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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체로 무해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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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대체로 무해합니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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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4 May 2012 10:17:0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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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체로 무해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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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대체로 무해합니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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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12 알제리 총선 결과 - 모두가 같지는 않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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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nbsp;2011 아랍의 봄 이후 아랍 국가에서 5번째로 알제리에서 총선이 치뤄졌습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대대적인 개혁을 약속하고, 선거 투명성을 위한 여러 조치를 내거는 등 정부에서도 국민의 불만을 최대한 잠재우고 변화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선거였고, 다른 나라들에서의 이슬람주의 정당들의 승리를 본 알제리의 이슬람주의자들도 대세를 탈 기회를 노리고 있었죠.&nbsp;<div><br />
</div><div>&nbsp;결과는? 알제리 정치 상황은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승리한 튀니지, 모로코, 이집트 등과는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div><div><br />
</div><div>&nbsp;현 집권여당인 전국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가 462석 중 220석(이전에는 389석 중 136석)으로 원내 1당이 되었으며, 역시 친정부 정당인 전국민주회의(National Rally for Democracy)는 68석(이전에는 389석 중 61석)으로 원내 2당의 자리를 유지했습니다.</div><div><br />
</div><div>&nbsp;한편 이슬람주의 연합 정당인 알제리 녹색연합은 총 48석을 획득했습니다. 알제리 녹색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평화를 위한 사회운동(HAMAS), 안 나흐다, 알 이슬라흐 세 정당이 2007년 대선에서 각각 51석, 5석, 4석씩을 얻었던 것을 생각하면 알제리 녹색연합의 의석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좌익 정당들인 사회주의자 전선 및 노동자당도 영 좋지 못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사회주의자 전선은 26석, 노동자당은 20석을 얻었지요. 특히 노동자당은 2007년 선거에서 26석을 얻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오히려 의석수가 떨어졌습니다.&nbsp;</div><div>&nbsp;</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14/14/e0089814_4fb0d831a1c00.jpg" width="360" height="16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14/14/e0089814_4fb0d831a1c00.jpg');" /></div></div><div>&nbsp;사실 이슬람주의자들이 튀니지, 모로코, 이집트 등과 달리 알제리 선거에서는 큰 승리를 거두지 못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측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이전에 번역한 아래의 알 자지라 특집 보도를 참고...&nbsp;</div><div>&nbsp;&nbsp;</div><div>&nbsp;<a href="http://harmless.egloos.com/3322890">http://harmless.egloos.com/3322890</a></div><div><br />
</div><div>&nbsp;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정의개발당이야 사다트 시절부터 정권과 맞서 싸워온 가장 조직화되고 세력이 강한 조직이고, 튀니지의 나흐다 역시 오랜 기간동안 반정부 운동에 참가해 오면서 기반을 다져왔죠.&nbsp;</div><div><br />
</div><div>&nbsp;이에 비해 알제리의 이슬람주의 정당들은 1996년부터 부테플리카 정부의 내각에 여러 차례 참여해오고 두 개의 대형 여당과도 동맹을 결성한 적도 있는, 다른 아랍 국가의 이슬람주의 정당들과는 달리 굉장히 정부와 가까운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이집트나 튀니지의 유권자들이 기존과는 다른 세력이면서 조직력 면에서도 월등한 이슬람주의자들에게 표를 던질 이유가 있었지만 알제리 유권자들은 이슬람주의 정당이나 전국해방전선, 전국민주회의같은 여당과 별 차이도 없고 조직력 면에서도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알제리 독립시부터 나라를 다스려온 전국해방전선에 비할 바가 아니죠.&nbsp;</div><div><br />
</div><div>&nbsp;알제리 유권자 입장에서는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여당들과 대비되는 뚜렷한 다른 색을 가진 대안 정당도 아닌 마당에 굳이 이들에게 표를 줄 이유가 없었던 셈입니다. 알제리가 이집트나 튀니지처럼 전면적으로 정권이 뒤집힌 것도 아니고 부테플리카 대통령을 비롯한 기존 집권 세력도 다 멀쩡히 살아있었구요.&nbsp;</div><div><br />
</div></div><div>&nbsp;이집트, 튀니지, 모로코 총선 이후 아랍의 봄의 승자는 "이슬람주의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모양입니다만, 그런 상황에서도 각 국가가 가져온 정치적 배경이 지역적 흐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번 알제리 총선을 통해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a href="http://www.aljazeera.net/news/pages/8ac16957-d67a-42ab-8c2c-b5aaa898c924">http://www.aljazeera.net/news/pages/8ac16957-d67a-42ab-8c2c-b5aaa898c924</a></div><div>&nbsp;<a href="http://www.bbc.co.uk/arabic/multimedia/2012/05/120512_algeria_election_results.shtml">http://www.bbc.co.uk/arabic/multimedia/2012/05/120512_algeria_election_results.shtml</a></div>			 ]]> 
		</description>
		<category>Al-'Alam[세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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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4 May 2012 10:14:43 GMT</pubDate>
		<dc:creator>jeltz</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알 자지라 시리아 특집(3) - 2. 혁명 발발 이후 야권 세력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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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div style="color: rgb(51, 51, 51); font-family: applegothic, sans-serif; line-height: 18px;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rgb(250, 249, 245); "><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다음은 알 자지라에서 제공하는 시리아 특집 보도 중 지역 정보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span></div><div style="color: rgb(51, 51, 51); font-family: applegothic, sans-serif; line-height: 18px;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rgb(250, 249, 245); "><br />
</div><div style="color: rgb(51, 51, 51); font-family: applegothic, sans-serif; line-height: 18px;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rgb(250, 249, 245); ">&nbsp;<a href="http://www.aljazeera.net/coverage/pages/1ec5ff4e-a696-4cfa-8f60-67ac2e8df9b3" style="color: rgb(11, 42, 74); text-decoration: none; ">http://www.aljazeera.net/coverage/pages/1ec5ff4e-a696-4cfa-8f60-67ac2e8df9b3</a></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4399e43a4.jpg" width="304" height="17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4399e43a4.jpg');" /></div>&lt;신분증을 들어보이는 하르모쉬 중령<br />
출처 - BBC&gt;<br />
</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1. 자유장교운동</span><br />
</div><br />
&nbsp;자유장교운동은 2011년 7월 정부군에서 이탈한 후세인 하르모쉬 중령에 의해 설립되었다. 하르모쉬 중령은 알 자지라를 통해 방송된 자신의 이탈 선언서에서 "자유장교여단"의 설립을 선언했고 같은 달 24일 더 많은 민간계층의 참가와 포섭을 위해 여단이라는 명칭을 "자유장교운동"으로 변경했다. <br />
<br />
&nbsp;자유장교운동은 설립 시부터 시리아 정부군 내에서 승급 등에서 차별 받던 소수 세력들을 끌어들이고자 했고, 소수 세력이 운동 내의 군사 기구 및 민간 기구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br />
<br />
&nbsp;이들이 스스로 규정한 운동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 <br />
<br />
&nbsp;- 군대, 앗 샵비하, 보안군으로부터 비무장한 시위대의 보호<br />
&nbsp;- 민간인 사살을 명령한 군인, 앗 샵비하 요원, 보안군에 대한 추적 및 개인적 이익을 위해 혁명을 이용하려는 모든 세력의 저지<br />
&nbsp;<br />
&nbsp;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공격적이 아닌 방어적인 군사 활동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자유장교운동의 군인들은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공격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군인들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운동의 장교들 및 병사들은 지도부들의 명령에 따르며, 지도부는 시리아 전역에 퍼져 있는 자유장교운동 세력에게 효력을 미치는 규칙을을 따르고 있다. <br />
<br />
&nbsp;한편 자유장교운동의 설립자이자 공식 대변인인 후세인 하르모쉬 중령은 터키 남부의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한 터키 보안군 장교와 만난 후 2011년 8월 29일 실종되었다. 9월 10일 그가 국영 텔레비전 채널에 나와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외부 세력과 결탁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가 체포 사실이 확인되었다. 자유장교운동은 터키 정부가 하르모쉬 중령을 시리아로 이송시킨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중령의 모든 말은 정부의 위협 아래에서 왜곡되었다고 밝혔다.<br />
<br />
&nbsp;2012년 1월 말 하르모쉬 중령의 처형에 관한 서로 상반되는 소식들이 전해졌다. 시리아 인권보호기구라는 인권단체는 정통한 군사 소식통을 인용, 공군 정보부가 밤 늦은 시간 하르모쉬 중령의 총살형을 집행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반정부 세력들 및 반정부군 조직은 이에 대해 부정하지도, 확인하지도 않았다.<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2.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441de656c.png" width="225" height="18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2.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441de656c.png');" /></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2. 자유 시리아 군(Free Syrian Army, FSA)</span><br />
</div><br />
&nbsp;자유 시리아군은 2011년 7월 29일 정부군에서 이탈한 리파아트 알 아스아드 대령 및 장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설립 성명서에서 군의 목표는 도시를 포위하고 민간인을 공격하는 정부군임을 밝혔다. 설립 이틀 뒤, 아스아드 대령은 FSA의 병력 수는 수백명에 달한다고 강조하며 데레졸 시에 대한 포위를 해제하지 않는다면 군대를 보내 교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br />
<br />
&nbsp;설립 이후 몇 주 동안 FSA의 여단들은 홈스 주, 하마 시 및 하마 주 북부, 데레졸, 보크말, 자위야 산맥, 다마스쿠스, 리프 디마슈끄, 데르아 등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가장 피해가 큰 홈스 주에서 활동하는 칼리드 븐 알 왈리드 여단은 FSA의 가장 큰 여단이며 2011년 10월 초에 자신들이 8개 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홈스 주의 주요 도시 및 마을들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br />
<br />
&nbsp;9월 23일, 아스아드 대령은 FSA와 자유장교운동이 하나의 군사 지도부 아래로 통합되었다고 발표했으며 11월 14일 시리아 내의 최고군사지휘권을 가지는 군사 위원회의 결성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군사 위원회는 FSA에 가담하지 않는 군인 및 보안군에게 처벌을 가할 권리를 부여했으며, 민간인 피해에 가담하지 않은 모든 군인 및 보안군이 즉각 FSA에 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FSA는 군사 위원회의 목적이 현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군대의 목표 검토 및 민간인 보호, 공공 시설물과 개인 재산 보호, 정권 붕괴 이후의 혼란과 복수 행위 예방이라고 규정했다.&nbsp; <br />
<br />
&nbsp;2012년 1월 중순 시리아 국가위원회는 FSA의 지도부와 연계된 사무국 설립을 선언했다. 이 사무국은 두 기구 간의 업무의 조정 및 국내 상황의 변동에 대한 정치적, 현장적 수준의 대응을 목표로 하고 있다. <br />
<br />
&nbsp;무장 측면에서 아스아드 대령은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FSA의 병사들은 경화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무기는 정부군에서 이탈한 병사들이나 시리아 내부에 있는 정권의 하수인들로부터 구매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무기의 일부가 이웃 국가들로부터 밀수되거나 도난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FSA는 2011년 병사들의 수가 3만명이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는 병력의 수를 4~7,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br />
<br />
&nbsp;2012년 2월 6일 FSA 내에 분열의 신호가 보인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무스타파 앗 쉐이크 준장이 정부군에서 이탈한 군인들로 구성된 비슷한 조직인 최고혁명군사평의회 결성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평의회의 결성이 전국적인 수준에서 이탈 장교들의 조언을 얻은 후에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아스아드 대령은 이 기구의 결성 선언이 정권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간주하며 평의회에 대해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장교들은 곧 FSA와 평의회 간의 조정에 동의했다. 군사평의회는 작전 계획 검토 및 수립, 물류 정보의 전달을 담당하고 FSA는 현장에서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5919a8b86.jpg" width="180" height="22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5919a8b86.jpg');" /></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3. 전국조정위원회</span><br />
</div><br />
&nbsp;2011년 6월 30일 야권 정당 및 인사들은 다마스쿠스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전국조정위원회의 결성을 선언했다. 이들은 위원회의 목적은 국내외의 야권 세력을 단결시키고 국민적 봉기를 지원하며 민주적 변화라는 목표를 이루기까지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br />
&nbsp;<br />
&nbsp;위원회는 설립 성명서에서 정치범 석방, 군사 행동의 중지,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설립, 시위대에 대한 발포책임자의 처벌, 긴급조치 해제, 즉결처벌 중지, 평화적 시위 인정, 헌법 8조 폐지와 같은 필수적인 조건 하에 정부와 야권 세력 간의 진지한 대화를 촉구했다. 위원회의 행정 사무국에는 국장 후세인 압둘 아짐, 시리아 국내의 대표인 후세인 알 아우다트, 해외의 대표인 부르한 갈리운 등이 소속되어 있다. 또한 민주국가회의(RND), 좌익 정당들 및 11개의 쿠르드 정당이 속해 있다. <br />
<br />
&nbsp;9월 18일 위원회는 리프 디마슈끄 주에서 중앙 위원회를 조직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 중앙 위원회는 정당 인물 및 청년 조직, 전국적 인물들 5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성명서에서 세 원칙을 강조했다. : 폭력 행위 반대, 군사적 개입 반대, 종파주의 반대.<br />
<br />
&nbsp;한편 시리아 국가 위원회가 결성되자 조정위원회의 부르한 갈리운과 같은 많은 주요 인사들이 빠져나왔다. 시리아 국가위원회와 전국조정위원회 사이에는 요구사항과 정권에 대한 위치에 있어서 많은 갈등이 있었으며 양측 간의 비난이 오가기도 했다. <br />
<br />
&nbsp;한편 조정위원회는 자신들이 초대를 받지 못했다고 말하며 시리아 국가위원회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부르한 갈리운(이제는 시리아국가위원회에 가담한)은 자신들은 초대를 보냈다고 말했다.<br />
<br />
&nbsp;11월 11일 일단의 반정부 운동가들은 조정위원회가 시리아 전역의 시위대들을 대표하지 못하며 많은 운동가들은 위원회가 정부 측에 기울어져 있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몇몇 운동가들은 조정위원회가 정권의 한 수족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br />
<br />
&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59e7b3776.jpg" width="338" height="24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59e7b3776.jpg');" /></div><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 font-weight: bold;">&nbsp;4. 변화와 해방을 위한 국민전선<br />
</div>&nbsp;<br />
&nbsp;2011년 7월 9일 시리아 전역의 다양한 지방의 대표 250명 및 시리아 민족사회당, 시리아 공산주의자 단결을 위한 전국전선 등이 모여 변화와 해방을 위한 국민전선을 결성했다. <br />
<br />
&nbsp;참가한 대표들은 50명으로 구성된 중앙 위원회와 11명으로 구성된 행정국을 선출했으며 지도부는 시리아 공산주의자 단결을 위한 전국전선의 대표 꾸드리 자밀, 시리아 민족사회당의 알리 하이다르 노선의 대표인 알리 하이다르, 독자적 반정부 운동가인 아딜 나이사로 구성되었다. <br />
<br />
&nbsp;설립 선언서에서 국민전선은 범 국민적인 조직의 결성은 나라를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는 생각 하에 외세의 압력에 맞서 시리아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한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개혁 조치를 강조했으며 평화적이고 전국적인 국민운동에 대한 지지를 밝히고 국민에 대한 모든 종류의 공격을 비난했다. 또한 종파 분쟁을 거부하고 부패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공격했으며 외세 개입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br />
<br />
&nbsp;국민전선은 스스로가 말하는 변화는 정치적 구조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이며 목표는 부패 척결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국민전선은 무장 봉기에 대해 반대 입장을 드러냈으며 시리아 군과의 깊은 연계를 통해 위기 상황에서 안전하게 벗어나 전국가적인 대화의 테이블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5. 시리아 민주적 세속주의 연합</span><br />
</div><br />
시리아 민주적 세속주의 연합은 9월 17일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아시리아 민족당, 청년당, 개방당, 쿠르드 민주당, 쿠르드 국민통일당, 지평선 운동 등 다양한 야권 정당들이 모여 결성했다. <br />
<br />
&nbsp;설립 선언서에 따르면 연합은 혁명가들이 만든 국가적 차원의 혁명의 틀과 평화적인 시민 시위를 보호하라는 국제 사회 및 아랍 사회의 요구 그리고 국제법에 따른 사유 재산의 보호 규정을 따른다. 또한 평화적인 시위를 지속함으로써 정부 측이 행하는 억압과 폭정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br />
<br />
&nbsp;또한 연합은 개방된 세속주의 조직으로 종교의 자유 및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세력(이슬람주의, 민족주의 세력등을 포함해)의 노력을 통합, 다원주의적 민주정권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연합의 강령은 세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종교와 정치의 분리, 세계인권선언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시리아 사회 건설, 민주국가 건설이 그것이다. <br />
<br />
&nbsp; http://www.aljazeera.net/coverage/pages/1ec5ff4e-a696-4cfa-8f60-67ac2e8df9b3<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09/14/e0089814_4fa9ec1e192b5.jpg" width="404" height="24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09/14/e0089814_4fa9ec1e192b5.jpg');" /></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6. 시리아 국가위원회(Syrian National Council, SNC)</span><br />
</div><br />
&nbsp;시리아 국가위원회는 시리아 민중 및 국제사회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가장 큰 야권 조직이다. SNC는 여러 차례 연기된 후 파리에 머무르고 있는 부르한 갈리운이 2011년 10월 설립했다. SNC는 혁명운동, 무소속 자유주의자 연합, 다마스쿠스 선언, 무슬림형제단과 그 동맹 조직들, 쿠르드 국가위원회 및 다양한 인물들 사이에서 선출된 4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br />
<br />
&nbsp;다양한 야권 단체 인물들로 구성된 사무국이 SNC의 지도부를 담당하며 사무국은 행정국을 선출한다. 행정국은 가장 작은 규모의 투표로 선출되는 기구이며, 행정국 위원들은 차후 확실히 결정되기 전까지 3개월의 임기동안 활동한다. <br />
<br />
&nbsp;창설 시부터 SNC는 시리아 국내외의 전국적 혁명 활동의 정치적 지원 및 아사드 정권 퇴진을 위한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정권 퇴진 이후 정치적 공백기를 막기 위해 군사 조직들과 함께 과도정부 수립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br />
