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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eek Your Daimonio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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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γνῶθι σεαυτόν&gt; : &quot;Know thyself - and thou shall know all the mysteries of the Gods and of the universe.&quot;, the Oracle at Delp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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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25 Nov 2009 11:40:5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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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eek Your Daimonio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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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솔로이스트, <병이 나은자가 신에게 드리는 감사의 노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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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nbsp;&lt;오만과 편견&gt;, &lt;어톤먼트&gt;의 감독인 조 라이트의 작품. 감독도 그렇지만 여러모로 무척 기대하고 있던 작품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히 오래 전부터&nbsp;개봉예정 작품이었는데 미루고 또 미뤄져 실제로&nbsp;볼 수 있게 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기간 동안 음악 영화제 등 많은 곳에서&nbsp;상영작으로 선정되어&nbsp;미리 평론가들의 영화에 대한&nbsp;혹평에 가까운 이야기들을&nbsp;접할 수 있게되어&nbsp;기대를 접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br><br>&nbsp;영화는 보통의&nbsp;기대와 달리 상당히 심심하게 진행된다. 우리가 예상하는 눈물을 자아내거나 심금을 울리는 인간승리의 장면을&nbsp;그리지 않아,&nbsp;감독의 가슴 미어지는 전작들과 달라,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nbsp;그렇다고 그것을&nbsp;이 재능많고 사려깊은 감독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나는&nbsp;이 작품의 이야기가 되는&nbsp;본래의 실제 사건에 좀 더 극적인 내용이 있었다면&nbsp;좋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다소 평이한 이야기로 감독 짜넣은 세심한 연출이&nbsp;돋보이지 못하고 함께 묻혀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br><br><br>&nbsp;아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영화의&nbsp;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거리의 터널에서 로페즈가 나다니엘에게 첼로를 선물하고 그의 연주를 듣는 부분이다. 영화의 음악은 상당부분 베토벤의&nbsp;작품들을 편곡하여 사용하는데, 그 장면에서 연주되는 &lt;A City Symphony&gt;라는 곡은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을 편곡한 것이다. 나다니엘이 배운적 조차 없는 두줄만이 남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nbsp;드디어 다시 자신의 악기인 첼로를&nbsp;연주하게 되었을 때에&nbsp;흐르는 곡의 부제가&nbsp;&lt;병이 나은자가 신에게 드리는 감사의 노래&gt;라는건&nbsp;상당히 의미심장하다.&nbsp;정말&nbsp;감탄할만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br><br>&nbsp;이 영화가 음악영화가 아닌 성장영화라는 비판도 있지만 나는 이 영화가 음악"만"을 다룬 영화가 아닐뿐 분명히 음악영화의 분류로 넣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저 &lt;병이 나은자가 신에게 드리는 감사의 노래&gt;라는 곡의 부제는 여러 관점에서 영화의 내용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나다니엘의 심리와 행동, 누가 진실로 병든 자이며 병에서 낫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작품의 음악을 함께 생각하여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nbsp;음악은 영화가 그리는 "대상"으로 사용되지 않았을 뿐&nbsp;작품의 다른 요소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야기를 구성하는 대단히 중요한 하나의 축이다. <br><br>&nbsp;비록 영화는 분명 기대에 비해 감동적이거나 극적이지 않지만 조 라이트에게 실망하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그의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까닭은 이런 점에 있다.<br><span style="COLOR: #666666"><span style="COLOR: #000000"><br><br></span></span>---<br><br>+ 비교 감상<br><br><div style="TEXT-ALIGN: center"><br><embed src="http://www.youtube.com/v/lCLRC4be_o8&amp;hl=ko_KR&amp;fs=1&amp;"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embed><br><br><br><br><embed src="http://www.youtube.com/v/hN3HzEWQl0c&amp;hl=ko_KR&amp;fs=1&amp;"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embed><br><br></div>			 ]]> 
		</description>
		<category>art II</category>

		<comments>http://daimon.egloos.com/5130050#comments</comments>
