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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크랩 대마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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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에스진의 일상</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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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Nov 2009 04:24:5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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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빵집] 부산 B&C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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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img class="image_righ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21/25/e0003425_4b076b75e6b34.jpg" width="250" height="15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21/25/e0003425_4b076b75e6b34.jpg');" align="right" /><strong>정직을 담다, 추억을 부르다, 자부심이 들다<br></strong><br>#1984년 가을 부산. 초등학생 시절, 고교에 다니던 언니를 따라 시내에 간 적이 있다. 부산 남포동·광복동·창선동 일대를 부산 사람들은 시내라고 한다. 당시엔 극장도, 백화점도, 패스트푸드점도 모두 시내에 가야 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고소한 냄새가 났다. 58년 창립한 고려당(프랜차이즈가 아닌 부산의 자체 브랜드)에서 크로켓 튀기는 냄새였다. 언니를 졸라 한 개를 얻어 먹었다. 그러다 그 빵집 건너편에 영어 간판을 단 가게에 눈길이 갔다. ‘B&amp;C’. 브레드 앤드 케이크란 건 한참 뒤에 알았다. 언니는 “지난해 생긴 빵집인데 맛있대”라고 했다.<br><br>#2009년 가을 부산. 25년 전의 그 거리에 다시 섰다. 극장가를 거쳐 빵집 골목 쪽으로 들어오니 한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매장의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근처에 있어야 할 고려당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창립 50주년이던 지난해 문을 닫았다고 했다. 대기업 브랜드 베이커리에 맞설 수 없어서였단다. 그뿐이 아니었다. 황태자·하얀풍차 등 부산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 개 정도는 추억을 가지고 있는 빵집들이 그야말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오직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빵집은 B&amp;C뿐인 듯했다.<br><br>‘Pride of Pusan(부산의 자존심)’. B&amp;C 김준욱 사장의 명함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는 27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대기업 빵집들의 공세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다는 데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었다.<br><br><!--img_tag_s--><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7" align="right"><tbody><tr><td width="15"></td><td><img class="blb" border="0" name="photo" src="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1/htm_2009110416224430003010-002.JPG" width="250"></td></tr><tr><td width="15"></td><td style="LINE-HEIGHT: 15px; WIDTH: 252px" class="pt_8 rgray01">B&amp;C 건물 4층의 공장에선 하루 종일 빵과 쿠키와 초콜릿이 구워진다. 즉석빵이 품어내는 따뜻한 향과 고소한 맛은 윈도베이커리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td></tr><tr><td height="15" colspan="2"></td></tr></tbody></table><!--img_tag_e-->“우리에게도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우린 살아남았고, 우리의 방식대로 계속 자리를 지킬 겁니다.”<br><br>김 사장이 말하는 ‘우리의 방식’은 이 빵집이 처음 생겼던 때의 방식과는 좀 다른 듯했다. 과거 이 빵집은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었다. 예를 들어 밤식빵의 경우, 이를 최초로 개발한 건 아니었지만 대중화를 이끈 곳은 B&amp;C였다. 당시 사장까지 직접 나서 포장할 정도로 히트를 쳤고, 서울에서나 맛볼 수 있는 빵들을 부산에선 처음 소개하며 명성을 이어나갔다.<br><br>하지만 요즘 B&amp;C는 추억의 빵들이 더 큰 인기다. 매장 한 벽을 차지한 쇼 케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요즘은 찾아보기도 힘든 버터케이크들이다. 둥근 케이크에 하얀 버터를 바르고 반짝이는 빨간 젤리가 얹어져 있는 그 옛날 케이크 말이다. 어른들 생신 때나 내놓던 2단 버터 케이크도 있다.<br><br>“요즘도 저런 걸 먹나요?” 기자의 질문에 김 사장은 “우리집에선 하루에 적어도 100개가 팔린다”며 웃는다.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은 롤케이크. 2개짜리 세트가 1만원인데 포장하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전병과 호두과자도 베스트셀러다. 대부분의 제과점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전병을 사다 파는 반면 이곳에선 직접 만든다. 호두과자도 겉은 얇고 속은 팥소가 꽉 차고 호두가 통으로 씹히는 맛으로 인기다. 물론 크림치즈 빵, 고구마 치즈 케이크 등 신세대 입맛에 맞춘 빵들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신제품의 매출은 전통빵에 못 미친다.<br><br>코 앞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B&amp;C가 살아남은 이유는 뭘까. 김 사장은 “아무리 어려워도 싼 재료를 쓴 적이 없다. 정직한 맛에 대해 시민들이 평가해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밀가루를 구하기조차 힘들었던 밀가루 파동 때도 B&amp;C 창고엔 100부대 이상이 쌓여 있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신뢰로 거래해 온 거래처가 B&amp;C를 위해 미리 챙겨두었다는 것이다. 또 이곳 직원들은 한번 들어오면 뿌리를 박는 사람이 많다. 공장장도 15년 이상 근무했고, 현재 매장 관리 과장은 고교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지금까지 10년 이상을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충성도도 높다는 것이다.<br><br>재밌는 일화도 많다. 부산엔 드문 영어 상호에 어르신들은 이곳을 ‘ABC’ 과자점이라고 부른다. 