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xml-stylesheet href="http://rss.egloos.com/style/blog.xsl" type="text/xsl" media="screen"?>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channel>
	<title>제라늄님의 이글루</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05 Oct 2009 10:49:21 GMT</pubDate>
	<generator>Egloos</generator>
	<image>
		<title>제라늄님의 이글루</title>
		<url>http://md.egloos.com/img/samplelogo2.gif</url>
		<link>http://geranium.egloos.com</link>
		<width>80</width>
		<height>80</height>
		<description>?</description>
	</image>
  	<item>
		<title><![CDATA[ 따라오세요 - 청계천 문화관 ]]> </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2543337</link>
		<guid>http://geranium.egloos.com/2543337</guid>
		<description>
			<![CDATA[ 
  <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05/74/e0060574_4ac99c10b30bf.jpg" width="500" height="241.46468595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05/74/e0060574_4ac99c10b30bf.jpg');" /></div><br>나는 청계천 문화관에서 한 사람의 큰 욕심을 본다<span lang="EN-US">. </span>그것은 기념에 대한 강한 열망이다<span lang="EN-US">. </span>청계천 문화관 앞에 <span lang="EN-US">‘</span>청계천 복원에 도움을 주신 분들<span lang="EN-US">’</span>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 것과 다른 방식일 뿐 내용은 다르지 않다<span lang="EN-US">. </span>아무리 그 형태를 달리 한다고 하더라도 만든이의 의도는 달라지지 않는다<span lang="EN-US">. </span>기념비이며 찬가이다<span lang="EN-US">.<br><br></span></span></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lang="EN-US"><?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00%"></span></o:p></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청계천 문화관에 답사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은 왜 그것이 거기에 있는가 이다<span lang="EN-US">. </span>그동안 수없이 청계천을 드나드는 동안 단 한번도 내가 찾게 만들지 못한 장소가 청계천 문화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span lang="EN-US">. </span>한강의 기적에서 말하는 한강이 강원도의 산간지형을 가로지르는 작은 물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span lang="EN-US">. </span>청계천 문화관이 있는 장소는 지금 우리가 청계천이라고 부르는 풍경과는 거리가 먼 곳이고<span lang="EN-US">, ‘청계천에서 파는 부품들만 모아도</span>&nbsp;탱크를 만들 수 있다<span lang="EN-US">’</span>는 그 청계천도 아니다<span lang="EN-US">. </span>청계천 문화관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을 타당하게 하는 것은 그 곳이<span lang="EN-US"> 1-3</span>공구로 나뉘어 진행된 청계천 복원사업의 제<span lang="EN-US"> 3</span>공구에 포함되었다는 사실뿐이다<span lang="EN-US">.</span></span></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lang="EN-US"><o:p><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00%">&nbsp;</span></o:p></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그러니 사람들은 그곳에 청계천 문화관이 있다는 사실을 <span lang="EN-US">‘</span>발견<span lang="EN-US">’</span>하게 되었을 때 <span lang="EN-US">‘</span>왜<span lang="EN-US">?’</span>라고 반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span lang="EN-US">. </span>누구라도 전시된 청계천의 풍경과 반투명 커튼월 밖으로 보이는 지방하천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고 그것은 청계천 문화관이 태생적으로 밖에 가질 수 없는 한계점이다<span lang="EN-US">. </span>그 한계점은 만든이가 무엇인가를 기념하고자 했을 때 만들어졌다<span lang="EN-US">. </span>그 장소라던가 그 형태<span lang="EN-US">, </span>내용은 부수적인 것이었을 뿐이다<span lang="EN-US">. </span>청계천 문화관을 만든 사람은 건축가가 아니었다<span lang="EN-US">.</span></span></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lang="EN-US"><o:p><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00%">&nbsp;</span></o:p></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청계천 문화관이 청계천 문화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span lang="EN-US">. </span>최초의 그 의지를 해체시킬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수 있다<span lang="EN-US">. </span>청계천과의 접점을 모색할 수 도 있고<span lang="EN-US">, </span>주변 지역과의 연결을 찾을 수도 있다<span lang="EN-US">. </span>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청계천 문화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span lang="EN-US">.</span></span></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lang="EN-US"><o:p><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00%">&nbsp;</span></o:p></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현재 청계천 문화관은 그 자체로는 훌륭한 건축이고 재미있는 공간이다<span lang="EN-US">. </span>그러나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건축은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span lang="EN-US">. </span>건축 안에 만들어진 <span lang="EN-US">‘</span>길<span lang="EN-US">’</span>은 올림픽대로처럼 시선은 밖으로 머물 수 있으되 그곳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진 못하게 한다<span lang="EN-US">. </span>철저하게 길이 제공하는 판타지에 집중하고 한장 한장의 슬라이드 화면으로서의 풍경만을 제시한다<span lang="EN-US">. </span>사람들이 시선이 건물 뒤쪽으로 향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span lang="EN-US">, </span>그것은 기념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그 이면의 것은 아님을 애써 말한다<span lang="EN-US">. </span>그래서 청계천 문화관의 이면도로에서는 청계천과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진다<span lang="EN-US">.