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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전과 걸작 사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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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공화국 대한민국 후반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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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4 Nov 2009 00:46:5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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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전과 걸작 사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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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공화국 대한민국 후반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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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록 애호가라면 누구나:『Paint It Rock: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 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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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trong><span style="FONT-SIZE: 14pt"></span></strong></p><p><strong><span style="FONT-SIZE: 14pt"></span></strong><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01/43/d0046543_4aecd945a8923.jpg" width="353" height="45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01/43/d0046543_4aecd945a8923.jpg');" /></div><br>&nbsp;</p><p><strong><span style="FONT-SIZE: 14pt">록 애호가라면 누구나:『Paint It Rock: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 Ⅰ』<br></span></strong><br>작성일: 2009-08-09<br><br><br>20세기 대중음악의 가장 중요한 조류 두 가지를 꼽으면 록과 재즈가 되겠습니다.<br>그&nbsp;이후 등장한&nbsp;세계 각지의 음악들(R&amp;B, 일렉트로닉, 하우스,&nbsp;레게, 보사노바, 모던 탱고 등등)도<br>미국에서 탄생한 록과 재즈가 세계 각지의 음악들과 만나면서 태어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br><br>따라서 20세기 대중음악을 진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br>록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필수라고 하겠습니다.<br>그리고&nbsp;그러한 록의 역사를 가장 생생하고 재미있게 알 수 있는 책이 등장했습니다.<br><br>1950년대에 "백인들이 하는 흑인음악 + 흔드는 음악" 정도로 탄생했던 록음악은<br>미국 역사상 진보운동의 최격변기였던 1960년대의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br>저항과 진보를 상징하는 음악이 됩니다.<br>이 만화는 그러한 록음악의 탄생, 발전과 쇠락을 그리고 있습니다.<br>(개인적으로 록의 정신은 70년대에 끝났고, 80년대에 마이클 잭슨에 의해 확인사살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br><br>역사기록으로서의&nbsp;이 작품의 미덕은<br>가장 기초적으로 성실한 자료조사에 기반하여<br>미국의 록의 역사 전반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압축적이면서도 폭넓은 서술을 보여주고<br>또 지극히 "사회적인" 음악인 록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필수인 미국 사회의 역사&nbsp;역시&nbsp;상당한 깊이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br><br>그에 더하여 '만화'로서의 이 작품의 미덕은<br>록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아티스트("록커")들의 특징을 매우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으면서<br>익살스러운 작화와 개그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등장하여<br>지루할 틈이 없이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입니다.<br><br>이러한 작품의 미덕들은 저자인 재즈비평가 남무성의 이전 작품인<br><strong>『Jazz It Up: 만화로 보는 재즈 역사 100년』</strong>(<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474079" target="_blank">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474079</a>) 이<br>발매 당시 그 완성도와 재미로&nbsp;큰 화제를 모았고<br>한국에서 출간된 음악비평서로서는 이례적으로<br>일본과 대만으로 수출되기도 하였다는 점에서도 일부 증명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br><br>"20세기 대중음악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록의 역사를<br>(사실 재즈는 1950년대 이후 대중음악이라기 보다는 엘리트 음악이 된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br>세계 대중음악의 역사가 대부분 록의 역사라고 하는 것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br>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합니다.</p><p>&nbsp;</p><p><br><br><strong>참조링크</strong><br><br>네이버 책: <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31346" target="_blank">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6031346</a>&nbsp;<br><br><br><br><br><br><br></p>			 ]]> 
		</description>
		<category>음악 일반</category>

		<comments>http://imjohnny.egloos.com/2462509#comments</comments>
		<pubDate>Sun, 01 Nov 2009 00:43:16 GMT</pubDate>
		<dc:creator>imjohnny</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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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015B(공일오비) 소고(小考): 과거와 현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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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01/43/d0046543_4aecd668f40cb.jpg" width="270" height="30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01/43/d0046543_4aecd668f40cb.jpg');" /></div></p><p>&nbsp;</p><p>&nbsp;</p><p><u><span style="FONT-SIZE: 12pt"><span style="FONT-SIZE: 14pt"><strong>015B(공일오비)&nbsp;소고(小考): 과거와 현재<br></strong></span></span><br></u>작성일: 2009-08-09<br>작성: 임준형<br><br><br><br><strong><u>015B 디스코그래피<br></u></strong><br>참조: <a h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people_filmo&amp;query=%EA%B3%B5%EC%9D%BC%EC%98%A4%EB%B9%84&amp;ftype=album&amp;os=160799&amp;ie=utf8&amp;start=1&amp;sm=tab_pge" target="_blank">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people_filmo&amp;query=%EA%B3%B5%EC%9D%BC%EC%98%A4%EB%B9%84&amp;ftype=album&amp;os=160799&amp;ie=utf8&amp;start=1&amp;sm=tab_pge<br><br></a>[1990]&nbsp;1st Album - [공일오비] (1990)<br>[1991] 2nd Album - [Second Episode] (1991)<br>[1992] 3rd Album - [The Third Wave] (1992)<br>[1992] Gospel Album - [Hymn To Him] (1992)<br>[1993] 4th Album - [The Fourth Movement] (1993)<br>[1994] 5th Album - [Big 5] (1994)<br>[1996] 6th Album - [The Sixth Senth] (1996) 1996-05<br>[1996] Best Album - [The Best Collection] (1996)<br><br>&amp;<br>[2006] 7th Album - [Lucky 7] (2006) 2006-08-30<br>[2006] Special Album - [Final Fantasy] (2006) 2006-05-18<br>[2007] Special Single - [Cluster Vol.1] (2006) 2007-08-28<br><u><strong><span style="FONT-SIZE: 12pt"><br><br><br>Ⅰ. 들어가며: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기린아 015B<br></span></strong></u><br>앞서 제가 소개한<br><span class="b m-tcol-c"><strong><span style="COLOR: #202020">『90년대를 빛낸 명반 50』</span></strong></span>(참조: <a href="http://imjohnny.egloos.com/2462500">http://imjohnny.egloos.com/2462500</a><a href="http://cafe.naver.com/logosnonsool/2886" target="_blank"></a>)&nbsp;을 읽으면서<br>가장 중요하게 다시 발견하게 된 아티스트는 그룹 015B입니다.<br><br>90년대에도 물론 그들을 매우 좋아하긴 했지만<br>1996년 은퇴 이후로 저의 뇌리에서&nbsp;잊혀진 그룹이 되었었고 꺼내서 듣는 일도 없었는데<br>그 책을 읽으며 다시금 그들의 음악적 가치를 대해 되새기며 재발견하게&nbsp;되었고<br>무엇보다 그들이 2006년에 새로운 음악을 내놓았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습니다.<br><br>요즘 제가 가장 몰입해 있으면서<br>90년대의 대중음악 아티스트 중 단 한 명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할 때<br>제가 선택하게 될 아티스트는 015B라고 하겠습니다.<br><br>바로 그러한 그들에 대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두 가지를 풀어놓도록 하겠습니다.<br>그룹 015B의 과거와 현재입니다.<br><u><strong><span style="FONT-SIZE: 12pt"><br><br><br>Ⅱ. 015B: 과거<br></span></strong></u><br>제가 9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 아티스트들을 회고했을 때<br>가장 위대했던 아티스트로 기억되는 것은 다름아닌 015B입니다.<br>음악을 진지하게 좋아하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조금 특이한 가사를 부르던 그룹으로 기억될 지 모르지만,<br>음악을 진지하게 좋아했던 이들에게는<br>015B야 말로 90년대 대중음악씬에서 언제나 음악조류의 최첨단을 선도하며<br>가장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들려주었던 그룹으로 기억됩니다.<br><br>1988년 데뷔했던 무한궤도(리더 신해철)의 멤버로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렸던 정석원이<br>(신해철의 그룹명 '무한궤도'는 그룹명 015B로 패러디됩니다)<br>무한궤도를 탈퇴하고 형인 장호일과 결성하여 1990년 데뷔한 이 그룹은<br>멤버 2인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과<br>(정석원:&nbsp;컴퓨터공학과, 장호일: 언론정보학과)<br>당시 한국에서는 최초로<br>보컬이나 연주자가 중심이 아니라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br>(외국에서는 APP(알란 파슨스 프로젝트가 이러한 그룹 형태의 대표격이며,<br>한국에서도 이후 유희열의 '토이'가 이러한 그룹 형태를 취합니다)<br><br>그러나 데뷔앨범 이후 전술한 두 가지 특징은 그들에게 더 이상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br>그들은 다른 무엇보다 음악 자체로 말하는 그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br>그들은 방송에 전혀 출현하지 않고 음반과 공연으로만 팬들과 만났고<br>또 리스너들에게 익숙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br>언제나 최신음악 조류들(레게, 랩, 아카펠라, 하우스, 얼터너티브, 네오펑크, 인더스트리얼 등)을<br>가장 먼저 도입하여 선보이면서도<br>90년대에 거의 모든 앨범에서 (6집 제외)&nbsp;100만장 안팎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하며<br>'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90년대 음악조류를 선도했던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지녔던 그룹으로 기억됩니다.<br><br>그들은 그렇게 음악적인 면에서 1990년대 최고의 그룹 중 하나였고<br>최근 그들의 음악을 다시 들으며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br>그런데 또 한 가지 발견한 점은,<br>과거에 단순히 특이하다고만 생각했던 그들의 가사의 혁신성이었습니다.<br><br></p><p>&nbsp;</p><p><IMG height=137 src="http://images.hangame.co.kr/cp/tubemusic/album_img/cd131/87/1k1030000187.gif" width=137 align=absMiddle P &nbsp;< td ;? onerror&#61;?this.src="http://images.hangame.co.kr/naver/music/common/default_img_74.gif">&nbsp;<br><strong><span style="COLOR: #7820b9"><br><br>「아주 오래된 연인들」</span></strong><p><span style="COLOR: #7820b9">앨범: [The Third Wave] (1992)<br></span><span style="COLOR: #7820b9"><br>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br>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br>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br>그런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br></span><span style="COLOR: #7820b9"><br>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br>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 거야~<br></span><span style="COLOR: #7820b9"><br>주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약속을 하고<br></span><span style="COLOR: #7820b9">서로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지<br></span><span style="COLOR: #7820b9">가끔씩은 서로의 눈 피해 다른 사람 만나기도 하고<br></span><span style="COLOR: #7820b9">자연스레 이별할 핑계를 찾으려할 때도 있지<br></span><span style="COLOR: #7820b9"><br>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br>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 거야~<br></span><br><br>이 곡은 한국에서 최초로 작곡된 하우스 음악으로 알려져 있으며 (무려 1992년입니다)<br>그 음악을 들었던 신승훈, 김건모, 노이즈의 프로듀서였던 김창환은 그 사운드의 혁신성에 놀라<br>그에 자극받아 하우스 음악 그룹인 노이즈를 프로듀스하고 김건모의 히트곡「핑계」를 작곡하기에 이릅니다.<br>또 박진영은 이 곡을 모델로「그녀를 예뻤다」를 작곡했고<br>1990년대의 댄스그룹들의 원류는 015B라고 단언했다고 합니다.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참조)<br><br>이 정도면 이 곡은&nbsp;그것이 가졌던 혁신성과 이끌어낸 흐름 등을 고려할 때<br>90년대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곡 중의 하나라고 할만 합니다.<br>실제로 이 곡의 사운드는 지금 들어도 여전히&nbsp;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세련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br><br>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가사입니다.<br>90년대에 들을 때에는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들었던 가사였지만<br>2009년에 다시 보게 된 저 가사는&nbsp;절대 평범한 가사가 아니었습니다.<br><br>당시나 지금이나 한국 대중음악이 다루는 가사의 외연은 그다지 넓지 않은 편인데<br>(연애의 기쁨 +&nbsp;이별의 슬픔 -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나는 가사가&nbsp;별로 없을 지경입니다)<br>015B는 연애노래 뿐 아니라&nbsp;성매매 문제(「구멍가게 소녀」)에서 교통문제(「교통천국 코리아」)에 이르기까지<br>놀라운 폭과 외연의 가사를 보여준 그룹으로도 유명합니다.<br><br>그리고 그들은 연애노래 역시 전혀 평범하지 않게 그려냈습니다.<br>무려 "오래된 연인들의 권태"를 그려낸 것입니다.<br>그것도 무려 대한민국 최초의 하우스 댄스음악의 사운드에 실어서 말입니다.<br>(저 사운드와 가사가 일으키는 기묘한 불협화음이 이 음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br><br>가사의 연인들은<br><span style="COLOR: #7820b9">"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br></span><span style="COLOR: #7820b9">"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span>습니다.<br><span style="COLOR: #7820b9">"주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약속을 하고"<br></span><span style="COLOR: #7820b9">"서로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span><span style="COLOR: #000000">고<br></span><span style="COLOR: #7820b9">'가끔씩은 서로의 눈 피해 다른 사람 만나기도 하고"<br></span><span style="COLOR: #7820b9">"자연스레 이별할 핑계를 찾으려할 때도 있"</span>습니다.<br><br>이 얼마나 권태에 빠진 연인들에 대한 적나라하면서도 압축적인 묘사입니까?<br>게다가 이것은 당시까지의 한국 대중음악의 가사들이 "착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는지를 생각하면<br>더욱 놀라운 가사입니다.<br>(90년대까지의 한국 대중음악 가사에서 "나쁜 가사"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까?<br>있다면 서태지 이후 등장한 갱스터랩, 펑크 그룹들의 가사 정도겠습니다)<br>아니, 사실&nbsp;이런 미묘하고 특수하면서도 인간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상황을 포착하고 표현한&nbsp;가사는<br>세계적으로도 찾기 드물 것이라고&nbsp;생각합니다.<br><br>또 노래는&nbsp;<span style="COLOR: #7820b9">"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 거야~'<br></span>라며 너무 막 나가지는 않는, 일정 부분 도덕적ㆍ교훈적 결말로 우회하고 있으나<br>분명 정석원이 강조하여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br>딱 그 앞부분까지, 권태에 빠진 연인들을 어떤 도덕적 주저도 없이<br>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br><br>그래서 분명 당시 가사가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거라고 생각했는데<br>당시의 반응을 찾아본 결과 (당시 제가 어렸기 때문에 어른들의 반응이 어떤지는 몰랐습니다 =_=)<br>역시 생각한대로 이 노래는<br><strong>"순수하게 그려야 할 사랑을 지극히 천박하게 그렸다"</strong>는 심한 야유와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br>(참조:「정석원ㆍ김탁환 대담 - 대중음악과 우리들의 시대」(1994)<br><a href="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amp;page=83&amp;sn1=&amp;divpage=32&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178282" target="_blank">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amp;page=83&amp;sn1=&amp;divpage=32&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178282</a>)<br><br>다음 노래의 가사도 놀랍습니다.</p><p><br>&nbsp;</p><p>&nbsp;</p><p><IMG height=137 src="http://images.hangame.co.kr/cp/tubemusic/album_img/cd131/88/1k1030000188.gif" width=137 align=absMiddle P td ;? onerror&#61;?this.src="http://images.hangame.co.kr/naver/music/common/default_img_74.gif" <>&nbsp;<br><strong><span style="COLOR: #7820b9"><br><br>「신인류의 사랑」</span></strong><p><span style="COLOR: #7820b9">앨범: [The Fourth Movement] (1993)<br></span><span style="COLOR: #7820b9"><br>마음에 안드는 그녀에겐 계속 전화가 오고<br></span><span style="COLOR: #7820b9">내가 맘에 드는 그녀는 나를 피하려 하고<br></span><span style="COLOR: #7820b9">거리엔 괜찮은 사람 많은데<br></span><span style="COLOR: #7820b9">소개를 받으러 나간 자리엔<br></span><span style="COLOR: #7820b9">어디서 이런 여자들만 나오는거야<br></span><span style="COLOR: #7820b9">나도 이젠 다른 친구들 처럼 맘에 드는 누군가를 사귀어보고 싶어<br></span><span style="COLOR: #7820b9"><br>어쩌다 맘에 드는 그녀 남자친구가 있고<br></span><span style="COLOR: #7820b9">별로 예쁘지 않은 그녀 괜히 콧대만 쎄고<br></span><span style="COLOR: #7820b9">거리에서 본 찮은 여자에게 용기를 내 말을 걸어보면<br></span><span style="COLOR: #7820b9">항상&nbsp;젤&nbsp;못생긴 친구가 훼방을 놓지<br></span><span style="COLOR: #7820b9"><br>나도 이젠 다른 친구들 처럼 맘에드는<br></span><span style="COLOR: #7820b9">누군가를 사귀어 보고 싶어<br></span><span style="COLOR: #7820b9"><br>주위를 보면 나보다 못난 남자들이<br></span><span style="COLOR: #7820b9">예쁜 여자들과 잘도 다니는데 나는 왜 이럴까<br></span><span style="COLOR: #7820b9">나도 이젠 다른 친구들 처럼 맘에 드는<br></span><span style="COLOR: #7820b9">누군가를 사귀어 보고 싶어<br></span><br><br>1993년 발표 당시 이 노래는 우선 음악적으로<br>1950년대 미국의 '로커빌리'(로큰롤의 전신이 되는 장르)의 사운드를<br>독창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nbsp;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br>그런데 가사에 관해서는 상당히 들끓는 논쟁이 있었습니다.<br><br>우선 2009년에 다시 이 노래를 들은 저는<br>저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충격 ㅡ 까지는 아니더라도<br>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br>얼마나 능청맞은&nbsp;풍자를 보여주는&nbsp;가사입니까?<br><br>물론 당시 동시대 사람들(남자)들은 이 가사에 공감하며 환호했다고들 하지만,<br>그것은 이 노래의 가사를 오해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br>이 가사가 진지하게 이렇게 생각해서 쓴 가사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br><br>우선 공중파를 타는 음악을 하는 가수가<br><span style="COLOR: #7820b9">"거리엔 괜찮은 사람 많은데 / </span><span style="COLOR: #7820b9">소개를 받으러 나간 자리엔 / </span><span style="COLOR: #7820b9">어디서 이런 여자들만 나오는거야"<br></span>라는 가사를 제정신으로 진지하게 부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br>(그럼 이런 사람들한테 앞으로 누가 소개팅을 시켜주겠습니까?)<br><br>또 정석원ㆍ장호일은&nbsp;80년대 후반에 서울대학교를 다니며<br>나름대로 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암묵적 합의를 공유했을 것으로 추측되므로<br>역시 이런 가사를 제정신으로 진지하게 불렀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br><br>그래서 저는 이 노래가 당연히 동시대 남자들에 대한 조롱이거나 풍자라고 보았습니다.<br>"너는 그딴 소리하기 전에 거울에 비친&nbsp;니 얼굴을 좀 보지 그래"<br>라고 말하는 것이던가,<br>"아니면 동시대 남자들이 이딴 소리들을 하는데 너네는 어떻게 생각하냐?"<br>라던가 말입니다.<br><br>물론 제가 이 가사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 자체가 어떤 "도덕적 강박"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br>진지하게 불렀다고 해서 이 노래의 가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br>상대적으로 기존의 도덕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아티스트'로서<br>기존의 도덕관념에 저항하는 노래를 부른 것이라고 보아도<br>저 가사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br>그러나 그래도 역시 저 노래는 풍자라고 보는 것이 가장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br><br>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br>당시 여러 시민단체(여성단체 포함)들은<br>이 노래에 대해&nbsp;"여성의 외모를&nbsp;상품화"했다고 비판하며<br>"올해 최악의 천박한 노래"로 선정하는 등 맹렬한 비난을 쏟아부었다고 합니다.<br>그럼 이 가사를 진지하게 부른 것으로 받아 들였다는게 되는데,<br><br>그렇다면<br><span style="COLOR: #7820b9">"나에겐 친구가 필요없다. 컴퓨터 안에 모든게 있다."<br></span><span style="COLOR: #7820b9">"나만 있는 세상 지긋지긋한 대인관계 필요없어"<br></span><span style="COLOR: #7820b9">"사람들 만날 이유가 없다"<br></span><span style="COLOR: #7820b9">"모뎀만 있으면 단말기만이 나의 영원한 친구다."<br></span><span style="COLOR: #7820b9">"예의란 내게 필요가 없다."<br>"서로 얼굴을 안 대해도 돼"<br></span><span style="COLOR: #7820b9">"나만있는 세상 지긋지긋한 대인관계 필요 없어"<br></span>라는 <strong>015B,「Netizen」</strong> ([The Fourth Movement] 수록)의 가사도 그럼<br>진짜로 그렇게 생각해서 부른 거란 말입니까?<br><br>이때 015B가 얼마나 당황했을지를 생각하면 좀 안타깝습니다.<br>사람들이 예술의 풍자기능을&nbsp;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br><br>그리고 또 우스운 점은 소위 음악평론가라는 사람들의<br>「아주 오래된 연인들」,「신인류의 사랑」두 곡에 대한 반응도<br>위에 서술한 다른 사람들의&nbsp;비난의 반응과 대동소이했었다고 하는&nbsp;점입니다.<br><br>이쯤되면 음악을 쫓아오지 못할 뿐 아니라 가사까지도 제대로 쫓아오지 못하는<br>retarded한 평론가들에 대한 아티스트 015B가 느낀 짜증이 어느 정도였을지 조금 짐작이 됩니다.<br>(그래서 그들은<strong> 5집 [Big Five]</strong>의<strong>「바보들의 세상」</strong>이란 곡에서 평론가들에 대한 짜증을 노래로 표현합니다)<br><br>여하튼 015B는 이렇게<br>수많은 음악장르를 최초로 도입하며<br>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소화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면서 그 많은 각 장르들의 선구자가 되었고<br>가사에서도&nbsp;놀라운 혁신성을 보여주고 (가사에 관련된) 스캔들을 몰고 다녔으며<br>「슬픈 인연」,「단발머리」등으로 리메이크 열풍을 선도하는 등<br>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음이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br><br>그리고 그들은 1996년 그들의 6집 [The Sixth Sense]를 마지막 앨범으로 선언하며 은퇴하였고<br>역사 속의 잊혀진 그룹이 되어갔습니다.