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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Jerohm</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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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묻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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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Nov 2009 12:16:1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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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Jerohm</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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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1121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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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1/21/20/c0075320_4b07d886e0809.jpg" width="400" height="3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1/21/20/c0075320_4b07d886e0809.jpg');" /></div><br>지난 수요일 마음이 답답하여 혼자 산에 올라갔다. 흐느적거리는 몸을 끌고 정상까지 닿긴 오랜만이라 무언가 다른 것이 보일까 싶어, 다른 것에 기댈까 싶었다. 기약없는 희망은 항상 헛된 법이라, 어느새 아무 생각없이 걷게 되었다 - 그렇게 된 듯 싶다. 이어폰을 귀에 꽂지 않았다. 많은 소리들이 들렸다. 숲에서 꿩이 뒤뚱거리며 몸을 숨겼고, 청솔모는 나무 사이를 투닥거리며 오르내렸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짐승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근 한 시간을 걸어 도착한 정상에서 맞는 햇빛이 더이상 뜨겁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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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사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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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Nov 2009 12:16:19 GMT</pubDate>
		<dc:creator>Jerohm</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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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대자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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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은 지난 달 26일 "아프간 재건을 위해 최소한 130명 정도의 민간 전문요원을 파견해 운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달 17일에는 한 국방부 관계자가 "희생자발생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정상적인 치안유지를 위해서는 2000명 이상의 병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마 다음 달 초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온 국민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주해야 한다고&nbsp;'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주장할 것이다.<br><br>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이미 알려졌다시피 온 국민이 옮겨갈 만큼 좋은 것은 아니고, 2000명을 파병할 만큼 좋은 것도 아니고, 자신이 파병되기를 원하는 홍준표를 위시한 몇몇 정치인들을 보낼 만큼만 좋은 것이다. 파병 유력후보지인 파르완주가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수도 카불보다 안전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뒤집어본다면, 그리 안전하지 않다고 이미 실토했음을 알 수 있다.&nbsp;정부의 입장이란 이런 것이다&nbsp;ㅡ 이명박은 불테리어보다 잘생겼다. 중동지역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씽크탱크 ICOS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이 아프간 전체 영토의 80% 이상을 장악"했으며 특히 파르완주는 탈레반이 "평균 1주일에 1번 이상 공격"하는 지역이라고 평가했다.<br><br>한국은 2007년에 아프간에서 피살된 2명을 제외한 샘물교회 인질 21명을 두고 협상을 벌여 병력을 철수시킨 경험이 있다.