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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AKE or BREAK</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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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about crisis of newspaper in the midia war</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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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2 Mar 2007 16:18:5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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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AKE or BREAK</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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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기자'도 '여자'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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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611/23/22/d0032222_04112529.jpg" width="359" height="26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1/23/22/d0032222_04112529.jpg');" /></div>'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여성 관객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최근 150만 관객을 돌파했다. 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틱한 연기와 ‘신데렐라 전문배우’ 앤 해서웨이의 변신, 그리고 황홀하기 그지없는 칼 라거펠트와 톰 포드의 향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자들에겐 분명 ‘돈 아깝지 않은’ 영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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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어쩌다 패션 잡지 ‘런웨이’에 들어가 패션계의 보스 미란다의 비서로 일하게 된 기자 지망생 앤디의 이야기다. 그야말로 ‘촌티’ 팍팍 풍기던 그녀가, 44size에 목숨 걸고 ‘지미 추’에 영혼을 팔아버린 여자들이 득실대는 패션계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 이 같은 설정 상, 영화의 압권은 단연 여주인공의 변신 장면이다. 주인공 앤디는 수더분한 공부벌레 스타일에서 일순간 베스트드레서로 업그레이드하며 수많은 여성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과연 몇 주만에 단순 ‘센스’를 넘어 그런 ‘엣지’가 가능할 수 있을 진 의문이지만;;)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611/23/22/d0032222_04114858.jpg" width="337" height="37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1/23/22/d0032222_04114858.jpg');" /></div>그러나 영화는 이처럼 그녀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의 고뇌와 갈등을 이야기하다, 결국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찾아 떠난다는 다소 억지스런 결말로 끝을 맺는다. 패션 산업 종사자들이 그저 허영 덩어리들이 아닌 이 시대 가장 실용적인 예술의 창조자들임을 외면하기 힘든 지금의 현실에서, 영화를 본 20-30대 여성 관객들 중 얼마나 그 결말에 공감할 지 갸우뚱했다. 정말 앤디는 ‘런웨이’에서 사랑과 신념을 버렸던 것일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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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생활에 있어 옷차림은 첫인상과 그로 인한 신뢰감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더군다나 유명 디자이너들을 비롯, 수많은 패션 관계자들을 접해야 하는 패션지 편집장 비서로 일하게 된 이상, 직업에 대한 예의와 전문성을 갖춰야 했다는 점에서 앤디의 변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단지 ‘된장녀’들의 허영심에 맞장구치기 위한 객기가 아니었다는 말씀! 앤디 자신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더 당당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상관에의 충성이 제1 업무인 비서로서 자나 깨나 전화기를 끼고 살았던 앤디는 분명 프로다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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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란다가 그녀를 ‘최고의 비서’라고 인정한 것은 단순히 그녀가 늘 전화를 받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복종함으로써 미란다를 만족시키려 했던 다른 비서들과는 달리, 앤디는 외모에서부터 업무 수행 능력까지 항상 노력하고 발전하는 모습으로 그녀를 ‘놀래키려’ 했음에 감동했던 것이리라. 또한 앤디 역시 그 과정에서 촌티와 함께 패션계에 대한 색안경을 벗었을 뿐 아니라, 최고의 패션 잡지를 만들기 위한 미란다의 숨은 노력과 고뇌까지 이해한 듯 보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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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나약하기만 하다. 공짜 명품에 환호성 지를 땐 언제고 그녀가 킹카와 서서 얘기만 나눠도 오해해 홱 돌아서는 친구들에서부터, 난생 처음 가진 직업에 고군분투하느라 바빠진 그녀를 이해 못하는 ‘밴댕이’ 애인까지...(심지어 느끼하기까지 하다;;) 그는 앤디가 자신보다 일을 더 사랑하는 게 서운하다며 떠난다지만, 이건 잘 나가는 여자를 못견뎌하는 소심남들의 전형적인 자기 방어다. 사실 속내는 그녀가 전 같지 않아서가 아니라, 커져가는 그녀 앞에 점점 초라해지는 자신이 두려웠던 게 아닐까? 일과 자신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것은, 마치 물에 빠지면 엄마를 구할 거냐, 자신을 구할 거냐는 식의 유치찬란하고 공허한 응석일 뿐이다. 그가 진정 그녀를 믿고 사랑했다면, 그녀를 옆에서 흔들기보단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줬어야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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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611/23/22/d0032222_04115985.jpg" width="310" height="20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1/23/22/d0032222_04115985.jpg');" align="left" />앤디는 분명 비서로서의 경험과 미란다의 신뢰를 발판 삼아, 결국 자신이 원하는 길로 나름 ‘소신 있게’ 한 걸음씩 내딛는 중이었다. 에밀리를 제치고 파리에 왔으니 기회주의자라고? 약육강식의 직업 세계에서 엄연히 ‘능력’으로 잡은 기회를 두고 잔인하다 말한다면, ‘악마’아닌 사람 몇이나 될까. 그녀의 친구들이나 애인이 보기엔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 눈에 그녀는 결코 기자가 되겠다는 꿈이나 남자친구와의 사랑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한 듯 보이지 않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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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 신념을 버렸었다’고 남자친구에게 고백하며, 자신을 변신시켜줬던 옷들마저 다 버리고 떠나는 결말은 쉬이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녀가 진정 패션계에 애정을 가졌었다면, 미란다만큼이나 자신을 발전시켜준 옷들에게도 감사해야 마땅해야 하거늘, 기자가 됐다고 해서 발렌티노와 샤넬은 갑자기 소장가치가 없어진다니... 이건 그야말로 옷 한 벌에도 혼을 담는다는 디자이너들에 대한 모욕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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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지 기자나 런웨이 에디터나, 결국 다 똑같은 女子인 것을..!!! 꼭 화려한 기회주의자, 수수한 소신주의자로 양분할 필요 있을까? ‘화려한 소신주의자’도 분명 옵션일 수 있다. 발렌티노를 벗어던진 ‘앤디’기자보다, 무채색 법정 안에서도 꼭 핑크색 수트를 입어야만 했던 ‘엘 우즈’변호사(금발이너무해)가 더 정이 가는 건 그런 이유다. ^-^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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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hyejin112.egloos.com/558256#comments</comments>
		<pubDate>Thu, 16 Nov 2006 05:06:33 GMT</pubDate>
