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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everse Countdow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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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7 Oct 2009 02:41:37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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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황제의 귀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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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찬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벌써 피겨 시즌이 돌아왔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시즌이라 그런지 더욱 두근거리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한껏 부풀어 있는데, 무엇보다도 나를 가장 떨리게 하는 것은 바로 남자 싱글, 통칭 '짜르(국적이 러시아라서)'라고 불리던 제냐(예브게니 플루셴코)의 복귀다. 연아 덕에 피겨계로 입문했던지라 내가 피겨에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휴식기에 들어가 있었다. 덕분에 한창 활동하던 전성기때의 그를&nbsp;실제로 보지는 못했고, 동영상으로나마 뒤늦게 접하면서 그 아름다운 경기들에 감동하며 아쉬워하곤 했었다. 아, 그때 나는 왜 피겨를 몰랐을까, 그 당시의 제냐를 생방송으로 보았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nbsp;하는 그런 아쉬움. 남자 싱글의 매력에 한껏 빠지게 해 주고, 피겨의 동영상을 보고보고 또 돌려보는 재미에 빠져들게 만들어버린 장본인 제냐. 그런 그가, 4년의 공백을 접고 이번 시즌에 복귀했다.<br><br>그의 첫 경기 당일인 러시아 대회에서 나는 학교의 밤샘 책 읽기 행사 진행중이라 생방송으로 보지는 못했고, 나중에 집에 오자마자 그야말로 가방 던져놓고 찾아보았다. 제냐의 쇼트, 그 짧은 시간동안&nbsp;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정신없이 그의 몸놀림을 따라가고 있었다. 아, 이래서 그를 짜르라고 하는구나. 아, 황제가 복귀했구나. 내가 일생에 그의 경기를 실시간 시즌으로 즐기게 되다니.<br><br>물론 제냐의 이번 쇼트는 절대 최고라고 할 수 없다. 그의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면 심심한 안무와 애매한 스텝, 세간에는 단순히 '점핑머신'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쿼드를 팡팡 뛰어내는 점프만큼은 최고이지만 그 외에 아무것도 없어서 전혀 감흥이 없다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내가 경기에서 느낀 것은 그냥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서 '압도적인 존재감과 카리스마'였달까.&nbsp;단순한 손짓 하나에도 그가 하면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경기장을 장악하는 그 뚜렷하고 강렬한 존재감, 자신감, 오만한 긍지, '이것이 진정한 챔피언이다' 라고 느껴지는 관록과 여유와 커리어,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이제껏 남자 스케이터들에게서 보지 못했던 어떤 충만한 아우라가 그를 완전히 감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 그래서 그를 짜르라고 하는구나. 프리와 갈라 프로그램까지 보고 나서 다시 한번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이건 마치, 오만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강림해서 양민을 학살하고 있는 느낌?; '압도적이다'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완전하게 깨달았다. 이번 시즌 연아가 그렇듯이.<br><br>연아를 두고 '플루셴코 이후 최고로 무자비한 선수'라는 말이 있었다는데, 그거야말로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한다. 이건 제냐가 경기장에 등장했을 때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느낌, 그 장악력, 다른 선수들은 안중에도 없게 만들어 버리는 그 카리스마를 직접 느끼면 바로 이해가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동영상으로 본 게 이정도면 실제로는 도대체 어떻다는 거야. 나이도 적지 않은 제냐가 한창 전성기 선수들의 의지를 이렇게&nbsp;꺾어버려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항간에는 '금 많이 먹었다 그만해라'라는 농담도 있다는데, 워낙 제냐 본인이 컴페티션을 즐기는 사람이라 금이나 은, 메달색에 연연한다기보단 그저 경기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라 그게 또&nbsp;좋다. 야구딘 은퇴 이후 라이벌이 전혀 없고 목적이 없기도 했지만, 복귀 소감도 '경쟁이 그리웠다' 라니, 정말 이 오만방자하고 긍지높은 짜르같으니라고. 그런거 치곤 너무 긴장감이 없어 보이고 심히 여유스러워보여서 얄미울 정도지만, 그런 모습이 바로 제냐다워서 좋다.&nbsp;나는 그런 그를 그리워하지 않았던가.<br><br>아, 행복한 피겨의 계절, 나의 짜르가 돌아왔다.&nbsp;얼마나 오만하고 긍지높은 자신감으로 그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줄지, 예전 '니진스키에의 헌정'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얼마나&nbsp;가슴이 뭉클할 감동을 안겨줄지 기대되지만,&nbsp;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여러번 거친 무릎수술을 생각해서 건강하고 재기발랄한 모습 그대로 남아주기를. 그 어떤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나의 영원한 짜르. 그가 복귀했다.<!--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pinakes.egloos.com/2727216"	        dc:identifier="http://pinakes.egloos.com/2727216"	        dc:title="황제의 복귀"	        trackback:ping="http://pinakes.egloos.com/tb/2727216"/>       </rdf:RD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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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ree talk - 이런저런 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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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7 Oct 2009 02:41:37 GMT</pubDate>
		<dc:creator>칼릭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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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둘리와 왕눈이에게 고한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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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주말에 집에 내려가서&nbsp;이삿짐을 챙겼다. 사실 이삿날짜는 좀 여유있게 남은 10월인데, 급한 엄마 성격에는 어쨌든 빨리 짐을 정리해버리고 싶으셨던 것 같다.&nbsp;덕분에 그동안 짊어지고 살은 오래된 내 짐들과 책, 잡동사니 등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몇 년 만에 빛을 보았다. 그런 거 이제 좀 버려! 버려! 하는 부모님의 외침을 등에 업고, 정말 마지막 짐 정리다 싶게 이 악물고 죄다 내다버렸다. 사실 버리는 짐이 대개 그렇지 않나. 없이도 잘 살아왔으면서 막상 버리자니 아깝고, 혹은 추억의 물건들이고, 다시 구할 수 없는 거라는 이유로 끌어안고 살게 되는. 그래도 꼭 챙겨놓고 싶었던 건 6살부터 써서 큰 묶음으로 엮은 일기장인데, 눈에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이미 내다버리셨단다. 아이고 그걸 왜 버리냐고, 그건 내가 결혼하더라도 싸 들고 가고 싶었던건데! 하면서 징징대니 엄마도 아쉬워서 어쩔 줄 몰랐던 마음이지만 과감히 버리셨단다. 흑흑, 진짜 내 주옥같았던 어린 시절 일기장. 내 청춘이여. 흑흑.