		<pubDate>Mon, 23 Nov 2009 08:58:30 GMT</pubDate>
		<dc:creator>Daimon</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양원제와 단원제, 갈등의 가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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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title="" href="http://daimon.egloos.com/4651474"><br>미국의 양원제</a><br><br><br>&nbsp;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국가에서&nbsp;점점 단원제와 비슷하게 운영되어가고 있기도 하고, 시에스의 양원제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생각되던 터라, 양원제에 대해 불필요한 정국의 혼란을 가중시키는&nbsp;제도가 아닌가 하는&nbsp;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a href="http://ssb1701.egloos.com/3938628" target="_blank">서산돼지 님의 글</a>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는데, 그 혼란이 어떤 사안(정국)의&nbsp;갈등을&nbsp;"정치권 내부"에서&nbsp;해결하는 과정에서&nbsp;발생하는, 충분히 감내할만한&nbsp;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br><br>&nbsp;우리의 헌정사를 살펴보면 (실제로 양원제가 채택된&nbsp;것과 별개로) 양원제인가 단원제인가의 선택에서 많은 권력자들이 단원제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br>양원제 보다 단원제가 기능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통의 생각 역시 그런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nbsp;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지지와&nbsp;맞지 않더라도&nbsp;행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여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nbsp;보는 것은&nbsp;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용과 효율의 문제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한번에 뽑아야 한다는 정말 아주 편의주의적인 발상의 주장도 볼 수 있었다.&nbsp;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nbsp;손쉽게 덮어버리려 하는 것이다.<br><br>&nbsp;국민의 의사를, 상대를&nbsp;존중하지 않는 우리의 정치풍토에서 양원제를 한다고 해 크게 바뀌는 것은 없겠지만 파행과 투쟁만을 말하는 우리의 단원제 국회를 보면 양원제의 장점에 대해,&nbsp;정국의 혼란과 비효율의 가치에 대해,&nbsp;새삼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갈등이 가지는 가치에 너무나 무신경한 것이 아닐까.<br><br><br>---<br><br>+ 추가<br><br>&nbsp;단순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의 경우 그만큼 충격(예외적인 상황)에 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효율적인 시스템의 구성원들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적다. 반대로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효과적으로 동작하기 위해서 구성원들의 협력을 필요로&nbsp;한다. 때문에 그에 대한 합의(문화)가 체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br><br>			 ]]> 
		</description>
		<category>current affairs</category>

		<comments>http://daimon.egloos.com/5124681#comments</comments>
		<pubDate>Mon, 16 Nov 2009 21:06:43 GMT</pubDate>
		<dc:creator>Daimon</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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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우리는 편견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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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nbsp;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편견에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와는 무관하게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는가 만으로도 편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가장 쉬운 예로 고용주는 노동자를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노동자 역시 자신의 고용주를 편견의 눈으로&nbsp;바라보게 되기 쉽다. 공익근무요원에 대한 편견, 군인에 대한 편견, 경찰과 기자에 대한 편견, 이 외에도 실제로 수많은 편견들이 우리 안에 존재하며 우리 역시 그 편견의 대상이 된다.<br><br>&nbsp;문제는 우리가 그 편견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 것인가이다. 우리는 편견에 맞서 싸워야하지만 그것이 그 편견을 가진 사람과 싸워야 한다는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nbsp;그와 같은 행동은 편견을 없애지 못할 뿐만 아니라&nbsp;때로는 외려 편견을 강하게 하기도 한다. 대개의 편견은 경험적인 것이다.<br><br>&nbsp;가장 원론적인 정답은 그 사람에게 예외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편견이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편견을 가진 사람과 싸우는 것은,&nbsp;감히 그 편견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전한 선택이다. 하지만 막상 역할이 바뀌었을 때에 상대를 부당하게 생각했던 편견의 눈으로&nbsp;바라보게&nbsp;되는 이유가, 우리 역시&nbsp;편견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이유가&nbsp;거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br><br>			 ]]> 