		<dc:creator>Ari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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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Don't eat marshmallow yet!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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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요즘.. 나자신의 미래가 너무나도 어지러워, 신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틈이 없었다.ㅋ 오랫만에 글을 쓰려니, 도저히 감이 안잡히는 관계로.. 그냥, 가볍게 딴 얘기 하나.</p><p>'마시멜로 이야기' 대리번역 논란은 우리나라 출판계의 윤리성에 관한&nbsp;치부를 드러내며, 당사자인 정지영씨가 사표를 내고 사과함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나도 물론 '정지영'이라는 번역자에 끌려 이 책의 100만부 판매에 일조했던 한 사람으로써, '속았다'는 생각에 일순간 배신감에 불타올랐음을 인정한다. 내 작은 '분노'는 그렇다면 만약, 이 책이 다른 무명 번역자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면 결코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고, 이는 나로하여금 책장 구섞에서 이 문제작을 다시한번 꺼내보게끔 만들었다. </p><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611/06/22/d0032222_08115342.jpg" width="94" height="12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1/06/22/d0032222_08115342.jpg');" align="left" />내가 기억하고 있던 이 책의 메세지는 'Don't eat marshmallow yet'이라는 원제가 말해주듯, 미래를 위해 눈 앞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참을성'이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책 초반에 한 실험이 나온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월터 미셸 박사는 4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마시멜로 실험’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실험에 참가한 네 살배기 아이들에게 달콤한 마시멜로 과자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15분 간 마시멜로 과자를 먹지 않고 참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 결과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 중 3분의 1은 15분을 참지 못한 채 마시멜로를 먹어치웠고, 3분의 2는 끝까지 기다림으로써 상을 받았다. 그리고 14년 후(실험 참 오래도 한다;;), 그때 실험에 참가했던 아이들이 현재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는지 다시 조사해 본 결과,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렸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더 성공해 있더라는 것이다. <p>여기까지 읽고 책을 덮은 후,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는, 바로&nbsp;오늘 새벽만 해도 라면을 끓여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밥까지 말아먹고 만.. 나약하기 그지없는&nbsp;참을성 제로의 인간인 것을... 실험 내용대로라면 내게 성공의 길은 너무나 멀고 소원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좌절감을 뒤로하고 끝까지 책을 읽고 나니, 다행히도 이 실험은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근거 중 하나일 뿐 '당장의 안락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라'는 보다 큰 메세지가 보였다. 결국 모든 세대에 통용되는 이 보편적인 메세지를 다양한 예화를 통해 지루하거나 진부하지&nbsp;않게, 신선하게 전달한 이 책은 꼭 정지영이라는 이름이&nbsp;없었다 해도 너끈히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nbsp;</p><p>사실 난 너무너무 달콤한 마시멜로를 앞에두고, 먹지말란 명령을 무시한 채 못참고 홀랑 먹어버린&nbsp;네살짜리들이 더 귀엽다^-^ 지금의 라면 한 그릇이 내게 몸무게가 500g늘지 모른다는 위협보다 더 큰 행복감과 생의 애착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난 오늘도 과감히 물을 올리러 간다. 내일, 삶에 대한&nbsp;내 또다른&nbsp;열정으로 500kcal쯤 거뜬히 태워버릴&nbsp;의지가 남아있는 한!&nbs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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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6 Nov 2006 11:43:23 GMT</pubDate>
		<dc:creator>Ari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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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신문사닷컴, 블로그를 띄우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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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있어 수많은 블로그 서비스와 툴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지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물론 자신이 즐겨 이용하는 포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주위의 지인들이 사용하며 평이 좋은 서비스에 가입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좀 더 정성들여 자신의 도메인을 등록하고 호스팅 서비스를 받아 원하는 블로그 툴을 설치하여 블로그를 시작해볼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strong>'신문사 블로그'</strong>는 주로 여성보다는 남성 성향의,&nbsp;어린&nbsp;세대보다는 비교적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고 논의하고 싶어하는 세대, 말하자면 좀 더 지적 수준이 높은 층에서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br />
<br />
그렇다면 신문사 블로그만이 가진 장점은 뭐가 있을까?<br />
포털과 가장 큰 차이점이자 신문사 블로그의 매력은 저작권 법에 따라 딥링크로 기사를 스크랩해야만 하는 포털 블로그와 달리 자사에서 제공하는 뉴스와 기사를 블로그에 전부 인용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그러나 뉴스 기사가 특정 신문사 하나로만 제한된다는 단점 또한 지닌다)&nbsp;따라서, 신문사 블로그는&nbsp;오프라인 시대에&nbsp;신문을 오려붙이면서 했던 스크랩을 온라인 블로그를 통해 같은 느낌으로 구현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실제로 초기 신문사 블로그를 개설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블로그를 단순히 관심기사를 모아두는 목적으로 운영했었다. 그러나 현재의 블로그는 더이상 정보의 '저장고'가 아닌, '생산지'이자 '배포지'로써 그 주 기능이 변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스크랩기능은 더이상&nbsp;장점이라고 내세워 지기는 힘들 듯 하다.&nbsp;한편 이용자들의 특성상 포털에 비해 이슈에 대한 수준높은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점과 함께 무분별한 광고가 자신의 블로그를 더럽히지 않는다는 점을&nbsp;꼽을 수 있다. 블로그를 꾸미기 위해 제공되는 스킨이나 배경음악&nbsp;등의 유료 아이템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br />
<br />
반면, 메일, 메신저 등 자사의 다양한 서비스와 연동되는 포털 블로그에 비해 신문사 블로그는 이런 아기자기하고 세세한 부분에 있어 한 발 뒤쳐지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이러한 포털 블로그의 장점과 신문기사 전문 인용이라는 신문사 블로그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는것이 바로 '드림위즈'다. 이 곳에서는 경향 신문사와 제휴를 통해 기사를 전체 스크랩할 수 있으며, 포털의 툴바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배경음악을 구입하면 메일, 미니홈피, 블로그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등 포털 연동성의 장점을 함께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급속도로 진보하는 다른 포털의 블로그서비스에 비해 발전성이 느리며, 쓸만한 스킨도 별로 없는 등 신문사 블로그의 단점까지 그대로 함께 갖추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br />
<br />
현재 우리나라 신문사 블로그는 주로 자사 기자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인터넷을 집중 육성한다는 경영목표에 따라 전 기자에게 조선닷컴 블로그를 운영토록 지시해 기자 블로그를 활발하게 운영중이다. 현재 200여명의 조선일보 기자들이 블로그를 개설했다.&nbsp;사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기자만큼 블로거가 되기에 좋은 직업이 또 있을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 듯 하다. 기자 자신이 속한 매체가 자신의 목소리를 넘어 최초의 고려 대상이&nbsp;되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의 직, 간접적 충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세계일보의 서명덕 기자는 자신만의 '단독 블로깅'의 원칙으로 새로운 기자 블로그의 역사를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인 '<a href="http://itviewpoint.com/tt/index.php">서명덕의 人터넷 세상'&nbsp;</a>을 일상적 감상의 나열이 아닌 IT산업에 대한 새로운 팩트로 채워냈다. <a href="http://www.dkbnews.com/bbs/zboard.php?id=headlinenews&amp;no=6997">"블로그에 관한 한 세계일보가 메이저"</a>라는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블로깅의 ‘세 가지 원칙(단독성 / 폭 넓은 취재 / 삭제금지)'을 천명하며 뉴미디어 시대 언론인으로써 진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자'이면서 동시에 반드시 '블로거'여야 한다는 확고한 비전을 제시한다. <br />
