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xml-stylesheet href="http://rss.egloos.com/style/blog.xsl" type="text/xsl" media="screen"?>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channel>
	<title>브레인스템의 이글루</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link>
	<description>브레인스템의 이글루</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28 Oct 2008 12:09:46 GMT</pubDate>
	<generator>Egloos</generator>
	<image>
		<title>브레인스템의 이글루</title>
		<url>http://pds1.egloos.com/logo/1/200604/04/23/c0043223.jpg</url>
		<link>http://brainstem.egloos.com</link>
		<width>80</width>
		<height>99</height>
		<description>브레인스템의 이글루</description>
	</image>
  	<item>
		<title><![CDATA[ 구자라트의 무슬림 학살 ]]> </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4695089</link>
		<guid>http://brainstem.egloos.com/4695089</guid>
		<description>
			<![CDATA[ 
  <a href="http://www.hani.co.kr/section-021069000/2002/12/021069000200212180439013.html">http://www.hani.co.kr/section-021069000/2002/12/021069000200212180439013.html</a><br><br><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0" border="0"><tbody><tr><td height="28"><span style="FONT-SIZE: 100%; COLOR: #800000"><b>[</b></span> <font color="#707070" size="3"><b>아시아 네트워크</b></font> <span style="FONT-SIZE: 100%; COLOR: #800000"><b>]</b></span> </td><td align="right"><span style="FONT-SIZE: 100%; COLOR: #6a6a6a">2002년12월18일 제439호</span>&nbsp; </td></tr><tr height="1" colspan="2"><td bgcolor="#999999" colspan="2" height="1"><img src="http://www.hani.co.kr/h21-image/blank.gif" border="0"></td></tr></tbody></table><span style="FONT-SIZE: 100%"><br></span><!--본문--><!--[5] 제목 폰트 크기 수정--><span style="FONT-SIZE: 130%; COLOR: #000000"><b>‘모디’를 학살범으로 기소하라</b></span><br><br><!--[6] 본문  폰트 크기 수정& span 태그 추가--><span style="MARGIN-TOP: 10px; MARGIN-LEFT: 0px; LINE-HEIGHT: 22px"><span style="FONT-SIZE: 100%"><span style="COLOR: #669900"><b>아시아 네트워크가 뽑은 10대 뉴스 l 인도</b></span> <p><font color="#a00000" size="3">국내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 구자라트의 무슬림 학살… <br>평화운동가 ‘산딥 판데이’는 최고 인물에</font> <br><img src="http://img.hani.co.kr/section-kisa/2002/12/18/02106900012002121890-1.jpg" align="left">&nbsp;<br><font color="#444444" size="-1"><br><br><br><br><br><br><br><br><br><br><br>사진/ 올해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 구자라트 학살. <br>2천여명의 무슬림이 학살당하고 수천명의 여성이 강간당했다. (GAMMA) <p></font><br>‘9월11일의 공격’ 얼마 뒤부터 세상은 온통 주전론과 군사주의가 판쳤고, 올해 국제 뉴스를 뒤덮은 것들은 모조리 테러리스트를 때려잡는다는 소식뿐이었다. 특히 대테러전쟁을 선포한 극단적 보수주의 미국정부는 비핵보유국에도 핵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지구적 규모의 위기를 조장한 해였다. 대량살상무기를 소지한 혐의만으로도 핵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고 아래 이라크는 한해 내내 극심한 압박을 받았다. <p>군사주의 연장선에서 러시아 코앞까지 파고든 나토 확장과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공격도 빼 놓을 수 없는 한해였다. 체첸을 향한 러시아의 학살공격도 마찬가지였고…. <p>군사주의 못지않게 세계화도 여전히 악명을 떨쳤지만, 한편으로는 1930년대 이후 최악이라고 할 만한 경제불황과 세계 시민사회 반발로 그 이름을 확대재생산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 <p>인도 사회 내부에서도 군사주의와 세계화가 광신적인 힌두민족주의자들과 결합해 구자라트 학살을 비롯한 각종 종교·인종 분쟁을 일으키는 뒷심이 되었다. 사회·경제적으로도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진 한해였다. 특히 바지파이 총리가 주도하는 바라티야자나타당(BJP)은 무슬림에 대한 살해와 강간과 방화를 자유롭게 조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해 인도 독립 뒤 가장 큰 충격을 시민사회에 안겼다. <p>그나마 다행스러운 뉴스로는, 민주적인 행동을 주장하고 나선 시민들과 비종교주의 단체들이 구자라트 학살 확대 저지와 인도-파키스탄 국경에 배치한 70만 대군을 철수케 한 점을 꼽을 만했다. <p>“시민이 역사의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 것을 2002년이 남긴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기록하고 싶다. <p><table style="WIDTH: 530px; HEIGHT: 1360px" cellspacing="2" width="530" border="0"><p><tbody><tr><p><td width="550" colspan="4"><b><font face="돋움" color="#800000" size="3">[2002 인도 최고, 최악의 인물]</font></b></td><p></p></tr><p><tr><p><td width="275" bgcolor="#cc9966" colspan="2"><b><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SIZE: 100%">최고의 인물 : 산딥 판데이(Sandeep Pandey)</span></span></b></td><p><td width="275" bgcolor="#cc9966" colspan="2"><b><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SIZE: 100%">최악의 인물 :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span></span></b></td><p><span style="FONT-SIZE: 100%"></span><p></p><p></p><p></p><p></p><p></p></p></tr><p><tr><p><td valign="top" width="100" bgcolor="#f6f6f6"><p><span style="FONT-SIZE: 100%"><img src="http://img.hani.co.kr/section-kisa/2002/12/18/02106900012002121890-2.jpg" align="left"> <br><span style="COLOR: #444444"></span><br></span></p></td><p><td valign="top" width="175" bgcolor="#f6f6f6"><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SIZE: 100%">무기 개발이 인류 최악의 사태를 낳게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미국 버컬리에서 미사일 기술자로 일한 판데이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평화운동에 투입해 사회운동가로 활약했다. 올해 막사이사이 청년지도상을 받은 그는 막사이사이 상금이 미국 기업으로부터 나온 재원임을 알고는 즉각 주최쪽에 돈을 반환함으로써 시민운동의 도덕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span></span></td><p><td valign="top" width="100" bgcolor="#f6f6f6"><p><span style="FONT-SIZE: 100%"><img src="http://img.hani.co.kr/section-kisa/2002/12/18/02106900012002121890-3.jpg" align="left"> <br><span style="COLOR: #444444"></span><br></span></p></td><p><td valign="top" width="175" bgcolor="#f6f6f6"><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SIZE: 100%">힌두 광신자들이 구자라트에서 2천여명이 넘는 무슬림을 살해하고 수천명에 이르는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동안 광적인 힌두민족주의자며 구자라트주 최고장관인 모디는 학살의 후원자 노릇을 했다. 시민들은 국내·국제법을 총동원해 모디를 반드시 학살범으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span></span></td><p><span style="FONT-SIZE: 100%"></span><p></p><p></p><p></p><p></p><p></p></p></tr><p><tr><p><td width="275" bgcolor="#cccc99" colspan="2"><b><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SIZE: 100%">세계 최고의 인물 : 에릭 홉스밤(Eric Hobsbawm)</span></span></b></td><p><td width="275" bgcolor="#cccc99" colspan="2"><b><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SIZE: 100%">세계 최악의 인물 : 딕 체니(Dick Cheney)</span></span></b></td><p><span style="FONT-SIZE: 100%"></span><p></p><p></p><p></p><p></p><p></p></p></tr><p><tr><p><td valign="top" width="100" bgcolor="#f6f6f6"><p><span style="FONT-SIZE: 100%"><img src="http://img.hani.co.kr/section-kisa/2002/12/18/02106900012002121890-4.jpg" align="left"> <br><span style="COLOR: #444444"></span><br></span></p></td><p><td valign="top" width="175" bgcolor="#f6f6f6"><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SIZE: 100%">영국 역사학자. 역사를 보는 새로운 출구를 열었다는 찬사를 받아온 &lt;자본의 시대&gt; &lt;제국의 시대&gt; &lt;극단의 시대&gt; 같은 역작을 통해 잘 알려진 홉스밤은 90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아오는 동안 사회권력과 경제변천 그리고 정치구조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해왔다. </span></span></td><p><td valign="top" width="100" bgcolor="#f6f6f6"><p><span style="FONT-SIZE: 100%"><img src="http://img.hani.co.kr/section-kisa/2002/12/18/02106900012002121890-5.jpg" align="left"> <br><span style="COLOR: #444444"></span><br></span></p></td><p><td valign="top" width="175" bgcolor="#f6f6f6"><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SIZE: 100%">부시를 뺨치는 매파인 체니는 탐욕적 기업가로 에너지 자이언트 핼리버튼의 대표를 지낸 주전론자이며 극단적 민족주의자다. 