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xml-stylesheet href="http://rss.egloos.com/style/blog.xsl" type="text/xsl" media="screen"?>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channel>
	<title>多思癡</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link>
	<description>kjhyun0500님의 블로그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15 Sep 2009 21:52:22 GMT</pubDate>
	<generator>Egloos</generator>
	<image>
		<title>多思癡</title>
		<url>http://md.egloos.com/img/samplelogo2.gif</url>
		<link>http://kjhyun0500.egloos.com</link>
		<width>80</width>
		<height>80</height>
		<description>kjhyun0500님의 블로그입니다.</description>
	</image>
  	<item>
		<title><![CDATA[ 나는 신이다  ]]> </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10145458</link>
		<guid>http://kjhyun0500.egloos.com/10145458</guid>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나(我)는, 신(神: 우주의 주인)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소우주라 할 수 있는 정육면체 거울상자 속의 주인인 나(我)와, 그리고 여섯 개 각각의 거울 속에 모습을 들어낸 나아닌 나(我)는, 어떤 관련성(關聯性: 어떤 사물과 다른 사물이 내용적으로 이어져 있음)이 있을까? 이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들(거울 속에 모습을 들어낸 나아닌 나)은 하나같이 주인(거울상자 속의 주인인 나)을 닮지 않았느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고 답할 것입니다. 즉 외관(外觀: 겉모양. 겉보기)이 닮았다는군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면 우리가 착각(錯覺: 실제와는 다른데도 실제처럼 깨닫거나 생각함)하거나 간과(看過: 깊이 관심을 두지 않고 예사로이 보아 내버려 둠)하기 쉬운 겉모습부터 살펴봅시다. 거울상자 속의 주인인 나와 각각의 거울 속에 들어낸 나의 모습이 같거나 닮았다는 주장이지만, 여섯 개 각각의 거울 속에 들어낸 모습들을 어떤 식으로 조합하거나, 촬영하더라도, 거울상자 속의 주인인 나와는 약간씩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그것은 각각의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은 1차원영상이며 마치 평면도(平面圖)와 같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지만 나와 똑 같은 나를 재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의료장비인 3차원영상촬영이라는 기술에 의해서는 가능하겠으나, 각각의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만으로 나와 같거나 닮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거울 속에 비친 (나! 의)모습이 거울상자 속에 있는 ‘나!’이기는 하지만, 각각의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곧 거울상자 속에 있는 ‘나!’와 같은 동일(同一)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거울상자 속의 주인인 나와 각각의 거울 속에 들어낸 나의 모습(形態: 사물의 생긴 모양)이 약간씩 닮기는 했으나, 상당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또 다른 무엇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혹시 마음(良心)을 닮은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소우주의 주인인 사람과 그의(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형태)의 마음은, 확실하게 단언하건대 같거나 닮았을 것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을 밖으로 들어내어 확인할 방법이 없어, 같은 것(良心)인지 또는 닮은 것(良心)인지 쉽게 판단 할 수 없겠지만, 거울상자 속의 주인인 나의 마음과, 여섯 개 각각의 거울 속에 나타난 나의 모습들의 마음(良心)이, 똑 같다는 사실만은 필연이며 당연한 순리인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 60여 억 명의 인류 각각이, 대동소이(大同小異: 거의 같고 조금 다름. 비슷비슷함)하지만 100％ 닮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우리들 인류로서는 우주의 주인의 형태(모습)를 가름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의 주인의 형태(모습)를 알아야, 우리 인류가 얼마만큼 닮았는지 알 수 있거나 또는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 터인데, 우주의 주인의 형태(모습)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인류가 얼마나 닮았다거나 안 닮았다고 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들의 짐작으로 우주의 주인은, 영(靈: logos: 大意識)의 형태로 우주 최고위 차원(次元)세계에서 우리 인류를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주의 주인과 나(또는 여러분 자신들과)의 모습(형태)이 닮았다고 확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럼 또 다른 무엇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물음 역시, 육신을 가진 우리 인류로서는 감히 근접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으나, 우리 인류의 눈높이에서 살피고자 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우주의 광대함을 말할 때, 이 우주에는 수천 억 개의 위성(衛星)이 모여 하나의 은하계가 형성되고, 또 이런 은하계가 수천 억 개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수천 억 개의 위성× 수천 억 개의 은하계= 수 억 만개(부지기수)의 위성 중에 하나인 지구라는 위성에서, 생명(삶)을 유지하고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이랄까 닮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곧 우주의 주인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모든 동물과 식물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으며, 그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사랑이라는 것(母性愛)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수많은 종류의 식물과 동물은 단순하게, 제 혼자 태어나서 제멋대로 살다가 제 혼자 죽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식물과 동물의 개체 각각이 제가 잘나서 혼자 힘으로 태어나는 것도, 독불장군 식으로 제 혼자 제 마음대로 살다가 아무런 의미 없이 죽어 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미의 지극한 사랑으로 태어나고, 어미의 보호아래 성장하면서 이웃을 돕고 이웃에 베풀어 가며 살다가, 생명이 다할 때에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제공하고 죽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미와 새끼의 관계에서 발동되는 모성애는 단순히 어미의 모성애라기보다, 우주의 주인의 마음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게 모든 동물과 식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있는 모성애와 달리, 60여 억 명의 우리인류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으며, 그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건전한 양심(良心: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바른 말과 행동을 하려는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이런 건전한 양심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혹자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혹자는 바른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까요? 그것은 욕심과 탐욕이 많은 사람은 양심의 발동을 억제시키고, 욕심과 탐욕이 적은 사람일수록 양심의 발동이 허용되어지기 때문이며, 누구나 자신의 욕심과 탐욕으로 인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후회하고 반성하는 마음(양심)의 가책(呵責: 꾸짖어 나무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 인류가 하나같이 갖게되는 양심의 가책은, 전 인류의 공통적인 현상이며 동시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의 우위(優位: 만물의 영장)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것입니다. 이 양심의 가책은 곧 우주의 주인(태초의 창조주)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양심의 가책은, 인종과 종교, 남녀노소는 물론 빈부와 유․무식(有․無識)의 차이를 초월하여 누구나 갖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단 하나(우주의 주인)의 주인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래서 우리 60여 억 명의 인류 각각의 마음은 우주의 주인(태초의 창조주)의 마음이기는 하지만, 60여 억 명의 인류 각각이 우주의 주인의 마음과 같은 동일(同一)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참 나!’는 태초의 창조주와 동일(同一)일 수는 없지만 온갖 마음은 창조주를 닮으므로 서, 창조주에 가까워져 결국은 하나의 마음으로 합치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의 주인(태초의 창조주)의 마음과 나 또는 여러분의 마음이 일치되는 그 찰라 에(더디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我)는 곧, 신(神: 우주의 주인)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심과 탐욕을 버린 마음으로, 마치 ‘내리사랑’과 같은 무조건적이고 무한대적인 진실한 사랑을 이웃(동료와 형제)에게 나누거나 이웃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다면 ‘참 나!’는 곧, ‘우주의 주인’을 닮은 것이며 또한 ‘나(我)’ 이외(60여 억 명)의 모든 사람들도 이러한 마음을 가지므로 서, ‘우주의 주인’을 닮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주의 주인의 마음가짐을 닮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전 인류)는, 형제인 동시에 동료로서 전쟁과 테러를 없애고 증오(憎惡)와 질시(嫉視)를 버리고, 애정(愛情)과 사랑으로 나누거나 도울 수 있다면, 인간 세상 자체가 바로 천국이요 극락세계가 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span></p>			 ]]> 
		</description>
		<category>나는 신이다</category>

		<comments>http://kjhyun0500.egloos.com/10145458#comments</comments>
		<pubDate>Tue, 15 Sep 2009 21:52:22 GMT</pubDate>
		<dc:creator>다사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참 나는!  ]]> </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10141623</link>
		<guid>http://kjhyun0500.egloos.com/10141623</guid>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참 나(我)는!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가. 거울 상자 속의 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나. 우주 속에서의 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nbsp;</p><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불교인들이 말하는 ‘참 나를 찾아라!’는 말은, ‘나 혼자만의 나’가 아닌 것처럼 이 글을 읽고있는 여러분 자신에게도, ‘참다운 여러분의 모습을 찾아라’는 말과 같은 뜻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욕심을 버리면 만인이 다 부처라고도 했었고 또 석가모니는, 무욕무탐의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다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였듯이, ‘참다운 나’라는 것은 어느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60억 지구인 개개인 모두가 참다운 자신을 찾는 것과 같을 거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 개개인에게도 ‘참다운 자신들의 모습을 찾아라’는 말과 상통할 것이며, 따라서 이 글을 쓰고있는 필자자신이 참 나를 찾는 수단과 방법은 곧, 모든 사람 개개인이 참다운 자신들의 모습을 찾는 수단 방법과 같은 과정을 경유한다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너무 자주 인용하다보니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 개개인이 창조주와 같이 무욕무탐의 청결한 마음과 가장 가까웠을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시기는 온갖 욕심이 생기기 이전인 유아기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유아기가 지나면서부터는, 보다 크고 많은 것과 보다 좋은 것들을 갖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 곧 욕심이라 한다면, 유아기를 비롯하여 비록 성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욕심을 버릴 수만 있었다면, 누구나 다 이미 부처님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살이에 있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욕심을 버리는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기에 종교인들은 일생을 걸고 욕심 버리기를 연습하는 것이 아닐까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필자 또한, 이 글을 읽고있는 여러분에게까지 욕심을 버리자고 주문 따위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정도의 무욕무탐의 설교나 설법은 종교지도자들이 신도에게나 주문할 사항이지, 이 글의 주제인 ‘참 나’와도 다소의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 언급한 것은, 어쩌면 평생을 찾아 헤매야할 ‘참 나’의 모습이, 그런 창조주(우주의 주인. 부처님.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가. 거울 속의 나(我)</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면, ‘참 나’를 찾기 위하여 지금부터 ‘하나. 차원세계’ 편에서 언급한 거울 속의 세계를 비롯하여, 4차원세계의 모양 즉 ‘정육면체의 거울상자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볼까 합니다. 정육면체의 거울상자 속으로 여행하기 전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 먼저 한 면(개)의 거울 속의 세계로 가 봅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누구나 거울 앞에 들어서기만 하면, 반드시 거울 속에서도 자신과 똑 같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거울 앞에 서있는 자신과 거울 속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앞의 어느 부분에서, 거울 앞에 서 있으니 거울 속에는 없어야 하는데도 거울 앞과 속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을 즉 ‘없으면서도 있고’ 반대로, 거울 속에 서 있으니 거울 앞에는 없어야 하는데도 거울 속과 앞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을 즉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라고 정의해 놓은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지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따라서, 거울 앞이든 거울 속이든 또 자신의 실상이든 자신의 허상이든 오직 한 개체만 존재한다는 사실과, 거울 앞에 서있는 것은 자신이며 거울 속에 서있는 것은 자신의 모습(허상)이라는 사실도, 아울러 상기해 두기 바랍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 다음은 양면(두개)의 거울 속의 세계로 들어가 봅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양면(두개)의 거울이란, 자신을 중심으로 전․후 또는 좌․우에 거울 두 개를 마주보게 세워놓은 것으로, 그 양면(두개)의 거울 사이에 들어가 보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살펴봅시다. 즉, 한 개의 거울 앞에 서보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허상)은 하나였는데, 좌․우(두개)의 거울사이로 들어가 보면 좌측거울 속에도 우측거울 속에도 많은 자신의 모습(허상)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곧, 거울이 한 개였을 때는 거울 속에도 한 개의 모습(허상)이 존재하였는데, 거울이 한 개가 추가되어 두 개일 때는 훨씬 많은 모습(허상)이 자신(실체)의 의지와 같이 따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두개의 거울 중간에는 하나의 실체(자신)가 존재하는 것인데, 좌․우측 두개의 거울 속에는 많은 허상(모습)이 존재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마찬가지로, 두 개의 거울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도 거울 앞과 거울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똑 같이 자신의 모습(허상)이 존재하는 현상에 대하여 ‘있으면서도 없고’ 반대로, ‘없으면서도 있는’ 현상을 이해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자신을 중심으로 한 양면(두개)의 거울 앞에 서있는 것은 자신(실체)이며, 좌측 거울 속이나 우측 거울 속에 서있는 것은 모두 자신의 모습(허상)이라는 사실과, 또 자신은 오직 한 개체뿐이라는 사실도 아울러 다시 한번 상기해두기 바랍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 그럼 이제부터, 정육면체(여섯 개)의 거울상자 속의 세계에도 같이 들어가 봅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앞․뒤 거울과 좌․우 거울 및 상․하 거울 등 여섯 개 각각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허상)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즉, 하나의 거울 속에는 하나의 모습(허상)이 존재하였는데, 양면(두개)의 거울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습(허상)이 존재하였고, 정육면체의 거울상자 속에는 여섯 개의 거울 속 각각마다에 부지기수의 모습(허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그 여섯 면의 거울상자 중앙에 서있는 것은 자신(실체)이며, 여섯 면의 거울 속 각각마다에 서있는 것은 자신의 모습(허상)이라는 사실과, 또 자신(실체)은 오직 한 개체뿐이라는 사실도 아울러 상기해 놓기 바랍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이 여섯 면의 거울을 각각 제 1거울, 제 2거울, 제 3거울, 제 4거울, 제 5거울, 제 6거울이라고 명칭을 부여하겠습니다. 제 1거울 속의 5번째 모습(허상)과, 제 2거울 속의 50번째 모습(허상)과, 제 3거울 속의 500번째 모습(허상)과, 제 4거울 속의 5000번째 모습(허상)과, 제 5거울 속의 5만 번째 모습(허상) 및, 제 6거울 속의 50만 번째 모습(허상)들 모두가, 정육면체의 중앙에 존재하는 나 자신(실상: 주인)의 의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현상들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정육면체 거울상자 중앙에는 단 하나의 실체(주인)가 존재하는 데도 전후, 좌우, 상하 등 여섯 면의 거울 속에는 부지기수의 허상(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그렇게 많은 부지기수의 허상(모습)들도 단 하나의 실체(주인)가 추구하는 의지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과 또 자신(실체)은 오직 한 개체뿐이라는 사실도 아울러 상기해 놓기 바랍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정육면체의 거울상자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도 거울 앞과 거울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비롯하여, 양면(두개)의 거울 앞과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 등과 꼭 같이 자신의 허상이 존재하는데 대하여, ‘있으면서도 없고’ 반대로 ‘없으면서도 있는’ 현상을 이해 할 수 있었으면, 크게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결국 정육면체거울상자 속을 ‘소우주’라고 한다면, 그 정육면체거울상자 속에 존재하는 ‘나(我)’는 곧 ‘소우주의 주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여섯 개의 거울 속 각각에 존재하는 허상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주인이자 유일한 ‘나(我)’의 의지에 따라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모습(허상)들에 대하여, 단순히 거울현상에 불과하다고 외면하거나 단정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 우주 속의 나(我)</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작금의 관련 학자들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며 그 나이는 약 120억 년 내외이고, 또한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우주라는 공간(용적 또는 부피)에는, 수천 억 개의 별(위성)이 각각의 공전과 자전으로 형성되어 하나의 단위가 된 은하계가 존재하며 또, 수천 억 개의 별(위성)이 모여 형성된 이러한 은하계도 수천 억 개가 광활한 우주 속에서 각각 공전과 자전으로, 자신들의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약 120억 년(내외) 전에 누군가(절대자)에 의하여, 우주가 창조되어졌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렇게 광활하다고 하는, 수천 억 개(의 별)×수천 억 개(의 은하계)= 수억 만개(부지기수)의 별(위성)이 각자 자신의 궤도를 따라, 공전 또는 자전을 하면서도 별과 별(위성)간에 충돌(또는 이합 집산)등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과 또, 각 위성(별)의 생성과 소멸에도 어떤 질서나 법칙이 존재하므로 서, 그 질서나 법칙에 의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러한 질서나 법칙의 존재를 굳이 인정하려한다면, 약 120억 년 전에 누군가에 의하여, 우주가 창조되어졌을 때부터 존재되어 왔을 것이며 또, 수천 억 개(의 별)×수천 억 개(의 은하계)= 수억 만개(부지기수)의 별(위성) 중에 오직 지구라는 위성에만, 우리 인간과 같이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하겠는가? 하는데도 많은 의문은 남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리고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구는 약 60억 명쯤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구가 생성된 이래로부터 지금까지 탄생이라는 순간을 경유한 인간들이 살다가, 죽어간 숫자도 과연 얼마나 많을지는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이렇게 많은 인간들 중에서, 어떤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죽어가기도 하였을 것이며 또 다른, 어떤 인간은 당시의 시대에 맞게 자신의 천수를 누리다가 죽어가기도 하였을 그들의 의지와 탐욕 또는 망상에 의하여, 진보(進步)와 폐허가 반복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며, 이같이 반복되는 과정을 거치므로 서,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나마 발전하면서 유지하게 되었을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럼, 창조주(우주의 주인)와 우리인간과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혹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그것은, 우주의 역사를 약 120억 년이라는 사실을 전제하에서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우주의 주인(창조주)께서, 지금으로부터 약 120억 년 전에 우주를 창조하였을 것이라고 수긍되어진다면, 우주의 부속물인 수 천억 개의 은하계를 비롯하여 각 은하계마다 수 천억 개의 위성(별)과 함께, 각 위성(별)의 부속물들도 순차적으로 창조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 천억 개의 은하계×수 천억 개의 위성(별)= 수 억만 개의 위성 중에 하나인 지구, 그 지구의 부속물인 약 60억 명의 인류를 포함하여 수 만 종의 동물과 식물들도 결국, 창조주(우주의 주인, 하느님, 부처님)께서 만들어 놓은 위대한 걸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게 위대한 창조주(우주의 주인, 하느님, 부처님)께서는 우리인류에게 무엇을 또는, 어떤 가르침을 주고 싶었을지도 살펴봅시다. 이 부분에서도, 남(종교인)들은 일생동안을 그분들의 수많은 가르침들을 찾아 고행을 거듭하는데, 기껏 필자 따위가 감히 그분들의 한마디 가르침만 인용한다는 것은, 주제 넘는 짓일 수도 있을 것이나 그렇다고, 그분들의 모든 가르침을 다 열거한다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선 하느님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원수를 사랑하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고 하였다고 합니다. 앞의 어느 부분에서는 단순한 원수이야기로 간단히 언급한 바 있었지만,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원수라 함은 우리인간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수가 아닌, 불구대천지수(不俱戴天地讐: 하늘을 함께 할 수 없는 철천지원수) 또는, 불공대천지수(不共戴天地讐: 한 하늘에서 더불어 살 수 없는 원수)등, 원한의 정도가 너무나 커 쉽게 용서하고 사랑하기 어려운 대천지수(戴天地讐: 함께 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원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중국의 예기(禮記) 곡례편(曲禮篇)에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父之讐는 不與共戴天하고 兄弟之讐는 不反兵하며 交遊之讐는 不同國이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즉,</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므로 반드시 죽여야 하고, 형제의 원수를 만났을 때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갔다가 놓쳐서는 안 되므로 항상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다가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하며, 친구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서 같이 살 수 없으므로 나라 밖으로 쫓아내던가 아니면 역시 죽여야 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이런 대천지수(戴天地讐: 함께 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므로, 이 대천지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으려면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용서하지 못할 사람 없으며, 또한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 누구나 쉽게 말로서만 대천지수도 사랑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인데, 대천지수를 사랑하려면 제일 먼저 자신을 그리고 다음으로는 가족을 그 다음으로는,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만약, 자신이나 가족 그리고 이웃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사랑이며, 하느님을 속이는 사랑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인간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는 수단과 방법은, 친인척을 불문하고 개별적인 친소관계를 떠나며, 인종과 피부색 언어 및 종교 그리고 태어난 곳을 불문하고 모든 인류를,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만이 참되고 진실 된 사랑이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음, 부처님의 가르침도 알아봅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모든 인간이 한결같이 탐욕을 버릴 수만 있다면 ‘만물이 다 부처’라고 했으며 또한, 모든 인간이 스스로 욕심을 버릴 수만 있다면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군가에 의해서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증진에 의해서만이, 부처님이 된다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부처님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모든 중생이 본성을 깨닫고 그 본성인 진리 되로 세계를 이루어가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이 진리를 깨달아 진리 본연의 참 자기를 회복하여 참된 지혜와 덕성과 권위를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일체 중생의 진면목이며 일체 존재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모든 중생은 자신의 본성인 진리를 깨달으므로 서 ‘참 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참 나!’를 찾는 길은 자비심(大慈大悲: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크게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며, 번뇌(百八煩惱: 불교에서 나온 말로 인간의 過去, 現在, 未來에 걸친 108가지 번뇌로서, 六官: 耳(소리), 目(색깔), 口(맛), 鼻(냄새), 心(뜻), 體(감각)이 서로 작용해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가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싫지도 않은(不好不惡) 즉, 평등(平等)의 3가지 인식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6×3=18가지의 번뇌가 된다. 거기에 탐(貪), 불탐(不貪)이 있어 18×2=36가지가 되고, 이것을 過去, 現在, 未來 즉 前生, 今生, 來生의 3世에 36×3=108가지)로부터 해탈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결국 부처님께서는 ‘참 나!’를 찾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은 번뇌를 벗어 던지는 일이며, 번뇌를 벗어 던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은 탐욕(욕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비심은 모든 중생이 한결같이 가져야 하는 마음의 기본 바탕이며, 자비심을 가지므로 서 번뇌(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도생활(?)을 하다보면 스스로 부처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럼, 우주의 주인께서는 우리인류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랐을까요? 지금까지, 하느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부처님의 ‘모든 중생은 자신들의 본성인 진리를 깨달어라’는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부처님의 ‘모든 중생은 자신들의 본성인 진리를 깨달으라’는 가르침을 동시에 실천하는 것이, 참 나!를 찾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있을 것이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즉,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곧 욕심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이(원수를 사랑하는)것만으로도 ‘탐욕(욕심)을 버리는 것’인 동시에, ‘탐욕(욕심)을 버리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 또한, 곧 원수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이(탐욕을 버리는)것만으로도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과연, 우리인류가 행하고 따르기 쉬운 것은 ‘하느님의 가르침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일까?’ 두말 할 여지도 없이 육신을 가진 우리 인간이 감당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역시, 하느님이나 부처님 정도나 되니까 가능하고 또한 가르침까지 주었지, 육신을 가지고 인간(3차원)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인류들로서는 감히 흉내도 못 낼 일들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금세기 최고의 종교지도자라고 추앙(推仰: 높이 받들어 우러름)받는 분들 중에서 하느님 또는 부처님이 주신 가르침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인정 할 수 있는 지도자가 과연 몇 사람이나 있었는지(?) 찾아보기바랍니다.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60～ 80년의 생을 사는 기간동안에 하느님이나 부처님 같은 반열에 오르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인간의 본성을 모르면서 인간을 기만한 것인 동시에 아울러, 인간들의 허약한 심성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span></p><p class="쪽 번호"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우주의 주인께서는 태초부터 하느님이나 부처님과 같이 무리하게 원수를 사랑하라 혹은 욕심을 버리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습니다. 즉,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 혹은 욕심을 버리는 것을 하루아침에 이루기를 바라지 않고, 쉬운 단계(일)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익혀서 인내심(지식)이 축적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쪽 번호"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마치 망치질도 제대로 못하는 신출내기 목수(?)에게, 한달 이내에 ‘궁궐을 지어 준공검사를 받아라’는 불가능하고 터무니없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못을 제대로 치는 법, 나무를 고르는 법, 기초와 주춧돌을 놓는 법, 궁궐의 각 요소에 쓰일 나무를 다듬는 법 등을 차근차근 배우고, 기술이 축적되어 궁궐을 지을 실력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만, 못을 제대로 못 치면서도 나무를 다듬으려고 하면 못을 제대로 칠 때까지, 못 치는 시기로 다시 돌려보내(輪回시키)면서 까지 기초부터 숙달하기를 원한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몇 개의 단계가 있을지라도, 그 첫 단계부터 각 단계마다 차근차근 확실하게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다시 되돌려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나’의 참 모습 즉, ‘참 나!’는 이렇게 찾아보면 어떨는지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정육면체거울상자 속(소우주)의 주인은 현재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이고, 우주 속에서의 ‘나’는 정육면체의 거울각각의 속에서 주인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허상)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참 나!’는 바로, 태초의 창조주(우주의 주인)의 의지에 의하여 최초로 창조되었을 때, 그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또한, 태초의 창조주의 의지에 따라 최초로 창조되었을 때의 그 모습이라면, 필자와 여러분은 둘이 아닌 하나이며 남이 아닌 형제이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60여 억 명에 달하는 인류 모두는 필자와 여러분과 둘이 아닌 하나이며 남이 아닌 형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span></p></span>			 ]]> 
		</description>
		<category>참 나는?</category>

		<comments>http://kjhyun0500.egloos.com/10141623#comments</comments>
		<pubDate>Sun, 13 Sep 2009 21:42:35 GMT</pubDate>
		<dc:creator>다사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이웃의 정리  ]]> </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10139329</link>
		<guid>http://kjhyun0500.egloos.com/10139329</guid>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이웃(社會)의 정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들은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기주의(利己主義)’ 또는 ‘이기심(利己心)’이라는 말들을, 많이 듣기도하고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기주의(利己主義: 윤리학에서, 자기의 쾌락을 증진시킴을 도덕적 행위의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이기적 쾌락주의)란,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이나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자기 욕심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빗대어(바로 지적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넌지시 지적해 말하다) 이타주의(利他主義: 이기주의 의 반대)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의 춥고 배고픔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자신들만은 등 따시고 배부름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추구하는 부류들에게, 경종의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고대 그리스: BC 384～BC 322)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 개개인이 유일적으로 살아가는(즉 한사람 또는 한 가족만이 하나의 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어울리고, 또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과정에서 쌓인 신뢰(信賴)에 의하여 이웃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하거나 연상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가 뇌리를 스치곤 하는 것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건강한 남녀가 정상적인 임신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활동성이 강한 약 2000만개 이상의 정자(精子)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실제로는 건강한 남성의 경우 한번에 3억～ 5억 개의 정자를 사정한다 고함) 그러나 실제로 난자(卵子)의 막을 뚫고 임신에 골인하는 영광스러운 금메달은(예외가 있긴 하지만) 단 한 개에게만 주어지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난자의 막을 뚫고 골인한 단 하나의 정자 역시, 자신 혼자 힘 만으로서는 절대로 난자에게까지 도달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약 3억 개 이상의 정자가 하나 같이 난자를 향해 질주하는 과정에서, 꼬리를 힘차게 움직이는 것은 물론 질 분비물인 강한 산성을 중화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수억 개의 정자가 망망대해를 헤엄치듯 꼬리를 강하게 움직여 파동을 일으키게 되는데, 수억 개가 일으키는 파동의 영향은 시너지(synergy: 분산 상태에 있는 집단이나 개인이 서로 적응하여 통합되어 가는 과정)효과를 발생하게되고, 그 효과에 의해 더욱 힘차고 수월하게 전진하는 동시에 강한 산성에 맞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오직 공동의 목표인 임신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인간의 씨(種子: 동물이나 식물이 생겨나는 근본이 되는 것)라고도 할 수 있는 정자 시절부터 금메달을 차지할, 자신 또는 누군지 는 모르지만 3억 분의 1에 해당하는 단 하나를 위해, 적어도 이기적(利己的)인 일생은 아니었든 것 같습니다. 만약 3억 개의 정자(精子) 각각이 이기적인 욕심에서 개별 행동으로 이눈치저눈치 살피며 일생을 살아 왔다면, 인류의 종족은 대(代)를 잇지 못하고 말았을지도 모르는 일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와 같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동물이나 식물도 자신 혼자서는 결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동물은 말할 것도 없이, 각종 식물도 생태적으로 좋은 환경과 비옥한 토질에서는 대부분이 생장(生長)성장만 추구하는 반면, 환경이나 토질이 열악하거나 또는 어떤 방해로 말미암아 생존에 대한 위기 의식이 있어야 번식(繁殖) 성장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만물이 다 이렇게 자신 혼자의 힘만으로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우리네 인간도 ‘나 혼자’ 또는 ‘우리 한 가족’만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와 지금의 이 사회에도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며, 또한 어떤 ‘정리도 필요하지 않겠느냐?’하는 것입니다. 굳이 직설(直說)하자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음으로 양으로 또는 알게 모르게 표현할 수 없는 영향을, 내가 받은 데 대하여 조금이라도 보답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재산이라도 많았으면 그중 일부를, 뚝 떼어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면 간단하고 쉽겠지만, 그렇지도 못하기에 마음만 무거워질 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낙심만 하고 있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느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자비심을 베풀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무조건적인 ‘봉사 즉 사랑’을 강조한 것이라면 이웃의 사랑 없는 봉사활동도 없을 것이며, 기독교에서의 헌금과 불교에서의 보시는 ‘나눔 즉 분배’를 강조한 것이라면 내 것의 분배 없는 나눔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종교의 교리와 그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과 부처님 또는 우주의 주인과 같은 차원(천당과 극락 또는 영계)세계 또는 아주 가까운 차원세계에서, 안식을 얻거나 또는 보다 발전된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봉사활동 즉 사랑’과, ‘나눔 즉 분배’를 가르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봉사활동 즉 사랑’의 표현에 대하여도 쉽게 결론 내리고 단정할 일은 아니겠으나, 일상사에서 신체활동이 자유스러운 사람들은 물론 신체활동이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행하여지고 있는 것 모두가, 다 같은 이웃 사랑의 봉사활동이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이와 같이 양자에 대한 ‘봉사활동 즉 사랑’의 표현에 대한 우선순위와 가치를 논할 수는 없겠지만, 신체활동이 자유스러운 사람에게보다는 신체활동이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에게 행하는 봉사로, 그들의 수족이 되어주는 봉사야말로 ‘하느님과 부처님 또는 우주의 주인’이 베풀고자하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눔 즉 분배’의 형태도 많은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성실한 납세를 포함하여 가끔씩 보도되는 바와 같이,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는 것도 교회에서의 헌금과 불전의 보시도 나눔의 한 형태라는 데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특히, 헌금과 보시자의 의사와는 달리 수탁자의 치부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누구나 천당에서 안식을 얻거나 또는 보다 발전된 미래나 내세를 위한 수단으로, 반드시 십일조와 헌금을 내야하고, 극락세계에 가기 위해 반드시 연등을 사고 보시를 해야하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는, 신체활동이 부자유스러운 사람에 대한 봉사와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들어주는 나눔이야말로 헌금과 보시의 참 뜻일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과 부처님 또는 우주의 주인’이 인식하고 있는 진실한 사랑의 표현일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하더라도 하나의 가정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생활하는 인간과,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인 사랑과 자비의 적극적인 실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하고 흡족한 대안은 아닐지라도, 퇴직 이후부터 어떤 계획과 실천으로 얻어지는 수입의 몇 분의 일(1／가족 수+ 1)이라도 필요로 하는 곳에 보시(布施)할 수 있다면, 이것으로서 만족하고자 할 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p><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nbsp;&nbsp;&nbsp;&nbsp; </span></p>			 ]]> 
		</description>
		<category>이웃의 정리</category>

		<comments>http://kjhyun0500.egloos.com/10139329#comments</comments>
		<pubDate>Fri, 11 Sep 2009 22:42:19 GMT</pubDate>
		<dc:creator>다사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가정의 정리  ]]> </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10135649</link>
