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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앤돌의 식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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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다시, 식탁하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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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8 Jun 2007 02:39:2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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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앤돌의 식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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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트루먼 쇼", 욥, 그리고 "밀양"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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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전도연이 &lt;시크릿 선샤인&gt;으로 칸 여우주연상을 탔단다. 여기서 예고편만 잠시 봤는데...고통, 의미, 용서, 인간과 신의 문제 등을 다룬 듯하다.&nbsp;이런 매우 고전적이고 해묵은&nbsp;주제를 어떻게 표현했길래 칸에서&nbsp;그런 주목을 받았는지 궁금해진다. 한국에 들어가면 꼭 한번 보고 싶다.<br><br>신문에 난 이창동감독의 짧은 인터뷰 중에서,&nbsp;"그 숨을 뜻을 찾는 것"이라는 말이 자꾸 걸린다. 왜 우리는&nbsp;"고통의 문제"를 다룰 때마다 "저기 어딘가에 있으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존재"를 전제하는 것일까? 인간으로 치면 새디스트인 신을...<br><br>영화 &lt;트루먼 쇼&gt;의 방송 피디같은 신을 상정하지 말고 욥이 당한 고통 같은 것의 "의미"를&nbsp;이야기할 수는 없을까?&nbsp;<br><br>인간은 진화의 역사에서 어쩌면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nbsp;자신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가상의 존재를 상정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그에게 고통을!, 그리고 그를 통해 용서를!&nbsp;<br><br>서로&nbsp;다투고 나면 한동안 우리는 상대방을 직접 마주하며&nbsp;얘기하기 힘든 심리적 상태를 겪는다. 그럴때 사용하는 것이 편지,&nbsp;전화, 꽃다발 등이다. 그런 매개물에 감정이 오가는 과정에서&nbsp;심리적 부담들은 점점 희석된다.&nbsp;즉, 심리 완화 장치인셈이다.<br><br>혹시 "신"도 그런 장치가 아닐까?&nbsp;아들의 유괴살해범을 용서하러 감옥에 간 주인공이 그에게로부터 "이미 나는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nbsp;오히려 더 큰 심리적 충격을 받게 된 것은 왜일까? 그건 어쩌면 주인공 입장에서 보면, 심리 완화 장치의 작동 절차를 유괴범이 어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신에게 고통을 전가했고 그 신을 통해서 유괴범에게 다가가려&nbsp;했지만(작동 절차에 따라), 유괴범은&nbsp;신에게 자신이&nbsp;끔찍한 죄악을 저질렀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신에게 전가하고는...그걸로 끝내버렸다. 정상적인 다음 단계 - 즉,&nbsp;피해자인 주인공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 -로 나아가지 않은 것이다. 심리 완화 장치를 악용했다고나 할까? 그래서&nbsp;영화속 주인공이나 우리가 모두&nbsp;그 광경을 보고 당황해하는 건 아닐까?&nbsp;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 twist가 이 영화의 백미가 아닐까 짐작된다.&nbsp;적어도 이 영화는 "용서"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미묘한 것인지를 드러내주는 것 같다.~&nbsp;&nbsp;<br><br>하여간....전도연은&nbsp;쌩얼도 이쁘네^^<br><br><br><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75" border="0"><tbody><tr><td style="PADDING-RIGHT: 15px; PADDING-LEFT: 15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gcolor="#efefef" colspan="2"><strong><div id="navi"></div></strong><div id="date">연합뉴스 <a href="http:///"></a><br>입력시간 : 2007.05.28 21:18 <!-- 기사내용+기사이미지 --></div><div id="article_link"><a href="http://spn.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28/2007052801005.html">http://spn.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28/2007052801005.html</a></div></td></tr><tr><td style="PADDING-RIGHT: 15px; PADDING-LEFT: 15px; PADDING-BOTTOM: 15px; PADDING-TOP: 15px" colspan="2"><div></div><div class="artTitMain" id="article_title">이창동 감독 "전도연 호명되자 당황하더라" </div><br><div id="content"><div class="photo_right" id="imgForm"></div><ul class="article" id="fontSzArea"><li>영화 ’밀양(Secret Sunshine)’이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누구보다도 수상자인 영화배우 전도연에게 경사이겠지만 연출자 이창동 감독에게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br><br>이창동 감독은 20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여우상(문소리)을 수상한 뒤 5년 만에 내놓은 ’밀양’으로 세계 3대 영화제(칸ㆍ베를린ㆍ베니스)에서 다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br><br>’밀양’은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두고 ’용서’라는 화두에 직면한 학원강사 신애(전도연)와 그녀를 사랑하는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의 이야기.<br><br>’서편제’ ’천년학’ 등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소설가 이청준의 단편 ’벌레 이야기’가 영화의 모태가 됐다. 그렇지만 원작에서 기본 얼개만을 따왔을 뿐 대부분은 새롭게 쓰였다.<br><br>이창동 감독은 여주인공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원작과는 달리 신애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으며 영화를 마무리했다.<br><br>그를 28일 오전 숙소인 프랑스 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br><br>수상 소감을 묻자 멋쩍어하면서 “뭐 달리 할 말이 있겠는가. 기쁠 뿐이다”라며 웃었다.<br><br>다음은 감독과의 일문일답.<br><br>--수상을 예감했나.<br><br>▲예상했다기 보다는 남들이 다 기정사실처럼 말하니까 그게 부담스럽더라.<br><br>--시상식장에서 전도연을 따뜻하게 안아주던데.<br><br>▲기대는 했겠지만 여우주연상으로 호명되자 (전도연이) 당황하고 긴장하더라. 그래서 “축하한다”면서 안아줬다.<br><br>--폐막식 전 여우주연상을 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br><br>▲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여우주연상을 탈 것이라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다른 해외 영화제에서는 수상 부문을 미리 말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칸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br><br>--’밀양’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거다. 하느님께 분노하는 것조차도 인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자기 문제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또한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이 정말 아름답고 살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기에 있기 때문에, 누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땅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br><br>--영화 끝 부분에 신애의 집 마당에 비친 햇볕 한 조각이 무척 인상적이었다.<br><br>▲그 햇볕은 하느님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쉽게 알도록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그 숨은 뜻을 찾는 것이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인생 자체 속에 삶의 비밀이 숨어 있다.<br><br>--송강호가 연기한 종찬은 어떤 인물인가.<br><br>▲조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에서 균형을 이뤄주는 중요한 캐릭터다. 종찬은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정말 그런 사람은 딱 한 사람 밖에 없는, 그런 인물이다. 실제의 인물로서의 그의 절묘함은 경상도 사투리의 뉘앙스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그게 안돼 아쉽다. <br><br>--전작과 비교해 ’밀양’을 평가한다면. <br><br>▲영화라는 게 어쨌건 창조작업이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 “만족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싫어한다. 창조는 운명적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것들이 한데 모여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생명체의 창조과정과 닮았다. 그것 자체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br><br>--앞으로의 계획은.<br><br>▲몇 가지 계획이 있기는 한데 천천히 생각하고 싶다. 기다리면 그 계획들이 머리 속에서 스스로 성장해 나한테 말을 걸지 않겠는가. </li></ul><!-- 기사내용+기사이미지 --></div></td></tr></tbody></table>&nbsp;&nb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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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각에 대한 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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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9 May 2007 14:22:39 GMT</pubDate>
		<dc:creator>andologi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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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주변부 지식인의 슬픔, 고뇌, 그리고 기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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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40" border="0"><tbody><tr><td bgcolor="#f88a00" colspan="2" height="5"></td></tr><tr><td></td><td valign="bottom" align="right"></td></tr><tr bgcolor="#d4d4d4"><td colspan="2" height="1"></td></tr><tr><td colspan="2" height="10"></td></tr><tr><td valign="top" align="middle" colspan="2"><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10" width="640" border="0"><tbody><tr><td bgcolor="#ffffff" height="12"><span style="FONT-SIZE: 9pt; LETTER-SPACING: -0.3pt"><span style="COLOR: #666666"><span style="FONT-SIZE: 9pt; COLOR: #666666;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3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lang="EN-US"><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155pt 0pt 0cm; WORD-BREAK: keep-all; LINE-HEIGHT: 130%;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para-margin-right: 15.5gd" align="left"><span style="FONT-SIZE: 9pt; COLOR: #666666; LINE-HEIGHT: 130%;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3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내가 좋아하는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st1:PersonName w:st="on">김경만</st1:PersonName>선생님이 드디어<span lang="EN-US"> "</span>도발<span lang="EN-US">"</span>을 하셨네요<span lang="EN-US">. </span>만나 뵐 때마다<span lang="EN-US"> "</span>지식인론<span lang="EN-US">"</span>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생생하다<span lang="EN-US">. </span>나는 <st1:PersonName w:st="on">강정인</st1:PersonName>선생님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친분이 없지만<span lang="EN-US">(</span>이분도 훌륭한 학자이실 것이다<span lang="EN-US">), </span><st1:PersonName w:st="on">김경만</st1:PersonName>선생님이 여기서 하고 계신 말씀의 진정성과 도덕성<span lang="EN-US">, </span>그리고 일종의 자신감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span lang="EN-US">. <br>1995</span>년<span lang="EN-US">, </span>그러니까 지금부터<span lang="EN-US"> 10</span>년도 더 된 석사 과정 시절<span lang="EN-US">, </span>김교수님의 과학지식사회학 수업을 들었을 때<span lang="EN-US">, </span>나는 몇 가지 충격을 받았다<span lang="EN-US">. </span>첫째는 사회학자가 철학자 이상으로 철학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모습이 놀라운 일이었고<span lang="EN-US">, </span>둘째는<span lang="EN-US"> "</span>중심부<span lang="EN-US">"</span>의 논의와 <span lang="EN-US"><?