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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efnprax</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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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Philosophie ist ihre Zeit, in Gedanken erfasst.
- G.W.F. Hegel</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20 Oct 2009 14:21:54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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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efnprax</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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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Philosophie ist ihre Zeit, in Gedanken erfasst.
- G.W.F. Hege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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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훈련소에서의 단상 # 1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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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적기 전에 짧은 넋두리. 훈련소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단지 먹거나 마실 것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nbsp;보급된 펜은 고장나 버려지기 일쑤였고 하루의 생각들을 정리하기에 수첩은 너무 작았으며 1주일에 두장씩 주어지는 편지봉투를 아껴쓰지 않으면 집에 편지조차 제대로 보낼 수 없었다. 먼저 다녀온 이들에게서 듣기를, 일기장을 보급받아 그곳에 많은 이야기를 적을 수 있으리라 하였으나, 어째서인지&nbsp;받지 못했고 그래서 작은 수첩에 꾸역꾸역 생각들을&nbsp;새겨넣어야 했다. 잠잘 공간도 부족해 죽겠는데 글 쓸 공간마저 부족하다는 것은 정말 서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편지지 몇 장을 훔쳐&nbsp;편지를&nbsp;쓰는 척하며&nbsp;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는 척 하였다. 편지지도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 조교에게 걸렸다면 얼차려를 받았을 것이다.<br><br>&nbsp; - 왜 우리는&nbsp;극단적으로 세밀한, 혹은 일반적이고 진부한 말밖에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이 공간에 대해서.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괴로운 하루하루를 적절히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외부에서 보면 이곳은 일종의 블랙박스다. 사람이 들어갔다가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온다. 그 안에서의 모든 것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고 그 일상을 밖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침 기상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그 모든 시간이 1분 1초 단위로 통제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런 경험을 갖지 못한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저 '잘 다녀와'와 '벌써 왔냐'는 두 종류의 인사만이 이곳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인사인 것은. 만약 이곳을 나간 인간들이 자신의 경험을 잘 설명할 수 있다면, 보다 더 잘 정리해서 말할 수 있다면, '군대 얘기'는 기피대상 1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년은커녕 며칠만 이곳 안에 있어도 머리가 굳어버린다. 생각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생각은 통제 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곳을 나간 인간들은 - 심지어 이곳에서 통제는 감옥 안에서의 그것보다 괴롭다. 감옥에서는 훈련을 수시로 시키지는 않으니까 -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알지 못한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오직 진부한 말들뿐이다. 자신이 군대에서 축구했던 얘기를 떠오르는 대로 다 떠들어대거나, 아니면 정훈 시간에 들었던 어르신들의 일반론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곳에서의 시간은 중간에 잘려버린 필름처럼 남겨진다. 그것을 주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 9. 22.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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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0 Oct 2009 14:21:54 GMT</pubDate>
		<dc:creator>Arou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2009년 10월 16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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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개인의 모든 시간을 1초까지 통제하는 공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br><br>그러나 더 괴로운 사실은 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곳에서의 내 경험들은 어떤 것이었고, 그곳을 나온다는 것이 어떤 기분이며, 지금 나의 심정이 어떠한 지를 쓸 엄두가 나질 않는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을 쓰는 순간 굉장히 진부하고 전형적인 레파토리로 서술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br><br>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잘잘하게 쪼개어 조금씩 서술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통째로 적기에는 나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description>
