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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정훈의 월드리포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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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세계를 향한 넓고 큰 생각,
정치인 이정훈의 세계보고서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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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3 Aug 2008 06:22:5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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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정훈의 월드리포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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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정훈의 세계보고서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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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구소련 지역, 젊은 정치인들의 무한도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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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 그루지아 총리와의 대담<br></span></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br>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서열을 맞춰 궤도를 그리면서 공전한다. 국가간의 국제질서 역시 태양계와 비슷한 흐름을 유지하면서 운영된다. 강력한 문명국가가 자리 잡은 곳에는 반드시 그 국가를 중심으로 위성국가들이 존재한다. 강대국의 구심력과 적절한 힘의 균형을 유지할 원심력이 있는 국가들은 궤도를 유지하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들은 끝내 강대국의 영역에 흡수 통합되기도 한다. </span></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과거 소비에트 연방이 거대한 연방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였다. 사실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된 국가들은 인종과 역사 종교등에서 상당히 많은 편차를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이후 강력한 연방질서가 구축된건 소비에트 연방이 이끄는 구심력에 비해서 위성국가들의 독립노력이라는 원심력이 약했기 때문이다</span></p><p class="바탕글"></p><!--StartFragment--><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무수히 많은 독립국가들이 만들어졌다. 우리에겐 이름도 생소한 많은 국가들이 새로운 국제질서에 등장했다. 이들 중에는 여전히 분쟁과 갈등의 곤경에 빠져 자체의 원심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국가도 있다. 그러나 몇몇 국가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편입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최근 변화하는 자원, 에너지 중심의 세계경제의 흐름 때문이다. </span></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최근 필자는 에너지산업과 관련된 업무 차 과거 구소련 지역인‘우크라이나(Ukraine)와 그루지아(Georgia)’를 방문했다. 먼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영토를 가지고 있는 잠재력 높은 국가다. 우크라이나는 독립이후 대외 정책을 친 서방 정책으로 전환하여 러시아와 갈등을 빚어온 바가 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808/13/95/f0048295_48a25221cd55e.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808/13/95/f0048295_48a25221cd55e.jpg');" /></div></span></p><p class="바탕글"></p><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span style="FONT-SIZE: 85%; FONT-FAMILY: '굴림','Gulim'"><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span style="FONT-SIZE: 85%; FONT-FAMILY: '굴림','Gulim'"><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130%">-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에서 코레스니코프 회장과 함께한 필자</span></span></span></span></span></span></div><p class="MS바탕글"><br></p></span><p class="MS바탕글"><br>수도 키에프에서 만난 코레스니코프(</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fareast-font-family: 바탕체">Vitaliy V. Kolesnikov)</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회장은 가스, 오일, 원자력,전기 분야의 67개 회사을 거느리고 한해 매출 17조원을 달성하는 All-Ukrainia Energy Company의 총수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경제를 “소비폭발의 시한폭탄”이라고 비유했다. </span></p><p class="MS바탕글"><p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자본주의 경제체제 편입이후 성장률과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특히 신흥 기업가들이 등장하여 고급 소비가 촉발되는데 반해서 이것을 충족할 소비시장이 부족하다는 것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수도 키에프에는 고급빌라와 호텔들의 건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고급주택의 경우 분양하기 무섭게 사전주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span></p><p class="MS바탕글"><p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우크라이나를 떠나 그루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필자는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루지아 정부를 이끄는 한 축인“구르게니제”총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루지아는 우리로 치면 6월항쟁 격인 장미혁명 이후 집권한 현 정부가 보수적인 친 러시아 성향 보다는 개혁적인 친서방쪽의 노선을 걷고 있다. </span></p><p class="MS바탕글"><p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이는 젊고 역동적인 정치지도자들과 그들의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재선한 샤카슈빌리 (Mikheil Saakashvili) 현 대통령은 1967년생으로 41세이고 미국 뉴욕의 콜롬비아 로스쿨 출신이고 구르게니제(Vladimer Gurgenidze) 총리는 1970년생, 38세로 미국 아틀랜타의 명문 Goizueta Business School의 MBA 출신이다. <br><br></span></p><p class="MS바탕글"><p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08/13/95/f0048295_48a252224d96a.jpg" width="500" height="29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08/13/95/f0048295_48a252224d96a.jpg');" /></div><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span style="FONT-SIZE: 85%; FONT-FAMILY: '굴림','Gulim'"><span style="FONT-SIZE: 100%"><p></p><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span style="FONT-SIZE: 85%; FONT-FAMILY: '굴림','Gulim'"><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130%">- 그루지아 그루게니제 총리와 면담 중인 필자</span></span></span><br></span></span></span></div><p class="MS바탕글"><br></p></span><p></p><p class="MS바탕글"></span></span>그루지아 총리와의 면담에서 필자가 듣게 된 그루지아의 국정운영의 방향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주장이 정부의 규제는 없애고 민간의 경제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되 대신 정부는 예산의 1/3을 소외계층의 복지혜택에만 직접 부여하는 등의 “이상주의적 신자유주의 체제”를 구축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span></p><p class="MS바탕글"><p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이들은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먼저 투자활성화를 위한 각종 세금인하 정책이다. 법인세는 이미 15%로 낮게 책정되어 있고 이에 발맞추어 개인 근로소득세도 25%에서 15%로 곧 인하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뿐 아니라 내년 1월중 주식투자나 배당투자 등에 붙는 자본이득세도 없애 금융투자를 활성화 하고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 문제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450 만명인 인구 수준을 늘리기 위해 노동시장 개방 등의 자유이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루지아는 외국인 체류기간이 90일에서 360일로 연장되었고 외국에서 노동인력을 들여오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span></p><p class="MS바탕글"><p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마지막으로 총리는 발전, 의료, 항공 산업 등을 민영화 하며 특히 올 4월부터 그루지아 수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국제 입찰이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기업의 참여도 기대해 본다는 말을 했다. </span></p><p class="MS바탕글"><p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그루지아를 이끄는 정치지도자들의 경제이념은 “민영화를 과감히 추진하되 정부나 공기업차원의 독점계약이 아닌 자유경쟁 체제 하에 투자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으로 이는 전형적인 미국식 자유경제 시스템처럼 여겨졌다. </span></p><p class="MS바탕글"><p class="M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과연 이들이 꿈꾸는 이상주의적 자유시장경제가 성공할지는 두고 볼일이다. 그러나 구 소련지역 하면 아직도 보수적 사회주의 잔재가 강해 투자의 위험이 있을 것이다 라고 오해하고 있는 국내기업인들에게 그루지아 정치인들의 무한도전은 모처럼의 신선한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연 세계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br><br></span></p><p class="바탕글"><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808/13/95/f0048295_48a2525b595ed.