</span></span></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lang="EN-US"><o:p><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 FONT-SIZE: 100%">&nbsp;</span></o:p></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청계<span lang="EN-US"> 10</span>가를 넘어서는 청계천은 일반적인 지방하천과 다르지 않다<span lang="EN-US">. </span>그것은 그 형태뿐 아니라 그것이 사용되어지는 형태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span lang="EN-US">. </span>뜨내기 관광객들 대신에 신문을 읽는 어르신들이 그 장소를 점유한다<span lang="EN-US">. </span>여기서는 청계천 자체의 긴 흐름이 사라지고 주변 지역과 끊임없이 연결되는 장소성이 생성된다<span lang="EN-US">. </span>그러므로 청계천 문화관은 그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주변 지역과 청계천을 연결시킨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span lang="EN-US">. </span>그러나 청계천을 향한 긴 벽은 청계천과 그 후면의 지역을 철저하게 구분지어 생각할 것을 강요한다<span lang="EN-US">. </span>청계천 문화관의 훌륭한 건축과 재미있는 공간은 기념의 의지를 포기했을 때 처치 곤란한 것들이 된다<span lang="EN-US">. </span>이것이 청계천 문화관이 잘못된 건축일 수 있는 이유다<span lang="EN-US">.</span></span></span></p><p style="MARGIN: 0cm 0cm 0pt" class="MsoNormal"><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맑은 고딕"><br><span lang="EN-US"><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05/74/e0060574_4ac99ef032986.jpg" width="500" height="332.44680851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05/74/e0060574_4ac99ef032986.jpg');" /></div></span></span></span></p><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05/74/e0060574_4ac99f289dec1.jpg" width="500" height="332.44680851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05/74/e0060574_4ac99f289dec1.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0/05/74/e0060574_4ac99f5313e65.jpg" width="500" height="332.44680851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0/05/74/e0060574_4ac99f5313e65.jpg');" /></div>			 ]]> 
		</description>

		<comments>http://geranium.egloos.com/2543337#comments</comments>
		<pubDate>Mon, 05 Oct 2009 07:18:01 GMT</pubDate>
		<dc:creator>제라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연습 ]]> </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2515447</link>
		<guid>http://geranium.egloos.com/2515447</guid>
		<description>
			<![CDATA[ 
  <p>자주, 무엇이든 써야겠다. 당장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아도, 좋은 글을 쓰기위한 훌륭한 연습이 될것이다.</p>			 ]]> 
		</description>

		<comments>http://geranium.egloos.com/2515447#comments</comments>
		<pubDate>Tue, 29 Sep 2009 13:42:13 GMT</pubDate>
		<dc:creator>제라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 ]]> </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2471708</link>
		<guid>http://geranium.egloos.com/2471708</guid>
		<description>
			<![CDATA[ 
  <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 대한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듣는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스타 건축가에 대한&nbsp;무분별한 선호'를 성토하는 하나의 상징이 된 듯 하다. 아직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것이 국립민속박물관과 국회의사당과 예술의 전당의 뒤를 잇는&nbsp;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좋은쪽이든 나쁜쪽이든 간에.<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08/26/74/e0060574_4a944dc81929d.jpg" width="449" height="24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08/26/74/e0060574_4a944dc81929d.jpg');" /></div>나 역시 이 새로운,&nbsp;전혀 새로운&nbsp;건축이 완공되어졌을 때 만들어지게 될 어떤 변화에 대해서 가늠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어쨋든 서울시는 보다 불확실한 쪽에 많은 가능성을 바라보고 자하 하디드를 선택했다.&nbsp;여기서부터 문제는 여러가지가 나열될 수 있다. 건축가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절차가 있었을 것이며,&nbsp;특히 오세훈 시장이 마음에 들어했다는 부분이 어느정도 영향이 있었을지, 그것이 옳은 일이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또&nbsp;자하 하디드가&nbsp;유행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축가인지, 동대문 운동장 시설의 일부를 보존한다는 설계 지침상의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안이 당선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많은 시간이 지났고 또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여전히 이 거대한 건축에서는 우울한 시대의 부조리가 담겨있다.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의 성공적인 데뷔에 도취되어 그것이 안고있는 부조리와 부조리를 지적하는 시선을 경원시 했던 것이 한 인간에 대한 그릇된 판단으로 이어진 것과 같이 이같은 절차상의 문제는 건축 자체의 가치판단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할 것이다.<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는 형태가 있다.&nbsp;이 논란에는 여지없이 동대문 운동장의 장소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08/26/74/e0060574_4a94545c908ef.jpg" width="500" height="333.33333333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08/26/74/e0060574_4a94545c908ef.jpg');" /></div><br>나는 군생활 동안 동대문 주변에 꽤 오랜시간에 걸쳐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에게는 동대문 운동장의 화려했던 기억이 없지만, 이미 쇠락한 운동장의 어디에도&nbsp;그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동대문 운동장의 기억이 나의 윗세대들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유산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br><br>내가 동대문에서 가장 크게 느낀 인상은 그곳이 대한민국의 어느 곳보다 역동성이 넘치는 곳이라는 점이다.&nbsp;사람들에게 잘 알려진&nbsp;밀리오레, 두산타워 주변은 동대문이라는 거대한 상권에서 극히 미미한 일부다. 동대문 운동장 너머로 그보다 수배 많은 쇼핑몰들이 밀집되어 있고, 밤 10시가 넘어가면 그곳은 대한민국의 어느 곳보다도 분주한 시장이 된다.