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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UNARI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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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시험 끝날 때까지 일시 동결이예요^^; 다들 건강하시길:)</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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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8 Sep 2009 01:53:19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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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UNARI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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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시험 끝날 때까지 일시 동결이예요^^; 다들 건강하시길:)</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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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향가 (10) - 안민가·찬기파랑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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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339999"><a href="http://pds12.egloos.com/pds/200811/24/10/classic_9.hwp">classic_9.hwp</a><br><br>君隱父也<br>臣隱愛賜尸母史也<br>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br>民是愛尸知古如<br>窟理叱大肹生以支所音物生<br>此肹喰惡攴治良羅<br>此地肹捨遺只於冬是去於丁爲尸知<br>默惡攴持以攴知古如<br>後句 君如臣多支民隱如爲內尸等焉<br>國惡太平恨音叱如 <strong>&lt;안민가&gt;</strong><br><br>「君은 아버지요　　　　　　　　　　　　　　　　　　　　 君은 아비요<br>臣은 사랑하실 어머니요　　　　　　　　　　　　　　　　　臣은 사랑하시는 어미요,<br>民은 어린 아이로고!」 하실지면,　　　　　　　　　　　　　民은 어리석은 아이라고<br>民이 사랑을 알리이다.　　　　　　　　　　　　　　　　　&nbsp; 하실진대 民이 사랑을 알리라.<br>꾸물거리며 살손 物生이　　　　　　　　　　　　　　　　　大衆을 살리기에 익숙해져 있기에<br>이를 먹어 다스려져　　　　　　　　　　　　　　　　　　　이를 먹여 다스릴러라.<br>「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려!」 할지면,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br>나라 안이 유지될 줄 알리이다.　　　　　　　　　　　　　　할진대 나라 保全할 것을 알리라.<br>아으, 君답게, 臣답게, 民답게 할지면,　　　　　　　　　　　아아, 君답게 臣답게 民답게<br>나라 안이 태평하니이다.　　　　　　　　　　　　　　　　&nbsp; 한다면 나라가 太平을 持續하느니라.<br>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br><br>咽嗚爾處米<br>露曉邪隱月羅理<br>白雲音逐于浮去隱安攴下<br>沙是八陵隱汀理也中<br>耆郞矣皃史是史藪邪<br>逸烏川理叱碩惡希<br>郞也持以攴如賜烏隱<br>心未際叱肹逐內良齊<br>阿耶栢史叱枝次高攴好<br>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strong>&lt;찬기파랑가&gt;</strong><br><br>「열치매　　　　　　　　　　　　　　　　　　　　　　　　흐느끼며 바라보매<br>나타난 달이　　　　　　　　　　　　　　　　　　　　　　&nbsp; 이슬 밝힌 달이<br>흰 구름 좇아 떠감이 아니야?」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br>「새파란 내[川]에　　　　　　　　　　　　　　　　　　　&nbsp; 모래 가른 물가에<br>耆郞의 모양이 있어라!　　　　　　　　　　　　　　　　　　耆郞의 모습이올시 수풀이여.<br>이로 냇가 조약에　　　　　　　　　　　　　　　　　　　　 逸烏내 자갈 벌에서<br>郞의 지니시던　　　　　　　　　　　　　　　　　　　　　&nbsp; 郞이 지니시던<br>'마음의 끝'을 좇과저」　　　　　　　　　　　　　　　　　&nbsp; 마음의 갓을 쫓고 있노라.<br>아으, 잣[柏] 가지 드높아　　　　　　　　　　　　　　　　&nbsp; 잣나무 가지가 높아<br>서리를 모르올 花郞長이여!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깔이여.<br>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br></span><br>　<span style="BACKGROUND-COLOR: #ccffff">경덕왕이 재위한 24년에 오악(五岳)과 삼산(三山)의 신(神)들이 때때로 궁전 뜰에 나타나 왕을 모시기도 하였다. 어느 해 3월 삼짇날에 왕이 귀정문 문루에 행차하셔서 좌우의 신하에게 말하기를<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누가 나가서 영복한 스님 한 분을 모셔올 수 있겠느냐?"<br>고 하였다. 그 때 마침 큰스님 한 분이 위풍이 정결하고 당당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좌우 신하들이 그 분을 모셔다 뵙게 하였다. 왕은<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내가 말하는 영복한 스님이 아니다."<br>하고 돌려 보냈다. 다시 한 스님이 헤진 장삼을 입고 앵통을 짊어지고 남쪽으로부터 오고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문루 위로 맞아들이고, 통 속을 살펴보니 차 달이는 기구를 담았을 뿐이었다. 왕이<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네가 누구냐?"<br>고 묻자, 그는<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충담입니다."<br>하였다. 왕이<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어디서 오는 길인가?"<br>하니, 충담은<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소승은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이면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공양하는데 오늘도 벌써 차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br>고 하였다. 왕이<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과인에게도 차 한 잔을 줄 수 있느냐?"<br>하고 물으니 곧 차를 달여 드렸는데, 차 맛이 특이하고 그릇에서도 특이한 향기가 풍겼다. 왕은<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짐이 듣건대 대사가 기파랑을 기려서 사뇌가를 지었고 그 뜻이 매우 고상하다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br>하고 묻자, 충담사는<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그렇습니다."<br>하고 대답하였다. 왕이 말하기를<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그렇다면 짐을 위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노래를 짓도록 하라."<br>하니 충담사는 곧 칙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왕은 이를 가상히 여겨 왕사를 봉하려 하였으나 재배하며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안민가는 이러하다.<br><em>&lt;안민가&gt;</em><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찬기파랑가는 이렇다.<br><em>&lt;찬기파랑가&gt;</em><br><br></span><div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BACKGROUND-COLOR: #ccffff">- 『삼국유사』권2, 기이(紀異), 경덕왕 충담사</span></div><br>　이 뒤로는 『삼국유사』에 경덕왕과 차대 혜공왕, 그리고 표훈대덕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사실은 '경덕왕 충담사·표훈대덕' 조(條)이지만 뒷내용은 살짝 빼버렸지요^^; 어쨌든, 충담사 역시 두 편의 향가를 지은 것으로 원문 기록에 남아있습니다.<br><br>　먼저 &lt;안민가&gt;부터 살펴볼까요. &lt;안민가&gt;는 기본적으로 치리가(治理歌)입니다.&nbsp;나라를 다스리는 이치를 밝힌 교술적 성격의 노래이며, 당대의 정치 상황을 드러내는 정치적 노래이기도 하지요.<br>　처음에는 비유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아버지, 신하는 어머니, 백성은 아이들. 이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정치가 제대로 된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요. 당대 왕당파와 비왕당파의 권력다툼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다고 하는데 - 월명사의 향가 부분에서 '두 개의 해' 역시 정치적 혼란을 나타낸다고 하지요. -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네요. 그리고 두 번째, 5-8행에서 경제적 위기의 측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백성을 먹여 다스린다는, 즉 항산(恒産)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이 부분에는 경덕왕 말년, 재난이 심해서 백성들이 끼니도 잇기 힘들었던 모습이 보입니다. 특히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즉&nbsp;절박한 의식을&nbsp;가지고 대처한다면 나라가 유지될 것이란 표현은 그 위기감의 정도를&nbsp;반영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nbsp;마지막 부분에서는 『논어』 &lt;안연편&gt;의 '君君臣臣父父子子'를 원용하며 각자 직분을 다할 것을 강조합니다.<br><br>　그리고 &lt;찬기파랑가&gt;. 배경 설화를 보면 왕에게까지, 즉 그만큼 널리&nbsp;&lt;찬기파랑가&gt;가 알려졌음을 알 수 있지요. &lt;찬기파랑가&gt;는 &lt;보현시원가&gt;와 함께 향가 어석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한시와 함께 실린 &lt;보현시왕가&gt;와는 달리 연구자들마다 편차가 큰 &lt;찬기파랑가&gt;가 어떻게 그런 위치에 놓일 수 있는지 여쭤보니 11분절로 '끊어읽기'가 명료하다네요. 그런데 어떻게 읽든 간에 10구체 향가의 기본 해독인 4-4-2와는 맞지 않습니다. 그게 여전히 이견이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br>　양주동 선생의 해독은 3-5-2로 끊어읽기가 가능합니다. 특히 대화체로 이루어진다는 게 이색적이지요. 1-3행의 '달'은 기파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고결한 존재임을 드러내지요. 창문을 열어젖히며 나타난 달이 흰 구름을 좇아 떠가는 것이 아니냐고 물으며, 기파랑이 곁에 없는 상황을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nbsp;그리고 달의 응답이 이어집니다. 새파란 냇가에 기랑의 모습이 있다고 하고 있지요. 이 냇가는 또한 지워버릴 수 없는 청사(靑史)를 의미합니다. 화자에게서 기파랑이 사라질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면서 냇가 조약에 기파랑이 지녔던 '마음의 끝'을 좇고자 한다고 말을 하네요. 이 조약돌은 보잘 것 없는 존재, 즉 화자 자신을 뜻하는 걸로 보아 자기 다짐이라고 해석을 하는 한편, 원만하고 강직한 기파랑으로 보아 고매한 인격의 일부라도 닮고 싶다는 뜻으로도 해석을 합니다. 마지막 9-10행은 화자의 독백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잣가지가 높아 서리 - 시련을 모를 화랑의 우두머리, 기파랑의 고고한 인품을 찬미하고 있습니다.<br>　반면 김완진 선생의 해독은 5-3-2로 끊어읽기가 가능합니다. 흐느끼며 바라보니, 달빛에 반짝이는 이슬이 흰 구름 따라 떠 간 언저리의 물가, 기랑의 모습을 닮은 수풀이 있지요. 그 이슬이 풀잎 끝에 맺혔는지 눈가에 맺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화자는 일오라는 냇가의 자갈 벌에서 기파랑이 지녔던 마음의 갓을 쫓고 있습니다. 분명 화자와 기파랑의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이었겠지요. 그러면서 잣나무 가지가 높아서 눈이라도 덮지 못한 고깔을 예찬합니다.<br>　뭐, 어떤 해석을 따르던 간에 달과 구름, 잣과 서리의 대립적인 이미지를 구사하여 기파랑의 고매한 인격을 절대적이고 초월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든 흔히 화랑이라고 하면 생각하는 패기나 용맹 등 무사적인 요소는 거의 보이지 않지요. 아마 삼국통일 이후, 화랑 집단의 세력이 쇠퇴한 뒤에 정신적인 괴로움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전성기를 지난 늙은 장군 - 기파랑의 '기(耆)'자는 '늙은이', 한글 사전을 보면 예순이나 일흔 이상의 늙은이라고 하고 있네요. - 의 모습이 '달'의 해석과 관련지어서 고결하게 혹은 비통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별다른 흔적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화랑도 전체의 모습이 나이든 기파랑의 얼굴과 겹쳐지면서 입맛이 씁쓸해지더군요.<br><br>　<span style="COLOR: #c0c0c0">무언가 내용이 간단한 듯한데, 웬만큼 할 얘기는 다 했으니- 이젠 또 다음으로'ㅁ'/ 경덕왕대의 기록에 나오는 마지막 향가를 다룰 차례입니다:) 스터디원들한테도 얼음집을 공개했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죠. 대학원 입학 전까지는 그래도 고전시가 한 번 쯤 훑어보고 가야 되지 않겠어요^^;</span><br/><br/>tag : <a href="/tag/고전시가" rel="tag">고전시가</a>,&nbsp;<a href="/tag/향가" rel="tag">향가</a>,&nbsp;<a href="/tag/안민가" rel="tag">안민가</a>,&nbsp;<a href="/tag/찬기파랑가" rel="tag">찬기파랑가</a>,&nbsp;<a href="/tag/달님께기원하면이루어질까요" rel="tag">달님께기원하면이루어질까요</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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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맛있는 공부</category>