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808/13/95/f0048295_48a2525b595ed.jpg');" /></div><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span style="FONT-SIZE: 85%; FONT-FAMILY: '굴림','Gulim'"><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85%"><p></p><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바탕체"><span style="FONT-SIZE: 85%; FONT-FAMILY: '굴림','Gulim'"><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SIZE: 170%">- 그루지아 그루게니제 총리와 면담을 마치고</span></span></span></span></span></span></div><p class="바탕글"></p></span><p class="바탕글"></p></span><p></p><p class="바탕글"></span></span><br><br>(8월13일 경상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br><br><a href="http://www.ksilbo.co.kr/new_ksib_nws.php?action=read&amp;t_mcategory=8&amp;t_scategory=5&amp;t_no=224058">경상일보 원문보기</a></p><br/><br/>tag : <a href="/tag/그루지야" rel="tag">그루지야</a>,&nbsp;<a href="/tag/우크라이나" rel="tag">우크라이나</a>,&nbsp;<a href="/tag/그루지아" rel="tag">그루지아</a>,&nbsp;<a href="/tag/이정훈" rel="tag">이정훈</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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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2. 우크라이나/그루지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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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3 Aug 2008 00:00: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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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최근 신흥경제권 위기평가 (포스코 경제연구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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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a href="http://pds9.egloos.com/pds/200808/08/95/Thisweek_POSRI_Report08-51-final.pdf">Thisweek_POSRI_Report08-51-final.pdf</a><br><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8/95/f0048295_489b890a2df79.jpg" width="500" height="451.38888888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8/95/f0048295_489b890a2df79.jpg');" /></div></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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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3. 책만들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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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7 Aug 2008 23:41:24 GMT</pubDate>
		<dc:creator>이정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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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서문) 대한민국의 운명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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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 FONT-FAMILY: 문체부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문체부 바탕체; mso-fareast-font-family: 문체부 바탕체"><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문체부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문체부 바탕체; mso-ascii-font-family: 문체부 바탕체"><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문체부 바탕체; mso-hansi-font-family: 문체부 바탕체; mso-fareast-font-family: 문체부 바탕체"><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span style="COLOR: #666666"><br></span></span></p><!--StartFragment--><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역사적으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끊임없이 시대의 패권을 쥔 신문명들의 분쟁지역이었다. 수천년간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군림해온 중국이 대표적인 대륙세력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했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패권국이 생겨나 한반도의 정치. 경제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이렇듯 우리의 역사는 우리 스스로의 의지보다는 세계사적 변화와 문명이동에 따라 좌우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대한민국이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한반도 중심의 좁은 시야가 아니라, 세계사적 문명 흐름속에서 한반도의 미래와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이것을 해야 할 임무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5천년 대한민국의 역사에 있어서 두 번의 눈부신 역사가 있었는데 하나는 고려 초 광종시대이고 다른 하나는 위대한 세종시대이다. 두 시기 모두 당대 세계문명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한 노력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앞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에 전력한 행동들이 있었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실제 “국제 동아시아 과학사학회’에서 15세기 전반의 동아시아 시대를 ”세종의 시대“라고 규정한 바 있다. 또한 일본 도쿄대 연구진이 낸 ‘과학기술사 사전’에도 세종시대 전 세계적인 과학기술 업적이 29개나 실렸을 정도다. 같은 시기 중국은 3, 4개, 일본은 아예 없었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고려 광종과 조선 세종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당대 유능한 지식인 그룹의 지식경쟁과 결합되고 마침내 온 백성의 통합의 열정과 맞물려 위대한 한반도 시대를 연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의 성공모델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그러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이런 역동적인 발전을 다시 찾아보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70년대 경제개발을 상징하는 한강의 기적이나 중동특수 등을 예로 들 수 있지 않는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주어진 현실의 노력일뿐 세계사적 문명을 이해하고 이를 주도하려는 노력과는 무관했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기회는 되려 21세기 초반 IT기술의 혁명에서 찾아왔다. 11세기 고려시대의 발전원동력이 무역이고 15세기 세종시대의 성장전략이 과학기술이었다면 21세기 초반 한반도에는 인터넷과 IT혁명이라는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IT 혁명은 실질적으로 세계사적 문명의 흐름을 한반도로 돌리는데 기여했다. 인터넷. 무선모바일등의 직접적인 상징물들 말고도 제조업, 금융, 서비스 모두 IT기술을 접목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달성했으며 이를 통해 기업과 국민 그리고 국가브랜드 모두가 혁명적인 수준의 레벨업을 달성한 것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IT혁명을 통해 한국이 세계사적 중심으로 떠오르자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부심 또한 고양되었다. 이런 자부심과 열정이 결합하여 2002년 한일 월드컵 같은 초대형 월드 퍼포먼스 행사들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그러나 1~2년 사이 이러한 동력들은 급속하게 저하되기 시작했다. 비록 수출은 늘고 기업의 브랜드는 향상되었지만 대한민국 전체로 볼 때 열정과 주도력은 유지되지 않고 있다. 특히 기업가들의 기업가 정신과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이 눈에 띄게 사그라들고 있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새로운 모험 산업을 주도하기 보다는 기존의 국내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기업가들의 태도, 도전보다는 안정을 택해 나약하게 공무원이나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태도에서 세계사를 향한 한반도의 열정을 찾기 어렵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누군가 다시금 기업가들에게 젊은이들에게 도전의 흥미를 촉발시키고 이들의 용기를 북돋워 줄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들이 해야할 몫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우리는 목표를 가지고 세계사적 흐름을 주도할 때 번영했고 반대로 국내의 좁은 기득권에서 매몰될 때 참혹한 패배를 기록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세계는 빠르게 변화한다.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고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코 변화의 결과에 대해 만족할 수 없다. 뒤처지는 것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한반도는 끊임업이 도전하고 노력해야 하는 숙명적 입장을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가 이를 대변한다. 머물러 있으면 그대로 뒤처지고 몸을 움직여 노력하면 문명의 일원으로 세계사적 흐름을 선도한다. 이는 명확한 역사적 결과이고 이를 이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숙제가 아닌가 싶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19세기 구한말 당시 조선은 세계 열강의 먹잇감이 되어 국토와 정신 그리고 미래까지 유린당했다. 이는 유럽의 중소국가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이 국가차원에서 범선을 띄워 탐험가들을 독려하고 미지의 항로를 개척할 때 조선의 사대부들은 형식논리에 빠져 당쟁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누군가 말했다. 준비하지 않는자에게 미래는 없다고. 정확한 표현이다. 준비하지 않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국민에게 미래를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누군가 지금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당장의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해도 이를 준비하는 노력이 있어야 훗날 그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또한 정치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조금은 부끄럽지만 조심스럽게 스스로에게 나의 활동에 대한 자기 암시의 주문을 이렇게 걸고 있다.<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30/95/f0048295_489014333fed2.jpg" width="300" height="38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30/95/f0048295_489014333fed2.jpg');" /></div></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666666"></span><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666666"><br><br>- 이정훈의 월드리포트 서문</span></span></p></span></span></span></span></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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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3. 책만들기</category>

