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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 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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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언제, 어디서든.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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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0 Aug 2009 14:32:2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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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유, 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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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책] 행복한 인문학, 이매진, 2008.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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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lt;행복한 인문학&gt;의 제목만 봤을 때는, 인문학으로 사람들이 행복해지니까 &lt;행복한 인문학&gt;인 줄 알았다. &lt;인문학으로 행복해지기&gt;따위의 제목은 팔리기에 좋은 제목은 아니지, 란 속물적인 생각도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왜 제목이 &lt;행복한 인문학&gt;인지 알겠다.&nbsp;인문학은 정말 행복하다.&nbsp;이 책을 읽은 나 또한 행복하다. <br><br>이 책은&nbsp; 각 분야(문학, 글쓰기, 철학, 역사학, 예술사)의 교수들이 교도소 수용자, 자활근로자,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 수업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집필진은 고영직, 도종환, 임철우, 이명원, 고인환, 양훈도, 고영직, 우기동, 박남희, 이병수, 김준혁, 박성준, 김종길, 최준영으로, 각 분야에서 작가, 평론가, 철학자 등으로 활동하거나 교단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br><br>이들의 글은 자신이 소외계층을 수업한 경험을 토대로 하였기 때문에&nbsp;구체적인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수업의 과정을 통해 얻은 인문학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먼저 이들은 자신들이 시민인문학 강좌를 제안받았을 때, 설렘과 함께 회의와 우려와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 두려움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장 잠자리와 밥이 시급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얼핏 보기에도 이건 지적 허영이나 인문학에 대한 믿음에 대한 과신으로 보인다.&nbsp;그렇지만 이들은 수업을 통해 그들 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변화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nbsp;수강생들은 인문학수업으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건 하루 아침에 잘 곳이, 먹을 것이 생겨났다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절망인 이들에게 시가, 소설이, 철학이, 그림이 행복과 희망을 주었단 얘기다!<br><br>이건 기적같은 일인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인문학이란 것이 삶에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며, 걱정했던 것은 아닌가. 그리고서 골방에 처박혀, 자신만은 그래도 인문학의 끈을 놓고 있지 않았다고 자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nbsp;인문학이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는 낡을 대로 낡은 정의는 이들의 실천과 만나 새롭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nbsp;<br><br>시민인문학은 2005년 9월 성프란시스대학(노숙인을&nbsp;위한 인문학 강좌)을 시작으로 출범했다. 이후 지역자활후견기관이 성프란시스대학을 역할모델 삼아 인문학 코스를 개설하였고, 2007년 말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움직였다. 학진 또한&nbsp;인문학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시민인문학 강좌 지원 프로그램을 기획 실행하여&nbsp;인문학강좌들이 연속사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서울시는 경희대에 사업을 위탁하여 '실천인문학센터'를 만들어 서울시 각급 자활기관과 노숙인 쉼터에서&nbsp;인문학 강좌 12개 코스를&nbsp;만들었다. 최준영은 이러한 양적 증가를 환영하면서 한편으로는&nbsp;아직 취약한 시민인문학의 장래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br><br><br>개인적으로, 하루하루가 갑갑하고 사람들에게 질려있을 때마다 이 책을 들었다. 숨통이 트였다. 경직되고 견고하여 절대 변할 것 같던 갑갑함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의문도 들었다. 물론 인문학강좌가 소외계층에게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어 진정한 주인의식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지만, 지식인-소외계층이란 구도가 확산될 수는 없을까. 인문학만이 답은 아니지만, 물질만능주의와 결과우선주의로 얼룩진 이 사회의 다수에게 인문학이 소외받는 현실 또한 '변화'하여, 인문학이 행복해질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해 아무도 확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nbsp;정말 시작일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이 돈보다 한편의 시를 더 사랑하게 될런지도 모를 일이다. <br><br>"앞에서 인문학이 가난한&nbsp;시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의아하게 들렸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은 진실이다. 그만큼 인문학은 시민인문학을 통해 거듭나고 있으며 그 의미가 더 넓고 깊게 퍼지고 있다."(223)&nbsp;<br>&nbsp;<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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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0 Aug 2009 12:14:07 GMT</pubDate>
