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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obre el horizont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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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진위판단불가적망상성농후기담.</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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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Nov 2009 19:27:5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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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obre el horizont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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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날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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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시인의 이름을 가진 남자의 방은 그 이름의 옛 주인 삶이 그러했듯 춥고 고즈넉했다. 겨울바람이 창문을 덜커덩, 흔들고 지나가면 해경은 이불 아래 웅크린 몸을 더욱 둥글게 하며 책장을 넘기곤 했다. 해경의 좁은 자취방에는 기백 권의 책들이 쌓여 있었다. 지진이라도 일어나면 책에 깔려 죽을 거예요. 지인은 이따금 그런 농을 하며 웃었다.<br />
<br />
<A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block';this.innerHTML=''" href="javascript:void(0)" ;>읽기</A><DIV style="DISPLAY: none"> <br />
<br />
지인은 겨우내 해경의 방에서 머물렀다. 그이는 해경의 한 학년 아래 후배였다. 인사만 몇 차례 나눈 게 고작이던 지인이 짐가방을 둘러메고 찾아든 것은 가을도 중반을 넘긴 즈음이었다. 복학을 하려니까 집이 빚쟁이에 쫓기고 있어서. 그렇게 말하며 소주잔을 비우던 지인의 눈가에 어린 피로가 해경의 마음 어딘가에 걸렸다. 귀뚜라미가 요란스레 울던 밤, 해경은 잠든 후배의 몸 위로 한 채밖에 없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날부로 지인은 여러 선배와 동기들의 방을 전전하던 생활을 접을 수 있었다.<br />
<br />
수더분한 성미의 해경인지라 지인이 제집처럼 지내도록 나름 배려를 한다고 했는데도, 수업에 다녀오면 어느샌가 지인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해 놓곤 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자 해경도 그에 익숙해져, 요리하는 지인을 어깨너머로 넘겨다보며 오늘 저녁은 볶음밥이구나, 그런데 양파가 좀 적지 않니? 따위의 말을 건네게 되었다.<br />
<br />
-우렁각시와 사는 기분도 나쁘진 않지만, 넌 수업은 안 들어가니? <br />
-단위 수가 적어서 그런 거예요. 형 안 계실 때 다 출석하고 있어요.<br />
<br />
동거가 시작되고 몇 주가 지나도 지인이 손을 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책이었다. 해경이 보기에, 지인은 전공서 외의 책은 일절 읽지 않았다. 필경 손댈 엄두가 안 나는 탓도 있을 테지만. 다만 지인은 해경이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썩 좋은 목소리는 아님에도, 그래서 다소 부끄러워하면서도 해경은 지인이 조를 때마다 읽고 있던 책을 한 단락씩 읽어주었다.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 - 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 마음에 들었다. 방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는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을 원하지는 않는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br />
<br />
좁은 방, 언제나 밤은 짧았고 책의 페이지 수는 길었다. 해경은 책을 읽다 안경을 낀 채 잠이 들기가 일쑤였고 다음날 눈을 떠 보면 안경과 책은 가지런히 앉은뱅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책갈피를 끼워두는 것 역시 잊지 않은, 아직 잠든 채인 지인을 내려다보며 해경은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지인이 깨어나면 가장 먼저 묻곤 했다. 내가 혹시 잠꼬대라도 하지 않던?<br />
<br />
***<br />
<br />
봄이 오면 해경은 언제나 감기를 앓았다. 그 해에도 그이는 어김없이 학기초부터 자리에 누웠고, 지인은 묵묵히 아침상을 치우고는 학교로 향하기 전, 물이 든 컵과 약을 챙겨 쥐여주었다. 불 같은 이마에 얹을 수건을 적시는 것도 지인의 몫이었다. 지인은 혼자 살던 때에는 누가 병시중을 들어줬는지 굳이 묻지는 않았다. 다만 그이는 귀갓길 재래시장에 들러 검은 봉지 한가득 딸기를 사와서는, 헹구고 꼭지를 따 해경이 깨기를 기다렸다. <br />
<br />
하루는 해경이 약을 삼키지 못하고 켈룩거리면, 지인은 약을 손바닥에 뱉어내게 했다. 물을 마시게 하고는 이미 반쯤 녹은 흰색 알약을 입에 넣어주니 쓴맛에 해경이 얼굴을 찌푸렸다. 지인이 락앤락에 담아두었던 딸기를 꺼내왔다.<br />
<br />
-형, 딸기 먹어요. 많이 좀 먹어요.<br />
<br />
***<br />
<br />
그해 여름은 유난히 눅눅하고 후텁지근했다. 열린 문 대신 늘어진 대나무발이 흔들거렸다. 지인은 맨바닥에 늘어붙듯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해경이 알전구등을 켰다. 그러고는 책을 한 권 집어들고서 바닥까지 친 모기장 아래로 기어들어왔다. <br />
<br />
-형, 선풍기 안 사면 저 미칠지도 몰라요.<br />
<br />
방에는 선풍기가 없었다. 지인이 이유를 묻자, 해경은 간단히 대답했다. 책장이 날리잖니. 체념과 교류하는 법을 익힌 지인이 연방 부채질을 하며 모로 누웠다. 방에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같은, 그 흔한 소일거리 하나 없었다. 그저 쌓이고 쌓인 책만이 여흥이고 오락인 갑갑한 방이 뭐가 그리 좋다고, 해경은 불평 한 번 하지 않는 후배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물론 선풍기는 사지 않았다.<br />
<br />
그날 골라든 책은 헤세의 지와 사랑이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바로 그 역할은 오직 골드문트만이 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떠나고 없는 친구를 그리워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생각하며 그리움에 잠겼다…. <br />
<br />
책장 속에서 무엇인가가 팔랑이며 떨어졌다. 집어드니 그것은 책갈피 대용으로 끼워두었음 직한 사진이었다. 순간 눈앞이 어찔해지는 기분에 해경은 자신도 모르게 사진을 구기고 말았다. 동시에 지인이 몸을 기울여 들여다보았다.<br />
<br />
-…누구예요? <br />
-어… 예전에 같이 살던 사람이야.<br />
<br />
일순 마주친 지인의 눈동자가 평평한 마분지처럼 보였다는 사실을 해경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이는 그저 후배의 시선을 피하며, 여상스러움을 가장해 사진을 쓰레기통에 밀어 넣었다. 지인은 그 일련의 동작들을 끝까지 지켜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누웠다. 그러고는 습관처럼 중얼거렸다.<br />
<br />
-손선풍기라도 좋으니까, 하나만 사요.<br />
<br />
안 그러면 정말 돌아버릴지도 몰라, 지인이 마음속에서 그렇게 덧붙였다는 사실을 해경은 물론 알지 못했다. <br />
<br />
***<br />
<br />
문득 돌아보니 지인이 처음 해경의 방을 찾아들었던 계절이 와 있었다. 해경은 부러 묻지도 않았고 또 지인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 지인의 집은 좀 형편이 피어 따로 사는 아들에게 용돈이나마 쥐여줄 수 있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해경의 방에서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인은 그러지 않았다. 다만 해경이 눈치채지 못하는 한도 내에서 나날이 찬거리만 호화로워지고 있었다. <br />
<br />
그날은 가랑비가 내렸다. 접이식우산 두 개가 서랍장에 그대로인 걸 보니 해경은 빈손으로 수업에 들어간 모양인데, 마중을 나가야 할까 싶어 날씨를 살피던 중이었다. 점퍼에 팔을 꿰어넣고 방을 나서려는데 누군가 우산을 든 채 집앞에 서 있었다. 감청색 정장 차림의 남자였다. 지인의 스니커즈가 정지했다.<br />
<br />
-죄송한데, 여기 살던 사람 이사갔습니까?<br />
-누굴 찾으시는데요?<br />
-김해경이라고, M대 건축학과 다니는 사람인데 혹시 아십니까? 아직 졸업은 안 했을 텐데….<br />
<br />
지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남자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썩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이 어렴풋 떠올랐다.<br />
<br />
-지금 수업 들어갔는데요. 무슨 일이시죠?<br />
-그 친구가 제 책을 좀 많이 맡아주고 있어서 말입니다. <br />
<br />
침묵. 지인은 언젠가 해경이 버렸던 사진을 기억해냈다. <br />
<br />
-…혹 해경이 아시거든, 한성하가 다녀갔더라고 전해주세요.<br />
<br />
침묵. 지인은 언젠가 잠든 해경의 몸 위로 홑이불을 덮어주던 때, 그이가 잠결에 중얼거리던 이름을 기억해냈다. <br />
<br />
***<br />
<br />
해경은 성하의 두 학년 아래 후배였다. 두 살 때부터 지방의 백부 댁에서 자라온 그이는, 기숙사 추첨에서 미끄러지자 갈 곳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동기와 선후배들의 방을 전전하던 해경을 거두어준 것이 성하였다. 그이들은 책이 그득한 성하의 방에서 이 년을 함께 살았다. 방은 생활공간이며 놀이공간이자 휴식공간이었다. 입시용 문제집과 전공서 이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던 해경은, 성하가 쌓아놓고 읽는 온갖 나라의 문학서에 호기심을 보였다. 성하는 어린 후배에게 때때로 이상의 시를 읽어주었다. 그이들은 알전구 아래 나란히 엎드려 책을 읽다 잠들곤 했다. <br />
<br />
해경이 처음으로 안경을 맞춘 날은 성하가 처음으로 해경을 안았던 날이기도 했다. 그이들은 책 냄새가 나는 좁은 방에서 옷도 다 벗지 않은 채로 몸을 섞었다. 방에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었다. 땀과 체액의 냄새는 고스란히 책들 사이로 가라앉았다. 해경은 서툴러서 더 거칠게 몸을 움직이는 서슬에 퉁겨져 나가 깨진 안경을 다시 맞춰야 했다.<br />
<br />
성하는 졸업도 하기 전에 B시에 본사가 있는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그이는 얼마 안 되는 짐 속에 이상 전집 두 권을 끼워넣어 B시로 떠났다. 그리고 그이의 방에는 산더미 같은 책들과 해경이 남았다.<br />
<br />
***<br />
<br />
겨우내 해경은 다리를 절었다. 학사 앞 계단에서 눈을 밟고 미끄러진 탓이었다. 지인은 목발을 짚은 해경의 가방을 들어주느라 항상 자신의 수업에는 지각을 해야 했다. 학기말 고사가 끝난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이불 속에서 몸을 둥글려 책을 읽던 해경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지인도 언제부터인가 읽게 된 자신의 책장을 가만히 넘기고만 있었다. 겨울바람이 덜커덩, 창문을 흔들고 도망치면 해경은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br />
<br />
-B시에 가고 싶다.<br />
-왜요, 바다 보려고요?<br />
-…응….<br />
<br />
지인은 근처 피씨방에 들러 열차표를 예약했고, 하룻밤 치의 짐을 꾸렸고, 해경의 마른 몸을 부축해 객차에 앉혔다. 열차가 흔들림도 없이 B시로 향하는 동안 해경은 창밖만 하염없이 내다보았다. 지인은 호주머니 속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또 눈이 오려는지 구름이 몰려들어 있었다. <br />
<br />
번쩍번쩍하는 빌딩 앞에 서 기다리는 내내 해경은 안절부절 못해했다. 멀찍이 선 지인은 서툰 손놀림으로 담배를 피웠다.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직장인 무리 사이에서 감청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명백히 곤혹스러워하는 눈빛으로, 그는 해경을 노천카페로 이끌었다. 지인이 담배를 떨구어 스니커즈로 문대어 끄고는 다섯 대째의 담배를 꺼내 물었다. <br />
<br />
