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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졸리의 잉크하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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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ame back!</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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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4 Nov 2009 16:16:5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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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졸리의 잉크하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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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그대 웃어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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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a name="[문서의 처음]"></a><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첫사랑과 완벽한 조건이라는 환상이 깨지면...&nbsp;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lt;그대 웃어요&gt; 속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는 ‘환상 속의 그대(결혼)’가 깨지면서 시작된다. 남자가 품었던 환상은 첫사랑의 그녀다. 현수는 의대생 정경을 캠퍼스에서 첫눈에 보고 반한다. 몇 차례 고백을 하지만 번번이 차이고, 주변을 빙빙 맴돌며 혼자서만 천만번을 마주치는 그런 사랑을 한다. 그것도 장장 8년간이나. 현수가 DMZ를 능가하는 순수청정남일지는 몰라도 그의 사랑은 공상과 망상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현수는 실제 정경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정경을 사랑한 것에 더 가깝다. 대상이 있으나 상대해 주지 않으니 현수의 그녀가 오로지 상상의 피조물이라 해도, 그건 물론 현수 탓은 아니다. 하지만 정경이와 현수가 진짜로 사귀었던들 과연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까? 현수가 그려왔던 아름답고 희생적인 의사선생님, 서정경의 본모습은 자기중심적이고 가족은 물론 관심 밖의 인간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으며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인간이니 말이다. 환상과 현실의 괴리. 이것이 짝사랑의 맹점이자 그 많은 첫사랑이 아름답고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의 첫사랑은, 짝사랑이거나 한때 지나가는 설렘 정도일 텐데, 그런 경우 대상을 상상 속에서 마음껏 미화하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여자가 품었던 환상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플러스, 조건을 갖춘)과의 결혼이 행복을 보장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다. 이 기대는 드라마의 시작부터 와장창 무너져 버린다. 신체포기각서(?)를 쓸 정도로 별도 달도 다 따주마 했던 한세는 정인이 아버지 회사 부도 소식에 뒤도 안 돌아보고 내뺀다. 나를 끔찍이 좋아해주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함께 할 줄 알았던 정인은 한세의 배신으로 파혼의 상처보다 더한 진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도 파혼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파혼은 정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남겼을지언정 실연의 아픔을 남긴 것은 아니었다. 시집 잘 가면 그만이라는 모토로 정인이 공부는 안했을지 몰라도 현실을 인식하고 본질을 파악하는 직감은 타고 난 듯하다. 일방적으로 받는 사랑의 공허함을 깨달은 정인은 서로 바라보고 나누는 사랑을 원하게 된다.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주기만 했던 사랑을 해온 현수와 받기만 했던 정인이의 만남. 그런데 이번엔 정인이가 먼저 마음을 준다. 처절하게 차였으나 첫사랑의 그림자를 아직 지우지 못하던 현수의 마음에 다른 누군가를 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정인의 짝사랑이 현수의 그것만큼 외로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혼자 하는 사랑의 고통을 경험한다. 아린 마음을 달래고, 참고 기다리고 아파하는 시련을 겪으며 정인은 조금씩 성장한다. 철부지 막내딸이었던 정인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훌륭한 현수에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점차 달라지는 중이다.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현수 또한 이번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알아감에 따라 점점 빠져드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팬더가 된 얼굴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버스에 무임승차하는 광년이부터, 건방지고 제멋대로인 파혼녀를 거쳐, 어찌어찌 동거를 하게 되면서 정인에 대한 현수의 감정과 생각은 여러 가지 변화를 겪는다. 가족을 생각해 한세 엄마의 험한 말도 묵묵히 듣는 모습이 안쓰럽고, 불쑥불쑥 황당한 행동들에 당황하고, 서정경이 아니라면서 정확히 볼 것을 요구하는 정인이의 당돌함에 정곡을 찔리고, 열심히 일하는 걸 보면 대견하고, 한세랑 같이 있을 땐 뭔가가 치밀어 오르고...정경을 동경하던 열렬한 마음과는 완전히 다른, 뭔가 계속 나아가는 마음. 상대에 맞춰 달라지는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span> <br></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17회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함으로써 이 커플의 당면과제는 집안(막강 금자씨)과 현수의 첫사랑, 그리고 정인의 파혼남의 태클을&nbsp;넘어서는 것이 되었다. 앞으로&nbsp;정경의 본색이 드러나면서 현수의 첫사랑 환상이 산산히 깨져버렸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 시간에 후회가 없다는 현수에게 너무 잔인한&nbsp;건가 싶기도 하다. 그럳데&nbsp;현수/정신 커플을 위한 긴장감 조성에는 정경이보다는 한세가 큰 역할을 했으면 한다.&nbsp;&nbsp;정경이의 방해는&nbsp;언니/동생의 관계 때문에 치사해지기 쉽고, 정경이는 차라리 과장과 그 딸 연재를 통해&nbsp;이기적인 자신을 극복해야&nbsp;할 것 같기 때문이다.&nbsp;더구나 한세가&nbsp;지금은 개그 캐릭터에 머물고 있지만 본격적으로&nbsp;덤벼든다면 그 파괴력은 무시 못할 듯하다.&nbsp;아직까진 허세와 허술한 방해공작에 그치고 있으나 한세가 확실히 정신을 차려준다면 또 모를 일이 아닌가.&nbsp; 그래서 현수와 한 번 제대로 붙어봤으면 좋겠다.&nbsp;사랑이 목표가 되어도 좋고,&nbsp;일적으로 대립각을 세워도&nbsp;재밌을 듯.&nbsp;실은&nbsp; 개인적으론 연애하는 장면 다 필요없고, 두 남자의 대결 구도가 펼쳐지는 장면이 제일 두근두근 하더라.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강현수,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이한세, 한 번 그래볼까?&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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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드라마를 시청하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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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4 Nov 2009 16:05:34 GMT</pubDate>
