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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밀림 속 호랑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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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매력적인 생활의 방식</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02 Aug 2009 06:36:0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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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밀림 속 호랑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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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매력적인 생활의 방식</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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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충녀(蟲女)>를 보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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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pan style="color:#000000;"><충녀>를 드디어 봤다. 영화를 보고 바로 잠이 들었는데 기묘한 꿈을 꾸었다.<br />
<br />
09.08.01~09.08.02의 꿈<br />
<br />
     '나는 영화감독 지망생이다. <이어도>에서 본 듯한 피름 카메라를 손에 꼭 쥐고 있다. 내가 있는 영화사에는 내 위로 선배 감독들이 두 분 더 계신다. 선배 감독들의 얼굴은 불분명하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느낌이다.<br />
<br />
     갑자기, 갓난쟁이 여자 아이가 등장한다. 냉장고에서 등장하지는 않았다. 태어난 지 몇달 안되어, 갓 앞니가 몇 개 나기 시작한 아이다. 그 아가가 입을 연다. 선배 감독 중 한 명에게 결혼 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다.<br />
<br />
     그 선배 감독은 나에게, 그 갓난쟁이를 배우로 삼아 영화를 찍어 오라고 명한다. 필요한 필름을 모두 제공하겠다는 조건 및 잘되면 입봉시켜주겠다는 조건으로.<br />
<br />
     나는 그 아이의 명을 받아, 이어도와 비슷한 광경이 느껴지는 어느 산으로 향한다. <br />
    ..... 이후의 꿈-내용이 불분명하다   ......<br />
    아가가 소시의 태연으로 변해있다. '<br />
<br />
꿈에 대한 덧.<br />
   나는 소시의 팬이 아니다. 그러나 태연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저렇게 쾌활한 사람이랑 있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없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br />
<br />
<br />
x                     x                        x               x                 x                 x<br />
<br />
     오승욱 감독이 말하는 "날 것의 인간"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이 말은 내가 그동안 영화를 보고 나서 좋다고 여겨지는 점들을 참 압축적으로 전달해주기 때문이다(오승욱의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점은 이 때문인가?).<br />
<br />
     그리고 "날 것의 인간들이 보여주는 향연"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는 김기영과 정일성이 합작한 영화들이다. 그 중에서도 김기영의 흑백 영화보다는 컬러 영화!<br />
<br />
     '여왕벌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김영진 평론가는 김기영의 영화들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것들과 비교한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김 감독님의 컬러 영화들을 '스즈키 세이쥰'의 영화와 닮았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스 선생님의 매춘부 시리즈들과.<br />
<br />
     두 영화에 나오는 원색 창연한 색감들은, 하나도 세련되지 않다. 그렇지만 끈적끈적한 느낌이다. 원시부족 사회의 동굴에 들어간다거나 ㅡ그것도 주술이 행해지고 있는ㅡ, 두 남녀가 한 방에 한 달 이상 갇혀 있을 때 생겨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끈적끈적함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회 속의 인간이라면 느끼지 않을 소재에 대한 집착적 공포, 도덕의 외투를 벗어버린 인간의 자연, 감정에 지배당하고 두려움에 벌벌 떠는 나약한 인간이 있다.<br />
<br />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그러한 인간의 종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알게된다.</span>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omments>http://forveritas.egloos.com/2408378#comments</comments>
		<pubDate>Sun, 02 Aug 2009 06:35:52 GMT</pubDate>