체니는 별들의 전쟁과 군비확장을 주도하는 ‘람보식’ 군사주의자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한 공화당 내 강경파들에게 조언자로서 영감을 주는 인물이다. 그는 가장 추악한 면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색이 없다. </span></span></td><p><span style="FONT-SIZE: 100%"></span><p><span style="FONT-SIZE: 100%"></span></p><p></p><p></p><p></p><p></p></p></tr><p><tr><p><td width="550" bgcolor="#cccccc" colspan="4"><span style="FONT-SIZE: 100%"><b><span style="COLOR: #008000; FONT-FAMILY: 돋움">&lt;2002 인도 10대 뉴스&gt;</span></b><br></span><span style="FONT-SIZE: 100%; FONT-FAMILY: 돋움"><span style="FONT-SIZE: 100%">1. 구자라트주 폭동으로 무슬림 2천여명 사망<br>2. 바지파이 총리 정부 나렌드라 모디(구자라트 주지사) 옹호<br>3. 자무-카슈미르 총선<br>4. 경제불황 속에서 기록적 가뭄과 기아 발생<br>5. 미국 반테러리즘에 편승한 인도 군사주의 주전론 팽창<br>6. 정부 민영화 추진 절반 성공<br>7. 대형 고속도로 계획으로 생태 재앙 직면<br>8. 반테러리스트법과 작전 확대로 인권유린 사례 증가<br>9. 여성, 가정폭력과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받는 새로운 법 획득<br>10. 수도 민영화 증대로 시민 박탈감 확산</span> <p></p></span><p></p></td><p><p></p></tr><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table><p>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lt;타임 오브 인디아&gt;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p></span></span><br/><br/>tag : <a href="/tag/구라자트학살" rel="tag">구라자트학살</a>,&nbsp;<a href="/tag/모디" rel="tag">모디</a>,&nbsp;<a href="/tag/인도" rel="tag">인도</a>,&nbsp;<a href="/tag/911" rel="tag">911</a>,&nbsp;<a href="/tag/911테러" rel="tag">911테러</a>,&nbsp;<a href="/tag/아시아네트워크" rel="tag">아시아네트워크</a>,&nbsp;<a href="/tag/학살" rel="tag">학살</a>,&nbsp;<a href="/tag/무슬림" rel="tag">무슬림</a>			 ]]> 
		</description>
		<category>-e Ausgabe</category>
		<category>구라자트학살</category>
		<category>모디</category>
		<category>인도</category>
		<category>911</category>
		<category>911테러</category>
		<category>아시아네트워크</category>
		<category>학살</category>
		<category>무슬림</category>

		<comments>http://brainstem.egloos.com/4695089#comments</comments>
		<pubDate>Mon, 27 Oct 2008 02:45:48 GMT</pubDate>
		<dc:creator>브레인스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스크랩]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및 한일전쟁 시나리오 ]]> </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4488487</link>
		<guid>http://brainstem.egloos.com/4488487</guid>
		<description>
			<![CDATA[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 작전권 회수하려한&nbsp; 이유를 알것 같고 꿈과 희망이 군국주의자가 되려한 이유도 알것 같음<br><br>쥐박이와 국개들은 <br><br>경제만 살리면 미친소 수입해서 국민 죽어도 되고<br><br>경제만 살리면 독도 팔아먹어도 되고<br><br>경제만 살리면 나라 팔아먹어도 된다고 할지도 모르겠어 <br><br><br><!-- google_ad_section_end --><br /><br />국가&nbsp; 대 국가의 전쟁을 논함에 있어, 양국 간의 전력차를 비교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그보다 우선적으로 그 근간에 깔려있는 “전쟁의 이유”에 대해 먼저 논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고 보여진다. 즉, “왜 전쟁을 하려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br><br>미국은 아프리카의 소국과 전쟁을 하지 않지만, 2차 대전 당시 강력한 전력의 독일, 일본과는 직접 전쟁을 했고, 구소련과는 아프카니스탄, 베트남 등지에서 대리전을 치루었다. 전쟁은 전력의 차이가 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왜 전쟁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설 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br><br>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전쟁은 “강자(强者)”의 “경제적”인 이유로 일어났다. 즉, “왜 전쟁을 하려하는가?”에 대한 답은 “강자가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br><br>80년대 일본 경제는 미국을 추월하느냐 마느냐의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세계 10대 기업 중 일본 기업이 7~8개를 차지했으며, 매출액 순위로도 전세계에서 1위에서 4위까지가 일본기업들이었다. (현재는 도요다 자동차만이 10위를 턱걸이하는 정도이다.)<br><br>9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거품 붕괴의 충격으로,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지금은 “잃어버린 15년”을 지나고 있다.<br><br>경제의 “거품”이란, “과열”과 관계가 깊다. 일본은 80년대 전세계로부터 벌어들인 막대한 달러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다. 대부분의 재화가 그렇지만, 특히 부동산은 “남들이 인정하는 가치”가 가격이 된다. 같은 시멘트, 철근을 사용한 아파트라도 도쿄에 지은 아파트와 시골에 지은 아파트의 가격은 크게 차이가 난다.<br><br><br><br>어느 날 갑자기, 도쿄의 부동산에 대해 “남들이 인정하던 가치”가 사라졌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니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도쿄의 부동산 가격이 최고 1/20까지 폭락했다. 대부분의 기업이나 개인은 그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경제활동을 영위했었다.<br><br><br><br>담보가치의 하락으로 은행은 순식간에 막대한 부실자산을 안게되었다. (20억짜리 부동산을 담보로 10억을 대출해주었는데 담보로 잡은 부동산이 하루아침에 1억원으로 떨어졌다.) 기업들의 장부상의 자산가치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의 평가가치가 급락함으로써 기업들의 회계상 자산가치도 덩달아 “거품”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이 여파는 주식시장으로까지 퍼질 수 밖에 없었다.<br><br>(논외의 얘기이지만, 우리도 일본식 장기불황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한국경제도 부동산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구조이기 때문이다.<br><br>어려운 시절부터 달러를 벌어들여와 국민들에게 분배해주면 국민들은 그 돈으로 닥치는대로 땅사고 집샀다. 우리가 어려운 시절 공돌이 공순이 소리 들어가며 벌어들인 달러는 대부분 서울이라는 도시의 땅속에 녹아들어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땅에 커다란 원을 그려놓고 “이제부터 이 원안의 땅은 금이다.”라는 룰을 정했다. 국민들은 그 룰을 믿고 그 “금”을 비싸게 주고 거래해왔다.<br><br>어느날 그 룰이 깨지면, 우리가 피를 팔아서 벌어들인, 자존심 팔아가면서까지 지키고 싶어했던 그 귀한 가치들도 함께 날아가는 것이다. 그 룰이란 법도 아니며, 그 흔한 “관습”도 아니다. 지켜야 한다고 강제되는 것이 아니다.)<br><br>중국은 냉전 이후,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도 중국의 추월에 위기감을 느낀다지만, 일본이 느끼고 있는 위기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본이 느끼는 감정은 이미 “위기감”의 단계를 지나쳤다. (여기에 더해 삼성전자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하고 있다.)<br><br>일본의 거품붕괴와 더불어, 전세계는 불황의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하여 현재 세계는 불황의 중심에 있다. 이러한 전세계적인 불황은 전세계적인 공급과잉 현상에서 초래되었다. 즉, 전세계적인 공급과잉 현상이 누적되어 일본의 거품붕괴를 야기했다고 봐야한다.<br><br>즉, 빠르게, 많이 만드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수요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br><br>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이 만들어놓기만 하면 물건은 팔렸지만, 언제부터인가 기업들은 경쟁에 목숨을 걸게 되었으며, 트랜드라는 것을 만들어 소비를 촉진하고 조장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책으로 제시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젠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던 자동청소로봇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어가며 소비자들이 자동청소로봇을 구매해 주기를 바라는 시대까지 이르렀다. PDP 시장을 보면, 40인치 수요도 별로 없는데, 공장에서는 102인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br><br>기업들이 생산한 제품들은 팔리지 못하고 재고로 창고에 쌓여갔으며, 폐기처분 되었다.<br><br>부가가치적 측면에서 보면 전세계는 십수년간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태워없앤 것이다. 비싼 석유를 태워 안팔리는 물건을 만든 것이다. 그것도 전세계적인 규모로 십수년간...<br><br>지금의 세계적인 불황은 이러한 현상이 십수년간 누적되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일개 국가차원의 어떠한 경기부양정책도 소용이 없다.<br><br>90년대 말의 벤처붐, 인터넷붐 등은 모두 착시현상들이다. 앞으로도 마치 세계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줄기세포 등의 바이오관련, 로봇관련 등등) 그러나 모두 거품이다.<br><br>기업은 계속 돌아가야 하고, 그러자면 물건을 만들어야 하고, 안팔리는 현재의 물건보다 엄청난 기술개발비를 쏟아부어가며 미래의 물건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예측이 틀린다면 또다시 비싼 석유를 태워 안팔리는 물건을 만든 것이 된다.