<br />
그러나 현재 이처럼 기자들 중심으로 운영되는&nbsp;신문사 블로그가&nbsp;좀 더 독자들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a href="http://www.zdnet.co.kr/news/internet/etc/0,39031281,39148102,00.htm">'블로그와 전쟁중인 신문사, 묘책이 없다?'</a>라는 기사에 따르면 일부 외국 신문들은&nbsp;원본 기사 관련 블로그 검색 기능은 물론, 블로그 글을&nbsp;신문 '지면'에까지 실어주는 등 적극적으로&nbsp;블로거들과 함께&nbsp;호흡하려 노력하고&nbsp;있다. 예를 들면, 여행 섹션의 한 지면을 여행 블로그 글에서 뽑아&nbsp;채우는 식인데, 이는 한국 신문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한 마케팅 방안이라고 생각된다.&nbsp;미니 홈피 사용자들이나 블로거들이 접속자 수와 인기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nbsp;자신의 글이 신문 지면에 개재됨으로써&nbsp;인지도가 높아져 인기 블로그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은 블로거들에게&nbsp;신문사 블로그를 이용하는 큰 merit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프랑스 Le Monde의 경우에도 뉴스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블로그 풍의 기고로 제공하는 등 블로거들의 신문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br />
<br />
물론 어느 사이트에서&nbsp;제공하는 툴을 사용하느냐가 블로깅을 하는 데&nbsp;있어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블로그가 더이상&nbsp;소소한 일상사를 기록하는식의 주관적인 감상이나 근거없는 주장을 펼치는 사적 공간이 아닌, 각자의 책임있는 발언으로 사회적 공론을 형성하고 가치있는 정보들이 공유되는&nbsp;1인 매체(media)로서 자리잡기 위해서는&nbsp;그 흐름을 리드할 세력이 필요하고,&nbsp;이 새로운 블로그 문화 형성에 언론사가 앞장서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적극적인 자사 웹사이트 블로그의 마케팅을 통해 많은 기자, 독자 블로거들을 확보한다면, 편집국과 독자들이 지면과 웹을 넘나들며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문화와&nbsp;함께 창조적 공론장을&nbsp;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nbsp;블로그를 위한 웹사이트 접속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증가하는 광고수입 또한 기대해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문과 블로그의 win-win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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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ism</category>

		<comments>http://hyejin112.egloos.com/452826#comments</comments>
		<pubDate>Tue, 17 Oct 2006 14:52:00 GMT</pubDate>
		<dc:creator>Ari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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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newspaper.COM and BLOG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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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어떤 학자들은 여론을 'fiction(또는 phantom)'이라고 단정지었다. 즉 사람들은&nbsp;특정 isuue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갖고있지 않다가 매스미디어 등에 의하여 시시때때로&nbsp;만들어지고, 곧 사라진다는 것이다.&nbsp;Iyengar와 Kinder 도 실험을 통해 미디어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어떤 이슈에 대한 참가자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효과적으로 'prime'하는지를 밝혀냈다. <br />
<br />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신문의 핵심 기능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바로&nbsp;Agenda–setting effect다. 그러나,&nbsp;이것&nbsp;또한&nbsp;다매체 사회에서&nbsp;역시&nbsp;포털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되어버렸다.&nbsp;때문에, 이제는 what이 아니라 how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nbsp;즉, 얼마나 '고급스럽게' 의제 설정 기능을 해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따라서 포털에서 흔히 볼 수 있는&nbsp;통신사 뉴스에&nbsp;의한 단순하고 단편적인 사실 전달이 아닌, 심층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게 되었고&nbsp;결국&nbsp;'기획, 탐사보도'만이 신문의 미래요, 살 길이라는 결론이 보인다.<br />
<br />
그러나 탐사보도는 돈과 시간 그리고 열정과의 끝없는 싸움이라고 할 정도로 한 건의 기사를 생산하기까지의 과정이 힘들다. 더구나 국내언론사의 경우 탐사보도를 위한 회사의 지원은 최소한에 그치는 경우가 대분이다. 조선일보가&nbsp;2004년 탐사보도팀을 만든 이후 1년여만에 해체한 것도 ‘한국적 탐사보도’의 현주소를 가늠케 한 사건이었다. 국내언론사에 탐사보도팀 부서가 있는 곳은 세계일보, 중앙일보, 부산일보, KBS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다른 언론사에도 유사한 팀이 있지만 기획취재팀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br />
<br />
<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610/16/22/d0032222_05105336.jpg" width="115" height="17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0/16/22/d0032222_05105336.jpg');" align="left" />올해&nbsp;삼성 언론상을 받기도 했던 중앙일보 탐사기획팀(사진-이규연 팀장)의 <a href="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1691837">'한국사회 파워 엘리트 대해부 시리즈'</a>(지난해 9월 22~30일 보도)는 광범위한 자사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nbsp;무려 3만명이라는 인물들을 분석, 자료화 해 보도했다.&nbsp;이런 방대한 기획과 작업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nbsp;신문사만이 가진 '자본'과 전문적 인력(즉 '취재력'), 그리고 'DB'다.&nbsp;미래 신문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nbsp;시티즌 저널리즘이나 현재의 '오마이 뉴스'로는&nbsp;꿈도 꿀 수 없는 작업이 바로 이런 식의 탐사 보도라고 본다.&nbsp;그리고&nbsp;이런&nbsp;기사들이&nbsp;주가 되어 '신문 보도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주는&nbsp;데에서부터 신문의 존립 가치가 형성되므로, 앞으로 탐사 저널리즘을 위한 신문사의 지원과 노력이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br />
<br />
그리고&nbsp;이런 신문의&nbsp;역할에 대응하는&nbsp;독자들의&nbsp;몫이 바로 토론이다.&nbsp;이것이 공론화 되었을 때 정책에 반영되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nbsp;이상적 민주 사회를 가능케 할 수 있다. 따라서 저널리즘의 기능은 신문 뿐만 아니라 독자가 함께할 때 진정으로 그 힘을 발휘한다. 즉, 누구나 기자가 될 수는 없어도 칼럼니스트는 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인터넷 사회는 우리에게&nbsp;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참여와 네트워킹을 가능케 했고, 그것이 바로 '댓글'과 '블로그'의 등장이다. 그리고 단순히 일회적 의견 표현에 지나지 않는 댓글 보다는 웹상의 무한한 네트워크를 통해 자유롭고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한 블로그야말로 저널리즘의 새로운 선발주자다. 또한 이는 정치 사회적 담론이 과거의 소수 엘리트 층들만의 논의가 아닌, 누구나 참여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훨씬 더 민주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nbsp;있다.<br />
<br />