		<dc:creator>설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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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책] 어슐러 K. 르귄 지음, 서정록 옮김,  어둠의 왼손, 시공사, 1995.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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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초등학교 6학년 때,&nbsp;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책대여점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통로였다. 그 한켠에는&nbsp;SF소설이나 판타지 소설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SF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은 다른 세계를 그야말로 '판타스틱'하게 그려낸 것, 즉 비현실적인 "멋진 세계"라고 생각했다. <br><br>SF소설이 내 관심사도 아니었거니와, 문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에는 거의 본격소설만 읽는 편향적인 독서를 했기 때문에, SF소설은 10여년 간 내 의식을 떠나있었다. 굳이 SF소설을 읽지 않아도, 영상매체의 발달로 그것은 언제나 접할 수 있는 것이었고,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일반화(!)되어 있었다.&nbsp;그런데 최근&nbsp;본격소설에서 SF적&nbsp;판타지적 요소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이것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았으며, 한쪽에서는 반기는 소리가 한쪽에서는 우려의&nbsp;소리가 들리고 있다.&nbsp;<br><br>여하튼, 이러한 와중에&nbsp;&lt;&lt;어둠의 왼손&gt;&gt;을 읽게 되었다.&nbsp;내가&nbsp;위에 길게 사적인 이야기와&nbsp;SF에 대한 내&nbsp;얕은 인식을 늘어놓은 것은 이 책이 SF에 대한 내 인식을 흔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난 정말이지&nbsp;심심풀이 영화 한편 본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몇 시간 만에 "재밌게" 읽어야지란 생각을 했더랬다. 영화가 그렇듯이, 사건의 스펙타클한&nbsp;전개를 기대했던 나는 이게 SF냐란 볼 맨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이것이 내 SF에 대한 이해의 한계이며, 대부분 사람들의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br><br>작가의 말을 먼저 들어보자. 르 귄은 "과학소설은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하는 것이다."(8)라고 말하고 있다. 소설가는 예언가처럼 "~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특유의&nbsp;상상력으로&nbsp;거짓말(허구)를 기술할 뿐이다. 르&nbsp;귄이 남녀 성의 구별이 없는 게센인에 대해&nbsp;그릴 때, 그녀는 "정교한 상황적 거짓말을 만들어 내서, 심리적 실재의 어떤 측면을 기술할 뿐이다."(11)&nbsp;<br>이러한 글쓰기에 대해&nbsp;작가 스스로&nbsp;"사고실험"이라고 명명하는데, 그것은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세계 즉 현재의 세계를 기술하는 것이다."(8) <br><br>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재의 세계를 기술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세계에 에큐멘도, 남녀동성도 존재하지 않는다.(아니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이 소설에 기술되어 있는 시공간, 인물, 사건은 비현실적이다. 빛의 전달자인 엔보이가 게센에 가서 이들과 동맹을 맺기 위해 온갖 음모 속에서&nbsp;모험을 거쳐 동맹을 성취한다는 사건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다. 게다가 그저 재미로만 읽기엔 이 책은 사변적이다. 사건보다는 빛의 전달자인 '겐리 아이'와 '에스트라벤'을 1인칭으로 내세워 교차하여&nbsp;그들의 내면_사유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nbsp;<br><br>이 책의 묘미는 이들이&nbsp;사고하는 방식이&nbsp;우리가 지금 국가, 성이라고 규정해놓은 것들을 미묘하게 비껴나간다는 점이다.&nbsp;특히 이곳에서 새해가 늘 원년이며, 과거나 미래가 원년을 기준으로 새로 시작한다는&nbsp;것은 과거에서 미래라는 진보를 전제로 하는 근대의 시간관을 전복시킨다. 즉, 이 소설은 거짓말을 늘어놓음으로서 '여기-지금'(근대 세계)을&nbsp;사유하게 한다.&nbsp;서로 다른 종족인 '겐리 아이'와 '에스트라벤'이 마음의 언어로 소통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nbsp;이 현재 세계에 대한 희망으로도 읽힌다.(이 책이 쓰인 시점이 냉전시대였음을&nbsp;생각하라!)&nbsp;<br><br>장르 소설에 대한&nbsp;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nbsp;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nbsp;조금더 궁금한 것은&nbsp;1960년의&nbsp;SF와 현재의 SF의&nbsp;격차이다.&nbsp;아직까지는 비현실 세계를 그린 것이라고&nbsp;생각했던&nbsp;나의&nbsp;SF에 대한 인식이&nbsp;나만의 편견에서 비롯한 것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강해서이다. SF가 편협하게 혹은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변한 것은 아닌지.&nbsp;&nbsp;<br><br>&nbsp;&nbsp;<br><br></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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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순간 혹은 영원한</category>