대화는 짧았다. 침묵만이 길었다. 바쁜 걸음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 너머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지인에게는 얼마 안 되는 대화나마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그이는 한 가지, 해경이 꺼내어 내미는 책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세 권째의 이상 전집. 승강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만치 어색한 승강이가 오가고, 결국 감청색 정장을 입은 남자는 책을 받아들지 않았다. 해경의 어깨가 떨구어지는 것을 보며, 지인은 비어 버린 담뱃갑을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뜨렸다.<br />
<br />
***<br />
<br />
-바다 보러 가죠.<br />
<br />
책과 함께 남겨진 해경은, 지인이 두 갑째의 담배를 비우는 동안 고개를 떨어뜨린 채 미동도 없었다. 지인은 마침내 두 번째 담뱃갑을 떨어뜨리고, 그러고는 가방을 짊어지고 천천히 그이에게로 다가갔다. 해경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 그이는 미약하게 움찔했다. 지인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br />
<br />
-바다, 보러 가요.<br />
<br />
***<br />
<br />
마른 몸을 업어든 지인이 그림자를 드리운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은 차가웠고 등 뒤로 기대오는 해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 모래사장에는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인은 천천히 오후의 해변을 거닐었다. 먼 하늘에서 갈매기들이 울고 있었다. 파도가 달리듯이 밀려왔다, 거품이 되어 흩어져가기를 반복했다.<br />
<br />
모래의 바다 한복판에 책들이 쌓여 있었다. 옆으로 길게 쌓인 모양새가 흡사 책의 무덤처럼 보였다. 가장 위에 있는 것은 두 권의 이상 전집이었다. 지인은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일순 입을 벌렸다. 그이는 소리내 말했다. 날자. 지인은 뒤로 돌더니 서서히 해경의 몸을 내려, 책 위에 반듯하게 눕혔다. 해경은 눈을 감은 채로 깨어나지 않았다. <br />
<br />
해경에게서 안경을 벗겼다. 묵직한 은테를 잠시간 관찰하듯 보던 지선이 그것을 자신의 두 귀로 걸쳤다. 어지러움이 찾아듬과 동시에 시야가 부옇게 번져났다. 그이는 주머니에서 지포라이터를 꺼내들었다. 탁, 불붙은 은색의 라이터가 그이의 손에서 해방되었다. 순식간에 옮아붙은 불길은 날개처럼 거대하게 자라났다. 핥는 듯한 뜨거움에 지인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br />
<br />
지인은 해경과 해경의 책들이 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경과 해경의 모든 책들이 불길 속에서 재로 화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이는 점퍼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br />
<br />
***<br />
<br />
지인의 방은 낡고 비좁았다. 그이는 해경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 대학가 원룸촌을 벗어난 뒤에도 그 방에서 일 년을 더 살았다. 밤이면 지인은 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그의 방에는 기백 권의 책이 쌓여 있었다. 그이는 때로는 일기를 쓰기도 했다. 그의 첫 일기는 해변에서 이상 전집의 세 번째 권을 태우던 날에 쓰여졌다. 그날 보았던 해경의 옆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쓴다는 것이 나날의 습관이 되어갔다.<br />
<br />
그러나 지인은, 자신이 해경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끝까지 적지 않았다. 김해경에 대한 양지인이 품었던 감정과 환상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채 온전히 그이 자신의 것으로만 남았다. <br />
<br />
덜커덩,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지나갔다. <br />
<br />
<br />
<br />
<br />
* THE YELLOW MONKEY - <聖なる海とサンシャイン> PV의 오마쥬임을 밝힙니다.<br />
<br />
* 이상 <날개><br />
* 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br />
<br />
<br />
<A onclick="this.parentNode.style.display='none';this.parentNode.previousSibling.innerHTML='클릭';" href="javascript:void(0)">닫기</A></DIV><br />
<br />
<br/><br/>tag : <a href="/tag/창작" rel="tag">창작</a>			 ]]> 
		</description>
		<category>글: 끝난</category>
		<category>창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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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Nov 2009 19:12:00 GMT</pubDate>
		<dc:creator>핰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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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 -18. [終]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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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A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block';this.innerHTML=''" href="javascript:void(0)" ;>읽기</A><DIV style="DISPLAY: none"><br />
<br />
<br />
 주인님의 장례식은 쓸쓸했다. 사용인들과 클로디아 아가씨, 성직자 한 분이 참석자의 전부로, 날씨마저 흐려 이른 오후임에도 초저녁 같았다. 모두가 저택으로 돌아간 뒤, 집사님과 나는 공터에 불을 피우고 주인님의 물건들을 태웠다. 주인을 잃은 새 물감과, 오래된 붓과 파레트, 막대한 양의 스케치북, 그리고 이젤이었다. <br />
<br />
 문 안쪽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림 속 소녀와 똑같이 생긴 시체를 끌어안고 우는 주인님과, 느리게, 너무 느려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지만 분명히 움직여 주인님의 등을 쓸어내리던 시체의 손과, 그런 시체의 등을 쏜 총알이었다. 돌아보니 집사님이 총을 내리고 있었다. 일전에 집사님의 방에서 보았던 은색 리볼버였다. 주인님의 울음 소리가 그쳤다. 동시에 시체의 손도 멈추었다. 집사님은 지팡이를 짚고서 천천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주인님의 몸에서 시체를 떼어낸 다음, 나를 불렀다.<br />
<br />
 "주인님을 업게."<br />
<br />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는 머리였다. 두 발, 연달아 쏘았다. 주인님의 몸에서는 미약한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가벼운 몸이었다. 집사님은 문을 잠그었고,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계단을 걸어 올라온 끝에 지상에 도착했다. <br />
<br />
 "주인님, 주인님."<br />
<br />
 나는 주인님의 몸을 흔들었다. 미동도 없다. 집사님은 가만히 주인님의 맥을 짚어보더니,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br />
<br />
 불 속에 물건들을 넣다보니 문득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양산을 받쳐든 황금빛 소녀. 지하의 시체와 닮은 것 같다고 일순 생각했지만, 께름칙한 생각은 털어버리기로 했다. 대신하듯 펄럭이며 타들어가는 스케치북을 꼬챙이로 꾹꾹 눌러넣다가, 예의 클로디아 아가씨의 그림을 발견했다. <br />
<br />
 "집사님."<br />
 "왜 그러나?"<br />
 "클로디아 아가씨가 안은 아기, 누구일까요?"<br />
 "……."<br />
<br />
 집사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불에 비친 옆얼굴은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또 그늘져 있었다. 나는 대답 듣기를 포기했다. 불 속을 들여다 보았다. 금발 소녀의 그림에 불이 옮겨붙어, 태양처럼 붉게 타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br />
<br />
건국제에는 결국 집사님이 동행하시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나는 아가씨의 히스테리를 피할 수 있었고,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br />
<br />
 그리고 나는 저택 일을 그만두었다. 벌써 십여 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아르킨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는 집사님은 아직도 히즈넨 저택에 계신다고 한다. 잘 나가는 사업가로 변신하신 클로디아 아가씨의 곁에서 비서 겸 집사로 유능함을 발휘하고 계신다고.<br />
<br />
 그리고 저택은 건재하다. 총을 맞긴 했지만 어쩌면 아직 괴물도 그대로일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우는 이의 등을 쓸어내리기 위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면, 한 번 찾아가 보라.<br />
<br />
 물론 나는 평범하게 인간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싶다.<br />
<br />
<br />
 <br />
<br />
<br />
<span style="color:#c0c0c0;">끝났다!!!<br />
눈물이 나려 해..........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참 저렴하지만 일단 끝 늘 그렇듯 불친절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span><br />
<br />
<br />
<A onclick="this.parentNode.style.display='none';this.parentNode.previousSibling.innerHTML='클릭';" href="javascript:void(0)">닫기</A></DIV><br/><br/>tag : <a href="/tag/창작" rel="tag">창작</a>,&nbsp;<a href="/tag/양산소녀" rel="tag">양산소녀</a>			 ]]> 
		</description>
		<category>글:&lt;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gt;</category>
		<category>창작</category>
		<category>양산소녀</category>

		<comments>http://lanziee.egloos.com/5115933#comments</comments>
		<pubDate>Sun, 26 Jul 2009 14:33:00 GMT</pubDate>
		<dc:creator>핰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 -17.  ]]> </title>
		<link>http://lanziee.egloos.com/511592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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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A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block';this.innerHTML=''" href="javascript:void(0)" ;>읽기</A><DIV style="DISPLAY: none"><br />
<br />
<br />
얼마 뒤, 도시의 한켠의 불법 노예시장에 히즈넨 저택의 집사가 은밀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돈이 얼마가 들건 상관하지 않고 주로 통통한 여자를 사들였다. 대체로 일이주 간격이었고, 그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히즈넨 가의 외아들 몫의 재산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앨번은 노예를 사들여 약으로 정신을 잃게 하고는, 히즈넨 가의 손님으로 있는 금발의 소녀를 들여보냈다. 조심스레 문 바깥에 서 있던 리헬 히즈넨은, 안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효과음에 몇 번씩이나 정원으로 뛰쳐나가 토악질을 했다. 포식를 마친 소녀에게로 돌아가면 피투성이 바닥에 인간이었던 신체의 일부와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사방에 진동하는 역한 냄새와 피와 고깃조각을 처리하는 것은 집사 앨번의 몫이었다. 그는 안경에 튄 피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문질러 닦았다.<br />