		</description>
		<category>fragmentary thoughts</category>

		<comments>http://daimon.egloos.com/5124649#comments</comments>
		<pubDate>Mon, 16 Nov 2009 18:58:01 GMT</pubDate>
		<dc:creator>Daimon</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음악과 사진, 장비의 수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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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바탕','Batang'"><br>&nbsp;내 친구 중에 오디오 시스템에 1억 정도를 들여 듣는 친구가 있다. 진공관 앰프에 스피커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어느 날 그 친구와 음악을 즐기는 또 다른 사람과 같이 내가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친구가 자신의 오디오를 자랑했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듣던 다른 친구가 한 마디했다.</span></p><p><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바탕','Batang'">"선생은 소리를 즐기시는군요. 저는 음악을 즐깁니다."</span></p><p><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바탕','Batang'">&nbsp;나는 순간 머리가 번쩍 깨는것 같았다. 그 사람은&nbsp; 음악 마니아였고 내 친구는 소리 마니아였던 것이다. 실제로 내 친구는 비싼 오디오는 가지고 있었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소프트웨어가 없었다. 음반이 많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친구는 소담한 장비에 아주 많은 음반을 가지고 있었다.</span></p><p><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바탕','Batang'">자리가 어색해지자 내가 조용히 말을 듣던 친구에게 물었다.</span></p><p><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바탕','Batang'">"그렇다면 1억이라는 돈을 들여 시스템을 조율하고, 앰프를 바꾸고, 스피커 전선을 다양하게 바꾸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span></p><p><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바탕','Batang'">그러자 그 친구가 대답했다.</span></p><p><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바탕','Batang'">"그런 분들 덕분에 오디오 시스템의 질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좋아집니다. 그런 가치가 있습니다."</span></p><p><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바탕','Batang'">나는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span></p><p><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바탕','Batang'">해상도나 렌즈의 특성 등을 따지는 당신 덕분에 좀 더 좋은&nbsp; 장비가 탄생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당신의 사진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span></p><p><span style="COLOR: #666666; FONT-FAMILY: '바탕','Batang'">&nbsp;아, 생각난 김에 한 마디만 더 하자. "프로는 사진을 자랑하고, 아마추어는 카메라를 자랑한다." 는 말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는 지금 당신의 수중에 있는 카메라이다. 당신과 함께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거침없이 일을 해주고 즐거움을 주는 카메라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한다. <br>그래야만 '사진의 본질'에 집중할수 있다. <br><br><br></p><div style="TEXT-ALIGN: right"></div><div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 사진작가 김홍희, &lt;나는 사진이다&gt; 중에서</span></div></span><p>&nbsp;<br>---<br><br><br><br>&nbsp;여기저기에서 서열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보니 갑자기 오래전에 보았던 이 글이 떠올랐다.&nbsp;순위를 매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지, 예전에 음악 애호 동호회나 사진 동호회 사람들끼리 만나면 음악, 사진&nbsp;얘기는 뒷전이고 장비 이야기(자랑)만 한다는 다소 불만섞인&nbsp;말들을&nbsp;나도 어디선가 들었던&nbsp;기억이 있다.&nbsp;<br><br>&nbsp;사실&nbsp;멀리 갈 것도 없이 고등학생 시절에 음악 좀 들었다고 하는&nbsp;사람들은 누구나&nbsp;친구들과 이어폰에 대한 논쟁을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소니의 MDR-888이&nbsp;그야말로 '신상'이었는데 이어폰의 순위, 음역, 가격대 성능 등은 워크맨이나 CDP를 가진&nbsp;친구들 사이에서&nbsp;최고의 관심사였다. 더군다나 소니의 888은 학생에게는 부담스러울 정도의&nbsp;가격이었기 때문에 (거기에&nbsp;더해 무척 쉽게 망가졌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친구는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그 친구 역시 정말 애지중지 다뤘던 것 같다.<br><br><br>&nbsp;나는 김홍희 작가의&nbsp;저 글을 처음 보았을 때에&nbsp;카메라가 당신의 사진을 좋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였지만 음악장비와 사진장비를 같은 선상에 놓는 저 예(例)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nbsp;아니 실은 꽤 불만이었다. 사진장비는 "창조"를 위한 것이지만,&nbsp;음악장비는 "재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리는 음악감상에 있어&nbsp;가장 중요한&nbsp;것은 아니지만 무척 중요한 요소이다. 