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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耿君春秋</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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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역사, 그리고 여행.</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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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Nov 2009 12:25:3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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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耿君春秋</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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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역사, 그리고 여행.</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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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대고려국의 건설 (7) 유림의 대동단결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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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hyunk02.egloos.com/3441511">지난 편에 이어서<br><br></a>*&nbsp;본 포스팅은 『다이쇼 일일 신문[大正日日新聞]』 1921년 4월 2일 석간 제1면에 실린 기사인&nbsp;'대고려국의 건설[大高麗國の建設]' 7편을 번역한 것입니다. <br>*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래어 표기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최대한 준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br>* 글자의 크고 작음은 원문에 의거하여 조절했습니다.<br>* 글 속에서 '우리' 또는 '우리나라'로 지칭되는 것은 '일본'을 말합니다.<br /><br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22/76/d0050576_4b09211c515f9.jpg" width="500" height="714.41947565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22/76/d0050576_4b09211c515f9.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기사 원문 (『다이쇼 일일 신문』 1921년 4월 2일 석간 제1면)</div><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 FONT-SIZE: 130%">대고려국의 건설</span> (7)<br><br><span style="FONT-SIZE: 130%">조선통치의 요결(要訣)은<br></span><span style="FONT-SIZE: 170%">유림의 대동단결을</span> <br>시키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다<br><br>耿君이 삼가 옮김<br><br><br>유림이 조선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미 서술한 대로이다. 그러므로 유림을 이해시키고, 이들을 대동단결시켜 우리의 통치를 구가하게 하는 것은 최대 급무이다. 원래 조선에는 언문(諺文)이라고 하는 우리<br><span style="FONT-SIZE: 130%">신대문자</span> 같은 문자가 있어, 우리 가나[假名] 문자와 같이 한자(漢字)와 섞어서 일반에서 사용하고 있다. 옛날부터 조정의 법령 등도 모두 언문과 한자를 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반 민중은 언문은 알아도 한자는 모른다. 한자를 알고 있는 것은 유림인 사람들뿐이다. 그러므로 시, 부, 군, 촌에는 유생이 필요하다. 위의 뜻을 하달하고, 아래의 뜻을 상소하는 것은 전술한 대로 유생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유생의 직무는 독서, 산술(算術), 습자(習字), 예의, 대서(代書), 병 진단, 투약, 길흉 점치기, 제사, 대변(代辨), 사건의 중재 등으로,&nbsp;딱 우리나라의 옛날의<br><span style="FONT-SIZE: 130%">수습사장(手習師匠)</span> 같은 자였다. 지방관의 포폄출척(褒貶黜陟)을 아뢰거나, 인민의 죄과를 짐작하는 청원을 하거나 한다. 그러므로 인민은 유생을 중시하고 이를 신뢰하는 일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조정에서도 이를 우대하여 바로 천궐(天闕)에 엎드려 아뢰는 특권을 부여했다. 그러므로 유생은 자중하여 그 체면을 유지하고 위의를 바르게 하였다. 그리고 유생은 거의 모든 지방 각 촌락에 분포하여 그 수가 약 6백만이라고 한다. 양반은<br><span style="FONT-SIZE: 130%">조정이 발탁</span>한 자들로 반드시 유림 출신이 아니라도 좋다. 그러나 유림은 양반이 되는 자격을 갖고 있다. 유림은 십수 개 파로 나뉘어 당쟁을 일삼았으나, 인의충효의 큰 근본에 의해 기절(氣節)을 쉬려(淬勵)하고, 동양 윤리 도덕의 교화를 장려하는 바는 똑같았다. 그러므로 우리 통치의 요결(要訣)은 이 유림을 통합하여 대동단결을 하고, 그리고 우리 통치에 기꺼이 승복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우리 관헌은 이들 양반, 유림의 직책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용하는 길을 강구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 실직한 양반과 실업한 유생을 보고 일정한 직업이 없는 <br><span style="FONT-SIZE: 130%">부랑자로</span>서 취급하여, 오히려 그들의 반감을 부추겼다. 소위 부랑하는 실업 양반 및 유림은 다수가 30세 이상의 자들로, 조선에 있어서 활동의 중심 세력으로, 구학(舊學)의 수습(修習)으로 양성되었고, 신학(新學) 지식이 있는 자는 열에 두어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관헌이 발포하는 신법령과 신규칙을 이해하는 일이 어렵다. 이런 것들이 일반 민중에게는 가혹폭려(苛酷暴戾)한 정치라고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말았다. 게다가 조선에 있는 일인(日人)은 자국의 문자를 독해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선인과의 교섭에 있어서<br><span style="FONT-SIZE: 130%">법률규칙을</span> 남용하여 가차없이 선인을 대하고, 또한 선민(鮮民) 중에 일본어에 능통한 자와 선인 관리는 법률을 알고 있다는 것을 기화(奇貨)로 하여 일반민중을 괴롭히고 조세를 강제로 거두며, 뇌물을 탐내 그칠 줄을 모른다. 이런 것들이 모두 양반과 유생을 분노하게 하는 원인으로, 일반 민중은 더더욱 정밀하고 세세한 신법을 싫어하게 되어, 원한이 겹치고 분노가 쌓여 반일의 기세를 높이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그 특권을 빼앗기고<br><span style="FONT-SIZE: 130%">생계의 길을</span> 잃은 유림은 그 위신과 체면을 유지할 수가 없다. 관혼상제의 의식에 참가하여 위의를 갖추고 옛날의 위엄을 지킬 수가 없다. 독서, 산술, 습자도 우리 총독부의 신제도에 대해서는&nbsp;아무 쓸모도 없다. 문장의 힘은 관리와 정청(政廳)에 대해서는 아무 효력이 없다. 의료 투약은 신법률의 규정으로 의사 이외의 사람이 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의사와 약장사에도 규칙 수속이 있어, 이를 어기면 처벌받는다. 대변을 하는 자는 부랑인 취급을 받아 당국의 주의 인물로 간주되고 <br><span style="FONT-SIZE: 130%">정치를 논하</span>면 불령한 무리로 지목된다. 병합 이후 20인 이상의 집회는 신고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언론, 출판, 집회도 금지되어 있다. 이와 같이 신제도는 조선의 옛 습속을 파괴해 가는 것으로 일반민중의 반감을 격하게 하였다. 유림 선비는 먼저 자신의 생계와 체면을 돌아보고, 그 특권이 박탈된 것을 원망하여, 일찍이 갖고 있던 세력의 추세로 민중을 선동하니까 일반 민중은&nbsp;기꺼이 불평에 공명하였다. 이러한 사정이므로 조선통치의 실적을 올려 우리 영토를 확보하고<br><span style="FONT-SIZE: 130%">국경의 안녕</span>을 지키는 데에는 아무래도 이 양반과 유림의 자존심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학문과 전설의 지식에 의해 기자(箕子)의 고조선(古朝鮮)과, 고구려의 고토를 광복하여 대고려국을 건설하고 그들의 지력, 능력을 여기에 집중시키는 것이 최고이다. 다행히 만몽 및 동방 시베리아의 현황이 이 건설에 가장 알맞은 상황이었다.<br><br><div style="TEXT-ALIGN: right">耿君 譯</div><br>다음 편에 계속<br/><br/>tag : <a href="/tag/대고려국" rel="tag">대고려국</a>,&nbsp;<a href="/tag/유림" rel="tag">유림</a>,&nbsp;<a href="/tag/신대문자" rel="tag">신대문자</a>,&nbsp;<a href="/tag/고조선" rel="tag">고조선</a>,&nbsp;<a href="/tag/고구려" rel="tag">고구려</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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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반추, 번역의 미</category>