<br />
재산이 바닥나자 이번에는 애지중지하던 그림들을 처분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림들마저 바닥이 나자 리헬은 울며 앨번에게 매달렸다.<br />
<br />
"부탁할게, 제발, 앨번. 돌아가신 어머니를 봐서라도 도와줘, 제발."<br />
<br />
리헬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재능이 없다. 십 년이 걸린다 해도 아마추어전에조차 걸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포에티만 있어준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자신으로서는 화폭에 옮기는 것도 역부족인 아름다움이지만, 그렇다해도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어떻게든 만족할 것 같았다. 그녀만 있다면.<br />
<br />
다음날부터 도시의 묘지에는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혈기방장한 소년들이 유령의 정체를 확인하려 찾아들었다가는 실종되었다. 새벽,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앨번은 문득 아내의 화장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그는 리헬에게 이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삼십여 년간 묵묵히 저택을 위해 살아온 남자는 그러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는 리헬 히즈넨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었다. 그는 굶주린 떠돌이 소년을 거두어 준 크리스티 히즈넨의 뱃속에 있던 것이 리헬임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낳을 아이의 그림자를 원했다. 손에 남은 핏자국을 문질러 지우는 앨번의 뒷모습을 안나의 눈이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br />
<br />
그리고 그날. 자네리에 의해 십여 년을 늦춰진 날이 왔다. 포에티의 정체가 저택 사람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발견한 것은 어린 유하스였다. 앨번 부부의 아기 클로디아를 보는 것이 주된 일인 그녀는, 그날따라 유난히도 심한 편두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채다 누군가의 울음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꼭 구토하는 소리처럼도 들리던 그것의 근원지를 찾아 복도를 돌아다니던 그녀는 어떤 방에서 이상한, 마치 푸줏간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가 난다고 생각해 조심스레 문을 열어 보았다. 다음 순간 그녀의 비명소리가 저택을 가득 채웠다.<br />
<br />
노윈은 리헬과 앨번이 얽힌 이 일을 조용히 덮으려 했다. 그는 포에티의 처분을 조금 더 고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노윈의 남은 평생을 앨번의 증오 속에서 살게 만든 결정이었다. 창고에 갇힌 포에티를 가엾게 여긴 안나가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숨어든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포에티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물론 포에티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안나가 죽은 지 반나절 만에 창고 문이 열렸다. 고용인들의 선두에 선 것은 앨번이었다.<br />
<br />
"안나!"<br />
<br />
대답은 없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어둠 속에서 날선 금빛 눈동자가 빛나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앨번의 손이 반사적으로 격철을 당겼다. 무엇인가 구석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사람의 손.  꽉 쥐여진 손이 덩그라니 떨어져 있었다. 앨번은 권총을 쥔 채로 안경을 밀어올렸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곳에는 너덜너덜해진 안나의 몸이 있었다.<br />
<br />
앨번은 비명을 질렀다. 그는 미친듯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왼쪽 발목에 데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포에티가 웅크린 채 웃고 있었다. 가슴과 머리에 총을 맞고서도, 그녀는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해맑게 웃었다. 앨번은 절뚝거리며 물러났다. 우르르 달려든 사용인들이 포에티를 붙잡아 누르는 동안, 그는 가다듬어지지 못한 호흡으로 한때 안나였던 시체를 보았다. 앨번은 멍하니 안나의 손을 펼쳐 보았다. 피 묻은 조그마한 호박 귀걸이. 그는 현실감을 잃고 뒤를 돌아보았다. 포에티의 귓가 한쪽이 찢어져 있었다. 귀걸이 한 짝을 손에 쥔 채, 바르톨 앨번은 그 자리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br />
<br />
<br />
<br />
<br />
<span style="color:#c0c0c0;">이 부분을 쓰고 싶었습니다 네...부끄럽군요</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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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글:&lt;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gt;</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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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6 Jul 2009 14:31: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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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 -16.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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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
잘 들어, 이 골목으로 쭉 달려가면 오솔길이 나와. 그 길을 따라서 다른 마을로 가. 거기까진 감시하지 않을 거야. 절대 돌아와선 안 돼. 네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몰해선 안 돼. 모든 사람이 널 해칠 거야. 전부 잊어버려.<br />
<br />
…너도?<br />
<br />
…나는…. …어서 가!<br />
<br />
<br />
<br />
총성이 들려온다. 건물 뒤편에 숨은 소년이 소녀를 골목길로 밀어낸다. 소녀는 머뭇머뭇거리다, 고개를 한 번 주억거리고는 달리기 시작한다. 벽 너머, 불타는 건물 안에서 분노한 군중이 누군가를 난폭하게 끌고 나오고 있다. 흐트러진 금발을 늘어뜨린 마른 사람이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불분명한 외모. 목과 가슴팍에서 피가 번지고 있다.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그가 바닥에 내던져진다. 벽 뒤에서 훔쳐보던 소년이 입술을 일그러뜨린다.<br />
<br />
그의 얼굴은 어떤 소녀와 꼭 닮아 있다.<br />
<br />
<br />
<br />
결국 합격자 통지서는 오지 않았다. 던스트전展이 끝나고 시작된 아마추어 전시회에 작품을 냈지만 이번에도 떨어진 것이다. 미술관을 찾은 리헬은 의기소침한 채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포에티는 함께 오지 않았다. 최근들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잦았다. 일찍 일어나 혼자 저택을 나서며, 그나마 노윈이 다시 출장지로 떠났다는 사실이 반가울 뿐이었다.<br />
<br />
"아…."<br />
<br />
문득 한 그림 앞에서 발이 멈추었다. 한눈에도 들어오는 강렬한 색감. 그러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모델 쪽이었다. 어딘지 포에티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금발과 창백한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작가의 이름을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J. 멜빌른이라는 이름의, 처음 듣는 이였다. 리헬은 그러고도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못하다가, 불현듯 휙 걸음을 돌려 전시장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꽃다발을 사들고 돌아온 그는 안내처의 젊은이에게 꽃을 내밀었다.<br />
<br />
"저, 멜빌른이라는 분께 좀 이걸 전해주십시오!"<br />
"혹시 아는 분이십니까?"<br />
"예? 아뇨, 저기, 저는 그냥..."<br />
<br />
리헬이 허둥대는 사이, 회색 눈의 직원은 깍듯한 동작으로 꽃을 받아들더니 일순 부드럽게 미소지었다.<br />
<br />
"제가 멜빌른입니다. 감사히 받도록 하지요."<br />
<br />
그는 자신을 자네리 멜빌른이라고 소개했다. 지방 출신으로, 도시 상경은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리헬은 그를 식사에 초대했다. 포에티 이후로는 오랜만의 손님 맞이였다. 스타일도 좋아하는 구도도 색을 쓰는 방식도 전혀 달랐지만, 처음에는 독학으로, 나중에는 소규모의 교습실에서 그림을 배웠다는 점이 공통점이었다. 무엇보다, 자네리도 던스트를 좋아했다. 두 사람은 죽이 맞아 한참동안 열성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우울하던 기분이 많이 풀린 상태로 리헬은 앨번의 부름을 받았다. 저녁 준비가 다 되었다. 리헬과 자네리는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br />
<br />
"...마리카?"<br />
<br />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은 포에티였다. 그런데 자네리의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 포에티를 보더니 낯빛이 바뀐 것이다. 포에티는 자신을 떼어 놓고 혼자 전시관에 다녀온 리헬에게 토라진 얼굴을 해보이면서도, 묘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네리를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리헬이 포에티를 소개하자, 그제야 자네리는 어색하게 몸을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인가 충격을 받았다는 표정을 미처 감추지 못했다.<br />
<br />
식전의 한담 시간에 비해 식사 자리는 어딘지 불편했다. 덕분에 식사는 리헬이 예정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끝나버렸다. 포에티는 평소에 비해 별로 먹지도 않은 채 자기 방으로 휙 올라가버렸고, 자네리도 음식을 거의 남긴 상태였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에 찬 것을 리헬은 놓치지 않았다. 응접실로 이동해, 다시금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대화는 조금 전처럼 활기를 띠지 못했다. 조용한 밤, 응접실의 테이블에 차와 다과를 놓은 채 두 사람 사이를 침묵이 가라앉았다. 리헬은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무엇인가 화제를 꺼내겠다고 생각했으나 자네리에게 선수를 빼앗겼다.<br />
<br />
"아까 그 아이가..."<br />
"예?"<br />
<br />
다시 침묵.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말을 시작한 것은 리헬이었다.<br />
<br />
"포에티를 아십니까?"<br />
<br />
자네리의 눈빛이 흐려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온 것은 무엇인가 두려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br />
<br />
"제가 아는 아이가 맞다면... 알고 있습니다."<br />
"저는 그녀를 모릅니다. 그녀 역시 자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더군요."<br />
"어떻게 그럴 수가..."<br />
"뭔가 아시는 게 있다면 가르쳐 주십시오."<br />
"제가 아는 그 아이의 이름은 마리카입니다. 포에티는.. 제 기억이 맞다면 마리카의 아버지 이름이었고요. "<br />
<br />
