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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꺾이지 않는 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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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스케일 큰 현세주의자</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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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4 Jul 2009 20:05:1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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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꺾이지 않는 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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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스케일 큰 현세주의자</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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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뉴미디어 시대, 구텐베르크 이전이 되지 않기 위하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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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trong>지하철 한 칸의 권력지도<br></strong><br>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확실히 미디어업계의 동향이 보인다. 예전에 비해 신문을 읽는 사람은 대폭 줄었다. 읽는다고 해도 무료 신문이 많고. 대부분은 mp3를 듣거나, 최근에는 PMP 혹은 DMB 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이들도 늘어났다. 지하철 내 광고 TV를 보는 사람도 꽤 많다. 그리고 연령에 따라서 명확히 갈린다.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은 대체로 40대 이상의 직장인 남성. 그나마 이 사람들이 일간지도 읽고 경제신문도 읽는다. 30대 이상 여성층의 경우는 주간지 등 잡지를 읽거나 책을 읽는 경우도&nbsp;많다. 10대들은 거의 엄지족들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러한 지하철 한 칸의 모습에서 나는 미래의&nbsp;권력지도를 본다.<br><br>나는 주로 책이나 신문을 읽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출판물을 읽는&nbsp;건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나오는 현상이 아니라, 상당한 노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지하철 내 광고방송이 재밌을 때면, 머리 아프게 인쇄된 활자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편안하게 방송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어쩌면 이건 인간 반응인지론상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기본적으로 인쇄매체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고, 출판물을 접할 때의 "피곤함"이야말로,&nbsp;바로&nbsp;인쇄매체의 가치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런 걸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백지상태로 았을 때, 과연 이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br><br>예전에 초등학생이던 친구 동생을 과외하다가 상당히 문화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영어단어 모르는 게 나왔길래. 좀 사전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태연하게 휴대폰 사전을 꺼내는 것이다. 과외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폰으로 DMB 방송을 본다. 한 집에서 가장 비싼 폰을 쓰는 사람은 그 집 막내라더니. 누가 이렇게 비싼 폰을 사 준 거냐. 방안에 뒹굴며 폰을 보며 희희낙락 거리는 이 아이를 보자니 앞이 깜깜해졌다. DMB 폰이란 언제 어디서든 TV를 볼 수 있다는 의미. 더 이상 TV 사각지대는 없다. 그리고 때로는 TV가 없어서라도 책을 보게 될 기회 역시 없다. 그런 점에서 애초에 책을 보고 살다가 어른이 되서 DMB 폰을 접하는 사람과, 책을 접하기도 전에 DMB 폰을 접하는 사람은 분명 다르다고 본다. 인쇄매체의 가치 자체를 인식하느냐의 문제다. <br><br>영국의 10대가 낸 미디어 관련 보고서가 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0대들이야 어디나 똑같을 것이기에, 내가 봐도 감탄할 만한 사실적이고 정확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아마 향후 미디어 업계들이 비전을 세워 나가는 데 주요한 참고가 될 거다. 그런데 대책이라는 것은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고 그 테두리 내에서 이익을 볼 수 있는&nbsp;전략을 짜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과 별도의 당위를 생각해 당위적 설득을 감행해야 하는 것인가. <br><br><a href="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amp;newsid=20090713172014448&amp;p=yonhap">英, 10대 작성 보고서, 미디어 업계 반향</a>&nbsp;(연합뉴스)<br><br></p><br /><br /><span style="COLOR: #003300"><strong><span style="COLOR: #000000">롭슨 보고서, 변화된 현실과 변하지 않을 현실</span></strong><br><br>롭슨은 보고서에서 미디어 업계의 '차세대 소비자'인 10대들은 앞으로 더 많은 종류의 미디어를 이용하겠지만, <strong>이용 대가를 치르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strong>이라고 밝혔다. <br><br>친구들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 TV나 라디오 같은 전통적인 매체를 이용하기보다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음악을 듣거나 채팅을 한다는 대답이 훨씬 많았지만, 온라인 매체에 기꺼이 사용료를 지불하고자 하는 청소년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br><br>이 때문에 인기 단문 송수신 사이트인 '트위터'의 미래도 그리 밝지 않을 수 있다고 롭슨은 전망했다. 그는 "10대들은 더 이상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트위터 계정을 업데이트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br><br>롭슨은 또 출판업계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strong>자신이 아는 10대 중 정기적으로 신문을 읽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대부분은 TV, 혹은 인터넷을 통해 간추린 뉴스를 보는 것을 더 선호</strong>한다는 것이다. </span><br><br>롭슨의 분석은 철저히 사실적이다. 그래서 꽤나 절망적이다. 출판업계 종사자들에게 절망적이란 의미가 아니다. 미디어 수용 양상은 바뀌어도 지배자가 되는 경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롭슨의 말대로 대다수 10대들은 정기적으로 신문을 읽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간추린 뉴스를 훨씬 선호하지만, <strong>그 세대에서도 지배층은 결국 정기적으로 신문을 읽고, 남이 간추려 준 걸 낼름낼름 받아먹는 사람이 아니라, 복잡한 정보들 속에서 스스로가 핵심을 간추릴 줄 아는 사람들이게 될 것이란 사실</strong>이 더 절망적이다. 결국 뉴미디어 시대야말로 더 많은 사람들이 권력에서 소외되게 될 것이다. <br><br>인기 영어강사 조국현 씨가 월간텝스에 칼럼을 기고한 적 있다. 한창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단어장이나 편리한 휴대폰, 인터넷 영어사전보다 종이사전 찾아가며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다. 