		<comments>http://glqueen.egloos.com/2416267#comments</comments>
		<pubDate>Thu, 13 Aug 2009 13:39:10 GMT</pubDate>
		<dc:creator>설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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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책]둥시(텐다이린), Mr. 후회남, 은행나무, 2008.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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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생소한 체험. 그것이 독서 행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 책이다. 중국, 특히 현대 중국이란 낯선 시,공간이란 문외한인 나에겐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리고 새삼, 역사적 사실과 다른 소설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lt;Mr. 후회남&gt;은 개성 강한 캐릭터를 통해 그 남자의 후회가득한 일생을 다루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중국&nbsp;문화대혁명기의 격동의 시기가 자리잡고 있다.&nbsp;하지만 둥시는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애써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한 후회남의 일대기를 우스꽝스럽게&nbsp;그리고 있을 뿐이다.&nbsp;&nbsp;&nbsp;<br>둥시(東西)라는 필명은 하찮은 것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라고 한다. 그가 그리고 있는&nbsp;주인공 광셴도 하찮은 인물이며,&nbsp;속터질 정도로 답답하다.&nbsp;그가 처음 아버지와 이웃 자오산허의 동침 현장을 엄마에게 실토하고 자오완넨에게 고자질하게 되는&nbsp;것은 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라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후회할 일을 계속해서 벌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다가, 결국 강간으로 오인받아 8년형을 선고받는다.&nbsp;사소한 말실수와 순간의 결정들은 그를 결국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도 결혼도 하지 못하고, 결혼 사기를 당하여 이혼도 못하는&nbsp;상황에 빠지게 한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나서도 10년을 감옥에서 공백기로 보낸 광셴은 변화된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며, 국가 소유가 되었던 창고를 되돌려 받게 되었어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다. <br>여기서 주목할 것은 '성'에 대한 문제이다. 사실, 이 후회남의 후회는 '성'과 뗄라야 뗄 수 없다. 아니 소설 전체가 '성'에 대한 후회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데 앞서 어린 광셴이, 아버지와 자호산허의 동침을 자오완녠에게 알리자, 아버지는 홍위병에게 끌려간다. '성'이란 것이 국가에 의해 억압되고 배제되었기 때문이다.&nbsp;첫 장면에서&nbsp;광셴이 최초의 성지식을 개한테 배웠다고 언급하는 부분은 소설 전체에 대한 알레고리로 보인다.&nbsp;개의 짝짓기는 본성적인 것이지만,&nbsp;이것은 당시 정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자오완녠에 의해 '퇴폐적이고 저급한 취미'로&nbsp;부정해야 할 대상이 된다. 결국 개들은 몽둥이에 맞아 죽게 되는데, 이런 성에 대한 억압은 이후, 광셴의 행위에 일종의 억압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끝까지 극복하지 못한다.&nbsp;국가와 사회의 폭력성은 이렇게 성에 대한 한 남자의 인식을 불구화한다.&nbsp;<br>여전히 답답한 것은, 이 후회록이 한 남자의 성장담이라고 할 때, 이 남자가 전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nbsp;보통 인간은 후회를 통해 자기 자신을 성장시켜 나간다. 그러나&nbsp;광셴의 후회는 같은 차원에서 무한히 반복될 뿐이다. 이것이 작가의 중국 현실에 대한 인식인지,&nbsp;중국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르로 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우지 않는 작가의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며, 나아가 중국소설의 현재 위치에 대한 궁금증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br>&nbsp;&nbsp;&nbsp;<br><br></p><br/><br/>tag : <a href="/tag/둥시" rel="tag">둥시</a>,&nbsp;<a href="/tag/미스터후회남" rel="tag">미스터후회남</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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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둥시</category>
		<category>미스터후회남</category>

		<comments>http://glqueen.egloos.com/2334249#comments</comments>
		<pubDate>Mon, 27 Apr 2009 15:23:23 GMT</pubDate>
		<dc:creator>설안</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신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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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내 작은 원 안에 갇혀 살다가, 잠시 원 밖을 내다보았다. <br>그들이 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생각하고 실천하는.<br><br>그들의 원의 크기가 내겐 막막해 보인다. 무한하고, 계속해서 늘어났다가 수축하지만 팽팽한 원. <br>나는 내 작은 원 안에서의 소소한 일상조차가 힘에 부친다. 그 원을 조금 늘이는 것은 내겐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br><br>신념. 나에게 신념이란 게 있기나 할까. <br>지금 이 글을 쓰는 것 조차게 내겐 큰 용기이다. 나 자신에 칼을 들이대는. </p>			 ]]> 