<br><br>그게, 그냥 추억으로 아쉬운게 아니라 어릴 적 나의 일기가 정말 웃기기 때문에 그렇다. 좀 엉뚱한 꼬마였던 내 생활을 그대로 녹여둔, 정말 깜찍하고 황당무계한 일들도 많았고 가끔은 개념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듯한 어이없는 일기도 있었고, 안간힘을 써서 맞춤법을 지키려 했건만 난생 처음 하는 유치원 졸업식에 대해 쓸 때는 '졸업'이라는 단어를 본 적이 없어서 '조롭을 했다'라고 써 두었다거나(주변에서 졸업하잖니, 너 이제 졸업이야, 하는 말만 들었으니 그대로 받아적은 듯), 먹은 식단(특히 저녁식사)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빠지지 않는 화두였으며, 가끔 나이먹어서 읽으면 '어쭈 제법인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예쁘게 적은 동시도 있었고, 엄마한테 혼난 날은 진지하게 '엄마는 우릴 사랑하시니까 혼내시는 거다. 반성하며 받아들여야겠다.'라고 애늙은이 같이 적어둔 것도 있고(하지만 저 때 난 6살인가 7살이었다!), 강아지를 처음 키우게 된 날은 강아지 깨갱거리는 모습을 묘사한답시고 '방울이가 깨갱거렸다. "깨갱깽깽 깨개개개개개개갱갱깽~ 으르르르르르릉 깽깽~ 캥캥캥캥깽깽~!!!" '&nbsp;이라는 말로 일기장 두 줄을 잡아먹은 일기도 있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열광한 만화영화들에 대한 순수하고도 오롯한 감정이 가득 담긴&nbsp;감상문이 가득했단 말이다!!!<br><br>아기공룡 둘리를 보고 언니와 함께 손 잡고 "둘리 불쌍해~" 하면서 징징징 울은 거라든가, 개구리 왕눈이를 보면서 투투와 가재에 대한 꾸밈없는 분노를 드러내며 왕눈이를 응원한 거라든가, 꾀돌이 해마 위니가 나오는 인어공주(이거 꽤 마이너라 아는 사람 드물 것 같다;)의 심술머리 마녀를 타박하는 거라든가, 기타 등등등 등등등.&nbsp;어린 시절의 나는 권선징악을 당연시 하며&nbsp;정의는 우리 편, 언제나 승리한다는 대단히 투철한 흑백논리의&nbsp;정의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일기를 나이먹어서 보는 즐거움은 꽤 큰 것이다. 왜냐면...<br><br>나는 이제 둘리가 초 개념없는<strike>말아먹을 초딩쉽새퀴</strike>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오히려 길동 아저씨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깨닫는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렇지 않나. 어느날 집의 아들딸들이 이상한 생물체를 주워오는데 그걸 다 먹이고 재우고, 심지어 그 정체불명 생물체가 노숙자에 똑같이 개념 안드로메다로 보낸 친구들을 주워와서 말썽 일으키고 집 부숴먹고, 그놈들도 먹이고 재우고. 게다가 엉겁결에 희동이라는 사상 초유의 막무가내 젖먹이까지 떠맡고. 길동 아저씨는 세상에 다시없는 천사표인거다. 둘리가 불쌍한게 아니라 최고 불쌍하고 자애로운 건 길동 아저씨인거지. 아니 어느 가장이 집 날려먹고 사고치고 다니는데 화 안 내겠냐구요. 길동 아저씨는 정녕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가장들의 대표이자 어른스러우며 동심까지 함께 간직하고 있는 미래의 아버지상인 것이다. 오오 길동 아저씨.<br><br>또한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왕눈이 여자친구 아롬이 아부지인 투투. 솔직히 투투가 가재를 앞세워 왕눈이에게 한 잔악무도한 행위들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 심정에서 그럴 수 있다는거다. 물론 만화에서야 투투 개인의 욕심에 눈이 멀어 한 행동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아니 어느 아버지가 울지말고 일어나 피리를 부는 것 밖에 할 줄 아는게 없는 천애고아 가난뱅이한테 금지옥엽 딸을 내준단 말이더냐. 아직 <strike>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strike> 어린애들끼리의 우정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왕눈이나 아롬이나 다른 친구가 있기를 해 뭘 해. 둘이 얼씨구나 쿵덕덕 둘만 어울려 다니는데 당연히 걱정되지. 투투만 나쁜게 아니라 분수 모르고 정의라는 미명 하에 어른에게 멋대로 나대는 왕눈이도 별로 잘 한 것 없지 않나. 자고로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부모 의견을 존중하라는 옛말은 틀린게 아니에요. 도가 좀 지나치지만 외동딸 금지옥엽 딸을 생각하는 투투의 마음, 이제 난 조금 이해할 수 있어!<br><br>아, 심히 말이 샜지만 어쨌든 어린 시절 동심과 정의감으로 꽉꽉 채웠던 일기장이 떠나가니 아쉽다. 지금이야 길동 아저씨와 투투를 응원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 어디 그게 가당키나 했었나. 둘리와 왕눈이를 위해 울었던, 그리고 분노와 꽉 찬 감정을 가득 메워 썼던 일기장을 떠나보낸 마음 심란하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인데. 오늘날 길동 아저씨와 투투를 이해하며, 떠나간 내 어린 시절 둘리와 왕눈이에게 작별을 고한다. 안녕, 안녕.<!--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pinakes.egloos.com/2483201"	        dc:identifier="http://pinakes.egloos.com/2483201"	        dc:title="둘리와 왕눈이에게 고한다"	        trackback:ping="http://pinakes.egloos.com/tb/2483201"/>       </rdf:RD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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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Diary - 하루하루의 일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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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7 Sep 2009 02:17:22 GMT</pubDate>
		<dc:creator>칼릭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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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미운 오리 새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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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거 참, 내가 오죽했으면 연애 지론서를 읽었을까. 이상하게 작년에는 안 그랬는데 올해 들어서 연애연애연애&nbsp; 결혼결혼결혼&nbsp;소리를 듣는다.&nbsp;꺾인 나이는 이렇게나 독촉을 받는 것인가. 그 나이부터 결혼을 준비해야 28살에는 시집 간다는 소리도 듣고, 만나는 사람이 왜 없냐고 어서 챙기란 소리도 듣고, 이제 결혼할 일만 남았다는 소리도 듣고, 정작 우리 부모님은 딱히 언급하지 않건만 사방에서 들볶고 있다. 이러니 내년에 도대체 어떨런지 겁이 덜컥 난다. 연애도 해본지 좀 오래돼서 새콤달콤한 뭔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우연히 손에 닿은 연애 지론서를 읽었다가...절망했다. 미안, 난 연애 못하겠구나.<br><br>물론 남녀의 심리차에 따른 연애 전략을 세우는 건 좋은데, 뭐랄까...언행과&nbsp;에티켓이 기본 미덕이라는 데는 나도 동의하지만 거기에 옷차림과 헤어스타일과&nbsp;패션과 와인 이름까지(오로지 교양을 위해) 적혀있는 목록을 보자니 슬쩍 현기증이 났다.&nbsp;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것을 외우고, 계절별로 옷차림을 고민하고,&nbsp;그런 거였어? 게다가 저걸 유지하려면 돈도 만만치 않을텐데 요즘같이 취업이 힘든 이십대들은 저걸 어떻게 하고 살라고?; 흔히 표현하듯 물 위에 우아하게&nbsp;둥둥 떠 있으나 수면 아래에에서 온 힘을 다해&nbsp;발을 허우적대고 있는 백조가 생각났다. 다른 여자들은&nbsp;모두 그렇게 백조처럼 우아하게 있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치고 있는 거였습니까.....그럼 난 이미 승산이 없잖아. 아, 이런 미운 오리 새끼같은 나. 지못미 나.<br><br>어차피 내 외모와 몸매는&nbsp;이미 대한민국 남자들의 미적 기준에 못 미치는 것 같고, 성격은 꼼꼼한 여우가 아니라 장군님, 곰 소리 들으니 말 다했고,&nbsp;솜씨는 바느질이나 십자수나 요리하는 것보다 차라리 키보드 워리어가 성미에 맞고, 교양은 어떨지 모르겠고(하지만 관심없는 분야는 문외한이라 이거 또한 부끄럽고), 게임 끝. 아, 난 연애도 결혼도 글러먹었어.<br><br>...라는 패배근성을 나에게 주입시키기에 충분한 책이 너무나 슬퍼졌다. 무엇보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연애라는 개념 혹은 분위기가 내가 생각하고 경험한 것과 이렇게나 달랐나 싶어 적잖이 놀랐다. 물론 학창시절과는 당연히 다른 느낌이겠지만 이렇게나 치밀하게 계산적이고 전략적일 정도로 하지 않으면 이 경쟁시장에서 연애마저도 도태되는 것인가 싶어 씁쓸해졌다. 