<br />
&nbsp;리비아 신정부는 SNC를 창설 이후 몇 주만에 시리아 국민의 새로운 대표로 가장 먼저 승인했으며 프랑스, 미국, 튀니지의 승인을 잇따라 받았다. SNC는 2011년 12월 15일 2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첫번째 회의를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개최했다. <br />
&nbsp;<br />
&nbsp;2012년 2월 15일 SNC 행정국은 부르한 갈리운의 임기를 공식적으로 3개월 연장시켰다. 이 결정은 SNC 내의 여러 인물들과 조직들의 비판을 받았는데, 이는 임기 연장이 SNC 내규에 어긋나게 사무국에 표결을 붙이지 않고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7. 시리아 혁명 지지를 위한 전국조직</span><br />
</div>&nbsp;<br />
&nbsp;시리아 정부가 반정부 세력과의 대화 개시 및 도시와 마을에서 군대 철수라는 아랍 연맹의 중재안을 받아들인 지 몇 일 뒤인 2011년 11월 5일 시리아 혁명 지지를 위한 전국조직 설립 회의가 시리아 전 부통령 압둘 할림 캇담(Abdul Halim Khaddam)의 주재 하에 해외에 머무르는 61명의 야권 인사들의 참가로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이들은 정권과의 어떤 대화도 거부하고, 시리아군의 봉기 및 외국군 개입을 포함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을 지지했다. 또한 전국조직은 SNC가 정권과의 대화에 나설 수도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을 비판했다.<br />
<br />
&nbsp;조직 지도부에 따르면 시리아 혁명 지지를 위한 전국조직의 목표는 시리아 혁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지, 그것을 지도하기 위한 것<br />
&nbsp;이 아니다. 또한 혁명에 대한 물질적 지원과 함께 정치적, 언론적 측면의 활동에 집중할 것을 밝혔다.<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09/14/e0089814_4fa9f9c7e9fcb.jpg" width="243" height="21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09/14/e0089814_4fa9f9c7e9fcb.jpg');" /></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 font-weight: bold;">&nbsp;8. 시리아 전국운동(Syrian National Movement)<br />
</div><br />
&nbsp;이 운동은 2011년 12월 10일 이슬람성향의 야권 운동가들의 의해 카이로에 있는 언론인 노조를 기반으로 혁명의 요구사항을 지킬 정치적 목적을 지닌 조직을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운동은 셈족 유일신교의 도덕적, 영적 가치를 강조한 이슬람주의 경향에서 분리된 노선으로 독재와 부패로부터 개인과 사회의 해방, 시리아의 독립과 민주주의 가치 수호, 다원적 민주정권 지지,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자유 보장, 혁명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취하면서 드러난 사회에서의 청년들의 역할 강조 등을 주장하고 있다. <br />
<br />
&nbsp;시리아 전국운동은 이마드 앗 딘 라쉬드 박사가 이끌고 있다. <br />
			 ]]> 
		</description>
		<category>Al-Tarājim[번역]</category>

		<comments>http://harmless.egloos.com/3324008#comments</comments>
		<pubDate>Fri, 11 May 2012 08:16:41 GMT</pubDate>
		<dc:creator>jeltz</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알 자지라 알제리 총선 특집(4) - 알제리의 아랍의 봄 ]]> </title>
		<link>http://harmless.egloos.com/3323582</link>
		<guid>http://harmless.egloos.com/3323582</guid>
		<description>
			<![CDATA[ 
  &nbsp;다음은 알자지라 특별보도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br />
<br />
http://www.aljazeera.net/coverage/pages/a530dc31-eb29-4892-b448-6d52662d1d21<span style="font-weight: bold;"></span><br />
<br />
&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10/14/e0089814_4fab1406459f2.jpg" width="500" height="323.71794871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10/14/e0089814_4fab1406459f2.jpg');" /></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알제리의 아랍의 봄</span><br />
</div><br />
&nbsp;1년 사이 세 명의 국가수반을 끌어내린 아랍의 봄바람은 알제리에도 불어왔지만 알제리는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그리고 모로코에서 어느 정도 일어났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알제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인해 변화의 바람에서 거리를 둘 수 있었다.<br />
<br />
&nbsp;- 두 개 정당(전국해방전선, 전국민주회의)이 알제리 정계를 장악하고 있지만 하마스와 같이 지난 16년간 정부에 참가해온 이슬람 정당들의 존재에서 볼 수 있듯이 비교적 정치적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비록 정부에 의해 검열을 받긴 하지만 언론 다양성도 23년간 유지되어 오고 있다.<br />
&nbsp;<br />
&nbsp;독일의 알제리 전문가인 이자벨 베란필즈는 "알제리 정치가 실질적인 경쟁과는 거리가 멀지만 정치 무대의 극심한 파편화는 마치 정치적이 다원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녀는 적어도 형태상으로는 알제리에 현재 존재하는 정치적 다원성과 통제는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키며 현 상황을 계속 유지시키려는 대통령과 장군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br />
<br />
&nbsp;- 지난 몇 년, 특히 2011년 초에 집중된 시기에 발생된 알제리에서의 시위는 주로 사회적인 요구에 기반을 두었고 폭력적인 모습을 주로 취했으며 몇몇 지역에 국한되었다. <br />
<br />
&nbsp;- 야권 세력은 이 시위들을 정부에 대한 실질적 압박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다. 수도 알제에서 몇몇 정당들 및 단체들이 촉구한 시위에는 몇백명만이 참여했다. 연구가들은 대규모 시위로의 전환의 실패가 야권 세력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br />
<br />
&nbsp;- 정부는 이런 사회적인 시위들에 대해 석유 수출 수익금에서 자금을 조달한 조치들로 대처했다. 총 260억 달러에 달하는 이 조치들에는 임금 인상, 기본 식량 가격 인하, 국민에 대한 대규모 대출, 공공 거주 시설의 신속한 입주 등을 담고 있다. <br />
<br />
&nbsp;알제리 인권기구 사무총장인 칼릴 압둘무으민은 정부가 국민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을 막고 평화를 사기 위해 정당, 단체, 국민들에게 돈을 뿌리고 있다고 말했다. <br />
<br />
&nbsp;- 정부는 경찰의 시위 진압 권한을 일부 제한했다. <br />
<br />
&nbsp;- 몇몇 알제리 국민들은 광범위한 국민적인 시위가 10만~20만의 사망자를 낸 알제리 내전과 같은 내전으로 치닫지 않을지 두려워하고 있다. <br />
<br />
&nbsp;이자벨 베란필즈는 "튀니지와는 반대로 청년들이 주도하는 알제리의 시위들은 주로 폭력적인 형태를 띄며 몇몇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시위가 확대된 이후에도 오하이야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는 임금 인상, 자금 지원과 같은 효과적인 정책들을 펼쳤다."라고 보고 있다. 또한 알제리에는 이웃 국가들이 가지지 못한 특징이 있다고 언급하며 "부테플리카 정권은 국민적 저항에 대응하는 법에 대한 정치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벤 알리는 시위대를 분쇄시키고 겁에 질리게 하는 법 외에는 알지 못했다" 라고 덧붙였다. <br />
<br />
&nbsp;또한 알제리 국가수입의 핵심 원천인 관광 사업 및 에너지 산업에 대규모 시위는 영향을 미치므로 우려해 튀니지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지 않았다. <br />
<br />
개혁조치들<br />
<br />
&nbsp;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과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쫓겨난 몇 주 뒤인 2011년 4월 알제리 대통령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는 연설에서 알제리의 민주주의를 강화시킬 광범위한 개혁을 약속했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br />
<br />
&nbsp;- 약 20년간 이어진 비상사태 해제<br />
&nbsp;- 정당법 개정 이후 이슬람주의 정당을 포함한 새로운 정당의 창당 허용<br />
&nbsp;- 선거법 개정<br />
&nbsp;- 언론인들이 지난 20년간 요구해온 언론매체의 실수를 범죄로 처벌하는 것의 폐지<br />
&nbsp;- 방송 분야를 관리할 기구 결성 및 민간 방송의 설립 허용과 같은 시청각 분야의 개방<br />
&nbsp;- 하원 의석 33%를 여성에게 할당<br />
&nbsp;- 대통령은 또한 법학자들과 정당들이 참가하는 헌법 개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br />
&nbsp;<br />
&nbsp;이 개혁안 중 일부는 전국적 지명도의 인물들과 정당들, 시민기구들과 노조들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회의 조언에 기반해서 결정되었다. <br />
<br />
&nbsp;그러나 몇몇 야권 정당들은 이 위원회가 정부가 시간을 벌기 위한 수작이라고 주장하며 위원회 참가를 거부했다. 또한 일부 언론들은 이 위원회가 단지 알제리의 정치 계층들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했으며 많은 정치 연구가들은 정권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는 표면적인 개혁에 대해 경고했다. <br />
<br />
&nbsp;알제리 인권기구 사무총장인 칼릴 압둘무으민은 "현 정부는 가상의 민주주의 정부를 만들어낼 정도로 영리하다. 그러나 유가 상승에 기반을 둔 이 정부는 막후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10/14/e0089814_4fab1e799b680.jpeg" width="400" height="56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10/14/e0089814_4fab1e799b680.jpeg');" /></div>&lt;출처 - http://www.cartoonmovement.com/cartoon/3876&gt;<br />
</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 font-weight: bold;">&nbsp;2. 두 정당의 대통령<br />
</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10/14/e0089814_4fab2e2d47af3.jpg" width="481" height="29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10/14/e0089814_4fab2e2d47af3.jpg');" /></div>&lt;좌 - 아흐마드 오하이야 총리, 우 - 압델아지즈 벨카담 FLN 총재&gt;<br />
</div><br />
&nbsp;정권과 가까운 관계인 전국해방전선(FLN), 전국민주회의(RND) 이 두 정당은 이들의 힘과 정치적 대표성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고 정계에서 주도적인 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FLN의 사무총장 압델아지즈 벨카뎀은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원내 1당으로 승리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현 총리 아흐메드 오하이야가 이끄는 RND의 2인자인 앗 사디끄 샤합은 "우리가 원내 1당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의석은 차지하게 될 것이다" 라고 밝혔다.<br />
<br />
&nbsp;이 두 정당은 1997년부터 구성된 모든 하원에서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해왔으며 두 정당의 대표들은 2004년부터 총리직을 두고 경쟁해왔다. <br />
<br />
&nbsp;정치 연구가인 앗 사디끄 살라이미야에 따르면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벨카뎀과 오하이야를 총리로 임명하는 것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물들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하이야는 2004년 5월 총리로 임명되어 2006년 해임되었고 벨카뎀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곧 생각을 바꾸어 벨카뎀을 2008년 해임시키고 다시 오하이야를 총리로 임명했다. <br />
<br />
&nbsp;17년간 이 두 정당은 정부 요직들과 의회 내의 1,2위 자리를 차지했으며 안 나흐다 운동, 하마스와 같은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이슬람 정당 등 다른 정당들은 이 자리에 끼어들 수 없었다. 통합정치전략연구소의 연구원 이마르 벨하이마르 박사는 두 정당이 누리는 권력은 두 정당의 실제적인 정치적 비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언급한다. 오히려 이 두 정당이 정부의 정책을 승인하는 데의 "도구"로써 정부로부터 얼마나 인정받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이다.<br />
<br />
&nbsp;그러나 이제 이 두 정당이 의회에서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결과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br />
<br />
&nbsp;알제 대학교의 정치조직학 교수인 모나스 미스바흐 박사는 두 정당이 원내 1,2당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지만 의석은 2007년에 획득한 것보다 더 적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FLN은 내부 분란에 시달리고 있으며, 오하이야 총리는 생활고, 물가상승,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br />
<br />
&nbsp;FLN은 심각한 내부 분란에 시달리고 있다. 지도부는 서로 경쟁하는 세 노선으로 나누어졌으며 정당 출신이 아닌 사업가들이 정당투표 후보 명단의 유력 순위에 오르는 "비닐봉지 후보명단" 사건 등으로 당 내에서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다. RND의 오하이야 총리는 물가인상, 인플레이션, 일자리와 주택 문제 해결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있으며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br />
<br />
&nbsp;이마르 벨하이마르 교수는 오하이야 총리는 자신의 선거운동을 위해 대중을 동원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 사건은 이 두 정당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전했다. <br />
<br />
&nbsp;그러나 알제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인 무함마드 라으깝 박사는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그는 "이 두 정당은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비중을 크게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남을 것인데 왜냐하면 정부가 여전히 선거의 주도권을 쥐고 관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두 정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라고 분석했다.<br />
<br />
&nbsp;연구가들은 이번 선거에서 이 두 정당의 위치가 2014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만약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다시 재임에 도전한다면 두 정당은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며 부테플리카 스스로가 출마하지 않고 다른 후보를 지명한다면 역시 그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br />
<br />
&nbsp;모나스 미스바흐 박사는 "이 두 정당은 정부가 이용하는 도구이다. 1995년 대선에서 제루알 대통령의 당선, 1999년부터 2009년까지의 세 번의 대선에서의 부테플리카의 당선 등에서 알 수 있다" 라고 말했다. <br />
&nbsp;<br />
			 ]]> 
		</description>
		<category>Al-Tarājim[번역]</category>

		<comments>http://harmless.egloos.com/3323582#comments</comments>
		<pubDate>Thu, 10 May 2012 02:56:36 GMT</pubDate>
		<dc:creator>jeltz</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알 자지라 알제리 총선 특집(3) - 선거 관련 사안들 ]]> </title>
		<link>http://harmless.egloos.com/3323193</link>
		<guid>http://harmless.egloos.com/3323193</guid>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div style="text-align: left;">다음은 알자지라 특별보도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br />
<br />
http://www.aljazeera.net/coverage/pages/a530dc31-eb29-4892-b448-6d52662d1d21<span style="font-weight: bold;"></span><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9/14/e0089814_4fa9bbeb38c71.jpg" width="500" height="33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9/14/e0089814_4fa9bbeb38c71.jpg');" /></div><span style="font-weight: bold;"></span></div>&nbsp;<span style="font-weight: bold;">1. 투표 불참에 대한 우려</span><br />
</div><br />
&nbsp;알제리 정부는 이번 선거에서 높은 투표율을 이루는 것이 동서에서 알제리로 불어닥치는 아랍의 봄의 돌풍으로부터 정권을 지켜낼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다. 낮은 투표율은 알제리 정부가 직면한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또한 투표율은 선거 결과와 마찬가지로 야권 세력과 정부 간의 갈등의 장이 종종 되곤 한다. <br />
<br />
&nbsp;지난 두 번의 총선에서 투표율 하락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야권세력이 조작의혹을 비판하는 정부의 공식 투표율은 2002년에 45%, 2007년에 45.6%였다. 2007년 총선을 보이콧한 정당들은 2/3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해에는 오직 7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이 중 100만여표가 무효표였다. <br />
<br />
&nbsp;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최근 행한 연설을 보면 정권에게 있어 투표율의 중요성이 명백하게 보인다. 그는 다음 총선 참여가 1964년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것과 같은 새로운 독립을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br />
<br />
&nbsp;정치 연구가들은 정권은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들의 특성으로 인해 앞으로 구성될 의회가 정당 간에 많은 이견이 있었던 이전의 의회와 그 활동면에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무부 장관의 어떤 정당도 단독으로 의회 다수 세력이 될 수 없으리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는 하나 시선을 끄는 중요한 점이 있다. 그것은 아랍의 봄을 겪은 다른 아랍국가들에서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약진하는 가운데 선거 연합을 결성한 이슬람주의 정당들이다.<br />
<br />
&nbsp;정부는 높은 선거율이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처음 혁명이 발생한 2011년 4월 이후의 연설에서 발표한 개혁 정책에 힘을 더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선거율을 끌어올리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정치 세계로 끌어올 모든 정치 노선들의 새로운 정당 창설 허용, 정당 창설에 대한 행정적 장애물 등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했다. <br />
<br />
&nbsp;이에 더불어 대중 동원을 위해 시민사회 조직들 및 그와 연관된 다양한 민간 조직들이 정치 세계로 나오도록 자극하고 있으며 선거율을 높이기 위해 현대적 기술을 이용하거나 모스크의 이맘들을 통해 선거에 참여하라고 국민들을 위협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알제리의 저명한 성직자 앗 쉐이크 샴세딘 보루비(Chamseddine Bouroubi)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신이 벌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 역자 주)<br />
<br />
&nbsp;알제리 대통령이 지난 2월 한 연설에서 드러나듯이, 알제리 정부는 선거를 참여하지 않는 것은 외국의 개입을 위한 길을 여는 것이라며 유권자들에게 공포를 불러넣어 선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연설에서 "세계가 우리를 향해 눈독을 들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 선거에서 성공한다면 신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신께서 숨은 것(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다" 라고 말했다.<br />
<br />
&nbsp;선거에 참여한 정당들도 정부와 낮은 투표율에 관한 우려를 같이 하고 있다. 안 나흐다 운동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평화적 길"이라고 보고 있으며, 집권 대통령 연합의 한 세력인 전국민주회의(RND)는 이번 선거가 "위대한 경쟁"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전국해방전선(역시 집권 대통령 연합의 다른 한 세력인)은 알 이슬라흐 운동이 투표소 참관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하며 선거 보이콧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br />
<br />
&nbsp;세 명의 저명한 알제리 학자들인 무함마드 하라비, 무지드 븐 쉐이크, 아흐마드 다흐마니는 정부 측의 이런 투표 참여 독려 메세지는 예전에도 반복되어 오던 것뿐이라고 언급했다. 이들은 "자유선거의 모든 조건이 보장되고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며 자신들의 희망을 이루어줄 대표자 선출에 있어 국민의 모든 권리 수행이 보장된다면 자발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br />
<br />
&nbsp;또 이들은 전 내무부 장관인 야지드 자르후니가 "국민이 투표소로 가기보다는 해안으로 놀러가기를 좋아하기 때문" 라고 말한것 같이, 정부는 낮은 투표율의 이유를 정부와는 상관 없는 먼 곳에서 찾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nbsp;<span style="font-weight: bold;">2. 선거 정당성 보장과 의심들</span><br />
</div><br />
&nbsp;부테플리카 대통령은 2월 연설에서 2012 총선이 알제리 역사의 분수령이 될 것이며 선거의 성공은 외국 세력의 간섭과 알제리 내의 혁명 발발을 막는 것이라고 밝혔다. <br />
<br />
&nbsp;1991년부터 치뤄진 모든 선거에 대해 야권 세력은 선거 결과 조작 및 선거 자체가 도박이기에 투표율을 부풀렸다고 정부를 비난해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번 선거의 공정함을 보장하기 위해 정당들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약속들을 했다. <br />
<br />
&nbsp;- 최초로 사법기구의 선거절차 감독. 그러나 야권 세력은 행정부가 사법부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고 대통령 스스로도 감독으로 참가하기 때문에 정부의 조치를 비판하고 있다.<br />
&nbsp;- 선거 절차 감독에 관한 후보 및 정당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새로운 선거법<br />
