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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 I O P H I L I 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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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교육자는 먼 미래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부과할 필요는 없지만, 오늘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 야누쉬 코르착</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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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9 Feb 2009 13:25:0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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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펌]오바마가 일제고사를 폐지하려는 이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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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class="titleWrap"><h2><a href="http://sisun.tistory.com/263"><span style="COLOR: #000000">오바마가 일제고사를 폐지하려는 이유</span></a></h2><div class="author"><a class="categoryBtn" href="http://sisun.tistory.com/category/새로운%20시선">새로운 시선</a> <span class="date"><span style="FONT-SIZE: 85%; COLOR: #aaaaaa; FONT-FAMILY: Tahoma">2009/01/30 13:56</span></span> <span class="ownerBtn"><span><span style="FONT-SIZE: 85%; FONT-FAMILY: Tahoma">Posted by</span></span><span style="FONT-SIZE: 100%">미디어팀</span></span> </div></div><!-- titleWrap close --><div class="article"><div style="MARGIN: 10px 0px; TEXT-ALIGN: center"><div class="adPostTop"></div></div><table style="BORDER-RIGHT: #e1e1e1 1px solid; BORDER-TOP: #e1e1e1 1px solid; MARGIN: 0px 0px 10px; BORDER-LEFT: #e1e1e1 1px solid; WIDTH: 414px; BORDER-BOTTOM: #e1e1e1 1px solid; FONT-FAMILY: dotum; HEIGHT: 104px" align="center"><tbody><tr><td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4px; COLOR: #999999" align="middle" bgcolor="#efefef" height="30"><span style="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FAMILY: 굴림"><span style="FONT-FAMILY: 굴림">&lt;MB-오바마 교육정책 비교&gt; 연재기획 목차</span></span></span></span></span></td></tr><tr><td style="PADDING-RIGHT: 10px; MARGIN-TOP: 20px; PADDING-LEFT: 1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LINE-HEIGHT: 16px; PADDING-TOP: 0px" align="middle" bgcolor="#ffffff" height="30"><p align="left"><strong>① 오바마, 일제고사에 반대하다 <br></strong>② 채찍인가 지원인가, 180도 다른 교원 정책<br>③ 극과극, 교육소외층에 대한 정책 판이한 한미</p></td></tr></tbody></table><br><span style="COLOR: #5c7fb0">해가 바뀌었건만, 이명박 정부는 경쟁과 평가를 중심으로 한 시장주의적 교육개악 드라이브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올해에도 예상되는 일제고사 실시, 자율형 사립고와 같은 특수학교 확대, 억압적 교원정책 강행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반면 이러한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원조였던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대대적인 방향 전환에 착수하고 있다. 전임 정권의 교육 정책으로 미국이 경쟁력과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진단에서다. 양방향으로 크게 엇갈리고 있는 한미 교육정책의 차이는 무엇일까.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쪽은 어디일까.<br>새사연은 우리 교육의 희망을 찾는 다음카페 ’교육 새로고침’(</span><a href="http://cafe.daum.net/eduf5" target="_blank"><span style="COLOR: #5c7fb0">http://cafe.daum.net/eduf5</span></a><span style="COLOR: #5c7fb0">) 운영진과 함께, 오바마에 의해 변화하고 있는 미국 교육 개혁 방향과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을 비교하고 향후 한국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마련해 본다. &lt;편집자주&gt;</span> <br><br>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교육의 현장에는 상당한 지각변동이 있었다. 학교자율화 조치로 0교시, 야간자율학습 등 학생들의 건강권을 위한 규제들이 사라졌고, 귀족학교이자 엘리트교육의 산실이라 비판받아 온 자사고, 국제중과 같은 특수학교들이 늘었다. 또한 일제고사, 학업성적 공개, 학교선택제 등 학생 간, 학교 간 경쟁구도를 강화하고 학교서열화를 촉진시키는 정책들이 착실히 실행됐다. 게다가 정부가 추진해 온 대학자율화 조치는 ‘3불 정책(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폐지로 이어져 교육양극화로 굳어질 가능성이 커 학부모들의 근심만 늘고 있다. <br><br>한편, 미국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변화와 희망’을 키워드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됐다. 오바마는 교육개선을 자신의 강령으로 삼겠다고 밝히며, 미국의 경쟁력 강화 방안 중 하나로 교육개혁에 방점을 찍었다. 지금 미국이 직면한 여러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질 높은 공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지에서다. 오바마의 당선은 세계적 금융자본주의의 몰락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이지만, 경쟁과 선택을 강요하는 전국적인 학력평가로 몸살을 앓아온 부시 정부의 실패한 교육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선택이기도 했기에 그의 교육개혁 의지에 더욱 힘이 실린다.<br><br>실제 미국의 교육현실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몇 가지 수치를 통해 살펴보자. 미 고등학생들은 매년 120만 명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고, 그 수는 매년 6,000명씩 늘어나고 있다. 또한 고등학생 4명 중 1명인 29퍼센트는 제때에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다. 하지만 전체 직장의 2/3는 대졸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고 있어 고교 졸업률 저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학생들의 학력도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우리나라의 중 2학년에 해당하는 학생 중 70퍼센트는 교과서를 제대로 읽지 못해 학교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10개 중 3개 학교의 대학 신입생들은 고교과정을 반복해야 하고, 커뮤니티 대학(우리나라의 전문대와 유사)에서는 기본적인 교육을 위한 교정과정이 43퍼센트에 이른다. (참고 <a href="http://www.strongamericanschools.org/" target="_blank"><span style="COLOR: #2799aa">www.strongamericanschools.org</span></a>)<br><br>미 민주당 대선 교육공약집인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교육계획(Barack Obama and Joe Biden’s Plan For Lifetime Success Through Education)’을 통해 오바마는 미국 교육정책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일제고사와 같은 경쟁과 평가 중심의 교육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며, 학급당 인원 수 감축과 학교시설 증축 등의 교육복지를 높여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소수민족과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이 불평등한 교육을 받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교사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그들의 자율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이뤄나갈 예정이다. 오바마 정부의 개혁 방향은 지난 부시 정부와 영미식 교육정책을 그대로 들여온 이명박 정부의 행로와는 상반된다. <br><br><span class="p13 b gm r04"><strong><span style="COLOR: #d41a01">암기식, 주입식 수업 강요하는 일제고사</span></strong></span><br><br>특히, 오바마가 교육개혁을 위해 최우선적인 과제로 선택한 것은 NCLB(No Child Left Behind)법 개혁이다. NCLB법은 미국 부시 대통령이 취임 하자마자 ‘단 한 학생의 낙오자도 허용하지 않겠다’며 교육결과에 대한 책무성을 강화한 교육정책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일제고사를 추진한 배경과 맞닿아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시각차를 보이는 한미 교육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br><br>먼저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 정책에 대해 살펴보자. 2009년 새해가 밝자, 교육학자 154명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한 7명의 교사를 파면, 해임한 서울시교육청의 징계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는 요구였다. 그들은 “그동안 NCLB에 의한 시험이 바람직한 교수활동을 유도한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연구가 많이 보고됐다. 그런데 정부는 일제고사가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따질 새도 없이 교사들을 해직시켰다.”며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 실시를 강하게 비판했다.<br><br>실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2007년까지 10여 년 간, 우리나라에는 전국의 학생들에게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내용의 학력평가를 실시하는 일제고사가 없었다. 대신 전국에서 3~5퍼센트의 학생을 표집해 시험을 치르던 기초학력진단평가와 학업성취도평가가 있었으나 이명박 정부가 그 시험대상을 전체 학생으로 바꾼 것이다. 그 이유는 지역/계층 간 교육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며, 학생 개개인의 학력에 맞는 지도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br><br>그러나 현재 실시되고 있는 일제고사는 올해 초에 시행되는 학교정보공개와 맞물려 학생과 학교를 성적으로 줄 세우는 정책이라는 논란이 많다. 교육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격차를 더 벌어지게 만드는 꼴이다. 또한 어린 초등학생 때부터 성적 경쟁으로 학습 부담감을 주고, 각 학생의 학력에 맞는 지도를 하기는커녕 일선학교에서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시험문항과 비슷한 문제 풀이 위주로 암기식, 주입식 수업을 강화하는 부작용도 지적된다. <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올해에도 일제고사를 강행하겠다는 태도다. 지난해 7명의 교사 징계에 이어 강원도에서도 일제고사 대신 정상수업을 진행한 초등교사 3명을 파면, 1명을 해임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지난해 말 주요업무 보고에서 올해에도 일제고사를 변함없이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br><br><span class="p13 b gm r04"><strong><span style="COLOR: #d41a01">부시의 NCLB 정책이 실패한 이유</span></strong></span><br><br>그렇다면 미국 부시 정부의 NCLB 정책은 왜 실패했을까. NCLB법은 전통적으로 주정부 차원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존중되어온 미국의 교육정책에 연방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NCLB 정책은 미국학생들의 기초 학력 저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책무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의무화하였다.