<br><br>이런 와중에 일본은 세계 1위의 외환보유국이며 그 보유량은 늘어만 간다. 일본이 보유한 순 부가가치가 많다는 측면보다는, 일본으로만 흘러가려고 하는 달러흐름의 잘못된(왜곡된) 경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br><br><br><br>일본의 대표적 기업들은 과거보다 많이 쇠퇴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일본의 저력은 아직도 세계에 남아있다. 즉, 일본의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불황기에는 경쟁력 높은 제품만 살아남는데 일본 제품들이 그렇다. 이것이 달러를 일본으로 치중되어 흘러들어가게 하는 비정상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br><br>문제는 달러(부가가치)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갈 줄만 알았지 흘러나올 생각을 안한다는 것이다. 일본으로서도 달러를 풀고 싶어도 풀 수가 없다.<br><br><br><br>수요가 있어야 달러를 풀어 원자재를 수입하여 물건을 더 만들 것이다. 수요가 없는 이상, 달러가 풀릴 방법은 없다. 좀 더 정확히는 일본으로 흘러들어가는 달러가 정상적으로 밖으로 흘러나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다.<br><br>이러한 일본기업들의 어려움은 그대로 미국기업들의 어려움으로 나타난다. 즉, 미국기업들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도 일본기업들과 같으며 고민의 강도는 미국기업들이 더 크다.<br><br><br><br>이러한 공급과잉으로 인한 전세계적인 불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크게 수요를 증가시키는 방법과 공급을 감소시키는 방법으로 나뉘어 진다.<br><br>수요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전세계적으로 이미 한계점에 이르렀다. 엄청난 광고를 때려가며, 소비자를 꼬셔가며, 한병 마시던 코카콜라를 두병, 세병 마시게 했고, 핸드폰의 교환주기를 몇 개월로 단축시켰다. 이제는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자동청소로봇을 사야할 때라고 소비자들을 꼬시고 설득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br><br>주요국가들의 가계부채율을 보면 알겠지만, 전세계 소비자들은 이미 몇 년치의 소비를 앞당겨 소비한 상태이다.<br><br>이제 남은 것은 공급을 감소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세계경제에 일정량을 공급하는 국가의 공급능력을 전쟁이라는 방법으로 강제적으로 제거하는 수 밖에 없다.<br><br>전쟁은 당하는 국가의 공급능력을 감소시키고, 도발하는 국가에게는 자동청소 로봇과 같은 미래의 수요가 아닌 당장 현재 필요한 대규모 수요를 창출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br><br><br><br>“세계적인 불황 타개책”이 되는 전쟁의 요건은,<br><br>첫째 “일본의 전쟁”이어야 한다.<br>- 1위의 외환보유국의 달러 소진 및 달러의 왜곡 흐름 해소.<br><br>둘째, 일본의 전쟁 대상은 일정정도 세계경제에 공급능력을 가진 나라여야 한다.<br>- 세계경제로의 공급능력 제거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br><br>셋째, 일본의 전쟁 대상은 일본에 타격을 줄 수 없는 나라여야 한다.<br><br>넷째, 일본의 전쟁 대상은 일정 정도 이상의 규모를 가져 일정기간 버텨줄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br>- 공급능력 제거의 측면은 아니고, 일본의 달러가 부가가치화 하여, 일본 내부로 효과적으로 스며들 수 있는 시간만큼을 끌어줄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 일본도 자신들의 달러를 풀어서 다른 나라들만 좋은 일 시켜 줄 수는 없다.<br><br><br>이러한 “세계적인 불황 타개책”을 주도적으로 시행하고 관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으며, 그 전쟁대상국은 “한국”이 유일하다. 오직 한국만이 위의 네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나라이다.<br><br>네가지 조건 중 중요한 것은 셋째, 대일본 타격능력이다. 이것은 전쟁대상국의 노력여하에 따라 달성가능한 것이며, 전쟁 수행 요건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br><br>따라서, 일본만큼 “세계적인 불황 타개책”이 필요한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대일본 타격능력 배양을 막아야 한다. 미국은 실제로 훌륭하게 한국의 대일본 타격능력 배양을 막고 있다. (핵개발 저지, 미사일 사거리 제한)<br><br><br><br>이제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한일 전쟁이다.<br><br>우리는 한반도가 침략당하면 주변 강대국들이 개때처럼 달려들어 줄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혀 틀린 생각은 아니다.<br><br>러시아,중국,북한이 남한을 침략하거나, 미국,일본,남한이 북한을 침략한다면 맞는 생각이다.<br><br>그러나 일본이 남한을 침략하거나 중국이 북한을 침략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간의 분쟁”일 뿐이다. 우리가 아는 “민감한 한반도 문제”에 포함되지 않는다.<br><br>러시아나 중국으로서는 세계 최강 미국보다는 그보다 약한 일본이 남한에 주둔하는 것이 전략적으로도 유리하다.<br><br>즉, 세계 최강 미국이 남한에 50년간이나 주둔할 때도 없던 “전략적 위험”이, 일본이 남한에 주둔한다고 발생할리 만무한 것이다.<br><br>중국이 북한을 침략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br><br>예를 들어, 백만명의 중국군이 휴전선 근처에 집결한다고 해도 미국이 북한이나 중국을 먼저 공격할 수 없다. 중국이 휴전선을 밀고 내려와 남한의 영토에 발을 들여 놓아야 그때 비로소 미국이 참전할 수 있는 것이지, 백만명의 중국군이 휴전선에 집결한 사실만으로 먼저 전쟁을 할 수 없다.<br><br>또한, 지난 50년간 러시아군이 북한에 주둔했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러시아군이 물러나고 중국군이 그자리를 차지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에게 큰일이 나는 사건인가? 일본과 미국에게는, 북한에서 러시아군에서 중국군으로 바뀌는 "교체 행위"가 좌시하지 못할만한 것인가?<br><br>또한, 한일전쟁은 중국,러시아에게는 전쟁특수를 가져온다. (일본은 한국전의 전쟁특수로 오늘날의 기반을 마련했다.)<br><br>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의 확장을 막을만한 세력이라는 논리는 이미 빛이 바랬다.<br><br>그 논리가 맞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남한보다는 수십배 가치가 있는, 석유의 보고, 이라크에서 미국의 확장을 막았어야 했다.<br><br><br>또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으로는 우리의 경제 규모가 있다.<br><br>간단히 세계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경제규모가 상당하므로 우리가 망하면 세계경제가 어려워진다는 논리이다.<br><br>현재, 한국은 세계경제에 수출 2500억불 수입 2000억불 정도를 기여하는 나라이다.<br><br>우리 입장에서는 수출이 중요하겠지만 공급과잉의 세계에서는 어떤 나라의 수출은 다른 나라에게는 눈에 가시다.<br><br>수입 측면을 보면, 한국이 수입하는 물건의 대부분은 원자재이거나 중간재들이다. 즉, 한국이 수입하는 물건은 한국에서 가공하여 수출하려고 수입하는 물건들이 대부분이다.<br><br>한국이 망하면 그만큼 다른 나라들이 한국이 수입했던 양만큼 더 수입하고 생산한다. 공급과잉의 세계에서는 쉬고 있는 공장라인이 많다. 삼성전자가 망하면 쏘니와 모토로라의 쉬고있던 생산라인이 돌아간다.<br><br>이제 남은 것은 순수하게 한국이 소비하는 부분, 먹고 쓰는 최종 소비재이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13억 중국인이 한끼만 굶으면 한국이 일년치 소비하는 물량을 더 소비할 수 있다.<br><br>한국이 제거됨으로써 발생하는 세계경제의 수요창출의 효과는 그러한 한국의 순수입량을 상쇄하고도 남는다.<br><br><br>이제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br><br>전쟁이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다.<br><br>현재 일본 국민들의 우경화 경향은 전쟁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 이제 일본은 전력증강 속도에 맞추어 이것을 키워나가기만 하면 된다.<br><br>전쟁은 불(火)과 성질이 비슷하다.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부싯돌, 불쏘시개, 장작이 필요하다. 일본이 독도를 건드리는 행위는 부싯돌을 켜는 것과 같다.<br><br><br><br>그러나 부싯돌을 켜는 것 만으로는 불을 피울 수가 없다. 따라서 불쏘시개가 필요하다. 이 불쏘시개는 한국이 제공할 수도 있고 일본이 제공할 수도 있다. 만일 일본의 독도 침략에 한국이 "발끈"하여 일본전함이라도 침몰시킨다면, 불쏘시개는 한국이 제공하는 것이 된다.<br><br><br><br>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운양호 사건" 등과 같이 "불쏘시개"와 관련한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911테러라는 불쏘시개가 없었던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수 있었겠는가?)<br><br>전쟁준비가 끝났다고 판단되면, 일본은 72시간 정도의 시한을 주고 독도의 반환요구를 할 것이고 기한 내에 독도를 무력 점령을 할 것이다.<br><br><br><br>이 과정에서 한국이 별다른 대응을 취하지 않으면, 즉, 불쏘시개를 제공하지 않으면, 불쏘시개는 일본이 제공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한다. (일본이 주기적으로 독도문제를 야기시켜 한국인들을 자극하여 결집하게 하는 것은 불쏘시개를 한국이 제공하게 하려는 것이다.)<br><br>따라서, 일본의 독도 무력점령 이후, 한국 내에서 연일 반일 시위가 일어날 즈음, 911 테러와 같은 일본인들을 향한 대규모 테러가 발생할 것이며, 범인으로는 당연히 한국이 지목될 것이다.<br><br><br><br>이제 단결력 강하기로 소문난 1억2천만의 일본인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활은 이미 시위를 떠났으며, 나아갈 길은 오직 한길 밖에 없다.<br><br>이때가 되면 핵 이외의 대일본 타격능력은 무용지물과도 같다. 일본 본토에 미사일 몇발 떨어져 보았자, 일본인들의 적개심만 부채질할 뿐이다. 일본은 고베대지진도 극복했으며, 2차 대전의 폐허에서도 살아남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br><br>지금의 일본의 경제상황은 이미 몇 번의 전쟁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br><br>일본인들은 전쟁을 “충분히 각오”할 수 있다. 그만큼 오래 굶었다.<br><br>지금 당장 일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도 주변의 황금 어장도 아니고, 그 밑에 깔렸다는 하이드레히트도 아니다.<br><br><br>(물고기도, 하이드레히트도, 우리 100배 규모의 영해를 가진 일본의 바다 속에 충분한 양이 있다.)<br><br>지금 당장 일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고, 15년간이나 지겹도록 일본의 발목을 잡아온 불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이다.