		<category>대고려국</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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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Nov 2009 12:09:28 GMT</pubDate>
		<dc:creator>耿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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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떡밥춘추』 판매 마감 및 독후감 공모 공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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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떡밥춘추』 2호의 2차 판매 및 1호 3쇄 판매가 마감되었습니다. <br>구매해주신 여러분들께&nbsp;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복받으실 거예요 ㅋㅋ&nbsp;<br>『떡밥춘추』 1호와 2호의 판매 수익은 3호 제작에 투입될 예정입니다.&nbsp;<br><br>아 그리고 떡춘을 구매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안내 드립니다.<br /><br />1, 2호를 매우 재미있게 보아서 3호를&nbsp;냉큼 받아보고 싶다 하시는 독자분들.<br>나도 떡춘에다가 내 이름(또는 아이디) 달고 글 한 번 올려보고 싶다 하시는&nbsp;분들.<br>&nbsp;<br>어서어서 『떡밥춘추』 독후감(내지는 리뷰, 사용후기 등등)&nbsp;포스팅을 올려주세요.<br>1, 2호 어느 쪽이든&nbsp;괜찮습니다.&nbsp;둘다 써주시면 더욱 좋고요 ^^<br>이런 점이 좋았다, 이런 점이 별로였다,&nbsp;어떤 글이&nbsp;괜찮더라, 이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nbsp;<br>등등&nbsp;떡춘을 보면서 느낀 여러가지 감상을 자유롭고도 풍성하게&nbsp;남겨주세요.&nbsp;<br>블로그가 없으신 분은 메일로 보내주셔도 환영입니다. (메일은 <a href="mailto:hyunk02@naver.com">hyunk02@naver.com</a>) <br><br>좋은 글 보내주신 분들은 선정해서 떡밥춘추 3호에 독후감을 게재해드리고, 더불어 3호도 한 부 무료 증정하도록 하겠사오니,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글을 올리실 때는 되도록 떡밥춘추를 태그로 달아주시거나 이 글에 링크를 걸어주세요 ㅎㅎ<br><br>- 떡밥춘추 회지 제작 위원회 드림.<br><br>* 떡밥춘추가 무엇인지 궁금하신가요? <br><a href="http://hyunk02.egloos.com/2204698" target="_blank">떡밥춘추 제1호 발간 안내 글</a><br><a href="http://bulbbang.egloos.com/1709153" target="_blank">떡밥춘추 제2호 발간 안내 글</a><br/><br/>tag : <a href="/tag/떡밥춘추" rel="tag">떡밥춘추</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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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글 모음</category>
		<category>떡밥춘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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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Nov 2009 14:40:14 GMT</pubDate>
		<dc:creator>耿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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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대고려국의 건설 (6) 동화정책의 의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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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hyunk02.egloos.com/3440066">지난 편에 이어서<br><br></a>*&nbsp;본 포스팅은 『다이쇼 일일 신문[大正日日新聞]』 1921년 4월 1일 석간 제1면에 실린 기사로서, 스에나가 세쓰[末永節]에&nbsp;의해 게재된&nbsp;'대고려국의 건설[大高麗國の建設]' 6편을 번역한 것입니다. <br>*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래어 표기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최대한 준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br>* 글자의 크고 작음은 원문에 의거하여 조절했습니다.<br /><br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19/76/d0050576_4b054a4b07e28.jpg" width="500" height="823.30097087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19/76/d0050576_4b054a4b07e28.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기사 원문 (『다이쇼 일일 신문』 1921년 4월 1일 석간 제1면)</div><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 FONT-SIZE: 130%">대고려국의 건설</span> (6)<br><br><span style="FONT-SIZE: 130%">오랜 역사를 가진 조선<br></span><span style="FONT-SIZE: 170%">동화정책의 의문<br></span>스에나가 씨 일류(一流)의 건백(建白)<br><br>耿君이 삼가 옮김<br><br><br>이밖에 안둥 현[安東縣]에는 전 검사(檢事) 김탁(金鐸)과 그 동생 김영(金永)과 박홍(朴洪)이 있다. 김탁의 세력은 요동에 퍼져 있다. 또 지린[吉林]에 있던 손일민(孫一民)은 원래 경성에 있던 사람이었으나 난을 피하여 지린으로 간 것으로, 그의 세력은<br><span style="FONT-SIZE: 130%">북지나(北支那) 일대</span>에 미치며, 베이징[北京], 톈진[天津]의 선인(鮮人)은 모두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다. 스에나가 씨는 처음에 동척(東拓)과 흥업은행(興業銀行)에 1천만 엔을 지출해 이들 선인에게 대부하여 토지를 사서 개간에 종사시키고, 또 회사가 직접 미개간지를 매수하여 선인 중 실업자를 여기에 수용한다면, 적어도 30만~50만의 선인을 수용, 구조할 수 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우리 제국의 은혜에 열복(悅服)하게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리라. 그리고 이들 이민은 지린에 있는 수령 30여 명에게 통솔되고 있으므로 그 중 우두머리 4, 5인을 회유하여 귀순시킨다면, 나머지는 수고하지 않고 우리 순종하는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안을 세워서, <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19/76/d0050576_4b054ce93f5bc.jpg" width="346" height="48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19/76/d0050576_4b054ce93f5bc.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대고려국의 영역(하얀 부분이 대고려국)</div><br><span style="FONT-SIZE: 130%">당국에 건백(建白)</span>하였으나 눈앞이 깜깜히 어두운 관료들은 이 건의에 귀를 빌려주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불령선인의 폭동을 커지게 만든 상황이다. 당시 스에나가 씨의 의견이라는 것을 보면 조선은 일본의 점령지가 아니다, 또한 식민지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를 가라후토[樺太]<span style="COLOR: #3333ff">1)</span>나 대만(臺灣)과 동일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조선 민족은 4천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명의 독립 민족이므로 통치자는 냉정하고 공평하게 이를 고려하고 인식하여 일체 시정(施政)은 모두 이에 따라 시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그러지 않고 함부로 조선을 피정복자로 보고 또 이를 예속시하는 것 같은 일은 □□<span style="COLOR: #3333ff">2)</span>에 있어서 잘못되어 있다. 