물론 단어장이 편리하다.&nbsp;전자식 사전은 그나마 좀 낫지만 자동검색 기능 등을 고려해보면 종이사전보다는 못하다. 진정한 영어실력은 종이사전에 펼쳐진 수많은 예문들 중 어느 것이 내가 찾는 단어의 뜻과 일치하는 지 찾아내려 애쓰는 "사고력"에서 배양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날로그의 힘이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아주 어릴 때부터 철저히 디지털에만 익숙해진 사람은 결코 얻어낼 수 없다. 문제는 요즘 애들은 누구나 디지털에 익숙해지겠지만, 아날로그의 힘은 아는 사람만 알면서 전수될 것이라는 점이다.<br>&nbsp;<br>나만 해도 그렇다. 10대들이 신문이나 출판물 잘 안 보는 것은 내가 10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하다못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논술대비를 위해서라도" 시사잡지를 두 권이나 구독하고 고교시절 3년 내내 일간신문을 봤다. 우리 부모님이 아날로그 세대라 "당연히 구독해야지"라고 생각한 것도 한 몫한다. 그러나 미래의 세대는 어떻게 될까. 지금의 10대들이 부모가 된다면 하다못해 애가 요구해도 "신문? 그 딴거 왜봐"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도 그 시대라도 볼 사람은 분명 본다. 그리고 그가 분명 좋은 대학에 갈 것이고, 좋은 직장을 잡을 것이고, 지배층이 될 거다.<br><br><strong>구텐베르크 이전으로 돌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br></strong><br>젊은 세대들이 미디어를 당연히 공짜로 즐기는 것이란 의식 역시 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아무도 이용대가를 치르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에서 미디어 업계의 전망은 밝지 않다. 우리나라도 미디어 광고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고, IPTV 등의 도입은 오히려 좁은 광고시장을 더 쪼개서 유혈전만 가속화시킨다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미디어는 반드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고, 특히 특정한 누군가는 더더욱 필요로 한다. 그러니 미디어업계가 망할 일은 없다. 대신에 미디어업계는 이윤창출 기업이 아니라, 손해 좀 보더라도 상관 없는 엄청난 재벌들이 자신이 원하는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으로 변모하면서 살아남을 것이다. 루퍼트 머독도 그렇고 현재 미디어법도 그렇고 이건&nbsp;이미 현재 진행형이다.<br><br>뉴미디어 시대에 가장 전망이 우울한 출판업계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미국 10대들은 신문은 늙은이들이나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지만, 여전히 미국의 50대 기업 중역들은 포춘도, 포브스도, 포린 폴리시도, 이코노미스트도 본다. 사회는 그들이 지배한다. 이 10대가 성장한 다음에는 달라질 거 같은가. 인터넷 특징의 속도감과 재기발랄한 패러디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보와 지식 습득 수단이 오로지 그것 뿐이라면 한계는 명백하다. 싸이월드의 재치넘치는 베플들로 결코 대안적 사유와 담론을 형성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strong>출판업계는 여하간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들을 봐 주는 소수의 고객들에게 맞춤형으로 진화하는 수밖에 없다</strong>. 아주 고가의 가격으로. 서민층들은 더더욱 출판물과 멀어지고, 출판물은 더더욱 특권취향이 되어 간다. 지금도 사회과학 서적 웬만한 건 양장본이네 어쩌네 하면서 막대한 가격을 올려붙이고 있지 않나. 조중동 욕할 것 없다. 아니 물론 욕은 먹어야 하지만. 현재 미디어를 둘러싼 환경이 보다 보편 시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이들보다, 특권층에 영합하는 출판물이 유리하다는 것이 근본적 문제다. 바로 구텐베르크 이전 시대의 활자의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절망적이다.<br><br><span style="COLOR: #000000"><strong>정치의 위기, 미디어의 위기</strong><br></span><br>깜짝 놀랄 만한 보고서를 낸 롭슨의 고국은 현저히 낮은 20대 투표율로 고민하는 나라다. 비단 영국 만의 문제는 아니다. 젊은층들의 낮은 투표율은 세계 보편적인 문제다.<br><br><a href="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8/04/21/200804210500016/200804210500016_1.html">투표? 평소에 의견 내잖아요(주간동아)</a><br><br>그래 평소에 의견 내는 거 맞다.&nbsp;항시적으로 자기 의견을 표출할 수&nbsp;있는 인터넷이란 공간은&nbsp;자기 자신이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기 좋다. 그러나 <strong>당신을 지배하는 것은 죽어라고 인터넷에 올리는 평소의 의견이 아니라 결국 투표에서 당선된 사람들이다.</strong> 우리 나라도 인터넷만 보면 민란 상태로 알기 쉽지만 현실은 아주 멀쩡하게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br><br>재미있는 것은 단순히 젊은층들의 정치 무관심이 전통적 공론장이 동시다발적으로 하나씩 다 무너져 가는 현상과 병행한다는 점이다. 영국은 펍의 몰락이 진행중이고, 프랑스는 300년 전통의 까페문화가 위기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뉴미디어 탓은 아니다. 경제위기 탓도 상당히 크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등장과 더불어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현상이 결국 "전통적 공론장"의 붕괴라고 하면 어떨까. 분명 이는 공론장과 함께 태동했던 근대가 종식하고 정말 새로운 신시대가 출현하는 계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신시대가 과거 만큼의 민주주의를 담보할 수 있을지는 정말 의심된다. 뉴미디어의 빛과 그늘. 한편으로는 이란 사태에서 빛난 트위터와 유튜브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뉴스를 소비하고 댓글을 달면서도, 정작 투표장에 나서지 않고, 알기 쉽게 남이 요약해준 것 외에 새로운 생각을 해 내지 못하는 청년들 역시 이 시대에 존재한다. 이러한 시대 뉴미디어로만은 절대 부족하다. 단순히 투표를 하고 말고가 아니라 문자 메시지 40자, 인터넷 댓글제한 600자를 넘어서 자기 의견을 조리있게 말하고 설파할 능력이 걸려있다.<br><br><a href="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46364.html">영국인의 사랑방, 펍(Pub) 30년 안에 멸종?(한겨레)</a><br><a href="http://news.mk.co.kr/newsRead.php?rss=Y&amp;sc=30100006&amp;year=2008&amp;no=741222">프랑스 명물 까페문화 사라진다.(매경)</a><br><br><strong>가난한 사람들에게 더더욱&nbsp;인쇄매체가 필요하다.</strong><br><br>단순히 올드미디어를 되살리자가 아니라, 연령과 계급을 막론하고 평등하게 올드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미디어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넘쳐서 문제인 이 시대에는 그 기회란 "뉴미디어"에 푹 빠진 세대에게 최소한 의무적으로라도 올드미디어를 접할 시간을 강제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강제와 억압이 차라리 이대로 방치했을 때보다는 낫다고 본다. 뉴미디어 환경에 철저히 적응하고 그 틀 내에서만 미디어업계가 진화를 도모할 경우 가져오는 결과. 구텐베르크 이전 시대가 오는 것보다는 말이다. <br><br>그나마 롭슨의 보고서에서 희망적인 대목을 찾아본다면, 아이러니컬하게도 10대들이 미디어에 전혀 지출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무료로 공개하고 광고 수익으로 이득을 보는 시스템에 언젠가 한계가 올 지도 모른다. 그 때 미디어 업계의 선택이 루퍼트 머독이나 베를루스코니 수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업계가 모두 단합하여 유료화를 한다면 결과는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완전 유료화는 불가능할테고 핵심 정보는 철저히 유료화돼서, 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제공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때 올드미디어가 하기에 따라 세상은 달라질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도서관에서 공짜로 볼 수 있고, 한 번 구입하면 회람도 가능하고, 한 사람이 신문 사서 여러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식의 19세기 풍경도 연출 갸능한 출판매체의 개방성. 