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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뭔가를 공부하는 사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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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뭔가를 공부해서 그 결과물들을 늘어놓은 곳</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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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Nov 2009 13:47:4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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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뭔가를 공부하는 사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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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뭔가를 공부해서 그 결과물들을 늘어놓은 곳</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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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거 봉변 아닌가? -_-;;;;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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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주한독일대사관에서 나누어 주는 &lt;오늘의 독일&gt; 2009년 1호에 나오는 대목. 글쓴이는 현재 독일에서 인성계발 및 경영 트레이너로 활동 중이신 Anja K. Haftman 박사.<br><br><blockquote>1987년 젊은 한국학도로서 한국땅에 첫 발을 내디뎠던 그 때 말이다. ..... (중략) ..... 해인사에서 받은 이러한 인상은 한국 스님들과의 최초의 근접대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물론 나는 예전에도 멀리서 스님들을 본 적이 있다. 삭발한 머리와 잿빛 승려복을 입은 스님들은 고상하고 위엄있었지만, 서양 성직자들처럼 그렇게 접근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최소한 몇몇 스님들은 전혀 그 반대였다. 두 명의 스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빠른 속도로 돌진해왔다. 운동화를 신고 헬멧도 쓰지 않은 젊은 스님 두 분이었는데, 뒷자리의 스님은 물건을 가득 담은 비닐백과 큰 수박을 껴안고 있었다. 스님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내 옆에서 급정거를 했다. <span style="COLOR: #ff0000">그 중 한 스님이 나를 훑어보더니 <strong><span style="FONT-SIZE: 130%">"Hey, sexy!"</span></strong>라고 영어로 외쳤다.</span> 그리고는 물건이 든 비닐백을 들고 사찰의 옆문을 통해 사라졌다. <u>성직자가 그토록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 역시 나에게는 새로운 사실이었다.</u></blockquote>...........................................<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23/44/e0021044_4b0a8fb9d0fd0.gif" width="200" height="11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23/44/e0021044_4b0a8fb9d0fd0.gif');" /></div><strong><span style="FONT-SIZE: 210%"><div style="TEXT-ALIGN: center"><strong><span style="FONT-SIZE: 210%">&lt;글쎄?&gt;</span></strong></div></span></strong><br><br>영화 &lt;달마야 놀자&gt; 같은 경우가 완전한 허구는 아니라고 들었기에 찜찜함을 감출 길이 업ㅂ다.&nbsp; -_-;;;;<br><br>그 영어 단어 두 마디를 내뱉은 스님이 몇 년 후에 무슨무슨 종단대회에서 각목을 들거나 하지 않았기를 빈다. 아울러 불쾌했을 수도 있는 체험을 관대하게 받아들여주신 Anja K. Haftman 박사께도 (내가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_-) 감사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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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런저런 단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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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Nov 2009 13:41:22 GMT</pubDate>
		<dc:creator>自重自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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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미국 대통령 묘호 붙여주기 (수정)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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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어디까지나 장난삼아서 해 보는 것임. -_-<br><br>초대 태조 조지 워싱턴<br>=&gt; 이 사람은 당연히 태조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고<br><br>2대 혜종 존 애덤스<br>=&gt; 2대이고 재위기간도 짧은데다 업적도 별볼일 없으니 '혜종'이 딱이다. -_-;;;;<br><br>3대 태종 토머스 제퍼슨<br>=&gt; 태조와 함께 건국에 이바지했고 황상으로써의 업적도 만만치 않으니 태종이라 불러도 마땅할 터.<br><br>5대 세종 제임스 먼로<br>=&gt; 처음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세종' 칭호를 붙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세종'은 왕조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것이 적절할 듯 하여. -_-;;;;<br><br>9대 단종 윌리엄 헨리 해리슨<br>=&gt; 굳이 설명이 必要韓紙? <br><br>15대 인종 제임스 부캐넌<br>=&gt; '인종' 칭호는 꼭 훌륭한 사람에게만 붙지는 않더라. 