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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철기 일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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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홍철기 일지</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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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Nov 2009 04:50:3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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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철기 일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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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1114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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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얼마전부터 아주 가끔씩 한의원을 간다. 나를 보자마자 의사는 "일만 벌리고 뒷수습을 못하시죠?"라고 말했다. 끄억. 초면에 바로 정곡을 찔렸다. 아감벤의 책이 두 권 연속으로 번역이 되어 나왔다. &lt;예외상태&gt;(김항 옮김)와 &lt;목적없는 수단&gt;(양창렬/김상운 옮김). &lt;예외상태&gt;는 데리다의 &lt;법의 힘&gt;과 함께 특히 지금과 같은 시기에 법치 레토릭의 과잉과 행정독재라는 현실의 불일치적 일치의 상황에서는 토론과 논쟁을 위한 필독서다. 논쟁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치의 인종학살이라는 끔찍한 이미지를 걷어내고 보면 현재의 행정독재(독재정권이라는 과잉의 이미지도 좀 걷어낼 필요가 있다)는 법치(rule of law)도 아니고 법대로도(rule by law)&nbsp;아니고 바로 느슨하게 말하면 데리다가 말한 '법의 힘'의 행사이며, 아감벤이 말하는 "통치 패러다임으로서의&nbsp;예외상태"이기&nbsp;때문이다. 박정희의 헌법 이데올로그들은 바로 이러한 통치 패러다임의 엄격한 학문적 옹호자들이기도 했다.&nbsp;&lt;목적없는 수단&gt;은 아감벤의 비판적인 측면보다는 생산적인 측면에 관련하여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예외상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a href="http://www.ghostandson.com/" target="_blank">시카고</a>에서는 나의&nbsp;새로운 솔로 mini-CD가 발매되어 몇장이 내 수중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전부터 <a href="http://www.hongchulki.com/" target="_blank">홈페이지</a>를 따로 만들어서 오픈했다. 아직은 영어정보만 있고 내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학진 프로젝트 연구보조원을 몇달전부터 맡게 되어 팔자에도 없던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등에 관한 책들을 줄창 구입하고 읽으려고 하고 있다. 어제는 백남준에서 사운드/노이즈 이론에 관한 워크샵을 진행했다. 참여자 부족 등의 여러 가지 사정에서 그냥 나 혼자 공부하고 내용을 정리하는데 일단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역시 내가 뭔가 이야기할 때는 전공과 관련하여 이야기할 때가 그나마 성공적이고 예술과 관련된 내용은 역시 말을 하는 것보다는&nbsp;닥치고 연주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엄밀한 노이즈/사운드의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직접 읽고 생각하는 기회는 어떻게든 늘려야만 할 것이다. 강연이든 워크샵이든 아니면 (저주스러운) 번역이든. 공간 해밀턴의 전시때문에 턴테이블이 출장을 나가있다보니 지난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필립 슐츠와 함께) 랩탑 노이즈 듀오를 해보는 기회가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그 사이에 영화음악 등을 위해 녹음한 턴테이블 노이즈를 재활용하는 기회이기도 하고 lloopp를 간단한 수준에서 활용한 컴퓨터 노이즈의 탐구이기도 하다. 턴테이블이 없다보니 이 기회에 즉흥연주자에게서 악기를 제거하면 어떤 연주가 가능할까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자신의 악기가 없을 때 오히려 더 창조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뭔가 즐거운 소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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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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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Nov 2009 04:38:01 GMT</pubDate>
		<dc:creator>sonicluv</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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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1022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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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용산참사 농성자들에 대해 중형이 구형되었고 전교조 1차 시국선언 교사들을 검찰이 대부분 기소했다. 우리는 절대로 유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자명한 현실과 유신으로 시대를 되돌리고자 하는 의지에 충만한 정부 사이의 괴리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사실 이 의지의 주체들 자신은 이러한 괴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예를 들어 '우리가 하고 싶어도 방송장악 못한다'는 식의 발언).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른다고, 이 의지가 조금씩 관철되는 상황(물론 이 의지의 관철은 실제 원하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국가와 사회를 망쳐놔버린다는 분명한 효과를 낸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br />