		<comments>http://hoonreport.egloos.com/642468#comments</comments>
		<pubDate>Wed, 30 Jul 2008 03:42:18 GMT</pubDate>
		<dc:creator>이정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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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그루지아에 대해서 (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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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공식명칭 : 그루지야(Georgia) <br></span><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인구 : 4,474,000 명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면적 : 70,152 km2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수도 : 트빌리시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정체·의회형태 : 중앙집권공화제, 다당제, 단원제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국가원수/정부수반 : 대통령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공식언어 : 그루지야어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독립년월일 : 1991. 4. 9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화폐단위 : 그루지야라리(Georgian lari)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개요</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과거에 소련을 구성했던 공화국 가운데 하나이다. 흑해 동남해안을 끼고 있으며, 카프카스 산맥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 터키, 동남쪽과 남쪽으로 아제르바이잔 및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접한다. 그루지야 내의 아브하지야·아자르 자치공화국에는 주로 비(非)그루지야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수도는 트빌리시이다. 면적 69,700㎢, 인구 4,934,000(2003 추계).</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자연환경</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그루지야 대부분의 지역은 산악지대로, 카프카스 산맥에 속하는 봉우리들의 평균 높이가 4,600m 이상에 이른다. 카프카스 산맥이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고 흑해의 영향을 받아 기후는 온난하다. 그루지야 서부에서는 습윤한 아열대성 해양기후가 나타나는 반면, 동부는 온대성 습윤기후에서부터 건조한 아열대성 기후까지 다양하다. 흑해 연안에 비옥한 콜히다 저지가 있으며, 리오니 강과 잉구리 강이 그곳을 지난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국민</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그루지야인들은 처음부터 카프카스 산맥 주변에 정착한 민족으로 추측되며, 4세기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6세기부터 여러 봉건국가들이 이 지역에 세워졌으나 13세기에 몽골을 비롯한 이민족들에게 침략당하면서 500만 명에 이르던 인구가 크게 줄어드는 대참사를 겪었다. 19세기초 러시아에 합병되었으며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인구가 13세기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인구의 2/3를 차지하는 그루지야인(그들 자신은 카르트벨레비라고 함)들은 카르트벨리야어족(남카프카스어군)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대부분이 그루지야 정교회의 신자이다. 소수민족으로는 아르메니아인(약 8%), 러시아인, 아제르바이잔인 등이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경제</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공업이 발달했으며 수력발전·광업·기계산업 등이 특히 활발하다. 석탄, 망간, 비금속계 광물이 채광되며 1956년부터는 철도 생산되고 있다. 전동차·대형차량 및 토목공사 장비를 비롯하여 선반·정밀기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이 생산되며 무기질비료·합성섬유·의약품 등의 화학공업도 이루어진다. 그밖에 면·모·실크 등의 천연섬유와 그것을 소재로 한 의복이 생산된다. 그루지야의 농지는 부족하고 경작하기도 어려워 홍차·감귤류·포도·사탕무·담배 등 노동집약적 농업에 적합하다. 이밖에 교통 기반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정치·사회</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1990년 복수 정당의 참여가 보장된 가운데 자유총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는 비공산당 연합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들은 1991년 그루지야의 독립을 선언했다. 1992년 그루지야는 1921년에 제정된 소비에트 시대 이전의 헌법을 복원시켰다. 같은 해 헌법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행정부 권한의 허용범위에 관한 오랜 논쟁 끝에 1995년 새 헌법을 채택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이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며 총리와 내각을 임명한다. 입법부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235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최고회의이다. 사법부는 지방·시 법원과 최고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1980년대까지 소련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그루지야 공산당이 유일 정당으로서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점차 고조되는 민족주의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개혁 정책에 힘입어 많은 정치집단이 등장했다. 현재 주요 정당으로는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결성한 그루지야시민연합, 개혁 성향의 국민민주당, 그루지야 독립을 촉진하기 위해 1989년에 결성된 그루지야인민전선, 1893년에 결성되었다가 그루지야의 소련에 병합으로 해산되었던 그루지야사회민주당 등이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그루지야는 최고 수준의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온천으로 유명하다. 중등교육까지는 무상 의무교육이며, 각 단계마다 높은 진학률을 보인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그루지야어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고등교육 기관으로 1918년에 설립된 트빌리시국립대학교가 있다. 많은 신문·정기간행물이 발행되고 있는데 대부분 그루지야어를 사용한다. 라디오 방송은 그루지야어와 몇몇 소수민족 언어로, 텔레비전 방송은 그루지야어와 러시아어로 이루어지고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문화</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그루지야는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다. 4세기에 문자가 만들어졌고, 5세기부터 그루지야 특유의 문학이 나타났다. 그루지야인·그리스인들에게 수사학을 가르친 고대의 고등교육 기관이 그루지야 중부의 콜치스에 있었으며, 중세에는 중세 최초의 고등교육 기관인 이칼토·겔라티의 학당들이 12세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전파했다. 12세기에는 그루지야인의 민족 정신을 잘 표현한 시인 쇼타 루스타벨리의 민족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 Vepkhis-tqarsani〉가 나왔다. 그 후 18세기에 작가 술칸-사바 오르벨리아니, 소설가·시인·극작가 일리아 차프차바제 등이 나타났다. 19세기에는 극작가 기오르기 에리스타비가 근대 그루지야 연극을 확립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러시아 혁명 이전에는 서정시인 아카키 체레텔리, 카프카스의 소설가 알렉산드르 카즈베기, 자연시인 바자 프샤벨라 등이 활동했으며,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그루지야 출신인 스탈린이 소련을 통치하고 있을 때 많은 작가들이 수난을 당하는 가운데 소설가 미헤일 자바히슈빌리, 시인 티치안 타비제가 처형되고 시인 파올로 이아슈비리는 정부의 비판을 받고 자살했다. 1987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텐기즈 아부라제 감독의 영화 〈후회 Repentance〉는 당시의 억압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그루지야는 연극과 건축 문화의 전통을 자랑한다. 그루지야 연극은 유럽과 기타 지역의 연극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쳐 온 왔으며, 아르메니아 건축과 더불어 비잔틴 양식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그루지야의 건축문화는 오늘날 많은 수도원·교회 등의 대형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많은 신문·정기간행물이 그루지야어로 발행되고 있으며 라디오 방송은 그루지야어와 몇몇 소수민족 언어로, 텔레비전 방송은 그루지야어와 러시아어로 이루어지고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역사</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그루지야 일대에 처음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목축과 농업에 종사하던 부족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콜치스 라고 알려진 전설적인 부(富)의 땅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까지 알려졌다. BC 65년에 로마 제국에 합병되었고,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AD 337년 이후 3세기 동안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간의 분쟁에 휘말렸다. 654년 이후 아랍의 칼리프들이 이 일대를 다스렸는데, 그들은 티플리스(트빌리시) 시를 거점으로 토후국을 건설했다. 8세기 말부터 12세기까지 아르메니아에서 기세를 떨쳤던 바그라티드 왕조가 그루지야인들과 카프카스 혈족이 살던 이 지역을 통일했다. 바그라트 3세(975∼1014)는 그루지야 동부와 서부의 모든 공국을 하나로 통합했다. 그루지야는 타마라 여왕의 재임(1184∼1213) 동안 동쪽의 아제르바이잔에서 북서쪽으로 체르케스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범(汎)카프카스 제국을 이루면서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범카프카스 제국이 몽골의 침략을 받은 1220년부터 그루지야의 황금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1386∼1403년에 티무르의 맹공격을 받고 경제적·문화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타격을 입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함락되면서 그루지야는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와 교류할 수 없게 되었고, 그후 3세기에 걸쳐 투르크와 페르시아인들의 계속되는 침공에 시달렸다. 1783년 러시아와 그루지야 조약을 맺어 독립을 보장받는 대신 러시아의 종주권을 인정하기로 했으나, 1795년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았을 때 러시아로부터 원조를 전혀 받지 못했으며, 1801∼64년 그루지야 내의 왕국들은 차례로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루지야를 모든 외부세력으로부터 보호하여 그 실체가 말살되는 것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 킵차크 한국).</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그루지야는 1917∼21년에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배권에 속하는 자카프카지예라는 이름의 나라에서 자카프카지예 독립국으로, 이어 그루지야 독립국이 되었다. 그루지야 독립국은 처음에는 독일 보호령이었으나 이어 영국에 점령되었다가 1920년 1월 사실상 독립했고, 1921년 연합국으로부터 합법성을 인정받았다. 