		</description>
		<category>일기 그리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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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9 Jan 2009 01:22:22 GMT</pubDate>
		<dc:creator>설안</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문학비평세미나발제]전성태, 이미테이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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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nbsp;<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HY나무L';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전성태, 이미테이션, 문학과 사회, 2009년 겨울호. </span></span><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0%; FONT-FAMILY: 'HY나무L';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HY나무L';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0%; FONT-FAMILY: 'HY나무L';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HY나무L';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nbsp;&nbsp;소설의 시작은 평범하다. 게리라는 혼혈인(?)은 미국 로컬 스쿨을 그대로 옮긴 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한다.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하여, 원장과 미예, 게리는 하나의 연극을 벌인다. 초등학교 때부터 원어민 강사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학원 등의 사교육 시장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은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문제의 형상화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0%; FONT-FAMILY: 'HY나무L';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HY나무L';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nbsp;&nbsp;문제적인 것은 이 게리라는 인물의 정체성이다. 게리는 한국인이다. 한국인인데, 혼혈인의 외모를 가진 한국인이다. 그의 부모는 “오리지널 한국인”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다국적인 외모”를 갖고 있다. 단일민족국가를 표방하는 한국에서, 이 외모는 그의 소년시대를 뿌리 찾기에 열중하게 하고, 오해로 얼룩지게 했다. 그는 국사 시간에 ‘단일민족국가’라는 말을 읽을 수 없었다. 그의 행동을 반항으로 오해한 국사 선생은 그를 벌주고 반성문을 쓰게 한다. 그 과정에서 국사선생은 그를 혼혈이라 오해하고 혼혈이면 더 독심을 품고 잘해야 하며, 민족은 핏줄이 아니라 가슴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0%; FONT-FAMILY: 'HY나무L';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HY나무L';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nbsp;&nbsp;민족은 핏줄이 아니라 가슴에 있다는 것은 민족이란 이름으로 비한국인을 한국인으로 포섭하는 논리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포섭에는 ‘너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배제의 논리가 포함되어 있다. 게리는 국사 수업의 사건 이후, 혼혈인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한국인이지만, 외모 때문에 혼혈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원판’을 게리 워커 존슨이라는 혼혈인으로 삼고, 그를 모방 ․ 모조한다. 란셀 백이 이미테이션과 오리지널이 구분 안 가듯, 게리 워커 존슨을 모방한 후 그는 게리의 삶을 살고 그것이 그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든다. </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0%; FONT-FAMILY: 'HY나무L';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HY나무L';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nbsp;&nbsp;이렇게 그를 혼혈인으로 살아가게 만든 배제의 원리는 국방의 의무에 가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외모로 인해 군대에서 고생할 것을 배려한 혼혈인 병역복무면제 조항은 외모만 혼혈인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는 ‘오리지널 혼혈인’이 아닌 ‘이미테이션 혼혈인’인 것이다. 그는 ‘오리지널 한국인’도 아니며 ‘오리지널 혼혈인’도 아닌 이중의 ‘이미테이션’적 존재로 이중의 배제를 받는다. </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0%; FONT-FAMILY: 'HY나무L';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HY나무L';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nbsp;이 이중의 배제에서 그는 ‘이미테이션’의 삶을 선택한다. 이미테이션 백을 오리지널인 것처럼 매고 다니는 세상이다. 아니 오리지널이 이미테이션일 수 있단 심증이 있어도 묵인된다. 게리도 서울을 모방한 ‘인공의 도시’에서 이미테이션의 삶을 산다. 그것이 그의 자리이다.&nbsp;&nbsp; 원장은 게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를 원어민 강사로 둔갑시키고 모종의 합의를 본다. 게리의 짝퉁 삶은 그 자신의 선택이지만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한 국가의 포섭과 배제의 논리 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이 근본적으로 던지는 물음이 아닐까. </span></span></p><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nbsp;</span></p><br/><br/>tag : <a href="/tag/전성태" rel="tag">전성태</a>,&nbsp;<a href="/tag/이미테이션" rel="tag">이미테이션</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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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순간 혹은 영원한</category>