국가의 금도(襟度)는 관대하고 그 위신은 삼엄해야 한다.<br><span style="FONT-SIZE: 130%">조선 통치의</span> 요도(要道)는 이 법칙에 따라, 그 민족의 성정을 숙지하고, 그 자신을 훼손하지 않고 능히 이들을 계도하여 자치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에 있다. 만약 동화정책과 같은 것을 시행하여 통치의 실적을 기하려 하는 것과 같은 일은 백년하청을 믿는 것과 같은 잘못된 생각이다. 또한 반대로 선인의 주장을 보면, 그들은 메이지[明治] 27, 8년의 일청전역(日淸戰役)<span style="COLOR: #3333ff">3)</span>에서도, 37, 8년의 일러의 전역<span style="COLOR: #3333ff">4)</span>에서도, 우리의 선전(宣戰) 조칙을 읽고 우리나라가 조선의 독립을 확보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일한의 병합(倂合)도 병합이 아니고 합방(合邦)이라고 굳게 믿어, 조야의 유식자들은 정부와 국민을 움직여<br><span style="FONT-SIZE: 130%">민족자결의</span> 주의에 따라 일본 천황 폐하의 통치하에 완전한 국민적 자격을 얻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병탄의 형태가 되어, 국토 민인(民人)이&nbsp;일본에 예속하게 된 것처럼 보이므로, ─ 물론 이는 우리 당국의 시정의 악영향도 있음에 틀림없으나, ─ 그들은 매우 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br><br><div style="TEXT-ALIGN: right">耿君 譯</div><br><a href="http://hyunk02.egloos.com/3446798">다음 편에 계속<br><br></a>== 역자 주석 ==<br><span style="COLOR: #3333ff">1)</span> 지금의 사할린 섬.<br><span style="COLOR: #3333ff">2)</span>&nbsp;입수한 신문 자료에서는 뭉개져 있어 판독 불가.<br><span style="COLOR: #3333ff">3)</span> 청일전쟁을 가리킨다.<br><span style="COLOR: #3333ff">4)</span> 러일전쟁을 가리킨다.<br/><br/>tag : <a href="/tag/대고려국" rel="tag">대고려국</a>,&nbsp;<a href="/tag/동화정책" rel="tag">동화정책</a>,&nbsp;<a href="/tag/한일합방" rel="tag">한일합방</a>,&nbsp;<a href="/tag/한국병합" rel="tag">한국병합</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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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Nov 2009 14:16:26 GMT</pubDate>
		<dc:creator>耿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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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대고려국의 건설 (5) 건국위원 격인 각지의 호걸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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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hyunk02.egloos.com/3436443">지난 편에 이어서</a><br><br>*&nbsp;본 포스팅은 『다이쇼 일일 신문[大正日日新聞]』 1921년 3월 31일 석간 제1면에 실린 기사로서, 스에나가 세쓰[末永節]에&nbsp;의해 게재된&nbsp;'대고려국의 건설[大高麗國の建設]' 5편을 번역한 것입니다. <br>*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래어 표기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최대한 준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br>* 글자의 크고 작음은 원문에 의거하여 조절했습니다.<br /><br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19/76/d0050576_4b041faf6f2ce.jpg" width="500" height="867.76061776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19/76/d0050576_4b041faf6f2ce.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기사 원문 (『다이쇼 일일 신문』 1921년 3월 31일 석간 제1면)</div><br><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 FONT-SIZE: 130%">대고려국의 건설</span> (5)<br><br>배일(排日)로부터 표변(豹變)하여<br><span style="FONT-SIZE: 170%">건국위원 격인</span><br><span style="FONT-SIZE: 130%">각지의 호걸들</span><br><br>耿君이 삼가 옮김<br><br><br>만주에 있는 배일 선인의 수령을 들면 류허 현[柳河縣]에 전 한국 법무국장이었던 경성의 이시영(李始榮)이 있다. 그는 양반이다. 지린[吉林]에는 똑같이 양반으로 경기도 사람인 정안립(鄭安立)이 있다. 게다가 그는 지금 대고려국 건국에 열중한 사람으로 배일의 기상은 잦아들고 있다. 류허 현에 있는 <br><span style="FONT-SIZE: 130%">호걸 중에는</span> 경기도의 양반으로 전 의병대장이었던 이범윤(李範允)과, 전 참령(參領)이었던 함경의 이혜휘(李惠輝), 의병대장이었던 경기의 양반 홍범도(洪範道)와, 이시영의 참모였던 경성의 양반 이동녕(李東寧)과, 이씨의 사령관이었던 경성의 평민 장봉한(張鳳翰)과, 경성의 양반, 의병 사령관 조욱(曹煜)과, 황해도 주민으로 의병 수령인 조맹선(趙孟善)과, 경상도 주민 이상룡(李相龍)과, 같은 도의 의병 수령 윤세복(尹世復)과, 평안도의 주민으로 의병의 필두(筆頭)인 이탁(李鐸)과, 경상남도의 토판(土辦)<span style="COLOR: #3333ff">1)</span>으로 의병대장인 허혁(許爀)이 있다. 서간도에는 평안도의 양반인 양기탁(梁起鐸)과, 함경남도 주민으로 의병 사령관이었던 이홍주(李鴻周)와, 출처 불명의 이세영(李世榮)이라는 인물이 활약하고 있다.<br><span style="FONT-SIZE: 130%">북간도에는</span> 충청도의 토변(土辯)으로 공주(供州)<span style="COLOR: #3333ff">2)</span>의 의병인 이규(李珪)와, 충청도의 토변(土辨)으로 의병인 이종택(李鐘澤)과 경성의 양반으로 학사(學士)인 김교헌(金敎憲)이 있다. 무쑹[撫松]에는 함경남도 사람으로 의병 사령관인 김호익(金虎翼)과, 경기도 양반으로 의병인 성호(成浩)가 있다. 지린[吉林]에는 수원의 양반 맹동전(孟東田)과, 경기도의 토판으로 의병인 김붕(金鵬)과, 경성의 양반생계회(兩班生計會) 회장인 여준(呂準)과, 경기도 사람 박순(朴純)이 세력을 떨치고 있다. 쓰한뇬(ツハンニヨン)<span style="COLOR: #3333ff">3)</span>에는 평안도 주민으로 참령이었던 유동열(柳東悅)이 있다. 무위안[木猿]에는 황해도 주민으로 이토 공[伊藤公]<span style="COLOR: #3333ff">4)</span>을 암살한 안중근(安重根)의 동생 안중칠(安重七)이 있다. 창바이 부[長白府]에는 함경도 양반으로 의병이었던 오주환(吳周煥)이 있다. 상하이에는 경기도 토판으로 의병인 신규식(申圭植)과, 충청도 토판으로 매일신문(每日新聞)의 주필이었던 신채호(申采浩)와, 안조한(安照漢)과 신종홍(申宗洪)과 김복(金復)과 여직지(呂直之)와, 현(玄) 아무개와 명(明) 아무개가 활약하고 있다.<br><span style="FONT-SIZE: 130%">시베리아에는</span> 문창범(文昌範)과, 보병 참령이었던 이동휘(李東暉)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최재향(崔在享)<span style="COLOR: #3333ff">5)</span>과 김규식(金奎植)(현재 파리에 있음)과, 안창호(安昌浩)가 있다. 하와이에는 이승탈(李承脫)<span style="COLOR: #3333ff">6)</span>이 있고, 샌프란시스코에는 구짓쿠 기넨(クヂツク·キネン)<span style="COLOR: #3333ff">7)</span>과 안건근(安健根)이 있다. 이들 인사들은 모두 극단적인 반일주의로, 온갖 수단을 다하여 일본에 대해 저항, 방해를 시도하고 있으나, 스에나가 씨의 대고려국 건설을 듣자 흡연(翕然)하게 대고려국의 둑(纛)<span style="COLOR: #3333ff">8)</span>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현재 건국을 위해 가장 열심히 노력, 분주하고 있는 인사는 다음과 같다.