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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치카의 공상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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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at, 14 Nov 2009 10:17:4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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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치카의 공상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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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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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追憶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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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안녕.<br><br>따뜻하였던 그 날들을 기억해.<br>무더운 여름 한가운데, 나는 즐거웠고 모두는 웃음지었고.<br>졸졸졸 냇물소리 가득한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초록은 뻗어 있었고.<br><br>향그러운 숯불 내음과 자글자글 익어가는 닭갈비의 냄새.<br>사람 냄새. 그리고 그 곳에 당신이 있다는 안도감, 행복감.<br><br>그 기억들이 못내 아쉬워 달래려 달래려 이 곳 강화도의 한자락까지 와 버렸지만.<br>이제 와서 그 추억에 보상을 요구하려는 것도, 그&nbsp;시간에 사랑을 요구하려는 것도 아니지만.<br>손톱 밑에 박혀버린 가시는 서슬 퍼런 면역 체계에 반응하여 싯누렇게 곪아 버렸다.<br><br>농도 짙은 코티졸에 신경이 무디어질대로 무디어지다 보면 어느샌가<br>아무렇지도 않은 날들이 오겠지.<br><br>그런 식으로 정당성을 부여함.</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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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4 Nov 2009 10:17:44 GMT</pubDate>
		<dc:creator>영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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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휴가 나와서 마음이 무거워지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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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선배의 CPA 합격 소식을 들었다. 참으로 축하할 일이지만 얼굴들이 교차한다. 사회는 너무나도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데 나만 철부지 어린 시절에 정지해 있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들, 해야 마땅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보인다. 당장 전역하면 3학년이고 어영부영 하다보면 금세 졸업학년일 것이다. 무언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자꾸 튀어오르는 안일함과 근거없는 자신감이 주적이다. 군대라고, 군인이라고, 내 시간은 정지해 있다고 생각지 말자꾸나. 여전히 흘러가는 것은 시간이고 군대라는 곳은 그리 꽉 막힌 공간도 아니다. 준비하여야겠다. 준비. 준비. 준비를. 준비를 하여야겠다. 이제 철부지 시절은 다 지나간 것이다. 위기감이 엄습한다. 두렵다. 자신도 없다. 하지만 한다. 그게 용기니까. 두려움을 무릅쓰고 나아가는 것이 용기 아니겠는가.			 ]]> 
		</description>
		<category>미분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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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5 Sep 2009 01:38:43 GMT</pubDate>
		<dc:creator>영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벌써 6개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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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엊그제 입대한 것 같은데 벌써 반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먼저 군대를 간 친구들은 이제 상병 말이니 또는 병장이니 또는 곧 전역이니 하는데 나는 이제야 갓 일병을 달았다. 남의 군생활은 빠른 법이라더니 과연 그런가 보다. 안에서야 밖이 항상 그리운 법이라지만 밖에서는 그저 오랜만에 찾아오는 누군가일 뿐이겠지 싶다. 그저 그렇게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가는 법인가 보다. 나를 위하여 준비된 사람들이 아닌 만큼 과히 섭섭함을 느끼지 않게 하여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곧 달력의 숫자를 까맣게 칠해가며 집에 갈 날을 기대하는 나의 모습도 볼 수가 있겠지. 그리 길지 않은 데다, 할 일도 해야할 일도 하고싶은 일도 많으니까. 일병 정기 휴가중에.			 ]]> 
		</description>
		<category>†잡담</category>

		<comments>http://chikai.egloos.com/2416784#comments</comments>
		<pubDate>Thu, 03 Sep 2009 03:55:06 GMT</pubDate>
		<dc:creator>영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신고합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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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필승! 이병 송철규는 2009년 6월 26일부터 동년 동월 28일까지 해병대 제2사단 5연대 2대대로부터 이병 위로 외박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 
		</description>
		<category>†잡담</category>

		<comments>http://chikai.egloos.com/2357885#comments</comments>
		<pubDate>Fri, 26 Jun 2009 20:46:03 GMT</pubDate>
		<dc:creator>영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3월 9일 포항시 해병대 교육훈련단 입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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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901/23/67/d0024567_497910749c0ab.jpg" width="500" height="473.28881469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901/23/67/d0024567_497910749c0ab.jpg');" /></div><div style="text-align: center;">군대갑니다.</div>			 ]]> 