&nbsp;- 독립 후보 및 정당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선거 감독 <br />
&nbsp;- 최초로 비정부 국제기구의 선거 감독 허용<br />
&nbsp;- 대통령은 행정부가 선거에서 중립을 유지할 것이며 특정 후보를 위해 행정부가 움직이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또한 내무부 장관 역시 선거 조작에 개입된 사람은 투옥될 거라고 약속했다.<br />
<br />
&nbsp;그러나 40개 이상의 정당들로 구성된 알제리 선거관리위원회는 내무부가 위원회의 요구 사항들을 거부했으며 요구사항에 대한 내무부의 무응답은 위원회 업무를 여러 일 동안 정지시켰다고 밝혔다. 또한 위원회는 국영 방송이 선거 운동을 위해 사용, 종교와 대통령 사진의 정치적 목적의 이용, 정부 업적 광고를 위한 포스터 부착등에 대해서도 비판했다.&nbsp; 또한 후보등록기간이 지났음에도 군 출신 인물들이 대규모로 후보등록을 한 사건은 위원회와 내무부 간 갈등 중 가장 첨예한 문제로 떠올랐다.<br />
<br />
&nbsp;또한 야권세력은 5%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하지 못한 정당은 해산될 것을 규정하는 선거법은 소규모 정당의 성장을 막고 전국민주회의, 전국해방전선을 필두로 하는 기존 정당들이 알제리 정계를 장악하게 만든다고 비판하고 있다. 위와 같은 정당성 보장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와 같은 정권들은 공정한 선거와 투표율을 높이려는 정부의 의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br />
<br />
&nbsp;현재 금지된 이슬람구국전선은 이번 선거 참여가 "악을 돕는 행위"라고 규정짓고 선거 보이콧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에 선거 보이콧을 했었던 세속주의 정당들(사회주의자 전선과 같은)은 이번에는 선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nbsp;<span style="font-weight: bold;">3. 부패</span><br />
</div><br />
&nbsp;부정부패가 2012년 알제리 총선을 휩쓸고 있다. 정부든 정당이든 가리지 않고 부패가 만연하며, 특히 후보 자리를 사고파는 거래가 새로 등장했다.44개 정당 중 19개 정당의 대표들이 기업가들로부터 "정당투표 후보자 명단의 제일 첫 순위에 지명되는 조건"으로 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br />
<br />
&nbsp;이 거래는 세 정당이 신문에 정당투표 명단의 후보자를 찾는다는 광고를 실으면서 시작되었다. 알리 자그두디 총재가 이끄는 "전국회의"란 정당은 1주일 내내 각종 신문에 "후보자의 문은 관심 있는 모든 분께 열려있습니다!"라는 광고를 실었다. 오마르 부이샤가 이끄는 "개방당"은 후보가 되길 원하는 모든 사람은 최대한 빨리 연락을 달라고 요청하는 광고를 게재하고 광고 끄트머리에는 사무실 번호와 핸드폰 번호를 써 놓았다. 또한 알제리 국민전선의 총재인 무사 타와티는 100만 디나르(1만 달러)에서 500만 디나르(5만 달러) 사이의 "가격"을 제시했다고 알려졌다.<br />
<br />
&nbsp;전국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인 무함마드 사디끼는 위 세 정당이 실제로 후보 자리를 팔았으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원에 회부되었다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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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정당 지도자들은 선거라는 좋은 기회를 큰 돈을 벌 기회로 삼고 있으며 선거를 거래에 따른 이득을 얻을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총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부패는 유권자들을 염증나게 하고 있고 선거 운동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들이 투표를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정부가 매우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br />
<br />
&nbsp;알제리에서 "비닐봉지 정치"라고 불리는 이런 부패 행위는 알제리 대중들의 실망을 가져왔다. 선거에 참여한 정당들 중 3/4이 이 문제로 격렬한 진통을 겪고 있으며 정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국민적인 폭발을 두려워하며 신속하게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br />
<br />
&nbsp;경제 전문가인 하피즈 소알릴리는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돈은 후보 선정에 있어 당직, 정치적 투쟁 이전의 가장 중요한 사안이 되었으며, 돈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는 후보는 한 명도 없다. 사람들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후보 자리를 사기 위해 돈을 들이고 있다" 라고 말했다. 자유정의전선의 대표 무함마드 앗 사이드는 정당투표 후보자 명단의 1순위로 오르기 위해 2000만 디나르(20만 달러)에 달하는 큰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인정했다. <br />
<br />
&nbsp;노동자당의 대표 루이사 하누나는 노동자당이 후보 자격을 팔았다는 것은 부정했으나, 많은 정당들이 이에 연관되어 있음은 인정했다. 그녀는 이전에 부테플리카 대통령에게 부패한 자본가들이 하원에 진출하는 것을 방지해달라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br />
<br />
&nbsp;하원의원이 누리는 면책특권과 재정적 특권 - 의원의 급여는 인상 없이도 3500달러로 약 180달러에 달하는 최소임금의 25배이다 - 을 얻기 위한 뇌물의 열병은 널리 퍼져있다. 선거감시 사법위원회의 위원장인 살림 부디는 후보 자격 매매 행위가 만연하다면서 후보 자격을 판매한 정당들,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챙긴 혐의자들, 전과 기록을 조작해서 입후보한 사람들에 대한 법적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r />
<br />
&nbsp;익명의 사법부 소식통에 따르면 사법부는 이미 정당투표 후보 중 275명의 후보 등록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혐의는 부패, 투표자 등록 미비, 정당투표 후보의 1순위 오른 뒤 불법적인 방법으로 특정 지역구에 입후보한 것 등이다. <br />
<br />
&nbsp;올해 수정된 선거법에 따르면 후보들은 선거운동기간 동안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후보자들이 외부 자금이나 불법적인 돈을 받는 것을 막고 선거운동 시 합법적인 자금을 사용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선거법은 정당투표 후보들에게 지원되는 비용은 1만 달러를 넘지 못하며 만약 정당득표에서 20% 이상을 득표했을 시 1/4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br />
<br />
&nbsp;해방전선, 사회주의자 전선과 같은 정당들은 투명한 선거자금 동원이 가능한 이런 선거법에 찬성하나, 다른 몇몇 정당들은 정당 스스로의 재력으로 선거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회간접자본 발전 등에 쓰여야 할 국고를 선거에 지원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br />
<br />
&nbsp;정치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자금조달이 그 자체로 부패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또한 몇몇 정당들은 또한 정부 자체가 친정부적 인물의 당선을 위해 이런 부패 행위에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br />
<br />
&nbsp;만연한 부패에 대해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내무 장관에게 신속한 조사를 시행할 것을 지시했고 이로 인해 275명의 후보 등록이 취소, 재판에 부쳐졌다.<br />
<br />
&nbsp;후보 자격 매매는 이미 뇌물 수수가 만연한 알제리 상황에서서 새롭게 등장한 부패 행위이다. 알제리 법무부의 무크타르 알 아크다르에 따르면 알제리 법원은 뇌물 수수와 관련된 세 건 정도의 사건을 매일 처리한다. 알제리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국제투명성 지수에서도 겨우 2.9 점을 기록, 183개 국가중 112위를 기록했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3점 이하는 "부패 규모가 크며 사회 각 기관에 퍼져 있음"을 의미한다.<br />
<br />
&nbsp;2006년 정부가 부패 척결 관한 법률을 제출했으나 의원들은 당선자에게 재산 현황에 대해 밝힐 것을 규정하는 조항을 삭제했으며 때로는 면책특권을 들먹이기도 했다. 이 조항에 반대하던 의원들은 부패 척결에는 현행 형법으로도 충분하며 의원 면책특권 삭제 결정은 의원들의 손을 묶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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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후보 자격, 특히 정당투표(비례대표) 후보 자격을 사고 팔았다는 내용은 알제리의 반대편에 떨어진 나라의 어느 정당, 믿고 찍어준(본 역자를 포함해) 유권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려준 어떤 정당을 떠올리게 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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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scription>
		<category>Al-Tarājim[번역]</category>

		<comments>http://harmless.egloos.com/3323193#comments</comments>
		<pubDate>Wed, 09 May 2012 03:56:43 GMT</pubDate>
		<dc:creator>jeltz</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알 자지라 알제리 총선 특집(2) - 선거 진행, 참가 정당 및 선거율 ]]> </title>
		<link>http://harmless.egloos.com/3322890</link>
		<guid>http://harmless.egloos.com/3322890</guid>
		<description>
			<![CDATA[ 
  &nbsp;다음은 알자지라 특별보도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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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ljazeera.net/coverage/pages/a530dc31-eb29-4892-b448-6d52662d1d21<span style="font-weight: bold;"><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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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span style="font-weight: bold;">&nbsp;</span>1. 선거 진행</span><br />
</div><br />
&nbsp;- 선거에는 약 30개 정당(이 중 대부분은 선거 한달 전에야 정당등록을 마쳤다)이 참여하며, 200명 이상의 무소속 후보가 등록했다. <br />
&nbsp;- 등록된 유권자 수는 약 2100만명, 선출될 총 의원은 462명이다. <br />
&nbsp;- 의석 중 33%는 여성에게 할당되어 있다.<br />
&nbsp;- 이번 선거는 최초로 사법부가 감독한다.(비록 감독위원은 대통령이 선출하지만..) <br />
&nbsp;- 선거에 참여한 정당들은 별도의 위원회를 통해 개표 과정을 감독한다.<br />
&nbsp;- 아프리카 연합, EU, 아랍 연맹에서 온 500명의 국제감시단이 또한 선거를 감독한다.<br />
&nbsp;- 정부는 최초로 비정부기구들의 선거 감독을 허용했다.<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 2. 참가 정당들</span><br />
</div><br />
&nbsp; 수십개의 정당이 현 알제리 정치계에 참여하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의 정당들은 1989년의 정치 다원화 협약(10월 사건이라고 알려진) 이후 결성된 정당들이며, 몇몇 정당들은 2012년 총선을 몇 달 남겨두고 정당 등록을 마쳤다. <br />
<br />
&nbsp;이번 선거에 참여하는 약 30개의 정당들은 국가주의, 이슬람주의, 민주주의, 세속주의, 좌파, 우파 등 다양한 이념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비중에서도 서로 다르다.<span style="font-weight: bold;"><br />
<br />
&nbsp;</span><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5290ab778.jpg" width="144" height="12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5290ab778.jpg');" /></div><span style="font-weight: bold;"><br />
</span><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span style="font-weight: bold;">&nbsp;</span>(1) 전국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 FLN) </span><br />
</div><br />
&nbsp;FLN은 1953년 알제리 혁명 당시부터 활동을 시작, 반프랑스 투쟁을 이끌었으며 1962년 독립 이후에는 독립 알제리의 정부가 되었다. 1989년 정치 다원화 협약으로 위치를 잃었으나 FLN는 여전히 수십년간 의회와 정부 고위직, 장관직을 독점해온 정당이다. <br />
<br />
&nbsp;1991년 선거의 패배로 입은 큰 피해에도 불구하고 FLN은 이슬람구호전선의 해산과 총선 무효화 결정에 반대했으며 이는 정권의 하수 정당이었던 FLN의 기본적 입장의 근본적인 변화였다. 당시 FLN의 지도자였던 압델하미드 메흐리(Abdelhamid Mehri)는 1995년 군부의 선거 무효화에 대한 그의 반대입장 및 로마에서 야당들과 알제리의 현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금지된 이슬람구호전선의 복귀라는 내용을 담은 협약을 체결한 것 등으로 인해 결국 정당 지도부에서 물러나야 했다. 당시 한 알제리 신문은 이 사건에 대해 "지적인 혁명"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 시점 이후 FLN은 특히 이슬람구호전선과 같은 여러 사안에서 정부와 입장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br />
<br />
&nbsp;1997년부터<span style="font-weight: bold;"> </span>전국민주회의(National Rally for Democracy, RND)가 FLN의 정부 내의 파트너가 되었다. <br />
<br />
&nbsp;FLN은 2007년 선거에서 총 389석 중 136석을 얻어 2002년 선거로 얻은 원내 과반의 위치를 상실했다. <br />
<br />
&nbsp;1999년에는 FLN은 전국민주회의와 평화를 위한 사회운동(Movement of Society for Peace, Hamas)와 함께 대통령 연합(Presidential alliance)을 결성했다. 이 연합은 2003년에 이르러 부테플리카를 지지하는 주요 정치 세력으로 변화하였다. <br />
<br />
&nbsp;당대표인 압델아지즈 벨카뎀(Abdelaziz Belkhadem)은 2006년~2008년까지 알제리의 총리였으며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당의 명예대표이다. 이 외에도 현 내각의 많은 장관들이 FLN 소속이다. <br />
<br />
&nbsp;2012년 선거에서 벨카뎀 대표는 현 위치를 유지하고 이슬람정당을 앞서서 원내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5fe3b76e8.png" width="333" height="39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5fe3b76e8.png');" /></div><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nbsp;<span style="font-weight: bold;">(2) 전국민주회의(National Rally for Democracy, RND)</span><br />
</div><br />
&nbsp;1997년에 설립된 신생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FLN과의 동맹을 통해 RND는 정부 내각에 계속해서 참여하는 등 알제리 정치계에서 큰 영향력과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야권 인사들은 RND가 FLN의 영향력을 줄이고 정부 정책 집행에 있어 또 다른 도구로 삼기 위해<span style="font-weight: bold;"> </span>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br />
<br />
&nbsp;RND는 2007년 선거에서 61석을 차지했으며 이는 2002년 선거에서 얻은 48석에서 크게 증가한 것이다. <br />
<br />
&nbsp;RND의 현 총재이자 현 알제리 총리인 아흐메드 오야히아(Ahmed Ouyahia)는 그의 정당이 이번 선거에서 원내 주요 정당에 속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또한 그는 선거에 참여하는 세력들의 단결을 촉구하며 분열은 과거의 "피의 학살과 살해의 시기"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승리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고 예측했다. <span style="font-weight: bold;"><br />
<br />
</span><div style="text-align: left;"><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span><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635a34894.jpg" width="360" height="26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635a34894.jpg');" /></div><span style="font-weight: bold;">(3) 사회주의자 전선(Socialist Forces Front, FFS)</span><br />
</div><span style="font-weight: bold;"></span><br />
<span style="font-weight: bold;">&nbsp;</span>사회주의자 전선은 196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야권 정당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두드러지는 정당이다. FFS의 대표이자 역사적인 반프랑스 투쟁 지도자인 후세인 아이트 아흐마드(Hussein Ait Ahmed)는 한때 전국해방전선에 가담해 반프랑스 투쟁을 이끌었으나 독립 이후 바로 야권 세력에 참가, 현재는 스위스에 살고 있다.<br />
</div><br />
&nbsp;FFS는 1991년 첫번째로 복수 정당이 참가한 선거에 참가했으며 선거 결과 무효화와 이슬람구국전선 금지 결정에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1995년에는 FLN과 노동당 및 이슬람구국전선 등과 함께 로마 협약을 체결하고 FFS의 정치적 입장은 알제리의 정치적 위기 종결에 있음을 밝혔다.<br />
<br />
&nbsp;1997년 FFS는 의회에 진출했으나 2002년과 2005년 선거는 정권의 조작을 비난하며 보이콧했다. 따라서 FFS의 2012년 선거 참여 결정은 놀라운 것이었다. 대표 후세인 아이트 아흐마드는 이 결정이 "전략적"인 것이며 "부패한" 정권을 바꾸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br />
<br />
&nbsp;당 사무총재인 알리 알 아스카리는 2012년 4월 한 알제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알제리가 딜레마와 폭발 위기에 놓여 있기에 FFS가 선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선거가 공정하게 치뤄진다면 선거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것으로 좋은 일이며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br />
<br />
&nbsp;정당의 분석가들은 아랍의 봄이 알제리의 진정한 변화의 기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 지도부 중 한명인 무스타파 부샤쉬는 정당대회에서 현재의 국내적, 지역적, 국제적 상황은 변화를 가져오기에 딱 알맞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span style="font-weight: bold;"><br />
<br />
</span><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6c444a39e.jpg" width="272" height="9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6c444a39e.jpg');" /></div><span style="font-weight: bold;"><br />
</span><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4) 노동자당(Worker's Party, PT)</span><br />
<span style="font-weight: bold;"></span></div><span style="font-weight: bold;"><br />
&nbsp;</span>좌익 트로츠키 성향의 이 야당은 89년 정치 다원화 협약 이후인 1990년 알제리의 지하 좌익 운동이 결성하였다. 설립때부터 현재까지 노조 투쟁 및 정치 활동으로 유명한 여성 정치인인 루이사 하누나(Louisa Hanoune)가 이끌고 있다. 그녀는 2009년 대통령 선거에 부테플리카 대통령에 맞서 입후보했다. 1999년에도 대선에 참가했으나 그 때에는 입후보하기 위한 법적 조건인 25,000명의 서명을 얻지 못했다. <span style="font-weight: bold;"><br />
</span><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span><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6edb05842.jpg" width="220" height="30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6edb05842.jpg');" /></div>&lt;루이사 하누나, 알제리 노동자당의 총재<br />
&nbsp;출처 - 위키피디아&gt;<br />
</div><br />
&nbsp; PT는 1991년 최초의 다수정당 총선을 보이콧했으나 이슬람구국전선의 승리 이후 총선 결과를 무효화시키는 데에는 반대했으며 체포된 이슬람주의자들의 석방을 요청했다. 1995년 1월 하누나 총재는 전국해방전선, 사회주의자 전선, 이슬람구국전선 등과 함께 로마 협약을 체결한다. <br />
<br />
&nbsp;1997년 선거에서 하누나 총재는 다른 세 명의 PT 후보와 함께 하원 의원이 되었으며 2007년 선거에서 PT는 26석을 획득했다. <br />
<br />
&nbsp;정당의 극단적인 좌익 이데올로기를 택하고 있지만 트로츠키 노선 내에서는 정당이 자유주의적 정권과 맺고 있는 동맹 관계에 대해 "의심스러운 동맹"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PT는 정권과의 협력이 "알제리를 위협하고 석유와 같은 조국의 부를 노리는 제국주의적 위협"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서는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br />
<br />
&nbsp; PT의 의원들이 2008년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임기 연장에 관한 헌법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것은 PT 당의 정권과의 이런 동맹을 가장 잘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br />
<br />
&nbsp;2012년 총선 선거운동기간에 PT는 대통령 연합의 두 세력인 전국해방전선과 전국민주회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이 두 정당이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방해한다면서 유권자들에게 선거에서 이들을 막아줄 것을 촉구했다. <br />
<br />
&nbsp;한 알제리 신문이 4월에 보도한 것에 따르면 PT 는 새롭게 결성된 정당들에게는 향후 계획이 없으며 몇몇 정당들의 배후에는 국가에 위협이 되는 자본가들과 자본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br />
&nbsp;<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5). 이슬람주의 정당들</span><br />
<span style="font-weight: bold;">&nbsp;</span><br />
<span style="font-weight: bold;">&nbsp;(5-1). 평화를 위한 사회운동(Movement of Society for Peace, Hamas)</span><br />
</div><br />
&nbsp;평화를 위한 사회운동 - 약자로 "하마스"라고 알려진 - 은 60년대 벤 벨라 대통령과 부메디엔 대통령 시기 비밀리에 활동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비밀운동은 70년대 "무와히딘 운동"으로 알려졌다. <br />
<br />
&nbsp;하마스는 공식적으로 쉐이크 마흐푸즈 네흐네흐에 의해 "이슬람사회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1990년에 창설되었으며 후에 현재 이름으로 바꾸었다. 현재는 아부 제라 솔타니(Abu Jerra Soltani)가 이끌고 있다. <br />
<br />
&nbsp;하마스는 1991년 총선 결과 무효화에는 반대했으나 다른 야당들과는 달리 국가과도위원회에 참가했다. 당시 몇몇 야권 운동가들은 이 기구가 군부가 혁명의 정당성을 숨기기 위해 조직한 것으로 여겼다. 1995년 하마스도 다른 야당들과 함께 알제리의 위기를 끝내기 위한 로마 협약에 참가했지만 곧 탈퇴하고 나왔다.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br />