어느 무엇보다도 감정적이면서도 충동적이고, 동시에&nbsp;따스하게 즐길 수 있는게 연애라고 생각해 왔는데 말이지.<br><br>항상 연애에 목말라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쨌든 연애는 정말 너무너무 좋은 것이고 무진장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nbsp;내가 왜 연애를 하고 싶어하나 생각해 보면 결국은 그거다.&nbsp;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냥 너무너무 기쁜 것이다. 다만 그 누군가가 아무나는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즉,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준다는 상호 양방향의 완성된 커뮤니케이션이 기쁘다는 것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감정과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생겨서 좋고,&nbsp;또 상대방과 함께&nbsp;생각을 공유하면서 성숙해가는 그 발전하는 느낌이 좋고, 나 자신을 내 스스로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자신감을 주어서 좋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느낌에 행복한 책임감을 느껴서 좋고, 그러면서 나와 상대방에 대한 새로운 재발견을 하는 기회가 대단히 즐겁다. 이 모든 것을 한데 묶은 연유로&nbsp;연애가 하고 싶고, 그런 나눔이 있어야 행복한 연애라고 생각하는데, 어찌보면 상당히 이상적인 얘기인가 싶다.<br><br>언젠가 인터넷에서 '철벽녀'에 대한 글을 봤다가 우와 저거 완전 나잖아! 하면서 슬퍼했던 기억이 또 새록하게 생각났다. 철벽녀가 나쁘거나 문제 있는 사람은 아닌데,&nbsp;그 곧은 성격과 연애관 때문에 상대방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철벽'을 쌓아서 연애를 못한다던가. 생각해보면 나도 좀 그랬던 것 같다. '사랑했다면서 어떻게 상대가 그렇게 자주 바뀌니' 같은 느낌인지라 마음을 잘 주지 않지만 한 번 마음을 주면 오래가고, 그 후유증도 길게 가고, 연애를 하면 성실과 최선을 다하지만 그 연애하기까지가 무진장 힘든 편이다.&nbsp;어쨌든 그 철벽녀에 대한 결론은 사랑이라는 것에&nbsp;대한 이상주의자가 많단다. 어이쿠야.<br><br>그냥 생각난 건데, 이제 내 나이에 누굴 만나려면 (사실 나는&nbsp;아직 생각이 전혀 없는데) 남자 입장에서는 여자가 결혼도 염두에 두고 있겠구나 하는 부담감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부담이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수록 붙어가겠다는 슬픔도 함께 찾아들었다.(이거 오늘 포스팅에 슬프다는 이야기 참 자주 써서 슬퍼진다) 왜 일반적인 사회의 시선은 여자가 이십대 중후반에 직장도 잡았으면 남은 일은 결혼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배우고 싶은 것도, 즐기고 싶은 것도 많이 남았고 결혼을 할 정도로 책임감과 준비가 다 되어 있지도 않은데. 남자 나이로는 이제 시작이라고 하고 여자 나이로는 급하다고 등을 떠민다. 참 이상한 사회야. 느긋하고 싶어도 주변에서 하도 구박하는지라 바빠지고 싶어 읽었던 책은 저 모냥이니 다시금 깊은 좌절에 빠지는구나.&nbsp;어이구, 이 미운&nbsp;오리 새끼 같으니. 그러나 백조가 되려면 물 밑으로 안간힘을 다해 허우적거려야 하니 이도저도 둘 다 고민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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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ree talk - 이런저런 생각</category>

		<comments>http://athgard.egloos.com/5023866#comments</comments>
		<pubDate>Mon, 29 Jun 2009 01:58:27 GMT</pubDate>
		<dc:creator>칼릭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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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악마는 교복을 입는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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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농담이 아니라, 저건 내 발령 동기 선생님의 메신저 대화명이다. 저걸 보는 순간 얼마나 대폭소했는지, 주변 선생님들께 얘기해주면 다들 배를 잡고 쓰러졌다. 우리들 혹은 학부모한테나 통할 농담이기는 하지만. 가끔 저놈들의 머릿속엔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생각은 하고 사나 싶어 걱정도 되고, 그러면서도 그 천진난만함에 어쩔 수 없이 피식 웃음이 나오기는 한다.<br />
<br />
어제는 그 교복을 입는 악마놈들 중 한 녀석이 다가왔다. "쌤, 혹시 나홀로 집에 보셨어요?" 하고 물어서 응, 이라고 대답했더니 녀석이 희열에 차서 계속 묻는다. "쌤 그거 2편인가에 케빈 돌봐주는 비둘기 할머니 기억하세요?" 뭐 나야 잘 기억하고 있었으니 "어." 라고 대답해줬다. 그랬더니 녀석의 말. "근데 왜 쌤 요새 그 비둘기 할머니 닮아가세요? 게다가 오늘은 화장도 안 먹히고 초췌하고..."<br />
<br />
아, 순간 나 살의의 파동에 눈 뜰 뻔 했다. 물론 이 녀석이 나와 자주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 갈구는 사이이긴 했지만, 내가 요즘 슬쩍 푸짐해진 건 맞지만, 내가 그 전날 트랜스포머2 시사회에서 무대행사랑 배우, 감독 보겠다고 찬 비를 맞으며 세 시간 반 가량을 덜덜 떨긴 했지만, 그러고나서 새벽 한 시에 영화가 끝나서 찜질방에서 네 시간 자고 오긴 했지만, 챙겨간 구겨진 청바지에 티를 대충 입고 있었지만, 그래서 아침에 유달리 초췌했던 건 인정하지만...<br />
<br />
비둘기 할머니가 뭐냐구!ㅠㅠㅠㅠ<br />
<br />
거기다 대고 "야 그 할머니 마음씨 하나는 진국이었거든!" 이라고 말하려다가 더 바보될까봐 관뒀다. 아, 정말 나쁘다. 이놈들은 나쁘다. 무지막지하게 나쁘다.<br />
<br />
...나쁘다고 욕하면서도 오늘 화장 공들여 하고 스커트 입고 온 내가 더 바보같다. 으허헝.<br />
<br />
<br />
어느새 6월 말 부터는 기말고사다. 벌써 한 학기가 마무리 되어간다. 바쁜 학사일정이지만 1년하고도 6개월차의 나에게 진리가 다가왔다. '악마는 교복을 입는다.' 악마를 무찌르기 위해 2학기부터는 더 악랄해질거야. 으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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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Diary - 하루하루의 일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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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1 Jun 2009 03:24:37 GMT</pubDate>
		<dc:creator>칼릭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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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유부초밥 빚는 시간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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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해산물을 잘 못 먹는 터라 초밥을 딱히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냥 입에 넣고 오물오물 꿀꺽 정도는 하지만 애써 찾아먹는 음식은 아닌데, 초밥 중에 유일하게 사랑해 마지 않는 것이 유부초밥이다. 새큼한 향도 좋고 입 속에 찰지게 달라붙는 유부의 질감도 좋다. 어느 비라도 오는 날이면 따끈한 우동 한 그릇에 간절히 생각나는, 아아 유부초밥.<br><br>어느 때인가부터&nbsp;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유부초밥이 시중에 판매되었던 것 같다. 조미액 속에 유부가 담겨져 있고 밥 위에 뿌려서 버무릴 수 있는 양념이&nbsp;들어있는 셋트. 시장에 함께 갈라치면 꼭 그 앞에서 서성대는 막내딸을 엄마는 딱히 외면하지 않으셨다. 과자나 아이스크림, 소시지는 상당히 눈치가 보여서 포기한 적이 많았지만 유부초밥 정도면 엄마도 흔쾌히 허락했다.&nbsp;대략 한 팩이면 2인분이었는데 우리집은 4인 가족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꼭 두 팩을 장바구니에 집어 넣으셨다. 그러고나면 그날 저녁 메뉴는 어김없이 유부초밥이었다.<br><br>소소한 밥상차림을 돌이켜보면, 엄마의 손끝이 대단히 야무지다는 생각이 든다. 