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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ol+I = Passio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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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똘기'는 다름아닌 '열정'의 다른 이름이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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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Nov 2009 06:52:0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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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ol+I = Passio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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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연애는 게임이다'라는 누군가의 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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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nbsp;<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지난 주 일시적인(?) 연애감정에 휩쓸린 나는 연애에 대한 고급정보를 얻고자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말빨로는 대한민국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nbsp;<span style="COLOR: #ff6666">김태훈씨의 '내일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span>를 빌렸다. 라디오 코너에서 연애상담한 것을 책으로 엮은 그런 책이다. 책의 처음부분에 나오는 것이 연애를 게임으로 파악하는 내용이다.&nbsp;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연애라는 것은 사랑이 그 바탕이 되고 상호간에 좋아하니까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는 게임으로 설명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br><br>&nbsp;&nbsp;&nbsp;&nbsp;하지만 <span style="COLOR: #ff6666">연애가 게임이라면 나는 'loser'</span>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녀의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밀고 당기기에 어김없이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였다. 예외는 없었다. 지난 주 너무 외로웠다. 늦가을에 혼자 사색에 잠겼다. 저기 앉은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나만 홀로 여기 앉아 책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미팅을 나갔더랬다. 그녀를 만났더랬다.&nbsp;지난 주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 자고 일어나니 내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레고르 잠자'가 자고 일어나니 벌레로 변해있었던 것처럼, <span style="COLOR: #ff6666">나는 또 다시 현실주의자로 변해있었다.</span>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와의 인사동 데이트를 위해 지역정보를 수집하고 그녀를 위해 읽어줄 시를 고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br><br>&nbsp;&nbsp;&nbsp;&nbsp;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애초에 나와 완전히 같은 성향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데, 내가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인가. 내가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가. 그래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조급증을 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br><br>&nbsp;&nbsp;&nbsp;&nbsp;하지만 <span style="COLOR: #cc9933">평소에 즐겁게 연락하다가 만나자고만 하면 냉정해지는 그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span> 나는 그녀의 바쁜 연수 기간 동안에도 마음의 물이 겨울바람에 얼어붙지 않도록 열심히(?) 했다. 무언가를 <strike>바라고 그런것은 아니지만</strike> 바랐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망 뿐이었다. 좋아하는 감정에 솔직하려고 하는 나에게 '만남'을 구걸하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싫으면 싫은 거고, 좋으면 좋은거지 내가 게임에서 'winner'가 되고자 구걸하는 모습은 내가 견디질 못하겠더라. <span style="COLOR: #ff6666">아무개 시인의 시처럼 개밥그릇의 밑바닥을 핥아보지 못한&nbsp;내가 바보같은 행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span> 마음이라는 내 그릇에 있는 '외로움'을 밑바닥까지 핥아 보지 못한 나는&nbsp;언제나 연애에서 패배자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nbsp;<br><br>&nbsp;&nbsp;&nbsp;<span style="COLOR: #cc9933">&nbsp;<font size="+0">'연애는 게임이다'라는 말...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내 가슴이 허락하지 않는다.</font></span> 사람을 좋아하는 그것은, 봄바람에 얼음이 녹듯, 여름 땡볕에 땀이 솟듯, 가을에 낙엽 지듯, 겨울에 눈이 오듯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연애는 게임이다'라는 김태훈씨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span><br/><br/>tag : <a href="/tag/연애참어렵다" rel="tag">연애참어렵다</a>,&nbsp;<a href="/tag/김태훈" rel="tag">김태훈</a>,&nbsp;<a href="/tag/게임" rel="tag">게임</a>,&nbsp;<a href="/tag/루저" rel="tag">루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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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철학</category>