<br><u><strong><span style="FONT-SIZE: 12pt"><br><br><br>Ⅲ. 015B:&nbsp;현재<br></span></strong></u><br>그러나 현재 015B는 과거의 잊혀진 그룹이 아닙니다.<br>2006년 8월 그들은 은퇴한지 딱 10년 만에 새 앨범을 내며 활동을 재개했던 것입니다.<br>아마 015B가&nbsp;음악활동을 재개했다는 사실도 모르셨던 분들이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br><br>사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br>그들이 21세기에 새 음반을 냈는 줄 모르고 있다가<br>최근에야 그 음반을 들어보고 그 완성도에 감탄하여<br>다른 분들에게 소개하고자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br><br>015B가 90년대에 록, 재즈,&nbsp;블루스, 테크노를 기본으로 하면서<br>또 언제나 최신음악 조류들(레게, 랩, 아카펠라, 하우스, 얼터너티브, 네오펑크, 인더스트리얼 등)을<br>새로이&nbsp;소화하여 보여주었던 것처럼<br>2006년 이후에도 그들은&nbsp;일렉트로닉, 시부야케이&nbsp;등 21세기의 새로운 음악들에 대한<br>정석원 자신만의 재해석으로 채워진 음반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br><strong>10대만을 타깃으로 한 현재의 한국의&nbsp;대부분의 대중음악과 달리<br></strong><strong>최신 음악의 조류들을 기반으로 보다 성숙한 아티스트가 보다 성숙한 리스너들을 대상으로 만들어낸<br></strong><strong>어덜트 컨템퍼러리 음악(Adult Contemporary, 성인들이 즐길 수 있는 최신음악)로<br></strong><strong>전혀 손색없는 음악으로 생각됩니다.<br></strong><br>그들의 새 음악은 그들이&nbsp;90년대에 보여주었던 장난끼, 첨단성, 음악적 완성도 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br>그들은 새 음악에서 윤종신, 김형중, 이승환,&nbsp;김돈규 등&nbsp;그들이 90년대에 함께 했던 뮤지션들이 아니라,<br>다이나믹 듀오, 버벌 진트, 호란, 요조, 박정현&nbsp;등<br>21세기에 새로 등장한 뮤지션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br>015B의 새 음악은 딱 그들이 90년대에 앞서있던 만큼 앞서 있습니다.<br><br><br>2006년 이후 발매된</p><p>&nbsp;</p><p>&nbsp;</p><p><IMG height=137 src="http://images.hangame.co.kr/cp/tubemusic/album_img/cd131/60/2kk130014060.gif" width=137 align=absMiddle P td ;? onerror&#61;?this.src="http://images.hangame.co.kr/naver/music/common/default_img_74.gif" <>&nbsp;<br><br>Special Album - [Final Fantasy] (2006)&nbsp;2006-05-18<br><p>&nbsp;</p><p><IMG height=137 src="http://images.hangame.co.kr/cp/tubemusic/album_img/cd131/06/2kk210014606.gif" width=137 align=absMiddle P td ;? onerror&#61;?this.src="http://images.hangame.co.kr/naver/music/common/default_img_74.gif" <>&nbsp;<br><br>7th Album - [Lucky 7] (2006) 2006-08-30<br><p>&nbsp;</p><p><IMG height=137 src="http://images.hangame.co.kr/cp/mnet/clipimage/Album/130/000/154/154626.jpg" width=137 align=absMiddle P td ;? onerror&#61;?this.src="http://images.hangame.co.kr/naver/music/common/default_img_74.gif" <>&nbsp;<br><br>Special Single - [Cluster Vol.1] (2006) 2007-08-28<br><br>이 3장의 음반 중<br>7th Album - [Lucky 7] (2006) 를 가장 추천합니다.<br><u><strong><span style="FONT-SIZE: 12pt"><br><br><br><br>Ⅳ. 나가며<br></span></strong></u><span class="b m-tcol-c"><strong><span style="COLOR: #202020"><br>『90년대를 빛낸 명반 50』</span></strong></span>을 읽은 후<br>015B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특히 가사에 대해)<br>또 2006년 이후의 그들의 앨범을 평가ㆍ소개하는 글을 쓰고&nbsp;싶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실행을&nbsp;못하다가<br>이제야 마무리를 하게 되어 기쁩니다.<br><br>이 글을 읽고 한 분이라도 015B의 과거 음악을 다시 들어주시거나<br>2006년 이후의 음악을 찾아 들으시게 된다면<br>훨씬 더 기쁘겠네요<br><strong><br><br><br>※ 참조 링크<br></strong><strong><br>※ 아래 링크에서 015B 음악들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br></strong><a href="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015B&amp;page=1" target="_blank">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015B&amp;page=1</a><br><strong><br><br>※ 2006년 컴백 당시&nbsp;인터뷰 기사<br></strong><a href="http://blog.paran.com/wwdrama/9845165" target="_blank">http://blog.paran.com/wwdrama/9845165</a><br><strong><br><br>※&nbsp;정석원ㆍ김탁환 대담 -「대중음악과 우리들의 시대」(1994)<br></strong><a href="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amp;page=83&amp;sn1=&amp;divpage=32&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178282" target="_blank">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amp;page=83&amp;sn1=&amp;divpage=32&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178282</a><br><br><br><br><br><br><br><br></p>			 ]]> 
		</description>
		<category>음악 일반</category>

		<comments>http://imjohnny.egloos.com/2462508#comments</comments>
		<pubDate>Sun, 01 Nov 2009 00:37:33 GMT</pubDate>
		<dc:creator>imjohnny</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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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비평과 애호의 행복한 만남 -『90년대를 빛낸 명반 50』(2006)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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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01/43/d0046543_4aecd244bda09.jpg" width="350" height="45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01/43/d0046543_4aecd244bda09.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01/43/d0046543_4aecd24aed031.jpg" width="500" height="641.02564102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01/43/d0046543_4aecd24aed031.jpg');" /></div>&nbsp;<br><strong><span style="FONT-SIZE: 12pt"><u><span style="FONT-SIZE: 14pt"><br><br>비평과 애호의 행복한 만남 -『90년대를 빛낸 명반 50』(2006)<br><br></span></u></span></strong>작성일: 2009-08-09<br>작성: 임준형<br><br><br><br><strong><u><span style="FONT-SIZE: 12pt">Ⅰ. 들어가며<br></span></u></strong><br>가장 뛰어난 뮤지션들이 당대에 가장 인기있는 뮤지션들이기도 했던 매우 예외적인 시대인 90년대,<br>사람들이 가장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음악을 들었던 (역시 예외적인) 시대였던 90년대를<br>이 책의 저자들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황금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br><br>이것은 기존의 대중음악 비평씬의 합의에 위배되는 주장입니다.<br>이전의 평론가들은 1980년대를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br>그러나 (90년대에 10~20대를 보내며 90년대의 음악을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들었던) 이 책의 저자&nbsp;4인은<br>상당히 당돌하게 여러 가지 면에서 선배 비평가들의 의견에 반박하고<br><strong>정석원(015B), 김동률, 유희열, 신해철,&nbsp;서태지와 아이들, 이적, 신승훈, 강산에, 이승환, 이상은, 김현철, 김건모,<br></strong><strong>이소라, 장혜진, 윤종신, </strong><strong>듀스, 솔리드&nbsp;</strong>등<br>90년대를 주름잡았던 뮤지션들의 성취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해가며 자신들의 주장이 타당함을 입증합니다.<br><br>그리고 90년대에 10대를 보내며 책의 저자들만큼이나 당시의 대중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저 역시<br>기본적으로 그들와 같은 생각(90년대가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다는)을 하고 있었으며<br>이 책을 읽으며 음악비평의 언어로 그 생각이 입증되는 것을 지켜보며<br>제가 좋아했던 음악들의 "음악적" 위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정리하게 된 과정은<br>저의 90년대의 가장 즐거웠던 순간들만을 불러와<br>(그 대부분의 시간들에 음악이 있었습니다)<br>회고하게 되는 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br>간만에 90년대의 음악들을 꺼내 다시 듣기도 했구요.<br><br>90년대에 감수성 예민한 10대~20대를 보내시며<br>9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을 열심히 들으셨던 분들깨서는<br>이 책을 읽으시며&nbsp;저와 비슷한 즐거운 소회를 갖게 되시리라 믿으며<br>이 책을 자신있게 추천합니다.<br><br>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9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을 다루고 있다"라는 점 뿐만 아니라<br>누구에게나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많은 미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br>그 미덕들을 두 가지 점으로 압축하여 소개하면<br><strong>①진짜 "음악애호가"들의 ②"전문적인" 비평서라는 점입니다.<br></strong><br>제가 언급하고 있는 저 '애호'와 '비평'은<br>제가 비평에서 반드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입니다.<br>그러나 그 두 가지는&nbsp;사실 균형있게 양립하기&nbsp;매우 어려운 개념들이기도 합니다.<br><br>애호가 넘치면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고,<br>비평의 객관성에&nbsp; 집중하다 보면 작품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리기 쉽고<br>그렇게 너무 뒤로만 물러나 작품을 바라보면 본질을 놓칠 수 있을&nbsp;뿐 아니라<br>그 비평은 읽는 이에게 아무 감동도 줄 수 없는 무미건조한 것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br><br>그러나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훌륭하게 달성하고 있고,<br>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br><strong><u><span style="FONT-SIZE: 12pt"><br><br><br>Ⅱ. 애호: 진짜 "음악애호가"들의 비평서<br></span></u></strong><br>이 책의 저자들이 기존의 대중음악 평론가들의 의견(1980년대가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라는)에 반박을 제기하면서<br>또 한 가지 면에서 기존 평론가들을 공격한 것은 그들의 "젠 체"(엘리티시즘)가 너무 심하다는 것입니다.<br>기존 평론가들은 실제로 음악을 좋아하지도 않고 진짜로 심취하지도 않으면서<br>음악평론가의 직함을 달고<br>음악을 오로지 음악 자체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nbsp;부차적&nbsp;요소들(가사 등)로만 음악을 평가하면서<br>아티스트와 평단의 괴리, 평단과 대중의 괴리만을 심화시켜 왔다는 것입니다.<br><br>기존 '문화평론가'란 이들은 대개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br>90년대 초 운동씬의 붕괴와 한국 대중문화의 부흥기에 생계를 위해, 혹은 문화운동의 명목으로 진출하여<br>업계를 담당하게 된 이들로,<br>대중음악 자체의 코드와 어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br>자신들이 아티스트들 보다 몇 단계 위에 있다는 듯이 대중음악에 대한 혹평을 일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br>그러므로 아티스트들은 비평가라는 직업군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고<br>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좋아하던 대중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br><br>그런데 문제는 그 비평가들이 아티스트들보다&nbsp;음악에 대한&nbsp;이해가 심하게 떨어지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br>어떤 예술작품의 본질을 통찰하기 위해서 그 작품을 좋아하고 작품에 몰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접근법 중의 하나인데<br>기본적으로 그들은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고 비평을 다른 목적(문화운동 등)의 수단으로만 여겼습니다.<br>게다가 그들은 음악 자체의 어법에 대한 전문성조차 심하게 떨어졌고<br>당시 90년대에 폭발적으로 도입되던 대중음악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며<br>'당시 평론가들의 전문성이&nbsp;부족했다'라는 저자들의 생각에 동의하며<br>당시 평단이 아티스트들보다 어느 때보다 심하게 뒤떨어졌던 시대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br><br>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이 등장했습니다.<br>이들은 기본적으로 90년대에 10~20대를 보내며 당시의 한국 대중음악에 심취했었고,<br>그것에서 나아가 당시부터 PC통신망의 MUSE라는 음악동호회를 통해 아마추어 비평활동을 계속해오던 이들입니다.<br>이들은 현재 모두 30대 이상의 직장인들로 음악과 상관없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만,<br>아마추어 음악 비평활동을 계속해왔고,<br>지금 한국 대중음악의 위기를 맞아<br>(저자들이 현재가 한국 대중음악의 위기라고 주장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br>그 중 현재 '작가'라고 할만한 음악인들이 대중음악씬에서 전부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 가장 강력한 논거라고 하겠습니다)<br>"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던 90년대의 음악들이 잊혀지는 것은 안타깝게 여기고<br>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br><br>이들의 글은 이들이 음악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br>이전의 평론가들의 "젠 체"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br>아티스트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음악에 대한 이들의 뜨거운 열정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존경이 묻어나옵니다.<br>바로 그러한 애정에 기반하여 이들이 보여주는 대중음악 작품들에 대한 다각적ㆍ심층적 접근은<br>당시의 대중음악을 좋아하던 이들이 이 책의 내용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br>그리고 그러면서도 이들의 글은 이전의 비평가들을 넘어서는 전문성 역시 갖추고 있습니다.<br><strong><u><span style="FONT-SIZE: 12pt"><br><br><br>Ⅲ. 비평: 그러면서도&nbsp;</span><span style="FONT-SIZE: 12pt">"전문적인"<br></span></u></strong><br>이 책을 읽고나면&nbsp;아마추어 애호가들이라고 하여 이들을 얕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br>오히려 전에 제가 읽었던 다른 어떤 한국 대중음악 비평서들보다<br>더 전문성을 갖춘 책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br>(다른 책들의 비평이 수준이 훨씬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br><br>그러한 전문성은 이 책의 구성, 내용, 접근법 등에서 모두 드러납니다.<br>(역사를 전공한 제가 보기에 이 책은 '음악史'책이 가져야하는 정석적 구조를 잘 갖추고 있습니다.<br>저자들 모두 음악과 상관없는 전공이긴 하지만 그들이 다 석사학위 이상자들이라는 점이<br>'책'을 쓰는데 장점으로 작용했을 듯 합니다)<br><br>그리고 무엇보다 아티스트들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전문성은 가장 빛을 발합니다.<br>인터뷰에서 아티스트들은 90년대의 비평가들이 음악의 창작과정과 테크놀로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불평하면서도<br>저자들이 던지는 매우 '음악'적이고 또 음악의 창작과정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전제한 질문들에는<br>매우 흔쾌하고 진지하게 자신들의 고민을 담아 대답합니다.<br><br>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전혀 "과시"하지 않습니다.<br>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언어로만 비평을 서술하며<br>불가피하게 전문용어를 써야하는 대목에는 아무리 사소한 용어라도 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br><br>그럼으로써 저자들은 90년대 대중음악과 그 음악을 담당하던 아티스트들의 본질에 대한 이해로<br>독자들을 아주 친절하게 안내합니다.<br><strong><u><span style="FONT-SIZE: 12pt"><br><br><br>Ⅳ. 나가며<br></span></u></strong><br>이 책은 저도 아는 형으로부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추천받은 책인데,<br>저 역시 이 책을 읽은 후&nbsp;가장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br>이 책이 제가 매우 좋아하는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br>균형을 이루기 힘든 저 애호와 비평의 만남을 높은 수준에서 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br>이 책 자체가 어떤 귀감(龜鑑)이 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br><br>그러나 이 책의 다른 이런저런 면들을 다 집어 치우고라도,<br>제가 이 책을&nbsp;추천하는 이유는<br>9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을 좋아하셨던 분들에게<br>다른 무엇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즐거운 시간을 드리게 될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br><br>90년대의 음악을 사랑하셨던 분에게라면 누구에게나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책입니다.<br>90년대 음악으로의 시간여행에,<br>여러분을 자신있게 초대합니다.&nbsp;</p><p><br><br><br><strong><u>참조링크</u></strong><br><br>네이버 책 (<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2510300" target="_blank">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2510300</a>)<br><u><strong><span style="FONT-SIZE: 12pt"><br><br><br>※&nbsp;목차<br></span></strong></u><br>&nbsp;</p><p><strong>Intro. 96년, 그리고 2006년<br><br>I. 시작하며 - 과연 대중음악의 황금기는 1980년대였을까? <br><br>II. 1990년</strong><br>(1) 박학기 2집 * 김영 동아기획 사장 인터뷰 <br><br><strong>III. 1991년</strong><br>(2)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br>(3) 신해철 [Myself]<br>(4) 이문세 7집<br>(5) 조용필 13집<br><br><strong>IV. 1992년</strong><br>(6) 015B [The Third Wave]<br>(7) 김현철 [32℃여름] * 김현철 인터뷰 <br>(8) 내일은 늦으리 <br>(9) 봄여름가울겨울 3집<br>(10) 서태지와 아이들 1집<br>(11) 한영애 [1992]<br>(12) 현진영 [New Dance 2]<br><br><strong>V. 1993년</strong><br>(13) 김건모 2집<br>(14) 낯선 사람들 1집<br>(15) 서태지와 아이들 2집</p><p><br><strong>VI.1994년</strong><br>(16) 넥스트 [The Return of N.EX.T part I the Being] * 신해철 인터뷰 <br>(17) 노이즈 2집 * 노이즈 천성일 인터뷰 <br>(18) 듀스 [Rhythm Light Beat Black]<br>(19) 장혜진 [Before the Party]<br><br><strong>VII. 1995년 <br></strong>(20) 김광석 다시부르기<br>(21) 더클래식 2집<br>(22) 듀스 [Force Deux] * 듀스 이현도 인터뷰 <br>(23) 서태지 4집<br>(24) 솔리드 2집 * 솔리드 정재윤 인터뷰 <br>(25) 이상은 [공무도하가]<br>(26) 이승환 [Human] * 이승환 인터뷰 <br>(27) 조관우 2집<br>(28) 크래시 [To Be or Not to Be]<br><br><strong>VIII. 1996년</strong><br>(29) 015B [Farewall to the World] * 015B 정석원 인터뷰<br>(30) 강산에 [Vol. 2 삐따기]<br>(31) 노이즈가든 1집<br>(32) 박진영 [서머 징글벨]<br>(33) 유앤미블루 [Cry...Our wanna be nation!]<br>(34) 윤종신 [우(愚)]<br>(35) 전람회 2집<br>*전람회 김동률 인터뷰<br>(36) 조규찬 [The Third Season]<br>(37) 패닉 [밑]<br></p><p><strong></strong>&nbsp;</p><p><strong>IX. 1997년<br></strong>(38) 델리스파이스 1집<br>* 델리 스파이스 윤준호 인터뷰<br>(39) A Tribute to 신중현<br>(40) 이승환 [Cycle]<br>* 프로듀서 유희열 인터뷰 <br>(41) 이한철 [되는건 되는거야!]<br>(42)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br>(43) 한상원 [Funky Station]<br></p><p><strong></strong>&nbsp;</p><p><strong>X. 1998년</strong><br><span style="COLOR: #000000">(44) 미선이 [Drifting]<br>* 미선이 조윤석(루시드 폴) 인터뷰 <br>(45) 윤상 [Insensible]<br>(46) 이소라 [슬픔과 분노에 관한]<br>(47) 정원영 [영미 Robinson]<br>(48) 크라잉넛 1집<br><p></p></span><p></p><span style="COLOR: #000000"><strong></strong></span><p><span style="COLOR: #000000"><strong>XI. 1999년</strong><br></span><span style="COLOR: #000000">(49) 롤러코스터 1집<br>* 롤러코스터 이상순, 지누 인터뷰<br>(50) 토이 [A Night in Seoul]<br>* 유희열 인터뷰 </span></p><p><span style="COLOR: #000000"></span>&nbsp;</p><p><strong>XII. outro -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접속점, 혹은 단절점 </strong></p><p><strong><br><br>부 록</strong> <br>1.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 (1999.12 음악잡지 SUB 선정) <br>2. 50대 명반 한눈에 보기 : 누가 누구랑 같이 했나? </p><p>- 감사의 글 <br>- 찾아보기 </p><p>&nbsp;</p><p>&nbsp;</p><p>&nbsp;</p><p>&nbsp;<br><br><br><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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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음악 일반</category>

		<comments>http://imjohnny.egloos.com/2462500#comments</comments>
		<pubDate>Sun, 01 Nov 2009 00:22:09 GMT</pubDate>