고교 시절 B&amp;C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부부가 자식들을 데리고 매장을 찾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김 사장은 “서울 출장을 가려고 부산역에 가면 우리 가게 쇼핑 가방을 든 분이 무척 많다”고 자랑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옛맛을 잊지 못해 들러 빵을 사가는 출향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B&amp;C는 계속 ‘부산의 자랑’이란 자부심으로 맛있는 빵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br><br>부산시 중구 창선동1가 24번지, 051-245-2363, www.bnccake.com<br><br><br><span style="COLOR: #c0c0c0">+ 중앙일보 | 091105 | 이가영 기자</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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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먹거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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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Nov 2009 04:24:5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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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걷기] 대전 회덕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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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img class="image_righ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1/21/25/e0003425_4b0764fd2f7c2.jpg" width="290" height="43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1/21/25/e0003425_4b0764fd2f7c2.jpg');" align="right" />대전 하면 먼저 신흥 아파트도시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대전은 1000년 선비문화가 면면히 전해오는 역사문화의 고장이다. ‘회덕분기점’으로 많이 알려진 회덕에 답이 있다. 회덕(懷德)은 ‘덕을 품었다’는 뜻이다. 고려 태조 때부터 쓰인 고을 이름으로, 지금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속한다. ‘대덕’이란 지명은 일제강점기 대전과 회덕에서 한 글자씩 따와 만든 것이다. 이곳 아파트숲 사이사이에 ‘덕을 품은’ 옛 고을의 자취가 뚜렷하다. 대덕문화원을 출발해 동춘당을 거쳐 비래골 옥류각까지 걷는다. <p align="justify"><p align="justify"><span style="COLOR: #c21a8d"><b><span style="Z-INDEX: 999" id="OV_CLK_POP3"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style="FONT-FAMILY: ; COLOR: #173f8d; FONT-WEIGHT: 700; TEXT-DECORATION: underline" class="kl_ov_link"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E5%BD%C2" target="_blank">장승</a></span>과 굴다리가 손님을 맞아</b></span> <p align="justify">읍내동 대덕문화원(겸 대덕문예회관)에서 여행지도와 <span style="Z-INDEX: 999" id="OV_CLK_POP4"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style="FONT-FAMILY: ; COLOR: #173f8d; FONT-WEIGHT: 700; TEXT-DECORATION: underline" class="kl_ov_link"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DA%B7%E1" target="_blank">자료</a></span>를 챙긴 뒤 걷기 시작한다. 읍내동은 옛 회덕현 관아가 있던 데서 비롯한 지명이다. 길 건너 읍내사거리에서 우회전해 3분 거리에 ‘당아래 돌장승’이 있다. 장승이라기보다는 남성 성기를 닮은 돌(높이 76㎝)이다. 장승 옆에서 신문·상자 등을 모아 묶던 장순애(86) 할머니는 “저 당산 아래 배배마을(갑천 배 대던 곳)에 있던 걸 이리 뫼셔온 것”이라고 말했다. <p align="justify">‘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1831년)와 회덕동 주민센터 마당에 늘어선 관찰사·현감 등을 기리는 선정비·불망비 16개를 보고 뒷골 쪽으로 간다. 한 쌍의 돌장승이 기다린다. ‘뒷골 장승’이다. 키 큰 남장승, 키 작은 여장승이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어 낡고 후미진 뒷골 풍경이 정겨워진다. <p align="justify"><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90" align="center"><tbody><tr><td width="15"><!-- Padding - Width --></td><td><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align="middle"><img border="0"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09/1015/6000328075_20091015.JPG"> </td></tr><tr><td height="3"></td></tr></tbody></table><!-- 사진설명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class="movie_text" bgcolor="#8f8f8f">» 회덕 동춘당(보물 209호)은 동춘 송준길의 별당이다. 왼쪽 한 칸이 온돌방인데 굴뚝을 세우지 않고 벽 밑에 구멍만 뚫어놓았다.</td></tr><tr><td height="3"></td></tr></tbody></table><!--사진설명 --></td><td width="15"><!-- Padding - Width --></td></tr><tr height="15"><td colspan="3" noWrap><!-- Padding - Height --></td></tr></tbody></table><p align="justify">장승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기찻길 밑 굴다리 행렬이 이어진다. 100여m를 걷는 동안 무려 8개의 높고 낮고, 길고 짧은 굴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경부선 철도 대전조차장 주변이다. 마지막 굴다리는 아치형 터널로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이다. 주민들은 ‘구철뚝’으로 부른다. 굴다리 사이사이엔 옛 골목 풍경들이 남아 있다. 30년간 방아만 찧어 왔다는 ‘뒷골방아간’ 지나 큰길로 올라선다. 길 건너 소공원 옆에 제월당이 있다. 제월당은 조선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제월당 송규렴’이 살던 집의 별당이다. 문이 잠겨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p align="justify">큰길(계족로)을 두고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한 뒷길을 따라 걷는다. 응봉근린공원에 옛 한옥 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 조선 후기 유학자 손우당 홍석의 아흔아홉칸 집이 있었다고 한다. 