		<category>연애참어렵다</category>
		<category>김태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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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Nov 2009 06:52:04 GMT</pubDate>
		<dc:creator>배한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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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옌젠씨 하차하다 _ 야콥 하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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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나는 대학 신입생 때 많은 시간을 "나는 과연 정상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데 할애했다. 결론은 결국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충실히 실행해서 나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 내가 정의하는 '정상'이란 무엇인가.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기준은 무엇인가. 야콥 하인의 '옌젠씨 하차하다'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기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br><br>&nbsp;&nbsp;&nbsp;&nbsp;옌젠, 그는 꿈도 없고 직장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자로 생각한다. 옌젠씨도 처음에는 정상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은 '불안'에서 찾을 수 있다. 사르트르가 말하기를 인간은 언제나 불안하다고 말했던가. 사르트르의 경우에는 실존적 선택으로 인해&nbsp;야기되는 불안아리면, 옌젠씨는 정상의 기준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인해 야기된 불안이었다.&nbsp;<br><br>&nbsp;&nbsp;&nbsp;&nbsp;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내년이면 4학년이되고&nbsp;취직을 할 것인지, 계속 공부를&nbsp;하면서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를 할 것인지 고민이 많다.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려면 대기업에 취직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늙어 가면 된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나는 불안하다. <span style="COLOR: #cc6600">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가.<br></span><br>&nbsp;&nbsp;&nbsp;&nbsp;정상의 기준은 내가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만든기준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기준, 곧 그것은 정상. <span style="COLOR: #ff6666">나는 정상이 되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었다.<br></span>&nbsp;&nbsp;&nbsp;&nbsp;<br>&nbsp;&nbsp;&nbsp;&nbsp;옌젠씨는 하차했다.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다.&nbsp;세상의 정상에 대한 기준을 전해주던 텔레비전을 창문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주변의 문제에 관심을&nbsp;돌렸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nbsp;그는 정신병자에 불과하지만, (내가 보기엔)그는 승리했다.<br><br>&nbsp;&nbsp;&nbsp;&nbsp;내 앞으로의 인생도 '하차'의 과정이 많이 요구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불안은 나의 결정을 힘들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그 때마다 나는&nbsp;옌젠씨의 '용기'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span>&nbsp;<br>&nbsp;</p><br/><br/>tag : <a href="/tag/야콥하인" rel="tag">야콥하인</a>,&nbsp;<a href="/tag/옌젠씨하차하다" rel="tag">옌젠씨하차하다</a>,&nbsp;<a href="/tag/북리뷰" rel="tag">북리뷰</a>,&nbsp;<a href="/tag/불안" rel="tag">불안</a>,&nbsp;<a href="/tag/정상과비정상" rel="tag">정상과비정상</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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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Nov 2009 07:07:28 GMT</pubDate>
		<dc:creator>배한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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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김상곤 교육감 구하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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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nbsp;<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2009년은 지방자치제도가 꽃피는 해인 것 같다. 지난 여름의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부터 이번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직무이행명령'까지 모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주민소환투표는 아쉽게도 불발로 돌아갔다. '직무이행명령'의 경우는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한데, 개인적으로 교과부의 직무이행명령은 법적 근거가 희박해&nbsp;보인다.