		<dc:creator>imjohnny</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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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만화『스바루』論 Ⅱ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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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trong><u><span style="FONT-SIZE: 170%"><br>만화『스바루』論 Ⅱ<br></span></u></strong><br>일자: 2009-10-18<br>글: 임준형<br><br><br>『스바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다<br>2년 전에 아래와 같은 평론을 썼었는데<br><a href="http://imjohnny.egloos.com/1507687" target="_blank">http://imjohnny.egloos.com/1507687</a></p><p><br>오늘 다시&nbsp;만화를&nbsp;감상하고 <br>새로운 생각들이 들어 아래에 정리해둔다.</p><p><strong><u><br><br>Ⅰ. 예술의 본질에 대하여<br></u></strong><br>예술활동은 다음의 3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br><strong><br>1. 진리 탐구<br></strong><strong>2. 자아 실현 → 천재성의 발현<br></strong><strong>3. (감성을 통한) 소통<br></strong><strong><br><br>1. 진리 탐구<br></strong>&nbsp; 이건 문학ㆍ미술ㆍ영화 같은 '기록물'로서의 특성을 가진 예술이 주로 할 수 있는 활동이다.&nbsp;(음악도 '가사'를 통해 이&nbsp;활동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는&nbsp;학문과 예술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다. 인류의 보다 정확한 세계 인식을 위해 작가가 자신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인식한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물론 그 진실은 '객관적' 진실이 아니다. 누구도 이 세계의 객관적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전제 하에 (탈근대적 인식관이다) 우리는 '상호주관적 객관성'을 추구한다. 즉, 우리는 장님이지만 코끼리를 부분부분 만져서 알게 된 촉각(인식)들을 모아서 종합하면 그나마 객관적 인식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작가가 자신이 바라본 진실을 거짓 없이 표현해야 한다는 '진정성'이 중요해지고, 또 남들이 이미 다 제공한 인식이 아닌 보다 새로운 인식을 제공해야만 인류가 더 나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독창성'이 중요해진다. → 이 '독창성'이 중요해진다는 점에서&nbsp;자연스럽게 예술의 2번째 요소인 <strong>'자아 실현'과 '천재성의 발현'</strong>으로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br><strong><br>2. 자아 실현 → 천재성의 발현<br></strong>&nbsp;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여기서 자아란 '근대적' 자아를 말한다. 즉 중세 혹은 전통사회에서 공동체의 구성물로서만 존재하는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개미 군집 속의 한 마리 개미처럼 그 독자적&nbsp;특성이 존재하지 않는)&nbsp;개인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공동체의 (혹은 역사 속의) 다른 인간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며 드러나는 특징적 인격을 갖추게 되었을 때 그것을 완벽히 실현된 자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이전에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모두가 신ㆍ자연ㆍ사회의 섭리에 순응하고 주변의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 주변과 뚜렷이 구별되는 자신의 인격을 드러낸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았던 것이다.&nbsp; 그러나 일단 근대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민주주의'의 기초, 즉 개인 자신이 바로 자신의 정신ㆍ육체의 주인이고, 그 정신과 육체를 형성해 갈 자유를 갖는다는 이념 위에 +&nbsp;자본주의의 축복, 즉 자신의 인격을 형성ㆍ전개하는데 필요한 소유권을 보장받고&nbsp;계약형성의 자유 역시 갖는다는 이념이 더해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인간에게는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마련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근대 과학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이념인인&nbsp;결정론이 출현하면서 특징적 자아의 실현이란 도대체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되고 말았다. 결정론이란 근대 과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극단화된 것으로, 자연의 운동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각까지도 원자의 운동 레벨에서 모두 정해져있고 예측가능하다는 이론이다. (물론 이 이론은 20세기 초의 양자역학에 의해&nbsp;붕괴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특징적 자아를 갖는다는 것은 도대체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된다. 우리가 배고프고, 졸리고, 밥먹고, 잠자고 하는 것은 사실 모두 예정된 일들이고, 우리가 하는 생각이나 말 따위도 모두 예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세상의 누구에게나 계속 반복되어 왔던&nbsp;흔해빠진 일이 되고 만다.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사랑 따위 사실 이미 수천년 전부터 다 반복되어 오던 일일 뿐이고&nbsp;이미 정해져 있는 일일 뿐이고&nbsp;누구나 비슷한 걸 하고 있는 흔해빠진 일일 뿐인 것이다. (이 생각이 발전하면 '구조주의'에 의한 인간 '주체성'의 붕괴에 도달하게 된다) 이 함정 속에서 우리는 누구도 '특징적인' 개인이 아니라, 개미 군집 속의 한 마리&nbsp;개미처럼 인류라는 생물종의&nbsp;영속 속에서 잠시&nbsp;존재하고 스쳐갈 뿐인 의미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br>&nbsp; 그렇다면 누구나 이 자아실현 불가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가? 아니다. 예외적인 종족이 있다. 예술가들이다. 그들은&nbsp;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낭만주의'적 천재관) 그 결정론의 함정에서 벗어나 과거의 누구도 하지 못한 생각을 해내고 현재의 다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작품ㆍ퍼포먼스를 창조해낸다. 그 점에서 철학자라는 종족도 (남들이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해낸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비슷한 종족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학문과 예술은 바로 그 작업에서 '창조성'이 차지하는 절대적 위치 때문에&nbsp;인간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일로 여겨져왔다. 물론 지금은 그 창조성이 인정되는 일의 영역이 매우 넓혀져 있기는 하다. 어떤 일이든&nbsp;(기업경영이든, 요리든, 스포츠든 간에) 창조성을 불어넣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자아를 실현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과 예술은, 그리고 특히 예술은&nbsp;그 작업의 창조성에 있어서 여전히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예술활동의 3번째 요소인 <strong>'(감성을 통한) 소통'</strong>에서 해명된다.</p><p><strong><br>3. (감성을 통한) 소통<br></strong>&nbsp; 철학(학문) 역시 (예술처럼) 진리를 탐구하고, 또 인간이 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그러나 예술은 철학보다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예술가와 철학자라는 두 단어 중 발음했을 때 어느 단어가 더 간지가 나는지 생각해보라)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예술이 감성의 영역을 조종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활동에서 이성의 영역 역시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기는 하나 그 창작과 감상이 주로 일어나는 영역이 감성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세계관에서 감성은 모더니티의 이성ㆍ합리로 통제할 수 없는 非이성ㆍ非합리적인 것으로 경시되고 천대받아 왔다. 그러나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감성이 그 '모더니티'와 인간이성의 위대함으로도 그 정체를 여전히 알 수 없는 불가해하고 신비스러운 요소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는 것은, 바로 그 '감성'에 근대 문명이 여전히 충분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과 가능성을 보다 더 치열하게 밝혀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적 철학과 예술이 이성보다 감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예술이 철학보다 더 특별한 지위를 갖는 것은, 아직도 인간 이성에 의해 그 정체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감성의 영역을 통해 타인들과 의사소통을 시도하며, 또 바로 그 감성을 통해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진리를 전달하고,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며, 감상자들에게 그 정체를 충분히 규명할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철학이 뭔가 더 어렵고 간지가 나는 것은 바로 그 프랑스 철학 특유의 예술과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감성의 영역을 넘나드는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p><p><strong><u><br><br>Ⅱ.『스바루』론: '천재'와 '감성'의 가능성을 향해</u></strong>&nbsp;<br>&nbsp; 以上에서 밝혀낸 예술활동의 3요소를 통해&nbsp; 통해 만화『스바루』가 보여주는 예술을 평가해 볼 수 있다. </p><p><strong><br>1. 진리 탐구</strong>&nbsp;<br>&nbsp; 스바루의 춤은 이것이 가능하다. 그녀는 그 어떤 감정과 이야기든지 간에 자신의 춤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춤을 통해 자신이 파악한 세계의 진실을 전달하는 것&nbsp;역시&nbsp;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자연언어와 완전히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는 '춤'을 통해 그것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u>3. (감성을 통한) 소통</u> - 의 가능성을 강하게 신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p><p><strong><br>2. 자아 실현 → 천재성의 발현<br></strong>&nbsp; 작가는&nbsp;우선 예술에서&nbsp;'자유'를 통한 '자아 실현'의 기능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드러내고 있다. 스바루가 교도소에 가서 위문 발레 공연을 펼치자, 죄수들은 스바루가 보여주는 '자유'에 기반하여 '예술'을 통해 드러내는 그 극도의 환희에 젖은 '자아 실현'의 모습을 보고,&nbsp;또 그 과정이 스바루의 강렬한 표현력에 의해 죄수들에게 절실하게 전달되자, 죄수들은 차라리 죽음을 원한다고 외칠 정도의 극심한 좌절감에 빠져 절규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스바루처럼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자유'가 없으므로!) 게다가 스바루의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스바루의 예술공연에 감동한 죄수들의 도서 대출과 시청각 자료 이용이 급증하게 된다. (즉, 죄수들이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행동을 더 강하게 표출하게 된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보았을 때 작가는 자유에 기반한 예술의 자아 실현의 기능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br>&nbsp;&nbsp;다음은 '천재성'이다.&nbsp; 작가 소다 마사히토만큼 이것에 집착하는 만화가도 드물다. 그의 모든 작품은 '천재'에 대한 이야기다. 인류 역사 속의 그 누구와도 다른 바로 '자기 자신'을 실현하려는 천재들의 치열한 투쟁의 이야기만을 그는 한 작품도 빠지지 않고 그려냈다. (그리고 작가 자신 역시 그 천재의 영역에 이미 도달해 있는 듯 하다.)</p><p><strong><br>3. (감성을 통한) 소통<br></strong>&nbsp; 이 부분에서의 작가의 표현에&nbsp;이 작품의 가장 천재적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감성'의 가능성에 대한 SF적 탐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춤'이라는 예술활동을 통해 감상자의 감정상태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상자들을 자신이 도달한 ZONE(육감이 극도로 예민해져 아주 작은 소리나 사물까지 감각할 수 있는 상태)으로 데려가거나, 감상자들의 정신 속에 하루 종일 그치지 않고 울리는 음악의 멜로디를 새겨넣기도 한다. 이것은 다분히 '예술은 현재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라는 철학적ㆍSF적 탐구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은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라, 작가의 예술적ㆍ문명사적 통찰에 의해 도달한 생각의 영역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근대 문명은 인간의 이성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추동되어 왔지만 그 발전은 지금 정체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은 발전의 영역은 무엇인가? '감성'이 아니겠는가? 감성은 아직도 그 정체와 본질이 규명되지 않은 신비로운 영역이며, 인간에게 아직도 불가해한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공감'을 들 수 있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인간은 언어를 통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어찌 신비하지 않은가? 물론 이 능력에 대하여 이미 과학적 규명이 시도하고 있으나, 그 전모는 아직도 거의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바로 이 감성이 어떤 영역으로 인간을 데려갈&nbsp;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탐구가, 이후의 소위 '포스트 모던' 시대의 중요한 탐구영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감성'이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예술'에서 작가가 그러한 예언자적 탐구를 수행한 것은&nbsp;그가 바로 예술가적 직관을 통해 이상과 같은 문명사적 사고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러한 내용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능력은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의 작품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술가이고 예술가의 (감성적) 언어를 통해 이미 설명을 끝냈기 때문이다.</p><p><strong><u><br><br>Ⅲ.&nbsp;보론: 기타 포스트 모던적 성격<br></u></strong>&nbsp; 以上 서술한 외에도 이 작품은 다양한 포스트 모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클래식 발레를 주제로 하는 만화이면서도 스트릿 댄스와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사도라 덩컨의 맨발 댄스가 '모던' 댄스라면, 운동화를 신은 스트릿 댄스를 '포스트 모던' 댄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존의 클래식 발레를 다루는 작품들은 아무리 주인공이 非서구인이라 하더라도 클래식 발레의 주인공들이 서구인들라는 것까지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예 (뉴욕에 거주하는) 아시아인, 라틴계, 흑인 등 다인종을 주역으로 한 클래식 발레단을 선보이며, 클래식 발레에서 서구인들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관념 자체를 부정한다. 이 역시 기존&nbsp;클래식 예술의 서구중심성을 부정하는 포스트 모던적 경향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p><p>&nbsp;</p><p>&nbsp;</p><p>&nbsp;<br><br><br><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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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만화 리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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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8 Oct 2009 15:00:3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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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한국 현대사 요약정리 자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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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a href="http://pds16.egloos.com/pds/200909/14/43/History_of_R.O.K_ver_1.01.hwp">History_of_R.O.K_ver_1.01.hwp</a><br><br><br>본인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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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4 Sep 2009 09:36:1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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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한국 현대사 요약정리 자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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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본인이 정리한 것<br><br><a href="http://pds15.egloos.com/pds/200909/14/43/History_of_R.O.K.hwp">History_of_R.O.K.hwp</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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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역사ㆍ연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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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3 Sep 2009 14:00:5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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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광주의 치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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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8/27/43/d0046543_4a96168bc6b07.jpg" width="300" height="31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8/27/43/d0046543_4a96168bc6b07.jpg');" /></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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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김대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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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7 Aug 2009 05:16:05 GMT</pubDate>
		<dc:creator>imjohnny</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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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DJ '노벨상 로비설'은 무지의 소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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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strong><span style="FONT-SIZE: 170%">"DJ '노벨상 로비설'은 무지의 소치<br><br>외부로비 있을 땐 해당자 제외해"</span></strong> <br><br>출처: <u><span style="COLOR: #800080"><a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9079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90794</a><br><br></span></u><br>[이메일 인터뷰]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 <br>&nbsp;<br>02.10.14 09:00 ㅣ최종 업데이트 02.10.15 12:17&nbsp; 손병관 (patrick21)&nbsp;&nbsp;<br><br>&nbsp;<br>&nbsp;<br>"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비합법적인(illegitimate) 방법으로 받았음을 암시하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상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며, 위원회의 심사절차 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 겸 노벨연구소 소장) <p>&nbsp;<br>&nbsp;룬데슈타트 총장은 또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그에게 상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며(outrageous), 위원회의 심사절차 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지난 8월 방한 중 KBS와의 회견에서도 같은 말을 했는데, 나는 이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br></p><p><br>그는 KBS와의 회견에서 "누군가 뇌물로 매수하려는 인상을 줬다면 위원회는 오히려 반감을 가질 것이다. 노벨상 선정과정에 외부 로비가 있을 경우 해당자를 제외시키고 선정작업을 더욱 까다롭게 진행한다"며 노벨평화상은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절대 살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br><br></p><p>룬데슈타트 총장은 또한 "남북정상회담이 김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아니었다. <strong>우리는 수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김 대통령의 투쟁노력을 추적해 왔다"고 덧붙였다.<br></strong></p><p><br>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DJ의 업적이 해당연도 수상자 결정에 미칠 영향에만 촉각을 세웠지만, 노벨위원회는 수상후보의 '반짝 인기'보다는 '일생의 업적'에 초점을 맞춰 수상자를 결정해왔다는 해석이다.노벨위원회 스스로도 김 대통령의 수상을 둘러싼 '로비'가 있음을 인정한 적이 있다. 2000년 11월초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한반도 국제심포지엄에서 한 독일학자가 "김 대통령이 로비를 통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는데, 어색한 침묵 끝에 올라브 욜스타드 노벨연구소 연구실장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br></p><p><br><strong>"그렇다. 한국으로부터 로비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김대중 정부로부터의 로비가 아니었다.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된다는 로비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br><br></strong></p><p>당시 욜스타드 실장이 '역로비'를 추진한 정치적 반대자로 지목한 사람들은 여전히 야당이지만, 곧 정권을 잡으리라는 기대에 들떠 있다. '정상회담 뒷돈 거래설'을 제기한 야당은 &lt;뉴스위크 한국판&gt; 보도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벨상 반납운동'을 운운했다.</p><p>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조선, 중앙, 동아 3대 보수언론들도 "김 대통령 진영이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일개 브로커 같은 사람을 동원해 이른바 'M-프로젝트'라는 계획을 세웠는가의 여부이고, 둘째는 이 계획이 실제로 추진됐는지의 여부가 밝혀져야 한다" (조선), "문제는 국가기관이 로비에 동원됐느냐는 것과 함께 흑막이 개재된 '기획로비'가 있었느냐는 부분을 청와대가 말끔히 밝히면 될 일이다" (중앙), "국민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노벨상 로비설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동아)고 청와대를 몰아세웠다는 것이다.<br>&nbsp;<br>그러면서도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청와대에 대해 "노벨상 로비'를 했냐"고 다그치기만 할 뿐이지, 로비를 받아 김 대통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심사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 노벨위원회에 취재 내지 진상조사를 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br></p><p><br>애당초 이들의 '노벨상 로비 의혹' 공세 자체가 '국내용'이었고, "이제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었으니 한 걸음 물러나자"는 계산이 깔려있었는지는 모른다. 지난주말부터 한나라당이 노벨상 의혹 공세에서 발을 빼는 것이 그 하나일 수 있다. <br><br></p><p>그러나 정파적 이해를 앞세워 한 국가의 위신마저 내던진 한국정치의 혼란상을 접하고 노벨위원회가 한국인에게 또다시 선뜻 평화상을 줄지는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br><br><br><br><u><span style="COLOR: #800080"><br><br><br><br><br><br></span></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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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김대중</category>

		<comments>http://imjohnny.egloos.com/2410361#comments</comments>
		<pubDate>Thu, 27 Aug 2009 04:29:16 GMT</pubDate>
		<dc:creator>imjohnny</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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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보수의 7대 거짓말은 조중동의 논리이자 강자의 논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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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보수의 7대 거짓말은 조중동의 논리이자 강자의 논리"</strong><br>(한국정치학회 인터뷰 / 노무현 / 2008-10-14)</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br><span style="COLOR: #000000">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즉,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향점이 평등이며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내재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곧 진보… - <strong>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대담 내용 중</strong></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br><span style="COLOR: #000000">9월 21일 한국정치학회 이정희 회장과 정상화 섭외위원장, 황영주 섭외이사, 김유경 섭외간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위해 봉하마을 자택을 예방했다. 인터뷰는 봉하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행해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짧은 연설을 듣고 오전 11시3 0분부터 약 3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br></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이정희:</strong> 매우 건강해 보이십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전직 대통령들을 찾아뵙는 시리즈는 올해가 정<br>부수립 60주년이기도 하고 해서 전직 대통령들을 방문해서 많이 배우고 좋은 말씀을 듣자는 취지에서 마련했습니다. 편안하게 정치학회학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면 될듯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우선 저희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5년 동안 어려운 점도 있고 기쁜 일도 있으셨을 텐데 간단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서 노무현정부 5년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나 헌정사에 있어서 이렇게 자리 매김하고 싶다던가 하는 부분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노무현:</strong> 우리는 정치가 하는 일을 대개 그 시기 국민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게 하는 것이라 다들 생각합니다. 저도 그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짧은 기간 동안 국민들이 풍요롭게 살고 있고 편안하게 지낸다고 느끼고 있는데 나중에 보면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짧은 기간에 모든 국민들에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느끼게끔 착각을 심어주는 것이지요. 결국, 뒤에 가서 보면 그 때문에 이후의 사람들이 많은 부담을 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정치가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지금과 가까운 장래뿐만 아니라 먼 장래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고 넉넉하게 살도록 할 수 있는 그런 전략 즉,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런 목적을 추구해가야만 비로소 정치를 하는 목적에&nbsp; 이른다고 생각합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을 세우는 것이 곧 역사적인 안목, 역사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정치의 목표에 대해서 긴 안목, 역사적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경제나 정치 모두 짧게 볼수록 망합니다. 