이런 블로그 활동은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종이 신문보다는&nbsp;누구나 이용 가능하고 무료로&nbsp;접할 수 있는 '신문사 웹사이트'와 함께&nbsp;가능하다.&nbsp;따라서 신문이 제 기능을 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nbsp;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신문사 닷컴의 '무료 컨텐츠'가 핵심인 것이다. 따라서, 광고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nbsp;어떻게 사람들을 신문사 닷컴으로 끌어모으는지가 관건이다. 현재는 포털을 통해서 대부분의 뉴스를 볼 수있기 때문에 굳이 신문사 웹사이트를 방문하지 않아도&nbsp;되는 시스템이므로 포털에 컨텐츠 공급을&nbsp;끊는 것이 우선이다.&nbsp;하지만&nbsp;사람들을 끌어오기 위한 수단으로써, 포털에서&nbsp;제목을 클릭하면 신문사 웹사이트로 이동하는 deep&nbsp;link가 가장 효율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신문사들간의 경쟁 상황을 보면 다들 prisoner's dilema에 빠져 서로의 눈치만 보고있는 듯 하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걱정하기 보다는, 포털에 대항하는 신문사들간의 강력한 의지와 담합으로 맞설 때이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egloos.com/pds/200610/16/22/d0032222_05100697.jpg" width="430" height="9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egloos.com/pds/200610/16/22/d0032222_05100697.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610/16/22/d0032222_05105285.jpg" width="400" height="12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0/16/22/d0032222_05105285.jpg');" /></div>신문사 웹사이트의&nbsp;블로그를 활성화하는 것도 하나의 효과적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 다음이 E-MAIL, 네이버가 지식검색 기능과 블로그를 내세워 성공했 듯, 신문사도&nbsp;블로그 기능을&nbsp;아예 전면에 내세우면&nbsp;어떨까?&nbsp;개인 홈페이지와&nbsp;유사한 분위기의 네이버 블로그와는 달리, 신문사 블로그는 일단 시사&nbsp;issue를 주로 다루는 미디어적 측면을 강화해,&nbsp;바로 이것을 '브랜딩화'하는 것이다.&nbsp;현재의 신문사 블로그들은 주로 자사 신문기자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일반 독자들도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 미미한 현실이고, 이제는&nbsp;신문사 블로그가 기자 중심이 아닌, 독자 중심으로 가야한다.&nbsp;종이 신문을 무엇을 보느냐로 인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듯, 신문사 블로그도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고, 이러한 유대감 등이 토론에 더 적극 참여하게 하는 촉매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nbsp;신문사 홈페이지에 블로그를 갖게 되는&nbsp;사람이 많아질 수록, 신문사 닷컴에 접속하는 숫자가 많아지고, 광고수입이&nbsp;늘어남과 동시에,&nbsp;정보 전달의 기능을 넘어선&nbsp;광범위한 공론의 장이 형성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p>물론 현재도 신문사 블로그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방안이 얼마나 현실성과 효과가&nbsp;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케팅'이다.&nbsp;독자 참여의 일환으로 블로그 기능과 모바일을 통합하여&nbsp;우수한 기능적 퀄리티를&nbsp;앞세운다면, 현재의 네이버 블로그를 따라잡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고 본다.(신문기사 블로그에 바로담기 기능, 댓글또는 트랙백 실시간 통보기능 등)&nbsp;또한 기자들 또는 편집국과의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모든 온라인 신문사가 꿈꾸는 미디어의 커뮤니티화와 포털화의 핵심에 바로 블로그 서비스가 있다.<br />
<br />
현재 국내, 외국 신문사 블로그들의 현황은 다음 포스트에서&nbsp;좀 더 자세히&nbsp;다뤄 볼 예정이다. <br />
&nbsp;&nbsp; </p>			 ]]> 
		</description>
		<category>Journalism</category>

		<comments>http://hyejin112.egloos.com/446136#comments</comments>
		<pubDate>Sun, 15 Oct 2006 18:30:42 GMT</pubDate>
		<dc:creator>Arie</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TimesSelect의 성공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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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a title="" href="http://skysay75.egloos.com/406102">신문이 영향력은 정보의 질에 근거한다. </a><br />
<br />
네, '언론사의 영향력만큼 정보의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하늘바라기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런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 양질의 정보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것이 신문사의 가장 큰 목표이자 의무겠죠. 그러나 '상품가치가 낮은 기사는 설득력도 낮다'는 문제에 대해선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r />
<br />
사실 정보의 양이란 산술적인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정보의 신뢰도를 판단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는 그 기사를 어디서&nbsp;얼마에 얻었느냐 보다는&nbsp;'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생산되었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언론사의 영향력이 그 힘을 발휘하는거죠.. 언급하신 NYT의 TimesSelect에 대해선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nbsp;한&nbsp;블로그에서도 이에 반대하는 글<a href="http://www.pbs.org/mediashift/2006/06/open_letter_to_the_timesmr_sul.html"> Mr. Sulzberger, Tear Down This(TimesSelect) Wall!</a>에 관해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었군요. (페이지 왼쪽 하단에 나옵니다)<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egloos.com/pds/200610/04/22/d0032222_11105628.jpg" width="200" height="6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egloos.com/pds/200610/04/22/d0032222_11105628.jpg');" /></div>그러나&nbsp;TimesSelect의 성공이 과연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요?&nbsp;물론 양질의 정보를 얻기위해 그만큼의 경제적 댓가를 지불한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소리바다가 유료화에 결국 실패한 것처럼 인터넷에서의 네트워킹을 통해 유료 기사가 흘러나가는 것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아무리 신문사.com이 유료화를 실시한다고 해도, 결국 그 기사를 정말 돈주고 보는 사람만 바보가&nbsp;되는 상황이 오는거죠. 저작권법이 아무리 확대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꺼라고 봅니다. 지금 P2P를 막을 수 없는 것 처럼요. 앞서 L.A Times나 Boston herald가 유료화에 실패하고 다시 무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것도 이런 흐름과&nbsp;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br />
<p>이 밖에 많은 미국의 네티즌들은 온라인 광고가 점점 활성화 되고있는 마당에 NYT.com이 지금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일반 뉴스에 관한 광고수입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nbsp;이와 함께 타임즈셀렉트의 칼럼니스트들이 무료 매체인 블로그로 옮겨가는 문제에 관한 <a href="http://www.pbs.org/mediashift/2006/06/opinionpage_makeoverturn_ny_ti.html">Turn NY Times Columnists Into Bloggers</a>라는 글도 흥미롭습니다. '영향력있는 칼럼니스트'가 블로거가 될 경우, 독자들은 무료로 정보를 얻는 동시에 블로거는 광고수입으로 타임즈셀렉트의 전체 수입과도 맞먹는 이윤을 챙길 수 있다는 얘기죠.&nbsp;</p><p>따라서, 이런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했을 때,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한 기사의 공유는 paper를 통한 정기 구독자를 뛰어넘는,&nbsp;신문사의 '영향력을&nbsp;극대화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야&nbsp;한다고 봅니다. 양질의 정보를 생산해 독자들의 신뢰도를 얻게 되면 사이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겠죠.&nbsp;그러면 광고 수입도 자연히&nbsp;늘어날 것이구요.. 따라서 신문사 스스로 유료화라는 벽을 쌓는 것은 독자들로부터 벽을 쌓는 것과 같은&nbsp;모험이지 않을까요?&nbsp;특히나 '유료화'에 아주아주 민감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겐 더더욱..;;;<br />
<br />
Times&nbsp;Select의 성공은 뉴욕 타임즈라는 언론사가 제공할 수 있는 '고급 정보'에 대한 독자들의 강력한 신뢰와 수요가 동반되어 나타난 '특별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문사들이 그런 신뢰도를 확보하기 전까진&nbsp;아직 유료화는 너무 모험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어디까지나&nbsp;'저의' 생각이었습니다. ^-^;<br />