<br>대한민국의 모든 옷가게들이 한 주 동안 팔 옷을 떼가지 위해 이곳으로 모인다. 한번에 옷봉투 서른개들 든다는 달인이 여기에서 일하고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밤 10시에 문을 열어 새벽 6시에 문을 닫는 민들레영토가 여기에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진 동대문 야시장엔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없는 젊은 감성과 연말 명동에는 없는 삶의 역동성이 함께 있다.<br>또, 동대문은 옷을 파는 곳일 뿐만 아니라 옷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nbsp;동대문시장 주변에는 원단이나 아예 단추나 지퍼만 전문으로 파는 상가가 있다. 손님이 뜸한&nbsp;오전에는 그런 의류 부자재 상가와 원단가게들을&nbsp;오가는 오토바이들이 쇼핑객들을 대신해 동대문을 채운다. 마네킹만 파는 거리가 있고, 옷봉투만 파는 거리도 있다.<br><br>한마디로 말하자면 동대문 상권의 역동성은 마치 항구와 같다. 다양한 삶의 부스러기들이 여기에 부대끼며 살고 있다. 그것이 동대문이 명동이나 강남과 차별화 되는 지점이다.&nbsp;그런데 그 거대하고 북적이는 항구의 한가운데에서 동대문 운동장은 어떤 의미일까.<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8/26/74/e0060574_4a94556657c2e.jpg" width="500" height="352.94117647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8/26/74/e0060574_4a94556657c2e.jpg');" /></div><br>동대문 운동장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구조는 있되 실제적인 기능을 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전과 같다. 대부분의 날을 굳게 닫친채, 동대문 운동장은 상징물로 남아있다.<br><br>동대문 운동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기억이 존치되길 바란다. 나 역시 너무나 쉽게 기억을 지우고 다시 쓰는 방식에 큰 거부감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그래야 할 필요도 있다. 동대문이라는 항구에 동대문 운동장은 너무나도 큰 신전이다. 그것도 너무나 많은 것을 가로막고 있다. 내가 군대에 가기 전까지 동대문 시장에서 동대문 운동장 쪽으로 길을 건너 본 적이 없다. 그 너머를 궁금해 한적도 없다. 동대문 운동장 안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추억이 얽혀있지만 그 밖으로는 지금도 밤을 세우는 삶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것의 존치가 가치있는 만큼 그 나머지 것들도 중요한 문제이다.<br><br>물론, 그 답이 자하 하디드의 건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는 많은 말들은 오로지 건물만을 보고 있는 듯 하다. 자하 하디드의 건물과 철거된 동대문 운동장과 또 가까이에 있는 동대문과 또 복원될 성곽들만 보고 있다. 그러나, 동대문 운동장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은 그 밖에도 많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도 상인이라던가 동대문 시장같은 얘기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그녀의 많은 작품들처럼)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 건물은 많은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대지 전체로 보앗을때는 건물을 강조하면서도 많은 부분을 공원과 성곽을 위해 비워주웠다. 가장 상권이 활성화된 흥인문로를 따라 건물이 배치되고 그 후면을 비운것과 또 유동적인 형태로 인해 그 경계가 허물어져 비워있는 것과 채워져 있는 것이 함께 있는 것은 그렇게 나쁜 선택이 아니다. 이 순간만큼은&nbsp;그녀의 유동적인 형태가 유효하게 작동한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08/26/74/e0060574_4a94547b8e510.jpg" width="411" height="34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08/26/74/e0060574_4a94547b8e510.jpg');" /></div><br>결론적으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성공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건물이 완공되었을때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건물에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일 것이고 언론들은 다투어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동대문 시장이 더 새로워 지고 더 좋은 환경이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더 많은 쇼핑객들이 모일 것이다. 드디어 사람들은 동대문 운동장쪽으로 길을 건널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 플라자가 그 자체로 관광명소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동대문 시장을 소개하는 안내책자의 간판사진 쯤은 될 것이다.<br><br>물론, 중요한 얘기가 아닐 수 있다. 건축가가 고민하는 것은 단순히 개발이익을 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br>그러나, 언젠가 그 건물이 완공되고 언론들이 호들갑들을 떨 때, 소위 건축가라는 것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있다고 할 시민들에게 우리가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이런 얘기도 해야한다. 그리고 동대문 시장의 역동성과 그들의 생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야한다. 그러면서 그 미래와 발전도 그려야 한다. 이런 말들이 전부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동대문 운동장을 이야기하면서 자하 하디드만 찾을 것인가.</p>			 ]]> 
		</description>

		<comments>http://geranium.egloos.com/2471708#comments</comments>
		<pubDate>Sun, 23 Aug 2009 18:51:43 GMT</pubDate>
		<dc:creator>제라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이미 충분히 - 이재하 '내손동 주택' ]]> </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2471688</link>
		<guid>http://geranium.egloos.com/2471688</guid>
		<description>
			<![CDATA[ 
  <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08/24/74/e0060574_4a91842eecb21.jpg" width="292" height="29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08/24/74/e0060574_4a91842eecb21.jpg');" align="left"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건물의 이름을 처음 찾아봤다. 공간에 기재된 건물명은 '내손동 주택'이다. 사람이름으로 치면 '경기댁' 쯤 될만한 이름이다. 특별히 부를 이름이 없을때 사는 곳으로 구분지어 부르는 방식이다. 건물도 딱 그만큼이라는 생각이 든다.<br><br>&nbsp;건축가가 지은 건물에는 화려한 이름이 붙는것이 많다. 이름이 화려한 만큼 그 뜻도 높고 화려하다. 그런 주택은 그냥 길을 걷다가도 알 수 있다. 건축가가 지은 집이구나 하고. 그에 반해 이 집은 잘 모른다면 그냥 좋은 집이구나 하고 지나갈 것 같다. 어쩌면 새로 지은 집인지도 알수없을것도 같다. 외벽에 오래된 벽돌을 모아 쌓았다고 하지만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이를 먹은 것 같은 젊잖음이 있다.<br><br>건축 잡지를 통해 많은 집들을 봐왔지만 특별히 반가움이 느껴지는 건물들은 없었다. 모든 집들이 '사보아 빌라' 나 '낙수장'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거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제안은 있지만 잘짜여진 편안한 집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너무 크고 새롭고 화려하며 불편하다. 