그러니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현실을 평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에 있어서도 물론 역대 대통령들이 많은 공로들이 있지만 과오가 뒷사람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운 짐을 남겨주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과오를 치유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복하지 못할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br>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이정희:</strong> 지금의 말씀을 들으니 먼 훗날에 어떤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국가의 진로가 정해졌느냐를 평가한다는 측면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대해 큰 흐름 속에서 어떠한 변화를 줄 수 있었고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5년 동안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할 것 같습니다.</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황영주:</strong> 그렇다면 재임기간 중 가장 고민되고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요?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노무현:</strong> 국정운영에서는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점에서도 어쨌든 상당한 기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진보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도 미흡하지만 한발 한발 진전해온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재임기간 중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정치와 따로 놀고 있다는 점입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정책이라는 것은 장단기 국민적 이해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국민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장단기전략을 정책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국민들의 선거라는 정치행위가 정책이라는 것과 아무런 상관없이 따로 가고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정치라는 것이 국민들을 속이는 결과밖에 안 되고, 국민들이 정치 자체를 불신하게 되니까 결국 민주주의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저의 최우선적인 과제였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국민들의 정치적 판단을 왜곡시키는 여러 가지 메커니즘이 존재할 수 있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언론의 문제라고 봅니다. 또한, 미국에 인종주의가 작용하듯이 그런데 우리 한국에 있는 것은 지역주의를 꼽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화방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 지역주의의 문제가 최종적으로는 국회의 소관이라는 생각도 들고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노력을 시도해보았습니다만 극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탈지역주의를 목표로 한 정당이 붕괴했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점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고 "나는 국정운영에서는 할 만큼 했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는 좌절했다." 하는 식으로 저의 정치적 좌절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하기도 합니다.</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이정희:</strong> 민주당이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이었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으로 후보가 되셨을 때,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셨더라도 민주당을 계속 안고 나갔더라면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에서 영남출신의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구도가 나올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있을 수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노무현:</strong> 그러한 생각도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우리 정파가 승리해서 권력을 잡는다는 정치적 목적이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우리 정파가 이기되 어떤 방법으로 이기느냐에 따라서 즉, 어떤 게임판에서 어떤 법칙 위에서 어떤 방법으로 이기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이기는 것이 퇴보가 될 수 있고 진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저는 정치에서 이기는 것이 매우 현실적인 목표인 것에 대해 부인하지 않지만, 이기는 방법이 민주주의 발전을 지향하고 있어야 이기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민주당으로서는 이기지도 못하고 구조적으로 정치발전을 가로막는 구도에 안주하는 정치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지역주의정치 때문입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통합을 통해서 남은 민주당을 호남당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역사적 질곡을 결국 벗어나지 못한데다가 한나라당이 영남에서 그런 것처럼 민주당도 호남에서 경쟁 없이 계속 선거에서 이기게 되니까 이미 지역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정당의 체질로 변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호남당으로 강요당했는데 그 강요된 구조 속에서 정치인들이 독점적 이익을 누리고 호남을 독식하는 기득권을 갖게 된 것이지요.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그러면 호남이 단결하면 이기느냐….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이인제 두 후보가 얻은 표가 김대중 후보보다 500만 표가 더 많았습니다. 신한국당이 국가를 부도내고도 그 당 출신의 후보들이 500만 표를 더 받은 그 이유가 뭐냐…. 투표할 때 그 중요한 순간에 정책보다 지역감정을 먼저 선택하는 것입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영남과 비교해서 호남은 인구수에 있어서 상대가 안 되고 소선거구제에서 소수에다 표의 효율성마저 떨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남의 민심과 호남정치인들의 정책이 보다 진보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지역주의구도를 가지고 계속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전국정당이 된다는 것, 정권을 잡는다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그와 같은 정당을 가지고 민주주의로, 진보로 갈 수 있느냐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 정당을 만들면 될만한 여건이었느냐…. 확실하게 안 되는 것보다는 될 수도 있는 정당을 선택한 것이니까 현실적으로 당연한 선택이죠. 어떻든 우리 시대의 이상에 준거해서 정치적 목표를 내걸었던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열린우리당은 의미 있는 정당이었고 결과적으로 깨지기는 했지만 정치지도자들의 상식 밖의 행동이 없었더라면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황영주:</strong> 국정운영에 있어서의 평가 또는 아쉬운 부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가장 잘했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노무현:</strong> 예산구조에 있어 복지분야의 예산이 20%에서 28%까지 성장했습니다. 이 것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여러 가지 제도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확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서민들의 생활안정에 기여한 것은 상당히 잘한 부분이라 자부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야에서의 예산확충은 서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데 일조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균형발전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또한, 사회적으로 개개인의 삶에 있어 정통성,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회적 문화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러한 정통성을 새로 세워나가는데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이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검찰이 막강한 이유는 그들의 권한이 막강하기도 해서 그렇지만 사회가 투명해지면 검찰의 힘이 법제적 수준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결국 사회적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남용될 수 있는 권력을 제어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투명성, 가치, 정통성 등의 측면에 있어 상당한 진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성장전략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가치를 국민들에게 제안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복지를 통한 성장, 분배를 통한 성장 또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개념을 가지고 복지, 사회적 일자리, 내수시장을 연결시키고, 교육투자와 경쟁력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성장전략을 사회적 의제로 제안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잘 전달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공무원들이 이에 대한 사고의 틀을 가지게 되었고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개념을 정책입안자들에게 인식시키는데 많은 공을 들였고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직사회가 그것을 기획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대표적인 사례가 비전2030의 경우입니다. 비전2030은 공무원들이 주도해서 학자들과 함께 기획했고 이는 공직사회가 분배를 통한 성장의 개념을 주도해서 추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청와대가 직접 추진하는 것과는 사회적으로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전달, 확산이 안되었던 것은 조금 아쉽습니다. 그래도 국정운영 과정에서 그 영향이 남아있을 거라 봅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일부에서 김대중정부가 97년의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개방과 민영화, 노동의 유연화를 추진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권과 다를 것이 없다고 비판하는데, 저는 조금 생각을 달리합니다. 오히려 관치경제를 종식시켰고 개방을 강조했을 뿐 진보적 측면에서의 후퇴는 없었다고 봅니다. 이는 참여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개방을 강조한다는 것이 곧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아니라고 봅니다. 소득격차를 확대시키고 경제적 양극화를 결과하는 정책은 김대중정부나 참여정부에서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시장에 개입하는 정책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재분배정책을 사용해서 시장의 단점을 강하게 규제, 조정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이 부분이 강력하게 추진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그리고 따로 지적을 받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아쉬운 점을 들자면, 교육분야에 있어서 입시제도, 외고 제도와 관련 한 개혁을 임기 초기에 밀어붙였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는 점입니다. 국가시험에 의한 점수로 선발하는 제도를 해체해보려고 했는데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 했던 시점이 늦었고 아울러 특목고가 글자 그대로 특목고로 되돌아가게 즉, 특목고가 입시학원으로 전환되는 것을 강력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 제일 후회되는 부분입니다. 이후에 그 교육정책을 가지고 논쟁할 때 이미 국민들에게 저의 설득력이 떨어졌다고 봅니다. 게다가 조중동이 '대학자율'이라는 입시제도를 부각시켜 대대적으로 홍보할 때 그것에 대처해서 대응논리를 마련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이정희:</strong> 자율이라는 의미가 주는 효과가 컸다고 봅니다. 공교육을 제자리에 돌려놓지 못한 부분이 아쉽기는 합니다만 또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황영주:</strong> 그렇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나라에 어떤 국가적 과제가 놓여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노무현:</strong> 제가 보기는 민주주의를 좀 더 다져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좀 더 발전시킨다는 것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가치 하나하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의 수준도 좀 더 높여야 하고요. 다음으로는 한국의 진보주의가 확대,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주의는 민주주의의 보다 심화된 목표를 포함한다고 봅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인데, 물론 평등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많습니다만, 진보라는 것이 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진보의 핵심을 연대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전략적인 것이고, 진보가 추구하는 목표가 뭐냐고 했을 때 그것은 평등한 사회라고 봅니다. 그 점에 있어서 저는 진보주의라는 것이 별개 아니라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한국사회에서 평등주의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평등이라는 가치에 대해 좀 더 풀어서 설명을 하고 싶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가끔 자유를 강조하면 평등이 희생되고 평등을 강조하면 자유가 희생된다는 주장들을 볼 수가 있는데 저는 그러한 해석에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지배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속박으로부터의 해방된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지배와 속박은 자연적, 물리적인 것에 의한 것도 있지만 인간과 사회제도에 의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전자에 의한 것을 속박, 지배나 억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자유라는 개념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개념이고 사람과의 관계가 수직적인 지배관계가 될 때 자유라는 개념이 비로<br>소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지배 관계가 존재함으로써 그에 대한 저항적 개념으로 자유가 등장하는 것이고 지배구조라는 것은 이미 불평등한 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의 전제조건은 평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평등은 자유의 뿌리이기 때문에 진보는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자유와 평등을 갈등적인 개념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시장에서의 강자이고 평등을 강조했을 때 제한받는 자유는 지배자의 자유, 기득권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즉,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향점은 평등이어야 하고 그 가치야말로 진보라는 것이지요. 역사의 진보는 과학문명, 생산성 등이 발전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이 '왕의 권리'를 나누어 가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진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고 민주주의의 내재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곧 진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지금 사람들의 관심이 경제에만 집중되어있는데 당장의 문제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진보라는 관점에서 가치의 실현, 실천을 추구해나가면 그것이 국가적 차원에서의 안정된 목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황영주:</strong> 현존하는 국가체제를 통해 본다면 지금 말씀하신 민주주의의 발전, 진보주의의 발전에 대한 일종의 롤모델로 제시하고 싶으신 것이 있는지요?</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노무현:</strong> 미국과 유럽을 비교해서 말하자면 미국보다는 유럽식 모델이고 국가의 크기 특히 재정규모를 기준으로 본다면 통계로 딱 잘라 말하기는 뭐하지만 GDP 대비 국가의 재정규모가 큰 순서로 선진국이고 진보된 사회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특히 학자들이 너무 미국 중심으로 성장이나 복지의 모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데 조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정상화:</strong> 현재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만, 현재의 이명박정부가 당면한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원만하게 해결하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노무현:</strong> 한국사회에서 진보-보수를 이야기하지만 진보진영은 실질적으로 너무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숫자로나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는 토대의 측면에서 즉, 자본의 권력, 정치적 권력, 미디어조직의 측면에서 진보진영은 너무 취약한 것이 사실이고 사회적 균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의 세력적 토대가 너무 불균형하기 때문에 사회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 시급히 요청되고 현 정권도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앞에서 자유와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내재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못 했는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균형, 특히 동태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현 정권의 보수적 정책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만 정치적 원리의 측면에서 보면 보수주의 정책을 보수적 정권이 추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그러나 국민들은 비판과 견제를 통해 그동안의 진보적 성과들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현 정권 또한 보수와 진보가 최소한의 균형을 맞춰 사회적 통합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권의 방향에 대해서 제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국민들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 조건인 진보주의적 권리들에 대해서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그렇지만, 보수주의의 내용에 대해 조금 언급하자면 보수주의의 7가지 거짓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span> </p><ul style="COLOR: rgb(255,153,0)"><li>세금을 감면하면 경제가 성장한다. <li>성장만 하면 일자리가 생긴다. <li>성장을 하면 모두가 잘산다. <li>정부가 작아져야 국민들이 잘산다. <li>규제를 풀어야 국민들이 잘산다. <li>민영화하면 공공요금 내린다. <li>시험 잘 치는 사람이 똑똑하다.</li></ul><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는 논리는 강자의 논리일 뿐입니다. 단 저는 개방에 대해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쨌든 이러한 주장들은 조중동의 논리이고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비판을 현 정권에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단 현 정권 또한 제도를 바꾸지 않고 규범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기관을 동원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려는 마인드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위험한 태도일 수 있습니다. 보수정권이나 진보진영이나 모두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과 규범, 원칙을 지키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또한, 국민이 자존감을 느끼며 살 수 있게 하는 정치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통해 자신의 삶에 있어 누추함을 느끼게 하는 정치보다는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의 자존감, 민주적 가치들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고 추구하도록 하는 정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이정희:</strong> 인터뷰의 서두에 말씀하신 것처럼 역대의 정권이 5년 기간에 모든 것을 이룰 수도 없고 그 성과만을 가지고 단편적으로 잘했다 못했다 평가하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는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입장에서 정치학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합니다.</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노무현:</strong> 한국의 학문적 수준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자면 현실에 대한 분석을 좀 더 치밀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해서 사회적 공론이 형성되는 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또한, 단지 전문가이고 지식인이라는 것에만 자부심을 느끼기 보다는 자기 존재에 대한 규정을 할 때 지성사회의 일원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의식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학문을 추구해야 학문도 진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선거구제도의 전환을 위한 노력을 정치학자들이 적극적으로 해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는 대표성과 국민의 의사를 크게 왜곡하는 제도이고 종국에는 정치적 양극화를 가져오는 요인이라고 봅니다. 특히 지역주의와 결합되어 더욱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행정구역 재편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이해관계에 맞물린 내용이라 과연 가능할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선거구제도가 바뀌면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좀 더 가까워지고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이 정책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재임 중에도 많이 했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선거구제도를 바꾸는 것은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이 정책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애물 하나를 없애는 것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정책에 대한 이해관계를 명료하게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결국 정치권력, 언론, 국민들의 삼각구도에 있어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언론의 긍정적 역할이 컸지만 현재는 언론권력이 민주주의 발전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상황이라 봅니다. 특히 시장권력과 언론권력이 결탁하거나 일체화되었기 때문에 언론권력이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협으로 등장했습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강한 자, 기득권자를 중심으로 이들이 규칙을 만들고 경쟁을 주장하는 현재의 시장경제의 논리를 언론이 옹호하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노력으로 언론권력의 횡포를 극복하고 자율적이고 다양한 매체를 만들어나간다면 시민주권의 시대가 좀 더 빨리 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최근 ‘민주주의 2.0’ 사이트의 내용을 구상하게 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고 민주주의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br>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이런 맥락에서 학자들이 단기적이고 지엽적인 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기보다는, 총체적이고 역사적인 의식을 가지고 또한 역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에 도움이 되는 학문연구에 정진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span></p><p style="COLOR: rgb(153,153,153)"><span style="COLOR: #000000"><strong><br>이정희:</strong> 다른 어떤 때보다 긴 시간 좋은 말씀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br><br><br><br><br><br><br><br><br></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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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김대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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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6 Aug 2009 04:02:12 GMT</pubDate>