<span id="callbacknestsisuntistorycom2631487" style="FLOAT: left; WIDTH: 226px; HEIGHT: 196px"><object id="sisuntistorycom2631487" codebase="http://f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8,0,0,0" height="100%" width="100%"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param name="_cx" value="5080"><param name="_cy" value="5080"><param name="FlashVars" value=""><param name="Movie" value="http://cfs.tistory.com/blog/plugins/CallBack/callback.swf?destDocId=callbacknestsisuntistorycom2631487&amp;id=263&amp;callbackId=sisuntistorycom2631487&amp;host=http://sisun.tistory.com&amp;float=left&amp;"><param name="Src" value="http://cfs.tistory.com/blog/plugins/CallBack/callback.swf?destDocId=callbacknestsisuntistorycom2631487&amp;id=263&amp;callbackId=sisuntistorycom2631487&amp;host=http://sisun.tistory.com&amp;float=left&amp;"><param name="WMode" value="Transparent"><param name="Play" value="0"><param name="Loop" value="-1"><param name="Quality" value="High"><param name="SAlign" value="LT"><param name="Menu" value="-1"><param name="Base" value=""><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param name="Scale" value="NoScale"><param name="DeviceFont" value="0"><param name="EmbedMovie" value="0"><param name="BGColor" value=""><param name="SWRemote" value=""><param name="MovieData" value=""><param name="SeamlessTabbing" value="1"><param name="Profile" value="0"><param name="ProfileAddress" value=""><param name="ProfilePort" value="0"><param name="AllowNetworking" value="all"><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false">    <embed width="100%" height="100%" wmode="transparent" id="sisuntistorycom2631487" src="http://cfs.tistory.com/blog/plugins/CallBack/callback.swf?destDocId=callbacknestsisuntistorycom2631487&id=263&callbackId=sisuntistorycom2631487&host=http://sisun.tistory.com&float=left&" allowscriptaccess="always" menu="false"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embed></object></span><br><br>이의 핵심 내용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책임을 묻는 체계적인 상벌제도와 교육재정의 지원이다. 연방정부의 재정지원(title 1)을 받으려면 모든 공립학교들의 3~8학년 학생들이 매년 정규적인 학력평가(영어, 수학)를 치러야 한다. 또 각 주 정부는 4학년과 8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연방정부의 학력검사에 참여해야 한다. 과거 클린턴 정부 때는 일부 학교를 표본 추출하여 표준화 학력검사를 실시했으나, 이제 이전까지 제외되었던 특정 인종 학생들과 장애 학생들에게까지 연도별 학업성취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 주정부와 교육청, 학교의 책무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br><br>계속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의 부모에게는 스쿨 바우처 등 여러 방안에 대한 선택권을 주었다. 스쿨 바우처는 ‘학부모들에게 일정액의 바우처(voucher, 일명 학교상품권)를 지급해 이 돈으로 자녀의 학교를 선택하게 하자’는 학교 선택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자녀 개인의 성적뿐만 아니라 학교 등급까지 표준학력고사 결과를 공개했으므로, 학부모들은 이를 바탕으로 각 학교를 비교, 선택했다. 그리고 선택된 학교들 중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공립학교가 성적 향상 요망학교나 실패학교로 규정되면 주 정부는 학부모에게 바우처를 줘서 자녀가 선택한 사립학교에 등록금 대신 납부하도록 했다. 대신 공립학교의 경우 학생 한 명이 사립학교를 선택할 때마다 교육비가 감소되어 교육재정 감소의 압박을 받는다. <br><br>몇 년 동안 성적이 나쁜 학교들은 영리목적의 기업에 위탁되거나 차터스쿨(charter school)로 전환하여 학교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부실 공립학교들을 인수해 경영해온 미국 최대의 공립학교 위탁기업인 에디슨스쿨의 경우, 지속적으로 수익금을 허위보도 해온데다 최근에는 주가가 85퍼센트나 하락하면서 올해 당장 학교를 운영할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에디슨스쿨은 미국 22개주에 걸쳐 136개 학교를 기업처럼 운영했고 한때 투자자와 학부모의 큰 호응으로 성장가도를 달려왔으나,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지면서 학생들의 성적향상 폭이나 학비부담 면에서도 다른 공립학교와 별반 차이가 없는 실패한 학교가 되고 있다. <br><br><strong><span style="COLOR: #d41a01"><span class="p13 b gm r04">‘차라리 돈 안 받고 NCLB 안 한다’</span><br></span></strong><br>NCLB법은 결국 실패한 교육정책으로, 근본적인 수정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미국의 공립학교들은 시험 결과와 학교등급이 공개되면서 학업성취도 성적을 올리기 위한 교육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학생 성적과 학교 평균을 올리지 못하면 교장, 교사들이 쫓겨나고 학교가 문을 닫을 판이니 학교는 시험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성적을 올리기 위한 온갖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br><br>게다가 연방정부가 NCLB의 재정지원을 소홀히 하자, 각 주정부와 교육청, 학교 단위에서는 ‘차라리 돈 안 받고 NCLB 안 한다’며 연방교육비 지원을 거부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도시 빈민지역이나 시골의 ‘title 1’(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학교)의 공립학교들은 교육시설, 교사의 자질과 열성도가 매우 낮아 학생들의 학력수준과 학교생활의 질이 현저히 낮다. 이러한 학교는 ‘실패학교’라는 꼬리표를 피해갈 방법이 없다.<br><br>바우처 제도가 겉으로는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결국 학교를 상품화해 사립학교를 살찌우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교육 재정으로 사립학교를 지원함으로써 공립학교의 재원을 고갈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공교육을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바우처를 받더라도 빈자리가 없는 사립학교에 학생을 더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지원하는 등의 조치는 전무해 학교 선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학생도 성적과 소득이 높은 극소수 학생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지역의 학생들에게 사립학교에 갈 수 있는 교육바우처 대신에 부유한 지역에 집을 살 수 있는 주택바우처를 주라’는 반박은 여기에서 기인한다.<br><br><strong><span style="COLOR: #d41a01"><span class="p13 b gm r04">새로운 평가방식으로 경쟁과 처벌 시스템 개혁해야</span><br></span></strong><br>이로 인해 미 NCLB법에 근거한 일제식 학업성취도 평가,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이 보장되는 스쿨 바우처(school voucher) 프로그램, 대안공립학교인 차터스쿨 등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교육정책에 변화가 예견된다. 이는 부시정부의 교육개혁 중 가장 많이 비판 받아온 교육시장화 정책이다. 오바마의 교육공약을 통해 NCLB 개선안의 개략적 맥락을 살펴보자.<br><br>첫째, 오바마는 교사나 교장, 학교에게 NCLB 방침을 지키도록 강요하기보다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학생들의 학업을 향상시키기 위한 충분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통해 고급 인력의 교사를 확보하고, 부정적인 보상이 아니라 긍정적인 보상을 해줌으로써 교사들을 우대하겠다고 약속한다. NCLB가 교육종사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아이들에 대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br><br>둘째, 오바마는 학생들에게 일 년 내내 규격화된 시험을 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학생들의 학업을 향상시키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고 학생들의 성취를 기록하기 위해 평가 방식을 결과중심에서 과정중심으로 개선하겠다고 한다. 수업방식도 학생 개개인이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개별화 맞춤형으로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획일적인 평가방식이 아니라 리서치, 과학적 조사를 통한 문제해결능력, 학생들의 의견 개진 등의 교육을 실시해 그에 맞는 평가 방안으로 바꾸겠다는 거다. 교사들을 더 이상 성적을 높이기 위한 수업으로 내몰지 않겠다는 의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br><br>셋째, 오바마는 처벌이 아닌 지원 위주로 전환하는 형태로 책무성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본다. 학습장애가 있어 특수교육을 받는 아이들이나 이민 등의 이유로 아직 영어가 서투른 아이들에게 평가결과에 따라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에 적절한 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학생에게 성적 향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졸업 때까지 학업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생각이다. <br><br>오바마의 NCLB 개선안은 그동안 민주당을 비롯해 전국교육자협의회(NEA), 미국교사연맹(AFT) 등이 ‘교육은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라고 주장하면서 일제식 학업성취도 평가와 학교선택제를 반대해온 결과를 반영했다. 이들은 사회 기본적인 공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공교육의 기본 이념을 포기하고, 공공 교육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교육시장화 논리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br><br>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미국에서 사실상 실패한 정책인 NCLB법을 모방하고 있다. 예외 없이 모든 학생을 평가하는 일제고사, 학업성적 공개, 학교선택제 도입 등은 이미 국제적인 교육개혁의 흐름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영미식 교육모델이다. 교육시장화 정책을 전면 수정한 오바마의 교육개혁이 시작된 지금, 이명박 정부는 부시 공화당 정부의 교육정책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진지하게 뒤돌아봐야 한다.<br><br>이영탁/교사, 새사연 이사</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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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9 Feb 2009 13:25:08 GMT</pubDate>