부유한 클라이언트의 재력에 기대 자의식의 발현 기회를 찾고 있을 뿐, 현대 주거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아파트에 그 자리를 양보한다. 전통 공간을 계승했다거나 또는 변화하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했다거나 하는 설명은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단지 건물의 수식어로써 사용될 이 단어들이 전통 공간의 계승이나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br><br>물론, 그런 건물들 중 일부는 매우 훌륭하고 그 의도는 대부분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집이 오페라 하우스나 초고층 빌딩이 아닌 다음에야 '나중에 이런 집에서 살면 좋겠네'라고 생각할 만한 집이 없는 것은 이상하다. 나는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없어 잘 모르지만 아무리 네덜란드라고 해서&nbsp;건축가가 짓는&nbsp;모든 개인주택이 NM빌라처럼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나라 건축가는 이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클라이언트의 무지렁을 탓해가며 건축을 하는 것일까.<br><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08/24/74/e0060574_4a918467842ff.jpg" width="261" height="29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08/24/74/e0060574_4a918467842ff.jpg');" align="left"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08/24/74/e0060574_4a9184780c358.jpg" width="350" height="23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08/24/74/e0060574_4a9184780c358.jpg');" /></div><br><br><br><br><br>내손동 주택에 대한 반가움은 그런 것 같다. 우리 집앞에 지어져도 크게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 같은 <strong>'그냥 집'<br></strong>평면은 작은 집 답게 알뜰하게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고 벽돌과 나무와 콘크리트의 사용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단정한 느낌이 있다. 통유리 창을 사용했음에도 현대적이기 보다는 편안한 느낌이다. 오래 집을 지어본 목수가 지어낸 집같다.<br><br>어릴때 그림을 그리면 스케치는 해놓고 색칠을 하는 걸 두려워 했다. 지금도 건축 그래픽을 만들때 색을 쓰는것을 어려워 한다. 그래서 무채색을 많이 쓰고 색을 많이 쓰지 않는다. 나는 건축가들이 열심히 도면을 짜서 설계를 해 놓고 마감은 적당히 노출콘크리트로 해놓은 듯한 건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특별히 그 회색의 감성을 좋아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재료를 선택하는 것 역시 수채화에 색을 고르는 것과 같이 신중함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은 적당히 생략하는 것 같아 아쉽다.<br>내손동 주택이 훌륭한 건축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꼼꼼하게 벽돌 하나하나를 세어가며 지은 집이 좋은 건축임에는 틀림없다. 이 집은 지금 한국 현대 주거에는 비어있는 어떤 지점에 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든다. 이 이상이 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이토록 이만큼.			 ]]> 
		</description>

		<comments>http://geranium.egloos.com/2471688#comments</comments>
		<pubDate>Sun, 23 Aug 2009 18:04:50 GMT</pubDate>
		<dc:creator>제라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한장면. ]]> </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2465333</link>
		<guid>http://geranium.egloos.com/2465333</guid>
		<description>
			<![CDATA[ 
  <p>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은 공효진이 가족의 탄생에서 극중 엄마(김혜경)가 죽고 난 뒤 혼자 방에서 우는 장면이다.&nbsp;힘들고 지칠때 그 장면을 보면 어쩐지 힘이 솓는다. 아직 나는 울때가 아닌가보다. 더 힘을 내야 겠다.</p>			 ]]> 
		</description>

		<comments>http://geranium.egloos.com/2465333#comments</comments>
		<pubDate>Sun, 16 Aug 2009 12:16:12 GMT</pubDate>
		<dc:creator>제라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근조. ]]> </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2388352</link>
		<guid>http://geranium.egloos.com/2388352</guid>
		<description>
			<![CDATA[ 
  근조.			 ]]> 
		</description>

		<comments>http://geranium.egloos.com/2388352#comments</comments>
		<pubDate>Sat, 23 May 2009 06:10:48 GMT</pubDate>
		<dc:creator>제라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집회 시위의 폭력에 대한 매커니즘. ]]> </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2381401</link>
		<guid>http://geranium.egloos.com/2381401</guid>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5/17/74/e0060574_4a0fbb96c2c64.jpg" width="500" height="30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5/17/74/e0060574_4a0fbb96c2c64.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905/17/74/e0060574_4a0fbbde8ea7e.jpg" width="500" height="31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905/17/74/e0060574_4a0fbbde8ea7e.jpg');" /></div><br>내가 의경생활을 했던 반은 노무현 정권의 말 1년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서 1년이었다.<br>노무현 정권때 집회시위에 폭력이 없었냐면 절대 그렇지 않다. 어차피 시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오히려 잠잠했던 폭력시위가 더욱 거세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몇년만에 화염병이 나왔고 평택시위에서는 죽창이 난무했다.<br>내가 주로 나갔었던 시위현장은 반 FTA 시위였는데, 비교적 나는 후반부에 속하기 때문에 그렇게 큰 폭력을 경험하진 못했다. 노무현때 내가 격었던 폭력시위 중 가장 강력했던 것은 10월의 농민집회였었는데, 경찰은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사전차단에 나섰고 시위자들은 사다리와 각종 무기를 준비해와 공성전을 방불케 했다. 그때 시위에서 경찰 한명이 돌에 맞아 실명당했다.<br><br>집회시위의 폭력의 매커니즘이란 사실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촛불집회에 폭력에 대한 원인이 경찰이나 시위대 어느 한쪽에 있다라고 하기보다 더더더더 뿌리깊은곳에 원인이 있는것 처럼 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2년동안의 의경생활을 토대로 생각한 집회 시위의 폭력에 대한 매커니즘은 이렇다.<br><br>먼저 정당한 방법의 작은 집회에 대한 얘기다. 1인 시위나 기자회견 회견같은 평화적이고 정당한 방법의 시위의 경우, 사실 경찰이 개입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해 관계에 얽히고 얽인 상황에서 경찰은 그런 정당한 방법을 방해하기 일수다. 