		<dc:creator>졸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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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시계태엽 오렌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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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by 앤서니 버지스&nbsp;<br><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lt;시계태엽 오렌지&gt;의 주인공이자 화자(話者)는 알렉스라는 15살의 청소년이다. 그는 또래의 비행청소년 세 명과 함께 마약을 탄 우유를 파는 밀크바에 모여앉아 “오늘은 어떤 나쁜 짓을 할까?” 궁리하고 날마다 온갖 비행을 저지른다. 그 비행은 악동들이 벌이는 장난 수준이 아니다. 폭행은 물론 절도, 강간까지 서슴지 않는다. 할머니들에게 술을 사서 알리바이까지 만들어가며 주도면밀하게 범행을 저지르던 알렉스는 어느 노파의 집을 털다가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가게 된다. 그를 대장으로 따르던 동료들은 모두 도망가고 혼자 잡힌 알렉스는 다친 노파가 죽는 바람에 중형을 선고받는다. 2년간 감옥생활을 하던 알렉스는 죄수들 사이의 폭력사건에 휘말려 다시 죄수 한 명의 죽음에 연루되고 그 바람에 원치 않는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내무부 장관이 야심차게 준비한 교정 프로그램(루드비코 요법)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는 알렉스. 2주간의 치료를 견디기만 하면 바로 출옥 가능하다는 말에 선뜻 사인을 한 알렉스는 상상 이상의 혹독한 경험을 한다. 약물을 주입 받고 의자에 묶인 채로 차마 눈 뜨고 못 볼 폭력 비디오를 몇 시간이고 강제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비디오를 보는 내내 구토를 비롯한 신체적 고통을 느끼던 알렉스는 프로그램을 마칠 때쯤엔 조금만 폭력적인 생각을 해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기에 이른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알렉스 예전에 폭행했던 노인과 경찰이 된 옛 동료 딤에게 구타를 당한다. 그럼에도 교정으로 인해 반격조차 할 수 없이 무기력해진 알렉스는 고민 끝에 결국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길을 택한다. 여기저기 부러지고 깨졌지만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 알렉스는 그의 자살미수로 인해 교정 프로그램에 대한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결국 정부는 알렉스를 교정 전의 상태로 복구한다.&nbsp; </span><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이 소설에는 같은 제목의 또 다른 책이 등장한다. 소설 속 어느 작가가 집필하고 있던 &lt;시계태엽 오렌지&gt;의 내용은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장난감처럼 정해진 행동만 반복하도록 강요당하는 현대인과 개인의 사고와 정신까지 통제하려는 전체주의적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 작가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알렉스 일당에게 아무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고 그의 아내는 윤간을 당한다. 그 충격으로 그의 아내는 자살을 하고 만다. 이와 같은 비극을 겪었음에도 작가는 집필 중이던 책을 출간한다. 그런데 감옥에서 나온 뒤 비참한 신세가 된 알렉스가 우연히 그의 집에 다시 찾아온다. 작가는 알렉스가 그때의 범인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보살펴 주는데 이 부분은 소설에서 가장 스릴이 넘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소설 속 작가의 평소 신념에 따르면, 고통에 못 이겨 선한 행동을 하도록 알렉스를 교정한 것은 비인간적이며 비윤리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개인적인 원한과 비극을 고려하면, 두 번 다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강제적으로 교정하는 것이 옳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알렉스는 진짜 머릿속에 뇌수가 아니라 오렌지 즙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순간의 쾌락만을 추구한다. 범죄를 저지른 뒤 죄의식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거니와 일말의 주저함이나 미안한 마음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오렌지 머리를 가진 청소년은 억지로라도 태엽을 감아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nbsp;&nbsp;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nbsp;</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이처럼 주인공 알렉스를 구제불능의 악당으로 그린 것은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알렉스가 희생자들에게 아무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듯이 독자 또한 알렉스에게 감정이입이 되거나, 약간의 동정심도 느끼기 힘들다. 루드비코 요법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알렉스가 비로소 자신의 범죄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돌아보게 부분은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루드비코 요법을 통해 정말 가해자가 피해자의 고통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현실 세계의 형벌에도 적용하고 싶을 정도다.</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nbsp;</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인간에게는 자신이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런데 자유의지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 또한 물어야 할 것이다. 선악의 판단을 내리게 하는 초자아를 결여한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교정 전의 알렉스는 악행을 선택하는 의지를 가졌으나 윤리의식은 눈곱만큼도 없는 오렌지 인간이었다. 때문에 수감생활을 끝까지 마치더라도 알렉스가 잘못을 뉘우칠 거라는 기대를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소설의 배경에서 선과 악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주어진다. 알렉스를 회개의 길로 인도하려는 교도소 신부의 말이다.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착하게 되는 것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6655321번. 착하게 된다는 것이 끔찍한 일일 수도 있어. 말하고 보니 자기모순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신은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신은 선 그 자체와 선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 걸까? 어떤 의미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윤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제거당하겠다는 선택을 내릴 때, 넌 진짜로 선을 선택한 것이겠지.”&nbsp;&nbsp;&nbsp;&nbsp;&nbsp;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악을 선택할 수 없는 완벽한 선의 사회와 알렉스와 같은 절대적 악이 엄연히 존재하는, 선택의 사회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는, 그런 인간을 창조한 신의 의지를 묻기 전에, 보다 평화로운 사회를 위한 인간의 선택을 작가는 묻고 있는 듯하다. 선택의 자유를 빼앗음으로써 선한 인간으로 만들려는 소설 속 프로그램은 분명 권력이 사회 통제를 편리하게 할 의도로 만들어졌다. 또한 강요된 선은 진정한 가치를 지닌 선이라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인간의 의지에 의한, 회의와 갈등을 거쳐 비로소 선택되는 선행이야말로 진정 인간에게 요구되는 선일 것이다. 