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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世界はネオハ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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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즐겁게 살아야죠. :)</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06 Nov 2009 07:43:1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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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世界はネオハ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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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즐겁게 살아야죠.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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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데이바 소벨, <갈릴레오의 딸>, 생각의 나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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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center><div class="ttbReview"><table><tbody><tr><td><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980080&amp;ttbkey=ttblovos1239001&amp;COPYPaper=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din.co.kr/coveretc/book/coversum/8984980080_1.jpg" alt="" border="0"/></a></td></tr></tbody></table></div></center><br />
어렸을 때는 갈릴레오를 존경했었다. 특히 그 엄청난 종교 권력 앞에서 굴하지 않고 쿨하게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니, 이건 너무 멋지잖아! 그러다가 대학 들어와서 과기역을 수강하면서, 갈릴레오에 대한 이 환상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상세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사실 갈릴레오가 상당히 "정치적"이었고 심지어 "비열"하기까지 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나 피사의 사탑 실험 등이 다 개뻥이라는 걸 배운 것도 그 때고. 이렇게 형성된 갈릴레오관<span style="color:#999999;">(!)</span>은 이 책을 읽기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파이어아벤트의 책<sup><a href="http://lovos.egloos.com/2461434" target="_blank">[1]</a></sup>에서도 갈릴레오의 방법론은 '과학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확신은 점점 강력해져 갔다.<br />
<br />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 솔직히 혼란스럽다. 이 책은 갈릴레오에 대해 "너무도 우호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책이 허접하면 그냥 내 원래 생각을 고수할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이 책의 저자는 예전에 감명 깊게 읽은 <a href="http://lovos.egloos.com/908788" target="_blank">&lt;해상시계&gt;</a>의 <span style="color:#999999;">(공동)</span>저자인 데이바 소벨로, 항상 엄청난 고증을 거쳐 책을 꼼꼼하게 써낸다. 이 책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510쪽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_-에 촘촘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쌓아두었다. 당연히 피사의 사탑 실험이나 "그래도 지구는 돈다." 등의 '틀린' 사실은 틀렸다고 순순히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여러 자료를 사용해 갈릴레오의 이미지를 '진리를 탐구하는 의지의 노학자'로 구성하고 있다. 갈릴레오...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br />
<br />
라고 쉽사리 인정해버리면 로보스가 아니지! 흠. 일단 이 책을 잘 살펴보면 갈릴레오에게 상당히 불리한 사료들도 전부 갈릴레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메디치 가에 굽신거리면서 입신양명을 꾀한 것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써놓았고, 로마에 압송되어 조사를 받을 때 보인 비굴한 태도도 갈릴레오가 독실한 가톨릭 교도여서 교회와 싸울 수 없어서 그랬다- 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사실 사료라는 건 특정 대화나 행동은 보여줄지 몰라도 그 사람의 속마음을 보여주지는 않고, 또 사료가 1분 1초를 전부 기록하는 게 아니다보니 사건이 단속적으로 기록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부분은 그저 짐작으로 쓸 수 밖에 없는데, 작자의 사관이 어떠냐에 따라 이것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막을 수 없을 듯. 아마 이 책도 그런 한계를 안고 있는 것 아닐까?<br />
<br />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갖고 있던 갈릴레오의 상 역시 왜곡되어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갈릴레오를 저기 여의도 큰 집에서 싸움박질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급의 '정치인'으로 분류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확실히 갈릴레오는 '과학자'라는 것을 재확인했고, 그 인격 역시 <span style="color:#999999;">(뉴 모 씨처럼)</span> 파탄에 이르지는 않았음을 알았다. 특히 갈릴레오의 인간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기에, 이 책에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세밀히 묘사한 것을 보면서 꽤나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br />
<br />
지금 나의 생각은 그렇다. 내가 과기역 시간에 배운 것이나 파이어아벤트의 책에 실린 내용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분명 '비과학적' 방법을 써서 자신의 주장을 확산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그 '주장'의 근거를 찾아낸 과정은 현대의 눈으로 봐도 제법 과학적이었고, 당시의 수준을 생각해볼 때 무척 창의적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가 '비과학적' 방법을 사용한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하나의 사상이 퍼져 나가는 '당연한' 메커니즘일 수도 있으니까.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는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으면서도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종의 '구도자'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없기에 짐작할 수 밖에 없지만, 아마 자신의 신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 사이에서 하나를 딱 선택하는 대신 계속해서 갈등하며 고민했을 것 같다.<br />
<br />