		</description>
		<category>†잡담</category>

		<comments>http://chikai.egloos.com/2212152#comments</comments>
		<pubDate>Fri, 23 Jan 2009 00:34:07 GMT</pubDate>
		<dc:creator>영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커피 예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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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요사이 정말이지 한창 빠져 있는 커피.</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커피값 좀 줄여보겠다고 모카포트를 구입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div><div style="text-align: center;">어느새 이렇게 생두를 구입해 로스팅하고 있습니다.</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Imperia의 2컵짜리 모카포트로 처음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서</div><div style="text-align: center;">이제는 집에서도 저렴하게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던 것이</div><div style="text-align: center;">아직 뇌리에 선명한데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모양입니다.</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에스프레소의 그윽한 아로마와 찐득하고 달콤쌉쌀한 매력에 푹 빠져</div><div style="text-align: center;">좀더 진한 에스프레소를,</div><div style="text-align: center;">좀더 두꺼운 크레마를 찾아,</div><div style="text-align: center;">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것마저 엊그제 일이건만.</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우연히 핸드드립에 맛을 들이고 나서는,</div><div style="text-align: center;">에스프레소는, 그러고 보니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더라?</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생두의 종류,</div><div style="text-align: center;">생두의 보관,</div><div style="text-align: center;">로스팅 정도,</div><div style="text-align: center;">로스팅 후 경과된 시간,</div><div style="text-align: center;">원두의 보관,</div><div style="text-align: center;">원두의 양,</div><div style="text-align: center;">원두의 분쇄도,</div><div style="text-align: center;">드리퍼의 종류,</div><div style="text-align: center;">드리퍼의 재질,</div><div style="text-align: center;">예열의 유무,</div><div style="text-align: center;">물의 양,</div><div style="text-align: center;">물의 온도,</div><div style="text-align: center;">물줄기의 굵기,</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날씨,</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b>언제,</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어디서,</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누구와,</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어떤 기분으로.</b></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커피의 맛을 좌우하는 변수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div><div style="text-align: center;">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애정이 함유되어 있는가 하는 것.</div><div style="text-align: center;">추운 겨울밤, 도서관에서 나와 찌뿌둥한 몸을 달래며</div><div style="text-align: center;">사랑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하던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달콤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두근두근, 크리스마스 이브날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div><div style="text-align: center;">자신 앞에 펼쳐진 장난감 세상에 어쩔 줄 몰라 기뻐하는 어린아이처럼</div><div style="text-align: center;">커피는 항상 새롭습니다.</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오늘도 새로운 날입니다.</div><div style="text-align: center;">이제는 홈 로스터!</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남태평양의 뜨거운 여유가 느껴지는 파푸아 뉴기니 SIGIRI A를 받아들고,</div><div style="text-align: center;">첫 로스팅을 할 때의 기분이란, 설렘.</div><div style="text-align: center;"><br />
</div><div style="text-align: center;">커피는 로스팅 후 약 3-5일이 경과한 후가 가장 맛있습니다.</div><div style="text-align: center;">초보 로스터답게 얼룩덜룩 바둑이가 된 원두를 바라보며 얼른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은,</div><div style="text-align: center;">행복한 기다림입니다.</div>			 ]]> 
		</description>
		<category>†잡담</category>

		<comments>http://chikai.egloos.com/2183117#comments</comments>
		<pubDate>Fri, 26 Dec 2008 10:41:53 GMT</pubDate>