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은 "샘물교회 인질 사건은 정부가 이미 내부적으로 철수를 결정한 뒤 터졌다"고&nbsp;변명 - 이라크에 파병하기 위해 아프간에서 철군했다는 이유와 함께 - 했지만, 이미 김성환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국정감사에서 "탈레반 압력에 굴복해 철군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비장한 스파르타 전사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이제 우리 또한&nbsp;수도 서울을 봉헌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nbsp;경국대전을 옹호하던 이명박 대통령의 바로 그 말을&nbsp;되뇌이면서, 비장한&nbsp;조선군의 모습을 재현하여야 한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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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작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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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1 Nov 2009 00:29:02 GMT</pubDate>
		<dc:creator>Jerohm</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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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정장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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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이런저런 면접을 보러다니다 보니 정장을 입게 된다. 결혼식 때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 정장을 입고 온 친구들 옆에 서서&nbsp;또 한 명의 친구가 되려면 정장을 입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 구입했던 - 그러나&nbsp;처음 참석한&nbsp;결혼식에서는 나만 정장을 입었다 - , 내가 가진 단 한 벌의 정장을 이제 면접관과 어울리기 위해, 아니 면접관이 원하는 '인재상'과 어울리기 위해 입어야 한다. 참 다양한 듯하던 인재상들, 그러나 꼭 정장을 입어야 하는 인재상들. 수많은 인재들의 지향과 포부 사이에는 항상 성실과 긍정이 붙는다, 마치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안내원 뒤를 총총이 따르는 정장들처럼. 안내원에는 정장이 따라붙고 정장에는 인재상들이 따라붙고 인재상들에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따라붙고. 남색에 가는 핑크색 선이 그어진 넥타이를 목에 매는 동안 몇 번이고 고쳐 매었는지 - 당연히 익숙하지 않으니까 -&nbsp;면접관들은 알고 있을까. 넥타이를 고치면서 조금이라도 성실이, 내 것이 아닌 성실이&nbsp;비죽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 말이다. 애초에 따라붙을 마음은 전연 없었는데 이제는 목에다 개줄을 달아줘도 짖어줄 수 있을 지경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로.<br><br>어쨌든 옷을 차려 입는다는 것이&nbsp;사람을 요상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머리에 왁스를 덕지덕지 바르고 구두 소리를 내면서 지하철을 타고 자동문 앞에 서서 비치는 내 모습을 잠깐 흘겨보면, 나는 지금껏 내게서 볼 수 없었던&nbsp;어른스러운 - 긍정적인 말들 중에서 어른스러운이라는 말이 그나마 어울린다, 중의적이기도 하고. 나머지 말들은 발랑 까졌다 혹은 허영에 가득 찼다 정도? - 모습에 깜짝 놀란다. 정말 창에 비치는 저 모습으로 '살게' 될 것 같은 예감. 아니, 정장을 입은 즉시 이미 나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자기자신의&nbsp;장례식의 문상객들을&nbsp;싣고 달리는 지하철과 버스들은 영원히 순환하는 목적지들을 방송한다. 삶은 차려입는 즉시 예정된 목적지로,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이번 역은 까치산 역입니다. 다음 역은... 유행은 죽음을 조롱하지만 정장은&nbsp;원버튼 투버튼 쓰리버튼으로 발악한다, 아니 순환한다.<br><br>아, 이러면 안돼, 긍정적인 마인드로.</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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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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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5 Nov 2009 05:30:58 GMT</pubDate>
		<dc:creator>Jerohm</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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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1022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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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부산에서 만난 Y라는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알고 지내다가 대학 올라갈 즈음에 주변 친구들의 연애 사건에 얽히는 바람에&nbsp;사이가 틀어졌었는데, 다시 부산에서 굴러먹다보니&nbsp;어쩔 수 없이 얼굴을 다시 보게 된 사이이다. 