		<dc:creator>김탁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인간이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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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pan style="COLOR: #000000">대부분의 시간을 근심속에서 살다가 약간의 행복을 느끼면 매우 기뻐하는 존재</span>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omments>http://forveritas.egloos.com/2367971#comments</comments>
		<pubDate>Mon, 08 Jun 2009 19:28:15 GMT</pubDate>
		<dc:creator>김탁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클루트(Klute)> (알란 J. 파큘라, 1971) - 줄단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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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pan style="COLOR: #000000">&nbsp;&nbsp;&nbsp;&nbsp; 관객이 보기에 신경에 거슬리는 장면들, 그러니까 '저거 꼭 누가 쳐다 보고 있는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드는 쇼트들이, 그것이 진짜 제3자가 쳐다보고 말고랑 관계없이, 영화 속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br>&nbsp;<br>&nbsp;&nbsp;&nbsp;&nbsp; 카메라가 찍고 있는 공간을, 인물이 둥그렇게 돌아서 결국 등으로 카메라를 가리면 무척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영화.<br><br>&nbsp;&nbsp;&nbsp; 배우가 되고 싶은 수많은 배우지망생들의 인격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br><br>&nbsp;&nbsp;&nbsp; <br>&lt;프렌치 커넥션&gt;에서 뽀빠이 상대역으로 나왔던 배우는 조연이지만 인상적임.</span>			 ]]> 
		</description>
		<category>영화</category>

		<comments>http://forveritas.egloos.com/2367636#comments</comments>
		<pubDate>Mon, 08 Jun 2009 11:43:11 GMT</pubDate>
		<dc:creator>김탁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시국선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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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span style="COLOR: #000000">&nbsp;&nbsp;&nbsp;&nbsp; 서울대 교수 124명의 이름으로 제창된&nbsp;시국선언. 정말 멋졌다. 아무리 권위있는 사람의 말이라고 할지라도, 너무나 자주있는 일이라면 식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면에서 국가에 정말로 중대한 위기가 찾아올 때에 한 목소리를&nbsp;내 주신, 교수님들의&nbsp;시국선언은 같은 얘기라도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랐다.<br><br>&nbsp;&nbsp;&nbsp;&nbsp; 엘리트. 사회에는 두 가지 엘리트가&nbsp;존재한다.&nbsp;원래의&nbsp;엘리트라는 용어는 원래 수도원에서 비롯된 말이다. 수도원에서 종교와 관련된 지식을 박학하게 갖춘 사람들을 엘리트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를 계승한 것으로서의 엘리트는 오늘날에도 "전문기술자" 내지는 "국가의 핵심 브레인"으로 전승되고 있다. 반면 다른 의미의 엘리트는 근대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드레퓌스'사건을 통하여&nbsp;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국가에 대하여 비판을 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엘리트가 새로 태어난 것이다. <br><br>&nbsp;&nbsp;&nbsp;&nbsp; 요새와 같은 시국에서는 비판의 기능을 하는 엘리트가 너무나도 절실하다. 벌써 많은 대학의 학우, 교수들이 움직이고 있다. 민주주의 후퇴를 지적하고 있다. 광장에서 삼삼오오 아니 모이지 않더라도,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집시법 위반"이라며 잡아들이는, 민주주의를 주장하지만 모순된 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병리적 현상에 대해서, 그것이 병이라고 진단하고 있다.<br><br>&nbsp;&nbsp;&nbsp;&nbsp; 정작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이 말이 들리기나&nbsp;하고 있는&nbsp;것일까?</span></p>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omments>http://forveritas.egloos.com/2363877#comments</comments>
		<pubDate>Wed, 03 Jun 2009 12:01:47 GMT</pubDate>
