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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rwegian wood</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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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The Techniques of Thinking</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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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Nov 2009 10:38:1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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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11월 25일 상상마당 서울 포럼 강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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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class="article_header"><h3 class="font1" id="articleTitle">서울문화포럼 '서울다움찾기' 수요 강연대담 개최</h3><div class="sponsor"><a onclick="news_nds('news_imglogo');" href="http://prlink.yonhapnews.co.kr/" target="_blank"><img title="연합뉴스 보도자료" alt="연합뉴스 보도자료" src="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98.gif"></a> <span class="bar">|</span> 기사입력 <span class="t11">2009-11-19 15:09</span> </div></div><div class="article_body font1 size4" id="articleBody"><div id="keyword_layer" style="Z-INDEX: 20; POSITION: absolute"></div><br clear="all"><table style="CLEAR: both"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50" align="center" border="0"><tbody><tr><td style="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2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0px" align="middle"><img height="1565" src="http://www.scf21.org/upload/img/scf_4_650(0).jpg" width="650" usemap="#Map" border="0"></td></tr></tbody></table><br>'아티스트와 서울의 관계'를 주제로 &lt;서울다움찾기 수요 강연대담 시선 4. 아티스트와 도시, 서울의 관계&gt; 도시를 바라보는 아티스트의 시선과 창조적인 해석을 통해 서울을 재발견하다.<br><br>서울문화포럼 지역문화연구 프로젝트 &lt;서울다움 찾기: 서울을 바라보는 네 개의 시선(이하 서울다움 찾기)&gt;의 네 번째 '수요 강연대담'이 오는 25일 오후 4시부터 홍대 상상마당 아카데미실에서 개최된다. 이번 강연대담에서는 '아티스트와 도시, 서울의 관계'를 주제로 서울을 바라보는 아티스트의 생각을 나누어본다. 서울의 지역적 정체성이나 서울 전반이 지니고 있는 숨겨진 이면에 대한 아티스트의 시선과 창조적인 해석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br><br>먼저 '서울 생활의 발견, 미와 현실의 가장자리에서'를 주제로 강수미 미술평론가의 강연이 진행된다. 강수미 미술평론가는 도시의 일상적 구조와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바탕으로 '예술과 삶의 융합'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을 동시대의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작품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양자의 관계는 무엇이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논해보는 시간이 될 예정이다. 이어 박성태 공간사 편집총괄이 진행하고 고원석 공간화랑 큐레이터가 참여하는 대담을 통해 아티스트와 도시가 어떻게 소통하고 상호작용을 이루고 있는지 논해보고자 한다. 도시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통해 서울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br><br>서울문화포럼은 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문화코드로 본 이태원', '창조지구와 지역가치: 문래동 예술창작촌', '경동시장의 장소성과 현대화', '아티스트와 서울의 관계'의 크게 4개의 주제를 기반으로 한 지역문화연구를 진행하여 왔다. 또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수요 강연대담' 을 개최하여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서울을 이루는 다양한 지역문화를 살펴본 바 있다. 오는 12월 5일에는 그동안 진행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토요 열린포럼'이 개최된다.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개최되는 이번 포럼은 우리가 사는 서울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문화적 해석, 그리고 가치에 대한 생각들은 나누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br><br>'수요 강연대담'과 '토요 열린포럼'은 학생 및 일반시민에게 열려있는 프로그램으로 별도의 참가비는 없으며 참여를 원하는 서울문화포럼 사무국으로 메일(program@scf21.org) 또는 팩스(02-722-7810)를 통해 참가신청이 가능하다.(문의: 사무국 02-722-7916,7)<br><br>출처 : 서울문화포럼<br><br>본 콘텐츠는 해당기관의 보도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br></div><br/><br/>tag : <a href="/tag/서울다움찾기" rel="tag">서울다움찾기</a>,&nbsp;<a href="/tag/서울생활의발견" rel="tag">서울생활의발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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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인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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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강수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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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00년대 한국미술의 정치학- 모든 것이 가능한 곳에서 위반을 상연하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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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2pt"><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2000년대 한국미술의 정치학</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2pt"><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 모든 것이 가능한 곳에서 위반을 상연하기</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nbsp; <o:p></o:p></span></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강수미 (미학,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nbsp; <o:p></o:p></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nbsp; <o:p></o:p></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1. 지형지세 지도그리기</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1990년대 중반까지 가시적/비가시적으로 한국미술계의 소위 ‘주류(작가 ․ 미술대학 ․ 단체 ․ 기관 혹은 이를 포괄한 의미에서 제도)’를 지배했던 가장 강력한 금기는 ‘미술이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1960년대에서 8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군사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 여파가, 그때까지 미술에서 민중미술과 같은 현실 사회 정치적 발언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사건이나 현상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조차 억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미술계 금기의 주재자들은 그 논거를 미술이 ‘순수’하고, ‘자율적’인 영역이라는 서구 유미주의 미학과, 미술의 진보는 ‘자기비판을 통한 갱신’의 과정 속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에서 찾았다.1)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서구 근대 미학과 비평 이론에서 정당성을 빌려온 한국모더니즘미술의 ‘非/反 정치적 성향’, 그리고 그 이론들이 어느 때부턴가 단색 추상 또는 앵포르멜회화, 비구상 철골조각 같은 ‘한국형 스테레오타입 현대미술’로 변질된 채 미술의 정치성에 대한 금기를 재생산한 과정이, 미술계 내부에서 실행된 특수한 정치였다는 점이다. 또한 그 일련의 과정에 미술의 범위를 이분법적 항목들로 재편하는 미시정치의 테크닉 ―예컨대 미술로 보일 수 있는 것/없는 것, 다뤄야할 것/배제해야 할 것, 미적 가치가 있는 것/무가치한 것 등― 이 작동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대략 196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특정 대학 ․ 공모전 ․ 화랑 ․ 협회 ․ 저널 ․ 미술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제도권 미술이 ‘조형예술을 위한 조형예술’이라는 상대적으로 협소하고 배타적인 미술의 정체성과 시각문법만을 전수하고 받으면서, 한국현대미술에서 특정 지분을 공고히 하고 일반화한 미술의 정치학이다. 여기의 ‘특정 지분’이란, 한편으로 미술 자체의 차원에서 볼 때, 삶의 이물질이 정화된 ‘순수미술’이라는 관념, 일상과 대중문화보다는 우위에 있는 ‘고급미술’이라는 자의식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한국미술 전반에서 그 주류 및 제도권 미술이 확보한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뜻한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2009년 오늘, 가까운 과거 미술의 상황을 되짚어본 것은 현재 한국 현대미술계가 누리고 있는 자유, 보다 정확히 말해서 개별 작가와 그들의 미술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온갖 주제, 모티브, 표현매체, 관계 맺기 및 활동방식의 자유가 애초부터 한국미술에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 자유는 요컨대 과거의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틀을 벗어난 이후의 것이며, 소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다수의 금지와 억압이라는 제한을 위반하고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누가, 언제 그 틀을 벗어나고, 한계를 위반했는가? 내가 보기에, ‘한국현대미술의 비정치성’이라는 격자 구조는 첫째, 1980년대 민중미술의 주도 아래 ‘현실사회정치 vs 미술의 현실 발언 및 참여’라는 구도 속에서 문제시되고 비판적으로 공격당한다. 