정말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이&nbsp;어울릴 수밖에&nbsp;없는 것이,&nbsp;내 또다른&nbsp;친구와 Y 그리고 나 모두 한 동네에 살아서&nbsp;맥주 한 잔 하자&nbsp;싶어 부를 수 있는 사람이&nbsp;이 셋 안에서만 맴돌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안 사실이지만&nbsp;친구들의 연애다툼 중에&nbsp;내가 Y에게 보여줬던 말과&nbsp;행동들이&nbsp;Y의 연애관 혹은 남성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모양이어서, Y는 나를 좋은 친구라기보다는&nbsp;'변태김군'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는&nbsp;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없다.<br><br>어쨌든 Y는 대학을 졸업하고 여지껏 취업 준비는&nbsp;하고 있지 않았다. 취업을 못해서일수도 있지만 별로 취업 자체에 대해 흥미가 없어 보였다. 그냥 이런저런 알바를 하면서 용돈 정도를 버는 모양이고, 친구를 만나거나 동네 아기를 돌보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어디든 휘적휘적 걸어다니면서 시간을 때우는 것 같다. 연애는 지금껏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고,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열의는 드러내지만 실상 노력은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습관적으로&nbsp;연애, 연애 할 뿐이고, 자신이 지금껏 연애 못한 천연기념물이건 뭐건 신경쓰지 않는다. 영어 학원에 다니긴 하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또 어이없어서, 자기 옆에 앉는 남자애가 섬세하면서도 허벅지가 굵어보이기 때문이란다 - Y의 노력이란 딱 이 수준이다 - . 잘생겼다는 이유로 이명박을 찍었고, 부산 사람은 당연히 한나라당을 찍을 수밖에 없다고 쉽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관심은 없다. Y의 관심은 어머니와 자기 동생, 그리고 자기 자신 이렇게 셋이서만 사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br><br>이 세계에는 정말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지나가다간 한 평생을 훌쩍 써도 부족할 지경이라,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응응 고개만 주억거리면서 악수하고 지나가기에도 벅차다. 그래서 마음맞는 친구들 몇몇을 고르고 손에 꼽아보고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곁에 있었던 것인양 지켜보고 또 기대한다. 아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보다&nbsp;조금이라도 오래 알았던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래도 무언가 좀 더 편하고 쉬울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본 사람이 그래도 무언가 나을 것이라는 희망. 또다른 세계가 마치 자신이 품고 있는 우주 속에 가만히 돌고 있는 별인양, 자기만 쳐다볼 수 있는 별인양.<br><br>나는 어느샌가&nbsp;그릇된 - 타인의 삶이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향하기를 원한다는 의미에서 그릇된 - 소망을 버리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nbsp;부분적으로&nbsp;앞서 말한 Y의 덕분이기도 하다. 진부하지만 진지하게만 보이는 타협과 저항, 우습지만 절대 웃어서는 안 되는 절망과 분노의 세계관을 벗어나서도 살아갈 수 있고 또 살아가는, 그럼에도 비난할 수 없는 사람들 중에 Y가 있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Y를 통해 보았다. 어찌어찌 살아야겠다는 식의 부질없는 각오가 전연 없어도 누구보다 쉽게 삶을 놀리고 있는 Y를 보면서&nbsp;너무 진지했고 너무 재미없었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이제 치열한 내적 고민이니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니 하는 식으로 포장된 자아분열을&nbsp;성장이라 부르지 않는다. 속절없이 스러졌던 당위들, 아예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nbsp;Y처럼, 아예 그런 것들이 삶의 부분으로 기어들어오지 않았으면.<br><br>나는 모순으로 가득찼음에 분명한 이 세계가&nbsp;어찌어찌 돌아가는 이유를&nbsp;지금껏 알지 못했다고 이제서야 고백한다. 그러나 분명 망하지 않는&nbsp;무슨 이유가 있다고 또한 믿게 되었다. 과학에서 신학으로 옮겨가기란 이렇게 한 순간이니,&nbsp;삶은 자기도 모르게 훅 가는 것.&nbsp;룸펜이건 잉여건 벌레건 해충이건간에 수많은 다른 세계를 보기란, 만지기란, 건너가기란 불가능하다.&nbsp;전제에만 두던 비관을 결론에다 옮겨두고, 이제는 자야할 때.&nbsp;잠드는 자는 더이상 말을 꺼내지 않는 법이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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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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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2 Oct 2009 17:28:27 GMT</pubDate>