		<dc:creator>김탁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남의 고통을 통해 나의 행복을 느끼지 말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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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pan style="COLOR: #000000">&nbsp;&nbsp;&nbsp;&nbsp; 정말 부정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고통이 있어야 행복을 알게된다"는 말. 내가 켸켸묵은 이 논쟁거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경우는,&nbsp;요즘들어 내 주위에 이 말을 가지고 자기 삶을 합리화하며 그나마 만족할만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요근래&nbsp;우리의 삶은 말도 안되는 '자위행위'를 하지 않으면 살기가 힘든 것이 되어버리고 만것일까?<br>&nbsp;&nbsp;&nbsp;&nbsp;&nbsp;<br><br>&nbsp;&nbsp;&nbsp;&nbsp;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이러저러한 끔찍하게 가난한 사람들을 보라." 혹은 "저 사람을 보니까 내 삶은 살만하네."하는 말들을 가지고 자신의 삶은 그럭저럭 살만한 것으로 여기는 자위행위.&nbsp;&nbsp;말 그대로&nbsp;"삶이 고단한자여, 나보다 더&nbsp;낮은 자를 보라"이다. 이것은 자신의 삶이 결핍되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nbsp;이와 같은 말을 하는 순간, 비교 대상이 되었던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건가? 그러니까, "저 사람"의 삶, 신문이나 뉴스, 인간극장에 등장하는 "끔찍한 삶"을 살아가는 삶을 송두리째 부정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사실을 보면 그 사람도 우리랑 똑같이 살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한테ㅡ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ㅡ, "당신 때문에 나도 살 용기를 얻네요"라는 말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 만약,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는다면, 최소한 나같은 경우는 죽고싶은 자괴감. 인간으로서의 마/모멸감이 들어버릴 것이다. 자살로 치닫을 수도 있다. 또, 그렇게 말하는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는 비교대상일 뿐이라고 생각해보라. 인간적인 치욕감이 들지 않나?<br><br><br>&nbsp;&nbsp;&nbsp;&nbsp; 이러한 '자위행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상태에만 있는다면 행복의 참된 의미를 모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르면 또 어떤가?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당신의 고통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일깨워준다는 점만으로도 소중한 것입니다/신의 은총입니다."라는 식으로 말해서,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는 것이 살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행복의 참된 의미를 몰라도 좋다. 그저 고통이 없으면 좋겠다. 나의 고통이든 남의 고통이든, 끔찍한 고통을 보고 있기란 너무 힘들다. 또한, 최고로 완벽한 상태는 결핍이 없는 상태라는 격언을 따른다고 할때, 최선의 행복은 그것이 행복한건지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br><br><br>&nbsp;&nbsp;&nbsp;&nbsp; 나의 바램을 두고서 어떤 사람들은 생물학적 반증들을 제시한다. "미꾸라지들을 봐라. 미꾸라지들만 수조 속에 넣어놓으면 생명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그들의 천적을 함께 넣어둔다면 미꾸라지들을 훨씬 더 건강하고 오래살게된다." 적당한 긴장, 적당한 고통은 삶에 긴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뭣 때문에, 그런 맹목적인 건강, 맹목적인 삶의 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위대한 선현들은 삶을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다. 삶이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맹목적으로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부르주아의 배부른 허영에서 비롯된 망발이 아닐까? 모두가&nbsp;행복에 겨워 행복이 뭔지 모르고 살더라도, 안일하고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더라도 좋다. 아니, 단 한번만이라도 그렇게 살아볼 수는 없을까? 그리고 행복에 겨워 행복이 뭔지 모르고 사는&nbsp;세계에서 꼭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란 법도 없지 않은가?&nbsp;뭔가&nbsp;상향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세계가 올 수 있지는 않을까? 행복이 결핍된 느낌은 없지만, "이걸 하면 더 좋겠다"하는 생각은 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뭔가 창조적인 일을 모두가 하는 사회가 될 수 있지&nbsp;않을까?&nbsp;어쩌면 게으르고 나태함 속에서,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산될 수 있지 않을까?<br><br><br>&nbsp;&nbsp;&nbsp;&nbsp; 어떻게 될지는 전적으로 까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nbsp;그러나, 학점 때문에 빌빌대는 나의 친구들. 뭣때문인지도 모른체 열심히 공부하는 초.중.고 학생들. 통장 잔고를 불리기 위해 열심히 회사에 나가는 지인들. 미국 역시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소리치는 오바마. 이런 사례들을 보면, 차라리 행복에 겨워 행복이 뭔지도 모른채 사는 게 차악은 될 것같다. 