<br />
* 참고로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a href="http://www.nytimes.com/products/timesselect/overview.html?mkt=ts%3Amkt14daybig">TimesSelect 체험판</a> 을 소개합니다.<br />
&nbsp;&nbsp;&nbsp;&nbsp;&nbsp; </p>			 ]]> 
		</description>
		<category>Journalism</category>

		<comments>http://hyejin112.egloos.com/408529#comments</comments>
		<pubDate>Wed, 04 Oct 2006 14:15:12 GMT</pubDate>
		<dc:creator>Arie</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Disadaption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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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a title="" href="http://afternews.egloos.com/406575"></a><a title="" href="http://afternews.egloos.com/406575"></a><a title="" href="http://afternews.egloos.com/406575"></a><a title="" href="http://afternews.egloos.com/406575"><img class="image_righ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egloos.com/pds/200610/04/22/d0032222_09104489.jpg" width="244" height="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egloos.com/pds/200610/04/22/d0032222_09104489.jpg');" align="right" />사라져 버린 매체</a> <br />
<br />
라아노님의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앞서 신문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던 제 주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그러나 결론은 역시, ‘희망은 있다’라고 나오는데.. 제가 너무 optimist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br />
<br />
<strong>1. 정책</strong><br />
사실 국가에서 종이 신문을 완전히 없애라는 정책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날로그 TV가 중단된다고 해서 TV자체를 없애라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날로그보다 화질이 좋은 디지털 TV로 대체된다고 해서 반발할 국민들은 많지 않겠지만, 종이 신문의 readability를 선호하는 수많은 독자들이 있는 상태에서 과연 그런 정책이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br />
<br />
<strong>2. 기능적 대체성</strong><br />
인터넷이 종이신문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우선 인터넷이 대체할 수 있는 신문의 기능은 종이에서 컴퓨터로서의 ‘전달매체’의 변화에 머무른다고 생각합니다. newspaper의 본질은 paper에 있는 게 아니라 news에 있죠. 즉, 인터넷 뉴스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신문입니다. 인터넷이 뉴스의 제공자 역할은 할 수 있지만 생산자 역할까지 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블로거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뉴스만으로 전문적 저널리즘을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신문이 가진 또 하나의 기능인 자율성! 언제 어디서든 가지고다니며 펼쳐볼 수 있는 신문과 달리, 인터넷은 공간적 제약이 있죠. 물론 모바일도 있습니다만, 신문이 가진 방대한 정보를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신문은 활자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사진, 그래픽 등을 포함해&nbsp; 한 지면에 여러크기, 여러 종류의 기사를 입체적으로 담아내니까요. <br />
<strong></strong><br />
<strong>3. 우수성</strong><br />
신문만이 가진 플러스알파. 저는 ‘취재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양질의 정보를 추구하려 들 것이고, 신문사가 가진 막강하고 전문적인 취재력이 없다면 그런 기사들은 만들어지기 힘들겠죠. 여전히 신문의 정보수집 능력은 방송을 압도한다고 봅니다. 뉴욕 타임스가 가진 1,200명의 기자, 그들이 수집하는 정보가 바로 경쟁력이죠.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도 해당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신문사가 가진 기사들을 물론 자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만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방대한 정보와 맥락을 연결해 전달하기엔 인쇄 매체가 아직은 더 효율적이라 봅니다. 관심 있는 기사만 클릭해서 보는 인터넷 뉴스로는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으니까요.. 여기저기서 정보가 넘쳐나지만 책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겠죠.<br />
<br />
<strong>4. 익숙성</strong><br />
인터넷이 이미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았고,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읽는 행위가 보편화된 이상 익숙함 면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팩스와 텔렉스, 익스플로러와 네스케이프처럼 인터넷과 종이신문은 그다지 유사성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까요?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또는 아침을 먹으면서 문득문득... ^-^;; <br />
<br />
<strong>5. 용이성</strong><br />
인터넷은 조금만 익숙해지면 연령을 막론하고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보급에 있어서도 앞으로 몇 년 내에 완전해지겠죠.. 이점엔 토를 달 수가 없네요.<br />
<br />
<strong>6. 네트워크적 속성</strong><br />
사실 신문이 인터넷에 가장 밀리는 부분이 네트워크적 속성이죠. 다행히도 라아노님의 말씀대로라면 신문의 디스어답션 가능성은 낮아진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음... 이유에 대해선 좀 더 생각해봐야 겠습니다..;;<br />
<br />
<strong>7. Who has the network power?</strong><br />
결국은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elite층이겠죠. 정보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그들 역시 신문을 포기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인터넷이 있지만, 신문은 fact&nbsp;이상의 좀 더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정보를 전달하니까요.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 신문들이 그들에게 이런 믿음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더 이상 신문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전달하느냐는 중요하지 않게&nbsp;되었기 때문에,&nbsp;그 정보를 얼마나 '깊이' 있게, 정확한 '판단'을 가미하여 전달해 주느냐의 저널리즘 기능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br />
<br />
결국 신문이 사회에 유용한 것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는 먼저 신문의 질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종이 신문을 지켜내야 할 필요성을 못느낀다면, 가차없이 디스어답션의 전철을 밟게&nbsp;되겠죠. 종이신문을 사랑하는 한사람으로써,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수 밖에요... 			 ]]> 
		</description>
		<category>Journalism</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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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4 Oct 2006 08:10:16 GMT</pubDate>
		<dc:creator>Arie</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New Design, New Format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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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9211800231&amp;code=970205"></a><a h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9211800231&amp;code=970205"><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egloos.com/pds/200610/04/22/d0032222_12103043.jpg" width="146" height="19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egloos.com/pds/200610/04/22/d0032222_12103043.jpg');" align="left" />아르마니가 신문 편집을 하면 어떤 모양일까? </a><br />
<br />