		<category>전성태</category>
		<category>이미테이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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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8 Jan 2009 07:57:31 GMT</pubDate>
		<dc:creator>설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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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책]게공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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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img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901/10/48/e0019348_4968812fee73d.jpg" width="179" height="24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901/10/48/e0019348_4968812fee73d.jpg');" /><br><br><span style="COLOR: #333333"># 고바야시 다키지, 양희진 역, 게공선, 문파랑, 2008. <br></span><br><span style="COLOR: #999999">"게공선은 '공장선'으로 '선박'이 아니었다. <br>그래서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br>게다가 배가 아닌 순수한 '공장'이었다.<br>하지만 공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br><br></span><br>지금 일본에서는 '게 공선 붐'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1929년작인 이 작품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a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40472">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40472</a>)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등이란 말이 일상적인 말이 된 한국에서도 이 소설이 주목되고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nbsp;한국의 계급주의 소설들이 이전 시대의 유물로 취급받고 있는 상황과 비교해보면, 이 소설이 붐을 일으키게 된 요인은 차치하고(20년대와 다를 바 없는 혹은 더 암담한 이 현실!) 80년을 훌쩍 뛰어넘는 이슈화는 이 소설이 현재적으로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이 상황은 현대 일본 소설의 빈곤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nbsp;<br><br>다키지는 캄차카 영해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을 만드는 '게 공선'의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상과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인간이하 취급을 하는 감독의 행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어업노동자와 잡일꾼, 선원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 하에서 분노하고, 한 어업 노동자가 러시아 가족을 만나 자신들의 노동의 부조리성을 깨닫는 과정에서 '우리'가 되어&nbsp;이 상황을&nbsp;전복하고자&nbsp;반항한다. 그러나 이 파업은 대표 아홉 명이 구축함에 호송되는 것으로 마감된다. 그들은 이 파업을 통해 군함으로 대표되는 국가란 것이 국민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국가가 국민의 편이라고 믿었지만, 국가는 '부자들의 압잡이'일 뿐이다. 파업이 실패한 데서 얻은 이것은 큰 교훈이 된다. 국가는 국민을 포섭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국가의 이익에 한해서이다. 이익에 반할 때 국가는 얼마든지 국민을 배제하고 억압한다. 이러한 의식적 성장을 한 그들의 이후 파업은 '덧붙이는 말'에 의해 성공하였음을 말해주며, 이러한 노동 운동이 퍼짐을 말해주며 끝난다. 이러한 결말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을 보여준다. <br><br>그런데, 이 소설이 단지 역사 속에 묻히지 않고, 21세기에 살아난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 소설의 특장은 소재에 있는 것같다. 항해법도, 공장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 사각지대의 게 공선. 1920년대 말 내지에서는 노동자들의 힘이 커지는 추세였지만, 여전히 게 공선은 법의 바깥에 있다. 80년 후의 지금은 어떤가. 경제적 성장을 하고, 노동자들이 이전보다 법적 권리를 획득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더 교묘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합리적인 체 한다. <br><br>일본에서 '게 공선 붐'이 일어남에 따라, 한국에서도 이 책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의 주목은 상업적 논리가 더 작용하는 듯하다. 가벼운 현대 일본 소설이 판을 치는 시장에서 묵직한 '게 공선'은&nbsp;현대 일본 소설에 질린 독자들에게 자극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nbsp;그러한 묵직함을 80년대 전의 소설에서 찾아야 한다는 현실은 암울하다. 현대 일본의 작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nbsp;이 물음은&nbsp;칙릿화되어가는 한국소설에도 귀감이 될 만한 일이다. 