자네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탁자 위에 고정되어 있던 그의 시선이 서서히 올라왔다. 그는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br />
<br />
"제 고향은 시골 마을입니다. 제가 열한 살 때 마을엔 연속된 실종 사건이 일어났었는데, 범인은 제 옆집에 사는 남자였죠. 그는 오랫동안 혼자 살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집에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금발의 아주 예쁜, 예, 마리카였습니다. 전 그 아이와 아주 친했었죠."<br />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자네리 씨가 열한 살 때라면 포에티는…,"<br />
"소문에 의하면," 자네리는 말을 잘랐다. "마리카의 아버지는, 십 년 동안 같은 곳에서 똑같은 얼굴로 살았다고 하더군요."<br />
<br />
리헬의 얼굴이 헬쓱해졌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자네리는 어두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br />
<br />
"실종된 사람들은 전부 너덜너덜해진 시체로 그 집 지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마치 짐승의 이빨에 의해 뜯겨나간 것처럼요."<br />
"설마..."<br />
"예. 그들은 전부 잡아먹힌 겁니다."<br />
<br />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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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글:&lt;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gt;</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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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6 Jul 2009 14:30: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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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 -15.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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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
<br />
그날 저녁, 계단에 걸터앉은 채 청소하는 사용인들을 그리던 리헬에게 앨번이 다가왔다.<br />
<br />
"도련님, 오늘 새벽에 주인님께서 돌아오신다는 기별이 왔습니다."<br />
<br />
기대어 앉아 있던 포에티가 고개를 든다. 리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앨번이 돌아간 다음, 리헬은 포에티를 쓰다듬고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br />
<br />
"아버지가 오신대, 포에티."<br />
"아버지?"<br />
"응."<br />
<br />
포에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br />
<br />
"아버지가 뭐야?"<br />
<br />
리헬은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곧 포에티가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웃으며 다시 말했다.<br />
<br />
"아빠 말이야."<br />
"아빠?"<br />
<br />
포에티의 표정이 묘했다. 그녀는 정말로 처음 듣는 단어를 발음하듯이 발음하고 있었다. 리헬은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br />
<br />
"아냐, 아무 것도 아냐."<br />
<br />
리헬에게 있어 부친이 돌아온다는 소식은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영향력이 큰 것이었다. 그는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잠도 거의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이 되어 마차가 들어온다 짐을 내린다 부산스러워질 무렵에서야 까무룩 선잠이 들었다가 앨번에 의해 깨워져 현관으로 나왔다. 노윈의 무뚝뚝한 옆얼굴이 보였다.<br />
<br />
"돌아오셨어요."<br />
"그래."<br />
<br />
어쩐지 눈앞이 흐리다. 몇 차례 힘주어 눈을 깜빡이는 사이 노윈이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들어 불쑥 내밀었다.<br />
<br />
"선물이다."<br />
<br />
한눈에도 커다란 봉투였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책이 들어 있었다. 리헬은 형식적으로 말했다.<br />
<br />
"감사합니다, 아버지."<br />
"누가 와 있느냐?"<br />
<br />
힐금 보니 포에티의 방에 여태 불이 켜져 있었다. 리헬은 허둥대며 둘러대었다.<br />
<br />
"아, 저, 제 모델이..."<br />
"피곤하니 쉬겠다. 너도 들어가봐라."<br />
<br />
리헬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자신을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현관을 통과해가는 아버지의 등을 맥없이 올려다보았다.<br />
<br />
방으로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나온 것은 경제학 서적이었다. 리헬은 헛웃음을 지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엄마. 신음하듯 중얼거리다, 문득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어보니 찾아온 것은 앨번이었다.<br />
<br />
"잠을 못 이루신 것 같기에 와 봤습니다."<br />
<br />
누가 가족인지 모르겠군, 생각하니 고마우면서도 입맛이 쓰다. 앨번이 타 온 차를 마시며, 리헬은 한동안 가만히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앨번은 언제나처럼 지시를 기다리듯 차분한 얼굴로 문가에 서 있다. 앨번은 리헬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저택에서 일해오던 사용인이었다. 아직 리헬이 소년이고 앨번은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있던 즈음부터, 그는 집사로서 리헬과 노윈에게 헌신했다. 그가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았을 때, 노윈은 기꺼이 입회인과 후견인이 되어 주었다. 어머니도 형제도 없는 리헬에게, 앨번은 가족처럼 그림자처럼 곁을 지키는 존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가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만 실감이 날 뿐이다.<br />
<br />
"앨번."<br />
"예, 도련님."<br />
"차를 한 잔 더 부탁해."<br />
"예, 그러겠습니다."<br />
<br />
리헬은 침울히 고개를 흔들어 저었다. 혼자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 포에티와 단 둘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생각하며, 앨번이 돌아올 때까지 홀로 앉아 있었다.<br />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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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양산소녀</category>

		<comments>http://lanziee.egloos.com/5115923#comments</comments>
		<pubDate>Sun, 26 Jul 2009 14:28:00 GMT</pubDate>
		<dc:creator>핰후</dc:creator>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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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 -14.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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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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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
<br />
저택으로 돌아온 리헬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메이드 안나였다. 몇 번인가 문을 걷어찼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상당히 불쾌한 얼굴로 나타난 그녀는, 그러나 돌아온 사람이 리헬이라는 것을 포함해 무엇부터 놀라야 할지 몰라하는 얼굴을 했다.<br />
<br />
"도련님? 우산을 어디다 두고, 아니 그 애는 누구…,"<br />
"손님방부터 좀 치워줘!"<br />
<br />
기막혀하면서도 지시대로 움직이는 안나를 뒤쫓아 계단을 올랐다. 발치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은 아랑곳않고 복도를 가로지르면, 안나가 객실의 문을 열었다. 소녀를 침대에 눕힌 뒤 인기척에 돌아보니 앨번이 문가에 서 있었다.<br />
<br />
"도련님, 우산을 잃어버리신 것 같군요."<br />
<br />
그제서야 자신의 몰골을 자각한 리헬은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무어라 말하기 전에 앨번의 행동이 먼저였다.<br />
<br />
"안나, 손님이 입으실 옷을 구해오도록. 도련님도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해 왔으니 우선 옷부터 갈아입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br />
"아... 고마워."<br />
<br />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내려다보니 물에서 건져낸 고양이가 따로 없다. 직접 갈아입겠다며 앨번을 극구 뿌리쳤으나 지고 말았다. 커다란 타월로 물기를 털어내는 앨번의 손에 머리를 맡긴 채, 침대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리헬은 생각했다. 만일 아이가 눈을 뜨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br />
<br />
기우였다. 달도 없이 캄캄한 밤에, 리헬은 소녀가 누워 있는 객실에서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이했다. 그는 밤이 흐르는 내내 소녀의 얼굴만을 들여다보았다. 길게 자란 속눈썹이 뺨 위로 황금빛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그림자가 움찔, 작게 떨렸을 때, 리헬은 환희와 긴장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황금빛 눈동자가. 실로 그림 같은 빛깔이었다. 소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좌우를 돌아보더니 리헬을 발견하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이윽고 작은 입술이 열리고 흘러나온 목소리가 지나치게 평범하게 느껴졌을 정도로, 시트를 움켜쥐는 작은 동작 하나조차 여신처럼 아름다웠다.<br />
<br />
"넌 누구야? 여긴 어디야?"<br />
"나는.. 나는 리헬이고 여긴 우리집이야. 네가 길에 쓰러져 있어서 데려왔어."<br />
<br />
리헬. 소녀가 발음을 따라하듯 리헬의 이름을 입 속에서 굴려 본다. 리헬은 진한 행복이 피 대신 심장을 채우는 것을 느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br />
<br />
"그래, 리헬. 네 이름은?"<br />
"포에티."<br />
<br />
포에티. 어떤 꽃의 이름보다도 아름답게 들린다. 자신이 지어보일 수 있는 가장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리헬은 소녀의 금발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소녀가 따라 웃었다. 어째서일까, 동시에 리헬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다.<br />
<br />
다음날부터 리헬의 일과에 변화가 생겼다. 그는 포에티의 손을 잡고서 마을을 돌아다녔고 도시락을 싸들고 공원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그가 가는 곳에는 포에티도 반드시 동행했다. 이따금 전문 모델을 부르곤 하던 리헬은 일절 모델을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는 오로지 포에티만을 그렸다. 본래 표현은 서투르지만 타고난 성품이 다정한 그였다. 소녀는 처음에는 다소 경계하는 듯했으나 빠르게 마음을 열어갔다.<br />
<br />