그러나 그 이전에 사람들이 출판물의 가치를 절실히 알아가고 의식적으로 구매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언제나 지식과 정보는 권력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때문에 <strong>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일수록 출판매체는 더 많이 제공돼야만 한다</strong>. <br><br><a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76637&amp;CMPT_CD=P0001">문제는 MB가 아니라 당신이야 (오마이뉴스)</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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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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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4 Jul 2009 15:02:21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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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핵심은 비껴가는 곽승준 - 정두언 교육 개혁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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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a href="http://news.cyworld.com/view/20090624n15627?mid=n0403">교육개혁 지휘봉 잡은 이 대통령 (연합)<br><br></a></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mso-fareast-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한국의 교육개혁이 매번 실패하는 까닭은 매번 '입시개혁'에만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현실의 가장 큰 문제는 단연 과도한 사교육 열풍이다.&nbsp;한국에서 사교육 열풍은 부동산문제와 더불어 민생경제를 위협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학생들의 학업부담이 극심해진다는 점과 더불어. '시험만을 노린 획일적 교육'이라는 면에서도 문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교육 열풍의 근본적 원인은 단지 몇몇 대학의 입시제도 때문이 아니다. 소수의 명문대학에 가야만 한다는 목표가 바뀌지 않는 이상 과도한 경쟁은 멈출 수 없다. 이러한 학벌구조를 가만두고 입시개혁에만 치중하는 것은 결국 입시 수단의 '다양화'에 지나지 않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교육 '목표의 다양화'다.&nbsp;<br><br>'곽승준-정두언' 개혁안도&nbsp;전혀 다르지 않다. 문제의 핵심을 전혀 관통하지 못하는 대책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된 내용을 살펴보자면 △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 고교 입시 절대평가 전환 △ 외고 입시 내신 폐지 △ 외고 입시 학교장 추천제 폐지 △ 문,이과, 예체능 계열별로 대학 전공에 상관없는 과목의 내신 반영 및 수능 과목 제외 △ 방과 후 학교의 위탁경영 강화 △ 불법과외 포상신고제 등이다. 이 중에서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다. 인수위 시절 제한 풀려고 하다가 난리가 난 정책이기도 하다. 외고 수요가 높은데, 외고 입시안 개혁은 의미가 없다. 내신과 학교장 추천제가 폐지된다면 외고 독자 시험으로 선발할 수밖에 없고, 내신 사교육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외고입시전문 사교육이 성황을 이룰 뿐이다. 당장의 조치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외고 인가&nbsp;취소 및 외고에 유리하지 않는 쪽으로의 대입개혁이 더 낫다. <br><br>이번 개혁안은 또한 '사교육 경감'을 목표한다면서 공교육의 '입시지향'적 성격을 도리어 강화시키는 모순을 드러낸다. 내신의 기본 취지는 "성실한 학교생활"에 대한 보상이다. 절대적 지식량만을 평가하고 싶다면 내신보다는 일제고사 쪽이 더 유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내신을 반영하게 하는 것은&nbsp;지식전수 뿐 아니라 노력과 성실함과 같은 인성적 가치 역시 중요한 교육 목표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내신제도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nbsp;사실 대부분 대입에서 무력화됐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신의 취지가 무색해진 근본적 이유 역시 과도한 입시경쟁 때문이다. <br><br>그런데 곽승준-정두언 개혁안은 이 모순에 대해, 학벌사회를 손질하는 것이 아니라, 내신을 손질한다. 대학입시와 무관한 공부의 가치를 교육당국 스스로 평가절하함으로써,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학교 현장을 입시전쟁터로 공인하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일본의 "여유교육" 실패에서 보듯, 학벌구조가 엄연한데, 입시과목을 축소해봤자 대학생 수준만 떨어지지 학업부담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10년 전에도 음악, 미술, 가정 등 입시와 무관한 시간, 국영수 자습이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현실이 그러할지라도 최소한 이것이 문제라는 인식은 하고 있어야 개선의 여지가 있다.&nbsp;이번 교육안이 위험한 까닭은 바로 이&nbsp;때문이다. 이 정부는 사교육 경감을 말하면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부정한다.&nbsp;&nbsp;<br><br>이명박 정부가 미워서 하는 짓마다 사사건건 꼬투리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nbsp;어느 정부나 교육문제에 관해서는 골치를 썩였다. 그만큼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음은 안다. 그런데 이 정부만의&nbsp;심각한 문제는 사교육 경감대책을 말하면서,&nbsp;그와 전혀 반대방향을 향하는 자신들의 교육관을 그대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중을 도입하면서 외고입시로 대체 사교육을 어떻게 잡겠다는 것인가. 결국 사교육 대신 눈에 보이는 사교육 업체를 잡겠다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어 보인다. 변죽만 울리는 개혁은 의도와는 다르게 상황만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한 때 교육개혁의 주된 쟁점은 대입제도 개선안이었다. 물론 이는 피상적 해결책이었다. 그런데 이제 피상적 해결책 중에서도&nbsp;"고입제도"를 논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봐야만 한다.<br><br></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mso-fareast-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span><a href="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5131.html">&nbsp;</p><p class="바탕글">고1 어쩌면 마지막 그림 (한겨레 21)<br></p></a><br /><br /><p><span style="COLOR: #003300">열받는데 교육뉴스 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거 같다.<br>아니 교육 뿐이겠느냐만.<br><br><br>경기도 무료급식예산 깎은 도교육위원회 개새*들은 어쩔거야...