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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브리이트의 이글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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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브리이트 새로운 블로그 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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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1 Oct 2008 00:03:2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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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브리이트의 이글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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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안철수 박사, "개발자여 꿈을 가져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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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style="LINE-HEIGHT: 1.5">안철수 의장의 '2008 대한민국 SW 개발자 컨퍼런스' 기조연설 전문을 소개합니다. <br><br>"개발자여 ! 꿈을 가져라" <br><br>처음 컴퓨터를 공부했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컴퓨터라는 것은 상상하는 것을 모두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고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매력적이었죠. 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자료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한글판 책도 없었고 영문판도 수입이 안됐습니다. 인터넷도 안되고 주위에서 물어볼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혼자서 열심히 독학으로 하게 됐죠. 그러면서 분석하고 파헤쳐 보는 습관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때 환경에서만큼의 열정 처럼 지금도 그 만큼의 열정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br><br><span style="COLOR: #0000ff"><strong>* 개발자가 힘든 3가지 이유</strong> <br></span><br>개발자들이 지금 살아가기 힘든 것은 크게 3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아직도 소프트웨어(SW) 가치가 존중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 첫째요. SW 산업 자체가 발전하지 않아서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술자가 대접을 못 받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br><br>먼저 SW 가치에 대해 얘기를 하면 예전에 CEO로 있을때 산업 전망 토론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산업 전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했는데, 하드웨어와 SW, 인터넷 서비스 등을 나눠서 비전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어떤 전자회사 부사장님이 오셔서 하시는 말이 "다음 부터는 HW, SW를 구분을 하지 말게. 사람들이 SW를 HW와 같은 레벨로 설명을 하면 오해한다"고 말씀하시던군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가 막히든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br><br>그 전자회사에서 그 당시 발표했던 것이 애플의 아이팟이 벤치 모델이라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파드는 하드웨어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아이툰즈라는 SW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SW와 HW가 서로 엮여서 경쟁력을 키운 것입니다. 아이파드는 나중에 시장 점유율 80%까지 차지하는 대 성공을 거뒀습니다. <br><br>그 전자회사는 SW를 하드웨어의 부품으로 생각하는 회사였던 것입니다. 이 일은 5년 전의 일이었는데 하드웨어 위주의 사고 방식이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의사 결정자들이 SW에 대한 여러 문제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br><br>의사 결정권자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SW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수준이 낮습니다. SW를 제값주고 사면 바보 취급을 당하는 분위기가 여전하죠. 한달에 휴대폰 사용료만 따져도 1년에 100만원을 지급하면서 매일 쓰는 SW에 대해서는 만원 쓰는 것도 아까워합니다. 이는 젊은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살을 깍아먹는 것입니다. <br><br><strong><span style="COLOR: #0000ff">* 후진적 SW 산업이 개발자 성장에 장애 <br></span></strong><br>두 번째로 SW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SW 개발자들이 성장하는 데 장애가 있습니다. 정통부 시절에 아키텍트 양성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추진하려고 했습니다. 교육적인 측면에 굉장히 투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키텍트가 공부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키텍트 정도로 성장하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하고 프로젝트 경험이 있어야 하고, 배울 만한 선배들이 있어야 합니다. 교육 예산만 투자해서 길러지지 않는 것이죠. <br><br>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부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절반 인력은 한국에서 뽑는다고 하던지, 협력 업체 50% 정도를 한국의 중소 업체들로 결정하는 등의 현실적인 방안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먹히지는 않았습니다. 정부측에서 일한 티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진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내세울 것이 없어서 안타깝게도 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이처럼 국내 개발자들은 실력을 발휘할 만한 터전이 부족합니다. <br><br>세 번째로 기술자가 대접을 못 받는 환경이 문제입니다. 전문가 보다는 관리자가 더 있어 보인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기술직으로 있으면 관리직 보다 성공을 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입니다. 때문에 결국은 관리직으로 옮겨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오는 것이죠. <br><br>이런 세 가지 측면에서 SW 가치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산업이 발달을 못하고 기술자가 기술자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30년 전이나 같습니다. 그런데 절망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br><br><br><strong><span style="COLOR: #0000ff">* 전망은 항상 바뀌는 것, 전망만을 믿고 선택하지 말라</span></strong> <br><br>많은 사람들이 전망을 많이 합니다. 대학 졸업하고 나서 전망 좋은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의대를 지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명한 것이 아닙니다. 20년 전에 의대를 살펴보면 성적순으로 과를 들어갑니다, 외과, 내과, 피부, 안과 의사 들이 있는데, 성적순으로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죠. 