그러나 알렉스와 같은 사람에게서 선택의 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무조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아질 가능성이 없는 인간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일까? 공공의 선을 개인의 선보다 우위에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알렉스가 주인공이자 화자이기 때문에 그가 하지 않는 이야기는 알 수 없다. 15살짜리 청소년이 구제불능의 악당이 된 배경을 알렉스는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를 바라보는 그의 생각, 그에 대한 부모의 태도를 통해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알렉스의 부모는 아들이 잘못되어 가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쩌지 못한다. 알렉스가 감옥에 가고 난 뒤 그들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 냉큼 하숙생을 받아들인다. 거기다 뜻하지 않게 일찍 돌아온 아들을 반기기는커녕 하숙생 내보낼 걱정부터 한다. 알렉스의 부모가 아들을 바로 잡기 위해 아무 노력도 안한 건 아닐 테지만 일찌감치 포기한 것은 확실하다.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알렉스의 부모는 무기력하다. 사회에 순응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의지나 희망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부모를 보며 어쩌면 알렉스는 시스템에 끼워 맞춘 삶을 거부하는 방편으로 극단적인 비행청소년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무력해지기 싫어서 폭력을 택하고, 현실을 잊기 위해 환각(마약)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알렉스에게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희망이 전혀 없다. 그에게 의미 있는 것은 오로지 현재뿐이다. “아, 이제 어떻게 될까?”라고 말하는 소년은 자신의 삶조차 방관하는 듯 보인다. 감옥에 갇힌 알렉스도 정부가 고용하는 대로 경찰이 된 친구 딤도, 그저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데, 방법만 다를 뿐 무기력하기는 부모세대와 별 다를 바 없다. 청소년 범죄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기 보다는 간편하고 즉각적인 해결책 마련에 급급한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선과 악의 선택권 여부나,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는 문제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의지박약의 시대상이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노동과, 내일의 희망이 박탈된 생활,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을 수 없는 사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굳이 빼앗지 않아도 적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삶으로 인도한다. 앤서니 버지스는 기계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가치관이나 윤리의식이 희박해지고 마약과 술에 의지하며 폭력과 성희에 몰입하는 현대인은 태엽인형과 다름없다고 여긴 듯하다. 태엽인형 인간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느슨해진 태엽을 다시 빡빡하게 감아줄 그 무엇이 아니라, 스스로 태엽을 제거하게 만드는 각성일 것이다. 약물이나, 프로그램, 혹은 지독한 고문이나, 자포자기적 자살시도를 통해서가 아닌, 개인의 치열한 사유와 자기반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각성 말이다.&nbsp; <br><br></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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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을 읽고</category>

		<comments>http://inkheart.egloos.com/5140223#comments</comments>
		<pubDate>Tue, 13 Oct 2009 07:54:51 GMT</pubDate>
		<dc:creator>졸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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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멋진 신세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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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by 올더스 헉슬리<br><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lt;멋진 신세계&gt;의 배경이 되는 미래 세계는 인공수정과 배양을 통해 필요한 인간을 대량생산 해내는, 철저히 계획된 사회이자 계급사회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개개인의 일생이 전부 계획대로 진행된다. 알파계급에서 입실론까지 세밀하게 나뉜 계급에 따라 생산된 태아는 잠재의식 교육을 통해 계급에 따른 생각과 행동 양식이 주입되고, 주어진 일을 수행하며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간다. 정신적인 번민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분노, 슬픔, 질시, 환멸, 고독, 사랑과 같은 극렬한 인간적 감정이 나타날 때는 소마라는 약(일종의 신경안정제이자 환각제?)을 복용하면 그만이다. 극도로 통제되고 어떠한 격변도 기대할 수 없는,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고 안전하며, 완전히 개방적인 성희와 촉각영화 같은 쾌락이 장려되는 사회는 분명 훌륭하다. 하지만 불행할 권리조차 없는 사회에서 사는 인간은 정말 행복한 것일까?</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소설에는 이러한 완벽한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알파 플러스 계급으로 태어났으나 알파 계급에 준하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지 못해(대량생산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종의 불량품)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는 버나드다. 다른 알파 계급들과의 차이를 절감한 나머지 소외감과 고독을 느끼는 그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실존’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자각한다. 부모/자식 간의 유대감이나, 결혼을 통한 애착관계의 형성을 적극적으로 막고,&nbsp; ‘만인을 위한 만인’이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진정한 의미의 사랑(육체적 관계가 아닌 정신적인 교감)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서 그는 레니나(알파계급의 아름다운 여성)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자신을 인식해주길 간절하게 바라는 그는 아무하고나 아무렇게 관계를 맺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고깃덩어리’라는 말을 내뱉곤 한다.</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하지만 그의 현실 인식은 거기까지다. 야만인을 발견한 뒤 사람들의 열렬한 관심을 끌게 되자 그를 괴롭히던 열등감이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쌍둥이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똑같이 우월한 계급의 인간들 가운데 그는 보다 특별하고 싶었던 건데 그가 전부다. 타인과 다른, 조직체 속의 한 세포가 아닌 독립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강한 욕망이 그가 경험하는 실존의 시작이자, 끝이다. 소외를 느끼기는 하지만 획일화되어 개개인의 가치를 잃어버린 인간의 문제까지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두 번째 역시 알파 플러스 계급의 헬름홀츠다. 