		<category>일기</category>

		<comments>http://arouet27.egloos.com/5143387#comments</comments>
		<pubDate>Fri, 16 Oct 2009 09:46:43 GMT</pubDate>
		<dc:creator>Arou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방명록(3)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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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블로그를 폐쇄했다 열기를 반복한 무책임한 주인장입니다. 다른 블로그 사이트에서 사용법을 익히다가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아서 다시 이글루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에 기존 방명록 등록시간이 지나버려서 새로운 방명록을 작성합니다. 기존 방명록과 마찬가지로 이 댓글란에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남겨주세요.<br><br>- 공지사항을 수정합니다. 기존의 이웃 분들도 새로운 공지사항을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br><br>- 전국언론노조 파업을 지지하며 <a href="http://capcold.net/blog/2531/comment-page-2?wpc=dlc">"표현의 자유가 눈내리는 동네"</a> 캠페인에 동참합니다. 동참하실 분은 걸어둔 링크를 따라가서 블로그 스킨을 수정하시면 됩니다.(2009. 01. 01)			 ]]> 
		</description>

		<comments>http://arouet27.egloos.com/4691681#comments</comments>
		<pubDate>Sat, 10 Oct 2009 15:00:00 GMT</pubDate>
		<dc:creator>Arou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자리비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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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9월 17일부터 10월 16일까지&nbsp;- 물론 지금까지도 사실상 '자리비움' 상태였습니다만 - 자리를 비웁니다. 한 달 뒤에 뵙겠습니다.			 ]]> 
		</description>
		<category>잡담</category>

		<comments>http://arouet27.egloos.com/5114471#comments</comments>
		<pubDate>Wed, 16 Sep 2009 01:25:06 GMT</pubDate>
		<dc:creator>Arou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머피 데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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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 이번 주말에 작성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프리젠테이션 준비다. <br><br>&nbsp; 집에 있던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 혼자 껐다 켰다를 반복한다. 셀프 리부팅에 지쳐&nbsp;학교로 갔다. 중앙전산원에 갔더니 장비 교체 문제로 이틀간 휴관한다. 동아리방에 가 보려고 하니 다른 사람들이 이미 쓰고 있다. 중앙도서관 전산실에 가 보려고 하니 건물 휴관일이다. 인문대 전산실에 가려고 하니 공사중이다. 인문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전산실(신양)에 갔더니 컴퓨터 절반은 고장이고 절반은 다 쓰고 있다. 한숨을 쉬며 학교를 나와 거리에 있는 피씨방에 간다.<br><br>&nbsp; 눈앞에 보이는 아무 피씨방에나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나니 왠지 잠시 놀고 싶다. 20분 정도 놀다가 과제를 시작한다. 시작하려 보니 컴퓨터에 워드도 한글도 없다. 이미 20분 놀아버린 뒤라서 "죄송한데 한글이나 워드가 없네요" 하며 나갈 수가 없다. 다른 컴퓨터에도 없다. 남은 40분동안 빈둥빈둥 논다. 아까운 천원을 내고 다른 피씨방에 간다. 그리고 과제를 하다 보니 내 신세가 참 처량하다. 하소연하려 포스팅을 한다.			 ]]> 
		</description>
		<category>일기</category>

		<comments>http://arouet27.egloos.com/5089375#comments</comments>
		<pubDate>Sat, 22 Aug 2009 07:53:27 GMT</pubDate>
		<dc:creator>Arou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자기소개 단상 ]]> </title>
		<link>http://arouet27.egloos.com/508387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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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 생길 때마다 도대체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정작 써야 하는 글은 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려다가 자기소개 자체에 대한 고찰을 하는 글을 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완전히 글을 새로 써야 하게 되었는데 막상 써 놓은 것은&nbsp;나중에 좀 더 수정하고 덧붙여 보려고 우선&nbsp;(번역하여) 이글루에 저장해 본다.<br><br>---------------------------------------------------------------------------------------------------------------------<br><br>나 자신에 대해 소개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다. 