		<dc:creator>Jerohm</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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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1017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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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지난 토요일에&nbsp;근 일주일만에&nbsp;애인님과 함께&nbsp;장산에 갔다. 등산을 핑계로 오랜만에 데이트를 한 셈이다. 평소에&nbsp;같이 산행 갔던&nbsp;친구는 시험을 맞아 불어닥친 과외 보충에 번번이 펑크를 냈고, 나는 이런저런 취업 준비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 평일에는 따로 갈&nbsp;엄두를 내지 못했다.&nbsp;어쨌든&nbsp;갈수록 산 오르는 것이 수월해지고, 등산화도 처음보다 덜 뻑뻑해진 것 같아 여러모로 기분이 좋았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19/20/c0075320_4adbcaafae9a6.jpg" width="400" height="3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19/20/c0075320_4adbcaafae9a6.jpg');" /></div><br>정상에 올라서&nbsp;바라 본 해운대 신시가지 부근. 간밤에 비가 많이 와서 공기가 맑을 줄 알았는데&nbsp;덜 걷힌 구름&nbsp;때문인지&nbsp;뿌옇게 흐렸다. 이 날 저녁에 광안리에서 불꽃놀이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진 찍을 포인트를 잡기 위해&nbsp;낮부터 장산 정상에 대기하고 있었다. 산을 내려가는 도중에도 엄청난 크기의 카메라와 삼각대를 둘러맨&nbsp;몇 그룹의 사람들과 마주쳤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7.egloos.com/pds/200910/19/20/c0075320_4adbcb4f45bbc.jpg" width="400" height="3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7.egloos.com/pds/200910/19/20/c0075320_4adbcb4f45bbc.jpg');" /></div><br>정상에서 억새밭으로 가는 길. 이 쪽으로 빠져서 2km 정도 걸으면 억새밭이 나타난다. 난 정상에 있는 저 아담한 억새밭을 더 좋아하고, 이 때는 굳이 신시가지까지 돌아서 내려갈 마음이 생기질 않아서 억새밭 가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19/20/c0075320_4adbce1260e3d.jpg" width="400" height="3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19/20/c0075320_4adbce1260e3d.jpg');" /></div><br>정상에서 잠시 쉬는 중. 애인님도 나와 같이 등산화를 마련했고, 곧 가을용 등산 바지를 마련한다고 한다.&nbsp;이 날 애인님이 떡과 과일을 준비해와서 맛있게 까먹었다. 기념사진이 없는 게 아쉽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19/20/c0075320_4adbce4b238df.jpg" width="400" height="3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19/20/c0075320_4adbce4b238df.jpg');" /></div><br>장산은 '돌산'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어서, 산을 오르내리다보면 두세번은 꼭 이런 돌무더기를 만날 수 있다. 이런 돌무더기 - 무슨 학술적인 이름이 있을 것 같은데 - 는 산세가 비교적 험한 재송동, 반여동 방면에서 올라가면 자주 만날 수 있다 - 신시가지 쪽으로 내려가면서 딱 한 번만 봤기 때문에 이런 느낌이 드는 걸지도 모른다 - . 초등학교 때는 항상 장산 중턱에 있는 이런 돌무더기 근처에서 사생대회를 열어서 그림을 억지로 그렸던 기억이 난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19/20/c0075320_4adbd2fa7dca7.jpg" width="400" height="3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19/20/c0075320_4adbd2fa7dca7.jpg');" /></div><br>산에 내려와서 배도 고프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저녁으로 돼지국밥을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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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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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9 Oct 2009 02:47:20 GMT</pubDate>
		<dc:creator>Jerohm</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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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091011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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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11/20/c0075320_4ad1eea39cb9d.jpg" width="400" height="3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11/20/c0075320_4ad1eea39cb9d.jpg');" /></div><br>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우리집 뒷산에 오르려고 노력중. 산 이름은 장산이다. 해발 634미터로 그리 높진 않지만&nbsp;꽤 산을 타는 맛이 난다. 정상까지 가는데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고 억새밭을 돌아서 해운대 신시가지 쪽 폭포사로&nbsp;내려오는데 두 시간 반이 넘게 걸린다. 한 시간은 줄곧 올라가고 두 시간 반은 줄곧 내려온다. 아예 기장까지&nbsp;돌아가서 내려오는 방법도 있지만 너무 멀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억새밭에서 신시가지로 내려가는 길 도중에 작은 술집이 있어서 국수, 파전, 두부김치&nbsp;그리고 동동주를 먹을 수 있는데, 산에 오르는 또 하나의 쏠쏠한 재미이다.