서평을 쓰면서 책 이야기는 거의 안 했네.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이 책은 상당히 두껍다. 하지만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적어서 그리 빡세지는 않다. 나만 해도 출퇴근 시간만 이용해서 사흘 만에 다 읽었는걸. 또 데이바 소벨답게 꼼꼼한 사료 인용과 실감나는 묘사가 돋보인다. 다만 &lt;해상시계&gt; 읽을 때도 느꼈던 건데, 이 책 또한 그냥 펼치기만 하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다. 조금 질긴 부분도 있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눈에 잘 안 들어와서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두 권이 모두 이런 걸 보니 역자의 잘못보다는 저자의 잘못이 아닐까 싶다. 아, 번역은 전반적으로 괜찮은데 조금 이상한 게 있다. 책 초반에는 God을 전부 '하나님'으로 번역하다가 끝에 가면 '하느님'으로 번역한다. <span style="color:#999999;">(내가 기독교인이라서 이런 쪽에 조금 민감한 것 같다 -_-;)</span> 갈릴레오와 그의 주변인들은 전부 가톨릭 교도였으니 그냥 일관되게 '하느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br />
<br />
총평을 내리자면, 갈릴레오에 대한 전기로 훌륭한 책이다. 내 기억에 이 책이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추천한 과학사 책 중 하나였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위인전은 이런 책으로 읽어야지. 앞서 이야기했듯 저자의 사관이 편향되어 있다는 게 좀 아쉽다만, 완전히 객관적인 책이란 건 어차피 존재할 수 없으니까. 음 그러고보니 조금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바로 절판되었다는 점이다 ;;; 하지만 구할 수 있다면 구해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 
		</description>
		<category>|감상|</category>

		<comments>http://lovos.egloos.com/2466609#comments</comments>
		<pubDate>Fri, 06 Nov 2009 07:43:16 GMT</pubDate>
		<dc:creator>로보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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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과밸로 대동단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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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a href="http://fiatlux.egloos.com/4575527" target="_blank">과밸로 대동단결</a><br />
<br />
이번 토요일이지? 흠. 이번주엔 급작스레 시간도 생겼으니 가볼까. 근데 갔는데 왕따 당하면 어떡하지 ㄷㄷㄷ			 ]]> 
		</description>
		<category>|일기|</category>

		<comments>http://lovos.egloos.com/2466545#comments</comments>
		<pubDate>Fri, 06 Nov 2009 05:44:58 GMT</pubDate>
		<dc:creator>로보스</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창조적 오독?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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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a href="http://lovos.egloos.com/2464172" target="_blank">내 이럴 줄 알았음.</a><br />
<br />
내가 성경 해석에 대해 김규항 씨의 글을 반박했더니 어떤 분이 창조적 오독 운운하면서 나를 매도했다. 또 볼 사람도 아니고 그냥 무시하고 살아도 되겠지만, 혹시 내가 자기모순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까봐 약간의 변명을 붙이려 한다.<br />
<br />
#1.<br />
학적으로 엄밀한 글은 아니지만, 우선 <a href="http://ebookmaster.tistory.com/339" target="_blank">이 글</a>을 통해 '창조적 오독'이란 무엇인지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br />
<br />
이 글에서는 오독을 '빈곤한 오독'과 '풍요로운 오독'으로 나누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 분류를 따른다면 김규항 씨의 글은 빈곤한 오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그러나 '작자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하고 언제나 '오독력'에 의지해서 책을 읽는 사람은,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도 늘 독선적인 결론만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독자로서의 가능성을 편협하게 하는 독서법이다."라고 했는데, 김규항 씨는 자신의 고정관념, 즉 예수를 사회혁명가로 보는 관점에 매몰되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이것은 그리 바람직한 해석법이 아니다. 원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파악하고 떠들어야 할 것 아닌가?<br />
<br />
다른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해당 구절에 대한 김규항 씨의 해석은, 과학으로 치자면 양동봉이나 이재율 급의 해석이라는 것이다. 과학에는 잘 정립된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을 따라 연구를 해나가야 인정을 받을 수 있듯이, 성경 해석에도 잘 정립된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을 따라 해석을 해야 용인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연구와 같은 '창의적인' 연구도 과학적 방법론의 테두리 안에 있었던 걸 떠올려볼 때, 성경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도 기존 성경 해석학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규항 씨는 그걸 벗어났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해석이 되는 거고. 나를 비난한 분이 과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것이 유효한 반박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여하간 그 역시 양보할 수 없는 '정립된 방법론'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br />
<br />
#2.<br />
어떤 독자는 파이어아벤트의 인식론적 아나키즘에 감동받은 인간이 어떻게 저런 보수적인 글을 쓸 수 있느냐, 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파이어아벤트에 관련해서 쓰다가 어느 글에선가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완전한 아나키즘은 추종할 수 없다. 나는 성경이 영감으로 이루어진 신의 계시라고 믿고 있고, 따라서 성경 해석은 내 입장에서 상당히 중요한 일이 된다. '신의 가르침'을 풀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성경의 필자와 그가 상정한 예상 독자들이 본문을 뭐라고 이해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span style="color:#999999;">(다시 말하지만, 이건 당연한 것 아닌가?)</span> 이런 내 입장에서 문맥과 전혀 동떨어진 해석을 하는 김규항 씨의 글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br />
<br />
또한, 나의 반발이 정말 파이어아벤트의 프레임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파이어아벤트는 하나의 특정 담론<span style="color:#999999;">(그의 글에서는 '정립된' 과학)</span>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현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권력을 쥔 자들이 그 담론을 강요하는 상황은 더욱 옳지 않다. 그는 모든 담론들이 "링 위에서" 대등한 입장으로 치고 받고 할 때 건강한 학문이 자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내가 김규항 씨를 권력으로 찍어눌렀는가? 독자들에게 내 주장을 강요했는가? '성경 해석'이라는 링 위에서, 나는 김규항 씨와 대등한 입장에서 그의 글을 반박했을 뿐이다. 그게 잘못된 것일까?<br />
<br />
#3.<br />
혹시 김규항 씨의 해석 방법론이 어떻든 그 결과물만 좋으면 된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좋은지 안 좋은지 누가 평가하는가? 방법론을 제멋대로 내버려두면 결국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취하게 된다. 내가 원글에서 한국 개신교회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강해볼까 한다. 최근에 읽은 성경 해석학 책에서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성경의 원의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거기서 예로 든 것 중의 하나가 요한삼서 1장 2절의 해석인데, 본문은 다음과 같다.<br />