<br><br>&lt;경상도&gt;<br>이중철(李中轍), 유필영(柳必永), 박□진(朴□鎭)<span style="COLOR: #3333ff">9)</span>, 유만식(柳萬植), 유영우(柳永佑), 김희락(金希洛), 김병락(金丙洛), 박시주(朴時澍), 이능윤(李能允), 이매구(李邁久), 김진룡(金震龍), 박정환(朴禎煥), 이정희(李庭禧), 노상직(盧相稷), 손보현(孫普鉉), 이일우(李一雨), 박민동(朴民東), 최현필(崔鉉弼), 조중건(曹重建), 장석신(張錫藎), 이승현(李承鉉)<br>&lt;전라북도&gt;&nbsp; 전우(田愚)<br>&lt;전라남도&gt;&nbsp; 이재범(李載範)<br>&lt;강원도&gt;&nbsp;&nbsp;&nbsp;&nbsp; 박래준(朴來駿)<br>&lt;황해도&gt;&nbsp;&nbsp;&nbsp;&nbsp;&nbsp;이종문(李鐘文)<br>&lt;경기도&gt;<br>김회수(金晦秀), 홍종영(洪鐘榮), 이명상(李明翔)<br>&lt;충청도&gt;<br>이건우(李健宇), 김복한(金福漢), 정인백(鄭寅柏)<br>&lt;평안남도&gt;&nbsp; 황연(黃演)<br>&lt;평안북도&gt;&nbsp;&nbsp;오희천(吳凞天)<br>&lt;함경남도&gt;&nbsp; 김병□(金秉□)<span style="COLOR: #3333ff">10)</span>&nbsp;<br>&lt;함경북도&gt;&nbsp; 최양섭(崔陽爕)<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19/76/d0050576_4b04304810276.jpg" width="328" height="34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19/76/d0050576_4b04304810276.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스에나가 세쓰가 지은 조국(肇國)의 노래<br>(해독 및 해석은 추후 예정)</div><br><br><div style="TEXT-ALIGN: right">耿君 譯</div><br><a href="http://hyunk02.egloos.com/3441511">다음 편에 계속<br><br></a>== 역자 주석 ==<br><span style="COLOR: #3333ff">1)</span> 의미 불명.&nbsp;아래 나오는 토변(土辯), 토변(土辨)과 같은 말로 여겨진다.<br><span style="COLOR: #3333ff">2)</span> 충청남도 공주(公州)의 오자로 보인다.<br><span style="COLOR: #3333ff">3)</span> 원음 및 위치 불명. 북간도의 지명으로 추정된다.<br><span style="COLOR: #3333ff">4)</span>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가리킨다.<br><span style="COLOR: #3333ff">5)</span> 최재형(崔在亨)을 잘못 쓴 것이다.<br><span style="COLOR: #3333ff">6)</span> 이승만(李承晩)을 잘못 쓴 것이다.<br><span style="COLOR: #3333ff">7)</span> 조선 인명으로 보이나 자세히 알 수 없어, 일단은&nbsp;일본어 발음대로 적는다.<br><span style="COLOR: #3333ff">8)</span> 군대 행렬 등의 앞에 세우던 대장기.<br><span style="COLOR: #3333ff">9)</span> 이름자 중 가운데 글자의 판독이 어려워 일단 비워놓았다. 불 화(火) 변의 글자로 보인다.<br><span style="COLOR: #3333ff">10)</span> 이름자 중 마지막 한자의 변 부분이 삭제되어 보이지 않는다. 방부에는 有자가 적혀 있다.<br/><br/>tag : <a href="/tag/대고려국" rel="tag">대고려국</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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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반추, 번역의 미</category>
		<category>대고려국</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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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Nov 2009 17:56:09 GMT</pubDate>
		<dc:creator>耿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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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대고려국의 건설 (4) 유림의 입장과 양반의 입장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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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hyunk02.egloos.com/3434269">지난 편에 이어서</a><br><br>*&nbsp;본 포스팅은 『다이쇼 일일 신문[大正日日新聞]』 1921년 3월 30일 석간 제1면에 실린 기사로서, 스에나가 세쓰[末永節]에&nbsp;의해 게재된&nbsp;'대고려국의 건설[大高麗國の建設]' 4편을 번역한 것입니다. <br>*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래어 표기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최대한 준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br>* 글자의 크고 작음은 원문에 의거하여 조절했습니다.<br /><br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17/76/d0050576_4b016a7ae9624.jpg" width="438" height="71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17/76/d0050576_4b016a7ae9624.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기사 원문(『다이쇼 일일 신문』 1921년 3월 30일 석간 제1면)<br></div><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 FONT-SIZE: 130%">대고려국의 건설</span> (4)<br><br><span style="FONT-SIZE: 130%">일한병합후의 통치에<br></span><span style="FONT-SIZE: 170%">안목을 갖춘 정치가가 없었다</span><br>유림의 입장과 양반의 입장<br><br>耿君이 삼가 옮김<br><br><br>대고려 건국 운동자의 주된 이들은 유림(儒林)이다. 유림이란 유자(儒者)를 말하며 당우(唐虞) 3대의 유법(遺法)을 본보기로 삼아, 물뿌리고 비로 쓸며 응대하고 나아가며 물러나는 일부터 관혼상제, 의약복서를 조술(祖述)하여, 위로는 정치의 득실에서 아래로는&nbsp;각종 의례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지배를 받고 있다. 유림의 수는<br><span style="FONT-SIZE: 130%">약 6백만이라</span> 하며 각 도 각 군 각 촌에 걸쳐 없는 곳이 없다. 함경북도와 평안도에는 옛날부터 양반은 없다고 말해지지만, 그럼에도 유생은 많이 살고 있다. 유생이 조술하는 바는 멀리는 그것을 『예기(禮記)』에서 구하고, 가까이로는 그것을 주희(朱熹)의 소학(小學) 내외편에 준하고 있다. 그래서 당국은 유생에 의해 백성의 사정을 알고, 민중은 유생에 의해 질고(疾苦)를 호소하였다. 포고문에서 여러 규칙부터 기타 각종 당국의 포달(布達), 고시(告示)류는 유생이 모두 민중에게 읽어 주었고, 민중의 청원 기타 일체 진술은 모두 유생의 손에 의뢰하였다. 양반(兩班)은 민중을 주구(誅求)하고 겁략(劫掠)하였으므로 <br><span style="FONT-SIZE: 130%">민중의 원부(怨府)</span>가 되어 있었지만 유생은 민중을 선도하고 훈도(薰陶)하여, 원조하였으므로 민중은 이들을 사부(師父)로서 존숭하였다. 그런데 일한합병(日韓合倂) 이후 우리 속리(俗吏)가 조선의 옛 풍속과 습관을 무시하고, 함부로 일본&nbsp;글로 된 법률 규칙을 난포(亂布)하였으므로, 또한 청원 등도 일본풍으로 하였으므로, 유생의 설 자리가 없게 되어버렸다. 유생은 그 직책을 빼앗겼으므로 그 세력이 일본에 대하여 반감을 품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마침내 양반과 함께 도도(滔滔)히 서로 인솔하여 배일단(排日團)이 되어버렸다.<br><span style="FONT-SIZE: 130%">양반이 배일</span>이 되었던 것은 우리의 통치 때문에 그들 고유의 특권이 없어져서, 민중을 주구하는 일도, 횡포를 부리는 일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으로, 이들이 민중을 선동하여 적극적 배일의 태도를 취함에 이르게 하였다. 그들의 심사를 해부하면 대략 다섯 가지의 반일 이유가 발견된다. 첫째는 국모의 참혹한 죽음이고, 둘째는 병합이 강압적이었다는 점이며, 셋째는 양반 계급의 철폐가 급격했다는 것이고, 넷째는 합병 이후 일본인이 변함없이<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17/76/d0050576_4b0170163cf82.jpg" width="131" height="23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17/76/d0050576_4b0170163cf82.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대고려국 건설안을 내세운 스에나가 세쓰</div><br><span style="FONT-SIZE: 130%">선인(鮮人)을 경멸</span>한다는 것이며, 다섯째는 일본보다는 유럽, 미국 쪽이 훨씬 강대하고 문명이며 관굉(寬宏)하다고 하는 사대주의이다. 이들 불평계급은 일부는 나라를 떠나 지나, 만주, 시베리아, 미국 등으로 이주하여 고국에 남아있는 자와 기맥(氣脈)을 통하여 반일열(反日熱)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 배일당(排日黨)의 분포를 조사해 보면, 성징 성[盛京省]과 헤이룽 성[黑龍省], 지린 성[吉林省], 시베리아가 주된 곳이며, 그 수가 무려 1백 만이나 된다. 그밖에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미국 등에도 다수의 이주자가 있다. 