둘째, 그 격자는 1990년대 중후반 경부터 신세대 또는 젊은 작가의 등장과 함께 ‘대중/하위/시각문화, 테크놀로지/생태환경/도시문화, 매스/멀티/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문화연구/비교문학/페미니즘 등 미술 외적(이라 여겼던) 영역과 미술의 교차, 융합’이 폭발하면서 거의 전면적으로 해체된다. 그와 동시에 이들 젊은 작가들의 이질적이고 혼성적인 미술을 보이고, 담아내고, 확장할 여러 형식들(대안공간, 레지던시 프로그램, 새로운 형태의 공모전, 기획전 등)이 출현하면서, 기존 제도권미술의 유형무형 체제들이 유명무실해졌고, 타의적 개조의 과정을 겪었다.2)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그런데 여기 이렇게 두 비판, 위반, 변화, 확장의 계기를 병렬했지만, 80년대 민중미술과 90년대 말 미술3)의 차이는 뚜렷하다. 먼저 전자는 한국식 모더니즘 미술과의 대립, 그리고 한국사회 내부 군부독재체제와의 대립이라는 이중의 대립각을 세웠다. 그리고 제도미술의 억압과 동시에 한국현실의 정치사회적 억압을 거부하고 비판하면서, ‘민족과 민중을 위한 미술운동’이라는 정치학을 펼쳤다. 반면 후자는 애초에 그런 대립구도가 설정되지 않았거나 모호하게 열린 대립구도 속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미술 내부와 일상생활에 상존하는 여하한 금기, 압력, 제한에 대한 개인적인 동시에 전 지구적인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모든 기성에 대한 회의와 위반의 미술’이라 요약할 수 있는 정치학을 실행했다. 이를 우리는 ‘민중미술의 리얼리즘 투쟁’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해체’라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차이가 뚜렷한 만큼, 이 두 계기가 2000년대에 접어들어 근 십년을 보낸 지금 현재 한국현대미술의 정치성에 끼친 영향 또한 뚜렷하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영향의 질적 차이보다는 영향의 범위에 더 큰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현실사회와 제도권 미술에 대한 민중미술의 비판적 정치학은, 이후 90년대 말 포스트모더니즘미술의 ‘모든 것이 다 되는 식(anything goes)’ 정치학에 참조점 중 하나이거나 지류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이렇게 후자가 전자를 구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할 때, 내가 이와 같은 지형지세를 바탕에 깔고, 다음에서 논하려는 것은 2000년대 지금, 여기 한국현대미술이 이것과 어떤 관계에 있고, 어떻게 수용했으며, 변경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세기의 거의 십년 동안 한국현대미술이 어떠냐는 것이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COLOR: #000099"><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nbsp;<!--StartFragment--></span></span></p><p class="각주"><span style="COLOR: #000099; FONT-FAMILY: '굴림','Gulim'">1) 정무정은 미국모더니즘미술과 유럽 앵포르멜이 1950년대 말-60년대 한국 앵포르멜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며, 정치 사회적 정황상으로는 60년대 미국의 대(對) 아시아 반공주의 정책, 그리고 박정희 주도로 이뤄진 1961년 5.16 군사정변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문제제기한다. 정무정, 「추상표현주의와 한국 앵포르멜」, 『미술사연구』, 미술사연구회, 2001(15호), pp. 247-262 참조. <br>2)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강수미, 『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 서울: 현실문화, 2009, pp. 15-23을 참조.<br>3) 우리는 이 시기 미술을 단적으로 규정할 말을 아직 갖고 있지 못하다. ‘신세대미술’, ‘yKa 미술’ 등이 쓰이고 있지만, 이런 용어는 세대적 구분에 한정된 것이며, 90년대 말의 다종다양한 미술의 변화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포스트모더니즘’ 경향 속에 있던 당시 미술의 속성상, 대표성을 가진 명칭 제시는 어려울지 모른다.</span></p></span></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nbsp; <o:p></o:p></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span style="FONT-SIZE: 130%">2. 미술의 정치: 사회정치적 미술, 사회정치적 ‘스타일’의 미술</span></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우리가 미술에서 ‘정치’를 의제화 할 때, 나는 그 의제의 방향이 다음 몇 가지 정도가 되리라 본다. 첫째, 가장 빨리 떠오르고 익숙한 것으로 ‘현실정치와 관계있는 미술’ 둘째, 랑시에르(J. Rancière)가 “감성의 분할”이라 부른 것4)으로서 ‘기성의 세계 사이에 교환, 이동, 변형을 도입하는 미술’ 셋째, 미술이 제반 사회영역의 매트릭스에서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작용하는 권력방식, 또는 미술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방식. 첫째 예는 앞서의 민중미술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에 해당하는 예는 18세기에 예술이 사회와의 어떤 직접적 관계나 사회적 기능을 상실했을 때 바로 그 ‘관계없음’을 자체의 정체성(art for art's sake)으로, 그 ‘사회적 기능 없음’을 예술적 기능으로 규정한 서구 유미주의/예술지상주의의 정치와, 그것을 한국미술의 문맥에서 형질 변경함으로써 헤게모니를 확보한 한국모더니즘미술의 정치를 들 수 있겠다. <br><br>그렇다면 두 번째 의제로서 ‘미술의 정치’는 무엇이고, 거기에 해당하는 한국미술의 사례로는 어떤 것을 들 수 있는가? 우선 랑시에르를 참조하자. 그는 “현대예술에 대한 정치적 질문이 있다면 (중략) 예술의 세계와 비예술의 세계 사이의 교환과 옮김의 놀이 위에 세워진 정치에, 정치적 ‘제3자’에 영향을 미치는 변형들에 대한 분석 안에서”라 단언한다.5) 즉 우리가 현대예술에서 ‘정치’를 논하려 한다면, 그것은 예술(이라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이 기존에 ‘예술’이라고 규정되고 영토화 된 세계의 바깥, 혹은 다른(“비예술”) 세계, 또 혹은 타자(“정치적 제3자”)의 세계와 교류하고, 서로의 자리를 바꾸고, 영향의 관계를 복합화 하는 지형지세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200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정치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서도 분석했듯이 지금 여기의 미술은, 특별히 구체적인 대상(예컨대 “반민족, 반민중적 세력”6))과 대립각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간 미술에서 비정치적 입장과 정체성을 강제한 주류/제도미술의 좁은 틀 바깥, 대안의 장소들, 사회에서 이접(移接) 가능한 모든 영역/장소/주체-타자들을 가로지르고, 자리 바꾸고, 융합하며, 변형적인 것을 생산한 90년대 말 미술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는 그것의 연장선이거나 후속편, 그러나 그 성격과 양상이 달라진 연장이거나 후속이기 때문이다. 7) 물론 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현대미술을 두고 그 정치를 질문할 때, 랑시에르식 두 번째 미술의 정치는 첫 번째 의미의 정치, 즉 현실정치와 비판적으로 관계하는 미술의 정치와도 일정 정도 겹쳐진다는 점을 누락해서는 안 된다. 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권력관계, 위계질서, 수구성, 기득권은 대부분의 경우 현실정치의 파생물이었고, 그런 만큼 그 프레임을 깨거나 탈영토화하거나 접속-분리관계를 생산하는 미술은 불가피하게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중첩되고 복합적인 의미로 정치적인,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현실정치와 관계있으며 없는, 기존 미술의 경계 안/밖에 있는, 사회적 삶과 감성의 세계를 미시적으로 세분화한 미술이 90년대 말부터 이후 4-5년 간 이어졌다고 본다. 이 시기 구분은 한국현대미술계에 미술시장의 영향력이 과부하 되기 시작한 2005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자의적 구분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즈음을 기준으로 90년대 후반 한국현대미술이 가졌던 사회정치적 차원, 그 힘, 그 가능성은 상당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2005년 이전 미술(이 글에서 90년대 말 미술로 총칭하는)이 ‘사회정치적 미술’이라면, 이후 지금 여기 미술(2000년대 미술)은 ‘사회정치적 스타일의 미술’로 보인다.</span></p><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StartFragment--><p class="각주"><span style="COLOR: #000099; FONT-FAMILY: '굴림','Gulim'">4) 랑시에르는 감성의 분할을 “어떤 공통적인 것의 존재 그리고 그 안에 각각의 몫들과 자리들을 규정하는 경계설정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감각적 확실성의 체계”라 정의한다. 이를 미술에 적용해 보면 어떤 것이 ‘미술’이라는 공통 공간에서 의미와 가치를 획득/배제되는 것은 감성의 분할에 달렸으며, 그런 의미에서 ‘미술’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감성의 분할이라는 체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Jacques Rancière, <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Le partage du sensible: esthétique et politique</span>, 오윤성 역, 『감성의 분할-미학과 정치』, 서울: 도서출판 b, 2008, pp. 13-14. <br></span><span style="COLOR: #000099; FONT-FAMILY: '굴림','Gulim'">5)&nbsp;Jacques Rancière, <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Malaise dans l'esthétique</span>, 주형일 역, 『미학 안의 불편함』, 고양: 인간사랑, 2008, pp. 90-91.<br></span><span style="COLOR: #000099; FONT-FAMILY: '굴림','Gulim'">6)&nbsp;최열은 1986년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논리와 실천」이라는 글에서, 80년 민중미술 및 문화운동은 “반민족, 반민중적 세력을 향한 공격의 효율적 수행을 그 중요과제로 설정하였다.”고 적고 있다. 최열, 『미술과 사회-최열 비평전서』, 파주: 청년사, 2009, p. 108 참조.<br>7) 그런 의미에서 2009년 경기도미술관이 기획전 &lt;악동들 지금/여기&gt;에 상정한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이라는 화두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제시어로 보인다. 일단 ‘정치미술’이라는 낯선 용어 자체가 마치 개념이 정착된 단어처럼 쓰였으나, 기획의 변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없다. 그럼에도 전시 내용으로 어렵사리 유추하자면, 여기서 ‘정치미술’은 80년대 민중미술과 직간접적 계보 속에서 형성된 90년대 이후 사회정치적 주제, 소재, 메시지를 담은 미술을 총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말 다수의 작가와 그/녀의 작품(업)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정치’를 카운터파트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상자/독자로 하여금 ‘현실정치와 그 비판적 미술’이라는 한정적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정치미술’이라는 용어는 그 미술의 의미와 현재적 가능성을 다소 축소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span></p><o:p></o:p></span></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nbsp; <o:p></o:p></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span style="FONT-SIZE: 130%">3. 