<br><br><br><br>(눈앞의 중국이 경제적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것이 뻔히 두눈에 보이는데도, 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의 몸은 생각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는 한국마저 "삼성전자 쓰나미"로 일본으로 공격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br><br>일본은 경제회생을 위해, 15년간 "평화적"인 방법은 다 써보았다.<br>남은 것은 "평화적이지 않은" 방법 밖에 없다.<br><br><br><br>이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br><br>우리도 주장하고 있는 바이지만, 남한은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이다.<br><br>이것을 역으로 보면 미국은 남한이라는 “땅”만 있으면 된다. 그 안에서 사는 냄새나는 황인종들은 필요 없다.<br><br>미국으로써는 냉전시대가 종식된 이 시대에 냉전시대와 같은 비용을 석유도 안나는 남한에 쏟아 부을 이유가 없다. 미국에게 남한은 일본을 사수하기 위해 필요한 땅일 뿐이다. 따라서, 일본으로 하여금 남한을 지배하게 하는 것이 미국에게는 효과적이다.<br><br><br><br>실제로 미국은 주한미군은 감축하고 있고, 주일미군은 증강시키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주일미군의 증강을 지원하기 위한 법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즉, 미국은 남한의 방어를 일본에 맡기는 대신, 일본이 배신하지 못하도록 주일미군을 증강하고, 일본도 남한을 얻는 대신 미국이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외견상으로는 미일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여 동북아를 방어하는 것이지만)<br><br>미국이 동북아 안보를 일본에게 맡김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일본의 남한지배이다. 즉, 남한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일본에게 이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에게 있어 동북아 안보의 최전선은 남한인데, 일본에게 동북아 안보를 맡기면서 일본에게 남한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br><br>미국이 원하는 것은 현재 미국이 남한에서 가진 지위를 그대로 일본에게 이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시작전권, SOFA 등으로 보장되는 주한미군의 지위를 그대로 일본에 승계하는 것이다.<br><br><br><br>즉, 남한의 전시작전권을 일본이 가지고, 주한미군의 주둔지를 일본군이 차지하는 등의... 그러나, 이러한 승계가 "평화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은 미국도 잘알고 있다.<br><br><br><br>또한 남한은 자주국방과 10년 내에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환수한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의지는 미국에게는 "전략적 요충지에서의 지배력 상실"과 같은 의미이다.<br><br><br><br>따라서, 한일간의 갈등(독도)을 이용하여, "한일전쟁"을 유도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합법적(?)"인 절차로 주한미군의 지위를 일본군에게 이양하는 것이다.<br><br><br>또한, 이과정에서 미국은 전략적 요충지인 "식민지 한국"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독립의 의지(즉, 미국의 지배력을 상실하게 하려는 기도)"를 꺾어버릴 수 있다.(자주국방, 전시작전권 회수 등)<br><br>한일전쟁을 전제한 상태에서, 전시작전권의 환수문제는 한국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한국이 한국전 이후 전시작전권을 가져본 경험이 없어서 전시작전권의 용도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사실 전시작전권은 전시보다 평시에 더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br><br><br>이글에 전제된 한일전쟁은 외형상 독도문제로 촉발되는 영토분쟁이다. 따라서, 상기에 설명한 이유들 외에도 중국이나 러시아가 한일전쟁에 끼어들기가 곤란하다.<br><br><br><br>임진왜란 때처럼 일본이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이데올로기적인 것도 아니고... 끼어들 명분이 없다.<br><br><br><br>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가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상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런데 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전시작전권이다. 즉, 국가간의 상호방위조약은 "전시"를 기준으로 체결되는 조약이다. 따라서, 전시작전권이 없는 정부는 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br><br>미국이 빠진 상태에서 한국과 일본이 1:1로 붙는 전쟁에서는 전쟁이 발발하면 미국이 가진 전시작전권 자체는 의미가 없다. 즉, 미국이 빠진 한일전쟁이 일단 발발하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을 듣지 않을 대한민국 군인은 없다.<br><br><br><br>그러나, 전쟁 이전에 한국이 낌새를 채고 깜짝쇼를 하듯 중국이나 러시아와 독자적으로 갑자기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한국의 제의를 중국이나 러시아가 받아들이고 싶어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br><br><br><br>(전시작전권 없는 정부와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은 무효이며, 법률적 효력이 없다. 중국 주석이나 러시아 대통령은 법률적 효력없는 조약을 근거로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br><br>따라서, 한일전쟁을 앞둔 상황이라면, 한국의 전시작전권은 한국 입장에서는 전쟁발발 이전에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것이고, 미국이나 일본으로서는 절대 돌려줄 수 없는 것이다.<br><br>혹자는, 미국이 일본의 남한지배를 허락하면 일본이 그만큼 더 성장해서 미국을 위협하게 된다는 논리를 편다. 미국이 일본의 성장을 좌시하지 않을 거였으면, 오늘날처럼 이렇게 성장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았으며, 현재 진행되고있는 일본의 재무장을 묵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br><br><br><br>북한보다 일본이 더 무섭다는 것을 미국이 모르고, 한 줌도 안되는 북한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위해 과거 2차대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세계 2위의 강국 일본의 재무장을 허용했을까?<br><br>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아직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일본이 미국의 승인으로 남한을 취한 후, 성장하여 미국을 배신할 수 있을까?<br><br><br><br>그렇게 되면 일본은 중국,러시아,미국과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즉, 미국이 일본에게 남한을 내주어도 일본은 "배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일본이 미국을 배신한다면 일본이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과 러시아를 무릎꿇린 뒤이다. 오히려 이러한 승부는 미국도 바라는 바이다. 중국,러시아는 일본이 처리했고, 미국은 일본 하나만 처리하면 되니까....<br><br>이건희는 얼마안되는 지분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며,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한다. 이건희는 지배회사만을 지배하고 지배회사가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지배구조는 대규모 조직에 "필수적"인 것이다. 미국은 이제 그러한 간접지배의 필요성을 느낄만큼 충분히 커졌다.<br><br>미국이 할 일은 일본이 전쟁준비를 마칠 때까지, 남한의 대일본 타격능력 배양을 제어해주는 일이다. 일본을 링 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미국은 남한의 손발을 묶고 아킬레스건을 끊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일본이 안심하고 링위로 올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Promotor로써 해야 할 일이다.)<br><br>미국은 한국과 일본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 중립적 입장을 취할 것이고, 주한미군은 유엔의 승인을 받아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전환된다. 미국은 전쟁 중에는 비둘기표 평화유지군으로 행세하고, 전후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마음씨 좋은 “톰아저씨”가 되어 남한을 지원하고 남한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br><br><br><br>남한을 비롯한 동북아에는 반일감정은 증가하고 반미감정은 감소한다. 남한을 일본에게 넘기고 난 후, 남한 내의 미국의 영향력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한다.<br><br>미국이 "한일전쟁"을 하나의 안으로써 기획하기 시작한 시점은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정권이 이양되는 시점으로 추정된다.<br><br><br><br>전두환때까지 미국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임명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은 미국이 지명했거나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대통령직의 유지"가 가능했다.<br><br><br><br>그러나 6월 민주항쟁과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선거로 결정되게 되었다.<br><br><br><br>미국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최고권력자를 선정하는 권리를 잃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남한의 대통령 직선제의 도입은 동북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남한에서 미국이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하었다.<br><br><br><br>미국은 남한에 대한 지배력 상실의 위험성에 대비한 대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위험성을 제거할 수 있을까?<br><br><br><br>이와 유사한 경우에, 미국이 즐겨 사용했던 방법은, 미국이 반정부군을 지원하여 정권을 전복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남한에는 무력적인 반정부군이 존재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북한을 이용하여 남한정부를 전복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br><br><br><br>결국 일본을 이용하여 전쟁이라는 방법으로 남한정부를 전복시키는 방법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방법이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남한에게 핵이 있어서는 안된다.<br><br><br><br>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 및 박통의 핵개발 시도를 지켜봐온 미국은 남한이 핵을 개발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놓아야 했다. 