우리가 대체 언제부터 적당한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살게되었는가?&nbsp;우리에게&nbsp;최선의 가치는&nbsp;재산의&nbsp;규모가 되어버렸다. 황폐한&nbsp;"재산&nbsp;규모-잣대"를 어떻게 하면 뒤짚어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통을 통해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겨워 행복 역시 잊어버리게 되는 것일까?<br><br>&nbsp;<br>&nbsp;&nbsp;&nbsp;&nbsp; 그러나 해체주의에 경도되어 허무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해체주의의 완성은 자신의 가치 체계를 완성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목적론에 빠지지 않고도 "자신의 성"을 쌓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또 목적론이면 또 어떻나? 자기가 규칙을 부여하고, 또 그것이 만인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그런 목적론은 최악은 아니다. 지금보다는 낫다. 일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악을 피해 차악으로 나가는 것이 아닐까?<br><br><br>&nbsp;&nbsp;&nbsp;&nbsp; 남의 삶을 짓밟을 때라야 만이 자신의 행복을 깨닫을 수밖에 없는 시대,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행복만이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 사는 것이 유감이지만, 어쩌겠나. 그래도 사는 게 이기는 거다. 그래도 슬픔에 겨워서 남긴다.<br><br><br></span>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omments>http://forveritas.egloos.com/2363026#comments</comments>
		<pubDate>Tue, 02 Jun 2009 11:57:37 GMT</pubDate>
		<dc:creator>김탁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암살단(The Parallax View)>(알란 J. 파큘라, 1974) 잡담 ]]> </title>
		<link>http://forveritas.egloos.com/236251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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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pan style="COLOR: #000000">&nbsp;&nbsp;&nbsp;&nbsp; 알란 J 파큘라의 작품을 연달아 두편보고 이제 &lt;클루트&gt;를 볼 차례인데, 이거 영 기대보다 섭섭하다. 그럼에도 물론 좋은 장면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싫다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 장면 얻었으면 됐지. 특히, 두번째 상원의원이 암살되고 나서 롱 쇼트로 보여지는, 암살된 상원의원이 죽은 채로 페달을 밟고 있기 때문에 그가 탄 차가 원을 그리며 탁자를 밀치며 전진하는 장면은 꽤나 좋았다. 확실히 쇼트 크기가 바뀔 때는 얻어지는 감정 창출의 질이란..! <br><br>&nbsp;&nbsp;&nbsp; 그러나 "편집증적"인 음모영화에서 기대했던 그런 주인공의 심리상태는 그닥 얻어지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웠다. 나 역시 어떤 상황에 처한 인물의 심리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영화가 좋은 것인가? 이제 무엇을 찍을지만 정해진다면, 그 어떻게는 인물의 심리가 생생하게! 로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기도 하다.<br><br>&nbsp;&nbsp;&nbsp; 같은 감독의 이후의 작품인 &lt;대통령의 음모&gt; 보다는 훨씬 비관적이고, 풋풋한 맛이 있는 영화였다. 어둠속에서 드러나는 패럴랙스 사의 악당의 모습이란.. 난 왜이렇게 누아르의 암흑에서 쑤욱 튀어나오는 악당들이 무서우면서 끌리는 걸까.? 존재만으로도 말이다.</span>			 ]]> 
		</description>
		<category>영화</category>

		<comments>http://forveritas.egloos.com/2362513#comments</comments>
		<pubDate>Mon, 01 Jun 2009 17:20:49 GMT</pubDate>
		<dc:creator>김탁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대통령의 음모>,<뜨거운 오후>,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잡담 ]]> </title>
		<link>http://forveritas.egloos.com/236163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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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pan style="COLOR: #000000">&nbsp;&nbsp;&nbsp;&nbsp; "일상의 이해되지 않는 파편들이 결국 거대한 진실로 이루어진다"라는 것이 음모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면에서 &lt;지구를 지켜라&gt;는 최고의 음모영화가 아니였을까? 음모이론을 통해 음모를 제기한다는??<br><br><br>&nbsp;&nbsp;&nbsp;&nbsp;&lt;뜨거운 오후 Dog Day Afternoon&gt;(1975, 시드니 루멧), &lt;대통령의 음모 All the President's Men&gt;(1976, 알란 J 파큘라)ㅡ직역하자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이 될 것이다ㅡ두 작품은 모두 일상에서 소재를 가져오고, 그것은 어떤 은유도 하지 않고 정말 리얼하게 찍은 것이다. 