		<guid>http://kjhyun0500.egloos.com/10135649</guid>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가정(家庭)의 정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가. 과욕(過慾)은 업을 쌓는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나. 받고싶은 되로 행하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다. 유산의 정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nbsp;</p><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정작 이 글(후회하지 않을 오늘)은 2003년 12월 말경에 거의 완성해 놓고, 2년여가 지니는 동안 “다섯. </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정리기(整理期: 마지막 布施)” 편을 손도 못 댄 이유는, ‘가정에서의 정리’가 제일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마음 되로 정리할 수 있는 어려움이 없어졌는가, 그것은 물론 아닙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보잘 것 없는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장문의 글을 준비해 놓은 상태에서, 얼마 되지도 않을 정리기(整理期)기 때문에 미완(未完)의 상태로 접어두기에는, 너무도 무성의(無誠意)한 것 같아 최근 들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리기의 모든 부분을 포함하지만 특히 여기서는, 계획이라기 보다 ‘이렇게 라도 하고싶다’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가. 과욕(過慾)은 업을 쌓는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어찌 살아있는 인간이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 만은, 너무 지나친 욕심은 자제(自制)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통상적으로 '내 것'은 알뜰하게 챙겨야하겠지만, ‘내 것이 아닌 것’ 또는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든 것’ 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챙기다보면, 업(業)을 쌓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피땀 흘린 대가로 얻어진 금품은 ‘내 것’일 터이고, 부모의 유산(遺産)도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상속으로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재화(財貨)를 얻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여 객관적 타당성에 의해 얻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 것이 아닌 것’ 또는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든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사라 했듯이, 어떤 사건이나 사고 또는 어떤 원인으로 인하여 운명하였을 때, 가해자 또는 원인제공자 등으로부터 단 한푼의 금품도 수수(收受)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건 사고 또는 어떤 원인으로 운명(殞命: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했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運命: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이거나, 현세(現世)에서 저지른 죄업(罪業)에 대한 업보(業報: 불교에서, 선악의 행업으로 말미암은 과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양친(父母)중에 한사람이라도 생존해 있을 경우에는, 절대로 부모 명의의 부동산을 매도(賣渡) 또는 저당(抵當) 등의 처분을 못하게 일러두어야 하고, 또 승낙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림의 전권(全權)을 넘겨주지 말아야 하며 특히, 곳간 열쇠라고 할 수 있는 핵심이 되는 권한은 마지막까지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짝을 잃은 한 분(父 또는 母)의 외롭고 가냘픈 마음이 미사여구(美辭麗句)에 현혹되거나, 혼자 된 부모의 의지할 곳 없는 처지를 이용한 자식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핵심을 넘겨주고 나서 낭패를 당하거나 땅을 치는 보습도 흔하지 않았습니까?</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울러 명절 차례(茶禮)와 조상님들의 기제사(忌祭祀)도, (물론 형편에 따라) 장남부터 막내까지 윤번으로 모시게 하는 것과 이참에 지방(紙榜: 종이로 만든 神主)쓰는 법을 개선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치매나 중풍 또는 현재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원인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이면 머뭇거리지 말고, 해당 시설이나 보호소에 입원시켜야 할 것입니다. 괜히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부모 때문에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부모들도 똑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나. 받고싶은 되로 행하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무래도 혼자 남게될지도 모르는 아내와 관련하여 자식들에게 일러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연들은 우리들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기도 하지만 또한 많은 사례들이 있어 왔기에 꼭 짚어둬야 할 사연들입니다. 분명 예외는 있을 터이지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직장인 시절에, 어떤 사건들을 처리 할 때면 이런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통상적(通常的)으로나 또는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만만(다루기에 손쉬워 보이다)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들의 부모님 중에서도 모친(母親)이더라는 것입니다. 특히 부친 사후(死後) 모친 혼자 생존해 있을 때 이런 경우가 더욱 흔하다는 것은, 자식에게 약한 모성을 여지없이 짓밟는 패륜(悖倫)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되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던가? 아마도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처음부터 대하고 또 오랫동안 대면하면서 살다보니, 모성(母性)의 약점이라면 약점(고슴도치도 지 새끼가 제일 예쁘다 듯이, 자식을 생각하는 지극 정성을 오판하여 그것을 약점으로, 또는 한번쯤 대들어보는 불효 막심한 행동도 곧이어 용서해주는 약한 심성)을 정확히 아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것입니다. 여기에도 물론 예외도 있을 터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깊으면서도 가장 온화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모성(母性)은 어디에서부터 생겨났을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한달 두 달 피를 모아, 석 달 넉 달 입덧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섯 달에 반 짐 실어, 여섯 달에 육 점 안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일곱 달에 구 삭(朔) 받아, 여덟 달에 한 짐 가득 실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홉 달에 운무 좌겨 하옵시고, 열달 가망 곱게 채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좋은날 좋은 시를 개려, 순산으로 돌아보니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직장생활 중 직원들에게 자주 이야기한 것이 생각납니다. 특히 민원실근무의 특징은, 민원인 대다수가 거의 비슷한 내용과 때로는 불만이 쌓여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이때 직원들은 민원인의 막무가내(莫無可奈)식 억지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되고,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민원인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짜증과 불친절한 경우도 가끔은 있었습니다. 민원인들이야 말하기 좋지요 공무원이 불친절하다고, 과장 서장을 찾으면서 한바탕 소란을 피울 때면 참으로 가관 중에 가관입니다. 그렇다고 달리 방도가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래도 참을 수밖에, 직원들을 다독거리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여러분들의 가족이 어느 기관의 민원실을 방문했을 때, 그 민원실 직원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습니까? 아무리 귀찮고 짜증나도 다시 한번 생각해서, 꼭 그렇게 하십시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는 이야기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마찬가지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여러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식(子息)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고 싶습니까?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서, 꼭 그대로 하십시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앞의 어디쯤에서 부모자식간에도 업(業)과 업보(業報)가 연결되어진다고 하였듯이,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부모자식간에 이어진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경우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다. 유산의 정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부모가 남긴 유산의 분배과정에서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것은 요즈음도 흔하게 볼 수 사연들입니다. 유산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모인 모든 재산은, 가족들 모두의 노력과 절제(節制)에 의하여 공동으로 모아졌다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퇴직 당시의 동산과 부동산의 가액(價額)을 산정 하여 가족수 분의 일(1／가족 수)로 미리 정하고, 동산은 분배하는 것이 좋을 것이나 그렇게 하기에는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양친(父母) 모두 사후. 부모명의의 동산 및 부동산을 막론하고 모든 채권과 채무를 빠짐없이 정리한 후, 동양의 유교문화권에서 이해가 쉽지는 않겠지만 자녀수에 따라, 균분(均分)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남과 막내 또는 아들과 딸을 구별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물론입니다. 또한 부모님의 유산(遺産)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일정비율은, 사회로 환원하는 문화와 전통을 만들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그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니겠습니까?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위 모든 사항에 대하여 ‘지금은 세상이 변하고 있다’며, 괜한 걱정들을 한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대상이 돈, 돈(金錢)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아무리 많은 액수의 돈을 가졌다 하더라도, 거기에 흡족함을 못 느끼는 것은 우리네 인간들의 욕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우리들 주변이나 우리사회에서 ‘내노라!’하는 고위공직자는 물론 재벌의 총수도 아직 ‘견금여석(見金如石: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span></p><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span>&nbsp;&nbsp;&nbsp; </p></span>			 ]]> 
		</description>
		<category>가정의 정리</category>

		<comments>http://kjhyun0500.egloos.com/10135649#comments</comments>
		<pubDate>Wed, 09 Sep 2009 22:36:01 GMT</pubDate>
		<dc:creator>다사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거짓 나는!  ]]> </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10133831</link>
		<guid>http://kjhyun0500.egloos.com/10133831</guid>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거짓(현재를 살아가는 동안의) 나(我)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가. 도마 카리스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 아비와 같은 생활은 싫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 바보 같은, 내 인생!</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nbsp; (1) 대인관계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nbsp; (2) 부조와 품앗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nbsp; (3) 그래도, 후회는 않는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라.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span style="FONT-SIZE: 14pt"></span></span></p><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거짓(현재를 살아가는 동안의) 나(我)는,&nbsp; 다시 말해서 육신과 생명을 동시에 갖고, 현재 인간(3차원)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나(我)는 도대체 누구인가? 평범한 보통사람들은 우리인간사회에서 사람을 소개하거나 소개받을 때, 그 사람의 인적사항과 직업 및 주요경력을 소개하게 되면, 벌써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적사항과 직업 및 주요경력 등은 사실상, 그 사람의 바깥으로 드러난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으로는, 이 겉모습에 가려져 있는 인간의 내면을 자세히 알고 소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이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들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을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면, 직원을 새로 채용하거나 친구를 사귀는데도 많은 참고가 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람을 직접 상대하여 사귀고 겪어보기 전에는, 그 인간의 자세한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방법들은 없더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참 나!’를 찾고자 하는 필자의, 이런 겉모습에 불과한 것들은 생략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겉모습이 이 글 중에서 ‘나(我)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필자에 관한 이야기로는, 앞의 ‘넷. 활동기’부분에서 제법 소상하게 소개하였지만, 그것은 겉모습에 불과하여 자신을 다 이야기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무척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년. 독일 칼브 生)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혼자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겸손한 직공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 자리에 그의 옛 생활을 목격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는 격지에서 품팔이하든 때의 이야기를 엄청나게 부풀려서 흥미롭게 아니 그보다 더 전설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는 법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고 했듯이 군 복무를 마친 우리나라 남자들 모두는, 그 당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용감하고 가장 정의감으로 뭉쳐진 시대적 영웅이었음을, 자화자찬하는 모습들이 떠올려지지만 이런 감상에는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이런 때일수록, ‘나는 내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평소의 소신을 상기하고 떠올리면서, 이런저런 변명으로 양심에 부끄럽지는 않아야 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다짐도 해 보았습니다. 아울러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훗날 이 글을 보게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필자에 대한 신뢰성과 ‘나는 내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평소의 소신에 대한 신뢰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모든 당사자들이 얼마나 인정하고 수긍하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과 함께, 영웅담 같은 자화자찬으로 웃음거리나 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결론적으로 말해서 필자라는 인간은, 양가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자식노릇 제대로 못한 것은 젖혀놓고, 한 여성을 반려자로 만났으면서도 아기자기한 남편노릇 제대로 못한 것 또한 물론이고,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친구 같은 아비노릇도 제대로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벌써 정리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 바와 같습니다. 참으로 보잘것없고 평범함에도 못 미치는 불쌍한, 한 인간일 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가. 도마 카리스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필자보다 조금은 나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아내는, 약 4～ 5㎞정도 떨어진 이웃 면의 국민학교 소재지인 빈촌에서 맏이로 태어났으면서도, 4남매 중에서, 유난히 부모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후원에 힘입어 소위 대장노릇(?) 하듯 하면서, 별 다른 구김살 없이 성장하였습니다. 거친 사내동생들 틈에서, 맏이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유지할 수 있도록 옆에서 기를 살려준 무조건적인, 부모님의 관심과 배려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 동생들이, 누나를 대하는 모습에서 한결같이 공손하며 깍듯한 인상이 풍겨지고, 또한 누나 말이라면 함부로 거역하지 못할 정도이며 웬만한 가정사에도, 반드시 누나의 의견도 참고하여 결정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1973년 초, 중매로 만나게 된 우리 두 사람은 첫 맞선 자리에서부터, 서로가 호감(?)을 가졌었고, 양가의 필요와 사정에 의하여 맞선 10일만에 전격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으나, 그로부터 30여 년 동안 온갖 시집살이에 갈등도 많았을 것입니다. 당시의 시골 풍습은 지금과 같이 데이트도 마음 되로 할 수 없었든 것은 물론이고, 서로 만나자는 연락을 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연애라고 할 수 있는 기간도 없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대장노릇(?)에 ‘금이야! 옥이야!(금지옥엽)하며 성장한 아내의 신세가, 누구 나와도 마찬가지겠지만 결혼 후에는 시집에서 제일 졸병(卒兵) 신세로 급전직하한 것은 물론, 많지 않은 농사일에도 매달려야 했기에 시집살이 또한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런 아내는, 수줍음을 유난히 많이 타면서도 티 묻지 않은 순수함과 올곧은 성격의 바른 소리와, 매사에 사리가 밝으면서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에 깔끔함이 풍겨지는, 전형적인 시골처녀의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답게,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린 상태입니다. 지금도 가끔씩, 친구들이나 가족모임에서 불쑥불쑥 내뱉는 언동 속에는, 시집살이를 비롯하여 신혼시절에서의 설움이 한으로 베어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설상가상이라 할까, 필자의 성격 또한 다소 봉건적이면서도 앞에서 밝힌바와 같이 밝고 개방적이지 못한 신경질적이고 내성적이며,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물론이고 이런저런 부탁도 적당히 못하는 것은 차지하고, 순리를 따르되 원칙을 추구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이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아내의 마음고생은 말할 수 없이 컷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래서 ‘선업선과 악업악과’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정말 우리 부부는 전생의 업에 의해 업보를 주고받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는 전제아래, 선업선과 악업악과에 의한 업과 업보의 연속은 윤회에 의한 다음 생애에서도, 계속되는 연결고리인 만큼 두뇌 활동에 의한 지식축적이 가능한 인간(3차원)세계에서,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업장 소멸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도 해 보았지만, 그런 약속만으로는 쉬운 일도 아니더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첫아이를 낳고는 고양이로 변하고, 그 다음 둘째 아이를 낳고는 호랑이로 변하더라’는, 어떤 유행가의 가사처럼 결혼전과는 180도로 크게 변해버린 아내, 평범한 주부로서 보통사람들이 느끼고 만족하게 되는 행복마저도 가져보지 못했든 아내, 그것은 순전히 보통사람으로서는 커녕 가장답지 못한 필자의 성격과 무능력에서 기인한 것이며, 특별히 아기자기한 추억거리도 만들지 못한 무능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도마 카리스마(charisma: 많은 사람을 휘어잡는 능력이나 자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렇듯, 필자는 아내에게 남편노릇을 제대로 못했다고 늘 빚을 지고있는 기분인데, 2002년 12월 초순 아이들이 핸드폰 2개를 사 갖고 와서 제 어미와 아비에게 주게 되었는데, 그 핸드폰의 주인 이름을 어떻게 표시하느냐(?)하는 과정에서, 아내의 제안으로 새겨놓은 필자의 핸드폰임을 표시하는 이름입니다. 우유부단한 필자의 성격으로 아름다운 추억이나 특별히 아기자기했든 기억도 없는 상태에서, 가정 생활에서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었든 필자를,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든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내 또한 결혼 이후부터 줄곧, 필자의 성격상의 변신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레저생활이나 문화생활 등 여가활동 면에 대하여는, 지금은 완전히 포기한 상태이며 남들에게는 기대 가득한 하계휴가기간도 우리에겐, 통상적인 평범한 일상중의 하루하루일 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가족이 함께 가져보지 못한 바캉스는 기대도 않는 다는 듯이, ‘그저 집에서 가만히 쉬는 것이 제일 좋은 피서 방법이더라’라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최근 들어 가끔씩,</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퇴직하고 나서 수월스럽게 관광여행을 다니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는 제의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고 대답은 하고 있으나, 그때는 또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을 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나. 아비와 같은 생활은 싫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필자는, 1980년 후반기부터 파출소장으로 근무하는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덩달아 본의 아니게, 가정생활과도 많이 동떨어지게 되었습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6․25때 걸린 비상사태가 지금까지 해제되지 않았다’는 야유 섞인 비아냥거림이 회자되고 있는바와 같이, 필자의 근무처인 경찰조직도 명절 및 연말연시나 ‘○○ 소탕 ○○일 작전’등, 자체비상상태에 접어들게 되면 그놈의 정착근무가 짧으면 3～ 4주 보통은 그 이상이었으니, 퇴근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직원이나 이웃사람들은 하기 좋은 말로, ‘잠깐 집에 가서 옷이나 갈아입어라’고 권하기는 하지만 정착근무 그 자체가, 파출소의 기본근무라는 생각 때문에 일요일마다 옷을 가져오게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손수 세탁을 해서 해결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훗날, 장기간의 정착근무로 집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으면서도, 비상상태가 해제되기만을 기다렸으니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자책하면서도, 지금까지 후회는 하지 않았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당시의 상급기관 지휘관들도, 자신들의 출세와 감독자에 의한 눈 도장을 위해 스스로 집에 안 들어가면서, 파출소장도 단위 지휘관이라며 정착근무를 강요한 것이었습니다. 경찰서장 이상의 지휘관들의 임기는, 1년 남짓했으니 그 1년 동안만 눈 딱 감고 각자의 사무실에서 정착근무를 하게되면, 승진이나 영전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니 그런 정도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누구나 할 수 있었지 않았겠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공무원 법에 규정된 연가 또한, 연가보상비가 지급된 1990년 이후부터 다소 완화되긴 하였지만, 그래도 1990년대 후반까지는 직원들의 근무감독 공백을 우려하는 감독자들의 관심도에 따라, 결재권자의 눈치를 살펴야 했기에 겨우 2～ 3일 동안 벌초나 하고 오는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감독자의 입장에서, 파출소장은 연가를 안가는 것이 제일 좋고, 가더라도 2∼ 3일만 다녀오라는 식의 권고(?) 같은 무언의 압력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휴가 가서 쉬고 즐기는 것보다는, 아예 휴가 안가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하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포기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경제적으로도 남들과 같이 휴가비로 펑펑 쓸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으며, 비교적 1990년대 후반부터는 파출소장의 연가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듯이 하였으나, 그 때도 언제 나처럼 경제적 사정 등에 의해 하계휴가도 계속해서 포기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듯 퇴근도 제대로 못하고 직장에만 매달려 있는 힘없는 아비, 보통사람들은 해마다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바캉스도 떠나지 못하는 불쌍한 아비, 경제적으로도 항상 쪼들려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능한 아비, 또래의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별 볼일 없는 한심한 아비, 신접살림을 차린 직후 한두 차례를 제외하고 15～ 16번의 이삿짐을 옳길 때를 비롯하여 16번의 입학과 졸업식에 한번도 함께 하지 못한 무정한 아비의 모습이, 아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투영되고 각인되었든지(?) ‘아버지 같은 공무원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는 말을, 훗날 아내로부터 전해들었을 때 유구무언 그 자체였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시 한번, 스스로의 무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래! 아무려면 아비보다는 나은 일을 해야지’라며 혼자말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은 바보 같은 아비의 공무원생활 뿐이었지만, 모든 공무원사회가 다 아비의 경우와 같이 ‘그렇지 만은 않다’는 이야기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다. 바보 같은 내 인생!</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필자는, 성장기를 거쳐 활동기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비록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淑牙) 사이와 같은 사귐이란 뜻으로, 시세(時勢)를 떠나 친구를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일컫는 말)의 예’에까지는 아니더라도, 흉금을 털어놓고 속마음이나 정담을 나눌 수 있는 동료나 친구도 새겨 놓지 못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춘추 시대 초엽, 제(濟)나라에 관중(?～BC 645)과 포숙아라는 두 관리가 있었다. 이들은 죽마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관중이 공자(公子) 규(糾)의 측근(보좌관)으로, 포숙아가 규의 이복 동생인 소백(小白)의 측근으로 있을 때 공자의 아버지 양공(襄公)이 사촌 동생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시해되자(BC 686) 관중과 포숙아는 각각 공자와 함께 이웃 노(魯)나라와 거( )나라로 망명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듬해 공손무지가 살해되자 두 공자는 군위(君位)를 다투어 귀국을 서둘렀고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정적이 되었다. 관중은 한때 소백을 암살하려 했으나 그가 먼저 귀국하여 환공(桓公: BC 685～643)이라 일컫고 노나라에 공자 규의 처형과 아울러 관중의 압송(押送)을 요구했다. 환공이 압송된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는 이렇게 진언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하, 제(濟) 한 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시오소서”</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이윽고 재상이 된 관중은 과연 대 정치가다운 수완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倉 實則 知禮節: 창름실즉 지예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衣食足則 知榮辱: 의식족즉 지영욕)’고 한 관중의 유명한 정치철학이 말해 주듯, 그는 국민 경제의 안정에 입각한 덕본주의(德本主義)의 선정을 베풀어 마침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첫 패자로 군림케 하였다. 이 같은 정치적인 성공은 환공의 관용과 관중의 재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이긴 하지만 그 출발점은 역시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변함없는 우정에 있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래서 관중은 훗날 포숙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는 젊어서 포숙아와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했었으나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해 한 사업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 나를 용렬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일에는 성패(成敗)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벼슬길에 나갔다가는 물러나곤 했었지만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운이 따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싸움터에서도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를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가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 [生我者父母 知我者鮑淑牙]”</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1) 대인 관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 세계에서 회자되는 말로는, 일 면식이 없었든 사람이라도 술자리를 같이하고 기생집에 함께 가서 오입하고, 목욕탕에라도 같이 가는 등의 생활을 한 두 번만 반복하게되면, 가장 짧은 시간 내에 흉허물이 없어지면서 절친한 우정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풀어보면, 술을 같이 마셨으니 이미 술친구는 다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으며, 기생집에 가서 함께 오입하고 즐겼으니 다같이 도덕군자는 아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마주서 바라보면 더도 덜도 없이 똑같이 다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너나 나나 똑같은 보통사람이라는 동질성이 확인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와 같이, 술이라는 기호식품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은 물론이고, 사람과 사람과의 정리(情理)를 생기게 하거나 더욱 돈독히 하는 역할도, 아울러 가졌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고금을 통하여,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통상적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만남의 수단으로는, 술자리밖에 더는 없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러한 술자리의 경우, 대접한 경우보다 대접받은 경우가 훨씬 더 많았으니 두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며, 기생집이나 목욕탕 등 심지어는 협력단체 위원들과의 회식이나 야유회 등의 경우에도, 관외로의 이탈 등은 적어도 근무시간동안은 엄두도 낼 위인이 못 되었으니, 절친한 친구는커녕 인간관계에서도 별 볼일 없는 존재였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성격 또한,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인지 어떤 좌석에서나 ‘이런 이야기도 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을 하게되면 결론은,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상대방 쪽에서는 ‘저 사람의 속내를 모르겠다’할 것이고 속내를 모르니 우정을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필자의 성격 탓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관내의 많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상대편이 무엇을 하며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하고나 술자리를 가질 수도 없었고 또한 직업상으로도 그럴 수는 없었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런 가운데서도, 술기운이 거나해지면 그야말로 쓸데없는 잡담을 늘여놓으며 좌중을 지배하려 하였으니, 그 때부터 상대방들도 ‘인간성과 속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술기운이 돌기전의 술좌석이나 평상시의 좌석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나 쓸데없는 잡담이라도 늘여놓았어야 할 것인데, 그것도 못하는 바보였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요즘도 흔히들 하는 말로 ‘아무개!’ 하면, ‘아 그 사람! 대인관계가 좋아서 누구하고나 형님! 아우!’하는 식으로 ‘인간관계가 넓어 친구가 많다’고 통칭되는 사람을, 소위 ‘마당발이야!’라고 표현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마당발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사람의 경우, 대인관계가 좋으려면 많은 사람들의 이런저런 부탁도 많았을 것이며, 술자리 또한 빈번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울러 이런저런 많은 부탁을 들어 줄 수 있으려면, 자신의 관련업무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련업무도 포함되었을 것이고, 그러려면 누구에게나 ‘형님! 아우!’라고 부를 수 있는 친근한 넉살과, 형제 같은 끈끈한 유대관계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결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필자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이럴 때의 변명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성격 탓!’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1990년대 중반 어느 날, 작은아이로부터 뜻밖에 사무실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었는데 내용인 즉, 친구 한 명이 폭행사건에 연루되어 ○○파출소로 갔는데, 좀 도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대강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크게 문제될 성싶지 않아, ‘너희들 일은 너희들 스스로 해결하라!’며 다만, 처리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거든 ‘그때는 꼭 다시 연락하라’고 거절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아이와 그 친구들이 어떻게 받아 들였고 또 얼마나 황당하고 실망하였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소위, 부조리한 상태가 유지되던 우리조직의 경우 어떤 사건과 관련하여, 같은 직원이 부탁하게되면 실로 황당하고 참담한 경우를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무 경우를 개탄하면서 우리사무실에서 만이라도 경미한 사건이고, 직원가족이 연루된 경우라면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처리하되, 적극적으로 훈방하도록 하고 그 대가는 절대로 바라거나 받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결과,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합의가 되어 훈방한 사례들도 많았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듯, 술과 관련하여서나 성격적으로도 대인관계에서는 별 볼일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의 사소한 부탁까지 외면한 결과 긍정적인 기억은 누구에게서나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2) 부조와 품앗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 예로부터 우리조상들은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부조하는 축의금과, 갑작스런 애사가 발생했을 때 부조하게 되는 조의금도, 다양했든 품앗이의 한 형태로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우리민족고유의 미풍양속입니다. 이러한 미풍양속이, 품앗이의 한 형태로 인식되어서인지 직장 내에서는 친소관계를 떠나 남발되는 경향이 많았으며,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직원들의 직계존속과 비속에 대한 경조사에는 적극적으로, 공(파출소장으로서의 역할)․사(품앗이 당사자로서의 역할)를 불문하여 지원하고 참여하였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경부터 이러한 품앗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소위 신세대의 출현과 다른 직(職)에 비해 인사이동이 잦은 것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의 사유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조사비용도 만만치가 않은 것이, 파출소장이 그렇게 대단한 직책이라고 웬만한 경조사는 거의 다 알려오는 것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1997년 주택을 신축하면서부터,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판공비의 범위 내에서만 사용하다보니, 남들처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충분하게 사용할 여유는 없었으며, 너무 많이 외면하다보니 이런 사정을 눈치챈 경리업무를 담당한 직원 중에는, 자제의 혼사도 있을 텐데 조금씩이라도 품앗이를 주는 것이 어떠냐(?)는 식의 권고에, 일언지하로 ‘만약 아이들의 혼사가 있더라도 직장 내에서는 단 한사람도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2000년 7월쯤에 가족들에게도 말해 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못난 아비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인지 아니면, 집안의 경제사정상 혼수비용이 없다고 판단해서인지, 두 녀석이 한결같이 결혼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무작정 ‘알아서 할 것이니 기다려 달라’는 말밖에는 전혀 진전이 없어 보이니 답답하나, 자신들의 인생은 ‘자신들이 알아서 살아가겠지’하는 자위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게 품앗이의 성격이 강했든 경조사의 부조금을 주고받는 형태가, 급기야는 관내 대상업소에까지 확대되면서부터는 부조리의 유형인 유착비리로 발전하는 등, 치부나 뇌물전달의 수단으로 변천함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공무원행동강령 등에서 규제하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이미 말한 되로 퇴직 전후를 불문하고, 아이들 혼사가 있더라도 직장생활과 관련된 직원들에게 알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또 아이들에게 한날 한시 한 장소에서 ‘형제가 합동결혼식을 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일러두기는 했었지만, 그저 희망사항만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3) 그래도, 후회(後悔)는 않는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일생을 통 털어 이분의 일(½)에 해당하는 활동기(공직생활)중의 기간에 대하여, 아쉬움은 있을지라도 결코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1980년대부터 각종비상근무 등 장기간의 정착근무에도 근무위치를 지키며, 잠깐동안이라도 집에도 안 들어가면서 속옷을 가져다 입거나, 손수 세탁해서 해결하는 등의 생활도 지금 와서는 후회하지 않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외근경찰관의 기본근무라는 개념은, 평온한 상태가 지속되는 때에는 계획되고 예정되어있는 기본근무를 하다가도, 범죄가 발생하면 즉각적인 초동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에, 근무위치에 대기하는 것이 곧 주(主) 근무이며 따라서 이러한 근무가 곧, 기본근무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옛날(春秋시대), 중국의 어느 나라 군주가 한 지방관(地方官)을 불러들였습니다. 그 지방관은 군주의 부름을 받고, 조정관료들과 사이에 있었든 지난날의 여러 가지 논쟁과 설전들을 떠올리며, 궁궐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군주는 서둘러 입궐한 지방관에게, 몇 마디 덕담을 나누다가 얼굴 색이 굳어지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경을 파직하겠노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지방관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하(殿下)! 신이 불민하여 백성을 잘못 다스렸음을 인정하옵니다, 그러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러자 군주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짐(朕)은 경의 그 경륜을 들었을 때만해도 누구보다 훌륭한 지방관이 될 것이라 믿었는데, 지금은 조정의 모든 관료가 하나 같이 경(卿)을 탄핵하니 짐도 어쩔 수 없노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지방관은 더욱 머리를 조아리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하! 신(臣)도 그 동안의 경험을 거울삼아 앞으로는 훌륭한 관리가 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군주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정 그렇다면, 일년의 말미를 줄 터이니 그 동안은 훌륭한 관리가 되도록 충성을 다 하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며 한차례의 기회를 더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방관은 머리를 조아리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신(臣) ○ ○! 견마지로(犬馬之勞: 임금이나 나라에 대하여, 자기의 애쓰고 진력(盡力)함을 낮추어 이르는 말)를 다하여 성은에 보답하겠나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며 물러가서 다시 일년동안 열심히 지방민들을 다스렸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약속한 일년이 가까워오자 그 지방관은 군주가 부르기도 전에 대궐로 들어가 다시 군주 앞에 부복하였습니다. 부르지도 않은 지방관이 입궐하여 부복하는 것을 본 군주는 파안대소하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 동안 노고가 많았도다! 이번에는 조정관료들이 경의 칭찬에 침이 다 마르는구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제는 좀 더 큰일을 하도록 하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는 것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러나 그 지방관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하! 신의 사직을 윤허하여 주시옵소서”</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며 일년 전과는 달리, 오히려 사직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군주는 지난 일년 동안의 노고 치하와 함께 승차도 고려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사직을 청하는 관리에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지난 일년동안 지방백성을 잘 다스려 모두들 칭송이 자자하거늘, 왜 사직을 청하는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며 의아스럽게 생각하든 군주가 물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하! 