몽골제국의 아유바르와다를 보라! <br><br>16대 세조 에이브러햄 링컨<br>=&gt; '세조'는 보통 단절 내지는 멸망의 위기를 맞은 왕조를 다시 중흥시켰다고 알려진 사람에게 붙여주더라. 후한의 광무제라던가 조선의 수양대군 -_- 같은 사람. 그러면 링컨이 제일 적절하지 않을까?<br><br>18대 무종 율리시스 심슨 그랜트<br>=&gt; 굳이 설명이 必要韓紙? (2)<br><br>20대 애종 제임스 가필드<br>=&gt; 굳이 설명이 必要韓紙? (3)<br><br>추가 22대, 24대 중종 그로버 클리블랜드<br>=&gt; 방금(2009. 11. 18 20:22)&nbsp;생각나서 추가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딱 가운데(中) 지점에 위치한 사람이라서. -_-<br><br>26대 성종 시어도어 루스벨트<br>=&gt; 아무래도 세종보다는 성종이 뒤에 나와야 할 것 같아서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성종'이란 묘호를 올렸뜸. -_-;;;;<br><br>추가 28대 문종 우드로우 윌슨 =&gt; 초록불님 감사합니다. (--)(__)<br><br>29대 목종 워렌 가멜리엘 하딩<br>=&gt; 나름 노력한 흔적이 보이나 측근의 발호를 제어하지 못하고 끝내 의문사. '목종'이 딱이다. -o-;;;;<br><br>32대 성조 프랭클린 루스벨트<br>=&gt; 재위기간도 긴데다 업적도 장난이 아니니 명의 영락제, 청의 강희제와 비견될만 하지 않은가? -o-;;;;<br><br>추가 35대 정조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gt; rumic71님 감사합니다. (--)(__)<br><br>추가 37대 수문군(Watergate君) 리처드 닉슨 =&gt; <span style="COLOR: #000000">消爪耗牙님 감사합니다. (--)(__)</span><br><br>추가 40대 숙종 로널드 레이건 =&gt; asianote님 감사합니다. (--)(__)<br><br>P. S.&nbsp;수정이나 추가할 만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제보해 주시압. (--)(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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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기타 지역사</category>

		<comments>http://ksyi9070.egloos.com/2477852#comments</comments>
		<pubDate>Tue, 17 Nov 2009 12:26:36 GMT</pubDate>
		<dc:creator>自重自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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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친미파의 형성과정?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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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운좋게 &lt;eJournal USA&gt; 한국어판 몇몇 권을 얻어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개중 한 권의 부제가 다음과 같다. 이름하야 &lt;미래를 건설하는 세계 청소년들&gt;. 교환학생으로 미국 생활을 했던 세계 각국의 청년들의 체험수기를 주로 싣고 있다.<br><br>개중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파리즈 이스마일자데라는 젊은이의 수기가 눈에 띈다.<br><br><blockquote>1995년 당시 16살이었던 나는 미 국무부가 후원하는 미래 지도자 국제교류 프로그램에서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선정됐다. 당시에는 미국인과 미국 생활에 대해 상당한 선입관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가 세상에 알려진 지 고작 4년 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제르바이잔 남부 시골 마을 란카란 출신인 나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제한적이었다.<br><br>(중략)<br><br>오레곤 공항에 도착하자 아제르바이잔어로 쓴 표지판을 든 호스트 가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스트 아버지에게 아제르바이잔어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자 그는 '인터넷'이라고 대답했다. <span style="COLOR: #ff0000">인터넷의 힘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span> 당시 나는 인생의 남은 시간을 그렇게 멋진 발명품에 의존하게 될줄 몰랐다.<br><br>(중략)<br><br>새롭고 낯선 장소에 도착한 첫날, 나는 설거지하는 법을 배웠다. ..... (중략) .....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여자들만 설거지를 하기 때문에, 약간 모욕적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호스트 어머니는 '세 아들' 사이에 어떤 차별도 두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내가 그녀의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실제로 집안일 경쟁에서 앞서고 싶었다. ..... (중략) ..... 나는 자립적이고 성숙하고 계획성 있는 사람이 됐다.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전통사회에서는 아이들이 그러한 기술을 거의 배우지 않고 중년이 될 때까지 부모에게 계속 의존한다. <span style="COLOR: #ff0000">미국에서 배운 기술과 자립적인 성격은 지금까지도 유용하다.</span> 고국으로 돌아온 뒤, 나는 부모님께 한 푼도 받지 않았고 혼자 힘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br><br><span style="COLOR: #ff0000">미국에 있으면서 나는 시민운동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배웠다.</span> 전통적으로 모든 것을 정부에게 의존하는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시민과 청소년들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 오레곤에서 나는 프로젝트 기획, 기금 모금, 스포츠 행사 조직, 지역사회 봉사활동, 견학,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학생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았다. <br><br>(중략)<br><br>귀국한 이래로 대학 소식지 편집장, 토론회 조직자, <strong><span style="COLOR: #ff0000">민주주의 프로모터</span></strong>, 프리랜서 기자, 그리고 <span style="COLOR: #ff0000">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성공적인 동문회(</span><a href="http://www.aaa.org.az/"><span style="COLOR: #ff0000">www.aaa.org.az</span></a><span style="COLOR: #ff0000">)의 창립자</span>로 활동하면서 이러한 시민운동정신은 내 인생에서 뗄 수 없는 부분이 됐다.