		<category>고전시가</category>
		<category>향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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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찬기파랑가</category>
		<category>달님께기원하면이루어질까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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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4 Nov 2008 15:48:58 GMT</pubDate>
		<dc:creator>玄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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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향가 (9) - 도솔가·제망매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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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COLOR: #dcdcdc">* 단 하루지만, 까만 스킨에 살짜쿵 동참합니다:)<br />
</span><br />
<a href="http://pds10.egloos.com/pds/200811/20/10/classic_8.hwp">classic_8.hwp</a><br />
<br />
<span style="COLOR: #339999">今日此矣散花唱良　　　　　　　　오늘 이에 「散花」를 불러　　　　　　오늘 이에 散花 불러<br />
巴寶白乎隱花良汝隱　　　　　　　뿌리온 꽃아, 너는,　　　　　　　　&nbsp; 　솟아나게 한 꽃아 너는,<br />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곧은 마음의 命을 부리옵기에,　　　　&nbsp; 곧은 마음의 命에 부리워져<br />
彌勒座主陪立羅良　　　　　　　　彌勒座主를 모셔라!　　　　　　　　　 彌勒座主 뫼셔 羅立하라.<br />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br />
<br />
生死路隱<br />
此矣有阿米次肹伊遣<br />
吾隱去內如辭叱都<br />
毛如云遣去內尼叱古<br />
於內秋察早隱風未<br />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br />
一等隱枝良出古<br />
去奴隱處毛冬乎丁<br />
阿也彌陀刹良逢乎吾<br />
道修良待是古如<br />
<br />
生死路는　　　　　　　　　　　　　　　　　　　　　　　　　生死 길은<br />
예 있으매 젛이여서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br />
「나는 간다」 말도　　　　　　　　　　　　　　　　　　　　 나는 간다는 말도<br />
못 다 이르고 가느닛고.　　　　　　　　　　　　　　　　　　&nbsp; 몯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br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br />
이에 저에 떨어질 잎같이,　　　　　　　　　　　　　　　　　&nbsp;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br />
한 가지에 나고　　　　　　　　　　　　　　　　　　　　　　 한 가지에 나고<br />
가는 곳 모르온저!　　　　　　　　　　　　　　　　　　　　　가는 곳 모르온저.<br />
아으, 彌陀刹에 만날 나는　　　　　　　　　　　　　　　　　&nbsp; 아아, 彌陀刹에서 만날 나<br />
道 닦아 기다리련다!　　　　　　　　　　　　　　　　　　　　道 닦아 기다리겠노라.<br />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span><br />
<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ccffff"><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경덕왕 19년(서기 760) 경자 4월 초하룻날, 해 둘이 나란히 떠서 10여 일간 없어지지 않았다. 일관이 진언하기를,<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인연 있는 스님을 청하여 산화공덕을 드리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br />
라고 하였다. 이에 왕은 조원전에 단을 깨끗이 모시고 청양루에 행차하여 인연 있는 스님을 기다렸다. 그때 마침 월명사란 이가 천백사의 남쪽 길로 지나가므로 왕은 사람을 시켜 그를 불러들여 단을 열고 계청을 지으라 명했다. 월명사는 왕께 아뢰기를,<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저는 다만 국선의 무리에 속해 있으므로 오직 향가만 알고 범패 소리에는 익숙하지 못합니다."<br />
라고 하였다. 왕은<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이미 인연 있는 스님으로 정하였으니 향가를 지어도 좋다."<br />
고 하였다. 월명사는 이에 도솔가를 지어 불렀다. 가사는 이러하다.<br />
</span><span style="BACKGROUND-COLOR: #ccffff"><em>&lt;도솔가&gt;<br />
</em><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이것을 시로 다시 풀어보면 이렇다.<br />
<br />
용루에서 오늘 산화가를 불러<br />
청운에 한 떨기 꽃 뿌려 보냈네<br />
은근히 굳은 마음에서 우러나<br />
멀리 도솔천의 큰 선가(仙家)를 맞았네<br />
<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지금 세속에선 이것을 &lt;산화가&gt;라 하나 잘못된 것이므로 &lt;도솔가&gt;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lt;산화가&gt;는 따로 있으나 문장이 번다해서 싣지 않는다.<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lt;도솔가&gt;를 지어 부른 뒤 곧 두 해의 괴변이 사라졌다. 왕은 월명사를 가상히 여겨 그에게 차 달이는 기구 한 벌과 수정 염주 백 여덟 개를 주었다. 그런데 홀연히 모습이 정결한 한 동자가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차와 염주를 받들고 궁전 서쪽의 작은 문으로 나갔다. 그 동자를 두고 월명사는 궁중 안의 심부름하는 아이라 하고, 왕은 대사의 시중을 드는 아이라 하였으나, 그 현묘한 징표로 보나 모두가 아니었다. 왕은 매우 이상스럽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를 추적하게 하였는데, 동자는 내원의 탑 속에 숨어 버리고 차와 염주는 내원의 남쪽 벽에 그려 놓은 미륵보살의 성상 앞에 놓여 있었다. 이와 같이 월명대사의 지극한 덕과 정성이 미륵보살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이 일은 온 나라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왕은 더욱 월명사를 공경하여 다시 비단 백 필을 더 주면서 정성껏 표창했다.<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월명사는 또 일찍이 죽은 누이를 위하여 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그를 추모했는데,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지전을 서쪽으로 날려보내 사라지게 했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br />
<em>&lt;제망매가&gt;</em><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ccbb"><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span>월명은 항상 사천왕사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피리를 잘 불었다. 한 번은 달 밝은 밤에 그가 사천왕사 문 앞 큰 길에서 피리를 불며 지나갔는데 달님이 그 소리에 운행을 멈춘 일이 있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길을 월명리라 했으며, 월명사도 이로 인해서 이름이 났다. 월명사는 능준대사의 문인이다. 신라 사람들 중에는 향가를 숭상하는 이가 많았는데, 이것은 대개 『시경』의 송(頌)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가끔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찬으로 말하면 이러하다.<br />
<br />
바람이 돈을 날려 저승 가는 누이 노자로 쓰게 했고<br />
피리 소리가 밝은 달을 흔들어 항아를 머물게 했구나<br />
도솔천이 멀다고 말하지 말라<br />
만덕화(萬德花) 한 곡조로 쉽게 맞았네.<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04, 255, 255);"><br />
</span></span></p><div><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04, 255, 255);"><br />
</span></div><div style="TEXT-ALIGN: right"><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04, 255, 255);">- 『삼국유사』권5, 감통(感通), 월명사 도솔가</span></div><br />
　배경 설화도 그렇고, 지은이도 그렇고 &lt;도솔가&gt;와 &lt;제망매가&gt;는 같이 설명하는 게 편하지요:) 특히 향가를 다루며 8세기는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일단 당대 최고의 향가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월명사가 4구체의 향가를 창작했지요. 이 &lt;도솔가&gt;는 '호칭-명령-가정-위협'이라는 주술 노래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물론 불교노래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불교의 의식에 사용된 주술계 노래라는 견해가 타당해 보이기에 이쪽을 따릅니다), 위협적인 어법이&nbsp;없으며 명령도 약화되어 나타납니다. 즉 신비한 주술의 세계에서 서정적인 불교의 세계로 접어드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민요계 향가가 상층부로 가서 서정시가가 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뒤에서 볼, 동시대의&nbsp;&lt;도천수대비가&gt;는 사뇌가계 향가가 민중층으로 내려가는 양상을 보여주고요. 이를 통해 향가가 정말 명실상부한 '신라인의 보편 시가'로 확립됨을 알 수 있습니다.<br />
<br />
　&lt;도솔가&gt;를 먼저 보도록 할까요. 2행의 '巴寶'가 해석의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양주동 선생은 뿌리다(散)로, 홍기문 선생은 '빠호'(옛 한글이 안 먹히는 슬픔ㅠ 첨부된 한글 파일을 참조하시면 좀 도움이 될 듯하네요;;)로 보아 여러 꽃 중에서 선발된 것으로, 김완진 선생은 '돋우다/솟구치다'로 본다네요. 해석만 보면 꽤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정작 앞뒤의 문맥과 함께 보면 셋 다 크게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산화공덕과 관련 있는 꽃, 정도가 되겠네요.<br />
　학자들의 견해가 갈리는 또 다른 문제는 '① 유리왕대의 도솔가와 같은가 ② 도솔가와 산화가의 관계는 어떤가'라네요. 차례대로 살펴보지요.<br />
　『삼국사기』 신라본기 1, 유리왕 5년의 기록을 보면 유리왕은 국내를 순행하다가 늙은이가 얼어죽을 지경이 된 것을 보고 자신의 죄라고 말하며, 관리에게 명하여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문하며 부양케 하였다고 합니다.&nbsp;이 해에 민속이 즐겁고 편안하므로 비로소 &lt;도솔가&gt;를 지으니 이것이 가악의 시초였다고요. 이것과 향가 &lt;도솔가&gt; 둘 다 '도살풀이/도살노래'라고 하여 회생(回生), 부활(復活), 복원(復元)의 뜻을 가진, 같은 향가라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반면 유리왕대의 &lt;도솔가&gt;는 치리가(治理歌)이고, 월명사의 &lt;도솔가&gt;는 불교 사뇌가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요. 아마 후자쪽이 더 타당하리라고 봅니다. 이 맥락에서 '민속이 즐겁고 편안'한 것과 관계가 있는 노래가 나올 까닭이 없으니까요.<br />
　다음은 &lt;도솔가&gt;와 &lt;산화가&gt;와의 관계입니다. 양주동 선생의 경우, 1행에 '散花唱良'이라고 하므로 원래 &lt;산화가&gt;로 지어진 것이라 하는 반면, 이전의 오구라 신페이나 이후의 많은 학자들은 &lt;산화가&gt;를 순불교적 게송 같은 것으로, &lt;도솔가&gt;는 산화의식을 소재로 삼은 것으로 보고 있지요. 종교 얘기만 나오면 가방끈 짧은 저는 입다물고 조용히(…)<br />
　'두 개의 해가 함께 보였다[二日竝現]'이라는 산문 기록에도 이견이 있더군요. 하나는 기록 그대로를 존중하여 태양계의 이변을 해가 두 개인 것처럼 인지했다는 의견이며, 다른 하나는 신라 정치 사회의 변혁을 담고 있다는 의견입니다. 이를테면 군왕이 있음에도 이에 대항하는 세력이 급격하게 부상하는 것 말이지요. 전자든 후자든 노래의 성격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보이지만- 왠지 후자쪽이 더 강하게 끌리네요. 글로써 정치적 변란을 잠재웠다고 할 수 있는 최치원의 &lt;토황소격문&gt;이 생각나기도 하고요^^;<br />
<br />