먼저 번의 지방관생활은 전하를 위하여, 그 후 일년동안의 지방관생활은 조정관료들을 위하여 일 했사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군주는 두 눈을 휘둥그래 뜨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게 무슨 말이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더 자세히 아뢰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고 재촉하고 있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러자 지방관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하! 마치 어버이가 자식들을 돌보듯 전하를 위하여 지방백성을 다스렸을 때는, 신을 파직하려하였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군주의 얼굴빛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이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오나 최근 일년간은, 조정관료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들을 한 결과 이제는 승차시키려고까지 하니, 신으로서는 이런 녹봉(祿俸)생활은 싫사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며 사직의 윤허를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흙빛이 다 된 얼굴로,</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짐의 잘못이로다! 짐의 허물이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탄식하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듯 한숨짓든 군주는, 하직인사를 여쭈는 지방관에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경은 부디 짐을 용서하여 주시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비통한 심정으로, 신하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잘못을 뉘우치며 후회하고 있었지만, 지방관의 사직을 만류할 수는 없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모르긴 해도 그 지방관은 도연명(晉 陶淵明 365～ 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라도 읊고 싶었을 것입니다. 도연명이 진(晉)나라 팽택(彭澤)의 현령(縣令)으로 있을 때 일이다. 어느 때인가 군(郡)에서 보낸 독우(督郵)에게 예복을 입고 가서 뵈라 하므로, 도연명이 이레 탄식하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내, 닷 말 곡식 때문에 소인 앞에 허리를 꺾을 수 없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 그 날로 사표를 내고 곧바로 이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귀거래’는 곧 ‘벼슬살이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이다. 도연명은 남달리 고귀한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서, 사람의 마음이 도(道)를 위하여 쓰이지 못하고 한갓 몸의 노예(奴隸), 곧 입의 구종(口從)노릇에 허덕이는 것을 슬퍼하여 전원으로 돌아가 농부들과 함께 밭 갈고 산수(山水)와 더불어 노닐며 자연을 노래한 전원시인이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 <!--StartFragment--></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歸去來兮(귀거래혜</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여</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돌아가자꾸나! 벼슬살이 그만두고 내 고향 전원으로 돌아가자꾸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田園將蕪胡不歸(전원</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장무</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어늘</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호불귀</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리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손 볼 사람 없어 전원이 온통 거칠어지려 하는데 아니 돌아가고 어쩌리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위형역</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고귀한 이 마음 값있는 일에 쓰이지 못하고, 제 입의 구종노릇에 허득이게 버려 두었든 지난날의 잘못된 생각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奚惆悵而獨悲(해추창이독비</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하지만 그렇다고 어찌 지나간 한때의 잘못에 얽매여 넋 놓고 슬퍼만 하고 있으리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悟已往之不諫(오이왕지불간</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이왕에 잘못된 일은 뉘우쳐도 소용없는 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知來者之可追(지래자지가추</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앞으로 다가오는 일만은 지난날을 미루어 얼마든지 고쳐나갈 수 있겠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實迷塗其未遠(실미도기미원</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사실 벼슬길 험한 길에 잘못 들어, 한동안 내 갈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리 깊이 들지는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覺今是而昨非(각금시이작비</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로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으니 벼슬살이 그만 둔 지금은 참으로 장한 일이요, 제 입에 구종노릇 하든 어제는 진정 잘못된 일임을 뉘우치노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舟遙遙以輕颺(주요요이경양</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배는 가벼히 흔들흔들 고향을 바라보며 떠나가는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風飄飄而吹衣(풍표표이취의</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바람은 한들한들 옷자락에 나부끼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問征夫以前路(문정부이전로</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예서 고향까지 얼마나 남았을 까고, 나그네 붙잡고 남은 길을 물어 가는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恨晨光之熹微(한신광지희미</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로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해 떨어지기 전에 집에 닿긴 글렀는가? 어느새 희미한 저녁 빛이 어둑어둑 지니 서운한 마음 한이 서리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乃瞻衡宇(내첨형우</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이윽고 낯익은 저기 저 허술한 대문과 오두막집!</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載欣載奔(재흔재분</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어찌나 기뻤든지 단숨에 뛰어가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僮僕歡迎(동복</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은</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환영</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심부름꾼 사내아이는 반가워 어쩔 줄 모르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稚子候門(치자</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는</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후문</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어린것들은 날 기다려 대문 밖에서 손 흔들어 나를 기다린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三徑就荒(삼경</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은</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취황</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나</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정원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황폐해가고 있으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松菊猶存(송국</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은</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유존</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날 보란 듯 푸름을 자랑하며 꿋꿋이 서 있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携幼入室(휴유입실</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어린것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서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有酒盈樽(유주영준</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일세</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언제 빚었는가 항기로운 술이 항아리에 가득일세</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引壺觴以自酌(인호상이자작</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며</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술항아리 끌어 옆에 끼고 혼자서 잔질하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眄庭柯以怡顔(면정가이이안</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정원에 우거진 나뭇가지 둘러보니 얼굴에 가득 기쁨이 넘실거리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倚南窓以寄傲(의남창이기오</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세상에 거리낄게 무엇인고 햇빛 밝은 남녁창에 기대어 버젓이 앉았으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審容膝之易安(심용슬지이안</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이제야 참으로 알겠구나! 무릎하나 들일 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자그마한 집이지만 벼슬살이보다 그 얼마나 마음 편안한가를!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園日涉以成趣(원일섭이성취</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날마다 정원을 거니니, 거닐수록 멋이야 더욱 세로워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門雖設而常關(문수설이상관</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랴</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문이야 달아놓음 무얼하랴, 찾는 이 없어 언제나 굳게 닫혀있는 것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策扶老以流憩(책부노이류게</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지팡이에 늙음을 의지하여 멋대로 쉬다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時矯首而遐觀(시교수이하관</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가끔은 머리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구름은 무심히 산허리를 돌아 나오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새도 날기에 지쳤는가 제집으로 돌아올 줄 아는구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影翳翳以將入(영예예이장입</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저녁 해는 어둑어둑 서산에 떨어지려는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撫孤松而盤桓(무고송이반환</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로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한 그루 소나무의 푸르른 그 절개, 내 마음인양 어루만지고 어루만지며 차마 발길 못 떼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歸去來兮(귀거래혜</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여</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돌아가리라! 돌아가고파 돌아왔는데, 다시 미련을 두어 무엇하겠는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請息交以絶遊(청식교이절유</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이제부터는 세상사람들과 교제를 끊고, 놀지도 않으리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世與我而相違(세여아이상위</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세상은 나를, 나는 세상을 이렇게 잊었는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復駕言兮焉求(복가언혜언구</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리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여기서 다시 수레에 멍에 메어 무얼 찾으려 달리겠는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悅親戚之情話(열친척지정화</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참 마음을 주고받는 친척들과의 정다운 이야기 이것만이 내 기쁨이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樂琴書以消憂(낙금서이소우</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거문고와 책, 이것만이 내 즐거움이라. 온갖 시름 다 실어 보내리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農人告余以春及(농인</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고여이춘급</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농사꾼이 찾아와 봄이 왔다 알려주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將有事於西疇(장유사어서주</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로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나도야 서쪽으로 밭갈이 가야겠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或命巾車(혹명건차</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때로는 헝겊 씌운 수레를 타고 험한 산길을 따라 언덕 넘어 달리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或棹孤舟(혹도고주</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여</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어느 때는 외로운 배 한 척 띄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旣窈窕以尋壑(기요조이심학</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요</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깊은 골짜기 시냇물 찾아들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亦崎嶇而經丘(역기구이경구</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木欣欣以向榮(목흔흔이향영</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산에는 나무마다 봄이 즐거워 마음껏 부풀어오르려 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泉涓涓而始流(천연연이시류</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얼어붙었던 샘물도 봄 소리에 녹아 졸졸졸 흐르기 시작하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善萬物之得時(선만물지득시</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며</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때를 얻어 흥겨운 만물을 부러워하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感吾生之行休(감오생지행휴</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로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갈수록 다가오는 인생의 끝, 무덤을 느낀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已矣乎(이의호</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다 그만 두어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寓形宇內復幾時(우형우내복기시</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간데</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이 몸이 세상에 몸 붙여 둘 날이 앞으로 몇 때나 되겠기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曷不委心任去留(갈불위심임거류</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남은 인생을 내 어찌 마음대로 자연의 죽고 삶에 맡기지 않겠는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胡爲乎遑遑欲何之(호위호황황욕하지</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이제 새삼 무엇 때문에 서둘며 이제 다시 무엇을 찾으려고 어디를 가고자 하겠는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富貴非吾願(부귀</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는</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비오원</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이요</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원래부터 부귀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帝鄕不可期(제향</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은</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불가기</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그렇다고 임금계신 서울에야 바라지도 않았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懷良辰以孤往(회양진이고왕</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따뜻한 봄이 오면 동산을 거닐기도 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或植杖而耘耔(혹식장이운자</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어느 때는 지팡이 밭에 꽂고 김매고 북을 돋우어 주리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登東皐以舒嘯(등동고이서소</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또 어느 때는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시를 읊어도 보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臨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맑은 시냇가를 거닐며 시를 지어 세월을 보내리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聊乘化以歸盡(요승화이귀진</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자연의 변화에 맡겨 이 생명 다하는 그대로 돌아가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樂夫天命復奚疑(낙부천명복해의</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랴</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주어진 천명을 마음껏 즐길 뿐, 여기서 다시 무엇을 의심하고 주저하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span>&nbs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靑出於藍&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스스로, 선호(좋다고 소문난) 부서를 바라거나 희망하지 않은 것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이에 대해, 아내는 남들처럼 수단방법을 가릴 것 없이 좋다고 소문난 부서로 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남의 일인 양,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발령 나는 되로 기다린 결과로, 가족들 고생만 시켰다며 일침을 놓은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능력 밖의 일이었기 때문에 후회 할 일도 아니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가끔씩 동료들과의 이야기도중에, ○도 ○도 없는 주제에 멋모르고 이런 직(職)에 들어와서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푸념들만 할 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전국시대의 유학자(儒學者)로서, 성악설(性惡說)을 창시한 순자(荀子)의 글에 나오는 한 구절 중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學不可以己)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靑取之於) 쪽빛보다 더 푸르고(而靑於藍)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氷水爲之) 물보다 더 차다(而寒於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끊임없이 발전과 향상을 목표로 하여 노력해야 하고 중도에서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학문은 더욱 깊어지고 순화되어 한 걸음씩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다. 여기서 ‘푸름과 얼음’의 비유는 모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학문과 마찬가지로 그 과정을 거듭 쌓음으로써 그 성질이 더욱 깊어지고 순화되어 가는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스승에게 배우기는 하지만 그것을 열심히 익히고 행함으로써 스승보다 더 깊고 높은 학문과 덕을 갖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스승이 너무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그를 능가하기는 어렵다. 이(靑出於藍: 쪽에서 나온 물감이 쪽보다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일컫는 말)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span>&nbsp;</p><span style="FONT-SIZE: 14pt"><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非蛙不中</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옛날 어느 고을에 이름이 제법 알려진 선비가 젊은 생도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스승에게 글을 배우려고 많은 생도들이 찾아 들었습니다. 그 생도들은 어느 정도 글을 배우고 익혀 과거를 보면 영락없이 등과를 하게 되었고, 스승의 명성도 더욱 높아갔습니다. 그러자 스승의 주변에서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후진양성도 좋지만 입신출세하여 가문의 명예도 지켜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는 성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생도들을 가르치는 스승도 과거에 뜻을 두고 응시하게 되었는데, 그 스승은 그때마다 계속해서 낙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계속되자 스승의 친구는 위로인지 책망인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자네가 가르치는 생도들은 한결같이 등과를 하는데, 어떻게 자네는 그때마다 낙방인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며 술잔을 권하는 것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한참을 말없이 듣고만 있든 친구인 선비는 고사 한 토막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무더운 한여름 숲 속에서 꾀꼬리가 신나게 노래하다 잠시 쉬게 되었다 네. 그 때 뜸부기가 화답이라도 하듯 곱지 않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것이었어. 뜸부기의 노래가 끝나자 옆에 있든 뻑국이가 손 빽을 치며 ‘앙코르!’를 외치는 거야. 뜸부기는 뻑국이가 자신의 노래 소리에 손 빽을 치며 ‘앙코르!’를 외치는 바람에 신이 나서 우쭐거리며, 또 다시 노래 한 곡을 더 불렀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바로 그때 먼 발치에서 지켜보든 까치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야! 뜸북아 너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우리 모두를 도와주는 거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며 말참견을 하였다 네. 그러는 동안 인근에 있든 온갖 새들이 모여들며 꾀꼬리에게는 칭찬을, 뜸부기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게 되었지. 이때 심술궂은 까마귀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뜸부기 노래 소리도 장난이 아닌데!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머지않아 ‘짱!’도 되겠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며 공치사를 하자, 다른 새들도 까마귀를 거들며 뜸부기에게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네. 뜸부기는 좀 더 열심히 갈고 닦으면 꾀꼬리가 대수냐(?)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때 좌중의 눈치를 느낀 까마귀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애들아! 우리끼리 이러면 뭐하냐? 아무래도, 웃 동내에 계시는 황새 영감님께 누구목소리가, 더 아름다운지 심판을 한번 받아보는 것이 어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고 하자 꾀꼬리는 벌래 씹은 얼굴을 하였고, 뜸부기는 환영하는 빛이었다 네. 더디어 꾀꼬리와 뜸부기는 이웃들의 희망을 저버리지 못하고 웃 동내에 계시는 황새 영감님을 찾아갔었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둘은 영감님께 공손히 절하고 영감님을 찾아 오게된 사연을 아뢰자, 황새 영감은 그것 재미있겠다며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모월 모일 모시에 마을광장에서 너희들의 노래를 들을 것이니, 그때까지 각자가 열심히 연습하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고 하더라 네. 사실 꾀꼬리는, 황새영감님이 들어보고 자시고 할 것이 자신의 손을 들어 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모월 모일 모시에 양쪽의 노래를 다 듣고 판단해 주겠다는 말에 자존심도 상하고 심사가 뒤틀렸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지만 뜸부기는 일생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한 기회라 여기고, 그때부터 새벽마다 열심히 노래연습을 하였지. 더디어 약속한 시각에 마을광장에는 인근의 온갖 새들이 구름같이 모인 가운데, 꾀꼬리와 뜸부기의 노래시합을 시작하게 되었다 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먼저 꾀꼬리가 구성지게 한 곡을 뽑자 황새영감은 노래 소리에 취해 넋이 나간 듯이 앉아 있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다음은 뜸부기 차례라는 듯 고개를 돌리자 뜸부기가 노래를 시작했었다 네. 이윽고 뜸부기의 노래도 끝나자 황새영감 편찮은 기색이 역력했었다 네. 객석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지만, 꾀꼬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러나 뜸부기는 느긋한 표정으로, 황새영감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었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뜸부기는 한참동안 망설이든 ‘새벽의 일’을 참 잘했다고 자위하며 느긋한 표정으로 역시 ‘꿩 잡는 게 매!’라며, 적극적으로 모험 삼아 실천한 자신의 행동을 자화자찬하고 있었지. 사실 뜸부기는 황새영감이 심판해 주겠다고 했지만, 양심에 비추어 가당치도 않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기에, 이참에 모험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동이 뜨기 전에, 나락 논에서 살이 통통 오른 개구리 몇 마리를 잡아들고 황새 영감을 찾아갔었다 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른 시각에 나타난 뜸부기를 보고 황새 영감은 대뜸,</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직 약속시각이 아닌데 뭐 하러, 이렇게 ‘일찍부터 기다릴 필요가 있느냐?’며 가서 노래연습이나 제대로 하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고 타이르자, 황새영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자기를 꺼내 놓으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영감님 그 동안 자주 찾아뵙지도 못 하였거니와, 오랜만에 뵈니 기력도 쇠하신 것 같고 얼굴도 많이 수척했습니다. 이놈들로 영감님 몸보신이라도 좀 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자주 문안 여쭙겠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러면서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오늘 있을 노래시합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고 인사하고는 누구에게라도 들킬까봐 주위를 힐끔거리며 사라지고 말았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윽고, 정적을 깨뜨리며 황새영감이 입을 열기 시작하는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꾀꼬리 너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은(銀) 쟁반에 옥 구르는 소리로 질리지 않는 구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리고는 뜸을 드리고 나서 뜸부기의 노래 소리도 평가하게 되었다 네. 황새영감은, 그렇지 않아도 근래 들어 입맛이 없어지면서 때아닌 여름에 코뿔기운도 있었든 터라, 개구리 몇 마리로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힘이 불끈 솟는 기분을 느끼면서. 새벽일도 그렇거니와 또 ‘앞으로도 자주 찾아뵙겠다’는 말이 자꾸 귓전을 때리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 몽롱한 정신을 바짝 차린 상태에서</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오늘의 뜸부기 노래 소리가 내 귀에는 더 아름답게 들리는구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고 평가함으로서 뜸부기의 판정승으로 끝나게 되었다 네. 새벽의 일을 우연찮게 알게된 꾀꼬리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하! 비와부중(非蛙不中: 개구리를 준비 안 해 적중시키지 못했다)이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혹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독무와부득지(我獨無蛙不得志: 나만 개구리를 구하지 않아 뜻을 얻지 못했다)로구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외치며 뒤도 안 돌아보고 어디론가 쓸쓸하게 날아 가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뜸부기는, 새벽의 일을 귀신도 모를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중국 후한 때 양진은 상서학자로 그는 학문을 좋아하고 훌륭한 인품에 일 처리가 분명하였다. 그 해박한 지식은 당대의 유가에 견주어서 ‘관서의 공자라고 했다’ 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관서의 공자라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는 민가에서 학문을 강의하여 쉽게 벼슬에 오르지 못했지만, 나이 50세가 되어 간신히 지방의 관리가 되었다(서당의 선생님이 되어 후진을 양성하느라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으나, 50세가 되어 지방의 관리가 되었다). 왕밀은 양진이 형주의 자사였을 때 자사보다 아래 벼슬인 무재로 천거된 사람이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양진)가 창읍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곳의 현령은 왕밀이었는데, 양진의 천거에 의해 벼슬을 한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왕밀에게는 은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 왕밀은 밤이 깊어지자 무슨 일을 도모하려는지, 가지고 온 금 10량을 은근히 양진에게 주었다. 그러나 양진은 거절하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당신의 옛 친구는 당신의 사람됨을 이해하고 있는데, 당신이 그 옛 친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닌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러자 왕밀이 말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한밤중의 일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러자 양진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천지지지 아지자지(天知地知我知子知: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내가 알고 그대가 안다는 뜻으로 온 세상의 모든 일이란 비밀이 없다는 말)라 하거늘,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이르는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 말에 왕밀은 슬그머니 황금꾸러미를 가지고 사라졌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울러 필자는, 약 30여 년 간을 근무하는 과정에서 징계 한번 안 받은 것은 물론이고 또한, 20여 년 간 후배직원들을 지휘감독하면서도 그렇게 많은 직원 중에서 단 한 명도, 징계 한번 안 받게 지휘해 왔습니다. 결국 30여 년 간의 공무원생활을 마감하는 현 시점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며 스스로의 큰 위안으로 삼고 싶기는 하지만 이 또한,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안이라 자랑이라고 할만한 사항은 아니며 대체로, 직원들의 심성이 고왔든 탓이기도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어울리지 않게, 자화자찬 한 것 같아 다소 쑥스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으며 앞의 어느 부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업무의 적극적인 처리 의지와 확실한 끝맺음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일상적인 반복교양과 각각의 업무마다 처리과정을 확인하는 꼼꼼함과 간섭 아닌 간섭의 결과일 것이며, 이에 대해서도 직원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그중 한 부류의 직원들은 ‘○대 악당’이라 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못 넘어가는 소심한 성격과, 별나지도 모나지도 못한 순진함의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며, 어쩌면 도전정신과 모험정신의 결여라고까지 하다보면, 급기야는 어떤 말이 대두하여 수렁으로 전락하는 급전직하도 시간문제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라. 남의 눈에 비친 모습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게 바보 같은 모습들이, 제 3자인 타인의 눈에는 과연 어떻게 비쳐졌을까? 혹은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하며 또, 필자를 연상하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를 제일 먼저 스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각인각색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종합적인 판단은, 가장 지척에서 매일같이 보고 듣고 느낀 아내와 아이들의 판단일 것이며, 많은 사람들은 필자의 능력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시적이며 단편적인 모습만 접할 수 있었던 것이기에, 또 다른 하나의 편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남의 눈에 비친 모습이 중요하다 할 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설사 타인의 눈에는 어떤 모습이었든 능력 있는 다정한 남편, 권위 있고 소양을 두루 갖춘 친구 같은 자상한 아비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대 인간관계에서조차 만족할만한 신뢰는 고사하고 인간성 자체도 재고할 수밖에 없는 여지를 남겼으며, 동료나 직장과 관련된 이웃의 경조사마저 많이 외면했으니 그들(제 3자)의 눈에 비친 모습은, 말하나마나 뻔한 모습 그대로일 것이며 여기에 아내나 아이들의 눈에 비친 모습을 더한다면, 그야말로 황당하고 난감하여 무어라 변명의 여지도 없을 것이나, 이 부분은 여러분의 경험과 판단에 의한 몫으로 남기고자 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1995년경부터 2000년 위 절제수술 전까지는 약 6∼ 9㎞의 거리를 도보로 출퇴근하였으나, 위 절제수술 이후부터는 조금씩 자제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 걷기 시작했고 또, 그렇게 이야기도 하였지만... 이에 대하여 이웃사람들은, 지금까지 자가용승용차도 사지 않고 도보로 출퇴근하는 모습에 대하여, 절제와 검소함이 생활화된 의지의 표현이라느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본받아야 할 애국자라는 등, 칭찬 아닌 칭찬(?)들을 하고 있으나, 별로 액면 그대로 받아 들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것은 흔하디 흔한 자가용승용차를 못사는 이유가 다름 아닌, 사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승용차를 못사는 것인데, 과연 이웃사람들 개개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쳐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빌딩 아닌 빌딩(?)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승용차 하나 안 사며 버티고있는 것은, 그 동안 축적해 놓은 재산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하지 않는지는 모를 일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런 이야기는 이미 2000년 초에도 들은바가 있었기 때문에, 유비(流蜚) 통신을 타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되며, 또 가끔씩 방문하는 친인척 중에서는, 겨울철에 ‘이 집에 올 때는 반드시 겨울옷을 껴입고 오게 된다’는 이야기 등을 비롯하여 지지리도 궁상맞은 모습에, 개개인이 갖게되는 감정이나 느낌은 어떤 것이었는지 알 길도 없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와 같은 자괴감으로 인한 탓인지, 가끔씩 ‘성공적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 다시 말해서 3차원세계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일생을 살다가 4차원세계로 되돌아간 사람들 중에, 인간으로 태어난 목적을 가장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고 할 수 있는 사람과 또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지구라는 땅을 밟고 살다간 부지기수의 사람들 중에, 석가모니와 예수님의 삶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여기서의 ‘성공적인 삶이란?’ 우리 같은 무지렁뱅이들의 수준에서,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같이 ‘가장’ 성공적인 삶은 제켜두고, 보통사람들의 성공적인 삶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표사유피(豹死留皮: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뜻. 사람은 사후(死後)에 이름을 남겨야 함의 비유)라는 말같이 자신의 이름 몇 자를,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널리 그리고 후세에까지 남기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 그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며 사귀었고 또 이름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지 자문해 보아도 그 결과는 알고 자시고 할 가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60여 억 명의 인류 중에서, 또 한 시대를 장식했든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지만 이들 중에도,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이름을 남기게 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름을 남기게 된 사람 등, 그들의 언행에 대한 선악과 삶에 대한 공과가 뒤엉켜 분간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행의 선행(善行)과 삶에서의 공적이 많은 사람이야말로 성공적인 삶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러한 요건들도, 인간세상에서의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4pt">&nbs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4pt">&nbsp;&nbsp;</span><span style="FONT-SIZE: 14pt">&nbsp; <div class="autosourcing-stub"></div></span><o:p></o:p><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span></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p></span></span></span>			 ]]> 
		</description>
		<category>거짓 나는?</category>

		<comments>http://kjhyun0500.egloos.com/10133831#comments</comments>
		<pubDate>Mon, 07 Sep 2009 22:16:40 GMT</pubDate>
		<dc:creator>다사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참나를 찾아  ]]> </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10129261</link>