1921년 2월 적군에 의해 소비에트의 지배를 받는 자카프카지예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1936년에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대체되면서 소련의 일부로 편입되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1990년 그루지야 역사상 최초로 복수 정당이 참여한 가운데 자유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독립을 기치로 내세운 비공산 연합이 승리해 정권을 잡았고, 1991년 4월 9일 그루지야는 마침내 독립을 선언했다. 초대 대통령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한 즈비아트 감사후르디야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감사후르디야의 권위적 통치는 지지세력의 반발을 초래했고, 1991년 말에는 내전이 발발했다. 결국 감사후르디야는 1992년 1월 대통령직에서 축출되고, 3월에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소련 외무장관 출신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가 그의 뒤를 이었다. 그루지야는 1992년 국제연합(UN)에, 1993년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1992년 북서쪽에 위치한 아브하지야 자치공화국이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그루지야 정부가 군사적 대응에 나서면서 그루지야는 내전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1993년 7월 러시아의 중재로 양측 사이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으며, 이에 따라 UN 그루지야 정전감시단(UNOMIG)이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아브하지야 자치공화국 및 남오세티아 내의 분리 움직임과 다른 내부적 위협들에 대처하는 한편,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우호적 관계를 통해 신생 공화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한국과의 관계</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그루지야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듬해인 1992년 12월 14일 한국과 수교조약을 맺었다. 양국은 현재 각각 주러시아 대사에게 공관 업무를 겸임케 하고 있다. 한국은 특히 1994년 10월 대위·소령급 장교 5명을 UN 평화유지활동(PKO)의 일환으로 그루지야에 파견했으며, 1999년 4월 현재 군 옵서버 3명이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7년 현재 그루지야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수는 교민 250명, 체류자 5명이다. 아직까지는 양국간 무역이 활발하지 않지만 그루지야는 한국으로부터 의료기기, 설탕, 과자류, 플라스틱 제품, 의류 등을 수입하고 있다.</span></span> <o:p></o: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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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2. 우크라이나/그루지아</category>

		<comments>http://hoonreport.egloos.com/624246#comments</comments>
		<pubDate>Fri, 25 Jul 2008 12:45:56 GMT</pubDate>
		<dc:creator>이정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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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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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우크라이나</span>&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공식명칭 : 우크라이나(Ukraine)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인구 : 46,757,000 명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면적 : 603,628 km2 (남한 면적의 6배)</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수도 : 키예프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정체·의회형태 : 중앙집권공화제, 다당제, 단원제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국가원수/정부수반 : 대통령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공식언어 : 우크라이나어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독립년월일 : 1991. 8. 24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개요</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유럽권 남동부에 있는 러시아에 이어 2번째로 큰 나라. 수도는 키예프이다. 북쪽으로 벨로루시, 북쪽·북동쪽·동쪽으로 러시아 연방, 남쪽으로 아조프 해, 흑해, 남서쪽으로 몰도바·루마니아, 서쪽으로 헝가리·슬로바키아·폴란드와 접해 있다. 1924년 소련의 구성 공화국이 되었다. 1991년 8월 소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후 바로 독립을 선언했으며, 그해 12월 1일 국민투표를 거쳐 독립을 확정했다. 독립국가연합(CIS)의 가입국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자연환경</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동유럽 평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크라이나는 전반적으로 평균고도 175m의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부 지방은 드네프르 저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드네프르 강이 통과한다. 북동부에는 중앙 러시아 고지의 한 지맥이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흑해 저지가 흑해와 아조프 해 연안을 따라 펼쳐지다가 크림 반도의 북부 크림 저지대로 이어진다. 흑해와 아조프 해 사이에 있는 크림 반도의 남쪽 연안에서 시작되는 크림 산맥은 나란히 뻗은 3개의 줄기로 이루어졌으며, 이 줄기들 사이사이에는 비옥한 골짜기들이 있다. 서쪽으로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240km 이상 뻗어 있다. 온대기후권에 속하며, 연강수량이 400∼600㎜에 이른다. 대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적당히 따뜻하고 습기찬 공기의 영향을 받는다. 겨울에는 서쪽이 동쪽보다 더 따뜻한 반면 여름에는 동쪽이 더 무덥다. 연평균기온은 북쪽의 5.5∼7℃와 남쪽의 11∼13℃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강수량은 고르지 않은 편으로 추운 계절보다 더운 계절에 2∼3배 더 많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눈은 11월말과 12월초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크림 반도의 남쪽 연안에서는 따뜻하고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우크라이나를 흐르는 대부분의 주요강들은 평원을 거쳐 아조프 해와 흑해로 유입된다. 드네프르·유주니부크·드네스트르 강 등이 흑해로 흘러가는 대표적인 강이며, 도나우 강은 우크라이나의 남서부 경계를 흐른다. 돈 강의 지류인 도네츠 강의 중류는 도네츠 분지의 주요수원을 이루며 우크라이나를 거쳐 간다. 드네프르 강은 우크라이나의 가장 중요한 강으로 수력발전과 관개를 위한 댐이 여러 곳에 세워졌다. 그밖에 강과 강을 잇는 운하들과 천연호·인공호 들이 있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우크라이나는 천연자원의 보존을 중요한 과제로 여긴다. 1921년에 최초로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아스카니야-노바 자연보호구역에는 김의털과 나래새가 자라는 처녀지 스텝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고, 멸종위기에 처한 종(種)들을 번식시키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오나거와 프르제발스키호스를 비롯한 약 40여 종의 포유동물들이 보호되고 있다. 그밖에도 흑해 연안의 일부를 포함한 여러 곳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국민</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우크라이나인은 전체 인구의 70%이상을 차지한다. 우크라이나어는 슬라브어군에 속하며, 러시아어·벨로루시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약 20%를 차지하는 러시아인이 가장 큰 소수민족이다. 그밖의 소수민족으로는 유대인·그리스인·루마니아인·아르메니아인·집시·헝가리인·타타르족·추바슈인·리투아니아인·바슈키르인·카자크인 등이 있다. 소련을 이루었던 공화국들 가운데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었으며, 특히 고도로 공업화된 도네츠 분지와 드네프르 저지 및 농업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삼림-스텝 지대에 인구가 조밀하다. 주요도시는 키예프·하리코프·오데사·도네츠크·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자파로지예·크리보이로크·리보프 등이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경제</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삼림과 스텝의 혼합 지대가 중남부를 가로질러 서쪽에서 동쪽으로 펼쳐져 있는데, 비옥한 흑토 때문에 겨울밀과 사탕무의 주요 생산국이 되었다. 그밖의 작물로 해바라기씨·옥수수·감자·포도·귀리·호밀·수수·메밀 등이 있다. 과일과 채소가 도시 외곽에서 재배되며, 소와 돼지가 전국에서 사육된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우크라이나에는 철광석·역청탄·무연탄이 풍부하고 도네츠 분지에는 망간을 포함한 광석 매장지들이 서로 가깝게 분포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중동부에 있는 이 지역은 이 나라의 공업 중심지로 유럽의 주요 중공업·야금업 단지이다. 천연가스와 석유가 소비에트 시대에 많이 고갈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생산된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우크라이나 경제는 중공업과 농업에 크게 의존한다. 또한 기본적인 광업에 있어서도 대량의 철과 강철을 생산하는 철금속 산업이 도네츠 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야금업용 장비, 자동차, 트랙터 등 내구 소비재가 도네츠 분지에서 생산된다. 화공업으로는 상당량의 황산과 광물성 비료가, 식품가공업으로는 분말설탕·육류·과일·낙농제품 등이 생산된다. 그러나 경공업과 소비재 부문은 중공업과 농업에 비해 뒤쳐졌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우크라이나 모든 지역에서 양봉업이, 트란스카르파티아에서는 양잠업이 이루어진다. 우크라이나는 지형이 평평하여 교통 장애 요소가 거의 없다. 철도가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은 도네츠 분지와 드네프르 강 유역이며, 철도의 중심지는 하리코프·키예프·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바흐마치·야시노바타야·데발체보·코벨·쿠퍈스크이다. 흑해와 아조프 해에 면한 오데사·일리체프스크·니콜라예프·헤르손·페오도시야·케르치·주다노프 항(港)을 통해 원양선박들이 출항한다. 항행이 가능한 주요강은 드네프르 강과 그 지류들인 프리파티 강, 데스나 강, 유주니부크 강, 도나우 강이다. 잘 짜인 간선도로망을 통해 모든 지역과 대도시들이 상호연결되어 있다. 특히 키예프-모스크바, 오데사-키예프-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하리코프-심페로폴, 키예프-하리코프-로스토프나도누 등의 도로가 중요하다. 주요공항은 키예프 근처의 보리스폴 공항과 오데사·리보프·하리코프에 있는 공항이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정치·사회</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1991년말 소련의 붕괴로 독립하게 된 우크라이나는 1990년대초 정치체계의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1922∼91년 소련하에서 소련 공산당의 지배를 받은 우크라이나 공산당이 우크라이나를 통치했다. 어떤 법안이든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던 입법부 최고소비에트는 의회의 기능을 가진 최고회의로 바뀌었다. 최고회의 의원은 다수 후보가 경쟁하는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총리는 의회의 승인을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각료들로 구성된 내각의 수반인 총리가 일상적인 정부 행정을 책임진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교육은 7∼15세에 의무적으로 실시되며, 고등교육은 주요 언어로 다시 자리잡은 우크라이나어를 통해 이루어지만 소비에트 시대에는 러시아어가 대신했었다. 