		<dc:creator>온달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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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펌]‘교육의 얼굴을 한 시장’ 원하는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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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class="titlebox"><h2><a href="http://blog.aladdin.co.kr/happyteacher/934452">‘교육의 얼굴을 한 시장’ 원하는가?</a></h2></div><br clear="all"><div class="article" id="article_934452"><div id="div_goodsLayer_934452"></div><!-- 페이퍼 제한 너비 초과 안내 메시지 --><div id="guidecomment_newwin_934452" style="DISPLAY: none"><div><br clear="all"></div><p></p><span style="FONT-SIZE: 100%; COLOR: #017918; FONT-FAMILY: 바탕"><em>&nbsp; 학교 위에 국가가, 국가 위에 시장이 있으니 학교는 국가정책보다 시장의 이윤 여부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해진다. 교사도 학생도 학교도 상시 구조조정의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마당에 ‘지속가능한 교육’이 발붙일 여지가 어디 있는가.</em></span> </div><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바탕">&nbsp; 교육부가 교사 성과급을 굳이 차등해서 지급하겠다는 건 긴 서사의 서장이다. 그 끝은 ‘교육의 소멸’이다. 왜 그런가? </span><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바탕">&nbsp; 교사의 성과를 계량화하기 위해 현재는 수업시수, 담임, 보직, 수상경력 등이 나열돼 있지만 이는 ‘미끼’일 따름이다. 곧 시행된다는 교사평가는 교장, 교감, 동료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하도록 돼 있는데 이 역시 문제가 많아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차피 교사에 대한 ‘평가’로 성과급을 ‘차등’해야겠다면 저항이 덜한 숫자로 기준을 삼을 수밖에 없다. 가장 분명한 숫자는 학생들의 학업성적이다. 즉 이 모든 혼란은 결국 ‘학교별 학생성적 평균’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이후는 뻔한 수순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미 학교를 시장화한 미국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span><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바탕">&nbsp;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부임하자마자 ‘낙오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을 시행했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쉼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목표한 학업 수준에 이르지 못한 학교는 교장·교사 해임, 학생들이 사립학교로 옮길 수 있도록 학비지급(바우처 제도), 자율경영의 차터스쿨 전환, 아예 사기업이 학교를 맡는 위탁경영 등 ‘시장화 구조조정’을 겪게 된다. 해당 학교는 망하고 교사는 학교를 떠난다. 낙오학생방지법이 시행된 후인 2003년, 5년차 교사의 46%가 학교를 떠났다. ‘퇴출’이라기보다 ‘이직’에 가깝다. 교직은 ‘더 나은 연봉’을 잡기까지의 비정규직, 혹은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추락한다. 그래도 시장주의자 눈에는 46%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니 성공으로 보인다. </span><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바탕">&nbsp; 더 중요한 건 다음이다. 학생들 학업성취를 측정하기 위해 객관적인 평가 기관이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걸 민간에 맡긴다. 낙오학생방지법 때문에 미국 각 주는 6년 계약에 19억달러(객관식 유형)에서 많게는 53억달러(에세이나 자유주제 글쓰기)의 돈을 써야 한다. 간접비용까지 합하면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초국적 거대기업들이 이 ‘엄청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학력평가업체를 차렸다. ‘하코트 교육평가’, ‘시티비(CTB) 맥그로 힐’, ‘리버사이드 출판사’ 등 3~5개 업체가 학력평가시험 시장의 메이저들이다. 흥미로운 건 이 중 맥그로 힐이 부시 대통령 가족과 3대에 걸친 친분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2002월 1월 〈네이션〉 보도). 그렇다면 이는 ‘시장→로비→정책’으로 이어지는 시장국가 미국의 전형적 모습이기도 한 셈이다. 가히 ‘교육의 얼굴을 한 시장’이라 할 만하다. </span><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바탕">&nbsp; 이쯤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2차 협상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쪽 대표가 “교육평가 시스템에 관심이 있다”고 한 말이 새삼 생생하게 들리지 않는가? 국경의 문턱을 없애면 이들 평가업체가 물밀듯 몰려들 것이다. 학교 위에 국가가, 국가 위에 시장이 있으니 학교는 국가정책보다 시장의 이윤 여부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해진다. 기업들이 학생과 교사와 학교 평가의 전권을 가지고 우리 교육을 쥐락펴락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도 학생도 학교도 상시 구조조정의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마당에 ‘지속가능한 교육’이 발붙일 여지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교육은 자연스레 소멸한다. 이것이 ‘교사 성과급 차등지급’으로 비롯되는 서사의 종막이다. 우리가 이런 세상을 원하고 있는가? </span><p align="justify"><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바탕">&nbsp; 경쟁, 효율, 평가, 구조조정으로 순환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시스템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것은 약인 동시에 독인 파르마콘(pharmakon)이며 ‘비시장 시스템’인 학교에서는 단연코 독으로 작용한다. 학교는 무엇인가? 경쟁하는 곳인가, 협력하는 곳인가. 계층분리하는 곳인가, 계층화합하는 곳인가. 완벽하게 승리하는 곳인가, 실패를 통해 성숙하는 곳인가. 먼저 이런 기본들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진짜 교육 경쟁력이라 본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span><p align="right"><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바탕">이석범 /소설가·서울 신원중 교사</span></span></p></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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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교육문제</category>

		<comments>http://jaak.egloos.com/2284312#comments</comments>
		<pubDate>Mon, 09 Feb 2009 13:08:47 GMT</pubDate>
		<dc:creator>온달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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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퍼옴]교사와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들과 그에 따른 교사의 덕(virtue) - 부정변증법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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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6pt; FONT-FAMILY: 아리따 SB">교사와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들과 그에 따른 교사의 덕(virtue) </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5pt; FONT-FAMILY: 아리따 SB"><br></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5pt; FONT-FAMILY: 아리따 SB">-당신은 좋은 교사인가?</span></p><p class="바탕글">&nbsp; <?XML:NAMESPACE PREFIX = O /><o:P></o:P></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right"><br></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font size="3">전교조운동이 초심을 잃어간다는 비판이 쏟아질 무렵 “좋은 교사”라는타이틀을 건 단체가 발족해서 꽤 큰 반향을 일으킨 적 있다. 그 반향은 교육운동가를 자처하던 활동가들에게 먼저 좋은 교사가되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는 소리였다. 좋은 교사가 되지 못하는데 어떤 교육 실천이 운동성을 갖출 수 있겠는가하는 자성의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고, 혹은 외부에서 강요되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게 풀릴 일은 아니다.</font></p><p class="바탕글">&nbsp;</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좋은 교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수천년간 끊임없이 되물어진 그러나 아직도 무성한 논란만 나부끼는 철학의 근본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font></p><p class="바탕글">&nbsp;</p><p class="바탕글"><font size="3">좋음, 즉 선(good)이 사용되는 경우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맥락이있다. 첫째는 어떤 역할, 과업, 직업, 혹은 신분에 걸맞는 덕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플라톤은 각 집단의 덕이 초월적으로결정되며 거기에 적합한 사람들의 소질도 선천적인 것으로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덕들은 폴리스의 관습과 전통에서 유래하며적합한 사람들의 소질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개발된다고 보았다. 헬레니즘-로마시대에는 선을 이런 방식으로 정당화하기에는 사회가너무 크고 복잡해졌다. 따라서 선은 구체적인 직업이나 지위가 아니라 거대한 공동체의 시민 혹은 더 큰 인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갖추어야 하는 덕을 갖추었다는 의미다.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시민이기를 혹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답적인선은 구체적인 삶에 지침과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선의 세 번째 맥락이 등장하는데 이는 결과로 평가하는 덕이다. 좋은결과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즉 무엇을 하던 간에 의도한 바의 목적을 달성하면 선이 된다. 문제는 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것인데, 사회에 쾌락과 행복을 증가시키고 고통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그 목적은 정당화된다.</font></p><p class="바탕글">&nbsp;</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제 우리는 아주 단순한 “좋은 교사”라는 말을 치밀하게 곱씹어야 한다.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는 적어도 세 가지 차원의 의미를 포함한다. 1) 교사라고 하는 특정한 직무, 과업에 적합한 덕을가지고 있다, 2)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 지켜 마땅한 도리를 지키는 교사, 3) 교육이라는 활동을 통해 사회에 좋은 결과를가져오는 교사. 이 중 2)의 경우는 구태여 교사라는 말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선한 사람, 덕스러운 시민이라는 말과 사실상동의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좋은 교사라는 말을 교사라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 교육이라는 활동의 목적과 관련하여 고찰해야한다. </font></p><p class="바탕글">&nbsp;</p><p class="개요 1"><strong><span style="FONT-SIZE: 130%">1. 교사란 어떤 직무인가? -교직관에 따른 교사의 덕</span></strong></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font size="3">첫 번째 기준에 따르자면 좋은 교사는 교사가 마땅히 가져야 할 능력과태도, 즉 덕을 가진 교사다. 그런데 플라톤 시대와 달리 우리는 시민은커녕 교사라는 단일 직종에 대해서조차 합의할수 있는 그런덕의 목록을 갖추기 어렵다. 그 이유는 교사라는 직종을 바라보는 관점이 통일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의 덕은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먼저 “어떤 교직관에 입각한 교사인가?”물음이 해결되어야 제기될 수 있다. 교직관에 따라 같은 속성이덕으로 칭송될 수도 악덕으로 비난받을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직관이 대단히 다양하여 분석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사람에 따라 다양하게도 단순하게도 분류하겠지만 대개는 노동자관, 성직관, 전문직관으로 정리된다는데 동의하는 추세다.</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font size="3">노동자관에 따른 교사의 덕</font></span></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 관점은 교사가 공공부문에서 교육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라는것이다. 노동자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쓸 것인가 자체가 또 다른 논문 한편을 요구하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재생산비용을 임금으로지급받고 사용자가 지정한 시간만큼 노동력을 지출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자. 이 관점에 서면 교사의 업무는 다른 직종과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단지 일정시간동안 노동력을 지출하는 활동들 중 한 양식일 뿐이다. 교사는 다만 교육이라는 노동 분업의한 파트를 맡아서 하고 있을 뿐이다. 교사가 다른 분야 노동자가 아니라 교사인 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따르면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특별한 교육기관은 필요하지 않다. 