		<guid>http://kjhyun0500.egloos.com/10129261</guid>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여섯. 참나(眞我)를 찾아(나는 신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 거짓(현재를 살아가는 동안의) 나(我)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가. 도마 카리스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 아비와 같은 생활은 싫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 바보 같은, 내 인생!</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1) 대인관계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2) 부조와 품앗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3) 그래도, 후회는 않는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라.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2. 참(과거 현재 미래가 똑 같아야 할) 나(我)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가. 거울 상자 속의 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 우주 속에서의 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3. 나는 신(神)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我)는 누구인가? 또한 이 글을 읽고있는 여러분은 누구일거라고 생각합니까? 나(我)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면서 이 글을 쓰고있는 ‘나(我)!’ 자신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을 읽고있는 여러분도, 더도 덜도 말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 자신 그대로 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런데, 가끔씩 불교계에서는 ‘참 나를 찾아라!’고 하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가 내’고 ‘내가 나’지 ‘내(나)가 나(내)’ 아닌 또 다른 누구(참 나)를 찾으라는 말인가? 부처님은, 왜(?) 어떤(?) 의미로 ‘참 나를 찾아라!’고 했을까? 그러면, 지금의 나는 ‘거짓 나’라는 말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참 나’와 참 나아닌 ‘거짓 나’가 어딘가에 또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도 없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참으로 황당하기 조차하였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래서 인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2002년 초까지만 해도, 이런 제목(참 나를 찾아)의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체, 마음속으로 작정하고 있었든 그리고 생각나는 되로 또 시간 나는 되로 무료함을 달랜다는 생각에서 쓰다보니, 결국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의 어느 부분에서도 이야기 한바와 같이,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또는, ‘성공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였듯이, 이 글을 쓰는 동안의 어느 한 순간에 혹시, ‘참 나!’라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 무엇인가가 머릿속을 스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4차원세계에 관한 이야기 중에 ‘거울 앞’에 서있는 나는 ‘참 나’이고,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참 나가 아닌 ‘거짓 나’가 아닐까(?)하는 것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시 말해서,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나(필자)는 누구나 가지고있는 고유한 이름과, 자신을 포함하여 누가 언제 어디서나 구별할 수 있는 특정한 외모를 가졌으며, 제각기 다른 특유한 성격과 탐욕의 덩어리로 뭉쳐진 육체를 가진 ‘나!’ 결국, 현재 이 모습의 ‘나’는 껍데기나 가면에 불과한 ‘나’라는 것이고, 이러한 ‘나’가 아닌 진짜인 ‘내’가 누구인지 찾으라는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만이 전부가 아닌 ‘진짜인 나! 즉 인간세계에 오기 전 나의 모습, 또는 사후세계에서의 나 혹은 나라는 존재를 비롯하여 최초로 창조되었을 때의 모습을 찾아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나를 어찌어찌 하면 찾아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몇 번의 생(윤회)을 거쳤을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와는 무언가 다른 어떤 모습인 경우도, 있었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현세에서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현재와 다른 나의 모습은 바로 유아기 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현재 이 순간의 ‘나’와, 소위 유아기시절의 ‘나’는 무엇이 어떻게 변한 것들이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선 외부로 표출되어 있는 외면(모)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늙고 병든 육신으로 변하였을 것이고 특유의 성격은 그대로일 것이나, 밖으로 표출되지 않은 내면에서의 차이는 욕심이 있었느냐(?) 없었느냐(?)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록 유아기시절이었다 하더라도, 배고픔과 불편함은 엄마와의 대화(울음)로 해결하였을 것이고 다만, 욕심이 없었으므로 그 불편사항만 해결되면 천진난만한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래서, 욕심을 버린 그 모습에서부터 ‘참 나’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참 나!’를 찾는 첫 과제는, 욕심을 버린 나를 먼저 찾는 것이 첫 단계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과 같은, ‘참 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그 무엇인가를 어설프고 부족하나마 더듬거리며, 정리해 보기로 하였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바닷가 모래 속에서 밀(小麥)알 하나를 찾아내듯 말입니다. 아울러 나는 과연 누구인가?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참(육신이 없는) 나를 찾아라’고 하였으니 참(육신이 없는) 나 아닌, 거짓(?)(육신이 있는) 나도 같이 찾아봐야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또한 ‘참(육신이 없는) 나’와 ‘거짓(?)(육신이 있는) 나’가 동시에, 인간(3차원)세계에서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의 ‘둘. 생로병사’ 부분에서 제시한 산술적 공식 하나를, 또 인용하게 되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인체(人體: 살아있는 사람)= 육체(肉體: 욕심을 가진)+ 신체(神體: 혼령)</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육체(肉體: 욕심을 가진)= 인체(人體: 살아있는 사람)- 신체(神體: 혼령)</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신체(神體: 혼령)= 인체(人體: 살아있는 사람)- 육체(肉體: 욕심을 가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여기서 인체(人體: 살아있는 사람)는, 즉 육체와 생명을 동시에 가진 나를 말하는 것으로 3차원세계의 물질인 육체와, 4차원세계의 생명인 신체(神體)가 함께 하는 즉, 살아(생명)있는 인간 다시 말해서 인간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我)!’를, 의미한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p><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nbsp; </span></p>			 ]]> 
		</description>
		<category>◎ 참나를 찾아</category>

		<comments>http://kjhyun0500.egloos.com/10129261#comments</comments>
		<pubDate>Sat, 05 Sep 2009 22:45:28 GMT</pubDate>
		<dc:creator>다사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육신의 정리  ]]> </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10125935</link>
		<guid>http://kjhyun0500.egloos.com/10125935</guid>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육신(肉身)의 정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가. 가치 있는 삶.</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나. 자력(自力)에 의한 삶.</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다. 마지막 보시(布施)</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nbsp;</p><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 중에는 지나치게 제 몸을 아껴, 힘들거나 귀찮은 일들을 피하려 하거나 웬만한 일들도 하지 않으려는 경우들을 볼 때마다, 죽고 나면 화장장(火葬場) 불구덩이(爐)속에서 태워지거나 땅속에 묻어 썩혀버릴 것을, 무엇 하려 저렇게 아끼려고 애를 쓰는가? 이용 가능할 때, 적당히 이용하고 활용해야 ‘육신의 건강에도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젊은 층에서도 많더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뿐만 아니라 늙고 병들어 근력(筋力)이 없어지거나 체력이 떨어지고 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리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도 마음 되로 할 수 없는, 살아있는 송장(屍體)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임종 직전까지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것이라면 그 무엇이던 간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추구하고 실행하므로 써, 삶에 대한 보답과 함께 소위 밥값은 하면서 살아야, 진정 보람 있는 삶의 과정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무노무식(無勞無食)’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늙거나 병들어 살아있는 송장(屍體)이 되기 전에, 자신의 육신(肉身)을 최대한 이용하고 처리하여 대다수가 수긍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정리되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그 내용들이 자식(子息)들에게도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 방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의 방향은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소 이기적 생각이라 할지 모르지만,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我)’이듯이 ‘내(我) 육신의 주인 또한 나’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서는 약간의 문제는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살아생전의 내 육신이 오직 나만의 것’인가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시 말해 하나의 가정(家庭)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동안에는, 보잘것없는 내 육신이라도 오직 나만의 것이라기 보다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정이라는 범위 내에서 부부는 물론,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자매간에는 서로가 건강과 행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로 지향(志向: 생각이나 마음이 어떤 목적을 향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 모두는, 스스로 자신의 육신을 잘 관리함으로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말아야할 것이고, 또한 질병에 걸리더라도 적극적인 치료와 정성어린 가족들의 염원(念願)으로 쾌유(快癒) 해야할 것이며, 그리고 어떤 사건과 사고의 주체는 물론이고 객체도 되지 않도록 각자가 힘써 공동의 목표를 달성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위에서 말한 ‘내(我) 육신의 주인 또한 나’라는 것은 물론, ‘사후(死後)의 내 육신’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 유족들의 경우, 망인(亡人)의 육신(屍身)을 편안히 모시고 엄숙하고 장엄한 장례식을 준비하는 것이, 유족으로서 또는 자식으로서 망인에 대한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참사 현장이나 해난(海難) 사고 때 시체라도 찾기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러한 이유들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겠으나, ‘사후(死後)의 내 육신’의 주인은 ‘나’라는 말에 대하여 여기서는 그냥 접어 둘 것을 당부합니다. 최대한 양보하여 유족들의 생각 되로 장례식을 치르더라도 기껏, 불구덩이에 넣어 태워 한웅큼의 재로 만들거나 아니면, 땅속에 묻어 썩혀버릴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인간이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타당하지 않은 이유 또한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내 개인의 육신이긴 하지만, 살아생전에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후의 내 육신은 내 것’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은 여생은 가치 있고 순전히 자력으로 유지되는 삶이어야 하며, 최후로는 생산적인 재활용 또는 필요한 상대에게 조건 없이 주어져(布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가. 가치 있는 삶.</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가치 있는 삶이란, 자신이 살아있는 값어치를 반드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값어치라는 것도 경제적이든 비경제적이든 유형이든 무형이든 불문하며, 어느 누구에게든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삶이라면, 그것이 바로 가치 있는 삶이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우리들 주변에서는, 안타깝게도 남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가족이나 이웃의 도움을 받아가며, 근근히 생을 유지해 가는 많은 노약자(老弱者)와 병약자들도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노약자와 병약자(病弱者)들에게까지 삶의 가치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음)이겠으나, 노․병(老․病)과 관계없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실업군(失業群)에 포함된 사람들도, ‘가치 있는 삶’이라는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 60여 억 명의 인류가 3차원세계인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오직 부모님들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든 무계획이었든 단순한 사랑의 결실이라고만 생각하기엔 너무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암컷(雌)과 수컷(雄)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후손을 남기는 것은, 지구상에 생존하는 수많은 식물과 동물의 본능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식물과 동물의 본능에 의한 생존경쟁은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반면, 본능에 의한 약육강식보다는 사랑과 봉사로 인류애(人類愛)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많은 선각자(先覺者)들에 의해, 인간세계와 동물세계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능에 의해 암컷(雌)과 수컷(雄)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후손을 남기는 동물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류애(人類愛)라는 정신에 많은 사람들은 빠져드는 것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삶이 유지되는 기간동안 무엇인가를 행하거나 배워야한다는 암시(暗示)이거나 삶에 대한 가치의 추구(追求)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주주인께서도 개개의 생명체에게 삶이라는 과정을 부여할 때부터, 생명체 각자에게 각기 다른 가치 즉 삶에 대한 값어치를 요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생명체 각각은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그 값어치를 충분히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공짜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이 시점부터라도, 그 가치(價値)를 얻기 위해 남은 여생동안 무엇이든 열심히 일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는 삶, 즉 도움을 주기는커녕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무병장수와 같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임종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무엇인가에라도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소일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앞의 어느 부분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우리인간 대부분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할 일이 없어졌거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철이 다 들었거나 또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알고 싶은 것을 다 알았으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죽게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할 일없이 빈둥거리다가 죽게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무엇인가를 깨달았거나 알았으면, 곧 바로 ‘죽게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즉 인간으로서 할 일이 없어졌거나 또는 철이 다 들었거나 아니면 무엇인가를 깨달았으면, 더 이상 인간으로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할 일이라 함은 우선 선량한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어야 할 것이며, 누구나 평범하게 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하여, 꼭 필요한 것(일)이어야 한다면 예(例)컨데 봉사(奉仕)활동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또 봉사활동이라는 것도 그 범위가 크고 넓어, 어떤 특정활동이 봉사활동에 해당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쉽지 않겠지만, 각자의 양심과 이성에 따라 나보다 어려운 이웃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웃을 성심 성의껏 돕는 일 또한, 봉사활동이 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직장에서 퇴직했다고 또는 할 일이나 소일거리가 없이 물러앉아, ‘아! 이젠 할 일이 없구나!’하는 생각은 ‘무병장수와도 적대관계’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문제는 봉사라는 허울을 쓰고 행하는 봉사 아닌 봉사활동은 무의미 할 뿐 아니라, 그런 활동은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행하는 활동이, 어려운 이웃과 몸이 불편한 이웃 등 진정 남을 돕기 위한 활동인지(?) 아니면 남을 의식하기 위한 행사에 불과한 것인지(?)는 자신의 양심이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철(知覺: 사리를 가릴 줄 아는 힘)이라 하는 것도 마치 허상에 가까운 말과 같아 무척이나 조심스럽습니다. 앞의 어느 부분에서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아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 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는 우리 자식들의 유아기 혹은 유년기 때로 다 함께 거슬러 가 봅시다. 그때는 어린아이이기도 하지만, 아무거나 가지려고 떼를 쓰고 갖지 못하면 울며 응석을 부리다가도, 철이 들기 시작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지게 될 때부터, 비로소 ‘철이 들었다고’들 합니다. 비단 유아기나 유년기 때뿐만 아니라 어른이 다된 우리네 보통인간도 철이 덜 든 경우는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필자의 경우는 1990년대 초반쯤에서야 겨우 조금씩 철이 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바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이전이라고 철부지 어린애 같이 막무가내(莫無可奈)로 놀아난 것도 결코 아니었으며, 더구나 망나니 같은 생활도 아니긴 했지만 그때부터 무언가 조금씩은 달라지는 듯한 자신을 느끼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철이 다든 것은 아니며, 아마도 ‘철이 다 들게되면 그때는 죽게되는 것은 아닐까?’생각한다고도 한바 있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럼 여러분 스스로는 어떤 면에서 철이 들고있다고 느껴 본적은 없었는지요? 철이 들기 이전에는,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또 아무생각 없이 행동했든 사안들이 철이 들면서부터는, 그 사안에 대하여 ‘욕심으로 인한 과욕이었다’고 반성하거나, 이제부터는 그런 ‘욕심을 자제해야 되겠다’라는 자성의 기회가 있었다면, 그때 비로소 철이 들기 시작했다고 단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래서 철이란 것도, 누구나 떨치지 못하는 욕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여지며, 또한 우리인간이 ‘알게 모르게 드는 것이 아닌가?’라고 한 적이 있었으나 결국은, 유아기 또는 유년기를 제외하고는 그 사람의 도덕성과 인생관 및 직업윤리 등, 가치관에 따라 일찍 들기도 하고 늦게 들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알고 싶은 것, 즉 학문적 진실이건 비 학문적 진실이건 또는 과학적 진실이건 비과학적 진실을 포함하여, 모든 인류의 관심분야와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등,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사후세계를 비롯해 알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많을 것이며, 종교인이 아니면서도 ‘인생의 도리며 우주의 진리를 알아 무엇에 쓰랴?’하는 식으로, 단념하지 말고 여러분은 ‘왜? 하필이면 우리(여러분의)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지금의 형제자매를 만나게 되었을까?’ 또한, 이렇게 인간세계에 와서는 무엇을 이루고 성취했는가? 또는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되었는가? 그리고 참다운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들을 직접 찾아보시기 바랍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시 말해서, 우리같이 무지렁뱅이 들이라고 비 학문적 또는 비과학적인 분야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으며, 아무리 평범한 인간이라도 종교인이 탐구하고 열망하는 진리를 알고싶어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마치 종교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양 외면하고 있는 것만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나. 자력(自力)에 의한 삶.</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19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인류의 의료수준은, 대부분의 환자에게 속수무책으로 하늘만 쳐다보며 쾌유를 기원하거나, 정확한 진맥(진찰) 능력과 적합한 약재의 부족으로, 웬만한 의료 서비스도 경험하지 못한 체 운명을 달리하다보니, 인간목숨의 시말(始末)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우리 조상님들은, ‘인명은 재천’이라고 한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쯤은, 치료의학과 예방의학의 발달로 ‘인명은 재천’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공학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당시에는 불치병이고 난치병이든 각종 암(癌) 종류의 질병까지도, 조기에만 발견하게되면 거의 완치수준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말하자면 수명 연장의 관건은, 얼마나 조기에 질병의 원인을 찾아 낼 수 있느냐? 하는 것과, 각종 질병으로부터 예방하기 위하여 자신의 육신관리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행하느냐? 인데, 지금도 몸의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는, 채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이 죽어 가는 것을 이웃에서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인명은 곧 자신의 육신관리와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따라 좌우된다 하겠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온전한 육신관리와 함께 질병의 예방과 치료효과로, 당사자의 생명연장이 이루어졌다고 바로 ‘창조주(하느님이나 부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도 생기겠지만, 그것은 생명의 주체인 당사자(인간) 자신의 육신관리는, 자신의 책임범위 안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창조주(우주의 주인)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또한 ‘인체는 소우주’라고 하였듯이 우리육신의 주인은, 바로 우리 개개인 것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바 있었습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즉 육신관리라 하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해 소식다동(小食多動)과 함께 청정식품으로 필요한 영양(營養)을 골고루 섭취하고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건강에 해(害)로운 과음과식(過飮過食) 그리고 금연은 물론 각종 유해물질로 오염된 식품이나 환경에서 탈피하는 지혜와,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일정기간동안은, 부모님을 비롯하여 이웃들의 도움과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게 되는데, 그 이후부터는 순전히 자신의 능력과 체력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영아(嬰兒)의 탯줄은 부모나 의사 혹은 이웃의 도움으로 끊어지지만, 그 이후부터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 먹거리로 영양(營養)을 섭취하며 성장해 가는 것이, 이세상의 모든 동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태어나서 탯줄을 끊고 독립적인 호흡(呼吸)을 시작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타인의 도움을 배제하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에 의하여 유지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명은 재천’이라는 명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은, 인생이라는 전 과정(생로병사)은 창조주(하늘)에 의해 이미 예정 또는 계획되어져 있다는 것일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위의 이야기들이 상호 ‘모순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우리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위한 자신의 육신관리와, 자력에 의한 삶이라는 수단은 각기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따라서 자력에 의한 삶이라는 것은, 노․병(老․病) 또는 각종 사건사고로 인하여 당사자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이유로 필요이상으로, 각종 생명연장장치 등에 의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자신의 육신관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운명적으로 죽을 때가 되었는데도 죽지 못하게 생명연장장치 등에 의해 생명이 연장되는 것은, 꼭 가(去)야 할 사람을 가지 못하게 붙잡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습니까?</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3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운명에 의해 갈(死去)때가 되었을 때, 엉뚱하게 붙잡지 말고 아쉽지만 고이 보내줘야 할 것입니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따라서 억지로라도 생명을 연장하겠다고 부착시킨 생명연장(보조)장치들은, 의학적 판단과 기준에 따라 적절한 시점 즉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로 삶을 연장할 수 없을 경우에는 제거하므로 서, 갈 때가 된 사람들은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의학적으로 완치나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종교교리와 사회윤리의 틀에 얽매여, 소위 안락사를 부정하고있는 현실은 재고(再考)되어야 합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것은 가족의 고통이나 이웃의 고생스러운 희생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노약자(老弱者)와 병약자(病弱者) 자신들의 추(醜)해지는 모습을 가족이나 이웃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도, 환자들의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장기간 거동조차 하지 못하면 피골(皮骨)이 상접한 몰골은 앙상해질 것이고, 대소변(大小便)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추(醜)한 모습의 당사자는, 정말 조용히 그리고 하루빨리 가고싶은 심정일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갈 때가 된 사람을 가지 못하게 붙잡는 것)은 창조주의 뜻이 아닐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애통하고 가엽은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혹시나 하는 기대와 지금까지 못한 효도를 다하겠다는 듯, 생명연장기기를 제거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비용과 의료서비스의 효율적 운용 등을 감안한다면, 남아있게 되는 가족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도 손실을 끼치는 것인 동시에 창조주의 계획에 의하여, 떠날 때가 된 사람들을 계속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가끔씩 치매환자를 다루는 가정(家庭)드라마에서, 치매환자의 자식들은 우러나오는 효심(孝心)에서 또는 이웃이나 사회의 이목 때문에, 요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꺼려져 ‘내 부모니까 당연히 내가 돌봐드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치매에 걸렸을 경우 자식들에게는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하는 발상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의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사한 사례들에 대입하는 발상의 전환과 함께 의식의 대혁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지금 이 순간에도 각 병원의 중환자(重患者)실이나 또는 병실에서, 산소호흡기를 포함한 각종보조기기들에 의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을, 불치환자들의 의식(意識)유무를 불문하고 의학적 판단에 따라 갈 때가 된 사람들은, 온전하게 보내주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능력과 체력 그리고 의지에 의하지 않은 체 각종보조기기들에 의하여 수명을 연장하는 그런 삶이란, 자력(自力)에 의한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늙거나 병들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살아있는 송장 같이 가족이나 이웃에 폐를 끼치는 소위, 고려장(高麗葬)의 대상 같은 삶까지 영위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은 여러 가지 사실들과 이유들 때문에 의학적으로 완치나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의식불명의 불치환자, 의식이 분명한 말기 암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앞에서 말한 안락사문제도, 공논화하여 사회적 최소공배수를 찾아야 합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필자 역시 노․병(老․病) 또는 각종 사건사고로 인하여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그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산소호흡기 등 각종기기들을 부착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아내에게는 이미 말한바 있었는데, 다행히 적극적으로 동참 의사와 함께 긍정적이었으며, 기회가 되면 아이들에게도 미리 유언으로 남길 예정입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1. 어떤 사건이나 사고 또는 질병으로 인하여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생명연장보조기기를 절대로 부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2.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원으로 옮겨 재활용이 가능한 모든 장기(臟器)의 적출(摘出)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합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병원으로 옮겨진 이후 장기(臟器) 적출(摘出)에 관한 모든 조치는 의료진에게 위임할 것이며, 병원에서는 적출(摘出)한 장기(臟器)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시신(屍身)은 의료실습자재로 이용하도록 할 것이며 나머지 시신의 부분이나 조각은, 국내의 산하(山河) 또는 동물원에서, 금수장(禽獸葬)으로 처리해 주면 흡족해 할 것입니다.</span></p><p class="선그리기"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다만, 법률상에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필자의 이런 심정을 이해 해주시고, 이번 기회에 사회적으로 공론화 시켜서라도, 법률정비와 함께 정책적인 뒷받침을 준비해 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 다. 마지막 보시(布施)</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약 15억 년 전부터 우리의 형제들인 인류가 이 땅을 거쳐(태어나서 죽어)간 숫자는 가히 부지기수(不知其數)라고 했든 되로 일 것입니다. 그들의 발자취를 남기지 못한 구석기시대이전에는 알 수 없다하더라도, 적어도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들의 믿음이 변하지 않은 것 중하나를 꼽는다면, 사후(死後)세계에 대한 믿음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즉 자신들이 죽으면, 그 순간부터 그들의 혼(魂)은 무덤 속에서 영생(永生)한다거나, 또는 남들보다 특별하게 보이도록 자신의 무덤내외(內外)를 최대한 호화롭게 조성함으로서, 인간세상을 살았든 자신의 지위를 증명이라도 하듯 후세(後世)에까지 영원히 알리(자랑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구석기시대의 지석묘(支石墓)를 비롯하여 왕능(王稜)의 부장품(副葬品) 그리고 현대에 와서 호화롭게 사치한 조상들의 무덤도 이런 범주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쯤부터는 이런 의식의 변화도 필요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앞에서 언급한바 있는, ‘새로운 장례 문화 ...’에서 주장하고 밝힌 의미를, 기억하고있겠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자연으로의 회귀(回歸)’라는 의미는, ‘개×도 약에 쓰인다’는 옛말과 같이 인간으로서의 혼(魂)이 빠져나간 육신(屍體)도,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그 대상을 찾아 헤맸다고 한바와 같습니다. 다행히도 그 대상을 찾았다고 한바 또한 같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만약 그 누군가에게라도 쓸모가 있는 물질(屍體)이라면 그들에게 되돌려져야 당연한 이치인데도 불구하고, 필요로 하는 대상은 따돌리고 화장장(火葬場) 불구덩이 속에 넣어 한줌의 잿더미로, 혹은 땅속에 묻어 썩혀버림으로서 한줌의 흙으로 만들어 놓고 자연으로 되돌아갔다고들 한답니다. 이러한 시신(屍身)처리 방식의 장례문화는, 전 우주적인 자원관리 측면에서나 우주의 섭리차원에서도, 합당(合當)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먹거리라면 무엇이나 필요로 할 그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왔든 동물과 식물들이라고 밝혔듯이 사람으로 살다가, 운명(殞命)에 의해 자신의 찢겨진 의복(肉身)이나 남루한 의복을 벗어 던진 혼(魂)으로서는, 쓸모 없게 된 시신(屍身)들이 어디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심이나 가질까 의문입니다. 아마도 아무런 관심이나 미련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인간들이 쓸모 없게 찢겨지거나 남루(襤褸)한 의복을 아무런 미련이나 거리낌 없이 벗어 던지듯이 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지만 우리인간들이 어떤 미련이나 거리낌 없이 헌 옷을 벗어 던진다고, 반드시 우리들의 혼(魂)도 그럴 것이라는 단정은 성급하다 하겠으나, 인간(人間)과 혼(魂)의 성질상으로 볼 때 우리인간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4차원세계로 돌아간 혼(魂)의 입장에서, 자신의 의복(시신)이 처리(화장이나 매장)되는 과정(過程)을 정확히 알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었을지 3차원세계에 머물고있는 우리들 스스로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짐작이라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왜냐하면 4차원세계로 되돌아간 인간의 혼은, 설사 생각은 있다 하여도 자신들의 의복을 ‘이렇게(또는 저렇게) 처리해 달라’고 당부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또는 강 건너 불 구경인양 전혀 무관심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3차원세계에 왔든 흔적을 깨끗이 정리하는 차원에서라도 우리들의 육신(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지 스스로 상상해보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래서 이번에는 앞에서 언급한바 있는, ‘새로운 장례 문화 ...’에서 주장하고 밝힌 ‘가장 자연스러운 자연으로의 회귀(回歸)’라는 의미를 떠나, ‘이웃사랑’의 의미(意味)라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 하고자 합니다. 물론 결론은 금수장(禽獸葬)이지만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웃사랑은 (부모가 자식에게 조건 없이 주는)내리사랑과 (자식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내리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반드시 해야하는 효도, 즉)치 사랑을 제외한 동료 이웃 간의 모든 사랑을 일컫는다고 한바 있었습니다. 또한 이웃사랑에서 나누는 사랑의 대상을 60여 억 명의 전 인류라고 하였듯이, 여기(마지막 보시)에서의 사랑의 대상은 60여 억 명의 전 인류를 포함하여 이 지구상에 존재하며 살아있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도 똑같은 동등한 당사자로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우리인간들의 육신(시신)의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따라서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획득하고 취득하고 구입해서 내가 먹을 수 있게 소위 먹거리를 제공했든 수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은, 자신들의 의사(意思)유무를 떠나 또는 타의에 의해 자신들의 몸을 던져, 전 우주적인 차원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했든 것입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우리들은, 한(限)도 끝도 없이 그들로부터 충분하고 흡족한 먹거리로서의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마지막 남은 한 조각(당시로서는 죽은 자신에게 남은 전 재산이요 유일한 물질)에 해당하는 사랑(시신)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망설여진다는 것입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어찌 보면 이런 일이 육신을 가진 인간 즉 살아있는 인간으로서는, 생각만 해도 섬뜩하고 꺼림칙해서 놀랄 일일 테지요. 하지만 화장(火葬)문화가 처음으로 도입되었을 때도, ‘어떻게 부모님을 그렇게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 ...’ 하면서, 섬뜩하고 꺼림칙해서 놀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쯤은 부모 형제를 화장(火葬)하면서 이와 같이 섬뜩해하고 꺼림칙해서 놀라는 상주(喪主)는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모두가 인식의 차이요 생각의 차이며 습관의 차이 또는 문화의 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4차원세계로 되돌아간 혼(魂)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한(限)도 끝도 없이 받은 사랑에, 조금이라도 베풀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자위(自慰)하지는 않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마지막 남은 한 조각에 불과한 사랑이라도 헛되게 하지말고 필요한 대상에게 아낌없이 돌려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3차원(인간)세계 왔다가 최후로 남기는 ‘마지막 <span style="FONT-SIZE: 14pt">보시(布施)가 아니겠느냐?’하는 것입니다.</span></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 </span></p></span>			 ]]> 
		</description>
		<category>육신의 정리</category>

		<comments>http://kjhyun0500.egloos.com/10125935#comments</comments>
		<pubDate>Thu, 03 Sep 2009 22:25:49 GMT</pubDate>
		<dc:creator>다사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운명을 거스른 삶  ]]> </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10122864</link>
		<guid>http://kjhyun0500.egloos.com/10122864</guid>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운명(運命)을 거스른 삶.</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파아란 하늘에 쌍무지개가 어우러져 높은 하늘은 더욱 높은데, 꾀꼬리 뻐꾸기 그리고 이름 모를 온갖 새(鳥)들은 저마다 목청을 가다듬어 노래하고, 만발한 난연(蘭蓮)을 비롯한 수많은 기화요초(琪花瑤草)는 한 줄기 바람에 하늘거리며, 소리 없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는 넓은 황금들판에 화려하고 품위 있게 잘 꾸며진 연단(演壇)은, 품격(品格)높은 주인공에 어울리듯 중후장대(重厚長大)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충분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사회자가 뭔가를 알리는 중간 중간에, 수많은 군중의 연호(連呼)와 환호가 너무도 우렁차게 울려 퍼져 마치 세상이 떠나갈 듯했지만, 무슨 일인지 도대체 영문을 몰라 그저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는데, 잠시후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제각기 사각 모(帽)를 쓴 세 남녀가 연단에 모습을 들어내는 것이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키가 비슷하게 헌칠한 두 남아(男兒)와 조금은 앳돼 어려 보이는 여아(女兒)를 앞에 세워놓고, 이번에는 허연 수염이 발끝까지 내려지고 희한하게 생긴 지팡이를 짚은 산신령(山神靈)(?)같은 어떤 이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 ○○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어 무어라고 소개하자, 군중들의 함성이 울러 퍼진 잠시 후 장내가 조용해진 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 ◇◇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어 무어라고 소개하니, 또 다시 군중들의 연호가 일고 나서 조용해지자 또,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 ☆☆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어 무어라며 소개는 끝나고, 군중들의 환호(歡呼)와 우레 같은 박수소리에 마치 산이 흔들리는 듯했다. ‘아니! 쟤들이.....’ 하는 마음과 함께, ‘얘들아!’ 손을 번쩍 쳐들며 부르다가 그만 잠을 깨고 말았습니다. 꿈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1970년대 중반 무렵 어느 날, 아내가 꾸었다며 들려준 소위 꿈 이야기인데, 도무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뒤부터 우리들은 ‘둘째도 아들’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군(軍) 내무반장 복무시절, 역학(易學)을 공부한 신임사병 한 녀석이 중대와 대대를 제집 드나들듯 불려 다니느라, 내무반장보고 받기가 바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조금은 한가한 어느 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반장님도 한번 봐 드릴게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야임마, 냅도라이마! 좋다꼬 나오모 좋지만, 안 좋고로 나오모 기분 나쁘잖아 짜슥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아들이 몇 명인지 나, 알려 드릴게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몇 마디의 질문과 함께 잠깐 동안 요리조리 살피더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들은, 둘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딸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딸은, 남의 식구가 되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는 과연 아들이 한 둘(1～ 2)쯤은 될 것인가 하면서도, 크게 믿거나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은 체 신경 쓰이지도 않았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런 가운데 얼마 후, 아내의 꿈에서 본 듯 둘째를 아들로 맞았습니다. 결국 셋째를 낳게되면 딸인데, 그 이후부터 셋째는 낳지 말자고 아내를 졸랐습니다.‘셋째(女息)를 낳지 말자’는 가장 큰 이유는, 필자와 똑 같은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바 있었고, 두 번째 이유는 둘도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히는데 어떻게 셋까지 끼울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로서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모도 없고 언니도 동생도 없어 외로우니, 딸은 꼭 낳겠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시집에서 있었든 좋았든 이야기도 자매(姉妹) 혹은 이모들에게 자랑하기도 또한 하고 싶을 것입니다. 반대로 고부간의 갈등이나 시집살이의 서러움도 자매 혹은 이모(姨母)들에게 하소연하기도 또한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니 친정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딸을 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양가 어른들이나 가족들을 상대로 하소연을 하다보면 서로 가슴에 상처의 골만 깊어지겠지요. 자신의 주변에, 여자라고는 없어 너무나 외로워 딸을 낳자는 아내를 달래느라 애를 먹으면서, 갑론을박과 우여곡절 끝에 결국 셋째(女息)는 낳지 않기로 뜻을 모았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랬으면 당시, 정부정책(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대로 가족계획(避妊)이라도 잘 실천했어야 했지만, 그렇지도 못했기에 알게 모르게 중절수술로 여식(女息)을 포기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가족계획(避妊)이 제대로 실천된 상태에서 포기했다면, 차례를 기다리고 있든 녀석(셋째)의 혼(魂)은 인간 세상에 태어날 기대도 하지 않았을 텐데, ‘이 때다!’하고 찬스를 잡아 찾아든 그 녀석(셋째)을 인위적인 포기로 인하여, 안타깝게도 생명을 빼앗은 결과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 녀석(셋째가 될 혼)에게 무엇으로 보상하고 뭐라고 위로해야 하며, 어떻게 사죄해야할지 감당할 수 없는 책임감으로 마음만 무거워집니다. 차라리 태몽 되로 운명을 받아들여 세 남매를 키웠더라면,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테지요.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필자에게 있으며, 또한 그 업보(業報)도 피할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멍에라는 것을, 천번 만번 수긍하고 인정합니다. 다시 한번 그의 명복과 아울러 훨씬 더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원하는 것도 물론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개인적인 숱한 역경과, 가족 구성원의 모든 시련도 이로 말미 암이라고 믿고 있으며, 앞으로 또는 내세(來世)에서라도 감당해야할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늘의 일은 오늘 마무리한다’는 심정으로, 현세(現世)에서의 일은 현세에서 마무리 할 수는 없을까? 고심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대안을 찾아보았습니다. 만약 지금 이 시점에서라도 인위적으로 포기되는 태아(胎兒)를 구할 수만 있다면, 합당(合當)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어깨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누구하고도 상의나 의논도 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지 않습니까. 최소한 하나 이상의 여아는 구(救)해야 할 텐데 ... 말입니다.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결국 대안이라는 것도, 얼토당토않은 공염불(空念佛)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필자에게 닥칠 미래의 모든 고난도, 당연히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또 감수할 각오입니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세 남매를 키웠어야 할 운명을 거슬러, 고집불통(固執不通)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삶을 영위(營爲)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도끼로 발등을 내려 찍고싶을 정도로 후회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자식 탐(貪)이 나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며 운명을 거슬렀다는, 아니 운명을 거스럼으로 인하여 기대에 부풀고 희망에 가득 찬, 죄 없는 녀석(胎兒)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책임을 자청(自請)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대가족을 다룬 가정드라마나, 자녀들이 많아 한 집안에서 북적거리는 것이 부럽다기 보다는 좋게 보인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고 난 얼마 후부터, 그때 왜 ‘나중 언젠가는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을까 또, 옛 어른들 말씀 중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자식은 지 먹을 것은, 지가 가지고 태어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는 말을 귀담아 두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난 후에는 이미 지나간 일일뿐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듯 무지몽매(無知蒙昧: 아는 것이 없고 사리에 어두움)한 과오(過誤)를 진심으로 사죄(謝罪) 합니다. 아내를 졸라 셋째를 포기하게 한 독선을 사죄(謝罪) 합니다. 하나(一)이상 수(數)개의 생명을 빼앗은, 살생을 진심으로 사죄(謝罪) 합니다. ‘..... 후회할지도 <span style="FONT-SIZE: 14pt">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무지(無知)를 사죄(謝罪) 합니다. ‘..... 지가 가지고 </span><span style="FONT-SIZE: 14pt">태어난다’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든 어리석음을 진심으로 사죄(謝罪) 합니다.</span></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 ..... ...”</span></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논해서 무엇하리! 논해서 무엇하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참으로 안타깝고 애닮아 잊고 싶지만,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너무나 큰 충격(衝擊)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녀수를 제한하는 가족계획이 아니라, ‘어떻게 낳아 어떻게 기를 것인가’하는 방향으로 정(定)하고 또한 권(勸)하는 한편, 아울러 오래 전부터 우리 집 가훈(家訓)도 ‘후회하지 않을 오늘을 살자’라고 정했습니다.</span></p><span style="FONT-SIZE: 14pt"><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 ..... ...”</span>&nbsp;&nbsp;</span><span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 style="FONT-SIZE: 14pt">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4pt">&nbsp;&nbsp;&nbsp;&nbsp;</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5%"><span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nbsp;&nbsp;&nbsp;&nbsp;</span><span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 style="FONT-SIZE: 14pt"><span style="FONT-SIZE: 14pt"><span style="FONT-SIZE: 14pt"><span style="FONT-SIZE: 14pt"><span style="FONT-SIZE: 14pt">&nbsp;&nbsp;&nbsp;</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p>			 ]]> 