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span></p><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155pt 0pt 0cm; WORD-BREAK: keep-all; mso-para-margin-right: 15.5gd"><span style="FONT-SIZE: 9pt; COLOR: #666666;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3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네트워크에 자신의 지적 관심을<span lang="EN-US"> "</span>동화시키고<span lang="EN-US">" </span>또 그 메이저리그 경기에 한 명의 타자로서 홈런을 날리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이었고<span lang="EN-US">, </span>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span lang="EN-US">(</span>즉<span lang="EN-US">, </span>깊이 있는 학자임에도 불구하고<span lang="EN-US">) </span>강의는 거의 지적인 개그를 보는 듯 했기에 더욱 충격이었다<span lang="EN-US">. </span>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원 시절에서 가장 즐겼던 강의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span lang="EN-US">. </span>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선생님의 모습은<span lang="EN-US">, </span>자신의 연구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기 위해<span lang="EN-US"> "</span>고독<span lang="EN-US">"</span>을 택하시던 모습이었다<span lang="EN-US">(</span>한국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자신만의 연구프로그램도 없고<span lang="EN-US">, </span>지적인 고독을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span lang="EN-US">?) </span>그러면서도 마음이 따뜻하고 솔직하고 정이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 찾아뵙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했다<span lang="EN-US">.&nbsp;</span>중요한 결정 때문에 고민스러울 때<span lang="EN-US">, </span>지쳐 있을 때<span lang="EN-US">, </span>심심할 때<span lang="EN-US">(?),&nbsp;</span>선생님을 찾아뵈면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 장소에서 서너 시간씩 이야기 꽃을 피울 때도 많았다<span lang="EN-US">.&nbsp;</span>내가 그<span lang="EN-US">&nbsp;</span>분께 배운<span lang="EN-US">&nbsp;</span>것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span lang="EN-US">,&nbsp;"</span>학자의 열정<span lang="EN-US">"</span>이다<span lang="EN-US">. </span>그 분께 배운<span lang="EN-US"> "</span>열정<span lang="EN-US">"</span>은 화석화된 규범이 아니라 희노애락이 있는 인간적 실천이고 규범 같은 거였다<span lang="EN-US">. </span>나는 이런 것을 아무런 제도적<span lang="EN-US">&nbsp;</span>관계도 없는 일개 대학원생에게 솔직하게 나눠주신 선생님께 늘 고마움을 느낀다<span lang="EN-US">. </span>그리고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span lang="EN-US">.<br><br></span>선생님과 이런 추억은<span lang="EN-US">, </span>아래 모임에서 선생님이<span lang="EN-US">&nbsp;</span>한국 학계를 향해 하신 도발적 주장의 의미를 좀 더 깊게 만들어준다<span lang="EN-US">. </span>아마 한국에서 이런 주장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span lang="EN-US">&nbsp;</span>할 수 있는 학자는<span lang="EN-US">&nbsp;</span>내가 알기로 그리 많지 않다<span lang="EN-US">.&nbsp;</span>내 제한된 관찰에 의하면<span lang="EN-US">, </span>외국의 유수 대학의 대가들 밑에서<span lang="EN-US">&nbsp;</span>유학하고 돌아온 기라성 같은 교수들도 한국에 들어와<span lang="EN-US"> 5</span>년 전후로 한국 지식<span lang="EN-US">&nbsp;</span>환경에<span lang="EN-US">&nbsp;</span>너무도 잘<span lang="EN-US"> "</span>순응<span lang="EN-US">"</span>하신다<span lang="EN-US">. </span>외국에서 자리를 잡았다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행태를 보이기 일수이다<span lang="EN-US">.&nbsp;</span>행정적인 일<span lang="EN-US">, </span>각종 모임<span lang="EN-US">, </span>잡일등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span lang="EN-US">, </span>치열한 연구는<span lang="EN-US">&nbsp;</span>박사 논문까지로 끝인 경우가 많고<span lang="EN-US">, </span>한국에서 명성을 유지하는 원천은<span lang="EN-US">&nbsp;"</span>외국 무슨 무슨 대학 박사<span lang="EN-US">"</span>라는 타이틀이다<span lang="EN-US">. </span>더욱<span lang="EN-US">&nbsp;</span>요상한 것은<span lang="EN-US">, </span>그런 대학에서<span lang="EN-US">&nbsp;</span>당해보지 못한 대우들을 한국의 학생들에게는<span lang="EN-US">&nbsp;</span>너무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이다<span lang="EN-US">. </span>아마<span lang="EN-US">&nbsp;</span>외국에서<span lang="EN-US">&nbsp;</span>학생들에게 그런 식의 행태를 보였다면<span lang="EN-US">, </span>소송을 당하거나 쫓겨났을 지도<span lang="EN-US">&nbsp;</span>모를 일이다<span lang="EN-US">.&nbsp;<br><br></span>나는<span lang="EN-US">&nbsp;</span>왜 이런 이중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span lang="EN-US">. </span>외국 유수 대학에서 보고 듣고<span lang="EN-US">&nbsp;</span>경험하고 대우받은 것들을 왜 국내에 와서는<span lang="EN-US">&nbsp;</span>후학들에게<span lang="EN-US">&nbsp;</span>제대로 나눠주지 않는지 말이다<span lang="EN-US">. </span>물론<span lang="EN-US">...</span>당신들의<span lang="EN-US">&nbsp;</span>권리를 주장하는 대목에서는<span lang="EN-US"> "</span>외국<span lang="EN-US">&nbsp;</span>대학에서는 말이죠<span lang="EN-US">..."</span>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span lang="EN-US">. </span>나는 이런 맥락에서<span lang="EN-US">&nbsp;</span>현 대학 사회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span lang="EN-US"> "</span>영어강의 확대<span lang="EN-US">" </span>같은 데에 있다는 것이<span lang="EN-US">&nbsp;</span>참으로 안타깝다<span lang="EN-US">. </span>이런 해결책은<span lang="EN-US">&nbsp;</span>한국 대학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치열한 분석없이 외견상의<span lang="EN-US">&nbsp;</span>성과만을 위해 내놓은<span lang="EN-US">,&nbsp;</span>너무 쉬운 대답처럼 보인다<span lang="EN-US">. </span>상황은 너무 복잡하고 질문은<span lang="EN-US">&nbsp;</span>엉켜있는데<span lang="EN-US">, </span>대답은 너무 간단하다<span lang="EN-US">. "</span>영어강의하면 글로벌화된다<span lang="EN-US">!!!"<br>&nbsp;<br></span>나는 대학과 교수들이 고객인 학생들<span lang="EN-US">- </span>엄청난 액수의 수업료를 내고<span lang="EN-US">&nbsp;</span>공부하는<span lang="EN-US"> -</span>을 위해<span lang="EN-US">, </span>그리고 미래를<span lang="EN-US">&nbsp;</span>맡아줘야 할 인재들에게<span lang="EN-US">&nbsp;"</span>과연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span lang="EN-US">&nbsp;</span>줘야 하는가<span lang="EN-US">"</span>를<span lang="EN-US">&nbsp;</span>더 치열하게 고민해야<span lang="EN-US">&nbsp;</span>한다고 생각한다<span lang="EN-US">(</span>하버드 대학의 최근 결정도 참고해볼만 할 것이다<span lang="EN-US">). <a href="http://www.fas.harvard.edu/home/news_and_events/releases/gened_05152007.html"><br><br>http://www.fas.harvard.edu/home/news_and_events/releases/gened_05152007.html</a>.&nbsp;&nbsp;&nbsp;&nbsp;&nbsp;<br><br></span>나의 짧은 대학강의 경험에 비춰보면<span lang="EN-US">, </span>학생들이 원하는 것<span lang="EN-US">, </span>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급의 지식 자체 뿐만 아니라 그런 지식이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게 만드는 가치 체계<span lang="EN-US">, </span>사고 방식<span lang="EN-US">, </span>그리고 열정이 아닌가 싶다<span lang="EN-US">. </span>이것은 유창한 영어실력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어야 할 항목들이며<span lang="EN-US">, </span>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누구와 살든지간에 꼭 갖추고 있어야 할 항구적 덕목들이다<span lang="EN-US">. </span>나는 왜 대학에서<span lang="EN-US"> "</span>무엇<span lang="EN-US">(what)</span>과 왜<span lang="EN-US">(why)"</span>를 학생들에게 줄지는 고민하지 않고<span lang="EN-US">&nbsp;</span>전달 방법에만<span lang="EN-US">&nbsp;</span>열을 올리고 있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span lang="EN-US">. </span>내<span lang="EN-US">&nbsp;</span>지식과 경험에 비춰보면 이건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span lang="EN-US">&nbsp;</span>방향이고 정책이다<span lang="EN-US">.<br><br></span><st1:PersonName w:st="on">황우석</st1:PersonName> 사태 이후로<span lang="EN-US">&nbsp;</span>대학내 연구 윤리 확립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span lang="EN-US">.&nbsp;</span>필요한 일이고 내실있게 진행되길 바란다<span lang="EN-US">. </span>하지만<span lang="EN-US">&nbsp;</span>학자로서의 윤리와 의무가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span lang="EN-US">. </span>특히 대학에 있는 사람들은 연구자이면서도 교육자이다<span lang="EN-US">.&nbsp;</span>교육적 쟁점들<span lang="EN-US">(educational&nbsp;issues)</span>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종류의 사람들이다<span lang="EN-US">.&nbsp;</span>교육학 전공자이건 아니건 그건 전혀 상관없다<span lang="EN-US">. </span>교육 기관에 있는 이상<span lang="EN-US">, </span>그리고 그런 직업으로 연봉을 받는 이상<span lang="EN-US">,&nbsp;</span>교육적 쟁점들에 대해 숙의하고<span lang="EN-US">&nbsp;</span>뭔가를 실천해야 하는 것은 의무이며 직업 윤리이다<span lang="EN-US">.&nbsp;</span>한국의 대학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span lang="EN-US">, </span>이 시점에서 학생 교육을 위해 과연 무엇을 바로잡아야만 할 지에 대해 치열한 연구분석<span lang="EN-US">, </span>토론<span lang="EN-US">, </span>실천이 있으면 좋겠다<span lang="EN-US">.&nbsp;&nbsp;<br><br></span>그러기 위해서는<span lang="EN-US">&nbsp;</span>교수님들께서 먼저<span lang="EN-US"> "</span>교수란 누구인가<span lang="EN-US">?"</span>라는 반성적 질문을<span lang="EN-US">&nbsp;</span>진지하게 던지셔야 될 것 같다<span lang="EN-US">.&nbsp;"</span>표절이네 아니네<span lang="EN-US">, </span>영어강의가 필요하네 아니네<span lang="EN-US">..." </span>이런<span lang="EN-US">&nbsp;</span>논의보다도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부터 던지고<span lang="EN-US">&nbsp;</span>토론하고<span lang="EN-US">&nbsp;</span>했으면 좋겠다<span lang="EN-US">. </span>정체성 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span lang="EN-US">&nbsp;</span>터져나오는 질문과 트렌드만 좇아가니까 대학교육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이다<span lang="EN-US">.&nbsp;<br><br></span>이런 의미에서 아래 모임은<span lang="EN-US">, </span>그 논쟁의 성패가 어떻든 간에<span lang="EN-US">, </span>매우 유익했을 거라 짐작된다<span lang="EN-US">.&nbsp;</span>좀 더 바란다면<span lang="EN-US">, </span>아래의 이슈에다 위에서 말한 교육적 쟁점들까지 논의가 된다면 더 좋겠다<span lang="EN-US">.&nbsp;</span>그리고 아래 이슈에 대해 내 견해를 말하자면<span lang="EN-US">,&nbsp;</span>나는 두 분 모두에게 동의한다<span lang="EN-US">. </span>아니<span lang="EN-US">,&nbsp;</span>두 분이 각기 주장하는 그런 것들을<span lang="EN-US"> "</span>모두 다<span lang="EN-US">"&nbsp;</span>할 수 있는 대학교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span lang="EN-US">.&nbsp;</span>즉<span lang="EN-US">, </span>두 분 모두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이다<span lang="EN-US">. </span>다만<span lang="EN-US">,&nbsp;</span>각자가 제대로<span lang="EN-US">, </span>치열하게<span lang="EN-US">&nbsp;</span>한다는 조건에서 말이다<span lang="EN-US">.&nbsp;</span>우리<span lang="EN-US">&nbsp;</span>지식계에는 다양한 수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역할들을 해줄 지식인들이 필요하다<span lang="EN-US">. </span>선진 외국 같은 경우에는<span lang="EN-US">&nbsp;</span>제반 지식 층이 두텁기 때문에 교수는 그 중 일부만 담당하는 것으로 한평생이 가는 시스템이다<span lang="EN-US">. </span>하지만 우리는 상황이 똑같지 않다<span lang="EN-US">.&nbsp;</span>지식의 생산자<span lang="EN-US">, </span>중계자<span lang="EN-US">, </span>소비자 등의 분화가 덜 되어 있다<span lang="EN-US">.