<br><br></span><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5826.html"><span style="FONT-SIZE: 130%">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5826.html</span></a><br><span style="FONT-SIZE: 130%">---&gt;한겨레 신문 기사 링크<br><br>&nbsp;&nbsp;&nbsp;&nbsp;지방자치법상 <span style="COLOR: #ff6666">직무이행명령</span>을 '지방자치법 제170조'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을 종합해서 정의해보면, 교육감이 법령의 규정에 따라 그 의무에 속하는 국가위임사무의 관리와 집행을 명백히 게을리하고 있다고 인정되면&nbsp;주무부장관(교과부 장관)이 기간을 정하여 서면으로 이행할 사항을 명령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br><br><strong>지방자치법</strong> <strong>제170조 (지방자치단체의 장에 대한 직무이행명령)</strong> ① <span style="COLOR: #ff6666"><u>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법령의 규정에 따라 그 의무에 속하는 국가위임사무나 시ㆍ도위임사무</u></span>의 관리와 집행을 명백히 게을리하고 있다고 인정되면 시ㆍ도에 대하여는 주무부장관이, 시ㆍ군 및 자치구에 대하여는 시ㆍ도지사가 기간을 정하여 서면으로 이행할 사항을 명령할 수 있다.<br><br><strong>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strong> <strong>제3조 (「지방자치법」과의 관계)</strong> 지방자치단체의 교육·학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의 설치와 그 조직 및 운영 등에 관하여 이 법에서 규정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 지방자치법의&nbsp;관련 규정을 준용한다. 이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시·도지사"는 "교육감"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학예에 관한 사무"로, "자치사무"는 "교육·학예에 관한 자치사무"로, "행정안전부장관"·"주무부장관" 및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으로 본다.&nbsp;<br><br>&nbsp;&nbsp;&nbsp;&nbsp;붉은색 밑줄로 처리한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span style="COLOR: #ff6666">직무이행명령은 그 대상을 '기관위임사무'로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의 소재는 '지방 교육공무원의 징계에 관한 사무'가 자치사무인지 아니면 기관위임사무인지에 있다.<br></span><br>&nbsp;&nbsp;&nbsp;&nbsp;판례는, 2002두10483 사건에서, "법령상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사무가 자치사무인지 아니면 기관위임사무인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u>그에 관한 <span style="COLOR: #cc6600">법령의 규정 형식과 취지를 우선 고려</span>하여야 하지만 그 외에도 그 사무의 성질이 <span style="COLOR: #cc6600">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처리가 요구되는 사무인지 여부</span>나 그에 관한 <span style="COLOR: #cc6600">경비부담과 최종적인 책임귀속의 주체</span> 등도 아울러 고려하여야</u> 한다."고 판시 하고 있다.&nbsp;<br><br>&nbsp;&nbsp;&nbsp;&nbsp;판례가 설시한 기준에 따라 법령의 규정 형식과 취지를 고려해서 판단해보도록 하자. 관련 규정은 아래의 교육감의 사무를 규정하고 있는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0조이다.<br><br><strong>제20조 (관장사무)</strong> 교육감은 교육·학예에 관한 다음 각 호의 사항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br>1. 조례안의 작성 및 제출에 관한 사항<br>2. 예산안의 편성 및 제출에 관한 사항<br>3. 결산서의 작성 및 제출에 관한 사항<br>4. 교육규칙의 제정에 관한 사항<br>5. 학교, 그 밖의 교육기관의 설치·이전 및 폐지에 관한 사항<br>6.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br>7. 과학·기술교육의 진흥에 관한 사항<br>8. 평생교육, 그 밖의 교육·학예진흥에 관한 사항<br>9. 학교체육·보건 및 학교환경정화에 관한 사항<br>10. 학생통학구역에 관한 사항<br>11. 교육·학예의 시설·설비 및 교구(교구)에 관한 사항<br>12. 재산의 취득·처분에 관한 사항<br>13. 특별부과금·사용료·수수료·분담금 및 가입금에 관한 사항<br>14. 기채(기채)·차입금 또는 예산 외의 의무부담에 관한 사항<br>15. 기금의 설치·운용에 관한 사항<br><span style="COLOR: #cc6600">16. 소속 국가공무원 및 지방공무원의 인사관리에 관한 사항</span><br><span style="COLOR: #ff6666">17. 그 밖에 당해 시·도의 교육·학예에 관한 사항과 위임된 사항</span><br><br>&nbsp;&nbsp;&nbsp;&nbsp;1호부터 17호의 규정을 보면, 17호에서는 구체적으로 사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무를 규정하고 있고, 동시에 위임사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법문의 규정 형식과 취지를 고려하면, 지방 교육공무원의 징계에 관한 사무는 16호의 인사관리에 관한 사항으로 '자치사무'로 봄이 타당하고, 17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관위임사무'로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br><br>&nbsp;&nbsp;&nbsp;&nbsp;따라서 교과부의 '직무이행명령'은 '지방자치법'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을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br></span><br/><br/>tag : <a href="/tag/김상곤" rel="tag">김상곤</a>,&nbsp;<a href="/tag/직무이행명령" rel="tag">직무이행명령</a>,&nbsp;<a href="/tag/라이언일병구하기" rel="tag">라이언일병구하기</a>,&nbsp;<a href="/tag/지방자치제도" rel="tag">지방자치제도</a>,&nbsp;<a href="/tag/시국선언" rel="tag">시국선언</a>,&nbsp;<a href="/tag/기관위임사무" rel="tag">기관위임사무</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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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4 Nov 2009 08:51:39 GMT</pubDate>