-_-;;;;</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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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우리시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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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4 Jun 2009 17:24:21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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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푸른 하늘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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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3a69ff">&nbsp;&nbsp;푸른 하늘을 制壓(제압)하는<br>&nbsp;&nbsp;노고지리가 自由(자유)로왔다고<br>&nbsp;&nbsp;부러워하던<br>&nbsp;&nbsp;어느 詩人(시인)의 말은 修訂(수정)되어야 한다.</span><p align="left"><span style="COLOR: #3a69ff">&nbsp;&nbsp;自由(자유)를 위해서<br>&nbsp;&nbsp;飛翔(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br>&nbsp;&nbsp;사람이면 알지.</span></p><p align="left"><span style="COLOR: #3a69ff">&nbsp;&nbsp;노고지리가<br>&nbsp;&nbsp;무엇을 보고<br>&nbsp;&nbsp;노래하는가를<br>&nbsp;&nbsp;어째서 自由(자유)에는<br>&nbsp;&nbsp;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span></p><p align="left"><span style="COLOR: #3a69ff">&nbsp;&nbsp;革命(혁명)은 <br>&nbsp;&nbsp;왜 고독한 것인가를<br>&nbsp;&nbsp;革命(혁명)은<br>&nbsp;&nbsp;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br><p></p><div style="TEXT-ALIGN: right"><div style="TEXT-ALIGN: center">&nbsp;</div></div><p align="left">&nbsp;- 푸른하늘을 / 김수영<br><br><span style="COLOR: #000000"><br>이란의 푸른 하늘도 언젠가 꼭 올거다. <br></span></p></span></p><p align="left"></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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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우리시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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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4 Jun 2009 16:35:01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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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노 대통령 서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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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3년 전쯤. 일본어 학원 기초반을&nbsp;다닐 때 회화 시간 선생님이 질문을 던졌다. "아나타, 다이토오료우가 스키데스까?"(당신 대통령을 좋아합니까?)" 그저 문형연습을 위한 회화 수업일 따름인데, 순간 멈칫했다. 그 때는 한미FTA가 추진되고 있었고, 한국사회는 양극화의 시름에 찌들어가고 있었는데. '하이'라 할까 '이에'라 할까 순간 망설였다. 풋내기의 과잉정치화된 의식도 어느정도 있었겠지. 그러나 그 때 '하이'라고 답하지 않아서 이렇게 괜스레 마음이 무거운지도 모르겠다. <br><br>이제는 누가 자살했다고 한들 안 놀랄 줄 알았다.&nbsp;토요일 오전이란걸 핑계삼아&nbsp;늦잠자다가, 창밖의 누군가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대"하는 소리에 깼다. 이상한 꿈을 꿨나 하고 컴퓨터를 켠 다음 지금 세 시간째 멍한 상태다. 그는 산등성이에서 추락하던 짧은 순간 후회하지 않았을까. 누가 됐건 한 사람의 죽음은 슬픈 일인데. 누구보다도 욕을 많이 먹었던 사람의 죽음을 보니까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의 실험은 결국 이런 결과로 끝내기 위해서는 분명 아니었을텐데. <br><br>한국사회에 적지않은 의미를 안긴 대통령. 한편으로 많은 과제를 수행해내지 못했던 대통령. 그와 관련한 숱한 담론과 평가는 여전히 진행중인데, 이렇게 훌쩍 가 버리면, 어떡하냔말야.&nbsp;그에 관한 사유는 여기서 종결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남아버렸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한 사람의 자연인을 전혀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사회가 슬픈 거다. 박종태 열사가 되었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되었건. 하지만&nbsp;최소한 당신도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만큼, 살아남아서 끝까지 당신이 꿈꾼 세상을 계속 지켜보기를 바라는 건 과한 기대였을까. <br><br>한국의 역대 대통령은&nbsp;거의 모두&nbsp;퇴임 후 영예롭지 않은 모습으로 남았다. 그 고리를 그나마 끊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았으니, 한국 정치의 안정은 여전히 요원한 거 같다. 민주주의 2.0이라는 유쾌발랄한 실험과 통치자의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공존. 이런 나라의 미래는 오롯이 살아남은 자들만의 몫이다. 죽음에 대한 미화와&nbsp;죽은 자에 대한 무례 사이를&nbsp;비집고, 그의 공과에 대해 더 힘든 평가를 해야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지만, 충격, 착잡함,&nbsp;연민&nbsp;등을 딛어야 할 이유다. <br><br>사랑과 미움이 정말 극단적으로 갈렸던 사람이었다. 한국 사회의 어떤 경향이 분명 반영됐고,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마지막이 그 어떤 경향에 대한 경종을 울렸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늘 하루는 최소한 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 알았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nbsp;<br>&nbsp;<br><a h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23/2009052300307.html">서거한 노 전 대통령 출생부터 사망까지 (조선일보)</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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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우리시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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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3 May 2009 03:24:50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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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요즘 글이 완전 뜸했던 이유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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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글쓰고자 하는 욕망이 죄다 &lt;교육저널&gt;을 통해서 표출이 되서 그런 거 같아요-_-;;;;;;<br>...아아니 마감에 시달리다 보니 귀찮아진건가. 아아아<br><br>아무튼 교육저널 10호 무사히 나왔습니다. &gt;_&l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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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kixzero.egloos.com/4146343#comments</comments>