&nbsp;</span>무슬림형제단의 영향을 받은 하마스는 현재까지의 모든 총선에 참가했으며 2007년 선거에서 51석의 의석과 내각의 5개의 장관 자리를 얻었다. 전 지도자였던 쉐이크 네흐네흐는 1995년 대선에서 2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1999년 대선에서는 헌법회의가 그의 자격을 무효화함에 따라 출마하지 못했다.<br />
<br />
&nbsp;정치적,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1999년 하마스는 전국해방전선, 전국민주회의와 함께 "대통령 연합"에 참가했다. 그러나 2011년 대통령 연합에서의 탈퇴,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많은 아랍 국가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이슬람주의자들이 권력을 잡는 방법이 아랍의 봄이라는 혁명을 통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였다. <br />
<br />
&nbsp;분석가들은 하마스의 대통령 연합 탈퇴가 아랍의 봄을 뒤따르고 있는 알제리 국민들을 끌어들이려는 술수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하마스는 연합 탈퇴에도 불구하고 내각의 장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br />
<br />
&nbsp;2008년 봄 하마스는 설립자인 쉐이크 네흐네흐가 사망하자 내부 분열을 겪었는데 하마스의 전 부총재인 압델무지드 모나세르가 "변화 전선"이라는 새 조직을 결성해서 빠져나갔다.<br />
<br />
&nbsp;2012년 3월, 5월 10일로 정해진 총선일이 가까워지자 하마스와 안 나흐다(부흥) 운동, 알 이슬라흐(개혁) 운동의 세 조직이 "알제리 녹색 연합"을 결성, 단일 후보와 단일 선거 운동으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span style="font-weight: bold;"><br />
<br />
</span><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1.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821714f04.jpg" width="230" height="24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1.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821714f04.jpg');" /></div><span style="font-weight: bold;"><br />
</span><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5-2). 안 나흐다 운동(부흥운동)</span><br />
<span style="font-weight: bold;"></span></div><span style="font-weight: bold;"><br />
</span>&nbsp;1989년에 앗 쉐이크 사으드 압둘라 자불라(<b>Saad Abdallah Djaballah)</b>에 의해 결성되었으나 1999년 분열을 겪었다. <br />
<br />
&nbsp;알제리 동부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안 나흐다는 폭력을 반대하는 중도적 입장을 띄고 있다고 밝혔다. 비밀리에 활동하던 시절에는 국제적인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대조로 "지역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br />
<br />
&nbsp;안 나흐다는 정당의 슈라 회의가 1999년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후보를 지지하는 결정을 내리자 설립자 쉐이크 자불라가 이에 반대, 조직이 분열되었다. 그는 후술할 알 이슬라흐 운동을 설립한다.&nbsp; <br />
<br />
&nbsp;2007년 안 나흐다는 5개의 의석을 얻었으며 현재 정당대표는 하마스, 알 이슬라흐 운동과 함께 알제리 녹색연합을 결성한 파테흐 라비이 박사이다. <span style="font-weight: bold;"><br />
<br />
</span><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844b57010.jpg" width="296" height="27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844b57010.jpg');" /></div><span style="font-weight: bold;"><br />
</span><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5-3). 알 이슬라흐 운동(국가개혁운동)</span><br />
<span style="font-weight: bold;"></span></div><span style="font-weight: bold;"><br />
</span><div style="text-align: center;"><div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weight: bold;">&nbsp;</span>알 이슬라흐 운동 역시 1999년 앗 쉐이크 사으드 압둘라 자불라에 의해 설립된 이슬람주의 성향의 야권 조직이다. 알 이슬라흐 역시 내부 분쟁에 시달려 쉐이크 자불라가 조직의 지도자 역할을 사임함에 따라 2002년 하원선거에서 47석을 획득한 원내 제 3당의 위치에서 2007년 선거에서는 4석을 차지한 소규모 정당으로 추락했다. <br />
<br />
&nbsp;총재 하믈라위 하쿠쉬가 이끄는 알 이슬라흐 운동은 하마스와 안 나흐다 운동과 함께 알제리 녹색연합을 결성, 2012년 총선 선거전에 단일 후보명단 및 선거운동으로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br />
<br />
&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1.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8628af40c.jpg" width="248" height="3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1.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8628af40c.jpg');" /></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5-4). 정의개발전선</span><br />
</div><br />
&nbsp;정의개발전선은 이슬람 성향의 야권 정당으로 선거 몇 달 전에 정당등록을 마쳤다. 이 정당은 이전에 안 나흐다 운동과 알 이슬라흐 운동을 세운 야권 이슬람주의 인사이자 200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앗 쉐이크 사으드 압둘라 자불라에 의해 설립되었다. <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89fd5d616.jpg" width="220" height="30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89fd5d616.jpg');" /></div>&lt;The Party Creator&gt;<br />
</div><br />
&nbsp;창립 선언서에서 쉐이크 압둘라 자불라는 정의개발전선이 1974년부터 계속된 이슬람 운동으로부터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새 정당은 국가나 어느 정당, 조직, 개인에게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역설했다. <br />
&nbsp;<br />
&nbsp;그는 또한 알제리 국민들에게 다가올 선거에서 "변화를 이뤄낼 세력"에게 투표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일전에 정의개발전선이 바로 변화를 이뤄낼 정당임을 강조한 바 있다.<br />
<br />
&nbsp;또한 그는 알제리 녹색연합을 "그 연합은 우리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연합은 우리를 저지하고자 하는 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라고 비판했다. <br />
<br />
&nbsp;선거운동에서 쉐이크 자불라는 1년 내로 빈곤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br />
<br />
&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8da63941d.jpg" width="283" height="28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8da63941d.jpg');" /></div></div><span style="font-weight: bold;"></span></div><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5-5). 변화 전선</span><br />
<span style="font-weight: bold;"></span></div><br />
&nbsp;2012년 2월에 정당 등록을 마친 신생 이슬람주의 정당이자 하마스에서 분리된 정당으로 정당발기대회는 2012년 1월 20일에 개최되었다. 현재 변화 전선은 하마스에서 분열해나온 전 장관인 압델무지드 모나세르가 이끌고 있다. <br />
<br />
&nbsp;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변화 전선은 이슬람 사상과 셈족 유일신교와 변화의 계획과 국가의 고정점과 연관되어 있는 이슬람, 국가, 민주주의라는 세 원칙을 기반에 두고 있다. <br />
<br />
&nbsp;총재인 압델무지드 모나세르는 "2012년 총선에서 이슬람 정당들의 선전은 이미 예상된 바다. 이는 알제리 유권자들이 개혁을 원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구를 무시해온 이전의 다수 세력을 심판하고자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span style="font-weight: bold;"><br />
&nbsp;<br />
(6). 알제리의 무슬림형제단<br />
<br />
</span><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9544ebb4b.jpg" width="200" height="2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8/14/e0089814_4fa89544ebb4b.jpg');" /></div>&lt;없는 곳이 없다&gt;<br />
<br />
&nbsp;평화를 위한 사회운동(하마스)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이집트와 튀니지, 모로코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승리를 거둔 뒤 겨우 몇 달 뒤이다. 그러나 형제단의 영향을 받은 하마스는 독자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이슬람주의 정당들과 함께 "알제리 녹색연합"을 결성해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br />
<br />
&nbsp;하마스의 지도자 아부 제라 솔타니는 이 결정이 의회에서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이집트(무슬림형제단의 자유정의당), 튀니지(엔 나흐다), 모로코(정의개발당)에서 만들어지는 "Islamic Crescent"를 완성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br />
<br />
&nbsp;그러나 분석가들은 이집트, 튀니지, 모로코의 이슬람주의 정당들의 승리는 이 지역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의 강화와 함께했지만 알제리의 무슬림형제단은 정권과의 가까운 관계 및 1996년 이후로의 정부 내각에 계속된 참여로 인해 그 세가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br />
<br />
&nbsp;정치 연구가이자 이슬람주의 전문가인 앗 사디끄 살라이미야는 "하마스가 연합을 이뤄 선거전에 뛰어든 것은 만약 단독으로 출마할 시 이들이 정부의 내각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과 지난 17년 간의 실패한 정책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 패배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br />
<br />
&nbsp;하마스 지지 유권자 층은 크게 감소했다. 1995년 대통령 선거 시 하마스의 전 지도나 쉐이크 네흐네흐의 득표수는 350만표였으나 2007년 대선 시 하마스에 표를 던진 유권자는 20만명 이하로 떨어졌으며 겨우 51석을 얻는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br />
<br />
&nbsp;90년대부터 하마스는 정부의 내각 및 모든 총선에 참여해왔다. 그러나 부테플리카 정권에 대한 지속적 지지 및 협력은 대중들 사이에서 하마스의 인기를 떨어뜨렸으며 이전에 누리고 있던 신뢰를 상실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살리이미야 씨는 언급한다.<br />
<br />
&nbsp;하마스뿐만 아니라 하마스와 같이 알제리 녹색연합을 결성한 안 나흐다 운동, 알 이슬라흐 운동과 같은 정권과 협력해 온 모든 이슬람 정당도 지지도 하락을 겪었다. 즉 1997년 총선에서 총 103석을 획득한 이슬람주의 정당들은 2002년의 87석, 2007년의 59석만 획득하는데 그쳤다. 이 중 안 나흐다 운동은 3석, 알 이슬라흐 운동은 겨우 5석을 얻었다.<br />
<br />
&nbsp;앗 사디끄 살라이미야씨는 "안 나흐다, 알 이슬라흐가 설립자인 쉐이크 사으드 압둘라 자볼라와의 관계를 끊었을 때 대중에 대한 이들의 영향력은 크게 줄었으며 이제 이 두 정당은 군소정당으로 간주된다" 라고 말했다. <br />
<br />
&nbsp;하마스에 대한 지지도의 하락은 2007년 총선 결과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하마스는 38개 주에서 의석을 얻었지만 이전에는 이슬람주의 성향이 강하던 10개 주에서는 단 한 개의 의석도 얻지 못했다. <br />
<br />
&nbsp;정치 연구가이자 이슬람주의 정당 전문가인 살림 일리야스 박사는 "알제리에서의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지지는 1991년과 2012년 사이에 크게 감소했다. 알제리 혁명 세대의 자식들이 자라서 이제 선거권을 얻게 된 지금, 이들은 과연 어느 정당에 표를 던질 것인가?"라고 말했다. 또한 살라이미야 씨는 "2003년 하마스가 다른 두 정당과 함께 대통령 연합에 가담, 부테플리카 대통령에 협력한 것은 하마스의 지지도 하락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하마스의 정치적 계획이 다른 두 정당의 계획과 구분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마스의 총재 아부 제라 솔타니가 이걸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라고 덧붙였다. <br />
<br />
&nbsp;하마스는 선거가 있기 단 5달 전에 "국익을 실현하고 폭력사태를 줄이려는 대통령 연합의 목표는 완수되었다"라고 말하며 대통령 연합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연합 가담으로 인해 그가 많은 인기를 잃었다고 느끼고 있다고 언급한다.<br />
<br />
&nbsp;앗 사디끄 살라이미야씨는 "하마스가 대통령 연합에 참가한 것은 지지도 상실뿐만 아니라 조직 내에 서로 갈등하는 네 개의 노선이 탄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거 이후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려는 앗 사이드 모르시 노선, 내각 참여에 반대하는 라비흐 샤이트 노선, "변화 전선"이라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 독자적으로 선거에 뛰어든 압둘무지드 모나세르 노선, 그리고 아부 제라 솔타니 노선 이 네 개이다"라고 설명했다.<br />
<br />
&nbsp;올해 3월 알제리 신문이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는 하마스의 이런 지지도 하락을 잘 보여준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고작 2%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는 전체 468석 중 겨우 10석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앗 사디끄 살리이미야, 살림 일리야스와 같은 전문가들은 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br />
<br />
&nbsp;앗 사디끄 살라이미야씨는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다수당을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지만 2% 이상은 획득할 것이다. 아마도 20에서 25석 정도는 확보할 것이다." 라고 언급했다. <br />
<br />
&nbsp;이슬람주의 정당들이 지금까지 지역의회 및 하원 그리고 정부 내각에 참여해 왔기에 국민들은 주거문제, 식량 가격 상승, 실업 문제와 같이 알제리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들의 책임이 이슬람주의 정당들에게도 있다고 느끼고 있다. <br />
<br />
&nbsp;알제리 국민들이 투표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점점 낮아지는 선거율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총선 시 65%, 2002년 64%였던 선거율은 2007년 총선 시 35%로 떨어졌다. 또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야권 세력은 공식으로 발표된 선거율이 정부에 의해 부풀려졌다고 비난한다는 것이다. <br />
<br />
====================================================================================================================<br />
<br />
http://harmless.egloos.com/3322309 <br />
이 포스팅에 나온 시리아의 "전국민주회의"의 아랍어 이름은 여기 나온 알제리의 정당과 똑같습니다. 이전에 올린 포스팅에서 시리아의 전국민주회의 심볼로 올린건 이제 확인해보니 알제리 정당의 심볼이더군요. 물론 두 정당이 공교롭게도 똑같은 심볼을 쓸 가능성도 있지만.... 알 자지라 보도에서도 시리아 전국민주회의 심볼이 알제리 정당의 심볼과 똑같이 나와 있었습니다만은....<br />
<br />
아무튼 제가 보기엔 저 심볼은 알제리 정당의 심볼이기에 시리아 포스팅의 글은 수정합니다. <span style="font-weight: bold;"><br />
  </span>			 ]]> 
		</description>
		<category>Al-Tarājim[번역]</category>

		<comments>http://harmless.egloos.com/3322890#comments</comments>
		<pubDate>Tue, 08 May 2012 04:37:16 GMT</pubDate>
		<dc:creator>jeltz</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알 자지라 알제리 총선 특집(1) - 역사적 배경, 국가 기구들 ]]> </title>
		<link>http://harmless.egloos.com/3322515</link>
		<guid>http://harmless.egloos.com/3322515</guid>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div style="text-align: left;">다음은 알자지라 특별보도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br />
<br />
http://www.aljazeera.net/coverage/pages/a530dc31-eb29-4892-b448-6d52662d1d21<span style="font-weight: bold;"></span><br />
<span style="font-weight: bold;"></span></div><span style="font-weight: bold;"><br />
</span><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3a0ba4f69.jpg" width="500" height="333.1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3a0ba4f69.jpg');" /></div>&lt;선거 벽보를 보는 알제리 사람들<br />
출처 - AFP/Farouk Batiche&gt;<br />
<span style="font-weight: bold;"><br />
&nbsp; 1. 서론</span><br />
</div><br />
&nbsp;세 명의 통치자들을 무너뜨리고, 서쪽의 모로코에서 역사상 최초로 이슬람주의 세력이 이끄는 정부를 탄생시킨 아랍의 봄 이후 알제리인들은 2012년 5월 10일 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된다. <br />
<br />
&nbsp;현재는 금지된 이슬람구국전선(Islamic Salvation Front)이 승리한한 1991년 대선는 공정하게 치뤄진 마지막 선거였다. 그러나 이후 여러 정당들이 이슬람주의자들의 성장을 막기 위해 군대의 개입을 지지하고 선거 결과 무효화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야권 세력은 치뤄진 모든 선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정부가가 선거를 조작했다고 비난했다. 2011년의 총선에는 수십개의 정당이 참여했는데 이 중 이슬람주의 정당도 몇 개 있었다. 이슬람주의 정당들은 선거 몇 주 전에 정당등록 허가를 받았다. <br />
<br />
&nbsp;압둘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2011년 총선이 발전적이었으며 정부는 선거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했음을 밝혔다. 그러나 몇몇 야권 정당들은 이에 의문을 제기하고 선거가 이전과 달라지지 않는다면 보이콧 하기로 결정했다. <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2. 역사적 배경</span><br />
</div>&nbsp;<br />
&nbsp;1962년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알제리 군은 정치생활을 지배했고, 대통령들은 명목상의 선거로 위장한 군부의 선택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알제리 혁명 시의 "정치적 활동의 우선순위는 군에게 있다"라는 결정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결과였다. 군 출신의 우아리 부메디엔 대통령은 군을 장악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br />
<br />
&nbsp;1988년 대규모 민중봉기로로 인해 정부는 정당 정치를 허용했고, 이슬람구국전선은 창설 30여년 만에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샤들리 벤 자디드 대통령의 사임 이후후 군부가 바로 개입, 총선 결과를 무효화하였다. 군부 개입 이후 군대와 무장 이슬람 집단간의 유혈 충돌이 이어졌으며 10여년 동안 10만~20만명이 사망했다. <br />
<br />
&nbsp;1999년부터 충돌의 강도는 점차 줄어들었는데, 이는 점차 이슬람구국전선의 무장부대가 무장을 포기하고 알제리 무장 이슬람조직(Armed Islamic Group of Algeria)이 중립화되면서 일어났다. 그러나 알제리 무장 이슬람조직에서 분리된 무장 살라피 투쟁 조직(후에 이슬람 북아프리카 알 카에다,AQIM으로 바뀜)은 여전히 간헐적인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3a43a896d.jpg" width="220" height="43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7/14/e0089814_4fa73a43a896d.jpg');" /></div>&lt;알제리 대통령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Abdelaziz Bouteflika)<br />
출처 - 위키피디아&gt;<br />
</div><br />
&nbsp;유혈사태의 진정은 1999년 압둘아지즈 부테플리카가 대통령이 되는 것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는 취약해진 대통령의 권한을 다시 회복시켰으며 그는 유명한 연설에서 "나는 3/4짜리 대통령이 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br />
. 그러나 야권 세력은 그가 대통령의 권한을 의회나 사법기구를 포함해 나라를 감시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br />
<br />
&nbsp;부테플리카는 연설에서 때로 그가 이슬람주의도 적대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는 했다. 대통령이 된 이후의 연설에서 그는 "1991년 총선결과를 취소한 사람들이 폭력을 시작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1991년 총선결과를 취소한 세력을 포함한 세속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이슬람구국전선의 금지상태를 해제하지 않고 있다. <br />
<br />
&nbsp;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석유수입을 이용, 동-서를 잇는 고속도로나 알제시의 지하철, 100만명을 위한 주거단지와 같은 대규모 건설계획을 시작했으며, 외채도 상환했다. 그러나 이 대규모 계획들은 실업률을 줄이지 못했으며 다양한 부패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임금은 치솟는 물가와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했고 2011년 초 이런 불만이 대규모 시위로 터져나오게 되었다. <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3. 국가 기구들</span><br />
</div><br />
&nbsp;(1). 대통령<br />
<br />
&nbsp;알제리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권한은 다음과 같다<br />
&nbsp;- 최고 군사령관이자 국방부장관<br />
&nbsp;- 의회 해산권<br />
&nbsp;- 상원의원의 1/3 임명권<br />
&nbsp;- 헌법회의의 의원 1/3 임명권(나머지 1/3의 임명권은 대통령과 연합한 두 개의 정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에게 있다)<br />
&nbsp;- 국가 공식 의식의 주재<br />
&nbsp;- 외교정책 결정<br />
&nbsp;- 수상의 임명 및 해임<br />
&nbsp;- 민간 정부 기구 및 군사 기구의 책임자 임명(중앙은행 책임자, 정보기관 책임자, 주지사 등) 분석가들은 이 중 정보기관 책임자 임명이 가장 앞선다고 한다<br />