<br />
<span style="color:#3366ff;">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span> <span style="color:#999999;">(개역개정, 요삼 1:2)</span><br />
<br />
어떤 설교자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기독교인은 ① 영적인 성공 ② 세속적인 성공 ③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뭔가 안 느껴지는가? 그래, 이게 바로 '기복 신앙'의 근거다. 세속적인 성공과 건강을 열심히 구하라는 말이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이 성경 구절의 필자와 독자는 전혀 그런 의미로 본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해석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애초에 무슨 교리를 설명하는 부분이 아니라 그냥 인삿말이잖아 -_- 이런 일은 설교자들이 본문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보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br />
<br />
저런 해석이 옳은 것 같은가? 아니라면, 김규항 씨 역시 마찬가지로 옳지 않은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br />
<br />
#4.<br />
마지막으로 그럼 내가 김규항 씨의 오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히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나는 김규항 씨의 해석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 역시 어떤 사람들에게는 깨달음을 줄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span style="color:#999999;">(기독교인에게 중요한 작업인)</span> 성경의 원의를 밝혀내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의 원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김규항 씨를 반박했을 뿐이다. 이 글에서 논한 것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원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 배경에 깔고 있으므로,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글도 그저 뻘글 배설로 보이겠지. <span style="color:#999999;">(그런데 원의를 따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텍스트가 왜 필요한가?)</span>			 ]]> 
		</description>
		<category>|잡념|</category>

		<comments>http://lovos.egloos.com/2466387#comments</comments>
		<pubDate>Fri, 06 Nov 2009 00:56:47 GMT</pubDate>
		<dc:creator>로보스</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제프 일리, <The Left 1848-2000>, 뿌리와이파리. ]]> </title>
		<link>http://lovos.egloos.com/2464407</link>
		<guid>http://lovos.egloos.com/2464407</guid>
		<description>
			<![CDATA[ 
  <center><div class="ttbReview"><table><tbody><tr><td><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024773&amp;ttbkey=ttblovos1239001&amp;COPYPaper=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din.co.kr/coveretc/book/coversum/8990024773_2.jpg" alt="" border="0"/></a></td></tr></tbody></table></div></center><br />
두꺼운 책은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읽기가 참 곤란하다. 주석까지 다 합쳐 1000쪽을 넘어가는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무게도 무게지만 부피가 너무 커서 이 책을 집어넣을 수 있는 가방을 찾을 수 없었다 ;;; 결국 그냥 집에 두고 시간 날 때 조금씩 읽어가는 식으로 다 읽었다. 지난 3월 초부터 읽었으니 8개월?!<br />
<br />
이 책은 프랑스 2월 혁명이 일어난 1848년에서부터 바로 직전 세기의 마지막 해인 2000년까지 유럽 대륙에서 활약한 '좌파'의 역사를 되짚는 책이다. 현대사에 대해선 거의 아는 바가 없어서, 이 책의 난이도가 얼마나 되는건지 모르겠다만 @_@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꽤 많이 있었다. 알라딘 리뷰를 보니까 어떤 분은 이 책이 매우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 않다고 하셨는데, 음 나 같은 문맹에게는 꽤나 어려웠다. <span style="color:#999999;">(일단 나는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라는 단어의 뜻도 몰랐기 때문에 ;;;)</span><br />
<br />
그래서 그런지, 여덟 달을 읽었지만 머릿속에 남은 세부사항은 거의 없다. 대강의 줄거리와 어떤 '패턴' 정도만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 그 패턴이라는 것도 대단한 건 아니다. 좌파들은 혁명과 같이 급진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변혁하려는 사람들과 기존 권력층에 잠입하여 점차 사회를 변혁하려는 사람들로 나뉘고, 그들이 계속 싸워온 것이 좌파의 역사라는 정도? 음... 아 하나 더 있다. 좌파가 유럽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반파시즘 운동 덕분이라는 거. 뭐 이렇게 머릿속을 박박 긁어내야 한 두 개씩 나올 정도니, 제대로 읽은 거라고 하기엔 조금 부끄럽다.<br />
<br />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전혀 쓸모없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 왜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어떤 지식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해도 어느 책 어디에 나오는지 알면 그걸로 충분하다." 보통 수강한 과목들의 지식이 머릿속에서 휘발되는 걸 안타까워하는 <span style="color:#999999;">(공부 열심히 하는)</span> 학부생들에게 해주는 말이지만, 뭐 나도 이 말로 자기위안을... ( - -) 워낙 방대한 책이라 웬만한 사건은 다 다뤄져 있으니 나중에 필요하다면 찾아보는 정도로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span style="color:#999999;">(그리고 머릿속 어딘가에 지식들이 짱박혀있을 거라는 얄팍한 기대도 살짝... :$)</span>			 ]]> 
		</description>
		<category>|감상|</category>

		<comments>http://lovos.egloos.com/2464407#comments</comments>
		<pubDate>Tue, 03 Nov 2009 07:53:05 GMT</pubDate>
		<dc:creator>로보스</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내 이럴 줄 알았음. ]]> </title>
		<link>http://lovos.egloos.com/2464172</link>
		<guid>http://lovos.egloos.com/2464172</guid>
		<description>
			<![CDATA[ 
  소위 '좌파 논객'이라는 사람들 중에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김규항 씨가 있다. 뭐 이유를 세밀히 밝힐 건 없을 것 같고. 어쨌든 이 아저씨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이웃 블로그 중에서 이 아저씨 블로그에서 글을 종종 긁어오는 블로그가 있는데 거기 예수 그리스도 얘기가 자주 나온다. 급기야는 이 아저씨가 &lt;예수전&gt;이라는 책을 냈다. 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책을 굳이 사서 볼 필요가 있나 싶어서 별로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오늘 우연히 어느 블로그에 갔다가 이 책의 인용을 발견했다.<br />
<br />