소재를 변형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나는 그저 "범작이네"하는 감상밖에는 얻지 못했다.&nbsp;아마 사실에서 시작한 영화이기에, 플롯을 이른바 "기승전결"식으로 마음대로 배치하지 못했고, 내가 너무 기대한 탓이리라. 그건 그렇고 어쨌든 나는 이들 영화들이&nbsp;쇼트크기를 쓰는 것에서 있어서 꽤나&nbsp;절제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좋은 장면들 많았다.&nbsp;&lt;대통령의 음모&gt;에서 부감으로 찍히는 도서관 장면. 그리고 어떻게 찍은 것인지는 모르나, 영사막의 사선 방향으로 맞는 포커스를 통해, 켜진 티비와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집념있게 일하는 두 주인공을 잡아내는 장면은 정말 좋았다. 그리고, &lt;뜨거운 오후&gt;에서 보여지는 &lt;프렌치 커넥션&gt; 的인&nbsp;딥 포커스 사용은 매우 좋았다. &lt;프렌치 커넥션&gt;은 그러한 시선을 통해서, 뽀빠이가 잡으려고 하는 악당 녀석들에게 관객 역시 집중하게 하고,&nbsp;"이 자식들 도망가면 안되는데?"하는 생각을 품게하지만, &lt;뜨거운 오후&gt;에서는 "알 파치노와 존 카잘이 경찰들에게 완전히 포위당했구나" 하는&nbsp;생각이 들게 만들다는&nbsp;점에서&nbsp;딥포커스 이용이 매우&nbsp;달랐던 것 같다(근데 지금 생각하니.. 딥 포커스 맞았나?&nbsp;몽타주 시퀀스를 내가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nbsp;그러나 그럼에도&nbsp;쇼트 크기나 카메라 워크가 매우 절제되어 있기 때문에&nbsp;관객의&nbsp;몰입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nbsp;그런면에서 같은 감독의 &lt;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gt;(시드니 루멧, 2007)는 &lt;뜨거운 오후&gt;보다는 훨씬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는 작품인 것 같았다.&nbsp;포커스 이동을 통해서,&nbsp;"지금 당신은 이 사람에게 주목을 해야 하는 겁니다"하고 제시해주는... 예전에는 이런 것이 인위적이라고 느꼈는데, 관객의 반응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소중한&nbsp;연출이지 않나 싶다. 실제 우리도&nbsp;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할 때 시선이 이동하지&nbsp;않는가. 포커스 이동은&nbsp;우리의 시선이 뇌에 현상된 것을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시선 이동을 보여주는 것일 테다. 그러나&nbsp;어쨌든 시드니 루멧 감독의 작품 두 편은 무척이나 절제한다는 인상이었다.&nbsp;이러한 절제는 배우의 연기를 존경해주고 그들에게서&nbsp;많은 것을 끌어냈다는 점(에단 호크가 연기를 하고 있구나라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에서는 매우 효과적이기도 하다.<br><br><br>&nbsp;&nbsp;&nbsp;&nbsp; &lt;뜨거운 오후&gt;의 알 파치노 역시&nbsp;정말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반영웅적인 영웅(=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보고 난다음에 그 사실을 알게되니 뭔가 지적으로 고무된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영화를 볼 때 솔직히 조금은 지루했다. 알파치노가 존 카잘을 책임지고, 나머지 은행직원들을 책임지고, 가정에서도 책임을 져야 했고, 새 부인의 삶도 책임질 수밖에 없었음을.. 그런 인간의 상황이라면 얼마나 목이 조여왔는지를 좀 더 감정적으로 치밀하게 보여줄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알 파치노가 과거의 삶 속에서 얼마나 시달렸을 지는 그의 첫번째 여성 부인이나, 두번째 남성부인과 통화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났다.&nbsp;특히 첫 번째 부인한테 전화했을 때는 "씨발 나라도 저런 상황에서는 못 살았겠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 부인의 목소리.. 그러면서 자신의 뚱보라고 비하하는 부인.. 그 상황에서 알 파치노는 숨도 못 쉬었을 것이다. 두 번째 부인과의 통화도&nbsp;훌륭한&nbsp;연출이었다.&nbsp;첫 번째&nbsp;통화를 통해서는 그가 시달렸음이 들어났다면, 두번째 통화에서는&nbsp;그런 상황에서 그는 뭔가 "책임지려 하는 가부장"이었다는 점이&nbsp;잘 드러났다.<br><br>&nbsp;<br>&nbsp;&nbsp;&nbsp;&nbsp; 그러고 보니 &lt;뜨거운 오후&gt;나 &lt;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gt;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주인공들은 아주 소시민이다. 그리고 나름의 사정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nbsp;현재의 일상적인 일상을 뒤흔든다. 일상이 도저히 따분하거나, 일상에서 벗어나야만 한 것이다. 책임질 것들이 많다. &lt;악마가...&gt;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맡은 배역이나 에단 호크가&nbsp;맡은 배역들이 특히 그랬다. 그리고&nbsp;이 두인물들이&nbsp;일상에서 얻어지는 스트레스들에서 대단히 버거워했다는 것은 각본에서 잘 드러난다.&nbsp;<br><br><br>&nbsp;&nbsp;&nbsp;&nbsp; 어쨌든, 김성욱 평론가가 한 말을 빌리자면 음모영화의 미덕은 권력을 가시화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지독하게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작업과 같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lt;대통령..