사진도 모니터를 통해 보는 것과 도록을 통해 보는 것, 실제 전시장에 가서 직접 보는 것이 다르듯, 음악 역시 어떤 장비를 통해 재생되느냐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정도가 달라진다. (물론 그렇다고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되겠지만.)<br><br>&nbsp;언젠가 몇 년 전에 휴대폰에 내장된 카메라로만 찍은 사진의 전시회가 열렸었는데 역시 프로는 어떤 사진기를 사용해도&nbsp;잘 찍는지 그 사진들을 보며 정말 감탄하였던 적이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성능만으로 기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수한 내공을 발휘하여 찍은&nbsp;것이 아닌가. 예전에 사진에 관심이 생겨 처음 이런저런 사진 사이트들을 찾아가 구경하였을 때에&nbsp;정말 이해하기 힘든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중에 포토샵의 사용을 극도로 혐오하는&nbsp;풍조와 장비에 대한 은근한 자랑과 질시의 심리&nbsp;같은 것이 있었는데, 아무리 사진을 찍은 뒤에 남에게 평가받고 싶은 것이 기본적인 심리라고는 하지만 다들 무슨 올림픽을 하는지 추켜세우고 깎아내리기에 여념없는 모습이어서 나름 참&nbsp;살벌한 곳이구나 싶었었다.&nbsp;<br><br><br>&nbsp;지난 글에서도 썼었지만 나는 이런 서열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신감의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의 기준에 대한 열망이 유난히 강한 편인데 포토샵을 사도로 규정짓는 것도, 오디오 기기와 카메라를 자랑하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 자신의 in-put을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확인받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br><br>&nbsp;음악 역시 아무리 소리가 중요해도 애호에 우등과 열등이 있을까. 갑자기&nbsp;생각이 나 쓴다.<br><br></p>			 ]]> 
		</description>
		<category>art III</category>

		<comments>http://daimon.egloos.com/5123057#comments</comments>
		<pubDate>Sun, 15 Nov 2009 02:39:52 GMT</pubDate>
		<dc:creator>Daimon</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안전함을 강요하는 한국사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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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nbsp;이번 미수다 논란에서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nbsp;우리사회에 존재하는, 폭력으로 작용하는 타인의 시선이 다시 안전함을 강요하고 편견을 낳게하는 순환을&nbsp;그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지만 우리 안에 존재하는&nbsp;이런 속물적인 성향은 사회의 시선과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일종의 자신감 결여에 기인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남에게 보여지는&nbsp;자신의 모습에서 찾는다. 스펙과 서열을 나누고 우등과 열등을 규정지으며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특정 세대,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에 만연하여 있다.<br><br>&nbsp;이런 자신감의 결여에서 기인하는 또 다른 특징은 그 기준에서 벗어난 자에 대한 폭력이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몇 해 전의 개똥녀 사건과 유사한, 계속하여 반복되는&nbsp;이런 소위 "국민정서법"스러운&nbsp;폭력은 약자&nbsp;혹은 안전한 대상에게 선별적으로 가해지는 경향이 있다.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대상을 강하게 응징하는 것이다. 호기롭게 권력적 지위에 있는 자의&nbsp;치부를 고발하고&nbsp;규탄하는 모습은 보기가 쉽지 않다.&nbsp;신기한 것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공공연한 편견이 공중파에서 방송되었다는 것에&nbsp;분노하지만 이런, 속된 말로 홈피가 털리고 신상이 까발려지는, 폭력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무감각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nbsp;하지만 이번 사건에서&nbsp;쉽게&nbsp;확인할&nbsp;수 있는&nbsp;"개념없는 사람은 혼나는&nbsp;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우리사회의 스펙에 대한 추구, 평균 이하에 대한 부끄러움, 안전한 선택을 찾는 경향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nbsp;<br><br>&nbsp;무엇보다 이번 사건에서 보여지는 비난이 개념없는 사람에 대한 것인지, 우리사회에 만연해있는 폭력적인 편견에 대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nbsp;달리 말하자면 지금 가해지는 대부분의 비난은 공중파에서 겁없이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한 (많은 이들의 심기를 건드린) 개념없음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행동은 분명 사려깊지 못한, 어리석은 것이었지만 이런 수위의 처벌을 받을 정도로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녀는 어떤 대표성도 지니지 못한&nbsp;인물이다. 그녀의 발언이 대표성을 지녔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녀에게 상징성과 대표성을 부여했다. 그녀가 우리를 차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차별했던 사람들을 그녀에게 대입시킨 것이다.&nbsp;<br><br>&nbsp;우리사회에 만연해&nbsp;있는 스펙에 대한 강박증, 평균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nbsp;타인의 시선에 너무나 크게 신경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폭력 역시 마찬가지로&nbsp;타인의 시선에&nbsp;신경쓰기를 강요하고 있다. 