여전히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초등학교와 중등학교가 도네츠 분지와 큰 규모의 러시아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남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문맹은 소비에트 시대에 퇴치되었고 1990년 이후 사립대학과 종교대학이 생겨났다. 키예프·하리코프·오데사 등지에 있는 국립대학교를 비롯하여 고등교육기관이 많다. 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는 산하에 많은 연구소를 두고 그들의 연구작업을 총괄한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시기에 병원, 공장·학교 부설 의료 센터, 조산소, 부인과 외래환자 클리닉 등을 포함해 광범위한 보건 설비 기반을 갖추었으나 의료진과 장비 부족으로 보건 수준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1991년에 사회복지제도가 재조직화되면서 확대되었다. 보조금은 부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가중시켰지만 시장 경제 체제로 바뀌면서 실직한 노동자들을 돕는 데에 쓰였다. 인구의 약 1/4가량이 연금을 받고 있으며 사회보장제도로 가족수당, 출산보조금, 신체장애자보상이 시행되고 있다. 재원은 근로소득세로 충당하고 있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문화</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우크라이나 문학의 전통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구전문학은 이보다 훨씬 앞선다. 소비에트 시대에는 정기간행물 〈리테라투르나 우크라이나 Literaturna Ukraina〉를 통해 V. S. 젬랴크, 곤차르, L. 우크라인카 등 우크라이나 작가동맹의 회원들이 글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의 음악은 아주 생명력이 넘치는데, 민속 음악이 특히 그러하다. 현대의 작곡가로는 콘스탄틴 얀케비치, 율리 메이투스, 유리 마이보로다와 플라톤 마이보로다 형제 등이 있다. 연극 또한 18세기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을 자랑한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역사</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이 지역에는 키예프 루시(9∼13세기), 갈리치아-볼리니아 공국(11∼14세기), 카자크 헤트마나테(17∼18세기), 크림 칸국(15∼18세기) 등 여러 나라들이 존재했으며, 19세기부터 우크라이나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여러 지역들이 기원전 첫 1,000년 동안에는 킴메리족·스키타이·사르마티아인에게, 서기 첫 1,000년 동안에는 고트족·훈족·불가리아인·아바르족·하자르·마자르족·페체네그족에게 침략, 점령당했다. 그러나 5, 6세기에 소수 슬라브족이 그들의 원거주지였던 카르파티아 산맥 북부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우크라이나 서부와 중북부의 삼림 및 삼림-스텝 지대에 정착하면서 가장 큰 발전을 이루었다. 마침내 슬라브족은 모스크바 주위의 미래의 러시아 국가 영토 북부 멀리까지 뻗어나갔다. 슬라브족의 초기 거주지들 가운데 키예프는 드네프르 강을 끼고 있으며, 폴리아니인의 중심지였다. 폴란드인과 발트 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드네프르 교역로를 지배한 바이킹(고대 스칸디나비아인)이 함께 키예프 루스라 알려진 이 국가를 세웠다. 처음에는 키예프 주변의 영토에 붙여졌던 루시라는 이름은 그후 키예프의 전 영역을 포괄하게 되었다. 키예프 루시는 블라디미르 1세(성 블라디미르)와 야로슬라프 1세(현명공 야로슬라프)가 통치하던 11세기에 가장 강성했다. 990년경 블라디미르 1세는 그리스도교를 왕국의 정식종교로 채택하고, 비잔틴 제국의 보호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지시 아래 교회의 성직위계를 만들었다. 동슬라브족은 그리스도교를 통해 최초의 문어인 고대교회슬라브어를 쓰게 되었다. 11세기에 가장 강성한 키예프 루스는 동유럽 주요 정치·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류리크 왕조).</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12, 13세기에 킵차크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내분이 일어나고 교역로가 바뀌자 차츰 세력을 잃어갔다. 13세기 중엽 몽골의 정복으로 키예프 시대는 결정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1200년경에 부상했던 우크라이나 서부의 갈리치아-볼리니아 공국은 14세기까지 존속했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14세기에 리투아니아가 갈리치아 공국을 제외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대부분을 합병했으며, 갈리치아 공국은 폴란드 왕국에 넘어가고 우크라이나 남부 지방은 여전히 몽골의 킵차크 한국(금장한국) 통치하에 있었다. 키예프 본국은 1458년 법제적으로는 독립된 두 나라, 즉 모스크바 대공국과 리투아니아로 분리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키예프 루시의 옛 영토는 빠르게 분산되었다. 1569년 루블린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는 리투아니아에서 폴란드로 넘어갔으며, 같은 해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연합의 협상으로 우크라이나 그리스 정교도와 우크라이나 가톨릭교도가 분열되었다. 종교적인 이견(異見)과 사회적 불화는 명목상으로는 폴란드 왕의 신하였으나 실상은 자유용병 계층이었던 자포로지예 카자크인들에 의해 가중되었다. 1648년 헤트만(군대 지도자)인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이끄는 카자크인들이 드네프르 강 하류의 자포로지예시치 요새를 거점으로 폴란드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으며, 그결과 그들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준(準)독립국가를 이루었다. 흐멜니츠키는 이 봉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1654년 모스크바 대공국의 차르와 협약을 맺었는데 모스크바 대공국은 이를 굴복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키예프와 드네프르 강 동쪽 영토에 대한 모스크바 대공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카자크 헤트만네테는 차츰 러시아 제국에 흡수되었다. 18세기말 우크라이나의 자치권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1783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합병하고, 흑해 연안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이 지역에 재정착이 급속도로 이루어졌고, 우크라이나는 19세기초 주요 곡물수출지역으로 부상했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18세기에 폴란드가 분할되자, 러시아 제국은 갈리치아를 제외한 드네프르 강 서부의 우크라이나 영토를 얻었으며, 갈리치아는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 (→ 폴란드 분할). 19세기에 전개된 우크라이나의 민족운동은 러시아 제국에서는 정치적인 억압과 우크라이나어에 대한 탄압(1863, 1876)으로 제한을 받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는 여건이 비교적 나았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 갈리치아의 우크라이나인들은 문화·정치·종교 단체들을 총망라하여 하나의 연대조직을 구축하기도 했다.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 이후 미하일로 흐루셰프스키의 주도하에 우크라이나 중앙 라다(라다는 '평의회'라는 뜻)가 키예프에서 결성되었으며, 10월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에는 러시아 공산주의 정부가 하리코프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웠다. 1917∼21년 여러 정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려고 다투었으나 결국에는 소비에트 정부가 승리를 거두었으며, 1924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소련의 일원이 되었다. 1919∼20년 볼셰비키와 싸웠던 폴란드가 갈리치아와 볼리니아 일부 지역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북서부를 여전히 지배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지자 1918년 11월 1일 우크라이나인들은 갈리치아의 수도 렘베르크(리보프·리비프)를 점령하고, 서부 우크라이나 민족공화국을 선포했으며 이 공화국은 1919년 1월 시몬 페틀류라가 이끈 우크라이나 민족공화국과 합쳐졌다. 그러나 그해 6월 우크라이나 군대가 갈리치아 영토 내에서 축출당했으며, 부코비나는 루마니아에 합병되고 헝가리에 속했던 옛 우크라이나의 주들은 신생국 체코슬로바키아에 귀속되었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1930년대초 요시프 스탈린 지배하의 소비에트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공업화와 농업의 집산화 정책을 급속도로 추진했다. 농업의 집산화는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혔지만 연이어 소비에트 정권의 곡물 압류가 유발되어, 1930년대초 기아로 인해 약 5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비에트 정권은 우크라이나의 문화 생활을 더 철저하게 통제했으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압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폴란드의 지배에 대항하여 갈리치아 동부에서 일으킨 저항운동은 탄압과 테러 행위로 점철되었으며, 루마니아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조직들을 냉담한 시선으로 대했다. 단지 체코슬로바키아령 루테니아(지금의 자카르파츠카야)에서만 우크라이나인들은 폭넓은 정치적·문화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독일-소련 불가침조약(1939)에 따라 폴란드령이었던 갈리치아 동부와 볼리니아 서부가 우크라이나에 편입되었다. 1941년 6월 독일군이 소련을 공격하고 우크라이나를 빠른 속도로 점령했을 때, 처음에는 우크라이나 현지의 지지를 다소 얻었으나 나치 독일이 농업뿐만 아니라 모자란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무자비하게 착취하자 곧 게릴라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1945년 독일의 패배로 소련이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폴란드·루마니아·체코슬로바키아의 땅이었던 우크라이나의 모든 영토를 차지함으로써 대부분의 영토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귀속되었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1940년대말 집산화 정책이 시행되고 우크라이나 가톨릭 교회가 불법화되자(1946∼89)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불만이 고조되어 전시의 게릴라 저항운동이 계속되었다. 1953년 스탈린이 죽자 소련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다소 약화되었으나, 우크라이나를 계속 소련에 묶어두고자 하는 기본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1980년대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시행한 이후 많은 우크라이나인들, 특히 지성인들 사이에 민족주의가 새로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러한 감정은 민주화된 우크라이나 의회가 1990년 공화국의 주권을 선포할 수 있도록 이끈 촉진제가 되었다. 1986년에는 소련이 건설한 핵발전소에서 원자로 노심(爐心)이 녹으면서 대참사의 화재가 발생한 체르노빌 사건이 일어났다. 1991년 8월 고르바초프에 반대해 일어난 공산당 강경파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 우크라이나 의회는 독립을 선포했고, 1991년 12월 국민투표를 통해 법률을 제정했다. 12월 소련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전세계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새로운 국가로 변모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소비에트 시대의 국영 경제를 신속히 개혁하지 못해 독립 후 여러 해 동안은 생산의 감소, 인플레이션의 증가, 실업의 확산 등으로 시달렸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한국과의 관계</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되기 이전에는 소련과 같은 맥락에서 한국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정식으로 독립한 뒤 1992년 2월 10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북한과는 1992년 1월 9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주요 협정으로 과학기술협력협정(1992. 7)·무역협정(1995. 11)·투자협정(1996. 12) 등이 있다. 1996년 현재 대한 수출액은 1억 969만 달러이며, 대한 수입액은 1억 438만 달러이다. 1997년 현재 교민은 8,669명, 체류자는 123명이다. </span></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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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2. 우크라이나/그루지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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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5 Jul 2008 10:35:14 GMT</pubDate>