<span style="color:#3366ff;">p.187 사람은 대개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은 '바른손'이며 고대사회에선 더욱 그랬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뺨을 때린다는 건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뺨을 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오른뺨을 때리면"이라고 했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때렸다는 말이다. 손등으로 뺨을 때리는 행위는 당시 유다 사회에서 하찮은 상대를 모욕할 때 사용돼곤 했다. 그렇게 모욕당한 사람에게 예수는 '왼뺨도 갖다 대라'고 말한다. '나는 너와 다름없는 존엄한 인간이다. 자, 다시 제대로 때려라' 하고 조용히 외치라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순응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단호하게 저항하라, 불복종을 선언하라는 것이다.</span><br />
<br />
뭐, 가다머 해석학의 입장에서는 이 아저씨처럼 해석을 하든 어떻게 해석을 하든 그건 본인의 자유이다만, 나는 아무래도 '객관적' 해석이 있다는 쪽에 가까워서 말이지. 이렇게 제멋대로 해석하는 꼴은 못 봐주겠다. 저게 저 이야기를 한 예수의 진짜 의도였을까? 아니면 저 내용을 기록한 성경 기자의 의도였을까?<br />
<br />
저 이야기는 &lt;마태복음&gt; 5장에 나오는 말이다. &lt;마태복음&gt; 5장은 소위 '산상수훈'이라 불리는 긴 가르침의 일부로, 어떤 이들은 이 산상수훈이 예수가 가르친 것의 핵심이라고까지 보기도 한다. 여하간 일단 본문을 찾아보자.<br />
<br />
<span style="color:#3366ff;"><sup>39</sup>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u>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u> <sup>40</sup>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sup>41</sup>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span> <span style="color:#999999;">(개역개정, 마태복음 5:39-41)</span><br />
<br />
보다시피 39절에 '오른뺨' 얘기가 나온다. 자, 그런데 성경을 해석하는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맥락'을 살피는 것이다. <span style="color:#999999;">(아니 이건 성경 아니라 무슨 책을 읽어도 마찬가지지 -_-)</span> 이 이야기를 쭉 읽어봤을 때, 여기서 주제는 무엇일까? 김규항 씨 말처럼 '불복종'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40절과 41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속옷 내놓으라는 사람에게 "나는 존엄한 인간이다. 겉옷도 가져가라!"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일까? 어디 좀 따라오라는 사람에게 "나는 존엄한 인간이다. 기꺼이 더 가주마!"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일까?<br />
<br />
이 정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다만 혹시 그래도 김규항 씨의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후 이야기를 계속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산상수훈'은 전체가 통으로 된 하나의 이야기거든.<br />
<br />
<span style="color:#3366ff;"><sup>42</sup>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sup>43</sup>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sup>44</sup>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sup>45</sup>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sup>46</sup>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sup>47</sup>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sup>48</sup>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span> <span style="color:#999999;">(개역개정, 마태복음 5:42-48)</span><br />
<br />
예수는 여기서 좀 더 분명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 유명한 "원수를 사랑하라"가 나오는 부분이다. 예수는 '자명하게' 신의 무조건적 사랑에 빗대어<span style="color:#999999;">(45절)</span>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span style="color:#999999;">(48절)</span>. 자, 그럼 이것을 불복종과 연결시켜 보실까? 39-41절의 이야기는, 내가 볼 때 차라리 뒷부분에서 이야기할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떡밥-_-으로 던진 '과장된' 이야기다. 싸대기를 맞고 안 맞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으로 상대방의 요구보다 더 많은 것을 베풀라는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겠지. 그렇게 해석하는 게 뒷부분과 아귀도 안 맞는 불복종 이론보다 낫지 아니한가?<br />
<br />
4대 성인 중 하나로 추앙받는 인물이자 거대 종교를 지탱하는 핵심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 사회 혁명가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수의 의도도 아니었고 마태의 의도도 아니었던 의도를 지어내 예수의 말을 해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span style="color:#999999;">(김규항 씨도 아마 싫어할 거라 생각하는)</span> 한국 개신교의 기복 신앙이 바로 그 짓을 통해서 성장한 거였는데 말이다.			 ]]> 
		</description>
		<category>|잡념|</category>

		<comments>http://lovos.egloos.com/2464172#comments</comments>
		<pubDate>Tue, 03 Nov 2009 02:01:47 GMT</pubDate>
		<dc:creator>로보스</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잡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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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1) 오늘은 한 시간 간격으로 세 편의 독후감 시전! 아으 이 자유시간도 오늘로 끝이구나 T_T<br />
<br />
2) 행렬이 나를 괴롭히누나... 선대 좀 열심히 할걸 ㅠ 잘못하면 9계 연립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위기 상황 =_=<br />
<br />
3) 트위터가 자꾸 특정 트윗을 안 보여준다 -_- 버그가 분명한데, 고칠 의지가 없는 걸까?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합니다.<br />
<br />
4) 아무리 나보다 직급, 나이가 높은 사람이라도 별로 안 친한데, 그것도 우리 부서도 아니면서 대놓고 "야!"거리면서 반말 뱉으면 기분 나쁘다. 휴. 직장 생활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걸까...			 ]]> 
		</description>
		<category>|일기|</category>

		<comments>http://lovos.egloos.com/2461442#comments</comments>
		<pubDate>Fri, 30 Oct 2009 08:20:55 GMT</pubDate>
		<dc:creator>로보스</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폴 페이어아벤트, <방법에의 도전>, 한겨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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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center><span style="color:#999999;">(알라딘에 상품정보가 없다 -_-)</span></center><br />