법동초교 쪽으로 나와 보람아파트 끼고 계족로 네거리로 가면 길 양쪽에, 법천 물길에 있던 ‘법동 돌장승’ 한 쌍이 있다. 남녀 장승을 각각 작은 검은색 선돌과 함께 세운 점이 특이하다. 법동2동 주민센터 뒤로 들어가 법동시장을 지난다. 10여년 전 자연적으로 생겨난 재래시장이다. 시장길 끝 왼쪽에 정려각이 하나 있다. 효성이 지극했던 은진 송씨 부인을 기려 영조 때 내려진 정려다. 조선시대 회덕을 말할 때 은진 송씨를 빼놓곤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조선 전기의 학자 쌍청 송유가 정착한 이래 세거를 이뤄 우암 송시열, 동춘 송준길 등 유학자를 배출했다.<br><br><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90" align="center"><tbody><tr><td><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align="middle"><img border="0"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09/1015/6000328078_20091015.JPG"> </td></tr><tr><td height="3"></td></tr></tbody></table><!-- 사진설명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class="movie_text" bgcolor="#8f8f8f">» 송애당 앞엔 법천 물길에 있던 ‘법천 석총’ 석각 바위를 옮겨다 놓았다. 동춘 송준길의 글씨다.</td></tr><tr><td height="3"></td></tr></tbody></table><!--사진설명 --></td><td width="15"><!-- Padding - Width --></td></tr><tr height="15"><td colspan="3" noWrap><!-- Padding - Height --></td></tr></tbody></table></p><p align="justify">길 건너면 중리동. 왼쪽으로 나무 우거진 공원이 나타난다. 송애당이다. 효종 때 충청관찰사를 지낸 송애 김경여가 지은 별당으로, 앞서 만난 정려각의 주인 ‘은진 송씨 부인’이 바로 김경여의 어머니다. 별당이란 <span style="Z-INDEX: 999" id="OV_CLK_POP2"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style="FONT-FAMILY: ; COLOR: #173f8d; FONT-WEIGHT: 700; TEXT-DECORATION: underline" class="kl_ov_link"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8%B6%B7%E7" target="_blank">마루</a></span>와 온돌방을 갖춘 주인의 생활공간이자 손님맞이 장소로 쓰인 별채를 말한다. 송애당 들머리엔 법천 물길에서 옮겨온 ‘법천 석총’(동춘 송준길의 글씨)이 새겨진 바위가 놓여 있다. 길은 쌍청당으로 이어진다. 쌍청당은 고려 말~조선 초의 학자이자 은진 송씨 입향조인 송유의 호다. 세종 때 처음 지어진 고택의 별당 건물인데 단청을 한 점이 특이하다(세종 때부터 민가엔 단청을 금지했다). 오래된 배롱나무들이 우거져 드리운 그늘이 그윽하다. 송유 고택은 문이 잠겨 있어도 벨을 누르면 열어준다. <p align="justify"><p align="justify">송유의 어머니 고흥 류씨 부인 정려각과 정려비(송시열 글씨)를 보고 음식점 즐비한 송촌동 골목을 걷는다. 손두부집 뒤 큰길 옆에 ‘상하송촌리 삼강려’(上下宋村里 三綱閭)라 쓰인 커다란 바위가 있다. 충신·효자·열녀를 모두 배출한 마을이란 뜻이다. 병자호란 때 강화가 함락되자 자결한 이시직 정려각을 거쳐 소방서 네거리로 나선다. 대각선 길 건너에 동춘당공원이 있다. <p align="justify"><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90" align="center"><tbody><tr><td width="15"><!-- Padding - Width --></td><td><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align="middle"><img border="0"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09/1015/6000328082_20091015.JPG"> </td></tr><tr><td height="3"></td></tr></tbody></table><!-- 사진설명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class="movie_text" bgcolor="#8f8f8f">» 동춘당 뜰엔 벽오동 한 그루가 서 있다. 뜰에서 주운 벽오동 열매.</td></tr><tr><td height="3"></td></tr></tbody></table><!--사진설명 --></td><td width="15"><!-- Padding - Width --></td></tr><tr height="15"><td colspan="3" noWrap><!-- Padding - Height --></td></tr></tbody></table><p align="justify">회덕 별당 건축물 탐방의 하이라이트가 동춘당이다. 대전이 자랑하는 보물(209호)이자, 지역 역사문화 교육의 기본이 되는 유적이다. “대전시민들이 초·중·고생 때 꼭 한 번씩은 거쳐간다는 곳”이다. 아파트 단지들에 둘러싸인 동춘당공원에선 ‘동춘당 옛 모습 찾기 <span style="Z-INDEX: 999" id="OV_CLK_POP1"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style="FONT-FAMILY: ; COLOR: #173f8d; FONT-WEIGHT: 700; TEXT-DECORATION: underline" class="kl_ov_link"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1%B6%B0%E6" target="_blank">조경</a></span>공사’가 한창이다. <p align="justify"><p align="justify">동춘당공원엔 효종 때 이조·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1606~1672)의 별당 동춘당과 고택, 사당, 그리고 송준길의 손자인 송병하가 살던 ‘송용억 가옥’이 있다. 동춘당은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이뤄진 정면 3칸, 옆면 2칸의 아담한 건물이다. 굴뚝을 세우지 않고 벽 아래 네모난 구멍만 뚫어놓은 게 특이하다. 현판은 송준길과 숙질간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것으로, 원본은 종중 사무실에 있다. 키다리 소나무와 오동나무·감나무, 거대한 팽나무들이 담 안팎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땅에 떨어진 벽오동 잎에 돋은 열매를 까 맛보았다. 고소하고 은은한 맛이다. <p align="justify">송준길 고택엔 14대 종손이 살고 있다. 내외담 옆 굴뚝의 태극무늬와 팔괘 장식이 이채로워 눈여겨볼 만하다. ‘호연재 김씨부인 시비’, 4월이면 “300년 된 영산홍이 불타오르듯 꽃을 피운다”는 송용억 가옥, ‘송씨3세 효자 정려구허비’ 등을 차례로 만난다. 은진 송씨 집안의 가양주로, 이름난 전통술 송순주가 전해온다. <p align="justify"><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90" align="center"><tbody><tr><td width="15"><!-- Padding - Width --></td><td><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align="middle"><img border="0"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09/1015/6000328067_20091015.JPG"> </td></tr><tr><td height="3"></td></tr></tbody></table><!-- 사진설명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class="movie_text" bgcolor="#8f8f8f">» 고흥 류씨 부인 정려각과 정려비. 비문은 동춘이 짓고 우암이 썼다.</td></tr><tr><td height="3"></td></tr></tbody></table><!