신문인지, 패션잡지인지 구분은 잘 안가지만 그래도 역시 탁월한 감각이다. 기사가 갖는 컨텐츠의 중요성만큼이나, 그 컨텐츠를 잘 포장하는 편집 디자인의 힘 역시 신문의 사활이 걸린 문제 중 하나다. 에디터즈 웹로그에 올라와있는 <a href="http://www.editorsweblog.org/print_newspapers//2006/10/upcoming_changes_at_wall_street_journal.php#more">WSJ의 redesign</a>에 대한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 하루가 다르게 빠져나가는 독자들을 붙잡기&nbsp;위해 참신하고 능률적인&nbsp;편집과 차별화된 섹션, 포맷 변경 등&nbsp;외국 신문사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반면, 우리나라 신문들은 시각적으로도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을까? <br />
<br />
사실 신문은 읽는 것이기 이전에 '보는'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얘기. 동아는 제목에서 고딕체가 많이 들어가 힘은 있지만, 조금 딱딱하고 지루한 면이 없지 않다.&nbsp; 한겨레는 글씨체의 특성상 여백이 많은 느낌인데, 여유롭기 보다는 왠지 좀 허전해 보인다. 중앙은 도표나 그래픽의 사용이 다른 일간지에 비해 많아 화려하고 신선하지만, 가끔 산만해보이기도 한다. 그에 비해 조선일보는 전체적으로 시원한 느낌이지만&nbsp;제호를 비롯해 아직까지는 조금 무거운 이미지다.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신문사들이 독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고민하는&nbsp;모습이 눈에 보였으면 하는 바램이다.&nbsp; <br />
<br />
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의 사용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일간지들은 크기에 있어서 약간 소극적인 듯 하다. 글로 쓰여진 기사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많은 말을 전달 해 줄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그러나 국내 신문들에선 지면을 압도하는 큰 사진들은 물론, 외국 신문들과 같은 감수성이나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사진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또한 한폭의 잘 그려진 일러스트레이션은 지면의 품격을 한결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가뭄에 콩 나듯 하나씩이다. 이처럼 아직까지 국내 신문에선 스포츠 지면을 제외하고 사진이나 그래픽은 기사의 보조자료 정도의 느낌이다. 이미 화려한 영상 미디어에 익숙해져 높아질대로 높아진 독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좀 더 과감해 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br />
<br />
개인적으로 난 하루빨리 우리나라에 타블로이드판 일간지가 탄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젊은 층들은 주로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미어터지는 전철 속에서 넓은 일간지는 페이지 넘기기부터 접어 읽기까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타블로이드판은 선정적인 편집을 하는 이른바 `대중지'의 주요 판형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무가지 이미지 때문에 일간지로서는 ‘품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시각의 차이라고 본다. 작년 10월 타블로이드판으로 변신한 WSJ(아시아, 유럽판)을 비롯해 워싱턴 포스트, LA 타임즈 등 많은 신문들이 작은 사이즈를 선호하는 독자들의 취향에 맞춰, 판형을 축소하고 있는 것은 이미 세계적 Trend다. 전통적인 `대판' 편집을 고수하며 타블로이드판으로의 이행을 거부했던 영국의 대표적 권위지 가디언도 젊은 독자층이 많은 인디펜던트지가 타블로이드판으로 성공하자, 결국 대판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실 컨텐츠의 질이 문제지, 종이 크기가 무슨 상관인가? 발상의 전환에 따라 광고시장과 용지대 절약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앙일보가 타블로이드 판형 도입을 고려했다가 시기상조라는 판단 하에 유보되었다고 들었다. 이미 잘나가고 있는 중앙보다는 진보 성향의 젊은 층이 많이 구독하는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이 이런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한다면, 너무 모험일까? <br />
But, nothing venture, nothing win-!!! 			 ]]> 
		</description>
		<category>Journalism</category>

		<comments>http://hyejin112.egloos.com/405596#comments</comments>
		<pubDate>Tue, 03 Oct 2006 15:19:45 GMT</pubDate>
		<dc:creator>Arie</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The Power Of Editing-!!!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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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신문사 인턴시절, 편집부에서도 1달을 보냈다.<br />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신문 편집은 취재기자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매우 역동적인 매력이 있다. 편집은 곧 시간 싸움이다. 6시무렵 나오는 '가'판에서부터 새벽 2시가 넘어 제시간에&nbsp;'라'판이 나오기까지 끊임없이&nbsp;회의를 하고, 속보를 채우고, 제목을 바꾸고,&nbsp;지면을 다듬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말 신문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nbsp;덕분에 우리집에 오는 신문이 '라'판이 아닌, '다'판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nbsp;(사실 별거 아니지만, 왠지&nbsp;같은 돈 내고 미완성품을 받아본단 생각에 괜시리 불끈했던 기억..ㅋ)<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610/03/22/d0032222_07103944.jpg" width="500" height="300.89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0/03/22/d0032222_07103944.jpg');" /></div>똑같은 기사라도 그 기사를 어떤 형식으로, 어느정도의 크기로, 무슨 제목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그&nbsp;느낌과 영향력은 천차만별이다. 그때 당시 아동 성폭행 사망사건이 있었을 때, 타 신문사에서는 사회면 1단으로 나갔던 기사가 조선일보에서는 사회면 Top에 4단으로 실렸던 적이 있다.&nbsp;그리고 다음날 후속 기사는 과감히 1면 Top으로,&nbsp;그리고 일주일 내내 사회면을 비롯한&nbsp;모든 지면에 아동 성폭행 관련 기사가 실렸다. 그중에서도 사망자 아동 장례식 스케치 기사는&nbsp;큰 사진과 함께 거의 사회면 전면을 할애해&nbsp;여론 몰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nbsp;이렇게 '의도적'편집의 결과, 공론 조성에 성공해&nbsp;결국 정부에서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유전자 정보 은행을 설치하는 '성범죄 종합 방지대책'을 발표하고(한나라당 전자팔찌 논란이 있었던...) 당시 피해 아동의 장례식이 있었던 2월 22일을 '아동 성폭력 추방의 날'로 제정하기까지 했다.&nbsp;신문의 힘, 그중에서도 편집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던 경험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사회부 기자들과 사회면 편집기자들의 합동 회식 자리가 있었다. 이번 '공조'가 이뤄낸 성과에 대해 자축하는&nbsp;의미에서 마련된 자리. 그때&nbsp;사회부장께서 폭탄주잔을 부딪치며 외쳤던 구호는, 그야말로 자부심 팍팍 느껴지는 "Change the world" 그때의 그 흥분된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 구호는 그 후 술자리마다 애용되어&nbsp;거의 한달을 갔다...^-^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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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떤 기사가 편집에 의해 이렇게 키워질 수 있는 반면, 어떤 기사는 또 마구마구 짤려나가 구섞에 1단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이것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편집기자의 권한이다. 하지만 편집기자 역시 데스크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 원래 4단이었던 기사가 편집 회의 후 2단으로 줄어들기도 하고, 원래 싣고싶었던 기사를 빼야하기도 하고, 좀&nbsp;파격적인&nbsp;제목이나 사진은&nbsp;수위가 낮춰지기도 하고... 결국 이 모든걸 결정하는건 '윗분들'이기에, 아무리 젊고 다양한 성향을 가진&nbsp;취재기자들과 편집기자들이 있어도 조선일보가 조선일보일&nbsp;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직접 보고나니 조금 허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nbsp;그 자리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이고, 지금도 그 과정에&nbsp;있는 중이므로 변화의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본다. 