이런 폭력은 안전한 선택을 강요할 뿐 우리를 편견에서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편견을&nbsp;가진 자, 혹은 개념없는&nbsp;자에게&nbsp;가해지는 폭력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어떤 권력도, 대표성도 없는 그녀를&nbsp;편견의 상징으로 만든&nbsp;분노는 온당한 것일까. 누가 개념없음과 어디까지 처벌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일까. 만일 그녀가 (그런 생각을&nbsp;가진 것과 별개로) 덜 단정적으로, 덜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라면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을까.<br><br>&nbsp;"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nbsp;우리의 속담은 지금 과거의 어느 때 보다 유효하다.&nbsp;모난 돌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편견에서 자유로워 질 수 없다.<br><br>			 ]]> 
		</description>
		<category>current affairs</category>

		<comments>http://daimon.egloos.com/5120120#comments</comments>
		<pubDate>Wed, 11 Nov 2009 12:26:44 GMT</pubDate>
		<dc:creator>Daimon</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괴테 명언 한구절 (2)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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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br><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nbsp;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 나아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청년을 가끔 만난다. 나는 이렇게 시류에 자신을 내맡겨 버리는 청년을 볼 때마다 불안하다. 그래서 이렇게 주의를 준다. 가라앉기 쉬운 조각배에 타고 있는 인간에게 노가 주어지는 이유는 물결치는 대로 흘러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노선을 변경하기 위해서라고.<br><br></span><div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 괴테, &lt;금언과 성찰&gt; 중에서</span></div><br>---<br><br><br>&nbsp;우리의 삶에 처음부터 주어진 목적이란 없을지 모르지만 적극적으로 의미를 찾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의미는 근본적으로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물론 삶에서 의미란 "무엇"이 아닌 "어떻게",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결정권이 있다.&nbsp;즉 "왜"라는 질문을 통해&nbsp;삶에 낭비를 줄이고 적극적으로 의미있는 일을&nbsp;향해 갈&nbsp;수 있는 것이다.<br><br>&nbsp;반대로 무언가 하고 있지만 더 이상 의미를 느낄 수 없다면 결단을 내리는 것 또한 필요하다.<br><br>			 ]]> 
		</description>
		<category>art I</category>

		<comments>http://daimon.egloos.com/5116066#comments</comments>
		<pubDate>Fri, 06 Nov 2009 18:48:01 GMT</pubDate>
		<dc:creator>Daimon</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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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제왕적 사법부"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 </title>
		<link>http://daimon.egloos.com/511456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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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nbsp;"제왕적 사법부"라는 표현을 처음 본 것은 &lt;미국헌법과 민주주의&gt;라는 책의&nbsp;최장집 교수가 쓴 서문(<a h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20789" target="_blank">요약본 링크</a>)에서였다. 이 글을 처음 보았을 때에 컬쳐쇼크와 비슷한 정도의 놀라움을 느꼈었는데 그것은 그전까지는 이런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적 관점에서 사법부(그러니까 헌법에 대한 해석권이 있는 우리의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br><br>&nbsp;이번 미디어법에 대한 헌재의 결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크게 느끼지만 "제왕적 사법부"의 출현을 우려하기에 이와같은 결정에 수긍한다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은 국민이지 헌재의 결정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글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저 "제왕적 사법부"에 대한 글들을 볼 때마다&nbsp;저런 우려의 생각에&nbsp;대체적으로 수긍하면서도 언제나 약간 석연찮은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것은 우리의 법체계가 대륙법의 그것을 계수하였기에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관점으로만 그 역할과 결정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다소 적절치 못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nbsp;때문이다.<br><br>&nbsp;"제왕적 사법부"에 대한 우려는 (충분할 정도로 알지 못하지만 내가 제대로 보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매디슨적 삼권분립의 배경에서&nbsp;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해 우위를 가지는, 소수의 법전문가가 민주주의의 내용과 결정에 간섭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는데에, 정치적 결단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이 사법부에게로 돌아가는 상황의 출현에 근거한다. 