주부들이 한 끼 편하게 해결하라고 다 준비되어 나온 유부초밥 셋트건만, 엄마는 유부초밥을 만들 때에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첨가된 양념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햄,&nbsp;당근, 오이 등을 잘게 썰고&nbsp;볶아서 밥에다 더 넣고, 유부에 넣고 남은 밥은 모양을 예쁘게 빚어서 손가락 주먹밥, 동글 주먹밥, 삼각 주먹밥 등으로 뭉쳐 두었다.&nbsp;그리고 뻑뻑하지 않도록 따끈한 된장국을 끓이고, 깨끗한 접시들에 단무지와 김치를 새로 꺼내 말끔하게 셋팅. 가운데에는 방금 만든 유부초밥 큰 접시를 두고 식구들 앞에는 앞접시를 하나씩 두어서 가져가서 편히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보고 자란 것과 달리, 혼자 살면서 내가 만들어 먹다 보면 대충 들어있는 양념만 뿌리고 접시에 방금 만든 유부초밥을 아무렇게나 쌓은 채로 젓가락 하나 덜렁 놓고 먹고 있다. 물론 혼자서&nbsp;해먹는 것과 식구들을 챙기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지만, 새삼 나에게 식구들이 생긴다고 해도 엄마처럼 저렇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언제나 뭉게뭉게 일어나곤 한다. 만약 나에게 아이들이 생겨서 외할머니집에 가자 하면, 엄마는 분명 제일 예쁜 접시에 따끈따끈한 오므라이스를 만들어서 깔끔한 계란 지단으로 덮은 다음&nbsp;케찹무늬를 예쁘게 넣고 손주에게 만들어 줄 것 같다. 그럼 내 새끼는 '엄마는 못하는데 외할머니는 잘해!'하면서 나와 지 외할머니를 비교해 댈 것이고, 나는 아이에게 왠지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고.<br><br>저런 이야기를 엄마한테 하면 엄마는 킥킥, 웃기만 하신다. 자식 생기면 다 한다고, 너도 그렇다고 하시는데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내 나이 스물여섯, 엄마는 이 나이에 아빠를 만나서 결혼 준비를 하고 10월에 결혼을 하셨다 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 이야기를 이제 엄마와 마주보고 하고는 한다. 그럴 때 참 좋은건 유부초밥 만들기이다. 막 해서 식힌 밥을 커다란 그릇에 담고 엄마와 딸이 비닐장갑을 낀 채 식탁에 마주앉아 유부에 밥을 꾹꾹 눌러담는다. 어릴적엔 멍하니 엄마 치마꼬리 붙들고 "언제 다 돼? 먹어도 돼?"만 연발하던 어린 아이가, 이제 엄마의 생산 영역을 함께 나눌 나이가 되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손만 놀리면 심심하니 당연히 수다가 오가고, 이제 내 생각을 말해도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오, 너는 그렇게도 생각하니?"라고 수용해주는 그런 분위기가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엄마와 딸은 나이먹으면 친구가 된다지만, 우리는 참 사이좋고 잘 맞는 친구가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친구와 만드는 유부초밥은 물론 맛있지만, 맛을 떠나서 만드는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숙성 과정처럼 느껴진다. 동글동글 밥을 모아서 유부에 꾹꾹 눙쳐넣는 바쁘면서도 여유로운 손놀림이 좋고, 엄마와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좋다. 사실 유부초밥이든 송편이든, 시간을 두고 빚을 수 있는 것이라면 메뉴는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 시간만큼은 엄마와 딸이 함께 동글동글하게 인생을 빚어가는 맛깔나는 재미인 것을. 이번에 집에 내려갈 땐 또 엄마와 함께 유부초밥을 만들자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애호박전을 같이 부쳐먹자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무엇을 하자고 해도 최고의 친구인 내 엄마는 그저 오케이 사인을 보낼 것이고, 배가 띵띵하도록 먹은 다음엔 커피 타임을 함께 즐기게 되겠지. 결국 기호품에 대한 식성까지 그대로 물려받은 걸 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엄마딸이긴 엄마딸인가봅니다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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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ree talk - 이런저런 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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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5 May 2009 05:28:13 GMT</pubDate>
		<dc:creator>칼릭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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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스승의 날에 되새기는, 교사로 살아가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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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처음 임용고시 합격하고 연수원에 들어갔을 때, 내가 들은 첫 환영인사는 이랬다. "축하합니다 여러분. 그 높은 경쟁율을 뚫고 여기 모인 여러분은 정말 인재들입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에 들어오신거죠." 내가 이걸 왜 기억하고 있냐면, 뒤의 '신의 직장'이란 말이 심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와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이 많았는지 움찔하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몇 보았다. 우리가 눈물과 피땀 흘려가며 공부하고, 교육철학을 세우며 교육관을 닦아오던 세월은 '신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온 시간으로 전락되는 순간이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아마 그것이 바로 교사에 대한 사회의 시각 중 하나라는 것을 스스로 자조하시는 말은 아니었을까 싶다.<br><br>여기에 더 덧대자면, 어디가서 나는 교사라는 말을 하기 참 부끄럽다. 그리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면 나오는 말들이 다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일등신부감, 방학 있어 좋겠네, 칼 출근 칼 퇴근, 요즘 애들은 말 더럽게 안 듣지, 안정적인 철밥통, 가늘고 길게 사는게지, 결혼을 늦게 하는 건 너무 눈이 높아서 이것저것 재다가?<br><br>아, 왜 이 좋다는 스승의 날에 나는 이렇게 까칠한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냐면. 그나마 스승의 날이라고 국가가 지정해 준 이 날이 아니면 새삼 목소리를 높일 수 없을 것 같고,&nbsp;대한민국에서 교사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이중적이고도 슬프면서 동시에 행복한지 말하고 싶어서이다.<br><br>교사, 참 좋은 직업이다. 이렇게 좋은 직업은 하늘 아래 있기 쉽지 않다. 우스갯소리에&nbsp;진심을 담아&nbsp;하는 얘기지만,&nbsp;의사는 매일 아픈 환자를 보고, 변호사는 매일 문제 있는 사람을 보지만, 우리는 자라나는 꿈나무를 보지 않는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최고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참 좋은 직업이다. 그런 것들이 좋아서 나는 교사가 행복하다&nbsp;한다. 안정적이라는&nbsp;등&nbsp;방학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nbsp;부차적인 사항이다.&nbsp;실제로도&nbsp;후자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임용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최소한 내 주변엔 없었다).&nbsp;물론 그런 사항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nbsp;대부분의 교사들은 나름의 교육관과 꿈, 이상을 가지고 그것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해가는 것에 가장 행복해 하고 있다.<br><br>어쭙잖은 의견을 내세우자면, 점점 젊은 교사 집단은 여초현상이 강하고, 그러다보니 교사들에 대한 이미지는 결국 사회가 여성에게 들이대는 잣대와 비슷하게 되어진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nbsp;마치 시집 잘 갈 것을 노리고 교사하는 것처럼, 여행 다니기 위해 방학만 노리는 것처럼, 힘든 육체노동 하기 싫어서 머리나 굴린다고 보는 것처럼. 20대 여성들에게 사회가 던지는 왜곡된 시각 역시 젊은 교사 집단에 비슷하게 투영된다. 갓 발령받고 의욕에 찬 교사들의 의욕을 깎아도 이만저만 깎는게 아니다.