&gt;이든 &lt;뜨거운 오후&gt;든 이런 소재로 히치콕이라면 좀더 인간의 강박증적 요소를 좀 더&nbsp;미칠듯이 묘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 내지 궁금증이 들었다. 어쨌든 이 두편을 통해서 나는 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는 우리에게 일종의 "반성"을 하게 한다는 의미를 다시한번 '재확인'했다. 그러나 단순히 '재확인'할 것이라면,&nbsp;나는 그런 영화는 찍고 싶지는 않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30년전쯤의 미국 영화를 통해 왜 나는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 얻어지는 갑갑함을 풀어내게 되는 것일까?<br><br>&nbsp;<br><br>덧<br><br>1.어떤 일의 정도가 100이다. 그런데 그 100을 사람들에게 알게하기 위해서는 200 쯤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확실히&nbsp;자기 머리 속에 있는&nbsp;생각을 적절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수단 역시 중요하다.<br><br>&nbsp;&nbsp;&nbsp;&nbsp;&nbsp;<br>2. 그나저나 이거 완전 두서없는 불평이 되어버렸구나. 그러나 좋은 장면들 아주 많았고 그런 점에서 불평하려고 했던 거는 아니다. 그저 어디까지나 앞으로 어떻게 찍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띠는 것일 뿐이다. 이만한 거 찍고 죽으면 아주 영광이지 뭐.<br></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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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영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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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31 May 2009 16:37:40 GMT</pubDate>
		<dc:creator>김탁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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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육체의 문>(1964, 스즈키세이준) - 단상/소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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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000000">&lt;육체의 문(肉體の門)&gt;(1964, 스즈키 세이준).<br>&nbsp;<br>&nbsp;&nbsp;&nbsp; &nbsp;니카츠 영화사가 만들어낸 독보적이고 괴물같은 스즈키 세이준. 그의 육체 삼부작의 첫번째 작품. &lt;문신일대&gt;나 &lt;우리들의 피가 허락치 않는다&gt;, &lt;파이팅 엘레지&gt;를 보고 그의 영화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는 55번째 작품을 만들고 있는 1923년생의 어르신이시니까. <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5/15/22/e0013922_4a0c535715f7c.jpg" width="500" height="282.18210361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5/15/22/e0013922_4a0c535715f7c.jpg');" /></div>&nbsp;&nbsp;&nbsp;&nbsp; 그럼에도 앞서 보았던 작품들을 통해, 그에게 완전히 매료되어버렸다. '극의 흐름에서 중요한 순간, 등장 인물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는 모든 영화 연출가들의 고민일터이다. 이 점에서 그는 너무도 탁월한 것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과 같이 수공예적인 느낌의&nbsp;세세함은 아니고, &lt;피를 부르리다(There will be blood)&gt;와 같이 현실감 넘치는&nbsp;느낌은 아니다.&nbsp;그는 등장 인물의 감정을 밑도 끝도없이 보여줘버린다. 온갖 색채와 자연물의 상태를 동원하여 친절하게 전달할 때가 있는 가하면, 때로는 관객은 따라갈 수도 없는 생짜의 감정 그대로를 말이다. 내게&nbsp;그의 이러한&nbsp;표현은, 처음에 받아들일 때는 "이게 뭐야?" 싶었지만, 두고두고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이었다.<br><br><br>&nbsp;&nbsp;&nbsp;&nbsp; 그리고 그의 영화를 보고나서 재차 충격을 받는 때는, 그의 영화의 스토리를 압축해놓고 보면 너무나도 "통속적"인데─정말 스토리 압축한 걸로는 도무지 보고싶지가 않다─, 이런 "통속적"인걸 봤는데 내가 정말 좋았구나 하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lt;육체의 문&gt; 역시 그렇다. '전후&nbsp;일본의 도쿄,&nbsp;암시장과 매춘부' 이게 스토리의 전부다. 그런데 그것을 담아낸&nbsp;결과물을 보면, 그 순간순간들을 보면 정말 범상치가 않은 것이다(게다가 10일의 프리프로덕션 기간, 25일의 촬영기간, 3일의 후반작업 기간을 고려해보면 정말 충격이다).&nbsp;<br>&nbsp;<br><br>&nbsp;&nbsp;&nbsp;&nbsp; &lt;육체의 문&gt;은&nbsp;기존에 보았던 다른 그의 작품에 비해서, 훨씬 감정 라인을 따라가기가 매끄럽다.&nbsp;<strong>그들의 감정이 이해가 된다</strong>(종종 그의 영화들은 등장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지 못할&nbsp;만큼의 격정을 보여주곤 했다)!!&nbsp;그러나 이것이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보는 데 해가 되지는 않는다. 