&nbsp;- 사면권 <br />
&nbsp;- 비상조치 발동<br />
&nbsp;- 국민투표를 부칠 권한<br />
&nbsp;<br />
&nbsp;헌법상에 규정된 광범위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독립 이후 세워진 알제리의 국가 기구들 중 가장 안정적이지 못한 자리였으며 군부나 정보기관에 의한 볼모가 되곤 했다다. 50여년간 재임했던 6명의 대통령들 중 4명이 임기가 끝나기 전에 아흐마드 벤 벨라와 같이 군사 쿠데타로 물러나거나 앗 샤들리 벤 자디드와 같이 사임하거나 무함마드 부디야프와 같이 암살당하는 식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부테플리카는 비록 그가 군부 지지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었지만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을 실질적으로 되돌렸다. 특히 2003년 재선 이후 경제 분야, 정치 분야, 민간 행정 분야의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용해 권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br />
<br />
&nbsp;또한 그는 장군들이 90년대에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는 범죄들에 대한 면책특권권을 취소함으로써 장군들을 무력화시켰고 이로 인해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려는 헌법 개정에서 그들의 반대를 저지할 수 있었다. 여기에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알제리를 국제 정치 무대로 복귀시킴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얻기도 했다. <br />
<br />
&nbsp;(2) 의회<br />
<br />
&nbsp;의회의 기본적인 임무는 헌법에 따라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지만 야권 세력은 의회가 단순 거수기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알제리 언론들은 의회 내의 부패 규모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분석가들은 의회가 경제적, 재정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라고 인정하고 있다. <br />
&nbsp;<br />
&nbsp;정치학 교수인 사마라 나시르 교수는 알제리 의회가 "비즈니스 거래를 체결하고 중앙의 결정권자들과 친교를 다지는 곳" 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br />
<br />
&nbsp;의원들이 누리고 있는 면책특권으로 의원들은 국경이나 공항에서 보안기구에 의해 검사를 받지 않으며, 이들은 혐의를 받는 활동에 대한 은폐, 돈세탁 및 해외로의 자금 유출에 사용하고 있다. <br />
<br />
&nbsp;(2-1) 상원<br />
<br />
&nbsp;1996년 헌법 개정으로 설립된 상원은 144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이다. 의원 중 절반은 3년마다 새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상원의원 1/3을 임명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는 간접적인 비밀투표로 선출되는 지역 의회에 의해 선출된다. <br />
<br />
&nbsp;상원은 헌법 수정 및 헌법 수정안을 제출할 수 없다. 그러나 상원은 법안의 최종 결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야권 세력은 상원이 하원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대통령의 또 다른 도구라고 보고 비판하고 있다.<br />
<br />
&nbsp;(2-2) 하원<br />
<br />
&nbsp;현재 하원은 389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462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하원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대통령에 협조적인 - 두 정당간의 정치적 견해차이는 있지만 - 전국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 FLN) 및 전국민주회의(National Rally for Democracy, RND)에 속해 있다. <br />
<br />
&nbsp;헌법에 따르면 하원은 정부의 활동을 감시하고 불신임투표까지 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야권 세력은 하원은 단순한 거수기라고 보고 있다. 다수당으로 구성된 하원이 세워진 지 15년 동안 정부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시행한 적이 없다. 또한 야권 정당들은 수상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하원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비난해왔으며, 이는 정부가 하원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br />
<br />
====================================================================================================================<br />
<br />
시리아 특별보도도 아직 다 번역 못했는데 알제리 거는 또 언제 한다...... 인샤알라.. <br />
<br />
&nbsp;<br />
 			 ]]> 
		</description>
		<category>Al-Tarājim[번역]</category>

		<comments>http://harmless.egloos.com/3322515#comments</comments>
		<pubDate>Mon, 07 May 2012 03:02:03 GMT</pubDate>
		<dc:creator>jeltz</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알 자지라 시리아 특집(3) - 1. 전통적 야권 세력 ]]> </title>
		<link>http://harmless.egloos.com/3322309</link>
		<guid>http://harmless.egloos.com/3322309</guid>
		<description>
			<![CDATA[ 
  <div><span style="color: rgb(51, 51, 51); font-family: applegothic, sans-serif; line-height: 18px;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다음은 알 자지라에서 제공하는 시리아 특집 보도 중 지역 정보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span></div><div><br />
</div><div>&nbsp;<a href="http://www.aljazeera.net/coverage/pages/1ec5ff4e-a696-4cfa-8f60-67ac2e8df9b3">http://www.aljazeera.net/coverage/pages/1ec5ff4e-a696-4cfa-8f60-67ac2e8df9b3</a></div><div><br />
</div><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b3c2a445.jpg" width="220" height="18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b3c2a445.jpg');" /></div></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b>&nbsp;1. 무슬림형제단&nbsp;</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nbsp;시리아의 무슬림형제단은 1928년 하산 알 반나가 이집트에서 설립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이 확장한 것이다. 초대 형제단 지도자(General Observer)인 무스타파 앗 시야이는 1945년 제헌국회의 첫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50년에는 하원 부의장이 되었다. <br />
<br />
&nbsp;형제단에는 세 개의 권력기구가 존재한다. 형제단 지도자를 선출하는 슈라 회의로 대표되는 입법기구와 지도자 및 지도부의 구성원들을 포함, 형제단의 일들과 계획, 정책을 결정하는 집행 기구 그리고 지도자와 지도부 구성원을 처벌하고 형제단 내의 갈등을 조정하는 사법 기구가 그것들이다. 현재 알리 사드르 앗 딘 알 바야누니의 뒤를 이어 무함마드 리야드 앗 샤까파가 형제단의 지도자가 되었다.<br />
<br />
&nbsp;1964년 바쓰당이 권력을 잡은 이후 형제단과 정부의 관계는 약화, "투쟁 전선"이라는 형제단에서 분리한 조직이 무력 행동을 통해 정부와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 제정된 법령 49조에 따라 무슬림형제단과 연계된 사람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팔미라, 지스룰 슈그르, 홈스 등에서 학살이 있었으며 결국 1982년 하마 시에서 3만명 이상이 정부군의 공격으로 사망했고 형제단의 많은 지도부와 일원들이 감옥 및 망명지로 흩어졌다.<br />
<br />
&nbsp;망명지에서 형제단은 시리아에 대한 형제단의 비전을 여러 차례 수정했고, "시리아 무슬림 형제단의 정치 계획"이라는 이름이 붙은 소수 집단이 보호받고 시민 사회가 기반이 되는 민주주의 시리아에 대한 비전을 발표했다. <br />
<br />
&nbsp;바샤르 알 아사드 집권기에 있었던 다마스쿠스의 봄(2000년 초기) 시기 많은 반정부 인사들과 세력들 그리고 야당들이 발표했던 제안들을 지지했으며 "국가적, 민주적 변화를 위한 다마스쿠스 선언"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권의 탄압과 일시적이었던 다마스쿠스의 봄이 끝나자 형제단은 정권을 버린 전(前) 부통령이었던 압둘 할림 캇담이 이끄는 반정부 인사 및 정당 연합에 가담, 2006년 6월 국가구원전선(Nationla Salvation Front) 를 결성했다. <br />
<br />
&nbsp;2009년 8월 13일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시기 형제단은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는 중요한 투쟁에 집중하기 위해 반정부 활동을 중단했으며, 곧 국가구원전선이 국가적인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형제단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국가구원전선에서 탈퇴했다. <br />
<br />
&nbsp;2011년 혁명이 발발하자 형제단은 5월에 안타키야에서 "변화를 위한 시리아 회담", 7월의 이스탄불 회담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으며 가장 큰 반정부 연합인 "시리아 국가위원회(Syrian National Council)"의 설립에 참가했다.&nbsp;<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b>&nbsp;2. </b><span style="font-weight: bold;">전국민주회의</span><b>(Rassemblement National Démocratique, RND)</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nbsp;70년대 말 이슬람주의자들과 정부의 갈등이 심해지던 시기, 전국민주회의가 좌익성향의 야권 세력을 조직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RND는 여전히 "국가발전동맹"(여당인 바쓰당과 협력하는 정당들)에 맞서는 야권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RND는 좌익 성향의 다섯개의 정당 - 시리아 공산당(정치국), 아랍혁명노동자당, 아랍사회주의 부흥민주당, 아랍사회주의자 운동, 민주아랍 사회주의동맹 - 으로 구성되어 있다. RND는 다양성에 대한 인정, 정치, 사회, 경제 체제 및 국민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정권 선택에 있어서의 국민의 능력을 인정함으로써 시리아를 위기로부터 구해내겠다는 강령을 세웠다. <br />
<br />
&nbsp;2001년 말 RND는 시리아의 국제적 정책과 아랍 국가에 대한 정책 그리고 정치,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담은 정치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비상조치와 계엄령의 해제, 정치범 석방, 자유, 권력의 분리, 사회주의 시험이 실패로 돌아간 지금에 상황에 맞는 헌법 개정, 사기업 분야의 자유에 기반을 둔 경제구조와 시장경쟁의 활성화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br />
<br />
&nbsp;이 시기 RND는 정권 측으로부터 용인되었으며 아랍사회주의동맹(RND 소속의 정당.) 지역들에서 문화-정치 포럼들을 개최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의 포럼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은 정부로부터 폐쇄당했으며 2005년 다마스쿠스의 포럼도 폐쇄되었다. <br />
<br />
&nbsp;RND는 2005년 다마스쿠스 선언의 결성에 다른 야권 세력과 같이 참가했던 세력이다. 그러나 2008년 "피상적인 행동, 소수 집단과 인물에 의한 독점, 어떤 목적도 달성하는데 실패, 아랍-이슬람 정치 동맹으로의 변질"을 비난하며 탈퇴하였다. <br />
<br />
&nbsp;2011년 혁명 발발 이후 RND는 평화적인 혁명에 지지를 표명하고, 시리아 국가위원회(SNC)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nbsp;</div><div><br />
</div><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b88d8be2.jpg" width="469" height="29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b88d8be2.jpg');" /></div></div><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b>&nbsp;3. 국가적 민주적 변화를 위한 다마스쿠스 선언(Damascus Declaration)</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nbsp;2000년 바샤르 알 아사드가 아버지 하피즈 알 아사드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으면서 보안조치의 완화, 자유의 확대 등을 약속했고 이와 함께 다양한 정치 포럼과 개인 소유 언론 기관들이 나타났다. 이 시기는 후에 "다마스쿠스의 봄"이라고 불려졌다. <br />
<br />
&nbsp;그러나 이 봄은 6개월 이상 가지 못했다. 보안 조치는 다시 강화되었다. 그러나 몇몇 활동가들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으며 2005년 다양한 야권 세력의 참가로 민주적 변화 실행을 위한 광범위한 계획을 담은 "다마스쿠스 선언"이 발표되었다. <br />
&nbsp;<br />
&nbsp;이 선언에는 쿠르드 세력, 아시리아 세력을 포함한 다양한 야권 단체, 정치조직, 정당, 시민조직들이 참가했으며 형제단도 이 선언에 대한 전면적 지지를 발표했다. <br />
<br />
&nbsp;정권은 이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선언의 구성원들에 대한 체포와 고소 작업을 시작했다. 선언의 지도부 중 많은 수가 국가 안보 위협이라는 혐의라는 판결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지도부들은 망명지로 도피, "다마스쿠스 선언" 조직을 해외 사무국과 국내 사무국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다마스쿠스 선언의 사무총장은 사미르 안 나샤르이며, 리야드 앗 타르크와 아민 앗 쉐이크 우바이디, 알리 알 압두 알라후가 조직의 지도부로 일하고 있다. <br />
<br />
&nbsp;다마스쿠스 선언은 변화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들의 요구를 정당한 것으로 보고 지지하고 있으며 시리아 국가위원회 결성에 실질적으로 참가하였다.</div><div><br />
</div><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2.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bb1ac6bd.jpg" width="220" height="19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2.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bb1ac6bd.jpg');" /></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b>&nbsp;4. 정의와 발전을 위한 운동(Movement for Justice &amp; Development)</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nbsp;정의와 발전을 위한 운동은 바샤르 알 아사드가 개혁을 약속하면서 시리아 정치계에 일어났던 "다마스쿠스의 봄"이 남겼던 발전 속에서 설립되었다. 이 운동은 이슬람 성향의 조직이며 그 지도부 대다수가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br />
<br />
&nbsp;이 운동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정의와 발전을 위한 운동은 종교와 종파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으며, 이슬람에 기반하여 자유, 권리, 가치, 도덕, 인권에 최우선권을 부여하며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국가를 세우고자 한다. 현재 정보기술부에서 근무하며 영국에 머무르고 있는 아네스 알 압다가 이끌고 있다. <br />
<br />
&nbsp;2011년 4월 18일 워싱턴포스트 지(紙)가 실은 위키리스크 문서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가 이 운동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브래디(Brady) 위성방송 채널에 600만 달러 정도의 금액을 제공했다고 한다.&nbsp;</div><div><br />
<div style="text-align: center;"><b>&nbsp;5. 민주적 이슬람 독립 노선</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nbsp;민주적 이슬람 독립 노선은 2005년 다마스쿠스 선언에 참가했으며 이 노선이 갓산 안 낮자르, 야세르 알 아이타이, 아흐마드 따아마 셋이 다마스쿠스 선언 사무국과 위원회의 일원으로 선출되었다. 이 세 명은 후에 모두 체포되었다. <br />
<br />
&nbsp;2010년 독립 노선은 대통령에게 국가적 화해를 촉구하는 성명을 보냈다. 그 화해의 첫 단계로 무슬림형제단과 연계 시 사형 선고를 규정한 법령 49조의 폐지 및 모든 망명자들의 귀국 허용을 제시했다. <br />
<br />
&nbsp;갓산 안 낮자르는 시리아 혁명을 불러 일으킨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2월 5일 "분노의 금요일" 시위를 촉구한 인물 중 하나였으며, 금요일 하루 전에 체포되었다. 그가 73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식투쟁에 나섰다. <br />
<br />
&nbsp;또한 민주적 이슬람 독립 노선은 다마스쿠스와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국가구조회의"에 참가했다. 이스탄불 회의 시 이 노선에 속한 하이쌈 알 말리흐가 회의를 주재했으며 갓산 안 낮자르가 시리아에서 핸드폰을 통해 발언했다. <br />
<br />
&nbsp;민주적 이슬람 독립 노선은 "슈라 회의"가 어떤 신조도 포함하지 않는 정치적 개념이며 정치 체계에 있어서 그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스스로를 정당이 아닌 사회 구조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며 이슬람에 기반을 둔 시민 국가, 민주 국가, 자유 등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문을 열어두고 있다.</div><div><br />
</div><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c6fb7a6c.png" width="220" height="14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c6fb7a6c.png');" /></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쿠르디스탄 국기&gt;</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b>&nbsp;6. 쿠르드 단체들</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nbsp;200만명 정도의 시리아의 쿠르드인은 주로 동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시리아의 프랑스에 맞서 독립 투쟁을 벌인 이브라힘 하나누 등과 같이 다양한 정치활동에 참여하며 파우지 앗 셀와(1951-53, 대통령)나 호스니 앗 자임(1949, 대통령 및 총리. 이상 두 명은 모두 군사정권 시기 정치인들)과 같이 공화국 대통령과 같은 고위직에도 오르기도 하는 등 시리아 사회와 분리된 집단이 아니다. <br />
<br />
&nbsp;정치적 측면에서 50년대부터 결성된 쿠르드 정치 세력은 여러 정당들과 조직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정당은 1957년에 결성된 시리아 쿠르드민주당(PDKS)으로 6년 뒤 두 파로 분열되었다. 하나는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민주당과 가까운 압둘 하킴 바샤르 파, 다른 하나는 쿠르드 좌익 정당과 연합한 나스르 앗 딘 이브라힘 파였다. 또한 이스마일 하미가 이끄는 좌익 성향의 정당이 있었는데, 이 당의 강령에 따르면 당 대표는 정치국 당원들 사이에서 선거 없이 돌아가면서 임명되었다.<br />
<br />
&nbsp;또한 살레흐 무슬림이 이끄는 좌익 성향의 민주통합당(PYD)이 있었다. 이 정당은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노동자당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쿠르드인들의 자치권을 주장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br />
<br />
&nbsp;한편 자유주의 성향으로 간주되는 쿠르드 독립 노선은 스스로를 정치 집단이 아닌 청년들의 요구사항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적 집단으로 규정하며, 시리아의 쿠르드인들이 시리아 사회에 통합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쿠르드 독립 노선의 설립자인 마슈알 타무는 이스탄불의 국가구조회의와 시리아 국가위원회 설립 멤버이자 시민사회 및 정치 활동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었다. 그러나 마슈알 타무는 2011년 10월 정체 불명의 무장 집단에게 체포되었다.<div><br />
</div><div>&nbsp;2011년 10월 26일 150명 이상의 인사들과 10개 정당이 야권 세력에서 시리아 쿠르드인들의 요구를 대표하기 위한 쿠르드 국가위원회의 설립을 발표했다. 그러나 쿠르드 국가위원회는 민주적 변화를 위한 국가조정위원회, 시리아 국가위원회, 다마스쿠스 선언 등과 같은 기구에서 쿠르드 일원들의 활동 정지를 선언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시리아 내에서 쿠르드 민족의 존재에 대한 헌법의 인정 및 통일된 시리아라는 일환에서 시리아 쿠르드인 문제 해결에 관해 세 집단과 쿠르드 단체들간의 상호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쿠르드 국가위원회는 모든 쿠르드인들을 대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민주통일당, 쿠르드 지역의 혁명조정위원회들과 6개의 다른 쿠르드 정당은 쿠르드 국가위원회와 분리한 상태이다.</div><div><br />
</div><div>&nbsp; 2012년 1월 28일, 종교계, 시민사회, 청년 조직 등의 200명 이상의 인물들과 11개의 정당들이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내의 아르빌 시에서 열린 시리아 쿠르드 공동체 회의에 참가했다.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지도자 마스우드 알 바르자니는 회의에서 이라크 쿠르드인들이 시리아 쿠르드인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내부 분쟁을 마무리짓고 시리아 쿠르드인들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연설했다.</div><div><br />
</div><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d459f4ca.png" width="410" height="27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d459f4ca.png');" /></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아시리아인들의 깃발&gt;</div><div></div><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b>&nbsp;7. 아시리아 단체들</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nbsp;아시리아인들은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동부에 기원전 3천년 전부터 살아온 민족집단으로, 현재는 다양한 종파의 기독교를 믿고 있다.&nbsp;</div><div><br />
</div><div>&nbsp;시리아의 아시리아 단체들 중 가장 유명한 단체는 민주 아시리아인 기구로 1957년 시리아 국내와 해외의 아시리아인들을 대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기구의 지도자들은 80년대부터 체포, 억압 등에 시달려왔으며 현재는 바쉬르 사으디가 이끌고 있다.&nbsp;</div><div><br />
</div><div>&nbsp;이 기구는 빼앗기고 쫓겨난 아시리아인들의 땅으로의 귀환을 주장하고 있으며 따라서 정부는 이들의 모든 정치적 활동을 금지했다. 결국 지도부 대다수는 유럽으로 망명, 아시리아인들이 많은 독일과 스웨덴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nbsp;</div><div><br />
</div><div>&nbsp;아시리아 단체들에는 &nbsp;아시리아인 민족회의와 2007년 6월 1일 세속-민주 국가내에서의 아시리아인들에 대한 헌법적 인정과 민족이 겪어온 문제 해결이라는 목적을 밝히면서 설립된 시리아 아시리아 민주회의 그리고 이라크의 베이트 안 나흐레인 지역에 아시리아 자치국가를 세우려고 하는 아시리아 민주당이 포함되어 있다.&nbsp;</div><div><br />