물론, 경찰이 기자회견장에 가서 그 사람들은 전부 불법 연행할만큼의 권력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경찰은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꼼수를 써서 그들을 방해한다. 예를들면 1인시위자의 주위를 둘러 밖에서 시위자가 안보이게 한다든지. 기자회견하는 장소를 바꾸도록 유도한다든지 그렇다. 소규모의 시위의 경우에도 그렇다. 제일 많이 사용하는 핑계는 '허가되지' 않은 집회라는 것이고, 허용데시벨이라든가 그런것들이 있는데, 그런 핑계를 대는 경우도 많다.<br><br>물론, 소규모 시위의 대부분은 좀 쓸데없는 것들이 많다. 아마 서울에서 이뤄지는 소규모 시위의 80%는 땅값 보상문제일 것 같고, 선거철에는 진보정당의 시위가 많다. 어찌되었든간에 소규모 시위의 경우에는 경찰들이 '불법적이지는 않으나' 결코 정당하지 않은 꼼수들로 그들을 방해한다.<br><br>그런데, 시위의 규모가 크면, 상황이 역전된다. 촛불집회나 반FTA 처럼 도심전체가 시위로 가득 차지 않아도 세종로나 마로니에공원같은데서 시위를 한다고 해도 서울에 있는 전 경찰병력이 비상에 들어간다. 주도권이 경찰에서 시위대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br>언듯 생각하기에는 경찰이 무장도 하고 조직화되어있기 때문에 경찰이 더 우세하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집회가 어느정도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그 집회에 대한 통제력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악을 쓰고 촛불집회를 막아내려고 해도 그 촛불이 스스로 사그러들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유도 그렇고, 그 서슬퍼렇던 조선시대에도 민중집회가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조직화되어 있지않은 군중에 대한 통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br><br>그렇기 때문에 큰 규모의 집회에서는 경찰은 다른 태도로 임하게 된다. 집회 시위의 목적이란, 그들이 생각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소규모의 집회에서 경찰은 바로 그 의도를 침해하기 위해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큰 규모의 시위에서는 경찰은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한다. 큰 시위에서 경찰과 시위대간에 충돌이 일어나면 경찰은 아무것도 얻을것이 없다. 그 충돌의 과정이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이 대개는 경찰을 탓하는 기사들이 나갈 것이고, 충돌없이 해산되는 시위보다 더 중요하게 그 시위를 다루게 될 것이다.<br><br>그러므로, 대규모 시위에서 폭력은 시위대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방법보다도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시위를 알리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사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하더라도 폭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한낱 단신으로 밖에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폭력시위의 경우에는 전혀 상황이 달라진다. 그런 기회를 시위대는 놓치지 않고 폭력의 과정에 숭고하고 핍박받는 투쟁자의 이미지를 덧붙여 더욱 더 크게 포장한다.<br><br>예를들어, 어제 있었던 대전 시위를 생각해보자. 화물연대가 평화적으로 모여 깃발이나 흔들고 노래나 부르다가 해산했으면 사람들의 집회에 대해 가지는 관심은 지금의 반에 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죽창과 만장으로 무장하고 경찰들의 공격해서 경찰의 강제연행을 유도해낸다면 효과는 극대화 될 수 있다. 경찰에 반감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죽창과 만장보다는 경찰의 강제 연행에 더 주목할 것이고, 자신들의 유리한 사진들을 짜맞추어 배포하면 그야말로 '숭고한' 이미지는 형성되는 것이다.<br><br>촛불집회에 대해서도 보면, 초기에 촛불집회는 청계광장에서 비교적 평화적으로 시작되었다. 촛불집회가 시작되고 처음 일주일정도 동안은 직장이나 학교를 마치고 온 사람들이 청계광장에 모여 촛불을 드는 비교적 규모도 작고 평화적인 시위였다. 의경도 그때는 검정색 진압복을 입고 방패를 들고 서 있던 것이 아니라, 흰색 근무복에 맨손으로 주위에 배치되었을 뿐이었다. 그때 사진을 검색해 봐도 없어서 사진은 첨부하지 못하지만 내 2년간의 군생활을 걸고 이 사실을 보증한다. 어디에도 하이바를 쓰고 방패를 든 경찰들은 없었다.<br><br>그렇게 일주일정도 촛불집회를 계속 하던중에, 사건이 터졌다. 그간 서울에 있는 세개 중대 정도가 돌아가면서 촛불집회에 나갔었는데, 우리 중대 차례가 왔다. 애들이 걱정하길래, 어차피 근무복 입고 나가서 서있다가 오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했는데, 그때 마침 일이 터졌다. 집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누군가가 청와대로 나가자고 선동했고, 시위대들이 없다시피한 폴리스라인을 뚫고 세종로를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의경들이 섯불리 폭력을 사용했고,&nbsp;평화적이기만 했던 집회와는 달리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다.&nbsp;바로 여기부터가 모두가 알고 있는 촛불집회의 시작이다.<br><br>어쩐지 쓰고보니 촛불집회를 비하하거나 경찰을 옹호하는 것처럼 써지기는 했는데, 그런 의도가 아니라 이런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쨋든 경찰이 먼저 폭력을 사용했고, 그런 경찰에 폭력에 분노한 시민들이 그 이후부터 세종로를 뒤덮기 시작했다.<br><br>그래서 내 나머지 군생활의 1년여는 촛불집회와 같이 했었던것 같다. 나는 조금도 촛불집회의 의의를 훼손하고 싶지 않다. 분명히 촛불집회는 중요한 어떤 의미를 남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미와는 별개로 그 때 그 상황을 온몸으로 격어야 했던 한 사람으로써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되는 사건과 실제로 어느 현장에서 이뤄지는 사건으로서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숭고한 역사적 사건이 정말로 그렇게 숭고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br><br>처음 의경에 들어가서 얼마간이 지난 후에 운동하는 친구가 물어봤다. 그거 직접 격어보니깐 어떠냐고.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시위는 카드놀이 같은 거라고. 내가 의경에 들어가기 전에 생각하던 시위라는것은 끝에 몰린 사람들이 처절한 투쟁을 하는 숭고한 형태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간단한 것이다. 교사, 경찰, 의사, 법관 같은것들이 어렷을 적에 생각하는것처럼 숭고한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는 것처럼 시위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것들이 얽혀있고 더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존재한다. 예를들어 용산에서 철거민들의 대변인이었던 전철연은 동대문 철거때는 조합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풍물시장 상인들을 핍박하던 존재였다.<br><br>결국엔 집회시위도 하나의 게임이다. 언듯보면 아주 단순한 룰을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단순히 그 룰을 알고있다는 사실만으로 판에 끼어들어서는 아무것도 할&nbsp;수 없다. 경찰이든 시위대이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치밀한 계산을 해야하고 힘싸움을 해야한다. 그게 고작 20살 남짓한 눈으로 본 이 세계의 모습니다.<br><br>덧붙여, 집회시위의 매커니즘에 대해 말하면서, 대규모의 시위는 그 아무리 어떤 강력한 조직이라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사실, 촛불집회 중반부터 삽질을 하기 시작하더니 아주 기상천외한 짓들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집회시위를 아예 틀어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게 바로 그 이전과 다른 점이다. 내가 지금 의경이 아닌게 다행이다.			 ]]> 