교사는 건전한 양식을 갖춘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 공장에서 금속노동자가 섬유노동자로 전환하기 위해 별다른 훈련 프로그램이 요구되지 않는 것과 같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따라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크게다르지 않다. 특히 교사는 공공부문 노동자이기 때문에 여타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 행위기준은 상급자의 지시나 문서화된 규정이고, 바람직한 교직문화는 규정과 규칙을 꼼꼼히 완수하고, 상급자 지시에 복종하며 맡은 일을분명히 하는 풍토에 도움이 되는 태도와 양식이다. 칼출근, 칼퇴근, 공문대로의 업무수행, 시간 엄수와 정량 등이다. 교사에 대한도덕적 판단은 규정·상급자 지시 위반여부에 따라 정당화 혹은 비난된다. 이 관점은 교원노조의 정책에도 영향을 주어 주로 교사에대한 처우, 복리 등을 주된 목적으로 삼으며 학교, 정부, 지역사회를 철저히 고용주로 간주한다.</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font size="3">성직관에 따른 교사의 덕</font></span></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 관점은 교사가 사회의 도덕 공동체를 책임지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았다고보는 관점이다. 뒤르켐의 “세속적 성직자”라는 용어에서 이 관점은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자본주의의 보편화와 전통사회의해체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수많은 노동자들의 이주를 야기하였고, 자연히 이들의 자녀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특히이들의 이른바 도덕적 타락은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애덤 스미스도 이 도덕적 타락의 해법으로 공교육을 제시하였다.특히 근대 민족주의의 발흥과 함께 신세대의 도덕적 성장과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보장하기 위한 대중적인 공교육제도가 확립되었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에 따라 교사는 바로 이러한 고귀한 일을 담당하는 성직으로 대두되었다.교원양성을 위한 특별한 교육기관이 체계화된 것은 바로 이런 성직관으로서 교직관이 보편화되면서 부터다. 교사는 이런 중요한 직책을담당하기 때문에 그 양성과정부터 고도의 도덕성과 소명감을 갖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 입장에 서면 교사는 교사의 덕은 노동자관에서와 판이하다. 교사의 덕은다른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 혹은 공동체에의 헌신 등이 된다. 또 언제든지 공동체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고도의 도덕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사회의 규정이나 상급자의 지시는 중요하지 않다. 교사는 오직 빛나는 공동체의 전통,양심, 도덕적 호소에 의해 정당화되거나 비난될 뿐이다.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라는 말 속에 이 관점의 핵심이 나타나고있다. 이 관점에 서면 교원노조 역시 터무니 없는 것이 된다. 오히려 교사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봉사단체가 필요하다.</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font size="3">전문직관</font></span></p><p class="바탕글"><font size="3">교사가 이론적 기반과 실제적 방법(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라는 관점이다. 이관점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오래된 교직관이다. 실제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학자들은 교사이기도 했다. 이들이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대중교육이 확대된 근대 이후의 일이다. 즉 Professor와 Teacher가 분리된 것이다. 이때프로페서는 결코 대학의 교수만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한 동안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는 teacher로 중등학교 이상의 교사는professor로 불리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서 대학교수 외에는 모두 티쳐가 되었지만 그러나 프로페서의 의미는 여전히잔존하여 성직관과 상호간섭된 채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초등은 성직관이 중등은 전문직관이 더 큰 영향을주었지만 교육학과 심리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초등학교 교사에게도 전문직관의 영향이 확대되었다.</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전문직관에 입각하면 교사는 나름의 철학적·이론적 입장에 따라 교육 목적을수립해야 하며, 그 달성에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상급자 지시보다는 철학적, 과학적 옳음이 더중요하며, 각종 규정들도 여러 이론적 입장을 가진 교육자들이 토론하고 갱신해야 하는 대상이다. 즉 교사의 가장 중요한 덕은이론적이고 과학적인 지식과 양식이다. 교사에 대한 정당화와 비난 역시 어떤 이론적, 방법론적 근거에 대한 것이라야 한다. 이관점에 서면 특수한 교원양성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은 성직관과 동일하지만, 그 기관에서 행해지는 교육과 훈련의 내용은 상당히달라진다. 교원노조의 설립이 정당화 된다는 점에서는 노동자관과 같지만, 교원노조의 성격 역시 임금, 근로조건보다는 교사의 전문적판단과 작업의 권리를 부당한 간섭등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지금까지 세가지 교직관을 살펴보고 그것에 따른 교사의 덕을 살펴보았다.그런데 이 교직관들은 일종의 이념형으로 보아야 한다. 현실에서 교직관은 이 세 가지로 날카롭게 분류되지 않고 서로 뒤섞이기때문이다. 그러나 하나가 다른 둘보다 분명 더 강조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교사가 혹은 어떤 학교가 노동직, 성직, 전문직중 어떤 교직관을 강조하고 있는지 판단이 가능하다.</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그런데 이 셋 중 어떤 교직관이 더 우월한지 가리는 가치 평가적 진술은불가능하다. 그것은 교사가 일하고 있는 학교가 그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회변동이거의 없고, 노동분업도 단순한 사회에서 교사의 역할과 수시로 변동하고 복잡한 지식체계를 다루어야 하는 사회에서의 교사의 역할이같을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교사가 가지고 있는 교직관, 어떤 학교의 교직문화를 그 자체로 비판할 수 없다. 그 비판은해당사회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교직관도 달라지며, 당연히 교사의 덕도, 즉 좋은 교사의기준도 달라진다..</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교사는 어떤 교육적 행위를 수행했을 때 그것을 스스로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일련의 활동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사의 활동은, 그리고 어떤 학교의 일반적인 활동 양식과태도는 1) 상급자의 지시나 규정, 2)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나 학생에 대한 사랑, 3) 전문적 이론과 과학적 방법론 이 셋 중하나에 의해 정당화가 가능해야 한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행위나 활동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앞에서 제시한 셋 중 어디로도환원되지 않는 엉뚱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교사나 학교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예컨대 교사나 학교의 활동기준이 조변석개하여 일관성을찾아볼 수 없거나, 교사 혹은 교장의 변덕에 의존하는 경우, 또 “금전적 이익”, “출세와 승진” 등 엉뚱한 기준에 의해 활동을선택하는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font></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개요 1"><span style="FONT-SIZE: 130%"><strong>2.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육관에 따른 교사의 덕</strong></span></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제 좋은 교사의 기준을 목적론적으로 접근해 보자. 이 경우 좋은 교사는좋은 결과를 산출하는 교사, 즉 교육의 목적을 잘 달성한 교사가 된다. 이는 결국 “교육이 무엇이며, 무엇이라야 하는가?”의문제, 즉 교육관에 대한 물음을 요청한다. 교육관이 다르면 교육의 목적도 다르며 당연히 좋은 결과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실제교육철학의 숱한 논쟁은 항상 교육관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무리한 단순화를 감수하고 지금까지의 다양한 교육철학논쟁들을 망라하여 교육관들을 분류해보고 그것에 따른 좋은 교사의 기준을 찾아보도록 하자.</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모든 교육철학에 공통된 교육의 요소는 신세대에게 1) 의도적인 변화를일으킨다는 것이며, 2) 그 변화가 “가치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논쟁은 ㄱ)그 변화의 동력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ㄴ)“가치있는”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ㄱ)과 관련해서는 변화의 동력이 아동 외부에 있다는 관점과 내부에 있다는 관점으로나뉜다. ㄴ)과 관련해서는 그 기준이 이미 정해져있는가 아니면 교육 사태에서 형성해 나가는가 하는 관점으로 나뉜다. 이러한관점들을 조합하게 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교육관들을 정리할 수 있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font size="3">전통주의 교육관: 사회화로서 교육</font></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span>&nbsp;</p><p class="바탕글"><font size="3">전통주의 교육관은 공동체의 문화유산과 규범을 전수함으로써 신세대를 사회의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이 교육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교육관에서 “가치있는 것”은 공동체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규범이다. 이들이전수할 가치가 있는 이유는 오직 그것이 수세대에 걸쳐 전수되어왔기 때문이며,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규범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육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정당화된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또한 이 관점에서 변화의 원인은 아동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다.이를 듀이는 주조주의 교육관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사회, 공동체는 아동의 탄생 이전부터 있어왔고, 아동은 이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교육받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아동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에 있다. 따라서 교육내용은 가능하면원형 그대로 전수되어야 하며, 교사는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수할 것인가 고민해야지 그 내용까지 고민해서는 안 된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는 수많은 교육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비판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오래된,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관이다. 이 교육관에서 좋은 교사는 전수대상이 되는 문화유산과 도덕규범을 많이 알고있으면서 이를 성실하게 전수하는 일종의 노동자 혹은 공무원이 될 수 밖에 없다. 만약 학생들이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이함양된다면 이 교육관에서 결코 교육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font size="3">진보주의 교육관: 성장으로서 교육</font></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span>&nbsp;</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 교육관은 교육의 목적을 공동체, 사회에 두지 않고 아동의 성장에 둔다.이미 에라스무스가 이러한 교육관을 제기하였고, 루소의 『에밀』은 이 교육관의 정전이 되었다. 20세기 들어 장 피아제는 이흐름의 또 다른 대변자가 되었다. 여기 따르면 모든 아동은 각자가 타고난 성향과 소질에 따라 성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교사는 이러한 자발적인 성장이 방해받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적절히 이끌어주는 안내자다. 또한 교육할만한 가치있는 것들은 아동내부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아동의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아동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과정, 즉 성장의 과정이며,교육의 대상이 되는 가치있는 것들도 고정된 지식이나 문화 혹은 규범이 아니다. 이 교육관에서 좋은 결과는 아동의 자발성의 함양에있지 어떤 고정된 지식이나 규범의 전달여부에 있지 않다. 