드러내기의 ‘전시하는 힘’, 정치학 없는 정치학의 ‘상연하는 힘’</span></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내게 90년대 말 미술의 정치학/정치적 역량을 요약하라는 과제가 주어진다면, 나는 이를 ‘드러내기/전시하는 힘’으로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미술에 대해서는 ‘정치학 없는 정치학/상연하는 힘’으로 정의하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90년대 말 미술은 그때까지 배제된 것, 은폐된 것, 인식하거나 지각하지 못했던 것, 경전과 규범과 질서의 경계 너머에 배경 혹은 유령처럼만 존재했던 것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98년 &lt;도시와 영상&gt;전은 ‘의식주’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가 먹고, 입고, 사는 세속적 삶의 극히 구체적인 면면들과, 관행적 조형언어로는 표상하기 힘든 난삽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친숙하면서도 낯선 감수성의 세부들을 다뤘다.(예컨대 박이소의 &lt;미확인 발광물체&gt;나 &lt;금속조각&gt;) 이는 과거 모더니즘의 심미적 초월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것이고, 민중미술의 이념적 실천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예컨대 99년 여성미술제 &lt;팥쥐들의 행진&gt;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제3자인 여성, 생물학적으로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정체와 지위로는 자기 이름도, 욕망도, 목소리도 없는 것으로 간주돼왔던 이들이 스스로를 드러낸 것이다.(예컨대 박영숙의 &lt;미친년 프로젝트&gt;) 이들 전시는 말 그대로 순수-조형 또는 이념중심 한국미술이, 남성중심-유교적-봉건적 한국사회가, ‘당연히’ 주목하지 않았던 변화된 생활의 세부와, 권리가 지워진 사회적 존재들에 주목함으로써 그 ‘당연함의 근거 없음’을 드러냈다. 또 그렇게 주목하는 시선을 통해, 우리가 이분법적 위계와 미적 가치평가 구조 속에서는 알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던, 다양하고 차이나는 의미와 감각, 질과 양이 현상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드러냄, 보여줌은 정치학적 기술로 말하면 ‘전시하기’이다. 소외된 것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상투화된 정당성과 자명성을 성찰케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엇이 가능할 수 있음을 시각이미지의 특화된 장(場)으로 제시함으로써, 허위적 안정을 깨고 변화를 향한 꿈과 욕망을 도입하는 기술로서의 전시하기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90년대 말 한국미술은 이렇게 ‘드러냄-전시하기’를 통해 한국사회의 빈곤한 감수성과 환영적 질서에 균열을 가하는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이와는 달리 2000년대 미술은 애초 이 시기 미술이 90년대 말 미술의 연장 또는 후속이라는 점에서 그 고유의 정치학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2000년대 미술은 아주 가까운 과거의 미술에서 드러내고, 담론화하고, 논쟁을 생산하고, 가시적인 형태로 만들어낸 여러 사회정치적 이슈들, 미적 형식들, 제도들, 감각 질(質)들, 표상의 방법론을 일종의 유산처럼 물려받았다. 대안공간들은 이미 너무 많다 싶을 정도가 됐고, 작가가 전시장을 찾는 일보다 전시장이 작가를 찾는 일이 더 다급해졌다. 2000년대 초입부터 사립이든 국공립이든, 개인이든 기관을 통해서든 급작스럽게 늘어난 각종 지원기금 및 후원제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작가와 시스템 간의 유대(혹은 예속관계)를 만들어냈고, 연중 수시로 열리는 국제전 ․ 국제심포지엄 ․ 프로젝트 ․ 이벤트 등등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바쁜 작가 상(像)’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작품의 내용 면에서도 2000년대 미술은 과거와 크게 변별되는 주제나 담론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90년대 말의 미술이 일상성에서부터 거대담론구조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내 몸의 일시적 현상에서부터 사회문화적 성(gender)/타자의 윤리학 ․ 정치학까지를 건드리고, 이미지로 가시화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미술은 이렇게 미리 뿌려진 대안적이고 위반적이며, 사회적으로 논쟁과 재고의 계기를 유발하는 체제, 주제, 담론, 표상의 씨앗들이 크는 텃밭 성격이 강하다. 이제 미술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는 없으며, 형식과 매체 또한 90년대 중후반부터 탈장르 ․ 탈 경계의 기치 아래 유연해지고 멀티미디어화 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90년대 말 미술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를 기치로 내세운 미완의 자유지대였다면, 2000년하고 십년의 한국현대미술은 ‘모든 것이 가능한 바로 그 곳’이 됐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2000년대 미술이 완전한 해방과 자유의 지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지금 여기 미술에는, 이전의 한국미술에 부과됐던 억압이나, 미술이 정치경제적 ․ 사회문화적 변화의 흐름을 타면서 갖게 된 사회적 책무와는 성격이 다른 무엇이 창작 ․ 수용 ․ 의미화 ․ 배분 ․ 소유 ․ 향유 따위를 얽어매고 있어 보인다. 바로 ‘자본’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97년 연말 IMF 구제금융 위기를 맞았다. 지금 현재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있는 다수의 20대 말-30대 초중반 젊은 작가들이 그 당시 대학에 진학하거나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경제위기’를 몸소 강렬하게 체험했다. 반드시 그 때문이라는 할 수 없겠지만, 3년 8개월에 걸친 국가경제위기상황과 그 직후 찾아온 글로벌 경제 호황의 한국 편승은, 그 극단적 추락과 비상만큼이나 사람들에게 ‘돈의 절대성’과 ‘자본주의체제의 맹위’를 분명하게 각인시키면서, 미술을 포함한 문화(상부구조) 전 영역을 명쾌하게 ‘자본의 논리’로 바라보도록 강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에게 ‘예술’이 곧 직종 중 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전시가 수익구조에 편입되며, 비평이 그러한 직업의 장과 경제체제와 공생하는 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관건은 개인의 살아남음이지, 공동체 또는 미술이라는 특수한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2000년대 미술은 개인 작가, 개인 큐레이터, 개인 비평가의 자기 성공의 정치학은 있을지언정, 앞서 우리가 논했던 의미에서 의제화 할 수 있는 정치학은 희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집단운동의 차원에서 미술이 비판적 대립 각을 세울 대상은 그 어느 때보다 모호해졌다.(문제적 대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 그 대상이 훨씬 포괄적이면서 우리의 뼈 속 깊은 곳까지 장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 개별 작가들이 그 대상과 너무 밀착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한편으로 소수의 작가들만이 자신의 작업 속에서 그 대상과 마주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또 미술계 내부에서 표현의 자유는 주어졌는데(물론 이 또한 제한적인 것이다), 경제적 문제로부터의 자유가 해결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활동을 시작한 젊은 작가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성장했으나, 청년기 IMF를 겪었고, 이후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구조로의 재편 속에서 ‘세대 내 경쟁’에 내맡겨졌기 때문에 경제적 위기에 대한 공포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대(對) 사회적 정치적 관심보다는 개인적 생존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지배적이다. 이런 과정에서 성공을 향한 개인의 미술 정치학이 매우 민감해지고, 세련돼졌다. 거기서 파생된 미술이 ‘스타일의 미술’이다. 80년대 한국 모더니즘미술을 답습한 다수의 작가들은 시각적으로 약간씩 다른, 그러나 결국 벽지 문양 정도의 차이를 가진 관념 추상화를 그리면서 각자의 레이블을 표방했다. 이와 비슷하게 지금 여기의 많은 작가들이 스타일만 조금씩 다른, 특히 90년대 말 미술이 위반적으로 다뤘던 주제와 형식에서 스타일만 조금씩 변주한 미술 이미지를 상연하고 있는 것 같다. 또 그런 유사(pseudo) 위반의 미술을 다소간 그럴듯한 주제어로 그룹핑하는 기획전들이 일상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이유로 나는 2000년대 미술이 ‘정치학 없는 정치학’이라고 말한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나의 판단은 지금 여기 미술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미술이 ‘위반을 상연한다’는 점에 대해 나는 긍정적인 부분도 보고 있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미술이 지속적으로 가까운 과거의 미술을 참조함으로써, 90년대 말 미술을 통해서는 미처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가 얼결에 잊어버린 과거 문제를 우리의 눈과 의식에 대고 상연한다는 사실이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nbsp; <o:p></o:p></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nbsp; <o:p></o:p></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4. 시차적 관점에서 2000년대 한국미술을 하기</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90년대 말 한국미술은 억압적 체계와의 투쟁이 아니라, 그 체계와는 다르고 새로운 시스템을 유발시켰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미술의 정치학에서 새로운 시야(視野)를 제공했다. 지젝(S. Žižek)의 개념으로 말해보자면, 미술과 정치, 그리고 미술의 정치적 역량과 테크닉 교본(그런 것이 가능하다면)에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8) 하나를 열어준 것이다. 그것은 그때까지 미술에 관한 관성적 사고가 이분법의 대립 항으로 정의한 관계로는 파악할 수 없는 층위에서 미술이 정치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 시야이고, 그렇게 투쟁 구도의 바깥에서 오히려 기존 주류/제도미술의 억압과 한계를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고, 그것의 해체를 전시하는 일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알려준 관점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99년부터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문을 연 한국의 대안공간들은 그간 대관화랑 아니면 미술관이라는 매우 단순한 주류 전시공간체제에 그야말로 ‘대안’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당시의 신진 작가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 개인전을 이 대안공간에서 열며 등장함으로써, 작가가 되고, 창작활동을 지속하며, 각자의 미술에 조응하는 수용자와 향유과정을 기대할 수 있는 전혀 다른 통로가 가능함을 예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90년대 말 미술이 기존 체제와 그것이 구사하는 정치학적 테크닉과는 층위가 전혀 다른 공간을 보고, 거기에 시스템을 만들고, 활용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자유’를 찾으려 했을 때, 제도미술은 진정으로 위기에 처했고,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나는 2000년대 미술이 가까운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 모방해야할 정치학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재현하기를 금지하는 규범들에 대한 윤리학적 정치로서 현대미술, 우리의 이성과 감성, 인식과 지각을 고도로 세련되게 분절-융합하는 미학적 정치로서 현대미술, 주체 중심의 서구 근대 정치학적 범주를 위반하고 변혁하는 인간학적 정치로서 현대미술, 시장경제와 고도 자본주의체제의 강압에서 미술이라는 영역의 특수한 가치를 빼내는 예술 자율성의 정치로서 현대미술이, 바로 그것이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끝으로 미술비평가로서 나의 정치학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02년 콜롬비아 대학의 내셔널 아트 저널리즘 프로그램(National Arts Journalism Program)이 미국의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비평의 목적을 조사했을 때, 가장 인기 있는 목적은 ‘미술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simply describing art)’, 가장 인기 없는 목적은 ‘미술을 판단하는 것(judging art)’으로 나타났다. 