어떻게 내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을까? 관찰자인 나 자신이 동시에 나를 관찰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심지어 가능한 일인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 나는 취미로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며 저것을 싫어한다, 등등. 그런데 이 방식은 무척 간접적으로만 자신을 표현한다. 내가 콜라를 좋아한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나는 콜라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상대를 만나면 나는 “음 당신은 콜라를 좋아하는 사람이군요.”라고 대답하는 동어반복적 대화를 진행해야 하는가? <br>다른 한 가지 방식은 과거의 자신을 서술하는 것이다. 저는 어디 출신이고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무엇을 했었어요. 그런데 과거의 자신을 그렇게 서술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과 다른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과거의 나에 대한 서술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벽한 동일성을 갖고 있다고 보장하지 못하는 이상) 나를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단초만을 제공하지 그것으로 완벽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br>그래서 가장 훌륭하게 나를 표현하는 방법은 나를 외화시킨 무언가를 통해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글을 쓰거나,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다시 말해 외부 대상에 나를 투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이미 관찰하는 나와 투영된 나는 다른 자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외화된 나와 관찰하는 나 사이에 존재하는 강한 연결망은 단지 두 자아를 타자로서 배치하지 않는다. 즉 관찰하는 자아는 외화된 자아와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br>			 ]]> 
		</description>
		<category>단상</category>

		<comments>http://arouet27.egloos.com/5083875#comments</comments>
		<pubDate>Mon, 17 Aug 2009 11:19:57 GMT</pubDate>
		<dc:creator>Aroue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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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아오 중국매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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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nbsp; 아침에 집에서 나오다가 깜짝 놀랐다. 희한하게 생긴 주홍빛 나방같은 놈들이 대여섯 마리씩 집 앞에 죽어 있었던 것이다. 이게 뭥미 흐허아ㅓ아ㅓㅋ 하며 복도를 걷다 보니 다른 집앞에도 줄줄이 시체들이 널려 있다. 작년에도 이랬던 것 같지만 이 정도로 많지는 않았는데-_- <br><br>알고 보니 이 놈들의 정체는&nbsp;나방이 아니라 중국매미라는 별명을 가진 주홍날개꽃매미다. 네이버에 쳐 보니 유충 기간이 1년이라서('일반적인' 매미는 주지하다시피 유충기간이 적어도 2-3년 길면 6-7년이며 심지어 17년동안 유충인 매미-그래서 이름이 십칠년매미-도 있다)&nbsp;대량 번식이 가능하고 수액을 싹 빨아먹어버리는 탓에 농가에 엄청난 피해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원래 매미들도 수액을 빨아먹기 때문에 나무에 피해를 주기는 하지만, 중국매미들처럼 나무를 싹 뒤덮고 빨아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일반적인 매미들은 다른 곤충들에게 매우 환영받는 곤충인데, 이유인즉 나무의 수액을 빨아올리는 펌프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주변에서 수액을 얻어먹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중궈매미들은... ㄷㄷㄷ)<br><br>생겨먹은 것도 너무 징그러워서 만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 놈들(원래 매미의 날개는 투명한데 이놈들은 멍미.. 왜 갈색이고 또 안쪽은 주황색이야)이 온 사방에 날아다니고 심지어 밤에 걷고 있으면 나를 툭툭 치고 가니 - 최근에만 3번은 이놈들과 부딪혔다 - 도저히 좋아할래야 좋아할 건덕지가 없다. 원래 매미는 시끄럽지만 그래도 그 수가 이렇게 많지는 않은데다가&nbsp;오래 살지 못하고 금방&nbsp;죽기 때문에 여름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곤 했는데 이 놈들은 조용한 대신 여름 가을&nbsp;내내 사람과 다른 나무들을 괴롭히고 있다. 약에도 잘 죽지 않는다고 하고 알마저 식물에 피해를 주며 심지어 국내에는 천적조차 없다고 하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br><br>(천적을 원산지에서 데려오면 되지,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경기도&nbsp;오산이다. 한 생물에 대한 천적을 다른 토양에 데려오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a h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9/23/2008092300022.html?srchCol=news&amp;srchUrl=news4">다음과 같은 일</a>이 있었다. 사탕수수를 해치는 수수풍뎅이가 말썽을 피우자 이놈들을 잡아먹게끔 두꺼비들을 데려온 것. 하지만 수수풍뎅이가 활동하는 지역은 두꺼비에게는 너무 높았고 그래서 두꺼비는 다른 토종곤충들을 잡아먹었다. 더 심각한 일은 이 두꺼비들이 맹독성이라 악어들이 두꺼비를 먹고 죽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서는 77%까지 악어의 개체수가 감소했다고 한다.<br><br>「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노다메가 뜬금없이 몽구스 인형을 뒤집어쓰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키나와에서 반시뱀을 잡으려고 몽구스를 데려왔더니 이놈들이 다른 토종 조류 등을 먹는 바람에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오키나와 관청에 몽구스를 잡아가면 2천엔을 준다고...-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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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잡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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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5 Aug 2009 05:05:18 GMT</pubDate>