좋은 교사의 기준 역시 그가 발달심리학, 아동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가운데 그들의 자발성을 잘 이끌어내는가에 있지 교과에 대한 지식, 혹은 규범의 준수 등에 있지 않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font size="3">탐구주의 교육관: 지식과 문화의 구성</font></span></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 교육관은 필자가 분류한 범주로 듀이, 피터즈, 비고츠키, 프레이리가망라된다. 이들은 전통주의와 진보주의가 모두 교육목표를 이미 정해지고 고정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단지 그 소재지만 교사 혹은학생에게 부여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들은 교육의 목표는 교사에 있는 것도, 학생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사이에 존재하며,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사회적 상황을 인식하는 속에서 지식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으로 본다. 다만 듀이와프레이리는 그러한 과정이야말로 사회를 개선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보는 반면(교육→사회), 피터즈와 비고츠키는 사회적 상황이그러한 과정을 구성하는 기준을 제공할 것(사회→교육)이라고 보는 점에서 다르다.</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다만 이들의 이론적 입장에 따라 좋은 결과의 기준은 달라진다. 피터즈와비고츠키의 관점에 서면 좋은 결과는 그 사회의 문화와 규범을 상호작용을 통해 자발적으로 내면화할 수 있는 아동이다. 듀이와프레이리를 따르게 되면 좋은 결과는 자신들의 상황에서 출발하여 사회의 문화와 규범을 이해할 뿐 아니라 이것을 능동적으로개선하려는 아동이다. 좋은 교사의 기준도 역시 여기에서 도출된다. </font></p><p class="바탕글">&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font size="3">인적자본주의 교육관</font></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span>&nbsp;</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 교육관에 입각하면 교육은 사회의 생산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노동력을양성하는 것이다. 혹은 개인적 차원으로 교육은 학생의 직업 활동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입시교육은 인적자본주의의 기괴한 왜곡이다.학생들의 경제적 직업적 성공, 그리고 보다 넓게는 GDP의 성장, 기업 이윤의 확대가 좋은 결과가 된다. 이 교육관에 적합한교사는 주어진 과제를 학생들이 틀림없이 이수하고 기능을 습득하도록 해야 하는 단순한 조작자이며 기능인이다. </font></p><p class="바탕글">&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font size="3">행동주의 교육관</font></span></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 교육관은 교육을 교사가 학생에게 의도적인 작용(조작)을 가하여 일련의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본다. 이 교육관은 교육을 철저히 도구적이고 기능적인 작용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타일러의 말대로교육목표를 “철학에게 위임”해버렸다. 교사는 목표 이후부터 시작한다. 교사는 그 목표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그것을 달성하기위한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치밀하게 구성하고, 또 학생들의 상태까지 분석하여 이를 적용하고 피드백한다. 이 교육관에적합한 교사는 방법들에 숙달되고 과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전문직관, 목표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보유하지 않는다는점에서는 노동직관인 모순적 교사다. 즉 Profession이 아니라 Expert로서 전문가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개요 1"><span style="FONT-SIZE: 130%"><strong>3. 결론을 대신하여</strong></span></p><p class="바탕글"><font size="3">&nbsp; <o:P></o:P></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 글의 목적은 특정 교직관이나 교육관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교사가 자신의 활동이나 행위가 어떤 근거에 의해 선택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분석틀을 제시하는 것이다. 교직은 중요한 자리이며,교사는 그 자리에 선택된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어떤 관점에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행위나 활동을선택하였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관점에 서게 된 이유도 논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정당화는 교사가 서 있는 자리, 즉 사회적 맥락 속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특정 교직관 혹은 교육관은 그 자체로 정당화되지않는다. 대표적인 진보교육학자 듀이조차 자신의 교육관이 사회가 그런 교육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당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font></p><p class="바탕글">&nbsp;</p><p class="바탕글"><font size="3">이와 같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특정한 교직관과 교육관을 비판적으로검토하고, 자신의 교육활동을 이러한 교직관과 교육관에 비추어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은 당연히 과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삶의양식에서 습득되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학생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동료들과 문제의식을 교환하는삶의 양식에서만 얻어진다. </font></p><p class="바탕글"><font size="3">나는 교사가 전문직이 되는 것이, 진보적인 교육철학을 가지는 것이 무조건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교사는 경우에 따라 노동자처럼 혹은 공무원처럼 일할 수도 있다. 가장 보수적인 교육관을 가질수도 있다.그러나 자신이 왜 노동자처럼, 공무원처럼 일해야 하는지, 자신이 왜 보수적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납득하고 정당화한상태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헨리 지루가 말한 지식인으로서 교사는 바로 이런 의미이며, 편협한 전문가가 아니라 철학을 갖춘전문직으로서의 교사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 가능한 말이다.</font></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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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교육문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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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2 Nov 2008 05:05:20 GMT</pubDate>
		<dc:creator>온달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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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퍼옴]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부정변증법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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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4pt">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2pt"><br>절박한 과제로서 전문성 신장</span></p><p class="바탕글">&nbsp; 먼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절박한 이유부터 짚어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아무리 아니라 우겨도 교사의 대우가 평균을 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과잉보상이라는 견해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교사보다도 대우가 좋은 교수나 의사를 부러워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일들을 “당장 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웬만한 교육을 받은 성인들은 교사 정도의 일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 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교사를 곱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교사의 이미지는 무능한데도 평균이상의 월급을 받고 노동자들의 절반만 일하는 집단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사가 지금 같은 대우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분한 대우를 포기하던가 아니면 그만한 대우를 받을만한 합당한 자격이 있음을, 아니 더 좋은 대우를 받아도 모자람을 당당히 선언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이를 내어 보임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p><p class="바탕글">교사의 전문성은 단지 전공 지식이나 교육학에 기능적으로 숙달되는 것 이상의 것이라야 합니다. 이는 무수한 지식의 네트워크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적합한 교육방법을 선택, 구상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새로운 지식과 방법을 생산자로 설 수 있게 이끌 수 있는 그런 능력입니다. 이러한 전문성은 당연히 오랜 연구와 교실에서의 실천경험이 필요하며, 일반인은 물론 전문 연구자도 쉽게 넘볼 수 없는 능력입니다. 교육의 이러한 전문성을 끈질기게 연마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드러낼 때 우리에게 가해오는 부당한 압력과 비난은 중단될 것입니다.</p><p class="바탕글">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마냥 교사들의 안일과 나태로만 몰아세울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하고 의욕적인 교사들마저 중년기가 되면서 지치고 냉소적이 되면서 안일과 나태의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여러 구조적 장벽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장벽들은 교사 집단 바깥에서 형성된 사회적, 제도적 장벽일수도 있고 교사집단 내부에 형성된 문화적, 관습적 장벽일수도 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이런 장벽들을 한 번 짚어봅시다. </p><p class="바탕글">&nbsp;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2pt">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외부의 장벽들</span></p><p class="바탕글">&nbsp;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부족한 기자재</span></p><p class="바탕글">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청진기 하나 쥐어주고 암을 치료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의 전문성 역시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제약을 받습니다. 교실에 빔프로젝터가 있고 없고에 따라 수업을 구상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면, 냉방시설이 있는 교실과 없는 교실의 수업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의 실태는 비참합니다. 시설은 낡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경직되고 비대한 관료제로 인해 업그레이드도 매우 더디며, 학교간 편차도 심합니다. 학교의 각종 시설환경은 흡사 ‘타임캡슐’을 연상시킵니다. 그나마 신형의 시설과 기자재가 공급되어도 설치되는 그 순간부터 활용보다 분실·파손 방지, 관리 철저 등등의 잡무가 되어버립니다.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시설과 장비는 고장이 나고 파손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런 정상적인 생각을 갖추기에는 학교관리자라는 지위가 너무 비정상적입니다.</p><p class="바탕글">&nbsp;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전문성 신장에 적대적인 공간</span></p><p class="바탕글">교사들의 공간적 환경은 전문성 신장에 최악이며 적대적입니다. 교무실 배치를 보면 최소한의 공간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교사를 몰아넣으려는 목적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연구도 휴식도 불가능하며 그나마 비좁은 공간을 컴퓨터가 차지한 다음부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행정사무 아니면 인터넷 쇼핑뿐입니다. 