　다음은 &lt;제망매가&gt;입니다. 멋모를 때는 '제망/매가'라고 읽었는데, 정확하게는 '제/망매/가'가 맞지요. 사실 해석상의 큰 차이는 없습니다. 2행에서 '(죽고 사는 길이 - 여담이지만, 북한의 '죽사릿 길'이란 표현도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렸다고 봅니다) 여기 있으매, 두려워하고'라는 해석과 '~ 있으매, 머뭇거리고'라는 해석이 존재하지만 전체 맥락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지요. 또한 10구체 향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예시로 쓰기도 좋은 작품입니다.<br />
　우선 1-4행에서는 누이의 죽음에 마주선 괴로운 심경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가는 것인가'라는 탄식 속에서 육친에 대한 개인적인 고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어 5-8행에서는 개인적인 아픔이 생명체 일반의 원리로 확대되고 있고요. 모든 유한한 생명을 지배하는 힘인 '바람'과 보잘것 없는 개체의 이미지인 '잎'의 대립적 심상에서&nbsp;모든 생명체의 무상성(無常性)이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아참, 그리고 흔히들 '한 가지'는 부모로, '잎'은 형제로 해석하지만 이를 좀 더 확대해서 우리가 머무는 세상과 모든 인간 존재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br />
　이렇게 일어나고 전개된 시상은 9-10행에서 집약·마무리됩니다. 첫머리의 감탄사는 이처럼 심화된 고뇌의 극한에서 터져나오는 탄식이자 종교적 초극을 위한 탄성이기도 하지요. 즉, '감탄'이라는 것이 인간이 경험적으로 예측가능한 수준을 넘어설 때 나온다는 점에서 하나의 결절점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후에는 지상적 삶의 무상함을 넘어 광명의 세계에 이르고자 하는 불교적인 발원(아미타신앙)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것이고요.<br />
　그러고보면 육친의 죽음을 다룬 시가 참 많군요. 아들의 죽음을 다룬 &lt;유리창Ⅰ&gt;이나 &lt;은수저&gt;, &lt;눈물&gt;, 형제의 죽음을 다룬 &lt;이별가&gt;, &lt;하관&gt;, &lt;가을 무덤-제망매가&gt;… 그 중에서 똑같이 누이의 죽음을 소재로 한 &lt;가을 무덤 - 祭亡妹歌(제망매가)&gt;를 소개하며 오늘은 이만 끝낼까 합니다. <br />
<br />
<span style="COLOR: #ff99ff"><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ff99ff">누이야<br />
네 파리한 얼굴에 철철 술을 부어주랴<br />
시리도록 허연 이 零下의 가을에<br />
망초꽃 이불 곱게 덮고 웬 잠이 그리도 길더냐.<br />
풀씨마저 피해 나는 푸석이는 이 자리에<br />
빛 바랜 단발머리로 누워 있느냐.<br />
<br />
헝클어진 가슴 몇 조각을 꺼내어<br />
껄끄러운 네 뼈다귀와 악수를 하면<br />
딱딱 부딪는 이빨 새로<br />
어머님이 물려주신 푸른 피가 배어나온다.<br />
<br />
물구덩이 요란한 빗줄기 속<br />
구정물 개울을 뛰어 건널 때<br />
왜라서 그리도 숟가락 움켜쥐고<br />
눈물보다 찝찔한 설움을 빨았더냐.<br />
<br />
아침은 항상 우리 뒷켠에서 솟아났고<br />
맨발로도 아프지 않던 산길에는<br />
버려진 개암, 도토리, 반쯤 씹힌 칡,<br />
질척이는 뜨물 속의 밥덩이처럼<br />
부딪히며 하구로 떠내려갔음에랴.<br />
<br />
우리는 神經을 앓는<br />
中風病者로 태어나<br />
全身에 땀방울을 비늘로 달고<br />
쉰 목소리가 어둠과 싸웠음에랴.<br />
<br />
편안히 누운 내 누이야.<br />
네 파리한 얼굴에 술을 부으면<br />
눈물처럼 튀어오르는 술방울이<br />
이 못난 영혼을 휘감고<br />
온몸을 뒤흔드는 것이 어인 까닭이냐<br />
<br />
- written by 기형도</span></div><p></p></span><p></p><div align="center"></div><p></p><span style="COLOR: #c0c0c0">　다음에는 월명사와 쌍벽을 이루는 충담사의 향가가 이어지겠습니다. 분명히 또 엄청 길어지겠지만-_- 반(半)굽이를 돌아나온 듯하니 무언가 좀 뿌듯하네요^^a</span><p></p><br/><br/>tag : <a href="/tag/고전시가" rel="tag">고전시가</a>,&nbsp;<a href="/tag/향가" rel="tag">향가</a>,&nbsp;<a href="/tag/도솔가" rel="tag">도솔가</a>,&nbsp;<a href="/tag/제망매가" rel="tag">제망매가</a>,&nbsp;<a href="/tag/천지와귀신을감동시킨신라시대의노래" rel="tag">천지와귀신을감동시킨신라시대의노래</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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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맛있는 공부</category>
		<category>고전시가</category>
		<category>향가</category>
		<category>도솔가</category>
		<category>제망매가</category>
		<category>천지와귀신을감동시킨신라시대의노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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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0 Nov 2008 11:41:41 GMT</pubDate>
		<dc:creator>玄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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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향가 (8) - 원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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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pan style="COLOR: #339999"><a href="http://pds10.egloos.com/pds/200811/12/10/classic_7.hwp">classic_7.hwp</a><br><br>物叱好支栢史<br>秋察尸不冬爾屋支墮米<br>汝於多支行齊敎因隱<br>仰頓隱面矣改衣賜乎隱冬矣也<br>月羅理影支古理因淵之叱<br>行尸浪阿叱沙矣以支如支<br>皃史沙叱望阿乃<br>世理都之叱逸烏隱苐也<br>後句亡<br><br>「뜰의 잣[柏]이　　　　　　　　　　　　　　　　　　　　質 좋은 잣이<br>가을에 안 이울어지매　　　　　　　　　　　　　　　　　&nbsp; 가을에 말라 떨어지지 아니하매,<br>너를 어찌 잊어?」하신,　　　　　　　　　　　　　　　　　너를 重히 여겨 가겠다 하신 것과는 달리<br>우럴던 낯이 계시온데,　　　　　　　　　　　　　　　　　&nbsp;낯이 변해 버리신 겨울에여.<br>달 그림자가 옛 못[淵]의　　　　　　　　　　　　　　　　 달이 그림자 내린 연못 갓<br>가는 물결 원망하듯이,　　　　　　　　　　　　　　　　　 지나가는 물결에 대한 모래로다<br>얼굴사 바라보나,　　　　　　　　　　　　　　　　　　　&nbsp; 모습이야 바라보지만<br>누리도 싫은지고!　　　　　　　　　　　　　　　　　　　&nbsp; 세상 모든 것 여희여 버린 處地여.<br>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span><br><br><span style="BACKGROUND-COLOR: #ccffff"><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효성왕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에 현명한 신하 신충과 함께 궁중 뜰의 잣나무 아래서 바둑을 두다가 말하기를,<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뒷날에 내가 결코 그대를 잊지 않을 것을 이 잣나무를 두고 맹세하겠다."<br>고 하니 신충은 일어나 절을 했다. 몇 달이 지나 왕으로 즉위하고 공로가 있는 신하들에게 상을 줄 때, 신충을 잊고 차례에 넣지 못했다. 신충은 이를 원망하여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였다. 그랬더니 잣나무가 갑자기 누렇게 되었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잣나무를 살펴보도록 하였더니 나무에서 노래를 찾아내 바쳤다. 왕이 크게 놀라면서<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정사가 너무 복잡하고 바빠서 공신을 잊었구나."<br>하고 신충을 불러서 벼슬을 주었다. 그러자 그 나무는 다시 살아났다. 노래는 이러하다.<br><em>&lt;원가&gt;</em><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이로부터 두 임금께 총애를 받았다.<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경덕왕(효성왕의 아우) 22년(763) 계묘에 신충은 두 친구와 약속하고 벼슬을 그만두고 남악으로 들어갔는데 두 번씩이나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깎고 불도를 닦는 사람이 되어 왕을 위하여 단속사를 짓고 거기에서 살았다. 그가 평생을 산 속에서 숨어 살면서 대왕의 복을 빌겠다고 원하므로 왕도 이를 허락하였다. 단속사의 금당 뒷벽에 영정을 모셔 두었는데 그것이 곧 경덕왕의 복을 빌기 위한 것이었다.<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절 남쪽에 속휴라는 마을이 있는데 지금은 와전되어 소화리(삼화상전에 보면 신충의 봉성사가 있는데 여기와는 서로 다르다. 따져보면 신문왕 대는 경덕왕 대를 지난 지 이미 백여 년이 되었다. 하물며 신문왕과 신충이 과거세의 인연이 있다 함은 이 신충이 아닌 것이 분명하니 마땅히 잘 알아 밝혀야겠다)라 한다. 또 딴 기록에는, 경덕왕 때에 직장 이준(고승전에는 이순이라 했다)이 일찍부터 발원하여 나이 50이 되자 마침내 출가하여 절을 지었다. 그는 천보 7년 무자에 50의 나이로 조연사의 작은 절을 큰 절로 고쳐 단속사라 하고 자신도 삭발하고 법명을 공굉장로라 하였다. 그 절에서 산 지 20년 만에 죽었다 하니 삼국사의 기록과는 같지 않다. 두 기록을 다 실어두어 의아한 점을 덜고자 한다. 찬을 하자면,<br><br>공명은 다하지 못했는데 귀밑머리 희어지니<br>임금의 사랑은 많다 해도 나이는 바쁘구나<br>언덕 너머 산 그림자 꿈에 자주 뵈니<br>올라가 향불을 받들어 우리 임금 축복하리<br><br><div style="TEXT-ALIGN: right">- 『삼국유사』권5, 피은(避隱), 신충 괘관</div></span><br>　신충이 관(冠)을 걸었답니다. 어디에, 왜일까요. 그를 직접 만날 수 없으니 믿어야 할 건 남아있는 자료뿐이지요. 배경설화를 보니까, 이런. 왕이 약속을 어겼네요. 한식의 유래가 되었던 개자추와&nbsp;비슷한&nbsp;상황에서 신충은&nbsp;노래 한 수를 남깁니다. 그리고 그 노래가 붙은 잣나무는&nbsp;누렇게 변합니다. 아마 이 잣나무는&nbsp;왕과 신충이 바둑을 둘 때 그늘을 만들어주었던 그 나무였겠지요(불쌍해라! 나무는 또 무슨 죄람). 왕은 무슨 일인가 싶어 알아봅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일을 바로 잡자 죽어가던 나무까지도 되살아나지요.<br>　하지만 왕이 그냥 까먹었을까요? 그것도 불과 몇 달만에요? 그래서 당시의 정치 상황과 결부시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답니다. 33대 성덕왕 이후 절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외척세력의 의사에 반(反)할 수 없었던 효성왕이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고요. 이렇게 본다면 6행의 '물결'은 외척세력을 비유하는 말이 되며, 왕이 &lt;원가&gt;를 받아본 후 신충에게 벼슬을 준 것도 이들의 양해하에 이루어졌을 거라고 하네요.<br><br>　이처럼 배경설화와 함께 작품을 볼 때 &lt;원가&gt;를 주술적인 성격을 가진 노래라고 분류하지요. 하지만 이전 시기의 &lt;구지가&gt; 같이 '보편적'인 것을 위하지는 않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내려왔다고 할 수 있지요. 한편으로는 관리의 노래라고 합니다. 자기희생적 화랑도 정신이 유교적 공리주의로 바뀌면서 개인의 입신양명을 드러내는 노래라고 보고 있지요. 왕과 신하의 얘기가 나올 때 당연한 듯 따라나오는 연군시가라는 말도 있고요. 그러나 노래 자체를 놓고 봤을 때에는 서정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늘 푸른 잣나무를 보며 다짐한 약속이 냉담하게 변한 것으로 인한 삭막한 심적 상태를 서술하며, 모든 것을 체념한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읊었다고요.<br><br>　노래를 조금 더 살펴볼까요. 1-3행에서는 왕의 말을 그대로 옮기고 있습니다. 가을과 잣나무가 대비되며, 잣나무가 가지고 있는 '불변'이라는 속성이 더 강조되지요. 또한 이 잣나무는 주술적인 상관물이기도 합니다. 배경설화에서 죽었다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잖아요. 가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언령'이라는 것, 그리고 말의 힘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br>　어쨌든, 왕의 모습은 그때와 다르게 변해버렸습니다. "우럴던 낯이 계시온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든(홍기문 선생의 해독에서는 "우럴던 그 낯이 고쳐질 줄이야"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요. '改'를 음으로 읽는지 뜻으로 읽는지의 차이로 보입니다), "낯이 변해 버리신 겨울에여"라고 얘기하든 왕이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요. 지금이었다면야 '님아, 이러기임?&nbsp;나랑 장난하셈?'이라며 드잡이질이라도 하련만, 그랬다간 정말 목이 날아가게요. 그저&nbsp;고요한 연못에 물결이 이는 상황을 그리며 복잡다단한 정치적 파란이 왕과 자신을 갈라놓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br>　양주동 선생의 해독을 따라가자면, 이후 7-8행은&nbsp;왕의 모습을&nbsp;예전 그대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가망이 없다는 한탄의 목소리로 끝을 맺고 있지요. 세상 모든 게 다 싫다며 원망을 외부로 돌리고 있습니다. 반면 김완진 선생의 해독을 따라가면 6행에서 이미 물결(세파)과 모래(세파에 휩쓸리는 보잘 것 없는 자신)가 대비되며, 이어서 상황에 대한 원망보다 비참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이 드러나지요. 개인적으로는 내면을 응시하고 있는 후자쪽이 좀 더 마음에 들었답니다.<br><br>　남아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8구체 논란이 있을법 하지만, 『삼국유사』에서부터 뒷부분은 실전되었다고 표시되어 있으니 10구체 향가로 분류되고 있답니다. 보통 10구체 향가는 9-10행에서 시상의 마무리가 이루어지므로, 이런 자신의 심사를 어떻게 달래려고 했는지 신충의 내면이 무척이나 궁금해지네요.<br>　&lt;원가&gt; 이후, 경덕왕대의 산문기록은 향가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에는 경남 산청의 단속사 연기 설화이며, 아마도 일연 스님이 덧붙이지 않았을까, 라고 하시더군요.<br><br><span style="COLOR: #999999">　와아, 이렇게 해서 다음부터는 경덕왕대로 넘어갑니다. &lt;제망매가&gt;나 &lt;찬기파랑가&gt; 같이 개인서정시로서 향가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시기이지요. 시험도 끝났으니 달려보자! 라고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아직 학기가 남아 있어서 여전히 띄엄띄엄 갈 것 같네요^^;</span><br/><br/>tag : <a href="/tag/고전시가" rel="tag">고전시가</a>,&nbsp;<a href="/tag/향가" rel="tag">향가</a>,&nbsp;<a href="/tag/원가" rel="tag">원가</a>,&nbsp;<a href="/tag/말의힘" rel="tag">말의힘</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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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2 Nov 2008 03:33:05 GMT</pubDate>
