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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人間失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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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잡문과 소설의 파편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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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9 Oct 2009 15:38:4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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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人間失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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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잡문과 소설의 파편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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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비정치적이길 원할수록 정치적이 되는 역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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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br>모든 시스템은 정치의 결과이며, 반대로 모든 정치는 그 시스템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시스템 자체가 정치다. 그러나 헌재라는 시스템은 자신의 본질을 배반하며, 증류수처럼 투명해지길 원한다. 그것은 좁은 의미의 정치를, 즉 입법행위와 그 입법행위의 주관자들이 벌이는 게임을 자신과는 무관하며 철저하게 독립적인 별개의 행위로 받아들인다. 이 시스템의 무의식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비정치적인, 법의 내적논리라는 연료로만 작동되는 기계로 정립하기를 원한다.</p><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헌재가 그러거나 말거나, 하지만 비정치적이길 원할수록 정치적이 되는 역설은 개인에게든, 시스템에게든 예외를 두지 않는다. ‘정치적 중립’은 경제학이 이야기하는 완전경쟁시장처럼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상상할 수는 있으나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은 없는 것이다. 이 정치적 중립이라는 가면은 지배의 논리에서 탄생했고, 지배의 구조에 의해 지탱된다. 중립은 정치적, 경제적 소외에 대해 말하지 않고, 따라서 정의에 대해 눈을 감는다.</p><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그 환상적인 마약에 취한 헌재는 오늘 말했다. 국회의원들의 권한이 침해된 부분은 인정한다, 그러나 권한이 침해된 상태에서 제정된 법률의 유, 무효 여부는 판단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입법행위 자체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좁은 의미의 정치와는 끝내 거리를 두겠다는 의미다. 입법부가 알아서 하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은 비정치적임을 선언함 셈이다. 조롱거리가 될 것임이 뻔한 논리의 파괴까지 감수하며, 이 시스템은 자신의 이미지를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p><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그리하여 그 결과로, 헌재는 극도로 정치적인 결과를 산출했다. 제정절차에 위법성이 있더라도, 헌법은 엿이나 먹으라며 분탕질을 쳐도, 이미 제정된 법률의 효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삼권의 분립이 삼권이 서로를 외면하라는 의미가 아님에도, 끝내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 자신이 이미 정치라는 사실을 외면한, 자신을 소외시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p><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br>ps. 9인의 재판관 중 3인은 다음과 같이 무효확인청구에 인용의견을 냈다. 그리고 그들의 자백과 같이, 헌재는 사명을 포기했다.</p><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br>이 사건 신문법안은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아니하여 국회 본회의에서 질의․토론을 생략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안취지 설명이나 질의․토론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표결된 것이므로, 국회의 의결을 국민의 의사로 간주하는 대의효과를 부여하기 위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신문법안에 대한 국회의 의결은 국민의 의사로 간주될 수 없으므로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다. </p><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더구나 이 사건 신문법안의 경우 질의․토론절차가 생략된 점 외에도, 표결과정이 극도로 무질서하게 진행되어 표결절차의 공정성, 표결결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바, 위의 사유들은 중첩적으로 결합하여 중대한 무효사유를 구성한다. </p><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00%; MARGIN-RIGHT: 30pt">이처럼 법률안에 대한 국회의 의결이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한을 침해한 경우, 그러한 권한침해행위를 제거하기 위하여는 권한침해행위들이 집약된 결과로 이루어진 가결선포행위의 무효를 확인하거나 취소하여야 한다. 가결선포행위의 심의·표결권한 침해를 확인하면서, 그 위헌성․위법성을 시정하는 문제는 국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모든 국가작용이 헌법질서에 맞추어 행사되도록 통제하여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p><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30pt; MARGIN-RIGHT: 30pt"><p class="바탕글"></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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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9 Oct 2009 15:36:32 GMT</pubDate>