한편으론, 사소설화되어가고 있는 경향 속에서도, 지금-여기에 문제제기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이 존재하고 있다는&nbsp;사실이&nbsp;한국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큰 위안이 된다. 또, 2008년 이후&nbsp;일군의 작가들이 사교육, 비정규직, 남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미학적 형상화까지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br><br/><br/>tag : <a href="/tag/고바야시다키지" rel="tag">고바야시다키지</a>,&nbsp;<a href="/tag/게공선" rel="tag">게공선</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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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순간 혹은 영원한</category>
		<category>고바야시다키지</category>
		<category>게공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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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0 Jan 2009 11:26:44 GMT</pubDate>
		<dc:creator>설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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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09년 1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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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COLOR: #ccccff">읽을 예정</span> / <span style="COLOR: #9999ff">읽는 중</span> / </span><span style="COLOR: #6600cc"><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읽음 <br><br><span style="COLOR: #6600cc"><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br><span style="COLOR: #ff99ff">#. <br></span><br>박민규, 카스테라, 문학동네, 2005. <br><br>박민규, 지구영웅전설, 문학동네, 2003. <br><br><span style="COLOR: #9999ff">성석제, 농담하는 카메라, 문학동네, 2008. <br><br><span style="COLOR: #6600cc">고바야시 다키지, 양희진 역, 게공선, 문파랑, 2008.&nbsp;&nbsp;<br><br></span><br><br><span style="COLOR: #ff99ff">#.</span>&nbsp;&nbsp;<br><span style="COLOR: #9999ff">&nbsp;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윤정임 이정임 역, 철학이란 무엇인가,&nbsp;현대미학사, 1995. (세미나)&nbsp;</span><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COLOR: #ccccff"><span style="COLOR: #ff99ff"><br><br>#. <br></span>염상섭, 사랑과 죄 (연구) <br><br><br></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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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책읽기 기록장</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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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2 Jan 2009 12:44:53 GMT</pubDate>
		<dc:creator>설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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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두 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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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두 &lt;혀&gt;. <br>조경란의 &lt;혀&gt;는&nbsp;정보가, 기교가, 작가의 분신이, 흘러넘쳐 긴장이 풀어지고, 주이란의 &lt;혀&gt;는 뭔가 부족하고 엉성하고 뜬금없다.이 소설들을, 내가 읽어야 하고, 우리가 읽어야 하고, 그들이 읽어야 하는 것은&nbsp;역시, '사랑하고 맛보고 거짓말하는 혀'란 것에 있다.&nbsp;똑같은 주제와 틀을 주고 소설을 쓰라고 해도, 서로 다른&nbsp;작품이 나온다.&nbsp;누구 말대로, 어쩌면 그렇기에, 표절 따위는 없을 지도 모른다. 먼저 밝히자면, 난 둘 중 누구의 소설에도 손을 들지 않으며, 둘 중 누구의 소설에서도&nbsp;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nbsp;이 '소설 자체'에 메스를&nbsp;댄 것은, 당신들이다. 이제&nbsp;'소설 자체'는 문제가 되지&nbsp;않는다.&nbsp;'소설 외적'인 문제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이 두 &lt;혀&gt;의 슬픈 운명이다.&nbsp;<br>두 작가의 말과 행동들은 차치하고 싶다. 누가 먼저, 생각해서, 누가 먼저 글을 발표했으며,&nbsp;그것에 대해 누가 이의를 제기하고...이보다 중요한 것은,&nbsp;우리의(나를 제외하는 것은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내내 생각했다) 반응이다. 우리는 지금껏, 그 무엇을 당연시해오지 않았는가. 예술이란 이름으로, 예술의 결과만 중요시한 것은 아닌가. 그래서, 결국 이렇게&nbsp;된 것은 아닌가. 뜬구름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지껏 뜬구름을 잡고 있지 않았는가. <br><br>&nbsp;<br/><br/>tag : <a href="/tag/혀" rel="tag">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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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순간 혹은 영원한</category>