--사진설명 --></td><td width="15"><!-- Padding - Width --></td></tr><tr height="15"><td colspan="3" noWrap><!-- Padding - Height --></td></tr></tbody></table><p align="justify">동춘당공원을 나와 담을 끼고 돌아 경부고속도로 밑 굴다리를 통과하면 계족산 자락 비래골이다. 고성 이씨 집성촌이다. 먼저 반기는 것이 570년 됐다는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와, 비파형동검이 출토된 덮개식 고인돌 둘이다. 매봉(응봉)을 바라보며 비래암으로 오른다. 길은 포장공사중이다. 잠시 오르면 길옆 바위에 송준길이 썼다는 ‘초연물외’ 글씨가 보이고, 계곡 물길에 올라앉은 옥류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량이 늘면 옥류각 밑으로 흘러 바위로 떨어져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p align="justify"><p align="justify"><span style="COLOR: #c21a8d"><b>그때나 지금이나 학생은 낙서금지</b></span> <p align="justify">옥류각은 제월당 송규렴 등이 1693년 동춘이 강학하던 곳을 기념해 세운 누각이다. 안에 걸린 여러 판각 글 중엔 ‘공부하러 온 학생들은 벽에 낙서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도 있다. 동춘 송준길이 종이에 써서 비래암 벽에 붙였던 것을 후학들이 판각한 것이다. 비래암 현판 밑에 걸린 우암 송시열이 쓴 ‘비래암 고사기’에 이런 내용과 함께, 동춘과 어울렸던 모임을 추억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p align="justify">내려와 비래골 느티나무 주변 손두부집에서 허기를 달랬다. 대덕문화원에서 비래암까지 7㎞를 걸었다. 4시간 반. 다소 먼 거리여서 회덕동 일대와 송촌동 일대를 나눠 걷는 것도 좋겠다. <p align="justify">&nbsp;<p align="justify"><p align="justify"><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90" align="center"><tbody><tr><td width="15"><!-- Padding - Width --></td><td><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align="middle"><a href="javascript:void(window.open('/popups/imgview.hani?http://img.hani.co.kr/imgdb/original/2009/1015/125550943538_20091015.JPG','popEnlargeImg','width=583,height=493,scrollbars=yes'));"><img border="0"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09/1015/125550943538_20091015.JPG"></a> </td></tr><tr><td height="3"></td></tr></tbody></table><!-- 사진설명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class="movie_text" bgcolor="#8f8f8f">»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td></tr><tr><td height="3"></td></tr></tbody></table><!--사진설명 --></td><td width="15"><!-- Padding - Width --></td></tr><tr height="15"><td colspan="3" noWrap><!-- Padding - Height --></td></tr></tbody></table><p align="justify"><!-- ##### news BOX st. #####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tbody><tr><td height="22"></td></tr><tr><td style="PADDING-BOTTOM: 4px; PADDING-LEFT: 4px; PADDING-RIGHT: 4px; PADDING-TOP: 4px" bgcolor="#e7e7e2"><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gcolor="#f7f6f4"><tbody><tr><td class="news_text02"><p align="justify"><span style="COLOR: #638f03"><b>워킹 쪽지 </b></span><p align="justify"><p align="justify">⊙ 경부고속도로 대전나들목을 나가 직진, 고속버스터미널 앞 지나 17번 국도를 만나 우회전한다. 대덕구청 앞 오거리 지나 17번 국도 따라가면 읍내사거리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대덕문화원(문예회관)이 있다. 골목 안에 <span style="Z-INDEX: 999" id="OV_CLK_POP0"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style="FONT-FAMILY: ; COLOR: #173f8d; FONT-WEIGHT: 700; TEXT-DECORATION: underline" class="kl_ov_link"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1%D6%C2%F7%C0%E5" target="_blank">주차장</a></span>이 있다. 문화원에 주변 문화유적 자료가 풍부하다. 대덕문화원 (042)627-7517. 대전문화관광해설사협회 (042)226-8413. 닭백숙·청국장·손두부를 내는 비래골손두부 (042)622-6595, <span style="Z-INDEX: 999" id="OV_CLK_POP5"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a style="FONT-FAMILY: ; COLOR: #173f8d; FONT-WEIGHT: 700; TEXT-DECORATION: underline" class="kl_ov_link" href="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3%DF%BE%EE%C5%C1" target="_blank">추어탕</a></span>과 추어칼국수를 잘하는 송촌동의 대청마루추어칼국수 (042)632-7640. 계족산 산행, 화폐박물관·지질박물관 등 박물관 투어도 해볼 만하다. 10월20~26일 대전에선 제90회 전국체전이 열린다.</p></td></tr></tbody></table></td></tr></tbody></table></p><br><br><span style="COLOR: #c0c0c0">+ 한겨레 | 091015 | 이병학 기자</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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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여행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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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Nov 2009 03:58:23 GMT</pubDate>