그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버나드와 달리, 너무 뛰어난 지적능력을 갖춘 나머지 주변 사람들과의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부족할 것 없는 지위와 삶의 질을 영위하던 그는 자기 내부에 끄집어내주길 기다리는 능력이 있다는 걸 감지한다. 감정공학대학에서 일하며, 사회에서 요구하는 창작력만큼만 발휘해왔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치열하고도 강렬한 문장이나 표현으로 인간의 정신을 찌르고 꿰뚫는 것이다. 그의 막연한 바람은 사회가 내세우는 기치인 &lt;격렬한 감정 지양&gt;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강한 인상과 감동을 주는 것. 이는 육체적 만족과 정신적 평온함으로 유지되는 이 사회가 결코 필요로 하지 않는 능력이다.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하지만 헬름홀츠 또한 버나드와 마찬가지로 잠재의식 교육을 통해 형성된 사고를 뛰어넘지 못한다. 야만인 존이 셰익스피어의 &lt;로미오와 줄리엣&gt;을 읽을 때 그는 그만 이야기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는 광증과 광란과 같은 격한 감정에 관해 체제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나, 인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는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 또한 알 수가 없으니 이는 어쩌면 당연하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그리고 세 번째가 &lt;멋진 신세계&gt;에서 거의 유일하게 “엄마”의 의미를 잘 아는 야만인, 존이다. 존은 엄밀히 말하면 체제 밖의 사람이다. 인공배양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 엄마 젖으로 자랐고,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며 고통과 희생을 통해 거룩한 영혼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을 지닌 신세계인들과는 사고와 행동이 전혀 다른 인간이다.</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nbsp;&nbsp;&nbsp;&nbsp;</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존은 신세계가 지향하는 바와 정반대 가치관을 가진 결정체다. 욕망을 억누름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없애기 위해 어릴 때부터 무한히 자유로운 성적 쾌락을 장려 받은 문명인들과 달리,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부터 윤리관을 습득한 존은 ‘순결성’에 천착한다. 환각성 도취제인 소마를 복용하게 함으로써 우울과 고독을 한 점도 남기지 않으려는 정부와 달리 존은 세계와의 단절과 고독한 고행을 원한다. 존은 획일적인 인간의 모습에서 메스꺼움을 느끼고, 죽음이 초콜릿과 같은 것이라고 세뇌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한눈에 반한 레니나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레니나를 비롯한 문명인들은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 린다의 죽음으로 그는 놀라운 신세계의 비정상적인 행복에 결별을 고한다. 모든 인간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총통에게 그는 신과 시와 위험과 자유와 선과 죄, 그리고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며 신세계를 떠난다.</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유토피아의 어원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이다. 어원처럼 현실 속에서 유토피아적 사회를 구현하기란 어려울뿐더러 이루어져서도 안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이 평화롭고 행복한 이상적 세계는 총통의 말대로 무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억압하고 제각기 다른 인간의 욕망을 기계적으로 통제하며, 누군가의 희생(희생당하는 것조차 모를지라도)이 없이는 이룩될 수 없다. 그런데 거의 모든 욕망이 충족되고, 계급에 대한 불만이 없는 사회에서 제각각 역할을 잘 수행하며, 아무도 불행하다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사회일까?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며 불만족의 상태가 곧 행복은 아닐 것이다. 또한 설령 그것이 진짜 유토피아라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 즉 자아실현의 욕구, 사랑하고 사랑 받고픈 욕망,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나이 듦에 따라 보다 영속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성향, 본능적 고독 등등을 모두 제거 당하거나 억제 받는다면, 그것은 인간을 위한 유토피아일 수 없다. 인간의 형상을 한 자동인형을 위한 유토피아이거나, 최고 통치자 몇 명이 보기에 아름다운, 그런 세계일 것이다.</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과학기술이 무한히 발전하고 신세계가 보다 더 정교하게 조성된다 한들 스스로 채찍질을 하며 고난을 통해 높은 영혼의 기쁨을 갈구하는 인간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기계문명의 발전이 곧 인간성 상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합리적 사고의 발달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그동안 인류는 많은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 존이 속해 있던 인디언 사회처럼 무지하고 야만적인 세계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현대문명의 발달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작가는 이 풍자적 소설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nbsp;&nbsp; <br><br><br></p></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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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을 읽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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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3 Oct 2009 07:45:3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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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랭스턴 - 화상통화를 통한 토론수업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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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을 시작하기까지 여러가지 난관이 있었습니다. 웹캠 설치와 헤드셋 테스트, 그리고 사전 테스트에 이은&nbsp;진단테스트...<br>절차가 참으로 복잡하더군요. 하드웨어 점검을 끝내고 진단테스트 예약을 거쳐 시험 보고&nbsp;결과까지 받는데 무려 2주가 걸렸습니다.<br>제가&nbsp;하드웨어에 약한 점도 있었고, 그동안 스케쥴이 안 맞기도 했었지요. 아이들은&nbsp;그 사이 수련회를 다녀오기도 했고요.<br>아무튼 여차저차 해서&nbsp;6월 8일에 첫수업을 합니다.&nbsp;자세한 리뷰는 한 달 체험기간을 끝낸 다음에 하겠습니다.<br>일단&nbsp;화상통화 자체에 대해서는 성현이가 처음이라 그런지 재미있어 하네요. ^^<br><br>&nbsp;<br><br><a href="http://valley.egloos.com/review/item.php?id=10475"><img alt="렛츠리뷰" src="http://md.egloos.com/img/review/lets_banner.gif" border="0"></a><br/><br/>tag : <a href="/tag/렛츠리뷰" rel="tag">렛츠리뷰</a>,&nbsp;<a href="/tag/랭스턴" rel="tag">랭스턴</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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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렛츠리뷰</category>