		<dc:creator>디오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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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아메리칸 사이코 (By 브렛 이스턴 엘리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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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left"></div><a name="[문서의 처음]"></a><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09/08/58/c0003658_4aa552ebdda92.jpg" width="280" height="43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09/08/58/c0003658_4aa552ebdda92.jpg');" /></div><br>&nbsp;&nbsp;&nbsp; 무감각의 지옥이 빚어내는 카탈로그 호러</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문구를 인용하며 시작하는 소설은 명확하게 독자를 현실의 지옥으로 초대한다. 그런데 이 지옥은 중세의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파생된 죄와 벌의 향연과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적 고뇌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무감각의 지옥이다. 예컨대, 신곡의 우골리노 백작은 자식의 시체를 먹은 엽기적인 죄를 저질러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지만, 이 이야기에는 받아들일만한 전후와 맥락이 존재하며, 굶주림이라는 고통과 절망에 대한 묘사가 들어 있다. 그러나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트먼은 아무 이유 없이 여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뜯어먹으며, 요리한다. 이 지옥에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사물이고, 상품이다. 심지어 화자인 베이트먼 자신도 사물에 불과하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패트릭 베이트먼이라는 악마는 소설 속에 언급된 대로 하나의 개념, 추상이다. 그는 현대 소비사회로 불려나온 종이인형과 같다. 이 종이인형은 내면이 없으므로, 외부의 소비품으로 치장을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이 언급되는 명품 브랜드들, 가전제품에 대한 설명서 보다 자세한 묘사, 이국적인 요리들의 외양(맛은 중요하지 않다), CD 부클릿에 적힐 만한 음반평, 어딘가에서 아름답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 따온 것 같은 그의 현실인식, 이 모든 것이 어울려 소설은 마치 화자가 애용하는 잘 빠진 잡지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카탈로그의 세계는 화려하고 명징하며, 더듬거리는 법이 없다. 반면 베이트먼의 주변에서 실제 ‘사람’으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모호하고, 베이트먼처럼 얄팍하다. 그들의 중심 없는 대화는 늘 엇나간다. 아무도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다. 관계는 삐걱거린다. 아니, 사실 관계라고 정의할 만한 관계는 하나도 없다. 베이트먼은 늘 누군가를 누군가로 착각하고, 그들도 베이트먼을 늘 다른 이름으로 불러댄다. 그렇게 베이트먼은 진정한 실체를 갖추지 못한 채 끝없이 떠다닌다. 사실 종이인형은 모두 비슷해, 구별이 어렵다. 잡지의 비싼 명품을 입어도, 좋은 가전제품을 써도, 이름난 식당에 가서 유명한 요리를 먹어도, 이 익명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소설 내의 잔인한 살해 장면과 포르노적인 성애묘사는 이 한 권의 명품 잡지에 들어있어서는 안 되는, 불길하고 끔찍한 소비사회의 배면을 드러낸다. 별다른 플롯도 없이, 역설적으로 살해와 섹스만이 작품 내에서 유일하게 생기를 띤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작가인 브렛 이스턴 엘리스가 단지 변태적인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런 구성을 취하지 않았음은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지루한 상품광고의 나열, 종잡을 수 없는 잡담의 행렬과 충격적인 육체의 훼손은 서로 대비되어 서로의 색깔을 분명하게 한다. 베이트먼이 출구로 선택한 이 극단적인 길은, 그러나 금방 생동감을 잃고 또다시 거대한 소비문화로 포섭된다. 종이인형은 사실 자신이 관람한 유혈낭자한 포르노를 ‘따라하고’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자신만의 것이 없다. 순간적으로 그것을 뛰어넘는 창작성을 발휘하기도 하지만(예를 들어 자신의 아파트에서 발견한 쥐를 이용하는 고문), 결국 그의 살해행위와 잔인한 고문 역시 조금 별난 포르노 잡지 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 지점에서 결국 소설은 무시무시한 공허와 공포를 자아낸다. 고문포르노 잡지와 명품 브랜드 잡지가 교접된 이 세계에서 사물화 되지 않은, 진정으로 인간적인 행위는 아무 것도 없으므로.</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아메리칸 사이코’는 80년대 말 아메리카의 여피(Yuppie)라는 한정된 시대와 계층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지평을 획득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시대의 문명과, 그 안에서 방황하는 한 괴물의 초상은 부분 부분 현대인의 내부에 도사린 괴물과 겹친다. 소설 속에서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가 ‘사랑의 힘(Power Of Love)'을 신나게 불러대도, ’휘트니 휴스턴‘이 ’무엇보다 위대한 사랑(The Greatest Love Of All)'을 목청껏 외쳐도, 그런 사랑은 노래 속에만 있다. 잡지들의 세계인 이곳에는 없다. 그렇다면 출구는? 소설의 마지막 문구대로 ‘이곳이 출구가 아님’은 명백하다. 그러나 길을 찾는 것은 우리 시대에는 요원해 보인다. 오늘도 피상적인 인간관계 안에서 패션과 가전제품, 사는 아파트 등으로 스스로를 타인과 구별해야만 하는, 더 사랑하고 베푸는 것보다는, 상품을 더 많이 갖는 것에 골몰하는 우리는, 종이인형 베이트먼의 모습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극도로 숙연해진 마음을 쓰다듬으며 떠올린 이 의문은, 이 파괴적인 작품을 읽은 독자들 모두의 뇌리에 선연할 것이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p><br/><br/>tag : <a href="/tag/서평" rel="tag">서평</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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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서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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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7 Sep 2009 18:38:29 GMT</pubDate>