공부 잘하는 사람이 원하는 과에 들어가고, 못한 사람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과를 가야합니다. <br>20년 전만 하더라도 공부 제일 잘하는 사람이 내과를 갔고 못하면 피부과로 갔습니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의대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사람이 피부과를 갑니다. 지금 예전의 동기들을 만나면 전망만 보고 갔던 사람들은 후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피부과 갔던 사람들은 지금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br><br>항상 바뀌는 것이 전망입니다. 2001년에 서울대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았던 것이 컴퓨터 공학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것이 나올 정도로 전망은 덧없습니다. <br><br><span style="COLOR: #0000ff"><strong>* 재미가 있는 분야를 찾아라 <br></strong></span><br>전망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을 선택해서 간다면 전문가가 될 수도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잘하는 분야에 갔을 때 생각치도 않게 각광을 받을 수 있고 후한 대접을 받게 되는 기회도 옵니다. <br>우리나라 산업 환경 속에서는 일단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먹고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습니다. 좋아서 하는 분야를 택해서 가라. 전망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br><br>의대의 예를 더 들어보면 의사들 설문 조사를 해본 결과 50%가 직업에 만족도가 없다고 합니다. 20%는 개업해서 실패한다고 합니다. 현재 굉장히 많은 의사들이 동남아로 갔습니다. <br><br>사실 의사는 똑똑한 사람이 필요한 직업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좋은 의사가 됩니다. 의사들은 매일 100명이상의 환자들을 봐야 하죠. 매일 같이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했을 때 성격상 맞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게 됩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 친정하게 대해주고 병을 치료해 주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br><br>하지만 50%의 의사가 의사를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환자들도 불행한 것입니다.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과 같습니다. <br><br>좋은 전망, 안정된 생활, 이런 것도 모두 좋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재미를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재미는 기본 적인 것이고, 여기에 5가지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br><br><strong>1. 전문성</strong> <br>자기가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 컴퓨터를 접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워드 프로세스를 하려고 사서 워드 매뉴얼만 공부한 사람이 있습니다. 워드를 먼저 공부하면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br><br>반면에 운영체제를 먼저 공부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당장은 문서 작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지만 나중에 두 사람 다 문서 작업을 할 실력이 됐을 때, 파일 작업하다가 에러가 나면 첫 번째 사람은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음에 다른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반면 운영체제를 사용해본 사람은 혼자서 해결을 할 수 있고 다른 분야 공부도 보다 수월히 할 수 있게 됩니다. <br><br>자바 공부하시는 분들 중에 C 기반이 돼 있는 사람이 자바를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C 프로그래머들을 살펴보면 백그라운드가 어셈블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어셈블리를 알면 C 할 때 어떻게 컴파일해서 바이너리되는 지를 생각합니다. 가장 효율적으로 빠르고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는 것이죠. <br><br>전문성을 기를 때도 더 기초적인 것에 소홀히 하지 말고 기본 원칙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중에 더욱 빛이 납니다. 전문성을 기르실 때 한번 생각해 볼 값어치가 있습니다. <br><br><strong>2.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br></strong><br>새로운 일을 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할 때를 돌이켜 보면 창조적인 일이 생깁니다. 현재는 인터넷을 통해서 라이브러리도 소스를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스 코드를 받기 쉽다 보니깐 막 갔다 씁니다. 이런 부분은 사실상 우려됩니다. <br><br>잘된 것은 안심하고 써도 되지만 소소 코드도 잘못된 것을 사용하면 치명적입니다. 때문에 시간을 투자해서 내부 구조를 다 이해한 다음에 자기가 쓴 프로그래밍에 갔다 써야하는 것이죠. 시간에 쫒기다 보니 그렇게 많이 안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br><br>하지만 그대로 그렇게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 문제도 발생합니다. 이런 부분은 개발자 개인들의 프로페셔널 측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한번 더 생각하고 사용하도록 하고, 아무리 소스를 갔다가 쓰더라도 내부에 대해서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br><br><strong>3. 장인 정신 <br></strong><br>혼이 있는 개발자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레벨 수준이 돼야 합니다. 요즘 버그 잡는 것은 QA(품질관리)가 알아서 해준다라고 생각하는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코딩한 다음에 그냥 바로 QA팀으로 보내줍니다. 이는 굉장히 문제가 많아요. 퀄리티는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지와 실력의 문제입니다. 버그는 QA가 잡는 것이 아닙니다. QA팀에서 버그가 나올 때 마다 개발자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이런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br><br><strong>4. 커뮤니케이션 능력 <br></strong><br>사실은 한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팀으로 이뤄지다 보니깐 제대로 전달을 해야 합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예전에는 전문가의 실력이 전문지식이었지만 이제는 전문 지식 +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실력입니다. <br><br>시험을 칠 때 100점 받을 실력인데, 하나씩 잘못 내려 써서 0점을 받았을 경우 이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실력은 최고라 할지라도 0점으로 처리됩니다. 세상은 점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보는 주위의 시선은 0점입니다. 주위 사람에서 표현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그 팀에서 그 전문성을 쓰지 못합니다. 오히려 실력이 낮은 사람이 팀에 공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br><br><strong>5. 희생정신</strong> <br><br>개발자들은 조금이라도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이 되면 결국 손해를 자신이 입습니다. 