		<category>랭스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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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Jun 2009 10:19:55 GMT</pubDate>
		<dc:creator>졸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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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박쥐(2009)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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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fareast-font-family: 나눔명조">&lt;박쥐&gt;는 여러 리뷰에서 지적하듯 다양한 장르가 제멋대로 붙어 있는 영화였다. 스릴러와 공포 그리고 블랙 코메디와 치정멜로가 서로 얼기설기 얽혀 있다. 스토리는 일정한 템포로 파국을 향해 차곡차곡 밟아나가지만 장면, 장면은 서로 이질적이다. 영화는 곳곳에서 암전을 반복해가며 진행되는데, 한 번 암전될 때마다 마치 전혀 다른 영화가 시작되는 느낌을 준다. 결국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불균질”하다는 것이다. 일관된 테마와 내러티브에 대한 욕심이 처음부터 없었던 듯도 보인다. 이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집중도가 마치 지진계 그래프처럼 계속 등락을 반복했다. <br><br></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fareast-font-family: 나눔명조"><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5/06/64/c0058364_4a00ec9ca3883.jpg" width="500" height="33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5/06/64/c0058364_4a00ec9ca3883.jpg');" /></div>&lt;박쥐&gt;는 크게 4막으로 나눌 수 있다. 1막. 불치의 전염병 백신 실험에 자원한 상현은 또 다른 불치병이랄 수 있는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 받고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난다. 하지만 타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도로 수포가 돋고 각혈하다가 죽는다. 햇볕에 몸이 닿으면 타버리는 등 뱀파이어의 체질을 갖게 된 상현은 절망하고 한순간에 빠져든 쾌락(친구 아내와의 정사)에 온전히 몸을 맡기기로 한다. 2막. 친구의 아내 태주는 도망간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키우고 병약한데다, 머리가 모자란 아들과 결혼시킨 라여사의 한복집에서 도망치는 게 소원이다.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 달라는 그녀. 친구 강우가 태주에게 폭력까지 행사한다는 사실을 안 상현은 또 다른 죄악(살인)을 감행하기로 한다. 태주와 공모해 강우를 물에 빠뜨려 죽인다. 3막. 강우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라여사는 급기야 식물인간이 되고 상현과 태주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상현은 강우를 호수 속에 돌덩이로 눌러놓았는데, 돌에 눌린 채로, 태주와 상현의 침대 위로, 불쑥불쑥 등장한다. “이건 심리적인 거예요.” 라고 태주는 상현에게 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지만, 죽은 강우는 두 사람 사이를 점차 갈라놓는다. 그러다가 태주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조종했는지를 알게 된 상현은 라여사가 보는 앞에서 태주를 죽인다. 그리고 자신의 피로 태주를 다시 살려낸다.&nbsp; 4막. 뱀파이어로 부활한 태주는 거칠 것이 없는 악마로 변신한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피를 섭취하는 태주와 그녀를 말리려고 애쓰는 상현. 마작멤버 오아시스가 태주와 상현이 만든 이중적인 뱀파이어 월드를 방문하면서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고 피 튀는 살육이 벌어진다. 그리고 상현은 마지막 선택을 한다.<br><br></span><span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뱀파이어는 인간의 상상이 빚어낸 괴물로, 인간이 꿈꾸고 욕망하지만 차마 가질 수 없는 특질로 이루어져 있다. 흡혈, 초인적인 힘과 변신 능력, 그리고 감염으로 번식하는 뱀파이어. 하지만 모든 인간의 소망이랄 수 있는 뱀파이어의 젊음과 영생은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률(살인)을 져버린 다음에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상현의 고민이 시작된다. 친구의 아내와 정을 통하면서 사제복을 벗어던지지만 인간임을 포기하지 못하는 뱀파이어는 살인만큼은 어떻게든 피해보려 한다. 그 자신의 말처럼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 혹은 체질적 문제로 치부하려 노력하며 링거 튜브를 빨면서 연명한다. 때문에 상현이 강우를 살해할 결심을 하기 위해서는 강우가 죽여도 마땅할 인간이라는&nbsp;증거가 필요하다. 스스로 아직은, 인간으로 남고 싶은 뱀파이어는 살인의 당위성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태주는 이를 이용한다.<br><br></span><span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한편 태주는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발버둥 친다 . 더럽게 끔찍한 남편과 비인간적인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태주가 행복 한복점을 떨치고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물리적인 속박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 문제였다. 자신을 키워준 라여사와 모자란 남편에 대한 애증과 도덕적 책임감을 끊어줄 뭔가가 필요했던 것. 그토록 갈망하던 강우의 죽음 이후에도 죄의식에 시달리던 그녀는 한 번 죽고 뱀파이어로 부활하면서 비로소 인간임을 거부할 자유를 얻는다. 자신을 옭아매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듯 그녀는 온갖 인간의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뱀파이어에게 살인은 더 이상&nbsp;최고의 죄악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수렵일 따름이다.<br><br></span><span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닥치는 대로 살인을 하고 피를 빠는 태주에게 건물 옥상을 누비고 코뼈가 으스러지는 싸움을 해가며 상현은 경고한다. 인간이라면 그런 무차별적 살인은 그만 두라고. 하지만 태주는 그런 경고를 하는 상현을 오히려 비웃는다. 자살을 돕는다는 허울로 피를 구걸하는 상현은 죄의식을 가까스로 희석하면서 인간인 체 할 뿐이다. 먹이사슬의 꼭짓점을 차지하고 인간에게 윤리와 원죄의식을 강요한 신을 비웃는 뱀파이어 태주에게 먹히는 윤리의식은 동물의 세계 법칙이다. 인간 몸의 피를 일부만 빨다가 버리는 짓은 일종의 인간 경시가 아니냐는 상현의 지적에 들뛰는 짐승의 영혼을 가진 태주가 비로소 반응하는 것이다. 피와 물, 그리고 일부 고체로 이루어진, 먹잇감으로서의&nbsp;인간의 몸에 대한 잔인하지만 숭고한 해부. 인간 영혼의 광기와 공포를 해부한다는 자연주의 문학의 숨결이 여기서 느껴진다. <br><br>그리스도 교인은 성수를 통한 세례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다음 세상에서 부활을 약속 받는다. 피로써 세례 하는 뱀파이어교는 다음 세상을 부정하고 현실이라는 지옥도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음을 보장한다. 인간과 짐승, 그리스도교와 뱀파이어교 사이에서 위태한 줄타기를 하던 상현은 흡혈귀가 되기 전, 최고의 죄악이라고 일컫던 자살(신이 내려주신 몸을 스스로 파괴하는 죄)을 선택한다. 백신 실험에 자원했던 것이 자기희생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된 자살이었다면 이건 죄악의 사슬을 끊기 위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다.