과학철학의 계보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파이어아벤트. <span style="color:#999999;">(이 책에선 '페이어아벤트'라고 번역했다만 -_-)</span> 일반적으로 그리 이미지가 좋지 않은 듯 하다. 하기사 내가 퍼온 글들만 봐도 '이성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면 손사래를 칠 내용들 뿐이니. 후배가 철학 수업 과제에 쓸 예시를 찾길래 이 책에서 본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는데, 교수가 파이어아벤트 이름을 듣자마자 거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했길래 그렇게 까이는 걸까? 파이어아벤트의 대표작인 이 책을 살펴보면 정답이 나온다.<br />
<br />
우선 책의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자. <span style="color:#999999;">(이하의 분류는 내가 한 것이므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span><br />
<br />
<span style="color:#3366ff;">* 서론-5장: 기본적인 논증 전개<br />
* 6장-13장: '갈릴레이'에 대한 사례 연구<br />
* 14장-15장: 현대 경험주의의 세 가지 문제<br />
* 16장: 임레 라카토스의 이론과 그에 대한 반론<br />
* 17장: '의미'의 문제<br />
* 18장: 결론</span><br />
<br />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전반부에서 중요한 얘기를 다 해버린다. 사실 서론에서 5장까지 읽고 18장만 읽어도 파이어아벤트 이론의 핵심은 다 알 수 있다. <span style="color:#999999;">(특히 책의 후반부에서는 주로 제기된 반론들을 재반박한다는 느낌이 든다.)</span> 이 글에서도 모든 장을 공평하게 다루는 대신, 내 멋대로 파이어아벤트 이론을 재구성해서 정리하도록 하겠다.<br /><br />우선 파이어아벤트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살펴보자. 서론 본문의 첫번째 문장을 볼작시면,<br />
<br />
<span style="color:#3366ff;">다음의 에세이는, <u>아나키즘</u>이 가장 매력적인 <u>정치</u>철학은 아닐지라도, <u>인식론</u>과 <u>과학철학</u>에 대해서는 매우 훌륭한 처방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쓰여진 것이다.</span> <span style="color:#999999;">(15쪽, 강조는 필자)</span><br />
<br />
우리는 흔히 특정 규칙을 따라서 과학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적절하지 않다. ① 효율성 ② 정당성이 그것이다. 효율성이라 함은 '실제로 그 규칙을 따랐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가?'를 얘기한다. 파이어아벤트는 역사적 예를 들어 실제 과학 연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규칙에 따라서 진행되지 않았음을 논증하고, 동시에 현재 입장에서도 과학이 다루는 영역은 대부분 미지의 영역이므로 지금의 규칙이 그 영역을 다루는데 최적화되어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한다.<br />
<br />
특히 파이어아벤트는 책 전반에 걸쳐 실제 과학 연구가 어떻게 행하여졌는가를 논한다. 특히 파이어아벤트가 사랑하는 예는 갈릴레이인데, 실제로 갈릴레이는 당시의 '합리적인' 사고에서도 허용될 수 없었던 주장들을 여러 '기술'을 사용해 사람들에게 수긍시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갈릴레이가 옳았다고 보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과학 연구를 할 때 갈릴레이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 이런 흐름이다. <span style="color:#999999;">(갈릴레이만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물리학의 여러 업적들 -- 예컨대 상대론이나 양자역학 -- 을 가지고도 예시로 삼는다. 문제는, 포퍼가 그러했듯, 예시들이 너무 물리학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 -_-)</span><br />
<br />
정당성이라 함은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으냐는 질문이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현대의 윤리관 속에서, 특정 사상을 교조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인도적으로 옳겠는가? 파이아아벤트는 묻는다. <span style="color:#999999;">(내가 예전에 어딘가에서 ②에 해당하는 소리를 했다가 열라 까인 적이 있는데 -_- 나만 미친 건 아니었나보다.)</span> 그럼 파이어아벤트는 과학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믿는가?<br />
<br />
<span style="color:#3366ff;">역사가에 의해 제공되는 풍부한 자료를 찾아낸 (중략) 사람들에게는, <u>모든</u> 상황에서 또 인류발전의 <u>모든</u> 단계에서 옹호될 수 있는 단 <u>하나의</u> 원리가 있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것은 <u>무엇이라도 좋다</u>(anything goes)라는 원리이다.</span> <span style="color:#999999;">(27-28쪽, 강조는 필자)</span><br />
<br />
전에 한 번 이야기했던 것<sup><a href="http://lovos.egloos.com/2434567" target="_blank">[1]</a></sup>이 바로 이 이야기다. 모든 종류의 해석을 허용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게 하라.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그것이 과학을 작동시키는 원리다. 파이어아벤트는 여기서 바람직한 예로 중국 공산 정권이 전통 의학을 부활시킨 것을 들고 있는데, 물론 파이어아벤트의 설명에는 부합하지만, 어쨌든 과학자들에게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한의학이 과학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어아벤트는 아나키스트다. 파이어아벤트는 전통 의학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대안 과학을 링 위에 올렸다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었음에도 혹시 파이어아벤트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중요한 구절을 하나 인용한다.<br />
<br />
<span style="color:#3366ff;"><span style="color:#999999;">(전략)</span> 혹자는 내가 귀납을 반귀납으로 대치하고, 이론/관찰의 관습적인 2분법을 대신해서 이론의 다양성과 형이상학적 관점들, 옛이야기들을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권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가질런지도 모른다. 이 인상은 분명히 오해이다. 나의 의도는 일련의 일반규칙을 다른 일련의 일반규칙으로 대치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의도는 오히려 <u>모든 방법론은, 가장 분명할 것일지라도 자기나름의 한계를 갖고 있다</u>는 것을 독자에게 확신시키려는 것이다. <span style="color:#999999;">(중략)</span> 아나키스트는 이성(진리, 정직, 정의 등)의 권위를 붕괴시키기 위해서 이성이라는 게임에 참가하고 있는 비밀공작원과 같은 것이다.</span> <span style="color:#999999;">(33-34쪽, 강조는 필자)</span><br />
<br />
파이어아벤트는 진화론보다 창조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과학 이론보다 신화 이론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저 모든 '방법'에 반대하는 아나키스트일 뿐이다. 이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자. "<span style="color:#3366ff;">아나키스트는 이성의 권위를 붕괴시키기 위해서 이성이라는 게임에 참가하고 있는 비밀공작원과 같은 것이다.</span>" 이러니 철학자들이 좋아하겠나, 과학자들이 좋아하겠나 ㄲㄲ<br />
<br />
--<br />
<br />
여기서 맺으면 딱 좋겠다만, 몇 가지 잡담을 하고 싶은데 넣을 곳이 없어 맨 뒤에 덧붙인다. 먼저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것이 1987년, 재판을 찍은 것이 1991년이다. 그리고는 절판됐다. 지금은 알라딘에 상품정보조차 없을 정도로 구하기 힘든 책이다. 아놔... 이런 책들은 좀 꾸준히 찍어줘야 하는 것 아님? 구하는 것도 무지 힘들었다 ;ㅁ; 뭐 돈이 안 되는 건 알겠다만... 이러다 보면 또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 대한 한탄으로 흘러갈 것 같으니 이쯤에서 멈추겠다. 과학철학 오타쿠인 캐갑부 독지가가 나타나서 이런 책을 계속 찍어낼 수 있도록 후원해주면 좋을텐데 ㅋㅋ<br />
<br />