민주주의가 헌법(보다 정밀히 말하자면 헌법의 해석)에 의해 제한을 받는 상황인 것이다.&nbsp;하지만 이번 결정에서도 그렇지만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법체계가 영미의 정치체계를 도입한 것과는 달리 대륙(유럽)의 그것을 계수하였기에 매디슨적 삼권분립에서 요구하는&nbsp;(혹은 반대로 그것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나오는) 사법부의 역할을 정확히 수행해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br><br>&nbsp;우리의 법제, 헌법재판소의 모델은 독일의 그것이다. 헌법에 대한 우리의 해석방법 역시&nbsp;미국의 역사보다는 독일의 역사, 그들이 겪었던 정치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독일은 나치의 출현과 세계대전의 경험이 있다. 즉 국민 대다수의 결정으로 헌법이 파괴되는 상황을 겪었던 것이다. 때문에 독일의 법체계가 민주주의 (국민의 결정)&nbsp;보다 헌법을 다소 우위에 두는, 헌법에 의해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해석을 예정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br><br>&nbsp;분명 우리의 사법부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우리의 통치구조가 매디슨적 권력분립을 택하였기에 미국의 그것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사법부가 사고하고 결정을 내리는 방식은&nbsp;확실히 유럽식의 그것에 더 가깝다. 우리의 사법부(헌재)는 유럽식으로 사고하지만 미국식 민주주의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법부가 취하는&nbsp;적극-소극의 자세를 논하기에 앞서, 그리고 그들의 결정을 비판하기에 앞서,&nbsp;이런 차이가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극-소극의 방향과는 무관하게, 이들이 내리는 결정은 법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논리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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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ragmentary thoughts</category>

		<comments>http://daimon.egloos.com/5114560#comments</comments>
		<pubDate>Thu, 05 Nov 2009 06:46:33 GMT</pubDate>
		<dc:creator>Daimon</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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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정의(justice), 그 추상성에 대하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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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nbsp;사실 나는 정의감이 아주 투철한 사람을&nbsp;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옳은 것에 대한 믿음이 뚜렸한 사람일수록, 그런 사람일수록&nbsp;쉽게 자신이 믿는 것을&nbsp;상대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은 폭력적이거나 잔인해지기 쉽다.&nbsp;우리 주위에서 가볍게는 종교인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nbsp;극단적으로는 범인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악독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증거조작이나 고문을 하는 검사나 경찰까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br><br>&nbsp;무엇이 옳은가, 어디까지가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자 모두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nbsp;그렇기에 우리가 상대에게 어떤 행동, 규범을 따르도록&nbsp;요구할 때에는 그것이 "합의된 정의"인가 아닌가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관습적인 것이든, 명문의 규정으로 존재하는 것이든 그것이 사회(집단)에서 받아들여지는 일종의 룰로 전제되어 있어야 비로소 그 "폭력"이 정당화된다. 사법부, 검사나 판사와 같은 권력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정의" 역시 합의된 정의이다. 사실 그 기준은 보다 엄격해진다. 그 권력이 법에 의해서 나온 것이기에 법을 넘어설 수 없다.&nbsp;법이 추구하는 정의는 사회에 의해 합의된 것으로&nbsp;명문의 규정이 존재해야 한다. 때문에 사법부에 가해지는 비판들 중 사실은 법을 만든 입법자들의 책임으로 사법부에게 그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nbsp;것이&nbsp;부당한&nbsp;경우를&nbsp;종종 보게된다.<br><br><br>&nbsp;이번 헌법재판소의 사건 역시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쉽게 추상적으로 헌법과 그것을 수호하는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해, 정의에 대해&nbsp;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nbsp;그 정의 역시 명문의 규정으로 존재하는 합의된 것이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규범은 오직 헌법과 헌법재판소법 뿐이다. 명문의 규정이 아닌 헌법의 원리, 원칙이나 근본적 결단 등도 그 판단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구체적인 권리가 도출되는 재판규범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가 전면적으로 부정되는, 중대한 침해가 존재하는 상황을 필요로 한다.<br><br>&nbsp;보통 흔히들 헌법의 정신, 역할, 그 목적이 소수자 보호와 다수의 전제에 대한 견제에 있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다소 추상적인 표현으로, 풀어내자면 "소수라는 이유로 헌법이 보호하는 권리가&nbsp;침해받지 아니하도록 보호한다"가 정확할 것이다. 