결국 1991년 노태우는 미국의 압력으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하게된다. 미국에겐 북한, 중국, 러시아를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에서의 지배력 상실의 위험성은 북한 핵문제의 그것보다 더 큰 것이다.<br><br>일본의 남한침략은 미국과 일본에겐 손실없는 이득만을 가져다주는 전쟁이다. 즉, 이러한 전쟁을 안하면 미국과 일본은 손해이다.<br><br><br><br>마지막으로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br><br>북한, 정확히는 북한의 핵은 일본이 남한을 침략하기 위한 힘을 기를 명분을 위해 필요했다.<br><br><br><br>실제로 북한의 핵은 일본의 재무장과 헌법개정(미래형이지만 거의 확실시)에 결정적 공헌을 했고, 이러한 일본의 무장을 중국과 러시아가 나서서 막을 수 없는 명분을 제공했다.<br><br>북한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자위수단"으로 목숨을 걸고 핵을 가졌다. 남한이 일본에 의해 침략을 받는다고 해서, 북한이 핵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거나, 참전할 수 없다.<br><br><br><br>가장 중요한 이유는 남북 연합이 일본(현재보다 전력이 증강된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이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행위는 "핵은 자위수단"이라는 스스로의 핵보유 명분을 해하기 때문이다.<br><br><br><br>(자위수단(自衛手段)의 自는 자기 自이다.)<br><br><br><br>무엇보다, 북한은 전쟁수행능력이 없는 상태이다. 즉, 자기 코가 석자이다.<br><br><br>이순신은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일본의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에, 일본의 침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고, 자다가도 식은 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날 정도로 일본을 두려워했다.<br><br>결정적으로 이순신은 일본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 많은 반대와 고통을 견뎌내며 수군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일본이 무서웠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는 준비에 따르는 그 어떤 고통을 인내할 수 있었다.<br><br>이순신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지않기 위해서는, 준비단계에서는 먼저 적을 두려워해야 한다.<br><br><br>우리에게 "일본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까?<br>"일본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친일,반민족적"인가? <br/><br/>tag : <a href="/tag/전쟁" rel="tag">전쟁</a>,&nbsp;<a href="/tag/일본" rel="tag">일본</a>,&nbsp;<a href="/tag/한국" rel="tag">한국</a>,&nbsp;<a href="/tag/독도" rel="tag">독도</a>,&nbsp;<a href="/tag/분쟁" rel="tag">분쟁</a>,&nbsp;<a href="/tag/가상시나리오" rel="tag">가상시나리오</a>			 ]]> 
		</description>
		<category>lustig</category>
		<category>전쟁</category>
		<category>일본</category>
		<category>한국</category>
		<category>독도</category>
		<category>분쟁</category>
		<category>가상시나리오</category>

		<comments>http://brainstem.egloos.com/4488487#comments</comments>
		<pubDate>Mon, 14 Jul 2008 16:29:40 GMT</pubDate>
		<dc:creator>브레인스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2008년 6월 2일 서울 ]]> </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4463836</link>
		<guid>http://brainstem.egloos.com/4463836</guid>
		<description>
			<![CDATA[ 
  <embed src="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EUEjUkDTAGY$" width="502" height="399"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bgcolor="#000000"></embed><br/><br/>tag : <a href="/tag/촛불" rel="tag">촛불</a>,&nbsp;<a href="/tag/촛불문화제" rel="tag">촛불문화제</a>,&nbsp;<a href="/tag/무력진압" rel="tag">무력진압</a>,&nbsp;<a href="/tag/폭력경찰" rel="tag">폭력경찰</a>			 ]]> 
		</description>
		<category>-e Ausgabe</category>
		<category>촛불</category>
		<category>촛불문화제</category>
		<category>무력진압</category>
		<category>폭력경찰</category>

		<comments>http://brainstem.egloos.com/4463836#comments</comments>
		<pubDate>Thu, 03 Jul 2008 04:34:54 GMT</pubDate>
		<dc:creator>브레인스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스크랩] [다음아고라] 하나님이 선한 신이 아닌 악마라고 생각하는 이유.  ]]> </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4463747</link>
		<guid>http://brainstem.egloos.com/4463747</guid>
		<description>
			<![CDATA[ 
  <a href="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7&amp;articleId=231244">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7&amp;articleId=231244</a><br><br>하나님이 선한 신이 아닌 악마라고 생각하는 이유. <p class="R_name"><span class="id"><a href="http://agora.media.daum.net/profile/list?key=nVrwzzvZDLc0&amp;group_id=1">onlyfamily</span></a><span class="num_fnt"></p><p>번호</span> 231244 <span class="bar">|</span> 2008.04.22 </p><p class="R_rcm"><span class="num_fnt">조회</span> 59 </p><br /><br />뭐... 서설은 생략하고요.<p>1. 원죄 부분입니다.</p><p>&nbsp;인간은 나약합니다. </p><p>인간의 능력을 &nbsp;신이나 악마의 능력에&nbsp;비한다면&nbsp; 태양과&nbsp;반딧불의 차이보다 더 할것입니다.</p><p>그만큼 인간은 신이나 악마&nbsp;앞에서는 비교 대상이 되지를 않는 다는 말입니다.</p><p>내가 하나님과 더불어서 악마의 능력을 들먹이는 것은 악마의 능력 또한 하나님의 능력에는 미치지&nbsp;못하지만&nbsp;거의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p><p>&nbsp;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인 분이시며 세상을 주관 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p><p>"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만들었으며, 자유와 평화를 주고 에덴 동산에서 살도록 하였습니다.&nbsp; 하지만 나약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악마의 유혹에 빠져서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안 하나님은 진노하여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고 고통을 주었습니다."</p><p>원죄 부분은 대충 이런 이야기 입니다. </p><p>하나님처럼 전지전능하고 알파요 오메가인 분이시며, 인간을 창조해서 인간의 능력과 지적 수준을 알고 계신 분께서 ... 인간이 악마에게 유혹 당하리라는 것을 모르고 계셨단 말입니까?</p><p>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면, 나약한 인간의 능력으로 반드시 유혹 당하리라는 것을 아셨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원죄"의 굴레를 씌워 영원한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p><p>이런 존재가 알파요 오메가이며, 완전한 존재입니까?</p><p>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하나님은 인간에게 평화를 주었으나 인간이 스스로 그 평화를 차 버렸다. 그러므로 죄가 있는 것이 타당하다."</p><p>한가지 예를 들어 보죠. 불의 뜨거움과 무서움을 제대로 모르는 5살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p><p>어머니는 아이에게 "불은 뜨겁고 무서우니 절대 만지지 말아라"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옆집에 살던 아주머니가 놀러 와서는 아이가 불에 관심을 보이니까. "불은 만지면 재미 있는 거야. 그런데 너희 엄마가 불을 만지지 말라고 한 이유는 불을 가지고 놀면 재미가 있어서 아가가&nbsp;항상 불만 가지고&nbsp;놀면서&nbsp;한글 공부는 하지 않을까봐&nbsp;못 만지게 하는거야. 이번 한번 만져봐. 그리고 다신 만지지마."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합시다. 그렇게 해서 불을 만지게 된 아이는 영원한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p><p>&nbsp;</p><p>2.지옥 부분입니다.</p><p>기독교에서는 인간 영혼의 생은 무한 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섬겨야 죽어서의 영생을 천국에서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의 영생은 지옥의 불길에서 고통 받아야 한다고 하죠.</p><p>그런데, 인간의&nbsp;모습을 하고 있는&nbsp;동안에만 회개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p><p>&nbsp;인간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p><p>7,80년이라는 기한을 정해 두고서, 그 기간 동안에 회개를 하지 않으면 영원한 고통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악마가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p><p>이런 생각을&nbsp;하는 이유는,,,&nbsp;대다수의 인간이 천국에 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악마가 일정한 기한을 주어서, 명분을 만들고 난후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서&nbsp;영원한 고통을 주겠다고 하는 악마적 생각이기 때문입니다.</p><p>난 성경의 창조주는 선한 신이 아닌 악마라고 생각합니다.</p><p>이런말 해도 전 별로 안 두렵습니다. </p><p>앞으로 몇년후에 마음의 변화가 생겨 회개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p><p>&nbsp;</p><p>p.s&gt;&nbsp;창조주를 인간처럼 끌어 내린 것은 내가 아니라 성경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창조주도 아니며 시정 잡배일 뿐입니다.</p>			 ]]> 