		<dc:creator>Arou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빌린 책에 낙서하기 ]]> </title>
		<link>http://arouet27.egloos.com/506311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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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헤겔의 정신현상학 세미나를 다시 시작했다. 책을 바로 살 돈도 없고 번역에 대한 말들이 많아서 일단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빌려보니 이게 웬 걸, 어떤 작자가 연필로 모든 텍스트를 색칠해놓았다. 덕분에 안 그래도 문장 괜시리 어렵게 쓰는 인간 때문에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온 사방에 밑줄이 그어져 있어서 더 정신이 없어졌다. 지우개로 다 지워가며 읽고 있는데 짜증나 죽겠다. 빌린 책에 낙서하는 인간들은 지옥가서 자기가 낙서한 텍스트를&nbsp;영원히 지워야 하는 - 그러니까 마치 시지프스처럼 낙서를 지우면 또 생기고 또 생기는 -&nbsp;고통을 겪을 것이다. 흥.<br/><br/>tag : <a href="/tag/핵심문장에만_밑줄_쳐_주면_고맙게_읽겠는데" rel="tag">핵심문장에만_밑줄_쳐_주면_고맙게_읽겠는데</a>			 ]]> 
		</description>
		<category>잡담</category>
		<category>핵심문장에만_밑줄_쳐_주면_고맙게_읽겠는데</category>

		<comments>http://arouet27.egloos.com/5063112#comments</comments>
		<pubDate>Thu, 30 Jul 2009 02:27:26 GMT</pubDate>
		<dc:creator>Arou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바보와 잠 ]]> </title>
		<link>http://arouet27.egloos.com/506268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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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우리 마을에서는 그 도시에 대해 이런 말이 있었다.<br><br>「저곳 사람들은 잠을 자지 않는대!」<br>「왜 그러지?」<br>「피곤해지지 않기 때문이래」<br>「왜 피곤해지지 않지?」<br>「바보들이니까」<br>「바보는 피곤해지지 않나?」<br>「바보가 어떻게 피곤해지겠어!」<br><br>- 프란츠 카프카, 「국도 위의 아이들」中			 ]]> 
		</description>
		<category>감상</category>

		<comments>http://arouet27.egloos.com/5062680#comments</comments>
		<pubDate>Wed, 29 Jul 2009 14:47:58 GMT</pubDate>
		<dc:creator>Arouet</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사진과 예의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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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 나는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nbsp;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은 항상 지니고 있다. 무엇이 좋은 사진인가를 따지고 들어가면 한도끝도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추구하는 사진의 종류만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서 그 범위 내에서 좋은 사진이 무엇인지를 좀 더 자명하게 말할 수 있겠다.<br><br>&nbsp; 내가 찍으려는 사진은 풍경사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삶의 풍경에 대한 사진이다. 한적한 자연 풍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피사체로 하는 사진을 찍으려 한다. 노동하는 인간. 거리에서 한숨쉬는 인간. 담배피우는 인간. 집회에 나온 인간. 등등. 그러나 언제나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마음 한 켠을 짓누르는 부담감이 있다. 그 부담감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br><br>&nbsp; 단적으로 말해 - 즉 가장 무규정적인 의미에서&nbsp;-&nbsp;사진찍는 행위는 오직 이미지의 생산이다. 사진을 찍는 자의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사각형으로 고정된 이미지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카메라라는 선험적 인식틀 속에 집어넣은 시야의 광경이 이미지로 고착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을 보며 느끼는 '노동의 숭고함' 내지 '고독함' 등의 감상은 현실 그 자체, 즉 피사체의 삶에서 단순히 떠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을 찍는 자와 감상하는 자들이 부여하는 것이다. 다만 찍는 자가 부여하는 정도가 더 큰 듯하다. 나의 고민은 여기에서 기인한다.&nbsp;<br><br>&nbsp; 예전에 나는 붕어빵 장사하는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으려다가 찍지 못했던 경험(<a href="http://arouet27.egloos.com/4796951">링크</a>)이 있다. 그 광경은 매우 '예쁜' 사진을 만들기에 좋은 상황이었다. 사진의 구도 자체로만 놓고 보면 말이다. 