저택의 사용인들은 미소 띤 얼굴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다만 집사인 앨번만은 무표정한 얼굴 아래로 조금 복잡한 심경이었다.<br />
<br />
"주인님께서 돌아오시면 저 아이의 처지도 곤란해질 테지."<br />
<br />
아내인 안나는 그런 그를 향해 지나치게 이른 걱정이라고 일축해버리곤 했지만, 앨번이 옳았다. 수도 출장으로 장기간 저택을 비우고 있는 부친 노윈과 리헬의 충돌은 리헬이 아직 포에티만하던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리헬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고, 노윈은 리헬이 수도에서 대학을 마치고 자신의 사업을 잇기를 바랐다. 심약한 리헬이었지만 거기서만큼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br />
<br />
사용인 입장에서야 아무래도 상관 없는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는 문제였지만, 개입할 문제도 아닌 것이 사실이었다. 실제로 포에티가 나타난 이후의 리헬은 전에 없이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는 하루에 한 번씩 포에티를 이끌고 미술관을 찾았다. 그녀는 미술 자체에는 별다른 흥미를 갖지 않았지만 리헬이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회라는 사실만으로 호감을 갖는 듯했다. 더군다나 던스트의 그림과 꼭 닮은 포에티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녀는 묘하게도 주목받는 것에 익숙한 듯이 행동했다. 그런 점마저 리헬로서는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더해주는 요소나 다름없었다. <br />
<br />
어느 볕이 강하던 오후, 리헬은 눈부셔하는 포에티를 위해 양산을 샀다. 하얀 양산 위로 파랗게 펼쳐진 하늘, 순간 바람이 불어와 꿀을 부은 듯 흘러내린 눈부신 금발이 흩날렸다. 리헬과 눈이 마주치자, 포에티는 환하게 웃었다. 눈이 멀 것만 같은 아름다운 존재. 그 광경은 오래도록 리헬의 안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br />
<br />
<br />
<br />
<br />
<br />
<span style="color:#c0c0c0;">아....문장이 진짜....고자 같아서 내가 눈물이 다 난다.....<br />
사족으로 포에티는 릿신과 더불어 핰후월드 공식 미인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리헬의 눈으로 보는 포에티의 미모도는 한없이 999에 가까운 수치이니 오글거려도 봐줍시다ㄳ</span><br />
<br />
 <A onclick="this.parentNode.style.display='none';this.parentNode.previousSibling.innerHTML='클릭';" href="javascript:void(0)">닫기</A></DIV><br/><br/>tag : <a href="/tag/창작" rel="tag">창작</a>,&nbsp;<a href="/tag/양산소녀" rel="tag">양산소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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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6 Jul 2009 07:54:00 GMT</pubDate>
		<dc:creator>핰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 -13.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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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A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block';this.innerHTML=''" href="javascript:void(0)" ;>읽기</A><DIV style="DISPLAY: none"><br />
<br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오후는 기분이 나쁘다. 우산을 펼쳐들며, 리헬은 잠시 마차를 대기시킬까 생각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품삯이라면 이미 앨번이 지불해 놓았을 터인 마차는 별 다른 말 없이 큰길을 따라 멀어져갔다. 리헬은 커다란 바퀴가 고인 물웅덩이를 가르는 뒷모습에 눈길을 주다가, 이내 우산을 고쳐잡고 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br />
<br />
이미 폐관 시간은 넘어 있었지만 전화를 통해 미리 언질을 해둔 덕분에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뚝뚝한 얼굴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리헬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곧바로 직원실 안에서 보관하던 스케치북을 꺼내왔다.<br />
<br />
"고맙습니다."<br />
"별 말씀을 다."<br />
<br />
내지를 한두 장 넘겨 확인하던 리헬이 문득 생각난 듯 고개를 들었다.<br />
<br />
"아, 혹시 한 번 더 전시장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연필 같은 걸 두고 오진 않았나 싶어서.."<br />
<br />
직원의 눈이 가늘어졌다.<br />
<br />
"죄송하지만 입장은 다섯 시까지입니다.  청소 담당자는 그 스케치북 말고 다른 것은 없었다고 하더군요."<br />
<br />
어설픈 핑계가 들통난 기분이 들어 리헬은 얼굴을 붉혔다. 그는 황망한 인삿말을 남기고 전시관 입구로 빠져나왔다. 가방을 한 손에 든 채로 우산을 펴려 잠시 애쓰다가, 결국 가방을 한켠에 내려놓고서야 우산을 펼 수 있었다. 그러다 힐금 고개를 돌리면 비 때문인지 관람 시간이 지난 때문인지 실내로 옮겨 세워둔 안내판이 보였다. 붙어 있는 선전지에 인쇄된 것은 리헬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모작해온 그림이었다. 동양풍의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인지 소녀인지 구분이 불분명한 작은 체구의 사람이 창가를 배경으로 서 있는 그림.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저 이 그림 하나를 실물로 보고 싶어서 독일 여행을 꿈꾸어 왔었는데, 설마 이 나라에서 던스트전展이 열릴 줄이야. 하루에 한 번씩 전시회를 보러 가, 넋 놓고 그림들을 둘러보다 오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오늘 약간 달랐던 것은 휴식 겸 오가는 사람들을 스케치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두 권 들고 나온 스케치북 중 헌 것을 잊고 말았다.<br />
<br />
저택의 사용인을 보내면 될 것을 굳이 직접 나온 것은 얼마 안 되는 리헬의 고집스런 점이었다. 집사인 앨번이 만류했지만 리헬은 듣지 않았다. 핑계삼아 전시관에 한 번 더 가볼 수 있다면 그저 기뻤다. 결국 입장할 수는 없었지만. 한숨. 리헬은 한 손으로 선전지를 쓰다듬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이었다.<br />
<br />
"나도……."<br />
<br />
그 다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축 늘어진 어깨로 리헬은 터덜터덜 전시관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마차를 잡아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걸음은 이미 대로를 벗어나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어느덧 해가 떨어졌는지 주위는 어두컴컴했다. 빗소리가 귀를 때리고 빗줄기가 다리를 때렸다. 슬슬 추워질 시간이다. 이 지방은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크다. 가방을 거의 끌어안듯이 하며 리헬은 조용히 걸었다.<br />
<br />
그리고 <그것>을 보았다.<br />
<br />
무엇이었을까, 순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것이 있었다. 우뚝 발이 멈추었다. 천천히 시선이 돌아간다. 구둣가게 건물과 빵집 건물 사이, 비좁은 골목이었다. 금발의 소녀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쏟아지는 비 아래 무방비하게 널브러진 몸이 조그맣다. 리헬은 홀린 듯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가방이 툭 소리를 내며 손에서 떨어졌는데도 깨닫지 못했다.<br />
<br />
<그림>이다.<br />
<br />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리고 또 그려왔던 그 그림 속의 소녀였다. 소녀라고 하기엔 몹시 어리다는 것을 제외하면, 의상도 배경도 다르지만 얼굴만은 그대로 이젤 속에서 끄집어내어진 듯 똑같았다. 물기를 머금어 둔탁하게 반짝이는 금발. 뺨에 손을 대자 느껴지는 한기에 몸이 떨렸다. 매끄러운 피부. 코 아래 손을 가져다대니 가냘픈 호흡이 느껴졌다.<br />
<br />
리헬은 우산을 내팽개쳤다. 정면으로 떨어지는 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아이를 두 팔로 안아올렸다. 일순 몸이 크게 휘청거렸지만 용케 균형을 잡고, 이내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br />
<br />
<br />
<br />
<br />
<span style="color:#c0c0c0;">걍 슬렁슬렁이라도 쓰고 치워버리고 싶어서^^;;; 처음 쓴 게 2005년인가 그랬으니 이젠 정리할 때도 되었죠 흐흑</span><br />
<br />
 <A onclick="this.parentNode.style.display='none';this.parentNode.previousSibling.innerHTML='클릭';" href="javascript:void(0)">닫기</A></DIV><br/><br/>tag : <a href="/tag/창작" rel="tag">창작</a>,&nbsp;<a href="/tag/양산소녀" rel="tag">양산소녀</a>			 ]]> 
		</description>
		<category>글:&lt;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gt;</category>
		<category>창작</category>
		<category>양산소녀</category>

		<comments>http://lanziee.egloos.com/5115916#comments</comments>
		<pubDate>Sun, 26 Jul 2009 05:43:00 GMT</pubDate>
		<dc:creator>핰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 -12.  ]]> </title>
		<link>http://lanziee.egloos.com/511591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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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A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block';this.innerHTML=''" href="javascript:void(0)" ;>읽기</A><DIV style="DISPLAY: none"><br />
<br />
설핏 선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뜨니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는 목욕통 속이었다. 무릎을 감싸안고 그 위에 고개를 묻었다. 전신이 나른했다. <br />
<br />
기름투성이 몸으로 기절한 듯이 잠들었다 깨어나니 그새 날이 저물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시트며 이불이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한손으로 얼굴을 문질러 물기를 닦아내며 눈을 돌렸다. 공동 욕실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시트, 이불보가 보였다. 몇 번이고 비누칠을 하고 헹구어봤지만 좀처럼 기름이 빠지질 않았다. 저걸 무슨 낯으로 세탁실에 던져둔담. 한숨이 절로 나왔다. <br />
<br />
등을 기댄 목욕통 안에서도 누런 액체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지하실에 흩어진 랜턴의 잔해를 치우고 바닥에 고인 기름도 닦아야 할 텐데.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려다 따끔한 감각에 손바닥을 감싸쥐었다. 다 씻거든 붕대부터 찾아봐야겠다. 나는 길게 드러눕듯이 물에 몸을 담갔다.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투둑,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br />
<br />
그만두겠다는 내 외침은 차가운 지하실 벽 사이를 윙윙 돌다 잦아들었지만 집사님에게는 들렸을 것이다. 어쨌거나 집사님은 다리가 불편하고 눈이 어둡다 뿐이지 청력에는 아무 문제도 없으니까. 결국 급료는 못 받게 생겼군. 집사님에게 거울값을 돌려드려야겠다 싶어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형에게 편지라도 써둬야겠다. 그간 모아둔 돈으로 그럴듯한 선물이라도 하나 사들고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br />