		</description>

		<comments>http://brainstem.egloos.com/4463747#comments</comments>
		<pubDate>Thu, 03 Jul 2008 03:59:57 GMT</pubDate>
		<dc:creator>브레인스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조중동 광고리스트 데이터베이스 ]]> </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4463735</link>
		<guid>http://brainstem.egloos.com/4463735</guid>
		<description>
			<![CDATA[ 
  <a href="http://spreadsheets.google.com/pub?key=p_s9QsQy5_QA3sxgdNKGnbA&amp;gid=2">http://spreadsheets.google.com/pub?key=p_s9QsQy5_QA3sxgdNKGnbA&amp;gid=2</a>			 ]]> 
		</description>

		<comments>http://brainstem.egloos.com/4463735#comments</comments>
		<pubDate>Thu, 03 Jul 2008 03:51:17 GMT</pubDate>
		<dc:creator>브레인스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폭렬 갑자원 ]]> </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4462245</link>
		<guid>http://brainstem.egloos.com/4462245</guid>
		<description>
			<![CDATA[ 
  <a href="http://www.imdj.net/comic/comic_detail.php?mh_id=1267">http://www.imdj.net/comic/comic_detail.php?mh_id=1267</a><br><br>폭렬 갑자원<br><br>갑자원으로 가기 위해 카와라자키 공고 귀족 학교로 불리고 있는 류미엘 고교와 시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엄청난 실력의 카와라자키공오에 류미엘고교는 프랑스 파리에서 전지 훈련중인 1군을 불러들여 시합을 하는데.... 돈밖에 없는 류미엘 고교는 심판을 배수해 카와라자키공고를 궁지로 몰어넣지만 부주장 혼다가 트럭으로 가져온 돈으로 인해 음모는 와해되고 맙니다. 류미엘고교는 몽마르뜨의 대마신이라는 남자를 불러들입니다. 엄청난 실력을 가진 투수인 이 몽마르뜨의 대마신. 하지만 오타의 한방에 대마신은 무릎을 꿇고 맙니다. 결국 갑자원으로 출발한 카와라자키 공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테러단들에게 비행기를 하이잭을 당해 버립니다. 우리의 카와라자키 공고는 오타의 명령에 따라 테러단들을 정리하고 무사히 도착하기 직전에 또 다시 별안간 나타난 유성의 무차별 공격을 받는데.... 사건을 몰고 다니는 남자 오타. 갑자원의 길은 정말 멀고 험한 길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테러단, 그리고 때마침 떨어지는 유성, 기장의 식중독..... 카와라자키공고의 최대의 적은 바로 내부의 오타가 아닐지..... 중간에 기억상실을 걸리는 약간(?)의 장애를 겪기도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갑자원에 도착한 의지의 카와라자키 야구부입니다. 훗! "폭렬 갑자원"이 야구만화라는 것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야구만화를 가장한 테러만화나, 학원 액션 물 내지는 환경만화(?) 일지도..... 장르의 경계를 과감히 거부한 아니 장르에게 거부당한 "폭렬 갑자원"!! 그 두 번째의 폭주하는 재미를 즐기십시오. 			 ]]> 
		</description>

		<comments>http://brainstem.egloos.com/4462245#comments</comments>
		<pubDate>Wed, 02 Jul 2008 10:41:03 GMT</pubDate>
		<dc:creator>브레인스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우리가 밝히는 대한민국! 저도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는 1人입니다. ]]> </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4393924</link>
		<guid>http://brainstem.egloos.com/4393924</guid>
		<description>
			<![CDATA[ 
  <div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TEXT-ALIGN: center"><a href="http://www.sealtale.com/"><img height="94" alt="Candle" src="http://www.sealtale.com/PublicImageSeal.aspx?value=46674" width="162" border="0"></a></div><br><br>우리가 밝히는 대한민국! 저도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는 1人입니다.<br>저는 광우병의 위험을 지닌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합니다.<br>정부는 고시를 철회하고 미국과 재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합니다.<br>또한, 이러한 국민들의 재협상 요구에 대하여 정부는 성실하게 경청하여주기를 바랍니다.<br>마지막으로 국민들의 촛불 문화제를 강경진압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 
		</description>
		<category>-r Anfang</category>

		<comments>http://brainstem.egloos.com/4393924#comments</comments>
		<pubDate>Sat, 31 May 2008 14:43:19 GMT</pubDate>
		<dc:creator>브레인스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카네이션 혁명 ]]> </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4326966</link>
		<guid>http://brainstem.egloos.com/4326966</guid>
		<description>
			<![CDATA[ 
  2차대전당시 불구덩이가 되어버린 유럽이나 내전으로 홍역을 치룬 스페인과는 달리 조용히 숨어있다가 종전이후 미국의 지원으로 살아나간 포르투갈의 독재자 안토니오 살라자르.<br />
<br />
살라자르는 1926년 쿠데타로 집권한 카르모나 장군의 후원으로 1932년부터 총리로 임명 1968년 뇌일혈로 물러날때까지 36년을 집권한다.<br />
<br />
살라자르는 재임시 신헌법을 만들어 국회의원을 일정한 명단내에서만 선출하고 각료도 그가 선출하였으며 대통령외에는 그를 해임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br />
<br />
스페인 내전과 2차대전 외무부장관을 겸임한 살라자르는 대외적으로는 철저한 중립을 지켜 포르투갈은 전쟁의 비극을 비텨나가게 된다.<br />
<br />
그러나 종전 이후 반 식민지 정책을 펼치던 미국과 소련의 압박에 저항하며 식민지 정책을 고수하다 68년 뇌일혈로 물러난 후 70년 사망함.<br />
<br />
그의 식민지 정책은 그의 사후 4년 후인 1974년 카네이션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br />
<br />
74년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스피놀라는 정부의 식민지 정책에 비판적인 건의를 하였으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집권층에서는 그를 해임하고, 이에 반발한 초급 장교들은 식민지 탄압에 반대하고 부패한 정부에 반대한다는 기치하에 "청년 장교 동지회"를 결성하고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 민요 Grandola를 라디오에서 방송하는 것을 신호로 쿠데타를 일으킨다.<br />
<br />
쿠데타 직후 정부에서는 즉각 진압에 나서려 하였으나, 전 국민들의 열렬한 쿠데타 지지로 진압에 실패하여 살라자르의 후계자였던 아메리코 로드리게스 대통령은 해임된 스피놀라 참모총장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하야한다.<br />
<br />
이후 혁명정부는 언론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정치범들을 대거 사면하였으며 해외로 망명하였던 좌익계 인사들을 귀국시켜 민주정치의 토대를 닦게 한다.<br />
<br />
1975년 제헌의회가 성립하자 청년 장교 동지회는 모든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면서 카네이션 혁명은 마무리 된다.<br />
<br />
카네이션 혁명은 당시 쿠데타군을 지지한 시민들이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아 지지를 표명함으로서 훗날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4/30/23/c0043223_48184dc2dac3d.jpg" width="422" height="59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4/30/23/c0043223_48184dc2dac3d.jpg');" /></div>			 ]]> 
		</description>

		<comments>http://brainstem.egloos.com/4326966#comments</comments>
		<pubDate>Wed, 30 Apr 2008 10:44:17 GMT</pubDate>
		<dc:creator>브레인스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스페인 인민전선정부의 내분 ]]> </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4326805</link>
		<guid>http://brainstem.egloos.com/4326805</guid>
		<description>
			<![CDATA[ 
  <span style="FONT-SIZE: 100%">1931년에 왕정을 타도하고 수립된 스페인 제2공화국의 대통령과 총리들은 대체로 온건한 성품에 좌, 우 양파의 화해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이었습니다. 마누엘 아사냐 이디아스 대통령, 카나레스 키로자 총리가 그랬고 라르고 카발레로 총리는 중도우파로부터도 지지를 받았습니다. 1936년 2월 총선에서 대승한 좌파 인민전선(사회당, 공산당, 급진사회당 등 좌파3당으로 구성)도 처음에는 내부 통합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스탈린이 보낸 스페인 주재 OGPU, NKVD 책임자 알렉산드르 오를로프는 레닌주의자 및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숙청하라는 지령을 받고 점차 공산당 내부에 손을 뻗쳐들어갔습니다.<br><br>1937년초, 스페인주재 소련대사 로젠베르크는 카발레로 총리에게 중도파 성향의 각료 몇명을 내각에서 축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들 중도파는 인민전선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었고 카발레로는 당연히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때 마침 공산당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사회당을 흡수하려한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오를로프와 로젠베르크는 스페인 공산당의 간부회의에 참석해 카발레로를 총리직에서 축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공산당 서기장 호세 디아스와 공산당원 출신 교육부장관 헤수스 헤르난데스는 오를로프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대부분의 공산당 간부들은 소련 기관원들의 위세에 눌려 카발레로 불신임안 제출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민전선의 중핵인 공산당의 지지를 잃게 된 카발레로는 스스로 사임했습니다. 