		<dc:creator>玄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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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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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img class="image_righ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3.egloos.com/pds/200811/11/10/c0049510_4918c9bb40642.jpg" width="200" height="27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3.egloos.com/pds/200811/11/10/c0049510_4918c9bb40642.jpg');" align="right" />　집에서의 시간을 고이 묻어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nbsp;터미널에서 멍청하게 앉아 기다리다가 읽을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보니 빼꼼 고개를 내미는 파란 돈 한 장. 좀 발랄하게 읽을 책 없을까 하는 생각에&nbsp;서점에 들어갔었지만 결국 손에 들려있는 건 &lt;엄마를 부탁해&gt;. '엄마'라는 말을 보니 아까 전에 "빠이빠이. 다음 달에 봐요오~" 말하고 나온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br><br>　사실 신경숙의 소설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읽을 때마다 어느새 책 속의 그녀들에게 동화되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한없이 느려지곤 했으니. 그런데 &lt;엄마를 부탁해&gt;는 좀 달랐다. 읽으면서 가슴이 아프고, 가끔씩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면서도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보게 하는 힘이 있었달까.<br><br>　엄마가 사라졌다. 아버지의 생신이라고 같이 올라오시던 서울길, 지하철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친 것이다. 가족들은 전단지를 만들어서 엄마를 찾아나선다. 전단지에 넣을 사진을 찾다보니 최근의 엄마 사진이 없다는 당혹감부터 두 분이서 오실 수 있다는 말에 아무도 마중을 나가지 않은 것, 그리고 하나씩 떠오르는 자책들.<br>　처음에는 엄마랑 가장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갔다. 아니, 그걸 딸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행동의, 감정의 주체는 큰딸 지헌이었지만 '나'가 아닌 '너'라고 나오는 대명사들은 그저 따뜻하게 바라보는 엄마를 닮아있었다.&nbsp;다음은 아들의 시선, 혹은 아들을 바라보는 그 누군가의 시선.&nbsp;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찾아가면서 그는 깨달았다. 엄마는 그가 살았던 동네들을 돌아다닌걸. 하나씩 되살아나는 과거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를 찾는 시선은 이제 아버지에게로 옮겨간다. 살을 맞대고 살았으면서도 잘 몰랐던 그녀에 대한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 하지만 '당신'이라는 지칭어는, 큰딸에게 "부탁헌다…… 니 엄마…… 엄마를 말이다."고 하는 목소리는 엄마와 아버지의 간극을 좁힌다. 이번에는 엄마 자신의 이야기. 둘째 딸을 바라보며, 옛날을 회상하며 누구한테랄 것 없이 얘기를 하는 엄마는 엄마면서, 또한 한 사람이었다. 알면서도 그녀가 '엄마'니까 흔히 잊고 사는 사실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지.<br>　그리고는 다시 큰딸의 목소리로 돌아간다. 그녀가 읽어내려가는 여동생의 편지. <span style="COLOR: #339999">"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span>라는 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은 왜 그리 눈물겹던지. 피에타상을 보고 돌아나오며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고 흘려버린 한 마디가 자꾸 가슴에 남더라. 흔한 얘기, 뻔한 신파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익숙한 것에서 오는 공감, 그리고 그로 인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은 불현듯 나를 돌아보게 한다.<br/><br/>tag : <a href="/tag/신경숙" rel="tag">신경숙</a>,&nbsp;<a href="/tag/엄마를부탁해" rel="tag">엄마를부탁해</a>,&nbsp;<a href="/tag/문학은힘이세다" rel="tag">문학은힘이세다</a>,&nbsp;<a href="/tag/엄마사랑해" rel="tag">엄마사랑해</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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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행복한 독서</category>
		<category>신경숙</category>
		<category>엄마를부탁해</category>
		<category>문학은힘이세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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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1 Nov 2008 02:10:12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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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호모 부커스 / 이권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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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　시험을 끝내고 돌아와서, 미뤄둔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얼음집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요 녀석 때문이죠. 어느새 렛츠리뷰 쪽에서 비밀덧글도 달아두었더군요(…) 책을 받은 게 보름도 더 지난 일이니 그럴 수밖에요. 왠지 좀 민망합니다만, 음, 여튼 그린비의 '달인 시리즈'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권이었던 &lt;호모 쿵푸스&gt;가 좋아하는 작가 고미숙씨의 책이었거든요. (조만간 이 시리즈 책 한 권을 더 낼 거라네요. 그것도 기대가 됩니다) 사실 도서평론가라는 지은이의 이름은 낯설었지만 그린비에 대한 기대로, 그리고 '책'이라는 주제가 들려줄 또 다른 이야기가 기대되어서 냉큼 신청하게 되었답니다.<br><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11/10/10/c0049510_49179a7258cc4.jpg" width="500" height="380.27108433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11/10/10/c0049510_49179a7258cc4.jpg');" /></div></p><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999999">오자마자 받아서 사진부터 찍었던 택배. 그린비 블로그는 전부터 외부 링크를 걸어두고 가끔 들어가 본답니다:)<br>그렇지만 '국어교육과'를 '국어국문학과'로 적어 보내서 좀 마음 아팠어요.</span><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11/10/10/c0049510_49179a7893279.jpg" width="500" height="380.27108433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11/10/10/c0049510_49179a7893279.jpg');" /></div></div><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999999">표지부터 맘에 들었던 책. 아래 쪽에는 '드림'이라는 도장도 찍혀있었습니다. 동글동글, 예쁘더라구요//</span></div><p>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먼저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풀어놓고 있었지요. 김용석씨와의 이야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분이 제게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냥 놔두어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악한 것이고, 애를 써서 해야 겨우 이루어지는 것은 선한 것이라 할 때- 시간을 내야 되고, 무슨 말인지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되며, 때로는 자신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대치하기도 하는 책읽기, 그 책읽기의 괴로움을 돌아보면 '책읽기는 선한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는 말 말입니다. 재밌는 것이 너무도 많은 이 시대, 굳이 책을 찾아 읽는 사람들을 위안해준다고나 할까요^^;<br>　그렇지만 앞 부분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고통을 공감하는 상상력'이었습니다. 저자는 "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공감하고 함께하려고 이끄는 책'이 좋은 책이라며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을 키우려'고, 답하고 있습니다. 함께 실려있던 &lt;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gt;, &lt;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gt;의 표지를 볼 때의 그 느낌. 차마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었더랬죠. 천천히 읽기의 미학은 여기서 빛을 발하는구나 싶었습니다.<br><br>　남은 부분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지요. 재미를 위한 책읽기도 너그러이 보는 작가가 &lt;삼국지&gt;를 읽지 마라고 하는 건 좀 우스웠지만 - 물론 &lt;삼국지&gt;가 가당찮게 '논술 교재'로 많이 팔리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었지만 말예요. 어렸을 적 기억 한 가닥을 &lt;삼국지&gt;에 두고 있는 사람으로 그런 얘기를 들으니 섭섭했달까요. - 나머지 얘기는 새겨 들을만한 구석이 있었지요. 천천히 읽기를 강조한다든가, 깊이 읽기와 겹쳐 읽기를 강조한다든가요. 사실 후자는 딱히 얘기를 하지 않아도 이른바 '책벌레'라면 한번씩 경험해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를테면 한 때 김탁환에 빠져있을 때 보이는 족족 책을 다 사모았던 기억이나, 혹은 &lt;식민지의 적자들&gt;이라는 책 한 권으로 개화기를 다룬 소설과 역사책들, 게다가 문학 비평서들까지 읽어제꼈던 기억들 말입니다. 이와 더불어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도 흥미로웠고요. 각주를 통해 더 넓고 깊게 책을, 그리고 작가를 이해하는 읽기. '이크'라는 감탄사로 대표되는 더 높은 수준의 읽기. 그야말로 '행복한 책읽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지요.<br><br>　끝에서는 독후감과 독서 교육, 쓰기 위한 읽기에 대한 글들이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 학교 현장으로 나갈 거지만 - 더 정확하게는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지만 - 아마 현직에 있으신 분들이 보면 경험과 연결지어서 더 깊은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읽고 토론하고 쓰기'라는 대전제에는 공감하지만,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꽤 이견이 보이더군요. 지금은 또 차 시간에 쫓기다보니 이번 주 중으로 다시 트랙백(…)을 걸도록 하겠습니다^^;<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10.egloos.com/pds/200811/10/10/c0049510_4917a44a19d1f.jpg" width="500" height="380.27108433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10.egloos.com/pds/200811/10/10/c0049510_4917a44a19d1f.jpg');" /></div></p><div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999999">덧. 요건 같이 왔던 &lt;열하일기&gt; 엽서 중 하나입니다. 18세기, 그야말로 '충격'이었던 유리창.<br>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지만- 부피가 가져다주는 무게감은 이길 수 없지 않을까요:)</span></div><br><a href="http://valley.egloos.com/review/item.php?id=10331"><img alt="렛츠리뷰" src="http://md.egloos.com/img/review/lets_banner.gif" border="0"></a><br/><br/>tag : <a href="/tag/렛츠리뷰" rel="tag">렛츠리뷰</a>,&nbsp;<a href="/tag/호모부커스" rel="tag">호모부커스</a>,&nbsp;<a href="/tag/이권우" rel="tag">이권우</a>,&nbsp;<a href="/tag/행복한책읽기" rel="tag">행복한책읽기</a>			 ]]> 