&nbsp;뱀파이어의 영생이나 사후의 천국이 아닌, 타오르는 태양에 의해 재가 되어버린 상현의 결말은 그가 신의 사제도, 욕망과 피에 갈급하던 짐승도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그는 그저 주어진 삶을 어떤&nbsp;식으로든&nbsp;살아보려 했던 외로운 인간이었을 뿐이다. 이렇듯 인간의 본질이란 어쩌면 거룩한 순교와 자포자기적 자살의 모호한 경계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905/06/64/c0058364_4a00ecb3b288a.gif" width="450" height="3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905/06/64/c0058364_4a00ecb3b288a.gif');" /></div>+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3막. 죽은 강우가 상현과 태주 사이에 슬며시 끼어드는 장면들이 좋았다. 강우가 태주의 입 안에 쪽가위를 집어넣었다 뺐다 반복하는 장면은 정말 소름이 끼치더라. 그리고 뭣보다 압권이었던 건 태주에게 피의 세례가 이루어지던 장면. 사이코 드라마로 시작해 고발과 배신 그리고 폭력, 뱀파이어 세례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라여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모든 것을 목도하는 부분까지 거의 완벽했다.<br><br>&nbsp;+ 마작멤버 오아시스가 강우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장면은 예상보다 긴장되지 않았다. 보나마나 살육이 이어질 거라는 예감해서였을까. 하지만 구도와 액션의 아이디어는 역시 좋다. 특히 서로 다른 사람의 목을 조르던 태주와 상현의 삼각 구도가 재미있더라. <br><br>+ 발에 대한 은유가 곳곳에 등장한다. 맨발로 집밖으로 뛰쳐나가는 태주. 가볍게 온몸을 번쩍 들어 올려 태주의 맨발에 신발을 신겨주는 상현. 태주의 거친 발에 입 맞추는 상현. 맨발의 태주를 안고 건물에서 사뿐히 뛰어내리는 상현. 뱀파이어가 되자 상처 난 발도 매끈해진 태주. 건물 사이를 사뿐사뿐 날아다니는 태주. 죽음을 앞두고 상현의 신발을 꺼내 신는 태주. 재가 되어 발목이 끊어져 도로 땅으로 떨어지는 상현의 신발. 땅(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포괄적인(?) 은유라고 할 수 있을까? <br><br>+ 연기 평가? 신하균의 천연덕스러운 바보연기, 최고! 맹목적이고 비틀린 모성애 연기는 김해숙을 따라갈 자 없을 듯. 역시 굿~ 송강호와 김옥빈은 패스. 송영창 아저씨,&nbsp;오랜만이어서 반가웠음. 여의도에서도 자주 봬요.&nbsp;</span>&nbsp; <br><?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br></o: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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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영화를 보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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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6 May 2009 01:50:00 GMT</pubDate>
		<dc:creator>졸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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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꽃남보다 정겨운 쫓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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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a name="[문서의 처음]"></a><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lt;꽃보다 남자&gt;의 인기가 한창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 꿋꿋하게 시류(?)를 외면하고 시작했던 드라마가 &lt;내조의 여왕&gt;이다. 뭐, 볼만한 드라마가 거의 없던 차에 꽤 괜찮은 풍자극을 방송하는구나, 싶었던 거다. 그런데 기대를 안 해서 그런가,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재미가 붙었다 . 무덤에 나란히 누웠다가 이제 다시 태어나는 거라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 천지애와 온달수의 장면은 코끝을 찡하게 만들며 은근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요즘 세상에 저런 사조직 부인회(평강회)가 존재함은 말이 안 된다 싶다가도, 정권이 바뀐 다음부턴 광고 수주도 로비발이 최고라는 지인의 말을 떠올리자면, 영 현실성 없는 얘기는 아닌 듯도 하다. 광고 속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이는 김남주도 어색하지 않게 역할을 잘 소화하고, 어수룩한 온달수 역의 오지호도 약간 식상한 이미지이긴 하지만 제법 귀엽다.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여우 역할이라면 일가견이 있다할 이혜영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lt;내조의 여왕&gt;을 본방으로 감상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최근 방송에서의 재미는 단연코 초롱초롱한 두 눈을 크게 뜨고 '내가 뭘?'이라며 쳐다보는, 최철호의 팔딱팔딱 뛰는 코믹연기다. <br><br></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봉순이의 계략으로 첫사랑 천지애와 이루어지지 못한 아픔을 간직한 남자 한준혁. 처음엔 첫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에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여 온달수를 지애 곁에서 몰아내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한준혁은 그렇게 천지분간 못하는 남자가 아니다. 지애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다거나,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투철하다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지애가 고생하고 상처 입는 것이 마음 아파 온달수에게 “가정을 지키라고!” 호통 치는, 나름 순정남이시다. 지애에게 불륜비디오를 보여 주려는 봉순을 말렸던 이유도 지애가 받을 충격과 고통 때문. 그래서 어쩌다 보니 온달수와 천지애 부부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역할을 본의 아니게 하고 있다.</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나눔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더 재밌는 건, 그러는 와중에 첫사랑의 남편, 온달수와 차츰 교감한다는 점이다. 지난 주 화장실 에피소드도 그렇고(게이커플이 아닐까 회사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하는) 오늘 방송분에서도 나왔듯이 천지애의 매운 손맛과 성깔, 그리고 무식함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는 두 남자는 분명 앞으로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천지애라는 큰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데다 최근엔 아내에게 꼼짝 못하고 산다는 동질감이 덧붙여졌으니 말이다.</span> <br><br><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나눔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집안의 황제로 군림하고 살던 한준혁이 한순간에 찜질방에서 쪼그려 잠을 자는 신세가 된다는 전개도 흥미롭다. 숨겨왔던 것, 내숭 떨던 것들을 모조리 들킨 봉순은 이제 잃을 것이 없으니 무서울 것도 없다. 사실 퀸즈 푸드가 자랑하는 진정한 내조의 여왕이었던 봉순은 이제 내조의 여왕을 넘어서 황제를 몰아내고 한 집안의 여왕으로 다시 태어날 판이다. 그리고 준혁 역시 지애를 만나고부터 부인에게 평소에 못했던 말들(화장품 냄새가 난다는 둥)을 쏟아낸다. 가식을 벗어던지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부딪치는, 이 부부의 본격적인 부부생활은 실로 지금부터라 할 텐데, 아이 때문에 결혼하고, 사랑 없이 살던 부부가 미운정으로 시작해 어떻게 사랑으로 마침표를 찍을지 자못 궁금하다.</span> </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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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드라마를 시청하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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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7 Apr 2009 15:20:55 GMT</pubDate>