		<dc:creator>imjohnny</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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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5·18에 관하여 법원이 인정했던 사실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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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strong><span style="FONT-SIZE: 170%">5·18에 관하여 법원이 인정했던 사실들.</span></strong><br><br><br>출처: 스누라이프 2009-08-23 (<a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a>)<br>필자: 익명<br><br><br>「5·18에 관하여 법원이 인정했던 사실들」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스누라이프에서 퍼온 것입니다.<br>대한민국에는 아직도 80년 광주가 빨갱이들의 반란이었다고 악을 쓰는 절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br>그에 대해서 법원이 사실인 것으로 명백하게 인정한 사안들을 올립니다.<br><br>그 중 가장 주목하셔야 할 부분을 강조하면<br><br><strong>"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주권자의 입장에 서서 헌법을 제정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소임을 갖는 것이므로 이러한 국민이 개인으로서의 지위를 넘어 집단이나 집단유사의 결집을 이루어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일정한 시점에서 담당할 경우에는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헌법기관에 준하여 보호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강압으로 분쇄한다면 그것은 헌법기관을 강압으로 분쇄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strong><br><br>이 부분이 되겠습니다.<br>법원은 대한민국에서 <strong>가장 보수적인 집단</strong> 중의 하나이므로<br>이들이 이러한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br>광주의 진실을 역설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입장일 것이라는 생각으로<br>이곳에 퍼옵니다.<br><br><br><strong>P.S.</strong> <br><br><span>죽은 이들의 나이와 사인을 한번 잘 보시기 바랍니다...</span><br><br><br><br><br><br><br><div class="boardRead"><div class="readHeader"><div class="titleAndCategory"><h4>5·18에 관하여 법원이 인정했던 사실들.</h4></div><div class="userInfo"><div class="author"></div><div class="authorHide">필명숨김</div></div><div class="date"><strong>2009.08.23</strong> 20:21:16 <a onclick="window.clipboardData.setData('Text','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alert('게시글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n\n원하시는 곳에 Ctrl+V을 눌러 붙여넣으세요')"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a></div></div><div class="originalContent"><div>&nbsp;</div><div class="readBody"><div class="contentBody"><br>아래 '화려한 휴가'글을 보다보니(아, 그새 글이 지워졌네요;;) 생각이 나서, 5-18&nbsp;내란사건(네. 내란입니다. 신군부의 내란이죠.)에 관한 제2심 판결문(1996. 12. 16. 선고, 서울고등법원 96노1892 판결) 중 [제2부 범죄사실]란 가운데서 5-18 과 관련하여 법원이 인정한&nbsp;사실부분을 발췌하여 올려봅니다.&nbsp;판결문에는 저작권이 없으니.. 괜찮겠죠(다만 내용을 함부로 변개하면 안된다는 건 당연한 처사일듯).<br>사실관계 부분의 심리가 마쳐지는 것은 2심에서이기 때문에 이것을 올리는 것.<br>물론 '절대적 진실'은 아니고, 제가 알기로 법원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기껏해야 상대적 진실'이라고 <br>들었습니다. 이 점은 유의해주시고. 다만 증거조사를 거쳐서 공식적으로, 최소한도로 인정된 (어느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기 어려운) 사실이 이만큼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길지만 올려봅니다.<br><br>---------------------------------------------------------------------------------------<br>&nbsp;&nbsp;<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nbsp; <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2. 내란(피고인 1. 2. 3. 4. 5. 9. 10. 11. 14. 15. 16.에 대하여)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p></span><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p><br>&nbsp; <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가. 국헌문란의 목적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 국회의사당의 폐쇄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980. 5. 18. 01:45경 계엄군 소속 제33사단 101연대 1대대 3중대 소속 장교 3명, 사병 95명이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하고 경장갑차 8대와 전차 4대를 지원받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 소재 국회의사당을 점거하여 같은 해 8. 30.까지 국회의원 등 일체의 출입자를 통제하면서 같은 해 5. 20. 09:00경 김영삼 신민당총재의 기자회견에 참석하였던 황낙주, 손주항, 오세응 등 국회의원 38명과 의원비서관, 보도진 등 3백여 명이 5. 20. 10:15경 국회 정문에 도착, 국회의사당으로 들어오려 하자, 위 계엄군들이 소총으로 황낙주 의원 등을 밀어내어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저지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계엄군은 뒤(다. (1)과 (7))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야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계속 저지하여, 5. 20. 10:00 개회예정인 제104회 임시국회의 개회가 불가능하게 되어 1980. 6. 18. 위 임시국회가 자동 폐회되었고 피고인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같은 해 9. 1. 후인 9. 20. 제105회 정기국회가 열려 9. 22. 남덕우 국무총리와 이한기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만을 처리하고 휴회에 들어간 뒤 같은 해 10. 27. 공포된 제5공화국 헌법 부칙 제5조 제1항에 따라 제10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종료됨으로써 국회가 사실상 해산되었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2)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설치와 운영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피고인 전두환은 1980. 5. 초부터 권정달에게 비상기구설치를 검토하도록 하여 이를 시국수습방안의 하나로 성안하여 같은 해 5. 17. 최규하 대통령에 건의할 준비를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피고인 전두환은 같은 해 5. 19.경 다시 권정달을 통해 유신헌법상의 대통령 긴급조치권에 의한 비상기구 설치를 대통령에게 건의하였으나 최 대통령이 현행법규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방안을 연구해 보라고 언급하자,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자문기구의 형태로 비상기구를 설치하되, 실질적으로는 피고인 전두환 등의 주도로 행정각부 등을 통제하여 국정을 수행해 나가겠다는 의도하에 같은 해 5. 23.경 권정달을 시켜 이원홍 대통령비서실 민원수석비서관에게 국보위의 설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그 설치 요강을 제시하고, 위 이원홍이 비서관들로 하여금 조문화 작업을 하게 하여 같은 해 5. 24.경 계엄법과 정부조직법에 근거하여 대통령에 대한 자문기구 형태로 국보위를 설치하는 내용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설치령이 성안되어 1980. 5. 27. 제46회 국무회의에서 위 설치령을 의결하게 하여 국보위를 발족시켰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피고인 전두환은 국보위 업무를 실질적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하기로 하면서 1980. 5. 31. 상임위원장에 자신이 취임하고, 당연직 상임위원을 군장성 12명과 대통령 비서관 4명으로 구성하고, 피고인 이학봉, 허화평, 허삼수와 함께 각 분과위원과 전문위원을 선정하여 피고인들이 그 실권을 장악한 후 국보위상임위원회를 통하여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직자숙정, 언론인 해직, 언론통폐합, 불량배소탕 등 소위 국정개혁작업을 수행하여 국보위상임위원회를 통하여 피고인 전두환 등의 국정수행능력을 내외에 과시하여 집권세력으로 부각시키는 데 이용하면서 국보위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하여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켰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3) 헌법제정권력에 대한 강압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뒤의 범죄사실란에서 인정하는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봉쇄하며,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주요 정치인들을 구속한 행위에 대하여 이를 강력히 항의하고 그 시정을 요구하는 광주시민들의 시위를 피고인들이 공수부대병력을 동원하여 난폭한 방법으로 분쇄한 행위도 국헌문란에 해당한다. 민주주의국가의 국민은 주권자의 입장에 서서 헌법을 제정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소임을 갖는 것이므로 이러한 국민이 개인으로서의 지위를 넘어 집단이나 집단유사의 결집을 이루어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일정한 시점에서 담당할 경우에는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헌법기관에 준하여 보호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강압으로 분쇄한다면 그것은 헌법기관을 강압으로 분쇄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 발췌자 주: 대법원은 2심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국헌문란'이라는 주관적 요건에 관한 위와 같은 해석은 다음과 같이 부정하였다.(이 사건의 상고심 판결인 1997. 4. 17.&nbsp;선고, 96도3376 판결 중)<br>&nbsp;</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생각건대, 헌법상 아무런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지위를 가진다는 것만으로 헌법수호를 목적으로 집단을 이룬 시위국민들을 가리켜 형법 제91조 제2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그리고 원심이 형법 제91조가 국헌문란의 대표적인 행태를 예시하고 있다고 본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따라서, 위 법률 조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헌법수호를 위하여 시위하는 국민의 결집을 헌법기관으로 본 원심의 조처는 결국 유추해석에 해당하여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nbsp;&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그러나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1980. 5. 17. 24:00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난폭하게 진압함으로써,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보다 강한 위협을 가하여 그들을 외포하게 하였다면, 이 사건 시위진압행위는 피고인들이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압하여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고, 이는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었다고 할 것이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p></span><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4) 국헌문란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위 (1)의 행위는 입법권을 담당하는 헌법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켜 사실상 이를 전복한 것에 해당한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위 (2)의 행위는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을 사실상 대행함으로써 그 권한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위 (3)의 행위는 헌법제정권력으로서의 국민의 결집을 강압으로 분쇄한 것이고 이것은 헌법기관을 강압으로 분쇄한 것과 같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이들은 형법 제91조의 국헌문란행위에 해당한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위의 국헌문란행위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피고인들이 이러한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하여 다음 나.와 같이 사전에 모의하고 준비한 뒤 이러한 목적을 강압에 의하여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획에 따라 다음 다.와 같이 폭동하여 이를 성취한 것이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나. 모의와 준비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제1항 기재와 같이 1979. 12. 12.에 일어난 군사반란(이하 12·12 군사반란이라고 부른다) 이후 피고인 전두환은 1980. 4. 12.부터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하고 피고인 노태우는 1979. 12. 13. 수경사령관에, 피고인 유학성은 1979. 12. 18. 제3군사령관에, 피고인 황영시는 1979. 12. 24. 육군참모차장에, 피고인 이희성은 1979. 12. 13.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피고인 주영복은 1979. 12. 14. 국방부장관에, 피고인 차규헌은 1979. 12. 19. 육군사관학교장에, 피고인 정호용은 1979. 12. 13. 특전사령관에 각 취임하여 군의 지휘권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뒤 피고인 허삼수, 허화평 및 1980. 1. 12. 보안사 대공처장으로 승진한 피고인 이학봉과 공모하여 다음과 같이 국헌문란을 모의하고 준비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 피고인들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할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10·26 사건으로 선포되어 있는 지역비상계엄조차 계엄법상의 목적과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해제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을 장악하기 위해 국회를 해산하는 동시에 입법, 행정, 사법을 통제하는 비상기구를 설치, 운영할 계획을 마련하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수단으로 군을 배경으로 비상계엄을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국정장악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필요시 언제든지 병기를 휴대한 계엄군을 동원할 수 있다는 위협적인 상황을 조성하면서, 계엄군 병력이 전국의 주요 대학과 국회, 언론기관 등에 배치되는 것을 계기로, 향후 피고인들의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제압하고 피고인들의 국정 장악에 반대하여 저항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정치인과 재야인사, 학생운동 지도자들을 소요배후조종이나 부정축재 혐의로 체포하여 제거하는 등의 방법으로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회 및 행정부 그리고 피고인들의 국헌문란행위에 반대, 항의하는 국민들의 결집을 계엄군의 무력을 사용한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할 것을 결의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2) 피고인 전두환은 1980. 5. 초 보안사 내 참모들에게 군이 전면에 나서 정국을 장악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검토할 것을 지시하고, 이에 따라 피고인 이학봉, 허화평, 허삼수와 및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 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이 2, 3일간 수시로 만나 논의한 끝에 비상계엄의 해제와 전두환의 퇴진 등을 요구하는 대학가의 시위를 강력히 제압하고 군이 전면에 나서 정국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군 주도 세력의 협조하에 지역계엄보다 한층 강화된 전국계엄을 실시하는 동시에 과도정부적 성격의 소극적인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기구의 설치와 계엄해제 요구를 결의할 가능성이 있는 국회의 해산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를 '시국수습방안'로 정리하기로 하여, 1980. 5. 4.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소재 중앙정보부장 안가에서 피고인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정호용은 권정달로부터 위와 같은 방안을 설명들은 후 모두 이의 실행에 동의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5. 12.경 권정달로부터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비상기구를 설치하고 국회를 해산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시국수습방안을 보고받고, 피고인 유학성, 황영시, 노태우, 정호용과 함께 수시로 논의한 끝에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군지휘관들이 위 시국수습방안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전군의 의사를 배경으로 하여 위 시국수습방안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피고인 유학성은 5. 15.경 서울 용산구 용산동 소재 육본 참모총장실에서 피고인 이희성에게 위 시국수습방안을 설명하면서 협조를 부탁하고, 피고인 이희성은 이를 승낙하고, 피고인 주영복은 5. 17. 전군주요지휘관회의 전에 피고인 전두환의 지시를 받은 권정달로부터 위 회의에서 다루어야 할 안건으로 위 시국수습방안을 통보받고 이의 실행에 동의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3) 피고인 황영시는 피고인 이희성과 함께 시위 진압에 군을 동원할 것에 대비하여 1980. 5. 3. 특전사 예하 9공수여단을 수도군단에 배속시키고, 5. 6. 해병 1사단 1개 연대를 소요사태 진압부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한편, 5. 6.부터 5. 9.까지 2군 및 수도권 지역 전 부대를 대상으로 소요진압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5. 8. 01:00 포천에 주둔하고 있던 13공수여단을 서울 거여동 3공수여단 주둔지로, 5. 10. 01:00 화천에 주둔하고 있던 11공여수단을 김포 1공수여단 주둔지로 각 이동 배치하고, 5. 9. 해병 1사단 1개 연대를 추가로 소요 진압에 투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위 피고인들은 5. 14. 13:00 김재명 육본 작전참모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소요진압본부를 설치하고 전군에 소요사태 진압부대 투입 준비지시를 하달하여, 차후 명령에 따라 수도경비사령부는 특전사 예하 4개 공수여단을 작전통제하여 수도권 강북지역의, 수도군단은 9공수여단을 작전통제하여 수도권 강남지역의, 2군사령부는 7공수여단과 해병 1사단 2개 연대를 작전통제하여 부산, 대구, 광주지역의 각 소요사태 진압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위 피고인들은 이어 신현확 국무총리나 관계장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 14. 17:30 3공수여단을 국립묘지에 배치하고, 5. 14. 18:25 청와대 등 특정경비지역 방어를 위하여 광화문 지역 경찰 저지선 뒤에 수경사 9개중대와 화학지원대를 배치한 데 이어 같은 날 20:29 전국 71개 방송국 및 중계소에 경계 병력을 배치하고, 5. 15. 12:00 양평에 주둔하고 있던 20사단 61, 62연대를 잠실체육관과 효창운동장으로, 5. 17. 00:01 20사단 60연대를 태릉으로 각 이동시키는 등 계엄군의 예비이동을 실시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4) 피고인 전두환은 1980. 5. 초 피고인 이학봉에게 학원 소요사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학생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정치인과 재야인사, 대학 복학생 및 재학생 대표들을 검거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조치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하면서, 부정축재자들에 대한 조치 방안도 아울러 검토할 것을 지시하고, 피고인 이학봉은 권정달로부터 관련 자료를 협조받아, 5. 13. 검거대상을 학생시위 배후조종자에 대해서는 국기문란자로, 부정·부패행위자에 대해서는 권력형부정축재자로 각 분류하기로 하고, 이를 피고인 전두환에게 보고한 다음 권정달과 함께 대상자 선정작업을 마무리하여, 이른바 국기문란자와 권력형부정축재자의 선정 기준, 명단, 혐의 내용 등을 정리한 '국기문란자 수사계획'과 '권력형부정축재자 수사계획' 등 두 개의 보고서를 작성, 5. 15. 피고인 전두환에게 최종 보고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이들을 검거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5) 피고인 전두환,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이학봉, 차규헌, 정호용, 허삼수, 허화평은, 1980. 5. 12. 여·야 총무가 계엄해제 등 정치현안을 다루기 위한 임시국회소집에 합의하고 신민당이 비상계엄해제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임시국회가 1980. 5. 20. 개회되면, 비상계엄해제가 본격 논의되어 계엄 상황을 이용한 정국 장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그무렵 위 시국수습방안을 임시국회 소집일 이전인 5. 17. 전격 실행하기로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6) 피고인 전두환은 5. 16. 13:00경 조문환 국방부차관을 통해 피고인 주영복에게 같은 달 17.에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하여 줄 것을 요구하면서 회의에 상정할 안건은 회의 직전에 알려주겠다고 통보하고, 5. 16. 13:30경 다시 피고인 주영복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위 안건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반드시 관철하여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줄 것을 요구하고, 이에 따라 피고인 주영복은 그 시경 조문환 차관에게 5. 17. 10:00에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소집하도록 지시하였다. 피고인 전두환은 5. 17. 09:30경 권정달을 피고인 주영복에게 보내,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시국수습방안을 자신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니 이를 전군주요지휘관회의의 결의사항으로 대통령에게 건의해 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5. 17. 10:00경 청와대에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대통령 부재 중의 안보상황과 국내 치안상황을 보고하면서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의 개최사실에 대하여는 보고하지 아니하였다. 피고인 정호용은 5. 17. 10:35경 육군참모총장실에서 피고인 이희성에게 피고인 전두환 등이 추진하는 시국수습방안을 전군의 일치된 의견으로 유도해 내도록 협조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7) 피고인 이학봉은 5. 16. 오후 소요배후조종 및 권력형부정축재자 등의 거주지역 보안부대 대공과장들을 보안사로 불러 검거대상자 명단을 나누어 주면서 별도 지시가 있을 경우 즉시 검거에 나설 것을 지시하였다. 피고인 전두환은 5. 17.경 피고인 이학봉에게 같은 날 22:00를 전후하여 소요배후조종자 및 권력형부정축재자들을 전원 검거하라고 지시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8) 피고인 노태우는 5. 17. 08:00경 서울 중구 필동 2가 84 소재 수경사에서 이현우 30경비단장, 성환옥 헌병단장 등에게 당일 국무회의가 있을 것이니 철저한 경비와 보안유지를 하라고 지시하고, 피고인 황영시는 5. 17. 08:00경 참모차장실에서 나동원 민사군정감 등에게 전국계엄이 곧 실시될 것임을 알리면서 그에 따른 준비를 지시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9) 피고인 주영복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권정달로부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다루어야 할 안건으로 위 시국수습방안을 통보받고 이의 실행에 동의한 후, 회의 시작전인 5. 17. 10:50경 국방부장관실에서 류병현 합동참모의장에게 외부로부터 요청이 있어 회의를 소집하였는데 논의할 안건은 비상계엄 강화, 국회 해산, 비상기구의 설치 문제라며 그에 대한 의견을 묻고, 류병현 합동참모의장이 이에 대해 비상기구의 설치와 국회 해산 문제를 군지휘관회의에서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이어 피고인 이희성과 김종곤 해군참모총장, 윤자중 공군참모총장이 합석한 자리에서도 같은 의견을 표명하자 이를 회의 안건에서 보류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5. 17. 11:00경부터 서울 용산구 용산동 소재 국방부 제1회의실에서 피고인 이희성, 황영시, 노태우, 정호용 및 공소외 류병현, 김종곤, 윤자중 등 육,해,공군 주요 지휘관 43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최성택 합동참모본부 정보국장의 북한 동향 및 국내외 정세 분석 보고에 이어, 계엄하에서 학원 소요가 진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과열, 폭력화되어가고 있고 북괴의 동향도 심상치 않으므로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확대하고자 하니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하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계엄 확대에 이견이 없다는 발언을 한 가운데, 안종훈 육군군수사령관이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는 국민의 합의에 의해 하여야 하는데 시기상조라며 반대 의견을 표명하자, 피고인 정호용은 사회 안정을 위하여 군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고, 피고인 노태우, 황영시도 그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는 등으로 참석자들의 발언이 끝나자, 피고인 주영복은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전군 주요지휘관들의 의견으로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백지를 돌려 참석자들로부터 연서명을 받아 5. 17. 14:30경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마쳤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0) 피고인 주영복은 5. 17. 16:20경 위 연서명을 휴대하고 피고인 이희성과 동행하여 신현확 국무총리를 찾아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논의된 비상계엄 전국확대 방안을 건의하면서 대통령을 보좌할 비상기구를 설치하고 정계 정화를 위하여 국회를 해산하자는 논의도 일부 있었다고 보고하였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피고인 주영복, 이희성은 이어 같은 날 17:10경 다시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 신현확 국무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피고인 주영복이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계엄을 강력하게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와 이를 건의한다고 하면서 일부에서는 비상기구의 설치와 국회해산 문제도 거론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대해 최규하 대통령이 신현확 국무총리의 의견을 묻는 등 장시간 숙고 끝에 같은 날 19:00경 계엄 확대방안에 대해서만 국무회의에서 논의해 볼 것을 지시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그 직후 별도로 소요배후조종 및 권력형부정축재 혐의자에 대한 체포 및 조사 계획을 보고하여 최규하 대통령으로부터 그에 대하여는 적법하고 신중하게 처리할 것을 당부받았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1) 피고인 이학봉은 5. 