이를 자신의 글에서 인용한 비평가이자 미술사가 엘킨스(J. Elkins)에 따르면, “대략 1990년대 말부터 최근 10년 간 미술비평은 문화비판의 불타는 전선으로부터 퇴각하여 국지화된 기술(description)과 조심스러운 환기라는 보다 안전하고 보호 받는 영역으로 물러났다.” 그는 미술관 또는 상업 화랑의 거창한 카탈로그나 리플릿, 삐까번쩍한 잡지, 일간지, 인터넷에서는 “비평(덧없는 비평)이 난무하지만, 동시대 지적 논쟁에서는 자취를 감췄다.”는 점에서 “오늘날 미술비평이 세계적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한다.9) 여기서 자세히 논의할 여유는 없지만, 나는 비평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지금 여기의 삶과 미술이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미술을 판단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미술의 정치학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br>&nbsp; <!--StartFragment--></p><p class="각주"><span style="COLOR: #000099"><span style="FONT-FAMILY: '굴림','Gulim'">8) 지젝이 말하는 ‘시차적 관점’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두 개의 양립 불가능한 현상, 또는 상호 번역이 불가능하며, 어떠한 종합이나 매개도 불가능한 두 지점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현상을 포착할 수 있는 관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동일한 차원에 배치하거나, 그에 대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지젝에 따르면 ‘허상’이나 ‘가상’이다. Slavoj Žižek, <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The Parallax View</span>, 김서영 역, 『시차적 관점』, 서울: 마티, 2009, pp. 13-14 참조.<br>9) James Elkins, “On the absence of judgement in art criticism”, in: James Elkins &amp; Michael Newman (eds.) <span lang="EN-US" style="FONT-STYLE: italic">The State of Art Criticism</span>, New York: Routledge, 2008, pp. 72-79 참조.</span><br></span></p><p></p><div style="TEXT-ALIGN: right"></div><br>2009년 11월 20일 경기도미술관 주최 학술세미나 &lt;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 악동들 지금/여기&gt; 발표문<br>* 이후 논의를 추가, 보완하여 '한국현대미술, 시각이미지 구성,&nbsp;동시대 미학'에 관한 논문으로 완성할 글입니다. 인용할 경우, 반드시 출처를 명기해주십시오.</span></span><p><br><br><br><br></p><br/><br/>tag : <a href="/tag/2000년대한국미술" rel="tag">2000년대한국미술</a>,&nbsp;<a href="/tag/경기도미술관" rel="tag">경기도미술관</a>,&nbsp;<a href="/tag/악동들지금여기" rel="tag">악동들지금여기</a>,&nbsp;<a href="/tag/98도시와영상전" rel="tag">98도시와영상전</a>,&nbsp;<a href="/tag/99여성미술제팥쥐들의행진" rel="tag">99여성미술제팥쥐들의행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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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2 Nov 2009 06:25:2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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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Jeanne-Claude, Christo’s Collaborator on Environmental Canvas, Is Dead at 74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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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title="More articles about Jeanne-Claude." href="http://topics.nytimes.com/topics/reference/timestopics/people/j/jeanneclaude/index.html?inline=nyt-per"><span style="COLOR: #666699"><br>Jeanne-Claude</span></a>, who collaborated with her husband, <a title="More articles about Christo." href="http://topics.nytimes.com/top/reference/timestopics/people/c/christo/index.html?inline=nyt-per"><span style="COLOR: #004276">Christo</span></a>, died Wednesday in Manhattan, where she lived. She was 74.<br><a href="http://www.nytimes.com/2009/11/20/arts/design/20jeanne-claude.html">http://www.nytimes.com/2009/11/20/arts/design/20jeanne-claude.html</a><br><br><img height="250" alt="" src="http://graphics8.nytimes.com/images/2009/11/19/timestopics/topics-jeanneclaude-pic/sfSpan.jpg" width="395"><br><div class="credit">Bill Cunningham/The New York Times<br><br>"To avoid confusing dealers and the public, and to establish an artistic brand, they used only Christo’s name. In 1994 they retroactively applied the joint name “Christo and Jeanne-Claude” to all outdoor works and large-scale temporary indoor installations. Other indoor work was credited to Christo alone."<br><br><img height="500" hspace="0" src="http://graphics8.nytimes.com/images/2009/11/19/arts/jeanneslide1.jpg" width="333" border="0"><br><br><img height="400" hspace="0" src="http://graphics8.nytimes.com/images/2009/11/19/arts/jeanneslide3.jpg" width="600" border="0"><br>An aerial view of "The Gates" in Central Park, on the last day of the exhibition. <p class="credit">Photo: Vincent Laforet/The New York Times<br><a href="http://www.nytimes.com/slideshow/2009/11/19/arts/20091119_JEANNECLAUDE_SLIDESHOW_3.html">http://www.nytimes.com/slideshow/2009/11/19/arts/20091119_JEANNECLAUDE_SLIDESHOW_3.html</a><br><br><br><br></p></div><br/><br/>tag : <a href="/tag/Jeanne_Claude" rel="tag">Jeanne_Claude</a>,&nbsp;<a href="/tag/Christo" rel="tag">Christo</a>,&nbsp;<a href="/tag/TheGates_in_CentralPark" rel="tag">TheGates_in_CentralPar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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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Nov 2009 07:17:4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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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경기도미술관 학술세미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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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nbsp;<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HY울릉도M; mso-hansi-font-family: HY울릉도M; mso-fareast-font-family: HY울릉도M">Experimentation and Expansion of Contemporary art</span></u></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span lang="EN-US" style="FONT-SIZE: 20pt; COLOR: #ff0000;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fareast-font-family: HY견고딕"></span>&nbs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span lang="EN-US" style="FONT-SIZE: 20pt; COLOR: #ff0000;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fareast-font-family: HY견고딕">BAD BOYS</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span lang="EN-US" style="FONT-SIZE: 20pt; COLOR: #ff0000;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fareast-font-family: HY견고딕"></span></u>&nbs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span lang="EN-US" style="FONT-SIZE: 20pt; COLOR: #ff0000;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fareast-font-family: HY견고딕">HERE and NOW</span></u></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span style="FONT-FAMILY: HY울릉도M; mso-hansi-font-family: HY울릉도M; mso-ascii-font-family: HY울릉도M"></span>&nbs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span style="FONT-FAMILY: HY울릉도M; mso-hansi-font-family: HY울릉도M; mso-ascii-font-family: HY울릉도M">현대미술의 동향 Ex n Ex</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span lang="EN-US" style="FONT-SIZE: 20pt;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fareast-font-family: HY견고딕"></span>&nbs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span lang="EN-US" style="FONT-SIZE: 20pt;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fareast-font-family: HY견고딕">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 :</span></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22pt; COLOR: #ff0000;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span>&nbsp;</p><p class="바탕글" style="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22pt; COLOR: #ff0000;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악동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20pt; COLOR: #ff0000;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fareast-font-family: HY견고딕"> 지금/여기</span></p><p class="바탕글">&nbsp; </p><p class="바탕글">&nbsp; </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ff;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참여작가 토론회</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일 시</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 2009. 11. 20(금) 10:00~12:00</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장 소</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 경기도미술관 세미나실</span></p><p class="바탕글">&nbsp; </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COLOR: #0000ff;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학술세미나</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일 시</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 2009. 11. 20(금) 14:00~17:00</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장 소</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 | 경기도미술관 강당</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Y견고딕; mso-hansi-font-family: HY견고딕; mso-ascii-font-family: HY견고딕">발 제</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정헌이 | 한성대 교수 </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 “ 한국 현대미술에서 1990년대의 의미 ”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강수미 | 미술평론가 </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 “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2000년대 한국미술의 정치학 : 모든 것이 가능한 곳에서 위반을 상연하기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최태만 | 국민대 교수 </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 “ 1990년대 정치미술,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인가!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반이정 | 미술평론가</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 “ 2000년대 이후 짚어 보아야 할 몇 가지 주제들 ”</span></p><p class="바탕글">&nbsp; </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바탕">※ 문의 : 박선정 031-481-7039 </span></p><br/><br/>tag : <a href="/tag/경기도미술관" rel="tag">경기도미술관</a>,&nbsp;<a href="/tag/악동들" rel="tag">악동들</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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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 href="http://www.scf21.org/bbs/notice/notice_detail.asp?seq=248">http://www.scf21.org/bbs/notice/notice_detail.asp?seq=248</a><br><br><img height="1565" src="http://www.scf21.org/upload/img/scf_4_650(0).jpg" width="650" usemap="#Map" border="0"><br><br><br><br><area shape="RECT" target="_blank" coords="40,308,141,333" href="http://www.scf21.org/bbs/notice/notice_detail.asp?seq=249&amp;bCat1=&amp;t=&amp;f=&amp;bPage=1"><area shape="RECT" target="_blank" coords="166,509,252,527" href="http://www.scf21.org"><area shape="RECT" target="_blank" coords="480,469,538,486" href="http://www.sangsangmadang.com/ssmadang/map/map.asp"><area shape="RECT" target="_blank" coords="407,489,464,507" href="http://www.kunsthalle.com/contact"><area shape="RECT" target="_blank" coords="43,1492,145,1518" href="http://www.scf21.org/bbs/notice/notice_detail.asp?seq=249&amp;bCat1=&amp;t=&amp;f=&amp;bPage=1"><area shape="RECT" target="_blank" coords="535,636,611,656" href="http://www.scf21.org/bbs/data/general_detail.asp?seq=278&amp;bCat1=&amp;t=&amp;f=&amp;bPage=1"><area shape="RECT" target="_blank" coords="535,749,610,769" href="http://www.scf21.org/bbs/data/general_detail.asp?seq=283&amp;bCat1=&amp;t=&amp;f=&amp;bPage=1"></p><br/><br/>tag : <a href="/tag/서울문화포럼" rel="tag">서울문화포럼</a>,&nbsp;<a href="/tag/서울다움찾기" rel="tag">서울다움찾기</a>,&nbsp;<a href="/tag/아티스트와도시" rel="tag">아티스트와도시</a>,&nbsp;<a href="/tag/서울생활의발견" rel="tag">서울생활의발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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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인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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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서울생활의발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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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Nov 2009 05:03:35 GMT</pubDate>
		<dc:creator>강수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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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박정희 ‘혈서’, 좀더 일찍 발굴됐더라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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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v.daum.net/link/4690487?RIGHT_BEST1=R9">http://v.daum.net/link/4690487?RIGHT_BEST1=R9</a><br><br><img style="CURSOR: pointer" onclick="open_img('http://blogimg.ohmynews.com/attach/6909/1098132080.jpg')" height="570" alt="" src="http://blogimg.ohmynews.com/attach/6909/1098132080.jpg" width="450"><br>박정희의 '혈서설'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당시 &lt;만주신문&gt; 기사(1939.3.31)<br><br/><br/>tag : <a href="/tag/친일인명사전" rel="tag">친일인명사전</a>,&nbsp;<a href="/tag/박정희혈서" rel="tag">박정희혈서</a>,&nbsp;<a href="/tag/친일인명사전게재금지가처분신청" rel="tag">친일인명사전게재금지가처분신청</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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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7 Nov 2009 02:59:39 GMT</pubDate>
		<dc:creator>강수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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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정치미술의 현재를 보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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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SIZE: 100%; COLOR: #000099; FONT-FAMILY: '바탕','Batang'">주간한국의 박우진 기자가 매우 부지런히 움직여 꼼꼼한&nbsp;전시 리뷰를 썼군요.<br>읽어 보시길!<br>본문 중 &lt;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gt;를 인용한 부분은 저자의 맥락과는 달라졌지만(그러니까 저는 '민중미술'의 정치적 의미와 성과를 얘기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 '정치' 영역을 정의했고, 좀 더 특수한 차원에서 가능한 '예술의 정치적 역할'이 무엇일지 생각해봤습니다만.),&nbsp;'이론적 주장'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사례'에&nbsp;적용시켰다는 점에서 긍정합니다. <br>그러나 저러나 11월 20일 금요일 경기도미술관에서 &lt;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 악동들 지금/여기&gt; 전시에 맞춘 심포지엄이&nbsp;열립니다. 전&nbsp;'2000년대 한국미술에서 미술과 정치의 상호작용 양상'(대략적 주제) 정도의 발표를 할 텐데, 실상&nbsp;기자가 지적하듯 기획 측이 내놓은 '정치미술'이라는 용어 자체가 매우 모호합니다. 이 용어는 잘못하면 미술관 기획 측의 프로파간다가 될 수도&nbsp;있고, 자의적 카테고리 속&nbsp;변칙적 항목이 될 수도 있죠.