		</description>
		<category>운명을 거스른 삶</category>

		<comments>http://kjhyun0500.egloos.com/10122864#comments</comments>
		<pubDate>Tue, 01 Sep 2009 22:31:42 GMT</pubDate>
		<dc:creator>다사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마지막 보시  ]]> </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10114693</link>
		<guid>http://kjhyun0500.egloos.com/10114693</guid>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다섯. </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정리기(整理期: 마지막 布施)</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 운명(運命)을 거스른 삶.</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2. 육신(肉身)의 정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가. 가치 있는 삶.</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 자력(自力)에 의한 삶.</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 마지막 보시(布施)</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3. 가정(家庭)의 정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가. 과욕(過慾)은 업을 쌓는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 받고싶은 되로 행하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 유산의 정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4. 이웃(社會)의 정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인간은 누구나 성장기를 거쳐 활동기에 이르게 되고 이 활동기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퇴직의 시기가 다가오게 되면서 정리기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즉, 정리기라고 하는 기간은,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소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정년퇴직을 한 이후부터, 그 동안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나머지 기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임종 할 때까지의 기간으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년퇴직 후, 유사기관 등에 재취업하여 비록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정리기라 할 것이나, 명예퇴직 등으로 평균적인 정년퇴직의 년령대에 미달했을 때는 활동기라 하여도 무방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 시기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의 전 과정을 뒤돌아보는 한편, 현재까지와는 달리 필요한 이웃을 위해 조그마한 것이라도 나누며 봉사하고, 더디어 ‘대 단원의 막을 준비한다’는 각오와 함께, 아울러 자신의 남은 여생을 보람 있고 알차게 마무리하므로 서, 한 점 </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후회 없이 주변잡사를 깨끗이 정리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이며, 더 이상 행복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년퇴직 때까지는 주로 가정생활에 필요한 경제활동과 자식들의 뒷바라지로 인하여, 가정에 많은 관심과 배려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정리기부터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인식으로 가사 이외, 즉 소외되고 외면당했던 필요한 이웃에게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활동기 동안에는 자신과 가정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였고 그 결과, 어느 정도 재산도 형성되었을 것이며 자식들의 뒷바라지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자신의 일신에 관련된 신변잡사와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이고 가장 평범한 상태로의 정리와 아울러 소외되고 불우한 이웃에게 봉사와 나눔의 배려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정리 할 수 있게된다면 막상 임종이 임박하였다 하더라도, 편안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며 더 이상 무엇을 또 바라겠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와 같은 시기가, 누구나 와 마찬가지로 세월의 흐름이 순리에 따라 한 걸음 두 걸음 임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월은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는 말조차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을 지경이며, 엊그제 신임으로 임용 받은 것 같은데 벌써 정년퇴직이라니,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그러나, 신임시절에 갓난 아이였든 조카들이 어느 듯 30대 중 후반으로 장성하였는가하면, 그들의 자식들 또한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있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벌써 정년퇴직이라는 말이 다소 낯설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어느 정도 실감도 느끼며,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갖게 된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래서, 지금까지는 나와 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부족하나마 쏟았든 열정을, 이제부터는 나와 내 가족이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해서 전과 다름없는 ‘열정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또는, 정리기부터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고 ‘형제와 동료라 할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한 방도가 아닐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모와 둔 재산도 없을 뿐 아니라 체력 또한 예전 같지 않다는 현실을 간과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 사회생활 중 직업전선에서 정년 퇴직한 이후부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하고 싶었든 일이나 부족했든 일들을 마무리하고 인간으로서의 한 생애를, 정리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세(성장기 활동기 정리기)기간 중,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시기는 두말 할 여지도 없이 정리기(마지막 보시)라는 생각도 하게 될 것입니다. 치열했든 생존경쟁에 살아남기 위하여 전후좌우도 살피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 비로소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서 자신의 발자취를 확실하게 되돌아보고, 나와 관련된 모든 일들을 정리하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결국 이 글에서의 정리(整理)란, 3차원세계인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일생동안 각각의 중요한 단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현 시점에서, 자신과 관련되었든 모든 세상사(世上事)를 포함하며 특히, 자신의 육신과 관련된 신변잡사 그리고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가정사를 비롯하여,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형제와 동료라 할 수 있는 소외되고 고통받는 필요한 이웃을, 염두에 둔 정리(整理)로 귀결된다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안타깝게도 앞의 장(章: 셋. 성장기, 넷. 활동기)까지는 과거사(過去事)였지만, 지금의 장(章: 다섯. 정리기)은 계획에 불과한 미래사(未來事)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nbsp;따라서, ‘다섯. 정리기(마지막 布施)’는 행동보다 언동이 앞서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이거나 또는 언행(言行)이 최소한 동시에라도 행하여져야 할 터인데, 행동보다 언동이 앞서게 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경우, 행동보다 언동을 앞세움으로서 허풍쟁이답게 신뢰를 잃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꼭 필요하고 절실한 대상과 방법을 찾기 위해 그 방도를 강구해 보기로 하였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span></p><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			 ]]> 
		</description>
		<category>◎ 마지막 보시</category>

		<comments>http://kjhyun0500.egloos.com/10114693#comments</comments>
		<pubDate>Sun, 30 Aug 2009 21:48:59 GMT</pubDate>
		<dc:creator>다사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애천하 ]]> </title>
		<link>http://kjhyun0500.egloos.com/10062694</link>
		<guid>http://kjhyun0500.egloos.com/10062694</guid>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애천하(愛天下): 평천하(세계평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가. 전쟁과 테러의 중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나. 대량살상무기의 폐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다. 국가간의 존중.</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1) 8․15는 반쪽 해방인가?</span></p><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2) 일본, 부끄러운 줄은 알고 있나?</span></p></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3) 한일관계, 이것도 업보인가?</span></p><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4) 임진(壬辰), 을사(乙巳) 그리고, 다음은?</span></p><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5) 세계 지도국의 자격(資格)</span></p><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6) 밀반출된 문화재의&nbsp;원상회복.</span></p></span></span></span></span><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라. 전 인류의 기아로부터 해방.</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마. 인간 존엄성의 실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 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공자님께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심신을 닦고 집안을 정제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 즉, ‘탐욕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양심적으로 깨끗이 하고 난 다음 가정을 바르게 하여 모범을 보이고 그 다음에 나라를 다스리고, 나서 천하를 평정하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필자는 자신을 사랑하고 난 다음 가족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나라를 사랑하고, 나서 지구촌의 전 인류를 사랑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아울러 필자는 각 단계의 순서를 강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순서의 의미는 이미 밝힌바가 있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런데 평천하(平天下) 즉 천하를 ‘평정한다’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평정에는 여러 가지 의미의 평정(平正: 공평하고 정직함. 또는 平定: 난리를 평온하게 진정시킴, 적을 무찌르고 자기편에 예속시킴. 그리고 平靜: 평안하고 고요함, 침착하여 마음의 동요가 없음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 심신을 닦고 집안을 정제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의 의미를, 인간이면 누구나 갖기 쉬운 욕심을 버림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도덕적으로나 양심적으로 깨끗이 하고, 집안의 근심과 우환거리를 없앤 다음 백성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조성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평천하(平天下: 천하를 평정한다)의 의미라면 평정(平靜: 평안하고 고요함, 침착하여 마음의 동요가 없음)으로 알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물론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는 평정(平定: 난리를 평온하게 진정시킴, 적을 무찌르고 자기편에 예속시킴)해야 할 것이지만, 괜히 이웃나라를 침공하는 등 분란의 소지를 자초하거나, 이웃나라가 약하다고 평정(平定)하려는 것도 평천하는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평정(平定)은 백성들을 전쟁터로 동원해야하고 그 백성들은, 전쟁터에서 죽거나 다치는 일로 인하여 결코 백성들은 마음의 평정(平靜)과는 상반된 개념이므로, 평천하(平天下)는 곧 평정(平靜)이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평천하까지 이룬 군주는 찾는다는 것이 가히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민족 1만여 년 역사의 일부인, 조선왕조시대에는 27대(代)의 군주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성군으로 꼽히는, 제 4대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18～1450), 제 21대 영조(英祖: 1694～1724～1776), 제 22대 정조(正祖: 1752～1776～1800)임금 중, 특히 세종대왕은 평천하까지 완전무결하게 성공한 성군중의 유일한 성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세계 유일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한편 영조(英祖) 정조(正祖)등 두 임금도, 탕평책으로 평천하에 심혈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당파싸움이 끊이지 않은 것 또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므로, 소위 백성들의 마음은 평정(平靜: 평안하고 고요함, 침착하여 마음의 동요가 없음)을 가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 제 19대 광개토대제(廣開土大帝: 374～391～413)도, 또한 대한민국 제 5～9대 박정희(朴正熙 1917.11.14～1979.10.26) 전 대통령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 심신을 닦고 집안을 정제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까지는 성공한 지도자로 손색이 없다 할 것이나, 평천하(平天下: 천하를 평정한다)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게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2500여 년 전 공자님 시대에는, 이웃나라라고 해야 기껏 중원대륙에서 명멸하는 군주들이나 인식하고 있었을 뿐, 자신들이 살고있는 반대쪽이나 지구 따위는 안중에는 물론이고, 감히 상상도 못하고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천하’하면 개개 군주들의 지배범위 내에 속하는, 이웃 몇 개의 나라안의 이야기로 통칭되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따라서, 지금과 같은 교통과 통신수단이 없는 상태에서는 서울에서 북경까지 한달 이상이 걸리고, 왕복에 두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상태이니, 지금과 같은 지구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며, 세상(지구)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조차도 갖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250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서울에서 북경까지 한 두 시간이면 충분한 것은 물론이고, 한 두 시간 전에 발생한 어떤 사건 사고나 중요 소식도 즉시 또는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2500여 년이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멀게만 느껴지든 이웃나라가 그만큼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 즉, 이렇게 이웃나라와 또는 우리와 반대편에 위치한 나라와의 시간적으로 가까워진 현상을 혹자들은, 간단하게 지구촌(地球村)이라고 표현한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지구촌(地球村)!’ 이 얼마나 의미 있고 깊이 있으며 적절한 표현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지구는 이제 거대한 하나의 촌락(村落)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공자 님 시대의 평천하(천하를 평정한다)는 한사람의 군주(제후)가 다스리는 한 국가 또는 이웃 몇 개의 나라에 대한 ‘평천하’였다면, 2500여 년의 시간이 경과한 지금에서의 평천하는 지구촌 전체를 평정(平靜)한다는 의미의 ‘평지구’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필자의 ‘애천하’도 이상과 같은 논리에 따라, 한 국가의 백성뿐만 아니라 지구촌에서 생활하고있는 60여 억 명의 백성 전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애지구 이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평천하(平天下)와 평지구(平地球), 애천하와 애지구는 모두 같은 맥락으로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천하 애천하 평지구 애지구’ 이 모두가 말로서 표현하는 것은 쉽고 간단한데, ‘세계평화유지’라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고 불가능하다는데 큰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 지구촌에는 각자 주권을 가진 크고 적은 나라가 약 200여 개국이상이 있는가 하면, 또한 이 200여 지도자와의 의사 일치를 본다는 것은, 과히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것만큼이나 어렵기도 하거니와 현실적인 실현가능성 또한,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잡으려는 듯 황당무계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크고 적은 갈등이 상존하고 있으며,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있는 곳도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며, 특히 중동지역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테러행위의 악순환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실정인가 하면, 2001년 9월 11일 테러이후 중동지역을 거점으로 한 ‘알 카에다’라는 테러조직은, 친 미국계의 우방국 곳곳에도 테러행위가 자행되고있는 중이며, 동북아에서는 북한 핵 문제로 북․미간의 갈등을 비롯하여 가끔씩 속을 뒤집어 놓는,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는 물론 부국과 빈국간의 남북문제를 포함하여 공개되지 않고 표면화되지 않은, 당사자들간의 갈등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 수 없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어디 이런 것뿐이겠습니까? 각 종교(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이스람교 힌두교)간에도 그 교리에 의한 갈등과 얽히고 설키면, 실로 무궁무진한 갈등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구촌의 백성들이 안타까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지구촌 곳곳에서 표출되었거나 잉태되고있는 수 없이 많은 갈등들은, 어느 누구라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맥없이 손을 놓고 곪아(테러행위나 전쟁이)터지기를 기다린다면, 어리석고 무고한 백성들만 마치 소모품처럼 어이없이 죽어 가는 참상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 문제이겠습니다. 이러면서도 ‘세계평화’를 입에 담을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지만, 200분의 1에 해당하는 이 좁디좁은 한반도 땅덩어리 안에서도 남․북한간의 갈등은 재쳐두더라도, 남쪽내부에서 만도 사분 오열의 양상을 보이고있는 갈등들을 염두에 둔다면 가히, 첩첩산중이라 할 것이며 이렇게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갈등들이 200배 이상 쌓였다면 더더욱 유구무언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앞에서도 잠깐 언급하였든 남쪽내부에서의 갈등을, 흔한 지역간의 갈등으로 치부하면서 해당 주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의도들도 상당히 표출되고 있으나,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그 잘난 정치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녕 우리 모두가 긴장하며 경계해야 할 부분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좌경사상과 주사파 그리고 한총련으로 활동하였든 이념가들의 책동이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주의 광대함(수 천억 개의 별이 모여 하나의 은하계를 형성하고, 또 수 천억 개의 은하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수 억만 개중의 하나에 해당하는 지구라는 위성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인, 기껏 70～ 80평생을 남보다 더 잘살기 위해 죄 없고 힘없는 무지한 백성들만, 상대국 지도자의 욕심에 의해 죽어가야 한다는 현실을 놓고 볼 때, 참으로 와각지쟁(蝸角之爭= 蝸牛角上之爭: 달팽이 촉각 위에서의 싸움이란 뜻으로 대국(大局)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매우 하찮은 일로 다투는 것, 또는 좁은 범위 안에서 싸우는 일 또는 인간 세계의 비소(卑小: 보잘것없이 작음)함의 비유)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국시대, 양(梁: 魏)나라 혜왕(惠王)은 중신들과 맹약을 깬 제(齊)나라 위왕(威王)에 대한 응징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분분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래서 혜왕은 재상 혜자(惠子)가 데려온 대진인(戴晉人)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대진인(戴晉人)은 도가자류(道家者流)의 현인(賢人)답게 이렇게 되물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하, 달팽이라는 미물(微物)이 있는데 그것을 아십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물론 알고 있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 달팽이의 왼쪽 촉각 위에는 촉씨(觸氏)라는 자가, 오른쪽 촉각 위에는 만씨(蠻氏)라는 자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서로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시작했는데 죽은 자가 수만 명에 이르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한지 15일 만에야 전쟁을 멈추었다고 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런 엉터리 이야기가 어디 있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오면, 이 이야기를 사실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전하, 이 우주의 사방상하(四方上下)에 제한(際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니, 끝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오면, 마음을 그 무궁한 세계에 노닐게 하는 자에게는 사람이 왕래하는 지상(地上)의 나라 따위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하찮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으음, 과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 나라들 가운데 위(魏: 梁)라는 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대량(大梁: 開封) 이라는 도읍이 있으며, 그 도읍의 궁궐 안에 전하가 계십니다. 이렇듯 우주의 무궁에 비한다면 지금 제나라와 전쟁을 시작하려는 전하와 달팽이 촉각 위의 촉씨, 만씨가 싸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과연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대진인(戴晉人)이 물러가자, 제나라와 싸울 마음이 싹 가신 혜왕(惠王)은 혜자(惠子)에게 힘없이 말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 사람은 성인(聖人)도 미치지 못할 대단한 인물이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EU(유럽연합)의 경우에서 보더라도, 인류공동의 목적을 위한 절대절명의 과업이라는 공배수만 얻을 수 있다면, 오히려 쉬운 문제일 수도 있지는 않을까요? 이와 함께, 지구촌에서 생활하는 60여 억 명의 인류 모두가, 하나같이 부처님의 말씀처럼 탐욕을 버리고 자비심을 가지거나, 예수님의 말씀처럼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가진다면, 가칭 “지구국(地球國: 지구연방공화국)”의 건국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마치, EU(유럽연합)와 같이 한 지역을 한 개의 국가형태로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하나의 국가형태로 조직하여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될 수 있거나, 또는 평균적인 삶이 보장될 수 있게 하는 것만이, 진정한 세계평화의 목표이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지금과 같은, 약 200여 개 국가의 지도자들은 각기 자신들의 국가이익만을 국가경영의 목표를 최우선으로 한다면, 진정한 세계평화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금을 막론하고, 군주의 통치이념과 통치수단은 대동소이하다 할 수 있는 반면, 인간의 탐욕은 갈수록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을수록 더욱 좋음)으로 만족함에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한(漢)나라 고조 유방(劉邦)은 명장으로서 천하통일의 일등공신인 초왕(楚王) 한신을 위험한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계략을 써 그를 포박한 후 회음후(淮陰候)로 좌천시키고 도읍 장안 (長安)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어느날, 한(漢) 고조(高祖)는 한신과 여러 장군들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한신에게 이렇게 물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과인은 몇 만의 군사를 통솔할 수 있는 장수감이라고 생각하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폐하께서는 한 10만쯤 거느릴 수 있으실 것으로 생각하나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그대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예, 신(臣)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옵니다” (高帝嘗與韓信言諸將能否 各有差 上問曰 如我能將幾何臣曰 陛下不過能將十萬 上曰 於君何如 曰 臣多多而益善耳)</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다익선? 핫핫핫...”</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고조는 한바탕 웃고 나서 물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다익선이란 그대가 어찌하여 10만의 장수감에 불과한 과인의 포로가 되었는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신은 이렇게 대답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오나 폐하,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병사의 장수가 아니 오라 장수(將帥)의 장수(將帥)이시옵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의 전부이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교육의 질과 양의 다양화와 보편화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그 종국적인 목표에 설정한다면, 진정한 세계평화도 요원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금을 통틀어 대동소이한 군주의 통치수단과, 250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통치이념이 크게 발전되지 못하고, 약 200여 지도자들이 자신의 국가이익에 절대절명의 목표로 삼는 현실은, 통치이념의 발전이 없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모든 사물과 인간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발전되어 가는 것이 정상인데, 유독 군주(제후)의 통치이념은 마치 제자리걸음이라도 한양 발전을 외면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욕심을 자제할 수 있는 그룹의 지도자들이 출현해야 하겠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역사발전의 순리인지 인간의 지혜가 발전한 것이지 분명치 않지만, 비록 경제적인 측면이 강함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그 시험대의 첫 걸음(EU: 유럽연합)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구국(地球國: 지구연방공화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완벽한 한 개의 국가형태를 의미하는 것이며, 인간의 존엄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지구상의 ‘어느 한 국가’형태를 모델로 한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러한 지구국(지구연방공화국)의 건국이라는 현실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음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든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또는 ‘1％는 커녕 0.1％의 영감’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뜻 있는 많은 인사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가진 자를 중심으로 특히, 부국의 지도자를 비롯하여 억만장자들의 동참에 대한 의식의 대전환을 바라는 마음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 세상(지구곳곳)에서 내노라하는 각국 및 각급 지도자여러분! 여러분의 책임 하에 있는 각계각층의 백성이나 소속원 중에서 기아로 죽어 가는 사람은 없습니까?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배고픔)도 해결해 줄 수 없다면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것 아닐까요? 여기에서도 각자 할 말은 많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적 요인과 인위적 요인이 각각 또는 두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긴 하겠습니다 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쯤에 와서 필자는,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 사람답게 살면서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스스로 행복을 느끼며 살기 위해서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첫째, 지구(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태어나야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둘째, 사람(지도자)을 잘 만나야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셋째, 의지(욕구)가 충만한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먼저 지구(자연)환경이 좋은 곳이라는 말은, 기후 지형 토질 등 여러 가지의 요소가 있을 것이기는 하지만, 쉽게 말해서 인간 개개인 누구나 그 자연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적극적인 개척정신에 의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예컨대 사막지역에서라면, 제아무리 강한 의지와 개척정신으로 황무지를 일구려해도 인간의 의지와 힘만으로 참다운 삶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음, 사람(지도자: 父師君)을 잘 만나야한다는 말은 최소한 3부류의 기본적인 인간을 말하고자 하는데, 제일 먼저 부모를 잘 만나야하고 두 번째는 선생님을 잘 만나야하고, 마지막으로 각급 지도자를 잘 만나야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시 말해서, 세상 누군들 부모를 잘(못) 만나기를 희망 되로 할 수 있을까 마는, 정의롭고 다양한 소양을 갖추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자식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부모를 잘못 만나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많은 것을 볼 때, 적어도 성장기에 해당하는 시기까지는 (아무리 輕薄短小하더라도)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과 따뜻한 보살핌을 느끼고 살 수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여기서, 선생님이란 교단에서 지식을 전해주는 스승님(師)은 물론, 직장생활에서의 상급(감독)자와 사회생활에서의 선배들을 통칭하는데, 각급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師)은 사심 없이, 자신의 지식을 송두리째 넘긴다는 의무감이 충만해야 할 것이며, 직장생활에서의 상급자는 업무에 관한 지식들을 사회생활에서의 선배는 공동체생활에 관한 지식들을 충분히 전해줄 수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의 상사나 선배들의 태만한 게으름과 잘못된 요령들은 안 배우느니만 못할 것이며, 이런 상사나 선배들에 길들여지면 평생동안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마지막으로 지도자란, 한 국가의 대표 즉 국가 원수를 비롯하여 각 종교나 각급 단체의 지도자 및 무수하게 조직되어있는 그 조직의 지도자들을 말하고자 하는데, 국가의 지도자로는 조선시대의 세종대왕과 같이, 노비와 같은 천민들의 한 많은 마음도 어루만질 줄 알아야한다는 의미이며, 각급(종교) 단체의 지도자는 그 단체에 속한 모든 사람이 인간본위, 또는 인권 최우선의 인간존중사상을 가진 지도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은 굶어서 죽어 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치와 방탕 또는 특수목적에만 매달리는 몇몇 국가지도자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종교의 교리 속에서는, 인간존중사상(인간의 존엄성)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게 최소한, 사람(父師君)만이라도 제대로 만나기만 하였다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은 보장 될 것이며, 여기에 자신의 적극적인 성취욕구와 의지의 실천이 더해진다면 그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끝으로 의지(욕구)가 충만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말은, 이상의 두 가지 요건(좋은 환경과 좋은 사람)과는 상관없이 어떤 환경과 어떤 류형의 인간(지도자)을 만난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인간다운 삶의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헌신적이며 자발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아무리 좋은 두 가지 요건(좋은 환경과 좋은 사람)이 부합되었더라도, 나태하며 게으르고 의지가 없으면 부처님께서도 하느님께서도 우주의 주인께서도, 구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난은 하늘도 구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이상의 3가지 기본적인 요건을 다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 그 자체가 업보에 의한 것이라면 더더욱 구제할 방법은 없을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60여 억 명의 인구가 태어난 지역과 피부색 그리고 종교와 인종에 의해, 혹은 아국과 타국 그리고 아방과 상대방의 지도자를 잘못 만났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전쟁과 테러로 어이없이 죽어 가는 참상을 방치한다는 것은, 전 인류공동의 책임인 동시에 비도덕적 비윤리적 양심의 소유자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마치 남이야 굶어죽든 맞아죽든 ‘나만 호의호식하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심보 즉, 놀부 심보보다 더한 철면피(鐵面皮: 무쇠처럼 두꺼운 낯가죽이라는 뜻으로,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해서 이것은 아닌 것입니다. 같은 형제자매 중에서도 약골로 태어나는 자 또한 반드시 있게 마련이며, 지능과 체능 및 체력이 평균에서 떨어지는 자식도 분명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자릿값!’이라는 말도 있지 않았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또한, 비록 업보에 의한 약자 편이었다 하더라도 강자이거나 힘있을 때 또는 조금 많이 가졌을 때, 작은 것이라도 나눔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평균적인 인간다운 삶에로, 한 걸음씩 더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지구촌 60여 억 명의 모든 인간들에게 전체적으로는 공평하게, 자질과 능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예능방면에 소질이 있으면 체능방면에는 다소 소질이 떨어지듯이, 좋은 점을 하나 주었으면 나쁜 점도 하나주었고, 나쁜 점을 다섯 개 주었으면 좋은 점도 다섯 개를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적절한 예(例)가 될지 모르겠으나. 가인박명(佳人薄命= 北宋 후기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蘇軾(字: 子瞻, 號: 東波)의 시: 아름다운 여인은 운명이 기박함 또는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박하고 명이 짧다)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래 시의 작자 소식(蘇軾:1036-1101)이 항주, 양주 등의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에서 나이 삼십이 이미 넘었다는 예쁜 여승을 보고 그녀의 아름다웠을 소녀시절을 생각하며 미인은 역사적으로 운명이 기박하였음을 시로 쓴데서 전하여 졌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두 볼은 엉긴 우유와 같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머리는 옻칠을 한 것처럼 새까맣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눈빛이 발에 들어오니 주옥과 같이 빛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본디 흰 비단으로써 선녀의 옷을 지으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입술연지는 천연의 바탕을 더럽힌다 하여 바르지 않았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雙頰凝 髮抹漆 眼光入廉珠的白樂 故將白練作仙衣 不許紅膏汗天質)”</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오나라 사투리의 애교 있는 소리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어린아이처럼 앳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무한한 사이의 근심 다 알 수 없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 운명 기박함이 많으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문을 닫고 봄이 다하니 버들꽃 떨어지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吳音嬌軟帶兒癡 無限間愁總未知 自古佳人多命薄 閉門春盡楊花落”</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 시는 1086년부터 1088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은 어린 승려를 노래한 칠언율시(七言律詩)로 되어 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민족의 마음속에 자리잡고있는 삼신할머니: 우리민족은 유난히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우리민족이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삼신할머니를 가슴속에 묻고 살기 때문일까? 