지린 성에 있는 선인은 미국에 있는 자들과 기맥을 통하고, 하얼빈[哈爾賓]에 있는 자는 시베리아에, 유럽, 러시아에 있는 자들을 지배하고 있다. 톈진, 베이징은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선인의 출입 왕래가 빈번한 관계 상 이 땅에 있는 자는 북지나(北支那) 일대의 선인을 지배하고 있다. 남지나(南支那)에 있는 선인은 상하이에 있는 선인의 구처(區處)를 받고 있다.<br><span style="FONT-SIZE: 130%">그들의 주의(主義)</span>는 민주공화로 고국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일본인에 대해서는 증오의 마음이 가득하여, 늘 적대 행동을 취한다. 만주에서 일본인이 참살되는 등은 실제는 마적의 짓이 아니고, 대부분은 배일 선인의 손에 의한 것이다. 시베리아와 러시아에서 일본인이 살해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배일 선인 때문이다. 그들은 지나의 정탐이 되었다가 러시아 정탐이 되었다가 독일의 정탐이 되기도 하고, 또 영국, 미국의 간첩 앞잡이가 되어 일본에 원수를 갚으려 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학문, 문장 실력이 있는 자가 있다.<br><span style="FONT-SIZE: 130%">일본에서 유학</span>한 자들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에서 유학하여 그 나라 말에 능숙한 자가 있다. 상인도 있고, 농부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밀매업자도 있고, 병사였던 자도 있다. 그 직업을 열거하면, 인삼 판매업, 경작개간, 아편 밀수, 담배 제조, 매춘업 등이 주된 것으로, 그 중에는 성공하여 거만(巨萬)의 부를 가진 자도 있다. <br><span style="FONT-SIZE: 130%">하얼빈에는</span> 6천만의 거부(巨富)를 지니고 있는 자가 있다. 백만 이상인 자는 서너 집 있다. 지린 성에 있는 자는 대부분은 농업 개간에 종사하고, 장백산 속에 부락을 이루고 있는 자는 적지 않다. 그들은 대개 충군애국의 사상이 없고, 또한 정체(政體)와 정치를 이해하는 자도 없고, 오직 자기 이익과 안전을 도모할 뿐이다. 다만 그 안에 재주와 학문이 있는 청년 지사가 있어 민주공화의 주의를 품고, 그에 따라 고국을 회복하려고, 이들 어리석은 이주민을 선동하여, 극단적으로 배일 행동을 취함에 이르게 한다. 이들 유지(有志)는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일종의 세력을 갖고 있어 선동에 대해서는 사람을<br><span style="FONT-SIZE: 130%">매료하는 마술</span>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청년 유지의 배후가 되어 배일의 기세를 높이는 자들은 지금 이야기한 유림 계급이다. 병합 당시 우리 정치가가 만약 사리를 꿰뚫는 안목을 갖추고 있었다면, 물론 이 유림 계급을 잘 기용하여, 우리의 선정(善政)을 선인 일반에 철저하게 행할 수 있었을 텐데, 슬프구나 정치가 중에 안목을 갖춘 자 한 사람 없이 헛되이 칼에 의해 위압하거나 내지는 이들 유림의 직책을 빼앗아 그들을 내몰아서&nbsp;배일 집단으로 몰아갔다. 실로 유감의 극치이다.<br><br><div style="TEXT-ALIGN: right">耿君 譯</div><br><a href="http://hyunk02.egloos.com/3440066">다음 편에 계속</a><br/><br/>tag : <a href="/tag/대고려국" rel="tag">대고려국</a>,&nbsp;<a href="/tag/유림" rel="tag">유림</a>,&nbsp;<a href="/tag/양반" rel="tag">양반</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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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반추, 번역의 미</category>
		<category>대고려국</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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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Nov 2009 15:53:41 GMT</pubDate>
		<dc:creator>耿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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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대고려국의 건설 (3) 상하이 임시정부도 크게 기뻐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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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hyunk02.egloos.com/3433015">지난 편에 이어서<br><br></a>*&nbsp;본 포스팅은 『다이쇼 일일 신문[大正日日新聞]』 1921년 3월 29일 석간 제1면에 실린 기사로서, 스에나가 세쓰[末永節]에&nbsp;의해 게재된&nbsp;'대고려국의 건설[大高麗國の建設]' 3편을 번역한 것입니다. <br>*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래어 표기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최대한 준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br>* 글자의 크고 작음은 원문에 의거하여 조절했습니다.<br /><br /><div style="TEXT-ALIGN: left"></div><div style="TEXT-ALIGN: left"></div><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fffb67df38.jpg" width="399" height="60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fffb67df38.jpg');" /></div></p><div style="TEXT-ALIGN: center">기사 원문(『다이쇼 일일 신문』 1921년 3월 29일 석간 제1면)<br>(기사 좌측 하단의 '백골 사체 발견'에 신경쓰시면 지는 겁니다?)</div><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 FONT-SIZE: 130%">대고려국의 건설</span> (3)<br><br><span style="FONT-SIZE: 130%">상하이[上海] 임시정부도</span><br><span style="FONT-SIZE: 170%">배일(排日)을 잊고 크게 기뻐함<br></span><span style="FONT-SIZE: 130%">헌법 초안 7개조와 법3장의 공시(公示)</span><br><br>耿君이 삼가 옮김<br><br><br>대고려국 건국 선언은 지난 겨울 간도에서 발표되어&nbsp;조선 전토, 만주, 시베리아 기타 지방에 산재해 있는 선인(鮮人)에게 널리 알려졌다. 선인은 배일(排日)과 친일을 불문하고 크게 기뻐하였으며, 시베리아, 만주에 있는 선인은 이미 건국이 실현된 것 같이 생각하고 있고, 상하이[上海]의 임시정부도 여기에는 대찬성하며 건국의 계획이 진척되면 상하이의 임시정부는 폐쇄하고 간도로 철수하겠다고 말하고 있다.<br><span style="FONT-SIZE: 130%">그 선언서</span>는 다음과 같다.<br><br>세계의 대전란은 마침내 종결되었으나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등지고 헤어지며 알력을 일으키고, 신사상의 악조류(惡潮流)는 격심하여 백성은 삶을 편안히 하지 못한다. 강화회담의 효과로 가장 큰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제연맹이고, 하나는 민족의 자결이다. 우리 민족은 옛날 동방 아시아에 있어서 쉴새없이 일하며 경영하여 대국이 되어 있었다. 그 땅은 만주와 동몽골과 지린[吉林], 헤이룽[黑龍]에서 시베리아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 인민은 숙신, 말국(靺鞫), 예(濊), 맥(貊), 읍루(挹婁), 부여, 오환, 선비, 고구려 등으로, 모두 우리 민족의 선조이다. 매우 번성하였다.<br><span style="FONT-SIZE: 130%">황천(皇天)은 실로</span> 우리 민족에게 행복을 내려주시었다. 우리들은 이에 의로운 마음에 따라 옛 땅을 극복하고 새 나라를 조건(肇建)하여 대고려국이라 이름지어, 이로써 재외 3백만의 동포를 규합하고 고토로 복귀하여 선업(先業)을 회복하여 넓히고자 한다. 일이 성사되면 우리나라가 이로움[利]을 통할[亨] 뿐만 아니라 지나, 러시아라고 하더라도 동쪽 이웃의 침식을 제압할 수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이익을 통하는 것이 된다. 우리 민족으로 우리들과 의(義)를 같이 하는 자는 다음의 조례를 숙지하고 당장 내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신명(神明)의 조람(照覽)하는 바이다.<br><br>조례라는 것은 소위 건국규약으로,<br><span style="FONT-SIZE: 130%">헌법초안으로</span> 7개조로 구성되어 있다.<br><br>1. 일체의 국토는 모두 국가의 공유로 한다.<br>2. 장래 국가는 헌법을 제정하고 의원(議院)을 설치하여 정부를 조직하며, 백규(百揆) 서정(庶政)을 총람한다.<br>3. 무릇 국자(國字)는 언문(諺文)과 한문(漢文)을 병용한다.<br>4. 무릇 국교(國敎)는 공자의 교를 따른다.<br>5. 무릇 일본인, 지나인, 러시아인으로서 이미 고려국 내에 거주하고 있으며 고려국의 시민일 권리 자격을 원하는 자는 차별 없이 이를 부여한다.