</div><div>&nbsp;2011년 9월 언론들은 이 4 개의 아시리아 단체들이 여러 차례의 공동 회담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의 미래에 대한 통합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 조직으로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아시리아 민주회의는 이스탄불의 국가구조회의에 참가했으며&nbsp;</div><div>민주회의의 대표는 현 시점에 아시리아 국가를 세우겠다는 생각은 충분히 논의된 것도, 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밝혔다.</div><div><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b>&nbsp;8. 자유주의 세력</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nbsp;시리아 내의 자유주의 세력의 기원은 독립의 여명기까지 거슬러간다. 그러나 이들은 50년대 말부터 탄압에 시달렸다. 가말 압델 나세르가 시리아와 이집트가 사회주의 정부 하에 한 국가로 통합할 시 내선 조건에 따라 모든 정치 정당이 해산되었고, 곧 바쓰당의사회주의 세력이 1964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 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사상적 영향력이 파괴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영향력은 정치적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반동의 경향으로 사라지고 말았다.</div><div><br />
</div><div>&nbsp;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하고 자유주의 운동은 이전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으나, 2000년에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권좌에 올라 개방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시리아 정치에 뚜렷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따라서 자유주의 세력의 단체 및 정당 대부분은 해외에 존재하고 있고 대부분 실제적 영향력 없으며 그들의 존재는 가상 공간의 세계에만 한정되어 있다. 이런 정당 및 단체들 중 몇몇은 다음과 같다.&nbsp;</div><div><br />
</div><div>&nbsp;8-1. 개혁당 - 2001년 미국에서 파리드 알 가디리에 의해 설립. 미국의 정치인 및 여러 단체들에서 지지를 받고 있으나, 시리아 국내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누리고 있지 못하며 특히 파리드 알 가디리가 2006년 이스라엘을 방문한 이후 인기가 떨어짐.&nbsp;</div><div><br />
</div><div>&nbsp;8-2. 해방국민동맹 - 2005년 카타르 회담에서 정부가 개혁을 약속한 이후 알레포의 상공업자들이 설립. 경제와 정치에 있어서 중산층의 역할 회복 요구.&nbsp;</div><div><br />
</div><div>&nbsp;8-3. 시리아 자유주의회의 - 나빌 파야드와 지하드 나스라가 결성했으나 2004년 나빌 파야드가 2주간 구금된 이후 해산, 이후 이 두 명은 개혁당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짐.&nbsp;</div><div><br />
</div><div>&nbsp;8-4. 전국민주주의 부흥당 - 압둘아지즈 다함 알 무살리뜨가 미국에서 결성. 이 정당은 서구 자유주의 사상의 필요성과 시리아 문명의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가치를 강조함.</div><div><br />
</div><div>&nbsp;8-5. 통일 시리아 연합 -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삼촌인 리파아트 알 아사드가 2005년부터 이끄는 정당으로, 리파아트의 아들 수마르 알 아사드가 프랑스에서 결성한 아랍민주국민당을 계승한 정당. ANN 위성방송이 이 정당의 소식통 역할을 하고 있음</div><div><br />
</div><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1.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f3e0b015.png" width="200" height="19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1.egloos.com/pds/201205/06/14/e0089814_4fa66f3e0b015.png');" /></div></div><div></div><div><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b>&nbsp;9. 공산주의 세력</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nbsp;공산주의 세력은 여러 차례 당내 노선 갈등이 있었는데 그 중 주요한 세력은 다음과 같다.</div><div><br />
</div><div>&nbsp;9-1. 시리아 공산당 - 공산주의 세력은 1924년 레바논인인 푸아드 앗 샤말리에 의해 시리아에 들어왔다. 앗 샤말리는 정당결성 이후 1년이 지난 1925년에 반 프랑스 운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30년대 중반 칼리드 바크다쉬가 앗 샤말리의 자리를 이어받았다.&nbsp;</div><div><br />
</div><div>&nbsp;시리아 공산당은 1953년 전까지는 의회에 진출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후 공산당의 영향력은 1958년 이집트와의 통일아랍공화국이 세워질 때까지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 시기 정부와 갈등을 빚었고 정치적 탄압에 시달리게 되었다.</div><div><br />
</div><div>&nbsp;1972년 시리아 공산당은 리야드 앗 타르크 노선의 시리아 공산당-정치국과 칼리드 바크다쉬 노선의 시리아 공산당으로 분열되었다. 칼리드 바크다쉬 노선의 시리아 공산당은 바쓰당이 이끄는 정당이자 조직된 야당세력인 국가발전전선에 가담하였다.&nbsp;</div><div><br />
</div><div>&nbsp;1983년 바크다쉬 노선은 다시 한번 분열, 칼리드 바크다쉬의 미망인인 와살 파라하 바크다쉬 노선과 하닌 나므르가 이끄는 유수프 파이살 노선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각 노선은 스스로가 시리아 공산주의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두 노선 모두 국가발전전선에 계속 남아 있었다.&nbsp;</div><div><br />
</div><div>&nbsp;9-2. 시리아 공산주의 노동당 - 스스로를 시리아 공산주의 운동의 대표라고 간주한 시리아 공산당 외에도, 공산주의 청년운동은 60년대 말 정당 정치의 틀 밖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1972년 이 운동의 간부들이 공산주의 노동조직을 결성하고 반정부와 정권 교체의 기치를 세웠다. 1981년 조직은 다른 정치 단체 및 정당들과 첫번째 통합 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로 시리아 공산주의 노동당이 결성되었는데, 이 정당은 당시 정권보다 공산주의 세력의 가장 큰 적이었던 이슬람주의에 맞서기 위해 세력의 힘을 하나로 단결시키려는 목표에서 세워졌다.</div><div><br />
</div><div>&nbsp;정당 간부들은 감시 때로는 무시를 받았고 언론과 팜플렛을 통해 정당의 뜻을 알리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기본 구조가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다마스쿠스의 봄 시기에 파티흐 자무스는 정당의 세력을 어느 정도 다시 키우기 시작했고 2004년 "지금"이라는 정기 간행물을 발간하기도 했다.&nbsp;</div><div><br />
</div><div>&nbsp;9-3. 시리아 공산주의자 단결을 위한 전국전선 - 이 조직은 바크다쉬 노선에서 탈퇴한 "까시윤(다마스쿠스에 있는 산 이름) 조직"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이들의 수는 27명에 불과했으며 트로츠키주의자로 비난을 받고 있었다. 까시윤 조직은 시리아 공산당이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독재정권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비난했다.</div><div><br />
</div><div>&nbsp;2001년 이 조직은 정치적 개방 분위기를 이용,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족벌주의와 정치적 단절을 비난하는 성명서에 서명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시리아 공산주의자들을 족벌정치에서 거리를 둔 투명한 활동을 하는 조직으로 하나로 묶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을 "시리아 공산주의자 단결을 위한 전국전선"이라고 바꾸었다.&nbsp;</div><div><br />
</div><div>&nbsp;2011년 혁명이 일어나자 전국전선은 시리아 민족사회당(알리 하이다르 노선)및 비당파 인사들과 함께 "해방과 변화를 위한 전선"을 결성했다.&nbsp;</div></div>			 ]]> 
		</description>
		<category>Al-Tarājim[번역]</category>

		<comments>http://harmless.egloos.com/3322309#comments</comments>
		<pubDate>Sun, 06 May 2012 12:33:30 GMT</pubDate>
		<dc:creator>jeltz</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UAE의 점령된 세 섬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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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nbsp;다음은 알 자지라의 2012년 4월 12일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br />
<br />
&nbsp;http://www.aljazeera.net/news/pages/c1f642e9-4df0-47b2-bd6c-71d41e9db5e5<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weight: bold;">&nbsp;UAE의 점령된 세 섬들</span><br />
</div><br />
&nbsp;4월 10일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아부 무사(Abu Musa) 섬을 방문하면서 이란에 의해 점령당해 있는 UAE의 세 섬들의 문제가 다시 표면으로 떠올랐다. 다음은 이 섬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이다.<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2.egloos.com/pds/201205/04/14/e0089814_4fa3623141700.jpg" width="500" height="306.17495711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2.egloos.com/pds/201205/04/14/e0089814_4fa3623141700.jpg');" /></div>&lt;3개 섬의 위치 - 위키피디아 출처&gt;<br />
</div><br />
<span style="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underline;">&nbsp;섬들의 지리적 위치와 주권</span><br />
&nbsp;<br />
&nbsp;대 툰브(Greater Tunb) : 면적 약 9평방킬로미터인 대 툰브 섬은 아라비아만의 동부의 호르무즈 해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UAE 건국 이전에 이 섬은 라스 알 카이마(UAE의 한 토후국)의 영토였으나 1971년 11월 영국 군대가 철수하기 몇일 전에 이란에 의해 점령당했다. <br />
<br />
&nbsp;소 툰브(Lesser Tunb) : 다양한 새들이 모여드는 삼각형 모양의 소 툰브 섬의 대부분의 토지는 모래와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실 수 있는 식수는 충분하지 않은 곳이다. 따라서 1971년 11월 이란이 이곳을 점령할 때는 오직 한 가구만이 살고 있었다. 소 툰브 섬은 대 툰브 섬으로부터 서쪽으로 12.8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크기는 지름 3.6km, 길이 1.6km, 너비 1.2km이다.&nbsp; <br />
<br />
&nbsp;아부 무사 : 1971년 이란에 의해 점령될 시에 이 섬에는 약 천 명의 UAE 국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아부 무사 섬의 면적은 25평망킬로미터이며 UAE 해변으로부터 43km, 이란 해안으로부터 67km 떨어져 있다.<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underline;">&nbsp;이란의 "주장"</span><br />
<br />
&nbsp;세 섬에 대한 이란의 주장은 이 섬들이 걸프 만의 출입구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가까운 전략적인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부 무사 섬의 천연 자원들과 섬의 위치는 이란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br />
<br />
&nbsp;이 세 섬은 1819년에 걸프의 군주들과 영국 사이에서 체결된 보호 조약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 섬은 스스로를 "지역의 최대 패권"으로 규정한 이란의 목표가 되었으며 1904년, 1963년에 점령 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br />
<br />
&nbsp;1970년 바레인 주민들이 국민투표에서 아랍의 영토로 남기를 결정하면서 이란의 바레인 종속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토후국들 간의 연합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두려워하던 레자 샤 팔레비는 이 섬들을 점령할 의도를 밝혔다. 그는 먼저 라스 알 카이마의 군주인 사까르 븐 술탄 알 까시미에게 대 툰브와 소 툰브 섬을 팔거나 조차를 제안했으나 거부되었다. 동시에 샤르자의 군주인 칼리드 알 까시미는 영국의 중재 하에 이란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측은 서로의 섬의 소유권에 관한 주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 각서에 따라 아부 무사 섬의 통치권과 섬의 석유 판매 수입을 이란과 샤르자가 반씩 나누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각서는 아랍 국가들의 지지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underline;">&nbsp;섬의 소유권</span><br />
<br />
&nbsp;1971년 11월 30일로 정해진 영국군의 철수가 있기 5일 전, 이란은 대 툰브, 소 툰브 섬을 무력으로 침공했다. 이란군의 침공은 이란과 샤르자 사이의 아부 무사에 관한 조약을 자동적으로 폐기시켰다. <br />
<br />
&nbsp;아부 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즈만, 푸자이라, 움 알 까이윈, 라스 알 카이마 등으로 구성된 UAE가 결성된 지 몇 달 후, 이란의 대 툰브, 소 툰브 점령 문제는 UAE의 국가적인 문제로 떠올랐다.<br />
<br />
&nbsp;아부 무사 섬의 통치권을 반으로 나누는 조약은 90년대 초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1차 걸프전 종류 이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지도자들은 아부 무사 섬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증강시키기로 결정, 대함 미사일들과 이란 혁명 수비대의 요새 및 해군 부대가 들어섰다. 또한 이란은 이 지역에서의 아랍 교육의 부흥을 억제하고 이란 비자가 없이는 이 섬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했으며 섬에 살고 있던 아랍 주민들에게 이란 국적을 받아들이든지 떠나라고 강요했다.<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underline;">&nbsp;점령 문제</span><br />
<br />
&nbsp;UAE는 이란의 세 섬의 점령을 승인하지 않고 있으며 이슬람 국가간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 문제를 UN에 제소했다. 또한 UAE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양국간의 직접 대화나 국제사법재판소에 맡겨서 해결하자고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이란은 세 섬에 대한 이란의 지배권이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 제안을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1992년 시리아의 중재로 아부 다비에서 양측간의 협상이 있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br />
<br />
&nbsp;====================================================================================================================<br />
<br />
&nbsp;아시다시피 알 자지라는 UAE와 같이 걸프에 위치한 카타르 언론사입니다. 그리고 아부 무사, 대 툰브, 소 툰브 문제를 다룬 이 글에서 알 자지라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br />
<br />
&nbsp;일단 제목부터. "UAE의 점령된 세 섬들"이라는 말 자체가 이 섬은 원래 UAE 건데 이란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죠. 두번째 문단의 제목인 "이란의 주장"이라는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원문에는 maza3im 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 명사의 어근인 z-3-m는 주장은 주장인데 "근거 없이 주장하다" 란 의미입니다. 또한 걸프만을 "아랍 만"으로 쓰고 있죠. 이란은 "페르시아 만"이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br />
<br />
&nbsp;독도 문제가 한국-일본 간에 꽤 민감한 문제이고, 한국인에게 "다케시마"라는 둥, 일본인(물론 이 문제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에게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둥 등의 말을 하면 분위기가 굉장히 이상해지듯이, 걸프 아랍인들과 이란인들에게도 이 문제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제 아는 분이 이란 교수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었는데, 그 교수는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섬들은 이란의 땅이라고 선을 그었다네요.<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5/04/14/e0089814_4fa3725fbe661.jpg" width="500" height="3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5/04/14/e0089814_4fa3725fbe661.jpg');" /></div>&lt;아부 무사를 방문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 - 뉴욕 타임즈 출처&gt;<br />
</div><br />
&nbsp;4월 30일 뉴욕타임즈 기사는 이 문제에 대해 이란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란인들은 이 섬들을 이란의 자존심이자 이란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 200년간 페르시아 제국은 아제르바이잔, 발루치스탄, 아프가니스탄, 바레인 등 많은 영토를 잃어왔고, 바다 위의 이 섬들도 빼앗기는건 더 이상 이란인들이 견딜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로 여기는 거죠. 비록 이란 내에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많은 반대가 존재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대통령의 최근 아부 무사 방문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이 기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br />
<br />
http://www.nytimes.com/2012/05/01/world/middleeast/dispute-over-island-of-abu-musa-unites-iran.html?_r=1<br />
&nbsp;<br />
			 ]]> 
		</description>
		<category>Al-'Alam[세계]</category>

		<comments>http://harmless.egloos.com/3321637#comments</comments>
		<pubDate>Fri, 04 May 2012 06:08:53 GMT</pubDate>
		<dc:creator>jeltz</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말리 문제 간단히 살펴보기 ]]> </title>
		<link>http://harmless.egloos.com/3315802</link>
		<guid>http://harmless.egloos.com/3315802</guid>
		<description>
			<![CDATA[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2.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dbb8653c.jpg" width="500" height="330.88235294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2.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dbb8653c.jpg');" /></div></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팀북투의 투아레그족</div><div style="text-align: center;">출처 : World Bulletin,&nbsp;<a href="http://www.worldbulletin.net/?aType=haber&amp;ArticleID=88202">http://www.worldbulletin.net/?aType=haber&amp;ArticleID=88202</a>&gt;</div><div>&nbsp;</div><div><br />
</div><div>뉴스에서 접할 일이 거의 없었던 서아프리카의 소국 말리가 최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군부 쿠데타로 대통령이 쫓겨난 거에 이어 북부의 투아레그족이 독립을 선언한 일련의 사건들로 국제 사회가 이 지역을 관심과 우려로 지켜보고 있죠.&nbsp;</div><div><div><br />
</div><div>&nbsp;이 글에서는 최근 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2.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eb5eee9e.gif" width="400" height="36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2.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eb5eee9e.gif');" /></div><div><br />
</div><div>&nbsp;<b><font size="2">1. 투아레그족</font></b></div><div><br />
</div><div>&nbsp;말리(Mali)는 서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인근의 사헬 지역에 위치주한 나라입니다. 수도는 바마코(Bamako). 서아프리카 부족들인 만데족(밤바라족, 말린케족, 소닌카족)이 인구의 50%를 차지하고 있고, 북부의 무어인(아랍계)와 투아레그족이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nbsp;</div><div><br />
</div><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ee4f06c4.png" width="360" height="35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ee4f06c4.png');" /></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팀북투, 키달, 가오 위 세 주를 아자와드 지역이라고 하며, 투아레그 인구가 다수인 곳입니다&gt;</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nbsp;투아레그족은 리비아 남부에서 말리 북부 지역까지 이어지는 사하라 사막&nbsp;지역에 사는 유목민으로, 스스로 부르는 이름은 "이마지긴(자유인)"이라고 합니다. 아랍인과는 다른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체계, 부족, 사회구조,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만 약 350만 명정도로 추산되며 이 중 85%가 니제르의 아이야르 지역과 말리의 아자와드(키달, 팀북투, 가오 주), 나머지는 리비아 남부의 페잔 주와 알제리 남부의 알 학까르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br />
<br />
<div style="text-align: center;">&nbs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2.egloos.com/pds/201204/19/14/e0089814_4f8f6d8e47dc8.gif" width="500" height="256.7811934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2.egloos.com/pds/201204/19/14/e0089814_4f8f6d8e47dc8.gif');" /></div>투아레그 알파벳(티피니그) <br />
출처 : Omniglot<br />
</div><br />