추운 겨울 해가 거의 저물어 가는 무렵,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가판 뒤에서 다른 상점들의 백열등 불빛이 붕어빵 주인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지체없이 카메라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br><br>&nbsp;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단지 피사체인 인물이 카메라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나는 사진찍히기 싫어하는 나의 친구들을 내 멋대로 찍어댄다.) 어떤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밀면 치우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설령 치우라고 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 찜찜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 찜찜함이란 아마도 이런 것이라 생각된다. 피사체인 인물들의 삶의 무게를 사진에 담아내기엔 너무 무겁거나, 혹은&nbsp;내 멋대로 재단해버리고 있다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그것도 오직 개인적으로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말이다.<br><br>&nbsp;&nbsp;학내 언론에서 잠시 활동했을 때는 이런&nbsp;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결코 그런 감상에 젖어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보도용 사진이라는 명백한 목적을 지닌 채 셔터를 누를 땐 말이다. 가령 장애인 집회 사진을 찍거나 반전 시위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부담 없이 셔터를 수십 수백 번 눌러댔다. 가까이서 사람 얼굴을 찍는 것도, 단상에 거의 붙어서 셔터를 누르는 것도&nbsp;주저하지 않았다.(물론 어떤 집회인가에 따라서 때로는 함부로 찍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언론의 보도 목적이라는 공익에 부합하는 행위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 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여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br><br>&nbsp; 그러나 나 개인의 사진을 찍을 땐 상황이 다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셔터를 누를 때마다 무서움을 느낀다. 당신이 왜 이 사진을 찍는가, 라고 찍히는 어떤 - 그리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 사람이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말이 딱히 없다. 그냥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가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의 전부다. 애초에 내가 그 사람의 삶을 함부로 사각형의 이미지로 담아내어도 되는가에 대해서 대답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초상권 차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br><br>&nbsp; 오히려 이렇게 말하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 길거리에서 사진찍을 대상을 찾아다니며 마구 돌아다니는 동안, 나 자신에 대해 갑자기 이런 느낌들이 들었다.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까마귀나&nbsp;<strike>생쥐</strike> (아 이건 금칙어..) 참새같다는 생각.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nbsp;찍고 만족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삶에 이런저런 수식어들을 부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자책감.<br><br>&nbsp; 그래서 한동안 나는 사람에게&nbsp;렌즈를 들이밀지 못했다. 길가에 외롭게 나 있는 풀. 널부러진 깡통. 그런 잡다한 것들을 찍어댔다. 하지만 한계가 너무 분명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이 주는 생동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길가를 걸으며 임의의 행인들에게 대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러번 혼났다. 가게의 주인이 찍지 말라고 손을 흔들거나, 심지어 나와서 뭐하는 거냐고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일단 클레임이 들어오면 나는 그냥 도망가야 했다.<br><br>&nbsp;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그래서 정말 부럽다. 반드시 결과물의 차원에서만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을까. 단지 그 사람이 철면피라고 단정짓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사진에 대한, 셔터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한 것이다. 내가 지닌 이 강박관념의 정체를&nbsp;더 정확히 해명하고 나서&nbsp;해소할 수 있다면 - 반드시 더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 최소한 내가 사진찍는 순간마다 가슴이 옥죄는 이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br><br>덧. 아마 이 모든 생각들은 애시당초 사진찍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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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단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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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1 Jul 2009 15:50:37 GMT</pubDate>
		<dc:creator>Aroue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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