우리가 삼신할머니를 의식하지 않아도 일상생활 속에서 늘, 3이라는 개념 속에서 살고 있다. 노크를 해도 똑 똑 똑 세 번, 무엇을 하여도 삼세번 등 우리의 생활 속에 베여있는 삼신할머니의 흔적들은 많이 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는 3월 3일을, 삼진(三眞)날이라 한다. 삼진이란, 사람이 태어나면서 삼신할머니로부터 받은 세 가지, 곧 성(性)․명(命)․정(精)을 말하는 것으로 삼신할머니가 인간에게, 아기를 점지하여야만 임신을 하여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우리 민족의 믿음은, 곧 인간의 생사는 반드시 삼신이 주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열살 미만일 때에는 목숨의 안전과 위험, 우환 잘나고 못남 따위는 애오라지 모두 삼신께 위탁한다. 이 말은 삼신할머니가 최초로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말과 통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는 아기를 간절히 원할 때는 무당에게 찾아가 삼신을 받곤 한다. 이것이 바로 ‘삼신신앙’이요 ‘민족의 종교’인 것이다. 물론 ‘삼신신앙’이 종교로서 이름을 가졌다는 기록이나 근거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삼신을 종교 이상으로 믿었다는 기록들을 현재의 우리들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삼신산 마고 봉래 방장 영고와 같은 지명과 어휘들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 우리들은 해, 달, 북두칠성을 삼신으로 보기도 하고 한인, 한웅, 단군을 삼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삼신은 내륙지방에서는 마고산(麻姑山)이라 명명하고, 섬에서는 영주산(瀛州山)이라고 부르며 그 섬을 영주라고 한다. 한라산이 있는 제주도의 옛 이름이 영주이기도 한 것은, 제주도가 바로 삼신종교의 성지이기 때문은 아닐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면 진정한 삼신은 무엇을 말하는가? 박제상(朴堤上 363～419?)이 쓴 부도지를 보면은 동이족의 조상은 삼신 마고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마고를 어머니로 하여 두 딸인 궁희와 소희로 불러지는 세 분의 신이 바로 삼신이라고 말한다. 궁희는 곧 황궁(黃穹)과 청궁(靑穹)으로 소희는 백소(白巢)와 흑소(黑巢)가 되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삼신신앙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에게 많은 진리를 터득케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신시 때 나온 천부경의 원리와 삼태극 사상을 들 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하늘의 직녀성을 삼신이라고도 하는데 직녀성 세별을 마고본성, 실한성, 허튼성이라고 하였다. 이들 세 성을 소리로 본다면 마고본성은 본소리(本音), 실한성은 실한소리(實音), 허튼성은 허튼소리(虛性)가 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마고본성은 우주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소리로 율려가 되고, 우주의 소리인 율려에 가깝게 내려고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악기가 되었으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허튼소리는 인간들의 쓸데없는 소리가 된다. 우리는 쓸데없는 소리를 헛튼소리, 헛소리라고 하는 것은 즉 우주본래의 소리와는 아주 거리가 먼 소리라는 말로써. 삼신의 허튼성에서 나왔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현재 무당들이 모시는 신당에는 삼신이 없다. 삼신이 어처구니없이 삼불제석이란 이름으로 모셔지고 있으며 우리의 삼신할머니가 불교의 옷을 입고 계신다. 또한 영주산이니 방장산이니 봉래산 등 삼신과 관련 있는 전국의 어느 곳을 가보아도 삼신을 모신 사당을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스스로 잃어버린 것이다. 겨우 칠월칠석이 되면 다인(茶人)들 사이에서 칠성다례를 올리는 정도로 끝이 났다. 이것도 칠성다례가 아니라 칠석다례라고 하여야 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듯 천차만별한 자연적 요인과, 200여 지도자들의 인적 요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교적 요인이 얽히고 설키면, 이 세상에 상존 하고있는 크고 작은 갈등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은 물론이며, 그 해법도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우리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가장 기본적이고 고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다 같이 부여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아무리 약자라고 해도 주제넘게 함부로 죽이고 죽는 전쟁과 테러행위는 없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형제애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기아의 고통)만큼은, 전 인류가 공동의 노력으로 물리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따라서 60여 억 명의 백성이 다함께 행복을 알며 살아가는 세상이 도래해야 하고, 이왕에 인간세상 최고의 이념이 ‘인간존엄성’이라는 대 명제로 설정되어져 있다면, 같은 시대에 태어난 모든 인류(지역 피부색 인종 언어 종교와 상관없이) 공동의 노력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전 인류가 평균적인 삶의 수준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러기 위해서,</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첫째, 전쟁과 테러행위를 없애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둘째, 각국이 보유하고있는 모든 대량살상(화생방)무기는 완전 폐기되어야하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셋째, 국가간에도 신뢰와 신의를 되찾아 이웃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할 것이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넷째,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류가 최소한 기아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섯째, 인간 존엄성을 최고이념으로 하는 사회의 도래를 위하여, 지구국(지구연방공화국)의 건국을 대안으로 제시하게 되었으나, 현실적으로는 공허한 메아리요 무지개를 타려는 형국에 지나지 않은 격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가. 전쟁과 테러의 중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지구상에서 모든 전쟁(무력으로 국가간에 싸우는 일, 국제법상 선전포고에 의하여 발생함)과 테러(정치적 적대자 또는 그 단체나 기관의 파괴 구타 학살 방화 등의 온갖 폭력수단을 행사하여 상대를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비합법적인 행위)는 영원히 중지 또는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인류사회에서의 전쟁은 우리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신라 개국(BC 57년)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921회의 전쟁이 있었다고 하니, 세계곳곳에서는 얼마나 많은 전쟁터에서 얼마나 많은 불쌍한 백성들이 소모품처럼 죽어 갔을지, 가히 짐작 할 수도 없어 그저 부지기수라고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혹자의 경우, 전쟁과 테러행위가 인구증가의 역기능적인 필요악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숭고한 이념을 잘못 판단한 견해인 동시에, 강한 자의 욕구 충족을 위해 약한 자를 침략하여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육하는 행위는, 동물세계에서나 있을 법 한 논리인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쟁은 ‘자신의 힘의 우위를 믿고’ 테러는 ‘상대의 힘의 우위를 인정’하는 점에서 구별 될 수 있겠으나, 그 원인은 한결같이 지도자를 포함하여 그 추종자들의 욕심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옛 날 속담에, 아흔 아홉(99)섬지기 부자는 한(1)섬 지기 빈농에게 ‘그 한 섬만 주면 백 섬을 채울 수 있겠다’며 은근한 기대 했답니다. 그 부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백 섬이라는 사실이 더욱 중요했지 그까짓 ‘한 섬쯤이야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지 금전이나 재화는 다다익선 즉,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러한 속담도, 욕심이 목구멍에까지 꽉 차 오른 사람(得壟望蜀: 농을 얻고 나니 촉을 갖고 싶다는 뜻. 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 ② 한 가지 소원을 이룬 다음 또다시 다른 소원을 이루고자 함을 비유. 만족할 줄 모름의 비유)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당시로서는 남보다는 많은 재화를 소유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요 최대의 즐거움이었을 것이기에,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대표적으로 표현되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①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劉秀)가 처음으로 낙양에 입성하여 이를 도읍으로 삼았을 무렵(AD 26)의 일이다. 당시 전한의 도읍 장안을 점거한 적미지적(赤眉之賊)의 유분자(劉盆子)를 비롯하여 농서(롱書: 감숙성)에 외효(외효), 촉(蜀: 사천성)에 공손술(公孫述), 수양(휴陽: 하남성)에 유영(劉永), 노강(盧江: 안휘성)에 이헌(李憲), 임치(臨淄: 산동성)에 장보(張步) 등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그중 유분자, 유양, 이헌 공손술 등은 저마다 황제를 일컫는 세력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그 후 외효와 공손술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무제에게 토벌되었다. 외효는 광무제와 수호(修好)하고 서주 상장군(西州上將軍)이란 칭호까지 받았으나 광무제의 세력이 커지자 촉 땅의 공손술과 손잡고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성(成)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僭稱)하는 공손술은 외효의 사신을 냉대하여 그냥 돌려보냈다. 이에 실망한 외효는 생각을 바꾸어 광무제와 수호를 강화하려 했으나 광무제가 신하가 될 것을 강요하므로 외효의 양다리 외교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건무(建武) 9년(32), 광무제와 대립 상태에 있던 외효가 병으로 죽자 이듬해 그의 아들 외구순(외寇恂)이 항복했다. 따라서 농서 역시 광무제의 손에 들어왔다. 이때 광무제는 이렇게 말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른다더니 이미 농을 얻고도 다시 촉을 바라는구나(得롱望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로부터 4년 후인 건무 13(37)년, 광무제는 대군을 이끌고 촉을 쳐 격파하고 천하 평정의 숙원을 이루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② 광무제 때로부터 약 200년 후인 후한 헌제(獻帝: 189～226)말, 즉 삼국 시대가 개막되기 직전의 일이다. 헌제 20년(220), 촉을 차지한 유비(劉備)가 강남의 손권(孫權)과 천하 대사를 논하고 있을 때 조조(曹操)는 단숨에 한중(漢中: 섬서성 서남쪽 한강 북안의 땅)을 석권하고 농(롱) 땅을 수중에 넣었다. 이때 조조의 명장(名將) 사마의(司馬懿: 자(字)는 중달(仲達), 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의 할아버지)가 진언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여기서 조금만 더 진격하면 유비의 촉도 쉽게 얻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러자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인간이란 만족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이미 농을 얻었으니 촉까지 바라지 않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리하여 거기서 진격을 멈춘 조조는 헌제 23(223)년, 한중으로 진격해 온 유비의 촉군(蜀軍)과 수개월에 걸친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국 계륵(鷄肋: 큰 소용은 못 되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을 이르는 말. 그곳을 닭갈비처럼 먹을거리는 못 되나 그냥 버리기도 아까운 곳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함)이란 말을 남기고 철수하고 말았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와 같은 인간의 욕구가, 재화나 재물의 량이 남보다 많고 적음이 객관적 평가의 기준이 되었든 시대에는, 인간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최고의 이념이 무엇인지 미쳐 깨닫지 못한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한 인간들에 있어서는 충분히 있을법한 가치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발전의 순리에 따라, 인간의 의식이 ‘혼자(獨)’에서 ‘이웃과 함께’라는 공동체의식으로의 발전과 함께, 자아실현이라는 단계로 변천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더불어 사는 지혜와 나눔의 뿌듯함도, 결코 재물이 많음에 대한 흡족 한만 못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매슬로(Abraham Maslow)의 인간욕구 5단계 설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타고난 것이며 이들을 강도와 중요성에 따라 계층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으로 가정했다. 인간의 욕구는 하위 단계에서 상위 단계를 향해 계층적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그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 다음 단계의 욕구가 발생한다는 소위 욕구 단계 설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반드시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는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생리적 욕구: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로서, 음식물 물 산소 잠 성 추위나 더위로부터 보호 등을 비롯하여, 배고픔에 대한 먹고싶은 욕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안전욕구: 개인의 환경 내에서 확실성 정돈 조직 예측성 등을 보장받고자 하는 등 외부로부터의 피해를 받지 않으려는 욕구 또는 보호본능.</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애정과 소속의 욕구: 사랑하고 사랑을 받고 집단에 소속되어서, 집단의 일원으로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욕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자기 존중의 욕구: 능력 신뢰감 개인의 힘, 적합성 성취 독립 자유 명성 인식 수용 주목 지위, 주위의 평판 등 타인으로부터 존경받고 싶은 욕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자아 실현의 욕구: 최상의 욕구로서 앞 단계의 모든 욕구가 충족 될 때에 나타난다. 자신의 재능 능력 잠재력 등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등이다. 즉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성취하고 싶은 욕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전쟁과 테러는, 당하는 쪽은 물론 가하는 쪽도 다 같이 피해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도자 자신들의 욕심을 다소는 억제 할 만 한데도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죄 없고 가엾은 무지렁뱅이 같은 수하장졸과 애꿎은 백성들을 죽임으로서, 조금 더 갖는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번영을 위하고, 같은 시대에서 삶을 함께 시작한 행운을 헛되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의미 없는 만행중의 만행입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200여 지도자 모두가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천지개벽할 사건이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들도 인류공동의 번영과 인간최고의 이념은 교육을 받을 만큼은 받은 지도자들이기에, 인간사회의 최고이념의 실현이라는 명제에는 반대할 이유는 제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울러 인간세계에서는, 어느 누구도 어떤 명목으로도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하여 전쟁과 테러의 수단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인 동시에 실정법에 의한 즉, 강도살인죄와 같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최고이념의 실현을 방해하는 집단에게는 즉각적인 응징은 물론, 재기의 힘조차 남겨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마치 한 국가에서 공동체의 질서유지를 위해 영원히 격리시키는 방법으로, 즉 한 나라에서 실현하고 있는 국법질서유지를 위한 효과와 같이 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결국 국민스스로가 국가의 통치기능과 수단을 선택하게 되는 민주사회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대 명제를 민주사회에서 추구해야 할 최고의 이념이요 절대절명의 가치로, 변천함에 따라 인간의 소유개념도 발전해야 할 당위성은 충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늦었음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실은, 우리 모두가 보고 듣고 느끼는 바와 같이 이러한 이야기 자체를 꺼내기도 쑥스러운 환경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한편 현재 지구상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은 역시 미국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옛날부터 ‘권불십년’(權不十年: 권세는 10년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권세는 오래가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한번 성하면 반드시 쇠퇴할 날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주변 지역에서 패권을 잡았던 로마제국도, 해가 지지 않는다던 대영제국도 지금은 역사 속에서만 접할 수 있게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의 대 국제관계 활동 중에서는 때로는 공평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며, 때로는 순전히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경우는 물론이고 또한 다분히 내정 간섭 적인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소위 ‘악의 축’으로 불리는 즉 깡패국가들의 깡패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경찰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세계의 경찰이라는 의무를 다 하기 위해서는 오직 ‘세계평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공평하고 공정한 경찰활동이어야 하며 투명성이 수반되는 경찰활동이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세계인이 공감하는 객관적인 경찰활동과 미국이 주장하는 주관적인 경찰활동의 구별의 기준은, 두말 할 것 없이 조직폭력배를 소탕하듯 명분이 있어야 하되, 그로 인한 인명의 살상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한 개체의 국가에서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찰이라는 국가기관인 공권력이 존재하듯이, 세계평화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세계경찰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찰이 공정성을 잃고 편파적일 때는 공권력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오히려 한쪽으로부터 원망과 비난을 받게 된다는 것도 불문가지일 것입니다. 특히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조작된 정보에 의한 것이지 허위정보에 의한 것인지 우리 같은 무지렁뱅이야 알 수 없었지만, 세계의 여론은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미국과 영국은 깨달아야 할 것이며, 전쟁과 테러는 또 다른 보복으로 악순환은 계속적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와 같이 악의 축 또는 깡패국가로 지칭되는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평화를 갈망하는 많은 나라 사람들은 진정한 ‘깡패국가는 오히려 미국!’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만 국력의 차이로 미국이 무서워 제대로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세계의 경찰임을 자부하는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국제여론에 억울하다는 하소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세계인도 미국인 못지 않은 양심과 도덕심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세계의 많은 나라 곳곳에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의한 경찰활동을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러한 반미운동은 미국의 대의명분이 결여된 경찰활동에 의한 자업자득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세계평화라는 대의명분이 결여된 미국의 세계경찰활동 즉, 공정성을 잃고 자국의 이익만을 위하여 또는 힘의 과신을 믿고 행한 경찰활동이, 업을 쌓는 수단이 되는 동시에 언젠가는 여러분의 세대에 쌓은 업에 의하여, 여러분의 후세들이 ‘업보’를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계경찰활동은, 정당하거나 합당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또한, 대의명분도 결여된 채 행하여지는 여러분의 지도자들에 의해 또는, 상대국 지도자를 잘못 만났다는 죄로 어이없이 죽어 가는 우리의 이웃(형제와 동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고 어떤 생각들을 하고있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듯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도 언젠가는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갈 날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여러분의 세대에 쌓은 업에 의하여 여러분의 후세들이 ‘업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업을 쌓지 않고 또 업장소멸을 위해서 미국은 세계 각지의 반대세력과 마주앉아 협상해야 합니다. 특히 중동지역 반미세력과의 반목을 없애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형제요! 동료!’라는 의식의 대 전환이야 말로, 전쟁과 테러를 예방하고 영원히 근절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과 같은 민주와 풍요를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만 누리며 살고 싶은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형제와 동료라 할 수 있는 많은 세계인과 함께 나누며 살고 싶은 지도, 오직 미합중국을 포함 몇몇 민주국가 국민여러분의 선택에 달렸다는 사실도 깨우칠 수 있었으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한 국가의 경찰이나 세계경찰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경찰이어야 존경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편파적이거나 공정하지 못한 경찰활동을 지지하거나 옹호해 줄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나. 대량살상무기의 폐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지구상에 보관되고 생산중인 모든 대량살상(화․생․방)무기도 완전히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84년 어느 특강시간에 당시 미국과 소련에서만 보유하고있는 핵무기(核武器: 원자핵의 분열반응 또는 융합반응에 의해서 일어나는 방대한 에너지를 살상 및 파괴효과에 이용하는 무기의 총칭)가 총 6500기 정도라고 하였는데, 이 정도의 분량은 전 인류(약 60여 억 명)를 5번을 전멸시키고도 남는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미․소간의 전술 핵 감축회의에서 얼마나 감축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 일부 지도자들은 핵무기 개발에 사활을 걸고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있는가 하면 특히, 동북아에서는 핵무기 확산을 방지하고자 북․미간의 긴장이 점차 고조되고 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핵무기관련 현황을 살펴보면, 기존 핵무기보유 5국(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중국)과, 이후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으로 인정되는 3국(인도: 1998년 5월 11일과 13일 5차례 핵실험 단행. 파키스탄: 1998년 5월 28일 6차례 핵실험 단행. 북한) 특히 북한은 2003년 4월 23일 북경 3자 회담 중간 휴식시간에 북한의 이근 대표와 미국의 켈리 대표간의 비공식 접촉자리에서 북측 대표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미 1993년에도 똑같은 시인을 한 바 있다... 8천 개의 폐 연료봉의 재처리를 거의 마쳤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현재 8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이 8개국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대량살상(화․생․방)무기는, 국제기구의 감독아래 전량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기존 보유 5개국)는 핵무기를 가져도 되고, 너희들은 갖지 말라고 해서는 공평하지도 않고 너무 독선이라는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험하거나 무서운 무기라면, 자신들(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부터 완벽하게 폐기하고 타 국가도, 제조 또는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치에도 맞고 설득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대량살상무기는 독과점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를 부정함과 아울러 한반도의 비핵화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비핵화를 위하여 중지를 모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당대 당사자의 살상으로 끝나는 재래무기와는 달리, 대량살상(화․생․방)무기는 당대 당사자는 물론 후대와 자연생태계에까지, 초토화하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핵무기확산방지보다는 핵무기개발 보유 자체를 금지하는 것으로 국제적인 연대와 핵무기 관련 정책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런데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기존 핵무기보유 5개국의 대처방법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북․미간의 현안인 북한의 핵 개발 문제는, 1994년 제네바 합의와 1995년 콸라룸푸르 경수로 제공합의를 통해 타결되자, 우리기술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전체비용의 80～90％에 해당하는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되었고, 북․미간의 핵 협상에 있어서도 기존 핵 보유 5개국 중, 다른 4개국(중․소는 대화에 의한 평화적 해결만 주장, 영․불은 별다른 언급 없음)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무사태평인 가운데, 오직 미국만 확산 방지에 악전고투하고 있는 것은 핵 보유로, 느긋해진(득을 보고있는) 다른 4개국에 비해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즉 경수로 제공비용은, 수익자부담원칙을 준용하는 취지에 맞게 기존 핵 보유 5개국이 전담케 했어야하며, 그 확산방지대책 또한 기존 보유 5개국이 주도적으로 외교적으로 대화에 의할 것인지(?), 경제 또는 무력으로 제재할 것인지(?) 방안들을 논의하거나 같이 제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경수로를 제공하겠다고 섣불리 나섬으로서 결과적으로, 그 비용의 80～90％에 해당하는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된 것은 우리 쪽의 실수였으며, 그 확산방지에 다른 4국과는 달리 미국만 매달리다보니 마치 핵 확산방지 책임은 미국에만 있는 양, 혼자만 떠 안고 고전하는 것은 기존 보유 4개국에 비해 형평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는 적대관계까지 가게 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러한 현상도 미국이 전 세계의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한편으로는 이러한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세계최강의 군사력만으로 미국을 유지하는 상태라면, 미국의 지도자들도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진심으로 참회하는 가운데, 정의롭고 공정한 세계경찰로 탈바꿈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언제 또 다른 크나큰 재난을 당할 수 있을 것이며, 속담에 ‘열 사람이 도둑 한 명을 못 지킨다’고 했듯이 한 두 명의 테러범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북한의 핵 문제 해결(핵 폐기) 후 미국 측의 해법에 의하면, 북한의 경제적 보상규모의 대부분을 우리(대한민국)에게 전가시키려는 것 같은데, 이러한 발상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당연히 북한의 경제보상의 대부분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부담(수익자 부담원칙의 준용)해야 마땅할 것이며, 그런 부담을 하기 싫으면 보유하고 있는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면, 부담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경수로 제공합의의 경우에서와 같이 우리가 그 대부분을 부담하게 된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결과들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한 약자의 고통이고 보니,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식으로 누구나 핵무기를 개발 보유할 욕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혹자들은, 같은 민족끼리인데 너희(대한민국)가 보상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겠지만, 이것(핵과 관련된 경제보상과 핵과 무관한 순수한 민족간의 경제지원)은 지원해야 할 당위성에서 차원이 틀린 것이며, 핵과 관련된 경제보상이외에도 핵과 무관한 순수한 민족간의 경제지원이 필요한 곳 또한,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 ‘산 넘어 산이요 물 건너 물’의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되면 주변(한국과 일본)국도 그만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은 불문가지이기 때문에, 햇볕정책이나 인도적 지원 운운 할 것 없이 대화 또는 제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물론 핵무기뿐 아니라 화학․생물무기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완전히 폐기하는 것도 두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 국가간의 존중.</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국가간에도 인간사에서의 이웃사랑과 같이 서로를 이해하며 공평한 평등관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앞의 ‘성장기’ 어느 부분에서도, 이웃사랑에 대하여 잠깐 언급 한 바와 같이 국가간에도 이웃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배려하고 존중 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고대 그리스, BC 384～BC 322)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이 유일적(唯一的)으로 존재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하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 즉, 인간은 사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의 말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 ‘인간은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필수이다. 즉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지속적 만남을 통해서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러기에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며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 등은 인간간의 접촉을 통해 학습되고 발전된다’는 말처럼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한 개의 국가 또한 유일적으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이웃과 어울리고 교류하며 존재하는 것이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는지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풀어보면, 위급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친척보다는, 매일같이 얼굴을 대하며 희노애락을 함께 느끼고 살아가는 이웃사람이, 친척보다 더욱 필요하게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본다면, 지구상의 어느 나라이든 자신들의 ‘한 국가’만으로 현재와 같이 또는, 발전된 미래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은 이어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기에 공업생산국과 농업생산국의 교류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와 예술의 교류로 세계인의 정서를 평준화시키므로 서, 행복지수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에서와 같이 국가간에는 이웃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수요와 공급에 따른 교류와 무역으로, 각국이 공평한 수평적 대등 관계로 복원 또는 유지되도록 발전 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역사적 사실이지만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Second World War: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침입과 이에 대한 영국․프랑스의 대독선전에서부터, 1941년의 독일․소련 개전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발발을 거쳐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에 이르는 기간의 전쟁)에서의 패전과 함께, 우리나라는 독립하였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런 관점에서, 가끔씩 과거사문제를 돌출 시켜 피해자를 고문(?)하는 한일관계를, 단편적으로나마 조명하고자 합니다. 동남아 각국과도 연관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인 우리로서는 일본의 오만방자에 속수무책으로 고문당하면서(?) 그냥 눈감고 지낼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1) 8․15는 반쪽 해방인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1945년 8월 15일 소위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 언에 의하여,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과 함께 독립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민족은 말할 수 없는 큰 감격과 팔만 사천의 털구멍이 동시에 열을 뿜은 덧 한 환희에 휩싸였고, 소위 일본 천황은 항복문서에 조인까지 하였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런데도 일본은 가끔씩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더니 얼마 전에는, 육․해․공군 자위대 연합작전으로 무인도 탈환(연습)훈련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정확한 속셈이야 알 수 없지만, 이러한 훈련은 이웃나라들을 겁주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은 물론이고, 힘을 과시하며 기선을 제압하려는 오만방자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한 8․15해방은 완전한 해방과 독립이 아닌 반쪽짜리 해방이요, 독립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역사적 자료를 살펴보더라도 독도가 한국영토였음을 일본 스스로도 인정하였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512(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 우산국 정벌 신라영토에 귀속시킴(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 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432(조선 세종 14)년: 신선입도지리지(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도와 무릉도의 개략적인 위치를 우산과 울릉의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머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우산, 무릉2도 재현정동해중 2도 相距不遠 風月淸明卽望)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역사기록은 독도와 울릉도의 관계를 뚜렷이 밝힌 세계 최초의 문헌으로 평가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454(조선 단종 2)년: 세종실록중 권148권에서 권 155까지의 8권 8책에 지리지로 써 세종실록지리지라고도 하는데 권 153강원도 울진현조에 그 부속도서로 써 우산도와 무릉도를 열거 신선입도지리지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머리에 밝히고 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667년: 은주시청합기를 비롯한 일본측 역사서도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696년: 안용복 일행은 17세기에 조선과 일본간에 울릉도 영유권 문제가 야기되었을 때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일본으로부터 확인 받았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또한 일본에서도 메이지 초기에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종래 그들이 다케시마 섬(竹島)이라 부르던 울릉도를 마쓰시마 섬(松島)으로, 마쓰시마 섬이라 부르던 독도를 다케시마 섬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일본의 일부 지방인들은 1894년까지도 여전히 울릉도를 다케시마 섬이라 불렀다고 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809년: 만기요람은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땅이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라고 기록, 우산국 안에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되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 독도를 송도로 불렀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881(고종 18)년: 울릉도 개척령 반포(척민정책). 일본어민의 울릉도 근해 출어에 대한 일본정부에게 엄중항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00(대한제국 광무4)년 10월 27일: 관보 제 716호의 칙령 제41호 울릉도, 즉도 석도(독도)를 울릉군수가 관할토록 함.</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05년 2월 22일: 독도의 일본령 편입결의 도금현 고시 제40호로 독도의 동현편입 발표.</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05년: 독도망루설치 해군통신기지로 이용. 광무 10년 3월 5일 울릉도 군수 심흥택 보고서 (매천야록)에 독도 관련기록.</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10년: 한국수산지 제1호 제1편에 한국령으로 표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46년 1월 29일: SCAPIN 제677호-연합군 최고사령관이 항복문서의 시행을 위해 일본정부에 보낸 각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를 일본의 통치권에서 제외.</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48년 6월 30일: 미공군 폭격연습중 독도 출어 중인 어민 30명 희생. 한국정부의 항의에 따라 1953. 2.27자 미공군 연습기지에서 제외.</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51년 6월: 독도 조난어민 위령비 건립.</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53년: 일본이 미국기를 게양하고 조난어민 위령비 철거, 일본영유 표지 설치, 한국 어민 독도근해조업에 대한 항의.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일본에 항의 각서 발송. 그 해 8월 5일 영토비 건립, 해양경비대 파견 협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53년 4월 27일: 울릉도 주민으로 구성된 독도 의용 수비대 창설(대장: 홍순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54년: 항로표지(등대)설치. 동년 8월 1일 점화개시 각국에 통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56년 4월 8일: 국립경찰의 경비임무 인수결정</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56년 12월 30일: 경비임무 인계인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66년 4월 12일 수비대장 홍순칠 공로훈장 수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80년: 최종덕 독도 전입.</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86년 7월 8일: 동인의 사위 조준기(61. 3. 20 생) 주민등록 전입(가족 3명 6개월간 어로작업목적)</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91년: 김성도(56세)외 가족(1명) 전입(서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현재: 한국 해양경찰이 수호근무(동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세계 각국의 옛 자료(문헌)에도 한국영토임(적어도 일본 영토가 아니었다는 인식)이 공인(公認)되고 있다는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독도가 유럽인들에게 알려진 것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849년 프랑스 포경선 Liancourt(리앙쿠르)호에 의하여 알려져서 그것을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라고 부른 것이 시초이다. 그 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854년 러시아군함 및</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855년 영국군함 Horne st(호네스트)호에 의하여 측량되어 영국의 해도에 호네스트 암초로 기재되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따라서 한국정부에서는 1881년 종래의 울릉도 공도 정책을 지양하고 개척령을 발표하여 강원․경상․전라․충청도민을 이주시켜 재개발을 시작하였으며, 따라서 독도도 울릉도 어민들의 여름철 어업기지로 이용되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상과 같이, 국내․외 모든 자료가 대한민국영토임을 1500여 년 전부터, 만천하가 인정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억지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역사 즉 팽창주의의 습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럼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이유 중 가장 그럴듯한 주장은 무엇일까? 알아보겠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첫 번째 주장: 1905년에 ‘국제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 하였다. 즉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에 의해 독도를 국제법에 합당한 절차에 따라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였기 때문에 독도에 대한 한국점령을 ‘독도강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측의 반박: 1904년 8월 대한제국정부의 주요 부서에 일본인 재정고문과 외국인 외교고문관을 두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일본에 의해 강제된 한․일 협정서가 체결되었다. 