<br />
그리고 일단 잊지 말아야 할 것들: 국립대 법인화 반대, 노조전임자 임금 금지 반대, 복수 노조 허용 반대, 공무원 노조 불법화 반대.<br />
<br />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여 좌측 통행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라!<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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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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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1 Oct 2009 16:13:02 GMT</pubDate>
		<dc:creator>sonicluv</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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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1018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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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우연히 발견한&nbsp;비디오. DVD로 발매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일단 유튜브에 있으므로.<br><embed src="http://www.youtube.com/v/A73JdpdWVJY&amp;hl=ko&amp;fs=1&amp;rel=0"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br></embed><br><br><embed src="http://www.youtube.com/v/uT5pwVqS7lg&amp;hl=ko&amp;fs=1&amp;rel=0"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embed><br/><br/>tag : <a href="/tag/곡사" rel="tag">곡사</a>,&nbsp;<a href="/tag/자살변주" rel="tag">자살변주</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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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지</category>
		<category>곡사</category>
		<category>자살변주</category>

		<comments>http://chulki.egloos.com/2683243#comments</comments>
		<pubDate>Sat, 17 Oct 2009 15:15:07 GMT</pubDate>
		<dc:creator>sonicluv</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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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1015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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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OW WHAT의 오프닝을 보고 왔다. 사실은 그 자리에 오는 사람 중에는 별로 아는 사람 많지 않은 관계로 몇몇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지만 결국은 오프닝 내내 내 작품이 원하는대로 잘 돌아가는지를 '감시'하다가 들어왔다. 소리는 원하는대로 나왔으나 (주최측이 아닌) 누군가가 작품의 전원을 끄는 바람에 몇번 다시 작동시키는 사태 아닌 사태가 발생했다. 나름 참여작품인 셈인가, 아니면 전시 오프닝 파티를 위해서 준비한 디제이셋이 소음의 크기 때문에 이웃 주민의 항의로 중단된 것과 같은 이치인가. 아니면 둘 다? 작품의 전원 스위치가 관객들에게 마찬가지로 노출되어 있는 빔프로젝터와는 달리 왜 턴테이블은 쉽게 꺼질까? 그냥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는 이유때문인가? 어쨌든 전시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내 작품 준비가 오래 전에 끝났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우선 구민자씨의 작품은 현대 민주주의 정치와 통치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삶(혹은 생체)의 통제 양식으로서의 (감시와 처벌이 아니라) 표준화(혹은 정상화; normalization)가 그것이다. 물론 표준화, 혹은 정상화의 역할은 안전과 안보의 담론과의 연관관계에서 보다 더 잘 드러나기는 하지만. 작가는 통계청이 발표한 표준생활지표(?)에 의거하여 '정확한' 생활을 하고 그 생활을 24시간 촬영하여 보여주는 것이 작품의 전부이지만 나의 평소 관심사 때문에 상당히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자극이 되는&nbsp;작품이었다. 1871년 파리 꼬뮌에 관한 영화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꼬뮌과 민주주의를 연관지어서 깊은 생각을 할지는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 설치물(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비유한 '동굴'에서 영감을 얻은...믿거나 말거나)과 소리를 경쟁(?)하는 패쉬 부자리의 복합적인 작품이 2층에 설치되어있다. 잘 찾아서 들어보면 경쟁이 정말로 벌어지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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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지</category>