<br><br>교환학생으로 두 번째 미국행에 오른 나는 미국의 정치제도와 정치 참여 방식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게 됐다. ..... (중략) ..... 클린턴 대통령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에게 아제르바이잔 석유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지원하라고 종용하는 편지를 처음으로 보낸 기억이 난다. 워싱턴에 있는 코네티컷 주 소속 하원의원에게는 아제르바아진과 아르메니아의 평화 프로세스를 지원하라고 종용하는 편지를 보냈다. <span style="COLOR: #ff0000">샘 게전슨 의원이 보낸 답장을 받았을 때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span> <br><br>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갈 즈음, 나는 정치활동과 논쟁과 로비스트와 정치인들의 중심지인 워싱턴 DC에서 인턴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span style="COLOR: #ff0000">전략문제연구소의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나는 미국 정치권을 상대로 더욱 현명하고 실용적으로 논쟁하는 법을 배웠다.</span> <br><br>그 해에 내가 얻은 교훈은 지금까지도 유용하다. 2007년 초, <span style="COLOR: #ff0000">나는 <strong>아제르바이잔 외무부</strong>에서 신입 외교관들을 위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이끌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span> 워싱턴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span style="COLOR: #ff0000"><strong>주미 아제르바이잔 대사관과 맺은 인연</strong></span>의 결실이었다. <br><br>현재 <span style="COLOR: #ff0000">나는 민중운동과 교육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적이고 독립적인 아제르바이잔을 건설하고자 노력</span>하고 있다.</blockquote><p>그런데 그 아제르바이잔의 현실이라는 게, 일단 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인 <a href="http://100.naver.com/100.nhn?docid=820583" target="_blank">일함 알리예프의 이력</a>을 보니<br><!-- //요약 --></p><blockquote><p>아제르바이잔의 정치가. 2003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YAP(New Azerbaijan Party:신아제르바이잔당) 후보로 나서 압승을 거두고 당선, 제4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span style="COLOR: #ff0000">전임 대통령 게이다르 알리예프(Geidar Aliyev)는 그의 아버지로 30년 이상 아제르바이잔을 철권통치해온 인물</span>이다. <br></p><p>(중략)&nbsp;<br>&nbsp;&nbsp;<br>1994년 5월 당시 <span style="COLOR: #ff0000">대통령인 아버지에 의해 아제르바이잔 국립석유회사 부사장으로 임명</span>되었다. 1995년에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그 후 아제르바이잔올림픽위원회 회장으로 임명되어 2006년 현재까지 재임하고 있다. <br>&nbsp; <br><span style="COLOR: #ff0000">2003년 8월 아버지에 의해 총리로 임명</span>되었는데, <span style="COLOR: #ff0000">바쿠에서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다.</span> 같은 해 10월 아버지 게이다르 알리예프의 병이 깊어지자(12월 사망) YAP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됨으로써 사실상 후계 구도가 완성되었다. 같은 달 대통령 선거에서 77%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 임기 5년의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05년 3월에는 집권 YAP 당수로 선출되었다.</p></blockquote><p><!-- 본문 -->그리고 올해 3월에는 40여년 전 동북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벌어졌던 일과 비슷한 일도 한번 벌어지는데<br><br><a h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mp;mid=sec&amp;sid1=104&amp;oid=003&amp;aid=0002581008" target="_blank">아제르, 대통령 3선금지 철폐 개헌안 가결</a><br><br>전 대통령이자 현 대통령의 부친인 게이다르 알리예프가 어떤 대접을 받는고 하니<br></p><blockquote>문 : 거리 곳곳에 전임 대통령의 사진이 결려 있던데 상당히 특이한 모습이다. 혹시 아들인 현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가?<br>답 : 전혀 그렇지 않다. <span style="COLOR: #ff0000">아제르바이잔은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안정</span>되어 있다. 야당도 많다. 정치적인 자유가 없다면 어떻게 야당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언론의 자유도 보장된다. 지금 대통령의 리더십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br><br>문 : 그런데 왜 아버지 사진만 잔뜩 걸어놓고 있는가?<br>답 : 아제르바이잔을 사실상 바꿔놓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다. <strong><span style="COLOR: #ff0000">어디까지나 자발적이다.</span></strong><br><br>문 : 아무래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외국인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다.<br>답 : 그의 업적을 안다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strong><span style="COLOR: #ff0000">강제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span></strong> 아제르바이잔은 정치적 자유가 있고 충분히 안정되어 있다. (이장규, 이석호 지음, [카스피해 에너지 전쟁](올림, 2006), 144쪽)</blockquote><p>질문하는 사람은 이장규씨를 비롯한 취재팀이고 답변한 사람은 파드 알리예프 경제개발부 장관이며 이 인터뷰는 2005년 10월 14일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파드 알리예프 장관은 5일 후에 다음과 같이 되었다.