		<dc:creator>배한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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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09헌라8결정(미디어법)'에 대한 오해 _ 한겨레 칼럼 비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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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nbsp;<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본 결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안은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과 관련된 방송법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헌재의 결정을 오해하고 "권한침해이지만 무효는 아니다"의 패러디를 만들어 내면서 헌재 결정의 취지를 흐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법률안(방송법) 가결선포행위에 대한&nbsp;무효확인청구'에서 기각결정을 한 3인의 논거가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는 있지만, 나머지 기각의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의견이기 때문에 기각의견 전부를 조망하여 헌재 결정의 취지를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br><br>우리 헌법재판소법 66조에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br><strong>제66조 (결정의 내용)</strong> ①헌법재판소는 심판의 대상이 된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하여 판단한다.<br>②제1항의 경우에 헌법재판소는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피청구인의 <span style="COLOR: #ff6666">처분을 취소하거나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고,</span> 헌법재판소가 부작위에 대한 심판청구를 인용하는 결정을 한 때에는 피청구인은 결정취지에 따른 처분을 하여야 한다.<br><br>&nbsp;&nbsp;&nbsp;&nbsp;즉, 무효확인은 헌법재판소의 재량사항에 해당한다.&nbsp;<br><br>&nbsp;&nbsp;&nbsp;&nbsp;헌법재판소는 '신문법의 가결선포행위에 대한&nbsp;무효확인청구'에서는 기각의견의&nbsp;논거로, 권력분립과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권한 침해만을 확인하고 권한 침해로 야기된 위헌, 위법 상태의 시정은 피청구인인 국회의장에게 맡긴다는 취지의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방송법의 경우엔 1인만이 신문법과 같은&nbsp;논거를 들었고, 3인은 행정행위의 위법성 정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중대.명백설의 관점에서 중대성의 기준을 '헌법의 명문의 규정'에 반하는가로 판단하고 있다.&nbsp;따라서 가결선포행위의 효력은 헌법규정을 명백히 위반하였는지&nbsp;판단하여,&nbsp;국회의장의 가결선포행위는 국회법 92조의 '일사부재의 원칙'에 반하지만 헌법규정에 반하는 중대한 위반이 있다고 보기 어렵기&nbsp;때문에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했다.<br><br></span><a href="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85503.html"><span style="FONT-SIZE: 130%">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85503.html</span></a><span style="FONT-SIZE: 130%">---&gt;한겨레 신문 시론<br><br>&nbsp;&nbsp;&nbsp;&nbsp;이에 대해 김승환 교수는 일사부재의 원칙이 '불문의 헌법원칙'이라고&nbsp;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미란다 원칙'을 들고 있다. 하지만 미란다 원칙은&nbsp;피의자의 인신구속에서&nbsp;문제되는 원칙으로, 국회의 의사결정 절차에서&nbsp;문제되는 '일사부재의 원칙'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일사부재의 원칙'을 불문의&nbsp;헌법원칙으로 격상하면서까지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nbsp;<br><br>&nbsp;&nbsp;&nbsp;&nbsp;그리고 김승환 교수는 피청구인의 정치적 결정을 존중하는 헌재의 결정에 대해서 '실소를 금치 못한다'고 하면서 헌재는 문제가 된 공권력 작용에 법적으로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nbsp;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종래에&nbsp;해오던 변형결정으로써의 '헌법불합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헌법불합치결정의 취지는 헌재가 일도양단으로 위헌, 합헌을 판단하기가 적절하지 않아서 권력분립의 원칙 상 입법부에서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nbsp;것이다.&nbsp;비록 3인의 의견이 위법성의 정도가 무효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판시했지만, 신문법의 의견과&nbsp;1인의 의견을 종합하면 헌재의 의견은&nbsp;신문법과 마찬가지로 위법 상태의 시정을 국회 스스로에게 맡긴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nbsp;이와 같은 결정은 헌법불합치&nbsp;결정과 같은 맥락이며 결코 이례적인 결정이 아니다.<br><br>&nbsp;&nbsp;&nbsp;&nbsp;물론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재논의에&nbsp;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이런 헌재의 결정 취지도 사실상 의미가 없다. 하지만 현행 헌법재판소법이 무효확인을 재량사항으로 규정하고 있고, 헌법에 일사부재의 원칙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헌재의 결정은 몸사리기나 등떠밀기의 태도가 아닌&nbsp;어쩔 수 없는&nbsp;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span>&nbsp;&nbsp;&nbsp;&nbsp;&nbsp;&nbsp;<p></p><br/><br/>tag : <a href="/tag/미디어법" rel="tag">미디어법</a>,&nbsp;<a href="/tag/한겨레" rel="tag">한겨레</a>,&nbsp;<a href="/tag/칼럼" rel="tag">칼럼</a>,&nbsp;<a href="/tag/비평" rel="tag">비평</a>,&nbsp;<a href="/tag/헌법재판소" rel="tag">헌법재판소</a>,&nbsp;<a href="/tag/일사부재의원칙" rel="tag">일사부재의원칙</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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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3 Nov 2009 13:05:04 GMT</pubDate>