		</description>

		<comments>http://geranium.egloos.com/2381401#comments</comments>
		<pubDate>Sun, 17 May 2009 07:24:26 GMT</pubDate>
		<dc:creator>제라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나이키의 가장 큰 라이벌은 아디다스인가? ]]> </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2339579</link>
		<guid>http://geranium.egloos.com/2339579</guid>
		<description>
			<![CDATA[ 
  <p>아니다. 닌텐도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더 이상 아이들은 농구공을 들고 농구를 하지 않으며 조던을 보고 열광하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아이들이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과 함께 노는 것을 즐긴다. 그들에게 필요한것은 하이테크놀러지가 집약된 운동화가 아니라 새로운 게임패드와 타이틀이다.<br><br>21세기는 그 전 세대들에게 어떤 새로운 국면이 될것이라 생각되었다. 이윽고 떠들석한 새 천년이 왔을때, 사람들은 많은것들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21세기인들은 우주개발과 로봇에 열광하지 않으며 <strong>노동자들은 여전히 컨베이너 벨트앞에서 분류작업을 하지만 집에 가는길에는 핸드폰으로 DMB 방송을 시청한다.</strong>&nbsp;손목시계로 텔레비젼을 보는 생활은 80년대의 공상과학만화에서 해저도시나 우주정거장들과 같이 생각되었던 일들이다.&nbsp;<strong>우리가&nbsp;날아다니는 자동차나 화성도시와 같이 상상하던 내용중 하나는&nbsp;지금 우리의 생활속에 있다.<br></strong><br>분명 21세기는 많은것이 달라져있다. 그것은 다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뿐, 완전히 다르다. 1.25Mb 2HD 디스켓과 DMB시청과 영상통화가 가능한 핸드폰 사이의 차이는 단순한 기술적 발전에 불과하다. 그러나 식당에서 설겆이 하는 아주머니가 유치원에간 딸과 화상통화를 하는것은 사회적 변혁이다.<br><br>다시, 나이키와 닌텐도이다. 건축은 무엇과 싸워 경쟁하여야 하나. <strong>그것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놀라운 공간들을 광섬유 안으로 구축하고 있다. 시민들은 시청앞 광장보다 네이버나 다음에 모여 토론하는 것을 즐기고 새로 오픈한 동대문의 대형소핑몰이 부도나는 동안 인터넷엔 엄청난 양의 쇼핑몰의 들어선다. 젊은이들은 강남역에 모여 노는것보다 인터넷에서 모여 노는것을 더 즐기고, 주말 음악방송이 있을때마다 방송국앞으로 길게 늘어서던 줄이 없어진 대신 유투브에는 최신 HD영상으로 직캠영상이 올라온다.<br></strong>이뿐만 아니다. <strong>DMB를 시청하는 보행자는 3.5인치의 LED화면만이 있을뿐 주변 환경에는 무관심하다.</strong> 주말 나드리객을 제외하고는&nbsp;사람들은 차선과 교통신호만이 인지되는 도로를 통해 도시를 산책하며 그마저도 DMB가 탑재된 네이베이션과 함께한다.<br><br>이는 분명히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건축의 도전이며 당면한 건축의 문제이다. <strong>동대문운동장에 자하하디드의 파격적인 건물이 들어서는 것보다 네이버의 메인화면이 달라지는 것이 더 큰 관심을 가지는 사회에서</strong> 건축가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 지는 명백하다.<br><br>나이키가 닌텐도를 라이벌로 인식한다면 나이키는 더 이상 공기저항계수나 FIFA를 새로운 룰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그 이전에 스포츠는 미래사회에 어떤 새로운 정의를 가질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건축가 역시 그래야 한다. 건축이 변화에 당면하는 것은 드믄일이 아니다.&nbsp;철, 철근콘크리트,&nbsp;유리 같은 새로운 재료는 마땅한 건축의 변화를 만들었고, 민주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들의 사회적 변화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건축을 만들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역시 이러한 건축의 변화를 또 한번 보여주게 될것이다.<br><br>미래의 건축은 그 자체로 하나의 홈페이지나 하드디스크가 될 수도 있을것이다. 엘레베이터에&nbsp;타면 우리는 각층의 번호가 정렬된 버튼 대신 인터넷 서핑을 하며 엘레베이터는 사용자가 클릭하는 화면의 공간으로 링크시켜 줄수 있을 수도 있다.&nbsp;집에&nbsp;들어가기 위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로그인 해야 할지도 모르고, 로그온한 사용자는 자주가는 장소들을 링크한 즐겨찾기를 이용할 수도 있다. 공간은 하드디스크와 같이 섹터화되어 각가의 클러스터에 방이 들어가고 조각난 공간들을 재조합하며 끝없이 공간을 창출하고 엑세스하며 분절적이면서도 통합적인 공간을 형성할 수도 있다.<br><br>그러나 인터넷이 건축가의 문제가 되는것이 곧 건축이 인터넷과 직접적인 연결을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 건축가들이 가장 많이 다루고 또 건축가가 가장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nbsp;건축중에 하나인 미술관은 그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왕족과 귀족의 저택 한쪽에 모여 있던 미술품들이 대중들에게 드러나기 까지, 그리고 그것들을 한데 모아서 전시한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형성되기 까지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형성의 엄청나게 긴 역사가 필요하다. 사회의 변화는 새로운 건축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건축가는 그것을 건축적으로 형성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이 공간을 잠식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그러한 대응이 필요하다.<br><br>말하자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문화공간들, <strong>공연장과 전시장, 카페와 레스토랑이 결합된 따분한 건축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PC방을 만드는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strong> 오히려 수많은 10대들이 PC방에 들끓고 햄버거가게가 없는 동네에도 PC방이 들어서 있는데 그것을 생각지 않는것이 이상하다.<br><br>새로운&nbsp;변화가 모든것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strong>인터넷이 기존의 건축 이론과 언어를 모두 바꾸게&nbsp;되지는 않을것이다.&nbsp;그러나 건축은 변화에 대해서 마땅한 대응을&nbsp;하게 될&nbsp;것이며 그것은 개인 건축가의 의지와는 무관하다.</strong> 1940년대의 어느날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페르미는&nbsp;우주에서 지적 생명체를 발견할 확률에 대한&nbsp;생각을 했다고 한다.&nbsp;우주에는 우리 은하계와&nbsp;같은 은하계가 숱하게 많이 있고 우리 은하계에는 1천억개의 별이 있으며&nbsp;그중 하나인 지구에서 단지 몇백년만에 은하계까지 활동반경을 넓히게 되었다면 그 많은 별들에서는 그 많은 시간동안 숱한 생명체들이 은하계에 퍼져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여태껏 지능을 가진 생명체를 만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것이 페르미의 역설이며 아직까지 해명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페르미의 역설에 현대의 한 과학자는 이런 가설을 제안했다. 외계인은 단지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있을뿐이라고.<br><br>문명이 어떤 단계에 이르며 그 문명을 발전하기를 포기하고 시뮬레이션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우주로 나아가는 일은 몹시 피곤한 일이다. 