이처럼 우리나라 신문사의 편집국은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데,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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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좌파적 성향으로 인식되는 미국의 유력지들 중 하나인 '뉴욕 타임즈'는 William Safire라는&nbsp;극우 칼럼니스트를 영입하는 파격적&nbsp;인사를 감행했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신문의 '정파적'특성상,&nbsp;한 편집국 내에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다. 이처럼&nbsp;우리나라 신문이&nbsp;특정 정치성향 위주의 정파적 저널리즘이&nbsp;고정화된 반면 서양에서는&nbsp;대부분 시장 저널리즘이 대세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은 다양한 정파적 신문들이 있어야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신문을 지원했다. 그러나 정파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신문은 결국 쇠락했고, 다수 대중에 적응한 신문들만 살아남았다. 이런 예들만 놓고&nbsp;보자면, 우리나라 신문이 신뢰도를 얻기 위해선 강한 정파적 입장을 버려야 할 것 같기도 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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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nbsp;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화'이론에 의하면 이 예들은 '대중매체'로서의 신문발전 단계에 해당한다. 즉 인터넷&nbsp;뉴스의 등장 전까지라는 얘기...&nbsp;대다수 독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이런 전략은 지금까지는 유효했을 것이다. 그러나&nbsp;인터넷이 등장한 이상,&nbsp;단순 사실 관계의 정보는 누구나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게&nbsp;되었다. 따라서 언론의 고유한 기능인 '시사 논평'이 신문의 주요&nbsp;기능으로 강조될 수 밖에 없다.&nbsp;또한&nbsp;치열해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제지 등 전문지가 아닌이상, 어느정도 특정 성향의 독자를 겨냥한 정파적 성향을 띨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나라&nbsp;주요 일간지들이&nbsp;성향면에서 별 차이가 없어&nbsp;각자가 나름의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는 데 있다.&nbsp;우리 사회 전체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 합리적 진보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유력한' 신문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한겨레는 이제 위태위태해 보인다.&nbsp;또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nbsp;우리나라 신문들이 정치적 사안을 다룸에 있어서의 차분함의 결여다. 언제나 국민과 똑같이 흥분하고, 오히려 흥분을 조장하기까지 하는 신문들에게 좀 더 위엄있는 비판적 대안 언론으로서의 모습을 갖춰주길 바라는건 무리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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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2 Oct 2006 20:03:26 GMT</pubDate>
		<dc:creator>Ari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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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신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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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SIZE: 100%"><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3.egloos.com/pds/200610/04/22/d0032222_06105527.jpg" width="348" height="26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0/04/22/d0032222_06105527.jpg');" /></div></span></span><span style="FONT-FAMILY: Verdana"><span style="FONT-SIZE: 100%">신문의 위기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br />
혹자는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종이 신문의 종말을 예언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은 쉴새없이 쏟아져나오는 뉴미디어들 속에서 더이상 신문이 설 자리가 없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위기를 우리만 겪는 것은 아닐 뿐더러, 사실 그다지 새로운 문제도 아니다. 서구에서도 20년 전부터 다양한 매체의 등장과 함께 신문 위기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아무리 뉴미디어 시대라고 하지만 한국처럼 신문 산업이 퇴화하고 있는 국가도 드물다. 독자 수, 광고시장, 정치 사회적 영향력 모두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물론 IMF이후 계속되는 경기 불황 탓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른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우리만의 역사적 배경 때문이라고 보여진다.</span><br />
<span style="FONT-SIZE: 100%"></span><br />
<span style="FONT-SIZE: 100%">한국의 신문은 '한성순보' 발간 이후 구한말, 일제시대, 미군정, 군사 독재정권 등을 거치면서 국가의 통제와 개입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 사이 정치도구화, 재벌화 되면서 전 세계에서 보기드문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고, 신문의 품질과는 상관없는 왜곡된 시장이 형성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문이라는 매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얼마전 한 신문사 사주가 '민족의 적'으로 몰려 백주대낮에 피습당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이나 다른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 국민들은 언론 매체로서 '신문'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반감이 더 큰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매체들 속에서 굳이 신문을 고집하고, 사수해야 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한국 신문 위기의 핵심은 단순히 미디어 경쟁 속에서의 신문 산업의 위기가 아닌 신문 자체의 위기, 즉 저널리즘의 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독자들로부터의 신뢰도 확보가 우선인 것이다.</span><br />
<span style="FONT-SIZE: 100%"></span><br />
<span style="FONT-SIZE: 100%">신문의 미래는 TV, 인터넷 등 다른 매체가 대체할 수 없는 신문만의 기능 및 장점을 통해 보장된다. 사실 뉴미디어의 등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라디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뉴스를 그대로 읽어주는 라디오에 의해 종이 신문이 없어질 것을 걱정했지만 신문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TV가 등장했을 때도, 라디오는 곧 사라질 것 처럼 보였지만 음악, 교통방송 등 나름의 활로를 찾아 21세기가 지난 지금 제2의 전성기란 말까지 나오고있다. 비디오에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기존 매체를 대체하거나 없애버리지 않았다. 다만 기존의 사회적 의미와 기능을 바꿔놓으며 상호 보완적으로 공생해왔다. 신문도 그동안 많은 매체의 도전을 받으며 예전의 단순 뉴스 제공자에서 종합 정보지로 탈바꿈해온 것 처럼, 지금의 인터넷이라는 괴물의 등장도 신문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라고 본다. 따라서 신문의 미래를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형식은 달라져도 최대의 정보집산지, 배포지로서의 신문은 유효할 것이라는 것이다.&nbsp; </span><br />
<span style="FONT-SIZE: 100%"></span><br />
</span><span style="FONT-FAMILY: Verdana"><span style="FONT-SIZE: 100%">그렇다면 신문이 다른 미디어를 제압할 수 있는 강점은 무엇일까? 인쇄매체가 영상 미디어와 경쟁할 수 있는 이유는, 책과 마찬가지로 '방대한 정보'와 그 '맥락'을 제공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30초짜리 뉴스만으로는 절대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관심있는 분야만 골라보게 되는 인터넷 뉴스와 달리, 신문에 실리는 정보는 매우 입체적이다. 한 지면에 여러 크기, 여러 형태, 여러 종류의 기사가 실린다. 따라서 의도하지 않더라도 모르는 분야와의 '우연한 만남'을 제공함으로써 지식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 마지막으로 신문의 가장 강력한 매력은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인인 벤자민 브래들리가 말했듯이 방대한 정보가 담긴 신문을 기적처럼 매일 아침 독자들의 문 앞에까지 배달하는 능력이다. 텔레비전 뉴스나 인터넷 서비스는 아직 신문만큼 많은 정보를, 신문 수준으로 가공하고 판단을 가미해, 그 정도의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할 능력이 없다.<br />
</span><br />