<br></p><blockquote>취재팀과 인터뷰한 파드 알리예프 경제개발부 장관이 <strong><span style="COLOR: #ff0000">불과 5일 뒤에 쿠데타 혐의로 구속되었다.</span></strong> (위의 책 145쪽)</blockquote><p>다시 파리즈 이스마일자데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나는 그를 비난하거나 조롱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그의 글을 통해서 미국생활을 체험한 제 3세계의 젊은이가 어떻게 '미국식'에 동화되어 친미 성향을 갖게 되는지,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서는 어떻게 (본의와 무관하게) 고국의 독재나 권위주의 정권에게 봉사하게 되는지 어림짐작해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파리즈 이스마일자데와 같은 젊은이들이 향토적(?)인&nbsp;제 3세계의 지배집단에게 보다 깔끔하고 모던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역할도 일정 부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덕분에 제 3세계 권위주의 정권의 수명은 더욱 한층 연장되는 것이고. <br><br>개인적으로는 파리즈 이스마일자데와 비견될 만한 한국의 정치인은 남경필이나 홍정욱이 아닐까 싶다. </p><br/><br/>tag : <a href="/tag/책읽기" rel="tag">책읽기</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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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기타 지역사</category>
		<category>책읽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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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Nov 2009 08:07:4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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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고려 후기 안동 권씨에 대한 잡설 (6)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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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공민왕이 즉위한 뒤 안동 권씨는 2차례의 큰 시련을 맞게 됩니다. <br><br>첫 번째는&nbsp;앞서도 말씀드린 바 있는 권겸의 죽음입니다. 권겸은 공민왕의 부친 충숙왕이 몽골제국에 끌려갔을 때에도 끝까지 충성을 다했으며, 공민왕이 즉위할 무렵에는 재상급 관료로써 이제현과 함께&nbsp;안동권씨 집안의 제일 큰 어른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셋째 형인 왕후야&nbsp;충선왕의 양자가 되어 왕씨 성을 받았으니 논외로 칠 수 있겠지요. 딱히 나쁜 짓을 많이 한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다른 장수들이 가기 싫어했던 장사성 토벌전에도 고려군을 이끌고 참여하는 걸 보면 문무를 겸전했다고도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기록만 놓고 보자면 권겸이 공민왕에게 죽임을 당한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딸을 아유시리다라에게 바쳤다는 것이죠. -_-;;;;<br><br>물론 권겸의 죽음이 안동권씨 전체의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좀 지나친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가문의 입장에서는 가문을 살리기 위해 정치적 궁지에 몰린&nbsp;가문의 일원을 도마뱀 꼬리 잘라내듯 잘라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기전체 사서의 반역열전이나 간신열전을 보면&nbsp;<span style="COLOR: #ff0000"><strong>"OOO</strong><span style="COLOR: #000000">(반역열전이나 간신열전에 등장하는 인물)</span><strong>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나 덕이 없어 그 부친</strong><span style="COLOR: #000000">(또는 형)</span><strong>인 XXX가 늘 '저 아이는 우리 집안을 망칠 것이다'라고 한탄하였다"</strong></span>는 식의 기록이 종종 나오는 걸 아실 수 있습니다. 가문 차원에서의 책임회피이지요. <strong><span style="COLOR: #3333ff">"정말 열심히 가정교육을 시켰는데 워낙에 싹수가 노래서 우리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span></strong> 라는 식입니다. 제갈각이 손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제갈근이 정말로 '저 아이는 우리 집안을 망칠 것이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해도 [삼국지] &lt;오서&gt;에 실리지 않았겠지요. 그런 점에서는 <strong>'역사는 승자의 기록'</strong>이란 명제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덕일이나 윤선주처럼 되어서는 곤란하지만요. -_-;;;;)<br><br>두 번째는 권진의 죽음입니다. 권진이 누구인고 하니 권준(권겸의 큰형)의 증손자이고 자제위(!)의 일원입니다. 공민왕 암살사건이 벌어졌을 때 권진도 자제위의 멤버로써 연루되어 당연히(?!)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당시는 연좌제가 엄연히 적용되던 왕조사회였으므로 안동권씨의 집안 사람들도 당연히 -_-;;;; 처벌받습니다. [고려사]를 뒤져보니 권진의 부친과 형이 죽임을 당했으며, 권진의 작은 할아버지 1명, 권진의 숙부 2명, 권진의 일족 2명이 귀양을 가는군요. (보다 자세한 내용은 &lt;떡밥春秋&gt; 1호에 실린 저의 글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br><br>물론 이 사건으로도 안동권씨가 몰락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권준의 동생 권고의 집안에서 걸출한 인물이 나왔거든요. 바로 권고의 손자 권근입니다. 공민왕 재위기에 18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했는데, 나중에 공민왕이 급제자를 확인하러 나온 자리에서 권근을 보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너무 어린데 어떻게 급제했느냐는 거죠. 동지공거(과거 시험관) 이색이 소녀시대처럼 "어리다고 <strike>놀리지</strike>얕보지 말아요~" 라고 공민왕을 달랬다고 합니다. -o-;;;;<br><br>권근부터는 조선시대로 들어가므로 이 연재 포스팅은 여기에서 막을 내립니다. 