		<comments>http://chulki.egloos.com/2652136#comments</comments>
		<pubDate>Fri, 16 Oct 2009 12:10:40 GMT</pubDate>
		<dc:creator>sonicluv</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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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1013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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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음악가로서 공연 기회는 안생기고 미술이나 영화와 관련된 행사들에서 참여요청이 들어온다. 음악한다는 사람들이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을 음악으로 쳐주질 않아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번 행사 NOW WHAT은 앞으로 지속성을 갖는 기획이 되면&nbsp;좋지 않겠는가하는&nbsp;생각이다. 내가 참여하는 부분은 Turntables라는 제목의 음향설치 작품과 '사물과 민주주의를 매개하기'에 관한 워크샵이다. 워크샵은 주로 슈미트와 라투르, 아감벤에 관한 내용이 될 것이다. 기술과 사물, 수단과 비-인간을 민주주의와 어떻게 관련지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유용한 도구 상자로서 위 저자들의 주요 개념들을 소개하면서도 현안과 관련된 방향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요점은 여전히 우리는 인간과 주체(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만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과 주체(예를 들어 민주주의 정치의 공식 주체인 인민)의 경계, 극단이며 그 극단에서 우리는 라투르가 말하는 인간과 비-인간이 매개되는 하이브리드를, 혹은 아감벤이 말하는 주체와 대상, 권리와 법이 모두 중단된 형태로 구분불가능하게 되는 예외상태를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인간(nonhuman)이&nbsp;결정적인 개념적 나침반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전히 유력한 경쟁자인) 정신분석의 반인간주의로는 여전히 비-인간은 인간과 대조되는 비결정성의 영역에 남겨지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Grizzly Man의 예와 같이&nbsp;차이의 극복의&nbsp;형태로 동일시될 수는 없는 관계의)&nbsp;인간과 비-인간을 매개하거나 (전체주의나 수용소의 경우처럼) 양자를 중단된 상태로 결합시키는 주권적 관계를 절단하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결국에는 헐벗은 삶의 순수한 공동체로 정의하는데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데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음향설치작품은 improvisation without improviser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조만간 시카고의 한 친구에 의해 발매 될 예정으로 데이타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에 설치한 작품("Amplified WC")의 녹음에 이어 이 작품도 사운드 녹음을 음반으로 만들 계획이다. 기본적으로는 즉흥연주시에 적용하는 규칙들과 조건들을 그대로 전제하면서도 즉흥연주자 없이도 작동하되 여전히 (작품이 설치된 공간을 매개로 하여) 연주자 자신의 귀에는 만족스러운 (혹은 원칙에 충실하다는 점이 확인되는) 결과가 도달하는 것이 원칙이다. 연주와 동일한&nbsp;규칙과 조건,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원시적이고 매우 초보적인) 기술적 한계 안에서도&nbsp;실제 연주와는 다른 관점과 접근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 그러한 관점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려한다. 특히 (원래는 악기인) 설치작품을 가지고&nbsp;실제 연주하는 것과 설치작품 자체가 연주자의 개입없이 의도대로 작동할 때의 소리를 동시에 담게 될 음반은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형태가 될 것이다(더블 3"cd나 12"lp로 발매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보니 개념과 원칙만을 이야기했는데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연주에서 내가 사용하는 두대의 테크닉스 디제이 턴테이블에서 바늘과 카트리지를 제거하고 순전히 회전운동에 기초하여&nbsp;물리적으로 소음과 공명을 발생시키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은 개념적으로는 통제에 대항하는 역-통제 전략으로서,&nbsp;그리고 이를 통해 형식과 내용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과 질료를 연관시킬 수 있는&nbsp;'without'의&nbsp;의미와 기능(2000년대 도쿄 실험음악의 산물인&nbsp;turntable without records, empty sampler, no input mixing board는 매우 좋은 예들이다)을 (재)해석하려는데&nbsp;조금 더 관심을 집중하려는 개인적인 의도와도 무관하지 않다.&nbsp;이 작품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프로토타입 중 하나의 사진이 맨 밑에. 그러고 보니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연대 학부 시절 같이 철학과 수업을 듣던 (나를 포함한) 세 학생이 이 행사에 합류하였다. 11월 7일에 상영하는 곡사의 영화 중에 모르는 제목이 하나 눈에 띤다.<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13/68/e0083168_4ad3465fdfa0b.jpg" width="500" height="929.11153119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13/68/e0083168_4ad3465fdfa0b.jpg');" /></div>&nbsp;<a href="http://blog.naver.com/lab201/60092541999">http://blog.naver.com/lab201/60092541999</a> (홍보동영상)<br>&nbsp;<br>공간 해밀톤의 시작과 더불어 &lt;NOW WHAT_ 민주주의 그리고 현대예술&gt; 전시를 오픈합니다.