		<pubDate>Fri, 22 May 2009 18:55:54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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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꽃보다 남자 : 이것은 트렌디 드라마가 아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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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right"><p class="바탕글">신데렐라가 되는 법을 아는가. 여기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우선 재벌 2세를 찾아가라. 부족함 없이 자라난 그의 성격은 틀림없이 안하무인. 일단 다짜고짜 뺨을 철썩 내려친다. 그리고 한 마디 쿨하게 외쳐라.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 그렇다면 그는 멍하게 홀린 표정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를 막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오호라 다 됐다. 그는 이제부터 당신의 노예니까.<br><br></p><p class="바탕글">시중에 널리 알려진 유머로, 비현실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 드라마의 내용을 꼬집고 있다. 말 그대로 재벌 2세의 뺨을 때리고 그와 연애하는 게 유행인 시대. 그런데 이 패턴의 원조가 누군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바로 요코 카미오의 &lt;꽃보다 남자&gt;가 그 주인공이다. &lt;꽃보다 남자&gt;는 93년부터 2004년까지 장장 11년에 걸쳐 인기리에 연재되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 스토리가 &lt;꽃남&gt;이 처음 연재될 당시로서는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br><br></p><p class="바탕글"><?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v:shapetype id="_x0000_t75" stroked="f" filled="f" path="m@4@5l@4@11@9@11@9@5xe" o:preferrelative="t" o:spt="75" coordsize="21600,21600"><v:stroke joinstyle="miter"></v:stroke><v:formulas><v:f eqn="if lineDrawn pixelLineWidth 0"></v:f><v:f eqn="sum @0 1 0"></v:f><v:f eqn="sum 0 0 @1"></v:f><v:f eqn="prod @2 1 2"></v:f><v:f eqn="prod @3 21600 pixelWidth"></v:f><v:f eqn="prod @3 21600 pixelHeight"></v:f><v:f eqn="sum @0 0 1"></v:f><v:f eqn="prod @6 1 2"></v:f><v:f eqn="prod @7 21600 pixelWidth"></v:f><v:f eqn="sum @8 21600 0"></v:f><v:f eqn="prod @7 21600 pixelHeight"></v:f><v:f eqn="sum @10 21600 0"></v:f></v:formulas><v:path o:connecttype="rect" gradientshapeok="t" o:extrusionok="f"></v:path><?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lock aspectratio="t" v:ext="edit"></o:lock></v:shapetype><v:shape id="_x101737320" style="MARGIN-TOP: 5.3pt; WIDTH: 179.23pt; POSITION: absolute; HEIGHT: 275.08pt; v-text-anchor: top; mso-position-vertical-relative: line; mso-position-vertical: absolute; mso-position-horizontal-relative: text; mso-position-horizontal: absolute" type="#_x0000_t75"><v:imagedata src="file:///C:\Users\TG\AppData\Local\Temp\Hnc\BinData\EMB000008908947.jpg" o:title="EMB000008908947"></v:imagedata><?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w:wrap type="square"></w:wrap></v:shape></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꽃보다 남자, 넌 혁명이었어. <br></span></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905/23/75/b0002775_4a16f16e2ad5c.jpg" width="500" height="315.88447653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905/23/75/b0002775_4a16f16e2ad5c.jpg');" /></div><br>기존 순정만화의 전형은 &lt;캔디캔디&gt;였다. 밝고 사랑스러운 주인공과 그를 질투하는 악녀, 그리고 한결같이 주인공에게 사랑을 베푸는 테리우스 타입의 왕자님이 주된 구도를 이뤘다. 그런데 &lt;꽃보다 남자&gt;는 이 모든 상식을 뒤엎어버렸다. 여자 주인공은 밝지만 좌충우돌이며, 남자는 돈만 있을 뿐 '뭐 저런 나쁜 놈이 있을까' 싶은 캐릭터다. 그리고 바로 그 소년이 이 겁없는 소녀와 엮이면서 갱생의 삶을 사는 것이 주된 스토리이다. 그런데 이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지금은 순정만화나 멜로드라마의 전형적 패턴으로 정착했다. <br><br></p><p class="바탕글">인기의 비결은 역시나 돈 앞에서도 당당한 여주인공의 당찬 모습이 소녀들의 가슴을 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이는 그만큼 돈 앞에서 당당하기 어려운 세태를 반영한다. 더욱이 성격도 난폭하고,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 재벌 2세가 소녀와 사랑에 빠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성격은 사랑으로 고칠 수 있지만, 막대한 재력은 결코 노력으로 이뤄낼 수 없다. 남자주인공을 정말로 매력적이게 만드는 것. 결국은 돈이다. 장안에 화제가 되는 F4의 F는 기실 flower가 아니다. 차라리 fortune에 더 가깝다. <br><br></p><p class="바탕글">원작 &lt;꽃보다 남자&gt;가 배경으로 하는 사회 현실은 더 씁쓸하다. 90년대 초반은 일본이 장기불황에 빠지면서, 일본식 '종신고용시스템'이 붕괴되고, 신자유주의식 구조조정이 도입된 시기였다. 가난한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바로 그렇게 해고된 실직자다. 그리고 한번 가난의 수렁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헤어날 길이 없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딸을 억지로 명문학교에 보내는 것은 사실은 허영이 아니라, 처절한 상승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br><br></p><p class="바탕글">더욱이 '에스컬레이터식 명문학교'는 일본사회 내에서 가장 공고한 계층의 재생산 도구다. 게이오 대학, 학습원 대학 등과 같이 일류사립대에서는 부속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한 부지에서 공부하며 자동적 진학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들 사립학교 부속의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만 하면, 말 그대로 입학하기만 하면 에스컬레이터처럼 신분상승이 보장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바로 이 명문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입시경쟁이 거세다. &lt;꽃보다 남자&gt;의 원작자 자신도 "에스컬레이터식 학교를 다닌 사람은 뭔가 우리와 다른 것 같다"는 지인의 말에 착안하여 이 만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한 바 있다. 요컨대 &lt;꽃보다 남자&gt;는 서민들의 삶은 불안해진 반면, 교육을 통한 계층의 분화는 더욱 공고해진 일본사회의 우울한 현실 없이는 단 한 칸도 그릴 수 없는 만화다.</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br>&lt;꽃남&gt;이 히트칠 수 있는 사회, &lt;꽃남&gt;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는 사실 슬프다<br><br></span></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2009년 &lt;꽃보다 남자&gt; 열풍이 한국에도 다시 한 번 상륙한다. 실직당한 아버지는 세탁소를 하는 영세 자영업자로 바뀌었으니, 그야말로 한국 경제구조에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에스컬레이터식 명문고는 대기업 소유의 자립형 사립고로 변신한다. 