덧붙이자면 권근의 아들이 권제이고, 권제의 아들이 권람이며 권람의 후손이 바로 행주대첩의 권율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얼핏 들었는데 인터넷으로 출처확인이 안 되네요. 아시는 분은 제보 점..... -_-;;;;</p><br/><br/>tag : <a href="/tag/공민왕" rel="tag">공민왕</a>,&nbsp;<a href="/tag/공민왕시역사건" rel="tag">공민왕시역사건</a>,&nbsp;<a href="/tag/몽골" rel="tag">몽골</a>,&nbsp;<a href="/tag/충선왕" rel="tag">충선왕</a>,&nbsp;<a href="/tag/이덕일" rel="tag">이덕일</a>,&nbsp;<a href="/tag/윤선주" rel="tag">윤선주</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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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고려시대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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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Nov 2009 06:18:2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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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어떤 대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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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12/44/e0021044_4afc12cd886b2.jpg" width="500" height="273.6916548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12/44/e0021044_4afc12cd886b2.jpg');" /></div><strong><div style="TEXT-ALIGN: center"><strong>&lt;클릭해서 크게 보시압&gt;</strong></div></strong><br>1. 김태희는 저도 별로 안 좋아해요. 외모에 비해서 연기력도 안 좋은 편이고, 작품 고르는 안목도 별로인 것 같고. 하지만 그와 별개로&nbsp;김태희가 아픔을 모른다느니, 마이너 감수성이 없다느니, 역지사지도 할 줄 모른다느니 (지가 봤나?) 하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너무 무례한 태도 아닌가요? 게다가 저 사람은 김태희의 미래에 대해서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단정짓는답니까?<br><br>2. "열심히 이명박이나 찬양하라고 하세요"라는 대목에서는 솔직히 <strong><span style="COLOR: #ff0000; FONT-SIZE: 130%">패륜</span></strong>이 느껴졌습니다. 이명박은 저도 싫어하지만 이순재씨까지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지요. 저런 식으로 말하는 종자들,&nbsp;정말 증오하고 경멸합니다. <br><br>3. 웬만한 난독증이 아닌 이상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요지는 <strong>"비교적 좋은 학벌에 비교적 편안한 과정을 거쳐 연기력을 인정받고 스타가 된 사람들이 싸잡아 매도당할 수 있다는 점"</strong>이라는 걸 알 수 있을텐데 저 분은 대답하기 귀찮은 건지, 대답할 능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정말 난독증인지 그 점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있네요.<br><br>4. 사실 이 포스팅 자체를 좀 망설였는데, 앞에서 바로 얘기하지 못하고 뒤에서 찌질대는 것 같아서. -_-;;;; 하지만 억울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네요. 저런 사람하고 계속 얘기해 봤자 제 말이 먹히지도 않을 것 같고. <br><br>5. 뭔가 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떠오르지가 않는군요. 여러 모로 답답합니다. <br/><br/>tag : <a href="/tag/신변잡기" rel="tag">신변잡기</a>,&nbsp;<a href="/tag/무개념" rel="tag">무개념</a>,&nbsp;<a href="/tag/심리상태" rel="tag">심리상태</a>,&nbsp;<a href="/tag/이명박" rel="tag">이명박</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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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이런저런 단상</category>
		<category>신변잡기</category>
		<category>무개념</category>
		<category>심리상태</category>
		<category>이명박</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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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Nov 2009 14:05:57 GMT</pubDate>
		<dc:creator>自重自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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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고려 후기 안동 권씨에 대한 잡설 (5)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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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충선왕과 가까운 충선왕의 조카 심양왕 호와 충숙왕이 대립을 하게 되자 충선왕 지지세력도 쪼개지는데, 평양조씨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심양왕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권부의 부친 권단의 문생들도 대부분 심양왕을 지지하는 것 같구요. 하지만 안동권씨들은 대체적으로 충숙왕을 지지하면서 충선왕과 충숙왕의 사이를 중재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권준, 왕후, 권겸, 이제현 등이 바로 그들이지요.<br />
<br />