&nbsp;<br>아직 원고도 쓰지 못하고 있는 저야말로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span><br><br>&nbsp;<br><strong>정치미술의 현재를 보다<!--/DCM_TITLE--></strong><div class="toptitle_sub" id="GS_SubTitle">'정치미술', 'NOW WHAT', '신호탄' 등 미술과 정치가 만나는 풍경에서 탐색한 정치미술의 의미<a href="http://weekly.hankooki.com/lpage/arts/200910/wk20091027173147105130.htm"><br><br>http://weekly.hankooki.com/lpage/arts/200910/wk20091027173147105130.htm</a><br><br><br><br><br></div><br/><br/>tag : <a href="/tag/주간한국박우진기자" rel="tag">주간한국박우진기자</a>,&nbsp;<a href="/tag/악동들지금여기_경기도미술관" rel="tag">악동들지금여기_경기도미술관</a>,&nbsp;<a href="/tag/신호탄_기무사" rel="tag">신호탄_기무사</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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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주간한국박우진기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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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신호탄_기무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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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31 Oct 2009 10:11:44 GMT</pubDate>
		<dc:creator>강수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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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토요인터뷰] ‘나영이 주치의’의 분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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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SIZE: 100%; COLOR: #000099; FONT-FAMILY: '바탕','Batang'">기사를 읽다가, 이 의사의 정확한 판단과 솔직함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br>사실 전문가가 자신의 기득권&nbsp;영역에 솔직하기는 극도로 어렵다.<br></span><br><br><br>[토요인터뷰] ‘나영이 주치의’의 분노<br><br><a href="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10/31/3524988.html?cloc=olink|article|default">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10/31/3524988.html?cloc=olink|article|default</a><br><br>“어찌나 화가 나는지…. 죽어가는 아이부터 살려놓고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검찰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그때 나영이를 치료하던 의사도 책임이 있어요. 검찰에서 진술을 요구하면 담당 의사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라고 제재를 했어야죠. 나도 의사지만 의사들 문제 많아요.”<br><br>“성폭행당한 아이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병원입니다. 수사를 위해 증거를 보존하고, 아이가 다른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살피고, 또 다른 가족이 입은 상처도 치료해야 할지, 아니면 아이와 가족을 격리해야 할지를 다 의사가 정해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의사들은 지식도 관심도 부족해요. 기본적으로 공적 서비스에 정성을 안 쏟지요.”(※나영이가 외과수술을 받았던 병원 측은 ‘더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수사기관의 요청을 거부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입장을 밝혔다.)<br><br>“교육을 시켜야죠. 산부인과·외과·비뇨기과·신경외과 의사들을 상대로 성폭행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의사 고시에도 관련 내용을 출제하고요. 그래야 바뀝니다.”<br/><br/>tag : <a href="/tag/신의진교수" rel="tag">신의진교수</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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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신의진교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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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31 Oct 2009 03:42:22 GMT</pubDate>
		<dc:creator>강수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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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At MoMA, 'Permanent' learns to be Flexible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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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SIZE: 130%; COLOR: #000099; FONT-FAMILY: '바탕','Batang'">신성불가침은 사실, 언제라도 침해될&nbsp;수 있는 가능성의 이면이다.<br>프레임의 권위에서 탈 프레임의 유연함으로, 미국미술의 신화가 된 한 큐레이터의 서사에서 쉽게 새로 쓸 수 있는 시도적 이야기로, 남성작가의 '무의식적 창조 에너지 분출'에 대한 찬미에서 여성작가의 '억압에 대한&nbsp;표현'을&nbsp;쿨하게 드러내기로. <br>아래 기사를 보면, 뉴욕&nbsp;MoMA가 근대 회화 조각 파트 수석 큐레이터 Ann Temkin의&nbsp;깃발 아래,&nbsp;한창 그&nbsp;동전의 양면이 회전하는 상황을&nbsp;즐기고&nbsp;있는 것 같은데... <br>모마 각 방의 전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nbsp;감상의 놀라움을 줄 생각도 하고...(</span>“When there are one or two fresh things in a room, it puts viewers on alert,” ),<span style="FONT-SIZE: 130%; COLOR: #000099; FONT-FAMILY: '바탕','Batang'">이제까지 추상표현주의 또는 일반화하면 모든 '중심주의'에 따라 서술된 미술사의 제한적 영역을 확장시키려고도 하고...</span>.(“There’s a desire to expand our account of art history.")<br><br><br><strong><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SIZE: 170%">At MoMA, ‘Permanent’ Learns to Be Flexible</span></span></strong><br><a href="http://www.nytimes.com/2009/10/25/arts/design/25loos.html?_r=1&amp;ref=design">http://www.nytimes.com/2009/10/25/arts/design/25loos.html?_r=1&amp;ref=design</a><br><br><img height="327" alt="" src="http://graphics8.nytimes.com/images/2009/10/25/arts/25loos-span/articleLarge.jpg" width="600" border="0"> <div class="credit">Ozier Muhammad/The New York Times</div><p class="caption">Franz Kline's “Painting Number 2,” one of the works now being exhibited without a frame. <br><br>"The 26 rooms of the Alfred H. Barr Jr. Painting and Sculpture Galleries, which have housed these highlights of the collection on the fourth and fifth floors of the Modern’s “new” building since it opened in 2004, <strong>might reasonably be regarded as sacrosanct</strong>: the heart of the museum and of modern art generally. </p><p>But under Ms. Temkin, the permanent collection display is quickly becoming less permanent. Galleries that once changed only when works were loaned out are <strong>now subject to frequent renewal</strong>. For the first time, media other than painting and sculpture appear frequently throughout the Barr galleries."<br>"Even small changes, like swapping out a single well-known artist for another, can make for major shifts in the museum’s familiar and stately narrative of modernism’s progress. The fourth floor, covering the early 1940s to the early 1970s, <strong>used to begin with </strong><a title="More articles about Jackson Pollock." href="http://topics.nytimes.com/top/reference/timestopics/people/p/jackson_pollock/index.html?inline=nyt-per"><span style="COLOR: #004276"><strong>Jackson Pollock</strong></span></a><strong>’s “Stenographic Figure”</strong> (1942). <strong>Now </strong><a title="More articles about Louise Bourgeois." href="http://topics.nytimes.com/top/reference/timestopics/people/b/louise_bourgeois/index.html?inline=nyt-per"><span style="COLOR: #004276"><strong>Louise Bourgeois</strong></span></a><strong>’s sculpture “Quarantania I” (1947-53) sets the tone for the entire era</strong>."<br><br></p><br/><br/>tag : <a href="/tag/MoMA" rel="tag">MoMA</a>,&nbsp;<a href="/tag/Ann_Temkin" rel="tag">Ann_Temki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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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andere Motive</category>
		<category>MoMA</category>
		<category>Ann_Temkin</category>

		<comments>http://desumi.egloos.com/10217988#comments</comments>
		<pubDate>Mon, 26 Oct 2009 03:49:34 GMT</pubDate>