		<dc:creator>디오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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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굿바이 파라다이스 (by 강지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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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9/03/58/c0003658_4a9eaada66168.jpg" width="164" height="24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9/03/58/c0003658_4a9eaada66168.jpg');" /></div><br><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비밀과 거짓말, 경계의 존재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lt;굿바이 파라다이스&gt;를 읽는 것은 재미있고도 현기증 나는 경험이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장르의 법칙을 따라 흘러가나 싶다가, 돌연 방향을 바꿔 딴청을 한다. 무섭다가 우습고, 끔찍함에 눈살을 찌푸리다 어느새 애잔한 서글픔에 잠기게 된다. 이곳에는 기성품이 없다. 롤러코스터와 귀신의 집이 섞여 있고, 컬트전문 영화관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조용한 도서관에서 진중한 책을 들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책을 덮으면 서서히 책 안에 주조된 이미지의 잔상들이 머릿속을 뒤덮는다. 잘 꾸며진 전시회를 관람했을 때처럼.</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때문에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작가의 시선이 가닿은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죽음’과 ‘죽음의 욕망’이 눈에 띄지만, 실상 그것은 표피에 불과하거나, 미스터리나 호러 장르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종착지일 가능성이 높다. 좀 더 내밀한 키워드는 비밀과 거짓말이다. 그리고 이 비밀과 거짓말에 의한 소통불능 상태에 있는 존재들이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을 만든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그녀의 거짓말’에 등장하는 그녀는 존재가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비밀이다. ‘안녕, 나디아’의 살인마는 존재가 비밀이다. 그의 비밀스러운 취미는 나디아의 거짓말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벌집에는 벌이 살지 않는다’의 희극은 벌집의 군상들이 모두 고만고만한 거짓을 가장하는 데서 나온다. ‘하나의 심장’에서는 동일한 몸에 속한 존재가 서로에게 비밀을 갖는다. ‘사향나무 로맨스’나 ‘시선’은 애초부터 인간의 모습을 한 어떤 다른 존재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비밀을 지닌 의뭉스러운 거짓말이 된다. ‘캣 오 나인 테일즈’는 비밀의 공간을 다룬 이야기이고, 표제작인 ‘굿바이 파라다이스’가 가리키는 곳은 현실의 생이 거짓말 같이 흐물거리고 증발되는 지점이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이 비밀과 거짓말이 만들어내는 존재들은 언제나 어딘가의 경계에 서 있는, 그래서 불안하고 불안정한 군상들이다. 아니, 거꾸로 말할 수도 있겠다. 경계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비밀과 거짓말로 자신을 감추고, 드러내지 못한다. 그 경계의 존재들은 다양하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현란한 색채를 갖는 것은, 그 군상들의 색깔이 하나로 뭉뚱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남과 여의 중간에 선 트랜스젠더, 죽음과 삶의 사이에 낀 자살자, 정상의 사회와 비정상의 내면에 낀 살인마, 나와 너의 구분이 아예 무의미해지는 샴쌍둥이, 시체와 인간의 중간 지점인 좀비를 비롯해, 심지어는 개와 인간, 나무와 인간의 경계도 나타난다. 동식물과 죽음, 몸과 성애를 아우르는, 말하자면 거의 모든 종류의 경계가 하나의 작품집 안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불안정한 존재들은 사라지기 쉽다. ‘굿바이 파라다이스’의 세계에서 비극이 일어나는 것은, 그러므로 그들의 원죄에 의한 것이다. 사라져야만 하니까 사라지고, 죽어야 하니까 죽는 것이다. 이야기가 때로 서글픈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이 사라짐의 미학에 기댄 바가 크다. 그들은 단단하고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비밀과 거짓말에 불과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숨을 쉬고 있어야 하는 존재들이다. 작가가 담담하면서도 매혹적인 어조의 문장으로 길어 올린 이들은 그래서 서글프다. 심지어 살인마마저도 애처롭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극단의 상상을 조금 벗겨내고 그 내밀한 곳을 들여다보면, 결국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 인간을 향해 손가락을 뻗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물이든 경계선을 확정해야 그 본모습이 보인다. 우리의 경계선을 뛰어난 입담으로 세밀하게 그려나간 첫 작품집에서 ‘무서운 신예’라는 고색창연한 단어를 증명해낸 작가가, 조금씩 엿보이는 소재주의의 함정을 벗어나 사람에 대한 좀 더 깊은 성찰을 보여주길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첫 작품집에서 보여준 자신만의 색깔을 간직한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물론이고.</span>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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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2 Sep 2009 17:27:1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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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목포의 눈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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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99156&amp;CMPT_CD=P0000">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99156&amp;CMPT_CD=P0000</a><br><br><a name="[문서의 처음]"></a><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nbsp;<a name="[문서의 처음]"></a></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1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유달산 아래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모습은 언제나 똑같았다. 