권준은 권부의 장남이고, 왕후는 권부의 3남으로 원래 이름은 '권재'입니다. 충선왕이 권재를 보고 마음에 들어해 양자로 삼은 뒤 왕씨 성과 새 이름을 주었다고 하네요. 권겸은 권부의 4남인데, 바로 공민왕이 반원개혁정치를 펼칠 때 기철, 노책과 함께 칼을 맞아 죽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사실 권겸이 [고려사] <반역열전>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아니지요. 충숙왕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쳤고, 장사성의 군대를 토벌하기 위해 직접 고려군을 이끌고 중국 대륙을 누비기도 했거든요. 권겸이 죽은 단 한 가지의 이유는, 아유시리다라에게 딸을 바쳤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_-;;;; 그리고 이제현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권부의 사위입니다. <br />
<br />
충선왕과 충숙왕을 돕기 위한 이들의 행동은 가히 헌신적이라 할만 합니다. 특히 왕후는 충선왕이 티베트로 귀양을 갈 당시 몽골 제국의 수도 대도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당시 몽골 제국의 카안이었던 시데발라에게 충선왕 대신 자신을 귀양보내 달라고 간청할 정도였습니다. 충선왕은 어쩌다 모함에 걸린 것이 아니라 시데발라와 정치적으로 척을 지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간청이었지요. 다행히 시데발라가 왕후의 충성심을 어여삐 여겨서 화를 입거나 하진 않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왕후는 간청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티베트를 향해 길을 떠납니다. -o-;;;; 다행히 임조(지금의 중국 감숙성에 있음)에 이르러 귀양에서 풀려나온 충선왕과 만나게 되지만요. 이제현도 대도에 계속 머무르며 충선왕의 석방을 위해 동분서주했을 뿐만 아니라 왕후와 함께 서쪽으로 떠나 충선왕을 만나 함께 대도로 돌아옵니다. <br />
<br />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마냥 좋게만 평가해 줄 수도 없는 것이, 이들이 고려의 고위직을 지내며 저지른 부정부패나 권력남용도 그냥 눈감아 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권준의 경우, 집안 사람(家人)이 무려 부녀자 윤간 미수 -o-;;;; 에 가담하기도 했고, (그러고도 처벌은 받지 않음. -_-) 집이 엄청 크고 화려해서 충숙왕이 탄식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지요. 토지 약탈과 뇌물수수도 당연히(?!) 저질렀구요. 이제현은 성격상 뇌물을 주고받지는 않은 듯 하지만, 몽골에 표문을 보낼 때 국왕 수준의 예식을 차린 적이 있어서 주위의 비방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이제현의 부친 이진은 아들을 믿고 남의 노비를 함부로 빼앗았다고 하구요.<br />
<br />
뭐,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특히나 고려 후기 같은 혼란기에는 더더욱..... -_-;;;;;;;;;;;;;;;;;;;;;<br/><br/>tag : <a href="/tag/충선왕" rel="tag">충선왕</a>,&nbsp;<a href="/tag/몽골" rel="tag">몽골</a>,&nbsp;<a href="/tag/공민왕" rel="tag">공민왕</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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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고려시대사</category>
		<category>충선왕</category>
		<category>몽골</category>
		<category>공민왕</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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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8 Nov 2009 13:41:02 GMT</pubDate>
		<dc:creator>自重自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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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고려 후기 안동 권씨에 대한 잡설 (4)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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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지금까지 고려 후기에 안동권씨 추밀공파가 부각되어 득세하기까지의 배경을 간략히 말씀드렸는데, 그와 관련해서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누대공신재상지종(累代功臣宰相之種)에 안동 권씨가 오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학계에서도 논의가 조금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br />
<br />
충선왕은 1308년 11월에 왕실 내에서의 근친혼을 금지하면서 (아마 몽골의 영향인듯?) 왕실의 구성원들과 혼인이 가능한 15개 귀족가문을 직접 지정하는데, 이 15개 가문이 바로 누대공신재상지종입니다. 이 15개 가문은 다음과 같습니다.<br />
<br />
<blockquote>경주김씨 김휘의 집안, 언양김씨, 정안임씨, 경원이씨, 안산김씨, 철원최씨, 해주최씨, 공암허씨, 평강채씨, 청주이씨, 당성홍씨, 황려민씨, 횡천조씨, 파평윤씨, 평양조씨.</blockquote> <br />
이 15개 가문은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권문세족으로 종종 언급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안동권씨가 빠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유력한 가문을 모두 포함한 목록이 아니거든요. 정안임씨의 경우는 고려 초중기에 빛이 좀 났지만 무신정권과 몽골 간섭기를 거치면서는 존재감이 많이 약해진 편이고, 철원최씨도 존재감이 많이 약해졌다가 공민왕 대에 최영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다시 빛이 납니다. 다시 말해서 이 15개 가문은 고려 후기의 실질적인 핵심 지배계층은 아니었으리라는 것이죠. 위 목록은 고려 초기의 유력한 가문과 고려 후기 당시의 유력한 가문을 적절히 섞어서 작성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br />
<br />
그리고 사실 충선왕의 명령(왕실의 구성원들은 15개 귀족가문하고 혼인할 것)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지도 의문이지요. 앞선 포스팅에서 권부의 아들 6명과 사위 3명이 모두 군(君)에 봉해졌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사위 2명이 바로 왕족이거든요. (나머지 1명이 바로 이제현) -o-;;;;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하자면, 충선왕이 자기 명령의 시행여부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도 의문거리예요. 충선왕의 권위주의와 변덕은 꽤 심각한 수준이었거든요. 어쩌면 누대공신재상지종은 충선왕의 변덕의 소산이며, 그 변덕의 소산이 기록으로 남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후세 학자들의 골칫거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군요.<br />