사회적으로 귀족학교를 현실의 일부로서 상상할 수 있는 분위기라는 의미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과 구도뿐. "돈 이면 다 되는 줄 알아!"라던 소녀의 외침은 사실 "돈이면 다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p><p class="바탕글"><v:shapetype id="_x0000_t75" stroked="f" filled="f" path="m@4@5l@4@11@9@11@9@5xe" o:preferrelative="t" o:spt="75" coordsize="21600,21600"><v:stroke joinstyle="miter"></v:stroke><v:formulas><v:f eqn="if lineDrawn pixelLineWidth 0"></v:f><v:f eqn="sum @0 1 0"></v:f><v:f eqn="sum 0 0 @1"></v:f><v:f eqn="prod @2 1 2"></v:f><v:f eqn="prod @3 21600 pixelWidth"></v:f><v:f eqn="prod @3 21600 pixelHeight"></v:f><v:f eqn="sum @0 0 1"></v:f><v:f eqn="prod @6 1 2"></v:f><v:f eqn="prod @7 21600 pixelWidth"></v:f><v:f eqn="sum @8 21600 0"></v:f><v:f eqn="prod @7 21600 pixelHeight"></v:f><v:f eqn="sum @10 21600 0"></v:f></v:formulas><v:path o:connecttype="rect" gradientshapeok="t" o:extrusionok="f"></v:path><o:lock aspectratio="t" v:ext="edit"></o:lock></v:shapetype><v:shape id="_x100461880" style="MARGIN-TOP: 60.04pt; MARGIN-LEFT: 251.95pt; WIDTH: 167.25pt; POSITION: absolute; HEIGHT: 297.59pt; v-text-anchor: top; mso-position-vertical-relative: line; mso-position-vertical: absolute; mso-position-horizontal-relative: text; mso-position-horizontal: absolute" type="#_x0000_t75"><v:imagedata src="file:///C:\Users\TG\AppData\Local\Temp\Hnc\BinData\EMB000008908946.jpg" o:title="EMB000008908946"></v:imagedata><w:wrap type="square"></w:wrap></v:shape><br>&lt;꽃보다 남자&gt;는 "돈이면 다 되는 사회"를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수용한다. 원작의 여주인공은 재벌학교에서도 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며 꿋꿋하게 살아간다. 사실은 그 외의 대안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약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존적 선택이란, 개인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일 뿐.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lt;꽃남&gt;의 여주인공처럼 주인공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Fortune 4 도련님들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재벌 2세의 인격은 사랑으로 감화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이 지배하는 공고한 계층구조는 지속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일본의 대학부속 고등학교에도, 한국의 신화고에도 부유층 자제들이 계속 입학하여 그들만의 특권층만을 형성하는 것처럼. 그러니 &lt;꽃남&gt;은 단순한 꽃미남 드라마도 아니고, 트렌디 드라마도 아니다. 사탕같은 달콤함에 가볍게 넘어가기 쉽지만, 드라마 &lt;꽃남&gt;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이 시대의 우울한 현실과 직시해야 한다. <br><br><br>- &lt;교육저널&gt; 10호에도 실은 글입니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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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글,만화,영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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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2 May 2009 18:39:10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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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착해질 각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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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변화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의지와 희생에 기댈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멋진가. 문제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린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변혁은 필요하지만 나의 욕망은 한 발짝도 꺾고 싶지 않은 이중성에 적절한 방패막이가 되기까지 하다. 그러나 내 욕망의 방패막이가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이는 틀렸다.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하면 오히려 개인의 욕망 쪽이다. 사회 시스템이란 것도 결국 개개인의 욕망이 구조화된 것 아닌가.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자 하는 개개인의 의지와 희생 없이 근본적인 시스템개혁이란 불가능하다. <br><br></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우리의 욕망은 누군가의 죽음보다 나의 수고로움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원근법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일상에 젖어드는 편리함은 나의 욕망을 넘어서고 나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사례를 몇 가지 생각해볼까.<br><br></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녹색성장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소비를 줄이자고 한다. 그러나 에어컨을 안 틀어줘서 찜통이 된 지하철에서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 이를 온몸으로 받아내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소비억제를 강요할 방법은 없다. 하나 예외. 물적 기반이 완전히 박살나는 것. 엄청난 전기세가 한 방법이 되겠지만, 문제는 우리 몸이 에어컨의 시원함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전기세가 오르면 편리함을 기억하는 우리의 관성은 더위를 참아내던 옛날의 전통으로 되돌아가기보다는 싸게 전기를 공급하라고 에너지 당국을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lt;88만원세대&gt;를 읽고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며 구구절절이 옳다고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가게에서는 체크카드를 내민다. 영세 상인들에게 부담이 되는 높은 수수료, 더구나 현금이 바로바로 들어오지 않는 지불방식. 결국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절대 유리. 우리나라처럼 카드 사용이 만연한 나라가 없다. 미국을 제외하면 카드발급 세계 1위인데, 우리와 미국의 인구차이가 대체 몇 배냔 말이냐. 1만 원 이하 소액결제의 경우 현금사용 의무화 법안이 추진되자 반발이 보통이 아니다. 물론 스타벅스 같은 경우 3~4천원 짜리 커피 마시고 카드 내밀어도 별로 미안하지 않다. 투명한 징세 문제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귀찮은 거다. 