&nbsp;</span>지식의 생산자가 때로운 중계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span lang="EN-US">. "</span>지식 수입상<span lang="EN-US">"</span>이란 용어는<span lang="EN-US">&nbsp;</span>생산자는 없고 중계자만 있는 그런 상황을<span lang="EN-US">&nbsp;</span>꼬집는 표현일 것이다<span lang="EN-US">. </span>이른바 지식의<span lang="EN-US"> "</span>올라운드 플레이어<span lang="EN-US">"</span>가 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주변부<span lang="EN-US">&nbsp;</span>지식인의 슬픔이고 고뇌인 것이다<span lang="EN-US">. </span>하지만 이걸 꼭 부정적으로만 봐야 할까<span lang="EN-US">? </span>우리가 중계자만이 아니라<span lang="EN-US">,&nbsp;</span>생산자까지도 될 수 있도록만 자신을 향상시킨다면<span lang="EN-US">, </span>그건 오히려 주변부 지식인들의<span lang="EN-US"> "</span>기회<span lang="EN-US">"</span>일 수 있지 않을까<span lang="EN-US">?<br><br></span>나는<span lang="EN-US">&nbsp;&lt;</span>지식인마을에 가다<span lang="EN-US">&gt;</span>라는 책에서 이미 어줍잖게 이런 생각을<span lang="EN-US">&nbsp;</span>내비친바 있다<span lang="EN-US">.&nbsp;</span>축구에 비유하자면<span lang="EN-US">, </span>루니같은 최전방 공격수가 가끔씩 미드필드에서 뛸 수 있는 것<span lang="EN-US">, </span>오른쪽 왼쪽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달릴 수 있는 <st1:PersonName w:st="on">박지성</st1:PersonName>의 다재다능성<span lang="EN-US">(versatility)</span>이 주변부 지식인의 덕목이며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span lang="EN-US">. </span>다시 축구에 비유하면<span lang="EN-US">, </span>공격수인 <st1:PersonName w:st="on">황선홍</st1:PersonName>이 홍명보를<span lang="EN-US">&nbsp;</span>수비수라는 이유만으로<span lang="EN-US">&nbsp;</span>비판하는 게 말이 안되듯이<span lang="EN-US">,&nbsp;</span>지식의 노동 분업과 그에 따른 기여도를 평등적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일 것이다<span lang="EN-US">.&nbsp;상호 비판은 각자가 맡은 일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즉 홍명보가 수비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나 의미있는 것이 된다. </span>또 한번 비유하자면<span lang="EN-US">, </span><st1:PersonName w:st="on">김경만</st1:PersonName>선생님은 지금 우리 지식 축구계에 절실히 필요한 선수는<span lang="EN-US">&nbsp;</span>최전방 킬러라는 말씀이다<span lang="EN-US">. </span>선수층이 얕은 우리 팀을 고려할 때<span lang="EN-US">, </span>어쩌면 더 필요하고 현실적이고 독특한 것은<span lang="EN-US">,&nbsp;</span>킬러이지만<span lang="EN-US">&nbsp;</span>미드필드에서도 뛸 수<span lang="EN-US">&nbsp;</span>있는<span lang="EN-US">,&nbsp;</span>다시 말해 글로벌리티와 로컬리티를 동시에 갖고 있는 그런 선수들을<span lang="EN-US">&nbsp;</span>격려하고 길러내는 일일 수 있다<span lang="EN-US">. </span>나는 이것이<span lang="EN-US">&nbsp;</span>우리같은 주변부 지식인의 슬픔과 고뇌를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는<span lang="EN-US"> "</span>하나의<span lang="EN-US">" </span>방법이라고 생각한다<span lang="EN-US">.<br><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span></span></p><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125pt 0pt 0cm; WORD-BREAK: keep-all; LINE-HEIGHT: 130%;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para-margin-right: 12.5gd" align="left">&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span></span></p></span></span></td></tr></tbody></table><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order="0"><tbody><tr><td background="http://www.kyosu.net/image2006/default/dot1.gif" height="1"></td></tr></tbody></table><div style="TEXT-ALIGN: left">출처: <a href="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3551">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3551</a></div><br></td></tr><tr><td colspan="2" height="5"><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20" border="0"><tbody><tr><td class="view_t">“동화전략과 지적 도발 필요”</td></tr><tr><td class="view_sub_t">서강대 ‘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의존성’ 토론회</td></tr><tr><td height="5"></td></tr><tr><td align="lef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order="0"><tbody><tr><td width="5"><img height="25" src="http://www.kyosu.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 width="11"></td><td bgcolor="#efefef"><span style="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돋움">2007년 05월 06일 (일) 11:36:59</span></span></td><td align="right" bgcolor="#efefef"><span style="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돋움">김재호 기자</span> <img src="http://www.kyosu.net/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 border="0"> <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arial">yital@kyosu.net</span></span></td><td width="5"><img height="25" src="http://www.kyosu.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 width="11"></td></tr></tbody></table><br></td></tr><tr><td height="15"></td></tr><tr><td class="view_r" id="articleBody"><p>“서구이론과의 동화적 전략 없이 전복은 불가능하다. 서구의 지적 지배를 인정하고 그 지배에 도전하는 ‘지적 도발’이 필요하다.”<br>김경만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3일 열린 ‘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의존성 누구의 책임인가?’&nbsp; 쟁점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는 강정인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의 ‘한국 정치사상 어떻게 할 것인가? : 반성과 대화’ 발표에 대한 비판적 답변이다. <br>김 교수는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진행한 이날 토론회에서 “&lt;교수신문&gt;에서 조사한 바와 같이 한국 학문의 가장 큰 문제가 외국 이론의 수입상이라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세계 학문 시장에의 ‘참여자’가 되지 못하고 장(field) 밖에서 방관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br>그는 서구중심주의를 넘기 위한 전략으로 첫째, 적극적 참여 테제를 주장했다. 부르디외나 제임스, 듀이 등이 독창적 사상을 일궈낼 수 있었던 건 주류 이론에 대한 정밀한 연구 때문이다. 김 교수는 “대중과 유리된 연구 집단 내에서 이론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 절실히 요구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외국이론의 국내유입과 관련해 책임의 귀속 문제, 이론이 반드시 현실에 적용돼야 하는지에 대한 적실성의 문제 등을 언급하며 한국학계에서 서구이론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br>김 교수는 둘째로 집단적 박식에 관한 생선 비늘 모형과 장의 자율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집단적 박식이란 개인의 학문적 수준이 아니라 한국 사회과학자 집단이 이루어내야 하는 이론적 지식의 향상을 의미한다. 도날드 캠벨의 모형을 통해 김 교수는 “어떤 이슈에 대해서 생선 비늘처럼 겹치는 부분들을 서로 토론, 비판, 보완하고 또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알려줄 수 있는 더 큰 지식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br>이미 &lt;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gt;라는 책에서 강 교수는 △학문적 문제의식의 서구화 △서구이론에 따른 한국 현실의 동화주의적 해석 △서구중심주의에 의한 한국(비서구) 현실의 주변화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이날 토론회에서 서구중심주의의 폐해를 다시 지적하고, “서구학자들이 동아시아의 학자들과 교류하는 것은,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자국 프로축구팀에 나름대로 실력 있는 아시아 선수들을 영입하여 경기를 하는 것이지, 한국 축구팀과 직접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nbsp;&nbsp; <br>그는 “우리가 대하는 사상사의 문헌들은 대부분 중심부 사상가들의 저술이라 주변부 정치공동체가 어떻게 ‘주변성’을 극복·타개해 왔는지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다”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70" align="left" border="0"><tbody><tr><td width="10">&nbsp;</td><td align="middle"><img alt="" src="http://www.kyosu.net/news/photo/200705/13551_1891_248.jpg" border="1"></td><td width="10">&nbsp;</td></tr><tr><td width="10">&nbsp;</td><td><span style="COLOR: #306f7f"></span></td><td width="10">&nbsp;</td></tr><tr><td colspan="3" height="10"><p><span style="COLOR: #333399">□ 지난 3일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의존성 누구의 책임인가?’&nbsp; 쟁점토론회.</span></p></td></tr></tbody></table>째는 서구중심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역편향의 의도적 추구이다. 전략은 문제의식의 서구화에서 문제의식의 한국화로 제시됐다. 강 교수는 민족주의를 적절히 활용한 한국 페미니스트의 호주제 폐지 운동을 사례로 들었다. 기존의 페미니즘이 민족주의를 적대시 한반면 한국에서는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둘째는 △서구정치사상의 한국화 △동양·한국사상의 현대화 △현대 한국정치의 사상화이다. 이는 강 교수가 2005년 한국정치사상학회 ‘회장 취임사’에서 제기했던 문제들이다. <br>또한 서구에서 탁월한 정치사상(가)의 출현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강 교수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토크빌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향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판단해 &lt;미국 민주주의&gt;를 썼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론적 분석인 &lt;구체제와 혁명&gt;도 마찬가지다. 파리 코뮌에 대한 마르크스의 저작들도 불멸의 사건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강 교수에 따르면 한국정치에서 일어난 매우 중대한 사건을 통찰하면 서구의존적인 정치사상을 극복할 수 있다. 최정운 서울대 교수(외교학)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쓴 &lt;5월의 사회과학&gt;이 이러한 예이다. <br>&nbsp;강 교수는 “전통적인 성리학이나 유학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기존의 유학적 전통에서 상당한 부분을 폐기처분하고 서양학문을 과감하게 수용해 새로운 유학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유교적 페미니즘 등을 사례로 제시했다.&nbsp; <br>김재호 기자 <a href="mailto:yital@kyosu.net">yital@kyosu.net</a></p></td></tr></tbody></table></td></tr><tr align="right" bgcolor="#efefef"><td colspan="2" height="36"></td></tr></tbody></t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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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각에 대한 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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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6 May 2007 16:25:38 GMT</pubDate>
		<dc:creator>andologi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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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인간은 종교밈(religious meme)의 운반자(vehicle)?!?!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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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75" border="0"><tbody><tr><td style="PADDING-RIGHT: 15px; PADDING-LEFT: 15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gcolor="#efefef" colspan="2"><strong><div id="navi"></div></strong><div id="date">연합뉴스 <a href="http:///"></a><br>입력 : 2007.05.16 08:21 <!-- 기사내용+기사이미지 --></div><div id="article_link"><a h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16/2007051600146.htm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16/2007051600146.html</a></div></td></tr><tr><td style="PADDING-RIGHT: 15px; PADDING-LEFT: 15px; PADDING-BOTTOM: 15px; PADDING-TOP: 15px" colspan="2"><div></div><div class="artTitMain" id="article_title">세계서 가장 급성장하는 종교는 </div><br><div id="content"><div class="photo_right" id="imgForm"></div><ul class="article" id="fontSzArea"><li>세계 종교들 가운데 최근 가장 빠른 속도로 신도가 늘어난 종교는 이슬람교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15일 보도했다.<br><br>세계 주요 종교의 지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신도 증가율을 보면 이슬람교가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교도의 높은 출산율 덕분에 가장 높은 1.8%를 기록했다. 신도의 수는 13억명으로 추산된다.<br><br>이슬람교는 특히 교세를 전통적인 강세지역인 아시아와 중동지역을 벗어나 이민을 통해 기독교적 전통이 뿌리 깊은 유럽까지 확대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br><br>이어 1863년 이란에서 창시된 이슬람교의 한 분파인 바하이교의 신도 증가율이 신도들이 많은 인도지역의 높은 출산율에 힘입어 1.7%로 2위를 기록했다. 전체 신도 수는 770만명이다.<br><br>바하이교 창시자인 바하울라는 아브라함-예수-모하메드로 이어지는 선지자로 여겨지고 있다.<br><br>시크교도 1.62%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다. 전체 신도는 2천580만명이며 이 가운데 90%가 인도에 살고 있다. <br><br>시크교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됐던 1947년 교도 수천명이 살해되는 등 박해를 받았지만 현재 인도 총리인 만모한 싱도 시크교 신자일 정도로 번성하고 있다. <br><br>다음으로는 자이나교 1.57%(590만명), 힌두교 1.52%(8억7천만명), 기독교 1.38%(22억명) 등으로 교세가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br></li></ul></div></td></tr></tbody></t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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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과학이 종교에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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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6 May 2007 14:07:44 GMT</pubDate>