		<dc:creator>배한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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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판결서에 전자서명이 가능할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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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나는 이 문제를 계보학적으로 접근해 보려 한다. 전자서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 중에 법관이 자신의 이름을 직접 서명하고 날인하는 것이 전자서명에 비해 법관 스스로 책임감을 더 느낀다는 것이 있는데, <span style="COLOR: #cc6600">여기에 계보학적으로 어떤 ‘권력에의 의지’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span>가 있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판결이라는 것은 <span style="COLOR: #ff6666">처분권주의의 원칙</span>상 당사자인 국민이 법관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에 이에 법관이 대답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법관이 높은 지위에서 판결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판결의 서명이 자필로 행해졌는지 전자서명으로 행해졌는지는 관심사가 아니고 판결의 결과가 중요한 관심사인 것이다. <span style="COLOR: #cc6600">법관이 자필로 서명날인하는 것에 책임감을 더 느낀다는 생각은 권위주의적인 발상</span>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서명은 법원의 권위를 조금아니마 해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요컨대, 자필에 의한 서명이나 전자서명이 가지고 있는 실질적 의미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런 형식의 변화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제사항으로 전자서명의 도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조, 변조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span> </p><br/><br/>tag : <a href="/tag/법학" rel="tag">법학</a>,&nbsp;<a href="/tag/판결문" rel="tag">판결문</a>,&nbsp;<a href="/tag/권위주의" rel="tag">권위주의</a>,&nbsp;<a href="/tag/전자서명" rel="tag">전자서명</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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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법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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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권위주의</category>
		<category>전자서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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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Oct 2009 06:50:37 GMT</pubDate>
		<dc:creator>배한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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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좀머씨 이야기 _ 다수의 권위와 그 해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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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2pt"><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span></p></span><p></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span style="FONT-SIZE: 130%; COLOR: #cc6600">1. 소설 속에 나타난 권위주의</span></span><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좀머씨는 보통사람들과는 다르다. 단순히 숫자로만 따지면 마을사람들은 다수이고 좀머씨는 소수이다. 하지만 질 들뢰즈는 ‘다수’의 개념을 다르게 이해한다. “소수파와 다수파는 단지 양적으로만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파는 권력 상태 또는 지배상태를 전제로 한다.” 즉 다수라는 것은 단지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힘에 의해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반면 <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소수를 대표하는 좀머씨는 자신이 왜 계속 걸어야하는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항변해야 한다.</u> 따라서 다수에는 권위주의적인 요소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이 다수파는 소수파를 그냥 두지 않는다. 자신들의 방식에 그들을 끼워 맞추려고 하고 <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소수파가 이에 반항하면 그들에게 벌로써 ‘부정적인 이름’을 부여한다.</u> </span></p><p class="인용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COLOR: #ff6666">“『저 사람 완전히 돌았군.』”, “『좀머씨는 밀폐 공포증 환자야.』” </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span style="FONT-SIZE: 130%; COLOR: #cc6600">2. 