		</description>
		<category>행복한 독서</category>
		<category>렛츠리뷰</category>
		<category>호모부커스</category>
		<category>이권우</category>
		<category>행복한책읽기</category>

		<comments>http://azureciel.egloos.com/4721839#comments</comments>
		<pubDate>Mon, 10 Nov 2008 03:01:02 GMT</pubDate>
		<dc:creator>玄月</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향가 (7) - 헌화가 ]]> </title>
		<link>http://azureciel.egloos.com/4709078</link>
		<guid>http://azureciel.egloos.com/4709078</guid>
		<description>
			<![CDATA[ 
  <span style="COLOR: #339999"><a href="http://pds12.egloos.com/pds/200811/03/10/classic_6.hwp">classic_6.hwp</a><br />
<br />
紫布岩乎邊希　　　　　　　　　　　자줏빛 바위 끝에,　　　　　　　　　　자주빛 바위 가에<br />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잡으온 암소 놓게 하시고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br />
吾肹不喩慙肹伊賜等　　　　　　　　나를 아니 부끄러하시면,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br />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꽃을 꺾어 받자오리이다.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br />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br />
</span><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ccffff">성덕왕(702-737) 때에 순정공이 강릉(지금의 명주) 태수로 부임해 가는 도중이었다. 가다가 어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옆에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 절벽이 바다에 맞닿았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었으며, 그 위에는 철쭉꽃이 만발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는 그 꽃을 보고 옆사람들에게<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이 누구입니까?"<br />
하니 모시는 사람들이 모두<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사람이 발 붙일 곳이 못 됩니다."<br />
하고 난색을 표하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마침 한 노인이 암소를 끌고 지나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철쭉꽃을 꺾어 가지고 와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바쳤으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다시 이틀 동안 길을 가다가 바닷가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용이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순정공은 발을 동동 구르며 땅을 쳐 보았지만 아무 방법이 없었다. 한 노인이 있다가<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옛 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하였는데 지금 바다 짐승이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당장 이 경내의 백성을 불러서 노래를 부르며 몽둥이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br />
라고 하였다. 순정공이 노인이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용이 바다에서 부인을 데리고 나와 바쳤다.<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순정공은 부인에게 바닷 속의 사정을 물었다. 부인은<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칠보 궁전에 음식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가 있고 깨끗하여 세상에서 흔히 먹는 익히거나 삶은 음식이 아니더라."<br />
고 하였다. 수로부인의 옷에도 향기가 배어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기가 아니었다.<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수로부인의 자색과 용모가 절대가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에게 잡히었다. 여럿이 부른 해가의 가사는 이러하다.<br />
<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거북아 거북아 수로 부인을 내어놓아라<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남의 부녀 약탈한 죄 얼마나 큰가<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네 만약 거역하고 내어놓지 않으면<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그물로 잡아내어 구워 먹겠다.<br />
<br />
<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노인이 꽃을 바치며 부른 노래는 이러하다.<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04, 255, 255);"><br />
</span><div style="TEXT-ALIGN: right"><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04, 255, 255);">- 『삼국유사』권2, 기이(紀異), 수로부</span><span class="Apple-style-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04, 255, 255);">인</span></div></span><br />
　&lt;헌화가&gt;는 사실 노래 자체는 간단한 편입니다. 물론 어석의 차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 이를테면 철쭉꽃의 빛깔을 두고 '붉은', '짙붉은', '자줏빛' 같은&nbsp;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요. - 해독에 필요한 기본적인 바탕은 마련되어 있지요. 원전비판 문제에 거의 이견이 없으며, 끊어읽기도 마찬가지구요. 그렇다면 4구체 향가의 짧은 내용 속에서 더 이상 논의할 게 없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 문맥 속에서 &lt;헌화가&gt;를 읽을 때엔 간단한 문제가 아니랍니다.<br />
　향가는 흔히들 그 배경설화까지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그러지요. 서정시로서의 독자적인 미학이 없다고 말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일이지만, 문맥 속에서 파악할 때야 다층적인 의미가 드러난다고요. 그렇게 볼 때 &lt;헌화가&gt;의 배경설화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배경설화는 노인헌화담과 수로부인의 피랍담이 결합되어 있지요. 주로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전자입니다.<br />
<br />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牽牛老翁)의 정체입니다. 불교적인 가요라는 입장에서는 소를 찾는(尋牛) 선승으로 보고 있으며, 농경의례와 관련된 농신이나 도교 사상과 관련된 도교적 신선이라고도 하지요. 혹은 생명을 무릅쓰고 절벽을 기어올라 꽃을 바쳤다는 측면에서 신사도의 기백을 가진 노신사로 보아 화랑적 시가로 보는 견해도 있고요. 깊은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평범한 시골 농부로 보기도 합니다.<br />
　이는 시가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노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선 불교적 수행과 관련된 선승의 노래라고 보는 쪽이 있지요. (그러나 '심우(尋牛)'는 선종에서 나오는 이미지인데, 노래는 33대 성덕왕, 선종의 유입은 42대 흥덕왕 때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 무리한 해석이 아닌가, 라는 의견도 있답니다.) 또한 초자연적 신이나 신격화된 인물의 노래, 일상적인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 세속적 노래, 토착의 주술·종교적 제의와 관련된 무속적 노래라는 관점도 있습니다.<br />
<br />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서 조금 더 들어가볼까요. 예창해 선생은 수로부인을 접신(接神) 과정을 겪는 여인이라 봅니다. 용이나 노옹은 신격으로, 순정공은 그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유자(선비라고 보시면 되지요)로 파악하여 이 시기 신라사회의 무속 원리와 유교 원리의 대립으로 보고 있습니다. 불교가 들어왔을 때 그러했듯이, 유교 역시도 대립의 과정을 안 거쳤을까 생각해보면 그럴듯해 보입니다.<br />
　이와는 조금 다르게,&nbsp;조동일 선생은 &lt;해가&gt;와 &lt;헌화가&gt;를 동일한 원리에서 보고 있지요. 순정공은 관권의 대리자로, 수로부인은 무당으로, 노인은 민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격으로 설정하여 신라 지배층이 민심 수습책으로 행했을 굿과 관련짓습니다. 특히 여기서는 꽃을 받는 것을 영력(靈力)을 갖기 위한 신병 체험으로 보고 있지요.<br />
　여기현 선생 역시 유사한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lt;헌화가&gt;는 꽃거리, &lt;해가&gt;는 용거리와 관련 지어 제물, 그리고 죽음과 재생이라는 내용을 풀어나가지요. 가뭄에 백성을 구제하였다는 내용이 대부분인 성덕왕條가 기이(紀異)편에 수록된 것은 그만큼 가뭄이 심각했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노옹이 끌고 나오는 소는 원래 제물이지만, 암소를 바쳐 제의의 효과를 얻기에는 위기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기존의 제물로는 효과를 볼 수 없었다네요. 때문에&nbsp;가뭄이 들면 왕이 기우제의 희생이 되었던 고대의 전통을 따라 제물의 효력과 제물의 가치를 갖춘 수로부인이 - 본래 지니고 있는 여성 원리로 生生力을 상징하며, 생생력이 극에 달한 붉은 철쭉을 받음으로써 이 힘은 배가되지요 - 대체 제물로 쓰인 것이라고요.<br />
　아마 제의적인 성격과 관련해서 서사문맥을 함께 읽는 것이 전체적인 상을 아우를 수 있는 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선(晝饍)'이나 '꽃'의 의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거든요. 보통 보통 일반인의 점심은 '주식', '중화'라고 표현하는 반면 임금의 식사나 제사의 제물을 두고 '주선'이라고 한다는데- 이를 보면 낭떠러지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무사안위를 비는 노래라는 제의적 관점이 힘을 얻습니다. 또한 왜 하필이면 '꽃'이었을까요. 우리 문학사에서 꽃이 연정의 모티브로 쓰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뒤에서 살펴볼 &lt;도솔가&gt;의 경우에도 꽃은 주술적 상관물로 나타나고 있으며, 고려가요에서도 꽃을&nbsp;꺾어서 사랑을 표현하는&nbsp;모습은 보이지 않네요. 유독 이 작품에서만 꽃을 연정의 모티브로 해석할 이유가 있을까요.<br />
<br />
　하지만, 그러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성기옥 선생의 견해에 눈길이 가네요. 서사문맥의 비중이 아무리 막중하더라도 관심의 초점이 서사문맥에 집중되어 버리면,&nbsp;시가 자체의 성격이 모호해진다고 하지요. 시가를 표층적인 수준에서만 살피면 &lt;헌화가&gt;는 명백하게 남성화자가 여인에게 꽃을 꺾어 바치는 구애의 언어 형태이며, 노인 헌화담과 수로부인 피랍담이라는 각각 완결된 두 개의 배경설화는,&nbsp;일연의 논평을 따라간다면&nbsp;'수로부인이 절대가인이라서' 일어나는 일이라고요. 물속의 용까지, 천 길 벼랑을 오를 수 있는 비범함을 보이는 노인까지 빠져들게 하는 '여성적 아름다움의 마력적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nbsp;따라서 &lt;헌화가&gt;는 신화적 인물이 인간(여성)에게 바치는 구애의 노래이며, 이 같은 '인간적 아름다움의 초월성'에서 신라 사람들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네요. 선덕여왕과 지귀처럼 신분적 질곡을 뛰어넘을 수 있으며, 惡神(처용의 아내를 탐한 역신)이나 鬼神(도화녀를 찾아간 진지왕)까지 감동시키며 신들의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미의식을 말이지요.<br />