		<dc:creator>에스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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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카페 베네 - 강 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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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img class="image_righ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21/25/e0003425_4b073c956238f.jpg" width="260" height="65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21/25/e0003425_4b073c956238f.jpg');" align="right" />"목표요? 당연히 스타벅스를 따라잡는 거죠."<br><br>국내 <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커피전문점</span></a> 시장은 가히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급성장추세다. 외산 브랜드인 스타벅스(310개), 커피빈(183개)에 할리스(213개), 엔제리너스(211개, 이상 10월말기준) 등 토종브랜드가 가세, 현재 4,000억원대 규모의 시장을 형성중이다.<br><br>최근 이 경쟁에 새롭게 뛰어든 카베베네는 지난 해 4월 브랜드 론칭후 1년7개월만인 이달 점포 100개를 돌파,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강 훈(42) 사장은 카페베네 돌풍의 주역이다.<br><br>강 사장은 사실 국내 고급 커피전문점 시대의 서막을 연 주인공이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스타벅스 본사에서 <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바리스타</span></a> 교육을 받았다.<br><br>"1997년 7월 <a class="dklink" title=""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신세계백화점</span></a>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 회사로부터 출장 지시가 떨어졌어요. 신수종 사업으로 스타벅스를 곧 국내에 도입할 것이니, 현지에서 교육을 받아오라는 거였죠."<br><br>미국으로 건너간 강 사장은 3개월간 스타벅스의 운영노하우를 몸에 익혔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현지 교민들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강 사장은 "한국에 스타벅스가 생긴다는 사실에 교민들이 상당한 긍지를 느끼더라"며 "이미 스타벅스와 계약을 맺고 싶다고 타진을 해온 국내 기업만도 100군데가 넘었다는 사실에 대박을 예감했다"고 했다.<br><br>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한국에 불어 닥친 IMF외환위기로 모든 기업이 경영난에 부닥쳤고, 신세계의 스타벅스 사업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무대에 나가기를 기다리는 배우가 공연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br><br>언제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강 사장은 결국 1998년 5월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벅스에서 배운 노하우를 바탕으로 토종 커피전문점 할리스를 오픈했다. (신세계는 이듬해 7월에야 국내에 스타벅스 1호점을 선보였다)<br><br>고급 원두에 차별화한 서비스, 직영으로만 운영하는 스타벅스와는 달리 <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프랜차이즈</span></a> 형식으로 <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가맹점</span></a>을 모집하며 사업을 확장한 그는 5년만에 매장을 40개까지 늘렸다. 2003년 그는 돌연 할리스 운영권을 당시 국내 최대 <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엔터테인먼트</span></a> 그룹 플레너스(CJ인터넷)에 매각했다.<br><br>할리스 매각 당시 향후 2년간 동종업을 할 수 없다는 계약문제로 한동안 업계를 떠나있었지만, 강 사장은 꾸준히 성장하는 커피시장에 대한 관심을 늘 열어두고 있었다.<br><br>강 사장에게 새로운 기회가 온 것은 지난 해 4월. 새롭게 커피전문점 사업에 뛰어든 카페베네측이 '재야의 고수' 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br><br>새로운 도전에 나선 강 사장은 "요즘 커피전문점은 스타벅스 따라하기 열풍"이라며 "이와는 다른 컨셉트로 승부를 거는 전략을 택했다"고 말했다.<br><br><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매장 인테리어</span></a>를 고전적인 스타일로 꾸며 고객에게 친근감을 주도록 했고, 내부공간에 북카페를 두는 등 차별화했다. 기존 커피위주의 메뉴에서 탈피, 와플, <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미숫가루</span></a>, 떡 등 한국식과 서양식 음식을 골고루 배합했다.<br><br>가장 인상적인 것은 스타<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마케팅</span></a>. 평소 친분이 두터운 사이더스 HQ 정훈탁 사장과의 관계를 활용, 이 회사 소속 조인성, 한예슬, 성유리 등 톱스타들의 방문을 유도했다. 대번에 연예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커피전문점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인기 드라마 '<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아이리스</span></a>'의 간접광고(PPL) 효과까지 가세, 인지도가 급상승했다.<br><br>강 사장은 "한국인이 <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원두커피</span></a>를 마시는 비율은 <a class="dklink" h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economy/200911/h2009112022155821540.htm&amp;ver=v002" target="_blank"><span style="COLOR: #00309c">인스턴트커피</span></a>의 10분의 1가량으로, 이웃 일본의 20% 수준이라 성장 여력이 많다"며 "연말까지 매장 120개, 내년에는 300개를 오픈, 1,000억원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br><br><br><span style="COLOR: #c0c0c0">+ 한국일보 | 091121 | 한창만 기자</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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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인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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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Nov 2009 01:05:05 GMT</pubDate>