17. 11:00경 보안사로 중앙정보부, 경찰 등 합동수사단 관계자들을 소집하여 계엄확대 조치의 배경을 설명하고, 중앙정보부 안전조사국과 대공수사국은 소요배후조종자 중 국민연합 관련자들을, 보안사 대공처는 권력형부정축재자들을, 경찰은 소요 관련 복학생과 재학생 대표들을 각각 검거, 수사하도록 지시하면서 대상자 검거시각은 5. 17. 22:00로 하되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가지고 시행하도록 하는 한편, 5. 17. 12:00경 검거대상자가 있는 각 지역 보안부대에 전언통신문을 보내 같은 날 22:00를 기하여 대상자들을 일제히 검거하라고 지시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2) 5. 17. 12:00경 피고인 노태우는 박동원 수경사 작전참모 등에게 합수부나 중앙정보부로부터 병력지원 요청이 오면 즉시 지원해 주라고 지시하였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3) 피고인 전두환은 1980. 5. 초부터 권정달에게 비상기구의 설치를 검토하도록 하여 이를 시국수습방안의 하나로 성안하여 최규하 대통령에 건의하려다가 일시 보류하였고, 그 5. 19.경 다시 권정달을 통하여 유신헌법상의 대통령 긴급조치권에 의한 비상기구의 설치를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대통령으로부터 현행법규의 범위안에서 가능한 방안을 연구해 보라는 지시를 받고 계속 그 방안을 준비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다. 폭동행위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피고인들은 위 가.항에서 모의하고 준비한 시국수습방안을 실행하여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 대통령, 행정부를 강압하여 그 권한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이를 항의하거나 반대하는 국민들의 결집을 강압적으로 분쇄하기 위하여 공모하여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 (예비검속)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가) 1980. 5. 17. 18:00경 보안사 대공처장 피고인 이학봉의 지시에 따라 서울지역 보안부대의 지휘를 받은 치안본부와 서울시경찰국 수사관들이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11의 1 소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회의 중이던 전국 대학 총학생회장들 약 50여 명을 검거하기 위하여 출동하였으나 검거계획이 사전에 노출되어 대부분이 도주하는 바람에 10여 명만을 검거하고,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나) 5. 17. 23:00경 중앙정보부의 지원 요청에 따라 출동한 수경사 헌병단 소속 장교 1명, 사병 18명 등이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8의 1 소재 김대중 국민연합 공동의장 집에서 그를 체포하는 등 그 무렵 사회혼란조성 및 학생,노조소요관련 배후조종 혐의로 김대중 국민연합 공동의장, 문익환 목사, 김동길 연세대학교 부총장, 인명진 목사, 고은태 시인, 이영희 한양대학교 교수 등을 체포하고, 예춘호, 김녹영, 이택돈, 손주항 국회의원을 현행범이 아님에도 체포하고,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다) 5. 17. 23:00경 보안사 대공처 소속 수사관 등이 서울 중구 신당 4동 340의 38 소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의 집에서 그를 체포하는 등 그 무렵 권력형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범죄 혐의로 김종필 공화당 총재, 이후락, 박종규, 김진만 국회의원, 김치열 전 내무부장관, 오원철 전 청와대경제제2수석비서관, 김종락 코리아타코마 사장, 장동운 전 원호처장, 이세호 전 육군참모총장 등을 구속영장 없이 체포하고,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라) 피고인 이학봉의 지시를 받은 광주지구 보안부대가 5. 17. 23:00경부터 시위주동자에 대한 이른바 '예비검속'을 실시하여 재야인사와 학생회 간부 등 연행대상자 22명 중 정동년, 권창수, 오진수, 이승룡, 유재도 등 8명을 체포하는 등 전국 각 지역에서 비상계엄 확대와 병행하여 실시한 예비검속 과정에서 총 2,699명을 체포하는 등 전국적인 비상계엄의 위력을 과시하여 헌법과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동시에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국무위원 등을 강압, 외포케하여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2) (무력에 의한 국무회의장의 포위, 차단) 피고인 전두환, 노태우는 공모하여, 피고인 노태우가 5. 17. 17:00경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마치고 수경사로 돌아와, 박동원 작전참모에게 중앙청에서 비상국무회의가 열릴 예정이니 중앙청 건물 안에는 헌병단 병력을, 건물 밖에는 제30경비단 병력을 충분히 배치하라고 하면서 국무회의장 주변에는 더욱 철저한 경비와 보안유지를 해줄 것을 재차 당부하고, 박동원은 이를 이현우 제30경비단장과 성환옥 헌병단장에게 지시하여, 5. 17. 19:35 중앙청 외곽에는 권총과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한 수경사 30경비단 소속 장교 18명, 사병 324명과 장갑차 4대를 주둔지인 경복궁에서 이동 배치하고, 현관과 국무회의장에 이르는 계단과 복도 등 중앙청 내부에는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수경사 헌병단 소속 장교 17명과 사병 236명을 주둔지인 수경사로부터 이동시켜 약 1, 2m 간격으로 배치함으로써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국무위원들에게 그 위력을 보임과 동시에, 성환옥은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할 목적으로 헌병단 통신과장에게 보안유지를 당부하면서 중앙청 내 전화선을 절단하라고 지시하여 인입 2,440 회선과 구내배송선 일체를 통신실 근무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절단하고, 배치된 병력들은 출입자를 검문하면서 국무위원 외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중앙청 내 근무 공무원들을 사무실에서 내쫓아 5층에 있는 방으로 모두 몰아넣은 후 5. 18. 07:00경까지 외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계엄군의 위력을 과시하여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케하여 폭동을 하고,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3)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피고인 이희성, 주영복은 5. 17. 21:42 중앙청에서 신현확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제42회 임시국무회의에 참석하여, 피고인 주영복은 제주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계엄법상 비상계엄 선포가 가능한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할 사변과 적의 포위공격'이라는 상황이 발생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북괴의 동태와 전국적으로 확대된 소요사태 등을 감안할 때 전국 일원이 비상사태하에 있다고 판단되어 계엄확대 선포안을 제출한다고 제안 설명을 한 후 반대 토론 없이 8분만에 이를 의결시키고, 이어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같은 날 23:40경 정부 대변인인 이규현 문화공보부장관으로 하여금 5. 17. 24:00를 기하여 비상계엄 선포지역을 전국 일원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하게 하고 이로써 전국적인 비상계엄의 위력을 과시하여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와 행정부 등 국가기관을 강압, 외포케하여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4) (주요시설에 대한 계엄군의 배치) 피고인 황영시는 1980. 5. 17. 17:00경 계엄의 확대와 그에 따른 계엄군의 전면 투입을 예상하여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에게 소요진압부대 투입준비를 지시하고, 피고인 이희성은 5. 17. 22:30 전군에 소요 진압부대 투입 작전명령을 하달하여 5. 18. 02:30경까지 광주 소재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를 포함한 전국 92개 주요 대학과 국회 및 신민당사와 공화당사, 언론기관, 공공기관을 포함한 136개 주요 보안목표에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한 계엄군 2만 5천여 명을 배치 완료하여 각 해당시설을 점거하여 계엄군의 위력을 과시하고 이로써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정치활동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을 유린하여 헌법과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고, 또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등을 강압, 외포케하여 폭동하였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5) (정치활동금지 및 집회금지 등에 관한 계엄포고령의 발표) 피고인 이희성은 5. 17. 20:05경 계엄사 참모장 나동원에게 보안사에서 정치활동의 금지 등을 골자로 하여 입안해 온 계엄포고 초안을 전달하여 이를 계엄포고 제10호로 기안하게 하고, 위와 같이 비상계엄의 시행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됨에 따라 5. 18. 01:00경 모든 정치활동의 중지, 정치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 금지, 언론, 출판, 보도, 방송의 사전 검열, 각 대학(전문대학 포함)의 휴교, 공공집회에서의 선동적 발언과 질서를 문란시키는 행위 불허, 포고령 위반자에 대한 영장 없는 체포, 구금, 수색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고, 피고인 전두환 등은 이를 기화로 국회의원들의 국회의사당과 정당 당사 출입까지도 통제하도록 지시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그 무렵 헌법 및 정부에 대한 비방, 5. 17. 비상계엄지역 확대조치에 대한 비판, 포고령위반 내용 등의 보도통제를 골자로 하여 정보처에서 작성한 보안사령관 명의의 '5. 17. 계엄지역 확대조치 및 포고령 10호에 의한 보도통제 지침'을 '위반 시 폐간'이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사 보도검열단에 시달하여 이에 따라 보도통제를 시행하도록 하고 이로써 비상계엄의 위력을 과시하여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등을 강압, 외포케하여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6) (야당 총재의 연금) 피고인 전두환, 노태우는 공모하여, 5. 18. 오후 김영삼 신민당총재가 정무회의를 주재하여 연행자 석방, 계엄군 철수 등을 요구하고, 5. 20. 09:00에는 다시 서울 동작구 상도1동 7의 6 소재 집에서 기자회견을 하려 하자, 피고인 노태우가 5. 18. 07:20경 상도동 집에 성환옥 헌병단장이 지휘하는 수경사 헌병단 10, 53중대 병력 118명으로 하여금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하고 주둔지인 수경사에서 출동하게 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였으나, 김영삼 총재가 이미 집안에 들어와 있던 기자들을 상대로 5. 17. 조치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강행하자, 외부인의 김영삼 총재 자택 출입과 김영삼 총재의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 가택연금 조치를 취하는 등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으로서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 없이 부대를 불법 진퇴시키고 이로써 계엄군의 위력을 행사하여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정치활동의 자유를 유린함으써 헌법과 법률의 기능을 사실상 소멸시키고,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등을 강압, 외포케하여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7) (국회의사당의 폐쇄) 피고인 전두환,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정호용은 피고인 이희성으로 하여금 5. 18. 01:45경 33사단 101연대 1대대 3중대 소속 장교 3명, 사병 95명으로 하여금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하고 경장갑차 8대와 전차 4대를 지원받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 소재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도록 하고 이를 기화로 같은 해 8. 30.까지 국회의원 등 일체의 출입자를 통제하게 하면서 같은 해 5. 20. 09:00경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위 기자회견에 참석하였던 황낙주, 손주항, 오세응 등 국회의원 38명과 의원비서관, 보도진 등 3백여 명이 같은 날 10:15경 국회 정문에 도착, 국회의사당으로 들어오려 하자, 출입 통제지침을 다시 내려 보내 배치 계엄군으로 하여금 위 소총으로 황낙주 의원 등을 밀어내게 하여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저지하고 이로써 계엄군의 위력을 행사하여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의원을 강압, 외포케하여 폭동하고,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8) (저항시민에 대한 강압)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가) 5. 18. 01:10경 특전사 7공수여단 소속 장교 94명, 사병 680명이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하고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를 점거한 상황에서, 같은 날 08:00경부터 전남대학교 학생 30여 명이 휴교령이 내려질 경우 학교 정문앞에 모여 시위를 하기로 한 사전행동지침에 따라 광주 북구 용봉동 300 소재 전남대학교 정문에 모이기 시작하여 5. 18. 10:00경에는 2백여 명에 이른 학생들이 공수부대원들의 학내 잔류 학생에 대한 구타행위를 비난하면서 비상계엄 해제하라, 공수부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돌을 던지는 등 시위를 하자, 위 공수부대원들이 학생들의 강제 해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쫓아가 진압봉으로 어깨 외에 머리 등을 무차별 가격하고 체포한 학생들을 난폭하게 연행하여 충돌이 발생하고, 학생들이 5. 18. 10:30경 다른 학생 6백여 명과 함께 광주 시내 중심지로 이동 집결하여 계엄 해제,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하면서 경찰병력과 격렬한 공방을 벌이는 등 시위가 확산되었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나) 피고인 전두환,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은 광주 서구 치평동 98 소재 전투병과교육사령부 등으로부터 위와 같은 시위 상황을 보고받고, 광주에서의 시위가 피고인들의 정국 장악에 상당한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의 확산을 방지하고,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회 및 행정부를 전복 또는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계획한 국회해산과, 입법, 사법, 행정을 통제하는 비상기구의 설치 등의 조치를 계속 추진하기 위하여, 광주 시위 상황에 대한 언론보도를 통제하면서 강력한 진압이 예상되는 공수부대의 시내투입과 증파로 이를 조속히 제압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다) 피고인 이희성은 윤흥정 전투병과교육사령관에게 계엄군을 투입하여 조속히 시위를 진압하라고 독려하고, 위 윤흥정은 다시 정웅 31사단장에게 7공수여단 33, 35대대를 광주시내로 투입, 시위를 진압하도록 지시하여,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위 부대원들이 금남로 일대로 출동, 같은 해 5. 18. 16:00경부터 시위대를 해산시키면서 인근 점포나 골목, 건물 안까지 시위대를 추적하여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시위대와 시민들을 구분 없이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심지어 머리를 가격하거나 체포된 시위대의 상의 등을 벗기고 기합을 주기도 하는 등의 과잉진압을 실시하여 광주시민 405명을 연행함과 동시에 8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라) 피고인 황영시는 5. 18. 오전 피고인 이희성에게 합수부측에서 광주 지역에 병력을 증원하여 시위를 조속히 진압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보고하면서 1개 공수여단의 증파를 건의하고, 피고인 이희성은 피고인 황영시와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으로부터 병력 증원을 건의받고 김재명에게 1개 공수여단의 증파를 지시하고, 피고인 정호용은 김재명에게 증파 부대로 11공수여단의 지정을 건의하고, 5. 18. 15:30경 11공수여단이 주둔하고 있는 동국대학교로 가 최 웅 11공수여단장에게 광주에 가서 임무수행을 잘 하라고 격려하고, 이에 따라 11공수여단 병력 장교 162명, 사병 1,038명은 5. 19. 00:50경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하고 광주에 증파되어 차량에 탑승하고 배속받은 장갑차의 선도로 위력시위를 하고, 한편 전날 부상을 입은 시민 김경철(남, 23세)이 국군광주통합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후두부열상 등으로 사망한데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자극하여 5. 19. 10:00경부터 시민들이 대규모로 가세하면서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자, 이들을 소총 개머리판과 진압봉으로 무차별 가격하고 심지어는 일부 부대원들이 대검을 사용하는 등 강경한 진압작전을 감행하여 그 과정에서 많은 광주 시민들이 부상을 입고, 그 중 김안부(남, 34세)가 전두부열상 등으로 사망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마) 그 무렵 피고인 전두환은 광주지구 보안부대로부터 상황보고를 받으면서 그 보고 및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5. 19.경 최예섭 보안사 기획조정처장과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 최경조 대령, 중앙정보부 박정희 과장을 광주에 파견하여 상황을 보고받거나 연행자 조사 등을 지원하도록 하는 한편 피고인 이희성에게 시위의 조속한 진압을 요구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현지로부터의 건의에 따라 피고인 이희성에게 시위 진압에 소극적인 윤흥정 전교사령관을 교체하도록 요구하고, 피고인 황영시는 피고인 전두환과 논의하여 피고인 이희성에게 그 후임으로 소준열 육군종합행정학교장을 추천하고, 5. 20. 18:00경 그에게 내정사실을 통보해 주면서 사태가 수습되면 중장으로 진급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여 5. 21. 16:30경 미리 전교사로 내려가게 한 뒤 5. 22. 10:00 전교사령관으로 취임하게 하고, 위 윤흥정을 체신부장관으로 추천하여 입각하게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바) 한편, 피고인 정호용은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에게 추가 증파부대로 3공수여단을 건의하고, 피고인 이희성은 이에 따라 5. 20. 다시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한 3공수여단 병력 장교 255명, 사병 1,137명을 광주에 보내, 시위 진압에 추가 투입하고, 같은 날 오후 들어 공수부대의 과잉 진압에 격분한 택시기사들이 중심이 되어 차량 시위가 전개되면서 트럭, 버스 등의 돌진 공격이 계속되자, 3, 7, 11공수여단 병력들이 최루탄과 진압봉을 사용하여 진압을 계속하고, 5. 20. 24:00경 광주역 앞에서 3공수여단 12, 15대대 장교들이 시위대의 차량 공격에 대응 발포하여 많은 광주 시민들이 부상을 입혔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사) 피고인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은, 5. 21. 08:00경부터 전남도청 앞에서 수만명의 시위대에 의해 철수를 요구받고 있는 11공수여단 대대장들로부터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여 줄 것을 건의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함으로써 5. 21. 12:00경 전남대학교 앞에서 3공수여단 병력이 차량으로 공격을 시도하는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성명불상 운전사 등이 총상으로 사망하고, 5. 21. 13:00경 전남도청 앞에서 11공수여단 병력이 장갑차와 버스를 이용하여 돌진해 오는 시위대에게 발포를 시작하고, 이어 인근 건물 옥상에 배치된 병력들이 시위대를 향하여 집단적으로 발포하여 박민환(남, 26세) 등이 총상으로 사망하는 등 상당수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시위대들이 광주를 비롯한 인근 지역의 경찰서, 지, 파출소 등에서 총기와 실탄을 확보하여 무장 저항을 시작하자, 공수부대원들이 전남도청 일대에서 이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등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9) (무장시위대의 진압)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가) 피고인 전두환, 황영시, 이희성, 주영복, 정호용은 광주에서의 시위와 시민들의 무장 상황을 보고받고 피고인들의 시국수습방안에 따라 정국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강경진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여, 광주에서 피고인들의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저항하는 시위대를 무장 폭도로 규정하고 계엄군으로 하여금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사상자가 발생하더라도 조속히 진압하기로 공모하고,&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피고인 이희성, 같은 주영복은 5. 21. 16:35경 국방부장관실에서 피고인 주영복과 공소외 진종채 2군사령관, 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 류병현 합참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계엄군을 광주 외곽으로 전환 재배치하여 외곽을 봉쇄하고, 1개 연대를 추가 투입하며, '폭도 소탕작전'을 5. 23. 이후에 의명 실시하고, 피고인 황영시는 5. 21. 16:00경 이구호 기갑학교장에게 기갑학교 전차 1개 대대(32대)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진압할 것을 지시한 데 이어, 5. 23. 12:30경 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에게 무장헬기 및 전차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조속히 진압할 것을 지시하였고, 피고인 이희성은 피고인 황영시가 전해 준 자위권 보유를 천명하는 경고문을 류병현 합참의장등과 상의하여 문안을 수정한 뒤 5. 21. 19:30 육본 기밀실에서 방송을 통하여 이를 발표하고, 이어 같은 날 20:30경 전교사령관을 통해 3개 공수여단과 같은 날 오전에 추가로 투입된 20사단 등에 자위권 행사를 지시하고, 계엄 훈령 제11호로 각 예하부대에 자위권 발동 지시를 하달하여 이에 따라 그 무렵 광주 외곽으로 재배치되고 있는 계엄군들에게 자위권 발동이 고지되고 실탄이 분배되었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나) 5. 21. 22:10경 광주 서구 백운동 소재 효천역 부근에 배치되어 광주-목포간 도로를 차단하고 있던 20사단 61연대 2대대가 짚차의 선도하에 트럭, 버스 등 차량 6, 7대에 탑승하고 목포 쪽에서 광주쪽으로 이동하던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여 시위대 버스 2대를 전복시키고, 5. 22. 00:15경 61연대 1대대 1중대와 연대 수색중대 병력이 증원되어 다시 같은 날 01:00경 위 61연대 병력이 광주 쪽에서 버스 5, 6대에 탑승하고 온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여 그 과정에서 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1항 기재와 같이 강복원을 사망하게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다) 5. 22. 08:30경 효천역 부근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매복 중이던 20사단 61연대 2대대 병력이 그 곳을 빠져나가려던 승용차에 총격을 가하여 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3항 기재와 같이 탑승자 중 왕태경을 사망하게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라) 5. 22. 16:00경 20사단 62연대 2대대는 같은 날 17:00까지 광주 서구 화정동 소재 국군광주통합병원을 확보하라는 지시에 따라 장갑차 3대를 선두로 하여 통합병원 쪽으로 이동하던 중 부근 민가 지역에서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여 그 과정에서 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4항 기재와 같이 김영선 등을 각 사망하게 하였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마) 해남에 주둔하고 있던 31사단 93연대 2대대는 부근 우슬재와 복평리에 매복 중 5. 23. 05:30경과 같은 날 10:00경 두 차례에 걸쳐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여 그 과정에서 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5항 기재와 같이 박영철 등을 각 사망하게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바) 5. 23. 09:00경 11공수여단 62대대가 매복하고 있는 광주 동구 주남마을 부근 광주-화순간 국도를 광주방면에서 화순방향으로 진행하던 미니버스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자, 위 부대원들이 집중 사격하여 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6항 기재와 같이 버스에 타고 있던 박현숙 등을 각 사망하게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사) 5. 24. 01:30 11공수여단에 현 주둔지인 주남마을에서 광주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하라는 전교사의 지시가 하달되자, 11공수여단이 같은 날 13:30경 주남마을을 출발하여 육로로 이동 중, 그 선두가 광주-목포간 도로에 접한 광주 서구 진월동 소재 효덕초등학교 삼거리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트럭을 타고 그 곳에 와 있던 무장시위대 수명을 발견하고 총격을 가하고, 뒤따르던 병력들도 주변을 향해 일제히 총격을 가하여 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7항 기재와 같이 효덕초등학교 뒤 놀이터에서 놀던 전재수, 부근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놀던 방광범을 각 사망하게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아) 5. 24. 13:55경 11공수여단의 선두 63대대가 효천역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같은 날 오전에 20사단 61연대와 임무를 교대하여 부근에 매복하고 있던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이 위 63대대 병력을 무장시위대로 오인하여 선두 장갑차와 후속 트럭에 90mm 무반동총 4발을 명중시키는 등 집중 사격을 가하여 공수부대원 9명이 사망하자, 63대대 병력은 부근 일대를 수색하여 무장시위대를 체포하면서 시위대로 오인받고 체포된 마을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8항 기재와 같이 권근립 등을 각 사망하게 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자) 피고인 전두환, 황영시, 이희성, 주영복, 정호용은, 전남도청을 근거지로 저항하고 있는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를 조속히 제압하지 아니하면 내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있었으므로 이를 조속히 진압하여 시위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하에, 피고인 이희성은 5. 23. 09:00부터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진종채 2군사령관으로부터 외곽으로 물러나 있던 병력의 광주 재진입작전 계획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피고인 황영시, 계엄사 참모장 나동원 및 계엄사 참모들과 광주재진입작전을 논의하였고, 곧이어 피고인 정호용 등이 합석하여 광주재진입작전의 구체적 실행방법을 의논하고 현지 지휘관의 가용시간 등을 고려하여 같은 달 25. 02:00 이후에 의명 개시하도록 결정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같은 달 23. 오후 피고인 정호용을 통하여 소준열 전교사령관에게 친필 메모를 보내 공수부대의 사기를 고려해 주고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해 줄 것을 당부하고, 그 무렵 피고인 황영시도 소준열에게 전화를 하여 희생이 따르더라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해 줄 것을 요구하고, 이에 소준열이 김순현 전교사 전투발전부장에게 광주 재진입작전 계획인 '상무충정계획'을 마련하도록 지시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한편, 피고인 이희성은 5. 