일반적으로 친구들 사이에도 항상 얻어먹는 친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되면 그 친구와는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자기가 먼저 내고 그러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br><br>자기가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 보다는 친구가 빈틈이 있으면 메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미리 할 일을 다 했으면 다른 사람도 좀 도와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이 나중에 쌓이면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전문가가 됩니다. <br><br><br><strong><span style="COLOR: #0000ff">* 영어 실력 향상도 중요</span></strong> <br><br>여기에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서는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영어 실력이 갈수록 중요해 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청산유수처럼 잘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서 프로그래밍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합니다. 그래야 향후에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면서 실력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br>한 후배가 있었는데 영어를 정말 못했습니다. 서른이 넘어서 영어를 시작했는데, 현재 피츠버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실력이 있으면 성공은 보장됩니다. <br><br><strong><span style="COLOR: #0000ff">* 희망을 갖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span></strong> <br><br>세상은 돌고 돕니다. 실력을 쌓고 준비해 나간다면 결국은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외국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돌고 돕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 기회는 분명히 오는 것입니다. 개발자들이여 파이팅! </p><p style="LINE-HEIGHT: 1.5">&nbsp;</p><p style="LINE-HEIGHT: 1.5">&nbsp;</p><p style="LINE-HEIGHT: 1.5">출처 : <a href="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1939163?RIGHT_BEST3=R3_6">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1939163?RIGHT_BEST3=R3_6</a></p><p style="LINE-HEIGHT: 1.5">&nbs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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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1 Oct 2008 00:03:2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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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구글(google)면접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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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a href="http://cafe.naver.com/adminadmi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7436">http://cafe.naver.com/adminadmi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7436</a><br><a href="http://kldp.org/node/78668">http://kldp.org/node/78668</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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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7 Sep 2007 16:58:56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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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인터넷 선진국 한국에 세운 구글 R&D센터에 큰 기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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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아주 먼 훗날 인터넷은 어떻게 변할까요.<br><br>“나사(NASA·미 항공우주국)의 제트추진 연구소에서 구체적으로 진행중인 행성간 인터넷 프로젝트를 통해 인터넷은 지구 밖으로 뻗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학생들이 인터넷에 접속, 화성 탐사선에 설치된 웹카메라를 통해 화성 표면을 직접 보며 공부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br><br>―행성간 인터넷 구축계획이 현실과 떨어져 있다는 비판도 있던데요.<br><br>“ 사람들은 내게 우주로 인터넷을 가져가기 전에 지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건 그냥 현실에 그냥 안주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br><br>―좀 더 가까운 미래에 인터넷은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시나요? <br><br>“광섬유·케이블·방송·위성을 이용한 모든 매체의 속도가 빨라질 것입니다. 인터넷과 방송은 더 가까운 사이로 변할 거예요.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모든 IT제품이 인터넷에 연결되고, 위치정보(GPS) 기능이 들어갈 것입니다. 이런 제품과 인터넷 전화를 이용해 늘 대화를 하며 일을 하게 되겠죠.”<br><br>―한국의 인터넷 환경에 대해 알고 계시는지요.<br><br>“한국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생각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실생활의 일부로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인터넷 환경이 다른 나라보다 많이 앞서 있죠. 또 한국 사람들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관심이 크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br><br>구글이 지난 2005년 빈트 서프를 부사장으로 영입할 때 일이다.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서프 박사는 인터넷에 정신과 마음을 다 바쳐온 개척자”라며 “그 동안 우리 회사가 많은 인재를 모셔왔지만 서프 박사만큼 중요한 분은 없었다”라고 극도의 찬사를 보냈다.<br><br>구글은 서프 부사장을 위해 ‘최고인터넷전도사’(Chief Internet Evangelist)라는 새로운 직책까지 만들었다. 미국을 포함해 전세계를 순회하며 직원과 일반인에게 인터넷의 발전방향을 설명하고 꿈을 불어넣는 것이 주요 임무다. 또 새로운 상품 개발뿐만 아니라 인터넷 미래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를 총지휘하고 있다.<br><br>―구글이 한국에 설립하는 R&amp;D(연구개발)센터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br><br>“인터넷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예요. 구글의 한국R&amp;D 센터에서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속속 개발할 겁니다. 이 프로그램을 전세계 인터넷 유저들이 사용하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합니다.”<br><br>―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이유는 무엇인지요.<br><br>“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은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고 그걸 자기 뜻대로 지배하는 것입니다. 컴퓨터는 당신이 프로그램을 만든 대로 어떤 일이든 합니다. 그래서 너무 재미있었습니다.”