<br><br>처음에는 정상까지 갈 생각도 없이 한 10분 정도 전력으로 체육공원까지 뛰어올라 철봉과 윗몸 일으키기만&nbsp;하고 내려오곤 했다. 그러다 친구와 같이 산에&nbsp;몸풀러 갔다가&nbsp;아예 정상까지 가보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꾸준히 정상에 가고 있다. 처음에는 러닝화를 신고 올랐는데 단단히 마음먹고 등산화와 등산바지까지 구입하였다. 등산용 상의는 아버지 것을 빌려입는다. 지난 주부터는 주말마다 애인님과 같이&nbsp;오른다. 물론 애인님과 나의&nbsp;목적은&nbsp;각자 다르다. 언젠가는 같아질 것이다.<br><br>고등학교 때까지는 정말 산에 많이 갔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 수시에 합격하자마자 줄곧 산에&nbsp;갔다. 모의고사가 있는 날이면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대신&nbsp;김밥&nbsp;두 줄과 물 한 병 음료수 한 병을 사서 산 정상에서 까먹고 해질 때까지 앉아 있다가 허겁지겁 내려오곤 했다.&nbsp;고등학교 2학년 때는 친한 친구 8명이&nbsp;서로에게 쓴 편지를 모아서 장산 정상에 파묻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웠던 짓을 했다 - 분명 영화 '엽기적인 그녀' 때문이었으리라&nbsp;- . 얼마 전에 몇몇이 모여 산에 갔다가 다시 편지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동안 왔던 비 때문에 병이 깨지고 눅눅해져서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한 친구의 연애 편지는 확실히 판독해낼 수 있었다.<br><br>어쨌든 부산에 내려온 이후로 거의 석 달 넘게 산을 꼬박 다녔더니 확실히 몸이 불어나고 체력도 좋아졌다. 처음 산 정상에 오를 때만 해도 폐가 찢어지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장산에 오르는 것 정도는&nbsp;조금 시시할 정도이다 - 오늘은 확실히 그러했다 - . 아직까지 잠이 안 오는 걸 보니 분명 몸에 힘이 남아 있다. 언젠가 애인님이 장산을 무난하게 오르게 되면, 금정산으로 코스를 바꿔 볼 생각이다. 내 궁극의 목적은 네팔의 ABC를 넘어가는 것이다. 언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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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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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1 Oct 2009 15:13:4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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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지역주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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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01&amp;newsid=20091011074205402&amp;p=yonhap">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01&amp;newsid=20091011074205402&amp;p=yonhap</a><br><br>"부산지방경찰청은 9월 한달동안 오물투기, 음주소란, 노상방뇨 등 기초질서 위반행위에 대한 집중단속을 벌여 2만 3천 153건을 적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 3천 755건에 비해 516% 늘어난 것이다." 부산이 1년 새 516%나 더 질서를 지키지 않는 도시가 되었단 말일까? 아무리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임을 감안해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이명박을 지지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지지하는 도시 부산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br><br>난 여기서 지역주의의 정치 원리가 아주 손쉽게 재생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지역주의란 단지 어떤 지역에 대한 우위를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타 지역의 비하만으로도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기사의 반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nbsp;부산을 비하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이명박에게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결과&nbsp;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야한다고 결론지었다는&nbsp;사실이다. 애초에 비난받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부산 사람들이 이명박의 피해자인지 동조자인지를&nbsp;따져야 할 것 같지만, 이러한 일종의 열광과 분노는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이 주어지기를 거부하는 법이다.&nbsp;아마 이 정도의 맥락은 연합뉴스 이종민 기자가 의도했거나 혹은 방치했을 것이다.<br><br>각자의 개인적 경험들이 저 기사가 요구하는 어떤 의식을&nbsp;선취하여 새롭게 재조합된다. 그러니까 각자가&nbsp;거친 운전 습관과 쓰레기 투기, '순결'하지 않은 여성과 군대 경험, 그리고 열광적인 이명박 지지를 경험한 것이&nbsp;저 기사를 통해 표상되는 부산'만'의 후진성의 또다른 근거가 된다. 