굳이 카드로 결제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나라의 조세수입이 걱정된다면 현금영수증제도도 있는데. 게다가 언제부터 카드 긁을 때 일일이 이런 거 걱정하면서 긁었나. 그냥 긁었지.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제3세계 어린이들의 현실에 분노하고 때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착한커피'를 찾는 것을 보면 우리는 정말 착한 게 틀림없다. 그러나 이 땅의 커피값이 쓸데없이 비싸다는 것 역시 굉장한 변수다. 착한 초콜릿. 물론 좋지. 그런데 우리가 착한 초콜릿을 허용하는 범위는 현재 가나초콜릿 가격 500원 이내가 아닐까. 500원 내에서 기업이 가져가는 몫은 줄이고, 그 부분을 노동자에게 줘랴. 그런데 카카오 한 그루 안 나는 나라에서 500원이 심각하게 싸다는 생각은 해 본적 없었을까. 기업의 희생은 당연하지만 소비자인 자신의 희생은 전혀 용납할 수 없다. 소비자 주권의 시대 아닌가. 그런데 기업도 똑같이 말한다. 자기들이 왜 희생해야 하냐고. 아 물론 커피, 초콜릿 회사들은 어마어마한 폭리를 취하고 있으니 희생 좀 하더라도 덜 불쌍해 보이긴 한다. 문제는 이 나라의 영세농민들도 똑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값싸고 질 좋은 농산물. 물론 이게 기본이지만 값싸고 질 좋은 농산물이 있을 수 있냐. 유기농 하고 질 좋아지려면 결국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당연한 진리에 소비자들은 몸부림친다. 단가가 비싼 음식을 '덜' 먹는다는 다른 대안도 있는데.</p><p class="바탕글"><br>소비자 주권은 충분히 전복적이고 혁명적일 수 있다. 자본주의 시대 거대 권력 기업도 결국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답이 없지 않은가. 또한 날이 갈수록 분화되고 공동체의 이질성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유일한 정체성은 사실 '소비자'인지도 모른다. 그런고로 소비자 정체성을 충분히 활용하는 전략은 필요하지만</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역시나 시민성이 결여된 '소비자'로서의 자기규정에만 기대기는 불안하다. 소비자는 결국 욕망하는 자. 물론 우리는 제3세계 어린이들의 복지를 욕망하고, 뜨거워져가는 지구의 미래를 욕망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를 위해서 내가 희생하기는 싫다는 거다. 여태까지 누린 나의 풍요가 사실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인데. 결국 나의 욕망과 부당한 현실 앞에서 고민은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책임을 지라는 방식으로 '착한 소비자'는 탄생한다. 그러나 그런 '착한 소비자'가 정말로 세상의 변화를 이뤄낼 것인가. 자신이 가진 편리함을 과감히 버릴 각오도 없이 착해지려고 하는 거니까 이런 모순에 빠지는 거야. <br><br>...라고 말하는 나도 이 밤중까지 컴퓨터를 켜고 있다는 사실에서 온난화의 공범 중 하나다.</p><p class="바탕글"><br>그러니까 간만에 생각나는 대로 막 쓰고 있는 <br>이 글을 서둘러 마무리해본다면</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br>역시 답은 맹자다. </p><p class="바탕글"><br><br>당신 정말 위대했어.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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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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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2 May 2009 18:31:04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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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양아치와 이불공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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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간만의 시골 양아치 출신 경찰 이야기.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그는 '학교폭력'이니 '교실붕괴'니 하는 말에 코웃음친다. 별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 생각하기&nbsp;때문이다. 말썽피우는 학생은 언제나 있었댄다. 그리고 70년대 어느 시골마을에서는 본인이 그 장본인이었으니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책가방은 집어던지고 싸움질만 하고 다녔다. 고등학교도 한 번 떨어지고 재수끝에 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역시나 공부를 할 리가 없다. 수업시간, 싸움 일으키지 않고, 교실 뒷구석에 앉아 무게잡고 무협지나 보고 있으면 교사들이 더없이 고마워했다고 한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그런 그도 교과서를 펼쳐들 수밖에 없었던 과목이 딱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축산. 악명높은 호랑이 선생. 그리고 아무리 양아치더라도 60살 먹은 노인네를 패서는 안 된다는 도덕률이 통용됐던 순정한 시대였다. 또 다른 하나는 담임선생님 시간.&nbsp;헌데 그는 담임선생님의 과목이 뭐였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수업시간에 자기 과목을 가르치지 않았다. <br><br></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fareast-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이놈들아. 나중에 최소한 신문은 보고 살아야 할 거 아냐."</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그는 한자만 가르쳤다. 그 때마다 명문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신문은 볼 줄 알아야 한다며 반쯤은 비꼬고 반쯤은 타일렀다. 한자를 쓰는 게 아니라 그렸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도 수업을 들었다. 정말 신문을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까. 선생님이 카리스마 있었던 걸까. 혹시 무협지를 보다 수월하게 이해하기 위해서인가.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졸업식날, 졸업식과 무관하게 친구들이랑 술을 퍼마시느라 학교도 가지 않았다. 그러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얼큰하게 돌던 술이 깰 무렵, 한 친구가 말했다. 졸업식인데 그래도 학교는 가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담장 넘어 학교에 가 봤는데 역시나 아무도 없다. 그저 빈 교실에서 허공만 바라보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었는데, 문이 드르륵 열린다. 담임선생님이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fareast-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으이구, 졸업식날이라고 학교는 왔냐. 니네 졸업장 ○○ 애들이 가져갔다. 어여 거기 가 봐."</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이것이 그가 기억하는 담임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한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그는 결국 졸업장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담임선생님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제자 녀석이 졸업하고 신문은 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신문만 읽는 것은 아니다. 천하의 불량학생이 경찰이 됐다. 번듯한 직장이 있고, 번듯한 가정이 있고, 나름 번듯하게 살아간다. 이 모든 삶을 '신문'으로 요약했던 선생님의 혜안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한참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공고와 상고는 그래도 유망했지만 농고는 달랐다. 누군가는 엎어져 잠을 자고, 누군가는 무협지를 보고, 누군가는 불안한 꿈에 쫓기면서도 수업을 듣는다. 하지만 졸업하면 대부분은 어느 도시 변두리에서 맨주먹으로 새 삶을 시작하리라. 그리고 당분간은 가난을 벗어나기도 쉽지 않을 게다. 