		<dc:creator>andologi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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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오늘, 고전을 읽어야 하는 또 한가지 이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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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하는 걸 읽고 걱정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 다윈을 읽는게 뭔 필요가 있습니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뭐 이런 식이었다. 내가 다윈을 전공해서가 아니라, 이런 멘트는 자신의 무식을 자랑하는 말같이 들린다. 그의 요지는 "왜 지금 그 옛날 지식인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었던 것 같다.<br><br>지금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뽑아보라면 몇 가지 전형적인 대답들(중요한 이유를 제시하는)이 나올 것이다.&nbsp;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고전은 통섭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이라고!<br><br>고전의 저자들의&nbsp;공통 특성&nbsp;중 하나는&nbsp;당대 최고의 통섭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플라톤, 아리스...데카르트, 칸트, 홉스, 보일, 뉴턴, 헤겔, 다윈....우리의 영웅들은 하나같이 통섭을 실천한 사람들이었다.&nbsp;그리고 그들의 작품에는 현대의 전공 칸막이로는 분류될 수 없는 내용의 지식들이 가득하다.&nbsp;통섭이 미리학문의 열쇠라고 한다면, 이런 의미에서라도 그들을&nbsp;읽고 연구해야한다. 우리의 롤 모델들을...&nbsp;역설적이게도 미래의&nbsp;키는 과거의 힌트로부터 나오는 셈이다.&nbsp;<br><br>그..러..니..제발 "왜 지금 그따위 한물간 고전을 읽어야 해!"라는 시대착오적 발상은&nbsp;슬그머니 내려줬으면 한다. 이거야 말로 "한물 간" 생각이니까.&nbsp;&nb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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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각에 대한 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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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7 Apr 2007 13:58:14 GMT</pubDate>
		<dc:creator>andologi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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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통섭", 말의 잔치만이 아니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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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네이버 검색엔진으로 "통섭"이라고 쳐보니 최신 뉴스 카테고리에도 관련 기사가 제법 뜨기 시작하는 것 같다. &lt;통섭&gt;을 번역한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통섭"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물론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어줍잖은 비빔밥으론 곤란하다"라는지, "생물학중심의 통섭은 곤란하다"라든지, "과학의 통합에 대한 철학적 반대 논변을 무시했다"라든지..다양한 의견들이 들려온다. 오해도 있고 일리도 있는 비판들이다. ...<br><br>하 지 만...윌슨의 &lt;통섭&gt;을 정말로 다 읽어보고 곱씹어 본 후에 이런 비판들을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번역하면서 깜짝 놀랐던 사실 한가지는, 그가 자신의 컨실리언스를 주장하기 위해 "정말로" 나노과학, 신경과학, 미학, 윤리학, 과학사, 과학철학 등을 공부했다는 사실이다.&nbsp;사회생물학과&nbsp;생태학 등은 그의 세부 전공 영역이니 당연할테고....가장 최근까지(출간년도를 기점으로) 출간된&nbsp;주요 연구성과들이&nbsp;참고문헌에 인용되어 있고 실제로 그걸 본문에서 녹여내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건&nbsp;아무나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진화론의 전설"이라고도 불리는&nbsp;에른스트 마이어의 &lt;이것이 생물학이다&gt;라는 책과 한번 비교해봐라. 그 책에서 마이어는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nbsp;"신경과학과 분자생물학은 여기서 제외되었다"라고...신경과학과 분자생물학이 빠진 책에 과연 &lt;이것이 생물학이다(This is Biology)&gt;라는 제목을 달아줄 수 있을까?&nbsp;민망하지 않은가?&nbsp;<br><br>나는 윌슨의&nbsp;논증이 "엉성하다"는데는 동의한다. 철학자의 눈으로보면 그렇게밖에 안보인다. 더군다나 학문 분야들간의 "교량법칙(bridge law)"이 있어야만 환원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nbsp;과학철학자의 시각으로는&nbsp;통섭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작전일 수 있다. 하 지 만...과학철학/진화생물학을 10년 정도밖에 공부하지 못한(?) 나로서는...그의 작업을&nbsp;nice try라고&nbsp;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싶다..&nbsp;내가 알기로는,&nbsp;나노/신경/분자 과학 등이 어느 정도&nbsp;길을 찾아가는 시점에 이정도의 통합 노력을 실제로 해본 학자는 전세계에서 윌슨이 유일하다. 그리고 윌슨은 그 어디에서도 "다 이루었다"고 하지 않았다. 방향, 전망, 그리고&nbsp;사례를 제공하고 "우리는&nbsp;이런 길로 갈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일종의 "운명"같은 것을 얘기했을 뿐이다.&nbsp;<br><br>출간된지 30년이나 된 &lt;사회생물학&gt;에서 정작 인간에 대해서는 1/10도 얘기하지 못했던 그가 20여년 만에&nbsp;예전의 위용을 대체로 유지하면서 &lt;통섭&gt;을 들고 나올 수 있었던&nbsp;저력은&nbsp;그의 옛 "사회생물학" 지식이 아니었다. 그는&nbsp;그 20여년간 나노/분자/신경/철학/과학사 등을 공부했다.&nbsp;나노과학 전문가/분자생물학자/신경과학자/철학자....심지어 진화심리학/생태학자들....이런 세부 전문가가&nbsp;해당 챕터만 읽어보면 "기초적인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윌슨이라는 한 사람은 그걸 엮어 하나의 큰 틀을 제시하려고 애를 쓴 것이다.&nbsp;그리고 이건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혹은 하지 않은) 매우 독창적인 작업이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윌슨이 &lt;통섭&gt;을 통해 인류에게&nbsp;선사해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nbsp;<br><br>여기서 내가 생각해보려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nbsp;첫째, 통섭은 한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인가, 아니면 집단적인 작업인가? 통섭의 주체에 관한 물음이라 하겠다. 윌슨은 그걸 자신의 머리 속에서&nbsp;"혼자" 시도해본 경우이다.&nbsp;역사적으로 보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다빈치, 뉴턴...등등 소위&nbsp;"르네상스적 지식인"의 경우가 대체로&nbsp;이런 경우이다.&nbsp;사상사의 관점에서보면 아직 집단적으로 이런 작업을 해본 경험은 우리에게 없는 듯하다.&nbsp;그렇다면 한 개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집단적으로는 시도 중인 일로&nbsp;일단 통섭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통섭적 마인드와 최소한의 준비가 되어 있는&nbsp;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단적으로 통합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집단적 통섭 작업의 가장 최적 환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nbsp;통섭에 대한 방법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br>둘째, 통섭의 결과는 사람인가, 작품인가, 아니면 제도인가? 우리가 통섭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형태의 아웃풋을 얻으려 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이것은 첫째 물음과도 연관이 있지만&nbsp;잘 생각해보면 살짝 다르다. 답이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길러내도록 뭔가를 마련해야 할 것이고, 작품이라면 누가 어떤 형태로 협업을 하든 그건 부차적인 문제가 될 터이며, 만일 제도라면 분과들을 재배열하거나 삭제및 첨가하는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는&nbsp;상호배타적인 사안들이 아니며 심지어 셋이 모두 같이 갈 수도 있다.&nbsp;<br><br>내가 걱정하는 것은 혹시 말 잔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말이 먼저 돌아야, 즉 인구에 회자되어야 뭔가 거사가 진행되는 것이니 대의를 위해서는 말의 과잉을&nbsp;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느&nbsp;대학 구석을 봐도 통섭을 위한 액션은 아직 보이지 않아 좀 섭섭하다.&nbsp;대학교수 초빙란 중 어디에서도 "통섭 정신을 갖고 실천해온 해당분야 박사"를&nbsp;초빙한다는&nbsp;식의 멘트는 아직 보질 못했다. 꼭 교수공고가 아니라 어느 연구소의 연구원 자리라도 이런&nbsp;비슷한 멘트는 찾을 수 없다.&nbsp;간혹 융합과학(나노바이오 같은) 전문가(?)를 뽑는 공고가 나 -&nbsp;&nbsp;내 취직자리하고는 상관없음에도 불구하고 -&nbsp;반가울 뿐이다. "철학과 생물학의 통섭 전문가를 초빙합니다"라는 멘트는 꿈에서나 가능한 일일까?<br><br>이게&nbsp;나의 아쉬움이다. 결국&nbsp;학과 통합 등의 방법을 통해 통섭을 지향하더라도 결국 진행하는 주체는&nbsp;집단이건 개인이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nbsp;키우는 일은 어쩌면 제일 중요한, 통섭의 첫걸음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마지막 걸음일 수도... 통섭을 시도해온 사람, 통섭정신을 공유한 사람, 통섭 정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nbsp;결국 이런 사람들이 미래 학문을 만들어가는 거라 생각한다.&nbsp;<br><br>나이 80이 되도록 최근 논문과 책을 읽고 토론하고 연구하고 책을 쓰는&nbsp;윌슨 같은 사람들이 많아질 때 통섭은&nbsp;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게&nbsp;아닐까?&nbsp;<br><br>나는 이런 사람들이 나올 수 있도록&nbsp;밭을 갈아준 그들의 지식 문화가 정말 부럽다. 공부하는 "척"이 아니라 공부를 정말 "즐기는" 그네들의&nbsp;문화가 부럽다.&nbsp;교실에 들어와 어제 읽은 네이쳐 아티클에 대해 한마디 커멘트를&nbsp;다는 교수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교실이 너무 부럽다. 반 이상의 타과 학생들과 시작한 강의가&nbsp;학기말에는 비슷한 실력의 학생들을 내보내는 그런&nbsp;통섭의 교실이 부럽고 무섭다.<br><br><a href="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46/n7139/full/446949a.html">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46/n7139/full/446949a.html</a><br>&nbsp;&nbsp;&nbsp;&nbsp;&nbsp;&nbsp;<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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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7 Apr 2007 05:30:34 GMT</pubDate>
		<dc:creator>andologi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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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내가 생각하는 통섭- 분야를 통합할 것인가 질문을 공유할 것인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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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000099">&lt;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논의해야...&gt;<br />다음은 &lt;미래대학 콜로퀴엄&gt;의 발제와 토론 내용을 정리한 중앙일보의 기사이다. 솔직히 나는 밑의 제안이 여전히 "분과중심주의"를 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nbsp;결국 유관 분야들의&nbsp;통합을 통섭의 구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건 오히려 기존 분야 종사자들의 텃세 의식을 자극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고, 상당히 "정치적"인 결정에 의해 이상한 방향으로 통합이 진행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통섭은&nbsp;(인접)분야의 통합이 아니라 "질문의 공유"이다(아래 글들 참조...).&nbsp;결국 근본적으로 같은 질문을&nbsp;서로가 다른&nbsp;분야에서 던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 사실 이 경험이 없이는 아무리 분야간 통합을 외쳐도&nbsp;절실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 통섭은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nbsp;나는 이 경험을 "I경험"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br /><br />따라서 통섭자는 다음과 같은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을&nbsp;갖추고 있는&nbsp;사람일 것이다. 첫째, 자신의 연구프로그램이 있는 사람(혹은&nbsp;자신의 질문이 있는 사람), 둘째,&nbsp;다른 분야에서 논의되는 근본적으로 유사한 질문들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nbsp;분야의 핵심 질문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nbsp;아는 사람이며, 그 질문이 다른 분야에서 변주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최소한의 지적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통섭은 어느 기관이나 제도가 해주는 게 아니라 결국 그런 사람들이&nbsp;하는 행위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이런 의미에서 통섭은 대학만의 구호가 될 수 없다. 통섭은 지적 호기심과 해답에 대한 열망을 가진&nbsp;사람들 - 그게 누구든 -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국내의 통섭 논의가&nbsp;"몇몇 분과의 통합" 선에서&nbsp;끝나버린다면,&nbsp;그리고 하나의 지식 나무를&nbsp;그리는 결과물로 만족된다면, 그건&nbsp;"통합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한&nbsp;경계없는 탐구의 과정"이라는 통섭의 본 뜻 -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nbsp;을&nbsp;놓친 안타까운 해프닝이 될 지도 모른다.&nbsp;위에서 말한 "I경험"을 해본&nbsp;교수님들이 통섭의 논의를 발전시켜주신다면 좋을 것 같다.</span> <br /><br />관련 기사<br /><a href="http://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amp;total_id=2679957"><a href="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amp;total_id=2679957">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amp;total_id=2679957</a><a href="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amp;total_id=2679957"><br /></a></a><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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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각에 대한 생각</category>