		<dc:creator>강수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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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크라프트 드림 2009: 열린 공예를 향한 입장과 세부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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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2pt"><img height="569" src="http://www.chiwoocraftmuseum.org/display/img/craftdream2009.jpg" width="368"><br><br><br><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크라프트 드림 2009: 열린 공예를 향한 입장과 세부들</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1. 입장</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치우금속공예관이 2009년 가을 기획전으로 꾸린 전시 제목은 ‘크라프트 드림(craft dream) 2009’이다. 제목에 연도 표기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이 기획이 단발성 전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보다 앞서 &lt;크라프트 드림 2007&gt;이 있었고, 2007년의 본 전시는 여러 차례의 선행 세미나와 워크숍, 그리고 공예작가들이 주도한 정기 포럼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때문에 &lt;크라프트 드림 2009&gt;를 그 연속선상에서 들여다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올해의 전시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크라프트 드림’이라는 말부터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것이 아마도 전시 주체들의 예술에 대한 입장과 작품의 세목을 이해하는 적절한 경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번역하면 ‘공예의 꿈’ 정도가 될 전시 타이틀에서, 우리는 여러 지층에 걸친 의미를 해석해낼 수 있다. 이때 의미는 ‘공예가들이 공예를 통해 꾸는 꿈’일 수도, ‘공예라는 특정 장르의 비전’일 수도, ‘궁극적으로 지향할 꿈의 공예’일 수도 있어 보인다. 아마 전시를 기획한 주최 측과 참여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이 중 딱히 어느 하나라기보다는, 그 모두를 아우르는 의미로 ‘크라프트 드림’이라는 용어를 상정했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입장을 이인범 치우금속공예관장이 쓴 &lt;크라프트 드림 2007&gt; 도록 서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글에서 지금 여기의 공예가 “그 화려한 정체성(identity)을 보수하고 고수하는 것만큼이나 요동치는 삶의 세계를 외면하기보다는 그 파고에 맞서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기획하는 것을 의제로 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필수불가결한 일”이라 단언한다. 달리 말하면 공예의 장르적 독자성과 생활세계, 전통과 혁신, 보수와 변화, 현재와 미래를 상호관계로 엮는 역동적 실천이 핵심 아젠다(agenda)라는 것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그렇다면 우리가 &lt;크라프트 드림 2009&gt;에서 기대하고 경험해볼만한 실제적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를테면 ‘2009년 버전 공예의 지향과 그 실현’이 아니겠는가?</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현대공예는 한편으로 전통적인 의미의 공예가 가진 정신, 형식, 세부 기법을 유지하고, 다른 한편 현대미술의 자장(磁場) 속에서 탈 장르, 혼성, 실험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재는 미술/공예라는 이분법적 구분조차 무의미하거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인데, 이는 미술의 외연이 그만큼 유동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존 ‘순수미술(fine art, beaux-arts)’이라는 이름 아래서 배제됐던 분야들, 대표적으로 공예나 사진과 같은 분야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재 정의하고, 형식과 내용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면서 변모해온 결과이다. 그래서 이를테면 우리는 말의 관례상 ‘현대미술’과 ‘현대공예’를 분리하기는 하고, 또 대학의 학제가 보여주듯이, 미술이라는 큰 영역 속에 공예라는 한 장르가 속해 있는 것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예술’이라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양상이자 실천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우리는 이 예술세계의 가장 중요하고 변별적인 태도로 ‘동시대성(contemporaneity)에 대한 지향’을 꼽을 수 있는데, 가령 일상에 대한 주목이라든가 대중과의 소통, 삶 속에서의 구체적 기능 전환 등이 그 태도의 실체화된 측면이다. 이렇게 보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공예는, 공예 특유의 정체와 역할을 예술로 발현할 적기(適期)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공예는 미술의 어떤 장르보다도 일상의 차원에서 발생했고, 생활 속의 도구로서 사람들과 부단히 관계 맺어왔으며, 그렇게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기능을 덕목으로 해왔기 때문이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일반화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lt;크라프트 드림 2009&gt;에 참여하는 공예작가들의 예술에서 공통적으로 조우하는 면면 또한 동시대에 대한 예민한 지각 및 그것을 바탕으로 한 ‘공예 특정적’ 발현, 실천, 창작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내가 쓴 ‘공예 특정적’이라는 말은, 기존에 정의된 공예에 배타적 혹은 관습적으로 귀속되는 어떤 특수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현대미술의 장(場)에서 변화 과정에 있는 공예에 특수하게 정향된(oriented) 활동을 의미한다. 즉 ‘공예’ 자체의 전통을 메타적, 개념적으로 질문하는 작품 경향에서부터, ‘공예 외부의 것(non-craft)’으로 작업을 확장해 가는 추세, 애초 편벽된 장르 개념이나 차별적인 예술 관념 없이 작가가 자유로운 사적 창작 활동을 추구하는 흐름, 그리고 일상의 도구 혹은 대중문화 속 아트상품을 만드는 젊은 작가들의 활동을 염두에 두고 썼다. 이하에서 우리는 그 세부들에 대해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논할 것이다. 이는 미술비평가가 파악한 ‘한국 동시대 공예의 특수성’ 정도의 것으로, 공인된 공예이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으며, 어쩌면 공예 일반에는 별 영양가 없는 분석일지도 모른다. <br></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br>2. 세부들</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2-1. 메타 수공예성</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음예예찬(陰翳禮讚)」이라는 글에서, 서양의 반짝이고 투명한 빛과 대비하여 동양의 가라앉아 그늘진 빛을 제시하고, 그것을 ‘음예’라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음예란 “천연의 돌이든 인공의 도구이든, 반드시 세월의 손때를 연상시키는 듯한 흐릿함을 띤 빛”이다. 여기서 우리가 흥미롭게 음미해볼 대목은 이 근대 일본 문학가가 사물의 아름다움을 새 것이 주는 신선함과 밝고 효율적인 빛이 아니라, 인간의 흔적이 새겨진 오래된 것, 거기서 배어나오는 흐릿하고 그늘지며 둔중한 빛에서 발견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미감(美感)은 지금처럼 유행의 교체가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고,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온갖 광채 나는 신상품이 빛의 속도로 쏟아져 나와 우리의 손과 몸을 일종의 정거장이나 시험대쯤 되는 양 짧게 거쳐 가는 현실에서는 어딘가 시대착오적이거나 심지어 복고적인 취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손때가 묻어나는 사물에서 심리적인 편안함을 느끼며, 기계의 정교함과 신기술 상품의 휘황함에 열광하는 동시에 역으로 일부러 어딘가 헐겁고 낡아 보이게 만든 사물에서 인간적인 체취(體臭)를 재발견하고 싶어 한다. 분명 우리의 이러한 심리, 취향, 욕망은 양면적이고 모순적인데, 내가 보기에 현대 공예가의 과제 또는 도전이 자리하는 지점 또한 여기 있는 것 같다. 즉 한편으로는 공예의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속성인 ‘수공예성’을 견지하면서도, 그것을 지금 여기의 물질적(생산적) 조건 및 수용자의 부박한 미감에 부응하기 위해 새삼 ‘객관화하고 변화시키기’가 관건인 것이다. 그 첫 출발은 아무래도 공예의 기술적 측면,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손이 빚어내는 예술적 기교(手工藝)를 다시 들여다보고 경신하는 일이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이런 맥락에서 박성철의 &lt;<span style="mso-hansi-font-family: Times New Roman; mso-ascii-font-family: Times New Roman">지름</span> 360mm에서 시작된 변형들&gt;은 주목할 만하다. 지름 360mm, 두께 1.2mm의 동판을 두들겨서 병이나 컵 모양의 형태를 반복적으로 만드는 이 작업을 작가는 ‘손에 의한 복제’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가 금속 공예의 가장 일차적인 기술인 ‘손을 이용한 판금 조형’을 작업의 메타 주제(meta subject)로 삼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김남수의 &lt;소슬(蕭瑟)&gt; 또한 같은 관점에서 논할 수 있다. ‘보석함’이라는 구체적 용도를 가졌음에도 이 목공예 작품에서 우리의 감각은 사물의 유용성을 따지기 보다는, 섬세하게 나무의 결을 다듬어낸 작가의 수공예적 태도와 기능을 형태와 합일시킨 그 미적 표현 방법에 더 경사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음한교의 &lt;모음&gt;, &lt;오름&gt;, &lt;피움&gt; 연작에서는 기묘하게도 도예의 기술이 금속공예에 적용된 사실을 발견한다. 마치 도예가가 물레 위에서 손으로 흙 띠를 말아가며 형태를 빚어나가는 것(coiling)처럼, 이 금속 공예가는 철판에 선형 띠를 땜질해 쌓아 올리는 방법으로 금속조형물을 만든다. ‘사물의 어떤 운동 상태’를 표현하는 제목처럼, 금속이 모이고, 위로 오르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금속과 도자 공예의 수공예성이 교차하는 운동까지 감지할 수 있다. 다른 한편, &lt;크라프트 드림 2009&gt;에 참여하는 유일한 외국작가인 사사키 나오키의 금속 공예품은 앞서 소개한 준이치로의 ‘음예’에 가장 근접하는 일본 수공예의 미감을 보여준다. 그가 만든 주전자나 저울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물건들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묵직한 손맛, 그늘처럼 어둑한 금속의 존재감으로 생활의 도구를 미적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리기 때문이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2-2. 장소 특정적 공예</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현대미술의 주요 경향 중 하나는 ‘장소 특정적 미술(site specific art)’의 긍정이다. 이 미술은 모더니즘 시기, 미술이 ‘자기 지시적(self-referential)’ 성향을 급진화하면서 현실 삶과 유리되고, 지나치게 추상화된 데 따른 반작용 또는 비판적 태도로부터 성장했다. 요컨대 어떤 전시 조건, 어느 감상자를 막론하고 동일한 미적 경험이 가능하다고 전제하는 모더니즘의 ‘장소 일반적 미술(site general art)’에 대해, 장소 특정적 미술은 그런 전제가 ‘미술신화’일 뿐이라고 반박하며 출현했다. 