　아래에 첨부하는 세 편의 시 역시 이 같은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특히 마지막 시에 시인이 덧붙인 말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네요:)<br />
<br />
<a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block';this.innerHTML=''" href="javascript:void(0)" ;="">老人獻花歌(노인헌화가)</a><div style="DISPLAY: none"><br />
<span style="COLOR: #ff99ff">老人獻花歌</span><br />
<br />
<span style="COLOR: #999999">「붉은 바위ㅅ가에<br />
　잡은 손의 암소 놓고,<br />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br />
　꽃을 꺾어 드리리다」<br />
<br />
이것은 어떤 신라의 늙은이가<br />
젊은 여인네한테 건네인 수작이다.<br />
<br />
「붉은 바위ㅅ가에<br />
　잡은 손의 암소 놓고,<br />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br />
　꽃을 꺾어 드리리다」<br />
<br />
햇빛이 포근한 날 ― 그러니까 봄날,<br />
진달래꽃 고운 낭떠러지 아래서<br />
그의 암소를 데리고 서 있던 머리 흰 늙은이가<br />
문득 그의 앞을 지나는 어떤 남의 안사람보고<br />
한바탕 건네인 수작이다.<br />
<br />
자기의 흰 수염도 나이도<br />
다아 잊어버렸던 것일까?<br />
<br />
물론<br />
다아 잊어버렸었다.<br />
<br />
남의 아내인 것도 무엇도<br />
다아 잊어버렸던 것일까?<br />
<br />
물론<br />
다아 잊어버렸었다.<br />
<br />
꽃이 꽃을 보고 웃듯이 하는<br />
그런 마음씨 밖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었다.<br />
<br />
*<br />
<br />
騎馬의 남편과 同行者 틈에<br />
여인네도 말을 타고 있었다.<br />
<br />
「아이그마니나 꽃도 좋아라<br />
　그것 나 조끔만 가져 봤으면」<br />
<br />
꽃에게론 듯 사람에게론 듯<br />
또 공중에게론 듯<br />
<br />
말 위에 갸우뚱 여인네의 하는 말을<br />
남편은 숙맥인 양 듣기만 하고,<br />
同行者들은 또 그냥 귓전으로 흘려 보내고,<br />
오히려 남의 집 할아비가 지나다가 귀動鈴하고<br />
도맡아서 건네는 수작이었다.<br />
<br />
「붉은 바위ㅅ가에<br />
　잡은 손의 암소 놓고,<br />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br />
　꽃을 꺾어 드리리다」<br />
<br />
꽃은 벼랑 위에 있거늘,<br />
그 높이마저 그만 잊어버렸던 것일까?<br />
물론<br />
여간한 높낮이도<br />
다아 잊어버렸었다.<br />
한없이<br />
맑은<br />
空氣가<br />
요샛말로 하면 ― 그 空氣가<br />
그들의 입과 귀와 눈을 적시면서<br />
그들의 말씀과 수작들을 적시면서<br />
한없이 親한 것이 되어가는 것을<br />
알고 또 느낄 수 있을 따름이었다.</span><br />
<br />
<a onclick="this.parentNode.style.display='none';this.parentNode.previousSibling.innerHTML='[서정주, 『新羅抄』에서]';" href="javascript:void(0)">[닫기]</a></div><br />
<br />
<a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block';this.innerHTML=''" href="javascript:void(0)" ;="">水路夫人(수로부인)의 얼굴 - 美人(미인)을 찬양하는 新羅的語法(신라적어법)</a><div style="DISPLAY: none"><br />
<span style="COLOR: #ff99ff">水路夫人의 얼굴 - 美人을 찬양하는 新羅的語法</span><br />
<br />
<span style="COLOR: #999999">1<br />
<br />
암소를 끌고 가던<br />
수염이 흰 할아버지가<br />
<br />
그 손의 고삐를<br />
아조 그만 놓아 버리게 할만큼,<br />
<br />
소 고삐 놓아 두고<br />
높은 낭떠러지를<br />
다람쥐 새끼 같이 뽀르르르 기어오르게 할만큼,<br />
<br />
기어 올라 가서<br />
진달래 꽃 꺾어다가<br />
<br />
노래 한 수 지어 불러<br />
갖다 바치게 할만큼,<br />
<br />
2<br />
<br />
亭子에서 點心먹고 있는것<br />
엿 보고<br />
바닷속에서 龍이란 놈이 나와<br />
가로 채 업고<br />
천길 물속 깊이 들어가 버리게 할만큼,<br />
<br />
3<br />
<br />
왼 고을안 사내가<br />
모두 몽둥이를 휘두르고 아노게 할만큼,<br />
왼 고을안 사내들의 몽둥이란 몽둥이가<br />
한꺼번에 바닷가 언덕을 아푸게 치게 할만큼,<br />
<br />
왼 고을안의 말씀이란 말씀이<br />
모조리 한꺼번에 몰려 나오게 할만큼,<br />
<br />
「내놓아라<br />
　내놓아라<br />
　우리 水路<br />
　내놓아라」<br />
여럿의 말씀은 무쇠도 녹인다고<br />
물 속 천리를 뚫고<br />
바다 밑바닥까지 닿아가게 할만큼,<br />
<br />
4<br />
<br />
업어 간 龍도 독차지는 못하고<br />
되업어다 江陵 땅에 내놓아야 할만큼,<br />
안장 좋은 거북이 등에<br />
되업어다 내놓아야 할만큼,<br />
<br />
그래서<br />
그 몸둥이에서는<br />
왼갖 용궁 향내 까지가<br />
골고루 다 풍기어 나왔었었느니라.</span><br />
<br />
<a onclick="this.parentNode.style.display='none';this.parentNode.previousSibling.innerHTML='[서정주, 『冬天』에서]';" href="javascript:void(0)">[닫기]</a></div><br />
<br />
<a onclick="this.nextSibling.style.display='block';this.innerHTML=''" href="javascript:void(0)" ;="">水路夫人(수로부인)은 얼마나 이뻤는가?</a><div style="DISPLAY: none"><br />
<span style="COLOR: #ff99ff">水路夫人은 얼마나 이뻤는가?</span><br />
<br />
<span style="COLOR: #999999">그네가 봄날에 나그네길을 가고 있노라면,<br />
天地의 수컷들을 모조리 惱殺하는<br />
그 美의 瑞氣는<br />
하늘 한복판 깊숙이까지 뻗쳐,<br />
거기서 노는 젊은 神仙들은 물론,<br />
솔 그늘에 바둑 두던 늙은 神仙까지가<br />
그 引力에 끌려 땅 위로 불거져 나와<br />
끌고 온 검은 소니 뭐니<br />
다 어디다 놓아 두어 뻐리고<br />
철쭉꽃이나 한 가지 꺾어 들고 덤비며<br />
청을 다해 노래 노래 부르고 있었네.<br />
또 그네가 만일<br />
바닷가의 어느 亭子에서<br />
도시락이나 먹고 앉었을라치면,<br />
쇠붙이를 빨라들이는 磁石 같은 그 美의 引力은<br />
千 길 바다 속까지 뚫고 가 뻗쳐,<br />
징글 징글한 龍王이란 놈까지가<br />
큰 쇠기둥 끌려 나오듯<br />
海面으로 이끌려 나와<br />
이판사판 그네를 둘쳐업고<br />
물 속으로 깊이 깊이 깊이<br />
잠겨 버리기라도 해야만 했었네.<br />
<br />
그리하여<br />
그네를 잃은 모든 山野의 男丁네들은<br />
저마다 큰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나와서<br />
바다에 잠긴 그 아름다움 기어코 다시 뺏어 내려고<br />
海岸線이란 海岸線은 모조리 모조리 亂打해 대며<br />
갖은 暴力의 데모를 다 벌이고 있었네.<br />
<div align="right">- 『三國遺事』第二卷, 「水路夫人」條.</div><br />
　* 統一新羅의 聖德王 때의 이 美女 水路는 可謂 &lt;傾天·傾海·傾國之色&gt;까지가 되는 것이니, 중국에서 옛부터 王昭君이니 西施니 趙飛燕이니 楊貴妃니 하는 미녀를 보고 &lt;傾國之色&gt;이라고 홑으로 표현해 온 따위는 우리 水路의 美의 표현의 발꿈치에도 감히 따르지 못할 일이었던 것만 같도다.<br />
　그리고 『三國遺事』나 그 밖의 옛 역사책에서 이런 류의 이얘기들을 읽는 학생들에게 특히 간절히 당부하고 싶은 것은 「龍이 바다 속으로 업고 들어갔으면 어떻게 살아 남지? 그러니 이런 건 현대와는 관계가 있을 수 없는 케케묵은 엣날 이얘길 뿐이란 말이야.」 어쩌고 해 버리지 말고, 「일테면 그럴 만큼 이뻤었다.」는 上代 隱喩의 은근한 맛을 이해해 맛보아 내야 한다는 것이다.</span><br />
<br />
<a onclick="this.parentNode.style.display='none';this.parentNode.previousSibling.innerHTML='[서정주, 『鶴이 울고 간 날들의 詩』에서]';" href="javascript:void(0)">[닫기]</a></div><br />
<br />
<span style="COLOR: #999999">　4구체 향가가 이렇게 길게 갈 줄이야… 그래도 예쁘면 다 용서가 됩니다(?!)<br />
　+) 거북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영문도 모르게 머리를 내놓으라지 않나, 용이 데려간 수로부인을 찾아오라지 않나, 툭하면 뭘 내 놓으라고 그러니 말이죠^^;</span><br/><br/>tag : <a href="/tag/고전시가" rel="tag">고전시가</a>,&nbsp;<a href="/tag/향가" rel="tag">향가</a>,&nbsp;<a href="/tag/헌화가" rel="tag">헌화가</a>,&nbsp;<a href="/tag/아름다움이가진힘" rel="tag">아름다움이가진힘</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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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맛있는 공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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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3 Nov 2008 09:33:41 GMT</pubDate>
		<dc:creator>玄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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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千년의 우리소설 1 - 사랑의 죽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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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lt;심생전&gt;을 찾는데 학교에는 없어서- 인터넷 서점을 뒤지다보니 '千년의 우리 소설'이라는 게 있더군요. 냉큼 신청해서 받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千년의 우리 소설'은&nbsp;돌베개에서 기획한 고소설&nbsp;시리즈로, 9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소설을 다루고 있어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하네요. 고소설에는 수많은 이본이 있는데 이를 대조하는 정본화 작업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대신 두루 망라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현대 독자들의 흥미를 끌만한 작품을 가려 뽑아서 고소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한다네요.<br><br>　첫 번째 권은 '사랑의 죽음'이라는 부제 아래 네 편의 소설을 다루고 있었습니다.<br><br>　먼저 &lt;심생전&gt;. 18세기 유려한 소품문을 썼던 이옥의 작품이지요. 수능을 치던 첫 해에 시험지에서 지문을 보고 당혹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섬세한 결을 잘 살리는 작가는 여성인가 오해할 정도로 여인의 내면 심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광통교를 지나며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난 심생은 그녀를 미행했다가 매일 밤 그녀의 집에 찾아갑니다. 뭐 어떻게 해야겠다기보다는 요즘으로 치면 순진한(?) 스토커랄까요(쓰고보니 무언가 형용모순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말입니다). 여인 역시 낌새는 채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될지를 고민하며 벽을 치거나, 한숨을 쉬고, 자물쇠를 지르는 모습이 손에 잡힐듯 그려지더군요. 그러다가 결국은 심생을 방으로 들입니다. 무남독녀라는 처지, 양반가와 중인의 집안이라는 신분차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내린 뒤였지요. 하지만 꿈같은 시간은 잠시, 심생의 집에서 이를 두고볼리가 없지요. 이후 심생은 얌전히 글공부만 해야 했고, 그러는동안 여인은 죽고 맙니다. 심생 역시 벼슬길에 나가지만 일찍 죽고 말지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못할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이 같은 결말을 보고 나니 씁쓸하네요.<br><br>　그 다음은 &lt;운영전&gt;입니다. 몇 안 되는 비극 염정소설 중 잘 알려진 작품이지요. 특히 액자소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고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구성이라 이채로웠습니다. 또, 여성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했지요. 보통 고소설은 전지적 시점을 취하기 마련이지만, &lt;운영전&gt;은 운영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고 있으며 그녀의 죽음 이후에 있었던 일은 김 진사가 이어받고 있습니다. 운영과 같이 안평대군의 궁녀이면서 운영을 가엾게 여겨 그녀와 김 진사의 만남을 도우려는 자란이나&nbsp;첫눈에 사랑하게 되어버린 김 진사의 애정 전달자가 되어야 하는 무녀 등 조연들도 각기 개성있게 형상화되어 있었고요. 