일곱 살에 아빠 손에 이끌려 올랐을 때나, 머리가 커져 술병을 들고 친구들과 같이 올랐을 때나. 도시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섞인 냄새에 감싸여 있었고, 늘 축축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겼다. 뒷골목에서는 중, 고교에서 짱 먹던 놈들이 슬슬 무슨 무슨 파에 들어가 중심상가 근처에서 출몰한다는 얘기들이 돌았고, 집 근처 놀이터에서는 누군가가 누군가의 칼침을 맞아 죽었다는 얘기가 괴담처럼 떠돌았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늘 똑같았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1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12살 때 처음 광주사태 (그때는 아직 이렇게 불렀다) 사진전에 가서 탱크에 갈렸다는 누군가의&nbsp;처참한 얼굴, 아니 살과 핏덩어리를 봤고,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을 목격했다. 무서워 벌벌 떨면서, 다음날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옆집의 아줌마는 어머니에게 그 당시 광주로 들어가다가 길가에서 잘린 손목을 봤다는 얘기를 했고, 우연히 그 얘기를 듣게 된 나는 또 벌벌 떨었다. 중학교 시절 어떤 선생님은 전라도 사람은 뭘 해도 안 된다는 말을 푸념과 자조 섞은 채, 아무 것도 모르는 까까머리들에게 내뱉었고,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지만, 뭔가를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벗어나면, 이 우리에서 나가면 차별과 멸시가 쏟아지리라, 그런 강한 예감은 머리가 굵어져감에 따라 점점 불길한 확신으로 변해갔다. 아무 것도 몰랐지만, 내 어머니가 TV를 보면서 전라도 사람은 왜 만날 깡패나 가정부로 나오느냐고 지나가듯 불평하셨을 때, 그 의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도시를 떠나 처음으로 사귄 여자의 어머니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고, 머뭇거리며 목포라고 답하며, 순간적으로 변하는 그 어머니의 눈빛을 보았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누구도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무거운 역사가 도시 전체를 누르고 있는 상태에서, 저발전의 폐쇄된 도시가 한 줌의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그곳에서 배우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의원이 된 입지전적인 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 사람은 도시의 밑바닥에, 의식과 무의식에 침전물처럼 고여 있었다. 그를 통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도시가 변하리라는 믿음은 확고했다. 그의 싸움과 인생은 우리의 것으로 동일시되었고, 우상화되었고, 어느 면에서는 신격화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라기보다 상징으로, 도시의 배면에 웅크린 동상이 되어갔다. 그 무시무시한 기대와 희망이 한 사람의 좁은 어깨에 걸리는 상황은 도시와 그 사람을 동시에 소외시키는 것이었지만, 그렇다면 어떤가. 숨구멍이 그것뿐이었고, 누구라도 숨은 쉬어야 했다. 도시가 그 무거운 짐을 지웠음에도,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아니, 불평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닫히면 그 어디에도 출구가 없게 됨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서로가 소외됨에 따라 온갖 해악이 악귀처럼 따라붙었지만, 모리배가 그를 등에 업고 출마해도 떡하니 의원배지를 달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도시는 그라는 공기마저 없었다면 질식했을 것이었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그가 떠나고, 도시의 누군가는 딸의 손을 잡고서 그를 추모한다. 땀내처럼 시큰한 바다 바람이 역전에 마련된 분향소의 향에서 피어난 연기를 감싸고 돌 것이다. 골목의 술집에서, 복덕방에서, 미용실에서는 애도의 대화들이 떠돌 것이다. 그와 도시가 서로 맹목적으로 기댔던 시대는 이제 저물었지만, 도시가 아프고 절절하게 울지는 않겠지만,&nbsp;그에 대한 기억과 아련한 상실감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술 한 잔 걸치고 이 시시껄렁한 잡문을 휘갈기는 내게 그렇듯이.</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p></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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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9 Aug 2009 17:16:1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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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0818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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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최초로 폭압적 정권을 선거에 의해 교체시킨 하나의 상징이 스러졌다. 날은 말 할 수 없이 더웠고, 서거 소식에<br>놀란 쥐가슴 정권은 또 전경을 풀어 광장을 봉쇄했다. 빨갱이 좌파라며 낙인을 붙여댔던 언론의 인터넷 댓글란<br>에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곤 쥐똥만큼도 없는 자들이 몰려들어 잘 죽었다고, 진작에 죽었어야 했다고, 아예 태어<br>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적었다. 그를 죽이려 했던 자의 딸과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자는 악어처럼 조문했고,<br>그런 여름날에, 또 한 사람이 죽었다.<br><br>평화롭게 영면하시길.