		<dc:creator>에스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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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스크랩] 아웃라이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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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그러면 IQ 이외의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독자 여러분에게 IQ 대신 다른 종류의 테스트 하나를 권하고 싶다. 다음 물건의 쓰임새에 대해&nbsp;최대한 많이 적어보라.<br>1. 벽돌<br>2. 담요<br>이것은 '다이버전스(divergence)' 테스트의 한 예이다(레이븐 테스트는 이것과 정반대로 피실험자에게 문제를 제시하고 정답을 맞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테스트는 상상력을 요구하며 가능한 한 다양한 방향으로 피실험자의 마음을 이끌어낸다.<br>다이버전스 테스트에서는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험자가 보는 것은 피실험자의 답변의 개수와 그 각각의 창의성이다. 이 테스트에서 측정하는 것은 분석적인 지능과는 다른, 즉 창의성에 가까운 그 무엇이다. 다이버전스 테스트는 레이븐 테스트처럼 도전해볼 만하므로 이 책을 덮고 앞서 말한 벽돌과 담요 테스트를 직접 해보라.<br>그러면 여기서 리암 허드슨이 실시한 '사물의 쓰임' 테스트의 예시 답안을 살펴보자. 이 답안지는 영국의 우수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풀(Poole)이라는 학생의 것이다.<br><br>벽돌 - 기습공격을 할 때 사용. 집을 지을 때 사용. 운동을 겸해 러시안 룰렛을 하고 싶을 때 사용(열 발자국을 걸어가 뒤돌아서서 던진다. 단, 회피 동작은 허용되지 않음). 깃털 이불의 네 모서리에 집어넣어 고정시킬 때 사용. 빈 코카콜라병을 깨부수는 용도로 사용.<br>담요 - 침대 위에서 사용. 숲 속에서 은밀한 성관계를 맺을 때 덮개로 사용. 연기가 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사용. 보트, 마차, 썰매의 돛으로 사용. 수건 대용으로 사용. 눈이 근시인 사람의 사격용 과녁으로 사용. 불타는 마천루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받아내는 용도로 사용.<br><br>풀의 답안지를 읽어보면 이 학생의 사고방식이 어떠한지 대충 알 수 있다. 이 재미있는 학생은 약간 파괴적이고 야한 것을 좋아하며 이야기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 그의 정신세계는 폭력적인 상상과 섹스, 불타는 마천루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물론 심지어 침대 위에서 깃털 이불을 고정시키는 방법처럼 매우 실용적인 분야까지 마구 넘나든다. 이 학생은 10분만 더 주면 새로운 사용법을 20가지도 넘게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인상을 준다.<br>이제 비교를 위해 또 다른 학생의 사례를 꺼내보자. 그의 이름은 플로렌스(Florence)이며, 허드슨은 그가 우등생으로 그 학교에서 IQ가 매우 높은 학생 중 하나라고 했다.<br><br>벽돌 - 건물 짓기, 던지기<br>담요 - 보온, 불끄기, 나무에 묶어서 그 속에서 잠자기(해먹으로 이용), 들것.<br><br>플로렌스의 상상력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가? 그는 벽돌과 담요를 이용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기능적인 사용법만 적은 다음 그냥 멈춰버렸다. 플로렌스의 IQ가 풀의 것보다 높다는 사실은, 둘 다 일정 범위 이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 관건은 풀의 생각이 폭력적 상상에서 섹스로, 불타는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플로렌스의 생각은 정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두 학생 중 누가 창의적이고 기발한 연구를 통해 노벨상을 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가?&nbsp; - p.105~108<br><br><br>라루는 아홉 살 소년인 알렉스 윌리엄스(Alex Williams)가 어머니 크리스티나(Christina)와 함께 진찰을 받으러 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윌리엄스 집안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고 부유한 편이다ㅣ.<br>크리스티나는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알렉스에게 말했다.<br>"알렉스, 의사선생님께 물어볼 것을 생각해야지. 궁금한 것은 뭐든 물어볼 수 있단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뭐든 물어봐."<br>알렉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br>"데오도란트(탈취제)를 발랐더니 팔 아래에 오돌토돌한 게 났어요."<br>"정말? 새로 산 데오도란트를 말하는 거니?"<br>"네."<br>"그럼 의사선생님께 그걸 물어보도록 해."<br>라루는 "알렉스의 어머니가 알렉스에게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권위가 있어 보이는 사람과 한곳에 있을지라도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정당한 일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br>두 사람은 40대 초반의 온화한 의사를 만났는데, 그는 알렉스에게 알렉스의 키가 상위 5퍼센트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알렉스가 끼어들었다.<br>"그게 무슨 말이죠?"<br>"그건 네가 또래의 열 살짜리 100명 중에 95명보다 키가 크다는 뜻이야."<br>"저는 아직 열 살이 아닌데요."<br>"음, 그래프에서는 열 살이야. 너는 9년 10개월인데 그래프를 그릴 때는 좀더 가까운 쪽의 나이를 쓰게 되어 있거든."<br>알렉스가 얼마나 서슴없이 의사의 말에 끼어드는지 보라. 이것이 '권한'이다. 알렉스의 어머니는 아들이 권위 있는 위치에 앉은 사람에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사소한 무례는 용납하고 있다. 이제 의사가 검진을 위한 사전 절차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물었다.<br>"좋아, 검진하기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니?"<br>"음, 하나 있어요. 팔에 혹이 났는데요, 이 근처에......"<br>알렉스는 의사 앞으로 팔뚝을 쑥 내밀었다.<br>"아래쪽에?"<br>"네."<br>"그래 검진을 할 때 그곳을 좀더 자세히 봐야겠구나. 아프거나 가렵지는 않니?"<br>"아뇨. 그냥 좀 오돌토돌할 뿐이에요."<br>"그래, 그럼 어디 그걸 좀 보도록 할까?"<br>라루에 따르면 가난한 계층의 아이들은 이렇게 대응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눈을 내리깔고 질문에 대해서만 조용한 목소리로 고분고분 대답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라루는 "물어보기 위해 준비한 내용을 기억해내는 동안 알렉스는 의사의 관심을 얻어냈고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주제로 끌고 갔다"고 적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알렉스는 어른들에게서 자신에게로 힘의 균형을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그 전환은 대체로 부드럽게 이뤄졌다.<br>알렉스는 어른의 관심과 흥미를 끌 만한 특별한 존재로서 계속 존중을 받았다. 이것이 '집중 양육'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을 이룬다. 알렉스는 의사 앞에서 괜한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부모와 하던 대로 이유를 묻고 협상하고 농담을 하면서 대화를 이끌어갔다.&nbsp; - p.129~131<br><br><br><span style="COLOR: #ff9900">+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김영사,&nbsp;2009</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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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문화산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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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Nov 2009 07:51:49 GMT</pubDate>