국회가 통과시킨, 다수에 의해 통과된&nbsp;법률은 헌법이 명문의 규정으로 보호하는 권리를 침해하여야&nbsp;위헌으로 선고된다.<br><br>&nbsp;그렇기에 이번 미디어법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다수의 전제에 대한 견제, 소수자의 보호 라는 헌법의 목적에 어긋난다는 비난은 다소 부적절한 감이 있다. 권한쟁의심판에서 그 침해를 확인하는 것과는 별개로 무효를 선언하기 위해서는,&nbsp;흔히 문제되는 기본권에 대한 침해와 마찬가지로,&nbsp;헌법 명문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것이 아닌 "다수결의 원칙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적인 원리"라는 해석에서&nbsp;구체적인 보호를 도출해내어야 한다. 헌법이 전면적으로 부정될 정도로, 형해화될 정도로&nbsp;그 침해가 중대함을 요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런 해석의 방식은 지난 행정수도이전 사건에서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았던, 추상적인&nbsp;가치에 헌법 명문의 규정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br><br><br>&nbsp;하나의 법규정에서 수많은 학설이 생겨나는 이유는 각자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학설의 시비를 가릴 때에는 조금 여유를 가져야 할&nbsp;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학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필요한 상황에 적용되어 구체적인 타당성을 가질 때에 그 의의가 있다. 각각의 학설은 각자의 관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br><br>&nbsp;이번 헌재의 결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9명의 재판관들이 내어놓은 각각의 의견은 각자의 관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법안의 통과 과정에서 헌법을 형해화시킬 정도의 중대한 침해가 있었다고 본 재판관은 무효청구를 인용한 것이고, 명문의 규정이&nbsp;아닌 추상적인 가치에서 구체적인 보호를 끌어낼 정도의 중대한 침해는 아니었다고 본 재판관은 기각 의견을 내었다. 침해는 존재하지만 입법부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nbsp;필요로 하는 정도의 것은 아니라고, 입법부의 역할이라고&nbsp;보았던 재판관도 있다. 나는 이번 결정에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nbsp;타당한 결론이었다고 생각한다. 외려 인용과 기각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결정이야말로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이 아니었을까.<br><br><br>&nbsp;권력을 가진 사람은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여야 한다. 무엇이 정의인가, 무엇인 옳은가에 대한 생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추상적인 정의에 투철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폭력으로 변질되는 것을, 그것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정의가&nbsp;아닌 불의로 바뀌게&nbsp;되는 것을&nbsp;어렵지 않게&nbsp;볼 수 있다. 추상적인 정의는 모호하기에 반박하기도, 부정하기도 쉽지 않다. 때문에 우리는 추상적인 정의를 요구할 때에 주의하여야 한다.&nbsp;추상적인 정의는&nbsp;언제고 불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으며 이미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의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결론이,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헌재의 겸손한 판단이, 옳았다고 본다. 우리는 모두가 정의를 외치는, 부정의한 사회에 살고있기 때문이다.<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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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ragmentary thoughts</category>

		<comments>http://daimon.egloos.com/5113414#comments</comments>
		<pubDate>Tue, 03 Nov 2009 20:35:27 GMT</pubDate>
		<dc:creator>Daimon</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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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포스트 모던함과 미디어에 대한 단상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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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nbsp;고대사회와 근대사회, 그리고 모던함과 포스트 모던함을 규정짓고 가르는 수많은 기준들이 있지만 아주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어떤 가치가 사회의 재화를 독점하는가", "가장 큰 권력을 누리는 가치는 무엇인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nbsp;관점에서&nbsp;보자면 고대사회는 성직자와 기사 계층의 "신"과 "명예"가, 근대사회는 전문가와 자본가의 "지식"과 "산업"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가치라 할&nbsp;수 있다.<br><br>&nbsp;그렇다면 과연 포스트 모던의 사회에는 어떤 가치가 지배할 것인가. 예전에 "지금 우리가 말하는 포스트 모던함이란 후기 근대사회의 모습일 뿐, 모던함과 포스트 모던함은 함께 진행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 스스로를 수정하며 유지되는 한 저 모던과 포스트 모던의 두&nbsp;개념은&nbsp;계속하여 함께 진행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데,&nbsp;오늘 문득 자본주의가 근대사회를 대표하는 특징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회에서 재화를 독점하게 되는 가치가 뒤바뀌게 된다면, 독점적인 권위를 누리는 가치가 완전히 변하게 된다면, 경제체제의 형태와는 무관하게 포스트 모던한 사회의 도래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br><br><br>&nbsp;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과거 고대사회에서는 출세하기 위해서 성직자가 되거나 명예로운 일을 행하여 작위를 받았다. 