25. 04:00경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에게 광주 재진입작전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여 육본 작전지침인 '상무충정작전'을 만들어 같은 날 12:15 국방부 내 육군회관에서 피고인 전두환, 주영복, 이희성, 황영시, 노태우(이 부분은 피고인 노태우에 대하여는 기소되지 아니함) 및 공소외 류병현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위 상무충정작전을 5. 27. 00:01 이후 실시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피고인 전두환, 황영시, 이희성, 주영복, 정호용은 상무충정작전은 시위대의 무장상태와 작전의 목표에 비추어 시위대에 대한 사격을 전제하지 않고는 수행할 수 없는 것이고 이를 실시하여 전남도청을 다시 장악하려면 무장을 하고 있는 시위대를 제압하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시위대와의 교전이 불가피하여 필연적으로 사상자가 생긴다는 사정을 잘 알면서 그 작전의 범위 내에서는 발포와 살상을 용인하는 의사로 재진입작전의 실시를 강행하기로 하고 이를 지시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피고인 황영시는 5. 25. 오후 김재명 작전참모부장과 함께 광주에 내려 가 소준열 전교사령관에게 이를 직접 전달하였다.&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공소외 소준열은 피고인 정호용에게 각 공수여단의 훈련상황에 대하여 질문을 하여 3공수여단이 가장 훈련이 잘 되어 있다는 대답을 듣고 도청진입임무를 3공수여단의 특공조에게 부여하는 등 광주재진입작전의 공수여단별 임무를 결정한 다음 5. 26. 10:30 전교사령관실에서 20,31사단장, 3, 7, 11공수여단장, 전교사 예하 보병학교 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압작전 지휘관회의를 개최하여, 각 공수여단별로 특공조를 편성하여 전남도청 등 목표지점을 점령하여 20사단에 인계하기로 결정하면서 작전시각은 보안상 추후 통보하기로 한 후, 같은 날 16:00경 광주비행장을 방문하여 3, 7, 11공수여단장에게 5. 27. 00:01부로 작전을 개시할 것을 지시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피고인 정호용은 5. 26. 오전 피고인 전두환을 방문하여 재진입작전에 필요한 가발을 지원받고, 같은 날 14:00경 피고인 이희성을 방문하여 충격용 수류탄과 항공사진을 지원받고 같은 날 21:00경 이들 장비를 가지고 광주비행장에 도착, 예하 부대원을 격려함으로써 재진입작전 준비를 마쳤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5. 26. 23:00경부터 공수여단 특공조에 의한 침투작전이 실시되어 3공수여단 특공조인 11대대 1지역대 장교 13명, 사병 66명은 5. 27. 04:00경 전남도청에 도착, 후문을 넘어 최후 항쟁을 결의하고 남아 있는 무장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면서 진입하여 같은 날 05:21 도청을 점령하고, 7공수여단 특공조인 33대대 8, 9지역대 6개 중대 장교 20명, 사병 181명은 5. 27. 05:06 광주공원을 점령하고, 11공수여단 특공조인 61대대 4중대 장교 4명, 사병 33명은 같은 날 04:46 제1목표인 전일빌딩과 관광호텔을 저항 없이 점령하고, 이어 같은 날 06:20 여자기독교청년회(YWCA) 건물을 총격전 끝에 점령하여 모두 295명의 시위대를 체포하면서 이날 광주 재진입작전 과정에서 특공조 부대원들로 하여금 시위대에 대하여 총격 등을 가하게 하여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9항 기재와 같이 이정연 등을 각 살해하게 하고,&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전국적인 비상계엄하에서 군이 발휘할 수 있는 무력을, 피고인들의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피고인들의 국정 장악에 반대하여 저항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직접 행사하여 헌법제정권력으로서의 국민들의 결집을 강압, 외포케하고 나아가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가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을 강압, 외포케하여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0) (공직자숙정) 피고인 전두환, 허삼수는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를 통해 '공직자 숙정계획'을 입안하고 1980. 6. 15.경부터 1차로 2급 이상 고위공직자에 대한 숙정에 착수하여 각 부처의 자료를 취합, 숙정대상자를 선정하고 이를 4등급으로 분류한 후 사회정화분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그 등급을 최종 확정하여 가장 중한 에이(A)급 15명은 합수부 조사 후 처리하기로 하고, 비(B)급 164명은 의원면직 형식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하여 1980. 7. 2.경 그 명단을 각 부처에 통보하면서 해당자를 전원 의원사직하도록 하고 불응자나 조사 희망자는 7. 14.부터 7. 20.까지 사회정화분과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도록 지시하여 이를 해당자에게 통보, 사직하게 하고,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해서는 각 11명의 숙정대상자 명단을 통보하고, 1980. 7. 초순경 하위직 공무원 숙정을 위해 각 부처에 각 기관장 책임하에 공무원 부적격자를 선정하여 같은 달 말까지 숙정하되 고위 공직자 조치결과에 준하여 처리하라고 지시하고, 같은 방법으로 7. 7.부터 정부산하단체 및 국영기업체 임직원에 대한 숙정도 진행하여 7. 31.까지 장관 1명, 차관 6명, 도지사 3명을 포함한 2급 이상 공무원 243명을 비롯하여 입법부 11명, 사법부 61명, 행정부 5,418명 등 공직자 5,490명과 국영기업체, 금융기관 및 정부산하단체 등 127개 기관 임직원 3,111명 등 총 8,601명으로 하여금 일부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공직 또는 관련직을 사임하도록 강요하고, 이들 중 일부가 이에 불복하여 소청을 제기하자, 1980. 9. 중순에는 각 부처에 공문을 보내 1980. 9. 16. 국무회의에서 정화대상자로 사퇴한 자 중 소청제기자에 대하여는 9. 25.까지 전원 고발, 구속하기로 결정하였으니 소청 취하를 강력히 추진하고 취하 실적이 부진한 기관장은 문책할 것임을 통보하여 협박하는 방법으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가관인 대통령, 국회의원, 국무위원 등을 강압, 외포케하고 직업선택의 자유와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는 헌법 및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의 관계규정의 기능을 사실상 소멸시켜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1) (언론인 해직) 피고인 전두환은 1980. 6.경 허문도 국보위 문교공보분과위원 등이 언론사 통·폐합방안, 언론인 정화계획, 언론관계법 제정 등을 내용으로 작성한 '언론계의 정화, 정비계획'을 보고받고 그 전면 시행을 보류한 상태에서 문교공보분과위원회를 통하여 '언론계 자체정화 계획'을 수립하게 하여 1980. 7. 24.경 이를 이광표 문화공보부장관에게 전달되도록 하고, 7. 30. 신문협회와 방송협회가 '언론자율정화 및 언론인 자질향상에 관한 결의문'을 발표하게 하여 자율정화 형식을 취한 후, 1980. 7.말 경 이상재 언론대책반장이 작성한 보도검열 비협조자 등 언론계 해직대상자의 명단을 이광표 장관을 통해 해당 언론사에 통보, 각 언론사에서 대상자들의 사직을 종용하여 933명이 1980. 10.말까지 소속 언론사로부터 해직되게 하는 등 계엄군의 무력을 배경으로 언론인 등을 협박하는 방법으로 언론의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규정의 기능을 사실상 소멸시켜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2) (정계요인에 대한 기소ㆍ재산몰수·공직사퇴강요)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가) 피고인 이학봉은 피고인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1980. 5. 17.부터 김대중 국민연합 공동의장 등 37명을 소요배후조종 혐의로 체포한 후 사법경찰관리의 구속기간인 10일을 초과하여 53일동안 구속하고, 같은 해 7. 9.에야 계엄사령관인 피고인 이희성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다음, 5. 12. 그 중 김대중 등 24명은 내란음모사건 관련자로 육본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나머지 계엄법위반사범 13명은 수경사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각 송치하여, 군검찰부가 1980. 8. 14. 이들 전원을 구속 기소하고,&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나) 1980. 7. 2. 계엄 확대와 동시에 권력형부정축재자로 체포한 김종필 공화당총재 등 연행자 9명을 연행 46일만에 석방하면서 모두 853억 원의 부정축재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게 하고,&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다) 1980. 7. 17.경 김용태 등 공화당 간부 6명, 정해영 등 신민당 간부 8명, 구자춘 전 내무부장관 등 고위 관료 출신 3명 등 17명을 정치적 비리와 부패행위로 국가기강을 문란케 하였다는 불명확한 범죄혐의로 구속영장 없이 체포하고, 8. 19. 김용태 등으로부터 총 288억 원의 부정축재 재산을 헌납받는 동시에 공직에서 사퇴하게 하고,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라) 1980. 8. 13. 김영삼 신민당총재로 하여금 총재직을 사퇴함과 아울러 정계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하게 함으로써 계엄군의 무력을 배경으로 하여 집권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정치인과 재야 세력 등을 협박하는 방법으로 신체의 자유, 재산권의 보호,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규정의 기능을 사실상 소멸시켜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3) (최규하 대통령 사임과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 피고인들은 전국적인 비상계엄하에서 군이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을 직접 행사 또는 과시하고, 국보위 상임위원회를 통하여 국정을 장악하여 대통령과 행정각부를 강압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의 권한행사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 대통령으로 하여금 1980. 8. 16. 끝내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하고,&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피고인 전두환은 8. 22. 전역하고, 8. 27. 제7차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후보로 단독 출마하여 재적 대의원 2,540명 중 2,525명이 투표한 결과 2,524표를 얻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 같은 해 9. 1.에 대통령에 취임하여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4) (언론통·폐합) 1980. 10. 초순경 보안사의 이상재 언론대책반장이 허문도 정무제1비서관의 검토자료를 토대로 자율결의 형식에 의한 언론통·폐합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 건전육성 종합방안 보고서'를 작성하자, 피고인 전두환, 노태우, 허화평, 허삼수는 10. 중순경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경원 비서실장, 이광표 문화공보부장관, 우병규 정무제1수석비서관, 이웅희 공보수석비서관, 허문도 정무제1비서관이 참석한 가운데 권정달로부터 이를 보고받았으나 김경원 비서실장, 이웅희 공보수석비서관 등의 반대로 그 추진을 보류하였다가, 그 무렵 피고인 허화평, 허삼수는 다시 허문도로부터 언론통·폐합의 필요성에 대해 수차 설명을 듣고 이에 동조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그 실행을 결심하여 허문도로 하여금 '언론창달계획'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게 한 다음 1980. 11. 12. 이광표 장관이 문화공보부의 결재안으로 가져오자, 이를 결재하여 피고인 노태우에게 전달하게 하고, 그 집행을 의뢰받은 피고인 노태우는 11. 12. 16:00경 한용원 정보처장과 김충우 대공처장에게 언론사 사주들을 불러 신속히 처리하되 그 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여, 같은 날 18:00경 중앙 언론사의 사주들은 보안사 대공처가, 지방 언론사의 사주들은 정보처 주관하에 지방의 각 지역보안부대가 소환하여 통·폐합조치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고, 이에 따라 지방지를 1도 1사 원칙에 따라 10개로 통합하고, 공·민영 방송구조를 공영방송 체제로 개편하는 등 신문 28개, 방송 29개, 통신 7개 등 64개 매체를 신문 14개, 방송 3개, 통신 1개 등 18개 매체로 통·폐합하는 등 일방적으로 언론기관 통·폐합방안을 마련한 후 군정보수사기관을 동원하여 협박함으로써 이를 실행하고, 이로써 영업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규정의 기능을 사실상 소멸시켜 폭동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15) (정치활동규제와 대법원판사 사직강요)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가) 피고인 전두환은 현홍주 중앙정보부 정책정보국장, 박배근 치안본부 정보제2과장, 한용원 보안사 정보처장으로 하여금 정치인별 신상카드를 가지고 정치활동규제 대상을 선정하게 한 다음 이를 결재하여 사회정화위원회에 그 명단을 전달, 1980. 11. 12. 정치활동에 대한 규제조치를 발표하게 하고,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이를 실행함으로써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규정의 기능을 사실상 소멸시켜 폭동하고,&nbsp;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나) 피고인 이학봉은 1980. 8. 14.로 예정된 김대중 등에 대한 내란음모사건의 재판을 앞두고, 1980. 5. 20.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확정된 박정희 대통령 피살사건의 피고인 김재규 등에 대한 판결에서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소수의견을 낸 양병호 대법원판사를 1980. 8. 3.경 그의 집에서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소재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하여 3일 동안 소수의견을 내게 된 경위 등을 조사하면서 사표를 강요하여 그로 하여금 사표를 제출하게 하여, 8. 9. 위 판결에서 함께 소수의견을 낸 민문기, 임항준, 김윤행, 서윤홍 대법원판사와 함께 일괄 사직하게 하고, 이로써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가관인 대법원판사를 강압, 외포케하여 폭동하고, </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다) 계엄하에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등에 대한 재판이 1981. 1. 23.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사형이 확정된 다음날인 1. 24. 24:00를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였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p>&nbsp; <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p style="FONT-SIZE: 17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7px; COLOR: #000000; LINE-HEIGHT: 28px; FONT-FAMILY: '새굴림'; TEXT-ALIGN: justify"></span></p><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div class="titlegrp"><div class="title">(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 일람표</div></div><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p><div class="para"><div align="left"><table style="FONT-SIZE: 11pt; MARGIN: 0px 10px; COLOR: #000000; FONT-FAMILY: Courier" border="1"><caption></caption><thead><tbody><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순번</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일시·장소</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피 해 자</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사 인</p></td></tr><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1</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1. 22:00경 및 5. 22. 01:00경 효천역 부근</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강복원 (남, 20세)</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견동맥관통총상</p></td></tr><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2</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2. 00:40경 및 09:00경 광주교도소 부근</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서종덕 (남 17세)<br>이명진 (남, 36세)<br>이용충 (남, 26세)</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좌흉상부맹관총창상<br>좌후두부맹관총창상<br>우안부맹관총창상</p></td></tr><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3</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2. 08:30경 효천역 부근</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왕태경 (남, 26세)</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두부관통총상</p></td></tr><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4</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2. 17:00경 국군광주통합병원 부근</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김영선 (남, 25세)<br>손광식 (남, 20세)조규영 (남, 38세)함광수 (남, 16세)김재평 (남, 29세)이매실 (여, 68세)</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좌흉부관통총창상<br>복부관통총상<br>치골상부맹관총상<br>좌측측두부관통총상<br>하악골맹관총상<br>두부우축다발성맹관총상</p></td></tr><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5</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3. 05:30경 및 10:00경 해남 우슬재, 복평리 부근</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박영철 (남, 27세)김귀환 (남, 19세)</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흉부관통총상<br>흉부관통총상</p></td></tr><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6</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3. 09:00경 주남마을 부근</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박현숙 (여, 16세)고영자 (여, 22세)김춘례 (여, 18세)백대환 (남, 18세)황호걸 (남, 19세)김윤수 (남, 27세)성명불상(남, 20-25세 가량：군복바지, 곤색쉐타,얼룩무늬 내의 착용)</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하복부총상<br>전흉부다발성총상<br>흉복부다발성관통총상<br>경부 및 흉부총상<br>복부 및 하지총상<br>좌흉부총상<br>흉복부총상</p></td></tr><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7</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4. 13:30경 효덕국민학교 부근</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전재수 (남, 11세)방광범 (남, 12세)</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흉부관통총상<br>두부관통총상</p></td></tr><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8</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4. 13:55경 효천역 부근</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권근립 (남 24세)<br>김승후 (남, 18세)<br>임병철 (남, 23세)<br>박연옥 (여, 49세)<br></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흉부관통총상<br>흉부관통총상<br>흉부관통총상<br>복부 및 회음부관통총상</p></td></tr></tbody><tfoot></tfoot></table></div><div align="left"><table style="FONT-SIZE: 11pt; MARGIN: 0px 10px; COLOR: #000000; FONT-FAMILY: Courier" border="1"><caption></caption><thead><tbody><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순번</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일시·장소</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피 해 자</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사 인</p></td></tr><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9</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7. 새벽 전남도청 부근(광주 재진입작전 수행과정)</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이정연 (남, 20세)홍순권 (남, 19세)<br>박진홍 (남, 21세)<br>문용동 (남, 26세)서호빈 (남, 19세)박병규 (남, 19세)김동수 (남, 21세)김종연 (남, 18세) 이강수 (남, 19세)박성용 (남, 17세)유동운 (남, 19세)안종필 (남, 15세)문재학 (남, 15세)윤개원 (일명：윤상원, 남, 28세)<br>민병대 (남, 28세)양동선 (남, 44세)박용준 (남, 23세)오세현 (남, 24세)</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우두전골맹관총창상<br>우측전흉부맹관총창상<br>좌측두정골관통총창상<br>흉부맹관총창상<br>후흉부관통총창상<br>좌흉부맹관총창상<br>좌경부맹관총상<br>우흉부맹관총상<br>전흉부관통총상<br>배흉부맹관총상<br>좌상골반부맹관총상<br>흉부관통총상<br>좌전경부관통총상<br>우하복부자상 및 우흉복부3도화상<br>경부관통총상<br>좌측복부맹관총상<br>안두부관통총상<br>좌흉부관통총상</p></td></tr></tbody><tfoot></tfoot></table></div></div><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br>[증거의 요지(2심)]<br>&nbsp;</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판시 제2의 각 범죄사실과 관련하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원심 거시 증거에, 증인 양대인, 이제원, 이양현, 김영택, 강길조, 나동원, 박영록, 김리균, 김재명, 권정달, 정도영, 한용원, 이원홍, 윤순희의 이 법정에서의 각 일부 진술, 검사 작성의 이제원, 김일옥, 정도영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진술기재, 검사 작성의 양대인, 이양현, 강길조, 나동원, 김리균, 한용원, 이원홍, 정도영, 허문도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진술기재, 수사기록에 각 첨부된 육군본부 발행의 소요진압과 그 교훈(서울지방검찰청 95형제144116호 수사기록 제30권 제37164면－제37242면 및 제43권 제51127면－제51308면),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작성의 북괴남침설분석(같은 수사기록 제19권 제27781면－제27793면), 육군본부에서 작성한 소요진압준비태세점검결과(같은 수사기록 제19권 제27514면－제27532면), 육군본부 작전교육참모부에서 작성한 작전조치사항(같은 수사기록 제27533면－제27543면), 광주사태사망자 165명에 대한 변사체검시보고서 및 사체검안서(같은 수사기록 제84권 제95511면－제96356면과 제85권 제96357면－제97109면), 육군참모총장 작성의 '80년도 북괴의 군사동향'에 대한 사실조회회신서(당심 공판기록), 공판기록에 편철된 동아연감(1984년－1988년), 연합연감(1983년－1988년), 검찰연감(1986년－1988년)의 각 기재를 추가..[이하는 판시 제3(비자금 사건)으로 넘어가므로 중략. -발췌자-]..한다.</span><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br>[증거의 요지(1심)(즉, 위에서 말한 '원심 거시 증거')]<br><br><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판시 제2 각 사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피고인 전두환, 같은 노태우, 같은 유학성, 같은 황영시, 갈은 차규헌, 같은 허화평, 같은 허삼수, 같은 이학봉, 같은 이희성, 같은 주영복, 같은 정호용의 이 법정에서의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증인 신현확, 최광수, 양병호, 소준열, 윤흥정, 진종채, 임헌표, 김기석, 이구호, 백남이, 김준봉, 류병현, 권정달, 최웅, 최화균, 최세창, 장세동, 박준병, 박종규, 김광택, 이상균, 최규진의 이 법정에서의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증인 박동원, 성환옥, 김종환, 김만기의 이 법정에서의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피고인 전두환, 같은 노태우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하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증인 정웅, 김재명의 이 법정에서의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피고인 유학성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하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제20회 공판조서 중 증인 박동원, 성환옥, 김종환, 김만기의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피고인 전두환, 같은 노태우에 대하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제24회 공판조서 중 증인 정웅, 김재명의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피고인 유학성에 대하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검사 작성의 피고인 전두환, 같은 노태우, 같은 유학성, 같은 황영시, 같은 차규헌, 같은 허화평, 같은 허삼수, 같은 이학봉, 같은 이희성, 같은 주영복, 같은 정호용, 같은 박준병, 같은 최세창, 같은 박종규, 소준열, 최웅, 신우식, 류병현, 진종채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중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검사 작성의 피고인 유학성, 같은 황영시, 같은 이학봉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등본 중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검사 작성의 정웅, 윤흥정, 신현확, 김종환, 권정달, 김재명, 박동원, 성환옥, 최규진, 김준봉, 유양수, 이구호, 백남이, 김기석, 최화균, 임헌표, 김만기, 양병호, 김영택, 홍금숙, 최영철, 구길성, 김순희, 김종화, 임석기, 고재련, 방두형, 김금순, 윤영화, 김화남, 노득기, 최철진, 엄금지, 김행남, 서호열, 김현녀, 손성례, 왕금석, 장재춘, 김복동, 임동재, 이순노, 채종일, 김태헌, 최복순, 이성순, 이추자, 정재희, 이양현, 안평순, 박봉구, 박시형, 김주명, 오만호, 김병용, 이충영, 김태찬,유춘학, 피고인 최세창, 같은 주영복, 같은 허화평에 대한 각 진술조서 중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검사 작성의 신현확, 최광수, 피고인 허삼수, 같은 최세창, 같은 주영복, 같은 박준병, 같은 이희성, 같은 이학봉, 같은 노태우에 대한 각 진술조서 등본 중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군검찰관 작성의 김광택, 이상균에 대한 각 진술조서 등본 중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1. 수사기록에 편철된 육본 상황일지(1980. 5. 14.부터 같은 해 6. 2.까지)(서울지방검찰청 95형제144116호 사건 수사기록 제27851정부터 제28140정까지), 제42회 임시국무회의록(위 같은 수사기록 제35499정부터 제35504정까지), 제46회 정례국무회의록(위 같은 수사기록 제35505정부터 제35513정까지), 2군 계엄상황일지(위 같은 수사기록 제36426정부터 제36433-1정까지), 육본 작전상황일지(위 같은 수사기록 제36434정부터 제36435정까지), 2군지부 계엄사령부 계엄상황일지(위 같은 수사기록 제37394정부터 제37486정까지), 전교사 작전상황일지(1980. 5. 14.부터 같은 달 27.까지) (위 같은 수사기록 제37487정부터 제37519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위 같은 수사기록 제41662정부터 제42068정까지), 육군참모총장동정일지(1980. 