		<dc:creator>에스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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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스크랩] 회사가 선택한 1% 팀장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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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ff9900"><span style="COLOR: #666666"><span style="COLOR: #999999">"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은 블랙커피만큼이나 자극적이고, 잠을 설치게 할 만큼 독하다."&nbsp; - p.10<br><br>내가 정말로 평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스무 살 때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진 채 보낸 세월이 어느덧 20년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건 누구 탓이었을까? 어머니다. 모두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릴&nbsp;적 날 옆에 앉히시고는 절대 비밀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단단히 이르신 후,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바로 우리 어머니였기 때문이다.<br>"얘야, 넌 정말 똑똑하단다. 학교에서도 아마 네가 가장 똑똑할 걸.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에게 거만하게 굴면 절대 안 되지만 말이야. 친구들도 많이 생길 거야. 어쩌면 너무 많아서 주체하기 힘들 수도 있어. 그래도 친구들에겐 최선을 다해야 해. 네 힘이 닿는 데까지 도움을 주고 말이야. 게다가 우리 아들은 발도 아주 빠르던걸. 아마 우리 동네에서 발이 제일 빠른 사람을 꼽으라면 너일 거야. 하지만 다른 아이들도 너만큼 빨리 달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br>열 살 무렵에 이르자, 내 능력에 대한 어머니의 이런 시각이 내 삶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똑똑한 아이라는 생각을 품고 당당히 학교에 들어갔으며, 누구든 나를 좋아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넉살 좋게 아이들과 어울렸고, 운동에 소질이 있다는 확신 아래 여러 운동부에 과감히 지원했다.<br>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토록 다채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건 나에겐 은총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물론 내가 언제나 완벽한 경험만 한 것은 아니다. 항상 우등생이었던 것도 아니다. 친구라 여겼던 아이들에게서 내쳐진 적도 있고,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었던 운동부에서 퇴짜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쏟아부을 때 난 언제나 확신에 차 있었다. 난 성공할 수 있다는, 이번에 안 되더라도 다음번엔 꼭 되리라는 확신 말이다. 덕분에 나는 주어진 내 능력의 한계에 비해 몇 배나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내게 주신 선물은 많았지만, 이 '원대한 기대Great Expectations'만큼 소중한 선물은 없었던 셈이다.&nbsp; - p.14~15<br><br>자신의 포부와 재능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가지고, 진정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팀장으로부터 세심하고 각별한 보살핌을 받고, 자신만의 계발 계획을 만들도록 격려를 받는다면 사람들은 변화하고자 하는 의욕으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nbsp; - p.18<br><br>팀장은 성과 중심의 핵심 역량을 가진 핵심인재를 발탁하고 계발하는 역할을 하기에 이상적인 자리다.&nbsp; - p.34<br><br>다른 사람들이 가진 최고 능력에만 초점을 맞추는 습관을 갖추려면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당신은 다른 사람의 실적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판사가 아닌, 그들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는 변호사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위대한 인재 개발자라면 다른 이들이 어떤 일에서든 모든 재능과 에너지를 끌어내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진 포부와 재능을 일깨우고, 그들이 꿈꾸는 성공을 성취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게 위대한 인재 개발자가 할 일이다. 인재를 발탁하고 개발하는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은, 사람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의 편에 서서 그것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nbsp; - p.63<br><br>테레사 수녀가 순수한 의도를 갖고 진심 어린 삶을 살았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재 개발자는 얼마든지 테레사 수녀같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를 수가 있다. 매일 "이 사람의 성공이 나의 진정한 관심사야"라는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돌아다니는 팀장이라면 그 존재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nbsp; - p.122</span><br><br></span><br>+ 그레그 톰슨·수잔 바이로, 회사가 선택한 1% 팀장들, 팩컴북스, 2009</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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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문화산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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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Nov 2009 00:12:58 GMT</pubDate>
		<dc:creator>에스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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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전시 목록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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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080119 | 김용호 &lt;몸&gt; | 대림미술관<br>080119 | Sandy Skoglund | 공근혜갤러리<br>080123 | 나의 아름다운 하루 | 로댕갤러리 | 박아현<br>080322 | 아타 김 | 로댕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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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문화산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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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7 Nov 2009 12:19:47 GMT</pubDate>