		<comments>http://iniche.egloos.com/1063107#comments</comments>
		<pubDate>Sun, 01 Apr 2007 02:54:24 GMT</pubDate>
		<dc:creator>andologi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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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통섭에 대한 내 글(2)- <지식인마을에 가다> 중에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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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div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 130%"><strong>&nbsp;&lt;통섭의 방법론(?)과 관련된 글&gt;</strong></span><br><br></div><br><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bidi-font-size: 10.0pt"><?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span></o:p></span></p><br><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bidi-font-size: 10.0pt"><o:p><span style="FONT-SIZE: 100%"><span>&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strong><span style="FONT-SIZE: 100%">(1) 질문에는 전공이 없다!<span lang="EN-US">&nbsp; </span></span></strong></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o:p></o:p></span><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st1:PersonName w:st="on"><b><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span></b></st1:PersonName>&nbsp;</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t1:PersonName w:st="on"><b><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b></st1:PersonName><b><span lang="EN-US"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 (</span></b><b><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이하<span lang="EN-US">, </span>장<span lang="EN-US">)</span></span></b><span lang="EN-US"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 </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쑥스럽네요<span lang="EN-US">. </span>어쨌든 하기로 한 것이 시작해보세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t1:PersonName w:st="on"><b><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 __&nbsp;</span></b></st1:PersonName><b><span lang="EN-US"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span></b><b><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이하<span lang="EN-US">, </span>김<span lang="EN-US">)</span></span></b><span lang="EN-US"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 </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먼저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개요부터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span lang="EN-US">. </span>사범대학<span lang="EN-US"> 4</span>학년 수업 중에 ‘성인학습방법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span lang="EN-US">. </span>어떤 분야에서 보통 이상의 성취를 이룬 분들에게는 특별한 학습 방법과 노하우<span lang="EN-US">, </span>그리고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과 정리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그분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수행중입니다<span lang="EN-US">. </span>제가 선생님이 쓰신 글도 읽고 수업도 들어보았는데 몇 가지 부분에 개척자적인 역할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span lang="EN-US">. </span>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성공적 학습자’라고 생각하고 선생님의 공부 방법에 대해서 묻고 싶었던 겁니다<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b><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 </span></span></b><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그래도 저를 알아봐주는 분이 있었네요<span lang="EN-US">. (</span>웃음<span lang="EN-US">) </span>농담입니다<span lang="EN-US">. </span>무슨 질문인지는 알겠는데 되게 거창하네요<span lang="EN-US">. </span>그러니까 제가 어떻게 공부하느냐를 알고 싶은 거죠<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b><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span></span></b><span lang="EN-US"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 </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네<span lang="EN-US">. </span>너무 식상한 질문인가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b><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span></span></b><span lang="EN-US"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 </span><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아닙니다<span lang="EN-US">. </span>매우 중요한 질문이에요<span lang="EN-US">. </span>사실 저는 몇 년 전부터 그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있었거든요<span lang="EN-US">. </span>사람들이 지식을 쌓는 데만 바쁘지<span lang="EN-US">, </span>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span lang="EN-US">. </span>물론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에 간다”라든지 “강남의 아무개 선생의 학원 강의가 용하다”<span lang="EN-US">, </span>“토익 고득점을 위해서는 이런 방법이 최고다”라는 등의 공부 방법은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인생을 살면서 어떤 방식으로 지식과 교양을 넓혀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험해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것 같아요<span lang="EN-US">. </span>이제는 ‘좀 더 큰 어떻게’를 생각해봐야 할 시점인 것 같아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 </span>‘좀 더 큰 어떻게’가 뭔지 궁금해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 </span>그냥 제 이야기를 해볼게요<span lang="EN-US">. </span>저의 공부 스타일은 어느 때부터인지 매우 산만해졌어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 </span>네<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 </span>어떤 분야에서 질문이 생기면 그걸 꼭 다른 분야까지 끌고 다녀요<span lang="EN-US">. </span>가령<span lang="EN-US">, </span>심리학 시간에 정상적인 인간은 네 살 정도가 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해보죠<span lang="EN-US">. </span>그러면 저는 머릿속으로 이런 질문을 해요<span lang="EN-US">. </span>‘그러면 침팬지도 그런 능력이 있을까<span lang="EN-US">? </span>있다면 침팬지는 몇 살에 그렇게 될까<span lang="EN-US">? </span>강아지는 어떨까<span lang="EN-US">?</span>’ 제 머리는 이미 동물행동학 강의실로 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span lang="EN-US">. </span>그러다가 이런 질문으로까지 번지지요<span lang="EN-US">. </span>‘로봇도 다른 로봇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span lang="EN-US">?</span>’ <span lang="EN-US"><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 </span>정말 산만하네요<span lang="EN-US">(</span>웃음<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 </span>산만해 보이는 것은 맞아요<span lang="EN-US">. </span>하지만 어떻게 보면 매우 간결한 사고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span lang="EN-US">. </span>왜냐하면 심리학<span lang="EN-US">, </span>동물행동학<span lang="EN-US">, </span>로봇공학 등의 여러 분야를 향해 공통된 질문을 던지는 경우이니까요<span lang="EN-US">. </span>사실 심리학<span lang="EN-US">, </span>경제학<span lang="EN-US">, </span>철학<span lang="EN-US">, </span>생물학 등의 전공분야는 원래부터 있었던 구획은 아니잖아요<span lang="EN-US">. </span>우리가 좀 더 효율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인공적인 칸막이죠<span lang="EN-US">. </span>각 칸막이 안에서만 통하는 질문이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질문들은 대개 특정 칸막이에 갇혀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 </span>질문에는 전공이 없다는 말씀처럼 들리네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 </span>그것 참 멋진 표현이네요<span lang="EN-US">(</span>적어 놓아야겠네<span lang="EN-US">). </span>위대한 질문은 전공에 구애받지 않는 것 같아요<span lang="EN-US">. </span>분야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면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span lang="EN-US">, </span>질문을 정해 놓고 그것에 답하기 위해 연관된 분야의 지식들도 고려하게 되면 이해의 지평은 계속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 </span>그런 것을 선생님이 직접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 </span>물론이죠<span lang="EN-US">. </span>몇 해 전에 전국의 인지과학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한 적이 있었어요<span lang="EN-US">. </span>저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지과학적 연구를 발표하는 자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인간과 기계<span lang="EN-US">, </span>기계와 기계<span lang="EN-US">, </span>동물과 동물<span lang="EN-US">, </span>동물과 인간<span lang="EN-US">, </span>심지어 동물과 기계의 커뮤니케이션도 다뤘지요<span lang="EN-US">. </span>또 세포와 세포<span lang="EN-US">, </span>분자와 분자간의 커뮤니케이션도 논의 주제였어요<span lang="EN-US">. </span>심포지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span lang="EN-US">. </span>그래서 세포학자<span lang="EN-US">, </span>동물행동학자<span lang="EN-US">, </span>인공지능학자<span lang="EN-US">, </span>언어학자가 머리를 맞댄 것이죠<span lang="EN-US">. </span>아주 재미있었어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 </span>와<span lang="EN-US">, </span>정말 대단했겠는데요<span lang="EN-US">. </span>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그런 질문들을 할 수 있을까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 </span>저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span lang="EN-US">. </span>궁금한 게 있으면 그걸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키워보는 거예요<span lang="EN-US">. </span>대신 자기 전공에서만 맴돌지 않고 늘 다층적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죠<span lang="EN-US">. </span>알고 싶은 게 있다면 용감하게 질문하면 됩니다<span lang="EN-US">. </span>오히려 많이 알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 </span>하지만 용감하게 질문할 수는 있지만 좋은 질문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 </span>그래서 저는 ‘용감한 질문’이라는 말보다 ‘정직한 질문’이란 말을 더 좋아합니다<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 </span>정직한 질문이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 </span>정말로 알고 싶은 것을 묻는 거예요<span lang="EN-US">. </span>“질문이나 한번 해보자”가 아니라 자신의 지식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지식까지도 총동원하여 답을 알고자 하는 태도<span lang="EN-US">, </span>바로 그런 태도에서 정직한 질문이 나온다고 생각해요<span lang="EN-US">. </span>‘지식 총동원령’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어떤 질문이라도 저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 </span>선생님과 나눈 첫 번째 화두는 ‘질문’인 것 같네요<span lang="EN-US">. </span>분야에 집착하지 말고 질문을 중심으로<span lang="EN-US">, </span>혹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지식을 쌓으라는 말씀이시죠<span lang="EN-US">? </span>멋진 말씀이긴 한데 꼭 그렇게 해야만 할까요<span lang="EN-US">? </span>한 우물만 깊이 파는 것도 중요하잖아요<span lang="EN-US">. </span>이건 저의 ‘정직한 질문’입니다<span lang="EN-US">.