4. 1.부터 같은 해 6. 30.까지)(위 같은 수사기록 제42069정부터 제42151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7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2589정부터 제42712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8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2713정부터 제42846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13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2874정부터 제43016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14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3017정부터 제43051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15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3052정부터 제43178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16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3179정부터 제43304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17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3305정부터 제43342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19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3345정부터 제43483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20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3485정부터 제43628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21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3629정부터 제43779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22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3780정부터 제43798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25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3805정부터 제43932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26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3933정부터 제44062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28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4074정부터 제44150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29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4151정부터 제44265정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30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4266정부터 제44371정까지),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원회와의 연석회의 회의록 제1호(위 같은 수사기록 제44390정부터 제44428정까지), 소위원회－제2차(위 같은 수사기록 제44452정부터 제44472정까지), 소위원회－제4차(위 같은 수사기록 제44473정부터 제44489정까지), 소위원회－제5차(위 같은 수사기록 제44490정부터 제44500정까지), 제104, 105회 국회회의록(위 같은 수사기록 제44799정부터 제44843정까지), 제125회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록(위 같은 수사기록 제45576정부터 제45595정까지), 제125회 국회 내무위원회 회의록(위 같은 수사기록 제45596정부터 제45688정까지), 제128회 국회 내무위원회 회의록(위 같은 수사기록 제45689정부터 제45724정까지), 제142회 국회 본회의 회의록(위 같은 수사기록 제45725정부터 제45813정까지), 육본 작전상황실 상황일지(1980. 5. 17.부터 같은 해 6. 18.까지)(위 같은 수사기록 제46257정부터 제46366정까지),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위 같은 수사기록 제108436정부터 제108976정까지) 중 이에 일부 부합하는 각 기재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p></div><div class="postscript"><span>죽은 이들의 나이와 사인을 한번 잘 보셨는지요.<br></span></div></div><div class="readFooter"><div class="readAndVote"><div class="voteButton"><a onclick="doVoteUp();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br><br></a>&nbsp;</div><div class="countInfo"><br>조회 <strong>1706</strong> &nbsp;공감추천 <strong>69</strong> &nbsp;비추천 <strong>2</strong> </div></div><div class="footerBar"><div class="tag"><h5><br>댓글 <span class="num">17개</span></h5></div></div></div></div></div><div id="reply"><ul><li><a name="comment_8152894"></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2894"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2894);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2894);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2894);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14</strong></div><div class="date">2009.08.23 20:25</div><div class="number">1</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팔색조)</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우와... 전두환 이 씨발 개새끼.<br><br>저딴 새끼가 국가원로 대접받으며 골프나 치면서 편안히 여생을 보내는게 말이 되냐? </div><li class="best"><a name="comment_8153233"></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3233"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3233);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3233);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3233);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21</strong></div><div class="date">2009.08.23 21:14</div><div class="number">2</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페가수스)</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table style="FONT-SIZE: 11pt; MARGIN: 0px 10px; COLOR: #000000; FONT-FAMILY: Courier" border="1"><tbody><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p>7</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4. 13:30경 효덕국민학교 부근</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전재수 (남, <span style="COLOR: #ee2222"><strong>11세</strong></span>)방광범 (남, <span style="COLOR: #ee2222"><strong>12세</strong></span>)</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흉부관통총상<br>두부관통총상</p></td></tr></tbody></table><br>와...11살, 12살 짜리 애들이&nbsp;뭘 했다고 총질을 해서 죽였냐....<br>한창 꿈많을 나이에 지금 초딩이랑 달라서 순수한 애들이었을텐데..<br><br>지네들 배아지좀 더 오래 채워보겠다고&nbsp;애들까지...<br><br>진짜 이딴 짓거리 저지른 놈들이 지금 배 두드리면서 잘 살고있는것도 ㅆㅂ 스럽고,<br>그런 놈들 두둔하는 자칭 보수 수구 병신들이 득세하는것도 ㅆㅂ스럽다 진짜..<br><br>제일 ㅆㅂ 스러운건 그런데도 행동하지 못하고 투표일에 놀러가는 우리들...<br><br>아오 ㅆㅂ 이제 나부터 투표한다... ㅆㅃ... </div><li><a name="comment_8153711"></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3711"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3711);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3711);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3711);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15</strong></div><div class="date">2009.08.23 21:59</div><div class="number">3</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원앙)</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p>이거 비추한 자식. 필명 까라.. 전두환 친척이냐?&nbsp;&nbsp; 스누라이프엔 별 놈이 다 사는 거 같다</p></div><li><a name="comment_8155672"></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5672"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5672);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5672);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5672);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Down"><strong>-2</strong></div><div class="vote"><strong>+2</strong></div><div class="date">2009.08.24 00:45</div><div class="number">4</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고양이)</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p>엄마가 그러시는데 그거 총 쏜 군인들, 사건 전에 각성제 투여했다고 하는군여 ㄷㄷ 전대갈 정말 ㄱㄸㄹㅇ 인듯.</p></div><li><a name="comment_8155813"></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5813"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5813);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5813);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5813);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13</strong></div><div class="date">2009.08.24 00:56</div><div class="number">5</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전복)</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strong>"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주권자의 입장에 서서 헌법을 제정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소임을 갖는 것이므로 이러한 국민이 개인으로서의 지위를 넘어 집단이나 집단유사의 결집을 이루어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일정한 시점에서 담당할 경우에는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헌법기관에 준하여 보호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강압으로 분쇄한다면 그것은 헌법기관을 강압으로 분쇄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strong><br><br>이런 걸 보면 참 당연한 얘기 같아도 정말 엄청난 수준의 판결이죠.<br><br>법원이 가끔&nbsp;자랑스럽습니다.<br>검찰은 언제나 씹스럽지만.<br><br></div><li><a name="comment_8156086"></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6086"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6086);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6086);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6086);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10</strong></div><div class="date">2009.08.24 01:13</div><div class="number">6</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오징어)</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table style="FONT-SIZE: 11pt; MARGIN: 0px 10px; COLOR: #000000; FONT-FAMILY: Courier" border="1"><tbody><tr><td valign="top" align="left" width="41"></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6"><p>1980. 5. 24. 13:55경 효천역 부근</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47"><p>권근립 (남 24세)<br>김승후 (남, 18세)<br>임병철 (남, 23세)<br>박연옥 (<span style="COLOR: #ee2222"><strong>여</strong></span>, 49세)<br></p></td><td valign="top" align="left" width="161"><p>흉부관통총상<br>흉부관통총상<br>흉부관통총상<br><span style="COLOR: #ee2222"><strong>복부 및 회음부관통총상</strong></span></p></td></tr></tbody></table><br><p><br><br>ㅅㅂ....<br></p></div><li><a name="comment_8156837"></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6837"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683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683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683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7</strong></div><div class="date">2009.08.24 02:26</div><div class="number">7</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고라니)</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여기 비추한 놈은 애비애미가 전두환의 성은을 입었나 보지...<br></div><li><a name="comment_8157370"></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7370"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7370);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7370);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7370);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4</strong></div><div class="date">2009.08.24 05:09</div><div class="number">8</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잉어)</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비추한 놈들 집안에 저주를! </div><li><a name="comment_8158700"></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8700"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8700);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8700);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8700);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a href="http://www.snulife.com/?mid=gongsage&amp;document_srl=8152852&amp;act=dispBoardDeleteComment&amp;comment_srl=8158700"><img alt="삭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DeleteX.gif"></a> </div><div class="vote"><strong>+1</strong></div><div class="date">2009.08.24 12:26</div><div class="number">9</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문어)</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p><strong>비추한 놈들은 법치주의마저 부정하는 민주주의의 적들이라는 거죠</strong><br><br><br></p></div><li><a name="comment_8158897"></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8897"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889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889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889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1</strong></div><div class="date">2009.08.24 12:56</div><div class="number">10</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물방개)</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광주사는 사촌언니가 우리 부모님 또래인데, 아기 업고 가다가 눈 앞에서 총알이 시멘트 바닥에 맞고 튀는 걸 봤대요. 하마터면 맞을 뻔 한거죠. 그냥 길가다가... 슈퍼에 물건사러 가던길...<br><br>정신없이 집으로 들어와서 대문 들어서자 마자 혼절했대요.<br><br>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무슨 전쟁 얘기 듣는 것 같아요. </div><li><a name="comment_8159137"></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9137"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913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913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913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1</strong></div><div class="date">2009.08.24 13:27</div><div class="number">11</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맘모스)</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p>아고 저 애들이 무슨죄가 있다고..</p></div><li><a name="comment_8159254"></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59254"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59254);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59254);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59254);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date">2009.08.24 13:46</div><div class="number">12</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해마)</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p>제 아버지 친구 분은 기자차량 트렁크에 숨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br></p></div><li><a name="comment_8160877"></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60877"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6087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6087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6087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date">2009.08.24 17:59</div><div class="number">13</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생쥐)</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그냥 총 쏴서 죽인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div>칼로 별 무참한 짓을 다 했다는데.. 차마 여기에 적지 못할 수준으로 끔찍함.</div></div><li><a name="comment_8161847"></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61847"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6184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6184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61847);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3</strong></div><div class="date">2009.08.24 20:09</div><div class="number">14</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자라)</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아오 진짜 이딴 새퀴 좋다고 일해공원 조성하는 놈들은 대체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_- </div><li><a name="comment_8165114"></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65114"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65114);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65114);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65114);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1</strong></div><div class="date">2009.08.25 01:06</div><div class="number">15</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새우)</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p><br>무슨 화염방사기를 썼다는 소문도 있던데....ㅠㅠ<br>나는 제일 이해 못하겠는게....<br>DJ가 전두환을 사면시켜준거, 왜 해준거임?&nbsp;<br>정말 518이 빨갱이, 북괴의 선동이었나?<br>합리화될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나?<br>그리고 멀쩡한 일반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학살자가<br>어디 절간이나 옥에 틀어박혀 콩밥이나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도 모자랄판에,<br>연희동 서울한복판의 고대광실같은 저택에 국가원로 대접받아가며 대대손손 호의호식<br>이거 뭔가 잘못된거 아닌가?<br>아님 정말 518이........ 그릇된 사건이 아니라 정당한 진압이었다고 볼수 있는가??<br><br>아니면..........<br>인간이란 것이 본디 이다지도 비겁한것었던가?</p></div><li><a name="comment_8165790"></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65790"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65790);return f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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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member_32463" style="CURSOR: pointer">ptrev&nbsp;<span class="authorInfo">&nbsp;(문어)</span> </div></div></div><div class="replyContent">15 / <br><br>북한의 선동이 아니었다는 것은 <br>바로 위의 법원의 판결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br>법원은 원래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관인데<br>법원에서 저렇게 밝히고 있다면 말 다한 거죠.<br><br>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전두환 사면은<br>고인이 국민 대화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습니다.<br>왜냐하면&nbsp;고인이 대통령이 된 뒤에도<br>전두환ㆍ노태우는 국민의 50%가 여전히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는<br>영남 패권주의 세력의 수장이었거든요.<br><br>그들은 살려준 것은 바로 그 영남 패권주의 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던 영남의 국민들입니다.<br>김대중 대통령은 그들까지도 우리가 받아들이고 <br>끌어안고 가야할 국민으로 간주한 것입니다.<br><br>님께서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br>그것이 바로 고인이 몇 번이나 목숨을 버려가며 지키려했던&nbsp;민주주의의 원칙입니다.<br>그리고 그 원칙을 고인은 어떤 경우에라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구요.<br>이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br>그리고 그럼 우리가 이제 과연 어떻게 해야할지도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네요.<br><br><br></div><li><a name="comment_8166746"></a><div class="replyInfo"><div class="replyOption"><input type="hidden" value="gongsage" name="mid"> <input type="hidden" value="8166746" name="comment_srl"> <a onclick="doVoteUpComment(8166746);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공감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UpSmall.gif"></a> <a onclick="doVoteDownComment(8166746);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비추천"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VoteDownSmall.gif"></a> <a onclick="doReportComment(8166746);return false;" href="http://www.snulife.com/gongsage/8152852#"><img alt="신고" src="http://www.snulife.com/modules/board/skins/apollo_v2_test/images/common/buttonReport.gif"></a> </div><div class="vote"><strong>+3</strong></div><div class="date">2009.08.25 08:42</div><div class="number">17</div><div class="author"><span class="authorHide">필명숨김</span> <span class="authorInfo">&nbsp;(당나귀)</span> </div></div><div class="replyContent">두환이랑 태우같은 애들이 진짜 간첩인 거죠.<br><br>전방지키는 녀석들이 탱크끌고 내려와서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한 것이니까.<br><br><br></div></li></ul></div><!-- 댓글 입력 폼 --><!-- 만약 댓글의 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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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ategory>김대중</category>

		<comments>http://imjohnny.egloos.com/2409037#comments</comments>
		<pubDate>Wed, 26 Aug 2009 02:45:49 GMT</pubDate>
		<dc:creator>imjohnny</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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