<br><br>교사라는 단어에 묘하게도 사람들은 이중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기본적인 지식 소양과 윤리, 도덕심은 갖추고 있겠다며 신뢰하는 동시에, 정체되고 노력하지 않는 고인 물이라거나 융통성 없고 권위적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nbsp;그런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다. 나 역시 학창시절에 그런 선생님을 본 적이 있으며, 아이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고 있다. 선생님에게 받은 상처가 의외로 평생 가기도 한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을 가지고 판단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이제 조금 접어도 되지 않을까.<br><br>스승의 날에 관련된 여러가지 기사가 올라오고, 덧글들이 달리고, 이런저런 글과 포스팅이 난무한다. 그리고 참 씁쓸하고 민망한 글들을 많이 본다. 나 학창시절에 어떤 선생이 있었는데~부터 시작해서 요즘 교사들에 대한 지적과 신랄한 헐뜯음까지. 물론 개발적이고 따끔한 충고도 있지만 대부분 감정 섞인 글들에 다시 한번 상처를 받는다. 거기다 대고 '저기..제가 바로 그 교사란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만...'이라고 들이댈 자신조차 서지 않는다.&nbsp;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지만 심히 민망하고 부끄럽다. 동시에 억울하다. 왜 억울하냐면, 학생으로서 보는 학교와 교사로서 보는 학교는 정말로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생은 겪지만 교사는 겪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학생의 입장만 생각하기 쉽다. 자기 일이 아니면 쉽게 말한다고 하지만, 교사의 심정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낙인 찍어버리듯 내리누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회의 시선은 때로 폭력처럼 느껴진다.<br><br>내 친자식도 아닌 남의 자식들, 그 아이들 때문에 밤 잠 못자면서&nbsp;불 켜고&nbsp;고민해 보았는지, 반대로 아이에게 상처받고 분노해서 어쩔 줄 모르거나 결국 울어보았는지,&nbsp;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해보았는지, 그러면서도 그 아이들이 주는 행복감에 희열에 차 보았는지. 그것들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교사에 대해 참 쉽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온전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몰래 이루어지고 있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치열한 의사소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어찌보면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폐쇄적이면서도 비밀스럽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어찌 모든게 부정적이거나 혹은 모두 긍정적일 수 있는가. 당연히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할 수 밖에 없다.<br><br>하지만 세상은 주로 부정적 모습을 비춘다. 그렇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은&nbsp;대부분 나쁜 것이고, 정말 아름답고 따뜻한 일들은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간혹 훈훈한 이야기로 등장하는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학교와 교사 이야기가 나오면 입에 거품부터 문다. 망할 나라에 망할 교육에 망할 학교에 망할 교사다.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소소하고 자글자글해서 다정하고 때로 긍정적인 면모도 많은 교사와 아이들의 의사소통은 그렇게 물 밑에 가라앉는다.<br><br>왜 다짜고짜 요즘 애들 말 더럽게 안 듣죠? 라고 물어올까. 그럼 자신들은 학창시절 누구보다도&nbsp;말 잘 듣는&nbsp;모범생이었던가? 세월과 시대를 막론하고 모범생과 날라리는 공존하기 마련이다. 새삼스럽게 요즘 애들일 필요는 없다. 말 잘 듣는 녀석은 잘 듣고, 안 듣는 녀석은 안 들을 뿐이다. 그것 뿐이지, 왜 요즘 애들은 모두 말 안 듣는 못되먹은 아이들로 한 번에 몰아붙여지는 것일까.<br><br>간혹 드물게 나의 교육관을 얘기할 자리가 주어지면, 나는 힘주어 낙관론을 펼친다. 내가 학교에 있어보니 정말로 학교는 참 좋은 공간이라고. 예쁜 아이들과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아주 많이 있다고.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점차 발전할 것이고, 더욱 나아질거라 믿는다고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실이 정말로&nbsp;그렇다.&nbsp;물론&nbsp;터무니없는 이상론을 펼치자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학교도 사람 사는 곳이라 부정적 요소와 긍정적 요소(물론 이 요소에는 당연히 인적 자원도 들어간다)가 공존한다.<br><br>그러니, 간절히 말해보자면 부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너무 색안경을 쓰고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넣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신성시 해서&nbsp;이상적인 공간으로 생각하지도 말아달라는 것. 저 유토피아처럼 이상향인 공간이면 참 좋으련만, 그렇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니던가.<br><br>어디 가서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교사입니다, 하고 목에 힘 줄 것도 없고, 새삼 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냥 다른 친구들이 '회사 다녀요'라고 말하듯 평범하고 소소한 삶을 영유하는 직업으로 인식받고 싶다. 교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고 하면 이건 참 웃긴 이야기겠지만. 현실이 그러니 씁쓸하다. 언제나 교육은 최고로 뜨거운 감자이고, 그런 만큼 교사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편견, 과도한 왜곡에 때로 피로함을 느낀다.<br><br>정작 좋은 교사들은 묵묵히 오늘도 일상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내가 좋은 교사란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내 주변의 너무나 좋으신, 인생의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수많은 분들이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계신다. 그분들이 폄하되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새삼스럽게 카네이션을 내밀고 몇 십년 전 은사님을 찾아가고 그런 인사치레가 아니더라도, 이미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 평생 아이들을 짝사랑하는 존재인 선생님들에게, 스승의 날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부담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다만 이 날의 의의를 생각한다면, 혹여 교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가득했던 사람이 있다면, 한조각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선생님을 생각하며 살풋 미소를 떠올리는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게 내가 평생 학교에 몸 담고 살아가는 보람이자 행복이다. 그거면, 정말로 충분하다.<br><br><br>(꽤나 까칠한 글을 써 버리고 말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오늘 대단히 행복한 날이었다. 작년에는 학교가 쉬었는데 올해는 정상수업을 해서 덕분에 아이들에게 한아름 받고 말았다. 스승의 날에 뭘 받는다는게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 부끄러워 죽을 것 같고&nbsp;어설프기는 한데, 그래도 하루종일 행복했다. 롤링 페이퍼에 편지에 직접 만든 쿠키에 케잌에 초콜릿까지, 아이들의 정성이 너무 예뻤다. 사실 정말로&nbsp;가장 기분 좋은 것은 편지다. 이 아이가 쓰는 동안 온전히 날 생각해줬구나 싶어서 가슴이 벅차고,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거나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는 말을 보면 너무 부끄러워서 몸이 비비비 꼬이면서도 그냥 입이 헤실헤실 벌어지고...역시 난 성숙한 교사가 되기는 그른 것 같다. 반성하고 사색하기보단 그냥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니. 