<br>6. 의군(義軍)은 간도를 거병지로 삼는다. 길림(吉林)은 즉 옛날의 계림(鷄林)이다.<br>7. 무릇 의(義)를 일으키는 뜻을 알고 건국의 거행을 찬성하며, 의자(義資)를 연납(捐納)하는 것은 정부는 이를 가지고 공채(公債)로 간주하고 정부는 훗날에 상환할 책임을 진다.<br>&nbsp;&nbsp;&nbsp; 조국(肇國) 원년 제1월 제1일<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대고려국 통정부(統政府)<br><br><span style="FONT-SIZE: 130%">다음으로 법3장</span>의 공시(公示)가 있다.<br><br>1. 간음을 범하는 자는 참형[斬]에 처한다.<br>2. 도둑질을 범하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br>3. 방화, 노략을 범하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br>4. 도적[賊]과 모략을 통하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br>5. 사람을 겁살하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 군 정 부(軍政府)<br><br>이들 문장의 선전은 다만 계림 8도의 인심을 풍미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만몽, 시베리아에 있는 소위 3백만 동포의 마음을 분기시켰다. 소위 불령선인인 자들도<br><span style="FONT-SIZE: 130%">배일을 잊고</span> 이에 급히 달려왔다. 상하이 임시정부와 건국의 간부와의 교섭은 조선에 있는 권중관(權仲觀)이 이를 전담하고 있고, 상하이에 있는 지나인 간요우런[干右任]이 중개역을 맡고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건국의 군정부가 간도에 수립되자마자 임시정부를 해산하고 여기에 참가하고자 현재 준비중이다. 상하이 임시정부도 원래 자금은 없고, 내외의 평판은 나쁘고, 만사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정부 인사들은 모두 다 해산하여 간도로 갈 것을 바라고 있다.<br><br><div style="TEXT-ALIGN: right">耿君 譯</div><br><a href="http://hyunk02.egloos.com/3436443">다음 편에 계속</a><br/><br/>tag : <a href="/tag/대고려국" rel="tag">대고려국</a>,&nbsp;<a href="/tag/대한민국임시정부" rel="tag">대한민국임시정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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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반추, 번역의 미</category>
		<category>대고려국</category>
		<category>대한민국임시정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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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Nov 2009 13:58:10 GMT</pubDate>
		<dc:creator>耿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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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만국의 몽골반점동족이여 단결하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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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www.riss4u.net/link?id=A289493">http://www.riss4u.net/link?id=A289493</a><br>(세계평화몽골반점동족연합, 「몽골반점동족이 하나돼 평화통일시대를 열어가자」, 『統一世界』 10,&nbsp;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2004, pp.94-95.)<br><br>음 이런 단체, 이런 글도 있군요... <br>아 뭐 그냥 그렇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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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글 모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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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Nov 2009 08:25:21 GMT</pubDate>
		<dc:creator>耿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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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대고려국의 건설 (2) 수도는 간도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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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hyunk02.egloos.com/3432611">지난 편에 이어서<br><br></a>*&nbsp;본 포스팅은 『다이쇼 일일 신문[大正日日新聞]』 1921년 3월 28일 석간 제1면에 실린 기사로서, 스에나가 세쓰[末永節]에&nbsp;의해 게재된&nbsp;'대고려국의 건설[大高麗國の建設]' 2편을 번역한 것입니다. <br>*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래어 표기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최대한 준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br>* 글자의 크고 작음은 원문에 의거하여 조절했습니다.<br /><br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f573f5aa41.jpg" width="398" height="61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f573f5aa41.jpg');" /></div>&nbsp; <div style="TEXT-ALIGN: center">기사 원문(『다이쇼 일일 신문』 1921년 3월 28일 석간 제1면)</div><p><br><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 FONT-SIZE: 130%">대고려국의 건설</span> (2)<br><br><span style="FONT-SIZE: 130%">수도는 간도(間島)에</span><br>뜻깊은 국기의 설명<br><br>耿君이 삼가 옮김<br><br><br>그래서 주몽은 12명의 가신들을 이끌고 동부여를 떠나 장백산 속으로 들어와서, 여기에 나라를 세우고 있는 송예(松豫)<span style="COLOR: #3333ff">1)</span>라는 자를 정복했다. 송예는 주몽과 무기를 비교해 보고 그가<br><span style="FONT-SIZE: 130%">해의 신의 자</span>손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으로부터 항복하였다. 주몽은 그의 병력을 병합하고 사방을 공략하여 고구려국(高勾麗國)을 건설했다. 주몽의 자손 중에는 영명한 군주가 많이 나왔으므로, 그 판도는 동으로는 대동강을 한계로 하고, 서로는 싱안링[興安嶺]에 이르며, 북으로는 흑룡강에 이르며, 남으로는 발해만에 임하는 대왕국을 건설했다. 이것이 이번에 스에나가 세쓰 씨 등이 광복을 부르짖고 있는 대고려국의 판도이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f5912642ca.jpg" width="167" height="22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f5912642ca.jpg');" /></div></p><div style="TEXT-ALIGN: center">대고려국새(大高麗國璽)</div><p><br><span style="FONT-SIZE: 130%">새로이 건설</span>될 대고려국의 판도는 3기로 나뉘어 확장될 것으로, 제1기는 지금의 지린 성[吉林省] 전부와 펑톈 성[奉天省]의 일부로, 제2기는 펑톈 성의 나머지 부분과 산하이관[山海關] 이북 장자커우[張家口] 이동의 장성 이북인 즈리 성[直隷省] 북부와 내몽골이며, 제3기는 러시아-지나 양국에게 갈려진 헤이룽 성[黑龍省] 전부와 캄차카 반도를 포함한 연해주 전부이다. 그리고 대고려국의 수도는 발상지인<br><span style="FONT-SIZE: 130%">간도(間島)로써</span> 정해져 있다. 간도에서 북으로 내려가 훈춘[琿春]의 동쪽 포시에트 만 머리의 노브고로드 땅은 금(金)의 동경(東京)이었으므로, 이 땅은 장차 대고려국의 중요한 일본해로의 출구가 될 것이리라. 대고려국의 국기는 이미 제정된 건국규약의 헌장과 함께 어엿하게 존재하고 있다. 국기는 남색 바탕에 하얀 우물 정(井) 모양을 꿰뚫어놓고 중앙에 황색 곡옥 두 개를 포합(抱合)시켜 원구(圓球)를 만들고 그 원구로부터 홍색(紅色)의 오광(五光)을 팔방으로 나란히 내고 있다. 