권위주의의 해체</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요즘은 인권의식이 많이 좋아져서 다수자가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는 달라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시선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보자. 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저상버스에 탑승하려고 한다. 현재 시간은 아침 8시로 버스 승객은 출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장애인이 저상버스에 타기 위해서는 운전기사가 장애인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 시간이 10분 정도 걸린다고 해보자. 이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아도 지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짜증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평소에 장애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그들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막상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얽히게 되면 본심이 나오기 마련인 것이다.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요컨대, <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다수가 소수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것이 사실은 ‘이해’가 아니라 ‘동정’</u>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그러다가 죽을지도 몰라요”라는 말까지 해가면서 차에 타라고 했지만, 좀머씨는 자신을 동정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소리친다.</span></p><p class="인용글"><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COLOR: #ff6666">“(날 이해할 수 없다면)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span></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소설 속에서 다수의 권위에 도전하는 좀머씨는 힘에 부쳐 보인다. 자신을 내버려 두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쉽게 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 이를 피하고 싶어서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 자신이 항변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씁쓸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이는 <u style="text-underline: #000000 single">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u>이기도 하다.</span></p><p class="바탕글"></p><br/><br/>tag : <a href="/tag/쥐스킨트" rel="tag">쥐스킨트</a>,&nbsp;<a href="/tag/좀머씨이야기" rel="tag">좀머씨이야기</a>,&nbsp;<a href="/tag/권위주의" rel="tag">권위주의</a>,&nbsp;<a href="/tag/탈권위주의" rel="tag">탈권위주의</a>,&nbsp;<a href="/tag/소수자" rel="tag">소수자</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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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북리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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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Oct 2009 06:46:08 GMT</pubDate>
		<dc:creator>배한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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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쥐스킨트의 '향수'와 괴벨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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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천재인가, 살인자인가.&nbsp;<br><br>&nbsp;&nbsp;&nbsp;&nbsp;도덕성이라는 개념은&nbsp;시대에 따라 상대화 되지만 동시대의 같은 인물에게는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절대성이 인정된다고 생각한다. '향수'에서도 나오듯이 주인공은 분명 살인자이지만 '향수'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대중을 조작한다. 한편 괴벨스 역시 나치당의 선전장관으로서 히틀러에게 충성을 바치고 대중을 완벽하게 조작한다. 그가 가장 열심을 쏟았던 대중선동 도구는 라디오였다. 국민들에게 라디오 수신기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매일같이 히틀러와 니치당을 선전했다.&nbsp;<br><br>&nbsp;&nbsp;&nbsp;&nbsp;<span style="COLOR: #cc6600">장 바티스트 그루누이에게&nbsp;'향수'가 있었다면 괴벨스에게는 '라디오'가 있었던 것이다.</span> 이들의 대중조작으로 유죄가 무죄로 변하는&nbsp;마술이 일어났고 한시대의 도덕성 기준은&nbsp;붕괴되었다. 비단 소설 속과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br><br><strong>"이건희 유죄" 표현 없는 중앙일보&nbsp;<br></strong><br>&nbsp;&nbsp;&nbsp;&nbsp;서울고등법원은 14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파기환송심 판결에서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이 불법이고 이 전 회장은 유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 등은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를 공정한 가격인 1만4230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7150원에 이(재용) 전무 등이 인수하도록 해 회사에 227억여원의 손해를 입힌 점이 인정된다"고 유죄를 선고했지만, 이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하는데 그쳤다.