영어와 수학으로 승부를 거는 게임에서 이미 밀려난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악착같이 살다보면 나은 내일을 꿈꿀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꿈에만 의지하기에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닭장같은 공장에서 검은피를 쏟으며 죽어가도 별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배운 것 없는 자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말할 곳을 모른다. 그저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다간 나락에 빠지기도 쉽다. 이처럼 사람답게 살기 힘든 정글에서, 그나마 잘 살아남는 법은 다른 게 아니다. 주어진 환경이나마 잘 이해하고. 자신들을 이용해먹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눈을 부릅뜨는 것. 그리고 세상돌아가는 소식도 알고, 제 목소리도 낼 수 있다면, 더 나은 내일이란 조금은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지배당하지 않는 법</span></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fareast-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 담임선생님이 가르치고자 한 것은 단순히 한자가 아니었다. 신문 읽는 삶이란 보다 현명한 시민으로서 자립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불량학생이 무협지를 덮고 공책을 꺼내든 것도, 진정으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의 진심이 와 닿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제대하고 어떻게 살 지 몰라 막막했을 때, 신문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한 사람이 뿌린 작은 씨앗의 힘이 놀랍기만 하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요즘 신문은 대부분 순 한글로 나온다. 한겨레가 창간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글만을 고집하는 이유도 저학력자들도 쉽게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그래도 나은 내일이 한 발짝씩 다가온 것도 같다. 이제 중학생 정도면 신문을 읽을 수 있다. 노동법이 있어도 있는지도 몰라서 죽을 확률도 상당히 낮아졌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하지만 여전히 밀려난 사람들은 존재한다. 더욱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회의 문은 점점 좁아져만 간다. 70년대 시골&nbsp;불량학생이 있던 자리, 21세기 학교에는 이불공주가 있고 한다. 학교에 이불을 아예 싸들고 와서 만 자는 학생들. 깨워도, 혼내도 무표정한 얼굴로 도로 잠이 들고 마는 그녀들 앞에, 교사들은 혼낼 기력도 사라진다고 말한다. 반항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기력이기에. 그리고 이불공주들이 무기력한 이유를 사실 다 알고 있기에.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이불공주들은 정말로 잠이 모자르다. 0교시에 야자에 학원에.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수업은 수업의 질을 떠나서 고문이라고 어느 칼럼니스트가 말했다. 더욱 슬픈 사실은 이불공주들에게 고문을 견뎌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역시나 영어와 수학으로 승부를 거는 경쟁에서 밀려난 그녀들.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서 조금이라도 높은 배치표의 대학을 간다 할지언정. 크게 다를 것 없는 불안한 미래. 그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불공주들의 잠은 안쓰럽지만, 잠이 그저 미래에 대한 체념적 수용을 의미한다면 이보다 처참한 일이 또 있을까.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asci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 mso-hansi-font-family: 08서울한강체 M"><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이불공주들도 그 담임선생님이 필요하다. 영단어 몇 개가 아니라, 진정으로 지배당하지 않는 법. 조금이나마 지배체제를 교란시킬 수 있는 법을 전수할 교육. 하지만 더 이상 한자를 몰라서 신문을 못 읽는 세상이 아닌 이상 무엇을 가르쳐야만 할까. 확실한 건&nbsp; 일제고사나. 방과 후 교육이나. 사교육 없는 학교 따위는 분명 답이 아닐 것이다. 여전히 세상은 '방과 후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로만 살아가기에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span></span></p></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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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발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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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Apr 2009 15:48:15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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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글씨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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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기본적으로 바탕체와 돋움체를 쓰고 있지만</p><p>요즘은 맑은 고딕도 무지 좋아합니다.</p><p>&nbsp;</p><p>기본체 외의 글씨체는 보기에는 이뻐도 긴 글을 쓰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br>맑은고딕은 오히려 선명하면서도 부드러워 일반 고딕보다도 나은듯 해요. </p><p>&nbsp;</p><p>정갈한 느낌의 강낭콩체도 참 좋아합니다.</p><p>제 글씨체와도 비슷하다고 하더군요.</p><p>&nbsp;</p><p>오늘은 한글에서 서울한강체 써 보고 완전히 반했습니다.</p><p>&nbsp;</p><p>완전 맑고 물 흐르는 듯한 글씨체.</p><p>이것때문에 한강이 되려 좋아질 거 같아요.<br>이것도 시정의 일부라면, 누구의 발상일까 굉장해. </p><p>&nbsp;<br></p><p><br><br><br><br><br>이처럼 글은 안 쓰고</p><p>끊임없이 글씨체 바꾸기 놀이나 하고 있습니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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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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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4 Apr 2009 17:45:23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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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경향신문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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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아무래도 힘들 거 같습니다.<br><br>그래도 좋으니<br>제발 살아만 있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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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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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Mar 2009 15:36:56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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