<br />
가족.<br />
<br />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형의 모습에 갑자기 아르킨의 얼굴이 더해졌다. 놀라는 얼굴. 사람들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는 건 못할 짓이지만, 그렇다고 사실대로 털어놓기도 뭣하다. 아무도 믿지 않거나, 아무도 남지 않게 되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러면 이 집에는 집사님과 미쳐버린 주인님, 어린 아가씨만이 남을 텐데. 아르킨이 클로디아 아가씨로 바뀌었다. 아가씨는 귀찮은 동행인을 떨구게 되어서 기뻐할까? 잘 모르겠다. 집사님이 아가씨를 혼자 보낼 것 같지는 않으니, 나에게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집사님, 혹은 바르톨 앨번이라 불렸을 사람의 얼굴. 집사님에게 왜 아가씨를 대하는 <방식>이 필요할까? 주인님과 아가씨가 집사님을 가족에 가깝게 대한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내 나이도 채 되기 전, 이전 주인님과 마님이 살아계실 때부터 저택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들었지만 두 사람과 집사님의 위치는 처음부터 달랐을 터였다. 사용인, 그리고 고용주의 가족.<br />
<br />
가족.<br />
<br />
하마터면 목욕통을 엎을 뻔했다. 갑작스럽게 일으켜진 몸이 휘청거렸지만 나는 그대로 퉁겨지듯 물 밖으로 뛰쳐나왔다.<br />
<br />
크리스티 히즈넨, 왕국력 471년 잠들다.<br />
건국 기념제, 건국 500년을 기리는 의미에서 특히 성대하게 치뤄질 예정인.<br />
<br />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었다. 나는 누가 널어두었는지 모를 커다란 옷을 되는대로 꿰어입고는 머리칼에서 물을 마구 흐트리며 복도를 달렸다. 금세 3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러나 내 눈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br />
<br />
아가씨는 <정말로> 주인님의 동생이 아니었다! 그러면 누구의?<br />
<br />
시체. <br />
<br />
비참하게 말라붙은 여자의 모습이 망막에 새겨진 양 떠나질 않았다. 숨이 막혀왔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대체 누가?<br />
<br />
신경증 환자의 노크 같았다. 나는 내가 고용인이라는 사실도 잊고서 작업실 문을 두들겨댔다. 제발 뭐든 나와다오. 이 방이 아니라면 침실인가? 돌아서려는 순간 기척도 없이 문이 열렸다. 해쓱한 몰골로 나온 주인님은 괴이쩍다는 눈길로 나를 보았다. 나는 가쁜 호흡을 진정하지 못하고 두 팔로 무릎을 짚은 채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변함없이 난장판이었다. 엉망으로 늘어진 물감과 파레트, 바닥에 내던져진 미완의 캔버스들. 그리고 이젤 위 캔버스에<br />
<br />
황금빛 소녀가 있었다. <br />
<br />
흡사 경배하는 듯한 동작으로 주저앉았다. 커다랗게 눈이 벌어졌다. 파랗게 갠 하늘을 등에 인 양산. 그 양산 아래, 눈부신 금발이 바람에 날린다. 여신의 것처럼 빛나는 미소에서는 강렬한 태양의 내음이 났다. 나는 넋을 잃고 소녀를 쳐다보았다. 실로 완전무결한 하나의 <존재>가 거기에 있었다. 누구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오롯한 아름다움이. 선명한 파람과 아찔한 금빛에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br />
<br />
"…아름답군요."<br />
<br />
신성 모독을 저지르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존재 그 자체로 완벽한 무언가를 인간의 빈약한 어휘를 빌려 표현함으로써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만 같아 나는 도로 입을 다물었다.<br />
<br />
간신히 고개를 돌려 주인님을 올려다 보았다. 희열에 들뜬 눈동자와 마주쳤다. 광기와, 혹은 신열과도 비슷한 집착이 비추어지는. 일순 서글픔이 밀려왔다. 누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지요? 그러나 나는 그것을 묻지 않았다.<br />
<br />
"정말 그렇게 생각해?"<br />
"그럼요. 그런데 대체 저게 뭐지요?"<br />
<br />
주인님의 눈빛이 바뀌었다. 언젠가 한 번 보았던 끔찍한 표정과는 또 다른, 참혹하게 유린당한 자존감의 조각처럼 보이는 것이 떠올랐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br />
<br />
"지하 창고에 있는 시체의 대리입니까?"<br />
<br />
그러자 거짓말처럼 주인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하얀 물감을 뒤집어쓴 양 창백해진 뺨이 가늘게 경련했다. 발 아래의 땅이 사실은 늪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처럼, 주인님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내 어깨를 붙들었다. 충혈된 흰자.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심상. 나는 그런 주인님을 그저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br />
<br />
"다시 한 번 말해봐."<br />
<br />
한참만에 흘러나온 목소리는 지독하게 쉬어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목청껏. 그러나 나는 말했다.<br />
<br />
"지하에서 시체를 봤습니다. 여자였어요." 조금 고개를 들어, "저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지요?"<br />
<br />
그렇게 물은 순간 주인님은 나를 던지듯 뿌리쳤다. 뒤로 나동그라진 몸을 일으켜세우니 계단을 내달리는 깡마른 뒷모습이 보였다. 화급히 뒤쫓았지만 주인님은 벌써 지하실로 내려가고 있었다. 소용 없는 일이라고 말해야 했다. 거긴 잠겨 있는데. 더군다나 랜턴도 없었다.<br />
<br />
사금파리가 밟혀 부스러졌다. 또다시 기름이 신발에 달라붙었다. 빛 한 점 없는 막막한 암흑 속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벽을 더듬으며 내려가야 했다.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대고 소리쳤다.<br />
<br />
"올라오세요, 주인님! 열쇠가 있어야 해요!"<br />
<br />
그러나 달음박질치는 소리가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차라리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주인님이 나를 구해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br />
<br />
주먹으로 철문을 때리는 소리가 귓전을 꽝꽝 울렸다. 한 손으로는 귀를 틀어막고 한 손으로는 숨막히는 어둠을 헤집어 내려가기를 한참, 벽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짐승의 것 같은 오열이 터져나왔을 즈음에는 가장 밑바닥에 다다를 수 있었다. <br />
<br />
"제발, 주인님, 열쇠를 가져와야 합니다. 예?"<br />
<br />
막무가내로 철문을 내리치는 주먹을 막으려다 나는 그만 기겁하고 말았다. 주인님은 주먹이 아닌 머리를 짓찧고 있었다. 울음은 점점 처참하게 변화하며 고막을 난자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현기증이 나려 했다. 시계視界가 - 온통 새카맣게 칠해진 바로 그 상황에서 - 핑그르르 한 바퀴 회전했다. <br />
<br />
나<br />
는<br />
<br />
비틀거리며 계단을 딛고 올라섰다. 벗어나야 했다. 여기에 있다가는 정말로/눈을 감아버렸다. 어차피 보이는 것도 없었다. 나는 벽에 몸을 기대고 서서 주인님<br />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허공을 향해 발을 뻗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당장이라도/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아주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겠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br />
주인님의 손이 뒷목을 잡아챌 듯한 공포에 떨며 나는 조금씩 조금씩 지상으로/ 혼자서 저 어둠을 되짚어 올라갈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벽이 진동하는 <br />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인님의 오열은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다. /  것인지 내 팔다리가 떨리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br />
<br />
어쩌자고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그냥 조용히 그만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면 되었을 것을. 머리를 감싸쥐며 차가운 돌바닥에 웅크려앉았다. 꿈이라면 제발 깨어나다오, 제발 누군가 깨워주기를, 제발 누군가,<br />
<br />
돌연 주인님의 울음이 멎었다. 머리와 쇠가 부딪치는 끔찍한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어둠이 무너지며 아침 햇살이 쏟아져드는 침대에서 눈을 뜨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반대였다. 꿈이 진행되고 있었다. <br />
<br />
철문이 열렸다.<br />
태초의 빛이 태어났다. 주인님은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문 안쪽으로 뛰어들었다.<br />
<br />
<br />
그리고<br />
둔탁한 총성이 울렸다.<br />
<br />
<br />
<br />
<br />
<span style="color:#c0c0c0;">현재편 종료, 과거편은 언젠가..언젠가....</span><br />
<br />
 <A onclick="this.parentNode.style.display='none';this.parentNode.previousSibling.innerHTML='클릭';" href="javascript:void(0)">닫기</A></DIV><br/><br/>tag : <a href="/tag/창작" rel="tag">창작</a>,&nbsp;<a href="/tag/양산소녀" rel="tag">양산소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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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글:&lt;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gt;</category>
		<category>창작</category>
		<category>양산소녀</category>

		<comments>http://lanziee.egloos.com/5115913#comments</comments>
		<pubDate>Thu, 23 Jul 2009 11:31:00 GMT</pubDate>
		<dc:creator>핰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 -11.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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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block';this.innerHTML=''" href="javascript:void(0)" ;>읽기</A><DIV style="DISPLAY: none"><br />
<br />
<br />
나이트가운 아래로 늘어진 소녀의 다리는 가늘고 길었다. 책상에 걸터앉아 두 무릎을 끌어안은 채, 소녀는 그 곁에 가만히 서서 시선을 내리뜨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br />
<br />
"엄마 얘기를 들려줘."<br />
<br />
소녀가 입술을 달싹인다. 남자는 일순 주저하며, 그러나 입을 열자 흔들림 없이 말을 잇는다.<br />
<br />
"아가씨의 어머님은... 아가씨를 꼭 닮은 금갈색 머리카락과 파란 눈이 인상적인 분이었습니다."<br />
"그리고?"<br />
<br />
속삭이는 듯한 물음. 남자의 내리깐 시선이 점차 이동해, 이윽고 그녀의 발을 감싼 슬리퍼에 닿아 있다.<br />
<br />
"아주 활달하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감정의 기복도 큰 편이었지요."<br />
<br />
남자의 입술이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말을 읊조린다. 저는, 그녀를, 정말로, .....<br />
<br />
이윽고 슬리퍼가 책상 아래로 떨어지자 소녀의 희고 마른 발이 드러난다. 그 어린 발을 장갑 낀 두 손으로 받쳐들어 거기에 이마를 가져다대는 남자의 그림자가 훅, 서재의 등불을 꺼버린다. 소녀의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떠오른다. <br />
<br />
<br />
<br />
<br />