<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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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8 Aug 2009 16:14:5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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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참담한 수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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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nbsp;&nbsp;&nbsp;&nbsp; <a h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190">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190</a><br><br>&nbsp;<a name="[문서의 처음]"></a><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a name="[문서의 처음]"></a></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별 거지 같은 꼴 다 보겠네, 라고 눈을 돌려버리기엔, 그 수준이 너무도 참담하다. 이런&nbsp;게 사회적 공론장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인가? 말과 글이 참 고생한다. 자칭 우리 세대의 대표 논객이라는 변모의 글은, 유치찬란하다 못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다. 논객이라며? 그럼 뭔가를 논해야지, 똥을 싸지르지 말고.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곰곰이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변모와 같은 학번에, 같은 공간에서 20대를 보낸 나는 그가 이런 식으로 공론장에 등장할 때마다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린다.&nbsp;알량한 지식과 학벌을 수구언론과 집권당에게 팔아먹으면서 가볍기 짝이 없는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가 애처롭고, 이런 자가 대표논객이라고 득세하는 상황을 만드는데&nbsp;두 손을 놓음으로써 일조했다는&nbsp;게 너무도 쪽팔린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세대'라는 단어를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쓰자면, 우리 세대는 세대를 대표할 만한 담론 지식인을 생산하는데 실패했다. 뼈아픈 일이다. 그러니 저런&nbsp;자가 튀어나올 밖에. 악화는 양화로 구축할 수밖에 없는데, 양화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생산적인 주제를 던지고, 세대에 맞는 패기로 기득권과 부딪히는 논객이 절실하다. 하기야 진중하게 사회에 대해 성찰하고, 그 안에서 할 일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묵묵히 제 할일을 할 뿐, 저런 모자란 짓을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공론장에서 말과 글로 토론하고, 오른쪽으로 정향된 담론지형을 재정향 시키는&nbsp;&nbsp;우리 세대가&nbsp;보이지 않는 것은 심각한&nbsp;문제다. 진중권이 언제적 사람인가. 사구체논쟁의 이진경과 같은 시대의 인물이 변모랑 맞짱뜨는 건 무슨 에스에프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그 논쟁의 수준은, 뭐 이건 논쟁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정말 뭔가 너무하잖은가. 정말이지 눈물 날 지경이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덧.</span><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대학 때부터 글을 싸질렀다는데, 정말 변모의 글은 본 기억이 없다. 혹시 이 자의 글이 학내에서 유통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면, 가끔 들르는 선후배 여러분의 제보 바람. 그냥 순수한 호기심에.</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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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7 Aug 2009 19:42:5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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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한국공포문학단편선 4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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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7/28/58/c0003658_4a6ec2a0c47d8.jpg" width="189" height="259"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7/28/58/c0003658_4a6ec2a0c47d8.jpg');" /></div><br><br>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권. 소설 '더블'로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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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8 Jul 2009 09:20:4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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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야만적 의회주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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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4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0%; MARGIN-RIGHT: 40pt"><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br>&nbsp;<a name="[문서의 처음]"></a></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1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nbsp;<a name="[문서의 처음]"></a></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간에는 그 어떤 필연적인 관계도 없다. 둘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게다가 투표 때에만 간신히 그 껍데기 뿐인 의미를 획득하는 대의제란 이름은,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한다'라는, 매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명제에만 묶여 있다. 