		<dc:creator>졸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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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Routine Thursday(03/26/2009)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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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아이들 개학하고 바빴습니다. 학부모총회도 있었고, 성현이도 4학년이 되니 이것저것 새로 시작하는 것들이 생겨서요. </span><span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볼로냐 도서전 카달로그도 봐야 하고, 번역하던 거 마무리도 해야 하고, 마음은 싱숭생숭, 체력은 저질...할 일은 많은데 하기가 싫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게을러져만 가요. 이러다가 마흔 넘으면 자리 깔고 눕는 것은 아닌지...<br></span><span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그러다보니 블로그 관리는 점점 뒤로 물러나게 되네요. 당장 급한 일이 아니면 챙겨서 하지 않으니까요. 애들 보고는 만날 일기 써라, 어쩌고 하면서 정작 저는 하루 하루를 그냥 때우고 있나 봅니다.<br><br></span><span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일단 책은 꽤 여러 권 읽고 있어요. 오늘도 아이들 도서관에서 세 권 빌려왔는데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책 하나는 어릴 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옛 추억을 더듬어가며 읽고 있습니다.<br></span><span lang="EN-US"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fareast-font-family: 나눔명조">&lt;눈 먼 자들의 도시&gt;와 &lt;눈 뜬 자들의 도시&gt;를 읽었고요.<br></span><span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눈 뜬 자들의 도시보다는 눈 먼 자들의 도시가 10배쯤 재밌더군요. <br><br></span><span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마샬 프레디가 쓴 마틴 루터 킹의 평전을 절반쯤 읽었습니다.<br></span><span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사전 찾아 읽느라 시간이 걸리네요.<br><br></span><span lang="EN-US"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fareast-font-family: 나눔명조">&lt;predictably irrational&gt;은 성현 아빠의 추천으로 읽었는데 재밌고 유익한 행동경제학 책입니다. <br></span><span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특히 인간의 도덕성을 여러가지 실험으로 계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br><br></span><span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그리고 &lt;꼬마 백만장자 팀 탈러&gt; 2권을 지금 읽는 중이예요. <br></span><span style="COLOR: #282828; 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역시 제 취향에는 청소년 소설이 딱인 듯...^^</span></p><p class="바탕글">&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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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살아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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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Mar 2009 08:24:15 GMT</pubDate>
		<dc:creator>졸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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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스타의 연인(종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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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역시 10% 아래를 맴도는 시청률이 문제였을까. &lt;스타의 연인&gt;의 7%를 간신히 넘는 시청률은 분명 제작자나 작가, 방송국 그리고 피디에게 실망과 부담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철수와 마리의 애절한(?) 사랑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진짜였느냐를 두고 의미 없는 진실공방을 하느라 별다른 효력도 없이 쇠잔해 버렸고, 그나마 재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대필 공개의 진실 부분은 전병준 기자가 불굴의 은근과 끈기로 밝혀낸다는 식으로 전개됨으로써 미스터리의 효과적 전개 면에서 완전 실패하고 말았다. <br><br></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fareast-font-family: 나눔명조">17,18회는 시간을 끈다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전혀 아니었다. 옛사랑을 거짓이라고 부정하지 말라는 마리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부르짖는 철수의 대립과 갈등은 사랑함에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연인들의 아픔을 느끼게 하기는커녕 공허한 사랑타령에 지나지 않았다. 주인공들의 감정에 이입이 되지 않는 이유는 제작진들도 충분히 깨닫고 있을 것이다. 시청률이라는 오랏줄에 목매는 바람에 드라마적 재미와 감동이라는 부분은 벌써 오래전에 물 건너가 버렸기 때문이다. 스타와 사랑에 빠진 대필 작가, 공범자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그들 앞에&nbsp;대필사건이 불거지면서 시련을 겪는 과정은 비교적 긴장감과 개연성 있게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는 끝도 없는 만나고 헤어짐의 되돌이표 같다. 두 사람의 사랑이 공고해지며&nbsp;극적 긴장감이 완화되자 불치병을 앓는 듯한 마리의 첫사랑이 끼어들더니, 이도 별로 먹히지 않자 대필사건이 다시 부각된다는 이유로 마리와 철수를 헤어지게 만든다. 그리고&nbsp;1년 뒤 영화제작을 계기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지난 사랑을 다시 되짚으며 괴로워 하고 있다.&nbsp;그걸 보는 시청자는 지겨워서&nbsp;괴롭다.&nbsp;<br><br>초반 철수와 마리가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에 치중하며 시청자의 연애본능을 건드릴 만한 그림(특히 민박집 장면들)들을 많이 보여 주었음에도 기대와 달리 시청자는 잔잔한 멜로에 둔감했다. 중반엔 이태석 사장을 필두로 연예계의 비열한 사업방식과 미디어의 과다한 취재경쟁 등을 보여주며 뭔가 심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듯 시도했으나 그 또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다시 종반에 이르러 이중삼중의 삼각관계를 끌어들이며 시청률 반등을 꾀했으나 이는 앞날이 뻔한 패착이었다. 