근대사회에서는&nbsp;고등교육을 받아&nbsp;전문지식을 쌓거나 사업을 하여 자본을 모았다. 이런 출세를 위해, 사회의 다수가 독점적인 지위에 접근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하는지를 보면 어느 시대에 있는지, 변화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br><br>&nbsp;그리고 지금의 사회를 보면 그 방향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뉴스에서 황우석 박사의 1심 판결 소식이 보도되며 지지자들에게 열렬히 환영받는 그의 모습이 보였는데&nbsp;상당히 엄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었음에도 집행유예의 형이&nbsp;선고되었다.&nbsp;짐작해보건데 재판부도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nbsp;또 새로이 등장한 팬클럽 정치(?)라는 개념 역시 마찬가지이지만,&nbsp;터무니없는 허경영에서도 알 수 있지만&nbsp;이미 사회에서 유명세와 그것을 따르는 지지자들은 분명 상당한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다.<br><br>&nbsp;연예인들의 위상이 예전에 딴따라 라고 불리우던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한 것 역시 이런 가치의, 권력의 변화를 의미한다. 대통령, 판검사, 의사 등을 꿈꾸던 많은 아이들이 연예인을 장래희망으로 한다는 것은, 또 예전에 비해 정말 많은 수의 고학력 연예인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위에 말한 사회의 재화에, 권위있는 지위에 접근하는 수단이 변화하였다는 것을 이야기한다.&nbsp;전문가들의 이야기 보다 유재석의 이야기가 더 큰 영향력과 권위를 가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nbsp;이런 변화는&nbsp;재화를 분배하는 권력이&nbsp;대중들에게 이양되었다는 것에, 그리고 "미디어"가 그&nbsp;판단의 중심에 있다는 것에&nbsp;기반한다.<br><br><br>&nbsp;허본좌, 황우석, 미네르바 사건 등에서도 알 수 있듯, 연예인만이 미디어의 후광을 얻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과 언론의 조합이 가지는 파괴력을 잘 알고있다. 다른 포스트 모던함에 대한 개념들과 어긋나는 부분이 없는지는 맑은 정신에 차차 생각해봐야겠지만,&nbsp;그리고 몹시 진부한 결론이지만, 분명 미디어는 포스트 모던함을 특징짓는 개념이며&nbsp;미디어를 지배하는 자가 사회의 가치를 지배하게 될&nbsp;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br><br><br><br>+ 추가<br><br>&nbsp;이전에도 미디어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였지만 포스트-모던한 미디어는 단순한 정보의 chanel이 아닌 사회에 권력을 형성하게 해주는 상향식의 영향력을 가진다는 차이가 있다.<br><br>			 ]]> 
		</description>
		<category>art III</category>

		<comments>http://daimon.egloos.com/5112498#comments</comments>
		<pubDate>Mon, 02 Nov 2009 19:25:48 GMT</pubDate>
		<dc:creator>Daimon</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기록 - 미디어법 헌재 결정에 대한 여러 글들 ]]> </title>
		<link>http://daimon.egloos.com/5111894</link>
		<guid>http://daimon.egloos.com/5111894</guid>
		<description>
			<![CDATA[ 
  <p><br>&nbsp;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이글루스에서 보았던&nbsp;여러 글들 중 공감했던 것들을 모아놓습니다.<br><br>&nbsp;판결에 대한 직접적인 의견은 처음 두가지이고, 그 뒤의 글들은 법리적인 부분에&nbsp;대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헌재의 결정은 각 논점에 있어 법리적인&nbsp;판단과 함께&nbsp;가치판단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합니다. 단순히 논리/비논리가 아닌 각자 서로의 입장에서 어떤 부분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헌재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지요.&nbsp;<br><br>&nbsp;덕분에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nbsp;감사합니다. ^^ <br><br><br>---<br><br><a href="http://bach2138.egloos.com/3403654" target="_blank">"헌재의 미디어법 판결을 보고 (이상돈 교수님)" <br><br></a><a href="http://satyr.egloos.com/2468192" target="_blank">나는 '미디어법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찬성한다. </a><br><a href="http://bach2138.egloos.com/3403654" target="_blank"><br></a><a href="http://sjheem.egloos.com/5109647" target="_blank">진영논리의 함정 <br><br></a><a href="http://jayouropen.egloos.com/4569899" target="_blank">헌법재판소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nbsp;<br></a><br><a href="http://socio1818.egloos.com/3411330" target="_blank">헌법재판소, 미디어법<br><br><br></a>(계속 추가될 수 있습니다.)<br><br></p>			 ]]> 
		</description>
		<category>current affairs</category>

		<comments>http://daimon.egloos.com/5111894#comments</comments>
		<pubDate>Mon, 02 Nov 2009 06:58:47 GMT</pubDate>
		<dc:creator>Daimon</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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