그 꼴같잖은 명제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은폐된 거대한 구멍이 보인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의회주의가 태동했을 때는 신분제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말하자면 신분별 대표라는 것이 가능했다. 성직자는 성직자의 대표로, 귀족은 귀족의 대표로, 평민은 평민의 대표로 기능했다(그 안에서도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사이의 실질적인 불일치는 존재했지만). 신분제가 쳘폐되고 근대국가가 출현하고, 모두가 '국민'으로 호명되는 순간 의회주의는 그런 형식상의 일치조차 잃어버렸다. 계급은 분화됐지만 계급별 대표는 없다. 실제로 평등하지 않지만, 선거 때에만 평등하다고 강요되는 우리는 지역별로 나뉘어 누군가를 우리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선출해야만 하는, 한줌의 정치적 자유를 누릴 뿐이다.</span><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이 땅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표하는 자의 후보들은 대부분 재벌, 거대언론, 수구정치, 법조 권력의 근친교배에 의해 탄생한 그들의 아이들이다. 지역민의 공통된 이익이라는 불가능한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선출된 그들은 본질적으로 아버지의 이익을 위해 기능한다. 그 구멍과 간극을 메우기 위해 언론이 작동하고, 국민 공통의 이익이라는 불가능한 담론체계가 구성된다. FTA는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미디어법은 일자리를 2만 개나 늘려줍니다. etc, etc.</span><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은폐는 교묘하게 작동해야 한다. 그것이 드러나면 이 시스템의 큰 구멍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그런 거 없다. 지역주의라는 강력한 성령의 가호를 받는 대표하는 자들은, 어느 순간 그 은폐가 깨지고 본질적인 문제를 향해 담론이 접근해도 망설이지 않는다. 일자리 2만 개 설이 근거가 없다? 어쨌든 경제에 도움이 된다니까! 국민들의 70%가 반대한다? 국민들이 뭘 알아? 여론에 입법권을 맡기자는 소리는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거야! 흡사 이건 조중동을 위한 법이 아닌가? 그래, 그렇다면 어쩔래?</span><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남은 것은 형식상의 정당성을 휘두르는 것뿐일 때, 그나마 의회주의에서 기대해 볼 수 있는 토론과 합의마저 요단강 너머로 건너간다. 괴물 아버지를 위해 거수기 역할을 하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초상이 괴물화 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온 몸으로 자신들이 괴물의 씨앗임을 증명한다. 재투표, 대리투표, 뭐든 상관없다. 헌법, 좆까라 그래라. 은폐가 사라지면 절박함만 남는다. 전투에서 승리하면 다시 은폐가 가능하다는 절대적인 믿음은 그 절박함을 뒤에서 조종한다.</span><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이 야만적 의회주의가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얼굴은 참혹하다. 칼 들고 설치다가 가면이 벗겨진 공포영화 속 살인마의 모습이다. 그때 살인마는 주춤한다. 그러나 곧, 아무렇지도 않게 가면을 쓰고 다시 칼질을 할 것이다. 죽여도 죽지 않고 속편에 나와 또 찌르고 벨 것이다. 경찰은 보이지도 않고, 법은 있으나 마나다. 남은 길은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다행히도 '시민'이라는 이름의 이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 다만 피를 흘릴 뿐. 철철 흘릴 뿐.</span> <br></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67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p></span><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1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p><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4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0%; MARGIN-RIGHT: 40pt"></span><br><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img height="303" alt="포스터" src="http://imgmovie.naver.com/mdi/mi/0659/F5901-00.jpg" width="210"><br><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p><p></p><div style="TEXT-ALIGN: center"></div><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50pt; 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0%; MARGIN-RIGHT: 50pt"><br><br>*&nbsp;뉴스 보며 욕질을 하다가 몇 글자 적은 심장글. 씨발.</p><br/><br/>tag : <a href="/tag/미디어법" rel="tag">미디어법</a>,&nbsp;<a href="/tag/의회주의" rel="tag">의회주의</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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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2 Jul 2009 16:54:20 GMT</pubDate>
		<dc:creator>디오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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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마트, 아파트, 자동차, 지속불가능한 삶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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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a name="[문서의 처음]"></a></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a name="[문서의 처음]"></a></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br>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 라는 말은 노래가사에나 어울리지 사실과는 다르다. 내 삶을 디자인 하는 건 팔 할이 공간이다.