&nbsp;말리 내의 투아레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아자와드 지역은 오랜 기간 현 말리 지역과는 동떨어진 채 정치적 자치를 유지해왔고, 특히 "타우다니" 유역에는 석유와 가스 등 지하자원이 풍부해 인근 국가들의 정치적 분쟁의 땅이 되고 있습니다. <br />
<br />
&nbsp;아자와드 지역의 인구는 크게 4 집단이 있는데, 가장 수가 많은 민족집단인 투아레그족 외에도 알제리, 모리타니아 등에서 이주한 아랍인들이 있습니다. 아랍인 사회 지도자들은 말리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주장하는 투아레그인들에 맞서는 민병대를 조직해서 지휘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프리카 흑인들인 송하이족과 풀라니인, 그리고 알 바라비쉬, 칸타, 알 와스라 부족과 같은 소수 아랍 부족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랍 부족들은 이전에 투아레그 봉기에 같이 참가했으나 투아레그 지도자들이 자신들을 버린 이후에 말리 정부에 다시 가담했다는군요. <br />
</div><div><br />
</div><div>&nbsp;<b><font size="2">2. 지역 정치와 투아레그족</font></b></div></div></div><div><br />
</div><div>&nbsp;서아프리카 국가들이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이후 투아레그족은 중앙 정부와 좋지 않은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특히 니제르와 말리에서 그러했는데, 1963년에 투아레그족들이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초대 말리 대통령이었던 모디보 케이타(Modibo Keita)에 의해 진압되고 대부분은 체포되었죠.&nbsp;</div><div><br />
</div><div>&nbsp;투아레그족과 중앙정부간의 분쟁은 투아레그족이 무장하고 맞서기 시작한 90년대 들어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91년 알제리의 중재로 알제리 남부 타망라세트 주(Tamanrasset)에서 투아레그 단체들과 말리 정부간의 평화 협상이 있었지만 이는 곧 유명무실화됐죠. 말리 외에도 니제르 등의 투아레그인들도 중앙정부와 여러 차례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충돌이 있을때마다 리비아의 카다피나 알제리, 부르키나파소 등 지역 상황 불안을 바라지 않던 다른 나라들의 중재가 뒤따르고, 그 협상이 다시 무시당하고 싸우는 그런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이 상황까지 이르렀죠.&nbsp;</div><div><br />
</div><div>&nbsp;아자와드 해방운동(MNLA)의 주장에 따르면 1894년 프랑스군이 이 지역에 침략할 당시 말리 북부 지역은 투아레그인들이 다스리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상황을 무시하고 식민지를 세웠고, 독립 이후 새로운 말리 정부는 말리의 다른 지역과는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 면에서 연고감이 없던 투아레그인들의 지역을 통합시켜 국가를 세웠습니다. 따라서 MNLA는 지난 100여년 간의 잘못을 바로잡고 투아레그인들만의 국가가 역사적 정당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북부 지역은 오랜 기간 중앙정부로부터 경제적, 정치적으로 소외를 당해왔고 모로코나 알제리 등의 이웃 국가도 말리 정부를 지원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90년대 투아레그족들은 아랍-투아레그 인구가 많은 북부와 아프리카 인구가 다수인 남부에 각각 자치권을 부여하고 연방제를 통한 말리 연방 공화국을 세울 것과 말리 국가 예산의 47.3%를 북부 주에 투자하는 것을 요구했으나 말리 정부는 이 모든 요구를 거부한 바 있습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2000년대 들어 북부의 투아레그 무장세력의 활동이 강해지면서 북부에 거주하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 주민들이 이 무장세력들의 목표가 되는 일이 잦아졌고, 이에 따라 아프리카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송하이족이 중심이 되어 "간드구이"(송하이어로 "땅의 주인들")이라는 민병대를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투아레그 무장세력은 이 민병대가 말리 정부군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lt;연표&gt;</div><div><br />
</div><div>&nbsp;1962년 : 말리에서 2년(~1964)간 이어지는 첫 투아레그 봉기 발생. 당시 말리 정부군은 투아레그 봉기군을 프랑스군이 식민지배 당시 알제리, 튀니지의 저항 세력을 지칭하던 용어인 "도적떼"들로 지칭했으며 식량 창고를 불태우고 우물에 독을 푸는 등 과격하게 진압. 2년간의 봉기와 진압으로 많은 난민이 알제리 등 이웃나라로 이주했으며 결국 말리 정부는 이 지역에 군정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br />
<br />
</div><div>&nbsp;1988년 : 말리 투아레그인들의 첫번째 정치 조직인 아자와드 해방국민운동 결성. 아자와드 해방국민운동은 이후 더 조직화된 정치 조직들의 결성으로 이어지며, 결국 2011년 말 아자와드 해방운동(MNLA) 결성으로 이어짐. <br />
<br />
</div><div>&nbsp;1990년 : 미나카 지역에서 투옥된 투아레그 무장세력과 주둔군의 충돌로 두번째 투아레그 봉기 발생. 정부군은 가오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고 이로 인해 다시 한번 많은 난민들이 발생. 한 말리군 지도자는 이 문제 해결은 "투아레그인의 전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함. 이 봉기는 1995년까지 이어졌으며 당시 대통령 알파 코나레(Alpha Konare)는 북부 투아레그 주요 근거지중 하나인 키달(Kidal) 지역에 자치권 허가하는 등의 양보를 했으나 무력 충돌은 계속 됨<br />
<br />
</div><div>&nbsp;1991년 : 알제리 남부의 타만레스트에서 타만레스트 조약 체결. 이 조약은 북부 지역의 지방분권주의, 투아레그 무장세력에 대한 사면을 체결. 다만 여전히 북동부 지역에서는 무장 충돌이 계속됨<br />
<br />
&nbsp;1992년 : 말리 정부와 투아레그 단체들이 지방분권주의, 투아레그 전사들의 군사적, 사회적 국가 조직으로의 통합, 북부 지역 발전, 화해를 위한 중재안을 규정한 국가 헌장에 서명<br />
<br />
</div><div>&nbsp;1996년 : 팀북투 평화조약. 투아레그 무장세력은 3천 정의 무기를 반납, 무장 투아레그 조직들의 공식적 해산<br />
<br />
</div><div>&nbsp;2006년 : 새롭게 만들어진 무장조직인 "변화를 위한 5월 23일 민주동맹" 이 키달과 미나카 지역의 군 기지등을 공격하며 북부에서 투아레그 봉기 발생. 이 충돌은 키달 지역 발전과 지역의 안전 확보를 규정한 알제리 평화조약으로 종결. 또한 이 해에 리비아의 무암마르 카다피가 예언자 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팀북투 시를 방문. 말리 측은 그가 투아레그 봉기를 자극한다고 비난.<br />
<br />
</div><div>&nbsp;2007년 : 말리의 키달 주와 니제르 북부의 아가데즈(Agadez) 주에서 무장세력들이 2006년의 알제리 평화조약을 반대하며 동시에 봉기를 일으킴. <br />
<br />
&nbsp;2009년 : 말리 군이 투아레그 봉기군을 진압하는 데 성공. 리비아의 중재로 키달 시에서 투아레그 무장세력들의 무장해제 및 정부군에 무기 반납, 무장세력들의 정부 기구 통합에 관한 내용을 담은 키달 협약이 체결되었으나 무장세력 일부는 평화 협상에 반대해서 분열<br />
<br />
</div><div>&nbsp;2011년 : 카다피 축출 이후 카다피 측에서 싸웠던 수천명의 투아레그 전사들이 말리로 귀환. 2011년 말 북부 말리 투아레그 운동과 아자와드 국민운동 및 다른 세속주의 단체들의 통합으로 아자와드 해방운동(MNLA)이 결성<br />
<br />
&nbsp;2012년 1월 : 아자와드 해방운동 산하 전사들이 알제리 국경 인근의 아겔호크, 타살리트, 미나카 등의 도시들을 몇 주간 공격하기 시작. 이로 인해 수만명의 시민들이 알제리로 피난. <br />
<br />
&nbsp;2012년 3월 : 투아레그 반군 진압에 대한 중앙정부의 무관심을 비판하며 아마두 사누구 대령이 다른 장교들과 같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마두 투레 대통령을 하야시킴. 투아레그 반군들은 쿠데타로 인한 혼란 상황을 이용, 키달, 팀북투, 가오 등의 도시들을 장악<br />
<br />
&nbsp;2012년 4월 6일 : 아자와드 해방운동이 북동부 말리가 투아레그족의 독립국가임을 선언. 알제리, 모리타니아, 니제르 등 인근 국가들은 이 선언을 거부.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은 투아레그 봉기 진압을 위한 군사 개입을 암시하는 군대를 구성. <br />
</div><div>&nbsp;</div><div>&nbsp;- 출처 : 알 자지라 2012/4/6 "말리의 투아레그족들 - 아자와드를 만들어낸 오랜 반란"<br />
&nbsp;알 자지라 특별보도 "아자와드... 국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br />
</div><div><br />
</div><div>&nbsp;<b><font size="2">3. 주요 단체들</font></b></div><div><br />
</div><div>&nbsp;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이니만큼 민족적 정체성(아랍, 투아레그, 송하이 등),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이슬람 원리주의, 민족주의) 등에 따라 여러 조직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래 세 조직은 아자와드 지역에서 가장 주요한 세력들입니다.&nbsp;</div><div><br />
</div><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3.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f7249395.png" width="163" height="18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3.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f7249395.png');" /></div></div><div><br />
</div><div>&nbsp;<b>(1) 아자와드 해방운동(MNLA)</b></div><div><br />
</div><div>&nbsp;2011년 말 리비아 내전 종료 이후 귀환한 투아레그인들(주로 카다피 측에서 싸웠지만 시민군에도 가담하기도 했습니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조직이지만 이전에 있었던 투아레그 무장집단들을 모두 아우른 말리 투아레그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단체입니다. 그리고 이번 4월 아자와드 지역에서 독립을 선언한 세력이기도 하구요. 이들은 지난 수십년간 지속된 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아자와드에 투아레그인들의 국가가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r />
</div><div><br />
</div><div>&nbsp;말리 정부 및 관찰자들은 이들이 알 카에다나 다른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와 연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품고 있습니다만, 이 단체는 스스로를 세속주의-민족주의 단체로 규정하고 있으며&nbsp; 자신들의 목표는 말리뿐만 아니라 알제리나 니제르 등 이웃나라의 모든 투아레그인들의 진정한 권리 확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말리뿐만 아니라 모로코, 알제리 등 다른 지역의 투아레그 단체들의 지지도 얻고 있으며, 투아레그인뿐만 아니라 아랍인, 풀라니인, 송하이인들도 가담하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주축은 투아레그 부족인 "아이디난" 부족이라고 합니다.<br />
<br />
&nbsp;총재인 빌랄 앗 샤리프, 정치국 국장인 무함마드 아그 알리, 리비아에서 돌아온 군인 출신이자 전사들을 지휘하는 무함마드 나짐 등이 지도부이며 구성원 수는 약 3천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b>(2) 안사르 앗 딘(Ansar Ad-din, 종교의 지지자들)</b>&nbsp;</div><div><br />
</div><div>&nbsp;위의 아자와드 해방운동이 민족주의 집단이라고 한다면, 이 안사르 앗 딘은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단체이며 북아프리카 알 카에다(AQIM)와 연계되어있다고 추정되는 집단입니다. 현재는 MNLA와 협력해서 활동중입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이 단체의 설립자인 이야드 아그 갈리(Iyad Ag Ghali)는 90년대에 아자와드 국민운동의 지도자로 반정부 전투에 참가했던 인물이었습니다. 1991년 타만라세트 평화조약으로 투아레그 무장운동의 지도적 인물들이 말리 정부의 공직에 임명되었는데, 그는 주 사우디아라비아 말리 영사로 임명되었죠. 그리고 이야드 아그 갈리는 바로 여기서 이슬람 원리주의 사상에 빠져들게 됩니다. 카다피 사망 이후 그도 말리로 돌아와 원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자신의 부족 출신들을 모아 조직을 건설합니다. <br />
</div><div><br />
</div><div>&nbsp;안사르 앗 딘 역시 투아레그인들이 주축이 된 단체이지만 MNLA와는 그 성격이나 지향하는 점이 다릅니다. 투아레그 독립국가 건설과 세속, 민족국가를 목표로 하는 MNLA와는 달리 안사르 앗 딘은 말리의 투아레그 지역에 샤리아를 도입하고자 합니다. 올해 초 안사르 앗 딘이 MNLA와 함께 말리 정부군과 맞서 전투를 벌여 북부 지역의 타살리트, 아겔호크 등의 도시들을 점령 이 지역에서 여성들의 외출을 자제하는 등의 샤리아 조치를 부과하기 시작했다네요. 문제는 여성의 외출을 막는 그런 것은 투아레그인들의 전통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랍 무슬림들과는 달리 투아레그인들은 그런 면에 있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니까요. 이 점에서도 투아레그 부족 정체성보다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중시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MNLA가 아이디난 부족이 중심이라면, 안사르 앗 딘의 중심 부족은 이푸가스 부족으로 이야드 아그 갈리의 출신부족이기도 합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구성원 수는 약 250에서 4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b>(3) 서아프리카 통일 지하드 운동</b></div><div><br />
</div><div>&nbsp;안사르 앗 딘이 투아레그인 중심 이슬람주의 조직이라면 2011년에 결성된 서아프리카 통일 지하드 운동은 아랍인 중심 조직으로, 북아프리카 알 카에다가 아자와드 지역에 아랍인 주축 조직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거부한 이후 알 카에다에서 분리되어 독립한 조직입니다. 당연히 이 조직의 주축 세력은 아자와드 지역의 원리주의 성향의 아랍인 조직입니다. 그러나 비록 분리해서 나왔어도 알 카에다는 이들과 굳이 쓸데없는 분쟁을 벌이려는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br />
<br />
&nbsp;현재 가오 주 일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br />
</div><div><br />
</div><div>&nbsp;<b>(4) 이슬람 북아프리카 알 카에다(Al Qaeda in the Islamic Maghreb, AQIM)</b></div><div><br />
</div><div>&nbsp;이슬람 북아프리카 알 카에다는 90년대 내전이 한창 치열할 때 민간인에 대한 공격에 반대, 알제리의 무장단체에서 분리, 2006년에 알 카에다에 가담한 조직입니다. 뭐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지금 민간인 피해에 대해 딱히 신경쓰는건 아닙니다만...&nbsp;</div><div><br />
</div><div>&nbsp;AQIM의 영향력은 말리, 니제르와 맞닿아 있는 사하라 지역까지 뻗어있으며, AQIM이 이 지역에 원리주의를 전파함에으로써 위에 언급한 안사르 앗 딘과 같은 원리주의 집단이 세워질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사하라 지역의 알 카에다 조직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참가, 한 눈을 잃어 "애꾸"라고 불리는 무크타르 발무크타르가 지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 카에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조직(안사르 앗 딘과 같은)들이 이번 말리 사태에 참가하고 있지요.</div><div><br />
</div><div>&nbsp;AQIM 및 그 산하 세력의 영향력 확대로 사하라 지역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종교법 등의 문제에서 AQIM 성향의 법학자들에게 의뢰를 묻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고, 반대 집단에 대한 공격이나 납치등도 이루어지고 있지요.</div><div><br />
</div><div>&nbsp;AQIM은 이 지역에서 확고한 근거지를 갖추기 위해 정책 변경까지 모색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발무크타르는 모리타니아 정부 대표단과 접견, 휴전에 대해 논의했다고 하네요. 이는 AQIM의 본거지였던 알제리에서의 세력은 약화되고 있는 반면 아자와드 지역과 같은 사하라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하 조직인 안사르 앗 딘이 아자와드 지역의 통제권을 확보하고 발무크타르가 팀북투에서 아그 갈리와 접견한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등에서는 이 지역에 "아자와드 이슬람 공화국"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품고 있습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약 수백명 정도가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며, AQIM 산하 세포조직은 70여개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br />
</div><div><br />
</div><div>&nbsp;<b><font size="2">4. 2012년 사건 흐름</font></b></div><div><br />
</div><div>&nbsp;2011년 카다피 붕괴 이후 리비아 내전이 끝남에 따라 카다피 측 또는 시민군 측에서 용병으로 싸우던 많은 투아레그인들 또는 90년대 혼란 시기를 피해 리비아로 이주해있었던 투아레그인들이 다시 말리 등의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냥 돌아가면 모르겠는데 이들은 중무장한 상태였다는 것이 문제죠. 위에서 보았듯이 투아레그족은 오랜 기간 말리 정부에 맞서 투쟁해왔고 이제 그들의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봉기가 시작되었습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2012년 3월 22일, 북부의 투아레그인과 맞서 싸우던 말리 군대는 바마코의 아마두 투레(Amadou Toure)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반군에 맞서 싸우는 자신들을 제대로 지원해 주지 않는 무능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총구를 북부가 아닌 수도로 돌려 대통령궁을 장악했습니다.</div><div><br />
</div><div>&nbsp;중앙정부가 무너지고 군대가 쿠데타에 정신이 팔려 있는 틈에 북부의 투아레그인들은 공세를 강화했죠. 3월 30일~4월 1일동안 MNLA와 안사르 앗 딘은 키달, 가오, 팀북투 세 지역을 점령, 사실상 말리 북부 전역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4월 6일 드디어 아자와드 지역에 가오를 수도로 하는 독립 국가 건설을 선언했습니다.&nbsp;</div><div><br />
</div><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ff02422c.png" width="500" height="25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ff02422c.png');" /></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아자와드 투아레그 국가 국기&gt;</div><div style="text-align: center;">&nbsp;</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2.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fa0eb0b6.png" width="500" height="476.94753577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2.egloos.com/pds/201204/15/14/e0089814_4f8a9fa0eb0b6.png');" /></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아자와드 투아레그 국가 영토. 보시다시피 독립해버리면 말리 영토 반 이상이 날아가버립니다&gt;</div><div>&nbsp;</div><div>&nbsp;꽤 놀라운 점은 아마두 투레 대통령은 자신이 쿠데타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사임을 선언했다는 점입니다. 군부 역시 투아레그족들의 독립선언까지 한 마당이고 애시당초 자신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가 투아레그 봉기 진압에서의 정부의 무관심이었으니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계속 수도에서 정치싸움이나 할 수 없겠죠. 4월 12일 국회 의장인 디운쿤다 트라오레(Diouncounda Traore)가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트라오레 대통령은 만약 투아레그 세력이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도 전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br />
</div><div><br />
</div><div>&nbsp;<font size="2"><b>5. 아자와드 투아레그 국가의 몇 가지 문제점</b></font>&nbsp;</div><div><br />
</div><div>&nbsp;모리타니아의 사하라 지역 이슬람단체 전문가이자 신문기자인 무함마드 마흐무드 아부 알 마알리는 아자와드의 투아레그 국가가 직면한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뭐 당장 바마코 중앙정부가 인정하지 않고, 아프리카 및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투아레그 국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뻔한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아자와드 내부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nbsp;</div><div><br />
</div><div>&nbsp;첫째는 아자와드 건국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두 집단이 성향이 크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MNLA는 투아레그 민족주의 성향의 세속주의, 자유주의 등을 포함하고 있는 단체이지만 안사르 앗 딘, 서아프리카 통일 지하드 운동 등은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는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들이죠. 팀북투와 그 교외에 있는 바라비쉬 부족과 같이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과 거리를 두고 있는 투아레그-아랍 부족들은 지금도 안사르 앗 딘 세력에 강한 적의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nbsp;</div><div><br />
</div><div>&nbsp;두번째는 부족적, 민족적 갈등입니다. 안사르 앗 딘의 설립자인 이야드 아그 갈리와 그의 추종자들은 주로 이푸가스 부족 출신인데 이 부족은 다른 투아레그 부족들과 갈등과 분쟁의 역사가 깊다는 것이죠. 투아레그족 내의 부족적 갈등 외에도 투아레그족과 아랍인, 아프리카인들간의 갈등관계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위의 간드구니 민병대의 존재에서 볼 수 있듯이 북부 말리 지역에도 남부에서 이주해온 아프리카인 공동체가 존재하거든요. <br />
<br />
&nbsp;투아레그 인구가 많이 살고 있는 알제리 및 니제르, 서사하라 독립 문제에 시달리는 모로코, 현재 동부 지방이 연방제를 하네 마네에 시달리고 있는 리비아, 역시 민족 분쟁 문제가 있는 세네갈이나 모리타니아 등 이웃나라 어느 한 곳도 투아레그 분리독립을 환영할 나라는 한 곳도 없습니다. 오히려 군사개입을 해서 진압을 하면 했지, 이웃 나라들이 투아레그 분리독립운동을 방관해서 자기 나라에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도록 지켜볼 가능성이 있을까요? <br />
</div><div><br />
</div><div>&nbsp;<font size="2"><b>6. 마무리</b></font></div><div><br />
</div><div>&nbsp;사헬 지역의 투아레그족들은 반세기 가까이 자치권 또는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위해 싸워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리비아 내전과 카다피의 죽음은 항상 끓어오를 준비가 되어 있던 투아레그인들을 다시 한번 자극시켰고, 올해 말리에는 그것이 정권까지 뒤집을 정도로 나아갔죠. 반세기 넘는 세월동안 투아레그인들이 어느 지역의 독립 선언까지 나아간 것은 처음입니다. 정부군의 쿠데타로 정신이 팔린 사이 두번 오지 않을 기회를 잡은거죠.&nbsp;</div><div><br />
</div><div>&nbsp;하지만 이렇게 아자와드 투아레그 국가가 새로운 국가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해 보입니다. 분리독립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는 단체가 떳떳이 활동하는 것을 절대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서방 등 모두의 지지를 얻어낼 건덕지가 없거든요.</div><div><br />