이를 설명하는 스에나가 씨의 말에 의하면<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f5e658147c.jpg" width="331" height="22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f5e658147c.jpg');" /></div></p><div style="TEXT-ALIGN: center">기사 속 국기의 설명에 의거하여 역자가&nbsp;색을 입혀본 대고려국 국기<br>(원본 국기 사진(흑백)은 1편에 실려 있음)</div><p><br><span style="FONT-SIZE: 130%">곡옥은 인간</span>의 정충(精蟲)을 형상화한 것으로, 곡옥의 끈을 통과시키는 구멍은 정충의 눈으로 건국이 실현될 때에 점청(點晴)할 터이다. 국기에 표현된 두 마리의 정충 중 한 마리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충이고, 다른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충이다. 이 두 마리 정충이 합체하여 생겨난 대고려국은 가장 장엄 숭고한 나라로 그 빛나는 위엄을 보이기 위해 색깔 중 최고로 치열한 황색을 사용했다. 또 대고려국은 현대의 부패한 사회제도를 뿌리부터 파괴하고 먼 옛날 무위(無爲)로서 교화하는 제도로 돌아가<br><span style="FONT-SIZE: 130%">토지의 국유</span>를 실시하고, 정전(井田)의 법을 시행할 터이므로, 깃발은 우물 모양을 표상으로 하여 이것으로 정전의 의미를 나타냈다. 이 나라의 국민은 서로 겸양의 덕을 갖추고, 밭이랑을 서로 양보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어린 자를 사랑하며 가장 평화를 애호하므로, 사해의 파도가 조용한 대해원(大海原)의 남색으로써 깃발의 바탕색을 삼았다. 이와 같은 평화 애호의 덕이 사해에 넘치는 선량한 인민도 덕 안에 내포되어 있는 무위(武威)는 엄히 침범되어선 안된다. 위덕(威德)의 광대함을 팔방으로 떨치므로, 깃발은 중앙의 곡옥에서 홍색의 오광을 여덟 줄 나란히 내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br><span style="FONT-SIZE: 130%">건국규약은</span> 소위 법3장으로 가장 간단명료하다. 게다가 이 규약으로 형사, 민사의 재판은 물론 교통, 통신, 농, 공, 상 등 백반(百般)의 인간 세상 필수의 법칙이 정해진다.<br></p><div style="TEXT-ALIGN: right">耿君 譯</div><p><br><a href="http://hyunk02.egloos.com/3434269">다음 편에 계속<br><br></a>== 역자 주석 ==<br><span style="COLOR: #3333ff">1)</span> 송양(松讓)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p><br/><br/>tag : <a href="/tag/대고려국" rel="tag">대고려국</a>,&nbsp;<a href="/tag/간도" rel="tag">간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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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반추, 번역의 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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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5 Nov 2009 02:04:28 GMT</pubDate>
		<dc:creator>耿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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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대고려국의 건설 (1) 송화강 유원의 전설, 여신 유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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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 들어가기에 앞서 - <br><br>원래는 연작 포스팅 '<a href="http://hyunk02.egloos.com/3204190" target="_blank">내가 조선의 국모를 죽였다</a>'를 연재 완료한 뒤에 이 포스팅을 올리려고 <a href="http://hyunk02.egloos.com/3275461">했습니다만</a>, 엄청난 강도의 귀차니즘과 글쓰기의 부진 등으로 인해 좀처럼 진척이 안되고 있는 관계로, 번역 포스팅이기 때문에 비교적 손쉬운 '대고려국의 건설' 소개를 먼저 하기로 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br><br>본 포스팅은 졸작인&nbsp;<a href="http://hyunk02.egloos.com/2166815" target="_blank">곤도 세이쿄 04 - 봉황의 나라 대고려국</a>과 은퇴하신 <a href="http://munbba.egloos.com/2278052" target="_blank">모 씨의 글</a>을 읽으신 뒤에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br /><br />*&nbsp;본 포스팅은 『다이쇼 일일 신문[大正日日新聞]』 1921년 3월 27일 석간 제1면에 실린 기사로서, 스에나가 세쓰[末永節]에&nbsp;의해 게재된&nbsp;'대고려국의 건설[大高麗國の建設]' 1편을 번역한 것입니다. <br>*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래어 표기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최대한 준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br>* 글자의 크고 작음은 원문에 의거하여 조절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ecdc5a70d4.jpg" width="368" height="70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ecdc5a70d4.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기사 원문의 사진 (『다이쇼 일일 신문』 1921년 3월 27일 석간 제1면)</div><br><br><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 FONT-SIZE: 130%">대고려국의 건설</span> (1)<br>송화강 유원(流源)의 전설, 여신 유화(柳花)<br><br>耿君이 삼가 옮김<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ece04721d5.jpg" width="331" height="22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1/15/76/d0050576_4afece04721d5.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대고려국의 국기<br></div><br>조선인 중 일부가 조선의 독립을 부르짖으며 빈번히 음모를 꾸미고 있고 또한 불령선인은 독립을 핑계삼아 왕성히 약탈을 행하고 있는 이때, 여기에 옛날의 <span style="FONT-SIZE: 130%">대고려국(大高麗國)</span>을 부흥하여, 한편으로는 선인(鮮人)의 자존심을 만족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로써&nbsp;러시아 및 지나(支那)에 대한 완충국으로 삼으려 하는 계획을 세운 자가 나왔다. 이 음모의 본존(本尊)은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건국업자(建國業者)로, 지나의 제1혁명과 제2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스에나가 세쓰[末永節] 씨이다. 스에나가 씨가 계획하는 대고려국의 판도는 옛날 고구려(高勾麗)의 판도를 동남으로 줄이고 서북으로 늘린 것으로, 동으로는 장백산(長白山)으로써 한반도와 경계짓고, 서북쪽으로는 스타노보이, 야프로노보이 및 싱안링[興安嶺]으로 시베리아 및 몽골과 경계를 가르며, 남으로는 만리 장성으로 지나와 구별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br><span style="FONT-SIZE: 130%">예상 판도</span>는 산하이관[山海關] 이북, 장자커우[張家口] 이동의 즈리 성[直隷省]과 내몽골과 성징 성[盛京省]과 지린 성[吉林省]과 러시아령과 지나령을 포함한 헤이룽장 성[黑龍江省]과 연해주와 캄차카 전부이다. 일본의 몇 배나 되는 광활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옛날 정령(丁零), 견곤(堅昆), 숙신(肅愼), 옥저(沃沮), 말국(靺鞫)<span style="COLOR: #3333ff">1)</span>, 부여(扶餘), 동호(東胡) 등의 여러 민족이 유목하던 땅이다. 동호는 원래 몽골의 땅에 있었지만, 흉노 때문에 쫓겨나서 지금의 동부 몽골에서 만주 및 요동으로 이주하여 오환(烏桓)과 선비(鮮卑)의 두 종족으로 갈라졌다. 오환은 삼국 시대 조조(曹操)에게 멸망당했지만, 선비는 동부 몽골에서 만주로 발호(跋扈)하여, 송화강 강원(江源)인 지금의 지린 성에 있던 부여족을 공격했다. 부여는 이 <span style="FONT-SIZE: 130%">공격 때문에</span> 둘로 절단되어, 하나는 흑룡강 하류의 땅으로 도망쳐 동부여(東扶餘)가 되었고, 하나는 장백산 아래로 물러나 축소되어 본부여(本扶餘)가 되었다. 본부여의 임금님으로 해부루(解芙婁)라고 하는 자가 있어, 매우 현명한 군주로, 그 민족을 이끌고 선비의&nbsp;큰 물결을&nbsp;물리쳐 돌려보냈으나, 그때 동족에 해모수(解慕漱)라는 자가 있어, '나는 해의 신의 자손이다'라고 하며 본부여로 와서, 해부루를 쫓아내고 말았다. 그래서 해부루는 북방으로 도망가, 동부여의 임금님이 되었다. 