&nbsp;공간이 바로 우리가 무엇을 소유해야 할지 결정해주고, 일상을 어떻게 구성할지 말해준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주택에 사는 사람의 하루는 다르고, 서울의 중심에 사는 사람과 베드타운에서 사는 사람의 시간은 그 구성에서 질적으로 달라진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7/21/58/c0003658_4a65af7e6f7fe.jpg" width="500" height="308.38323353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7/21/58/c0003658_4a65af7e6f7fe.jpg');" /></div><br><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대한민국 아파트 공화국의 시민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재래시장을 찾지 않는다. 아니, 찾지 못한다.&nbsp;월화수목금, 에 일하고, 토, 혹은 일요일에,&nbsp;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대형쇼핑몰로 향한다.&nbsp;몰려나온 사람들과&nbsp;주차장을 빽빽하게 채운 자동차를 향해 투덜거리면서&nbsp;주차할 자리를 찾다가 간신히 빈 곳을 발견해 차를 세우고, 그곳에서 한꺼번에 월화수목금, 에 일용할 양식을, 자동차 트렁크에 들어갈 만큼&nbsp;구입한다.&nbsp;이 과정이 아파트-이마트-자동차로 연결된 삼각구도 디자인이 지시하는 해답이다. 그 안에&nbsp;편입된 어떤 시민이, 그 절차를 무시하면 당장 불편함이란 징벌이 이뤄진다.&nbsp;좀 더 편하게 살려면 아파트로&nbsp;가야해. 아, 차가 없으니까&nbsp;너무 불편해.&nbsp;매일 요 앞 가게에서 장보기 불편해, 물건도&nbsp;별로 없고.&nbsp;하나의 요소는 다른 요소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필요를 불러일으킨다. 아파트에 살기 위해서는 차가 있어야 한다. 차가 있다면 대형쇼핑몰에 가야한다. 대형쇼핑몰에 가면, 많이 사야한다. 많이 사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 차가 있다면 대형쇼핑몰에 가야한다. 대형쇼핑몰에 가려면 아파트에 살아주는 것은 기본.</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아메리카적인&nbsp;도시계획의 롤 모델에 따라 설계된 이 아파트 공화국은 아파트 건설사와 자동차 회사와 대형쇼핑체인의 자본축적에 극히 유리하게 디자인 되었을 뿐, 사실 공화국의 시민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마트에 가기 위해 자동차를 굴리는동안 비싼 기름값을 지불해야 하고, 공기는 그만큼의 배기가스로 더럽혀진다. 계산적으로, 혹은 심리학적으로&nbsp;구매를 조장하는 쇼핑몰에서 계획적인 소비를 하기란 부처님 수준의 인내력이 아니고서야 매우 어렵다. 아, 갑자기 등심이 땡기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모기약이 없어. 내 차에 껌 좀 사놔야겠지. 이것저것 사들고 와 냉장고를 채워놓고, 그 다음 주에 미처 소비하지 못해 쓰레기봉투로 직행한 음식물만 한 가득이다. 만약 지옥이 불교에서 그린 대로라면, 나는 버린 음식들의 늪에 푹 잠길지도 모르겠다.</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요컨대, 이마트-아파트-자동차의 삶이란 과잉소비의 삶이다.&nbsp;필요보다 넘치는 소비, 필요보다 넘치는 생활은 당장은 문제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nbsp;시간은 그런 삶에 가차 없을 것이다. 과잉소비는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파국을&nbsp;호출해, 냉혹하지만 단호하게 삶의 모습들을 다시 디자인하도록 강제할 것이다.&nbsp;과잉소비를 탯줄로 삼아 기생하는 자본에&nbsp;일방적으로 유리한 대형화, 집약화 된 디자인은 열역학 법칙으로 봐도 지속이 불가능하다. 쥐가 풀 뜯어 먹는 ‘녹색성장’ 같은 소리야, 그저&nbsp;마타도어에 불과하다. </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이기적인 심사에 설마 우리 시대에 그런 파국이 있겠느냐,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연못에 연꽃이 반만 덮였다고 안심했다간 다음날 못을 뒤덮은 연꽃들을 목도하게 된다는 교훈은, 그 위로를 불안으로 바꾼다. 연꽃은 보는 재미라도 있지, 파괴되는 삶이란 그저 끔찍할 뿐이다. 그 파괴의 정도도 계급에 따라 달라질 것이란 예상은 더 끔찍하고.</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 재래시장과 이마트에 관한 몇몇 글들을 보다 문득 생각나 적은 심장글.</span> </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27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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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1 Jul 2009 12:07:50 GMT</pubDate>
		<dc:creator>디오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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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비극, 혹은 살인의 역전 -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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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image_mid"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style="CURSOR: pointer"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906/23/77/d0067777_4a402741990e8.jpg');" height="453"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906/23/77/d0067777_4a402741990e8.jpg" width="317" border="0"></div><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Gulim'"><br>&nbsp;</span></span><a name="[문서의 처음]"></a> <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Gulim'">시드니 루멧은 독한 감독이다. 젊을 때도 그랬고, 늙어서는 더하다. 어디쯤 가다 멈춰 서는 법이 좀체 없다. 가려면 끝까지, 갈 때까지 가보자는 냉혹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그랬고, '네트워크'에서는 폭발했으며 이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에 와서는 그 냉혹함이 더 꼬장꼬장해졌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무려 58년 작품이다. 그는 반세기 동안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여든이 넘어 어디 이거 한 번 봐라, 하고 툭 던져놓은 게 이 영화다. 그런데, 관조와 여유? 그딴 거 없다. 노인의 넉넉함과 처세? 그게 뭔가?&nbsp; 먹는 건가?<br><br>'전대미문의 가족잔혹사'라고 포스터가 홍보하는 문구를 펼쳐놓으면 다음과 같다.&nbsp;두 아들이 돈 때문에 아버지의 보석가게를 털려다 실패하고, 일이 꼬여 어머니가 죽는다. 아버지는 아들이 범인임을 알아내고 아들을 죽인다. 확실히 막장이다. 