이제 부산은&nbsp;결코 변명할 수 없는,&nbsp;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nbsp;어떤 나라가 된다. 1년 사이에 기초질서 위반행위가 516%나 늘었다는 사실이 실상&nbsp;경찰들의 건수채우기 단속이 늘었다는 증거임에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 그게 아니라면 정말이지 매력적인 사회학 연구대상임에 분명하다 - , "부산 시민, '기초질서 외면' 는다"는 기사의 제목은 이렇게 반사회적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br><br>나는 지역주의가&nbsp;현실도 아니면서 현실인 것처럼&nbsp;꾸준히 기생할 수 있는&nbsp;이유는&nbsp;그것이 피지배집단의 것도 아니면서 피지배집단의 것처럼&nbsp;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 지역의 비하를 입에 올리는 즉시&nbsp;손쉽게, 아무런 변명을 할 필요도 없이 싸움은 번져나간다. 다른 변명과 근거들은 그 비하를 듣고 다시 말하는 또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준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이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nbsp;그렇다. 지역주의는 모든 사람을 피해자 - 피지배집단이 아니다 - 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피해자의 논리가 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획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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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메모</category>

		<comments>http://bocnal.egloos.com/5138427#comments</comments>
		<pubDate>Sun, 11 Oct 2009 13:39:29 GMT</pubDate>
		<dc:creator>Jerohm</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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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덕헌 님 개인전 AID'S를 보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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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블로그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것 같아 오늘 덕헌 님의 사진전을 보고 짧게 생각한 것들이라도 옮겨놓아 보자. 다른 분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부산에서의 사진 작업 또한&nbsp;서울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힘든데, 시장에 대한 접근성도 그렇고 다른 작가들과의 관계와 소통도 그렇고 감상자를 만나는 기회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부산에서의 작업을 의식적으로 고집하는 덕헌 님의 태도는 그 작업의 결과와 상관없이 우선 인정받아야만 한다. 덕헌 님은 이미 "더우기 문화적 자산이 서울에 몰려 있는 것에 불만이 많았던 내가 지방에서 작업한 것을 서울에서 전시하려고 애쓰는 것이 모순인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 바 있고, 이 말이 단순한 각오 이상을 의미한다는 사실 - 의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 을&nbsp;우리는 알고 있다.<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10/11/20/c0075320_4ad0aaaeb14cc.jpg" width="315" height="40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10/11/20/c0075320_4ad0aaaeb14cc.jpg');" /></div><br><br>그러나 서울과 지방의 분리를 단지 전시라는 결과에 한해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작업 자체의 기저를 또한 의미할 수 있다면, 나는 우선 덕헌 님의 전시회에서 그 '지방성'을 어느 정도&nbsp;목격할 수&nbsp;있으리라 희망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아파트의 철거라는 소재에서 서울과는 구별되는 부산이라는 지방의&nbsp;컨텍스트를 어떻게 구성해 재현해냈는지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덕헌 님의 저 말씀이 작업의 시작과 과정 내내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점철되어 왔음을 볼 수 있겠다고 나는 생각했던 것인데, 정작 전시회에서는 내가 희망한 바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덕헌 님의 말씀은&nbsp;사후적으로 전시회의 절차에만 삽입된 것이었고, 나는 너무 앞질러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나만의 사소한 아쉬움이다.<br><br>문제는, 이것이 내게는 좀 더 심각하게 보였는데, 이번 덕헌 님의 개인전은 다양한 크기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크기마다 각자 다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은 정말이지 특별한 상징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나의 단편적인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 작가의 삶을 정리하는 회고전이 아닌 이상 적어도 하나의 전시회에서 두 개 이상의 이야기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보고, 만약 꼭 하고 싶다고 한다면 두 개 이상의 이야기가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꾸미는 시늉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집중해야 할 장면 한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의 크기를 모두 통일시킨다던지 하는. 