번역된 제목에 대해서도 불만이 조금 있다. 이 책의 원제는 <em>Against Method</em>이다. 이 제목을 &lt;방법에의 '도전'&gt;으로 번역했는데- 꼭 틀린 번역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그냥 충실히 직역해서 &lt;방법에 반하여&gt;라고 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왜? 쉽게 까기 위해서는 일본어투라고 까면 된다 ㅋㅋ "에" + "의"와 같은 '일본어식' 용법에 알러지 반응 일으키는 분들이 좀 많으니까. 근데 사실 나는 그보다 '도전'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조금 불명확해서 싫다. 전술하였듯이 파이어아벤트는 인식론적 아나키스트다. "무엇이라도 괜찮다." 이외의 어떤 종류의 방법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도전'이라고 하면, 어떤 종류의 방법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보다 특정 방법<span style="color:#999999;">(현재의 방법?)</span>이 마음에 안 드니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차라리 직역인 &lt;방법에 반하여&gt;가 좀 더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 같지 않은가?			 ]]> 
		</description>
		<category>|감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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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Oct 2009 08:14:07 GMT</pubDate>
		<dc:creator>로보스</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남병두, <기독교의 교파 - 그 형성과 분열의 역사>, 살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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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center><div class="ttbReview"><table><tbody><tr><td><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05820&amp;ttbkey=ttblovos1239001&amp;COPYPaper=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din.co.kr/coveretc/book/coversum/8952205820_1.jpg" alt="" border="0"/></a></td></tr></tbody></table></div></center><br />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 개신교회에는 수많은 교파들이 있다. 아마 개신교인들도 각 교파가 어떻게 다른지, 왜 교파가 분리된 건지 잘 모를 것이다. 이 얇은 책은 그러한 궁금증을 일거에 해소시켜 준다. 이 책은 시간 순으로 각 교파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다루는 교회사 책이다. 물론 이 책 외에도 많은 <span style="color:#999999;">(그리고 두꺼운)</span> 교회사 책이 있지만, 이 책은 특별히 '교파'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된다.<br />
<br />
이 책은 사도 시대에서부터 시작한다. 기독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려해서인지, 가장 먼저 '교회'의 뿌리를 성경적으로 설명해준다. 이어 교부 시대에 등장한 여러 교파들이 등장한다. 초반에는 '교리'가 확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갖 신학이 날뛰고 있었고, 이들은 대부분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아마 세계사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봤을 네스토리우스파나 아리우스파 등이 다뤄진다.<br />
<br />
이어 '교회의 대분열' 시대로 돌입한다. 필자는 여기서 전반적인 교회사를 설명한 후 대분열 이후 가톨릭 교회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정교회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보여준다. 각 교회의 기본적인 교리도 가볍게 다뤄준다. 이게 이 책의 기본적인 구조로, 특정 교파가 어느 시기에 갈라져 나가면 그 다음엔 잠시 역사적 흐름을 멈추고 그 교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난 정교회가 제법 진지하게 다뤄진 것을 보고 감동을 먹었다. 사실 교회사에서 듣보잡 취급을 받던 교파 아니던가 T_T<br />
<br />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개신교 교파들이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루터파, 개혁파, 재침례파가 순서대로 등장하고, 성공회와 장로교, 침례교가 얼굴을 내민다. 이어 감리교와 성결교, 그리고 오순절파까지, '유명한' 개신교 교파들은 다 한 번씩 다뤄진다. 각 교파의 역사는 물론 교파의 교리가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해서 설명한다. 필자가 우리나라 사람이다보니 이 개신교 교파들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짤막한 설명을 곁들여줘서 좋았다.<br />
<br />
필자가 침신 교수다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개신교, 특히 침례교에 우호적인 어조를 띠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한 기색이 엿보인다. 가톨릭 신자, 정교회 신자, 심지어 타종교인이나 무종교인이라도 이 책을 읽고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기독교의 여러 교파들이 어떻게 다른지 개략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 
		</description>
		<category>|감상|</category>

		<comments>http://lovos.egloos.com/2461371#comments</comments>
		<pubDate>Fri, 30 Oct 2009 06:58:48 GMT</pubDate>
		<dc:creator>로보스</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김영사. ]]> </title>
		<link>http://lovos.egloos.com/2461331</link>
		<guid>http://lovos.egloos.com/2461331</guid>
		<description>
			<![CDATA[ 
  <center><div class="ttbReview"><table><tbody><tr><td><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33151&amp;ttbkey=ttblovos1239001&amp;COPYPaper=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din.co.kr/coveretc/book/coversum/8934933151_2.jpg" alt="" border="0"/></a></td></tr></tbody></table></div></center><br />
유명한 책. 설명이 더 필요한g? 이라고 하고 넘겨 버리고 싶지만 ㅋㅋ 역자님이 블로그 이웃이기도 해서 적당히 감상을 써서 올리련다. 써놓고 보니 감상보다는 분노 표출에 가까운 것 같다만 -_-;<br />
<br />
내가 이 책에 대해 갖고 있던 '인상'과 이 책의 '실재'는 한 1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듯 하다. 이 책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전부터 하도 이곳저곳에서 이 책에 대해 많이 떠들어대서, 책을 펴보기도 전에 이 책에 대한 인상이 결정지어졌다. '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고. 처세술 서적을 혐오하는 나로서는 '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책'도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책장 구석에 쳐박아 놓고 있다가 얼마 전에 심드렁하게 펼쳐보았다.<br />
<br />