격정을 좀&nbsp;덜 하는 대신에,&nbsp;연극같이 헐값에 지어진 느낌이 팍팍 나는 세트와 그럼에도 전혀 그것이 이상하지 않게하는 연출.&nbsp;<strong>심리를 그냥 색깔로 칠해버린 장면들(상징 이딴 소리가 아니라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거다)</strong>.&nbsp;전쟁 직후의 사람들에게 들러붙은 <strong>강박증이 이토록 땀냄새 나게 전해지는 영화는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strong>&nbsp;&nbsp;&nbsp;<br>&nbsp;&nbsp;<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905/15/22/e0013922_4a0c5cc8cf161.jpg" width="500" height="211.3281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905/15/22/e0013922_4a0c5cc8cf161.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이 정지화면만 봐서는 이 장면이 왜 감동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맥락을 보면. 정말 놀랄 수밖에 없다.</div><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905/15/22/e0013922_4a0c5ccc1ebc2.jpg" width="500" height="211.04150352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905/15/22/e0013922_4a0c5ccc1ebc2.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여배우의 팔뚝이 이렇게 흉하게 나오는 것에 영화는 관심이 없다. 이 사람들은 그만큼 날 것이다.<br></div><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5/15/22/e0013922_4a0c5cce50136.jpg" width="500" height="212.27521501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5/15/22/e0013922_4a0c5cce50136.jpg');"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강박증에 들러붙은 인물들. 린치하고 좋아하고 슬퍼하고,</div></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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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영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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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4 May 2009 18:05:42 GMT</pubDate>
		<dc:creator>김탁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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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인의없는 전쟁(仁義なき戰い)> 단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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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COLOR: #000000"><span style="COLOR: #000000; FONT-SIZE: 130%">&lt;인의없는 전쟁(仁義なき戰い)&gt;(후쿠사쿠 킨지, 1973) 단상</span><br><br>&nbsp;&nbsp;&nbsp;&nbsp; 먼저 DVD를 빌려준 지로형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영화가 "인의"에 관한 것이다 보니,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 너무 파렴치하게 느껴진다.&nbsp;<br><br>&nbsp;&nbsp;&nbsp;&nbsp;&nbsp;좋은&nbsp;야쿠자 영화와 좋지 않은 야쿠자 영화,&nbsp;아니 이런 표현보다도 사악한 야쿠자 영화와 좋은 야쿠자 영화 두 종류로 가르는 편이 좋겠다. 내게 있어&nbsp;사악한 야쿠자 영화는 주인공이 어깨에 힘을 바짝 준다든지,&nbsp;발성에 있어서 몹시 힘을&nbsp;주는.. 한 마디로 똥폼잡는 야쿠자들의 향연으로서, 이런 영화들은&nbsp;야쿠자들을 미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실상, 이런 영화는 재미없다.&nbsp;이건 한국 조폭 영화에 똑같이 대입해도 좋을 듯하다. 무분별한 폭력, 의미없는 폭력, 그런 폭력을 단순히 나열한 형태의 영화라면, 왠지 허무하다.&nbsp;물론, 만약 그것의 폭력 장면의 미장셴이 너무나도 훌륭하다면.... 나는 그 영화를 사악한 영화중에서도 사악한 영화로 따로 분류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영화는 본 적이 없다. 만약 폭력 영화가 그저 그럴듯한 미장셴에 더불어 어떤 메시지도 나에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설령 내가 그것을 극장에서 볼 때에 재미있게 봤더라도, 나는 그 영화를 오래토록 기억한다든지, 내게 그 영화가 훌륭하게 느껴진다고 할지 하는 그런 느낌이 주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최근에(최근이라고 해도 생각해보니 작년이구나) 본 학원폭력물인 미이케 다카시의 &lt;크로우즈 제로&gt;같은 경우, 그 영화의 폭력은 '인생은 끝까지 달려야만 한다. 