후임자 프앙 네그린은 중도성향이었으나 소련의 압력에 저항할만한 배짱이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소련의 지시를 받은 공산당에 의해 총리로 추천되었습니다. 네그린은 카발레로처럼 정당 간 역학관계를 조정, 통합하려는 어려운 시도 따위는 하지도 않았습니다.<br><br>하지만 불길은 엉뚱한 곳에서 치솟았습니다. 인민전선정부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공화파 군대의 중핵을 이루던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과 무정부주의자들이 점차 소련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는 공산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멕시코에 팔팔하게 살아있는 레온 트로츠키를 추종했으며 1936년에 총살된 지노비에프, 카메네프에게 동정적이었습니다. 1937년 4월 25일 공산당의 주요 지도자 롤란 코르타다가 피살되었습니다. 소련측 오를로프는 이를 POUM과 무정부주의자들의 짓으로 몰아붙였습니다. POUM과 공산당은 각자 민병대, 암살단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내 스페인판 '피의 숙청'이 벌어졌습니다. NKVD는 POUM의 지도자 안드레스 닌 제1서기가 프랑코측과 내통하고 있다는 허위문서와 위조지폐를 만들어내 그를 프랑코의 스파이로 꾸며냈고 그 선전은 먹혀들어갔습니다.<br><br>1937년 6월 14일 POUM과 무정부주의자 그룹의 주요 멤버들은 일거에 체포되어 마드리드의 OGPU, NKVD 고문실로 끌려갔습니다. 사회당, 공산당 간부들은 그래도 스탈린처럼 머리가 돌아가지는 않아서 이들의 숙청을 반대하고 롤란 코르타다의 암살에 대한 심층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프앙 네그린 총리는 정부각료 전원의 이름으로 안드레스 닌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소련측 인사들에 의해 간단하게 거부되었습니다. 닌은 고문에 굴하지 않았고 내통의 누명을 끝까지 부인했습니다. 결국 그는 엘 파르도 궁전의 정원에서 오를로프에 의해 처형됐습니다. 그리고 1937, 38년 2년간 POUM과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체포와 숙청의 광풍이 몰아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여기에는 외국인 무정부주의자들도 특히 많았는데 트로츠키의 비서관 에르빈 볼프, 오스트리아 사회주의자 쿠르트 란다우, 영국인 통신원 밥 스마일리, 존스홉킨스대학 강사 호세 로블레스 등이 있었습니다. 조지 오웰과 빌리 브란트는 목숨을 건졌고 이때의 경험 덕분에 스탈린에게 엄청난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br><br>한편 스탈린은 POUM 및 무정부주의자 숙청이 끝나자 이 숙청에 관련된 하수인들을 제거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공화파 군대와 국제여단에 무기를 공급하던 에이벤 코노발레크는 1938년 5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피살되었으며 루돌프 클레멘트는 세느강에 머리없는 시체로 떠올랐습니다. OGPU 서유럽 담당국장 월터 크리비츠스키는 1938년부터 그 자리를 스스로 떠나 도망다니다 1941년 2월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피살됐습니다. OGPU, NKVD 기관원이 아닌 소련 외교관들도 소련으로 귀환 후 대거 처형됐습니다. 스페인주재대사 로젠베르크, 바르셀로나 총영사 안드레이 오프센코, 스페인의 코민테른 선전책임자 윌리 뮌첸베르크와 오토 카츠, 프라우다의 스페인 특파원 미하일 콜트초프 등이 그들이었습니다. 정작 POUM 학살을 주도한 오를로프는 해외주재 소련기관원을 통해 스탈린에게 "나를 죽이면 소련측이 스페인에서 저지른 갖은 비행은 모두 책으로 출판되어 전세계에 퍼질 것이다"라고 협박했습니다. 이 협박은 그대로 통해서 스탈린은 살아있는 동안 오를로프에게 손을 대지 못했고, 그는 스탈린 사후에 스페인에서 자신과 소련기관이 저지른 일을 책으로 낼수 있었습니다. 오를로프의 회고록은 다큐멘터리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 제작에도 반영됐습니다. </span><br/><br/>tag : <a href="/tag/스페인" rel="tag">스페인</a>,&nbsp;<a href="/tag/스페인내전" rel="tag">스페인내전</a>,&nbsp;<a href="/tag/인민전선" rel="tag">인민전선</a>,&nbsp;<a href="/tag/랜드앤프리덤" rel="tag">랜드앤프리덤</a>			 ]]> 
		</description>
		<category>스페인</category>
		<category>스페인내전</category>
		<category>인민전선</category>
		<category>랜드앤프리덤</category>

		<comments>http://brainstem.egloos.com/4326805#comments</comments>
		<pubDate>Wed, 30 Apr 2008 09:11:12 GMT</pubDate>
		<dc:creator>브레인스템</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에스파냐 내전, 스페인 내전 ]]> </title>
		<link>http://brainstem.egloos.com/3014607</link>
		<guid>http://brainstem.egloos.com/3014607</guid>
		<description>
			<![CDATA[ 
  <div class="p06"><div class="bb01"></div></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4.egloos.com/pds/200701/24/23/c0043223_01013354.jpg" width="488" height="30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4.egloos.com/pds/200701/24/23/c0043223_01013354.jpg');" /></div><br><div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21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LINE-HEIGHT: 18px; PADDING-TOP: 5px"><div class="p13"><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1936년 7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에스파냐에서 인민전선정부에 대하여 군부와 우익의 여러 세력이 일으킨 내전. </div><br><b>내전의 발생</b><a name="0"></a>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1936년 2월 16일 에스파냐에서는 총선거의 결과, 공화주의자·사회당·공산당의 협력에 의한 인민전선이 우익인 국민전선에 대하여 승리를 얻고, 19일 공화주의자가 중심이 되어 M. 아사냐를 수반으로 하는 인민전선정부를 수립했다. 이것은 1931년의 제2공화정 성립 이후 격심해졌던 국내의 정치적 대립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인민전선 정부는 1934년 10월의 반(反)파시스트 정부 봉기에서의 정치범 석방과 농지개혁, 가톨릭교회의 특권 축소 등의 과제를 안고 있었으며, 대중은 철저한 사회변혁을 바라고 있었다. 특히 에스파냐에서 강력하였던 아나키스트계의 노동자·농민은, 인민전선정부의 의향을 뛰어넘어 혁명화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자유주의적인 중간층이나 사회당·공산당의 지도하에 있는 노동자 등은 인민전선 정부에 협력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대자본·지주·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우익의 여러 세력은 군대를 중심으로 해서 은밀히 정부타도의 계획을 추진하였다. 음모는 F.P.H.T. 프랑코 등 몇 사람의 장군을 지도자로 해서 추진되어 갔다. 1936년 7월 17일 모로코에서의 주둔군 봉기를 계기로 다음날 18일 군부가 에스파냐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프랑코는 카나리아제도에서 쿠데타 선언을 방송하였다. 반란은 단기 결말을 노린 쿠데타로 시작되었으나, 노동자의 저항 등 인민전선 정부측의 반격에 부닥쳐, 쿠데타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프랑코의 지휘하에 모로코에 거점을 확보한 반란군은 독일·이탈리아의 원조를 받아 본토에 상륙하였고, 그 후 장기적인 내전에 들어갔다. </div><br><b>내전의 국제화</b><a name="1"></a>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군부의 반란에 재빨리 대처한 이들은 노동자들이었다. 에스파냐의 양대 노동조합인 노동전국연합(CNT:아나키스트계)과 노동총동맹(UGT；사회당계)은 무기를 노동자에게 분배할 것을 요구하고, 마드리드·바르셀로나에서는 노동자와 시민이 무기고와 총포점을 습격하여 무기를 입수하고 반란군과 싸웠다. 1936년 7월 19일 J. 히랄이 새로이 공화제파(共和諸派)에 의한 정부를 조직하고, 노동자단체를 무장시킬 것을 결정하였다. 군부의 봉기는 같은 달 20일까지 에스파냐 본토에서는 카디스와 세비야를 제외하고는 거의 진압되었다. 모로코에서는 반란군이 거점을 쌓았지만, 해군의 대부분이 반란군에 협력하지 않았으므로 모로코로부터 본토로 군대를 수송할 수 없었다. 반란군을 총지휘할 예정이던 산흐르호 장군은 사망하고 다른 유력한 지도자는 체포되었기 때문에, 모로코에서 봉기에 성공한 프랑코 장군이 반란군의 지휘권을 장악하였다. 프랑코는 독일과 이탈리아에 원조를 요청하여 독일과 이탈리아의 비행기가 모로코로 보내졌다. 이 양국의 개입 규모는 확대되면서 내전을 장기화되었다. 독일이 프랑코측에 제공한 경제원조는 약 5억 4000만 마르크로 추정되며, 에스파냐에 보낸 병력은 약 1만이었다. 이탈리아는 독일의 2배인 약 68억 리라의 경제원조를 주었고, 보낸 병력은 약 7만 2000이었다. 또 A.O. 사라자르 독재하의 포르투갈은 프랑코측을 지지하고, 국토를 독일·이탈리아군의 통로와 군수품의 수송로로서 제공하였다. 그리하여 군대의 쿠데타로 시작된 것이 단시일 내에 내전으로, 또한 국제적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div><br><b>초기의 전국과 영국·프랑스·소련의 대응</b><a name="2"></a>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1936년 8월 모로코에서 본토로 상륙한 프랑코군은 북상하여 마드리드를 향하였고 또 북쪽의 레온·갈리시아 지방을 제압하여, 같은 해 9월 말에는 마드리드를 거의 반원형으로 포위하였다. 그리하여 에스파냐 본토는 공화국정부에 남겨진 지역과 반란군(내셔널리스트라고 자칭)에 점령된 지역으로 양분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영국·프랑스 양국 정부는 공화국이나 내셔널리스트의 어느 쪽도 원조하지 않는다는 ＜불간섭＞원칙을 제창하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브름이 인민전선정부의 총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으며, 그는 에스파냐의 공화국측을 원조할 방침이었으나, 영국의 압력과 국내의 우익이 위협하는 바람에 굴복, 불간섭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불간섭정책은 유럽 여러 나라에 받아들여져 불간섭협정이 성립되었다. 이 협정은, 합법정부로서의 공화국정부가 무기를 구입할 권리를 빼앗는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 공화국측에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독일·이탈리아의 무력개입은 계속되었고, 소련은 이에 대항하여 1936년 10월 말 공화국측에 전차·비행기·대포 등을 보냈다. 소련에서 보낸 인원은 약 2000명 정도로서, 대부분은 기술적인 부문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멕시코의 카르데나스정권도 에스파냐공화국에게 무기를 보냈다. 미국은 에스파냐내전에 대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석유자본은 프랑코에 대한 석유 공급을 계속하고 있었다. </div><br><b>공화국측의 내부사정</b><a name="3"></a>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공화국측에서는 시민들이 마드리드를 비롯한 많은 도시에서, 프랑코측에 호의적인 사람들을 체포하고 또 교회를 불태우기도 하였다. 