이로서 대한제국은 실질적으로 외교권이 박탈되기에 이르렀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 시기에 일본은 당시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독도에 러시아 군함활동을 정찰하기 위한 망루를 세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일본의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어업사업가가 일본정부에 독도에서의 강치 등 어로의 독점 권을 대한제국정부로부터 얻기 위해 일본정부가 교섭해줄 것을 고려하고 있는 도중 독도를 정찰기지로 이용하려는 일본 해군성의 요구에 의해 결국 량고島(독도)를 일본정부에 편입하고 자신에게 빌려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게 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결국 일본 각의와 내무성의 검토를 거친 후에 시마네현 고시에 의해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라 부르고 일본영토에 편입시키게 되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에 대해 한국 측은 ‘편입’이라는 것은 일본스스로 독도가 이전에 일본영토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일본의 결정이 정당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독도가 무주지 였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1900년 10월 대한제국정부는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임을 재확인하였으며, 국제법에 합당한 절차를 따르기 위해서는 영토편입에 관한 충분한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일본은 일개 지방자치단체의 고시로 독도편입을 고시하였으며, 이해 당사국인 한국에는 그로부터 1년 후인 1906년 3월에 문서가 아닌 서면으로 당시 울릉군수 심흥택에게 별일 아닌 듯이 알렸다는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는 대한제국정부가 당시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겨, 일본이 독도가 아니라 어떤 땅을 강제 점령했다 하더라도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nbs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두 번째 주장: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문서에 일본이 포기할 영토로 독도가 명시되지 않았다. 즉 1946년 1월 연합국 최고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전후처리로 일본에 보낸 ‘정치상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하는데 대한 각서’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로부터 분리되는 지역에 포함되었지만, 1952년 4월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는 분리되는 지역으로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이다.(현재 가장 첨예하게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측의 반박: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과정을 살펴보면 당시 5차 협상까지는 독도가 한국 땅으로 명시되었지만, 일본의 미국인 고문인 시볼드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이 섬에 기상과 레이더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미국의 국익차원에서 고려될 수 있으며, 미 국무부에 독도를 일본 땅에 명시할 것을 건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 결과로 결국 독도가 한국 땅이란 명시가 빠지게 되었다. 이는 우방으로서의 미국이 아닌 철저한 미국의 국익차원에서 독도를 고려한 미국의 자세와 일본의 치밀한 계획의 합작품이라 할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미국의 독도시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 1948년 6월의 무고한 울릉도 어부들을 살해한 ‘독도폭격사건’일 것이다. 독도를 미 공군의 사격연습장으로 지정해 폭격연습을 하던 중, 우리 어민들을 무고하게 살해했건만 은폐하려했던 미국의 모습에서, 그들의 철저한 국익에 근거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정부의 대 독도 기본정책.</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정부의 독도에 대한 기본정책방향을 분명하게 추진함과 아울러 추가적인 대책도 필요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영토이며 어떠한 외교적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부동한 정책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독도 영유권을 공고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도에 대해 평온하고 실효적으로 지배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며 이러한 실효적 지배가 장기간 계속될 경우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이의제기는 사라질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국제법상 전쟁 등의 방법을 통한 현상변경이 없는 한 ‘실효적 지배’ 여부가 영토 주권의 핵심적 요건입니다. 또한 실효적 지배는 국가 권력의 계속적이며 평화적인 행사(continuous and peaceful display of sovereignty)가 관건입니다.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를 위해 정부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도가 대외적으로 분쟁지역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명백히 우리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과 공공연한 마찰을 야기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을 주게 되어 결과적으로, 앞서 말씀드린 우리의 독도영유권을 공고화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상기와 같은 정책을 시행함과 동시에 우리정부는 독도 영유권문제에 대해 일본이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우리의 확고한 입장을 일본측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전달해 왔음을 알려드립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한국영토임을 공인되고 있는 독도를, 어느 날 갑자기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것을 역사적으로 볼 때, 온갖 노략질과 침략을 일삼던 팽창주의 야욕과 섬나라 근성을 버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울러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주권행사는 물론, 원주민도 복귀시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영토로서의 실효적 지배임을 확신시켜야 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2) 일본, 부끄러운 줄은 알고 있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일본의 우익단체를 중심으로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바로, 천인공노할 자신들의 과오에 대하여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있는지 또는, 자신들의 과오에 대하여 얼마나 철면피(?)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얼마나 수치스러운 과오였으면 그렇게까지 감추고 싶었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들의 과오에 대하여 뉘우침은 물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이해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과 같이 그들의 속마음을 알길 없으니,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무도 속단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럼, 양심적으로 ‘부끄러워서 감추고 싶었다’는 심정이라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역사교과서는 역사적 사실 그대로 만들고, 교과서 되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인류가 동물과는 달리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지난날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역사는 반복 한다’고 했다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구촌의 여러 나라들은 선대(조상)들의 공과(功過)를 비롯하여, 이웃나라를 침공하였거나 또는 침략 받은 사실들도 빠짐없이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랍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비록, 몇 십 년 또는 몇백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그들의 후손이나 그 후손의 후손들도, 선조들의 공과를 함께 느끼며 당시의 선조들과 꼭 같은 심정으로 위로와 반성을 하면서도, 때로는 비분강개로 치를 떨거나 철저한 대비로 치명적인 피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의지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더더욱 선조들의 공과는 물론, 필설로도 다하지 못할 수치스러운 가해나 피해사실도 반드시, 후세들에게 가르쳐야할 이유는 자명하지 않습니까? 일본의 극우단체 및 국수주의자 그리고 일본국 국민여러분은 분명하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야 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성장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파렴치한 만행들을 진정으로 반복되게 하고 싶지 않거나 정상적인 양심을 가진 인간이기를 원하거나 또는, 인륜의 도리에 비추어서도 부끄러운 과오였는지를 분별할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키우고 싶다면, 사실은 사실 되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추고 알리지 않는다고 과연 여러분의 후손들 중에서, 그렇게도 숨겨두고 싶었든 ‘종군 위안부’에 관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죽을 때까지 모르는 지나가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이라 생각합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여러분의 후손들이, 그 좁은 (일본)땅덩어리 속에서만 살기 바라지는 않을 것이며, 훗날 지구촌의 어느 나라에서 세계사를 공부하는 기회도 있을 것이고, 또한 세계 각국의 친구들도 사귈 수 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때 여러분의 후손들이, 모국인 일본에서 정상적인 교육기관인(초․중․고등)학교생활에서 배우지도 듣지도 못한, ‘종군 위안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여러분의 후손)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보기 바라며, 또 그들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자신의 여식(女息)들 중에 ‘종군 위안부’생활을 강요당하는 상상을 하게되었을 때, 얼마나 큰 절망과 좌절을 맞을 것이며 당시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에게 어떤 저주를, 퍼부을지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숨기고 왜곡한 여러분들을 과연 잘했다고, 심판하고 동정할 그(후손)들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학교생활에서 가르치지 않은 의혹과, 조상들의 짐승 같은 만행에 다시한번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지금부터라도 용기를 발휘하여 역사적 사실은 사실 되로 가려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물론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아마 그럴 것입니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들쳐 내는 것도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해도 역사를 사실 되로 가르치기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며, 피해자가 있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잘, 잘못의 판단은 그(여러분의 후손)들의 인간됨됨이와 지식에 의한 가치관에 따라,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부끄러움도 모르는, 비 윤리 비도덕적 ‘인면수심’이라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인간이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알고 느끼기 시작한 역사적 시기는 언제부터였을 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한참 이후부터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선사시대에도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는 언어는 분명 존재하고 있었겠지만, 소위 자신들의 행적을 각종기호나 부호 등으로 남기고 싶었든 역사시대에서도, 당분간은 윤리와 도덕이라는 개념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권에서도 한자가 사용되고 나서 한참 후 즉, 유학(儒學)에 심취하면서부터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알고 느끼기 시작하지 않았을까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일본의 경우도, 한반도의 삼국시대 이전에도 그들 나름 되로의 언어와 글자가 있었겠지만, 백제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부터 자신들의 문화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즉 백제 제 13대 근초고왕(近肖古: ?～346～375) 때 아직기(阿直岐: ?～?)가 최초로 일본에 한학을 전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제 14대 근구수왕(近仇首: ?～375～384) 때 왕인박사(王仁博士: 일본문화의 스승 ?～?)가 논어(論語)와 천자문(千字文)을 전했으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제 25대 무령왕(武寧: ?～501～523) 때 단양이 고안무등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제 26대 성왕(聖: ?～523～554) 때 유귀(柳貴)등은 오경박사(五經博士)로서 한학과 유학 등을 전하였으며, 그리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제 30대 무왕(武: ?～600～641) 때 관륵(觀勒)은 천문․역법․지리 등을 전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성왕 때(552) 노리사치계는 최초로 불교를 전했으며, 혜총은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고, 도장은 성실론(成實論)을 저술하였다. 아좌태자는 쇼토쿠태자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그밖에도 화공(畵工)․와공(瓦工)과 경사(經師)․율사(律士)․의사들을 보내는 등 백제문화는 일본의 문화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결국 일본은, 유학과 천자문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전해진 탓으로, 아시아권 다른 나라들과 똑 같은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고 적용하려는 것이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서 넘어가려고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백제 제 13대 근초고왕(近肖古: ?～346～375) 때부터, 백제의 영향을 받은 일본은 문화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으면서도, 현재 일본의 경제규모는 전 세계의 선두그룹에 진입한지, 이미 오래 전의 사실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다시 말해서 백제의 영향으로 늦게나마 문화발전에 전기를 맞은 일본은, 도덕적 감성과 경제적 감성의 발전에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며, 이렇게 균형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인 윤리와 도덕심의 발전은 접어둔 채, 오직 돈벌이에만은 혈안이 되었든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인지, 혹자들은 말하기를 일본을 ‘경제적 동물’이라고 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 납득되지 않는 부분으로는, 일부 몰지각한 우익단체 및 국수주의자들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일본을 이끌어 가는 각료급 소위 지도층 그룹 중에서도 이러한 철면피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지도층그룹이야 말로, 배울 만큼은 배웠고 또한 역사적 사실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수시로 망언을 늘어놓는 자들은,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윤리와 도덕이라는 정신세계로부터 일탈한 것이며, 군국주의시대 당시를 동경하고 있거나 또는 군국주의시대로의 회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주변국들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아닐까요? 따라서, 지구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러한 일본의 이중성을 정확하게 파악 인식하고, 제2의 군국주의시대로의 회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적극적인 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3) 한일관계, 이것도 업보인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앞에서도 언급했든 바와 같이, 필자는 비교적 어렸든 시절부터, 업(業= 원인: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이것이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현세에서 받는 응보)과 업보(業報= 결과: 전세에 지은 악업의 보답)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나 맹신하거나 생활에 어떤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렇다고 전혀 터무니없는 괴변으로 치부하지는 않았고, 또 철저하게 믿고 따르는 스타일도 아니었으나, 다만 인과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쉽게 이해되었고 인정하는 편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생의 어떤 (선․악)업으로 인하여 현세에서 (상응하는)‘업보를 받을 수 있다’ 또는 현세에서 (선․악)업의 결과는 미래 세에서 반드시(상응하는)‘업보를 받지 않을까(?)’하는 가능성 정도는 늘 인정하고 있었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런데 각종 사건사고현장을 임검하는 과정에서 예컨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야간주거침입절도사건의 현장을 임검하는 경우 피해자들은, 이웃사람이 지나가는 골목길의 발자국소리에도 자지러지게 짖어되든, 저놈의 개가 ‘어제저녁에는 한번도 짖지 않더라’는 이야기들도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또 1990년대 초반 어느 해 9월 초순, 생애 두 번째 하계휴가를 출발하려는 날 아침 7시경 관내에서, 유아용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사장으로부터 도난신고가 접수되었는데, 간밤에 공장내부의 고가장비를 ‘모조리 도둑맞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지난밤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때늦은 많은 가을비가 전국적으로 내리면서 저지대에는 침수되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 공장에는, 당시만 해도 흔하지 않은 보안시스템이 가동 중이었기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나, 임검 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번개의 영향으로 단자내부에 있든 휴즈가 끊어져, 보안시스템이 작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와 같이, 도난피해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안타까운 사정을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을까마는, 상당수의 경우가 ‘아! 이 집에는 그럴(도둑맞을) 운이 있었든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또는 공개적으로 할 말은 아니었기에, 주변순찰강화만 약속 할 뿐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게 전혀 뜻밖의, 사정으로 의외의 결과가 발생되었거나 대인관계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는, 가끔씩은 ‘업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들을 하는 경우는 있었었지요. 그러나 이 글, 특히 ‘생로병사’부분 즉 ‘업과 업보’라는 상관관계에 이르러,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면서부터 세상사의 많은 부분에서 ‘선업 선과’와 ‘악업 악과’라는, 의식이 늘 머리 속을 맴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필자는 비교적 활달했든 학교생활을 제외하고는, 내성적이며 소심하고 순리를 따르는 편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에서 상대방 누구에게나 가슴아픈 말 한마디 한 기억은 없으나, 다만 집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신으로서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리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안 되는 것은 차지하고, 심지어는 신경정신과진료도 생각한 적이 있었으나, 결국 용기가 없어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 부부는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거나 눈에 안보이면 궁금하고 보고싶으면서도, 집에 들어가는 시간부터는 전혀 딴사람이 된 듯이 애정 어린 다정한 말, 한 마디는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갈등을 일어 킬 만큼 대단한 문제가 있었든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따라서 아내와 아이들은 순전히 필자의 이런 성격으로 인하여 마음 고생을 참으로 많이 하게 되었고, 이런 가정이 깨어지지 않은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이라 할 것이나, 그것은 오로지 아내의 지극한 이해와 인내의 결과이기도 하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고 하기 이전에, ‘내 자신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든 자신이기에 아내에게는, 다정하고 애정 넘치는 남편 노릇도 아이들에게는 인자하고 자상한 아비 노릇도, 제대로 못했노라고 기술한 바와 같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전생에 어떤 악업이 있어 현세에 이렇게 갈등이 끊이지 않나 보다’라며, 전생의 업에 의한 현세의 업보가 다 해결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두뇌활동에 의한 지식축적이 가능한 현세에서 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업의 고리를 끊으면 현세에서는 물론 내세에서도 이러한 ‘갈등관계는 없어질 수 있다’고, 고백하며 소위 업장소멸을 약속까지 했지만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아무려면 신이 아닌 사람의 일인데, 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렇다고 한두 번의 시도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계속해서 노력 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러다가 결국은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혼자 속만 끓이다가 죽고 말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와 같이, ‘업과 업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대입하는 버릇이 반복되면서 특히, ‘국가간의 존중’편에서는 지금의 한․일관계도 어떤 ‘업의 의한 업보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강하게 머리를 스치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한․일 관계에서 악업 이래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측에서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신라 제30대 문무왕 1(文武 ?～660～681)년, 신라에 의하여 백제 제31대 의자왕 20(義慈 ?～641～660)년, 백제의 패망과 함께 많은 계층의 백제 인들이 신라의 침략에 반대하며, 굴복하지 않고 조상들의 뼈가 묻힌 정들었든 고향을 등지고 일본으로 망명한 사실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계속되는 왜구들의 잇따른 노략질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조선 제 4대 세종대왕 1(도 元正 1397～1418～1450)년, 대마도정벌(좁은 뜻에서는 1419년 6월 이종무(李從茂: 1360～1425)를 삼군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로 임명하여 정벌한 일을 말하나, 넓은 뜻으로는 앞서 있었던 고려 창왕(昌王) 때와 조선 태조(太祖) 때의 정벌까지 포함)이 있었을 뿐인데 반하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일본측에서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역사적으로 3국 시대부터 한반도에서의 약탈과 납치가 끊이지 않았고, 임진(壬辰: 1592 선조 25 단기 3925)년 4월 13일 저녁 일본군 선봉이 부산 영도에 침입, 4월 14일과 15일 제 1군 상륙과 부산진성 함락(부산첨사 정발 전사) 동래성 함락(동래부사 송상현 전사)으로 소위 임진왜란이 시작되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정유(丁酉: 1597 선조 30 명(明)기 만력(萬曆) 25)년 재란을 거쳐, 무술(戊戌: 1508 선조 31 일(日)기 경장(慶長) 3)년 11월 19일 조․명 연합수군이 노량 해전에서 최후 승리(이순신 전사), 12월 11일 조․명 연합 육군 사천성 입성으로, 더디어 6년 7개월 간의 전쟁 끝에 종전을 맞이한 왜란은, 우리의 많은 보물의 약탈과 백성들의 납치가 자행되었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조선(朝鮮)제26대 고종(高宗 1852～1863～1907～1919)대 이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04년 04월 14일 제1차 한일협약,</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1905년 11월 17일 제2차 한일협약 이른바 ‘을사조약’의 체결로,</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조선 제27대 순종(純宗 1874～1907～1910～1925) 4(1910년 8월 10일)년 ‘한일합방’과 함께, 1945년 8월 15일까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것을 ‘국가 간에 있어서 업보’라고 한다면, 이것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그렇다면 작금의 한․일 관계의 갈등이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업에 의한 업보’라고 한다면, 일본만 다그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양쪽 모두가 과거사에 대한 깊은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것은 물론,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경우처럼, 일본 쪽의 망언이나 왜곡에 대하여 전 언론과 온 국민이 하나같이 냄비 끊듯 열 받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저들은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꼭두각시놀음이 따로 없었다는 것을 같이 알아두자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4) 임진(壬辰), 을사(乙巳) 그리고, 다음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일본의 극우인사들은 대륙을 노리는가? 그리고 제2의 을사, 제3의 임진은 있을 것인가? 섬나라로 이루어진 일본이란 나라는, 폭이 좁으면서도 길쭉한 고구마모양의 국토가 언제 바다 속으로 침몰할지 모르는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진관련 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에 지진이 많은 이유를 지각판의 맞닿는 부분에 놓여있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뒷받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옛날 어느 시기에, 아틀란티스 대륙이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는 학설도 있잖습니까? 그래서 옛날부터 일본의 지도자들은, 불안 속에서의 섬나라보다는 안전한 대륙으로 옮겨 후손들의 번영을 갈구(渴求)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의구심에 대한,</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첫 정황(政況)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정국은, 사색당파로 국론은 분열되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그야말로 허수아비 같은 존재였든 반면 일본의 경우는, 16세기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공(公)에 의해 천하통일의 기반이 마련된 사회적 이점을 발판으로, 일본의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요또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사까이(당시 일본의 경제 중심지) 장사꾼인 시마이 소오시쓰(島井宗室)에게 밀명을 내려, 조선의 여러 가지를 살피게 하는 등 출병준비를 서두르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까이의 장사꾼(상공인)들은 조선출병을 반대의견을 보였으나, 전국(戰國)을 통일하여 오만해진 히데요시는 자신의 업적 쌓기와 영토팽창에 혈안이 되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1592년 04월 13일, 정명가도(征明假道: 명나라를 치는 데 필요한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한 말)의 깃발을 앞세우고, 당시로서는 첨단무기라 할 조총으로 무장한 2만 2500명의 선봉이 부산포를 침공함으로 시작된, 임짐왜란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보름여 만에 한양(漢陽)이 함락되는 절대 열세 속에, 온갖 치욕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하기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침략전쟁의 경우, 거의가 개전초기에 초토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도 하지만, 특히 조선의 경우에는 앞선 왕조(고려)에서 약 100여 년 간의 무인정권의 폐단으로 말미암아, 율곡 이이(李珥) 선생의 십만 양병론도 빛을 보지 못한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조선에도 잠자는 영웅 그리고 잠자는 호랑이(의병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임진(1592)년 04월 13일부터 무술(1598)년 11월 19일까지 약 7여 년 동안 참전 왜군 개개인은 원 없이 살육을 저질렀으며, 전국에 산재한 각종 문화재를 약탈하고 기능인 그리고 남녀노소를 불문한 민간인들을 납치하여, 그들의 전후복구에 이용했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일 것입니다. 필자는 임진왜란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호하사 …’하는 말과 걸맞게 생각되는 것은 역시 역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경우이지만 ‘만약에 …’라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이가 없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 해도 임진왜란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과연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없었(이순신 장군이 태어나지 않았거나 또는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에 따라, 문신으로 출사했거나 아니면 무과 급제에 이어 몇 번의 죽을 고비를 있었든 만큼 어느 전투에서 전사라도 했었)더라면, 우리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되었더라면 지금쯤은, 우리도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살아가게 되지는 않았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일본의 역사에서는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기록했는지 또는 패전으로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필자의 눈에는 패전이라 단정합니다. 승전이란 전쟁의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만이 승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전사(世界戰史)상 만인에게는 이기고 오직 일인에게 패하므로 인하여, 그 전쟁 전체가 패전으로 기록된 사례가 또 있을까? 그래서 필자는 임진왜란을 ‘만인지승 일인지패(萬人至勝 一人至敗: 만인을 이기고도 단 한 사람에게 패하여 모든 전선에서 패퇴했다)의 전쟁’으로 명명하고, 아울러 일본의 패전임을 규정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두 번째 정황은 을사보호조약에 의한 한일합방(조선의 식민지화)입니다. 당시의 조선의 정황도, 대원군과 민 황후간의 권력다툼이 한창이었을 때, 물밀 듯이 들이닥치는 외세에 적절한 대응은커녕, 무조건 쇄국정책으로 세계열강들의 비위만 건드린 결과로 ‘계륵 같은 조선, 일본에게나 줘 버리자!’는 대세에 일본의 대륙진출 야욕편승과 일단의 매국집단의 눈부신 활약으로 결국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지요. 하지만 그때도 잠자는 호랑이는 전국각지에서 궐기로 대일 전선을 형성하였고, 일본군들은 동학도 등 닥치는 되로 살육하고 역사를 왜곡날조 하는 것은 물론 방방곡곡의 매장문화재를 마음 되로 파헤쳐, 밀반출 또는 손괴로 그 만행은 극에 달했든 것도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비록 조선 의병들의 저항이 있긴 했으나 자제심을 잃은 일본은 가당치도 않은 태평양전쟁의 개전으로 ‘1944년 4월부터 지원병력 2만 670여명, 징병 20만 9270여명, 군무원 14만 5000여명 계 37만 4940여명 등, 이렇게 해서 1930년부터 패전까지 15년 동안 재일 조선인의 숫자는 약 10배로 늘려, 조선의 남자들을 총알받이로 또는 노동력 보충을 위한 징용으로, 처녀들은 종군위안부로 끌고 갔으며, 천인공로 할 만행도 스스럼없이 저질러놓고 지금까지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있지 않습니까? 임진왜란 당시에는 상공인들이 조선출병에 반대하였는가하면, 을사보호조약으로 식민지화한 당시에도 일본의 식자층이라 할 수 있는 허무맹랑한 꿈에서 깨어있고, 양식 있으며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고 있었든, 동경제국대학교수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같은 분(黎明會를 조직 주관함. 1919년 3월 19일 동경의 학사회관에서 재일 유학생 8명을 초대하여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또한 1919년 6월 6일 여명회 제 6회 정기강연회에서, ‘조선통치의 개혁에 관한 최소한의 요구’라는 내용으로 강연했다. 앞서 1916년 「중앙공론」6월호에 ‘만주와 한국을 시찰하고’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조선에 있어서 당시의 무단정치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동화정책의 불가능을 말하고, ‘이민족(식민)통치의 이상형은 그 민족의 독립을 존중하고 또 독립이 완성되므로 써 정치적인 자치를 허용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라고 주장했다)과 그 외에 다른 몇몇 지식인들도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대조선정책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발언했다 는 사실도 상기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 그리고, 다음은?’ 즉 세 번째 침략전쟁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합니까? 필자로서는 세 번째 침략전쟁이 있을 쪽으로 기울러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최근의 움직임이 바로 독도문제입니다. 독도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자신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1905년 시마네현 고시이전에는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사실(실제로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에 의해 독도를 국제법에 합당한 절차에 따라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였기 때문에 독도에 대한 한국점령을 ‘독도강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함)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소위 친일적인 내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도 하였지만, 외교권이 상실된 상태에서 적절한 대응수단이 있을 수 없었고 또 중앙정부도 아닌 일개 지방정부의 고시로, ‘독도 편입’이라는 사실은 사회 평균인의 정상적인 의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라면, 정말 얼토당토않은 억지라는 사실도 간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한국의 동의 또는 묵인할 경우를 대비하여, 그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소식은 있으나 우리정부는 과연 어떤 대응을 준비중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저 묵묵부답? 또는 무 대응으로 일관해서는 절대로 안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렇게 끈질기게 일본의 일방적인 주장이 계속된다면, 이런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구상에는 약 200여 개 이상의 국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 거의 대부분(99.9％)은 전혀 아는 바도 없거나 무관심한 상태인 반면, 단 1％도 안 되는 2개국만이 독도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일본은 수시로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마치 마술사의 주문처럼 각인시키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역사적 실효적 지배로 독도는 한국 영토라며 논쟁거리도 안 된다고 판단하여, 코웃음만 치고 있는 격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이때 처음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든 독도문제가 일본이 피해자라는 계속된 주장에 어느 한 사람이 ‘독도는 왜 불법 점령하고 있소?’라는 물음에 우리정부의 대응방향이 독도의 운명을 좌우할 것입니다. 그때는 물론 정부로서도 적절한 대응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소위, ‘쎈까구열도’라는 무인도에 일본의 우익집단들이 상륙하여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도 실효적 지배를 인정받기 위한 속셈인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럼 사람의 의식은 어떻게 정해질까? 우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리고 판단하겠지요? 전혀 아는바가 없었든 독도문제가 마치 마술사의 주문 같은 일본의 공세에 길들여진(체면술에 걸린) 어떤 사람이 언젠가는 ‘한참 전에도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령했다더니, 아직도 반환되지 않았는가?’하는 의식이 하나 둘 씩 자리잡게되면 문제는 달라질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독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대화? 아니면 전쟁? 대화의 방법은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대화로 해결하려면 어느 일방이 전부 또는 일부의 양보 없이는 전혀 가능성이 없을 것이고, 적어도 현재로서는 싫지만 다른 해결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그래서 ‘임진(壬辰), 을사(乙巳) 그리고 다음은?’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언제쯤 일본이 독도를 차지하기 위해 실력행사(전쟁이라도 불사할 각오)로 나올까? 이것 역시 전적으로 엿 장사 마음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세계의 이목을 의식하고 주판알을 팅겨 볼 것입니다.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하여 가장 비난을 덜 받고 목적달성의 가능성이 최대한 무르익어 갈 때를 기다릴 것인데, 그 상황의 도래시기는 세계적인 경제침체로 혼란에 빠지고 미국과 러시아(중국)의 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남북이 6․25와 같은 전쟁 혹은 극도로 혼란한 상황을 포착하고 마치 어부지리를 취하듯, 그들의 전통적인 장기(長技)인 기습으로 독도를 침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겠습니다. 이때 한국의 국방력이 개입하게 된다면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전면적으로 한반도를 공략하지 않을까? 이것이 ‘… 그리고 다음은?’에 해당될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간에 세 번째 전쟁으로 이어진다면 그들은 군사시설을 포함하여 그들과 경쟁관계에 있었든 산업시설(제철 조선 반도체단지 등)이 순식간에 집중적으로 토초화 시킬 것이라는 사실은 불문가지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럼 대화는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고, 전쟁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아무래도 일본의 일방적인 우세 속에 우리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고,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독도문제에 관한 한, 묵묵부답이나 침묵으로 일관하지말고 적극적으로 상대하여 그들의 주장이나 아직 표면화되지 않은 그들의 속마음까지 읽어내어, 거기에 알맞은 대응책개발이 필요할 것입니다. 일본의 주장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공도(空島)상태이든 독도를 시네마현에서 ‘독도를 편입한다’고 하니까, 한국정부가 느닷없이 주민을 이주시켜 ‘불법점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라면 세계 곳곳에 산재해있는 무인도를 대상으로 우리 ‘영토로 편입한다’고 선언하면 어떨까요? 이에 걸맞은 경우가 소위 ‘썬까구열도 상륙사건’이 아니겠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로서는, 우선 독도문제전담팀을 구성하되 정권에 따라 좌지우지되거나 연령과 관계하여 진퇴 함이 없이, 일 할 수 있는 한은 평생동안 연속성을 가지고 논리개발 및 중지를 수렴하는 등, 전력을 경주하여 일본의 억지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설득력 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응논리를 전담 개발케 하는 것입니다. 전담팀의 구성과 함께 이런 대응방안은 어떨까요? 그 하나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중앙정부도 아닌 지방정부에서 ‘어느 날 갑자기’ 편입이라는, 종이 한 장 내 던지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허구성에 집중하여 대응하는 동시에, 국제법적인 절</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차상의 문제점과 조선이라는 나라를 전체적으로 집어삼킨 상태에서, 편입이란 가당치도 않은 지방정부의 외교행위는 정상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공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상대방이 정상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무능력상태를 이용하여 일방적인 편입의 부당성은 유․무효를 초월하여 허구(虛構)이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대동아 공영이라는 침략야욕을 들어낸 일본이 제 1차 한일협약(1904. 04. 14)이후부터, 진주만 기습으로 촉발된 태평양전쟁에서 소위, 일본천황이 항복(1945. 08. 15)한 역사적 사실과 독도문제를 연계해야 합니다. 즉 제 1차 한일협약부터 태평양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있었든 모든 정치(전쟁)행위는 천황의 의지였으며, 따라서 1945. 08. 15일 항복선언으로 말미암아 침공한 영토에서 모두 철수하였듯이 그 기간동안 강․온 전략으로 자신들의 욕구를 채운 모든 행위(편입발언 등)도 무효라는 점을 부각해야 합니다. 소위 일본천황의 항복에 의해 우리는 해방되었으나 일본이 독도문제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해방도 반쪽해방에 불과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일본에서 소위 ‘천황의 명령’은 가히 절대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념인데, 일본의 우익집단들은 ‘무조건 항복’을 수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항복에 의해, 전쟁은 중지되었고 각 점령지에서 철수한 것은 차지하고 정상적인 국제관계에서 이루어진 외교행위 이외의 모든 불법적인 행위(일개 지방정부에서 …편입 따위)도 당연히 무조건 철회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당연한 순리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천황의 항복명령을 거역하는 우익단체들의 의도에 대하여 현 아끼히또 천황은 입장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 천황의 입장표명이 없거나 경우에 어긋나게 우익집단의 편파성 입장표명이 된다면 일본인들의 천황숭배는 결국 면종복배가 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5) 세계 지도국의 자격(資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어느 단체(조직)에서, 그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과연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할까? 지도자의 면모는 그 단체(조직)의 얼굴과 같아, 단체(조직)의 성격과 내향(內香)을 가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욕심을 부린다고 또는 경력 쌓기 용이나, 선심성 나눠 가지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지도자의 자격으로는, 아무래도 부정과 비리에서 청렴해야 할 것이고, 윤리와 도덕적으로 인류의 보편적인 양심을 가진 정직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며,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답게 인권적 차원에서 민본주의의 인생관은 물론, 시대감각에 뒤떨어지지 않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자격을 두루 갖춘 합당한 지도자를 찾기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와 같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문제는 찾아보면 어디엔 가에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격 있는 사람 같은, 사람은 침묵하거나 수수방관 또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고, 자리에 연연하며 감투 욕에 눈이 멀어 수신(修身)이 덜 된 사람들이, 단체(조직) 또는 나랏일을 공평무사하게 처리하기란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자신들과 같은 집단의, 이익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사회에서도 소위 학식과 덕망을 두루 갖춘 고위직 인사들 중에서도, 고의적으로 ‘월세계약서 이중작성’ 또는 소위 실수로 ‘일부과제자료 신고누락’등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어, 사회적 비난이 있었든 것은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적어도 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감수하기는커녕 이렇쿵 저렇쿵 변명만 늘여 놓는 모습에는 소(牛)가 웃을 일이며, 오히려 그 자리에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절부절 하는 인간의 몰염치한 양심에서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와 같은 고의 또는 실수는, 국민의 납세의무를 배우지 못했거나 또는 배웠더라도 나라의 녹(祿)을 받지 않는 사람의 행동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 사회에 그런 사람밖에 없다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또한 소위 관행이라는 미명아래 스스럼없이 행하여지고 있는 각종 명목의, 거마비 전별금 촌지 떡값 여비 판공비의 규정 외 지출 사례비 리베이트 등, 기타 어떤 명목이더라도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노력의 대가이외의 금품을 사절할 줄 아는 지도자, 정말 멋있지 않습니까?