단체전이 개인전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란 이렇게 명백한 것인데, 개인전에게 있어서는 말할&nbsp;필요도 없지 않을까.<br><br>이러다 보니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이것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건 작가가 관객에게 던지는 진지한 질문이라기보다는, 그 시간 동안&nbsp;집중하지 못한 관객이&nbsp;스스로에게 계속 집중하도록 설득하는 목소리에 가깝다. 그래서&nbsp;분할출력해서 이어붙인 덕헌 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이어붙인 사진 한 장 한 장이 떨어지고 찢어지는 상상을 하는 데 앞서 약간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스쳐 지나간다. '오래된 아파트를 부순 것은 알겠는데...' 정도의 감상이랄까.<br><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10/11/20/c0075320_4ad0a3ac910a8.jpg" width="400" height="31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10/11/20/c0075320_4ad0a3ac910a8.jpg');" /></div><br><br>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덕헌 님의 전시회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나는 덕헌 님이 이전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아파트를 소재로 한&nbsp;유형학적 사진의 경향을 어느 정도 벗어났으며, 이러한&nbsp;변화가 덕헌 님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nbsp;철저하게 고민하고&nbsp;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파트의 현상적 측면에 머물렀던 지난 전시회와는 달리,&nbsp;철거 시점에 접근하여 이미 익숙한 스펙타클을 재현하지 않았다는 점 그 자체만으로도 그렇다. 결코 밤에 접근할 수 없는 공사판 - 철거는 낮에만 진행된다 - 에서&nbsp;스펙타클을 재현하려 해도 재현할 수조차 없었겠지만 말이다. 스펙타클은 어둠에 있을 때에야 빛나는 법이다.&nbsp;또한 철거되는 공간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미 덕헌 님이 '지방적 특질'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역적 친화'는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하는&nbsp;생각도 드는데, 한 지역에서 오래도록 작업한 결과가&nbsp;이런 특정한 공간에서의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nbsp;할 수 있기&nbsp;때문이다.<br><br>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너무 오랜만에 전시회라는 것을 본 터라 반갑고 또 즐거웠다. "서울은 전시와 문화 행사가 넘쳐난다. 기본적으로 서울에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지방민들까지 다들 서울로, 서울로 하니까 문제가 더 심각한거다." 덕헌 님의 이 말이 '표면적으로는' 지금까지의 내 생활과 너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지만, 사실 전시회를 찾아볼 생각도 안 했으니 - 친구가 말해 준 부산의 대안 전시공간이 어디에 있는 건지 아직 모른다 -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겠다. 덕헌 님은 "더디게 가 볼 생각"이란다. 이 말을 바꾸자면, 나는 더디게 볼 생각이다, 하하.</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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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기</category>

		<comments>http://bocnal.egloos.com/5137587#comments</comments>
		<pubDate>Sat, 10 Oct 2009 15:38:33 GMT</pubDate>
		<dc:creator>Jerohm</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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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고등학교 서클 이야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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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난 고등학생 때 교지편집부에서 서클활동을 했다. 다른 고등학교의 교지편집부도 마찬가지겠지만, 겨울 방학 막바지에만&nbsp;교지편집을 담당했고 그 외의 시간은 문예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서클활동 시간에는 보통 책을 읽거나 시험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운동장에 나가서 축구를 했고, 학교 축제 기간에는 허접한 자작시를 벽에 주렁주렁 걸어놓고 마치 대가의 작품인양 설명하곤 했다.&nbsp;서클 지원 예산을 기장과 총무가 삥땅쳐서 동래 근처 소위 다락방에서 술 마시는 데 썼던 건 예사였다. 고등학교 서클들이 으레 그렇듯이 날로 먹으면서 놀 궁리만 했던 것이다.<br><br>그저께 저녁 때 같이 서클활동을 했던 한 '후배'에게서 얼굴 좀 보자고 연락이 왔다. 술자리에는 나보다 한 기수 작은 후배 두 명과 두 기수 작은 후배 두 명이 있었다. 자리에 가자마자 앉아있던 후배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형님 오셨습니까"라는 인사와 함께 90도로 꾸벅 허리를 굽혔다. 