특히 외로움을 느끼는 궁녀들의 심리에 공감이 가더군요. 참, 그리고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점인데- 안평대군도 꽤나 측은했습니다. 궁녀 여럿 중에 하나일 뿐이고 둘이 죽고 못 산다면 보내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안평대군 역시 운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보이니까요. 차마 손도 못 대고 애지중지 길렀는데 다른 녀석이 채간다고 하면 곱게 보이지는 않겠지요. 그렇다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자연스런 본성까지 막아버린 것은 역시나 못마땅했지만요.<br><br>　그리고 &lt;위경천전&gt;은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중국을 배경으로 취하고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다가 꿈결인듯 들어간 방에서 위생은 소숙방과 '어른의 잠'을 잡니다. 그녀는 재상 가문의 금지옥엽이지요. 스캔들이 날 게 두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상사병에 걸린 위생은 결혼으로 인해 회생하게 되지요. 얼마간 잘 산다 싶었는데 별안간 먼 조선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네요. 위생은 명을 받고 출정하게 되지만 결국 상사병이 재발하여 죽어서 돌아오고, 그걸 본 소숙방은 따라서 목숨을 끊습니다. 결말을 보면서는 뭐랄까, 그야말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3국에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br><br>　마지막은 임방의 작품 &lt;옥소선전&gt;입니다. 조선 성종, 평안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옥소선은 기생이지만 그 재주가 뛰어납니다. 마침 나이가 맞는 사또의 아들과 천생연분으로 잘 어울린달까요. 하지만 사또는 임기가 끝나면 새로운 부임지로 가야되지요. 내직으로 들어가게 된 사또는 기생을 데려갈 수도 없고 하니 아들에게 묻습니다.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모습과는 달리 아들은 그까짓 이별이 뭐 대수냐며 헤어지지요.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나, 생각을 했는데 사실 너무 어려서 이별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던 것이더군요. 과거 공부를 위해 절에 틀어박혀있던 어느 날, 그는 눈 쌓인 밤에 달을 보며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는 소선을 찾아 먼 길을 떠납니다. 손 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봤을 도련님이 뭘 알까요. 거지꼴로 겨우 도착하지만 소선의 어미는 그를 박대합니다. 다행히 그가 예전에 도와줬던 이방 덕택에 소선을 먼발치에서 보게 되지요. 지금의 사또에게도 예쁨을 받고 있지만 소선에게도 그는 첫사랑. 게다가 자신을 보기 위해 불원천리 먼 길을 와 천민의 차림으로 눈을 쓸고 있는 그를 보고는 야반도주합니다. 산 속에 숨어 살며 소선은 자신이 일을 하고 책을 구해서 그에게는 과거 공부를 시키지요. 이쯤 되면 결말은 뻔하지 않나요. 과거에 급제하고, 소선은 내조를 인정받아 그의 정부인이 됩니다. 얼핏 &lt;춘향전&gt;과 비슷하게도 보였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좀 더 능동적이지요. 특히 사또의 아들 -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없다지요; - 이 불현듯 자신의 사랑을 깨닫는 장면은 거의 &lt;메밀꽃 필 무렵&gt;에서 나오는 '달밤의 메밀밭'의 서정과도 견줄만하더라고요.<br><br>　덕분에 몰랐던 작품들 역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애정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김시습의 작품들이 보이지 않는 건 좀 의아했지만 - 전기(傳奇)소설에서나 나오려나요. 아니면 &lt;금오신화&gt;는 그 자체로 따로 다루려나요. 16권 예정이라는 시리즈가 아직 완결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 말예요. 어쨌든 다음 권엔 또 어떤 내용이 있을지 기다려집니다.<br><br>　<span style="COLOR: #999999">덧. 그러고보니 책을 다 읽고 반납까지 해버렸는데 이제서야 글을 올리게 되네요.&nbsp;요즘 이래저래 바빠서 그런지 계속 글이 밀리고 있어요. 좀 더 부지런해져야 될 거 같긴 한데, 일단 다음 주까지는 이 상태로;;;;</span><br/><br/>tag : <a href="/tag/千년의우리소설" rel="tag">千년의우리소설</a>,&nbsp;<a href="/tag/심생전" rel="tag">심생전</a>,&nbsp;<a href="/tag/운영전" rel="tag">운영전</a>,&nbsp;<a href="/tag/위경천전" rel="tag">위경천전</a>,&nbsp;<a href="/tag/옥소선전" rel="tag">옥소선전</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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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행복한 독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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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2 Nov 2008 14:09:59 GMT</pubDate>
		<dc:creator>玄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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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서편제 / 이청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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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情)恨만 恨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은 다 恨이다.<br><br><span style="COLOR: #ffffff">　때로는 가락에 녹여서 때로는 신명으로 풀어서 가지만 결국 인간살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지요. 작가도 얘기하지 않습니까. 恨, 삶으로 맺고, 소리로 풀고……. '사는 것이 바로 恨을 쌓는 것이고 恨을 쌓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자꾸 눈에 밟히네요.</span><br/><br/>tag : <a href="/tag/이청준" rel="tag">이청준</a>,&nbsp;<a href="/tag/서편제" rel="tag">서편제</a>,&nbsp;<a href="/tag/한" rel="tag">한</a>,&nbsp;<a href="/tag/소리" rel="tag">소리</a>,&nbsp;<a href="/tag/승화" rel="tag">승화</a>,&nbsp;<a href="/tag/삶" rel="tag">삶</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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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0 Oct 2008 05:19:23 GMT</pubDate>
		<dc:creator>玄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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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20세기 한국소설 37 - 조성기, 이문열, 최시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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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 조성기 : 통도사 가는 길<br># 이문열 : 하구,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br># 최시한 : 반성문을 쓰는 시간<br><br>　워낙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난 뒤라 가물가물하네요;; 사실 &lt;통도사 가는 길&gt;은 읽고 나서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습니다. '여로'에 초점을 맞추면 무언가를 더 읽어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저 흘려보냈습니다.<br>　이문열은 문학으로도 그 이외의 발언으로도 유명한 작가지요. 개인적으로는 문학 이외의 발언도 딱히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고, 그의 전반적인 소설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전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러고보면&nbsp;이문열의 &lt;삼국지&gt;는 꽤나 좋아했었고 그 때문에 이런저런 장/단편을 읽게 되었지만 &lt;선택&gt; 이후로는 그럴 마음도 없었네요. 덕분에 꽤 오랜만에 그의 책을 잡은 셈입니다.<br>　&lt;하구&gt;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검정고시를 치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모래를 파는 형의 일을 돕지요. 형에게 짐이 된다는 부담감과 공부를 해야 되는데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스트레스의 복합 감정이 잘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변, 모래를 파는 사업이 기우는 모습과 거기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모습도 보이고요.<br>　&lt;금시조&gt;는 예술가의 이야기입니다. 藝와 道는 하나라고 보는 석담과 그에 반발하는 고죽. 사제간이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두 사람을 통해 예술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그려냈지요. 고죽은 석담의 말년에 글씨에서 금시조가 솟아오르고 향상이 노닌들 무슨 소용이겠냐며 문하를 박차고 나갑니다. 거기에는 藝가 道에 앞선다고 믿는 고죽의&nbsp;관점에, 그의 출생 및 관점을 좋지 않게 봤던 석담의 냉대가 한몫 합니다. 그러나 떠돌이생활에 지칠 무렵, 절의 벽화에서 금시조를 보고는 스승을 이해하지요. 물론 석담은 이미 가고 없었습니다만. 그리고 다시금 藝와 道에 몰두하는 고죽. 그러나 죽을 때가 가까울 무렵, 자신의 서화를 거두어들여 엄정하게 바라보고는 남겨둘만한 것이 없자 모두 태워버립니다. 그 때 석담에게는 동양적 이념미의 상징이자 고죽에게는 독자적인 미적 성취인 금시조를 보았다고 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날 저녁 고죽이 숨을 거두었다는 마지막 문장. 예술가의 자기 완성이란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지요.<br>　&lt;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gt;은 지금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알레고리적 수법을 잘 사용했지만 역시나 부정적인 전망으로 인해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는 황석영의 &lt;아우를 위하여&gt;와 비교하기도 했었죠. 학급 내에서의 폭력과 그 해결과정을 보며 '민중'이라는 것을 중시하는 황석영과 그를 불신하는 이문열. 하지만 요즘 가장 마음이 가는 건 전상국의 &lt;우상의 눈물&gt;이던걸요. 아마 비가시적인 힘의 작용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일지도요. 사실 &lt;아우를 위하여&gt;의 모습은&nbsp;요즘의 학교에서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현실을 그리면서도, 그 이상이 반영된 현실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달까요. &lt;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gt;도 그려내는 배경 때문인지 확실하게 '과거'라는 느낌이 들고요. 반면 &lt;우상의 눈물&gt;은 공포물이 아닌데도 읽고나면 괜히 등뒤가 오싹해지고, 지금 내가 발딛고 있는 곳이 어딘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더군요.<br>　최시한의 &lt;반성문을 쓰는 시간&gt;은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연작 중 일부입니다. &lt;허생전을 읽는 시간&gt;에서 이어진다고도 볼 수 있지요. 고전인 '허생전'을 읽어나가며 선생님과 아이들,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의 대립과 화해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다른 면을 생각해보게 했던 왜냐 선생은 전교조 활동으로 쫓겨나지요. &lt;반성문을 쓰는 시간&gt;은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축제를 계획하지만 비밀 집회로 몰리면서 정학을 당하고 그 동안 반성문을 쓰라는 벌을 받지요. 반성문을 쓰게 된 경위와,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자신들의 일을 돌아보며 더 이상은 반성문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학교 이야기라서 그런지 계속 눈이 가네요.<br/><br/>tag : <a href="/tag/20세기한국소설" rel="tag">20세기한국소설</a>,&nbsp;<a href="/tag/조성기" rel="tag">조성기</a>,&nbsp;<a href="/tag/이문열" rel="tag">이문열</a>,&nbsp;<a href="/tag/최시한" rel="tag">최시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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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행복한 독서</category>