눅눅한 공기가 옷 속으로 파고들며 등줄기를 훑어내렸다. 지하실은 오한이 일 만큼 서늘한데다 온동네 유령들이 아지트로 삼고 싶어한대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음습하기까지 했다. 내가 저택에 온 이래 장거리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버리지 않았으니 어딘가에 있긴 있다는 여행 가방은, 장담한다. 가방 자신도 스스로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런 여행 가방의 서글픈 말로에 눈물지을지도 모른다.<br />
<br />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덜 피곤했다면 그러리라는 말이다.<br />
<br />
나에게는 지하실 탐사용 기계장치 정도의 인간성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성은 진작에 바닥을 드러냈고 정신력은 말라붙은 지 오래였다. 잠의 요정은 나에게 빨판상어가 상어에게 보이는 만큼의 예의도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잔 로디엄의 인간다움을 모조리 핥아먹고서는 내 눈꺼풀에 무게를 더하며 깔깔댔다. <br />
<br />
결정적인 문제는, 요정은 오직 나에게만 보였다. 클로디아 아가씨는 내 손에 랜턴을 쥐여준 다음 가차없이 등을 떠밀었고 나는 홀로 - 아니지, 요정과 단둘이 - 쫓기듯 지하로 내려와야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br />
<br />
좋게 말해 창고,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잡동사니 전시장이었다. 잔디깎는 가위가 처박혀 있는 것은 그렇다치자. 아마 새것을 사용하고 싶다는 욕망에 못 이긴 아르킨이 저지른 짓이리라. 둘둘 말린 채 바닥을 구르는 무엇인가는 얼핏 종이처럼 보였으나 들춰보니 옷감이었다. 바깥에 드러난 부분만으로는 본래의 색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노란 랜턴 불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천을 뒤집어보려던 나는 거의 던지듯 그것을 내려놓고는 화급히 손을 털었다. 그 밖에도 유래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용도가 짐작이 가는 것은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될 듯했지만, 그 안에 가방은 포함되지 않았다.<br />
<br />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지만 변명이 통할지는 의문이었다. 뻑뻑하니 잘 움직여주지 않는 문을 닫고 고개를 들었다. 통로 맞은편으로 또 다른 문이 보였다. 애당초 탐사 대상에서 제외했던 식품 저장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창고가 이런 상태라도 - 나는 등 뒤의 문을 다시 한 차례 돌아보았다 - 설마 식품 저장실에 여행 가방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볼을 부풀리며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려다보았다.<br />
<br />
다음 순간, 보였다.<br />
<br />
랜턴을 내밀며 한 걸음 나아갔다. 통로는 계단을 지나 식품 저장실 입구에서 직각으로 꺾여 조금 더 깊숙이 이어져 있었다. 그 끄트머리, 기름을 태우는 가물거리는 빛이 작은 철문에 닿았다. 녹슨 자물쇠에서는 금속 냄새가 났다.<br />
<br />
자물통을 만지작대던 내 머릿속을 별안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나는 랜턴을 들지 않은 왼손을 조끼 주머니에 넣었고, 무엇인가가 딸려올려왔다. 어쨌거나 아르킨은 좌절을 모르는 사나이이고, 미나가 무덤가의 유령이 떨구고 간 증거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더라도 곧 다른 선물거리를 찾아나설 터였다. 나는 코르사쥬의 날카로운 핀을 열쇠구멍에 밀어넣었다.<br />
<br />
잠시 뒤 나는 잔 로디엄에게는 사실 빈집털이의 소질이 있다고 의심하게 되었다. 유령의 단발마처럼 들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 철문 뒤로 무한에 가까워 보이는 계단이 살아 꿈틀거렸다. 착각이다. 살그머니 발을 내딛자 계단은 굳건히 내 무게를 지탱했다.<br />
계단은 길고 길었다. 습한 냄새가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에서도 별다른 불쾌감을 느끼지 못한 것은 눈꺼풀 위의 요정 덕택이다. 그럼에도 정말이지 기나긴 계단이었고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대체 삼층짜리 건물에 지하 오층은 족히 될 법한 이런 지하실이 다 뭐란 말인가. 이미 가방이 문제가 아니라 고대의 보물이라도 나와야만 할 듯한 분위기였고 나는 혼자서 킬킬댔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좁은 통로에 반사되어 기괴하게 변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나를 후려친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br />
<br />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나를 삼키려 들고 있었다. 계단 꼭대기를 올려다보았지만 아득히 멀리 보이는 네모진 빛 따위는 없었다. 위도 아래도 앞도 뒤도 없는 무無의 공간에 홀로 떠 있는 듯한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여기서 랜턴이 꺼지기라도 하면 나는 꼼짝없이 암흑 속에 고립될 터였다. 조금 전부터 무의식 속을 빙빙 돌던 심상이 하나의 완성된 문장으로 다가왔다.<br />
<br />
저택의 지하에는 괴물이 있다.<br />
<br />
보이지 않는 손이 온몸의 털을 잡아당기는 듯했다. 적어도 유령을 잡기 위해 묘지를 지키던 때에는 켈릭과 아르킨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완전한 혼자였다. 내 비명이 어둠을 뚫고 올라갈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br />
<br />
주인님. 천장까지 쌓인 금발 소녀의 초상화를 생각했다. 집사님. 빨간 잉크가 긋고 지나간 불순한 기록들을 생각했다. 무덤가의 유령. 묘비석 앞의 꽃다발. 클로디아 아가씨의 옷.<br />
<br />
주인님의 스케치북에서 보았던 아가씨를 생각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고 천진한 미소. 클로디아 아가씨의 냉담한 눈을 생각했다. <br />
<br />
그리고 집사님.<br />
<br />
"혼란스럽게 하지 말아주게."<br />
<br />
지난밤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책을 앞에서부터 다시 넘기듯이, 목소리는 느릿하게 재생되었다.<br />
<br />
"나는 내가 아가씨를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네. 그리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테지."<br />
<br />
그림자 드리워진 눈가. 목소리.<br />
<br />
"이 저택이 남아 있는 한은 말이야."<br />
<br />
젠장. 기억의 책장이 덮였다. 나는 랜턴에 남은 기름의 양을 확인했다. 어디 갈 데까지 가보자고. <br />
<br />
오래지 않아 두 번째 문이 나타났다. 역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켈릭에게 망치 하나만 쥐여주면 다 때려부술텐데, 별로 재미없는 농담을 해보며 자신을 달래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잔 로디엄의 아직 증명되지 않은 재능들을 나열한 목록에서 빈집털이 항목을 삭제했다. 대신 머리보다 약간 위로 손바닥만한 창이 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나는 랜턴을 높이 들어올리고 까치발을 해가며 창문 너머를 훔쳐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유리에 반사된 내 얼굴뿐이었다. 요정이 혀를 날름거렸다. 젠장.<br />
<br />
왼손이 다시금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나온 것은 빨갛게 녹이 앉은 자물통이었다. 나는 커다랗게 팔을 휘둘러 유리를 내리찍었다.<br />
<br />
끔찍한 반향이 묵직한 질량으로 지하를 가득 메웠다. 귀를 막느라 하마터면 랜턴을 깨뜨릴 뻔했다. 겨우 자세를 되찾아 재차 랜턴을 치켜들었다. 발돋움. 멀리 캄캄한 공간 안쪽으로 보이는 것은<br />
<br />
시체.<br />
<br />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몇 차례나 발을 헛디딜 뻔하며 미친듯이 되짚어 올라오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식품 저장고 앞으로 돌아온 나는 온몸으로 집사님과 충돌했다. 몸이 무너져내림과 거의 동시에 랜턴 부서지는 소리가 무척이나 아득히 - 실상은 귀가 다 울릴 만치 요란했을 게 분명한데도 - 들려왔다. 조각난 랜턴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바지를 적시고 뺨을 적셨다. 집사님이 내 팔을 두드렸다.<br />
<br />
"잔, 괜찮나?"<br />
<br />
나는 간신히 팔다리를 끌어당겨 쓰러진 집사님의 몸 위에서 내려왔다. 전신이 기름으로 질척거렸다. 랜턴의 일부였을 유릿조각이 손바닥을 찢어놓았지만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br />
<br />
"괜찮은가?"<br />
<br />
괜찮을 리가요. 바닥을 짚은 팔이 파들파들 떨려왔다. 나는 입을 벌렸다. 그러나 공포가 목을 말라붙게 했는지 소리를 끌어내는 것이 몹시도 힘겹게 느껴졌다.<br />
<br />
"                    "<br />
<br />
흡사 짐승의 소리였다. 그제서야 나는 내 얼굴이 축축한 이유가 기름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사님은 안경을 고쳐쓰던 손길을 갑자기 나에게 향했다. 눈가에 맺혀 부옇게 번진 눈물인지 기름인지 모를 것을 닦아내는 손가락의 주인을 나는 멀거니 바라보았다. <br />
<br />
"집사님…."<br />
"말하게."<br />
"집사님, 집사님…." <br />
<br />
울먹임이 멎질 않았다.<br />
<br />
"전 그냥 아가씨의 여행 가방을 찾으려고…."<br />
"잔 로디엄!"<br />
<br />
집사님의 두 손이 내 어깨를 꽉 붙들었다. 나는 흠칫하며 떨구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br />
<br />
"괜찮아, 진정해. 자네는 여기서 아무 것도 못 본 거야. 가방은 간밤에 내가 찾았네. 잠금장치가 완전히 망가졌더군."<br />
<br />
반 박자 뒤, 내 목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br />
<br />
"하지만 시체가 있단 말입니다! 저기에, 바로 우리 발밑에요!"<br />
<br />
집사님의 표정이 서서히 변화했다. 우려, 혹은 연민처럼도 보이는 감정이 안경알 너머로 비추어 보였다. <br />
<br />
"그래, 있겠지. 여전히 아름답던가?"<br />
<br />
빈정대는 것도 나를 책하는 것도 아니었다. 집사님의 말투는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들추어 자신이 기억하는 내용 그대로인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잔한 향수 같은 것이 비추어 보이는 눈을 내리깔며, 집사님은 한숨처럼 말했다.<br />
<br />
"부탁이니 잊어주게. 기억해서 좋을 게 없으니. 자물쇠를 다시 걸어야겠군."<br />
<br />
몸을 일으키는 집사님의 옷에서 떨어진 기름이 내 다리 위로 번졌다. 집사님은 불편한 다리를 이끌어 통로 반대쪽으로 굴러가버린 지팡이를 주워들었다. 집사님이 손을 내밀었다.<br />
<br />
"일어나게. 이제 올라가지."<br />
<br />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집사님의 등을 보며, 나는 불현듯 기시감을 느꼈다. 이제껏 몇 차례나 보아왔던 뒷모습. 그리고 앞으로<br />
도 계속 그 등 뒤에서 지켜보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집사님은 결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 예감은 나를 슬프게 했다. <br />
<br />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요? 말씀해주세요, 집사님."<br />
<br />
집사님의 뒷모습은 계단 끝,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물음도 함께 흩어져갔다.<br />
<br />
<br />
<br />
<br />
<span style="color:#c0c0c0;">와 현재편 마지막 하나 남았네요 만세! ..할 일인가 이게...</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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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onclick="this.parentNode.style.display='none';this.parentNode.previousSibling.innerHTML='클릭';" href="javascript:void(0)">닫기</A></DIV><br/><br/>tag : <a href="/tag/창작" rel="tag">창작</a>,&nbsp;<a href="/tag/양산소녀" rel="tag">양산소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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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글:&lt;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gt;</category>