그보다는 컴퓨터를 파는것이 더 이익이며,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파는것은 더욱 좋다. 이것이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해저도시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영상통화와 DMB는 현실화를 넘어 일상화 된 이유이다. 앞으로도 사람들은 네이버를 통해 생활하고 다음을 통해 토론하며 싸이월드에서 표현하고 네이트에서 대화하며 유트부에 열광하고 베틀넷에서 즐길것이다. 이것이 더욱 편리하며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인터넷의 공간은&nbsp;계속해서 확장될 것이고 그 역할을 인터넷에 빼앗긴 공간들은&nbsp;힘을 잃어갈 것이다. <strong>거리에는 사람들이 점점 더 사라질 것이며&nbsp;사람들은&nbsp;문패와 간판 이외에는 어떤것이 바뀌어도 인지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br></strong><br>그러므로, 건축은 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다른 건축적 문제보다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개개인의 문제다.<strong> </strong>그러나 더 중요한것은, <strong>그렇게 생각하든 그렇지 생각하지않든, 그렇게 될것이라는 점이다.</strong></p>			 ]]> 
		</description>

		<comments>http://geranium.egloos.com/2339579#comments</comments>
		<pubDate>Sat, 04 Apr 2009 09:18:33 GMT</pubDate>
		<dc:creator>제라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나의 미움 ]]> </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2281316</link>
		<guid>http://geranium.egloos.com/2281316</guid>
		<description>
			<![CDATA[ 
  의경을 전역하고 얼마안되 용산 사건이 터졌다. 어찌된일인지, 나는 그 사건에 대해 깊히 알 수 가 없었다. 뉴스에서, 인터넷에서 그와 관련된 얘기를 듣고 있자면, 내 안에서 일렁이는 강한 미움때문이다. 이 정서는 그것이 내 신체에게 가하는 신경계를 변화를 참을 수 없을만큼 강하다. 마치, 잔혹한 영화의 한 장면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그에 관한 소식을 채 다 보지 못하고 외면했다.<br><br>아직까지도 그에 관한 소식을 접하는게 편치는 않다. 다만, 지나치게 많이 회자되고 있기에, 단편적으로나마 그에 관해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진정 무슨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얘기는 되도록이면, 되도록이면 꺼리고 있다.<br><br>굳이,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경찰과 관련된, 특히 집회시위에 관련된 소식을 접하면, 나는 역시 어떤 미움에 사로잡힌다. 이전에는 없던 이 미움. 언제부터 내 안에 자리잡았는지는 몰라도, 마치 자율신경계의 하나처럼 나를 감싸고 있다.<br><br>내가 의경에 갈때에,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했다. 서울 시내에서는 그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로 하루에도 정말 많은 일들이 지나가고, 나는 그것을 통째로 경험해야 했다. 의경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 일일히 해석하고 내 안에&nbsp;구성되 있던 기존의 범주에 맞춰 범주화하기에 벅찬 일들. 그러는 동안에 촛불집회가 시작되고 나는 더욱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br><br>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의경에게 폭력을 지시하거나 그들을 세뇌하는 사람은 없다. 대체로 경찰 조직은 바쁘기가 그지없어서 따로 의경을 관리하는 체계적인 조직이 없다시피하다. 그나마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사람이래봐야 담당 중대장, 소대장, 부관에 불과한데, 어차피 이들은 지구대라던지 교통계라든지 각자 담당분야에서 일하다가 잠시 1년간 이곳에 있다랄뿐 의경자체에&nbsp;특별한 관심이 있지 않다. 이들이 경찰 조직 자체에 강한 충성심같은것을 가지고 있을리는 만무하고, 더욱이 의경들에게 하는 소리래봐야 청소따위의 잔소리일뿐 다들 먹기살기에 바쁜 아저씨들에 불과하다. 의경이 다른 군인들에게 욕먹을 정도로 쳐빠진 이유 역시 딱히 신경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경들은 대부분 시위대들을 미워한다. 아무도 그들에게 미움을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미움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쌓인다. 나&nbsp;역시&nbsp;어떤 방식이든 옳지 않은 것을 믿지 않기로, 그것이 나에게 어떤 방식의 결과를 주는지에 상관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하기를 노력했지만, 발가락 한 구석에 티눈이 잡히든 마음 한구석에 미움이 쌓였다.<br><br>의경생활을 하면서 보게되는 것은 모두 '단면'과 같다. 마치, 우리가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만, 의사들은 그 살갖 아래의 단면을 보는 것처럼, 항상 그들이 보게되는것은 벌어진 틈사이의 단면들, 그들과 맞닫아 있는 잘려진 단면들이다. 어떤사람들에게 촛불집회는 이념이며 행동이지만 의경들은 그들에게 맞닫아진 단면만을 본다. 잘려나간 손가락의 단면처럼 혈관과 신경과 뼈마디가 엉켜있는 그 단면은 밖에서 보는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 단면은 '본질'은 아니지언정 '현실'이 아닐리 없다.<br><br>용산사건과 관련해서, 경찰이 잘했다고 옹호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경찰은 스스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고 정부는 한 술 더떠가면 삽질을 계속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꼬라진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전철연인지 철거민인지 알 수 없는 그들 역시 미워한다. 그들이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을지언정 '사람에게' 돌을 던지든 새총을 쏘든 화염병을 던지든, '그래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그들을 좋아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가 그 반대편에 서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br><br>이런 내가 좀 편협한 건지 모르겠다. 알지못하는 사이에 난 말이 안통하는 수구꼴통이 된건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핏대를 세울때,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거아냐? 라고 말하면 경찰에 세뇌당했다는 손가락질을 받는 나는<br>정말로 세뇌당해서 그래도 상관없는 일을 '그러면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나의 이념,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보수적인 사람이 된건지 모르겠다.<br><br>이 말이 비꼬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다. 난 요즘 내가 잘못되어진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의경이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방향으로 내가 만들어져 버리진 않았을까 하고. 나는 내 안에&nbsp;그 미움이 두렵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일들이 나에게 벌어졌을때 만들어진 이 미움.&nbsp;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미움. 그래서 나는 이 미움을 몰래 감춰두고 있다. 꽁꽁 숨겨두고 있다.			 ]]> 
		</description>

		<comments>http://geranium.egloos.com/2281316#comments</comments>
		<pubDate>Fri, 06 Feb 2009 16:42:47 GMT</pubDate>