<br>일시: 2009년 10월 15일 오후 5시<br>장소: 공간 해밀톤_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83-142<br>안내: 031.420.1863<br>&nbsp;<br>SPACE HAMILTON<br>Opening: 5pm 15th Oct. 2009 (Thurs)<br>Address: 683-142 Hannam-dong Yongsan-gu, Seoul<br>Tel: 031.420.1863<br>&nbsp;<br>Blog: <a href="http://blog.naver.com/lab201">http://blog.naver.com/lab201</a> <br>&nbsp;<br>&nbsp;<br>Artists and Contributors:<br>강석호 Seokho Kang<br>구민자 Minja Gu<br>김곡, 김선 Kim Gok, Kim Sun<br>김은정 Eun-Jung Kim<br>바루흐 고틀립 Baruch Gottlieb<br>박화영 Hwayoung Park<br>패쉬 부자리 Pash Buzari<br>빠스칼 리에브르 Pascal Li?vre<br>엘 하즈 맨죠 치스 카나카시 El Hadj Mansour Ciss Kanakassy<br>락스 미디어 콜렉티브 Raqs Media Collective<br>쥐스틴 트리에 Justine Triet<br>홍성민 Sungmin Hong<br>홍철기 Hong, Chulki<br>피터 왓킨스 Peter Watkins<br>&nbsp;<br>Curator: 양지윤 Ji Yoon Yang</p><p>&nbsp;<br>Programme at Insa Art Space:<br>5pm 24th Oct (Sat) 홍성민 Sungmin Hong / play-writing (Performance, 2009)<br>7pm 28th Oct (Wed) 홍철기 Hong, Chulki / What is Nonhuman?: Mediation between things and democracy (Talk)<br>7pm 30th Oct (Fri) 바루흐 고틀립 Baruch Gottlieb / Materiality of Digital Media (Talk)<br>5pm 31st Oct (Sat) 피터 왓킨스 Peter Watkins / 코뮌 La Commune (Film Screening)<br>7pm 4th Nov (Wed) 쥐스틴 트리에 Justine Triet / 광장에서 Sur Place (Video Screening)<br>7pm 6th Nov (Fri) 패쉬 부자리 Pash Buzari / 김은정 Eun-Jung Kim / How about this (Talk)<br>6pm 7th Nov (Sat) 김곡, 김선 Kim Gok, Kim Sun / (Film Screening, Director's Talk)<br>&nbsp;</p><p>&nbsp;<br>협력 Coordination:<br>김주원Joowon Kim (Planning Director, Lab201)<br>김조은Joeun Kim (Associated Curator, Lab201)<br>정다은Da Eun Chung (Asst. Curator, Lab201)<br>김태헌 Tai-hun Kim (Design)</p><p>&nbsp;</p><p>&nbsp;<br>Venue 1. <br>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br>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90<br>Insa Art Space of Arts Council Korea<br>90 Wonseo-dong, Jongro-gu, Seoul<br>T 02.760.4722<br><a href="http://www.insaartspace.or.kr/">www.insaartspace.or.kr</a><br>&nbsp;<br>24th Oct (Sat) - 8th Nov 2009 (Sun)<br>Opening 5pm 24th Oct (Sat)<br>&nbsp;</p><p>Venue 2.<br>공간 해밀톤<br>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83-142<br>SPACE HAMILTON<br>683-142 Hannam-dong Yongsan-gu, Seoul<br>T 031.420.1863<br><a href="http://www.podopodo.net/">www.podopodo.net</a><br>&nbsp;<br>15th Oct (Thurs) - 21st Nov 2009 (Sat)<br>Opening 5pm 15th Oct. (Thurs) <br>주최/주관 계원디자인예술대학, 랩201 Hosted and Organized by K-SAD and Lab201<br>후원 Sponsored by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ts Council Korea, 독일문화원Goethe Institut Korea, K-SAD<br>협찬 Supported by KCC, BenQ<br>미디어 후원 Media Sponsor: EBS<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13/68/e0083168_4ad34b1e08fdb.jpg" width="500" height="18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13/68/e0083168_4ad34b1e08fdb.jpg');" /></div></p><br/><br/>tag : <a href="/tag/nowwhat" rel="tag">nowwha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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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2 Oct 2009 15:29:3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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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0920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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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1.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학업으로의 복귀가 약간 지연되었다. 그리고 The Thing과 오토모 요시히데 4인조가 서울에 도착했다. 어제밤 공연부터 1부는 한국의 재즈/국악 음악가들과 협연의 시간을 가졌고, 2부에서 본격적으로 이 4인조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었다. 1부는 솔직히 말해서 당황스러웠다. 