		<category>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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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0 Nov 2008 02:44:39 GMT</pubDate>
		<dc:creator>설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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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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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COLOR: #6600cc"><span style="COLOR: #000099">#. 이재웅,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실천문학, 2005. <br></span><br></span><span style="COLOR: #3366ff">중년의 사내는 자신의 건물과 관련한 법률적인 문제들에 대해 떠들어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건물과 관련된 법률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 건물들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건축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가난했다. 그들은 세상을 부유하게 살아갈 재주가 없었다. 그들은 흙에서 자랐거나 적어도 그렇게 자란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의 침대 위에 하얗게 질려 누울 수 있었고, 그러면 세상은 그들의 가족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도 있었다. 그들의 육체적 죽음은 새로운 가난을 낳았다. 그것은 순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순환되었다. 그 순환의 연쇄고리를 절단 내려면 특별한 능력이나 운명의 힘이 필요했다. 소수는 것을 지녔다. 다수는 그것을 지니지 못했다. 소수는 무슨 일이든, 선언이든, 질서유지든, 저항이든 할 수 있었지만 다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다수는 항상 무기력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침대 위애 늙은 천사로 죽어갔다. 나의 아빠가 그랬다. (p. 48) <br><br><span style="COLOR: #000066">+ &lt;&lt;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gt;&gt;이 떠오른다. 그런데, 정말 소년은 늙은 소년이었을까. 소년은 자신이 늙은 소년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그가 모르는 세상이 있음을, 그는 알게 될까가 궁금했다. 알게 하는 과정에서, 이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잘 읽히고, 호기심을 자아내고, 가슴 뭉클한 소설이다. <br><br><span style="COLOR: #3366ff">중년의 사내는 할머니와 나는 때때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곤 했다. 내 손바닥은 가려웠고, 하얗게 껍질이 벗겨졌다. 할머니는 내가 자라기 위해서 허물을 벗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눈이 눈물로 짓물러졌다. 내가 왜 우냐고 물으면 그녀는 내가 자라는 게 기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아주 나중에야 내가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그 때문에 자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할머니를 증오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나를 속이는 게 돈을 벌어 오는 것보다 쉬웠다.<br>나는 그걸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세상은 너무도 풍요로워서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nbsp;&nbsp; (p.75) <br><br><span style="COLOR: #000066">+ 어디선가, 이젠 '가난'을 얘기하는 작가가 없단 말을 들은 것 같다.&nbsp;그래서 이 작가가 특별해 보이는지도.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는 '가난'이, 그 말을 '믿지 않는' (혹은 믿지 않도록 강요하는) 세상때문이라는 걸 간파한다. <br><span style="COLOR: #3366ff"><br>그녀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울었다. 그녀는 결코 울지 않았다. 아무리 많이 맞아도 울지 않았다. 오히려 덩치 큰 사내아이들이 주먹을 휘두르다 겁에 질려 울곤 했다. <br>"넌 강하구나." 나는 말했다. <br>"맞아. 나는 강해.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법을 알아." <br>"어떻게 하면 울지 않는데?" <br>"마음 속으로 울면 돼." (p. 250) <br><br>나는 송봉권에 대해, 송봉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알 수 없었다. (p.261) <br><br>"모든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가요. 난 그게 겁이 나요." 나는 말했다. <br>"넌 늙긴 했지만 여전히 소년이야.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 네가 정말로 어른이 되고 싶다면 너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 해. 떠나가는 것도." <br>" 난 그것에 충분히 익숙해졌어요. 그래서 늙어버린 거에요." <br>"어쩌면 그럴 지도 몰라. 하지만 넌 아직 어른이 될 수는 없어. 어른이 되려면 갖춰야 할 게 많아. 너는 목소리가 갈라질거야. 수염도 날 거고. 네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도 털이 날 거야. 네 몸에서 비린내가&nbsp;날 거야. 너는 좀더 괴물이 되어야 해." <br>"난 충분히 괴물이에요.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아도 난 충분히 괴물이에요." <br>"너는 내 말뜻을 알지 못해." 그는 말했다. <br>"아저씨도 제 말뜻을 알지 못해요. 