		<category>창작</category>
		<category>양산소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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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3 Jul 2009 11:28:00 GMT</pubDate>
		<dc:creator>핰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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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양산을 쓴 소녀의 저택 -10.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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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block';this.innerHTML=''" href="javascript:void(0)" ;>읽기</A><DIV style="DISPLAY: non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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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밤의 품을 파고들어 그 하얀 온기로 괴괴한 암흑을 적셨다. 부드러운 공기는 지친 소년의 뺨을 쓸어내리는 여인의 손길처럼 매혹적이었고 쿠키만큼이나 달콤했다. 봄의 향기에 취해 뜨거워진 머리는 강렬한 욕망을 느끼고 있었고 나는 내 몸이 원하는 행동을 취했다.<br />
<br />
나는 쿠키를 한웅큼 쥐어들었다.<br />
<br />
과자 부스러기와 약한 술내음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웃옷을 대충 털어서 걸어두고 창가에 기대어 섰다. 쿠키를 씹으며 창턱에 팔을 고인 채 멀거니 바라본 세상은 잔 로디엄이 발을 딛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곳인 것처럼 보였다. 침묵의 바다에 수장된 도시는 마법 같은 달빛 아래 뽀얀 윤곽이 되어 되살아났고 그 비현실적인 풍경화는 나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br />
<br />
식인 괴수 내지는 흡혈귀가 나타난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신비스러움, 혹은 터무니없음이었다. 그 증거로, 잠의 요정들이 모조리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눈꺼풀을 문질렀다. 제길. 눈이 무지하게 뻑뻑하고 시야가 흐릿한데도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br />
<br />
그래서 나는 삼천백이십 마리째의 양을 세는 것을 그만두고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테레샤의 쿠키. 생각한다. 아가씨의 새된 고함. 집사님의 그늘진 옆얼굴. 생각한다. 주인님의 깡마른 어깨와 목덜미. 생각한다. …테레샤의 쿠키.<br />
<br />
마지막 단어를 연상해내기까지 시간이 다소 필요했다. 나는 옷장 손잡이에 걸쳐놓았던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쿠키가 남아 있었다. 셔츠와 바지를 뒤져 긁어모은 쿠키는 제법 군것질거리가 될 만해 보였고, 나는 갑자기 주인님을 살찌워야겠다는 욕구가 일어난 것도 봄밤의 마법 때문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br />
<br />
실제로, 고민해야만 했다. 오밤중에 쿠키 배달을 핑계로 고용주의 방문을 두드린다는 행위가 가져올 파급은 나의 직업에 아주 확실한 변화를 줄 수도 있었다. 실업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청력에 주의를 기울였다. 문짝에 머리를 기대듯이 귀를 대고 있기를 잠시, 서서히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접시를 떨어뜨리면 안 되는데, 몰래 부엌에서 꺼내온 접시를 깨뜨리는 것보다 테레샤의 쿠키를 먼지구렁에 떨어뜨리는 쪽이 훨씬 불경스럽게 느껴지는 이유 따위를 생각하며 겨우겨우 접시를 무사착륙시켰고,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br />
<br />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거의 튀어오르듯이 일어났다, 라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그 정도로 놀랐다고만 해두자. 주인님은 야트막한 잠에 발목을 감겨 허우적대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br />
<br />
"무슨 일이지?"<br />
"어, 이런 시간에 웬일이시죠?"<br />
"내가 먼저 물었는데."<br />
<br />
더 이상 헛소리를 하기 전에 빨리 진짜 이유를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br />
<br />
"주인님이 좀 남아서 쿠키가 생각났습니다."<br />
"…바닥에 있는 저거 말이야?"<br />
<br />
아주 가지가지로 한다. 나는 주인님을 존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최소한 저 놀라운 이해심과 인내력만큼은 성인급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상황에서 제정신이 아닌 건 내가 틀림없다. 나는 얼른 접시를 챙겨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바닥의 접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니, 세 개로 늘어나 있었다.<br />
<br />
태평스러운 동작으로 쿠키를 입에 넣으며 주인님이 말했다.<br />
<br />
"그러고보니 이게 오늘 처음으로 먹는 거군. 잘 가져왔어."<br />
<br />
자세히 보니 벽을 따라 늘어선 그것은 음식이 담긴 접시와, 그 접시들을 얹은 쟁반이었다. 이미 식어버린 식사를 치우면서 유하스 아주머니가 어떤 얼굴을 하셨을지. 나는 접시를 가져가는 주인님을 보았다. 뺨과 소매에 묻은 물감이 굳어가고 있었다.<br />
<br />
"그림을 그리고 계셨습니까?"<br />
"응. 보겠어?"<br />
"그래도 되나요?"<br />
"완성되면 보여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새로운 그녀야."<br />
<br />
자칫 바람둥이의 대사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럼에도 참으로 순진무구한 미소였지만, 그러나 나는 억지웃음밖에는 지을 수가 없었다. 역시 존경은 그만두어야겠다. 난 지나치게 멀쩡하다.<br />
<br />
침실 맞은편의 반쯤 열린 문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어쩌면 주인님이 미친 것은 이 방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를 가장 먼저 의심했다. 예술가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구현해낸 듯한 작업실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길이의 벽과 벽을 모조리 채우고 있는 것은 산더미 같은 스케치북들이었다. 그 사이사이를 몽당연필과 조각난 지우개, 찢어진 종이 따위가 구르고, 중앙부에는 더께를 덮어쓴 캔버스들이 방치에 가까운 모습으로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그 한가운데, 의자와 이젤과 접이식 테이블을 구심점으로 비틀어진 물감 튜브들이 흩어져 도저히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공간으로 주인님이 걸어들어갔다. <br />
거의 발끝으로 걷다시피 해 다가가자 이젤 위에 얹혀 있는 캔버스 앞면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신음을 삼켰다. 소녀의 얼굴은 이전에 보았던 그대로였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그녀의 옷을 알고 있었다.<br />
<br />
"아름답지?"<br />
"예, 제가 본 어떤 여자보다도요."<br />
<br />
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고 주인님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서 스케치북을 꺼내 떠안겨주는 주인님의 표정은 들뜬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소녀를 스케치한 연필화를 하나하나 넘겨보아야만 했다. <br />
<br />
정원에 선 소녀, 인형을 품에 안은 소녀, 화병과 소녀, 부채를 든 소녀, 그림책을 읽는 소녀, 아기와 노는 소녀, 양산을 쓴 소녀. 수도 없이 이어지는 그림들 속에서 나는 주인님이 경외감 비슷한 시선으로 소녀를 화폭에 담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내가 딛고 선 이 방이 마치 신전처럼 느껴졌다. 알려지지 않은 여신을 섬기는 신전에,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그녀의 사제와 함께 있는 것처럼.<br />
<br />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소녀의 그림이 갑자기 끝난 덕분이었다. 섬세한 연필선이 소녀를 대신해 그려낸 것은, 맙소사, 놀랍게도 클로디아 아가씨였다. 하지만 나는 주인님의 모델이 된 아가씨를 상상할 수 없었다.<br />
<br />
"이건 아가씨로군요?"<br />
<br />
주인님이 어깨 너머로 스케치북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찡그리며 웅얼거리듯 말했다.<br />
<br />
"아니야, 그건…, 그렇군. 클로디아이겠군."<br />
<br />
이해할 수 없는 혼잣말의 말미에서 주인님의 목소리는 아주 끔찍하게 들려왔다. 다음 순간, 나는 문짝에 맹렬하게 등을 부딪쳤다. 야윈 손이 야생동물 같은 동작으로 내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괴물을 목도한 사람 마냥 창백하게 질린 채, 주인님은 괴물 앞에서나 발휘될 수 있을 어떤 초인적인 힘으로 내 목을 짓눌렀다. 빛을 등져 어두운 얼굴에서 시퍼렇게 안광이 번득였다. <br />
<br />
"말해선 안 돼. 특히 앨번에게는, 알겠어?"<br />
<br />
나는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기괴한 신음 같은 것만이 목에서 흘러나왔다. 겁에 질려 서둘러 고개를 앞뒤로 움직였다. 그러자 주인님의 손이 풀렸다. 미끄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아 나는 세차게 기침을 했다. 목을 어루만지던 손길 그대로 주인님을 원망스레 올려다본 순간 눈물이 고인 것도 같다. 이런 꼴을 당해야 하다니,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지? <br />
<br />
캔버스 속에서 소녀가 대답했다. 그녀의 파란 원피스, 흰 코르사쥬. 무덤가의 유령이 태우던 옷. 그 순간 무성의하게 넘겼던 소녀의 그림들이 오랜 기억들과 결합하며 재구성되었다. 소녀가 입고 있던 다양한 옷들은, 전부 클로디아 아가씨의 옷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단 한 번도 아가씨에게 배달되는 일 없이, 집사님의 손을 거쳐 주인님에게 인계되었다. 언제나.<br />
<br />
경악에 찬 눈으로 주인님을 보았을 때, 주인님의 뒷모습은 침울히 캔버스를 흰 천으로 덮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br />
<br />
"앨번이 주문한 귀걸이, 어떤 거였지?"<br />
<br />
심장 내려앉는 줄 알았다. 주인님은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고 나는 다리를 얻은 인어처럼 소리도 못 내고 얼어붙었다.<br />
<br />
"복도에 인수증을 흘리고 갔던데."<br />
<br />
정신적인 신음을 함께 흘려야 했다. 바보를 지칭하는, 생각나는 모든 단어들을 한 번씩 내면을 향해 쏟아내준 후에야 간신히 목소리가 돌아왔다.<br />
<br />
"엄지손톱만한 호박이었습니다."<br />
<br />
정적. 짧던 정적이 점점 길어지며 발을 재촉했다. 나는 황급히 복도로 빠져나왔다. 문을 한 차례 돌아보고, 목 언저리를 만져보다가, 소스라치며 손을 놓고, 계단 아래로, 마침내 방으로 도망쳐온 내내, 수면욕보다도 강력한 피로가 어깨를 짓눌렀다. 창문 밖에는 새벽이 파랗게 찾아들어 있었다. 또다시 예의 원피스를 떠올린 나는 치미는 분노와 공포를 억누르며 침대로 몸을 던졌다. 이번에 잠은 공포보다 빨랐다.<br />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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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3 Jul 2009 11:24: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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