</div><div>&nbsp;다만 말리의 새 임시 대통령이 대화를 통한 해결을 선언한만큼, 현 말리 문제는 평화적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투아레그 측에서도 주도권을 쥐게 된 만큼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가능성이 커졌구요. 물론 이대로 분리독립을 가는 건 정말 힘들어 보입니다만.....&nbsp;</div><div><br />
</div><div><br />
</div><div>====================================================================================================================</div><div>참고자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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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iv>&nbsp;알 자지라 특별보도 2012 "아자와드... 국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br />
http://www.aljazeera.net/coverage/pages/6b525331-8c9a-4511-9943-539c4f8e2262<br />
</div><div>&nbsp;알 자지라 2012/4/6 "말리의 투아레그족들 - 아자와드를 만들어낸 오랜 반란"</div><div><a href="http://www.aljazeera.net/news/pages/6534bf10-d60c-48c6-a770-afd95a43561d">http://www.aljazeera.net/news/pages/6534bf10-d60c-48c6-a770-afd95a43561d</a></div><div>&nbsp;알 자지라 2012/3/24 "아자와드 해방운동"</div><div><a href="http://www.aljazeera.net/news/pages/87277465-8baf-447b-b093-6879043963fd">http://www.aljazeera.net/news/pages/87277465-8baf-447b-b093-6879043963fd</a></div><div>&nbsp;알 자지라 2006/6/22 "아자와드와 말리 분쟁의 역사"&nbsp;</div><div><a href="http://www.aljazeera.net/news/pages/e1a4c505-2f5f-4cf6-a363-bc67a330b96d">http://www.aljazeera.net/news/pages/e1a4c505-2f5f-4cf6-a363-bc67a330b96d</a></div><div>&nbsp;알 자지라 2012/4/15 "독립의 열망과 예상들 사이의 투아레그인들", 무함마드 알 하피즈 알 가비드(모리타니아 기자)</div><div><a href="http://www.aljazeera.net/analysis/pages/D41DCAFF-CC11-42B3-BA82-A3F147FB7F7E">http://www.aljazeera.net/analysis/pages/D41DCAFF-CC11-42B3-BA82-A3F147FB7F7E</a></div><div>&nbsp;알 자지라 2012/3/28 "아자와드 이슬람공화국, 그 시간이 왔는가?" 무함마드 마흐무드 아부 알마알리(모리타이나 기자, 연구가)</div><div><a href="http://www.aljazeera.net/analysis/pages/a7daafa3-27cc-4454-bf5b-73afcb49992b">http://www.aljazeera.net/analysis/pages/a7daafa3-27cc-4454-bf5b-73afcb49992b</a></div><div>&nbsp;알 자지라 2012/4/6 "안사르 앗 딘"</div><div><a href="http://www.aljazeera.net/news/pages/e838b254-aaf1-4c62-84ab-5d7e8855839b">http://www.aljazeera.net/news/pages/e838b254-aaf1-4c62-84ab-5d7e8855839b</a></div><div>&nbsp;알 자지라 2005/11/27 "투아레그인들, 푸른 사람들" 사이디 아흐마드 왈라드 아흐마드 살림</div><div><a href="http://www.aljazeera.net/specialfiles/pages/974580fd-b1a5-4881-a045-3f057758637a">http://www.aljazeera.net/specialfiles/pages/974580fd-b1a5-4881-a045-3f057758637a</a></div><div>&nbsp;한국일보 2012/4/3 "말리 쿠데타 10일 천하로 끝나나"</div><div><a href="http://news.nate.com/view/20120403n00713?mid=n0505">http://news.nate.com/view/20120403n00713?mid=n0505</a></div><div>&nbsp;알 자지라 English 2012/4/13</div><div><a href="http://www.aljazeera.com/news/africa/2012/03/2012322111037483270.html">http://www.aljazeera.com/news/africa/2012/03/2012322111037483270.html</a></div><div>&nbsp;CIA World Factbook 2012</div><div><a href="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ml.html">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ml.html</a> <br />
<br />
=====================================================================================================================<br />
<br />
4월 19일 알 자지라 특별보도에 덧붙여서 내용추가합니다. <br />
</div></div>			 ]]> 
		</description>
		<category>Al-'Alam[세계]</category>

		<comments>http://harmless.egloos.com/3315802#comments</comments>
		<pubDate>Sun, 15 Apr 2012 10:06:19 GMT</pubDate>
		<dc:creator>jeltz</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이란 - 알리 앗 시스타니를 대체하려는 시도 ]]> </title>
		<link>http://harmless.egloos.com/331418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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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 left;"><font face="돋움">&nbsp;이 글은 BBC Arabic의 2012년 4월 7일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br />
</font></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 left;"><font face="돋움"><b>&nbsp;</b></font><a href="http://www.bbc.co.uk/arabic/middleeast/2012/04/120407_iraq_iran_leadership_shiites.shtml">http://www.bbc.co.uk/arabic/middleeast/2012/04/120407_iraq_iran_leadership_shiites.shtml</a></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br />
</b></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이란 - 알리 앗시스타니를 대체하려는 시도</b></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쉬아파의 마르자에 타끌리드(Marja-e-Taqlid)인아야톨라 오즈마(Ayatollah 'Ozma) 알리 앗 시스타니(Ali Al-Sistani)의 후계자로 마흐무드 하쉐미 샤흐루디(MahmudHashemi Shahroudi) 지명하기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다. <o:p></o: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r />
</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71cdadd5.jpg" width="220" height="29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71cdadd5.jpg');" /></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알리 앗 시스타니&gt;</div><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이 보도는 샤흐리바디는 이란 종교계에서 중요한 인물이며 시스타니의 뒤를 이을 경우 이란에게이라크에서의 영향력을 제공할 인물이라고 전했다. AP 통신은 이 정보를 이란의 이런 노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이라크의 한 이슬람 법학자(Hauza'ilmiya)에게 얻었다고 말했다.</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현재 81세인 시스타니는 이라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 중 하나이며 세계 전역의쉬아파들에게서 존경을 받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및 점령과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새 이라크를 구성하는 데에 영향력과 힘을 지닌 인물이었다.그는 스스로가 반대하던 이라크의 정치적 이양 계획을 변경하도록 미국 및 이라크 지도부들에게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AP통신은 이란이 이란을 통치하는종교-정치 엘리트 중의 한 명인 마흐무드 하쉐미 샤흐루디로 시스타니를 대체하기 위한 책략을 꾸미고 있다고 전했다. <o:p></o: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nbsp;더 완고한 인물</b></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샤흐루디는 2009년까지 수십년간 이란 사법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있었으며, 이란 개혁운동을 진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란의 가장 중요한 의원회 중 하나인 국가 이익 식별 위원회(ExpediencyDiscernment Council-이란 국회와 법률 심사를 담당하는 수호자 회의 간의 갈등 발생 시 조정하는 위원회)의 한 분과 위원회의 위원장으로재직중이다. AP통신은 쉬아파의 성지이자 종교 교육의 중심지이며 전 세계 2억 쉬아파의 종교 지도자들이 모이는 이라크의나자프에 자신의 기반을 실질적으로건설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739accad.jpg" width="278" height="4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739accad.jpg');" /></div></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마흐무드 하쉐미 샤흐루디&gt;</div><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또한 AP 통신에 따르면 경제와 이라크 쉬아파 정치인에 미치는 영향력을 통해 이라크내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늘어나고 있고 이로 인해 이란을 자신들의 경쟁자로 보는 미국과 걸프의 순니파 동맹 세력들의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현재 63세인 샤흐루디는 종교인이 정부의 주요 요직을 맡는 이란의 학파와는 달리"벨라야테 파키(Velayat-e-Faqih)" 이론에 반대하여 종교인이 공식적 정부 직책을 맡는 것을 반대하는 시스타니에 비해훨씬 완고한 정치적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o:p></o: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nbsp;사실상 은퇴</b></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현재 시스타니는 몇년간 사실상 은퇴 상태로 살고 있으며 2004년부터 나자프에만 머무르고있다. 몇몇 사람들은 그가 이라크의 새로운 세대와 쉬아파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이라크 정치 상황과 괴리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업률이 높아지고공공 서비스 시스템이 붕괴함에 따라 이라크의 청년들은 종교 지도자들이 아랍 세계에서 성장하고 있는 순니 극단주의자들에 맞서기 위한 실질적인 활동에나서기를 바라고 있다. <o:p></o: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r />
</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7ea96748.jpg" width="500" height="356.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7ea96748.jpg');" /></div></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이라크 나자프의 이맘 알리의 영묘</div><div style="text-align: center;">나자프는 이라크에서 카르발라와 함께 쉬아파 최대 성지 중 하나&gt;</div><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AP 통신은 나자프 내의 상황에 정통한 한 인물의 말을 인용하여 "이라크의쉬아파들은 매우 정치적이 되었으며, 시스타니와 같은 전통적인 마르자에 타끌리드들에게 질려하고 있다. 이란은 시스타니를 이란인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으로쉬아파들의 이런 경향을 노리고 있다" 라고 전했다.</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나자프와 바그다드의 종교 기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섯 명 중 한명인 이 인물은사안의 민감함을 고려하여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샤흐루디가 현재 마르자에 타끌리드의 자리로 강력하게 나아가고 있다고 전했다.</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마르자에 타끌리드의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은 전임자가 사망해야만 가능한 것은아니다. 만약 시스타니가 고령으로 자신의 직무를 다하지 못할 것이 명백할 경우 그를 대체할 다른 인물이 들어설 수 있으며 그 선출은 쉬아 고위아야톨라들의 동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시스타니는 90년대부터 마르자에 타끌리드의 직함을 지녔다.<o:p></o: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nbsp;"마르자로 여기지 않는다"</b><o:p></o: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br />
</b></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nbsp;</b>한편 샤흐루디의 주요 측근 중 한명인 이브라힘 알 바그다디는 그가 마르자에 타끌리드 자리를 원한다는 보도를 부정했다. 또한 이란의 콤에 위치한 샤흐루디의 사무실의 대변인인 모르테자 마너젬은 "샤흐루디는 다른 마르자들과 함께 하는 회의에서 후보로 언급되고 있지 않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마르자로 여기고 있지 않다" 라고 밝혔다.</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그러나 샤흐루디는 나자프 시에서 자신의 근거지를 다지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작년 8월 나자프에 그의 대표 사무실을 열었으며 알 바그다디에 따르면 그는 곧 그 곳을 방문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샤흐루디는 쉬아파 신학을 현대화했으며 1980년 사담 후세인에 의해 처형되기 전의 마르자였던 아야톨라 오즈마 무함마드 바끼르 앗 사드르 밑에서 공부했으며, 1979년 쉬아파들이 탄압에 시달리던 시기 이란으로 망명했다. 이란에서 그는 망명지의 쉬아파 반정부 단체 중 가장 강력했던 이라크 이슬람혁명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 위원회는 후에 누리 알 말리키 연합정부의 가장 강력한 집단 중 하나인 쉬아이슬람 최고위원회로 변경되었다.&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r />
</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r />
</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조금 설명이 필요한 내용입니다.&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쉬아파에는 마르자(Marja') 또는 마르자에 타끌리드(Marja-e-Taqlid)라 불리는 직책이 있습니다.&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쉬아파 이론에 따르면 무슬림 공동체를 통치할 진정한 합법성은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 혈통인 알리-하산-후세인으로 이어지는 이맘에게만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맘인 12번째 이맘은 현재 행방불명 상태이죠.&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이런 상황에서 이맘과 신의 뜻을 인간으로서는 가장 잘 알 수 있는 신학자, 법학자들이 무슬림공동체를 이끌고 지도해야 한다는 이론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자격을 갖춘 학자들이 바로 아야톨라(Ayatollah)이고, 아야톨라가 종교적, 학술적으로 인정받고 많은 추종자(Muqalid)를 거느리게 되면 그는 아야톨라 오즈마(Ayatollah 'Ozma, 대大 아야톨라) 또는 마르자에 타끌리드(줄여서 마르자)라고 불리게 됩니다.</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r />
</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1.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8e9dd3bc.jpg" width="500" height="339.4039735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1.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8e9dd3bc.jpg');" /></div></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이라크의 두 마르자들. 왼쪽은 알리 앗 시스타니, 오른쪽은 아불 카심 알 코이&gt;</div><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r />
</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그러나 이들의 "지도"는 정치적인 의미가 아닌 쉬아 무슬림 공동체들의 종교적 삶, 사회적 및 일상 생활로 국한되었습니다. 사실 순니 이슬람이나 쉬아 이슬람이나 전통적인 견해에서는 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이었지요.&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하지만 1960년대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합니다. 벨리야테 파키(Veliyat-e-Faqih)가 그것이죠. 페르시아어로 "법학자에 의한 통치"란 의미를 지닌 이 이론은 종교 지도자가 일상 생활 및 종교 생활뿐만 아니라 정치에 참가하고, 국가와 사회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죠. 현대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바로 이 이론에 기반을 두고 세워졌고 헌법 상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대통령이 아닌 종교인입니다. 현재의 최고 지도자가 바로 "아야톨라 하메네이"이죠. 최고 지도자는 군사, 사법, 정부 요직의 임명에서 핵심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습니다.</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위에서 언급했듯이 전통적인 마르자들은 성직자가 정치에 참여하고 더 나아가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에 비판적이었습니다. 호메이니 이전의 이란의 마르자였던 아야톨라 보르제르디, 이란의 아야톨라 샤리아티마다리, 아야톨라 몬타제리, 이라크의 아야톨라 시스타니와 아불 카심 알 코이 등이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이들의 입장에서 호메이니와 그 추종자들이 따르는 벨리야테 파키 이론은 오히려 전통에서 벗어난 흐름이었습니다.&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r />
</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2.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934781c9.jpg" width="455" height="6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2.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934781c9.jpg');" /></div></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모든 것을 바꾸다&gt;</div><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r />
</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이라크의 종교 지도자들에서도 이런 두 경향의 대비가 보입니다. 이라크 점령과 사담 정권 붕괴 이후 정치적 급변 상황에서도 시스타니 세력은 대체적으로 중립을 유지하고 있던 반면, 기사에도 언급된 바끼르 앗 사드르의 아들인 무크타다 앗 사드르가 조직하고 이끈 사드르민병대는 남부 이라크와 바그다드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가 되었죠.&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다수 쉬아파가 이라크의 정치에 있어 우선권을 점하는 상황을 영향력 확대에 골몰하는 이란이 놓칠 리 없겠죠. 이라크의 쉬아파 정치인, 종교 지도자들은 항상 이란과의 연계 의혹에 시달렸습니다(시스타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마르자의 직책까지도 영향력 확대를 위해 노리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네요.&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페르시아만 건너의 바레인도 비슷합니다. 쉬아파가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의 혁명의 구호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쉬아파의 종교적 수사들도 이용하고 있기에 바레인 왕가를 포함한 다른 걸프 순니파 왕정 국가들은 시위 세력의 배후에 이란의 영향력에 대해 항상 우려를 품고 있습니다. 작년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군대가 결국 바레인에 진입해 시위를 진압한 것의 배경에도 이런 두려움이 있었던 거죠.&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r />
</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span></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94b5cf76.jpg" width="500" height="589.39096267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4.egloos.com/pds/201204/10/14/e0089814_4f83a94b5cf76.jpg');" /></div></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lt;쉬아 초승달&gt;</div><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br />
</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span style="mso-bidi-font-size:10.0pt;font-family:돋움;mso-bidi-font-family:굴림;mso-font-kerning:0pt;mso-ansi-language:KO">&nbsp;소위 쉬아 초승달(Shia Crescent)로 불리는 페르시아 만을 중심으로 한 주위의 쉬아파 국가들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 걸프 국가, 다른 순니 아랍 국가들의 제 1의 관심 사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기사는 그런 이란 영향력 확대에 대한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nbsp;</span></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font face="돋움">&nbsp;</font></p><p class="MsoNormal" align="left" style="text-align:left;mso-layout-grid-align:none;word-break:keep-all"><font face="돋움">&nbsp;PS : 대체로 무해함 100번째 포스팅입니다. 와우~ 여기까지 오다니....&nbsp;</font></p></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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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Al-'Alam[세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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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Apr 2012 03:31:4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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