<br><br><br><br><p><br><p><p><strong></strong>&nbsp;</p><p><p><strong>&lt;키워드&gt; 빈트 서프</strong><br><br>‘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빈트 서프(풀네임은 Vinton Gray Cerf·64)는 말 그대로 인터넷을 탄생시킨 ‘살아 있는 역사’다. 1943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높았다. 스탠퍼드대 수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UCLA에서 컴퓨터과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UCLA 시절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ARPANET) 프로젝트에 관여했다.<br><br>스탠퍼드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73년 밥 칸(Bob Kahn)과 공동으로 통신망을 이용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TCP 기술을 개발했고, 이듬해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 기술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의 기반기술이다.<br><br>대학교수를 거쳐 미 국방성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일하며 인터넷 보안기술을 개발했다. 또 전세계 인터넷 주소체계를 부여·관리하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위원장, 나사(NASA) 제트추진연구소 초빙연구원, 인터넷협회(ISOC)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세계적인 통신회사 MCI의 선임 부사장 직도 지냈다. <br><br>2005년부터 구글 부사장 겸 수석 인터넷 책임자로 재직중이다.<br><br>그는 IT(정보)기술 분야의 최고 유명인사 중 한 명이다. 구글이 그를 영입한 것처럼 전 세계 과학기술 분야 학회는 서프를 초청하려고 안달한다. 빈트 서프란 이름이 가진 권위가 그만큼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전기전자공학회(IEEE),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 국제 엔지니어링 컨소시엄, 컴퓨터 역사박물관, 미국공학학회 등 저명한 학술단체의 특별 회원이다.<br><br>서프는 인터넷이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길을 만들었고, 이제 전세계가 그가 만든 길 위로 달리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그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br><br>인터넷을 만든 공로를 인정 받아 1997년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미국기술훈장을 받았다. 2005년에는 미국에서 민간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았다.<br><br>청각장애가 있는 그는 미국 최초의 농아를 위한 고등교육기관인 갤로데 대학 이사를 맡아 봉사했다. 이 공로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협회에서 특별상을 받았다<div id="tageditstack" style="DISPLAY: none">&nbsp;</div><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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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7 Sep 2007 16:57:17 GMT</pubDate>
		<dc:creator>브리이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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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나는 나고 그들은 그들이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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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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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8 Jan 2007 03:17:20 GMT</pubDate>
		<dc:creator>브리이트</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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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사이언스키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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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COLOR: #000000; FONT-FAMILY: tahoma,arial,helvetica,sans-serif">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가 있단다. 어려서부터 헐리우드 영화에 미친 주인공이 영화에 일생을 바치고 현실과 영화를 구분하지 못하다가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란다. 원전은 소설이라고 들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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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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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80년대는 그야말로 꿈의 시대로 믿어져 왔다. (난 75년에 국민학교를 입학해서 80년에 졸업했다.) 유신시대 말엽이던 당시 국가는 80년대가 되면 모든 것이 장미빛으로 바뀐다고 교과서에 써 놓고 선전을 해 댔으며 그 "환상"을 뒷받침 하는 것은 "산업화" 라는 낱말이었다.<br />
<br />
그 환상은 지금 90년대에는 "암울했다" 라는 상투적이기 그지 없는 단어로 표현되는 80년대가 도래하면서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장미빛 인생이 보장되는 꿈의 시대는 순식간에 2000년대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지금도 사람들에게는 2000년이 무언가 기대할 만한 시대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br />
<br />
뭐... 어떤 정부건 국민들에게 미래의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니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꿈의 2000 년대"를 약속할만한 근거랄까 뒷받침이 되는 것이 "과학기술"로 선정 되었다는 사실이다.<br />
<br />
여기 학생운동이 온 세계를 휩쓸던 68년에 태어난 한 아이가 있다. 할아버지는 그 아이가 나중에 법관이 되기를 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지만 이미 소년의 사춘기는 온통 "과학기술"의 환상 속에 도배가 되고 있었다. 그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 이 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세워졌다는 어느 과학기술 연구소에서는 비록 대부분 남이 기술을 베낀 것일 망정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술적 산물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미국에서 모모 공학을 전공한 아무개가 이사대우에 아파트와 집까지 얻어서 약관 30대에 금의 환향 했다는 입지전이 도처에 출몰했다. 90년대에 엄청난 베스트셀러로 부활할 이 휘소 박사의 신화는 이미 그 싹을 드러내고 있었고, 수십년래의 부동의 인기 직업이던 판검사와 의사에 대적할 만한 반열에 과학기술자의 이름이 오르게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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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어린 시절에는 위인전의 목록에 이순신이나 세종대왕 못지 않게 아인시타인이나 퀴리 부인의 이름이 중요시 된다. 