(</span>웃음<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span>웃음<span lang="EN-US">) </span>물론입니다<span lang="EN-US">. </span>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이 “한우물만 깊이 팔 것이냐<span lang="EN-US">, </span>아니면 여러 우물을 조금씩만 팔 것이냐”의 이분법적 구도를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span lang="EN-US">. </span>제 말의 핵심은 정직하게 질문을 던지자는 것이에요<span lang="EN-US">. </span>그게 모든 지식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span lang="EN-US">.&nbsp;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특히 요즘은 여러 분야의 지식들이 하나 둘씩 모여 몇 가지 원리들로 통합되고 융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span lang="EN-US">. 30-40</span>년 전만해도 학문 분야들을 좀 더 쪼개고 나누는 일들이 활발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죠<span lang="EN-US">. </span>분야들 사이에 놓였던 칸막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통합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요<span lang="EN-US">. </span>가령 생물학과 화학이 만나 생화학이 되고 철학<span lang="EN-US">, </span>언어학<span lang="EN-US">, </span>심리학<span lang="EN-US">, </span>컴퓨터공학 등이 만나 인지과학이 생겨나는 식이죠<span lang="EN-US">. </span>이제는 협동의 시대가 되고 있는 거예요<span lang="EN-US">. </span>미래 지식인은 틀림없이 이런 넘나듦의 미학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일 겁니다<span lang="EN-US">. </span>벌써부터 그런 무리들이 생겨나고 있어요<span lang="EN-US">. </span>제가 수업 시간에도 소개를 해드린 바 있죠<span lang="EN-US">? </span>엣저<span lang="EN-US">(edger)</span>들 말이에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김<span lang="EN-US">: </span>에지재단<span lang="EN-US">(Edge foundation)</span>에 참여하는 지식인들 말인가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장<span lang="EN-US">: </span>네 맞아요<span lang="EN-US">. </span>그들의 면면을 보면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석학들인데 그들이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보면 전문가가 아닌 대중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span lang="EN-US">, </span>또한 진정으로 궁금해 하는 것들이에요<span lang="EN-US">. </span>그들은 ‘내 전공<span lang="EN-US">, </span>네 전공’을 따지지 않는 것 같아요<span lang="EN-US">. </span>곧바로 질문하고 함께 협력하며 답을 찾아가죠<span lang="EN-US">. </span>협력을 하려면 다른 분야의 지식도 어느 정도 습득하고 있어야겠지요<span lang="EN-US">. </span>이게 바로 미래 지식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span lang="EN-US">. </span>실제로 그들 중 상당수가 세상을 선도할 지식인들로 선정되곤 해요<span lang="EN-US">. (&lt;</span>지식인마을<span lang="EN-US">&gt;</span>을 짊어질 새싹들도 이렇게 통합적 사고력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이제 ‘전공’이 무엇이냐고 묻는 시대는 가고 ‘질문’이 무엇인가를 묻는 시대가 도래 하고 있어요<span lang="EN-US">. </span>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는 제너럴리스트냐 한 분야에 전문성을 띤 스페셜리스트냐를 구분 짓는 시대가 아닌 통합적 시야를 가진 전문가<span lang="EN-US">, </span>즉 제너럴스페셜리스트인지가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죠<span lang="EN-US">. </span>지식의 순수혈통을 따지는 시대에서 지식의 하이브리드를 선호하는 시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span lang="EN-US">. </span>융합과 통섭은 미래 지식계의 최대 화두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span lang="EN-US">. <o:p></o:p></span></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LINE-HEIGHT: 15.7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lang="EN-US"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 mso-bidi-font-family: 한컴바탕">&nbsp;<o:p></o:p></span></p><br><p style="TEXT-JUSTIFY: inter-ideograph; MARGIN: 0cm 0cm 0pt 25pt; TEXT-INDENT: -25pt; LINE-HEIGHT: 15.75pt; TEXT-ALIGN: justify; mso-char-indent-count: -2.5"><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black; FONT-FAMILY: 바탕체; mso-bidi-font-family: 한컴바탕">출처<span lang="EN-US">: &lt;</span>지식인마을에 가다<span lang="EN-US">&gt;(</span>김영사<span lang="EN-US">, 2006) pp.198-207</span></span></p><br><br><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25pt; WORD-BREAK: keep-all; TEXT-INDENT: -25pt; mso-char-indent-count: -2.5"><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bidi-font-size: 10.0pt"><o:p>&nbsp;</o:p></span></p><br><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p></span><br><p></p><br><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o:p></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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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각에 대한 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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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31 Mar 2007 16:04:37 GMT</pubDate>
		<dc:creator>andologis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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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통섭에 대한 내 글(1) - 서울대 대학신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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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align="center"><table class="MsoNormalTable" style="WIDTH: 346.65pt; mso-cellspacing: 0cm; mso-padding-alt: 0cm 0cm 0cm 0cm"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62" border="0"><tbody><tr style="HEIGHT: 65.65pt; mso-yfti-irow: 0; mso-yfti-firstrow: yes"><td style="BORDER-RIGHT: #ece9d8; PADDING-RIGHT: 1.5pt; BORDER-TOP: #ece9d8; PADDING-LEFT: 1.5pt; PADDING-BOTTOM: 1.5pt; BORDER-LEFT: #ece9d8; PADDING-TOP: 1.5pt; BORDER-BOTTOM: #ece9d8; HEIGHT: 65.65pt; BACKGROUND-COLOR: transparent"><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margin-top-alt: auto; mso-margin-bottom-alt: auto" align="left"><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style="FONT-SIZE: 100%">&nbsp;<?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span></p><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margin-top-alt: auto; mso-margin-bottom-alt: auto" align="left"><span style="FONT-SIZE: 100%"><b><span style="COLOR: #000033; mso-bidi-font-size: 10.0pt; mso-hansi-font-family: 바탕;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style="FONT-FAMILY: 바탕">‘통합적으로 이해하기’는 시대의 흐름</span></span></b><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 <span lang="EN-US"><o:p></o:p></span></span></span></p></td></tr><tr style="HEIGHT: 17.3pt; mso-yfti-irow: 1"><td style="BORDER-RIGHT: #ece9d8; PADDING-RIGHT: 1.5pt; BORDER-TOP: #ece9d8; PADDING-LEFT: 1.5pt; PADDING-BOTTOM: 1.5pt; BORDER-LEFT: #ece9d8; PADDING-TOP: 1.5pt; BORDER-BOTTOM: #ece9d8; HEIGHT: 17.3pt; BACKGROUND-COLOR: transparent"><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align="left"><span style="FONT-SIZE: 100%"><b><span lang="EN-US"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1pt;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b><b><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1pt;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연재기획<span lang="EN-US">] </span>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만남</span></b><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 <span lang="EN-US"><o:p></o:p></span></span></span></p></td></tr><tr style="HEIGHT: 17.3pt; mso-yfti-irow: 2"><td style="BORDER-RIGHT: #ece9d8; PADDING-RIGHT: 1.5pt; BORDER-TOP: #ece9d8; PADDING-LEFT: 1.5pt; PADDING-BOTTOM: 1.5pt; BORDER-LEFT: #ece9d8; PADDING-TOP: 1.5pt; BORDER-BOTTOM: #ece9d8; HEIGHT: 17.3pt; BACKGROUND-COLOR: transparent"><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margin-top-alt: auto; mso-margin-bottom-alt: auto" align="left"><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style="FONT-SIZE: 100%">&nbsp;<o:p></o:p></span></span></p></td></tr><tr style="HEIGHT: 17.3pt; mso-yfti-irow: 3"><td style="BORDER-RIGHT: #ece9d8; PADDING-RIGHT: 1.5pt; BORDER-TOP: #ece9d8; PADDING-LEFT: 1.5pt; PADDING-BOTTOM: 1.5pt; BORDER-LEFT: #ece9d8; PADDING-TOP: 1.5pt; BORDER-BOTTOM: #ece9d8; HEIGHT: 17.3pt; BACKGROUND-COLOR: transparent"><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righ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margin-top-alt: auto; mso-margin-bottom-alt: auto" align="right"><span style="FONT-SIZE: 100%"><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span></p></td></tr><tr style="HEIGHT: 17.3pt; mso-yfti-irow: 4"><td style="BORDER-RIGHT: #ece9d8; PADDING-RIGHT: 1.5pt; BORDER-TOP: #ece9d8; PADDING-LEFT: 1.5pt; PADDING-BOTTOM: 1.5pt; BORDER-LEFT: #ece9d8; PADDING-TOP: 1.5pt; BORDER-BOTTOM: #ece9d8; HEIGHT: 17.3pt; BACKGROUND-COLOR: transparent"><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margin-top-alt: auto; mso-margin-bottom-alt: auto" align="left"><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style="FONT-SIZE: 100%"></span></span>&nbsp;</p></td></tr><tr style="HEIGHT: 469.75pt; mso-yfti-irow: 5; mso-yfti-lastrow: yes"><td style="BORDER-RIGHT: #ece9d8; PADDING-RIGHT: 1.5pt; BORDER-TOP: #ece9d8; PADDING-LEFT: 1.5pt; PADDING-BOTTOM: 1.5pt; BORDER-LEFT: #ece9d8; WIDTH: 346.65pt; PADDING-TOP: 1.5pt; BORDER-BOTTOM: #ece9d8; HEIGHT: 469.75pt; BACKGROUND-COLOR: transparent" width="462"><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LINE-HEIGHT: 155%;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margin-top-alt: auto; mso-margin-bottom-alt: auto" align="left"><span style="COLOR: #333333; LINE-HEIGHT: 155%; FONT-FAMILY: 굴림;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style="FONT-SIZE: 100%">몇 년 전 런던 정경대학의 ‘다윈 세미나’라는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한 일이 있었다<span lang="EN-US">. </span>참석자들 중 진화생물학자는 딱 한 명 뿐 나머지는 철학자<span lang="EN-US">, </span>심리학자<span lang="EN-US">, </span>물리학자<span lang="EN-US">, </span>공학자였으며 심지어 정책학자도 앉아 있었다<span lang="EN-US">. </span>다양한 지적 배경의 참석자들을 묶어준 키워드는 그저 ‘진화’일 뿐이었다<span lang="EN-US">. </span>당시에 공학자는 기술변동론을<span lang="EN-US">, </span>정책학자는 가족정책의 근거를 진화와 연결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진화’라는 용매가 학문의 장벽을 스르르 녹여버린 듯 했다</span><span style="FONT-SIZE: 100%"><span lang="EN-US">.&nbsp; <br />