		<dc:creator>영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틱낫한 스님의 「다섯 가지 깨어 있는 수행」 중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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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blockquote><span style="COLOR: #666666"><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999999">&nbsp;&nbsp;&nbsp;&nbsp;우리는 사랑 때문에 일어난 병을 '상사병'이라고 말한다.그것은 일종의 집착 또는 중독이다. 마약처럼 그것은 우리를 황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일단 중독이 되면 우리는 평화로울 수가 없다. 책이 눈에 안 들어오고,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잠을 잘 수조차 없다. 우리는 오로지 그 사람만 생각한다. 이런 사랑은 소유하는 사랑, 독재적인 사랑이다.<br>&nbsp;&nbsp;&nbsp;&nbsp;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하기를 원하고, 상대방을 완전히 소유하려는 자신을 누구도 방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동은 사랑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는 권리를 빼앗겨 버린다.<br></span></span></span><em><div style="TEXT-ALIGN: right"><em><br><span style="COLOR: #666666"><span style="COLOR: #c0c0c0"><span style="COLOR: #999999">- 틱낫한 스님 지음, 「다섯 가지 깨어 있는 수행」 中</span></span></span></em></em></div></blockquote><br>요사이 불교를 공부하면서 참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위 글은 제가 수강하는 종교학과 수업 교재에 나오는 내용인데, 참으로 통감할 따름입니다. 내가 스스로 괴로워 보았기에,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 알기에 더더욱 뼈저립니다. 어려운 불교의 교리에 대한 내용은 집어치우더라도, 이런 식으로 접하는 불교의 이야기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nbsp;매력적입니다.<br><br>우리는 늘 컵 속에 물을 채우려 해요. 우리가 관심있는 것은 언제나&nbsp;"컵 속에 물이 반이나 차 있는 것이냐, 반밖에 차 있지 않은 것이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간단한 마음가짐의 문제 같아 보여도, 실은 이것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지 모릅니다.&nbsp;여기서&nbsp;불교는 실로&nbsp;과감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컵을 버리는 것은 어떨까?"<br><br>불교는 그 시작부터 애를 먹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들의 교육 과정이란 서구의 계몽주의 정신을 답습하고 있기에. 머리가 아닌 곧장 마음으로 파고드는 불교의 가르침은 실로 당혹스러웠어요(이런 경향은 중국의 선종禪宗에 와서 극단적으로 확대되었지요). 심지어 저는 기독교적인 신에 대해 공부할 때도, 믿음이 아닌 이해의 차원에서 철학적 신학을 파고들었으니까요.<br><br>제가 불교 공부를 하면서 가장 감명 깊었던 사상은 대승불교 중관학파(中觀學派)의&nbsp;공(空) 사상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가도 되지 않고, 뭔가 깨달음을 얻어서 마구 기뻐 날뛰다가도 금세 모르게 되어 버려서, 결국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앞으로 더 공부해 보아야 할 내용이네요.			 ]]> 
		</description>
		<category>†종교학</category>

		<comments>http://chikai.egloos.com/2118481#comments</comments>
		<pubDate>Thu, 30 Oct 2008 15:53:46 GMT</pubDate>
		<dc:creator>영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서강대학교 중앙만화동아리 영상비평 제5회 상영회 ]]> </title>
		<link>http://chikai.egloos.com/211841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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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c7e801e2.jpg" width="456" height="63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c7e801e2.jpg');" /></div><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90c3c4b.jpg" width="500" height="69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90c3c4b.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924508d.jpg" width="500" height="69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924508d.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1.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92ec5c5.jpg" width="500" height="69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1.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92ec5c5.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93a4a92.jpg" width="500" height="69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93a4a92.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9457f47.jpg" width="500" height="69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9457f47.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a55fc90.jpg" width="500" height="69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10/31/67/d0024567_4909cda55fc90.jpg');" /></div>			 ]]> 
		</description>
		<category>†잡담</category>

		<comments>http://chikai.egloos.com/2118411#comments</comments>
		<pubDate>Thu, 30 Oct 2008 15:07:39 GMT</pubDate>
		<dc:creator>영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이슬람교에서의 변신론의 문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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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어제인 4월 18일, 종교학과의 '종교의 이해'라는 수업을 수강하는 저는 이태원의 모스크로 수업을 들으러 나오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받들어 이태원 모스크로 찾아갔습니다. 모스크는 처음 가 보는 것이고, 이태원도 마찬가지였지만 친절한 관광안내소 직원 분 덕택에 모스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수업[?]은&nbsp;터키 출신의&nbsp;선교사 분께서 우리말로 이슬람에 대하여 전반적인 설명을 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연후에 질문 시간에 저는 "이슬람 신학에서의 변신론의 문제"에 대하여 물었습죠.