이 해모수가 대고려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해모수가 본부여의 임금님이 되고 나서 사냥하러 나가서 장백산 산기슭으로 갔는데, 당시 송화강 수원지에 한 사람의 수신(水神)(『진서(晉書)』에는 하백(河伯)이라고 적혀 있다)이 있어서<br><span style="FONT-SIZE: 130%">수신의 딸로</span> 유화(柳花)라고 하는 아름다운 여신이 있어, 그녀가 하루는 수중에서 나와 강가의 광야를 소요하고 있었다. 임금인 해모수는 이를 보고 그 선연(嬋娟)한 아름다움에 빠져서, 그녀를 납치하여 부근의 석굴에 데리고 들어가서는 여러 날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후 유화가 해모수의 손에서 벗어나 아버지 하백에게 돌아왔지만, 하백은 젊은 부인(婦人)의 몸으로 아버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남자의 처소에 머무르다&nbsp;온 것은 괘씸하다고 하며&nbsp;만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유화는 어쩔 수 없이 울며불며 강가를 서성이고 있으니 금와(金蛙)라고 하는 호걸이 와서 자세한 사정을 듣고 불쌍하니까 도와주겠다며 함께 데려와서 동부여로 갔다.<br><span style="FONT-SIZE: 130%">금와의 영명(英名)</span>은 동부여에서도 널리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임금인 해부루는 맞이하여 양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었다. 유화는 동부여가 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는 태어나면서 두발이 길고 이[齒]가 자라 있었다. 장성함에 따라 신체가 장대하고 힘이 매우 세며, 또한 활의 명인으로 백 걸음에서 버들잎을 뚫었다. 부여에서는 활의 명인을 '시모'라고 하였으므로 이 태어난 아이를 시모[朱蒙]<span style="COLOR: #3333ff">2)</span>라고 이름지었다. 금와가 유화를 만나기 전에 동부여에 있던 때 아내가 있어 그녀와 유리(類利)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금와가 해부루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때 유리는 태자가 되었다.<br><span style="FONT-SIZE: 130%">주몽은 호걸</span>이기는 하였지만, 금와는 그를 자신의 아들이 아니다, 해모수의 아들이다, 라고 하여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워하여 끝내는 죽이려고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인 유화는 주몽을 불러 신변의 위험을 알리고 어서 동부여를 떠나도록 가르쳤다.<br><br><div style="TEXT-ALIGN: right">耿君 譯</div><br><br><a href="http://hyunk02.egloos.com/3433015">다음 편에 계속<br><br></a>==&nbsp;역자 주석 ==<br><span style="COLOR: #3333ff">1)</span> 말갈(靺鞨)의 오기로 추정된다.<br><span style="COLOR: #3333ff">2)</span> 이후 등장하는 '시모'는 편의상 주몽(朱蒙)으로 표기한다.<br/><br/>tag : <a href="/tag/대고려국" rel="tag">대고려국</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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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반추, 번역의 미</category>
		<category>대고려국</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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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Nov 2009 16:21:59 GMT</pubDate>
		<dc:creator>耿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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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淚そうそう 가사(일본어/오키나와 말/한국어 해석)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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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나다 소소(淚そうそう)의 가사를 올려봅니다.<br><br>듣는 것은 <a href="http://hyunk02.egloos.com/3423973">http://hyunk02.egloos.com/3423973</a>&nbsp;(일본어 버전)<br><a href="http://hyunk02.egloos.com/3424011">http://hyunk02.egloos.com/3424011</a>&nbsp;(오키나와 말 버전) <br>위 두 곳에서 들어주셔요 ㅋㅋ<br /><br /><p>淚そうそう<br><br>작사: 森山良子<br>작곡: BEGIN<br>오키나와 말 작사: 新城俊昭<br><br>한국어 해석: 耿君<br><br>&lt;일본어&gt;<br><br>ふるいアルバムめくり　ありがとうってつぶやいた&nbsp;&nbsp;&nbsp;&nbsp;<br>いつもいつも胸の中　励ましてくれる人よ&nbsp;&nbsp;&nbsp;&nbsp;&nbsp;&nbsp;&nbsp;<br>晴れ渡る日も　雨の日も　浮かぶあの笑顔&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br>思い出遠くあせても&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br>おもかげ探して　よみがえる日は　涙そうそう&nbsp;&nbsp;&nbsp;&nbsp;&nbsp;<br>&nbsp;　&nbsp;&nbsp; <br>一番星に祈る　それが私のクセになり&nbsp;&nbsp;&nbsp;&nbsp;&nbsp;&nbsp;<br>夕暮れに見上げる空　心いっぱいあなた探す&nbsp;&nbsp;&nbsp; <br>悲しみにも　喜びにも　おもうあの笑顔&nbsp;&nbsp;&nbsp;&nbsp; <br>あなたの場所から私が&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r>見えたらきっといつか　あえると信じ　生きてゆく&nbsp;&nbsp;&nbsp;&nbsp;&nbsp;<br>&nbsp;　&nbsp;&nbsp; <br>晴れ渡る日も　雨の日も　浮かぶあの笑顔&nbsp;&nbsp;&nbsp;&nbsp;&nbsp;&nbsp; <br>思い出遠くあせても&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br>さみしくて　恋しくて　君への想い　涙そうそう&nbsp;&nbsp;&nbsp;&nbsp;&nbsp;&nbsp; <br>会いたくて　会いたくて　君への想い　涙そうそう&nbsp;&nbsp;&nbsp;&nbsp; <br><br>&lt;오키나와 말&gt;<br><br>懐（なち）かしアルバムみくてぃ　かふうしどーんでぃ言葉（くとぅば）かき <br>いちんちまでぃん肝（ちむ）ぬ内　心（くくる）かきゅるあぬ人（ひとぅ）ゆ <br>晴りわたる日ん　雨（あみ）ぬ日ん　浮かぶあぬちゅらさ<br>懐（なち）かさや遠（とぅー）く　うむよーなてぃん<br>面影（うむかじ）とぃみてぃ　影（かじ）立ちゅる日や　涙そうそう <br></p><p>一番星（いちばんぶし）に願（にが）ゆん　くりが我（わ）ぬ慣（なれー）なてぃ <br>ゆまんぎぬ空（すら）見上ぎてぃ　肝（ちむ）ふくらまち　うんじゅとうめゆん <br>なちかさてぃん　ふくらしゃてぃん　思（うむい）やあぬちゅらさ <br>うんじゅぬ場所（ばす）から我姿（わしがた）<br>見らりりば　かなじいちか　会ゆるんでぃ信じ　生きてぃんか <br></p><p>晴りわたる日ん　雨（あみ）ぬ日ん　浮かぶあぬちゅらさ <br>懐（なち）かさや遠（とぉー）く　うむよーなてぃん <br>さびしさぬ　恋（くい）いしさぬ　思（うむ）いや増さてぃ　涙そうそう <br>会いぶさぬ　会いぶさぬ　思（うむ）いや増さてぃ　涙そうそう <br><br>&lt;일본어 버전의 한국어 해석&gt;<br><br>오래된 앨범 들추며 '고마워요'라고 중얼거렸죠<br>언제나 언제나 마음 속에서 힘을 북돋아주던 사람이여<br>맑게 개인 날에도 비오는 날도 떠오르는 그 미소<br>추억이 멀리 흐려져도<br>옛 모습을&nbsp;찾아보다 다시 떠오른 날은 눈물 뚝뚝<br><br>가장 먼저 보인 별에 기도하는, 그것이 나의 버릇이 되어<br>해질녘에 올려다본 하늘, 마음 가득히 당신을 찾아요<br>슬퍼할 때에도 기뻐할 때도 그리는 그 미소<br>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내가<br>보인다면 분명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살아가요<br><br>맑게 개인 날에도 비오는 날도 떠오르는 그 미소<br>추억이 멀리 흐려져도<br>쓸쓸해서 그리워져서 그대 향한 생각에 눈물 뚝뚝<br>만나고파서 만나고파서 그대 향한 생각에 눈물 뚝뚝</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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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글 모음</category>

		<comments>http://hyunk02.egloos.com/3426851#comments</comments>
		<pubDate>Wed, 11 Nov 2009 13:54:19 GMT</pubDate>
		<dc:creator>耿君</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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