		<dc:creator>이정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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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소문의 공포” - 베트남 상공회의소 회장과 대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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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span></p><p class="바탕글"></p><br>2005년 8월 31일, 100만 명의 순례군중이 이라크 바그다드의 “무사 알 카딤” 사원을 향해 행진하고 있던 순간, 티그리스 강 “알 아이마” 다리에서 누군가가 군중을 향해 “다리위에 자폭 테러범이 있다”라고 소리쳤다. 군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다리를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대열은 붕괴되었다. 이 사고로 무려 1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사망자 대다수는 군중에 밟혀죽은 어린이와 노약자였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곳에 테러범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끔찍한 사건은 누군가가 유포한 잘못된 정보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사례를 “소문의 공포”라고 불렀다.<p></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최근 들려오는 베트남의 외환위기설이 바로 비슷한 사례다. 물론 베트남 경제에 위험요소가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베트남에 투자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베트남에 지난 1988년 이후 무려 135억 달러(약 13조5000억 원)를 투자했다. 따라서 만일 베트남의 경제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자산 가치 하락으로 큰 손실이 우려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언론 등에 회자되는 베트남 경제위기설은 지나치게 증폭되고 호들갑스러운 면이 있어 보인다. 특히 베트남 현지의 경제인들의 말을 빌리지 않고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포장되는 것이 우려스럽다. <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16/95/f0048295_487d6a43b54c8.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16/95/f0048295_487d6a43b54c8.jpg');" /></div></p><div style="TEXT-ALIGN: center">- 부티엔 록 회장과&nbsp;대담 모습(사진 오른쪽이 부티엔 록 베트남 상공회의소 회장)</div><p class="바탕글"><br>지난 7월 9일, 필자는 베트남 경제 문화 지도자들의 초청을 받아 베트남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베트남 국회의원이자 상공회의소 회장인 “부 티엔 록” 회장을 만났고 대화는 최근 베트남 경제 이야기로 좁혀졌다. 그는 우선 솔직하게 베트남에서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시인했다. 그는 현재 베트남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단기적 어려움의 원인은 세 가지라고 설명했다. 첫째, 세계 경제 침체의 영향이다. 베트남은 전체 GDP보다 수출액수가 1.5배 많은 국가이며 또한 개방의 폭이 넓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침체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둘째, 베트남 경제 구조의 비효율을 들었다. 특히 비용투입 대비 생산 효과가 좋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위하여 대내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셋째, 비효과적인 신용정책을 들었다.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위해서 은행들이 많은 자금을 대출했는데 이것이 유동성을 증가시켜 베트남 국민의 투기 심리를 자극했다 것이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하지만 이런 단기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계인들게 베트남의 투자환경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이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 근거로 2008년 상반기 까지 베트남의 직접 투자자금이 310억불에 달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것은 2007년 한해 전체 금액보다 높은 액수다. 우려했던 경제 성장률도 7% 달성하여 고속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했다. 97년 당시, 태국의 외환위기는 단기 외채의 문제로 촉발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의 단기 외채는 40억불에 불과하고, 반면 외화보유고는 200억불에 달하며 연간 100억불의 달러가 순유입 되고 있다고 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대화중 “부 티엔록” 회장은 한국은 그간 베트남의 성장모델의 본보기로서 베트남 경제인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는데 최근 한국 언론에 베트남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증가하고 있어 많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실제로 요즘 베트남에선 “한국 언론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라고 부추기는 것 아니냐.”라는 식의 안 좋은 소문이 들린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투자자와 기업이 베트남 정부로부터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그는 강조 했다. </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집단화된 대중은 공포에 민감하다. 예를 들어 사방이 막힌 캄캄한 공간에서 “불이야” 소리를 들었을 때 관객은 이성적 분별력을 상실한다. 그때가서 왜 질서를 지키지 않는가라고 말해봐야 소용없다. 이미 그곳은 비이성이 충돌하는 혼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도 대중에서 공포심을 자극하는 행위를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정보가 제한되어 있는 환경에서 공포를 자극하는 행동은 집단의 혼란을 자극하여 끔찍한 파국을 초래한다. 정치인, 언론처럼 대중을 이끄는 집단은 특히 더욱더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본다.</p><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전 청와대 행정관, 현 삼창기업 전무 이정훈 (울산매일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16/95/f0048295_487da51f8373a.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16/95/f0048295_487da51f8373a.jpg');" /></div></p><div style="TEXT-ALIGN: center">- 부티엔 록 상공회의소 회장과&nbsp;대담을 마치고</div><p class="바탕글"></span><br>&nbsp;</p><div style="TEXT-ALIGN: center">&nbsp;</div><br/><br/>tag : <a href="/tag/베트남" rel="tag">베트남</a>,&nbsp;<a href="/tag/경제위기" rel="tag">경제위기</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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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1. 베트남</category>
		<category>베트남</category>
		<category>경제위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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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7 Jul 2008 00:26:00 GMT</pubDate>
		<dc:creator>이정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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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베트남 경제위기는 한국에도 큰 타격 - 아시아투데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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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583" border="0"><tbody><tr><td class="view_title" colspan="2">베트남 경제위기는 한국에도 큰 타격 <!-- <img src="/image/sign/news_option0.gif" border="0" align="absmiddle"> --></td></tr><tr><td class="view_subject" colspan="2" height="30">우리가 최대 투자국, 누적투자액 13조원</td></tr><tr><td colspan="2" height="10"></td></tr><tr><td class="view_content" id="font" colspan="2">최근 경제위기설이 번지고 있는 베트남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여서, 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큰 타격이 우려된다. <br><br>1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은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로서 펀드투자 27억 달러를 포함, 지난 1988년 이후 누적투자액이 135억 달러(약 13조5000억원)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br><br>지난해 우리나라의 베트남에 대한 투자금액은 45억8000만 달러로, 2년 연속 베트남 투자 1위국이다. <br><br>이에 따라 베트남의 경제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자산 가치 하락으로 큰 손실이 우려된다.<br><br>정부는 최근의 베트남 위기설이 그간의 고성장에 따른 '성장통'이며 버블조정과정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판단하면서도, 과거 동남아 국가들의 환란과 같은 위기발생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렵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br><br>한국의 베트남 투자 누계액 가운데 펀드투자는 약 27억 달러, 부동산 투자도 작년 상반기에만 3400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br><br>건설업계의 경우 사업비 5조5000억원 규모의 따이호따이 신도시 건설에 5개 건설사가 참여하고 있으며, 4조원 규모의 냐베 신도시와 5조원 규모 메찌지구 사업에 국내 건설사가 참여하는 등, 모두 70개 건설사가 117건의 건설공사를 맡아 하고 있다.<br><br>정부는 베트남 주가지수(VN index)가 작년 3월의 고점 대비 68%나 떨어지는 등 자산가격 하락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우리기업이나 투자자들이 자금 및 환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br><br>다만, 베트남이 중국 이후의 투자 및 생산거점으로 여전히 유용하고 미래 발전가능성이 있으므로, 직접투자는 장기적 안목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br><br>재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IMF 위기를 맞았을 때 외국자본이 국내기업을 대거 매수하면서 국부유출 논란이 있었던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br><br>베트남은 올해 들어 무역적자가 크게 늘고 물가가 급등, 경제위기설이 확산되고 있으며 스탠더드 앤 푸어스와 피치사가 지난 5월 베트남 경제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하는 한편, 모건스탠리는 지난 1997년 태국 바트화 위기 때와 유사하다고 경고했다.<br><br>투자설비와 소비재 수입이 급증하면서 이 나라의 5월 무역수지 적자는 115억 달러로 전년 GDP 대비 16%나 되고, 5월 물가상승률도 전년 동월 대비 25.2%나 된다.<br><br>베트남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 목표를 9%에서 7%로 하향조정하고 물가 안정을 위해 2년 만에 세 차례에 걸쳐 금리인상을 단행, 현재 정책금리가 14%에 달하고 있으며 정부지출 억제와 승용차 수입관세 인상 등 긴축정책도 펴고 있다.<br></td></tr><tr><td colspan="2" height="10"></td></tr><tr><td><img height="14" src="http://www.asiatoday.co.kr/image/buttons/icon_mail.gif" width="19" align="absMiddle"> 윤광원 기자<!-- <a href="mailto: gwyoun@asiatoday.co.kr"> --> gwyoun@asiatoday.co.kr</a> </td></tr></tbody></t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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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1. 베트남</category>