		<category>20세기한국소설</category>
		<category>조성기</category>
		<category>이문열</category>
		<category>최시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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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9 Oct 2008 12:52:05 GMT</pubDate>
		<dc:creator>玄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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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향가 (6) - 모죽지랑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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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COLOR: #339999"><a href="http://pds12.egloos.com/pds/200810/26/10/classic_5.hwp">classic_5.hwp</a><br><br>去隱春皆理米<br>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br>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br>皃史年數就音墮支行齊<br>目煙廻於尸七史伊衣<br>逢烏支惡知作乎下是<br>郞也慕理尸心未行乎尸道尸<br>逢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br><br>간 봄 그리매　　　　　　　　　　　　　　　　　　　　　　　　지나간 봄 돌아오지 못하니<br>모든것사 설이 시름하는데,　　　　　　　　　　　　　　　　<span style="COLOR: #ffffff">&nbsp;　 </span>살아 계시지 못하여 우올 이 시름.<br>아름다움 나타내신　　　　　　　　　　　　　　　　　　　　 　殿閣을 박히오신<br>얼굴이 주름살을 지니려 하옵내다.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 가도다.<br>눈 돌이킬 사이에나마　　　　　　　　　　　　　　　　　　　　눈의 돌음 없이 저를<br>만나뵙도록 (기회를) 지으리이다.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br>郞이여, 그릴 마음의 녀올 길일　　　　　　　　　　　　　　　　郞 그리는 마음의 모습이 가는 길<br>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이까.　　　　　　　　　&nbsp; 　다복 굴헝에서 잘 밤 있으리.<br>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span><br><br><span style="BACKGROUND-COLOR: #ccffff"><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제32대 효소왕(692-702) 때에 죽만랑의 낭도 중에 득오(혹은 곡이라고도 한다) 급간이 있었는데 화랑의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는 날마다 출근하여 정진하고 있었는데 한 열흘 동안이나 보이지 않자 죽만랑이 그 어머니를 불러서,<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그대의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br>라고 물었다. 그 어머니가 대답하기를<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당전으로 있는 모량부의 익선 아간이 아들을 부산성 창직으로 차출시켜 급히 달려가느라 미처 낭에게 하직 인사를 못하였습니다."<br>고 하였다. 죽만랑은<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운 일로 거기에 갔다면 찾아 볼 필요가 없지만 공적인 일로 갔으므로 마땅히 찾아가서 대접해야 겠소."<br>하고 떡 한 합과 술 한 동이를 좌인(방언으로는 개질지라 하니 종을 말함이다)들에게 들리워 득오를 찾아갔다. 낭도 137명도 모두 의례를 갖추어 그를 따라갔다. 부산성에 이르러 문지기에게<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득오실이 어디 있느냐?"<br>하고 묻자<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지금 익선의 밭에서 관례대로 부역하고 있습니다."<br>고 하였다. 죽만랑이 밭으로 찾아가서 술과 떡을 대접하고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여 같이 돌아오려 하였으나 익선은 굳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사리 간진이 추화군에서 조세 30석을 거두어 성 안으로 수송하다가 죽지랑이 선비를 중히 여기는 정을 아름답게 여기고 변통성이 없는 익선을 야비하게 생각하여 거둔 벼 30석을 주며 청하였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진절 사지가 타던 말과 안장을 주니 그제서야 허락하였다. 조정에서 화랑을 관장하는 이가 그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익선을 잡아다가 그 추한 짓을 씻겨주려 하였는데 익선이 도망하여 숨어버려 대신 그 맏아들을 잡아갔다. 동짓달 몹시 추운 날 그를 성 안의 못에다 목욕을 시켰더니 얼어죽었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어명으로 모량리 사람으로 벼슬하는 자들을 모두 쫓아 버리고 다시는 관공서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승복도 입지 못하게 하였다. 만일 승려가 된 자가 있어도 큰 절에는 들지 못하게 하였다. 한편 간진의 자손은 평정호의 자손(枰定戶孫)으로 삼아 특별히 표창하게 하였다. 원측법사는 해동의 큰 스님이지만 모량리 사람이므로 승직을 주지 않았다.<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처음 죽지랑의 아버지 술종공이 삭주 도독사가 되어서 임지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 때 마침 삼한에 병란이 일어나 기병 3천명으로 그를 호송하게 하였다. 일행이 죽지령에 이르렀을 때 한 거사가 고개의 길을 닦고 있어 술종공이 그것을 보고 찬미하였다. 거사도 역시 공의 위세가 혁혁함을 좋게 여겨 서로의 마음이 감동되었다. 술종공이 부임지에 간 지 한 달이 되었는데 꿈에 거사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으므로 더욱 놀랍고 이상히 여겨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었더니,<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거사가 죽은 지 며칠이 되었다."<br>고 하였다. 그 사람이 돌아와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죽은 그 날이 꿈꾼 날과 같았다. 술종공이 생각하기를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것이라 하고 군사들을 보내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그를 장사하게 하고, 그 무덤 앞에 돌미륵 하나를 세웠다. 술종공의 아내는 꿈꾸던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죽지라 하였다. 죽지는 자라서 벼슬길에 나아가 유신공과 함께 부원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무 4대 조정에서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br><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span>처음에 득오곡이 죽지랑을 사모하여 지은 노래가 있다.<br></span><div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BACKGROUND-COLOR: #ccffff">-『삼국유사』권2, 기이(紀異), 효소왕대 죽지랑</span><br>　<div style="TEXT-ALIGN: left">　&lt;모죽지랑가&gt;는 죽지랑('죽만랑'이라고도 한다지요)을 사모하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strike>언젠가</strike> 앞으로 볼 &lt;찬기파랑가&gt;와 같이 화랑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요. 지은이는 득오라는 낭도입니다. 향가의 지은이가 향가의 배경 설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므로 실존 인물이 아닐 것이다, 라는 의견도 있는데 &lt;모죽지랑가&gt;의 배경 설화를 보면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지요. 실제로 배경 설화 어디에도 까마귀와 관련된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br><br>　&lt;모죽지랑가&gt; 어석에서는 창작 시기가 큰 쟁점입니다. 이는 시적 화자의 정서의 질을 결정하며 나아가 &lt;모죽지랑가&gt;의 성격과도 관련있기 때문입니다.<br>　먼저 사모시로 보고 있는 양주동 선생의 견해를 볼까요. 배경 설화의 마지막 줄, '처음에'라는 부분이 득오가 익선에게 끌려가 있을 때나 그 이전을 의미한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지요. 그렇게 본다면&nbsp;여기서 '간 봄'은 득오가 죽지랑과 보냈던 좋은 시절입니다. 지난 날 죽지랑의 당당했던 모습을 화창했던 봄에 비유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처럼 수려했던 모습이 '주름살을 지니려' 합니다. 지난 날과 대비되는 모습 - 세력을 잃고 무력해진 모습을 안타까워 한다고요. 그렇지만 살아있으면 '눈 돌이킬 사이에나마' 만나질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다북쑥 우거진 구렁', 즉 개인적인 시련인 동시에 화랑도가 고통을 겪는 상황인데도 재회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는 않고 있지요.<br>　반면 김완진 선생은 추모시로 보고 있습니다. 효소왕 초에 죽지랑이 죽자, 그의 부재와 상실의 심정을 객관화시킨 일종의 추도시 혹은 만가(輓歌)라고요. 그렇게 본다면 '간 봄'은 죽지랑이 살았던 좋았던 날들이며, 이처럼 다시 못 올 지난 날이 기억 속에서 퇴색해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지요. 5-6행에서의 만남은 추억 속의 재회, 혹은 이승에서 못 다 이룬 회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피안에서의 재회를 의미하는 거고요. 그리고 이후의 '다복 굴헝'은 무덤입니다. 머지 않아 낭의 무덤 곁으로 함께 묻혀 갈 것을 얘기하고 있지요.<br>　어떻게 보든지 간에 현재의 상황은 예전의 좋을 때와 대비됩니다. 이는 삼국통일 이후 화랑도가 서서히 쇠락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지요.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당 전쟁이 끝난 게 676년입니다. 그리고 효소왕의 재위기간은&nbsp;692년부터 702년까지고요. 그 30여년 간 화랑도는 작아집니다. 이미 국내가 안정된 이후의 무력집단은 지배자에게 부담이 될 따름이니까요. 한 때 7천여 명에 달했다는 낭도는 줄어들고, 화랑의 부탁을 일개 관리가 듣지 않을 정도의 모습. 그 앞에서 노(老)화랑은, 낭도들은 또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사모시/추모시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보다 화랑단의 성쇠와 연결시키는 설명이 더 재밌었더랬지요.<br><br>　또 하나의 쟁점은 &lt;모죽지랑가&gt;가 10구체일 가능성입니다. '개관'에서도 잠깐 설명했지만, 8구체를 부정하는 견해도 있지요. 일찍이 홍기문 선생이 균여 향가와 같은 형식의 노래와 그 이외의 노래, 두 종류가 있다며 &lt;모죽지랑가&gt;를 전자에 포함시켰고, 성기옥 선생도 8구체를 부정합니다. 이 분은 &lt;처용가&gt;의 경우 4구체의 연속으로, &lt;모죽지랑가&gt;의 경우 일부가 빠진 것으로 보고 있지요. 사실 일리는 있습니다. &lt;모죽지랑가&gt;는 다른 향가와 달리 행갈이가 된 채로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으며, 구절을 보입(補入)할 경우 10구체 향가의 전형적인 3단 구조로 재구성되고 9행 첫머리에 감탄사가 오게 되지요. 게다가 최근에는 '去隱春'의 '去隱'을 새롭게 해석하고&nbsp;있지요. 즉, 앞의 어석들은 동사(去)+관형형 어미(隱)+명사(春)으로 해석하여 '가는 봄/간 봄'이라고&nbsp;풀이했는데, 차자표기의 전반적인 정황을 보아 '-去隱'이 보조용언 혹은 하나의 어미일 거라고 하네요.<br>　『화랑세기』에도 8구체 향가가 있다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자세한 건 좀 더 연구를 해야 알 수 있겠지요. 『삼대목』의 소실이 다시금 안타까워지는 순간입니다, 네. 물론 지금 발견된다면 갑자기 늘어난 어마어마한 시험 범위에 좌절해버리겠지만요.<br><br><span style="COLOR: #999999">　이것으로 오랜만에 카테고리 업뎃-_-v 문학사도 역사니까, 이 녀석부터는 역사밸리에도 얼굴을 내밀도록 하겠습니다(헤헷). 앞으로 안 부끄럽게 열심히 해야죠:)</span></div></div><br/><br/>tag : <a href="/tag/고전시가" rel="tag">고전시가</a>,&nbsp;<a href="/tag/향가" rel="tag">향가</a>,&nbsp;<a href="/tag/모죽지랑가" rel="tag">모죽지랑가</a>,&nbsp;<a href="/tag/지못미_죽지랑" rel="tag">지못미_죽지랑</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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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맛있는 공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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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6 Oct 2008 14:08:29 GMT</pubDate>
		<dc:creator>玄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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