초등 교사들은 교실을 연구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궁여지책에 불과합니다. 개별 연구실이 어렵더라도 교사전용 도서실, 세미나실 등만 있어도 교사문화가 전문성에 친화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공간이 설치되어 있는 학교가 있긴 하지만 이 경우도 활용보다는 관리에만 신경 쓰느라 잠겨있기 일수입니다.</p><p class="바탕글">&nbsp;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유인동기 부족</span></p><p class="바탕글">전문성 신장을 교사 개개인의 열정과 윤리에만 맡겨두는 것은 낭만적 생각입니다. 전문성 신장은 노고와 비용을 요구하며, 유인동기가 없다면 일부 열정적 교사들을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는 전문성을 신장해도 별 이득이 없고, 하지 않아도 별 손해가 없는 체제입니다. 전문성 신장의 유인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문성은 승진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성 신장이 경제적 보상, 명예, 승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소수의 특별한 교사를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전문성 신장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교육당국이 제공하는 얼마 안 되는 전문성 유인 동기는 주로 부정적 보상에 의존하려 들거나 쥐꼬리만한 혜택을 주면서 그것을 빌미로 산더미 같은 간섭을 하려들어 교사의 자존심을 손상시킵니다. </p><p class="바탕글">&nbsp;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행정사무와 낡은 관행</span></p><p class="바탕글">교사가 행정사무까지 보는 것은 교사의 전문성 뿐 아니라 행정직원들의 전문성도 손상시키는 최악의 조합입니다. 사실 교사 전문성 신장의 첫 걸음은 행정사무를 하지 않는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것은 행정 비전문가인 교사가 각종 행정사무를 적당히 나눠가지는 것은 행정직원에게도 모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행정업무를 행정직원이 전담하게 되면 비로소 그들은 쓸데 없는 불합리한 잡무를 분석하고 이를 간소화, 합리화 하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즉 행정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교사는 교실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지금까지 행정 잡무는 무능한 교사들의 도피처였습니다. 아무리 엉터리로 수업을 해도 공문서 몇 장 처리하면 용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정 잡무가 사라지면 무능한 교사가 도피할 영역이 없기 때문에 도리 없이 교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p><p class="바탕글">&nbsp;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남성의 지배의 문화</span></p><p class="바탕글">교사들의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따라서 젠더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교사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많은 여교사들이 교사와 주부라는 2중 지위를 가집니다. 그런데 주부라는 지위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는 시간에 각종 가정유지 노동을 해야 합니다. 부부교사가 아닌 경우 여교사가 배우자에게 동등한 가사노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교사의 배우자들이 대체로 여론주도층이라는 점이 더욱 문제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여교사들은 대기업에 다니는, 혹은 전문직인 배우자 앞에서 자신의 일이 그들이 하는 일 보다 더 어렵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사 하느라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여교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인 전문직 남성들은 직장에서 두고 온 자녀에게 미안해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 결과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직종은 열정과 패기로 전념하는 이미지가 형성되고,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교사는 주부가 적당히 겸직해도 되는 정도의 일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실로 무서운 이미지입니다. 이 마음속의 불평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전문성 신장의 장벽은 가정에서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p><p class="바탕글">&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2pt">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내 안의 장벽들</span></p><p class="바탕글">&nbsp; 지금까지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을 살펴보면 제도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이라 교사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 처럼 착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상 외부의 장벽 못지않게 교사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전문성 신장의 장벽도 만만치 않습니다. </p><p class="바탕글">&nbsp;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자유를 번거로워하는 타성</span></p><p class="바탕글">주로 중년층 이상의 교사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입니다. 사실 전문직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위해 치뤄야 할 책무성이란 비용을 요구합니다. 사실 수업을 스스로 구상해서 실시하는 것은 매우 고들픈 일입니다. 그냥 정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수업이 훨씬 노고가 덜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정해진 수업만 하고 남는 시간을 여흥과 쇼핑으로 탕진하는 교사들의 수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안락함은 자율성을 포기한 댓가, 즉 노예의 안락함입니다. 물론 교사를 부러워하는 시선이 전문성보다 노예의 안락함에 끌렸기 때문인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젊은이들 중에는 이 노예의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교사가 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교사에 대한 좋은 대우는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과도기에 불과합니다. 노예의 안락함에 안주하고 있는 교사에게 지금과 같은 대우를 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입니다. 하루에 4~5시간 정도만 노동하고, 1년의 1/3이 휴가인 이유는 남는 시간동안 전문성을 신장하라는 것이지 놀거나 쉬라는 것이 아닙니다. 1999년 캐나다 교원노조의 투쟁 슬로건이 “하루 1시간의 공강시간 확보!”였음을, 레이건 시절 미국 교사들이 하루 45분의 비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루에 2~3시간씩 남는 시간을 의미없는 웹서핑, 싸이질, 수다 등으로 탕진해도 되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p><p class="바탕글">&nbsp;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교육학 소비자주의</span></p><p class="바탕글">교육학은 이미 완결된 매뉴얼이 아니라 구체적인 교육을 통해 수정, 보완, 발전되어야 하는 일련의 실천입니다. 따라서 교육학과 수업은 구별되지 않으며, 교육학자와 교사도 구별되지 않습니다. 교실은 단지 교육학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니라 생성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이 교육학을 배우고 익혀야 할 완성된 교수-학습 패키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교사들조차 교육학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머물러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창조적으로 변화, 발전시키기 보다 기계적으로 적용한 뒤 “역시 한국 현실에는 이런 수업이 안 돼.”라며 지레 포기해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젊어서는 다양한 교수-학습을 시도해 보다가 나이 들어갈수록 단순 강의형에 안주해 버리는 불행한 루틴이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학교 현장을 모르는 교육학자들의 탁상공론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을 아는 교육학자가 달리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교사 외에 누가 학교 현장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교사가 교육학의 소비자인지 생산자인지의 답은 분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행복관의 부재</span></p><p class="바탕글">이런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이 옳다고 치자. 하지만 난 수업 대충 하고, 월급이나 받고, 남는 시간을 쇼핑하고, 친구만나 수다 떨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 무엇 때문에 아무 보상도 없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단 말인가?” 물론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태도에서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모두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실현할 때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고난 본성보다는 외부에서 강요된 기준에 따르도록 강요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교사인 우리 역시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입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행복은 결과를 얻으면 얻을수록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는 허무한 행복입니다. 만약 미결정적 주체인 아동들이 타고난 본성을 실현하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에 공감하는 그 아름다운 경험을 한 번이라도 겪는다면, 우리는 저 허무한 행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프뢰벨은 아동의 교육은 잘못된 교육을 받은 어른이 자신을 고칠 수 있는 치유라고 말했던 것입니다.</p><p class="바탕글">&nbsp;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원자화 경향</span></p><p class="바탕글">최근 성실하고 진취적인 젊은 교사들일수록 자주 토로하는 고민이 너무 일이 많고, 힘들고, 바쁘다고 합니다. 수업 준비하는 것도 벅차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산더미처럼 보이고, 면담은 또 어찌해야 할지 깜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는 교사들의 공통점은 이 모든 것을 홀로 한다는 것입니다. 홀로 자료 준비하고, 홀로 면담 준비하고, 홀로 업무를 처리합니다. 동료나 선배는 단지 고충을 토로하고 동정심이나 공감을 얻어내는 대상일 뿐, 함께 공부하고,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식은 소통과 공유를 통해 생성되지 결코 고독한 은둔을 통해 형성되지 않습니다. 안다는 것은 행함이며 행함은 곧 말하는 것이고, 말함은 곧 공동으로 행함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혼자 밤을 새지 말고 스승에게 말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최근 교사들의 원자화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전교조 역시 과거와 같은 공동의 실천단위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교조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체할만한 새로운 실천단위가 나온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공동의 실천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개체화된 인간은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모두 “잠재적인 나찌”입니다. 우리는 나찌들에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p><p class="바탕글">&nbsp; <o:p></o: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2pt">전문성의 새로운 정립을 위하여</span></p><p class="바탕글">&nbsp; 지금까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장벽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그 동안 전문성이라고 하면 막스 베버가 말한 “차갑고 영혼 없는 전문가”의 속성을 떠올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전문성은 차라리 듀이가 말한 “자유로운 연구자들의 공동체”의 속성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정해진 매뉴얼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의 애정과 창의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사의 전문성 신장은 교사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의 새로운 의미 정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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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교육문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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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1 Nov 2008 10:51:02 GMT</pubDate>