그런데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 책은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재가 '성공한 사람들'인 것은 맞지만, 이 책은 그 성공의 전제 조건으로 '환경'과 '관습'을 제시한다. 내가 알기로 처세술이나 성공학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그 개인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는 대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그런 전제가 있어야 이렇게이렇게 해야 성공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겠지. 헌데 '환경'과 '관습'이라니? 다양한 학문에서 이뤄진 연구가 꼼꼼하게 인용되어 있는 이 책은, 차라리 사회학이나 경제학 책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span style="color:#999999;">(아참, 필자가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성공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이 책의 핵심은, 적당한 환경과 관습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어떠한 노력이나 재능도 빛을 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span><br />
<br />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감상에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10,000시간의 법칙"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0,000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긴데, 사람들은 보통 이 말에 큰 감명을 받고 "나도 만 시간을 투자해서 전문가가 되겠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막상 "성공하고 싶으면 만 시간을 투자하렴."이라는 얘기는 이 책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도리어 이 책은 만 시간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특정 활동에 10,000시간을 쏟을 수 있는 환경에 있지 않다면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걸 읽고 "나도 만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 -_-;<br />
<br />
또 빠지지 않고 기억되는 "대한항공 승무원의 위계 질서" 이야기. 이걸 보면서 "역시 한국 문화는 열등해."와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여러분, 이 책에서 내리는 결론은 전혀 그런 게 아니거든요? -_- 이 책의 얘기는 특정 상황에서 두 문화권의 사람이 있을 때 각자의 '관습'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는 얘기다. <span style="color:#999999;">(그리고 '생각보다' 그 관습의 영향이 크다는 거고.)</span> '특정' 상황에서는 한 관습이 다른 관습보다 '효율적'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언제나 그 관습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바로 다음 장만 봐도 아시아인들이 수학에 강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을 치켜세우고 있는데 무슨 한국 문화가 열등...<br />
<br />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 책은 처세술이나 성공학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이렇게 하면 당신은 성공한다!"가 아니라 "A씨는 왜 성공했을까?"를 다루고 있는 책이고, 성공에 있어 '환경'과 '관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웃기는 건 출판사에서까지 이 책을 처세술 책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이고, 표지에 가장 크게 써있는 말은 "성공의 화두, 당신은 아웃라이어인가?"인데, 이 문구들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처세술 책 광고로밖에 안 보인다. 알라딘에서는 아예 분류도 <span style="color:#3366ff;">"CEO/비즈니스맨을 위한 능력계발 > 성공학/경력관리"</span>로 되어 있더라. 이 책 보고 무슨 결론을 내리든 그건 독자의 자유지만, 그래도 필자의 집필 의도를 완전 무시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br />
<br />
사실 이 책을 펼쳐보기 전까지는 노정태님이 이 책의 번역을 맡았다기에 의아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진보신당 당원인 노정태님이 자본주의의 굴레 아래에서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을 번역했다고? 역시 이상과 현실 사이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는걸까...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난 지금은 왜 노정태님이 이 책을 번역했는지 알 것 같다. 노정태님은 '환경'과 '관습'이 개인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고가는 세태에 경고를 던지고 싶으셨던 것 아닐까.			 ]]> 
		</description>
		<category>|감상|</category>

		<comments>http://lovos.egloos.com/2461331#comments</comments>
		<pubDate>Fri, 30 Oct 2009 06:00:59 GMT</pubDate>
		<dc:creator>로보스</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마크 가브리엘, <끝나지 않은 2000년의 전쟁: 기독교 vs 이슬람>, 퉁크. ]]> </title>
		<link>http://lovos.egloos.com/2459819</link>
		<guid>http://lovos.egloos.com/2459819</guid>
		<description>
			<![CDATA[ 
  <center><div class="ttbReview"><table><tbody><tr><td><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903106&amp;ttbkey=ttblovos1239001&amp;COPYPaper=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din.co.kr/coveretc/book/coversum/8990903106_1.jpg" alt="" border="0"/></a></td></tr></tbody></table></div></center><br />
이슬람에 대해 잘 알 수 있다며 목사님이 추천해주신 책. 음... 뭐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이모저모로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책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점, 제목 낚시 -_- 이거 원제가 뭔지 아나? <em>Islam and the Jews: The Unfinished Battle</em><sup><a href="http://www.amazon.com/Islam-Jews-Unfinished-Mark-Gabriel/dp/0884199568" target="_blank">[1]</a></sup>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슬람과 유대인'이다. 어딜 봐서 '기독교 vs 이슬람'이냐? 책 목차만 봐도 제목이 헛소리라는 건 금방 증명된다.<br />
<br />
<span style="color:#3366ff;">1부 유대인에 대한 내 마음<br />
2부 코란에 묘사된 유대인<br />
3부 끝나지 않은 싸움 제1기: 유대인을 개종시키려고 애쓰는 무함마드(610~623)<br />
4부 끝나지 않은 싸움 제2기: 유대인의 거부와 무함마드의 응징(623~632)<br />
5부 끝나지 않은 싸움 제3기: 쫓겨나고 압제받은 유대인(632~1898)<br />
6부 끝나지 않은 싸움 제4기: 유대인의 이스라엘 건국과 전쟁의 확대(1989~현재)<br />