안그러면 후회한다'는 식의 메시지가 있었지만, 내게는 너무 진부하게 느껴졌고 때문에, 극장에서 꽤 재미있게 봤고, 배우 "오구리 슌"의 미모에 몰입되어 버렸지만, 나온 직후 허무해져버렸고, 지금은 그 영화의 장면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br>&nbsp;<br>&nbsp;&nbsp;&nbsp;&nbsp; &lt;인의 없는 전쟁&gt;은 당대에 나오던 야쿠자물들은 "진실이 아니"라며, 진짜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오늘 그 사실을 확인하기는 너무 귀찮고, 들은 얘기다), 이 말이 진짜든 아니든 그럴 법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이 던져진 사회를 온몸으로 부정한다. 그런데 이 부정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주인공 "히로노 쇼죠"(스가와라 분타 分)는 야쿠자 사회가 원래는 그렇게 굴러가야 하는 방향,원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데, 사회가 너무 야비하게 변해버려서, 이제는 오히려&nbsp;말그대로 "이상주의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원래의 이상적인 원칙을&nbsp;생색내지 않으면서, 체화해서 살아가는 인물은 매력이 있고, 아무리 야비해진 족속들이라도&nbsp;올곧은 원칙주의자는 함부러 어찌하지 못하는 법이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905/11/22/e0013922_4a06fa03ad588.jpg" width="500" height="214.3416927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905/11/22/e0013922_4a06fa03ad588.jpg');" /></div>&nbsp;&nbsp;&nbsp;&nbsp; &lt;인의없는 전쟁&gt;에서 가장&nbsp;소중한 장면 중 하나이다.&nbsp;자세로만 보면, 누가&nbsp;이 공간의 주인으로 보이는가. 하지만, 총이 겨눠진 방향이나 그를 둘러싼 구도로 보아 알 수 있듯이,&nbsp;그는 사지로 기어들어간 상황이다. 그의 개인적인 윤리─그리고 모두가 그의 윤리를 따른다면, 사회는 정의로와 질거다─&nbsp;를 지키기 위해. 그럼에도 명분이&nbsp;확고하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nbsp;사람이기에 편안하다.&nbsp;그는 자신의 원리에 의해 사람을 심판할 수는 있어도,&nbsp;그에게 있어 그것과 사적인 악감정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는&nbsp;자신의 원리상으로는 자신이 죽이려 했던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야비한 무리가 득시글 거리는 소굴에도 총 한자루만 쥐고서 혈혈단신&nbsp;뛰어들 줄을 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905/11/22/e0013922_4a06fc74f39f5.jpg" width="500" height="214.17384494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905/11/22/e0013922_4a06fc74f39f5.jpg');" /></div>&nbsp;&nbsp;&nbsp;&nbsp;&nbsp;"감히 여기가 어딘데, 함부러 기어들어오냐고"누가 물을쏘면 아직 자신의 총에는 총알이 남았음을,&nbsp;차분하지만 매우 단호하게 상대에게 알려준다. <br>&nbsp;<br><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박스 세트에는 총 5편이 실려있던데, 앞으로 주인공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기대된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5/11/22/e0013922_4a06fcba5536f.jpg" width="500" height="212.77429467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5/11/22/e0013922_4a06fcba5536f.jpg');" /></div><br></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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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영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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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0 May 2009 16:11:53 GMT</pubDate>
		<dc:creator>김탁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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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경기도민 여러분 정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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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COLOR: #000000">경기도민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자랑스럽고 부럽습니다.&nbsp;</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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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단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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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8 Apr 2009 15:19:52 GMT</pubDate>
		<dc:creator>김탁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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