<br />
</span>인문사회학 분야의 포스트모던 사상과 자연과학 분야의 환원주의가 학문의 전당을 분열적으로 양분하던 시대가 쇠퇴하면서<span lang="EN-US">, </span>최근에는 분야들을 통합 혹은 통섭<span lang="EN-US">(</span>統攝<span lang="EN-US">)</span>해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span lang="EN-US">. </span>언뜻 보면 말만 바꾼 환원주의처럼 보이기도 하고<span lang="EN-US"> 21</span>세기에 웬 계몽주의인가 싶기도 하지만<span lang="EN-US">, </span>최근의 흐름은 과거의 것과 사뭇 달라 보인다<span lang="EN-US">. </span>이젠 허망한 구호나 멀기만 한 비전이 아니다</span><span style="FONT-SIZE: 100%"><span lang="EN-US">. <br />
<br />
</span>과학기술의 최신 성과들은 상이한 분야들을 엮어주는 실밥의 양과 질도 높여 주었다<span lang="EN-US">. </span>가령 예전 같으면 인간과 사회의 행동이 분자운동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느냐고 하겠지만<span lang="EN-US">, </span>최근 신경과학자들은 분자와 인간을 중매하는 ‘뉴런<span lang="EN-US">(</span>신경세포<span lang="EN-US">)</span>’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이제 두 대상에 대한 통합적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span lang="EN-US">.&nbsp;&nbsp; <o:p></o:p></span></span></span></p><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LINE-HEIGHT: 155%;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margin-top-alt: auto; mso-margin-bottom-alt: auto" align="left"><span style="COLOR: #333333; LINE-HEIGHT: 155%; FONT-FAMILY: 굴림;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style="FONT-SIZE: 100%">통합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더이상 이념의 싸움이 아니다<span lang="EN-US">. </span>매일 매일 쏟아지는 과학기술의 놀라운 성과 앞에서 눈을 감고 자신만의 분야를 고집할 때가 아니다<span lang="EN-US">. </span>통합이 당위이기 이전에 시대의 흐름이요 요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span lang="EN-US">. </span>만약 나노로봇<span lang="EN-US">(nanobot)</span>이 뇌 속에 들어가 뉴런을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span lang="EN-US">? </span>인공지능이 실현되어 로봇들이 의식과 감정을 갖게 되면 그들에게도 참정권을 줘야 할까<span lang="EN-US">? </span>아주 먼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span lang="EN-US">. </span>어쩌면 우리의 자녀들 세대는 로봇윤리학 같은 과목을 필수로 배워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span><span style="FONT-SIZE: 100%"><span lang="EN-US">. <br />
<br />
</span>따라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의 광장은 앞으로 점점 더 넓어지고 복잡해질 전망이다<span lang="EN-US">. </span>그리고 피상적이고 원론적인 시도가 아닌<span lang="EN-US">&nbsp; </span>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만남이 진행될 것이다<span lang="EN-US">. </span>여러 분야들을 대충 짜깁기 해놓고 마치 통합이 끝난 양 떠드는 일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span lang="EN-US">. </span>짜깁기를 할 때 사용한<span lang="EN-US">(</span>할<span lang="EN-US">) </span>실밥의 양과 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span><span style="FONT-SIZE: 100%"><span lang="EN-US">. <br />
<br />
</span>통합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학문적 접근을 ‘분야 중심’에서 ‘질문 중심’ 혹은 ‘주제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span lang="EN-US">. </span>이것은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다루는가를 묻고 자신의 질문이 그 분야에 적절한지 따지는 방식이 아니라<span lang="EN-US">, </span>먼저 해결하고 싶은 질문을 던지고 그와 관련돼 보이는 여러 분야들의 지식을 엮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span lang="EN-US">. </span>가령 몇 해 전에 전국의 인지과학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span lang="EN-US">&nbsp; </span>참가한 적이 있었는데<span lang="EN-US">, </span>커뮤니케이션이 분자<span lang="EN-US">, </span>세포<span lang="EN-US">, </span>동물<span lang="EN-US">, </span>인간<span lang="EN-US">, </span>기계의 각 수준에서 그리고 각 수준 사이에서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논의됐다<span lang="EN-US">. </span>물론 이 모든 커뮤니케이션 유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span lang="EN-US">. </span>이런 경험에 비춰볼 때 통합학문이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답하기 위해 지적인 자원들을 끌어와 쓰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일지도 모른다<span lang="EN-US">. <o:p></o:p></span></span></span></p><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LINE-HEIGHT: 155%;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margin-top-alt: auto; mso-margin-bottom-alt: auto" align="left"><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COLOR: #333333; LINE-HEIGHT: 155%; FONT-FAMILY: 굴림;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lang="EN-US">&nbsp; </span></span></span></p><p class="MsoNormal" style="MARGIN: 0cm 0cm 0pt; WORD-BREAK: keep-all; LINE-HEIGHT: 155%; TEXT-AUTOSPACE: ideograph-numeric; TEXT-ALIGN: left; mso-pagination: widow-orphan; mso-margin-top-alt: auto; mso-margin-bottom-alt: auto" align="left"><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COLOR: #333333; LINE-HEIGHT: 155%; FONT-FAMILY: 굴림; mso-bidi-font-size: 10.0pt;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span lang="EN-US">출처: 2006년 3월 26일 서울대 대학신문<o:p></o:p></span></span></span></p></td></tr></tbody></table></div>			 ]]> 
		</description>
		<category>생각에 대한 생각</category>

		<comments>http://iniche.egloos.com/1062140#comments</comments>
		<pubDate>Sat, 31 Mar 2007 15:34:14 GMT</pubDate>
		<dc:creator>andologis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최근 한국의 통섭 논의를 보며...미래대학은 어떻게 오는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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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엊그제 몇몇 한국 언론에 따르면, 저명한 교수 20여 명이 "미래대학"을 위한 콜로퀴엄을 가지셨단다. 현재 지식 체계와 대학 체제에 대한 재고를 주장하며 학문간 통합, 융합, 통섭이 이뤄지는 미래를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체계와 대학이&nbsp;세워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nbsp;한마디로 말해 미래 지식의 메가트렌드가 통섭이라는 얘기다.아주 반가운 뉴스였다.<br />
<br />
"통섭"(큰 줄기를 잡다)이라는 용어는 참 신통하다. 사실 나는 이 용어를 도입하는 것에&nbsp;처음에는 반대했었다. 왜냐하면 윌슨이 사용하려는 의미가 이렇게 번역하는 순간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누구 말대로 하면 의미가 미끄러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원어를 소리나는대로 그대로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다. 컨실리언스(Consilience). 내 논리는 이랬다. 우리가 postmodernism 같은 용어를 "후기근대주의" 혹은 "탈근대주의"로 번역하는 순간 그 두가지 의미를 다 포괄하는 원래의 뜻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기에 그걸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듯이, consilience도 그렇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br />
<br />
그러나 최교수님은 그것이 합리적 제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적합한 새로운 용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온게 바로 지금의 "통섭"이다. 이제 이 통섭이라는 meme은 한국 아카데미아의 화두로 등장했다. 심지어 대권후보들도 이 용어를 여기저기서 흘린단다. 아주 성공한 밈이다.<br />
<br />
나는 가끔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일 당시 내 뜻대로 "컨실리언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많은 이들에 회자되는 용어가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지금 바라던 것은 "통섭"이라는 용어보다 그 의미, 다시 말해 지식의 통합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nbsp;친근하면서도 참신한 "용어"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nbsp;어떤 경우에는 용어 자체가&nbsp;거의 전부인 경우도 있다.&nbsp;그 선정적인 광고 카피들을 보라!<br />
<br />
내 생각은 이렇다. 1997년 윌슨의 컨실리언스가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미국 학계는 지식의&nbsp;통합이라는 주제로 대대적인 심포지엄을 열었을 정도로 즉각적인, 그리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타이밍이 끝내주는 주제였다.&nbsp;적지 않은 학자들이 인정하듯, 설령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 다소&nbsp;엉성하거나 무리한 부분이 있었더라도, 그 책은 윌슨의 여느책 못지 않게 당시의&nbsp;긴급하고 중요한 이슈들을 제시해주는 미래지향적 책이었다. 그리고 그의&nbsp;선경지명은 10년이 지난 지금 하나 둘씩&nbsp;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되었다. 가령 나노융합과학은 지금 전 세계가 열광하는&nbsp;새로운&nbsp;미답지다.&nbsp;&lt;통섭&gt;은 한국에서 2005년에 번역출간되었다. 이건 번역자(들)의 게으름 혹은 바쁨때문에 벌어진&nbsp;시간 지연이다. 하지만 그 사이드 이펙트는 오히려&nbsp;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만일...만일...이 책이&nbsp;한국에서 1998년이나 한두해 뒤에&nbsp;번역출간되었다고 해보자. 과연 지금과 같은 화두를 던지를 책이 되었을까?&nbsp;물론 윌슨이라는 대가의 책이니 당시에 틀림없이 큰 주목을 받았을 법 책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학계를&nbsp;문자 그래도 움직이게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어쩌면&nbsp;10년 전의 자이리톨 껌과 같은 운명(한국 사회에서 너무 일찍 소개되어 초기 몇 년간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음.)이었을지도 모른다.<br />
<br />
내가 하려는 말은&nbsp;이제야 한국은&nbsp;지식의 통합 문제를&nbsp;진지하게&nbsp;고민하기 시작했고,&nbsp;Consilience라는 개념은 그런 흐름의 방아쇄 역할, 혹은 교과서 역할을&nbsp;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nbsp;한국에서는 거의 10년이나 지연되어 출간된 책이지만 오히려 타이밍 자체는&nbsp;더없이 좋았다는 얘기이다. 거기에 "통섭"이라는 매력적인 이름까지 붙여졌으니 언론은 그 뜻을 소개하는 기사를 꼭 쓸 수밖에 없고...그 결과는 "통섭"이라는 밈의 적응도가 날마다 높아지는 것이다. 마치 백신을 맞게되는 과정을 통해 파스퇴르의&nbsp;패트리 접시의 가치가 증가하듯이 말이다(라투어가 도킨스의 밈에 대해&nbsp;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nbsp;라투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과 도킨스(정확히는 데닛)의 밈이론은&nbsp;아주 유사하다. 논문 하나&nbsp;잘 쓰면 대박날 것 같은&nbsp;예감!). 그리하야 "통섭"이라는 밈은 지금&nbsp;한국 학계에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nbsp;"통섭"이라는&nbsp;용어 자체도 이런&nbsp;확산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용어를 먹여살릴 수 있는 호스트(host)가 비로소&nbsp;한국에는 최근에야 형성되었다는게&nbsp;더욱 중요하다. 호스트의 영양상태가 부실해지면 통섭이라는 바이러스도 생존하기 힘들 것이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말 것이다.<br />