<br />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번 포스팅은 참 무의미한듯. -_-;;;;;;;;;;;;;;;;;;;;;;;;;<br/><br/>tag : <a href="/tag/충선왕" rel="tag">충선왕</a>,&nbsp;<a href="/tag/몽골" rel="tag">몽골</a>,&nbsp;<a href="/tag/공민왕" rel="tag">공민왕</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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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고려시대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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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몽골</category>
		<category>공민왕</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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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7 Nov 2009 12:57:11 GMT</pubDate>
		<dc:creator>自重自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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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고려 후기 안동 권씨에 대한 잡설 (3)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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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권단의 아들 권영은 18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한 뒤 비교적 순탄한 벼슬살이를 계속했습니다. 충렬왕이 퇴위하자 충선왕이 즉위하여 광정원, 사림원 같은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개혁정치(?)를 펼치게 되는데, 권영은 사림원의 시강학사가 되어 충선왕을 돕게 됩니다. 사림원에는 권영 말고도 이진(이제현의 부친), 이승휴, 박전지 등이 근무하며 충선왕을 도왔는데, 충선왕은 이들을 각별히 총애하며 밤늦게 어울려 술을 마시며 정치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br><br>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충선왕의 천하는 7개월여만에 끝나버리고 다시 충렬왕이 복위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대 숙청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이승휴, 박전지 등은 벼슬자리에서 짤렸다는 기록이 분명히 있는데 권영은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좌부승지로써 관리 선발과 임명을 주관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안동 권씨 집안이 충렬왕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커진게 아닌가 하는 상상도 잠시 해 보았는데 그건 너무 지나친 것 같고, -_- 하여간 충선왕이 퇴위한 뒤에도 권영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br><br>충렬왕이 밀려나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충선왕이 재즉위하자 권영은 다시 충선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이 무렵에 이름을 권'영'에서 권'부'로 바꿉니다.) 충숙왕 때에는 최고 재상직이라고 할 수 있는 영도첨의사사사(신돈이 받았던 그 벼슬입니다.)까지 승진했습니다. 권부의 아들 6명과 사위 3명이 모두 군(君)으로 책봉되기까지 했구요. 이것이 바로 안동 권씨의 2가지 자랑거리 중 하나인 '1가 9봉군'인데, 이 '1가 9봉군'은 바로 충선왕의 각별한 배려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br><br>그런데 권부라는 사람의 역사적 의의는 단순히 충선왕의 총애를 받아 재상이 되었다는 점에 있지 않지요. 주자의 [사서집주]를 고려에서 출간하게 한 사람이 바로 권부였거든요. 그래서 [고려사]에서는 東方性理之學自溥(동방의 성리학은 (권)부에게서 시작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향으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아 성리학을 발전시킨 사람이 백이정, 이제현인데, 백이정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권부의 부친 권단의 문생이었고, 이제현은 권부의 사위입니다. 안향도 유경의 문생이라는 점에서는 안동 권씨 집안과 간접적인 연관이 있구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한반도에 최초로 들어온 성리학은 안동 권씨 집안의 가학(家學) 비슷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라는 조심스런 추측도 해 봅니다. -o-;;;;<br/><br/>tag : <a href="/tag/충렬왕" rel="tag">충렬왕</a>,&nbsp;<a href="/tag/충선왕" rel="tag">충선왕</a>,&nbsp;<a href="/tag/신돈" rel="tag">신돈</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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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고려시대사</category>
		<category>충렬왕</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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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신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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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Nov 2009 01:24:24 GMT</pubDate>