		<dc:creator>온달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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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10/24 공개수업 준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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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BACKGROUND-COLOR: #66ffff">도입</span><br>&nbsp;&nbsp;&nbsp;&nbsp;원 둘레 이야기...<br>&nbsp;&nbsp;&nbsp;&nbsp;--- 모형자동차 경주대회 이야기하기 <span style="BACKGROUND-COLOR: #c0c0c0">모형자동차 경주 참고 : </span><a href="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gK0eQz8__1w$"><span style="BACKGROUND-COLOR: #c0c0c0">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gK0eQz8__1w$</span></a><br>&nbsp;&nbsp;&nbsp;&nbsp;--- 지난 1학기 반별 달리기 대회에서 아쉽게 3등(?)한 이야기 하기(읽어주기---학생이 읽어도 오케이)<br>&nbsp;&nbsp;&nbsp;&nbsp;--- 문득 이런 생각 : 곡선 트랙 달릴때 둥글게 달리지 않고 직선으로 바로 달리면&nbsp;얼마나(몇배) 더 유리할까 ?&nbsp;2배...3배...4배...???<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span><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span style="BACKGROUND-COLOR: #c0c0c0">(원심력을 무시하고 거리상으로만 비교했을때)&nbsp;</span></span><br>&nbsp;&nbsp;&nbsp;&nbsp;--- 구글 스케치패드로 간단히 그려서 보여주기.<br><br><span style="BACKGROUND-COLOR: #66ffff">전개<br></span>&nbsp;&nbsp;&nbsp;&nbsp;(학습안내) 목표 및 과정&nbsp;안내 및 토의<br>&nbsp;&nbsp;&nbsp;&nbsp;(약속하기) <u>원 둘레 길이 = 원주</u>,&nbsp; 지름,&nbsp; 반지름,&nbsp; 원의 중심<br>&nbsp;&nbsp;&nbsp;&nbsp;(생활에서)&nbsp;다양한 구체물로 원주와 지름의 비 알아보기<br>&nbsp;&nbsp;&nbsp;&nbsp;(알키메데스법으로)&nbsp;<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아르키메데스 이야기 잠깐하고, 어떻게 계산했을지 대화로 풀어가기<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원의 내접, 외접하는 도형 그리는 법 알아보기<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4각,6각,8각,10각,12각의 내접, 외접한 도형의 둘레 길이와 지름의 비 알아보기<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그래프로 나타내 보기<br><br><span style="BACKGROUND-COLOR: #66ffff">정리<br></span>&nbsp;&nbsp;&nbsp;&nbsp;(약속하기) 원주율이란 ? 파이(π) = 3.14...,&nbsp; 원주/지름<br>&nbsp;&nbsp;&nbsp;&nbsp;(보충) 원주 구하기 - 간단한 지름 또는 반지름 주고 원주 구하기 문제?<br>&nbsp;&nbsp;&nbsp;&nbsp;(심화) 심화문제 풀기 - 프리스비 원반 문제?<br><br><br>&nbsp;참고----------------------------<br><br></p><div style="TEXT-ALIGN: center"><a name="두 개의 동전"><strong><span style="FONT-SIZE: 170%; COLOR: #0000ff; FONT-FAMILY: 굴림체">두 개의 동전</span></strong></a>&nbsp;</div><div align="center"><table cellpadding="0" width="500" border="0"><tbody><tr><td valign="top"><p><span style="FONT-SIZE: 100%"></span><font face="굴림체" size="3"><br></p><div style="TEXT-ALIGN: center"><font face="굴림체" size="3"><div style="TEXT-ALIGN: left"><p><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체">아래 그림에서 A, B 두 개의 동전이 있다. </span></p><p><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체">동전 B의 반지름은 동전 A의 반지름의 3배이고 큰 동전 B는 고정되어 있어 움직이지 않고, 작은 동전 A를 큰 동전 B의 원주를 따라서 회전시킨다고 하자. </span></p><p><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체">작은 동전이 큰 동전의 원주를 따라 완전히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면 동전 자신은 몇 번을 회전하게 될까? <br></span></p></div></font></div></font><p>&nbsp; <div align="center"><table cellpadding="2" border="3"><tbody><tr><td width="309"><p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 170%; COLOR: #0000ff; FONT-FAMILY: 굴림체"><b><img height="322" src="http://math.kongju.ac.kr/math/main/data/story1/1vodz4-1.GIF" width="336" align="right" border="0"></b></span></p></td></tr></tbody></table></div></td></tr></tbody></table></div><p>&nbsp; <div align="center"><br><table cellpadding="0" width="500" border="0"><tbody><tr><td><p><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br><span style="FONT-SIZE: 100%">&nbsp;풀이 </span></span></p><p><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체">이문제의 정답은 작은 동전이 3회전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틀린 것이다. 3회전이 아니라 4회전이다. </span></p><p><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체">그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10원짜리 동전 두 개를 그림과 같이 배치하여 하나는 움직이지 않게 잡고, 고정시킨 동전의 가장자리를 따라 회전시켜 보자. 그러면 예상 밖으로 1회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2회전 해 버림을 알 수 있다. </span></p><p><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체">일반적으로 어떤 물체가 스스로 회전하면서 다른 물체의 주위를 따라 돌 때, 그 횟수는직접 셀 수 있는 것보다 1회전을 더 많이 한다. </span></p><p><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체">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의 경우 지구 자체의 회전(자전운동)이 365.25회전이 아니라 366.25회전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br><br></span></p></td></tr></tbody></table></div>파이데이(3.14) 신문기사 <a href="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534490&amp;year=2007&amp;rtlog=SP">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534490&amp;year=2007&amp;rtlog=SP</a><br><br><div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image_mid"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style="CURSOR: pointer"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3/14/15/c0033815_47da1568da1fc.jpg');" height="435"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3/14/15/c0033815_47da1568da1fc.jpg" width="580" border="0"></div><br><object codebase="http://fpdownload.macromedia.com/get/flashplayer/current/swflash.cab" height="390" width="480"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param name="_cx" value="5080"><param name="_cy" value="5080"><param name="FlashVars" value=""><param name="Movie" value="http://www.storyberry.com/BerryPlayer.swf?gameno=2714"><param name="Src" value="http://www.storyberry.com/BerryPlayer.swf?gameno=2714"><param name="WMode" value="Window"><param name="Play" value="-1"><param name="Loop" value="-1"><param name="Quality" value="High"><param name="SAlign" value=""><param name="Menu" value="-1"><param name="Base" value=""><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param name="Scale" value="ShowAll"><param name="DeviceFont" value="0"><param name="EmbedMovie" value="0"><param name="BGColor" value=""><param name="SWRemote" value=""><param name="MovieData" value=""><param name="SeamlessTabbing" value="1"><param name="Profile" value="0"><param name="ProfileAddress" value=""><param name="ProfilePort" value="0"><param name="AllowNetworking" value="all"><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false"><embed src="http://www.storyberry.com/BerryPlayer.swf?gameno=2714" allowfullscreen="true" quality="high" pluginspage="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80" height="390"></embed></object><br><div style="TEXT-ALIGN: center"><br><embed src="http://www.youtube.com/v/G8iWZqaVsbo&amp;hl=ko&amp;fs=1"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br><br></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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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수업준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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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5 Oct 2008 14:46:11 GMT</pubDate>