이런 책들을 읽고 자란 세대는 과학자의 삶이 숭고하고 정열적이고 인류를 구원하는 일임과 동시에 명예와 존경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이십년 뒤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몇푼의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공해 물질을 양산하는 회사의 이윤추구에 몸 바치게 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면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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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에서 1등한 놈은 자전거 회사에 취직하고 그나마도 안 된 놈은 할 수 없이 대학원이란 곳에 도피했던 50년대를 기억하는 부모세대는 처음에는 주저하지만 곧 엄청난 첨단기술의 쇼와 당시로는 엄청난 특혜였던 군역면제를 받으며 배출 된 귀때기가 새파란 20대 박사(!)님들을 테레비에서 보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식을 이공계통으로 밀어 넣는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명예, 안정된 수입, 우아한(?) 생활, 그리고 지적 허영이다. 적어도 당시의 "과학기술" 엘리트는 그런 것들을 모두 가진 존재로 비쳤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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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사이언스 키드는 더욱더 과학이 주는 환상에 빠져든다. 그것이 상당부분 은 사회적 필요에 따라 조작 되어있다는 것을 모르고서 말이다. 헐리우드 키드에게 영화는 "꿈의 공장" 이듯이 사이언스 키드에게 "과학"은 (대부분 기술과 혼동 된 것이지만) 요술지팡이였다. 학교에서는 툭하면 기술입국을 부르짖었고 과학경진대회니 수학경시대회니 하는 것은 점점 장려되고 있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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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이과를 택하는 것은 성적 좋은 학생에게 당연한 것이었고 문과를 가는 사람은 수학에 적응하지 못하는 둔재거나 사이언스 키드가 빠져 있는 환상에서 헤어난 정말로 머리 좋은 사람들의 몫이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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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등학교가 생기고 연이어 과학기술대와 포항공대가 창설 된다. 대학의 이공계통은 과학발전을 등에 업고 계속 수적 팽창 일로를 달린다. 물론 대학이 등록금 수입은늘어날 수 밖에 없다. 수도권 대학 정원동결이라는 강력한 정책도 이공계 인력부족이라는 명제하에서는 무력해 진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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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고등학교에서는 이과생수가 문과생을 능가하게 되고 워커와 철모로 상징되던 공대생의 이미지는 깨끗한 실험복을 입은 고매한(?) 연구자의 그것으로 바뀌어 간다. 중학교 때 은사님의 집에 다시 모인 친구들은 거의 하나 같이 이과생이었고 어린 시절의 그들을 잘 아시는 선생님은 이 아이들 중에 이과에 맞는 것 같았던 아이들이 과연 몇이나 되었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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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이언스 키드는 이공대학에 진학하고 공부를 계속한다. 문과애들이 데모 같은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는 조국의 앞날을 위해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기 위한 기초 공부를 하느라 고교 때 못지 않은 정신적 노가다를 수행해야만 했다. 아무리 너네가 잘나 보았자 결국은 우리의 밑을 벗어 나지 못할 거라는 법대 친구의 말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여겨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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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팽창일로를 겪은 대학의 이공계는 마침내 공급과잉 현상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미국공학박사의 대우는 이사급에서 부장급으로 부장급에서 과장급으로 수직강하를 시작하더니 그나마 구하기가 어려워져 도처에서 박사 실업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말로만 듣던 박사가 접시 닦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젠 회사가 박사를 골라 뽑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예전 처럼 모셔가는 것이 아니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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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연구소가 세워지지만 취직을 한 사이언스 키드는 자신의 연구보다 무슨무슨 기술진흥법에 의해 연구소의 토지가 면세라는 사실에 회사가 더 관심을 가진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에 직면한다. 자신은 단지 콩알만한 연구소에 달려있는&nbsp; 엄청난 연구소 부지의 탈세를 위한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경악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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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과학기술자는 선망 받는 직업이 되지 못한다.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이라는 신화는 그에게 늘 피곤하기 짝이 없는 격무를 당연한 듯이 강요하고 인구분산 정책의 희생양으로 선발된 과학기술자 집단은 그토록 옛날에 경멸했던 문과 친구들에 의해 산간벽지의 연구소 타운으로 밀려나서 애인에게 걷어 채이고 선본 여자의 부모들에게 거부감을 주기 시작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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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이 한몸 과학기술 발전에 바치겠다던 사이언스 키드는 그토록 빛나는 연구생활을 했던 선배들이 ( 엄청난 대우와 아파트까지 얻어서 프로야구 선수같은 연봉협상을 했던....) 40대의 나이에 머리가 녹슬었다는 이유로 연구소에서 쫓겨 나는 장면을 목도하기 시작한다. 그러기 싫으면 과학기술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경영직으로의 변신을 하는 수 밖에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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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나 동기중에는 변리사라는 직업의 인기가 엄청나게 폭등하고 그들은 더이상 과학기술자의 삶에 환상을 갖기를 거부한다. 증권을 만지작 거리는 친구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접대비로 공짜 술을 마시는 동안 그들은 보통의 샐러리맨 봉급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박봉에서 일이만원을 추렴해서 소주를 홀짝거리며 미래를 걱정한다. 한 때 최고의 급료라던 모모연구소의 급료는 해마다 동결 되어서 이제는 이 나라 대졸자 초임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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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연구소는 걱정 없다. 늘어난 과학기술자는 여전히 공급과잉이고 입소 희망자는 줄을 서 있으니까. 그래도 아직 과학기술자들에게 주는 급료가 아까운지 이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는 대학의 공대는 숫자를 두배로 늘이려 하고 시설은 하나도 갖추지 않은 연구소에 사람만 채워 넣으면서 왜 결과가 나오지 않는냐고 독촉을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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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친구의, 우리는 5공 과학기술 진흥정책이란 과잉선전의 산물이라는 자조를 들으면서 사이언스 키드는 자신의 생이 헐리우드의 환상 속에 사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와 무엇이 다른가 곱씹어 본다.</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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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3 Jan 2007 07:53:0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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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파랑새는 내안에 있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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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생각하면 이루어진다.<br />
오늘은 1월1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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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를 다지며, 잘해 나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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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 [日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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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31 Dec 2006 21:39:5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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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한 마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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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I have a word with my family..<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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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gotten&nbsp;all my faults while sic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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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8 Dec 2006 14:20:4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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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한문장..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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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Why the long fac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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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ecause I failed the interview..&nb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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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상 [日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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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8 Dec 2006 14:18:5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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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아 디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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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조금 더 열심히 해야 되는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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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데 몸은 힘들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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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지겁 먹은 김밥이 걸려서..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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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토해 버렸다. 그래도 속은 편하지 않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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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연희 만나서 격려해줘야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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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사물함도 받고 연구실가서 정리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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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6 Dec 2006 14:28:3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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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12월 25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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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2003년 12월 25일&nbsp;즐거웠던 크리스마스. 농협목걸이<br />
2004년 12월 24일 포세이돈, 어린신부.<br />
2005년 12월 25일 구미 금오산<br />
2006년 12월 25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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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같이 있었던 걸 몰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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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5 Dec 2006 16:26:3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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