</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굶주린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헐벗은 사람에게는 입을 것을 나눌 줄 알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는 그 고통을 분담하려는 마음 자세와,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에게는 그 해소를 위한 방도를,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마음가짐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부끄러운 일에 대하여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이 남에게 알려졌거나 알려지지 않았거나, 또는 타인에게 공개되었거나 공개되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하며, 혹시 공개되었을 때에는 구차한 변명보다는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얼굴을 붉히며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정직한 사람도 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이 저지른 부끄러운 행동에 대하여도, 교훈으로 삼을 줄 알고 안타까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노예가 노예(奴隸)인 한, 이것과는 친구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친구 관계는 사람과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 '인간에게는 과실도 있거니와 약점도 있고 타락도 있다. 그러나 또 향상도 있거니와 미점(美點)도 있고 성공도 있다. 이와 같은 좋은 점을 인간에 인정하고, 인간을 믿는 것이야말로 널리 인간을 사랑하는 기초가 되리라'는 말들을 상기하며, 인권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젖혀두고,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은 물론 옛날에 살았든 사람 또는 앞으로 태어날 사람 모두를, 내 가족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비록, 옛날 우리 집에서 머슴을 살았거나 노비였더라도 시대적 조류에 따라, 우리 가정에서의 동년배와 같은 대우와 사랑하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작금의 국제정세는 정치적 국경은 이전투구와 같은 살벌한 가운데, 그 이외의 경제적 문화적 국경은 유야무야 하는 소위, 자유무역시대와 함께 협력동반자 관계로 도래하고 있습니다. 협력하기 위해서는, 다소 계산적인 면에서 줄 것과 받을 것이 거의 비슷해야 가능할 것이며, 동반하기 위해서도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등사상에 기초한 상호존중의 호혜정신이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도자가, 되려는 모든 사람들이 완전무결하게 충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의 평균적인 사람들의 공감과 인정을 받을만한 사람이어야 하나의 조직(단체)의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역량을 가졌다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렇다면, 세계의 지도국이 되려는 국가의 지도자들도 이와 같은 범주를 벗어나지 않아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양식 있는 일본인 중에서는, 을미사변 당시 국모시해 암살단 후손들 중에 일부인사 그리고 종군위안부 정책을 규탄하는 일부인사들은, 선조들의 경거망동으로 이웃나라의 국모를 시해한 망나니스러움과 선배들의 파렴치한 전력에 머리 숙여 사죄했다는 보도가 있었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일본정부당국자들의 형태는 세계지도 국이 될 수 없는 자격미달 국입니다. 그것은, 일본정부 당국자들이 패전이후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종군위안부 문제만큼은, 이 세상 끝까지 감춰두고 싶은 심정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감추려니 또 하나를 감추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데, 그 고육지책이 바로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러한 일본정부당국자의 의식은 인류 보편적인 양심은 물론 인권적 차원에서도 함량미달로, 세계지도 국으로서는 결격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정부 입장에서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자니, 배상문제가 걸려있는 동시에 역사교과서에 올려 후세에 가르치려니 곤혹스럽기도 하겠지만, 반면에 국제관계에서는 과거사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의식 수준과 관련하여,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배상문제는 약간의 금품으로 해결되겠지만, 선배들의 파렴치한 동물적 만행(蠻行: 야만스러운 행위)은 도저히 인정하고 후손에게 가르치기 어렵다고 이 세상 끝까지 감춰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장래에 용기 있고 양식 있는 지도자의 출현으로 반드시 인정하고 머리 숙여 사죄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일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철이 덜 들었거나, 젊었을 때의 왕성한 격기(激氣)로 인하여 그럴 수도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나이가 지긋해지면서 옛날의 어두웠든 과거를 회상하는 시기가 되면, 누구나 반드시 자신의 철없었음에 또는 왕성했든 격기로 인한 부끄러웠든 과거에 대하여 반성하게 되고, 후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일본도 패전이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였고, 그 경제력에 걸맞은 세계지도 국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의 균형적인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력만 믿고 감투를 탐내게되고 이에 편승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쥐나 개나 감투를 얻어 쓰게 되지요. 이는 마치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졸부들과 같은 부류로, 학식과 덕망을 두루 갖췄다고 하지 못할 것이며 만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인격체로서의 자질도, 갖지 못했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정부당국자들은, 경제대국이라는 자만심에서 깨어나야 하고 그간 쌓여온 과거사문제 처리부터, 세계인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이어야 하며, 한평생의 인생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의 심정을 역지사지로 되돌아보고, 하루속히 그들의 억울함에 머리 숙여 사죄하므로 서 남은 여생과 이미 떠난 넋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힘없는 피해자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전 주한 일본대사였든 스노베(須之部)씨는, ‘일본이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로 지낼 수 있을지 어떨지에 따라 국제국가로서의 일본을 재평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듯이, 세계의 지각 있는 많은 사람들도 일본의 거취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또한 염치없이 세계지도 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면수심의 일본은 마땅히 축출되어야 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6) 밀반출된 문화재의&nbsp;원상회복.</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어떤 일본의 학자는, 한국의 고대사 연구에 관한 예술품이나 고서 등의 자료는 한국에서보다, 일본에서 찾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임진왜란(1592)과 식민지시대를 거치는 기간동안에 집중적으로 밀반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만 할 뿐, 언제 어떤 문화재가 누구에 의해서 어떤 명목으로 반출되었는지 자료는 고사하고, 실태 파악도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사실인 것 같습니다. 특히 ‘몽유도원도’ 같은 경우에는, 구전으로만 전해져 오다가 어느날 갑자기 일본의 어느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경우라는 것입니다. 훗날 일본의 양심세력이 국정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날 실태파악과 함께 반환도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오! 무릉도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 그림의 오른쪽에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현란하고 유려하다 못해 귀기조차 감도는 필치로, ‘</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夢遊挑源圖</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라는 다섯 글자가 살아있는 듯 꿈틀거린다. 옅은 황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여진 이 다섯 자의 글씨야말로, 조선조 서예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안평대군이 그림을 보고 필생의 기를 모아 써냈다는 그 글씨였다. 한 자, 한 자에 변화가 가득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잡혀, 그림을 보호하는 듯 한 형태를 취하는 것이, 힘은 넘쳐 있었고 이미 인간세계의 경지를 떠나 있는 듯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 제목 옆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世間何處夢挑源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 꾸었나”로 시작하는 안평대군의 찬시(讚詩)는 몽유도원도를 꺼내 볼 적마다 감회를 억누르지 못하여, 그림이 그려진 후로부터 삼년이 지난 辛未(1450)년 정월 어느 날 밤, 홀연히 꿈과 그림이 떠올라 써 낸 것으로, 담청색 바탕에 쓰여진 주홍빛 글씨의 현란 함은 보는 이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 그림의 왼쪽에는,</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안평대군의 발문(跋文)이 쓰여 있는데, 이 발문에는 자신이 꿈을 꾸고 안견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을 설명한 글로, 이제까지와는 달리 정연한 글씨로 자신이 본 도화원을 그려내고 있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丁卯(1446)년 04월 20일 밤. 내가 마악 잠이 들려 할 즈음, 정신이 갑자기 아련하여지면서 깊은 잠에 빠지고, 이내 꿈을 꾸게 되었다. 홀연히 인수(仁嫂: 박팽년)와 더불어 어느 산 아래에 이르렀는데, 봉우리가 우뚝 솟고 골짜기는 깊어 산세가 험준하고 그윽하였다. 수십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어우러진 그 사이에 오솔길이 나 있고, 숲 가장자리에 이르러 갈림길이 되어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몰라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터에 마침네 산관야복 차림의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 하면서 나에게 말하기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에 들어가면 도원에 이르게 됩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고 하였다. 내가 인수와 함께 길을 찾아 들어가는데, 절벽은 깎아지른 듯 우뚝하고, 수풀은 빽빽하고 울창하였으며, 시냇물은 굽이쳐 흐르고 길은 구불구불 백번이나 꺾이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골짜기에 들어가니 동천(洞天)이 탁 트여 넓이가 2- 3리 정도 되어 보이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구름과 안개가 자욱히 서려있고, 멀고 가까운 곳의 복숭아나무 숲에는 햇빛이 비쳐 연기 같은 놀이 일고 있었다. 대나무 숲속의 띠풀 집은 사립문이 반쯤 열려있고, 흙으로 만든 섬돌은 거의 다 부스러졌으며, 닭이나 개, 소, 말, 따위는 없었다. 집 앞에 흐르는 냇가에는 오직 조각배 하나가 물결 따라 흔들리고 있을 뿐, 그 쓸쓸한 정경이 마치 신선 사는 곳인 듯싶었다. 이에 한참을 머뭇거리며 바라보다가 인수에게 말하기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암벽에 기둥 엮고 골짜기 뚫어 집 짓는다’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니겠는가? 정녕 이곳이 도원동이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고 하였다. 마침 옆에 몇 사람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정부(貞父: 최 환)와 범옹(泛翁: 신숙주) 등이 운에 맞춰 함께 시를 짓기도 하였다. 이윽고, 신발을 가다듬고 함께 걸어 내려오면서 좌우를 돌아보며 즐기다가 홀연히 꿈에서 깨어났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오호라, 큰 도회지는 실로 번화하여 이름난 벼슬아치들이 노니는 곳이요, 절벽 깎아지른 깊숙한 골짜기는 조용히 숨어사는 자가 거처하는 곳이다. 이런 까닭에, 오색찬란한 의복을 몸에 걸친 자의 발걸음은 산속 숲에 이르지 못하고, 바위 위로 흐르는 물 보며 마음 닦아나가는 자는 꿈에도, 솟을대문 고대광실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서로 길을 달리하는 까닭이니 필연적인 이치이기도 한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옛사람이 말하기를 ‘낮에 행한 바를 밤에 꿈꾼다’하였다. 나는 궁궐에 몸을 기탁하여 밤낮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터에 어찌하여 산림에 이르는 꿈을 꾸었단 말인가? 그리고 또 어떻게 도원에까지 이를 수 있었단 말인가? 내가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많거늘 도원에 노닒에 있어 나를 따른 자가 하필이면 이 몇 사람이었는가? 생각건대, 본디 그윽하고 궁벽한 곳을 좋아하며 마음은 전부터 산수자연을 즐기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아울러 이들 몇 사람과의 교분이 특별히 두터웠든 까닭에 함께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에 가도(可度: 安堅)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옛날부터 일컬어지는 도원이 진정 이와 같을 것인지는 알 수가 없겠거니와, 뒷날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옛날 그림을 구하여 나의 꿈과 비교하게 되면, 무슨 말이 있게 될 것이다. 꿈을 꾼지 사흘째(1446. 04. 23) 되는 날에 그림이 다 되었는지라, 비해당(匪懈堂) 매죽헌(梅竹軒)에서 이 글을 쓰노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림도 그림이지만, 중국의 사신들도 조선에 와서 글씨 한 토막 얻어가 ‘자랑하였다’고 하는 안평대군의 글 또한, 희대의 보물이라 일컫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담황색의 색조를 띠고 있는 그림은, 입체감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봉우리와 계곡, 시냇물, 복숭아밭이 어우러져 상상의 세계에서만 접할 수 있는 도화경을 현란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림의 왼쪽은 현실세계를 나타내는 야트막한 야산이고, 그 오른쪽에는 도원의 바깥 쪽 입구를 나타내는 바위산이, 곧바로 옆에는 도원의 안쪽 입구를 나타내는 또 다른 바위산이 그려졌다. 현실세계인 야산과 이상세계의 돌산을 대비시키며, 그 야산에서 돌산으로 복숭아나무를 따라 나 있는 한 갈래의 길이 깊은 산속으로 풀어졌다가, 다다른 곳에 절로 눈길이 모아진다. 이 길이 바로 도원으로 들어가는 길로,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박팽년과 함께 가는 도중 산관야복 차림의 사람이 가르쳐 줬다는 길이었다. 길은 복숭아밭을 끼고 돌다 바위산을 휘돌아서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폭포 왼쪽 산허리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데, 완만한 곡선으로 휘어진 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과 유유함을 느끼게 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도원에는 복숭아가 주주렁 달린 나무들이 매우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무엇으로 찍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하얀 점들을 찍어 복숭아 열매를 그려낸 것에 대하여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복숭아를 한 개도 빠짐없이 분명히 드러나 있는 이 그림은, 현대의 기법이라 해도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어디서 솟았는지 모를 청간수가 모여, 그림의 한 가운데 폭포를 이루었다가 다시 왼쪽 현실세계의 계곡을 향해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는 보는 이의 가슴에도 그 기세를 느끼게 한다. 이 물줄기가 만든 냇가의 한편에 한가롭기 이를 데 없는 집 한 채 외로이 서 있으며, 그 밑에는 나룻배 한척이 매어져 물길 따라 춤추는 듯 사공을 기다리는데...⃨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아울러 수매(數枚)의 별지(두루마리)들이 감겨져있는데, 그중 한 장을 펼친 두루마리의 맨 끝에는, ‘고양 신숙주’라는 본관과 이름이 단아하면서도 날아갈 듯 한 필치로 쓰여 있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消息盈虛一理通(소식영허일리통)</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소멸하고 생장하며 차고 기우는 것 한결 같은 이치인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形神變化妙難窮(형신변화묘난궁)</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형체와 정신의 변화는 기묘하여 헤아리기 어렵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膏盲不必論因想(고맹불필론인상)</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깊은 곳에 담긴 뜻 제멋대로 이야기할 일 아니러니,</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眞忘須明覺夢同(진망수명각몽동)</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참과 거짓 모름지기 꿈과 현실이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野渡孤舟自幽獨(야도고주자유독)</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들판 나룻터에는 외로운 배 절로 호젓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山靑水碧謠寒玉(산청수벽요한옥)</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산 푸르고 물 파란 가운데 차가운 구슬 흔드는 듯,</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蒹葭簿出亂汀洲(겸가부출난정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갈대와 부들줄기 물가에 어지러이 돋아 있는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日夕東風吹軟綠(일석동풍취연록)</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해질녁 동풍이 부드러운 잎새를 스치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孰覺惺惺爲彼槁(숙각성성위피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저 마른 나무처럼 또렷이 깨어있는 이는 누구이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孰夢栩栩爲此灝(숙몽허허위차호)</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이 질펀한 물같이 꿈속에서 훨훨나는 이는 누구이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孰主張是必有然(숙주장시필유연)</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누가 이것이 반드시 그러하다고 주장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孰能辨之歸太昊(숙능변지귀태호)</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누가 이를 가려 저 높은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유려한 필치가 결코 안평대군의 그것에 못지않아, 한자, 한자가 살아 움직이는 정통파 유학자의 혁혁한 정신은 왕족이었든 안평대군의 글씨와는 달리, 정격 속에 엄격함이 배어 5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대면하는 이의 정신은 압도당하고 엄격하면서도 화려한 신숙주의 글씨에 빨려 들어가게 한다. 안평대군의 꿈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조망하며 시작된 글은, 이후 주옥같은 서정적 문장과 형이상학적 가치탐구가 어우러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재주와 역사를 생각하며 연신 한숨짓게 만든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리들은 벼슬아치들이 이제까지 쓸모없는 유학에 빠져 몇 자리 안 되는 권좌를 놓고 싸우기만 해 온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가 이토록이나 보편성을 통찰하고 세상의 근본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문체 또한 예술적인 향기가 드높았다. 그 훌륭한 예술적 구도는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돈된 편안함과 더불어 절제된 지적세계에 자연스럽게 공감하도록 하고 있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수재는 정절을 지키기 어렵다는 말을 떠 올리며, 그가 사육신의 단종 복위계획이 탄로 난 후, 단종과 금성대군의 처형을 강력히 주장하던 이율배반적 모습이 그의 글씨에 그대로 나타나는 듯하였다. 사람을 홀리는 듯 한 빼어난 글씨와 뛰어난 문장은 안평대군이 꿈꾸었든 도원을 읊고 있었으나, 역시 속세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는 듯했다. 그렇기에 감동은 더욱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글씨와 문장의 현란함에 놀라 몇 번이나 ‘고양 신숙주’의 이름을 되뇌어 본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이어서, 펼쳐진 두루마리 끝에는 ‘한산 이 개’라는 본관과 이름이 쓰여 있었다. 역시 담황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여진 찬시는, 신숙주의 글에서 보았든 현란하고 화려한 글씨와는 전연 다른, 두텁고 무심한 글씨가 그 수수한 모습을 드러내고, 짧은 문장은 글을 쓴 사람의 텁텁한 성격까지 느끼게 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地位淸高道自楰(지위청고도자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지체가 높고 생각이 고상하신 분 도가 절로 트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超然物外夢仙區(초연물외몽선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초연히 세상 밖의 신선 사는 곳을 꿈꾸셨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烟霞洞密花開落(연하동밀화개락)</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자욱히 놀낀 그윽한 동굴에 꽃이 피고지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竹樹林深路有無(죽수림심로유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대나무 숲 깊은 곳엔 길조차 있는지 없는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漫說丹砂能換骨(만설단사능환골)</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단사로 기골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쓸데없는 소리,</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何須白日强懸壺(하수백일강현호)</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허구 헌 날 어찌 억지로 호리병 건다는 말인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披圖爲想神遊適(피도위상신유적)</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그림을 펴놓고 신선 세상에 마음껏 노닐고도 싶으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愧我心塵跡更蕪(괴아심진적경무)</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내 마음에 티끌 먼지 끼고 지나온 발자취 더욱 거칠어 부끄럽기만 하구나</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글의 첫머리에는 역시 대군에 대한 칭송을 읊고 있으나 글의 길이만으로도 그가 아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글은 도저히 안평대군의 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내용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은근히 풍자하는 내용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이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안평대군이라는 권력자의 꿈 이야기를 듣고 마치 청룡이 나르고 백호가 포효하는 듯한 현란함을 글의 전면에 드러냈든 신숙주의 글과는 전혀 다른 소탈함과 더불어 묵직함이 담겨있는 글을 보며 다시 한번 사육신과 생육신의 삶과 가치관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화려한 도원몽 찬시를 지어며 안평을 </span><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따르든 신숙주가, 반대편인 수양대군에게 주저없이 붙어 버리는 모습이나, 대군에게 이토록 무심하게 짧은 글 한 토막 툭 던져놓듯 한 이개가, 단종복위의 충직한 꿈을 실행에 옮기다 고역을 겪는 모습이 대비되어, 인생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글의 내용과는 별개로 김종서의 글씨는 한자, 한자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고, 그 깨끗한 성품과 굽히지 않는 기개가 글씨체에 그대고 옮겨져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 밖의 다른 별지(두루마리)들에도, 모두 당대에 제일가는 거유 문사들의 재기 넘치는 찬시들이 이어졌다. 하연량, 송처관, 김담, 고득종, 강현덕, 정인지 등의 대 학자와 삼대 악성의 하나로 꼽히는 박연, 다시 이적, 최항, 박팽년, 윤자운, 이예, 이현로와 당대의 문장가로 꼽히는 서거정, 사육신의 대표 성삼문, 김수온 등의 대 학자와 승려 만우에 이르기까지 조선조 초기를 대표하는 거목들의 글이 망라되어 있었다. 한사람, 한사람의 글씨가 서로 방식은 다르되 학문적으로 그리고 체험적으로 완성의 경지에 다달아 있는 것이 보면 볼수록 감탄과 더불어 마음의 평화까지도 느껴지는 것들이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더군다나 이 글들은 안평대군의 도원몽이라는 한가지 주제에 대해 이들 거유 대학들이 몇 년의 시차를 두고 지은 문장들이기에 각자의 성향과 사상, 문장력 등이 매우 잘 드러나고 있었다. 이런 경우가 흔치않아 몽유도원도와 이에 첨부된 찬시들은, 조선조의 근간이 되는 유학과 선비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비단, 그림과 글씨라는 유형문화재로서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지식사와 정신사연구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여느 자료에 견줄 바가 아닐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조맹부의 송설체를 본떠 독자적 글씨체를 완성한 안평대군의 서도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집현전 학사들의 글씨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당대의 정신과 사상을 장악하고 있든 신숙주 정인지 서거정 등의 거유 대학들이 계유정난이라는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당하여 이제까지의 학문과 사상을 송두리째 팽게치고 권력자에게 빌붙어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운명은, 자신의 신념과 죽음을 맞바꾼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으로서의 꿋꿋한 기개와 운명이 서로 상반된 길을 걷고야마는 역사의 비정이 이 글들에서 생생하게 느껴지고, 인간의 실체에 대하여 깊은 사유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시서에 능통했든 당대의 대 문호 안평대군이, 꿈을 꾸고 나서 놀라워하는 모습에서부터, 물감을 가다듬고 종이를 펼친 채 대군의 꿈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고스란이 그림에 담아내려고 머릿속을 정리하며 고심하는 안견의 옹골찬 모습, 그리고 당대의 거유들이 자신의 사상과 학문의 성취를, 이 한 장의 두루마리에 펼치기 위해 시상을 떠올리며 꼿꼿이 허리를 펴고 먹을 가는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안견의 기백어린 손끝에서 찍어내는 물감의 현란한 색채와, 충절어린 집현전 학사 거유 대학들의 자신만만한 손끝으로 일궈내는 단아한 검정 글씨에서, 은은하게 피어나는 묵향을 느끼게 한다.</span></p><p class="쪽 번호"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복숭아밭은 도원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무릉도원(武陵桃源: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적인 중국의 명승지. 중국 진나라 때 호남 무릉의 한 어부가 배를 저어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수원지로 올라가 굴속에서 진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하도 살기 좋아 그동안 바깥세상의 변천과 많은 세월이 지난 줄도 몰랐다고 한다)을 설정한 이후로 모든 유학자들이 꿈에 그려온 유토피아였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위 글은, ‘가즈오의 나라’(김진명 작)에서 관련 글들을 발췌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라. 전 인류의 기아로부터 해방.</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우주에 지구가 생성된 이래 지금까지 한정된 지표면에서, 약 60여 억 명의 전 인류가 호의호식하며 잘 살기란 어쩌면 전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특정계층에서는 호의호식하거나 또는 사치와 방탕으로, 각종 재화를 낭비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국가 안에서도 특정 계층과 일반서민들 사이에는, 그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고 넓은 것은 물론이고, 국가간에도 부국과 빈국이 있는가 하면 부국의 특정 계층과, 빈국의 일반서민들 사이에서의 격차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이 지구상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일컬어 ‘나와 너는 우리!’라는 의식과 함께 우리 모두의 형제이자 동료인 수많은 인간들 중에서도, 최 상류계층은 호의호식의 원인으로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가 하면, 최 하류계층은 배를 곯아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경우도 있다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예로부터 ‘가난은 하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니나, 호의호식의 원인으로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과 배를 곯아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사람들 중에는, 땀 흘려 노력하며 열심히 일 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게으르고 나태해서 아무런 의지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하늘만 쳐다보고 하루하루를 허비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디 이런 인위적인 조건뿐이겠습니까? 세계 약 200여 국은, 각국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기후와 토질 등 자연적인 조건이 열악한 이유도, 충분히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래서 필자는, 앞에서도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 사람답게 행복한 인간으로 살면서, 개성과 능력을 발휘하며 살기 위해서는 첫째, 지구(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태어나야하고 둘째, 사람(지도자)을 잘 만나야하고 셋째, 의지(욕구)가 충만한 인간이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었습니다. 또한, 같은 형제자매 중에서도 약골로 태어나는 자 반드시 있게 마련이며, 지능과 체능 및 체력이 평균에서 떨어지는 자식도 분명 있다는 것도, 오죽하면 ‘자릿값이라는 말도 있지 않았느냐?’고도 하였습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뿐만 아니라, 비록 업보에 의하여 약자로 태어나고 자연환경이 좋지 못한 곳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강자이거나 힘있을 때 작은 것이라도 나눔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평균적인 인간다운 삶에 한 걸음 다가가야 한다고도 하였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 인류의 기아로부터 해방’이라는 이 문제는, 기아에서 허덕이는 사람이나 평균적인 경제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의지만으로는, 실현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것은 오로지 부유층의 대오각성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즉, 지구상에서 공간적으로는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와 너는 우리!) 모두의 형제이자 동료인 최 상류층에서, 비록 옥수수 죽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몫을 나눔으로 인하여, ‘굶어 죽어 가는 단 한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의식의 대 전환이 없이는 불가능하고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국의 적극적인 역할 없이는 실현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지금과 같이 핵무기나 신무기 개발 경쟁에서 손을 떼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와 너는 우리!) 모두의 형제이자 동료인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천고만의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산단가가 높은 곡식이나 단위당 수확량이 적은 농사보다는, 비교적 생산단가가 낮으면서 수확량이 많은 농산물의 대량생산과, 관련학자들의 적극적인 사명감으로 똘똘 몽친 연구활동이 함께 한다면 길이 멀게만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마. 인간 존엄성의 실현</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이 특정 종교나 종파의 교리와 개인의 의식결여로 인하여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경우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세계에서는, 우리 인간이 최고의 위치를 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며, 인간이외의 어떤 동물이나 사물이 인간보다 상위의 위치를 점하거나 우선한다는 것은, 우주의 주인이나 부처님 또는 하느님의 진정한 뜻은 아닐 것이라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러한 인간 존엄성의 실현은 곧 민본사상(民本思想: 민심(民心)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사상)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민본사상(民本思想): 우왕(禹王)의 훈계로서 그의 다섯 손자들이 나라를 잃고 한탄하며 부른 노래 속에</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백성은 가까이 친애할 것이나 하대해서는 안 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견고하면 나라가 안녕하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는 말이 있다. 여기에 우왕의 나라에 대한 우환의식(憂患意識)과 백성에 대한 경외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는데, 우국경민(憂國敬民)의 정신이 ‘민본’의 직접적인 계기로서 촉발된 것이라 하겠다. 유교 경전 속에 나타난 민본의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류한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첫째. 정치적 주체로서의 민본.</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은 백성이 보고 듣는 그 자체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라는 말과</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백성이 하고자 하는 바는 하늘이 반드시 따른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는 말에 의거한다. 이는 천(天)과 민(民)의 일치를 의미하는데, 오히려 백성의 판단과 의사가 하늘의 판단과 의사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또한 맹자(孟子)는 천자의 자리가,</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하늘이 준 것이요, 백성이 준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고 함으로써 백성이 모든 정치 행위의 주체임을 나타내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둘째, 정치적 객체로서의 민본.</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는 백성을 정치적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서, 하늘이 백성을 낳고 왕을 세워 그로 하여금 통치를 대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정(仁政) 덕치(德治) 왕도(王道) 등의 용어에서 파악되는 위민사상(爲民思想)은 모두 백성을 정치적 대상으로 객체화한 내용들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셋째, 국가 구성 요소로서의 민본.</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맹자는 국가의 요소를 토지․인민․정사(政事)라 했고, 또한 백성과 국가와 군주 가운데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백성을 가장 존귀한 존재로 인식하고,</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사직(社稷= 사직대제 社稷大祭: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지내는 조선시대의 국가 제례(祭禮)로, 종묘제례(宗廟祭禮)와 더불어 조선시대 중요한 제례이며, 토지와 곡물은 국가의 대본(大本)인 만큼 땅을 관장하는 신인 사(社)와, 오곡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을 제사하는 의례이다. 즉 사신(社神)과 직신(稷神)에게 제를 올려 국토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했던 것. 사직은 또 국가의 주권을 상징하기도 하여 한 국가가 건국되면 국가적 차원에서 사직단을 세우고 사직대제를 봉행했으나 일제 강압에 의해 1908년(순종 2년)에 폐지됐다가 서울올림픽 개최를 즈음한 1988년 10월 복원해 지금까지 해마다 개천절에 서울 사직동 사직단에서 제사를 봉행해 오고 있다. 2000. 11. 19 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로,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을 사직대제 보유단체로, 이건웅씨를 보유자로 각각 지정되었다)은 다음으로 인식한 반면,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군주를 가장 가볍게 평가하였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백성 없이 국가가 없고 정치적 목적 또한 실현되지 않는다. 이는 백성이 국가 구성의 기반이요 목적이며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맹자의 민귀군경설(民貴君輕說)은 민본사상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따라서, 민본사상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하면, 결국 민심(民心)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에게는 ‘민심이 천심’이라는 의식이 잠재해 왔다. 그러므로 민심과 천심이 일치할 때 민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유교의 정치사상에서 핵심이며 본질이 된다. 민본사상은 어디까지나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며(天人相與), 이념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선(善)에 이르도록 지향하고, 조직적으로는 천하를 통일된 대일가(大一家)로 체계화하려는 데 목적을 가진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결국 상하가 통달되는 천민합일의 새로운 매개자가 요구된다. 여기서 군주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된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군주는 하늘이 주는 자리요, 동시에 백성이 주는 자리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 FONT-FAMILY: 한양신명조">고 맹자가 언명한 바와 같이, 하늘과 백성이 화합해 양자의 중간자로서 설정된 것이다. 이 군주에게 하늘을 대신해 천하를 다스리도록 천명이 내려지고, 그로 하여금 백성의 부모가 되게 하여 만민을 통치하도록 한 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이런 맥락에서 하늘 군주 백성은 통일된 한 집(家)의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른 바 ‘천하국가’이다. 이 양상은 원래 가정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천하국가로 발전되는데, 이 때는 온 누리가 크게 통합되어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이러한 세계의 이상적 모습이 평천하(平天下)의 세계이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그러나 만약 중간자인 군주가 민심과 천심을 거역하고 학정을 한다면, 하늘과 백성은 다시 화합, 그 자리(王位)를 빼앗고 다른 유덕자(有德者)에게 왕위를 넘겨주게 된다. 이는 곧 민본사상에 입각한 혁명사상이다. 이와 같이, 민본사상은 그 정치적 행사가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하늘이 반드시 따른다는 사상이므로, 학문과 교육을 중시하는 교학정치(敎學政治)와 근본을 지키고 백성과 더불어 즐기려는 예악정치(禮樂政治)를 내포하는데, 이것이 곧 왕도(王道)의 내용이기도 하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 </span><o:p></o: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예컨대, 어떤 교리에 의하면 소(牛)를 우상화한다고 하는데, 그런 교리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기대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해당종교 지도자들께서는 현재의 3차원세계가, 인간중심의 세계인지(?) 또는, 소(牛)중심의 세계인지(?) 또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종교지도자들께서는 심도 있게 연구하기 바랍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인간이 존엄성을 얻기 위해서는 존엄한 곳으로부터 와야 한다고 하였듯이, 인류의 진화론을 믿는 공산주의이론에서는 ‘인간은 물질을 먹고살기 때문에, 인간도 하나의 물질 그 자체’라고 하였는가 하면, 인류의 창조론을 믿는 민주주의이론에서는 인간의 존엄함이 전제되고 있는 것과 같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전 인류의 형제이자 이웃이라는 차원에서도, 인간의 존엄함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즉 내가 존엄하기 위해서는 내 부모와 형제 그리고 자녀들까지 존엄한 가운데에서만이, 내가 존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앞의 ‘애가 편의 부부는 동급이고 평등하다’는 부분에서 ‘내가 왕 대우를 받으려면 아내에게는 왕비 대우를 해야 한다’는 이치와 같이 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nbsp; 세계 각 종교와 종파의 지도자 여러분은, 신앙을 가지거나 신을 믿는 궁극적인 목표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즉, 신앙을 가지거나 신을 믿는 궁극적인 목표는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3차원)세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과정에 목표를 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또는, 한 인간의 삶을 끝낸 사후세계에서의 안식(천당이나 극락세계로 가는 것)에 목표를 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심사숙고하고 앞의 ‘생로병사’에서와 같이, 우리 인간은 왜 태어나고 병들며 늙어가다, 죽어 가는지도 함께 구해보기 바랍니다. 단언컨대, 인간(3차원)세계에서는 인간이 최고의 위치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span style="FONT-SIZE: 14pt">&nbsp;</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5"><span style="FONT-SIZE: 14pt">&nbsp;&nbsp;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4pt;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span></span></p>			 ]]> 
		</description>
		<category>애천하(愛天下)</category>

		<comments>http://kjhyun0500.egloos.com/10062694#comments</comments>
		<pubDate>Sun, 16 Aug 2009 21:58:39 GMT</pubDate>
		<dc:creator>다사치</dc:creator>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