		<dc:creator>에스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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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도서 목록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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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060524 | 공지영,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황금나침반,2006<br><br>070113 |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1·2 , 은행나무, 2006<br>070126 |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은행나무, 2005<br>070127 |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민음사, 1999/2005<br>070212 | 마이클 레빈, 깨진 유리창 법칙, 흐름출판, 2006<br>070423 | 이민규,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더난출판사, 2005<br><br>080111 | 장순욱, 홍보도 전략이다, 책이 있는 마을, 2005<br>080105 | 박노해 외 6인, 윈난, 고원에서 보내는 편지, 이른아침, 2007<br>080109 |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문학과지성사, 2003/2007<br>080122 | 오쿠다 히데오, 마돈나, 북스토리, 2007<br>080321 | 최호철, 을지로순환선, 거북이북스, 2008<br>080323 | 패트릭 G. 라일리, THE ONE PAGE PROPOSAL, 을유문화사, 2007<br>080329 | 정이현, 작별/풍선, 마음산책, 2007<br>080411 | 이영대,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십니까?, 이코노믹북스, 2008<br>080412 | 마쓰다 미쓰히로, 실전! 청소력, 나무한그루,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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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문화산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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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7 Nov 2009 12:00:59 GMT</pubDate>
		<dc:creator>에스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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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사고 싶은 CD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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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권진원 | 6집 나무</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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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음악감상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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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7 Nov 2009 04:46:17 GMT</pubDate>
		<dc:creator>에스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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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기타 선율이 아름다운 노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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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거미 | 날 그만 잊어요(기타 버전)<br>Rod Stuart | I Don't Wanna Talk about It<br>Carla Minogue | The Winter is Mild<br>오즈 | 꿈속에서<br>김성호 |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br>장필순 |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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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음악감상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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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7 Nov 2009 04:45:20 GMT</pubDate>
		<dc:creator>에스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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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피아노 선율이 아름다운 노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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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김건모 | 아름다운 이별<br>티노 | Message of Love<br>Britney Spears | Everyti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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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음악감상실</category>

		<comments>http://esjin.egloos.com/2471497#comments</comments>
		<pubDate>Sat, 07 Nov 2009 04:36:21 GMT</pubDate>
		<dc:creator>에스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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