		<comments>http://hoonreport.egloos.com/583234#comments</comments>
		<pubDate>Sun, 13 Jul 2008 17:27:15 GMT</pubDate>
		<dc:creator>이정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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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베트남 성장의 원동력은 8X, 9X 세대  - 전자신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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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전자신문 기사전송 2008-06-30 10:41&nbsp;</span>&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베트남에 대한 지구촌의 시각이 핑크빛 기대에서 회색빛 우려로 변했다. 높은 성장률과 무한한 잠재력에 너도나도 현지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외환위기가 닥쳐와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전 세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반면 8500만여 베트남 국민은 ‘개방’과 ‘혁신’을 통해 선진 베트남을 건설하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쳤다. 베트남의 신(新)인류로 불리며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는 ‘8X, 9X’ 세대를 통해 변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베트남의 현재 모습을 전한다. &lt;편집자주&gt;</span>&nbsp; <br><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06/95/f0048295_4870cfa3755b5.jpg" width="500" height="33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06/95/f0048295_4870cfa3755b5.jpg');" /></div><br><br>“디 우옹 카페 두옥 콩(Di uong caphe duoc khong).”</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베트남어로 “커피 마시러 가자”는 말이다. 마치 선약이라도 한 듯 아침 7시면 베트남 젊은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 중심가에 있는 카페로 모여든다. 전통 차 대신 모닝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새로운 풍경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베트남에서는 이 같은 신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테 헤 째(The he tre)’ ‘테 헤(The he) 8X, 9X’가 있다. 1980년에서 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베트남 일간 신문인 뚜오이 째(Tuoi Tre)는 ‘8X, 9X’가 베트남 경제의 심장부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2008년 6월 기준 베트남 총 인구는 8500만명으로 추정된다. 국제연합인구기금(UNFPA) 기준 베트남 총 인구 중 60%가 만 25세 미만이며, 이 중 33%는 만 15∼25세다. 덕분에 베트남 거리에는 나이 든 전쟁 세대는 거의 보기 어려운 대신, 젊은 이들의 활기로 가득차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8X, 9X 세대가 이른 아침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를 살짝 엿들어 보면 베트남의 변화상을 느낄 수 있다. 여느 나라 젊은이들이 벌이는 또래들 간 잡담이 아니다. 이들의 대화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은 사업에 대한 것이다. 어떤 사업을 했는데 얼만큼의 이익을 냈으며, 그 이익금을 가지고 어떤 일을 시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주위에 그 일을 도와 일할 사람이 있는지 대화를 주고 받는다. 친구들이 바로 비즈니스의 파트너이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협조자인 셈이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물론 이들이 하는 사업은 큰 규모는 아니다. 직원 수가 총 10명이 안 돼도 할 수 있는 자영업이 주를 이룬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은 휴대폰(중고 포함) 매매다. 베트남 신세대들이 한국에 못지않게 새로운 기술, 제품에 관심이 높아 최신 휴대폰과 노트북PC 등 전자·IT기기 사업을 선호하는 편이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사업 방식도 독특하다. 카페에서 가장 넒은 자리를 차지고는 가방에서 비닐 포장에 담긴 휴대폰을 꺼낸다. 5∼6개의 휴대폰을 올려 놓고 노트북PC에 휴대폰을 연결해 베트남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운용체계(OS)를 교체하거나 펌웨어(firmware)를 수정한다. 베트남에서 시판되지 않은 애플의 아이폰도 이들의 손을 거치면 거뜬히 통화가 된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이처럼 베트남 젊은이들의 손재주(?)는 뛰어나다. 이들은 소프트웨어나 IT 프로그램 개발 수준이 인도만큼이나 높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IT 분야에 대한 남다른 학구열도 이들의 실력을 뒷받침하고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베트남 대학생은 자신의 전공 외에 제2, 3의 전공을 복수로 공부한다. 전공 외의 과목 수강도 자유롭다. IT 전공자지만, 취업후 회계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싶다면 석사과정을 이수하지 않고, 경영학과의 재무·회계 과정을 신청해 야간학교에 다닌다. 이 때문에 대학교를 이미 졸업하고도 2∼3개의 전공을 추가로 공부하는 일이 적지 않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호찌민시에 있는 하노이 공대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이공계 대학이다. 캠퍼스 곳곳에는 자신이 만든 로봇 등 메카트로닉스 작품들을 들고 오가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틈난 나면 삼삼오오 모여 테스트를 진행하고 보완점을 토론한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분야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카무라 겐 교수가 이 대학에 공적 개발 원조 지원(ODA) 사업으로 모바일 RFID 등 관련 키트들을 기증한 것도 이 대학의 기술력을 방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8X, 9X 세대들의 높은 학구열과 도전 정신, 새것에 민감한 성향은 베트남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반면에 단점들도 꽤 나타나고 있다. 도시에 거주하는 베트남 젊은이들은 월급 액수에 따라 직장을 자주 옮기는 편인다. 또 개인의 능력은 우수하지만, 조직적인 프로젝트 참여에는 익숙하지 않다. 조직에서 요구하는 목적보다는 개인에 관심사에 치우쳐서 본인의 업무에 소홀한 때도 간혹 있다. 대부분이 휴대폰 판매 등 자영업을 복수의 직업(투 잡)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회사 생활에 충실하지 않는 편이다. 전쟁에서 미국을 이겼다는 자존심을 갖고 있어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을 다소 무시하는 성향도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베트남의 최근 상황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급격한 경제 발전에 힘입어 얻었던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이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하지만 베트남은 이 모든 상황을 뚫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침에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오후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컴퓨터 가게의 매상을 확인하고, 저녁에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베트남인들의 천성적인 부지런함과 내적 원동력이 그 이유다. 또 자기 계발과 새로운 도전에 젊음을 불태우는 혁신적인 8X, 9X 세대가 큰 자산이다. 어느 개도국이나 발전하는 과정에서 경제현황, 인플레이션 등 우려되는 문제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베트남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각 국의 원조와 지칠 줄 모르는 8X, 9X 세대의 열정은 베트남의 위기를 한낱 기우로 바꿔 놓을 것이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　뀌뇬(베트남)=정기욱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 IT부문 협력요원 processinnovation@hotmail.com</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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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1. 베트남</category>

		<comments>http://hoonreport.egloos.com/559934#comments</comments>
		<pubDate>Sun, 06 Jul 2008 13:58:32 GMT</pubDate>