스승의 은혜 노래 불러줄때는 나 너무 부끄러우니까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래도 참 기쁘고 마냥 고마웠다. 물론 요즘의 아이들에게 사실 스승의 날이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진한 마음이 담긴 날이라기보다는, 이벤트성이 강하고 축제 분위기에 들떠서 자기들끼리 흥겨워서 하는 것에 더 가깝다. 그래도 일년 중 하루,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를 마주보며&nbsp;사적인 얘기도 하고, 서로를 생각하며 앞으로 더 잘해보자고 다시금 다짐하는 날이 아닌가. 어쩌면 스승의 날의 진정한 의의는, 서로에 대한 거리를 조금은 더 좁힐 수 있는 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생님 사..사...사랑해욧 후다닥! 하고 쓴 아이들의 편지를 보고 거리감을 느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정작 사회가 아무리 교사에 대해&nbsp;날카로운 시선을 들이대어도,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하고 아이들 덕에 힘을 얻는다. 대한민국 교사는 참 행복한 직업이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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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Diary - 하루하루의 일상</category>

		<comments>http://athgard.egloos.com/4952544#comments</comments>
		<pubDate>Fri, 15 May 2009 07:31:30 GMT</pubDate>
		<dc:creator>칼릭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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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마음에도 파우더를 두드려주세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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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2년 전. 졸업하고&nbsp;봄날이 목전에 다가올 무렵의 2007년 4월,&nbsp;나는 썩어가는 시험 준비생이었다. 엄동설한의 날은 풀렸지만 여전히 남은 감기기운에 코를 훌쩍거리며 집에 둘둘 말아서 던져놓는 커다란 가디건을 걸치고 도서관에 출근하는 나날이었다. 항상 같은 구석의 자리에 있다보면 늘 보이는 비슷비슷한 사람들. 별 다를 바 없이 흘러가는 일상이어서일까, 지금도 나는 내가 2007년에 뭘 했나 생각해보면 어두컴컴하니 별로 생각나는 기억이 많지 않다. 그 기간만은&nbsp;단절되어 잘려나간 한 토막처럼.<br><br>힘든 나날을 보내게 되면 사소한 일에도 더 잘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 해 2007년이 바로 그랬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싸이에 무심코 갔다가 방명록에 왠 여자아이의 이름을 보았다. 평소 여자라고는 거의 없던 방명록이었기에 그 이름은 상당히 눈에 띄었다.&nbsp;제법&nbsp;예쁜 이름의 그녀는 꽤 친한 듯 보였고 이전 남자친구도 그녀에게 상냥한 답변을 달아주었다. 사귀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둘은 친밀해 보였고, 불같은 호기심에 그 여자아이의 싸이에 들어가서 사진첩을 보던 나는 좌절했다. 커다랗고 청초한 눈에 날씬하고 가냘픈 몸매의 소유자,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여성스러움의 소유자였다. 대학생 특유의 앳되고 발랄한 모습이 태양처럼 환했다. 게다가&nbsp;무엇보다도 나보다 세 살이나 어렸다. 이런 여자애가, 막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한, 헤어진 이전 내 남자친구 근처에&nbsp;있다는 것은 어쨌거나 슬픈 일이었다. 알 수 없는 공허함과&nbsp;컴플렉스에 눈물이 흘렀다.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거울을 보니 허옇게 부풀은 볼과 꼬질한 옷이 눈에 들어왔다. 괜한 서러움에 화장실에 가서 혼자 눈물을 닦아내며 흑흑거렸다.<br><br>그 다다음날인가,&nbsp;과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시험 준비하는 졸업생들 대상으로 학교가 교재비를 하라고 30만원씩의 장학금을 지원해 준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갑자기 크게 생긴 30만원의 공짜돈이었다. 교재를 사라고 지원해 준다고 했건만 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건 잔뜩 사야할 교재의&nbsp;목록이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나는 2박 3일에 걸쳐 사고 싶었던 화장품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기본 스킨셋트부터 시작해서 색조류, 컨실러에 아이라이너까지, 그야말로 내 평생 단 한번도 써 본적 없는 모든 화장품의 종류를 다 적고 후기를 찾아 읽으며 좋다는 상품을 물색했다. 그리고 지름신을 제대로 영접한 것 마냥, 나는 단돈 3만원을 남기고 그 교재비 30만원을 모두 화장품 사는데에 썼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황당하고 어이없고 한심한 지름이었다.<br><br>엄마는 속속들이 도착하는 화장품 택배 상자를&nbsp;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다. 시험 본다는 애가 무슨 화장에 그렇게 신경을 써, 그것도 몇십만원 어치나. 알 수 없는 서러움에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난 대학생 때 하나도 안 샀었잖아. 나는 화장하지도 말라고? 이제 사회인 준비도 해야하잖아. 발개진 내 얼굴을 보며 엄마는 잠시 안쓰러운 표정을 짓다 방을 나가셨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파우더나&nbsp;가끔 바를 정도로 나는 지독히 화장을 안 했었다. 귀찮고 관심없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의 필요성도 잘 몰랐다. 예뻐지고 싶다는 의욕은 남자친구를 만났을 때나 처음으로 생겼다. 데이트 할 때나 파우더에 챕스틱을 살짝 바를 정도였고 다른 때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그 나이에는, 그때는 굳이 어려보이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뭘 해도 자신감에 넘쳐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br><br>그렇지만 취준생의 타이틀을 달은 나는 뭘 해도 비루한 느낌이었다. 자신감도 없음은 물론이었고 외양도 예쁘지 않다보니 더 슬퍼졌다. 게다가 비교당하고도 남을 만큼 이전 남친의 싸이에 글을 남기던&nbsp;예쁘고 환한&nbsp;여자아이는 너무나 부러웠다. 화장으로라도 더 예뻐보이고,&nbsp;어려보이고,&nbsp;그리고 감추고 싶었다. 화장품이 모두 도착한 날 나는 처음으로&nbsp;가장 많은 종류의 화장품을 단계별로 발라보았다. 거의 안 하던 볼터치까지 하고 거울을 본 다음, 그리고 실소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초등학생이 엄마 화장품을 훔쳐서 몰래 한 것마냥 어색하고 서툴기 짝이 없었다. 그런 자신을 보자니 어쩐지 한심해져서 한번 더 화장실에 가서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결국 그렇게 사들인 화장품의 대부분은&nbsp;일 년이 지나도록 거의 쓰지 않았다.<br><br>내가 화장품에 대해서 의외의 자제력이 있는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화장품도 굉장히 좋아하고, 후기나 제품, 브랜드에 대해 듣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사는 것은 많지 않다. 눈은 두 개, 입은 하나 하면서 언제나 내가 반드시 쓰는 것 한 개만 산다. 물론 색상이나 디자인이&nbsp;너무 예쁘거나 해서 가끔 사는 것도 있지만 또래에 비해 내가 가진 화장품 수는 많지 않다. 하긴 게을러서 내가 화장을 못 하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강력한 이유인 것은 맞을지도 모르겠다. 늘 아침마다 밥보다 잠을 외치는 나에겐 오 분도 아까운지라, 화장에 시간을 더 투자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기본화장만 딱 끝내고 나가기 때문에 늘 쓰던 것 말고는 불필요한 화장품이 되기 일쑤다.<br><br>그래도&nbsp;매일 아침마다 얼굴에 파우더를 도닥도닥 바르다 보면 가끔 그때의 우울함이 생각나곤 한다. 우울함을 예쁜 외양으로 덮어보려고 했던 보상 심리, 하지만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아 더더욱 우울하고 슬펐던 그 때의 서러움. 참 재미있게도 정신적으로 훨씬 편안한 지금이 그때보다 피부가 더 좋아졌고 화장도 잘 먹힌다. 화려한 색조를 덧바르지 않아도 그때보다는 훨씬 깔끔하게 화장이 되니 참 우스운 일이다. 지금은 가장 예뻐보이고 싶은 의욕보다 그저 오늘 하루의 시작이구나 하며 화장품을 일상처럼 바르고 있지만,&nbsp;조금이라도 더 예뻐보이고 싶어 이를 악물며 화장을 하던 그 때의 손끝같은 절실함은 묻어나지 않는다.&nbsp;사실 그 시절 정말로 나에게&nbsp;필요했던 건 마음의 화장이 아니었을까. 너는 예쁘고 강하다고, 잘 될거라고, 도닥도닥 팩트를 두드리듯 외롭고 힘든 마음을 다독여 줄 따뜻한&nbsp;격려 말이지.<!--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pinakes.egloos.com/2203376"	        dc:identifier="http://pinakes.egloos.com/2203376"	        dc:title="마음에도 파우더를 두드려주세요."	        trackback:ping="http://pinakes.egloos.com/tb/2203376"/>       </rdf:RD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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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Diary - 하루하루의 일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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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0 Apr 2009 02:09:52 GMT</pubDate>