나는 아저씨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괴물이에요." <br>"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가 내 양 어깨를 짚었다. <br>"이제 그만하자. 난 이제 가봐야 해. 난 네가 보고 싶었어." <br>"나도 아저씨가 보고 싶었어요." <br>"그래 고맙구나. 난 이제 정말 가봐야겠다." <br>하지만 그는 내 어깨에서 두 손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나를 가만히 포옹했다. (p.288)<br><br><span style="COLOR: #000066">+ 소년은 자신이 '늙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달수가 말하듯, '늙은' '괴물같은' 소년일지 몰라도, 그것은 소년을 꾸미는 수식어일 뿐, 그는 여전히 소년이다. 비루하고 모순투성이인 세상을 이미 알고 있는 소년이지만, 그는 아직 '비린내가 나지 않는' 순결한 몸인 것이다. 소년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곽호 아저씨이 말이나, 곽호 아저씨를 죽여도 달라질 것이 없단 누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송봉권과 누나의 사랑을 알 수 없다.&nbsp;소년은 잠이 &nbsp;안 오면 술이나 담배를 피우지만, 그것은 타락의 모습을 띠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괴물 같다고 느끼지만, 소년은 아직은 순결한 몸인 것이다. <br><br><span style="COLOR: #3366ff">"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넌 그걸 배워야 될 거다. 그래야 어른이 될 수 있는 거지. 넌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굴지만 결국 네 누나의 치마폭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못해. 언젠가 그걸 알게 될 거다. 네가 경험한 것들은 그리 대단한 게 아냐. 세상은 네가 경험한 것보다 몇백 배는 복잡하지. 단순한 게 아냐. 네가 이십 년쯤 더 산다면 내 말뜻을 알게 될 거다. 너는 좀더 잔인한 것들을 경험해야 해. 고통스러운 것도. 그러면 나를 이해하게 될 거다. 넌 아직 어린애에 불과해." (p.295) <br><br><span style="COLOR: #000066">++ 유사가족 관계. 비정상적이지만, 곽호가 신문을 보고, 누나는 식사를 준비하고, 소년은 책을 읽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그 모습의 묘사가 일반 가정처럼. <br>++ 누나가 곽호 찌르고 나왔을 때, 역무원과 여관 노인의 도움, 역무원, 귀찮아서, 여관노인, 누나가 젊은 여자라서 흑심. <br>++ 할머니의 가난과 누나의 가난의 차원이 다름. 화려한 삶의 이면의 누나의 가난. / 매춘 또한 예전과 양상이 다른. <br><br></span></span></span></span></span></span></span></span></p><br/><br/>tag : <a href="/tag/그런데소년은눈물을그쳤나요" rel="tag">그런데소년은눈물을그쳤나요</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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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깨알의 기록</category>
		<category>그런데소년은눈물을그쳤나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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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9 Oct 2008 04:16:5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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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첫날 : 호텔과 모스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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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809/02/48/e0019348_48bc0a8051105.jpg" width="379" height="26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809/02/48/e0019348_48bc0a8051105.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2.egloos.com/pds/200809/02/48/e0019348_48bc0a279d6d8.jpg" width="378" height="27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2.egloos.com/pds/200809/02/48/e0019348_48bc0a279d6d8.jpg');" /></div><br><br>이스탄불에서의 첫 밤. 여행을 왔단 실감을 느끼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낯선 잠자리가 아닐까 싶다. 여행 내내 우리의 잠자리는 매일 바뀌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가 아닌 바로 터키라는 실감을 준 것은 바로 모스크(자미). 첫날 호텔에서 바라본 모스크를 봤을 때는 신기했지만, 나중에는 모스크가 안 보이는 동네가 신기했다는.&nbsp;그들의 일상이, 내 눈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nbsp;5분만 나가면 동네슈퍼에서 맥주를 살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모스크&nbsp;사방 200미터 안에서 술을 팔지 않아,&nbsp;맥주를 사기 위해 밤거리를 헤매야 했던 그 밤들도.&nbsp;<br>&nbsp;<br/><br/>tag : <a href="/tag/터키" rel="tag">터키</a>,&nbsp;<a href="/tag/모스크" rel="tag">모스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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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터키여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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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1 Sep 2008 15:43:3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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