전자와는 달리 후자는 동시대성, 사회의 다양한 조건, 개별 감상자의 직접적이고 현상학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현대 공예에서도 이렇게 ‘장소 특정성’을 띤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는 그간 공예가 단순한 인테리어 소품이나 액세서리 정도로 취급된 관행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공예의 확장을 꾀하는 이들의 잠재적 욕망이 구체화된 시도일 것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lt;크라프트 드림 2009&gt;에서 ‘장소 특정적 공예’라 정의할만한 사례는 이은미의 &lt;물방울무늬 정원&gt;이다. 도예가인 작가는 전시가 이뤄지는 치우금속공예관의 전시장이 아닌 건물 초입의 경사진 정원에 한시적으로만 존재하는 작품을 실행할 계획이다. 애초 정원의 구조와 상황을 훼손시키지 않고, 몇 군데 여백의 땅에 동그라미 형태의 골을 판 뒤 백색 흙을 채워 넣는(도예의 상감기법에 해당하는) 이 작업은 작가가 예상하는 것처럼 전시기간 동안 장소의 환경 변화에 순응하다가 종래에는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것이다. 김정석의 &lt;Forest of Colors&gt;는 이은미와는 다른 의미에서 장소 특정적인 공예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장소가 작품의 내용을 규정하기보다는 작품이 장소의 성격을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원색의 유리 막대를 색면추상회화(color field painting)처럼 이어붙이고 거기에 조명기구를 설치한 그의 작품은, 기존 공간을 물리적으로 분할하거나 빛을 변경시킴으로써, 우리가 습관적으로 대하는 장소를 새삼 다르게 지각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br></span></span><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span style="FONT-SIZE: 130%"><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2-3. 기능의 실험 혹은 기능의 유희</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현재까지도 그 잔재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과거에 순수미술과 공예를 가르는 명시적 차이는 ‘기능의 유무(有無)’였다. 서구 18세기 관념론 미학과 더불어 정립된 순수미술, 달리말해 유미주의 예술은 그 자체로 어떠한 사회적 기능도 담당하지 않음을 정체성으로 한다. 반면 공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소의 정도 차는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사회적 유용성에 입각해 제작되고 수용된다. 그런데 앞서도 썼듯이 미술/공예의 경계가 무의미하거나 불확정적인 지금은, 순수미술작품이 ‘실용적인 기능’을 표방하거나, 역으로 공예작품이 ‘감상을 위한 심미성’을 극대화하면서 서로 정체성을 교환하는 양상을 띤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lt;크라프트 드림 2009&gt;에 출품된 다수의 작품이 사물의 기존 기능을 과장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실험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 나아가 관례적으로 주어진 기능을 유희적으로 해소하는 경향을 띠는 것은 위와 같은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예컨대 윤석철이 만든 &lt;시계&gt;는 문자판에 시간을 알리는 기호를 없애 시계의 기능적 측면을 약화시키고, 반대로 유리판과 프레임을 보석처럼 세공해 그 심미적 기능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백은의 경우도 이 범주에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lt;exaggeration&gt;이라는 그 작품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작가는 목조가구의 손잡이나 다리를 형태, 색채, 크기 면에서 과장되게 강조함으로써 공예품의 기능보다는 작가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더 표출하고자 한다. 기능보다는 유희성에 더 창작 비중을 두는 사례로는 이병훈의 프라모델을 본뜬 작품이나, “도자기를 캔버스 삼아 작업”한다는 강준영의 팝아트 성향의 그림이 그려진 항아리를 들 수 있다. </span></span><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br><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2-4. 변성</span></span></span><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trans-quality), 변형(trans-form)</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질료가 가진 원래의 형질을 연금술사처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 이는 아마도 모든 조형예술 창작자가 꾸는 꿈일 것이다. 사실 미술사는 매체 또는 질료의 비인간적 속성과 싸워 이긴 작가의 창작 투쟁 기록이라 할 만큼, 조형예술에서 재료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자유자재로 형질 변경시키는 일은 필수적이고 필연적이다. 여기에 공예도 예외는 아니며, 심지어 공예야말로 가장 극명하게 질료와 작가와의 겨룸이 드러나는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공예가는 나무의 자연 혹은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그것이 인공의 가구나 장신구가 되도록 창작해야 하고, 철과 같은 강건한 금속을 물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선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고전적인 의미의 공예가 가진 연금술이라면, 현대 공예는 이보다 좀 더 나아간다. 아니, 좀 더 도발적이거나 실험적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김경환의 &lt;의자&gt;는 금속 공예로 실험 가능한 질료의 변성, 즉 금속의 질적 속성을 변질시키는 실험의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가 될 듯한데, 일견 가죽 시트가 얹힌 의자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에서 가죽은 사실 매우 딱딱하고 차가운 철판이다. 일종의 ‘지각의 착각’을 유발시키는 &lt;의자&gt;가 가능했던 것은 작가가 ‘철’이라는 소재를 부단히 연마해 애초 질료가 가진 고정된 성질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이정미의 경우는 금속을 가지고 물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하는데, 추상적 형태를 채택함으로써, 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적으로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경환이 시각적 유사성에 기반을 두고 질료의 극복을 꾀하는 것과는 다른 공예 방식의 변성/변형이다. 이와는 다른 지점에서, 장정숙의 &lt;파란 거품&gt;은 좀 더 시적이고, 섬세한 수공예를 통해 질료로부터 예측하기 힘든 형상을 구축해낸 경우이다. 작가는 실처럼 가공된 에나멜선을 뜨개질(crochet)하여 유기적 형태의 작은 구조물을 만들어낸다. 이는 이를테면 선에서 면으로, 이차원에서 삼차원으로의 변형이 일어나는 매우 소박한 공예의 한 예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2-5. 장식성과 심미성의 변주</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lt;크라프트 드림 2009&gt;에 참여하는데, 지금까지 위에서 논하지 않은 작가들이 있다. 지영지, 김윤정, 박성숙, 안승태가 바로 그들이다. 지금까지 논할 수 없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이 작가들의 작품이 범주화되지 않는 개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 장신구 작업을 하는 공예작가들이어서 부족한 나의 미술비평언어로는 충분히 논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품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거나 미학적 논점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 이곳의 공예작가들 작품에서 장식성과 심미성이 꽤 다채롭게, 작가의 창작 개념을 수반하면서 상당히 정교하게 변주되고 있음을 보았다. 예컨대 지영지의 경우는 금속으로 드로잉의 가벼움을 표현하고자 하며, 칠보를 현대적인 색채미로 재활성화하려 한다. 같은 칠보를 쓰더라도 김윤정이나 박성숙의 작품에서는 자연의 미감이 돋보인다. 안승태의 목걸이, 반지는 단순한 기하학 도형을 기본 형태로 해서 표면과 내면의 마티에르를 치환시키거나 하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장신구 공예의 고도로 세련되고 정교해진 심미성이다.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nbsp; </span></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center"><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3. 나가며 </span></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pan style="FONT-SIZE: 130%">이제까지 다소 긴 글을 통해 나는 현재의 공예가 어떤 열린 지평을 그려나가고 있는지 논했다. 그것은 공예 내부적 시선이 아니라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본,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현대미술비평의 눈으로 들여다본 공예의 관습과 반(反)관습이다. 마네가 거친 붓 자국으로 파리의 세속적 여인, 공원의 남녀, 술집 등을 가감 없이 그려내, 그때까지 살롱과 관학파를 중심으로, 또한 암묵적으로 미술제도 안에서, 작가와 감상자 안에서 통용돼온 미술 관습을 노출시켰듯이, 현대 공예가들은 내부적으로 익숙해진 공예의 관습을 포기함으로써 공예의 형식, 태도, 기능을 재정립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구체적이고 힘 있는 양상을 우리가 지금까지 이 글에서 살폈던 &lt;크라프트 드림 2009&gt;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작품에서, 그들의 창작 의도와 여러 국면에서 조우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span> <br><br></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강수미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 철학박사, 미술비평)<br>치우금속공예관 기획 &lt;크라프트 드림 2009&gt; 전시도록.</span></p><p class="바탕글"><br><br><br><br>* 전시개요<br>1. 전시명 &lt;크라프트 드림 2009&gt;전 <br>2. 주최 : 치우금속공예관<br>3. 기간 : <strong>2009년 10월 9일(금) ~ 11월 7일(토) (30일간)<br></strong>4. 참여작가<br>&nbsp;&nbsp;&nbsp;&nbsp;김경환, 김윤정, 박성숙, 박성철, 안승태, 윤석철,&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r>&nbsp;&nbsp;&nbsp;&nbsp;음한교, 이병훈,이정미, 장정숙, 지영지, 사카이 나오키<br>&nbsp;&nbsp;&nbsp;&nbsp;(이상 금속 12명)<br>&nbsp;&nbsp;&nbsp;&nbsp;강준영, 이은미 (이상 도자 2명)&nbsp;&nbsp;&nbsp;&nbsp;<br>&nbsp;&nbsp;&nbsp;&nbsp;김남수, 백&nbsp;&nbsp;은 (이상 목칠 2명)<br>&nbsp;&nbsp;&nbsp;&nbsp;김정석 (이상 유리 1명)<br><br>*찾아오시는 길<br>4호선 선바위역 1번 출구<br>3호선 양재역 3번 출구<br>각 지하철 출구로 나오신후 마을 버스 18번, 19번, <br>간선버스 441, 경기버스 11-3, 917 버스를 차고 식유촌 마을 입구에서 하차후&nbsp;&nbsp;천주교 우면성당 또는 예원 화원 옆으로 오시면 <br>치우금속공예관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br><br><br><br>www.chiwoocraftmuseum.org&nbsp;&nbsp;<br>02-57-6663<br></p><br/><br/>tag : <a href="/tag/크라프트드림2009" rel="tag">크라프트드림2009</a>,&nb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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