 이로 인해 계급간의 갈등이 불거졌는데 이를 정리한 사람이 '솔론'이다. 아테네 시민을 재산에 따라 4가지 등급으로 나누어 공직에 대한 역할을 차별을 둔 것인데 민회에는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으나 상위 공직자에는 재산이 많은 사람들만이 참여하게 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재산에 따른 차별을 두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전쟁이 나면 배를 징발할 부자를 국가에서 지정하기도 했다고 하니 부자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 같다)<br><br>5. 책 말미에 영화 '300'의 주인공인 '레오니다스 왕' 이야기가 나온다. 레오니다스는 실제했던 인물이며 그 전투(테르모퓔라이 전투)도 실제였다. 다만 책에 의하면 페르시아 군의 수가 '그 몇배'로 기록된 걸로 봐서 영화처럼 300명대 몇십만의 수준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확인을 해봐야겠다) 아무튼 당시로서는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싸우는 것이 매우 특별한 일이었는데 이에 대해서 헤로도토스는 '명예'와 '신탁'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델포이의 신탁소에서 무녀에게 신탁을 구했을 때 '너희의 왕이나 너희희 영광스러운 도시를 제물로 갖기 전까지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멈출 수 없다는 신탁을 듣고 레오니다스가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는 '화살이 태양을 가려 그늘에서 싸우게 되니 즐겁다'는 말도 실제로 전해오는 말이라고 한다. <br><br>책값도 저렴하고 (3,300원) 내용도 적당하고 상황정리용으로 매우 유용한 책이다. 다만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좀 의아한 부분이었다. <br/><br/>tag : <a href="/tag/아테네" rel="tag">아테네</a>,&nbsp;<a href="/tag/스파르타" rel="tag">스파르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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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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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2 Oct 2009 05:23:2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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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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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style="TEXT-ALIGN: center"><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44E03D','',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4513853"><img height="154"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yes24/momo/TopCate62/MidCate05/6141563.jpg" width="104"></a><a onclick="clickcr(this,'bil.image','98000001_00000000000000000044E03D','',event);"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4513853"><br>(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8)</div></a>1. 조르바는 니체가 말한 초인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정확하게 같은 의미는 아닌것 같다. 책 말미에 붙어 있는 이윤기의 해설대로 '목적지가 아닌 도상의 다리같은 인간', 말하자면 인간과 초인의 중간쯤의 인물인 셈이다. 초인은 인간을 얽어매고 있는 온갖 것들을 거부하고 인간을 극복한 자이다. 조르바는 그리스를 지배하던 동방정교회의 금욕주의를 거부하고, 독립을 위한 투쟁이라는 명분으로 온갖 잔인함을 강요하던 국가를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행동한다. 또한 주인공이 갖고 있던 지식이나 책에 의한 깨달음도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한다. 먹고 마시고 마음 끌리는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이상해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도 조르바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br><br>2.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를 꼽았다. (조르바도 실존 인물이었다고 한다.) 호메로스에 나오는 영웅적인 인간들과 니체의 초인이 실존인물인 조르바로 나타난 셈이다. (베르그송의 '생의 도약'이라는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br><br>3.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행동함으로써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옳은 일 일까? 관습, 도덕, 종교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적절한 절제도 필요하다. 이성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하다. 조르바는 확실히 내게 익숙한 사람은 아니다. <br/><br/>tag : <a href="/tag/니코스카잔차키스" rel="tag">니코스카잔차키스</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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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category>
		<category>니코스카잔차키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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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8 Oct 2009 15:30:15 GMT</pubDate>
		<dc:creator>여형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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