&nbsp;<br>&nbsp;&nbsp;&nbsp;&nbsp;<br>&nbsp;&nbsp;&nbsp;&nbsp;15일자 전국단위 아침신문 대다수에선 이건희 전 회장이 유죄를 선고받았다는 것을 1면에 배치하거나 유죄 선고를 핵심 내용으로 전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경우 전국종합지 중 가장 신문 뒷면에 관련 뉴스를 배치했고, "유죄"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단신 처리하는데 그쳤다.&nbsp;<br>&nbsp;&nbsp;&nbsp;&nbsp;<br>&nbsp;&nbsp;&nbsp;&nbsp;중앙은 지난 2007년 12월 7일 삼성 예인선단이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를 충돌할 당시에도 관련 뉴스를 소극적으로 보도하는 등 잇달은 '삼성 이슈'를 부각시키지 않은 바 있다. 시민사회 단체·학계에선 중앙의 이같은 삼성 '축소 보도'를 예로 들며 신문의 방송 진출시 '여론 독과점' 및 '왜곡'을 우려한 바 있다. <br><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5.egloos.com/pds/200909/25/30/f0028630_4abc6fe78dfc8.jpg" width="500" height="180.19801980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5.egloos.com/pds/200909/25/30/f0028630_4abc6fe78dfc8.jpg');" /></div><br><p></p><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ff6666; BACKGROUND-COLOR: #ffffff">히틀러 =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br>괴벨스의 라디오 = 향수<br>대중 =&nbsp;군중<br></span><br>&nbsp;&nbsp;&nbsp;&nbsp;쥐스킨트도 '언론의 대중조작으로 인한 도덕성 기준의 와해'라는 모티브를&nbsp;'향수'에서 구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div></span><p></p><br/><br/>tag : <a href="/tag/향수" rel="tag">향수</a>,&nbsp;<a href="/tag/쥐스킨트" rel="tag">쥐스킨트</a>,&nbsp;<a href="/tag/괴벨스" rel="tag">괴벨스</a>,&nbsp;<a href="/tag/삼성" rel="tag">삼성</a>,&nbsp;<a href="/tag/이건희" rel="tag">이건희</a>,&nbsp;<a href="/tag/도덕성의기준" rel="tag">도덕성의기준</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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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5 Sep 2009 07:42:59 GMT</pubDate>
		<dc:creator>배한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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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게 뭐니 이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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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br><div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home.postech.ac.kr/~heyguys/pds/html/dungen.swf"><span style="COLOR: #ff6666; FONT-SIZE: 130%">http://home.postech.ac.kr/~heyguys/pds/html/dungen.swf</span></a></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6.egloos.com/pds/200909/16/30/f0028630_4ab066231e3eb.jpg" width="500" height="244.9541284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6.egloos.com/pds/200909/16/30/f0028630_4ab066231e3eb.jpg');" /></div><br><span style="FONT-SIZE: 130%"><div style="TEXT-ALIGN: center">이 프로그램 만든 사람 한국을 떠나라.<br>내가 잡으러 간다.<br>기다려.<br>꼭.</div></span><br/><br/>tag : <a href="/tag/바람기" rel="tag">바람기</a>,&nbsp;<a href="/tag/2프로" rel="tag">2프로</a>,&nbsp;<a href="/tag/음료수" rel="tag">음료수</a>,&nbsp;<a href="/tag/목말라" rel="tag">목말라</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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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6 Sep 2009 04:19:13 GMT</pubDate>
		<dc:creator>배한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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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나는 애벌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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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left"></div><div style="TEXT-ALIGN: center"></div><div style="TEXT-ALIGN: center"><strong><div style="TEXT-ALIGN: center"><strong><span style="FONT-SIZE: 130%"></span></strong></div><span style="FONT-SIZE: 130%">나는 애벌레<br></span></strong><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배한진<br></span></div><br><span style="FONT-SIZE: 130%">나는 애벌레 <br>그녀는 나비<br><br>애벌레는 나비에게 다가가려고 꿈틀<br>나비는 달아나려고 날개를 펄럭<br><br>나비는 어디든지 날아갑니다<br>애벌레는 기도하죠<br></span><span style="FONT-SIZE: 130%"><span style="COLOR: #ff6666"><span style="COLOR: #ff6666">너무 멀리 날아가지 말라고<br></span><br></span>나비는 어느 꽃이든지&nbsp;갈 수 있습니다<br>애벌레는 또 기도하죠<br><span style="COLOR: #ff6666">다른 꽃에 앉지 말라고</span><br><br>나는 애벌레<br>그녀는 나비<br>애벌레는&nbsp;어서 나비가 되기를 바랍니다.