<span style="FONT-SIZE: 100%">그렇다면 앞으로 신문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그 얘길 해보려 한다.&nbsp; <!--StartFragment--></span></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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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ism</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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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2 Oct 2006 18:07:01 GMT</pubDate>
		<dc:creator>Ari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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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객관주의적 환상에 대하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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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title="" href="http://afternews.egloos.com/398099">Arie님의 결투 신청</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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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신청'이라고 하니 꽤나 심각한 느낌인데... 제 글이 그리 비장했나요? ㅋㅋ<br />
하버마스를 소개하다보니, 저역시 그의 이론에 동화되어 규범적 방법론쪽으로 좀 치우친 감이 없지 않은 듯 해서, 실증주의자들의 주장도 좀 알아봤습니다. 라아노님 말씀처럼 전통적 경험주의와는 많이 다른 것들이 있더군요. 제입장에서는 상당히 수긍이 가는 이론들이었고, 결국 라아노님 말대로 조용히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치열한 논의의 균형을 맞추고,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짧게(?) 소개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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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주의적 과학철학의 대표자로는 K. 포퍼를 들 수 있다. <br />
포퍼는 과학철학자로서는 특이하다 할 만큼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문제에 민감했고, 이 방면에 있어서도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는 한때는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했으나 곧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등의 전체주의 사상이 갖는 비인간성에 환멸을 느끼고 진보적 자유주의의 대변자가 된다. 포퍼의 사상은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로 요약된다. 이는 경험이나 감정의 역할보다 이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합리주의의 전통에 서면서도 독단적 이성이 아닌 비판적 이성을 주장한다는 데서 연유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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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egloos.com/pds/1/200610/01/22/d0032222_15104834.jpg" width="138" height="14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egloos.com/pds/1/200610/01/22/d0032222_15104834.jpg');" align="left" />이 비판적 합리주의는 먼저 인간의 이성은 원래 잘못을 범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앎은 언제나 잠정적이고 가설적인 성격을 지닌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완전한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따라서 모든 앎이란 합리적 비판을 통해 오류를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그의 핵심적 이론은 반증 가능성의 원리(Principle of Falsifiability)이다. 이 원리는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한 검증가능성의 원리(Principle of Verifiability)와 서로 대칭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포퍼는 논리 실증주의 철학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만의 진보적 자유주의 철학을 확립시켰다. 나는 지금까지 경험주의를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입장으로만 극단적으로 판단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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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가 그들과 다른 이유는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 여부'가 아닌 ‘반박 가능성의 유무'에 따라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나누었다는 점이다. 그는 귀납의 방법은 과학의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보고, 대신에 가설-연역적 방법을 진정한 과학적 방법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 우리는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에 부딪친다. 이때 잠정적인 해결로서 가설이 제시되고, 이것이 비판된다. 만약 시도된 해결이 관련된 비판에 개방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배제된다. 시도된 해결이 비판에 개방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반박을 시도한다. 만약 시도된 해결이 우리의 비판에 의해 반박을 견뎌낸다면, 우리는 그것을 잠정적으로 용인한다. 여기서 자명하고 확실함을 주장하는 반박불가능성, 반증불가능성은 이론의 장점이 아니라 이론의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br />
<br />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학은 검증된 지식체계가 아니라 다만 경험에 의해 시험가능하고 반박 가능한 지식의 체계일 뿐이다. 그것을 용인한다는 것을 그것을 최종적인 해결로서 생각해서가 아니라, 더욱 비판하고 논의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냉혹한 비판에 의해 통제되는 추측에 의해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며,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고, 비판적 논의에 의해 그것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갈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절대적 진리(이성)에 관한 믿음의 문제인가... 어쨌든 인간이란 능동적이며, 생물학적 및 문화적으로 제약되고, 또한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 있는 것이라는 이해에 의거한다는 포퍼의 관점은 내가 생각했던 기존의 실증주의적 관점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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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고 모든 기대를 거는 하버마스와 이러한 이성의 오류 가능성을 수용하는 포퍼의 입장은 명백히 대비를 이루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버마스가 토론을 통해 이성적 인간들 간의 합리적 의사소통으로 인한 사회 변화를 주장한 것처럼, 포퍼도 상호 비판과 토론을 통해 오류를 규정하려고 하는 사회를 열린 사회(Open Society)라 이름지었다. 결국 상호 작용을 통해 문제 해결에 접근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상당히 유사하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우리에게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기술적 이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삶의 양식으로까지, 달리 말해서 생활세계의 역사적 총체성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 기술적 합리성과 그 지배 논리의 보편화에 따른 비판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타락한 본성의 회복’을 통해 과학과 기술을 대체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지식의 한 범주로, 기술적 조정을 하나의 행위양식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br />
<br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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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Humanities</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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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1 Oct 2006 06:24:2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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