		<dc:creator>칼릭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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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가장 가볍고 가장 무거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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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즐겨찾는 블로그에 갔다가 '남자의 눈물이야말로 무기'라는 그분의 글을 보았다. 트랙백해서 쓰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공감가는 주제에다 글도 맛깔스러웠지만 숨겨진 블로그인지라, 차마 트랙백은 하지 못하고 주제만 슬쩍 빌려왔다.<br><br>그러니까, 내가 남자의 눈물을 본 건 사실 꽤 나이를 먹어서이다. 초딩 때 남자애인 옆 짝꿍이 숙제를 안 해왔다거나 준비물을 안 가져와서 선생님께 맞은 다음 쿨쩍쿨쩍 흐느껴 우는 그런 거 말고! 어머 이게 남자의 눈물이구나, 하는 느낌에 더없는 짠한 마음과 연민이 느껴지도록, 그렇게 구구절절하게 가슴에 스며드는 그런 눈물 말이다.<br><br>이거 또 봄날이 다가와서 연애 얘기 끄집어 내는건 아닌데, 어쨌거나 내가 남자의 눈물이라고 느낀 것은 그 사람의 눈물을 보았을 때였다.&nbsp;우리는 자주 보지 못하는 연애였고, 한 번 볼 때마다 늘 애틋했다. 모처럼 휴가를 나와서 둘이 서울에서 놀고, 그리고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그는 대구로 내려가야 했다. 그냥 보냈어도 될 것을, 그 날만큼은 너무나 헤어지기 싫었다. 나도 같이 내려간다고 박박 우겼다. 데려다주는 셈 치고 뭐, 하며 끝끝내 고집을 피워서 같이 기차표를 끊었다. 둘이서 나란히 기차 좌석에 앉아 한 이어폰을 나누어 꽂고 음악을 들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 피곤했던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나, 잠깐 눈을 떴을 때 그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쳐서 싱긋 웃었다. 마주보고 웃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꾹꾹, 눈과 콧대 사이를 누르며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밤 기차의 차창에는 얼굴이 너무나 잘 비쳤다. 컴컴한 허공을 배경으로 그의 뿌옇게 서린 얼굴이 들어왔다. 왜 우는지 몰라서&nbsp;그냥 손을 당겨서 꼬옥&nbsp;잡았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후에 물었다. "왜 울어요?" 약간의 틈을 두고 망설이다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릭스씨가 예쁘고...고마워서. 전부."<br><br>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저 말을 쓰면서 손발이 약간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으니 연애세포가 죽긴 다 죽었구나. 어쨌거나 저 대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절대로 지어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예쁘단 말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저렇게 감동이 물결치는 대사가 잊혀질리가!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을 때마다&nbsp;그 순수함과 투명함에 몸서리쳐질 정도로 그저 예뻐, 예뻐, 예뻐만 연발하는 것처럼, 저 밤의 기억은 나에게 그렇게 남아 있다. 내 평생을 두고 곱씹어도 될 만한 아름다웠던 밤이다.<br><br>사실, 그냥 저 말만 들었더라면 그저 스쳐가는 기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말의 진정성과, 그리고 애틋함을 더 느끼게 했던 것이 바로 그의 눈물이 아니었던가.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리고 손가락으로 눈가를 꾹꾹 누르던 그 모습까지,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만든 것은 다름아닌 '남자의 눈물.'<br><br>여자의 눈물만이 왜 무기가 된단 말인가. 하도&nbsp;자주 울어서 나중에는 "미안하긴 한데 왜 우는지는 모르겠어요"소리까지 들었을 때 어퍼컷 로우킥을 날리지 않은 내 인내심에 감동해서 눈물이라도 흘릴 기분이기는 했지만. 여자가 울면 남자는 어쩔 줄을 모른다고 하지만, 남자가 울면 여자는 왠지 행복한 기분이 된다는 것도 알까. 물론 너무 자주 말고, 그리고 내 앞에서만. 눈물이라는 약한 모습, 혹은 진심이 담긴 감정적인 부분을 나에게만 보여줄 때는 아주 그냥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갈대처럼 온전히 마음이 그쪽으로 휜단 말이지. 남자의 눈물은 확실히 무기 이상의 그 무언가가 있다. 가장 가벼운 무게로 어느 것보다 진지한 무거움을 선사하지 않는가. 빈도와 상황을 조절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만. 여하튼 그 풋풋한 시절의 아가씨에게, 그 총각은 '아름다운 남자'로 남았으니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었겠지.</p><!--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pinakes.egloos.com/2344614"	        dc:identifier="http://pinakes.egloos.com/2344614"	        dc:title="가장 가볍고, 가장 무거운"	        trackback:ping="http://pinakes.egloos.com/tb/2344614"/>       </rdf:RD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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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Free talk - 이런저런 생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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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9 Apr 2009 02:27:35 GMT</pubDate>