물론 공연 주최측에서 여러 가지 고려를 하여 마련한 협연이겠지만 음악적인 결과가 그것을 따르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idiomatic improvisation과 non-idiomatic improvisation (혹은 free improvisation)의 구분이 필요하다(비록 유럽에서 free improv라는 이름을 달고 연주된, 혹은 사후에 그와 같은 레이블이 붙은 구체적은 음악 활동은 특정 형태로 고착화되면서 그 자체가 또다른 idiom을 구축했다 하더라도. 물론 우리는 동시에 이른바 '온쿄' 이후의 새로운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나 어쨌든) 1부의 공연은 여전히 그 구분이 최소한 개념적으로는&nbsp;필요하며 유효하다는 사실을&nbsp;입증했다고 본다.&nbsp;그리고 2부. 아마 다른 사람들도 떠올렸을지 모르겠지만 이 4인조가 첫 테입을 끊은 순간부터 내 머리속을 스친 것은 마사유키 타카야나기였다. 기타와 색소폰, 드럼과 큰트라베이스가 뿜어내는 에너지와 노이즈를 들으면서 그 생각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이후의 보다 정적이고 느린 연주로의 전환은 예기치 못한 놀라운 것이었지만 역시 개인적인 바램은 2부 첫파트의 폭발적인 노이즈 에너지가 계속 지속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악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물건(thing)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노이즈. 영화 The Thing에서처럼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상황.<br><br>2. 그 전날에는 류한길 프로듀서 선생님(?)의 지휘하에 (그리고 실제로는 이 선생님을 혼내는 우리의 마스터 오토모씨의 엔지니어링으로) The Thing과 오토모 요시히데, 그리고 한국(거주)의 전자즉흥연주자 5명의 녹음 세션이 있었다. 언제나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에 적응하면서도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능력에서 정말로 오토모씨는 탁월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사실 (한국 거주 음악가들인) 우리는 여건 때문에, 그리고 여건을 탓하면서 우리 스스로 결과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포기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과에 이르는 과정 자체를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포기 자체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좋지 않은 습관이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운드는 당연히 좋지 않게 나오고 출력은 언제나 작다. 공연장은 밴드 위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거기에 스스로를 끼워 맞춘다. 그리고 아직은 이 상황을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 기술이나 지식도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오토모씨를 보면서 사실 많은 것을 배운다. 특히 단호하게 '이러면 안된다'고 하는 경우에서. 여하튼 그리하여 색소폰, 콘트라베이스, 드럼, 기타를 연주하는&nbsp;4명의 악기 연주자와 5명의 악기인지 아닌지 모를 것들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90분의 녹음 세션이 완료되었다. 녹음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앞으로 이와 같은 녹음을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더 준비를 하고 경험을 쌓아야 할지 좀 더 분명해진 녹음 세션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년 초에는 어떻게든 발매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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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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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0 Sep 2009 14:54:1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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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0916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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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소식이지만 김곡의 &lt;고갈&gt;이 우여곡절 끝에 개봉되었다. 사실은 이미 개봉된 지 2주일은 지났을 것이다.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한 번은 보러 가야 할텐데 일단 시간이 날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살짝 음악을 얹어서 거의 무임승차를 한 기분이지만 (특히 곡사의 전작인 &lt;자살변주&gt; 음악작업과 비교해보면) 그렇다하더라도 그 무임승차 자체가 내게는 영광인 걸작이다. 계속 곡사와 김곡의 작품을 옆에서 봐왔지만 고집스럽게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친구에서 뭔가 무시무시한 놈이 되어버렸달까. 이제 앞으로의 그의 작품들을 기다리면서 기대를 할 그런 즐거움만 남았다. 그것도 앞으로 오랜 동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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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6 Sep 2009 10:21:40 GMT</pubDate>