귀족과 부호들은 프랑코군 점령지역으로 달아났다. 경영자나 지주가 도망한 기업이나 토지는 인민전선 정당들의 대표에 의해서 관리되었고, 궁전이나 대저택은 노동자조직의 시설로 이용되었다. 제2공화국의 과제였던 토지개혁은 여기에서 그 실현의 기회를 맞이하였고, 프랑코군측으로 달아난 지주의 토지이용을 농민들에게 허락하였다. 아라곤 지방에서는 아나키스트에 의한 농업의 집산주의화(集産主義化)가 개시되었다. 집산주의란, 작은 촌락이나 공동체를 단위로 하는 협동조합과 비슷한 조직으로 공동작업이나 소비의 배분을 하는 것으로서, 그 규모나 형태는 똑같지 않았다. 카탈루냐에서는 공장의 대부분이 노동조합에 수용되었고, 자산가·경영자 등은 도망하거나 투옥되었고, 더러는 처형되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공화국측 내부사정은 내전 전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변화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노동자가 부분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것이 중요하다. 히랄을 중심으로 하는 공화국정부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로 이루어졌고, 이전부터의 국가기구를 장악했으며, 사회당·공산당은 이것을 각외(閣外)에서 지지하고 있었다. 군부에서도 일부가 합법적인 공화국정부에 충성을 맹세하였다. 또, 카탈루냐에서는 자치정부의 대통령 L. 콤파니스가 아나키스트를 포함하는 민병위원회나 경제평의회를 설치하여 노동자에 의한 군사와 경제의 관리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는 정부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사회혁명에 일어선 것이었다. 아나키스트가 강한 지역에서는 상류계급이나 교회에 속하는 자에 대한 테러리즘이 통제도 없이 자행되는 등, 반란군에 대한 전투에는 불필요한 행동이 많았지만, 정부는 이것을 단속할 힘을 가지지 못하였다. 아나키스트의 조직이었던 이베리아 아나키스트연합(FAI)이나, 그 산하의 노동조합인 노동전국연합(CNT)은 인민전선협정에는 참가하지 않았으며, 프랑코 등의 반란에 대하여 인민전선정부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혁명의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반프랑코 투쟁에 나섰던 것이다. 인민전선정부를 옹호하고 공화국의 질서를 확립한다는 전제에서 좌익세력들의 통일을 주장한 것은 공산당이었다. 1936년 9월 4일 히랄내각은 퇴진하고 노동자의 신망을 얻은 F. 라르고 카바예로가 내각을 조직하였다. 그는 사회당·공산당 등도 입각시켰고, 또 11월에는 아나키스트를 입각시켰다. 공산당원이 부르주아지와의 연립내각에 들어가고, 또한 아나키스트가 정부기관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입각하였다. 이것은 아나키스트의 성급한 혁명주의를 억누르고 아나키스트의 민병을 흡수하여 일원적인 정부군으로 개조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아나키스트측은 무기를 입수할 수단으로서 입각하였다. 공산당은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얻는 채널이 되었으며, 내전 개시 후 그 세력을 두드러지게 신장시켰다. 공산당은 흩어진 민병조직을 정규군으로 전환하고, 지휘계통을 일원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div><br><b>내전의 실태</b><a name="4"></a>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에스파냐내전의 특징은 처형과 보복살인의 횡행이었다. 좌익의 테러리즘이 자연발생적이었고 격정적으로 이루어진 데 비하여 반란군측에 의한 테러는 조직적·계획적이고, 또 대량이었다. 전장에서의 전사자수는 10만∼15만으로 추산되지만, 처형 또는 보복살인은 공화국측에서는 약 2만, 반란군측에서는 내전후의 처형을 포함하여 약 30만∼40만 가량의 처형 또는 대량살인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반란군측에 의해 살해된 사람 중에는 시인 F. 가르시아 로르카가 있었다. 그는 공화국측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것이다. 철학자 M. 우나무노는 반란군의 반지성주의와 야만적인 행위를 비판했으므로 반란군에 의하여 연금되었다가 곧 죽었다. 외국의 신문기자도 반란군의 점령지역에서 추방되어 군에 의한 테러를 보도할 수가 없었다. 또 인민전선측, 특히 아나키스트의 교회 방화나 성직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해는 온건한 민중을 이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div><br><b>프랑코 체제의 형성</b><a name="5"></a>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원래 프랑코군은 대중운동으로서의 기초가 결여되어 있었으므로, 카를로스당이나 팔랑헤당 등의 재야 우익단체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코는 내전의 과정에서 내셔널리스트측의 지도적 지위를 획득하고, 1936년 10월 스스로 ＜통령(統領)＞을 자칭하고, 팔랑헤당으로부터 그 대중용 이데올로기를 차용하여, 이 당을 테러부대로 이용하였다. 팔랑헤당의 지도자 M. 프리모 데 리베라는 1936년 3월에 인민전선측에 체포되어 같은 해 11월 처형되었다. 그 후 팔랑헤당에는 다른 지도자를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프랑코는 팔랑헤당과 카를로스당을 흡수하여 자기 지배하의 정당으로 조직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1937년 4월 내셔널리스트파의 모든 당파를 합동하여 ＜전통주의자(카를로스당)와 JONS의 에스파냐 팔랑헤＞라는 신정당을 결성하였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팔랑헤당＞으로 알려져 있지만, 호세 안토니오가 창립한 것과는 조직적으로 달랐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1936년 11월, 프랑코정권을 에스파냐의 정통정부로 승인하였다. </div><br><b>마드리드 방위전</b><a name="6"></a>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에스파냐내전의 특색으로 국제의용군의 활동을 들 수 있다. 1936년 10월 프랑코군은 마드리드시 교외까지 육박하여, 11월 6일에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E. 헤밍웨이·A. 말로·G. 오웰 등의 작가가 에스파냐에 간 것은 유명한데, 그 밖에도 이 무렵 영국·프랑스·미국 등 많은 나라의 지식인과 노동자, 또 독일·이탈리아로부터 망명자들이 공화국의 방위에 감격과 동정을 보내고 에스파냐에 모여 무명의 병사로서 총을 들었다. 그들은 국제여단으로 조직되어 마드리드의 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 국제의용병을 조직적으로 에스파냐에 보내는 데 힘쓴 것은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당시의 공산주의자 국제조직)이었다. 이들 의용병의 숫자는 3만∼4만으로 추산된다. 공화국정부는 마드리드에서 발렌시아로 옮겼는데, 마드리드는 그 후 2년 반 정도 유지되었다. ＜노파사란(놈들을 통과시키지 말라)＞이 마드리드시민의 구호였다. 마드리드시의 공방전이 장기화되는 동안에 내전의 국면은 점차 공화국의 패색이 짙은 쪽으로 기울었다. 프랑코군에 대한 독일·이탈리아의 무력원조와 영국·프랑스의 불간섭정책이라는 상황하에서는 공화국측이 압도적으로 불리하였다. </div><br><b>게르니카 폭격</b><a name="7"></a>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에스파냐내전은 일면으로는 중앙집권에 대한 지역자치의 투쟁이기도 하였다. 내전 개시 후 곧 바스크 지방은 자치정부를 만들었고, 보수적인 가톨릭교도도 공화국을 지지하고 있었다. 1937년 4월 제공권을 장악한 독일공군의 콘돌병단은 바스크 지방의 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하였다. 화가 P. 피카소는 게르니카 폭격에 분개하여 명작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 이후 바스크 지방을 제압한 프랑코군은 바스크의 자치를 빼앗고 바스크어를 금지시켰다. 가톨릭교도도 공화국을 지지하는 한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이 게르니카 폭격과 바스크탄압으로 프랑코는 국제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div><br><b>공화국의 패배</b><a name="8"></a>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내전 동안 프랑코측이 통일을 유지하였음에 비하여 공화국측은 구성요소가 점차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에스파냐 공산당의 세력 신장은 동시에 당시의 I. 스탈린적인 정치지도의 과오를 에스파냐에도 받아들이게 하였다. 소련에서의 ＜숙청＞이 에스파냐에서도 실시되어, 반프랑코 세력의 내부에 치명적인 분열을 일으켰다. 1937년 5월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가전에서 공산당은 아나키스트 및 반스탈린적 마르크스주의자를 일소하였다. 공화국측은 정치적 위기가 계속되고, 카바예로 내각을 대신한 네그린내각 또한 이미 기운 대세를 만회시키지는 못하였다. 1939년 1월 바르셀로나는 함락되고, 3월에는 마드리드도 함락되어, 내전은 프랑코의 승리로 돌아갔다. </div><br><b>내전의 총괄</b><a name="9"></a>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에스파냐내전은 에스파냐 역사상 19세기의 카를리스타전쟁에 이은 최대규모의 내전이었다. 왕당파·교회·군부·지주 등에게 내전은 제2공화정을 타도하고, 전통적 에스파냐를 재흥하기 위한 ＜십자군＞이었다. 그리고 에스파냐의 자본주의는 이러한 전통적 세력의 지지를 받고 노동운동을 진압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공화파 부르주아지로서는 제2공화정의 과제가 프랑스혁명을 에스파냐에 실현시키는 일이었다. 또 사회당이나 아나키스트의 노동운동에서는 러시아혁명의 임무를 다하는 것, 즉 자본주의사회의 타도가 목표였다. 이 두 혁명의 과제가 동시에 제시되었다는 것은 당시 에스파냐 사회 구조의 복잡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더욱이 파시즘 제국의 대두라는 유럽 정세의 변화가 에스파냐 국내의 대립을 자극하고, 또 에스파냐 내부의 움직임이 국제대립을 격화시켰던 것이다. 당시 유럽의 국제대립은 정치 이데올로기상의 대립과도 연관되어, 에스파냐는 이데올로기의 싸움터이기도 하였다. </div></div></div><br/><br/>tag : <a href="/tag/에스파냐내전" rel="tag">에스파냐내전</a>,&nbsp;<a href="/tag/스페인내전" rel="tag">스페인내전</a>,&nbsp;<a href="/tag/인민전선" rel="tag">인민전선</a>,&nbsp;<a href="/tag/프랑코" rel="tag">프랑코</a>,&nbsp;<a href="/tag/공화국정부" rel="tag">공화국정부</a>,&nbsp;<a href="/tag/국민전선" rel="tag">국민전선</a>,&nbsp;<a href="/tag/프랑코정권" rel="tag">프랑코정권</a>,&nbsp;<a href="/tag/왕당파" rel="tag">왕당파</a>			 ]]> 
		</description>
		<category>에스파냐내전</category>
		<category>스페인내전</category>
		<category>인민전선</category>
		<category>프랑코</category>
		<category>공화국정부</category>
		<category>국민전선</category>
		<category>프랑코정권</category>
		<category>왕당파</category>

		<comments>http://brainstem.egloos.com/3014607#comments</comments>
		<pubDate>Tue, 23 Jan 2007 16:11:01 GMT</pubDate>
		<dc:creator>브레인스템</dc:creator>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