		<dc:creator>自重自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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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고려 후기 안동 권씨에 대한 잡설 (2)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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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앞서 말씀드린대로 안동 권씨 추밀공파의 입지 급상승은 권수평의 손자이자 권위의 아들인 권단 대에 이르러 이루어집니다. 권단 본인은 별로 벼슬 욕심도 없었고, 40여년간 채식을 고집할 정도의 독실한 불교신자였다고 합니다. (말년에 실제로 출가하여 승려가 됩니다.) 이런 권단이 벼슬길에 오르게 된 이유는 아버지 권위가 로비와 재산공세 -_- 를 통해 억지로 벼슬자리에 앉혔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_-;;;;<br />
<br />
하여간 고려 조정 내에서 권단은 곧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권단이 인정받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역시 유능하기 때문이었지요. [고려사] <열전>에서는 권단에 대해 廉勤精明(청렴, 근면, 상세, 명확)이라 평하고 있습니다. 또한 권단은 부패관리의 두개골을 부숴서 죽일 정도의 (덜덜덜) 단호함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o-;;;; <br />
<br />
다른 한 가지의 이유는 권단이 당시 고려 조정의 실력자였던 유경의 후원을 입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유경은 김준과 함께 최의를 죽여 최씨 무신정권을 끝장낸 바 있으며, '삼한거부'라 불릴 정도의 재산가였을 뿐만 아니라, 발도 넓고 과거시험관도 여러 차례 지낸 덕에 인맥이 무척 거대했습니다. 한반도 성리학 태동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안향도 유경의 문생이었지요. 유경은 권단을 후원해 주었을뿐만 아니라, 권단의 아들인 권영을 손자사위로 맞아들여 이런저런 배려를 베풀어줍니다. (그래서 뒷소리도 좀 들었습니다. -_-)<br />
<br />
권단 본인도 과거시험관을 거치며 권한공, 김원상, 최성지, 채홍철, 백이정 같은 사람들을 문생으로 두게 됩니다. 그런데 이 문생들을 좀 눈여겨볼 필요가 있네요. 이들은 나중에 충렬왕-충선왕 간의 부자간 권력투쟁이 벌어질 때 대부분 충선왕 편에 서거든요. 충선왕-충숙왕 간의 부자간 권력투쟁이 벌어질 때에도 대부분 충선왕 편에 서구요. 다시 말해 권단을 중심으로 하여 충선왕을 지지하는 인재 풀(?)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br />
<br />
권단의 아들 권영은 나중에 이름을 권'부'라고 바꿉니다. 권부 역시 한반도의 성리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요. 그 이야기는 3편에서 계속.<br/><br/>tag : <a href="/tag/충렬왕" rel="tag">충렬왕</a>,&nbsp;<a href="/tag/충선왕" rel="tag">충선왕</a>			 ]]> 
		</description>
		<category>고려시대사</category>
		<category>충렬왕</category>
		<category>충선왕</category>

		<comments>http://ksyi9070.egloos.com/2469892#comments</comments>
		<pubDate>Wed, 04 Nov 2009 14:13:01 GMT</pubDate>
		<dc:creator>自重自愛</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고려 후기 안동 권씨에 대한 잡설 (1) ]]> </title>
		<link>http://ksyi9070.egloos.com/2469246</link>
		<guid>http://ksyi9070.egloos.com/2469246</guid>
		<description>
			<![CDATA[ 
  제가 그나마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고려 후기에 대한 연재 포스팅을 하도록 하지요. 주로 이야기할 소재는 안동 권씨(중에서도 추밀공파)입니다. <br />
<br />
안동 권씨의 시조 권행은 후삼국 통일전쟁 당시에 첫 등장을 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고창(지금의 안동)에서 후백제의 견훤과 맞싸울 때에 왕건을 도와서 그 공으로 권씨 성을 받았다고 하구요. (원래는 김씨라고 함) 안동 권씨 전승에 의하면 권행은 원래 신라의 왕족 출신이라고도 합니다. <br />
<br />
그런데 이 시조 권행과 추밀공파의 파조 권수평이 직접적으로 이어지는지는 약간의 의문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권수평>을 보니 안동사람인데 내력이 희미해 족보는 알 수 없다고 하네요. [고려사] 편찬작업에는 권수평의 직계 후손인 권제가 참여한 바 있고, 또 안동 권씨 추밀공파 집안의 사위인 이제현의 [사략]이 인용됩니다. 따라서 권수평이 정말로 권행의 후손이라면 [고려사] <열전> <권수평>에 내력이 희미해 족보를 알 수 없다는 대목이 들어가진 않았을 것 같은데, 하여튼간에 현재 안동 권씨 족보에서는 권수평을 권행의 9대손이라 하고 있습니다. -_-a<br />
<br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검색어 <권수평>을 입력하면 고려시대 문신이라고 나옵니다. 올바른 설명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권수평은 무관직인 대정(종 9품)을 지냈고, 국왕의 호위대격인 견룡에서도 복무하거든요. 문신의 이력이라고 보기는 힘든데, 나중에 꽤 고위직인 추밀원부사(정 3품)까지 승진합니다. 그래서 문신이라고 한 모양이네요. <br />
<br />
하급 무관으로 출발한 권수평이 추밀원부사까지 승진한 이유는 당시가 최씨 무신정권기였다는 점과 무관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권수평의 사망년도가 1250년(고려 고종 37년)인데, 편의상 1200년생이라 치면 최충헌이 명종을 폐위하고 신종을 옹립하던 무렵에 태어나 최충헌의 손자 최항이 집권할 무렵까지 생존한 셈이지요. 권수평이 죽을 무렵에는 온 고려가 몽골 침략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을테구요. 당시 고려 조정은 강화도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었을 때인데, 아마 권수평의 사망지도 강화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br />
<br />
권수평의 아들 권위는 한림학사 벼슬을 지냈다고 하고, (진짜로 문신인 모양) 권위의 아들 권단 대에 이르러 고려 조정 안에서 이 집안의 입지는 급상승하게 됩니다. <br/><br/>tag : <a href="/tag/몽골" rel="tag">몽골</a>			 ]]> 
		</description>
		<category>고려시대사</category>
		<category>몽골</category>

		<comments>http://ksyi9070.egloos.com/2469246#comments</comments>
		<pubDate>Tue, 03 Nov 2009 13:22:42 GMT</pubDate>
		<dc:creator>自重自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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