		<dc:creator>칼릭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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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내가 없는, 우리가 있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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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날씨가 개떡같다고 투덜댔더니 결국 3월 말 찰떡같이 감기가 눌러붙었다. 3일 전 밤부터 콧물이 질질 나고 손발이 차더니 그제는&nbsp;열이 나서 조퇴를 할까말까 고민하다 그냥 버텼는데,&nbsp;결국 어제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다 휘청했다. 잠깐 주저앉고 생각했다. 이거 그냥 갈까 말까. 솔직히 어제도 열 있어서 거의 일은 못하고 엎드려 지냈던 걸 생각하면 이 상태로 출근해봤자 왠지 똑같은 꼴의 연속일 것 같았다. 병가를 내려고 전화를 집는 손이 왜 이리 달달 떨리는지, 정말 죄짓는 기분이었다. 사실 12년 개근의 빛나는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아파서 결석'이란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 그랬다. 워낙에 건강체질이기도 했고, 아파도 학교가서 아파라 라는 부모님의 방침에 따라 아무리 아파도 미련 곰팅이처럼 학교에서 자리를 지키며 엎드려 있던 녀석인지라. '아파서 안 간다'라는 행동은 난생 처음 해보는 너무나 익숙치 않은 일이었다.<br><br>결국 병가내고 자리에 누웠건만 오전 거의 내내 잠이 오질 않았다. 몸은 죽겠는데 맘은 불편하고, 걱정되고,&nbsp;괜찮은가 싶고, 이래저래 고민 걱정. 병원에 갈까 싶었는데 솔직히 병원 갈 기력이 있었으면 그냥 출근을 했겠다. 결국 침대에 내내 누워서 불편한 마음으로 있다가 점심 때가 거의 다 되어서야 까무룩 잠이 들었다.&nbsp;아, 솔직히 아프면 그냥 맘 편히 뻗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구나.<br><br>늦게사 눈을 뜨니 핸드폰에 문자가 한가득이었다. 걱정하는 동료 선생님들과, 그리고 난리인 아이들. 아픈 와중에서도 그걸 보니 얼마나 기분이 좋아졌는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 오는 죄책감은,&nbsp;그렇구나. 내 몸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건강 관리도 중요한 일이고 프로 정신이라는 것을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낀 셈이다.&nbsp;살다보면 나도 모르게&nbsp;주변과 많은 관계 맺음을 하게 되고, 그런 속에서 내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br><br>물론 아주 당연하게도, 내가 없다고 해도 세상은 충분히 잘 돌아갈 것이며, 또한 아주 잠깐의 과도기를 거친 다음 곧 아무렇지도 않게 내 주변의 사회와 사람들은 잘 살아갈 것이다. 그게 당연하고 그래야만 한다. '내가 없으면 역시 안돼, 훗'이 아니라 '내가 없어도 세상은 변함없어'라는 것이 당연한 공식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가 참 보잘 것 없고, 넓은 사회 속에서 외롭고 고독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br><br>동시에 생각해보면, 내가 없어도 세상이 돌아갈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소한 모든 한 명 한 명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탄탄하고, 나도 그 구성원으로서 책임 중 하나를 맡고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지만, 분명 모두가 없으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고, 나는 그 모두 중 한 명이고. 그리고 내가 그 모두 중 한 명임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관계맺고 살아감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려준, 고마운 사람들과 사랑하는 아이들의&nbsp;걱정어린 문자를 오래 간직하고 싶다. 고마워요.<!--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pinakes.egloos.com/2330701"	        dc:identifier="http://pinakes.egloos.com/2330701"	        dc:title="내가 없는, 우리가 있는"	        trackback:ping="http://pinakes.egloos.com/tb/2330701"/>       </rdf:RD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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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Diary - 하루하루의 일상</category>

		<comments>http://athgard.egloos.com/4841060#comments</comments>
		<pubDate>Thu, 26 Mar 2009 00:46:43 GMT</pubDate>
		<dc:creator>칼릭스</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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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세월은 소식을 싣고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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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학교의 3월은 눈 코 뜰 새 없이 흘러간다. 올해는 업무를 또 하나 안겨주시는 덕에 매일 별을 바라보며 퇴근하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어제는, 퇴근 후 컴퓨터를 켰다가 너무 졸려서 삼십분만 자고 일어나야지 했다가 화장도 못 지우고 방 불을 다 켠 채 그냥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그그그그저께인가는 자기 전 침대를 데운답시고 전자요를 최고 강한 7단으로 잠깐 맞춰 둔 다음, 자기 전에 분명 껐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모닝콜 울리기 2분 전에 눈을 뜨니 전자요 끄긴 뭘 꺼. 가장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며 후끈후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 찜질방 무더위 속 침대에서 단 한번도 깨지 않고 시체처럼 잔 내가 더 용자.<br><br>정신없이 보내는 하루하루 속인데도, 잠깐 메신저가 디링 와서 살펴보니 오래된 지인이다. 오랜만이라 반갑다고 안부 인사를 나눈다음, 바로 "나 이번 달 말에 결혼해" 란다. 막 웃으면서 "뭐야,&nbsp;갑자기&nbsp;이렇게 순식간에?&nbsp;사고쳐서 결혼하는 거 아니죠?" 했더니 말을 잇지 못한다. 아니 진짜?! 했더니 어쩌다보니 그리되었...하며 말끝을 흐리는 불쌍한 남자. 스물여덟에 벌써 마누라에 새깽이까지, 쉽지만은 않겠다며 하지만 정말정말 축하한다고 전해주었다. 왠지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니 기분이 묘롱해져서, 바쁜 와중에도 잠깐 손가락을 놀리지 않을 수 없단 말이지.<br><br>그러니까&nbsp;분명, 이 지인이 정말 뜨겁게 연애하다 헤어지고 거의 반 시체가 되어 있었던 걸 기억하는데. 그게 삼 년 전이었나&nbsp;사 년 전이었나. 어느새 벌써 극복하고 장가까지 간다니 잠깐 놀라우면서도 반갑고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서 나 어젯밤 그런 꿈을 꿨나봐. 어젯밤 꿈 속에서 예전의 남자친구를 보았다. 예전 남자친구에게는 이제&nbsp;새로운 그녀가 생겨서, 내가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둘이 다정히 포옹하고 있었더랬다. 어쩔 줄을 모르고 꿈 속에서 방황하며 슬퍼했던 기억은 아침에 깨고 나서도 찝찝했다. 물론 새 사람 생길 때도 되긴 했지만, 최소한 내가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심한 생각에 찬물 세수로 깨어날 때까지 영 껄쩍했었지. 그런 꿈을 꾸다니 이거 뭐지 했는데 오늘 이런 소식을 접하느라 그랬나 싶다. 해묵고 슬픈 기억은 벗어던지고 새롭게 비상하는 그 지인이 정말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참 기쁘고 다행이었다.<br><br>세월이 흘러가니 주변에서 하나 둘 씩 결혼 소식을 물어온다. 심지어 나만 해도, 오늘만 벌써&nbsp;만나는 남자 없어? 데이트 해야지 왜 퇴근하고 집에 가, 집에서 결혼 압박 안 들어와? 등등의 얘기를 세 번 정도 들었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너무 어리고 내 앞가림도 허덕허덕하고 있는데, 아니 벌써 무슨 결혼. 나같이 철 안 들은 마누라 만나서 누굴 고생시키려고. 나이를 먹으니 희소식들이 점점 쏟아지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니 참 좋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저&nbsp;먼 나라의 얘기 같아서, 붕어 끔벅대듯 그렇게 덤덤해지고 있다.&nbsp;언젠가 나도 때가 있겠지, 아니면 그건 그것대로 뭐 나쁘지 않고.&nbsp;내일까지 내야 하는 교육계획서나 마저 씁시다, 하며 다시 시선을 돌려버리는 내가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혼자가 좋은 나, 아아 익숙해지면 안된다고 주변에서는 구박하건만 나는 왜 이리 마음이 편한 것입니까요.</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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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Diary - 하루하루의 일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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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Mar 2009 10:17:21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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