		<dc:creator>이정훈</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베트남 경제위기의 허와 실 (내일신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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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내 일 신 문 2008-07-01&nbsp;</span>&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손승호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아시아팀장</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지난 10년간 7%가 넘는 고도성장을 지속해온 베트남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소비자물가지수가 작년 12월중 13%를 기록한 이후 5월에는 25%, 6월에도 27%나 상승하여 베트남 경제 불안의 근원이 되고 있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상품수지는 섬유류를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의 수출확대에도 불구하고 적자폭이 크게 늘어나 금년 상반기중에만 전년도 전체 적자규모인 124억 달러를 넘어선 169억 달러를 기록했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경제성장의 상징이었던 호치민시 주가지수(VN index)도 6월 30일 기준 395.37P를 기록, 2007년 5월의 최고점에 비해 64%나 하락하여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베트남 경제지표의 악화에 대해 다수의 국제금융기관들은 베트남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베트남에 투자한 외국인투자자 중 투자승인 및 유입 기준 제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시각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과연 베트남 경제는 이렇게 몰락할 것인가?</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베트남 경제를 우려하는 대부분의 기관들은 베트남 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한가지 공통적인 전제 조건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베트남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에 위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베트남 내 유동성 감축 들어가</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IMF는 3월 7일 베트남 정부가 다음과 같은 정책을 즉시 시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첫째, 베트남 경제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2007년 중 150%나 증가한 베트남 내 유동성의 감축 정책을 시행하라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가 숙원사업이었던 WTO 가입을 위해 국제적 기준의 대기업 육성과 주식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통화량 증가를 용인한 것이 이번 인플레의 대내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둘째, 환율의 유연성 확대이다. 베트남 동화 환율은 사실상 미 달러화에 연동(peg)되어 있다. 이는 수입 물가가 상승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최근의 상품수지 적자 확대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셋째, 국내 경기의 과열을 몰고 온 국영부문의 투자 축소이다. 베트남 국영기업은 경쟁력 있는 대기업 육성이라는 정부정책에 따라 국영상업은행으로부터 대규모 차입을 실시하였으나, 이 자금을 기업 경쟁력 강화에 사용하지 않고 부동산 및 주식 매입에 집중하여 거품을 불러왔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이러한 지적들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대응을 살펴보자.&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우선 베트남 중앙은행은 인플레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2차례에 걸쳐 14%로 인상하여 시중은행의 최대 대출금리를 21%로 올렸다. 또 국내 통화량 환수를 위해 금융기관들에 대해 13억 달러에 달하는 금융증서를 발행하였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기존에 승인한 투자사업의 시행, 외화대출의 상환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 사실상 외화 대출을 금지하였으며, 국영기업의 투자 억제를 위해 신규 투자를 전면 금지하였다. 그리고 미 달러화에 대한 동화의 환율 변동폭을 기존 상하 1%에서 상하 2%로 확대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경기조정 과정으로 보아야</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이러한 조치들을 고려하면 베트남 정부는 성장 정책에서 안정화 정책으로 선회한 것이 분명하다. 이는 IMF 등에서 제시한 정책 제안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결론적으로 최근의 경제불안은 유가, 곡물가 등의 대외적인 인플레 요인과 함께 국내 유동성 팽창으로 인한 경기 과열이 주요 요인으로 이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경기조정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nbsp;</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현재 베트남 경제가 불안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나 베트남 정부가 적절한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됨에 따라 경제가 외환위기 등으로 급격히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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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1. 베트남</category>

		<comments>http://hoonreport.egloos.com/559898#comments</comments>
		<pubDate>Sun, 06 Jul 2008 13:48:24 GMT</pubDate>
		<dc:creator>이정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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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베트남 위기 현장점검 (한국경제신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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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한국경제신문] 2008년 05월 25일(일)&nbsp;</span>&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포(베트남 전통 쌀국수) 가격도 너무 올라 맘놓고 먹기 힘들어요."</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베트남의 경제도시인 호찌민에서 만난 새내기 여성 직장인 응우옌 띠 뚱씨(26)는 "포요리 전문점에서 작년 말 2만4000동(약 1500원,1원=16동 상당)하던 가격이 올 들어 4만동으로 70% 가까이 급등했다"며 고개를 저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다른 생필품의 가격 상승은 이보다 더하다. 주식인 쌀과 기름값만 해도 2배 이상 치솟았다.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또 띠 뚜이씨(45·여)는 "쌀값이 10㎏에 10달러에서 20달러로 오르는 바람에 점심 때 시켜 먹는 도시락 값이 1달러에서 2~3달러로 올랐지만 질은 더 악화됐다"면서 "출·퇴근용 오토바이의 한 달 기름값도 20달러 정도에서 50달러로 늘어나 큰 부담"이라고 털어놨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집값 거품은 거의 정점이다.한국인이 많이 사는 호찌민시 외곽 고급 주거지인 푸미흥 지구에서 방 2개짜리 아파트의 월 임대료는 지난해 750달러이던 것이 지금은 1500달러에 달한다.이곳에서 15년째 합작은행으로 영업 중인 신한비나은행의 노성호 지점장은 "호찌민 시내 쪽은 더 심해 방 3개짜리 아파트가 3800달러나 된다"며 "이는 방콕의 3배를 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거침없이 고성장을 질주해온 베트남 경제가 경기 과열(오버 히팅)에 따른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공식적인 물가 상승률은 올 4월까지 11.6%이지만,일반 서민들의 체감도가 높은 생필품 값은 대부분 2배씩 급등했다. 게다가 수입 증가세가 수출보다 훨씬 가팔라 무역수지 적자폭이 확대되면서 외환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실제 지난해 120억달러였던 무역적자는 올 4월 말 벌써 111억달러에 달했다. 일본 다이와증권이 최근 보고서에서 "베트남이 수년 내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같은 사정에서다. 응우옌 동 띠엔 베트남 중앙은행 부총재는 "연말께 무역적자 폭이 180억달러까지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과감한 수요 억제 정책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실제 경기 선행지표의 하나인 주가는 올 들어 반토막도 안 될 정도로 추락했다. 지난해 10월 1100선에 있던 베트남 비나지수는 6개월여 만에 420선으로 60% 이상 급락했다. 이 나라 최대 인력 송출사인 FPT 같은 회사는 66만동까지 올랐던 주가가 6만동으로 10분의 1 이하로 추락하기도 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치솟기만 하던 부동산 값도 최근에는 심상치 않아 그동안 오버 히팅으로 자산에 끼었던 거품이 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성훈 KOTRA 호찌민무역관장은 "최근에 분양한 아파트 값이 분양가보다 15~20% 떨어지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국 대우건설 베트남 사업총괄 부사장도 "올해 초부터 미세하기는 하지만 부동산값 하락 조짐이 보여 조심스럽게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또 현지에 진출한 한국 업체들은 올 들어 임금이 30% 가까이 치솟는 상황에서 앞으로 더 올려 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으로 예상돼 조만간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며 마음을 졸이고 있다. 이와 관련,이성훈 무역관장은 "베트남이 앞으로 이번 경제위기를 극복하더라도 더 이상 '블루오션'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고 진단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베트남 정부 한 관료는 뒤늦게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그동안 12%로 제한해오던 예금이율 상한선을 지난 19일부터 18%로 6%포인트나 높이는 등 비상대책을 내놓고 있다. 높은 금리를 통해 과도하게 풀린 시중자금을 회수하고 물가 상승을 막겠다는 포석이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그만큼 베트남 정부도 무역수지 적자가 현지 화폐인 동화의 약세를 불러오고 떨어진 돈 값이 다시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 호조로 너무 많은 돈이 풀린 데 따른 문제점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 하노이사무소의 조너선 핀커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예금금리 상향 조정은 이제서야 베트남 중앙은행이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정책을 전개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span>&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그러나 그는 "올해 베트남 경제성장률은 목표인 7%에 못 미치는 5% 선에 그칠 것"이라고 말해 베트남 경제가 회복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물론 베트남 경제의 위기는 한국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핀커스씨는 "베트남 정부가 베트남항공 베트남제철 등 유망 기업의 정부 지분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팔기에는 지금이 최적"이라고 조언했다. 한국 기업에 단순 투자가 아닌 지분 투자로 현지에 굳건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o:p></o:p></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한국경제신문] 2008년 05월 25일(일)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호찌민＝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돋움; mso-hansi-font-family: 돋움; mso-fareast-font-family: 돋움"><span style="COLOR: #000000"></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000000">&nbsp; <br><o:p><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06/95/f0048295_4870c9f7ceeea.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06/95/f0048295_4870c9f7ceeea.jpg');" /></div></o:p></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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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6 Jul 2008 13:32:31 GMT</pubDate>
		<dc:creator>이정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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