<br />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바램이&nbsp;통섭이라는 밈의 적응도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nbsp;통섭이라는 밈의 의미를 학계에 구현하는 일이라면, 궁극적으로는 구호나 선언보다는&nbsp;구체적인 실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nbsp;가령, 실제로 온갖 소리를 다 들어가며&nbsp;어렵게 통섭을 추구해온 인재들을 대학이나 기관에서 임용해서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고,&nbsp;또 이들이 롤모델이 되어 많은 학생들이 용기와 도전의식을 갖고 통섭 정신을&nbsp;젊을때부터 실천해볼 수 있도록&nbsp;좋은 호스트&nbsp;만드는 일을 해줘야 할 것이다. 나는 며칠전에 열린 &lt;미래대학을 위한 콜로키엄&gt;이 궁극적으로는 이런 일들을 위한 첫걸음이기를&nbsp;기대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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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대학을 지지하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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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 			 ]]> 
		</description>
		<category>생각에 대한 생각</category>

		<comments>http://iniche.egloos.com/1060743#comments</comments>
		<pubDate>Sat, 31 Mar 2007 06:01:50 GMT</pubDate>
		<dc:creator>andologis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E.O.Wilson을 만나다(2)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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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이어서....(대화를 녹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래 글은&nbsp;저의 기억에 의한 재구성임을 밝힙니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다니 저 자신이 놀랍습니다. 하기야 어찌 이걸 잊을 수 있겠습니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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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얘기는 자연스럽게 생태계의 위기 얘기로 번졌고 윌슨, 데닛, 나는 자연스럽게 윌슨이 작년에 출간한 &lt;Creation&gt;이라는 책 얘기로 옮겨갔다. 물론 나는 몇 달 전에 그 책을 하버드의 coop 책방에서 사서 틈나는 대로 읽고 있었고, 그 날 저자 싸인을 받기 위해 가방에 챙겨왔다. 이 책은&nbsp;(가상의) 목사에게 띄우는&nbsp;윌슨의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 시절 어쩌면 앨러바마에서 함께 기도하며 신앙을 논했을 수도 있는 남침례교 목사를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서, 진화생물학자로서의 면모보다는 지구의 생태위기를 가장 시급한 문제로 보는 생태학자의 면모가 드러나는 책이다. 표지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가장 시급한 문제인 생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과학과 종교간의 형이상학적 긴장은 제쳐두자. 그리고 생태 위기는 두 영역이 함께 손을 잡고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뭐 이런 식이다. <br />
<br />
데닛이 먼저 운을 떼었다. "많은 사람들이 리처드(&lt;이기적 유전자&gt;의 저자인 도킨스를 의미함)와 내가 종교에 관해 어떤 견해차를 갖고 있냐고 질문합니다. 나는 그럴때마다 이렇게 답하죠. 나는 종교를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공공학교에서도 종교(모든 종교)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다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야 실상을 알 수 있고 종교에 대해 제대로된 판단을 할 수 있으며 종교를 더 좋은 종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저는 당신(윌슨)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요."<br />
<br />
작년에 출간된 도킨스의 &lt;God delusion&gt;을 읽어본 이라면, 그리고 데닛의 &lt;Breaking the spell&gt;을 읽어본 이라면, 그리고 윌슨의 &lt;Creation&gt;까지 본 사람이라면 이들의 대화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렇다. 최근 1-2년은 진화론의 대가들이 저마다 종교에 대해 한 권의 책을 출간했던 아주 흥미로운 시기였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종교의 기원, 유지, 기능에 대해 모두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이 차이중 어떤 것은 아주 미묘해서 전문가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 외에도 종교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접근을 펼치는 학자들이 좀 있다. Boyer, Atran, D.S. Wilson, Bloom etc.)&nbsp;이들은 모두 종교가 자연현상이라는 사실, 즉 종교현상은 진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그게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nbsp;왜 유지되고 있는지, 기능은 무엇인지,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nbsp;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nbsp;개성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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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이 데닛의 말을 받는다. "나는 리처드, 당신(데닛),&nbsp;그리고 나의 차이를 이렇게 규정하고 싶소. 리처드는&nbsp;종교와 전쟁을 벌이는 전사이고, 당신은&nbsp;사람들로 하여금&nbsp;종교를 재고하게 만드는 영리한 전략가이며, 나는 생태 문제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풀기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사람이지요."&nbsp;이런&nbsp;성격 규정이 맘에 들었는지 데닛이 맞장구를 친다. "이 얼마나 절묘한 분업입니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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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렇게 싱겁게(?)&nbsp;서로의 역할을&nbsp;정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심&nbsp;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고 싶었다. 우선&nbsp;"형이상학적 문제를 제쳐두자"는 윌슨의 태도가 맘에 걸렸었다.&nbsp;&lt;통섭&gt; 10장(?)을 보면 윌슨은 종교를 하나의 적응(adaptation)"으로&nbsp;간주한다.&nbsp;그에게 종교는 동물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위계 행동"일 뿐이다.&nbsp;동물 사회에서는 우위자에게 복종함으로써 적응적 이득을 얻는 열위자들이 존재하고 그런 행동은&nbsp;우위자에게나 열위자에게나 이득을 안겨줄 수 있다. 윌슨에 따르면 종교현상은&nbsp;"보이지 않는" 우위자에게 복종하는 열위자들의 의식 행위와도 같다. 이런 식의 도전적인(기존의 종교현상학 이론들에 비할 때) 이론은 온데간데 없고, 생태문제를 위해 손을 잡자니...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했다.&nbsp;물론 나는 그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밖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를 초대해준&nbsp;대가에게 그건 절대 예의가 아닐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데닛마저도 너무 쉽게 윌슨의 행동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 같아&nbsp;사실은 좀 놀랬다. 어쩌면&nbsp;이 시대 최고의 논객중 하나인 천하의&nbsp;데닛도 윌슨 앞에서는 잠시 꼬리를 감춰야 하는지도 모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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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이용하려는 윌슨의&nbsp;논리는 매우 분명해보였다.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 연합에 가입된 신도수가 얼만지 아세요. 몇 천만이에요. 그러면 미국&nbsp;무신론자 연합에는 얼마나?&nbsp;많아야 몇 만일 겁니다.&nbsp;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신론자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nbsp;이슈를 위해서 이 엄청난 수의 사람(다른 형이상학적 전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놀랍고 고무적인 것은 이들이 내 얘기를 정말로 경청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책을 계기로 많은 강연회를 다녔는데 기독교 단체들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요. 마치 고향에 간 느낌이었어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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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듯이 윌슨은&nbsp;어린&nbsp;시절을 전형적인 남침례교인처럼 지낸,&nbsp;이른바 거듭난 기독교인이었다. 진화를 공부하면서 어느 순간 믿음을 버리게 되었지만 종교적 에토스는&nbsp;남아 있다.&nbsp;나는 무엇보다&nbsp;통섭을 지향하는 그의 학문적 태도와 방법론이 매우 기독교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히브리적 전통이든 헬라 전통이든 모든 지식은&nbsp;결국 하나님의 지식이라는 발상은 지식의&nbsp;현대적 파편화와는 거기가 있는 이야기이지 않는가? 이번에&nbsp;나는 그의 글이 아닌 그의&nbsp;언행에서 기독교적 냄새를 좀 맡았다. 말로 표현하기는 참 어렵지만 기독교인들을 많이 대해보면 알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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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질세라 데닛도 몇 주 전 그의 경험을 나눈다. "저도&nbsp;ㅡㅡ 남침례대학교에 초청을 받아 수천명의 청중앞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었지요. 아주 진지했고 훌륭한 질문들을 던지더군요. 아주 고무적이었어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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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니 우리의 도킨스 선생만 이 대목에서 약간 왕따가 되는 분위기이다. 도킨스의 이야기를 경청해보겠다고 초청하는 교회나 신학교는 어디에도 없지 않는가?&nbsp;사실 거의 모든 면에서 도킨스를 지지하고 의견을 같이하는 데닛이지만 종교에 대해서만큼은 그걸 약간 유보하고 있다. 갓 딜루전에 대한 한 서평에서 데닛은 그 점을 명확히 했다. "종교의 위치에 대해서 만큼은 나는 그와 좀 다른 것 같다"는 식으로 고백(?)했고,&nbsp;"오늘날 그 누가 신존재 증명 같은 것에 큰 관심을 보이겠느냐. 신존재 증명의 실패를 그렇게까지 길게 쓸 필요는 없다"라고&nbsp;한마디 했다. 그리고 자신은&nbsp;오히려 신에 대한 믿음(belief in god)보다&nbsp;"신에 대한 믿음에 대한 믿음"(belief in belief in god)이 퍼져 있는&nbsp;것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라고 추가했다(이건 아주 흥미로운 주장이고...요즘 이에 대해 논문을 써볼 생각을 하고 있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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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특히 탬플턴 재단에 대한 공통된 느낌과 경험에서는 극에 달했다.&nbsp;이 재단은 주식 투자로&nbsp;떼돈을 번 존 탬플턴이라는 사람이&nbsp;세운 비영리단체로서&nbsp;특히 과학과 종교의 관계 문제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여러 형태의&nbsp;자금을 대준다.&nbsp;매년(?) 탬플턴 상을 주는데&nbsp;상금이 장난 아니다. 한국에서는&nbsp;영락교회의 원로 목사인 한경직목사가 그걸 받아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쨌든 두 사람은 모두 한번도 그 돈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왜 받지 않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윌슨은 그 펀드로&nbsp;진행중인 하버드 프로젝트(하버드 신학대학이 호스트가 되어 하는 프로젝트로 이타성에 대한 연구이다.)에 참여했지만, 받아야 되는 돈을 거부했다고 얘기했다. 그 이유는 그 펀드가 종교에 대해 좋은 결과만을 내도록 은근히 치우쳐져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데닛도 비슷한 경험을 얘기했다. &lt;Freedom evolves&gt;라는 저서를 막 쓰기 시작할 즈음,&nbsp;그 재단의 저서 지원 프로그램에서 문의가 왔단다. 한번 지원해 보라는 식이었는데,&nbsp;그 규정에 아주 딱 맞는&nbsp;책이어서 한번 지원해볼까도 생각했었는데 그 재단의 방향과 그간의 성과 모음들을 보고는 맘을 접었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nbsp;언젠가 자신의 이론이 완전히 왜곡되어 그 재단의 홈피에 올라져 있는 걸 보고 항의했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러자 윌슨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왜&nbsp;저명한 과학자들이 그 재단을 통해 뭔가를 하는지 아오? 그건 돈의 유혹 때문일 거요. 책 한권을 쓰면 빅머니를 주거든. 그건 유혹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데닛은 "디에스 윌슨이 그 재단 돈으로 연구한 결과물들을 보면&nbsp;그 모든 것이 이해가 갑니다. 은근히 종교를 띄워주고 있거든요. 집단 선택론으로 말이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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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스 윌슨은 내 공동연구자인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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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게 왔다. 집단 선택론에 관한 이야기는 피할 수 없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윌슨이 현재 출판을 준비중인&nbsp;책의 제목은 "Superorganism"이다.&nbsp;자기 자신이&nbsp;어떤 의미에서 발굴하고 전파한 친족선택(kin selection theory)를 전면 부정하는, 매우 희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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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2/3)&nbsp;&nbsp;&nbsp;&nbsp;&nb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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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사람과 사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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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31 Mar 2007 04:33:3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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