7부 무슬림과 유대인이 화해할 수 있는 방법</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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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슬람이랑 싸우는 기독교는 어디에? -_- 물론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다보니 중간중간 기독교 이야기도 꼽사리로 나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책 제목이 낚시라는 건 자명해보인다. 출판사가 섹시한 제목 되게 좋아하나보다. 자 그럼 책 내용으로 들어가보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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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제에 충실하게" 유대인들과 이슬람 교도들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찬찬히 훑어간다. 특히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슬람교 자체가 유대인들에 대한 극렬한 혐오감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것이 꾸란이 말하는 바이고 "정통" 꾸란 교사들이 가르치는 바이다. 필자 자신이 원래 독실한 이슬람 교도로 사람들에게 꾸란을 가르친 적도 있었던 사람이다. 그러다 외국에 나와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이슬람교에서 가르치는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이렇게 책을 쓴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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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필자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필자는 유대인과 이슬람 교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기독교회 뿐이라고 답한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뿌리 깊은 적개심을 없애려면 그리스도의 사랑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해결책' 하나 때문에 이 책 전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불편하다면 이 부분을 뛰어넘어도 유대인-이슬람 교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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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이 책에 대한 불만을 하나 더 말해야 할 듯. 알라딘에 올라온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면 다음과 같이 써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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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3366ff;">이슬람계인 저자 가브리엘 박사는 훗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하지만 이 책 반이슬람 친기독교 서적이 아니며, 기독교와 이슬람의 화해와 공존, 그리고 그 해결책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이슬람과 기독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독교도들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라고 주문하고 있다.</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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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슬람 친기독교 서적 맞다. 필자는 이슬람교가 '틀렸고' 기독교가 '옳다'고 말한다. 게다가 기독교와 이슬람의 화해? 뭔 헛소리냐! 애초에 기독교는 주인공이 아니라니까? -_- 내가 볼 때 이건 출판사 측에서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다. <span style="color:#999999;">(좋은 책을 출판사에서 다 깎아먹는 듯...)</span> 내가 볼 때 좀 더 정확한 기술은 다음과 같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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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3366ff;">이슬람계인 저자 가브리엘 박사는 훗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반무슬림 친유대인 서적이 아니며, 유대인과 무슬림의 화해와 공존, 그리고 그 해결책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이슬람과 기독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독교를 통해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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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이 이 책을 추천해주신 것은 "이슬람교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비록 순수하게 중립적이고 학술적인 책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목적은 달성한 듯 하다. 특히 꾸란의 형성 과정이나 이슬람교-유대교의 관계 등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나에게 이쪽 지식을 많이 전달해주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남는다. 과연 이 책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유일한' 꾸란 해석법인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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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에도 엄청나게 많은 분파가 있고, 그들 대부분은 성경을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일단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사이에 있는 신학의 차이만 해도 간단한 문제들이 아니지 않은가? 아님 자유주의 신학은 어떠한가? 이슬람 신학에도 비슷한 것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정통적인' 꾸란 해석은 유대인들에 대한 강력한 적개심을 가르친다 해도, 꾸란을 다르게 푸는 해석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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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필자는 '정통' 해석만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 해석이 잘못되었으니 이슬람교는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필자가 원하는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런 결론이 필수불가결했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아쉽다. 이슬람교 내에서 나온 다른 해석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도 가르쳐 주고 독자가 판단하게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조금 감정이입하기 쉬운 예를 들어 한국 개신교회를 보자. 개신교인이었다가 타 종교로 개종한 사람이 어느 날 "한국 교회에는 '기복신앙'이 팽배해 있고 곳곳에서 정통 교리로 가르쳐진다. 기복신앙은 잘못된 것이므로 개신교는 잘못되었다."라는 요지의 책을 썼다면? 나는 기복신앙 교리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은 억울하지 않을까? 이슬람교 신학자들 중에도 '당연히' 다른 해석을 찾은 사람이 있을텐데, '정통' 교리만 가르치고 까대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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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한다. 출판사의 오버로 좀 까인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책은 그래도 꽤나 객관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한 책이다. 앞서 말했듯 이 책에 실린 이슬람교 교리가 "얼마나 정통인지" 잘 모르겠다는 아쉬움은 있다만, 그래도 정통 교리를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었기에 만족한다. 나처럼 이쪽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얻을 것이 있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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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감상|</category>

		<comments>http://lovos.egloos.com/2459819#comments</comments>
		<pubDate>Wed, 28 Oct 2009 07:41:17 GMT</pubDate>
		<dc:creator>로보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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