<br><br><br>'변신론(辯神論)'이란 문자 그대로 '신을 변호한다'는 의미로, 기독교 신학에서는 수백년 이상의 논의가 있어왔던 매우 논쟁적인 성격의 문제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변신론이 대두하게 된 기원은, '세상에는 악(惡)이 존재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하느님(=神)은 최고선이며 지고지순한&nbsp;사랑의 존재이신데, 이 세상에는 하느님이&nbsp;창조하신 세상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nbsp;악행과 부조리가 넘쳐납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신이 있다면 이러한 악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신이 설사 있더라도 신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식의&nbsp;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nbsp;앞에서 언급했듯이 기독교 신학자들 간에는&nbsp;수백년 이상&nbsp;이러한 변신론의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아래 변신론에 관한 문제는 제가 직접 작성한 글이구요) 그래서 저는 궁금해졌어요. 과연 똑같이 하느님을 섬기는 이슬람교에서는 이러한 변신론의 문제가 있을까?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br><br><br>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슬람교 내에서는 변신론의 문제는&nbsp;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사실&nbsp;애초에 신이 인간에 의해 변호된다는 발상 자체도 우습다면 우스운 이야기이겠지요. 기독교 신학이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상당히 많으나, 이슬람 신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슬람 신학은 굉장히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습니다.<br><br><br>이슬람에서의 변신론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간략하게 이슬람교에서 보는 생사관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슬람에서 삶이란 일종의 시험대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하느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따라서 죽음은 또다른 시작이며 결코 종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망자들은 그가 생전에 하느님께서 부과하신 '시험'을 얼마나 잘 완수했는가에 따라&nbsp;천국행과 지옥행 열차의 티켓을 교부받게 됩니다.&nbsp;그리하여 드디어 '최후의 심판일'이 오면 모든 죽었던 자들이 부활하고 그들이 지은 죄값에 따라, 그들이 쌓은 공덕에 따라 상벌을 가립니다.<br><br><br>"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선함과 악함도 함께 만드셨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피조물이며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러기에&nbsp;인간의 일생은 하느님이 부과하시는 시험이다." 말인즉슨, 이세상에는 분명히 선과 악이라는 것들이 있으나 그것은 자유를 부여받은 인간의 전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시험대인데 그 시험에는 어떠한 힌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칼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칼을 만든 대장장이는 음식하는 데에 쓰려고 칼을 만들었는데, 그 칼을 가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죽인다구요. 이와 비슷하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손을 가지고 어떤 이는 병자를 돌보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물건을 훔치고 사람을 구타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선과 악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된다는 것이지요.<br><br><br>저는 수긍하면서 또다시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태어나자마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갓난아이의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시험대에 오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셈인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겁니까? 선교사님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사람들은 15세 이후에만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책임은 온전한 정신이 있는 사람만 의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광자(狂者)는 심판을 받지 아니합니다.<br><br><br>이렇듯 이슬람에서의 악의 문제는 기독교처럼 변신론의 문제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세운 명제에 얽매여 어쩌지도 못하고 제각각 설명이 난무하는 기독교 신학에 비하여 이슬람 신학은 굉장히 논리정연하다고 느껴집니다. 일종의 감동까지 느낄 지경이었지요.<br/><br/>tag : <a href="/tag/이슬람" rel="tag">이슬람</a>,&nbsp;<a href="/tag/변신론" rel="tag">변신론</a>,&nbsp;<a href="/tag/신학" rel="tag">신학</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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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변신론</category>
		<category>신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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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9 Apr 2008 08:46:45 GMT</pubDate>
		<dc:creator>영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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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辯神論의 問題 : "神이 있다면, 과연 惡은 어디에서 오는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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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세계 내에 현존하는 악의 문제 앞에서 과연 신은 변호될 수 있는가? 우선, 신이란 무엇인가? 신이란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이다. 궁극적 실재라 함은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치환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각 개인마다 다른 고유의 신을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궁극적 실재, 즉 신이라고 이름할 수 없다. 신은 무한하며 가장 실재적이다. 