꽤 오래전부터 쪽대본에 의지하는 촬영이었다니 드라마의 짜임새는 그때부터 기대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br><br></span><span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내용에서 건질 것이 없다면 캐릭터라도 남아야 할 텐데 이태석을 제외한 서브 주인공들, 특히 이우진이란 캐릭터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어린 시절 추억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모르겠으나 성인이 된 여배우 마리에 대한 집착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이해가 안 된다. 좋아하는 여배우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면서 마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남자라면, 초반에 보여줬던 냉철한 모습과는 너무 많이 다르다. 마리에게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여 줄 것을, 그리고 자신의 사랑이 더 진짜라고 호소하는 모습은 왠지 낯설기만 하다. 이 남자가 무엇 때문에, 그리고 언제부터 마리를 그 정도로 아끼고 사랑했는지, 잘 모르겠다. 조연들은 꽤 볼만하다. 철부지 남자 배우(장수)와 매니저(예린) 사이의 밀고 당기는 사랑 싸움도 귀엽고, 전병준 기자의 비중은 좀 안타깝지만 적어도 그가 등장하는 부분은 늘어지지 않아서 좋다. 다만 이런 조연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든다는 게 문제일 뿐.&nbsp;</span>&nbsp;<br><br><span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지금의 드라마&nbsp;전개는 이수연 작가의 초반 드라마 구상과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를 듯하다. 시청률이라는 압력에 지배되지 않는 &lt;스타의 연인&gt;이라면 과연 어땠을까, 드라마의 종영을 앞둔 시점에서 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하다.</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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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드라마를 시청하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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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Feb 2009 08:56:37 GMT</pubDate>
		<dc:creator>졸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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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중국 여행 갑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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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시부모님을 모시고(?) 올해도 해외여행을 갑니다. 거참, 작년에도 애들 봄방학 때 갔는데, 올해도 그때쯤인 걸 보면 연례행사가 될 것 같군요. 일본에 이어 요번엔 중국입니다. 산수가 빼어나다는 중국의 계림. 어른들은 좋아하실 코스지만, 심히 걱정입니다. 그랜드캐년을 보고도 반응이 시원치 않았던 넘들이 과연 동양적인 풍경인들 좋아라할지 말입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그나저나 지난 여행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가이드가 녹음된 테이프를 돌리듯 저 좋은 이야기만 한다고 뭐라 한마디 하셨던 아버님. 그러면서도 가이드에게 자녀교육의 노하우를 가르쳐 주겠다면서(아들만 둘을 둔 아줌마 가이드였습니다) 가이드 옆 자리에 앉아 1시간이 넘게 설교(?)를 하셨죠. 아침 식사 땐 일본식 아침을 먹을지, 양식 아침을 먹을지 아버님, 어머님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여 며느리로서 난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늘 아버님 의견에 따르기 마련이었지만요. 미즈코시 백화점에선 아버님 들고 다니기 편한 가방을 골라드리느라 정해진 시간을 다 써버려 어머님은 구경하실 새도 없었고요(어머님 은근히 골나신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었던 여행이었는데, 올해도 또 가게 생겼군요.<br><br></span><span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그래도 이런 시기에 해외여행이 어디냐, 하며 다녀와야겠죠. 중국여행은 처음인데, 상점가 같은 데 들르면 영어가 통할지 모르겠습니다. 아키하바라 관광을 하면서 치간 칫솔을 찾는 아버님 때문에 점원에게 영어로 물었는데, 엄청 난감해 하더라고요. 물을 분사하여 이를 닦는 제품만 계속해서 소개하며 세계 최고라고 반복해 말하던데, 저는 점원의 일어를 띄엄띄엄 알아듣고, 점원은 또&nbsp;제가 하는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들어, lost in translation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답니다. <br><br></span><span style="FONT-FAMILY: 나눔명조; mso-hansi-font-family: 나눔명조; mso-ascii-font-family: 나눔명조">출발은 다음 주 목요일입니다. 봄방학식도 안 하고 그냥 가네요. 지난 해 한 번 경험을 했으니 정신적 스트레스는 아무래도 좀 덜하리라, 기대합니다. 제발요. </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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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살아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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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Feb 2009 07:00:11 GMT</pubDate>
		<dc:creator>졸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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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대~한민국!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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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object width="480" height="400"><param name="movie" value="http://v.egloos.com/v.sk/egloos/c0058364%7C4795019/20090129200100001038041701" /><param name="flashvars" value="skinFile=egloosSkin.swf" /><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 /><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wmode" value="transparent" /><embed src="http://v.egloos.com/v.sk/egloos/c0058364%7C4795019/20090129200100001038041701" wmode="transparent"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480" height="4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flashvars="skinFile=egloosSkin.swf" /></object><br><p>2002년 한일 월드컵 열기가 한창일 때&nbsp;찍은 응원(?) 동영상입니다.<br>성현이도, 유현이도 무지 어렸네요. 유현이는 밑에 달랑 천기저귀 하나만 입고 있고요.<br>화면에는 없는 어머님께서 박자를&nbsp;맞춰주셨는데...응원박자가 좀 다른...ㅋㅋ<br>암튼 이 시절이&nbsp;그립습니다.&nbsp;얼마나 귀여웠는지. 아~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파요. ㅜ_ㅜ&nbsp;&nbsp;<br><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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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9 Jan 2009 11:14:13 GMT</pubDate>
		<dc:creator>졸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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