<br><br><br><br><br><span style="COLOR: #ff6600">마우스 드래그!<br></span>반전: <span style="COLOR: #ffffff">그 애벌레는 나비의 애벌레가 아니다</span></span></div><br/><br/>tag : <a href="/tag/애벌레" rel="tag">애벌레</a>,&nbsp;<a href="/tag/자작시" rel="tag">자작시</a>,&nbsp;<a href="/tag/가슴아프다" rel="tag">가슴아프다</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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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철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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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6 Sep 2009 04:10:09 GMT</pubDate>
		<dc:creator>배한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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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롤랑 바르트의 'Text'와 배한진의 '책상은 책상이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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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FONT-SIZE: 130%">&nbsp;&nbsp;&nbsp;&nbsp;<span style="COLOR: #cc6600">롤랑 바르트는 'work'와 'text'를 구분</span>하고 전자를 닫혀 있는 글로 이해하고 후자를 열려 있는 글로 이해했다. 즉 후자의 글 읽기에서는 작가는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이고 오로지 독자의 의견만이 존재할 뿐이다. 내가 이제까지 썼던 북리뷰들은 물로 이런 취지로 글을 쓴 것이 많지만 작가의 평소 삶에서 묻어 나는 주제의식이라든지 평론가들의 평가를 반영해서 글을 쓴 것도 있다. 이제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나의 생각이 이 텍스트의 주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창의적인 글쓰기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그 첫번째 타자가 '책상은 책상이다'라는&nbsp;글이다. 글의 분량은&nbsp;길지 않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br>&nbsp;&nbsp;&nbsp;&nbsp;<br>&nbsp;&nbsp;&nbsp;&nbsp;일단 '호명'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먼저 해보자. 크게 보면&nbsp;호명에는,&nbsp;호명에 의해 비로소 의미가 부여되는 <span style="COLOR: #cc6600">'여의(與意)적&nbsp;호명'</span>과 이름이 관습적으로 굳어져 지금 그렇게 부르지&nbsp;않으면 불편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부르는 <span style="COLOR: #cc6600">'편의(便宜)적 호명'</span>이 있다. 여의적 호명은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표현하듯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가 나에게 꽃이 되는 것처럼 그 호명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표적인 예가 연인들 간의 '애칭'일 것이다.&nbsp;반드시 그 특별한 애칭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호명의 주체에게 그것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반면에 편의적 호명은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관습적으로 굳어진 호명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그 호명을 사용해야 한다. <span style="COLOR: #ff6666">'책상은 책상이다'라는 글도 이런 편의적 호명에 대한 비판적인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span>&nbsp;<br><br>&nbsp;&nbsp;&nbsp;&nbsp;중요한 것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nbsp;사르트르의 말처럼 호명이라는 껍데기보다는 그 실존이다. 다시 말하면 책상은 책상일 뿐인 것이다.<span style="COLOR: #cc6600">&nbsp;이 세상에는 편의적 호명에 의해 가려진 실존이 얼마나 많은가.</span> '장애인', '아웃사이더', '동성애자' 등등. 그들 개개인의 사정을 알려고 하지는 않고 부정적인 호명으로&nbsp;실존을 질식시키는 행위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br>&nbsp;&nbsp;&nbsp;&nbsp;<br>&nbsp;&nbsp;&nbsp;&nbsp;주제는 이거다. 나는 '돌아이'도 '싸이코'도 아니고 </span><span style="COLOR: #ff6666"><span style="FONT-SIZE: 130%">나는 나일 뿐이다.</span>&nbsp;</span>&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br/><br/>tag : <a href="/tag/책상은책상이다" rel="tag">책상은책상이다</a>,&nbsp;<a href="/tag/롤랑바르트" rel="tag">롤랑바르트</a>,&nbsp;<a href="/tag/배한진" rel="tag">배한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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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북리뷰</category>
		<category>책상은책상이다</category>
		<category>롤랑바르트</category>
		<category>배한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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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1 Sep 2009 04:32:35 GMT</pubDate>
		<dc:creator>배한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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