안젤무스는 신을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존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조작적인 개념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인간 이성에 내재되어 있는 한계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지식과 이성 자체가 고도로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가장 큰 것 이상으로 커다란 것을 알 수는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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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가장 확실하고 무한한 정초된 존재이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근거가 되는데, 이 세계 속에서는 실제적으로 악이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을 궁극적인 선(善)으로 바라보는 신관이다. 이러한 신관 하에서는 '악한 것'이란 바로 신을 거역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세계 속에는 실질적으로 악이 존재하므로 '악'의 근원은 신이라는 결론에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다. 과연 '궁극적 선'이라고 여겨지는 신에게서 '악'이라는 것이 도출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불가능함이 자명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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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뿐이다. 우리가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적인 입장에서는 악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왜냐하면 신은 전지전능하고 무한한 존재이므로 신이 실수를 하거나, 감히 인간이 신을 거역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악귀나 사탄 등의 악한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신보다 큰 것일 수 없는 것이며 그것들 역시 신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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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과 '악함'의 구별은 단지 인간의 분류일 뿐이다. 여기서 변신론의 문제는 폐기된다. 신이 고작 유한한 존재일 뿐인 인간에 의해서 변호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신이라 이름할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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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이러한 신의 속성이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은 악의 현실 앞에서 고민하는 주체이다. 아무리 신의 속성에 의해서 악의 존재 자체를 세계 내에서 말소해 버린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입장에서는 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인간의 차원에서, 여전히 변신론의 문제는 유효한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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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간의 차원에서 변신론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이것은 신이 인간에게 갖는 의미와도 연결된다. 인간이 힘들고 슬프다는 감정을 가질 때, 즉 인간이 악의 현실 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에 신은 인간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것일까. 조용한 장소나 성당 등에서 기도를 올려 본 적이 있는가? 혹은 신을 향해서 욕설을 퍼부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누구나 신에게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평온해짐을 인간은 느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신의 사랑을 느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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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관계와 소통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화가 나거나, 슬픔에 빠졌을 때에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기를 원한다. 만일 격심한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음 속에만 담아둔다면 그것은 필시 병으로 나타날 것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우리는 신을 소통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카타르시스(katharsis)'라는 단어는 '정화' 또는 '배설'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우리는 신을 향한 기도(혹은 욕설도 괜찮다)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우리 속에 머물러 있던 온갖 부정의 감정을 신에게로 배설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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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어떤 식으로 정의하든, 그것은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임에 틀림없다. 신이 이러한 감정의 배출구로서 의미있는 것은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신이 매우 화가 났다고 해 보자. 그런데 당신이 행인을 붙잡고 욕설을 퍼붓는다면 당신은 십중팔구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신은 어떠한가? 신에게 아무리 기도를 올려도, 혹은 욕설을 퍼붓는다고 해도 신은 단 한 마디도 되돌려주지 않는다. 억눌려져 있던 온갖 부정적 감정은 그대로 허공으로 흩어져,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인간은,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단지 존재할 뿐인 신의 위대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 세계속에 만연하는 악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있어서 신의 의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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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종교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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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4 Jan 2008 16:10:15 GMT</pubDate>
		<dc:creator>영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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