난 내 기억속에 이렇게 인사받은 경우가 이전에 또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니, 6년만에 만나는 거니까 대학교 1학년 때 지금처럼 인사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당황해서 자리에 앉는데 그때부터 후배들은 자리가 끝날 때까지 꾸준히 말을 높였다. 말을 낮추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내 제안은 술안주거리도 되지 않았다.<br><br>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많지 않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등학교 서클 이야기만 듣고 또 한 것 같다. 후배들한테 불리는 내 별명을 까먹고 있다가 다시 상기하게 되었는데, 웃을 수만은 없는 별명이었다. 후배들은 언제부턴가 나를 "빨때기 선배"라고 불렀다. 빨빨거리면서 때기잡는다 - 소위 가오를 잡는다 - 는 뜻인데, 축구할 때는 빨빨거리면서 잘 돌아다니고 후배들을 갈구거나 때리기 직전 - 우리 기수 때는 때린 적은 없었다고 한다,&nbsp;훔치긴 했지만 많이 훔치지는 않았다는&nbsp;식의 위안이&nbsp;필요했다&nbsp;- 까지 분위기를 몰고 갈 때는 때기를 잡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정말 그랬다. 밀대걸레 자루를&nbsp;휘두르는 역할은 하지 않았지만 동기 기장에게 때리라고 자루를 넘겨주는 역할은 잘 했던 것 같다. 이런 위계질서 역할 놀이는 몇 달만 지나도 낯뜨겁고 유치하게 느껴지지만 그 당시에는 이 세상 무엇보다 심각하게 느껴지기&nbsp;마련이다.<br><br>1학년 때의 문예부 생활은 다른 서클에 대한 나의 적의를 키웠다. 축제 때가 되면 힘없이 다른 서클들의 입김에 치이면서 공간이 구석으로 밀려나가곤 하는 모습을 보았고 - 그때 선배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도 놀기를 잘하는 것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문예부라는 곳이 원래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 나는 2학년 때 두고보자는 마음으로 중학교 3학년을 다니는 동네 아이들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덩치가 크고 친구가 많은 애들을 끌어모아서 곧장 문예부에 가입시켰고, 얘네들이 2학년이 되자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얘들은&nbsp;시키지도&nbsp;않았는데 밀대걸레 자루를 뽑아들기 시작했다. 후배 기수에게만 휘두른 것이 아니라 다른 서클에 찾아가서까지 휘둘러서 문예부 예산이나 공간에 대해 시비걸지 말라고 소동을 피웠다고 한다. 내가 원했었던 '힘센 서클'이 이런 모습임을 여태껏 난 알지 못했다.<br><br>이런 이야기들을 술자리에서 들으면서 나는 그들을 '후배'로 대우해주는 것이 그들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편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도착하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굽히는 덩치들의 모습에서 이미 알았어야 한다. 내가 '덩치'는 아니지만 덩치들에게 대접받은 시간을 나보다 덩치들이 잘&nbsp;기억하고 있으니, 새삼 그 기억들을 불쾌한 것으로 바꾸면서까지 술자리를 엉망으로 만들 필요는 없겠다는 것을. 유도가 몇 단이네 한 판 붙어보자 농담하는 0.1톤 '후배'들에게 찌그러져 있으라고 욕지거리 하는 '선배' 역할이 가장 어울리는 시간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내가 시작한 우스꽝스러운 역할 놀이는 내가 끝내고 싶다고 해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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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일기</category>

		<comments>http://bocnal.egloos.com/5126089#comments</comments>
		<pubDate>Mon, 28 Sep 2009 03:44:35 GMT</pubDate>
		<dc:creator>Jerohm</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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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 </title>
		<link>http://bocnal.egloos.com/512295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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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movie.daum.net/play/detail/main.do?playId=12487">http://movie.daum.net/play/detail/main.do?playId=12487</a><br><br>&lt;밤으로의 긴 여로&gt;를 책으로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때마침 명동예술극장에서 개관기념으로&nbsp;공연도 한다. 정말이지 너무 보고 싶은데 운이 안 좋네.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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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기타</category>

		<comments>http://bocnal.egloos.com/5122951#comments</comments>
		<pubDate>Thu, 24 Sep 2009 14:38:18 GMT</pubDate>
		<dc:creator>Jerohm</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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