잔혹하고, 비극적이다. </span></span></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0px 5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Gulim'">이야기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다.&nbsp;친족살해는 3천 년 전 그리스에서부터 비극이었다. 그리고 그 비극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신들의 장난이었다.&nbsp;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페르세우스가 외할아버지를 살해하게 된&nbsp;데에는&nbsp;불가해한 신들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었다. 예언을 피하려다 오히려 예언에 발목 잡혀 아들과 손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구세대'는 장막 뒤에서 인간들을 졸처럼 다루는 신들에 의한 희생자였다. </span></span></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0px 5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이 영화의 비극도 확실히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신의 이름이 좀 다르다. 인간이 붙인 그 신의 이름은 물신(Fetish)이다. 화폐와 상품이라는 이 거대한 신이, 돈과 마약이 형제를 움직였고, 비극을 탄생시켰다. 물신 역시 인간을 졸처럼 다루는 것에는 그리스의 신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는 살해의 방향이 뒤집혀 있다. 아래(아들)에서부터 위(아버지)가 아니다.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 살해가 역전된다. 비극이 향하는 초점 역시 미묘하게 변주된다. 아들은 그리스의 구세대처럼 무고하지 않다. 그는 죄를 저질렀고, 그래서 단죄당했다.</span> </span></span></span></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0px 5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Gulim'"></span></span></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0px 5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Gulim'">시드니 루멧은 물신주의를 다룰 때 특히 더 독해진다. ‘네트워크’는 미디어 물신에 휘둘리는 온갖 인간군상이 벌이는 한바탕의 난장을 기름기 쭉 뺀 채 보여준 수작이었다. 그 영화, 결말에 가서는 감독 자신의 페르소나처럼 보이는 피터 핀치가 미디어 앞에서 할 말 다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명백한 자기 살해다. 영화라는 미디어를 통해 미디어 자체의 추악함을 고발하는 감독 자신의 머리에, 총알이 날아와 박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span></span></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0px 5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에서, 이번에 감독의 그림자를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버지 역의 알버트 피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기 살해가 아니다. ‘네트워크’에서 30년이 지난 다음에 보여준 이 살해는 냉정하고 계획적인 파괴다. 아버지는 분노에 휩싸여 우발적으로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 생각하고, 간호사를 속이고, 그 다음 숨을 거둬갔다. 그 살해가 단순히 아들이라는 한 존재를 향하고 있지 않음은 명백하다. 아버지의 손이, 의미를 확장해서 감독의 손이 목을 조르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장막 뒤의 신이다. 물신. 그 거대한 신. 욕망을 창조하고, 그 욕망이 거꾸로 만들어 낸, 결코 잡을 수 없는 그것. 30년 전에 머리를 향해 날아온 총알로 변신했던 것. 이번에는 그것에게 복수하지만, 사실 그 복수는 실패한 것이다. 그 신의 목은 아무도 움켜쥘 수 없다. 움켜쥐려 하면, 아들을 죽이게 될 뿐이다. 아버지의 등이 그렇게도 쓸쓸하게 보이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span> </span></span></span></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0px 5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br><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Gulim'"></span></span></span></p><p style="FONT-SIZE: 13px; MARGIN: 0px 0px 5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Gulim'">아버지가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에, 자막이 올라간다. 배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너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했다’라는 신파조의 대사가 눈에 들어와 박힌다. 이 어처구니없는 번역자의 참견은 실소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 드라마를 단순한 인간들의 극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가를 증명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아버지의 살해를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만들어낸, 그래도 아들인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이 영화 말이 안 되는구나, 하는 사고의 고리가 만들어낸 희극. 아버지의 살해가 실제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가늠하지 못한 실수에 다름 아니다. 덕분에 실제로는 움켜잡을 수 없는 물신의 모가지 대신 아들을 죽이고, 환한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풍부한 울림을 주는 장면이 희한한 블랙코미디가 되었으니, 어쩌면 콜렉터들이 한국 개봉판을 수집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span></span></span><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Dotum'"><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굴림','Gulim'"><br></span></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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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6 Jul 2009 12:02:0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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