		<dc:creator>sonicluv</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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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0915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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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즈비그뉴 칼콥스키의 3일간의 서울과 신갈, 인천에서의 공연은 인천 스페이스 빔에서 주민신고와 경찰출동으로 공연이 중단되면서 마무리되었다. 신고하겠다고 하면서 빨리 공연을 끝내라고 항의하는 주민분께 사과하면서 조금만 참아달라고 부탁하는 우리 일행을 보면서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을 보니 일단 심각하게 끝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배다리산 막걸리에 맛을 들인 즈비그뉴를 상대해주면서 홀짝홀짝 마신 술때문에 숙취와 두통은 상당히 지속되었다(그리고 막걸리와 함께 대담을 기록해보려는 시도는 완전히 무산되었다). 본인이 자비로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면서 시작된 이번 일정은 서울국제실험영화제와 백남준 아트센터, 그리고 스페이스 빔의 도움으로 결과적으로 매우 풍성한 내용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기획을 하는 입장, 그것도 경험미숙의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여러 기관들과의 협조와 후원하에 일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여하튼 행사의 만족도만을 놓고 보면 역시 12일 백남준 아트센터에서의 행사였다. 지난해에 실험영화제에서의 존 케이지의 폰타나믹스 라이브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모로 음악공연에는 적하하지 않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시설때문에 실험영화제 공연은 만족스럽지 못했다(그래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결과가 잘 나온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앞으로의 다른 기획에서 반드시 고려해야할 부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노이즈 음악가/전자즉흥음악가는 공연장의 음향시설과 공간마저도 자신의 악기의 일부로 생각해야 하지만 그것을 위한 전제조건은 그 공간/설비와의 충분한 시간 동안의 교감/조정과 소통이다. 게다가 매번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스스로 좌절시키면서 공간과 설비에 맞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12일 백남준 아트센터에서의 공연은 바로 이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자신만의 순수함과 비타협성을 (전혀 다른 의미에서) '순수한' 예술적/제도적 사고방식과 대립시키는 즈비그뉴의 강연은 어찌보면 극히 단순한 내용으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도발이며 또한 80년대 초반 이래로 지금까지 그 입장(태도가 아니라)을 고수해온 그 본인의 굳건한 의지를 잘 보여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떤 내용의 강연/토크가 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를 기획한 나도 잘 알지 못했다(다만 그가 하는 말이 도발적이고 논쟁적일 것이라는 점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고 의도했던 바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기획의 의도와 상당히 맞아 떨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야기가 재밌어지려는 무렵에 강연(혹은 질의/응답)이 끝나고 공연이 시작되어 아쉽기도 했고, 어찌보면 절묘한 전환이었다. 즈비그뉴가 작곡한 &lt;순환성&gt;을 연주한 5인조 세트는 이번 3일의 최고점이었다. 음량에서나 앙상블에서나 모두. 기회가 된다면 동일한 앙상블의 후속 세션을 마련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사실 나는 EAI나 노이즈 음악(여기서는 이것들을 어떤 확립된 장르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사이의 경계를 넘어다니는 음악가들을 존경한다(예를 들어 가장 대표적으로는 오토모 요시히데와 케빈 드럼). 그리고 &lt;순환성&gt; 5인조는 서울과 그 근방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우리'가 폴란드 출신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그러나 일본에 정주해 있지 않은) 즈비그뉴와 합류하면서, 스스로 이와 같은 중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세션으로 개인적으로는 정서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반복성의 힘이 갖는 (노이즈의 본질적인) 불안정성과의 접점에 대해 전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반-예술적/제도적 순수성과 순수한 제도적-예술성 사이의 대립을 보는 것은 그 입장에 대한 완전한 동의 여부와 별개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일 것이다. 이제는 이론과 학업의 세계로 돌아올 시간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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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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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5 Sep 2009 05:46:15 GMT</pubDate>