		<dc:creator>제라늄</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인권은 있다. ]]> </title>
		<link>http://geranium.egloos.com/2275100</link>
		<guid>http://geranium.egloos.com/2275100</guid>
		<description>
			<![CDATA[ 
  <a title="" href="http://mirjey.egloos.com/2219695">인권은 있다</a><br><br>인권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가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진화론 이후, 원숭이의 후손이 된 우리는 어떤 특권적 지위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strong>도덕, 선, 천부인권 등은 그 이전 세대들이 생각했던 것 처럼 우리에게 부여된 지위가 아니었고,</strong> 대신 우리는 심리학, 인지체계, DNA 를 가진 생물학적 존재가 되었다.<br><br>그럼,&nbsp;어째서 사람을 죽여서는 안되는가. 아니면 어째서 사람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가. 왜, 사람은 가끔 사람을 죽이는가. 어떤 경우에 많은 사람들은 적은 사람들을 죽이는가. 이 숱한 질문에 분명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궁국적으로 종교적으로 설명하지 않는한. 현대의 사람들은 이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br><br>이런&nbsp;이유로 현대인들은 구원이 없다. 진화론 따위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모든 현대인들은 이 영향권 안에 있다.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에 가서&nbsp;배를 찟고 장기를 자르고 오리고 붙이면 치료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본적도 없는 지구가 둥굴다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강철로 된 비행기가&nbsp;어젯밤의 뉴욕으로 날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때문에 이들은 마땅한 부조리를 느끼며 잡히지 않는 구원을 향해 허우적 댄다.<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strong>우리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권'따위를 들먹이는 것은, 우리가 그 '인권'의 정체가 무엇인지 설명해 낼 수는 없지만, 분명히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strong> 그것이 어떤 진화론적인 이유이든, 종교적인 이유이든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이라는 동종에게 가지는 특별한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br><br>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파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br><br>인권이란, 단순히 인간이 가지는 권리라는 사전적인 의미에 머무르지 않는다. 권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권리에 따르는 의무라던가 기준 따위를 들먹이게 된다. 그렇지만, 인권에 그런것을 따지면서 재기시작하면 우리는 기댈곳이 없다. <strong>도덕, 선, 법칙들은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것들은 쉽게 흔들리는 것이기 때문에.</strong> 그런것과 비교해가면 인권들 써먹기 시작하면, 우리의 마지막 가치의 인권마저 흔들리게 된다.<br>&nbsp;<br>나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규칙, 도덕, 법률, 선, 가치 등을 파괴하던 것처럼, 그것들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에게 어떤 진정한 믿음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인권'마저 손에서 놓게 될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잃고만다. 마치, '중력'처럼 우리는 우리의 끈을 잃고 끝없이 나락으로 빠져들어 간다.<br><br>'필요'에 의해서 '인권'을 침해할때, 우리는 우리 존재의 가치마저 잃고 스스로 파괴되어 갈 것이다. 범죄자에게 인권이 있느냐고? 당연히 있다. <strong>그들에게 인권을 빼앗아 갈때, 우리의 인권마저 흝어져 버린다.</strong> 그들에게서 어떤 합당한 이유를 들어서 인권을 빼앗아 갈때, <strong>우리의 인권마저 '합당한 이유'에 의해 빼앗기게 될 것이다.</strong><br><br>범죄자가 범죄자이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공개하고 실명을 공개하고 사형에 처한다면, 마찬가지로 합당한 이유에 의해 우리들의 얼굴과 실명이 공개되고 사형에 쳐해지게 될것이다.<br><br>예를들어, 집회시위에 있어서 야간에 집회를 금지하는것, 경찰에게 폭력을 사용하는것, 이와 관련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것 등은 '불합리한' 이유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그동안에 그것을 묵인해 왔기에 이런 결과가 벌어졌다. 절도범이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것과 시위대가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동가의 의미를 가진다. '절도범은 나쁘고 시위대는 정당하기 때문에' 폭력이 묵인되도 된다라는 기준은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악플을 다는 사람의 신원정보를 조회하는 것을 막지 못했기때문에, 촛불집회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들이 잡혀갔고 미네르바가 구속됬다. 동내의 치안을 위해 서로 설치하려고 했던&nbsp;cctv 덕분에, 시위대들은 불법 채증을 당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시작될때, <strong>'인권'이라는 저항이 있었지만, 모두들 '필요'에 의해 그것을 무시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strong> 언젠가는, 단순히&nbsp;채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에 얼굴과 실명이 공개되는 일이 벌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겐 '매우 필요하며' '위협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br><br>살인자를 죽여도 된다고? 살인자에겐 인권을 부여할 수 없다고? <strong>그렇다면 당신앞에 어떤 사람을 죽인 사람이 눈앞에 놓여진다면, 과연 아무 망설임없이 횟칼로 그의 배를 쑤시고 창자를 꺼내어 환호할 수 있을까?</strong> 만일, 그런일을 행했을때, 여전히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당신이 그것을 꺼리는 그 본질적인 느낌. 그것이 인권이다.<br><br>그러므로, 인권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nbsp;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권리다. 또한, 인권은 우리의 미래다. 인권이 없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그런 미치광이들이 살아 날뛰는 것은 우리가 인권따윈 대충대충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strong>만일 우리가 '살인자 따윈 죽여버려도 되'가 아니라 '살인자라도 죽여서는 안되'라는 사회에 살고 있었다면 적어도 그런 미치광이가 하나나 둘정도는&nbsp;덜 만들어졌을 것이다.</strong> '살인자라도 인간이기 때문의 그의 고유한 권리를 지켜줘야되'라는 사회였다면 그런 미치광이는 아예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폭력경찰과 정신나간 정치인들이 날뛰는 모습을 보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 
		</description>

		<comments>http://geranium.egloos.com/2275100#comments</comments>
		<pubDate>Sun, 01 Feb 2009 11:07:35 GMT</pubDate>
		<dc:creator>제라늄</dc:creator>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