		<dc:creator>온달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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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과학6-2 일기 예보 일기도와 실제 날씨 비고 [3/7]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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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 목표 : 날씨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방법을 말할 수 있고, 오늘의 일기 예보를 실제 날씨와 비교할 수 있다. <br><br>* 과정<br>&nbsp;&nbsp;&nbsp;&nbsp;1) 기상위성 설명 ?<br>&nbsp;&nbsp;&nbsp;&nbsp;2) 일기도, 구름사진 차이점과 장단점<br>&nbsp;&nbsp;&nbsp;&nbsp;3) 현재 날씨의 일기도, 구름사진 비교 <a href="http://www.kma.go.kr/cht/cht_01.jsp">http://www.kma.go.kr/cht/cht_01.jsp</a><br><div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9pt; COLOR: #ffcc33; FONT-FAMILY: '굴림체'">&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고기압과 저기압일 때의 일기도와 구름사진의 특징을 알아보기 </span></div><div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9pt; COLOR: #ffcc33; FONT-FAMILY: '굴림체'"><span style="COLOR: #ffcc33">&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고기압의 일기도와 구름사진은 구름이 없고 맑은 날씨이다.</span> </span></div><div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9pt;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체'"><span style="COLOR: #ffcc33">&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저기압의 구름사진이나 일기도는 구름이 끼어 있어 흐린 날씨이고 비나 눈이 올 수 있다.</span> </span></div>&nbsp;&nbsp;&nbsp;&nbsp;4) 일기예보 방법 : <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신문, TV, 라디오, 전화 131, 인터넷 등으로 오늘의 일기예보를 발표</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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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수업준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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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5 Sep 2008 14:54:21 GMT</pubDate>
		<dc:creator>온달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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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과학 6-2 2.일기 예보 기압과 공기의 움직임 [2/7]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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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 목표 : 기압의 의미를 알고 주사기 실험을 통하여 기압과 공기의 움직임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br><br>* 과정<br>&nbsp;&nbsp;&nbsp;&nbsp;1) 생활 속 기압 예 : 산 정상, 음료수 병 딸때, 밥 할때 기압이 낮으면 설 익는다<br>&nbsp;&nbsp;&nbsp;&nbsp;2) 고기압, 저기압 개념<br>&nbsp;&nbsp;&nbsp;&nbsp;3) 바람과 기압과의 관계<br>&nbsp;&nbsp;&nbsp;&nbsp;4) 피스톤 실험 - 막고 밀때 당길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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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수업준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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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5 Sep 2008 14:41:45 GMT</pubDate>
		<dc:creator>온달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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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수학6-나 입체도형 원뿔을 알아보기 [3/7]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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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 목표 : 원뿔의 특징을 말하고, 모양과 구성 요소를 알고 식별할 수 있다. 원뿔의 높이와 모선을 구별할 수 있다. <br><br>* 과정<br>&nbsp;&nbsp;&nbsp;&nbsp;1-1) 전 차시의 원기둥 정리하기<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span style="COLOR: #ff6600">참고) 전개도&nbsp;조건 3가지-밑면 원, 옆면 직사각형, 직사각형 너비 = 밑면 둘레<br></span>&nbsp;&nbsp;&nbsp;&nbsp;1-2) 원기둥 정의 재강조 - 빗원기둥 제시<br>&nbsp;&nbsp;&nbsp;&nbsp;2) 원뿔의 정의 강조 - 밑면:원, 옆면:곡면, 뿔모양 입체도형<br>&nbsp;&nbsp;&nbsp;&nbsp;3) 원뿔의 꼭지점, 모선, 높이, 옆면, 밑면 강조<br>&nbsp;&nbsp;&nbsp;&nbsp;4) 정리 - 원기둥과 원뿔 공통점 차이점 말하기<br><br>* 참고사이트 : 야후백과사전 '원기둥', '원뿔' 검색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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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수업준비</category>

		<comments>http://jaak.egloos.com/2049845#comments</comments>
		<pubDate>Thu, 25 Sep 2008 14:31:39 GMT</pubDate>
		<dc:creator>온달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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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사회6-2 3.국민의 권리와 의무 [1/6]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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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 목표 : 국민의 기본권의 종류와 필요성을 생활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p><br>* 과정<br>&nbsp;&nbsp;&nbsp;&nbsp;0) 전 시간에&nbsp;만든 조별 기본권 생활사례 조사자료로 퀴즈 풀기(10문제 100점) - 10'<br>&nbsp;&nbsp;&nbsp;&nbsp;1-1) 전 시간에 만든 조별 기본권 생활사례 돌려가며 검토하기(조별 돌려 읽기) - 10'<br>&nbsp;&nbsp;&nbsp;&nbsp;1-2) 잘못된 것 찾아보기(조별) - 보상<br>&nbsp;&nbsp;&nbsp;&nbsp;2) 기본권에 대해 한번 더 퀴즈 풀기 - 향상 점수 평균 내기 - 15'<br>&nbsp;&nbsp;&nbsp;&nbsp;3) 기본권을 제한할 경우 3가지 알려주기 - 5'</p><p><br><br>* 참고자료 : <a href="http://www.mandki.com/wiki/pages/viewpage.action?pageId=18187942">기본권의 종류 마인드맵</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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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수업준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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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5 Sep 2008 12:43:17 GMT</pubDate>
		<dc:creator>온달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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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Beatles - Let it be 가사 번역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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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align="center">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br><br>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br>내가 근심의 시기에 처해 있을 때,<br>Mother Mary comes to me<br>어머니께서 다가와<br>Speaking words of wisdom<br>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br>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br><br>And in my hour of darkness<br>내가 암흑의 시간 속에서 헤매이고 있을 때에도<br>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br>어머니는 내 앞에 똑바로 서서<br>Speaking words of wisdom<br>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br>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br><br>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br>"그냥 그대로 둬요.", "순리에 맡기자구요." ...<br>Whisper words of wisdom<br>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봐요.<br>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br><br>And when the broken hearted people<br>Living in the world agree<br>세상을 살아가며 <br>상심을 겪게 되는 사람들이 좌절을 할 때에도<br>There will be an answer <br>현명한 대답이 있어요.<br>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br><br>For though they may be parted<br>왜냐하면 비록 헤어짐을 겪게 될지라도<br>there is still a chance that they will see<br>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죠.<br>There will be an answer, <br>현명한 대답이 있어요.<br>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br><br>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br>"그냥 그대로 둬요.", "순리에 맡기자구요." ...<br>Yeah, there will be an answer. <br>맞아요, 현명한 대답이 있어요.<br></div><div align="center"><p>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br><br>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br>"그냥 그대로 둬요.", "순리에 맡기자구요." ...<br>Whisper words of wisdom<br>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봐요.<br>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br><br><br>간주<br><br><br>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br>"그냥 그대로 둬요.", "순리에 맡기자구요." ...<br>Whisper words of wisdom<br>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봐요.<br>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br><br>And when the night is cloudy<br>구름 덮인 밤일지라도<br>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br>다음 날이 밝을 때까지<br>Shine on until tomorrow<br>나를 밝혀줄 등불은 여전히 있어요.<br>Let it be<br>"(그러니) 순리에 맡기세요."<br><br>I wake up to the sound of music<br>음악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br>Mother Mary comes to me<br>어머니께서 내게 다가와<br>Speaking words of wisdom,<br>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br>Let it be<br>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br><br>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oh, Let it be<br>"그냥 그대로 둬요.", "순리에 맡기자구요." ...<br>There will be an answer <br>현명한 대답이 있어요.<br>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br><br>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oh, Let it be<br>"그냥 그대로 둬요.", "순리에 맡기자구요." ...<br>Whisper words of wisdom<br>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봐요.<br>Let it be<br>"순리에 맡기거라."</p></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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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category>

		<comments>http://jaak.egloos.com/2009077#comments</comments>
		<pubDate>Mon, 08 Sep 2008 03:56:55 GMT</pubDate>
		<dc:creator>온달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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