		<dc:creator>sonicluv</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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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0907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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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Zbigniew Karkowski의 서울과&nbsp;그&nbsp;근방 공연 일정이 이제 확정되었다.<br><br>11일에는 저녁 8시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Ex-iS의 라이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br>&lt;Number Crunching&gt; 퍼포먼스가 있을 예정이다.<br>나도 Lynn Loo &amp; Guy Sherwin의&nbsp;멀티프로젝션 작품 &lt;Vowels and Consonants&gt;와 함께 연주를 할&nbsp;예정이다.<br><br>12일에는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강연과 솔로 연주, 그리고 한국의 노이즈 음악가들과<br>함께 Karkowski의 새로운 작곡 작품인 &lt;Circularity&gt;의&nbsp;초연이 있을 예정이다.<br>특히 강연 &lt;Composing Chaos&gt;는 제도권 안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하고<br>그 이후에는 제도권 밖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nbsp;Karkowski의 철학에 대해<br>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br>제도권 밖에서 다양한 극단적인 실험을 하는 <br>혹은 그러한 실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필청이 아닐까 한다.<br><br>13일에는 인천 스페이스 빔에서 Zbigniew Karkoswki와 astronoise, 박다함, dydsu등이 참여하는<br>노이즈 음악 공연이 마련되어 있다.<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9/07/68/e0083168_4aa47f7f051c5.jpg" width="500" height="2245.62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9/07/68/e0083168_4aa47f7f051c5.jpg');" /></div><br/><br/>tag : <a href="/tag/Karkowski" rel="tag">Karkowsk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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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지</category>
		<category>Karkowski</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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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7 Sep 2009 03:46:41 GMT</pubDate>
		<dc:creator>sonicluv</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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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0826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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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이미 여러분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문제는 단순히 공정성 vs. 편파성이 아니다. 방송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정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권을 잡았으니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보급하고 설득하게 실현하고 싶을 것이다. 당연하다. 국가나 정권이란 절대로 중립적일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방도 그만큼 절대적으로 정파적(나쁘게 말하면 편파적)이 될 권리를 당연히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심지어 이상적인 경우에는 자신이 정권을 쥐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돈을 쥐어주면서 반대할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nbsp;상호간에 이러한 인정이 존재할 때 정치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잘 모르겠다. 스스로는 절대적으로 편파적이면서 이 점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만 편파적이고 중립성을 지키지 않는다고 몰아붙일 경우에는 상대방을 모두 괴멸시키거나 무력으로 제압하기 전에는 결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역사상의 대부분의 사례들에서 볼 때 그러한 위선적인 편파성의 적극적인 추구는 작게는 자멸을, 크게는 공멸을 불러온다. 특히 가치가 너무나도 중요해지다보니 사실까지도 가치로 재단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정말로 중증이다. 용산참사재판에서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재판을 진행하려는 것이나 '오해다' 타령을 입에 달고 사는 정부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아니면 최근 줄줄이 이어지는 K모 방송의 정부찬양방송).&nbsp;가치의 세계는 다원적이지만 가치 중심의 사고가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은 딱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가치를 진리로 오인하는 경우. 그리고 또 하나는 가치와 도구주의적 사고의 결합이다. 권력의 위계관계와 권력 수단의 양를 활용하여 국가와 시민을 자신들의 가치의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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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지</category>

		<comments>http://chulki.egloos.com/2473602#comments</comments>
		<pubDate>Wed, 26 Aug 2009 04:13:56 GMT</pubDate>
		<dc:creator>sonicluv</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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